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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이 가장 쉬웠어요. -06 : 길에서 만난 그들
산적들이 사라지자 다시 마차를 몰고가기 시작했다. 숲속에 들어와서 길을 따라가고 있
으니 어느세 어슴푸레하게 숲길을 비추던 노을도 사라지고, 칠흑같은 어둠이 짙은 장막처
럼 마차 주위를 감싸기 시작한다. 야심한 시각임을 알리는 듯 규칙적으로 울리는 풀벌레
소리와 약한 바람에 부딪히는지 속삭이는 듯한 나뭇잎 소리가 고요한 숲속길의 분위기를
더 해주고 있다. 고즈넉한 숲길을 달리다 만난 길가 한 곳의 작은 공터에 마차를 세우고
저녁 준비를 하는 선우영.
"부인. 오늘은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쉬어야 할 것 같구려."
"이 양반이 정말.. 내 몇 번이나 말했어요. 오늘만은 꼭 객잔에 가야겠다고 말을 했어요?
안 했어요? 아니 생각을 해보세요. 가가. 그래도 우리가 결혼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혼
인데, 허구한날 길가에서 쪼그리고 먹고 자고.. 우리가 거지예요? 응? 아버지한테 나 고생
안 시켜준다고 철떡같이 말했으면서, 어떻게 집 나오자 마자 이런 거지꼴이란 말이예요!
가가. 입이 달려있으면 말을 해보세요. 말을요! 그 능구렁이 같은 검둥이나 세우지 말구요."
저녁을 준비하느라 웅크리고 있던 선우영이 몸을 돌려 심유경에게 다가오자, 오붓한 숲
속의 분위기 탓인지 하의 한 켠이 부풀어 있는 것이 어둡지만 눈에 보이는 그녀였다. 잠시
자신의 하체를 바라보던 선우영은 그녀에게 밥그릇을 건네주며 말을 했다. 잘 말린 육포
와 향긋한 소채가 잘 어울려 끓여진 고깃국물이 그릇에 찰랑거리며 담겨있었다.
"미안하구려. 부인. 허기지셨을 건데 일단 이거라도 좀 드시구려. 분명 길따라 잘 왔다가
생각했는데 왜 마을이 안나타나는지.. 허허 거 참. 귀식이 곡 할 노릇이오."
"귀신이 곡을 하던, 지나가던 개가 곡을 하던, 가가! 월국에서 눈을 감고도 길을 찾아 다
녔다는 우리 똑똑한 가가. 제발 잘 좀 해보세요. 처음에는 안 그러시더니 왜 갑자기 바보
가 되셨어요? 오늘은 정말 객잔에서 몸도 씻고 편안히 자고 싶다구요. 우리가 길을 떠난
지 벌써 며칠째인가요?"
"당신도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소"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선우영은 가슴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그 말을 애써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길지 않은 결혼 생활이지만 조
금씩 여자에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할 수 있게 된 선우영이었다. 볼장
다 보고 나면 사람이 변한다더니,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여인은 마치 함께 수 십년을 살
아온 것 처럼머리 꼭지위에 앉아 있었다. 이런 결혼 생활을 꿈꾸었던 것이 아닌데 하는 때
늦은 후회를 하며 선우영은 그녀의 손을 지그시 잡고 바라보았다.
"허허, 정말 미안하오. 오늘은 정말 안 되겠구려. 이렇게 어두워서야 아무리 월국에서 날
려다녔던 나라고 해도 길을 찾기는 힘드오. 오늘만 참아주시구려. 내일은 반드시 객잔에
서 부인을 재워 드리리다. 덤으로 부인 등도 내가 밀어주겠소. 후후."
"닥치세요! 등 밀어 준다는 가가의 그 뻔한 속셈 모를 줄 아세요? 한번만 더 대낮에 검둥
이를 세워서 다가오면, 그 놈을 지근 지근 밟아서 못 쓰게 만들어 버리겠어요. 알겠어요?
가가."
"하아.. "
"또 한숨!"
입으로는 연신 재잘거리면서도 손으로 놀리는 숟가락은 쉼없이 뜨끈한 국물을 떠서 먹는
심유경을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이 입밖으로 나오는 선우영이었다. 어찌 여인이 이리도 달
라질 수 있는 것인지. 귀를 열어 공터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잠시 살펴 본 선우영은, 나뭇
가지를 모아 마차 옆에 작은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자신은 아닐지라도 여인의 몸인 심유경은 혹시라도 고뿔이 걸리지 않을가 걱정되는 선우
영이었다. 비록 잔소리가 심하더라도, 미우나 고우나 자신의 하나 뿐인 부인이 아닌가. 언
젠가 영웅이 되어 삼처사첩의 꿈을 이루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의 소중한 조강지처였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소유라는 것을 단 한 가지라도 가져 본 적이 없는 선우영에
게는, 비록 산고양이 같은 부인이지만 너무나 소중하기만 했다.
잠을 자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마차 한 켠에 홑이불을 깐 선우영은, 마차 밖에서 달그락
거리며 무언가 그릇 부딪히는 소리를 만들고 있는 심유경을 불렀다.
"부인. 아직도 밤이 되면 꽤 춥구려.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되니 어서 들어오시구려. 나머
지는 내가 내일 정리하리다. 오늘은 이불을 넉넉하게 깔았다오."
"어이구! 눈치가 쥐똥 만큼도 없는 가가야! 여인네는 그저 남편이 잡시다 하면, 네! 하고
대답하는 존재인줄 아시나요? 어떻게 그렇게 시간이 가도 가가의 눈치는 늘어날 줄을 모
를까요? 똥개도 삼년을 키우면 밥주는 사람의 눈치를 알아 볼 줄 안다는데.."
"후우.. 부인. 부인이 하고자 하는 말 뜻을 내 알겠지만, 그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것 아니
오? 내 비록 부인께 그리 좋은 지아비가 되진 못 하지만, 그래도 그대의 하나 뿐인 남편인
데.. 사실 부인께서 말을 할 때 마다 내 마음이 그리 편치 않소. 후우.."
"어머? 가가. 설마 제 말에 상처라도 받았다는 말씀이세요? 능구렁이 같은 검둥이를 가지
고 있는 짐승같은 가가께서요? 농담도 지나치시군요. "
자신이 생각해도 방금 말한 똥개 운운은 조금 지나쳤다고 생각하는지, 마차안에 들어와
한쪽 구석에 다소곳이 앉아 선우영의 눈치를 보는 그녀의 얼굴은 조금전과 사뭇 달랐다.
과연 그녀는 해가 떨어지고 난 후의 밤에만 달라지는 성격일까.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
어 내는 고요한 숲속의 분위기 탓인지 심유경의 목소리에는 조금씩 간드러지는 애정이 베
어들기 시작했다.
"부인, 난 모르겠소. 솔직히 지금 내 심정으로는.. 후우.. "
"가가.. 요즘 자꾸만 한숨을 쉬시온데 제가 그리 못마땅하신 건가요? 네? 그런 건가요?"
잠시 마차 밖을 바라보며 힘없이 말을 하는 선우영이 가엽게 느껴진 탓일까. 그에게 다가
와서 손을 잡아주며 다정하게 말을 하는 심유경이었다. 상대가 개평을 바라며 눈물로 호
소를 할 수록 함께 눈물로 호소해야 한다고 배운 선우영은, 검게 물들어가는 숲끝자락에
걸린 달그림자를 바라보며 우수에 젖은 눈빛을 짓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은 보는 이로 하
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고 무언가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가슴 아픈 그 어떤 호소가 담
겨있었다.
"아니오. 그저.. 그때 독초를 먹는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오. 괜히 부인을 밤
마다 이리 힘들게 하는 것도 그렇고.. 사실 부인께는 미안하지만, 가끔은 꿈을 꾼다오. 온
산이 불타고 모두가 타죽어 가던 그 때.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
이 들 때가 있소. 황상의 명을 받아 떠났던 그곳에서 이 모진 목숨이 뭐가 그리 소중하다
고 그리 도망쳐서 이렇게 홀로 살아 남았는지.. 그들이 지르는 고통스러운 절규, 돌아오라
는 그들의 외침이 밤마다, 그리고 꿈마다 내게 찾아와 날 힘들게 만드는구려. "
"가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셔서 소녀를 이리 슬프게 만드시는 것이옵니까. 제가 비록 가
가께 말을 함부로 해서 마음을 아프게 만들지 몰라도, 가가를 생각하는 마음 하나 만은 언
제나 처음과 같사온데.. 가가. 소녀는 언제나 가가밖에 없사온데 어찌.."
마차 밖을 바라보며 침울해 하는 그의 가슴에 살포시 안기는 심유경. 그녀의 등을 부드럽
게 쓸어가며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런 선우영의 눈빛에는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
빛 보다더 밝은 빛줄기가 초롱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아른거렸던 별 빛이 눈에서 사라지
고, 애써 침통한 표정을 지은 선우영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울분에 찬 목소리로 달을 보며
뇌까리기 시작했다. 그 표정은 밤하늘의 달을 그리워 하는 은빛 늑대의 모습이었으며, 오
래전에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남정네의 슬픈 얼굴이었으며, 도박판에서 판돈을 다 잃고
새벽 밤길을 홀로 걸어가는 개털 난 도박사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저 달을 안주삼아 한 잔의 술에 함께 웃고, 상처받은 동료를 보며 함께 화를 내고, 한 솥
밥을 함께 나누어 먹던 사람들과 3년을 넘게 동거동락을 했소. 그런 그들을 단 하룻밤 사
이에 모두 잃고 혼자 살아 남았을 때의 기분이란.. 내 어찌 말로 형용할 수가 있겠소?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있는게 아니라고 느껴지는 이 기분은.. 두 손을 움켜쥐면 그들의 뜨거운
손이 다시 느껴질 것 같은 기분에, 매일 밤 반복되는 그 어두운 꿈속에서 난 살아 남은게
아니라 또 다시 피를 나눈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오."
"가가, 소녀는 정녕 몰랐사옵니다. 가가께서 그런 아픔을 속에 간직하고 저에게 그런 웃
음을 보이고 계셨는지, 정녕 몰랐사옵니다. 가가.."
심유경의 고운 뺨에는 새벽 이슬보다 더 맑은 물줄기가 흐르기 시작하고, 그녀의 고운 두
손은 뱀이 나무를 타듯이 선우영의 듬직한 어깨를 타고 목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니오 부인. 내 그런 것을 말하고자 한 말이 아니오. 이런.. 미안하오."
가슴에 안긴 그녀의 부드러운 등을 만지며,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맞춤을 한 선우영은 그
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자신의 얼굴 앞으로 끌어왔다.
"부인. 죽음의 땅이었던 그곳을 탈출해 그대를 처음 만났을 때, 난 솔직히 무척 기뻤소.
은 덩어리 몇 냥을 위해 어머니의 손에 팔려갔던 내가 드디어 평생을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을 만났다는 기쁨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르오. 그대와 함께라면 어릴적 그 기억도,
그리고 월국에서의 잊고 싶었던 그 시간들도 다 잊을 수 있을거라 믿었었소. 그랬는데...
후우.. "
"가가.. 소녀는 그것도 모르고.. 흑흑"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숲속. 마차옆에 마련된 모닥불에서 톡톡 거리며 생나무 가
지가 터지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고, 어른거리는 불빛의 유혹에 따라 선우영과 심유경의
입술이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가 언제나 전 가가만... 하아.. 가가만..."
"부인. 나도 그렇소. 언제나 부인만 생각하고 있소. 난 그대를 만난 것을 매일 천지신명께
감사드리고 있다오. 이토록 소중한 여인을 만나게 해주신 은혜를 내 어찌 갚을 수 있을런
지.."
입으로는 그녀의 심금을 자극하는 말을 내뱉으며, 손으로는 그녀의 옷을 천천히 벗기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선우영. 그의 손에 의해 그녀의 속살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
작하자, 서늘한 밤바람이 차가운지 선우영의 입술을 찾으며 무언가를 제촉하는 그녀였다.
오늘까지 계속된 신혼의 나날들에 심유경의 손길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의 하의안으로
스며들어 간다. 눈물을 흘리며 반갑게 심유경의 고운 손을 맞이하는 선우영의 검둥이. 그
녀가 검둥이의 몸을 쓸어안고 만져주자 검둥이는 기꺼운 듯 몸을 불끈거리며 자신의 감정
을 표현하고 있었다. 검둥이의 머리를 만져주던 손을 꺼내어 그가 보는 앞에서 검둥이의
눈물로 젖은 손가락을 혀로 ?아 간다. 그 모습이 너무나 색정적으로 보며 선우영의 심박
수는 네박자로 콩닥 콩닥 뛰기 시작한다.
