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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이 가장 쉬웠어요 - 11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9:06 577회 0건
제 글에서 아버지, 아버님이라는 말이 가끔 나옵니다. 언제 부턴가 우리나라 드라마가 망
쳐버린 단어 중에 하나가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말인데요. 현대표준화법에 따르면 자신의
부모님을 칭할 때 자식이 최대로 높여 부를 수 있는 존칭은 아버지, 어머니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딴에는 높인다고 아버님, 어머님이라 하면 엉뚱한 말이 됩니다.

아버님, 어머님의 쓰임은
1. 돌아가신 자신의 부모님을 상대방에게 말할 때
2. 남의 부모님을 호칭할 때
3. 편지나 서면에서 부모님을 호칭할 때

이렇게 국한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정의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의 부모님을 아버님, 어
머님이라고 하면, 살아 계신 분을 돌아가신 분으로 만들거나, 남의 아버지가 되지요. 그런데
사극이나 드라마를 보면 툭 하면 자기 부모님께

아버님, 문안 드립니다,
우리 아버님께 말씀드려볼께... -_-;






무공이 가장 쉬웠어요. -11 : 사설향의 향기

상아 빛깔의 거대한 대리석 기둥들이 열을 지어 서있는 회랑. 조금만 큰 소리로 숨을 내쉰
다면 그 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릴 것 같은 적막감이 수 백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넓은 회랑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각양각색의 무기를 들고
있는 전사들을 조각한 부조들이 기둥을 보호하듯이 사열하고 있는 이 곳의 가장 윗자리에,
나무와 가죽으로 장식된 고풍스러운 의자에 앉은 노인은 자신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청
년을 안쓰러운 감정을 숨기지 않은 채 지그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결국 떠나려느냐?"
"예, 태상궁주님. 본 궁의 무위를 중원에 떨치고 돌아 올 날을 고대해 주시기를 바라나이다. "
"중원은 그리 만만한 곳이 아니다. 언제 어디서 은거하고 있는 기인이 나타날지 모르고, 또
수 많은 방파에서 키운 고수들이 널 노릴지도 모르는 그런 흉험한 곳이 바로 중원이라는 곳
이니라. 다시 한번 더 생각해 볼 수 없겠느냐? "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청년은 노인의 말에 고개를 들어 빙긋이 웃으며 대답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더 가보고 싶은 것이옵니다. 지난 시간 소손이 익힌 본궁의 비전이 중원땅
에 얼마나 통하는지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사옵니다. 허락해 주시옵소서. 결코 본
궁의 위명에 누를 키치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
"후우, 그깟 허명이 무어 대수라고. 언젠가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것 처럼 허망한 것도 없는
것이거늘.. 젊음이란 다 그런 것인지 너 역시도...."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노인. 그의 얼굴에 서리고 있는 고뇌의
빛이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는 청년은 그를 바라보고 있다가 몸을 일으켜 노인에게 다가간
다. 그리고 노인의 손을 잡으며 따뜻한 미소로 바라보는 청년이 자신의 손에 전해지는 노인
의 체온만큼 따뜻한 감정을 담아 그를 위로한다.

"할아버지. 이 소손, 결코 아버님의 전철을 밟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단지 제 눈으로 보
고 싶은 것 뿐이옵니다. 아버님이 그토록 염원했던 땅. 그리고 아버님의 피가 남아 있는 그
곳, 중원이라는 곳이 어떤 곳인지 이 소손의 눈으로 직접보고 돌아오겠습니다. 불충하고 모
자란 이 소손을 걱정하시는 할아버지의 마음, 어리석은 이 소손이 결코 모르지 않사옵니다. "

지난 날 살아 온 세월의 햇수 만큼 눈가의 주름이 잔뜩 지어져 있는 그의 눈을 마주치며, 진
중한 표정으로 조금전 말을 계속 잇고 있는 청년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다.

"소손의 이 마음 깊은 곳에 할아버지를 소중히 담고 다녀오겠습니다. 부디 허락해 주시길
다시 한번 간청드리옵니다. "

그의 손을 잡고 있는 청년의 손위에 자신의 손을 겹치는 노인. 겹쳐진 두 손에 전해지는 체
온 만큼 그들의 마음도 함께 전해지는 듯 하다. 한동안 늙고 주름진 자신의 손으로 청년의
손을 쓰다듬고 있던 노인의 입이 무겁게 열리기 시작했다.

