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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이 가장 쉬웠어요 - 7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9:06 550회 0건
무공이 가장 쉬웠어요. 8부 - 음교교주 서소영.


북송초, 흥국3년 송태종 조광의는 북방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요나라를 공격하여 연경 탈환을
도모했다. 태종이 친히 20만 대군을 끌고 연경을 공격하였으나, 뛰어난 기동력의 마군을 앞세
운 요나라의 집요한 공격으로 친정 6개월만에 대패하고, 수호통대마연평왕안북대장군이라는
관직을 스스로 내린 후 출정에 나섰던 자신도 적의 화살에 맞아 큰 부상을 입고 수도로 회군하
고 만다. 이 사건으로 부상을 입고 패퇴하는 태종을 잡기 위한 요의 집요한 공격과 이를 방어하
기 위한 송과의 크고 작은 전투가 국경 인접에서 연일 이어졌으며, 국경을 방비하기 위해 후방
에서 징집된 장졸들이 북쪽으로 올라가는 광경이 매일같이 관도를 이어졌다.

화려하게 장식된 방안에서 금색 장포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부복한 두명의 남자와 함께 이야
기를 하고 있다. 금의를 입은 그는 어딘가 몸이 불편한지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계속 한쪽 몸을
만지며 얼굴을 찡그리고 있었다.

"그래, 참가정사의 생각은 어떤가?"
"현재 연경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이오나, 올해의 작황이 좋지 않아 이대로 전선이 고착될 경
우, 군량 부족으로 인해 반년 이상 전쟁이 지속된다면.. 이뢰옵기 송구하오나 필패이옵니다.
폐하."
"흐음. 반년이라.. "

손에 쥐고 있는 술잔을 바라보고 있는 황제는 비어있는 잔을 만지다가 참가정사의 옆에 부복
하고 있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추밀사. 자네의 생각을 듣고 싶네"
"폐하, 현재 선황께옵서 부터 시작해온 외궁과 성곽의 건설로 인해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옵
니다. 현재 각 지방에서 올라오는 장보를 종합해 볼 때, 더 이상의 징병이나 부역이 가중되었을
경우... "

무언가 말을 해야 하는데, 감히 대송 황제앞이라 말을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는 추밀사였다. 어
떤 말이 나올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는 황제였지만 그의 생각을 정확하게 듣고 싶었던 그는
추밀사에게 말을 계속 할 것을 명했다.

"이 자리에서 그대가 하는 말에 대해 고가 치죄를 하지 않을 것을 고의 이름으로 명한다. 추밀
사는 소신껏 자신의 본분을 이행하라."

황제의 명으로 내려진 황명. 그 누가 이를 거부할 수 있겠는가. 얼굴이 붉게 상기된 추밀사는
소매를 털고 잠시 일어나 황제를 향해 대례를 올리며 절을 하기 시작했다.

"폐하, 폐하의 황은이 하해와 같사온데, 어찌 신하된 도리로써 미천한 목숨을 걱정하오리까."

다시 한번 대례를 올린 추밀사는 황제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조금전의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현재 징병되거나 부역을 명받아 개봉에 있는 이들이 5만이며, 외궁을 개축하고 개봉 성곽을
구축하기 위해 이들이 머물고 있는 곳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매일 소요가 일어나고 있사옵니다.
만일 이런 상황에서 연경을 재차 공략하기 위해 또 다시 징병이 이루어진다면, 백성들의 원망
이 하늘을 찌를까 두렵사옵니다. 폐하. 이 미천한 소직의 간언을 유념하여 주시옵소서. 앞으로
5년. 5년만 황궁의 증축을 잠시 멈추시고, 폐하의 백성들을 배불리 먹일 수 있다면 5년후 폐하
앞에는 새로운 20만 대군이 사열해 있을 것이옵니다. 그때가 되기릴 잠시만 기다려주시옵소서
폐하."

그 말을 끝으로 추밀사는 황제가 있는 방의 바닥에 머리를 찍기 시작했다. 쿵, 쿵 하고 울리는
둔탁한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추밀사는 그만하라. 내 그대의 충언을 잘 알아들었노라. 그대의 충심에서 우러나온 직언을 내
어찌 모르겠는가. 하지만 말일세. 내가 형님 폐하의 뒤를 이어 이 자리에 올랐을 때 날 바라보
던 그 눈빛이 아직도 내 주위에 있음을 난 잊지 않고 있노라. 적통이 아니라는 것 하나 만으로,
형님 폐하의 유지를 이어받아 천하를 통일한 난 역사속에 황위를 찬탈한 자로 남게 되었어. 천
하에 대송의 명맥이 앞으로도 이어가기 위해서, 그리고 다음 대를 위해서도 이렇게 할 수 밖에
없는 고의 마음을 그대는 이해하리라 믿는다."

말을 마친 황제는 잠시 부복하고 있는 그 둘을 바라보다 자신의 품에서 작은 금색패를 꺼내었
다.