"아흥. 가가.. 검둥이가 울고 있어요."
"부인이 좋다고 그러는 구려.."
"하아.. 이 놈이 예쁜 건 알아가지고.. 그렇지요? 가가.. 아흑.."
모닥불의 흔들림에 따라 산등성이의 모습이 달라져 보이는 봉긋한 유방을 입에 물고 있
던 선우영은 그녀의 달콤한 말에 젖꼭지를 살짝 깨물어 대답을 대신한다. 이윽고 그녀의
다리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선우영의 머리. 그녀의 지금 기분이 어떠한지는 조금 쌀쌀
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촉촉히 젖어가기 시작하는 허벅지에 베여있는 진한 짠 맛으로 익
히 알 수 있었다.
"부인.. 부인의 이 맛은 참으로 맛있소. 내 입맛에 딱 맞구려. 흐읍.. 흐읍.."
잠깐식 말을 하며 그녀의 허벅지를 혀로 ?고, 손으로는 열심히 그녀의 심처에 손가락을
넣고 샘물을 퍼나르는 선우영.
"가가.. 전부 가가 것이옵니다. 더... 더 많이 드시옵소서. 하앙.. 전부 ..하악."
배꼽에 혀를 넣고 부드럽게 굴려주는 선우영의 몸짓에 잔뜩 달아오른 심유경은 그의 머
리를 잡고 애닳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하앙.. 가가 목말라요. 저도 목말라요. 가가.. 어서.. 하응"
곱게 열려진 그녀의 허벅지에서 내려와 방초를 입에 머금고, 진한 그녀의 육향을 코로 음
미하선 선우영은 나지막히 속삭이는 그녀의 들뜬 말이 무엇인지 깨달고 자세를 바꾸기 시
작했다.
"부인 목마르시오? 후우.. 어서 검둥이를 입에.. 내 부인을 위해 뜨근한 물을.. 흐읍."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와 동시에 자세를 바꾼 심유경은 한 손으로 검둥이를 잡고 머리부
터 검둥이를 삼키기 시작한다. 지릿하고 끈적이는 냄새가 가득 풍기는 거대한 보라색 뱀
을 입에 머금고 있는 심유경은 마치 달작지근한 당과를 입에 문 어린 계집아이 같은 표정
을 짓고 있다. 그녀의 입가를 흐르는 진한 액체만큼 마차안에는 끈적한 물기 젖은 소성이
자리하기 시작하고, 굳게 닫힌 그녀의 눈꺼풀이 버거운 듯 떨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한쪽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을 퍼 마시고 있던 선우영이,
그 작은 샘으로 부족한지 그녀의 허벅지에 묻어 있는 땀까지 혀로 ?아가며 불타는 목마
름 해갈해 가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와 묵직하고 끈적거리는 소리가 가득 울리고 있는 작
은 마차안. 그렇게 찾아온 숲속의 밤은 초여름 새벽 날씨의 쌀쌀함도 이겨내고 땀으로 마
차의 나무 바닥을 적셔가고 있었다. 이윽고 숲속을 가득 울리는 여우 비명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차갑고 어두운 숲속에 산불보다 뜨거운 열기가 솟구쳐 오른다.
다음날 새벽. 하룻밤을 또 다시 숲속에서 지세우게 된 선우영과 심유경. 지난 밤 그들이
나눈 뜨거웠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서로의 땀방울은 어느세 식어 끈적이며 굳어 있
고, 단정했던 심유경의 삼단같은 머리카락은 바람을 따라 날아가는 갈대마냥 어지럽게 흩
어져 있었다. 마차 틈세를 따라 들어온 새벽 바람이 그녀의 고운 방초를 시작으로 배를 타
고 나란히 솟아있는 쌍바위 정상에 이르자, 힘겨웠던 지난 시간이 무겁게 떠지는 눈꺼풀
과 함께 떠오르기 시작하는 심유경이었다. 선우영을 가슴위로 끌어안고, 물결에 떠밀리는
수초마냥 힘없이 늘어져 누워있던 심유경의 흐릿한 눈망울이 완전히 열리자, 그제서야 자
신의 몸 한 곳에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직도 밤사이의 여운이 남
아 있던 그녀의 몽롱한 표정이 지금 떠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강렬하게 변하기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해가 뜬 이후에 나타나는 산고양이 특유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그렇게 살살하라고 말했건만 이 인간이.. "
그녀의 한쪽 가슴을 입에 머금고 웃으며 자고 있는 선우영의 머리를 던지듯 치우고 상체
를 일으키는 심유경. 그녀가 갑자기 일어나서인지 미쳐 피하지 못한 그의 머리가 강하게
마차 바닥에 부딪힌다.
"쿵! 크윽.. 아웅 아웅"
잠시 그 충격에 눈을 떳다가 다시 잠을 청하는 선우영은 곧 어제의 열락이 가져다 준 즐
거운 피로속으로 빠져든다. 그런 그를 보며 한동안 째려보던 그녀가 몇 가지 옷을 가지고
마차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들리기 시작하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질퍽거리는 물소리.
한동안 마차 밖에서 이어지던 그 소리가 어느세 잦아지고, 깨끗하게 단정된 모습의 그녀
가 마차안으로 다시 들어온다.
그녀의 눈앞에는 쌀쌀한 아침 바람 탓인지 옷을 다 벗고, 몸을 한껏 웅크린 채 겨우날 양
지바른 곳에서 자고 있는 똥개 한 마리가 보였다. 잘 발달된 근육. 그리고 온 몸을 장식하
고 있는 수 없이 이어진 흉터들. 그에게 저 흉터 하나 하나가 생길 때 마다 그의 가슴에 함
께 세겨졌을 수 많은 아픔이 그녀의 가슴에도 아로 세겨지는 듯 하다. 잠시 표독스럽게 그
를 쳐다보던 심유경의 눈이 따스한 느낌으로 변해가다가 갑자기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늦여름 나뭇가지에 늘어진 능구렁이 마냥 마차 바닥을 기어가듯이 늘어져 있는 선우영의
검둥이. 저 녀석이 밤사이 얼마나 그녀를 괴롭히고 아프게 했는지가 떠오르자, 조금전의
그 따스했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뜨거운 기운이 남아있는 마차안에 출
처를 알 수 없는 냉기가 휘몰아쳐 들어 온다.
"그토록 살살하라고 말했건만.. 말을 안 듣고 날 아프게 해! 내가 얼마나 아픈지 너도 한
번 느껴봐. 이 말도 못하는 짐승같은 놈아!"
하얗고 고운 그녀의 발이 검둥이 머리를 쓰다듬듯 내려와서 갑자기 짓누르기 시작했다.
"크아악. 헉헉.. 부인 부인..살려주시오. "
"내가...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기나 해요? "
"크헉..나 죽소. 부인..으악..헉헉.. 으윽...."
"아프죠? 나도 아파요. 내가 얼마나 아픈지 가가도 느껴봐야 해요. 이 놈의 검둥이를 내가
오늘은 반으로 잘라 버리고 말겠어요. 크기만 짐승처럼 크지, 쓸 때도 없는 녀석. 죽어랏!"
"크아악! "
누가 말을 했던가. 최고의 부인감은 낮에는 현모양처이고, 밤에는 요부인 여인이 가장 좋
다고. 밤에는 요부인 것이 맞지만, 해가 뜨기만 하면 산고양이로 변하는 것은 어찌 설명을
해야 좋을지 부어오른 검둥이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힘없이 마차를 몰아 가고 있는 선
우영은 난감하기만 했다. 매일 이런 생활이 반복된다면 자신부터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
지 걱정되었다. 방중술이라도 어디서 배운다면 그녀가 낮에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
고 있는 선우영의 귀에 희미하게 병장기가 부딪히는 금속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월국에서
독초를 먹은 후로는 사람이 내뿜는 기파에 무척이나 민감해진 선우영이었다.
"부인.. 어서 일어나시오."
"아웅. 짐승 같은 가가. 왜요? 아웅 나 잘래요."
"부인. 어디서 싸움이 일어난 것 같소. 피해야 하는데.. 길 한쪽이 이렇게 골짜기이니 피
할 수도 없구려. 일단 준비해야 할 것 같소."
"정말이예요? 제 귀에는 들리지 않는데.. 가가. 설마 여기서 또 쉬어가자는 말은 아니겠
죠? 예? 가가 미쳤어요?"
"부인.. 내 어제는 지나쳤던 것은 미안하오. 그대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소. 그저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 뿐이었다오."
"웃기지도 않는 말은 집어치우세요. 흐음.. 내 칼이 어디 있더라?"
산고양이로 변신하는 낮에는 선우영의 작업이 결코 통하지 않는 그녀였다. 마차 뒤에서
자신의 칼을 찾는지 꼼지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선우영과 심유경이 타고 있는 마차는
그렇게 관도를 따라 달그락 거리며 아주 느린 속도로 가고 있었다.
선우영 부부가 관도를 따라가고 있던 그 시각. 관도 한 쪽에서는 무림인으로 보이는 검은
색 도복의 여인 세명과 붉은색 경장 여인 한명, 이렇게 4명이 서로 피를 흘리며 칼부림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그 주안술로 얼마나 많은 음행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겠구나. 내 이 자
리에서 너를 단죄하고 다시는 중원천지에 너 같은 음적이 돌아다니지 못하게 징치하겠노
라. 네 행적을 스스로 돌아보아 속죄한다면 내 부처님의 은혜를 베풀어 줄 수도 있느니라.
어서 무릎을 꿇고 목을 내밀어라. 단수에 자비를 베풀어주마."
한동안 이어졌던 칼부림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지자, 무리의 수장인 듯한 중년의 여인이
피를 흘리고 있는 여인에게 칼을 앞으로 세우고 외쳤다. 그러자 홍의경장의 여인이 마치
코웃음을 치는 듯한 표정으로 그 말을 되받아 친다
"이 미친년아. 니 피부가 탱탱한 것은 내공이 고강해서 그런거고, 내 얼굴이 탄력있는 것
은 빌어먹을 주안술을 배워서 그런 것이란 말이냐? 불문에 귀의해서 세속의 욕심이 없다
는 중년들이 내공으로 얼굴이나 가꾸는 것은 정당한 일이고, 내가 체음보양 좀 하고 돌아
다니는 것은 죽어 마땅한 일이라는 것이 대체 누가 정한 법도란 말이냐? 체음보양 때문에
네 년들 기둥서방이 죽기라도 했느냐? 사내놈들이 먼저 흥분해서 좋다고 덤비는데, 내가
무슨 처녀도 아니고 세침하게 거절이나 하라는 말이냐? 서로 좋아서 붙어 먹었으면 그만
이지, 있지도 않은 죄를 지었다고 중년들이 ?아와서 이 지랄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구
나. 호호호호"
"너희 음교가 중원에 저지른 만행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혼자 모른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그렇게 간악한 표정으로 무구한 무림인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진신내공을 갈취하였더냐!
내 오늘 여기서 너를 단죄하고, 그 길로 음교를 찾아가 그곳에 불법의 공명함을 일깨워주
겠다."
마치 대죄를 저지른 죄인 앞에서 그의 죄를 읊는 집행인처럼 손에 들고 있는 칼을 하늘로
짓켜세우고 외치는 중년여인.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붉은색 경장을 입은 여인은 표독스러
운 표정으로 땅바닥에 세워놓은 칼을 들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음교! 음교! 도대체 우리 음교가 중원에 무슨 철천지 원수를 지었기에 그렇게 우리를 못
죽여 안달인게냐? 이 중년들아. 우리가 실수로 죽인 사람이 니년들의 손에 죽은 사람보다
많을 것 같으냐? 말로는 공정한 정파 나부랭이라고 잘도 주절거리기나 하지? 그래 한번
제대로 짚어 보자. 니들이 그렇게 공정하다고 이름부터 정파라 달고 다니는데, 니들이 하
는 공정한 짓거리가 과연 무엇이냐? 주루나 기루에서 보호비 받고, 돈 많은 놈들의 애새
끼들을 문하에 들인다고 기부금 뜯어 내고 중소문파 핍박하는게 정파다운 행동이라면, 니
들이 그렇게 죽이고 싶어하는 사파들이 자릿세 뜯어내고, 도둑놈들에게 무공 좀 주고 푼
돈 몇 푼 뜯는 거랑 뭐가 틀리단 말이냐? 말을 해보거라."