"그래, 가장 먼저 아미산으로 갈 것이냐?"
"예. 사천땅을 밟는 즉시 아미산을 오를 것이옵니다. 아미를 불태운 후 무당과 소림을 찾아
가 10년전 그들의 업보에 대한 죄값을 받아오겠나이다."
"후우.. 피로 갚는다고 이미 지나간 과거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거늘, 혈기를 누를 수는 없는
게냐? 너도 알다시피 아미는 그후 본궁에 사죄의 뜻을 여러 차례 밝혀 왔었다. 당시 장문인
도 그 일을 깊이 사죄를 하며 폐관에 들었거늘.. 자비와 용서란 진정한 강자만이 베풀 수 있
는 것이니라. 그 뜻을 정녕 모르겠느냐? "
"사람을 해한 후, 말 몇 마디로 사죄한다고 죽은 이가 살아 돌아올 수 있다면, 소손은 그들을
몇 번이라도 용서하고 지난 날을 잊을 수 있을 것이옵니다. 비록 아미가 지난 날 그들의 과
오를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손에 맺힌 아버님의 피는 결코 씻을 수 있
는 것이 아니옵니다. 그 피를!... "

노인의 손을 잡고 있던 청년이 황급히 몸을 돌리고, 두터운 돌로 만들어진 문쪽으로 걸어가
며 그 석문의 무게만큼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한다.

"눈을 감을 때 마다 떠오르고, 잠을 잘 때 마다 꿈에 나타납니다. 피에 젖고 성한 곳이 없는
아버님의 그 모습을 말입니다. 그리고 이 모자라고 어리석은 아들을 살리기 위한 아버님의
그 처절한 몸짓을.. 자식된 도리로 소손이 어찌 잊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어찌.. 이 못난 아
들을 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음의 길을 걸어간 아버님의 그 눈빛을 이 아들이 잊을 수 있단
말입니까! "

넓은 회랑에는 청년의 피를 토할 것 같은 외침이 몇 번이나 반복되는 메아리가 되었다가 천
천히 사라져 간다.

"아미, 그들은 어쩌면 용서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무림맹
과 소림, 무당. 그들에게는 결코 용서라는 말을 입에 담아서는 안됩니다. 그들의 마지막 하
나가 죽을 때까지 결코.. 전 그들을 용서할 수도,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도 없습니다. "
"네 마음을 돌릴 수 없다면, 부디.. 부디 살아 돌아 오거라. 이 늙은이에게 남은 것은 이제
너 뿐이니..너 마저 내 곁을 떠난다면 이 늙은이 무엇을 바라고 살아갈 수 있겠느냐. "

문을 열고 나갈려고 하던 청년은 노인의 그 말에 다시 몸을 돌리며 바라보았다. 깊은 주름
이 가득한 노인의 얼굴에는 지나간 세월의 골이 그 깊이 만큼 세겨져 있는 듯 하다. 정중한
자세로 그를 바라보던 청년은 마치 대례를 올리 듯이 정성을 다해 고개를 숙이며 노인의 말
에 화답을 한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돌아올 곳은 할아버지의 곁이옵니다. 언제나 철 없고 어리석은 이 소
손을 걱정해주시고 염려해주시는 마음, 어느 땅에 제가 있더라도 결코 잊지 않겠사옵니다. "
"한 가지 부탁을 하마. 12신위를 데리고 가거라. 그래야 내 조금이라도 안심을 할 것 같구
나. 그것까지 물린다면 결코 허락할 수 없다. "
"하지만 그들은.."
"됐다. 내 마지막 부탁이니라. 어차피 내 곁에는 혈비가 있지 않느냐. 그러니 이 할애비 말
을 듣고 그들을 데리고 가거라. 이현아. "

노인의 말에 빙긋이 웃음을 짓는 청년은 열려진 문을 닫으며 노인에게 말을 했다.

"아마.. 소손이 다시 궁으로 돌아올 때는 12신위가 지금과 조금 다를지도 모릅니다. 할아버
지. 큭큭.. "
"어차피 그들은 너가 궁주가 되면 줄려고 키운 아이들. 니 맘대로 하거라. 그들에게 뭘 할지
모르는 것도 아니니.."
"후훗, 감사히 받도록 하지요. 그럼 소손이 돌아오는 그날까지 부디 강녕하십시요."
"어서 가거라. 인사는 오래 끌수록 추한 법이다."

이윽고 둔탁한 소리가 들리며 무거운 석판으로 만들어진 석문이 넓고 고요한 회랑을 가로
막기 시작 한다. 닫혀진 문을 한동안 바라보던 청년은 문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가만
히 있었다. 숙여진 그의 고개 밑으로 맑고 가벼운 것이 떨어지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있다.