"추밀사와 참가정사는 들으라"

부복했던 추밀사와 참가정사가 일어나 관복을 가지런히 다듬은 후에 다시 부복하며 황제의 명
을 기다렸다.

"대송 황제의 이름으로 그대들에게 명을 내린다. 지금부터 1년 후 연경을 재탈환한다. 금군의
선두에 서서 연경을 공략할 중원 무림군을 모집하도록 하라. 그들을 필두로 내 친히 친정을 나
서 빼앗긴 연경을 수복하고, 그 길로 장성을 넘어 요를 도모할 것이다. 추밀사와 참가정사는 황
룡패를 받으라"
"추밀사 정북병마무장 안인훈 폐하의 황룡패를 삼가 받드옵니다."
"참가정사 정남병마무장 엽충호 폐하의 황룡패를 삼가 받드옵니다"

하루를 꼬박 이어진 추적이 계속되고 있었다. 산자락을 따라 어슴프레한 동이 트는 것이 보이
기 시작하고, 세침한 여인같은 초승달이 부끄러워하며 도망가고 있는 시각. 골짜기를 따라 뛰
어가던 선우영은 잠시 주위를 돌아보며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

"후우. 사나운 산고양이를 대충 떼어 놓고 여기까지 오긴 했는데.. 음교 교주가 어디로 숨었는
지 알 수가 없네. 흔적이 여기로 이어지고 있긴 한데.."

여기가 어딘지 알 수 없는 골짜기의 한 쪽. 강을 따라 걸으며 땅에 떨어져 있을 혈흔이나 사람
이 지나간 흔적을 찾고 있었다. 반시진 가량의 시간이 흘렀을 무렵. 골짜기 한 켠에 우거져있는
숲속에서 왠지 사람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피부를 통해 강하게 전해져 온다. 월국에서 독초를
먹고 난 이후 다른 것은 몰라도 사람의 존재 만큼은 기가 막히게 잘 알아채 게 된 선우영.

뛰어오느라 정신없이 손에 들고 있던, 뽑아 든 칼을 다시 검집에 갈무리하고 조심스럽게 그 숲
을 향해 걸어간다. 숲속에 들어갈려고 하지만 무언가 자신의 앞을 가로막고 있어 들어갈 수 없
는 상황이 계속 반복되었다. 처음으로 겪는 이질적인 느낌에 잠시 뒤로 물러났다가 뛰쳐 들어
갈려고 한 찰라, 숲속으로 부터 강한 기파가 자신에게 몰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급하게 검을 뽑아 면피우선의 초식으로 갑작스럽게 다가온 기파를 무위로 돌렸지만, 연이어
날아오는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기세에 선우영은 일격을 당하고 쓰러지고 만다.

"크어억.."

피가래가 끓는 듯한 거친 비명소리가 나고 쓰러진 선우영은 몇 차레 몸을 떨더니 점점 몸의 경
련이 사라져 간다. 그리고 축 쳐지기 시작하는 선우영. 선우영이 공격을 받아 쓰러진 후 반각이
지날 무렵, 숲속의 경계가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안에서 찢어진 옷을 입은 미모의 중년인이 모
습을 드러낸다. 자신의 눈앞에 쓰러져 죽어 있는 남자. 다친 몸을 치료하기 위해 음교 비전의
진식을 펼쳤건만, 어떻게 자신이 숨어있는 것을 알아냈는지 사로 잡아 물어 볼려고 무리한 공
격을 했던 것이 실수였다.

내공 조절이 잘못되었는지 이 녀석은 한번은 제대로 피하더니, 눈에 뻔히 보이는 속임수에 걸
려서 이렇게 죽어버리고 말았다. 한참을 죽어버린 녀석의 머리맡에서 쳐다보다 이내 흥미를 잃
고 돌아설려고 하는데 이채로운 것이 그녀의 눈에 띄었다. 호홉도 멎고 숨도 끊겨있는 이 녀석
의 하체가 무럭 무럭 자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리 내상을 입어 다쳤다고는 하나, 이렇게
가까이 있는 상태에서 적의 몸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실력이 있는 자신으로서는 선뜻 눈앞에
보이는 황당한 광경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죽은 자의 양물이 점점 커지는 것은 아무리 음
교의 교주로 살아온 자신으로서도 처음 보는 진풍경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몸을 웅크려 죽어있는 남자의 목을 만져보며 혹시나 살이있는 것이 아닌가 재차 확인하는 음
교 교주. 그러나 이 녀석은 죽은 게 확실했다. 맥박도 호홉도 완전히 멎은 상태. 단지 즉은지 얼
마 안 되는 시체의 몸에 남아 있는 따뜻한 체온만이 조금전까지만 해도 그가 살아있는 사람이
었음을 알려 줄 뿐이었다. 한참을 그의 몸을 살펴보던 그녀의 눈에 용호검이 눈에 보였다.