"금품을 모으는 것에 상도가 있고, 무공을 전수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어찌 정
파와 사파의 그것이 서로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아니면 상대를 하지 말아야 하
고, 그의 됨됨이가 아니면 무공을 전수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처음 칼을 손에 쥐는 아이들
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겨우 그것을 가지고 정파와 사파가 똑같다고 말을 한다
면, 너야 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고 할 수 밖에.."
힘겹게 서서 숨을 고르고 있던 붉은 경장을 입은 여인은, 흑색 도복을 입은 중년 여인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니들이 하면 정당한 계략이고, 우리가 하면 치졸한 음모라는 식으로 보는 건, 그건 니들
이 만들고, 니들만 그렇게 보는 세상의 잣대가 아니였느냐? 그래도 난 너희 아미파는 다
를 줄 알았다. 같은 불도를 걷고 있지만 아집과 독선으로 뭉쳐진 소림의 개새끼들과는 정
말 다를 줄 알았단 말이다! 그런데 이제보니 정파라 이름 붙은 것들은, 놈들이나 년들이나
모두 똑같이 속이 시커먼 개새끼들이구나. 겉으로는 흰 척하면서 뒷구멍으로 구린내나 풍
기는 개새끼들! "
"어찌 무림의 태산같은 소림을 그리 모함할 수 있느냐. 소림이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기에
무림이 이렇게 평온할 수 있었고, 우리 같은 정파가 지금가지 명맥을 이어왔기에 중원인
들이 평안히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매일 피를 바라는 혈귀마냥 죽음을 ?아 다
니는 너희들만 사라지면 속세에 더이상 근심이란 단어가 왜 필요하단 말이냐."
이때 중년인과 붉은옷을 입은 여인의 말싸움을 지켜보던 흑색도복의 여인 중 한명이 둘
사이의 말에 끼어들었다.
"장문인. 더이상 말을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공력을 회복하기 전에 마지막 공격을 하시
지요. 어차피 음교와 우리는 한 하늘 아래 함께 살아갈 수 없지 않습니까? 참회시킬 수 없
는 존재라면 부처님의 뜻에 따라 불법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다소 어려보이는 그녀의 말에, 붉은색 경장을 입은 여인은 노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네 이년. 세상을 그렇게 보지 마라. 삼라만상을 돌아보기 위해 불법을 배운다는 너희 중
년들이 어찌 생각이 나보다 짧고, 멀리 있는 것을 마음으로 보지 못한단 말이냐. 부처가
네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더냐? 나와 다르면 모두 적이라고 말이다! "
"장문인.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서 저년에게 불가의 가르침을 일깨워
주고 자리를 뜨는 것이 좋겠습니다."
칼을 고쳐잡고 공격할 준비를 하는 다른 여인의 말에, 한 순간 치민 노기가 몸에 돌아 혈
도를 자극하였는지 입가에 가르다란 혈흔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잠시 입가에 세어 나온
피를 소매로 닦은 붉은색 경장의 여인은 숨을 고른 후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살생을 하지 말고 자비를 베풀라는 부처의 가르침은 어디 구멍에 쑤셔넣고, 언제부터 불
자들이 칼을 들고 다녔느냐? 그게 과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니들의 똥구
멍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너희들의 납작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보거라. 이 중년들
아."
그녀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몸에 입은 경장이 바람이 들어 찬 듯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몸을 지탱하느라 바닥에 꽂아 놓은 칼을 가슴에 끌어안고 그녀는 마치
하늘에 대고 외치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단지 우리가 음행을 일삼는 것이 중원의 법도에 어긋난다고 한다면! 그래서 너희들의 손
에 이렇게 핍박당하고 죽는 것이 마땅하다면, 먼저 니들이 보호하고 있는 주루와 기루를
모두 불태우고 그곳에 있는 기녀들을 모두 니들의 손으로 베어 버리거라. 그리고 그곳에
들락거리는 남정네의 양물을 모두 찢어버리고 그 후에 나를 찾아오거라. 그러면 그때! 내
너희들에게 웃으며 내 무릎을 꿇고 내 목을 내어주겠다. 그것이 아니라면, 내 이 자리에서
너희들이 그리 핍박하는 음교의 힘이 어떠한지 보여주겠다. 크으으으흑"
입가에 세어나오기 시작하는 피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코에서도 피가 쏟아
져 나오기 시작했다. 핏빛의 붉은 눈동자, 그리고 붉은 경장. 얼굴을 온통 피칠을 한 그녀
의 고통스러운 외침은 그녀의 지금 심정이 어떠한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녀의 주
위에 흐르는 공기가 갑자기 멈춘 듯 일시에 조용해졌지만, 흑색도복을 입은 여인들은 몸
으로 전해져오는 기파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검을 거두고 소청면장으로 대응하거라."
"예 장문인. "
장문인을 필두로 두명이 품자형태를 취한 그녀들은 칼을 검집에 넣고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세우며 팔을 둥글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뒤에 서있는 두명의 여인들과 장문인 사
이로 부드러운 공기가 스쳐 지나간다고 느낄 찰라. 붉은색 경장을 입은 여인의 공격이 시
작되었다. 입가에 흐르는 피가 목을 타고 흘러 가슴을 적시고 있는 섬뜻한 광경.
그녀가 들고 있는 칼에도 피처럼 붉은 기운이 스며들어 세명의 여인들을 향해 짓쳐들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칼이 들어오고 있는 방향은 장문인쪽이 아닌, 다소 나이가 어려보
이는 그녀의 왼쪽 뒤. 불안함을 느낀 장문인은 방어를 도외시하고 왼쪽 뒷편을 향해 손을
내지르며 몸을 던졌다.
"옥화야! "
몸을 던지는 장문인의 외진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다급한지 알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강한 파공성이 들리고 장문인의 몸을 뚫고 칼이 재빠르게 훑었다가 빠져나왔다.
뒤에서 방어를 하던 여인들에게도 충격이 컸던 탓인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장문인
을 향해 뛰어가는 그녀들.
"이럴수가.. 크흑.. 내 오늘 기필코 살계를 열고 말리다."
"채엥~ "
검집에서 청명한 검이 뽑혀나오는 맑은 금속성이 울려 펴졌다. 장문인의 입에서 연신 세
어나오는 피를 본 옥화가 심화를 이기지 못하고 급하게 공력을 모으는지 주위에는 세찬
바람이 일었다가 사라지고, 그녀의 고운 손아귀에 쥐어진 검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다. 그것을 본 장문인은 자신의 상처를 생각치 않고 놀란 눈으로 일갈을 지른다.
"옥화야. 안된다!.. 크흑"
"상세가 위독합니다. 말을 하시면 안됩니다. "
피를 흘리고 있는 장문인을 끌어안고 상세를 보느라 정신이 없는 한 여인과 결전을 각오
한 채 검끝을 겨누고 있는 한 여인. 그런 여인들을 바라보던 붉은색 경장의 여인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내 오늘 여기서 너희들이 그토록 무시하는 사파의 진정한 힘을 일깨워주고 싶었으나, 손
님이 찾아온 듯 하니 이쯤에서 내 너희들에게 자비를 베풀까 하느니라. 너희들이 더럽다
여기는 음교의 힘이 어땠는지는 아미산으로 돌아가서 절실히 느껴보아라. 오호호호호 "
그 말을 끝으로 공중으로 몸을 띄운 붉은색 경장의 여인은 빠른 속력으로 골짜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못 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장문인의 상처를 돌보느라 정신없던 옥화의 귀에 덜그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마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지고 있는 금창약을 장문인의 몸에 발라주었지
만, 지금은 최대한 가까운 세가에 가서 뛰어난 의원에게 몸을 맡겨야만 하는 위급한 상황.
극도의 안정이 필요한 이 때 다가오고 있는 잘 꾸며진 마차는 마치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사저. 저 마차를 빌려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장문인의 상세를 볼 때 우리가 업고 이동하
기에는 아무래도 위험해요."
"그래 사매. 내가 가서 도움을 청해볼게. 사저는 여기서 장문인을 지키고 있어."
"네 사저."
곱게 머리를 땋고 있는 여인이 다가오고 있는 마차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신법을 전
개한 것인지 거리에 비해 순식간에 도착하는 그녀였다.
"소협, 죄송해요. 도움이 필요해요."
"호오, 길가에서 왠 미모의 여인이 도움을.. "이라는 흐믓한 생각을 하던 선우영은 왠지
뒷통수가 뜨겁다고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위험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본 그의
눈에는 한 손에 쥔 검자루를 잡고 빙긋이 웃고 있는 심유경의 얼굴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마차를 향해 달려오는 옥운을 보며 지었던 미소가 점차 굳어지기 시작하는 선우영. 다급
하게 흐믓했던 표정을 정리한 후, 벌써 마차앞에 다달아 기다리는 옥운을 향해 무슨 일인
지 물어보았다.
"여인께서 왠 일로 저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오?"
"일행중에 크게 다치신 분이 있습니다. 세수가 지극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을 가까운
의원까지 모시고 가기 위해서는 여러분께서 타고 있는 마차가 필요합니다. 소협께오서도
무림인이신 듯 하온데 괜찮으시다면, 저희쪽 일행 한명을 동석시켜 주실 수 있으신지요?
제발 부탁드리옵니다. 지금 상세가 너무 위중하여 이곳에 있으시면 그 분께서.. 이렇게 거
듭 부탁드리옵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공손히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옥운. 고개를 숙인 그녀의 목
덜미의 가느다란 잔털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 선우영이었다. 뒷자리에 타고 있는 심유경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만, 이런 여인과 인연을 쌓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
는게 아닌가. 그리고 이 길은 달리 갈 수 없는 외길. 그리고 분위기 좋은 숲속의 작은 길.
이 숲길의 효과는 이미 며칠동안 밤에 확인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펼쳐질 일을 상상만 해
도 즐거워지는 선우영이었다.
"걱정마시오. 사해가 동도라고 했는데, 곤란에 처한 이를 보고 지나친다면 어찌 그가 중
원인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황은을 입고 살아가는 똑같은 백성이거늘. 전혀 게
의치 마시고 함께 가십시다. 갈 수 있는데 까지 모셔다 드리겠소."
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같은 무림인이라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황은 운운하는 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저의가 없는 것 같은 표정에 안심을 하고 깊은 감사를 표했다.
"감사하옵니다. 정말 감사하옵니다. 소녀는 아미파의 일대제자 옥운이라 하옵니다."
"반갑소이다. 옥운소저. 본관은 남로정벌군 남로평정경략안무사 제하 남도위 서운영이라
하외다. 그리고 여기 있는 여인은 용주관문 교위수장의 여식 심유경이라고 하오."
무림인이 아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처음으로 만나는 황군이었다. 그리고 선
우영은 그녀가 무림인이라고 밝히자 어차피 자신의 관직에 대해 자세히 모를 것이라 생각
하고 잔뜩 멋을 부려 자신의 직위를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심유경을 처가 아닌 그저 그녀
의 이름으로 소개한 것은 그의 남다른 생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표독스러운 표정
으로 잠깐 고개를 까딱거려 눈인사를 한 심유경은 선우영의 바로 뒤에 자리잡고, 검집에
서 칼을 살짝 뽑았다가 넣었다가 반복하며 지금 자신의 심기가 어떤지 간접적으로 보여주
었다. 보라색 수실로 장식된 미려한 고검에서 맑은 금속음이 스며 나왔다.
"팅~ 짤깍. 팅~ 짤깍"
칼이 검집에서 뽑혔다가 다시 들어가는 소리가 계속 들리자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는
선우영이었다. 이 산고양이가 언제 발톱을 세우고 덤빌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일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그럼 옥운소저. 본관의 옆에 앉아 안내를 해주시겠소? "
"예 감사드리옵니다."
마차에 오를려고 하자, 갑자기 뒤에서 걸어나온 심유경이 선우영의 옆자리에 철푸덕하고
앉아버렸다. 어떤 뜻인지는 옥운으로서도 눈치챌 수 밖에 없는 상황. 살짝 붉어진 얼굴을
옆으로 몸을 올려 가린 옥운은 선우영을 향해 말을 하며 몸을 돌렸다.
"제가 먼저 앞서가며 안내해 드리겠나이다. 아직은 미력한 신법이지만 제법 쓸만하오니,
저의 뒤를 따라 오소서."
"부탁하오. 옥운소저."
손살같이 달려가는 그녀의 그림자를 ?아 마차를 몰아가는 선우영. 그녀의 옆에 앉은 심
유경은 그런 선우영을 쳐다보며 웃으며 말을 했다.
"부탁하오. 옥운소저."
"크헉.. 부인. 무슨 말씀이시오?"