"혈비! "

비단포로 만들어진 무복 소매로 눈가를 정리한 청년이 정적이 감돌고 있는 복도에서 나지막
히 누군가를 부르자, 아무도 없던 어두운 복도에는 수 많은 인영이 홀연히 나타난다. 그리고
그 중에 붉은 색 복면을 한 몸매가 갸름한 인영이 무릎 걸음으로 걸어와 청년의 등뒤에 오체
투지를 한다.

"혈비대주, 소궁주의 부름에 응하나이다. 말씀만 하소서. 그 무엇인들 이루지 못 하오리까?"
"중원으로 떠난 동안 태상궁주님을 부탁한다. 너희들 단 한 명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그 누
구도 태상궁주님을 해하려 하는 자가 있어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
"그 어떤 명이라 감히 어길 수 있겠나이까! 심려치 마옵소서. 혈비대 단 하나의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본 궁을 지키는 망혼이 된다 하더라도 그 어떤 간악한 자들도 감히 범접치 못 하도
록 하겠나이다. "

붉은 무복을 입은 여인의 대답에 그녀의 뒤에 함께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수 많은 인영들이
함께 복도를 가득 울리도록 외치기 시작한다.

"피로써, 목숨으로써, 원혼으로써 본 궁을 지키는 수호사령이 되겠나이다. "
"너희들.. 그 고마운 마음을 소중히 가지고 다녀오겠다. 부탁한다.. 혈비! "
"본 궁의 오랜 염원을, 숙원을, 그리고 지워지지 않는 그 치욕스러운 피의 과거를 모두 이루
시길 이곳에서 고대하며 기다리겠나이다. 부디 대업을 이루소서. "
"대업을 이루소서! "

작은 전각에 앉아 시비가 내어준 사설향을 마시고 있은지 한식경이 지났을 무렵. 뒤에서 불
어오는 바람을 따라 향긋한 향기가 선우영의 얼굴을 어루만지고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
었다. 가볍게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나지막히 들리더니 이윽고 조용한 몸짓으로 전각의
한 켠에 앉는 것을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다.

"대적을 연주할 수 있는 악사를 청했건만.. 여인이었나 보구나.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차의
이름이 사설향이라 하던데, 이 차에 어울리는 노래를 불러줄 수 있겠느냐? "

고개를 돌리지 않고 앞만 바라보며 말을 하는 선우영의 뒤에서 여인이 희고 고운 손으로 옥
빛의 대적을 꺼내 입에 가져다 대기 시작했다. 잠시 그녀의 작고 여린 가슴속 가득히 숨을
들여 쉬던 그녀는, 한번 숨을 참더니 나직히 숨을 내뱉으며 대적의 한 끝을 입에 물고 숨결
을 불어 넣기 시작 했다.

그리고 그녀의 향긋한 숨결이 스며드는 옥빛 피리에서 그녀의 숨결 만큼이나 곱고 맑은 소
리가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한동안 그 음율에 귀를 기울이며 가만히 눈을 감고 듣고 있던
선우영이 손에 들고 있는 찻잔을 입에 가져가며 그 음율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눈을 감고 있
지만, 그의 눈은 오래전에 지나간 어느 날의 시간을 ?아가고 있었다. 사설향과 옥적이 만들
어내는 향취에 그의 눈은 이내 촉촉히 젖어 가기 시작하고, 대적의 음율과 함께 이어지는 그
어떤 기억의 자락을 따라가고 있었다.

월국의 국경을 넘은 지 1년이 지났을 무렵, 중경을 떠난 남로정벌군은 월국의 심처인 타이
호산을 앞에 두고 부락 하나를 포위 공격하게 된 전군 본대. 남로정벌군의 전군 장졸들은 수
장인 전금장군 양호민의 명령에 따라 불화살을 일제히 날린 후 공격하기 시작한다. 자신이
입은 군복과 다른 이들을 무차별 적으로 도륙하며 전진하는 이들의 가운데 선우영이 서 있
었다. 사람들이 내지르는 비명과 고함소리가 귀를 찌르듯 울려오고, 칼과 도검이 부딪히는
금속성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는 아수라장의 한복판을 선우영은 마치 그들과 무관한 듯한 표
정으로 걸어가고 있다.

눈을 뜨고 볼 수 없는 참혹한 참상을 무심한 표정으로 걸어가며 불타고 있는 부락 중앙의
유독 눈에 띄는 커다란 나무집으로 접근해 가고 있었다. 그의 뒤켠에는 부락에 남아 있는 남
자들을 모두 죽인 후 숨어있는 여인들과 어린 아이들을 모아 부락 중앙으로 모으고 있는 병
졸들의 모습이 이어지고 있었다. 오후에 내린 소나기 탓인지 질퍽거리는 진흙땅에 붉은 흙
기운을 더욱 붉게 만드는 진한 핏줄기들이 시내를 이루며 흘러가고 있는 지옥같은 광경이
펼쳐지고 있다.