황군의 장수들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대송 금군 제식의장검 용호검. 결코 뛰어난 명검이
아닌 그저 쓸만한 청강검 한 자루지만, 용호검이라는 이름이 가지고 있는 그 무게만큼은 잘 알
고 있는 그녀였다. 아미파의 끄나풀인 줄 알고 공격했는데 황군을 공격해서 죽게 만들다니. 자
칫 음교가 성난 황군들에 의해 멸문지화에 빠질 수도 있는 공교로운 상황이다.

오늘은 하루종일 재수가 없었다는 생각을 하며 몸을 돌려 어디 파묻을 곳이 없나 살펴보는 그
녀의 눈에 봉긋하게 솟아 있는 남자의 하의가 조금전 보다 더 솟구쳐 보이는 것이 아닌가. 도대
체 죽어서도 부풀어 오르는 이 양물이 어찌니 신기한지 어서 빨리 시체를 땅에 파묻고 도망가
야 한다는 생각도 접고 다시 몸을 숙여 그의 양물을 손가락으로 건드리며 만져보기 시작했다.

"호오.. 이렇게 실한 놈이라니.. 정말 아깝구나. 죽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호오.. 아까워 아까
워.. 내 이 녀석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쯧쯧."

바지 위를 쓰다듬는 자신의 손안에서 무럭 무럭 자라고 있는 이 황당한 양물이 어찌나 아까운
지 연신 아깝다는 한숨을 내쉬고 있는 음교 교주.

"이렇게 좋은 물건이라니.. 호오.. 쉽게 만날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내 보물을 눈앞에 두고 어
찌 이런 실수를 해서.. 호오. 정말 통탄할 일이로다. 허어.. 안타까울지고.."

그녀의 강한 일격에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라고 눈치챈 선우영은 잽싸게 죽은 척을 해서 위
기를 모면했지만, 사실 그에게는 지금 상황이 더 죽을 맛이었다. 죽은 척을 하면 알아서 도망갈
거라 생각했던 음교 교주가 자신의 옆을 지나갈 때, 그녀의 찢어진 옷자락 사이로 그녀의 탐스
러운 방초가 살짝 보였던 것이다. 절대 보아서는 안되는 것을 본 후에 어쩔 수 없이 찾아오는
남자들의 숙명적인 반응. 자신의 하의를 뚫고 나올 듯이 커져만 가는 검둥이의 발악에 등줄기
에 식은땀을 흘리며 자신이 아는 모든 안 좋은 일과 슬픈 일을 떠올려 보았지만 그것도 잠시.
붉은 옷자락 사이로 살짝 보이는 검은 수풀이 바람에 따라 하늘거리던 그 자극적인 모습이 눈
에 각인 된 듯 사라지지 않고 괴롭히고 있었다. 월국에서 죽어간 이들을 떠 올려보고, 독초를
먹었을 때의 그 엄청난 고통도 떠올려 보았지만, 마치 지울 수 없는 화인이 눈에 찍힌 듯 뇌리
에서 사라지지 않는 그 모습에 자꾸만 검둥이의 몸짓을 부풀리게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죽을 고생을 하며 누워 있는데, 엎친데 덮친 겪으로 자신의 검둥이를 만져오는 음교 교
주의 손길에 암울함을 느낀 선우영은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잔뜩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그때 들리는 음교 교주의 한탄 어린 말 한마디.

"죽이는 것이 아니었는데.. 호오.. 아까워 아까워.."

어쩌면 그녀의 그 한 마디가 자신에게 구명줄이 되어줄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선우영은 재빨
리 머릿속에서 앞으로의 일을 굴려보기 시작했다. 남로정벌군에서 사기 골패를 돌리며 돈을 쓸
어 담았던 잔머리가 중원에서 발휘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입안을 살짝 깨물어 피를 낸 선우
영은 짙은 기침을 하며 몸을 떨기 시작했다.

"크허억. 쿨럭 ..으으.. "
"아니.. 정신이 드느냐? .. 내가 보이느냐..?"
"크흑.. 으으.. 쿨럭 쿨럭.."
"내공도 없는 아이가 너무 많이 다쳤구나. 이를 어쩐다."

잠시 주위를 둘러 본 교주는 쓰러려서 피를 토하며 기침하고 있는 그를 안아 조금전 그녀가 빠
져나왔던 숲속으로 몸을 숨기기 시작했다. 몸을 가린 후 조금전 자신이 누워 운기조식을 하던
장소에서 그를 내려놓고 장심에 내공을 모아 그에게 실낱처럼 가늘게 이어지는 내공을 조금 전
해주기 시작하자 선우영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고 생기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크윽.. 후우... "
"이제 숨울 쉴 수 있느냐?"
"아리따운 소저. 이 소직의 목숨을 구해주어 정말 감사하오이다. 비록 오해에서 비롯된 공격이
었으나 소저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이미 세상을 떠나 불귀의 객이 되었을 뻔했소. 내 비록 지금
몸이 성치않아 이렇게 누워서 그대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지만, 내 마음 만큼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소저께서 이해해 주시길 바라오. 내 반드시 몸이 다 나으면 이 은혜 잊지 않도록 하리다.
감사하오. 소저."