"하하하하 본관의 옆에 앉아 안내를 해주시겠소? 하하하하"
조금전 자신의 흉내를 내며 무엇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넌지시 말을 해주고 있는 심유경.
그런 그녀의 말보다 반쯤 뽑혔다가 다시 들어가고 있는 그녀의 손에 쥔 칼이 더 무서웠다.
왠지 여기서 더 버티다가는 저 칼로 자신의 소중한 검둥이가 일도양단이 날 것 같은 불안
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도박판을 정리할 때 꾼이라면 누구나 몸에 익히고 있는 기술, 돈을
혼자 다 따고도 다 잃고 가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심유경을 바라 본다.
"부인. 곤경에 처한 황제 폐하의 백성들을 구하는 길이오. 황군에 소속된 몸으로, 내 어찌
사심을 가지고 그들을 대할 수 있겠소? 걱정마시오.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부인밖에 없다
오."
"정녕 사심이 단 한 자락도 없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사옵니까?"
"그렇소. 부인. 왜 믿지 못 하시는 거요? 내가 부인께 거짓을 말할 이유가 무엇이겠소? 허
허허"
"그렇다면 왜 저를 처라고 당당하게 소개하지 않으셨습니까? 가가? "
난데없이 공격당한 곳이 치명적일 때 가끔은 말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선우영
의 지금 심정이 바로 그러했다. 청명한 하늘이 이토록 푸르렀던가?하는 쓸데없는 생각들
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하고,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현실도피를 시
도하는 선우영이었다. 갑자기 멍청해지는 선우영을 보며 칼집으로 마차 바닥을 내려치는
것과, 옥운이 마차에 다가와서 조금 옆에 떨어진 장문인을 안내하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쿵~! 가가! "
"소협. 저기 장문인께서... "
"하하하하 인사하시구려. 여기는 본관의 처인 심유경이라 하고, 이쪽은 옥운소저라 하오.
처음이실건데 인사하시구려. 허허허허. 저기 누군가 쓰러져 있구려. 백주 대낮에 이런 안
타까운 일이 일어나다니.."
심유경의 공포스런 분위기에 정신이 잠깐 나간 선우영은 조금전 그들이 서로 눈으로 인
사를 했음을 까먹고 다시 소개하고 있었다. 마차를 세우고 쓰러져 있는 장문인의 곁으로
잽사게 달려가는 선우영이었다.
"으음. 여인이시군요. 남자분이라면 상세를 살펴볼까 하였는데.. 그래, 응급처치는 잘 되
었는지요? "
"네, 마침 가지고 있던 환약과 금창약이 있어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내상이 깊
어 가능한 빨리 가까운 세가의 의원에게 보이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한 터라.."
"걱정마시오. 본관과 처가 마차로 이 분을 모시도록 하겠소. 비록 짐이 많아 불편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소?"
"네. 그 정도 감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이렇게 도움의 손길을 주신 것만 해도 나
중에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도움이라니 그 무슨 말씀이오. 허허허."
장문인의 상세를 살펴보며 속살을 훔쳐볼까 생각했던 선우영은 이내 그것을 포기하고 마
차로 향했고, 옥화와 옥운이 장문인을 안아 마차로 데리고 왔다. 마차안 한 쪽을 정리하고
장문인이 기거할 자리를 마련한 선우영. 잠시 기절했던 장문인은 옥화와 옥운에게 안겨오
는 동안 정신이 들었는지 마차 이곳 저곳을 돌아보다가, 선우영의 허리에 메달려 있는 검
에 눈이 들어갔다.
"흐음... 군관이시오?"
"어? 정신이 드신거요? 부인, 이 분이 정신이 드셨구려. 물을 좀 가져다 주실 수 있으시오?"
잠깐 선우영을 보고 뭐라 말을 할려던 심유경은,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는 장문인의 상처
를 본 후에 입이 조박만하게 튀어나온 채 조용히 마차 한쪽에 자리잡은 항아리에서 물을
떠와 술잔 건내듯이 전해주었다. 말없이 한 손으로 내미는 물잔. 그녀가 내민 물잔을 잡아
장문인의 입에 넘겨주는 선우영. 그리고 그런 그를 쳐다보는 심유경의 표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그런 심유경의 표정은 뭔가 입질은 오는데 이걸 낚아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갈등하
고 있는 강태공의 표정과 사뭇 비슷했다.
"이 검을 알아보신 것 같은데, 본관은 남로평정경략안무사 제하 남도위 선우영이라고 하
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위중한 상처를 입으신게요?"
"쿨럭.. 쿨럭.."
피를 흘린 후 찾아오는 강한 갈증에 급하게 물을 마실려다가 목에 걸렸는지 기침을 하는
장문인을 대신해서, 옥운이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희는 원래 장문인을 모시고 광주로 향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조금 떨어진 려파에서 음
교 교주를 맞닥뜨렸지요. 그때부터 그녀를 추적하다가 여기까지 ?아와서 잠시 칼을 나누
었는데 그때 장문인께서... "
"아니 잠깐, 조금전 여기서 얼마 안떨어진 려파라고 하셨소? 내가 알고 있는 그 귀주성 려
파 말씀이오?"
"네. 귀주성 려파가 맞사옵니다. 여기서 세시진 정도만 마차로 이동하면 곧 도착할 것입
니다. 왜 그러시온지요?"
그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선우영이 아니라, 마차 앞에 서있는 심유경에게서 나왔다.
"가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바로 옆 마을 전림을 향해 출발하셨던 분이 기주로의 려파에
도착하다니요. 세상 천지에 가가같은 분이 또 있을까 소녀는 정말 궁금하기 그지 없습니
다. 멀쩡한 관도에서 길을 잃는 바보같은 사람은 우리 가가 밖에 없지요. 아마 여기 계신
소저들께서도 가가가 어떤 분인지 알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오호호호호"
그렇게 선우영의 바보같은 행동을 비웃던 심유경은 그를 고소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
다. 왠지 이제 어떻게 할거냐라고 묻는 듯한 묘한 그녀의 눈웃음. 수면위로 뻐끔거리는 붕
어들에게 떡밥을 던져주는 강태공의 흐믓한 표정이 저렇지 않을까? 그녀의 그런 모습에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지는 선우영이었다. 상대의 뻥카를 보고 그냥 넘
긴다면 그 어찌 진정한 꾼이라 할 수 있을까. 선우영의 마음 깊은 곳에선 숨겨진 도박사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음교 교주를 추적중이라고 하셨소?"
"네 그렇사옵니다. 그녀도 상당한 상처를 입고 지금 도주중일 것이옵니다."
"그녀가 도주한 방향이 어느 쪽이오?"
"네? "
"가가! "
뜬금없는 선우영의 말에 불안감을 느끼고 일갈을 가하는 심유경. 그러나 그녀의 반응이
어떻든 아랑곳하지 않고 선우영의 물음은 계속되었다.
"본관은 남로정벌군 남로평정경략안무사 제하 남도위라고 아까 소개를 했소. 지금은 불
의의 사고로 본대를 모두 잃고 운남성 남로정벌군 병참총진지를 향해 홀로 가고 있지만,
사실 본관에게는 옆에 있는 처에게도 말하지 못한 막중한 임무가 하나 있다오."
"그것이 무엇이온지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
"가가. 어찌 그런 것이 있다면 소녀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셨습니까?"
"중원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우리 남로정벌군에게만 부여된 특수 임무가 하나 있었소. 비
록 지금은 본대가 없어졌다고는 하나, 이렇게 홀로 살아 남은 본관이라도 그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지금, 그것을 놓칠 수가 없구려. 부인, 그리고 소저들. 나를 도와주
시오. 이 일은 중원을 위해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요."
심각하게 여인들에게 말을 하는 선우영의 표정에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떠나기 직전
의 무장의 진지한 그 무엇이 떠오르고 있었다. 황실과 중원을 위해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
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장엄한 표정이 선우영의 얼굴에 가득 실려있다.
"가가. 그 임무가 무엇이온데.."
"부인, 정말 미안하지만 그것만은 아무리 부인이라도 말을 해 줄 수 없구려. 정말 미안하
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기밀을 밝힐 수 없는 것은 군무를 보는 장수들의 멍에라 생각하
고 이해해 주시길 바라오. 나 또한 황상폐하를 위해 검을 든 무장. 어찌 사사로운 정을 이
유로 폐하의 은공을 저버릴 수 있겠소?"
"가가.. "
"소저들. 내 한 가지 부탁을 하겠소. 괜찮겠소?"
"말씀하소서.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손을 빌려 드리겠나이다."
"여기 계신 본관의 부인은, 부친되시는 분께서 광서성 용주관문장이신 심훈 장군의 무남
독녀가 되시오. 내 소저들에게 본관의 부인을 부탁하겠소. 같은 여인들이니 서로 함께 움
직인다면 크게 불편한 일은 없을 거요. 필요한 물품은 여기 마차안에 있으니 목적지에 도
착하고 본관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올 때까지 부인의 안전을 부탁드리겠소. 가능하겠
소?"
"저희를 믿고 대협의 부인을 의탁하시는 것이온데 어찌 저희가 목숨을 아낄 수 있겠나이
까. 무사히 임무를 마치시면 사천 아미산, 아미파로 오시옵소서. 본파에서 부인을 안전히
모시고 있겠사옵니다. 저희 아마파는 여인들만 이루어진 곳인 만큼 중원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고 감히 대협께 말씀드릴 수 있사옵니다."
그러면서 옥운은 그녀의 팔목에서 가느다란 옥환을 하나 빼어내 그의 손에 건내주었다.
"이 옥환을 가지고 가소서. 추후 임무를 마치시고 본파를 내방하셨을 때 이 신물을 보이
신다면, 대인을 귀인으로 맞이할 것이옵니다. 장문인을 위기에서 구해주신 분이온데 이렇
게 밖에 하지 못하는 저희를 꾸짖어 주시기를..."
"아니오. 갑자기 맞이하게 된 본관의 개인적인 부탁을 쾌히 들어주시는 두 소저께 진심으
로 감사드릴 뿐이오."
옥운과 짧은 눈인사를 마친 선우영은 몸을 일으켜 마차 밖에서 입술이 튀어 나온 상태로
안절부절 못하는 심유경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포근하게 끌어안고 그녀에
게 말을 했다.
"부인. 내가 이렇게 떠날 수 밖에 없음을 부인께서 이해해 주시길 바라오. 군문에 몸을 담
은 자로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어찌 주어진 명을 완수하지 못한단 말이오. 내 비록 지금은
부인과 잠시간의 짧은 이별을 고하고 있지만, 최대한 빨리 임무를 수행하고 부인의 곁에
돌아오도록 하겠소. 그때까지 강녕하시구려. 부인. 내 어디에 있더라도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함께 있다는것을 부인께서 잊지 않으셨으면 하오."
"가가. 저분들이 다친 것을 보니 위험한 일 같사온데.. 정녕 이렇게 가셔야만 하옵니까?
나중에 병졸들을 모아 그녀를 추적해도 늦지 않지 않사옵니까? 아니, 다시 이 길을 돌아
가 아버지께 도움을 청해도 되옵니다. 가가. 왜 이리 급하게 서두시옵니까?"
"부인. 시간이 늦어지면 그녀는 어디에 숨어버릴지 모르오. 아직 혈흔이 땅에 남아 있을
때 어서 추적을 해서 그녀의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오. 다녀오리다. 사랑하오"
그녀를 끌어안고 잠시간의 짧은 입맞춤을 한 선우영은, 마차안에서 그를 바라보며 얼굴
을 붉히고 있는 옥운에게 다시 눈인사를 하며 재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려가는
그의 뒤로 심유경이 무사히 돌아오라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에게는 그 말이 중요한게 아
니었다. 심유경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지금 선우영의 몸을 휘돌아 가는 바람처럼 의미없이
지나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 어떤 것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남로정벌군으로 처음 편입되어 월국 국경을 넘게 되었을 때. 한 때는 자신이 화
류계에 몸을 담았었다고 스스로 자랑을 하던 이들의 자랑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자네 그것 아는가? 내가 세상의 별별 여인들을 다 품어보았지만, 내가 살다, 살다가 그
유명한 음교의 여인과 한번 정을 나눈 적이 있다네. 허허"
"음교의 여인이 그렇게 유명한가?"
"아니, 자네는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허허 세상을 헛살았구만. 자네. 쯧쯧."
"놀리는 것은 그만하고..그래 뭐가 그리 유명하다는 말인가? 말이나 해주게."
"자네만 알게. 음교의 여인과 한번 정을 나누면, 그 후에 다른 여인을 절대 품을 수 없다네."