이 땅에 온지 벌써 수 십번이나 본 광경이지만 도저히 익숙해 지지 않는 그것에 욕지기가
나올 것 같은 선우영은 얼굴을 찌푸린 채 살아 남은 이들을 수색하기 위해 집안을 뒤지기 시
작했다.

이번 공격에 중군에서 내려온 명령은 단 두 글자. 멸절. 쓸만한 여인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죽여야만 하는 잔인한 명령을 거절할 수 있는 권한도 없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따라야
만 하는 하급 병졸로써 명령의 가혹함을 최일선에서 지켜야 하는 선우영의 눈빛은 이미 생
기를 잃고 회색빛을 띄고 있었다. 불타고 있는 몇 개의 방을 수색한 후, 창고로 보이는 방에
칼을 빼어 들고 들어간 선우영의 눈에 작은 칼을 가슴에 올리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국의
여인이 보인다.

다가가자 떨리는 손에 쥐어진 그 작은 칼로 자신의 목을 찌르는 여인의 모습에 선우영은 놀
란 눈으로 들고 있던 칼로 단검을 쳐내고 여인의 손을 붙잡는다.

"내 말을 알아 들을지 모르지만, 죽일려는 뜻은 없다. 그리고.. 아니다."

원망과 두려움, 그리고 눈물이 섞인 눈망울로 선우영을 바라보는 여인과 의미를 알 수 없는
서로의 눈빛이 한동안 이어진다.

"이곳에 가만히 있거라. 이 가죽으로 얼굴를 막으면 버틸 수 있을 거다. 한 식경이 지난 후
알아서 여기를 탈출해라.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이것 뿐이다. 미안하다. "

그녀의 몸위로 털이 수북한 짐승의 가죽을 던져 덮어주고 창고의 이곳 저곳에 불을 지르는
선우영을 그녀가 망연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다. 어느 정도 불을 붙인 후 잠시 그녀를 바라
보다 밖으로 나가려 하자 여인이 서툰 한어로 그에게 물어 온다

"왜.."
"한어를 아는가? 내가 왜 이러는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지금 이런 상황을 우리 모두 원하
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만 알아주길 바란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우리들 중에는 어쩔 수
없는 자들도 있다는 것을... 빠져나갈 때 조심해라. "
"기다려..."

선우영이 고개를 돌려 여인을 바라 본다. 여인도 선우영의 눈을 오랫동안 지켜 본다. 창고
에 쌓여 있던 물건들에서 타오르기 시작한 연기는 매케한 냄새와 함께 그녀와 그의 사이를
채우기 시작하고, 집밖에서는 사람들이 울부짖는 처절한 비명이 끝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시간이 없다. 가야 한다.."
"만약.. "

몸을 돌려 나갈려는 선우영에게 나지막히 말을 하는 그녀.

"만약, 피리 소리가 들리면.. 귀를 막아."
"뭐? "

대답을 하지 않고 몸에 둘러진 가죽으로 얼굴을 가리는 여인. 그 모습을 한동안 바라 보던
선우영은 몸을 돌려 문밖으로 나가며 말을 했다.

"난 선우영이다. 넌?"
"쑤안. 주술사에겐 성은 없어."
"쑤안, 살아 남아라. 반드시.. "

그 말을 한 후 집 밖으로 나오자 눈에 익은 노인이 선우영의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무언가 찾으려는 듯이 그의 몸을 아래 위로 유심히 훑어 보던 노인은 선우영의 어깨를 살짝
감싼 후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 하느라 이렇게 늦었어? 뭐라도 꿍쳐 온 것 아냐?"
"아, 영감도.. 날 그렇게 못 믿소? 뭐 하나 건졌으면 우리가 날로 먹을 사이요? 참내."
"그래도.. 대충 정리되고 있는데 너만 안 보이잖아. 걱정도 되고.."
"안에 시체가 좀 있소. 병자들인 것 같던데.. 불태우느라 좀 늦었구려. "
"그래? 돌림병이려나.. 재수없게."

가지고 있는 햇불을 나무 지붕위로 던지며 주위에 몰려 있는 병졸들에게 말을 하는 노인.

"니들도 보고만 있지 말고 빨리 정리해. 돌림병이 있을지 모르니 저 집은 빨리 태워버리고..
벌써부터 속이 안좋군. 퉤~"

찝찝한 듯 침을 뱉으며 몸을 돌리는 노인. 그리고 손에 들려있는 햇불로 나무집을 태운 후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병졸들.