지금까지 살아온 그녀의 49년 인생중에, 중원 그 누가 자신을 보며 아리따운 소저라고 말을 했
던가? 16살, 춘풍에도 가슴을 두근거렸던 젊은 날의 그때도 아니건만 그 말을 듣자 마치 회춘
을 한 듯이 얼굴이 붉어지고 기분이 묘해지는 것을 느끼는 교주였다.

"오호호호. 정신이 드느냐? 본녀가 잘못알고 먼저 공격을 하였는데 은혜를 운운하오면 내 어찌
소협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겠느냐. 그저 이것으로 서로의 은원을 상쇄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구
나."
"아니오. 내 그대가 아니었으면 이 험준한 골짜기에서 생을 마감할 뻔했었소. 내 비록 군에서
그리 높은 직책은 아니나 말씀만 하시오. 들어드릴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내 몸이 다 나으면 그
대를 위해 발벗고 나서리다."
"오호호호. 소협의 그 말씀만으로 이 본녀, 소협의 마음 씀씀이에 깊은 감동을 받았구나. 그런
데 소협, 어찌 알고 나를 ?아와서 공격을 하였는가? 내 소협을 지금까지 만난 일이 없거늘.."

호기심에 빤짝이는 눈동자로 자신을 쳐다보는 교주를 보며, 선우영은 지금이 바로 이 사기판
의 승부수를 띄울 때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남로정벌군에 있으면서 자신에게 사기 골패를 가르쳐 주었던 한 늙은 도패수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도 그때였다. 골패라는 것이 남을 속이는 비열한 것이 아니라 인간을 연구하는 지고한 학
문의 한 자락임을 피력했던 그 도인같았던 사기꾼의 말이 떠오르는 것은, 몸속에 흐르고 있는
얼굴도 모르는 반쪽짜리 피의 이끌림이었는 지도 모른다.

"네가 골패를 배울려고 한다면, 내 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남들은 골패를 도박이다, 사기
다 뭐라 말을 하지만, 골패라는 것은 결코 그런 천박한 말로 평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
람을 배우고, 그리고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도의 한 자락에서 그 시작을
가늠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지."

자신에게 골패를 가르쳐 주며 도박과 사기를 청송과 더불어 살아가는 도인에 빗대어 말을 했
던 사기꾼의 강의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이 골패를 손에 쥔 이상 반드시 성취해야 할 과정이 있으니, 그 경지를 심인지경이라고 한다.
무림인들에게는 현경지경이 있다고 하듯이, 골패를 손에 쥔 이들이 꿈꾸는 경지는 바로 마음을
읽어 사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경지. 그것이야 말로 골패를 손에 쥔 우리 승부사들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높고도 높은 경지라 말을 할 수 있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강의는 몇 날, 몇 달이 계속 되었다. 전투 후에 피곤해진 몸을 누이기 위해
막사로 찾아갈 때도 그의 강의는 항상 그치지 않을 정도였다. 마치 손자에게 재미있는 이야기
를 해주듯 그의 손을 잡고 이어지던 그 사기 골패의 비전전수. 어느 날 저녁 막사 바닥에 손 떼
가 묻어 누릿하게 변색된 골패를 바닥에 깔면서 이어진 어느날이었다. 몇 개의 골패를 서로 나
누어 가지며 그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 여기에 두 패의 골패가 놓여져 있다. 여기서 내가 가진 패를 이기기 위해선, 넌 어떻게 해
야 하느냐? 지금까지 내가 가르쳐 준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답을 찾을 수 있다."
"제가 가진 가장 작은 패를 보여주겠습니다."
"허허. 내 그렇게 너를 가르치지 않았는데 아직도 골패의 지고하고 깊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
어. 답답하구나."
"그럼 가장 큰 숫자를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까?"

한 차례 혀를 찬 후에 늙은이의 말은 계속되었다.

"쯧쯧. 그런 것이야 말로 죽을 줄도 모르고 눈앞에 있는 먹이에 달려드는 쥐새끼에 불과 한 것
을.. 자고로 골패란 인간을 알아가는 숭고한 학문이라 내 말하지 않았느냐? "
"예, 어르신."
"인간이란 눈앞에 놓여있는 것들의 선택지가 다양하면 다양할 수록 자기에게 유리한 것만 보
고 결정을 내리기 쉬운 존재이니라. 그러니 만약 상대와 독대를 한 상태에서 골패를 나누게 되
면 결코 한 가지만 보여주어서는 안 된다. 거짓과 진실, 그리고 큰 것과 작은 것. 불안과 기대.
이런 상반된 먹이를 함께 주어졌을 때야 말로 그 혼란스러움 속에 상대가 스스로 속아 넘어가
게 되는 것이니라. 기억하거라. 열명의 범인을 한번에 속이기는 쉬워도, 한명의 범부를 오랫동
안 속이기는 정말 어려운 법이니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오묘함이야
말로 골패가 가지고 진정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느니라. 알겠느냐?"