"아니..! 왜 그런가? 물건이 안 서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훗훗 순진하기는.. 그만큼 음교의 여인들이 익히고 있는 방중술이 뛰어나서, 서툰 일반
계집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말이지. 그것도 모르다니 자네도 참 딱하이. "
반시진 가량을 달리고 있는 그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목소리는 단 하나. 음교의 여인
들이 익히고 있는 방중술.
"내 그것만 익히면, 산고양이 같은 부인도 얌전해질테고..아니지, 아니야. 중원 모든 여인
들이 내 품에 안기게 하리다. 하하하하하. 음교 교주. 내게 방중술 좀 가르쳐 주셔야겠소
이다. 그대의 가르침을 받고 내 삼처사첩의 꿈을 반드시 이루리다. 아하하하하"
열심히 뛰어가고 있는 선우영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7편은 다음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부탁드립니다. 제 글에 리플을 안 다셔도 좋습니다. 등수놀이 리플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제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 올리는 것이지 등수놀이를 하는 출석부가 아닙니다.
등수놀이 리플은 모두 지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감기는 현재 에피소드 하나가 막혀서 연재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항상 감기 조심하세요.
무공이 가장 쉬웠어요. -06 : 길에서 만난 그들
산적들이 사라지자 다시 마차를 몰고가기 시작했다. 숲속에 들어와서 길을 따라가고 있
으니 어느세 어슴푸레하게 숲길을 비추던 노을도 사라지고, 칠흑같은 어둠이 짙은 장막처
럼 마차 주위를 감싸기 시작한다. 야심한 시각임을 알리는 듯 규칙적으로 울리는 풀벌레
소리와 약한 바람에 부딪히는지 속삭이는 듯한 나뭇잎 소리가 고요한 숲속길의 분위기를
더 해주고 있다. 고즈넉한 숲길을 달리다 만난 길가 한 곳의 작은 공터에 마차를 세우고
저녁 준비를 하는 선우영.
"부인. 오늘은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쉬어야 할 것 같구려."
"이 양반이 정말.. 내 몇 번이나 말했어요. 오늘만은 꼭 객잔에 가야겠다고 말을 했어요?
안 했어요? 아니 생각을 해보세요. 가가. 그래도 우리가 결혼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혼
인데, 허구한날 길가에서 쪼그리고 먹고 자고.. 우리가 거지예요? 응? 아버지한테 나 고생
안 시켜준다고 철떡같이 말했으면서, 어떻게 집 나오자 마자 이런 거지꼴이란 말이예요!
가가. 입이 달려있으면 말을 해보세요. 말을요! 그 능구렁이 같은 검둥이나 세우지 말구요."
저녁을 준비하느라 웅크리고 있던 선우영이 몸을 돌려 심유경에게 다가오자, 오붓한 숲
속의 분위기 탓인지 하의 한 켠이 부풀어 있는 것이 어둡지만 눈에 보이는 그녀였다. 잠시
자신의 하체를 바라보던 선우영은 그녀에게 밥그릇을 건네주며 말을 했다. 잘 말린 육포
와 향긋한 소채가 잘 어울려 끓여진 고깃국물이 그릇에 찰랑거리며 담겨있었다.
"미안하구려. 부인. 허기지셨을 건데 일단 이거라도 좀 드시구려. 분명 길따라 잘 왔다가
생각했는데 왜 마을이 안나타나는지.. 허허 거 참. 귀식이 곡 할 노릇이오."
"귀신이 곡을 하던, 지나가던 개가 곡을 하던, 가가! 월국에서 눈을 감고도 길을 찾아 다
녔다는 우리 똑똑한 가가. 제발 잘 좀 해보세요. 처음에는 안 그러시더니 왜 갑자기 바보
가 되셨어요? 오늘은 정말 객잔에서 몸도 씻고 편안히 자고 싶다구요. 우리가 길을 떠난
지 벌써 며칠째인가요?"
"당신도 처음에는 그러지 않았던 것 같소"라고 말을 해주고 싶었지만, 선우영은 가슴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그 말을 애써 속으로 삼켜야만 했다. 길지 않은 결혼 생활이지만 조
금씩 여자에게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분할 수 있게 된 선우영이었다. 볼장
다 보고 나면 사람이 변한다더니, 지금 그의 눈앞에 있는 여인은 마치 함께 수 십년을 살
아온 것 처럼머리 꼭지위에 앉아 있었다. 이런 결혼 생활을 꿈꾸었던 것이 아닌데 하는 때
늦은 후회를 하며 선우영은 그녀의 손을 지그시 잡고 바라보았다.
"허허, 정말 미안하오. 오늘은 정말 안 되겠구려. 이렇게 어두워서야 아무리 월국에서 날
려다녔던 나라고 해도 길을 찾기는 힘드오. 오늘만 참아주시구려. 내일은 반드시 객잔에
서 부인을 재워 드리리다. 덤으로 부인 등도 내가 밀어주겠소. 후후."
"닥치세요! 등 밀어 준다는 가가의 그 뻔한 속셈 모를 줄 아세요? 한번만 더 대낮에 검둥
이를 세워서 다가오면, 그 놈을 지근 지근 밟아서 못 쓰게 만들어 버리겠어요. 알겠어요?
가가."
"하아.. "
"또 한숨!"
입으로는 연신 재잘거리면서도 손으로 놀리는 숟가락은 쉼없이 뜨끈한 국물을 떠서 먹는
심유경을 보며, 다시 한번 한숨이 입밖으로 나오는 선우영이었다. 어찌 여인이 이리도 달
라질 수 있는 것인지. 귀를 열어 공터 주위에 사람이 있는지 잠시 살펴 본 선우영은, 나뭇
가지를 모아 마차 옆에 작은 모닥불을 피우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자신은 아닐지라도 여인의 몸인 심유경은 혹시라도 고뿔이 걸리지 않을가 걱정되는 선우
영이었다. 비록 잔소리가 심하더라도, 미우나 고우나 자신의 하나 뿐인 부인이 아닌가. 언
젠가 영웅이 되어 삼처사첩의 꿈을 이루게 되겠지만 지금은 그의 소중한 조강지처였다.
그녀를 만나기 전까지 자신의 소유라는 것을 단 한 가지라도 가져 본 적이 없는 선우영에
게는, 비록 산고양이 같은 부인이지만 너무나 소중하기만 했다.
잠을 자기 위한 준비를 마치고 마차 한 켠에 홑이불을 깐 선우영은, 마차 밖에서 달그락
거리며 무언가 그릇 부딪히는 소리를 만들고 있는 심유경을 불렀다.
"부인. 아직도 밤이 되면 꽤 춥구려. 감기라도 걸릴까 걱정되니 어서 들어오시구려. 나머
지는 내가 내일 정리하리다. 오늘은 이불을 넉넉하게 깔았다오."
"어이구! 눈치가 쥐똥 만큼도 없는 가가야! 여인네는 그저 남편이 잡시다 하면, 네! 하고
대답하는 존재인줄 아시나요? 어떻게 그렇게 시간이 가도 가가의 눈치는 늘어날 줄을 모
를까요? 똥개도 삼년을 키우면 밥주는 사람의 눈치를 알아 볼 줄 안다는데.."
"후우.. 부인. 부인이 하고자 하는 말 뜻을 내 알겠지만, 그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 것 아니
오? 내 비록 부인께 그리 좋은 지아비가 되진 못 하지만, 그래도 그대의 하나 뿐인 남편인
데.. 사실 부인께서 말을 할 때 마다 내 마음이 그리 편치 않소. 후우.."
"어머? 가가. 설마 제 말에 상처라도 받았다는 말씀이세요? 능구렁이 같은 검둥이를 가지
고 있는 짐승같은 가가께서요? 농담도 지나치시군요. "
자신이 생각해도 방금 말한 똥개 운운은 조금 지나쳤다고 생각하는지, 마차안에 들어와
한쪽 구석에 다소곳이 앉아 선우영의 눈치를 보는 그녀의 얼굴은 조금전과 사뭇 달랐다.
과연 그녀는 해가 떨어지고 난 후의 밤에만 달라지는 성격일까. 고즈넉한 분위기를 만들
어 내는 고요한 숲속의 분위기 탓인지 심유경의 목소리에는 조금씩 간드러지는 애정이 베
어들기 시작했다.
"부인, 난 모르겠소. 솔직히 지금 내 심정으로는.. 후우.. "
"가가.. 요즘 자꾸만 한숨을 쉬시온데 제가 그리 못마땅하신 건가요? 네? 그런 건가요?"
잠시 마차 밖을 바라보며 힘없이 말을 하는 선우영이 가엽게 느껴진 탓일까. 그에게 다가
와서 손을 잡아주며 다정하게 말을 하는 심유경이었다. 상대가 개평을 바라며 눈물로 호
소를 할 수록 함께 눈물로 호소해야 한다고 배운 선우영은, 검게 물들어가는 숲끝자락에
걸린 달그림자를 바라보며 우수에 젖은 눈빛을 짓기 시작했다. 그의 표정은 보는 이로 하
여금 심금을 울리게 하고 무언가 주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가슴 아픈 그 어떤 호소가 담
겨있었다.
"아니오. 그저.. 그때 독초를 먹는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가끔 하게 되오. 괜히 부인을 밤
마다 이리 힘들게 하는 것도 그렇고.. 사실 부인께는 미안하지만, 가끔은 꿈을 꾼다오. 온
산이 불타고 모두가 타죽어 가던 그 때.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
이 들 때가 있소. 황상의 명을 받아 떠났던 그곳에서 이 모진 목숨이 뭐가 그리 소중하다
고 그리 도망쳐서 이렇게 홀로 살아 남았는지.. 그들이 지르는 고통스러운 절규, 돌아오라
는 그들의 외침이 밤마다, 그리고 꿈마다 내게 찾아와 날 힘들게 만드는구려. "
"가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셔서 소녀를 이리 슬프게 만드시는 것이옵니까. 제가 비록 가
가께 말을 함부로 해서 마음을 아프게 만들지 몰라도, 가가를 생각하는 마음 하나 만은 언
제나 처음과 같사온데.. 가가. 소녀는 언제나 가가밖에 없사온데 어찌.."
마차 밖을 바라보며 침울해 하는 그의 가슴에 살포시 안기는 심유경. 그녀의 등을 부드럽
게 쓸어가며 그는 말을 이었다. 그런 선우영의 눈빛에는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별
빛 보다더 밝은 빛줄기가 초롱거리고 있었다. 한동안 아른거렸던 별 빛이 눈에서 사라지
고, 애써 침통한 표정을 지은 선우영은 목소리를 가다듬고 울분에 찬 목소리로 달을 보며
뇌까리기 시작했다. 그 표정은 밤하늘의 달을 그리워 하는 은빛 늑대의 모습이었으며, 오
래전에 떠난 연인을 그리워하는 남정네의 슬픈 얼굴이었으며, 도박판에서 판돈을 다 잃고
새벽 밤길을 홀로 걸어가는 개털 난 도박사의 모습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저 달을 안주삼아 한 잔의 술에 함께 웃고, 상처받은 동료를 보며 함께 화를 내고, 한 솥
밥을 함께 나누어 먹던 사람들과 3년을 넘게 동거동락을 했소. 그런 그들을 단 하룻밤 사
이에 모두 잃고 혼자 살아 남았을 때의 기분이란.. 내 어찌 말로 형용할 수가 있겠소? 살아
있으면서도 살아있는게 아니라고 느껴지는 이 기분은.. 두 손을 움켜쥐면 그들의 뜨거운
손이 다시 느껴질 것 같은 기분에, 매일 밤 반복되는 그 어두운 꿈속에서 난 살아 남은게
아니라 또 다시 피를 나눈 가족에게 버림받았다는 기분마저 들게 한다오."
"가가, 소녀는 정녕 몰랐사옵니다. 가가께서 그런 아픔을 속에 간직하고 저에게 그런 웃
음을 보이고 계셨는지, 정녕 몰랐사옵니다. 가가.."
심유경의 고운 뺨에는 새벽 이슬보다 더 맑은 물줄기가 흐르기 시작하고, 그녀의 고운 두
손은 뱀이 나무를 타듯이 선우영의 듬직한 어깨를 타고 목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아니오 부인. 내 그런 것을 말하고자 한 말이 아니오. 이런.. 미안하오."
가슴에 안긴 그녀의 부드러운 등을 만지며, 그녀의 이마에 살짝 입맞춤을 한 선우영은 그
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자신의 얼굴 앞으로 끌어왔다.