선우영이 한동안 불타고 있는 집을 바라보고 있을 때 집 뒤의 숲속 한 켠이 조금씩 흔들리
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상처입은 여우마냥 숲속에서 조심히 주위를 둘러 보는 여인의 모
습이 보인 것은 뜨거운 열기가 나무집을 송두리채 집어 삼키기 직전이었다. 저녁노을 보다
더 붉은 불꽃이 둔탁한 소리를 내며 나무집을 집어 삼키고 붉은 불꽃가루가 하늘높이 솟구쳐
날아간 후 다시 그 숲속을 바라보았을 때는 그녀가 남기고 간 듯한 그슬려 있는 검은 가죽만
이 덩그렇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선우영이 그렇게 오래전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을 때, 연주를 다 마쳤는지 부드럽고 고운 여
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 왔다.

"소녀의 노래가 마음에 드시는지요?"

어느세 젖어 버린 눈가를 정리한 선우영은, 탁자에 놓여 있는 식어버린 차를 찻잔에 부으며
그녀에게 대답했다.

"내게 있어 지금 들은 적음은.. 마음에 들고 안 들고 그리 문제가 되지 않소. 그저 오랜만에
듣는 대적의 음율과 이 차향을 다시 만났다는 것이 중요할 뿐.. 내겐 그것 뿐이오. "
"사연이 있는 것들인가 보옵니다."
"강호에 검을 들고 살아가는 자로써 어찌 크고 작은 사연이 없을 수가 있겠소. 그저 내가 살
아가는 동안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바로 이것들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는 것 밖에는.."

차잔에 가득 부어진 식어버린 사설향을 나직히 바라보던 선우영은, 눈을 감고 그 차를 입에
가져가 마시기 시작한다. 그의 그 조심스러운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숙이
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대인.."
"말해보시오."
"소녀 감히 묻사온데, 혹여 월국을 다녀오신 적이 있으신지요?"

그녀의 말에 몸을 돌려 바라보자 선우영의 눈에 하늘색 비단으로 감싸여 있는 아름다운 여
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그저 목소리가 곱다고만 생각을 하다가 눈으
로 그녀의 얼굴을 확인했을 때의 느낌은, 오래전 쑤안을 처음 보았을 때의 울림을 다시 느껴
야만 했다. 한동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다 애써 표정을 굳인 후 다시 몸을 돌려 차를 마시
는 선우영이 나직히 말을 한다.

"그건 왜 물으시는 것이오?"
"사설향과 대적. 이 두 가지를 연관해 보고 들었던 생각이었사옵니다."
"그 작은 것들에서 내 과거를 읽어 내는 그대도 평범한 여인은 아닌것 같구려."
"이런 일을 하다보면, 사소한 것에서 상대를 읽는 잔재주 하나 쯤은 익히게 되는 것이지요.
월국땅을 다녀 오신 적이 있으신지요? "

손에 들린 찻잣을 한동안 응시하던 그는, 고개를 들어 전각위로 흘러가는 구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월국, 아련하고 애잔한 곳이오. 그리고... 머릿속에 단 하나의 기억도 남아있지 않게 잊고
싶으면서도, 언젠가 다시 돌아가고 싶은 곳이기도 하오. 내게... 월국이란 그런 곳 이오. "

오래전 기억을 힘겹게 꺼내듯이 나지막히 말을 하는 선우영의 목소리를 정원의 한 곳을 바
라 보며 듣고 있는 그녀의 눈길이 가는 곳에는, 길다란 그림자를 만들어 내며 높은 담장을
넘어가는 늦은 오후의 햇살이 보여지고 있었다.

"그곳은 어떤 곳이옵니까? 소녀는 이 중원땅을 벗어나 본 적이 없어 머나 먼 월국땅이 마치
세상의 끝처럼 느껴지옵니다."
"그곳은 무척 평화로운 곳이오. 각종 서적에서 말을 하듯이 수 많은 독물과 독충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웃음이 많은 이들이 살아가는 그런 조용하고 따뜻한 곳이라오. "

그녀는 지금까지 정원을 바라보던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런데, 말씀을 하시는 대인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느껴지옵니다."
"사실 조금전의 내 말은 지난 과거를 잊기 위한 내 가식일지도 모르오. 이제 그곳은 처음 내
가 보았던, 평화스럽기만 했던 그런 곳이 아닐 게 분명하니 말이오. 피비린내 나는 죽음과
저주스러운 복수만이 남아 칼을 가는 곳이 지금의 월국땅일거요."