상대방을 속이고 은전을 빼앗기 위해 사용해야 하는 골패의 오묘함이 늙은이의 말과 함께 떠
오른 선우영이있다.

"소직은 광서로를 출발해서 전림관으로 가던 중에 관도에 쓰러져 있는 여인들을 만났다오. 피
를 흘리고 있는 여인들을 치료하고 약간의 도움을 주었는데, 그들이 내가 관군인 것을 보고 이
곳으로 무림공적이 도망중이라고 말을 했소. 그들에게 듣기로 아리따운 소녀께서 음교의 인물
이라고 하던데 그 말이 맞으시오?"

잔뜩 기대를 하며 그를 바라보던 교주의 눈빛은 선우영의 말에 실망을 하며 싸늘한 얼굴로 말
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네 놈이 아미파 중년들을 만났구나! 그렇다. 이 본녀가 바로 대음교 19대 교주인 서소영이라
한다. 황군에 속한 장수가 어찌 군문을 벗어나 무림의 일에 끼어들려고 하는 것인가? 그대도 어
줍짢은 허명에 눈이 어두워 부질없는 위명에 몸을 던지는 하찮은 인물이었구나!"

그러면서 몸의 공력을 끌어모아 재차 선우영을 공격하려 하는 서소영.

"아니오. 소저. 내 말을 끝까지 들으시오."
"무엇이 아니란 말이냐! 내 앞에서 감히 거짓을 아뢰어 귀를 더럽힐 생각이라면 이 자리에서
너를 깨끗하게 죽여 대음교가 황실도 저어하지 않음을 세상에 보여 주겠노라."
"그것이 아니오. 소저. 한낱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그깟 허명에 눈이 어두워 소저를 ?아온 것
이 결코 아니오. 내 소저를 만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것은 소저께 부탁할 것이 있어 온 것이오.
아리따운 소저께서 소직의 목숨을 취하고자 한다면 내 웃으며 그대에게 목을 내어드릴 수 있으
나, 못 다한 말을 가슴속에 품고 죽어 원귀가 되는 것만은 막아주길 간곡히 부탁드리오."

애절한 눈빛, 그리고 진심이 묻어나는 말. 월국에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사기 골패를 배우며
늙은이에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을 배웠던 기술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마치 조금전
까지 판 돈을 다 따고도 모조리 잃은 듯 애잔한 눈빛에 한동안 그를 매섭게 바라보던 서소영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기 시작했다,.

"말해보라. 그것이 무엇이든 한 치의 거짓이라도 묻어 있다면, 여기서 너를 죽이고 시체를 산
과 들에 뿌려놓아 구천을 떠도는 원혼으로 만들어 버리겠다"
"소저. 정말 감사하오. 내 그들의 말을 듣고 소저에게 부탁하고자 마음 먹은 것은, 사실 소직의
무공 때문이라오. 음교의 인물이 아니면 결코 소직의 몸을 구할 수 없을 것 같아 이렇게 ?아오
게 되었구려. 소직의 과욕이 부른 조금전 행동에 소저께서 얼마나 놀라셨을지 내 익히 알고있
으나 그럴 수 밖에 없었는 소직의 사연도 있음을 혜량하여 주시길 바랄 뿐이오. 미안하오. 내
고개 숙여 소저께 사과올리겠소. 소저."

아픈 몸을 억지로 일으켜 인사를 할려는 선우영의 얼굴에는 아직 채 가시지 않은 통증이 스쳐
지나 가는 듯 하다. 힘든 몸을 일으키려 버둥거리고 있는 그를 바라보던 서소영은 그의 어깨를
잡으며 나지막히 말을 했다.

"아직 몸도 성치 않을 터인데.. 인사는 되었다. 그러니 조금전에 하고자 했던 말을 하거라."

오른손을 뻗어 선우영의 인사를 대신한 서소영은 그에게 심중의 말을 꺼내도록 제촉했다.

"고맙소이다. 소저. 소직은 남로정벌군 남도위 선우영이라 하오. 소직은 몸에 천고의 금제가
있는데 이것을 풀 수 있는 방법이 없다오. 오랜 시간동안 이 금제를 풀기 위해 수 많은 이들과
의원을 찾아가 보았지만 그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돌리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더구려. 그러다
지금은 전사하신 남로평정경략안무사 정의대부 안충현 장군께서 소직을 어여삐 여기시어 한가
지 방도를 일러 주신 것이 있으시오. 그 방도가 바로 음교에 있어 이렇게 소저를 놀라게 하였구
려. 정말 미안하오."
"그 금제는 누가 해놓은 것이냐?"
"어릴적 부터 되어 있었던 터라 소직도 모르오. 다만 지금은 돌아가신 소직의 부모님께서, 소
직이 어설픈 무공을 배워 혹시나 중워에서 해침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어 태어나자 마자 세겨
놓을 것으로 알고 있을 뿐이오. 하지만 시술자가 누구인지는 소직도 알 수가 없소. 이미.. 부모
님께선 전환으로 돌아가신 터라.. "

잠시 말을 끊은 후, 바람을 따라 흩날리는 나무가지를 바라보는 선우영의 눈빛은 아주 오랫동
안 잊고 있었던 것을 떠올리고 있는 사람의 표정, 바로 그것이었다. 애수에 젖은 눈빛과 잔뜩
굳어있는 입술은 바라보고 있는 서소영의 마음속에도 잊고 있었던 부모님의 얼굴을 떠올리게
할 만큼 가슴을 아릿하게 하는 그 무엇이 담겨있었다.