"부인. 죽음의 땅이었던 그곳을 탈출해 그대를 처음 만났을 때, 난 솔직히 무척 기뻤소.
은 덩어리 몇 냥을 위해 어머니의 손에 팔려갔던 내가 드디어 평생을 믿고 사랑할 수 있는
여인을 만났다는 기쁨에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르오. 그대와 함께라면 어릴적 그 기억도,
그리고 월국에서의 잊고 싶었던 그 시간들도 다 잊을 수 있을거라 믿었었소. 그랬는데...
후우.. "
"가가.. 소녀는 그것도 모르고.. 흑흑"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조용한 숲속. 마차옆에 마련된 모닥불에서 톡톡 거리며 생나무 가
지가 터지는 소리가 간간히 들리고, 어른거리는 불빛의 유혹에 따라 선우영과 심유경의
입술이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가가 언제나 전 가가만... 하아.. 가가만..."
"부인. 나도 그렇소. 언제나 부인만 생각하고 있소. 난 그대를 만난 것을 매일 천지신명께
감사드리고 있다오. 이토록 소중한 여인을 만나게 해주신 은혜를 내 어찌 갚을 수 있을런
지.."
입으로는 그녀의 심금을 자극하는 말을 내뱉으며, 손으로는 그녀의 옷을 천천히 벗기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선우영. 그의 손에 의해 그녀의 속살이 하나 둘씩 보이기 시
작하자, 서늘한 밤바람이 차가운지 선우영의 입술을 찾으며 무언가를 제촉하는 그녀였다.
오늘까지 계속된 신혼의 나날들에 심유경의 손길도 이제는 자연스럽게 그의 하의안으로
스며들어 간다. 눈물을 흘리며 반갑게 심유경의 고운 손을 맞이하는 선우영의 검둥이. 그
녀가 검둥이의 몸을 쓸어안고 만져주자 검둥이는 기꺼운 듯 몸을 불끈거리며 자신의 감정
을 표현하고 있었다. 검둥이의 머리를 만져주던 손을 꺼내어 그가 보는 앞에서 검둥이의
눈물로 젖은 손가락을 혀로 ?아 간다. 그 모습이 너무나 색정적으로 보며 선우영의 심박
수는 네박자로 콩닥 콩닥 뛰기 시작한다.
"아흥. 가가.. 검둥이가 울고 있어요."
"부인이 좋다고 그러는 구려.."
"하아.. 이 놈이 예쁜 건 알아가지고.. 그렇지요? 가가.. 아흑.."
모닥불의 흔들림에 따라 산등성이의 모습이 달라져 보이는 봉긋한 유방을 입에 물고 있
던 선우영은 그녀의 달콤한 말에 젖꼭지를 살짝 깨물어 대답을 대신한다. 이윽고 그녀의
다리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하는 선우영의 머리. 그녀의 지금 기분이 어떠한지는 조금 쌀쌀
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촉촉히 젖어가기 시작하는 허벅지에 베여있는 진한 짠 맛으로 익
히 알 수 있었다.
"부인.. 부인의 이 맛은 참으로 맛있소. 내 입맛에 딱 맞구려. 흐읍.. 흐읍.."
잠깐식 말을 하며 그녀의 허벅지를 혀로 ?고, 손으로는 열심히 그녀의 심처에 손가락을
넣고 샘물을 퍼나르는 선우영.
"가가.. 전부 가가 것이옵니다. 더... 더 많이 드시옵소서. 하앙.. 전부 ..하악."
배꼽에 혀를 넣고 부드럽게 굴려주는 선우영의 몸짓에 잔뜩 달아오른 심유경은 그의 머
리를 잡고 애닳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하앙.. 가가 목말라요. 저도 목말라요. 가가.. 어서.. 하응"
곱게 열려진 그녀의 허벅지에서 내려와 방초를 입에 머금고, 진한 그녀의 육향을 코로 음
미하선 선우영은 나지막히 속삭이는 그녀의 들뜬 말이 무엇인지 깨달고 자세를 바꾸기 시
작했다.
"부인 목마르시오? 후우.. 어서 검둥이를 입에.. 내 부인을 위해 뜨근한 물을.. 흐읍."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와 동시에 자세를 바꾼 심유경은 한 손으로 검둥이를 잡고 머리부
터 검둥이를 삼키기 시작한다. 지릿하고 끈적이는 냄새가 가득 풍기는 거대한 보라색 뱀
을 입에 머금고 있는 심유경은 마치 달작지근한 당과를 입에 문 어린 계집아이 같은 표정
을 짓고 있다. 그녀의 입가를 흐르는 진한 액체만큼 마차안에는 끈적한 물기 젖은 소성이
자리하기 시작하고, 굳게 닫힌 그녀의 눈꺼풀이 버거운 듯 떨리기 시작한다.
그녀의 한쪽 다리를 어깨에 걸치고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물을 퍼 마시고 있던 선우영이,
그 작은 샘으로 부족한지 그녀의 허벅지에 묻어 있는 땀까지 혀로 ?아가며 불타는 목마
름 해갈해 가고 있었다. 거친 숨소리와 묵직하고 끈적거리는 소리가 가득 울리고 있는 작
은 마차안. 그렇게 찾아온 숲속의 밤은 초여름 새벽 날씨의 쌀쌀함도 이겨내고 땀으로 마
차의 나무 바닥을 적셔가고 있었다. 이윽고 숲속을 가득 울리는 여우 비명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차갑고 어두운 숲속에 산불보다 뜨거운 열기가 솟구쳐 오른다.
다음날 새벽. 하룻밤을 또 다시 숲속에서 지세우게 된 선우영과 심유경. 지난 밤 그들이
나눈 뜨거웠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서로의 땀방울은 어느세 식어 끈적이며 굳어 있
고, 단정했던 심유경의 삼단같은 머리카락은 바람을 따라 날아가는 갈대마냥 어지럽게 흩
어져 있었다. 마차 틈세를 따라 들어온 새벽 바람이 그녀의 고운 방초를 시작으로 배를 타
고 나란히 솟아있는 쌍바위 정상에 이르자, 힘겨웠던 지난 시간이 무겁게 떠지는 눈꺼풀
과 함께 떠오르기 시작하는 심유경이었다. 선우영을 가슴위로 끌어안고, 물결에 떠밀리는
수초마냥 힘없이 늘어져 누워있던 심유경의 흐릿한 눈망울이 완전히 열리자, 그제서야 자
신의 몸 한 곳에 불로 지지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아직도 밤사이의 여운이 남
아 있던 그녀의 몽롱한 표정이 지금 떠오르는 아침 태양처럼 강렬하게 변하기 시작하는
것은 우연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은 해가 뜬 이후에 나타나는 산고양이 특유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그렇게 살살하라고 말했건만 이 인간이.. "
그녀의 한쪽 가슴을 입에 머금고 웃으며 자고 있는 선우영의 머리를 던지듯 치우고 상체
를 일으키는 심유경. 그녀가 갑자기 일어나서인지 미쳐 피하지 못한 그의 머리가 강하게
마차 바닥에 부딪힌다.
"쿵! 크윽.. 아웅 아웅"
잠시 그 충격에 눈을 떳다가 다시 잠을 청하는 선우영은 곧 어제의 열락이 가져다 준 즐
거운 피로속으로 빠져든다. 그런 그를 보며 한동안 째려보던 그녀가 몇 가지 옷을 가지고
마차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들리기 시작하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와 질퍽거리는 물소리.
한동안 마차 밖에서 이어지던 그 소리가 어느세 잦아지고, 깨끗하게 단정된 모습의 그녀
가 마차안으로 다시 들어온다.
그녀의 눈앞에는 쌀쌀한 아침 바람 탓인지 옷을 다 벗고, 몸을 한껏 웅크린 채 겨우날 양
지바른 곳에서 자고 있는 똥개 한 마리가 보였다. 잘 발달된 근육. 그리고 온 몸을 장식하
고 있는 수 없이 이어진 흉터들. 그에게 저 흉터 하나 하나가 생길 때 마다 그의 가슴에 함
께 세겨졌을 수 많은 아픔이 그녀의 가슴에도 아로 세겨지는 듯 하다. 잠시 표독스럽게 그
를 쳐다보던 심유경의 눈이 따스한 느낌으로 변해가다가 갑자기 차가워지기 시작했다.
늦여름 나뭇가지에 늘어진 능구렁이 마냥 마차 바닥을 기어가듯이 늘어져 있는 선우영의
검둥이. 저 녀석이 밤사이 얼마나 그녀를 괴롭히고 아프게 했는지가 떠오르자, 조금전의
그 따스했던 표정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만다. 뜨거운 기운이 남아있는 마차안에 출
처를 알 수 없는 냉기가 휘몰아쳐 들어 온다.
"그토록 살살하라고 말했건만.. 말을 안 듣고 날 아프게 해! 내가 얼마나 아픈지 너도 한
번 느껴봐. 이 말도 못하는 짐승같은 놈아!"
하얗고 고운 그녀의 발이 검둥이 머리를 쓰다듬듯 내려와서 갑자기 짓누르기 시작했다.
"크아악. 헉헉.. 부인 부인..살려주시오. "
"내가...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알기나 해요? "
"크헉..나 죽소. 부인..으악..헉헉.. 으윽...."
"아프죠? 나도 아파요. 내가 얼마나 아픈지 가가도 느껴봐야 해요. 이 놈의 검둥이를 내가
오늘은 반으로 잘라 버리고 말겠어요. 크기만 짐승처럼 크지, 쓸 때도 없는 녀석. 죽어랏!"
"크아악! "
누가 말을 했던가. 최고의 부인감은 낮에는 현모양처이고, 밤에는 요부인 여인이 가장 좋
다고. 밤에는 요부인 것이 맞지만, 해가 뜨기만 하면 산고양이로 변하는 것은 어찌 설명을
해야 좋을지 부어오른 검둥이를 가랑이 사이에 끼우고 힘없이 마차를 몰아 가고 있는 선
우영은 난감하기만 했다. 매일 이런 생활이 반복된다면 자신부터 언제까지 견딜 수 있을
지 걱정되었다. 방중술이라도 어디서 배운다면 그녀가 낮에도 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
고 있는 선우영의 귀에 희미하게 병장기가 부딪히는 금속성이 들리기 시작했다. 월국에서
독초를 먹은 후로는 사람이 내뿜는 기파에 무척이나 민감해진 선우영이었다.
"부인.. 어서 일어나시오."
"아웅. 짐승 같은 가가. 왜요? 아웅 나 잘래요."
"부인. 어디서 싸움이 일어난 것 같소. 피해야 하는데.. 길 한쪽이 이렇게 골짜기이니 피
할 수도 없구려. 일단 준비해야 할 것 같소."
"정말이예요? 제 귀에는 들리지 않는데.. 가가. 설마 여기서 또 쉬어가자는 말은 아니겠
죠? 예? 가가 미쳤어요?"
"부인.. 내 어제는 지나쳤던 것은 미안하오. 그대가 어찌나 아름답던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소. 그저 부인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 뿐이었다오."
"웃기지도 않는 말은 집어치우세요. 흐음.. 내 칼이 어디 있더라?"
산고양이로 변신하는 낮에는 선우영의 작업이 결코 통하지 않는 그녀였다. 마차 뒤에서
자신의 칼을 찾는지 꼼지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선우영과 심유경이 타고 있는 마차는
그렇게 관도를 따라 달그락 거리며 아주 느린 속도로 가고 있었다.
선우영 부부가 관도를 따라가고 있던 그 시각. 관도 한 쪽에서는 무림인으로 보이는 검은
색 도복의 여인 세명과 붉은색 경장 여인 한명, 이렇게 4명이 서로 피를 흘리며 칼부림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보아하니, 그 주안술로 얼마나 많은 음행을 저질렀는지 알 수 있겠구나. 내 이 자
리에서 너를 단죄하고 다시는 중원천지에 너 같은 음적이 돌아다니지 못하게 징치하겠노
라. 네 행적을 스스로 돌아보아 속죄한다면 내 부처님의 은혜를 베풀어 줄 수도 있느니라.
어서 무릎을 꿇고 목을 내밀어라. 단수에 자비를 베풀어주마."