깊은 한숨을 몇 번 내쉰 선우영은 찻주전자에 남아 있는 찻물을 찻잔에 모두 부은 후, 그 향
을 잠시 맡아보다 말을 한다.

"다시 한번 대적을 연주해 줄 수 있겠소? 마지막 남은 이 차향과 함께 오래 전 그 소리를 다
시 한번 듣고 싶구려."
"소녀 몇 번이라도 옥적을 불러 드리겠나이다."
"고맙구려. 그리고.. 한 가지 부탁이 있는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는 선우영. 그의 얼굴에는 아련한 무언가가 깊게 서려있다는 것
을 그녀는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다. 말로 표현하기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지만, 산 넘어
사라져 가는 달을 바라보며 느끼는 그것과 비슷한 감정이라고 할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
며 선우영에게 대답했다.

"대인 편히 말씀하소서. 소녀, 듣겠나이다."
"그 노래를 다 한 후, 내게 대적을 가르쳐 줄 수 있겠소?"
"이런 하찮은 잡기를 어찌 대인께서 배우신다는 말씀이옵니까. 가당치 않사옵니다."

그녀의 말에 고개를 살짝 흔들며 말을 하는 선우영.

"아니오. 배움에 있어 어찌 높고 낮음을 따질 수가 있다는 말씀이오. 거절치 마시고 내 부탁
을 들어 주시길 바라오. 사례라면 내 가진 것이 그리 많지 않지만 내어드릴 수도 있다오. 언젠
가 대적을 꼭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러오. 내 이렇게 다시 부탁드리오."

진중한 표정으로 부탁을 하는 선우영을 바라보던 그녀는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그의 말에
화답했다.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신 다면, 소녀 대적을 대인께 가르쳐 드릴 수 있나이다. 소녀의 무례
함을 아녀자의 속좁음으로 탓하며 혜량해 주소서. 대인. "
"부탁은 내가 먼저 했거늘, 어찌 무례를 따질 수 있단 말이오. 무언가 배움을 얻었을 때 응
당의 대가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 내 그리 큰 도움이 될지 모르나 말씀하시구려. 들
어드릴 수 있는 일이라면 기꺼이 내 약조를 하리다."
"대인께서 대적의 음을 모두 배우신 후, 소녀 감히 대인께 한 가지 청을 올리겠나이다."

그 말을 한 후 그녀는 입가에 대적을 가져가며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전각안에는 조용하고
부드러운 대적의 음율이 휘몰아치기 시작하고, 늦은 오후의 가을 노을이 그들을 감싸기 시
작했다. 마지막 남은 찻잔을 입가에 가져가며 오래전 그날을 떠올려 보는 선우영은 대적의
음율을 따라 눈가가 떨려오며 깊은 한숨이 세어 나오기 시작했다.

중원 많은 이들에게 지난 수 백년 동안 사천을 지배했던 명가를 꼽으라면, 아미보다 당가를
먼저 거론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 된지 오래 된 지금. 사천의 명문 당가에는 지금 한 가지
골머리 썩히는 문제로 당문주와 네 명의 장로들이 한 곳에 모여 의논을 하고 있었다.

"맹주가 이런 전갈을 보낸 것을 보면.. 황제도 어지간히 속이 타는 모양이야. "
"연경을 탈환다고 큰 소리치고 출전했다가, 한 대 얻어 맞고 ?겨나서 중경성 그늘에 숨어있
는 개새끼가 됐다는 소문이 파다한데, 그 놈의 속이 안 타면 인간도 아니지요. 부처라고 할
까요? 크하하하. "
"호호호.. "
"형님, 그냥 개새끼가 아니라 비루먹은 똥개지요. 똥개의 큰 형은 키워 준 주인을 물어 버리
고. 그 동생은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아무나 물고 말이죠. 큭큭.."
"크하하하.. 비루먹은 똥개. 그래, 황제는 딱 그 짝이구나. "
"멍청한 황제가 이 말을 들어야 하는데.. 오호호호.. "

한동안 웃음이 사라지지 않는 사천당문의 심처에는 중년의 삼남이녀가 보여 떠들석한 웃음
소리를 흘리며 대송 황제를 비웃고 있었다. 그때 가장 상석에서 눈가의 눈물을 닦고 있던 중
년인이 아직도 웃음이 사라지지 않은 입을 억지로 정리하며 주위를 환기시킨다.