"만약 이 금제를 누가 해 놓았는지 안다면 어찌 내가 지금껏 풀지 못하고 이렇게 고생하고 있겠
소? 그를 만나 삼생의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하더라도 그를 찾아갔을 것이오. 소저께서도 지금
소직을 살펴보아 알고 계시겠지만 소직의 몸에는 한 톨의 내공도 쌓여있지 않소. 이 금제가 소
직의 몸에 박혀있는 이상, 결코 소직은 상승의 무공을 펼칠 수 없게 된다오. 무장으로서의 생명
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오."

잠시 말을 멈춘 선우영은 잠시 황도가 있다고 생각되는 곳을 향해 대례를 올린 후 서소영에게
고개를 돌려 말을 잇기 시작했다.

"소직, 대송 황군에 몸을 담은 장수로써 위로는 천하를 굽어 살피시는 황상 폐하를 보필하고,
아래로는 황상께서 어여삐 여기시는 만백성을 살펴주는 몸이 온데, 이런 몸으로 어찌 황상께서
소직에게 주신 그 크나 큰 은혜에 보답하고, 백성과 중원의 평화를 위해 용호검을 드는 무장으
로써 살아갈 수 있겠소? 소저. 정녕 소저께서 대음교의 교주시라면 소저의 작은 도움으로 이 소
직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주시길 이렇게 부탁드리오. 소저."

그의 말을 다 듣고도 한참을 말없이 쳐다보던 소서영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선우영에
게 말을 했다.

"너의 지금 몸이 금제로 비롯된 것이라면, 본녀가 그 금제를 모르는 이상, 나 또한 그것을 풀 수
없는 게 아니냐? "
"소직도 그간 만나 본 수 많은 의원들에게 그런 말을 듣고 한동안 좌절했던 적이 있었소. 그래
서 황상의 하해같은 은혜에 보답할 수 없는 무장이라는 그 처참한 마음에 죽을 자리를 ?아 월
국의 오지로 들어갔던 것인데, 그곳에서 무공에 능통하신 안충현 장군께서 소직에게 한 가지
방도를 일러 주셨었소. "
"그 방도가 무엇이냐?"
"소저께서도 소직의 양물을 만져보셨으니 아실 것이오. 소직 이상하게 양물에 몸에 쌓은 내공
이 집중되는 특이한 금제가 몸에 심어져 있소. 안충현 장군께서 이르시기를 만약 방중술에 능
통한 음교의 여인을 만나 그들에게 방중술을 체득하게 된다면, 양물에 쌓여있는 양기를 내공으
로 순환시킬 수도 있을 것이라 말씀하셨소."

그의 말을 듣자 뭔가 머릿속에 그려지기 시작하는 교주 서소영이었다.

"흐음. 그 장군께선 본교의 무공에 대해 꽤나 박학하신 분이셨나 보구나."
"그것은 소직도 잘 모르오. 다만 대대로 무관을 배출하셨다는 전통있는 무가의 자제분으로 알
고 있을 따름이오. 오랫동안 가문에 소장되어 있는 수 많은 무서와 의학서를 보신 장군께서 소
직의 몸을 살펴보시더니 그리 말씀을 해주셨다오. 그러니 그 말씀이 실낱같은 희망에 불과할지
모른다 해도 소직이 그것을 어찌 놓칠 수 있단 말이오. 소저. 이 절박하고 암담한 소직의 뿌리
깊은 아픔을 헤아려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오."

한결 부드러워진 서소영의 얼굴을 보며, 이제부터 정말 중요한 시기라는 것을 선우영은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걸어 놓은 판돈을 다 잃고 오른손이 잘리거나, 아니면 눈앞에 아른 거리는 은
전을 모두 갖거나.

"네가 원하는 것이 본녀와 정을 나누는 것이냐?"
"아니오. 만약 그렇게 쉬운 방법이 있었다면, 소직 지금까지 동정으로 살아가지 않았을 것이
오."
"아니, 네가 아직 동정이라는 말이냐?"
"남아로 태어나 이 나이가 되도록 동정이라는 사실이 부끄럽지만, 그렇소. 안충현 장군께서는
음교의 방중술에 능통한 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절대 다른 여인을 품지 말라고 몇 번이나 소직
에게 말씀하셨다오. 음교의 여인이 소직에게 방중술을 가르쳐 주어 함께 그것을 연마하며 양물
에 모여있는 기를 순환시키지 않는 다면, 결코 무공을 살려낼 수 없다고 누차 말씀하셨소. 그러
니 내 어찌 한 순간의 쾌락을 위해 무장의 평생 염원을 버릴 수 있단 말이오. "
"허어.. 이를 어쩐단 말이냐.. 허어.."