한동안 이어졌던 칼부림이 잠시 소강상태에 빠지자, 무리의 수장인 듯한 중년의 여인이
피를 흘리고 있는 여인에게 칼을 앞으로 세우고 외쳤다. 그러자 홍의경장의 여인이 마치
코웃음을 치는 듯한 표정으로 그 말을 되받아 친다
"이 미친년아. 니 피부가 탱탱한 것은 내공이 고강해서 그런거고, 내 얼굴이 탄력있는 것
은 빌어먹을 주안술을 배워서 그런 것이란 말이냐? 불문에 귀의해서 세속의 욕심이 없다
는 중년들이 내공으로 얼굴이나 가꾸는 것은 정당한 일이고, 내가 체음보양 좀 하고 돌아
다니는 것은 죽어 마땅한 일이라는 것이 대체 누가 정한 법도란 말이냐? 체음보양 때문에
네 년들 기둥서방이 죽기라도 했느냐? 사내놈들이 먼저 흥분해서 좋다고 덤비는데, 내가
무슨 처녀도 아니고 세침하게 거절이나 하라는 말이냐? 서로 좋아서 붙어 먹었으면 그만
이지, 있지도 않은 죄를 지었다고 중년들이 ?아와서 이 지랄을 하는지 도저히 모르겠구
나. 호호호호"
"너희 음교가 중원에 저지른 만행을 모두가 알고 있는데 혼자 모른다는 듯이 말하는구나.
그렇게 간악한 표정으로 무구한 무림인들을 유혹하여 그들의 진신내공을 갈취하였더냐!
내 오늘 여기서 너를 단죄하고, 그 길로 음교를 찾아가 그곳에 불법의 공명함을 일깨워주
겠다."
마치 대죄를 저지른 죄인 앞에서 그의 죄를 읊는 집행인처럼 손에 들고 있는 칼을 하늘로
짓켜세우고 외치는 중년여인.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붉은색 경장을 입은 여인은 표독스러
운 표정으로 땅바닥에 세워놓은 칼을 들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음교! 음교! 도대체 우리 음교가 중원에 무슨 철천지 원수를 지었기에 그렇게 우리를 못
죽여 안달인게냐? 이 중년들아. 우리가 실수로 죽인 사람이 니년들의 손에 죽은 사람보다
많을 것 같으냐? 말로는 공정한 정파 나부랭이라고 잘도 주절거리기나 하지? 그래 한번
제대로 짚어 보자. 니들이 그렇게 공정하다고 이름부터 정파라 달고 다니는데, 니들이 하
는 공정한 짓거리가 과연 무엇이냐? 주루나 기루에서 보호비 받고, 돈 많은 놈들의 애새
끼들을 문하에 들인다고 기부금 뜯어 내고 중소문파 핍박하는게 정파다운 행동이라면, 니
들이 그렇게 죽이고 싶어하는 사파들이 자릿세 뜯어내고, 도둑놈들에게 무공 좀 주고 푼
돈 몇 푼 뜯는 거랑 뭐가 틀리단 말이냐? 말을 해보거라."
"금품을 모으는 것에 상도가 있고, 무공을 전수하는 것에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어찌 정
파와 사파의 그것이 서로 같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사람이 아니면 상대를 하지 말아야 하
고, 그의 됨됨이가 아니면 무공을 전수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처음 칼을 손에 쥐는 아이들
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겨우 그것을 가지고 정파와 사파가 똑같다고 말을 한다
면, 너야 말로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라고 할 수 밖에.."
힘겹게 서서 숨을 고르고 있던 붉은 경장을 입은 여인은, 흑색 도복을 입은 중년 여인의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니들이 하면 정당한 계략이고, 우리가 하면 치졸한 음모라는 식으로 보는 건, 그건 니들
이 만들고, 니들만 그렇게 보는 세상의 잣대가 아니였느냐? 그래도 난 너희 아미파는 다
를 줄 알았다. 같은 불도를 걷고 있지만 아집과 독선으로 뭉쳐진 소림의 개새끼들과는 정
말 다를 줄 알았단 말이다! 그런데 이제보니 정파라 이름 붙은 것들은, 놈들이나 년들이나
모두 똑같이 속이 시커먼 개새끼들이구나. 겉으로는 흰 척하면서 뒷구멍으로 구린내나 풍
기는 개새끼들! "
"어찌 무림의 태산같은 소림을 그리 모함할 수 있느냐. 소림이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기에
무림이 이렇게 평온할 수 있었고, 우리 같은 정파가 지금가지 명맥을 이어왔기에 중원인
들이 평안히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매일 피를 바라는 혈귀마냥 죽음을 ?아 다
니는 너희들만 사라지면 속세에 더이상 근심이란 단어가 왜 필요하단 말이냐."
이때 중년인과 붉은옷을 입은 여인의 말싸움을 지켜보던 흑색도복의 여인 중 한명이 둘
사이의 말에 끼어들었다.
"장문인. 더이상 말을 들을 필요도 없습니다. 공력을 회복하기 전에 마지막 공격을 하시
지요. 어차피 음교와 우리는 한 하늘 아래 함께 살아갈 수 없지 않습니까? 참회시킬 수 없
는 존재라면 부처님의 뜻에 따라 불법을 몸으로 느끼게 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다소 어려보이는 그녀의 말에, 붉은색 경장을 입은 여인은 노한 표정으로 말을 했다.
"네 이년. 세상을 그렇게 보지 마라. 삼라만상을 돌아보기 위해 불법을 배운다는 너희 중
년들이 어찌 생각이 나보다 짧고, 멀리 있는 것을 마음으로 보지 못한단 말이냐. 부처가
네들에게 그렇게 가르치더냐? 나와 다르면 모두 적이라고 말이다! "
"장문인. 누군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집니다. 어서 저년에게 불가의 가르침을 일깨워
주고 자리를 뜨는 것이 좋겠습니다."
칼을 고쳐잡고 공격할 준비를 하는 다른 여인의 말에, 한 순간 치민 노기가 몸에 돌아 혈
도를 자극하였는지 입가에 가르다란 혈흔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잠시 입가에 세어 나온
피를 소매로 닦은 붉은색 경장의 여인은 숨을 고른 후 다시 말을 잇기 시작했다.
"살생을 하지 말고 자비를 베풀라는 부처의 가르침은 어디 구멍에 쑤셔넣고, 언제부터 불
자들이 칼을 들고 다녔느냐? 그게 과연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니들의 똥구
멍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너희들의 납작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보거라. 이 중년들
아."
그녀의 눈동자가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하고, 몸에 입은 경장이 바람이 들어 찬 듯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몸을 지탱하느라 바닥에 꽂아 놓은 칼을 가슴에 끌어안고 그녀는 마치
하늘에 대고 외치는 듯이 큰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단지 우리가 음행을 일삼는 것이 중원의 법도에 어긋난다고 한다면! 그래서 너희들의 손
에 이렇게 핍박당하고 죽는 것이 마땅하다면, 먼저 니들이 보호하고 있는 주루와 기루를
모두 불태우고 그곳에 있는 기녀들을 모두 니들의 손으로 베어 버리거라. 그리고 그곳에
들락거리는 남정네의 양물을 모두 찢어버리고 그 후에 나를 찾아오거라. 그러면 그때! 내
너희들에게 웃으며 내 무릎을 꿇고 내 목을 내어주겠다. 그것이 아니라면, 내 이 자리에서
너희들이 그리 핍박하는 음교의 힘이 어떠한지 보여주겠다. 크으으으흑"
입가에 세어나오기 시작하는 피가 점점 많아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코에서도 피가 쏟아
져 나오기 시작했다. 핏빛의 붉은 눈동자, 그리고 붉은 경장. 얼굴을 온통 피칠을 한 그녀
의 고통스러운 외침은 그녀의 지금 심정이 어떠한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녀의 주
위에 흐르는 공기가 갑자기 멈춘 듯 일시에 조용해졌지만, 흑색도복을 입은 여인들은 몸
으로 전해져오는 기파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검을 거두고 소청면장으로 대응하거라."
"예 장문인. "
장문인을 필두로 두명이 품자형태를 취한 그녀들은 칼을 검집에 넣고 두 손을 가지런히
앞으로 세우며 팔을 둥글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뒤에 서있는 두명의 여인들과 장문인 사
이로 부드러운 공기가 스쳐 지나간다고 느낄 찰라. 붉은색 경장을 입은 여인의 공격이 시
작되었다. 입가에 흐르는 피가 목을 타고 흘러 가슴을 적시고 있는 섬뜻한 광경.
그녀가 들고 있는 칼에도 피처럼 붉은 기운이 스며들어 세명의 여인들을 향해 짓쳐들어
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칼이 들어오고 있는 방향은 장문인쪽이 아닌, 다소 나이가 어려보
이는 그녀의 왼쪽 뒤. 불안함을 느낀 장문인은 방어를 도외시하고 왼쪽 뒷편을 향해 손을
내지르며 몸을 던졌다.
"옥화야! "
몸을 던지는 장문인의 외진 한마디가 그녀의 마음이 얼마나 다급한지 알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강한 파공성이 들리고 장문인의 몸을 뚫고 칼이 재빠르게 훑었다가 빠져나왔다.
뒤에서 방어를 하던 여인들에게도 충격이 컸던 탓인지 입가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장문인
을 향해 뛰어가는 그녀들.
"이럴수가.. 크흑.. 내 오늘 기필코 살계를 열고 말리다."
"채엥~ "
검집에서 청명한 검이 뽑혀나오는 맑은 금속성이 울려 펴졌다. 장문인의 입에서 연신 세
어나오는 피를 본 옥화가 심화를 이기지 못하고 급하게 공력을 모으는지 주위에는 세찬
바람이 일었다가 사라지고, 그녀의 고운 손아귀에 쥐어진 검끝이 파르르 떨리기 시작한
다. 그것을 본 장문인은 자신의 상처를 생각치 않고 놀란 눈으로 일갈을 지른다.
"옥화야. 안된다!.. 크흑"
"상세가 위독합니다. 말을 하시면 안됩니다. "
피를 흘리고 있는 장문인을 끌어안고 상세를 보느라 정신이 없는 한 여인과 결전을 각오
한 채 검끝을 겨누고 있는 한 여인. 그런 여인들을 바라보던 붉은색 경장의 여인은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꺼냈다.
"내 오늘 여기서 너희들이 그토록 무시하는 사파의 진정한 힘을 일깨워주고 싶었으나, 손
님이 찾아온 듯 하니 이쯤에서 내 너희들에게 자비를 베풀까 하느니라. 너희들이 더럽다
여기는 음교의 힘이 어땠는지는 아미산으로 돌아가서 절실히 느껴보아라. 오호호호호 "
그 말을 끝으로 공중으로 몸을 띄운 붉은색 경장의 여인은 빠른 속력으로 골짜기 밑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못 가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장문인의 상처를 돌보느라 정신없던 옥화의 귀에 덜그럭 거리는 소리와 함께 작은 마차
한 대가 다가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가지고 있는 금창약을 장문인의 몸에 발라주었지
만, 지금은 최대한 가까운 세가에 가서 뛰어난 의원에게 몸을 맡겨야만 하는 위급한 상황.
극도의 안정이 필요한 이 때 다가오고 있는 잘 꾸며진 마차는 마치 그들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사저. 저 마차를 빌려야 할 것 같아요. 지금 장문인의 상세를 볼 때 우리가 업고 이동하
기에는 아무래도 위험해요."
"그래 사매. 내가 가서 도움을 청해볼게. 사저는 여기서 장문인을 지키고 있어."
"네 사저."
곱게 머리를 땋고 있는 여인이 다가오고 있는 마차를 향해 뛰어가기 시작했다. 신법을 전
개한 것인지 거리에 비해 순식간에 도착하는 그녀였다.
"소협, 죄송해요. 도움이 필요해요."
"호오, 길가에서 왠 미모의 여인이 도움을.. "이라는 흐믓한 생각을 하던 선우영은 왠지
뒷통수가 뜨겁다고 느껴졌다. 알 수 없는 위험을 감지하고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본 그의
눈에는 한 손에 쥔 검자루를 잡고 빙긋이 웃고 있는 심유경의 얼굴이 눈에 가득 들어온다.
마차를 향해 달려오는 옥운을 보며 지었던 미소가 점차 굳어지기 시작하는 선우영. 다급
하게 흐믓했던 표정을 정리한 후, 벌써 마차앞에 다달아 기다리는 옥운을 향해 무슨 일인
지 물어보았다.
"여인께서 왠 일로 저희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오?"
"일행중에 크게 다치신 분이 있습니다. 세수가 지극하신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을 가까운
의원까지 모시고 가기 위해서는 여러분께서 타고 있는 마차가 필요합니다. 소협께오서도
무림인이신 듯 하온데 괜찮으시다면, 저희쪽 일행 한명을 동석시켜 주실 수 있으신지요?