"큭큭.. 그래도 그 똥개가 황제라는 자리에 있는 이상.. 그의 명을 어기기는 힘들어. 다들 생
각한 것들을 말해 보라. "
"어차피 맹주의 이 전갈에도 나와 있지 않사옵니까? 그저 적당히 포장만 잘 해 달라고.. "
"그 포장이 문제니까 그러잖느냐. 본 문의 애들 중에 버릴 애들이 하나 없고, 다치면 마음 아
프지 않는 애들이 없는데, 죽으러 가는 게 뻔한 길로 가라고 할 수가 없으니.. 에잉.. 답답하
군. 마음 같아서는 이 서찰을 가져 온 녀석을 죽여서라도 못 받았다고 하고 싶구만. "
"호호호.. 지금도 늦지 않았사옵니다. 오라버니. 제가 달려가서 보듬어 주고 올까요? "

봉긋한 가슴어림에서 흑색의 구슬 몇 개를 꺼내 손가락으로 굴리는 여인을 바라보는 상석의
중년인이 그녀의 말에 어이 없다는 듯이 살짝 웃음을 흘리더니 조금전 그의 말을 이었다.

"호월아. 넌 어떻게 된 것이.. 본 문을 무림공적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난 모양인데... "
"어머, 오라버니! 제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겠어요? 그냥 조용히 하면 아무도 몰라요. 명문
정파라는 것들은 뭐 그런 짓 안 하나요? 큭큭.. 세상 사는 게 다 그렇게 사는 거죠. "
"그렇죠, 사실 죽이고 나서 우리가 안 했다면 지들이 알 게 뭐예요? 증거도 없는데.. "
"어이구. 이 년들아! 정파 놈들이 눈에 불을 켜고 맨날 조사하는 게 우리가 어떤 독을 썼는지
알아 보는 건데 증거가 없기는, 왜 없어! 닭대가리 같은 년들아! "

당문주의 노기 어린 말에 그의 앞에서 장난을 치고 있는 당호월이 언니인 당영월의 품에 파
고들여 말을 했다.

"어머.. 오라버니께서 화나셨나 봐. 언니. 무서워. 아잉.. "
"그러게. 큰언니가 요즘 월사통이 심하다더니.. 오라버니께선 괜히 우리한테 트집이셔. 노년
에 찾아 온다는 욕구불만인가? "
"큭큭.. 사천에서 오라버니 었을 때 별명만 불러도 오줌 지리는 애들이 아직도 많은데, 성
혼을 늦게 하시더니 변하셨어. 예전의 오라버니가 아니예요. "
"내 지난 날 과거를 청산하고, 이제 마음잡고 살려고 했더니.. 이 년들이! "

언제 꺼냈는지 품에서 수 십개의 금색 비침을 꺼낸 사천 당문주를 바라 보는 네 명의 중년인
들이 화들짝 놀라며 방안 구석으로 잽싸게 도망을 간다.

"형님! 우릴 다 죽일 셈이요! "
"애들이 장난 친 말에 왜 그러시오? 형님. 그간 우리의 정을 생각하시오! "
"오라버니. 아무리 큰언니가 합궁을 안 해준다고 우리에게 화풀이를.. "
"사람 노망 나는 거 한 순간이라더니.. 쯧쯧.. 오라버니는 독을 너무 만졌어. "

왼손에 비침을 꺼내 든 당문주가 방안 구석 구석에 숨어있는 중년인들을 향해 소리쳤다.

"본 주의 사혼망금침으로 명한다! "

당문주에게만 계승되는 신물을 꺼내 들고 외치자, 구석에서 두려운 눈빛으로 떨고 있던 중
년인 네명은 모두 무릎을 꿇으며 크게 외쳤다.

"사대봉공이 대당문주의 신물을 받드나이다. 명하소서. 죽음의 길이라도 기꺼이 가겠나이다. "
"무림맹주의 요청을 받아 들여, 황실과 함께 연경을 공략할 대당문 무림군를 호명한다. "

그의 말에 무릎을 꿇고 있는 중년인 네 명은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다.

"당영월을 대당문 무림군 수장으로, 당호월, 당비원, 당인원, 당화연을 함께 보내 대송금군
과 합류하여 연경을 탈환하라! "

당문주의 그 말에 구석에서 무릎을 꿇고 있던 두 명의 중년 남성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반대편에 숨어 무릎을 꿇고 있었던 두 명의 중년 여인들은 앙칼진 목소리로 쏘아 붙이기 시
작했다.

"오라버니, 아니 문주! 어찌 우리들만 보낸 단 말씀이오? 진짜 노망났어요? "
"솔직히 이건 문주의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된 게 아니예요? 못 가요. 절대 못 가요! "

그녀들의 당연한 반응에 당문주는 구석에 고개를 숙이고 있는 한 중년남에게 그윽한 목소리
로 물어 보았다.