한 번의 교합이라면, 아니 몇 번의 교합이라면 서소영도 기꺼운 마음으로 이 건실한 양물을 몸
에 품고 싶었던 자신이었다. 하지만 음교의 방중술을 가르쳐 준다는 것은 바로 자신의 직계 전
인을 만든다는 뜻.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 시각, 광서성 용주관문 심훈의 집무실.
하루 집무를 보기 전에 심훈은 언제나 집무실에서 산통을 꺼내어 점을 보며 일과를 시작한다.
오늘도 경건한 마음으로 산통을 꺼내어 통을 돌리고 있는 심훈. 그의 옆에는 심훈의 오랜 충복
인 팽위사가 향긋한 차를 준비하고 있다.

"달그락 달그락...어디 오늘은 어떤 점괘가 기다리고 있을려나."

한참을 산통을 흔들던 심훈이 손을 멈추고 한개의 나무 막대를 산통에서 꺼내어 조심스럽게
보기 시작했다. 심훈이 꺼내어 보고 있는 나무 점패에는 숫자가 찍혀있다.

"4가 나왔구나. 오늘은 왠지 시원찮은 소식이 전해질 것 같군. 그나마 4나 5가 나오면 다행이겠
구나. 어디 또 돌려보자. 달그락 달그락..."

조심스러운 손길로 산통을 들고 다시 흔들기시작하는 심훈.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팽사
위의 얼굴은 사뭇 진지하기 까지 하다.

"허허.. 9가 나오다니. 4와 9라 이거 망통이구나. 잘 나오지 않던 패가 나왔어. 허허.."
"장군. 점괘가 안좋은 겁니까?"
"허어..이거 뭐라 말을 해야하나..허허 이거 참.."

산통에서 나온 점패를 보며 점풀이를 하는 것을 한참 주저하던 심훈의 입이 서서히 열리기 시
작했다.

"글쎄, 한번 생각해 볼까. 4월과 9월이 서로 만났으니 가진 것이 있어도 쓸 일이 없고, 쓰고자
해도 가진 것이 없어지니 이 어찌해야 한단 말이냐. 오늘은 무언가 내게 전해질 것 같은데.. 그
것이 도통 소용이 없는 것이라는 뜻인거 같구나. 허허.."
"그렇다면 별 일이 아니라는 것이 아나옵니까? 장군 크게 심려치 마시옵소서."

자신의 근심을 자기것 인냥 챙겨주는 팽위사가 언제나 믿음직 스러운 심훈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는 일과가 지나고 늦은 오후가 되었을 때, 관문성의 끝자락을 지나가는 저녁 해
는 하룻 동안의 서운함을 지켜보는 듯 더없이 금색의 빛을 뿌리며 익어가고 있었다. 관문성 위
에 올라 성밖을 보고 있는 심훈과 팽위사.

"장군. 오늘 그 점괘는 아마도 틀린 모양이옵니다. 별다른 일이 없군요. 어쩌면 무소식이 희소
식이긴 하지만요. 후후후"
"허허. 내 점괘가 어디 매번 맞을 수는 없지않느냐. 어찌 서운한 듯 들리니 내가 잘못 들은 것이
냐?"
"그래도 이곳 용주관문에서는 용하다고 소문이 얼마나 자자한데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후후.
솔직히 기대를 좀 했었지요"

그때 관문성을 뛰어 올라오는 무관의 급한 발소리가 그들의 뒤로 들린다.

"장군! 전림에서 급보가 도착하였사옵니다. 어서 가시옵소서."
"전림에서 급보가? 가자."

말을 타기 위해 성벽 계단을 뛰어가면서 왠지 불안한 마음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끼는
팽위사는 함께 뛰어가고 있는 무관에게 넌지시 물었다.

"파발의 기가 무엇이었느냐?"
"두개의 기를 가지고 있었사온데..그게 붉은색와 금색이옵니다."
"뭐라!!"
"지금 장군의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나이다."

수신인에게만 직접 전달되는 대지급을 알리는 적색과 황실을 뜻하는 금색. 전림에 드디어 대
리국의 대군이 쳐들어 온 것이라 생각한 심훈과 팽위사의 얼굴은 잿빛으로 죽어가고 있었다.
급하게 말에서 내려 요란한 발소리를 내며 집무실에 들어가는 세사람.

집무실 앞에 서있는 말에는 전림관문의 표식이 장식되어 있다. 전림에서 온 파발마가 확실하
다는 뜻.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집무실 방문을 박차고 들어가자 부복하고 있는 병사가 눈에 보인
다. 그의 등에 꽂혀있는 금색과 적색의 기가 눈에 보이자 마음이 무거워지는 심훈이었다. 지금
이곳에 병사가 그리 많이 없는데, 혹시 대리국과 월국의 양동작전이 시작된 것이 아닌지 걱정
이 되는 심훈.