"규야. 내 명이 어리석은 사감으로 한 결정 같느냐? 너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싶구나. "
"대당문의 신물로 내리신 지엄한 명에 어찌 개인의 사사로운 정이 개입될 수 있겠나이까. 지
금껏 본 문의 어떤 선대 문주들께옵서도 하시지 못 한 현명한 결정이라 누대에 걸쳐 칭송받을
것이옵니다. 문주! "
"규 오라버니! 오라버니가 안 간다고 그렇게 나오기예요? "
"문주님의 현명하신 이번 결정에 온 사천이 칭송할 것이옵니다. 문주 ! 크헤헤헤헤.. "
"영현이 넌.. 나중에 좀 보자. "

꺼내 든 금침을 조심스러운 손길로 다시 품에 갈무리를 한 당문주가 의자에 앉으며 근엄한
표정으로 무릎을 꿇고 있는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영월이와 호월이는 중원 유람한다고 생각하고 적당히 놀다가 오너라. 너희들의 소중한 피
를 희생해서 연경을 공략한다고 황실이 이 먼 곳까지 버선 발로 뛰어 올 것도 아니니.. 조금
이라도 위험하다 싶으면 냉큼 도망쳐 오고. 어디 짱박히거나 도망치는 건, 본 문에서 너희들
이 당연 으뜸이니 어느 누가 너희들을 해꼬지 하겠느냐? "
"그렇게 말씀하실 거면... 우리 보다 잘 하시는 문주께서 직접 가시면 될 일을... "
"문주께서 젊으셨을 때 어지간히 놀았다는 걸, 그때 문주와 같이 논 저희들이 잘 아는데..
역시 노망이.. "
"쓰읍! "

한 차례 침을 삼키며 그들이 다음에 할 말을 막은 당문주가 지엄한 표정으로 말을 한다.

"한 치 앞도 바라볼 수 없는 이 지독한 난세에, 내가 아니면 누가 있어 당문을 지킨단 말이
냐? 쓸 때 없는 소릴 하는구나. "
"그렇지요. 문주가 빠진 당문은 속없는 만두와 같지요. 역시 문주께서 하시는 말씀은 다 옳
습니다. 헤헤.. "
"영현아. 넌 진짜 나중에 맞아야 겠다. "
"누님. 원래 옳은 말은 귀에 거슬리는 법이라오. "

아미파의 바로 옆동네에 살고 있는 사천당문의 당문주는 무림맹주의 전갈에 따라, 당문에서
별로 필요없는 장로 2명과 문주의 속을 썩이는 문제아들로 이루어진 무림군을 꾸려 중원으
로 보내기로 즉석에서 그의 사적인 감정을 담아 결정했다. 이들 당문 무림군이 황실과 합류
해서 연경을 탈환하는데 일조를 하고, 혁혁한 전공을 세울 확율은 수탉이 알을 낳는 것 보다
낮은 확율일 것이 불 보듯 훤했다. 그런 것을 누구 보다 잘 알고 있는 당문주가 당문 무림군
수장으로 방금 임명된 당영월을 따뜻한 미소로 바라 본다.

"은자는 넉넉히 챙겨 주마. 천천히 가면서 사고 싶은 것 사고, 먹고 싶은 것 먹으며 실컷 놀
다가 돌아 오렴. 올 때 신수 훤한 남편감도 잡아 오는 것 잊지 말고.. 이젠 시집 가야지? "
"그러니까 문주께서 직접 가시면 된다니까요. "
"갑자기 허리가 아프구나. 비가 올려나.. "
"혜안깊은 문주께오선 천기를 읽는 능력도 있으십니다. 본 문의 홍복이옵니다. 케케케.. "
"떠나기 전에 이 누나가 널 좀 다독거려 주고 가야겠구나. 냉큼 일어나렴. "
"영월아. 내 연무실을 비워주마. 쇠는 담금질할 수록 단단해 진다고 하니, 네 속에 응어리 진
것을 마음껏 풀고 가거라. 연무실이 좀 부서져도 내 원망하지 않으마. 큭큭.. "
"아니 형님! 어찌 내게 그러실 수가 있는거요! "

그때 아직도 구석에 웅크리고 있던 당문주의 둘째 동생 당규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당영현을
바라보며 혀를 차고 있었다.

"쯧쯧.. 영현아. 원래 쓰임새가 끝나면 다 그런거다. 이 형은 널 위해 탕약을 다리고 있으마. "
"오라버니. 난 옆에서 구경할께요. 오호호호.. "
"뭣들 하느냐? 시간 없느니라. 어서 연무실로 가거라. "




12부는 다음 주 월요일 쯤에 올리겠습니다.
요즘 연말이라 시간이 빠듯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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