"내가 용주관문장 심훈이다. 밀서를 다오"

일어서서 군례를 올린 병사는 품에 있던 한장의 봉서를 두 손으로 공손히 심훈에게 내밀었다.

"반드시 혼자 보시라는 참군대장 윤혁진 장군의 전언이옵니다. 보신 후 밀서는 어떻게 하실지
아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걱정 말거라. 장군께 가서 내 밀서를 정중히 잘 받았다고 전하거라."
"예 장군!"

다시 한번 군례를 올린 병사는 타고 온 파발마를 타고 관문성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손에 든 밀서를 찢어 읽기 시작하는 심훈. 한참을 읽어가던 그의 입에서 허탈한 웃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허허.. 이거 참."

그러면서 촛불에 밀서를 가져가 불을 붙여 태우기 시작하는 심훈. 매케한 냄새가 방안을 채우
기 시작한다. 잠시 한쪽 창문을 열어 바람이 들어오게 만든 팽위사가 기다렸던 궁금증을 심훈
에게 묻기 시작했다.

"장군. 소직이 여쭈어도 되는 것이온지요?"
"다행이 전림의 전장 소식은 아니구나. 대리국에서 별다른 움직임은 없다고 한다."
"그럼 다행이 아니옵니까."

다시 한번 쓴웃음을 짓는 심훈이 이상한지 그를 쳐다보는 팽위사.

"허허.. 이거 참. 내 그토록 말을 했건만.."
"무엇이온데 그리 말씀을 하시는지요? 소직 궁금해서 속이 타들어 가는 것 같사옵니다."
"허허. 내가 믿는 팽위사가 나 때문에 죽으면 안되지. 허허허 "
"그만 소직을 놀리시고 속시원히 말씀을 해주소서."
"음.. 유경이와 사위가 전림에 도착하지 않았다고 하네. 황실에서는 남로평정경략안무사의 전
공을 살피기 위해 사위를 급히 황궁으로 들이라 하지만, 아무래도 이 소칙은 그게 다가 아닐거
야."

다행히 전림의 전장소식이 아니라서 큰 안도를 하는 심훈과 팽위사였지만, 황궁에서 사위를
찾는 다는 말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그들이었다.

"그럴테지요. 아마도 옹주의 입김이 작용했을 테지요."
"그렇지. 이장군이 전사했으니.. 아무래도 그의 죽음에 대해 조사를 하거나, 유일한 생존자인
사위에 대해서 알아 보려하는 움직임일 수도 있고.. "
"별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나 전림으로 출발한 남도위가 왜 그리 안갔는지..."
"길을 잃은게지. 말 돌릴 필요없네. 사위가 길치라는 것은 자네도 익히 알잖은가? 허허. 이곳
관문성안에서도 길을 잃을 때 내 익히 알았건만. 그토록 왼쪽으로 가라고 말했는데.. 그거 참.."
"딱 부러진 유경이도 함께 있으니 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옵니다. 남도위가 조금 못미
덥지만 유경이만 옆에 있으면 무슨 걱정이옵니까?"

한참을 창밖을 쳐다보던 심훈은 팽위사에게 나지막히 말을 했다.

"사위가 지금 어디 쯤에 있을 것 같은가.."
"지금껏 제가 살펴 본 남도위라면... 이곳을 떠난 그는 의주 근처 갈림길에서 방향을 잃고 심중
구할을 기주로에 들어섰을 가능성이 큽니다. "
"그렇겠지? 내 생각도 그래. 기주로에 들어간 후, 다시 전림으로 갈려고 하다가 호남으로 넘어
갈 놈이야. 그 놈은!!"
"하하하하하하. 장군께서는 사위에 대해 너무 잘 아시고 계십니다. 하하하하"
"웃지 말게. 후우.. 그런 놈에게 하나 뿐인 딸을 맡기다니.."
"그래서 오늘은 가질 것도, 얻을 것도 없는 점괘가 나온 것이로군요. 오늘 또 다시 장군의 신묘
한 점술에 깊은 감동을 받았사옵니다. 유경이가 그의 곁에 있으니 걱정마시옵소서. 조만간 유
경이 원래 성질이 나오면 남도위도 꼼짝을 못할 것이옵니다. 장군.."
"허허 그것 참. 내가 사위에게 딸을 맡긴 건지, 딸에게 사위를 맡긴 건지.. 허허.."
"그래도 무공이 쎄잖습니까"
"하긴.. 어리숙하고 무공 쎄고..그 놈은 딱 머슴감이지. 그래서 보자 마자 사위로 점찍었잖나."
"그런데 어찌 그리 쉽게 유경이를 맡기셨는지요? 장군."
"그 녀석이 온 날 아침 점괘가 삼팔 광땡이었다네. 그래서 바로 알아보았지. 하하하하하"
"그 모든 것이 장군의 홍복이옵니다. 하하하하"

그 시각. 선우영은 호남로의 강화에서 서소영과 사부의 연을 맺고 있었다.




[다음주에 8부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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