제발 부탁드리옵니다. 지금 상세가 너무 위중하여 이곳에 있으시면 그 분께서.. 이렇게 거
듭 부탁드리옵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공손히 말을 하며 고개를 숙이는 옥운. 고개를 숙인 그녀의 목
덜미의 가느다란 잔털이 너무나 마음에 드는 선우영이었다. 뒷자리에 타고 있는 심유경의
거친 숨소리가 들리는 듯 하지만, 이런 여인과 인연을 쌓을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치 않
는게 아닌가. 그리고 이 길은 달리 갈 수 없는 외길. 그리고 분위기 좋은 숲속의 작은 길.
이 숲길의 효과는 이미 며칠동안 밤에 확인하지 않았던가. 앞으로 펼쳐질 일을 상상만 해
도 즐거워지는 선우영이었다.
"걱정마시오. 사해가 동도라고 했는데, 곤란에 처한 이를 보고 지나친다면 어찌 그가 중
원인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까. 모두가 황은을 입고 살아가는 똑같은 백성이거늘. 전혀 게
의치 마시고 함께 가십시다. 갈 수 있는데 까지 모셔다 드리겠소."
검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같은 무림인이라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황은 운운하는 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저의가 없는 것 같은 표정에 안심을 하고 깊은 감사를 표했다.
"감사하옵니다. 정말 감사하옵니다. 소녀는 아미파의 일대제자 옥운이라 하옵니다."
"반갑소이다. 옥운소저. 본관은 남로정벌군 남로평정경략안무사 제하 남도위 서운영이라
하외다. 그리고 여기 있는 여인은 용주관문 교위수장의 여식 심유경이라고 하오."
무림인이 아닐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처음으로 만나는 황군이었다. 그리고 선
우영은 그녀가 무림인이라고 밝히자 어차피 자신의 관직에 대해 자세히 모를 것이라 생각
하고 잔뜩 멋을 부려 자신의 직위를 말해주었다. 그러면서 심유경을 처가 아닌 그저 그녀
의 이름으로 소개한 것은 그의 남다른 생각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표독스러운 표정
으로 잠깐 고개를 까딱거려 눈인사를 한 심유경은 선우영의 바로 뒤에 자리잡고, 검집에
서 칼을 살짝 뽑았다가 넣었다가 반복하며 지금 자신의 심기가 어떤지 간접적으로 보여주
었다. 보라색 수실로 장식된 미려한 고검에서 맑은 금속음이 스며 나왔다.
"팅~ 짤깍. 팅~ 짤깍"
칼이 검집에서 뽑혔다가 다시 들어가는 소리가 계속 들리자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하는
선우영이었다. 이 산고양이가 언제 발톱을 세우고 덤빌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에 일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하하하하. 그럼 옥운소저. 본관의 옆에 앉아 안내를 해주시겠소? "
"예 감사드리옵니다."
마차에 오를려고 하자, 갑자기 뒤에서 걸어나온 심유경이 선우영의 옆자리에 철푸덕하고
앉아버렸다. 어떤 뜻인지는 옥운으로서도 눈치챌 수 밖에 없는 상황. 살짝 붉어진 얼굴을
옆으로 몸을 올려 가린 옥운은 선우영을 향해 말을 하며 몸을 돌렸다.
"제가 먼저 앞서가며 안내해 드리겠나이다. 아직은 미력한 신법이지만 제법 쓸만하오니,
저의 뒤를 따라 오소서."
"부탁하오. 옥운소저."
손살같이 달려가는 그녀의 그림자를 ?아 마차를 몰아가는 선우영. 그녀의 옆에 앉은 심
유경은 그런 선우영을 쳐다보며 웃으며 말을 했다.
"부탁하오. 옥운소저."
"크헉.. 부인. 무슨 말씀이시오?"
"하하하하 본관의 옆에 앉아 안내를 해주시겠소? 하하하하"
조금전 자신의 흉내를 내며 무엇이 마음에 안들었는지 넌지시 말을 해주고 있는 심유경.
그런 그녀의 말보다 반쯤 뽑혔다가 다시 들어가고 있는 그녀의 손에 쥔 칼이 더 무서웠다.
왠지 여기서 더 버티다가는 저 칼로 자신의 소중한 검둥이가 일도양단이 날 것 같은 불안
감이 스치고 지나갔다. 도박판을 정리할 때 꾼이라면 누구나 몸에 익히고 있는 기술, 돈을
혼자 다 따고도 다 잃고 가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심유경을 바라 본다.
"부인. 곤경에 처한 황제 폐하의 백성들을 구하는 길이오. 황군에 소속된 몸으로, 내 어찌
사심을 가지고 그들을 대할 수 있겠소? 걱정마시오.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부인밖에 없다
오."
"정녕 사심이 단 한 자락도 없었다고 말씀하실 수 있사옵니까?"
"그렇소. 부인. 왜 믿지 못 하시는 거요? 내가 부인께 거짓을 말할 이유가 무엇이겠소? 허
허허"
"그렇다면 왜 저를 처라고 당당하게 소개하지 않으셨습니까? 가가? "
난데없이 공격당한 곳이 치명적일 때 가끔은 말을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그리고 선우영
의 지금 심정이 바로 그러했다. 청명한 하늘이 이토록 푸르렀던가?하는 쓸데없는 생각들
이 머릿속을 채우기 시작하고, 점심은 무엇을 먹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현실도피를 시
도하는 선우영이었다. 갑자기 멍청해지는 선우영을 보며 칼집으로 마차 바닥을 내려치는
것과, 옥운이 마차에 다가와서 조금 옆에 떨어진 장문인을 안내하는 것은 거의 동시였다.
"쿵~! 가가! "
"소협. 저기 장문인께서... "
"하하하하 인사하시구려. 여기는 본관의 처인 심유경이라 하고, 이쪽은 옥운소저라 하오.
처음이실건데 인사하시구려. 허허허허. 저기 누군가 쓰러져 있구려. 백주 대낮에 이런 안
타까운 일이 일어나다니.."
심유경의 공포스런 분위기에 정신이 잠깐 나간 선우영은 조금전 그들이 서로 눈으로 인
사를 했음을 까먹고 다시 소개하고 있었다. 마차를 세우고 쓰러져 있는 장문인의 곁으로
잽사게 달려가는 선우영이었다.
"으음. 여인이시군요. 남자분이라면 상세를 살펴볼까 하였는데.. 그래, 응급처치는 잘 되
었는지요? "
"네, 마침 가지고 있던 환약과 금창약이 있어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다만 내상이 깊
어 가능한 빨리 가까운 세가의 의원에게 보이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한 터라.."
"걱정마시오. 본관과 처가 마차로 이 분을 모시도록 하겠소. 비록 짐이 많아 불편할 수도
있는데 괜찮으시겠소?"
"네. 그 정도 감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옵니다. 이렇게 도움의 손길을 주신 것만 해도 나
중에 어찌 갚아야 할지 모르겠사옵니다."
"도움이라니 그 무슨 말씀이오. 허허허."
장문인의 상세를 살펴보며 속살을 훔쳐볼까 생각했던 선우영은 이내 그것을 포기하고 마
차로 향했고, 옥화와 옥운이 장문인을 안아 마차로 데리고 왔다. 마차안 한 쪽을 정리하고
장문인이 기거할 자리를 마련한 선우영. 잠시 기절했던 장문인은 옥화와 옥운에게 안겨오
는 동안 정신이 들었는지 마차 이곳 저곳을 돌아보다가, 선우영의 허리에 메달려 있는 검
에 눈이 들어갔다.
"흐음... 군관이시오?"
"어? 정신이 드신거요? 부인, 이 분이 정신이 드셨구려. 물을 좀 가져다 주실 수 있으시오?"
잠깐 선우영을 보고 뭐라 말을 할려던 심유경은, 아직도 피를 흘리고 있는 장문인의 상처
를 본 후에 입이 조박만하게 튀어나온 채 조용히 마차 한쪽에 자리잡은 항아리에서 물을
떠와 술잔 건내듯이 전해주었다. 말없이 한 손으로 내미는 물잔. 그녀가 내민 물잔을 잡아
장문인의 입에 넘겨주는 선우영. 그리고 그런 그를 쳐다보는 심유경의 표정은 복잡하기만
하다. 그런 심유경의 표정은 뭔가 입질은 오는데 이걸 낚아채야 되나 말아야 되나 갈등하
고 있는 강태공의 표정과 사뭇 비슷했다.
"이 검을 알아보신 것 같은데, 본관은 남로평정경략안무사 제하 남도위 선우영이라고 하
오. 그런데 어쩌다가 이런 위중한 상처를 입으신게요?"
"쿨럭.. 쿨럭.."
피를 흘린 후 찾아오는 강한 갈증에 급하게 물을 마실려다가 목에 걸렸는지 기침을 하는
장문인을 대신해서, 옥운이 그의 물음에 대답했다.
"저희는 원래 장문인을 모시고 광주로 향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조금 떨어진 려파에서 음
교 교주를 맞닥뜨렸지요. 그때부터 그녀를 추적하다가 여기까지 ?아와서 잠시 칼을 나누
었는데 그때 장문인께서... "
"아니 잠깐, 조금전 여기서 얼마 안떨어진 려파라고 하셨소? 내가 알고 있는 그 귀주성 려
파 말씀이오?"
"네. 귀주성 려파가 맞사옵니다. 여기서 세시진 정도만 마차로 이동하면 곧 도착할 것입
니다. 왜 그러시온지요?"
그녀의 물음에 대한 대답은 선우영이 아니라, 마차 앞에 서있는 심유경에게서 나왔다.
"가가. 정말 대단하십니다. 바로 옆 마을 전림을 향해 출발하셨던 분이 기주로의 려파에
도착하다니요. 세상 천지에 가가같은 분이 또 있을까 소녀는 정말 궁금하기 그지 없습니
다. 멀쩡한 관도에서 길을 잃는 바보같은 사람은 우리 가가 밖에 없지요. 아마 여기 계신
소저들께서도 가가가 어떤 분인지 알면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오호호호호"
그렇게 선우영의 바보같은 행동을 비웃던 심유경은 그를 고소한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
다. 왠지 이제 어떻게 할거냐라고 묻는 듯한 묘한 그녀의 눈웃음. 수면위로 뻐끔거리는 붕
어들에게 떡밥을 던져주는 강태공의 흐믓한 표정이 저렇지 않을까? 그녀의 그런 모습에
가슴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지는 선우영이었다. 상대의 뻥카를 보고 그냥 넘
긴다면 그 어찌 진정한 꾼이라 할 수 있을까. 선우영의 마음 깊은 곳에선 숨겨진 도박사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음교 교주를 추적중이라고 하셨소?"
"네 그렇사옵니다. 그녀도 상당한 상처를 입고 지금 도주중일 것이옵니다."
"그녀가 도주한 방향이 어느 쪽이오?"
"네? "
"가가! "
뜬금없는 선우영의 말에 불안감을 느끼고 일갈을 가하는 심유경. 그러나 그녀의 반응이
어떻든 아랑곳하지 않고 선우영의 물음은 계속되었다.
"본관은 남로정벌군 남로평정경략안무사 제하 남도위라고 아까 소개를 했소. 지금은 불
의의 사고로 본대를 모두 잃고 운남성 남로정벌군 병참총진지를 향해 홀로 가고 있지만,
사실 본관에게는 옆에 있는 처에게도 말하지 못한 막중한 임무가 하나 있다오."
"그것이 무엇이온지 여쭈어도 되겠사옵니까?"
"가가. 어찌 그런 것이 있다면 소녀에게도 말을 하지 못하셨습니까?"
"중원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우리 남로정벌군에게만 부여된 특수 임무가 하나 있었소. 비
록 지금은 본대가 없어졌다고는 하나, 이렇게 홀로 살아 남은 본관이라도 그 임무를 수행
할 수 있는 기회가 온 지금, 그것을 놓칠 수가 없구려. 부인, 그리고 소저들. 나를 도와주
시오. 이 일은 중원을 위해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요."
심각하게 여인들에게 말을 하는 선우영의 표정에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으로 떠나기 직전
의 무장의 진지한 그 무엇이 떠오르고 있었다. 황실과 중원을 위해 막중한 임무를 부여받
은 자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장엄한 표정이 선우영의 얼굴에 가득 실려있다.
"가가. 그 임무가 무엇이온데.."
"부인, 정말 미안하지만 그것만은 아무리 부인이라도 말을 해 줄 수 없구려. 정말 미안하
오. 아무리 가족이라지만, 기밀을 밝힐 수 없는 것은 군무를 보는 장수들의 멍에라 생각하
고 이해해 주시길 바라오. 나 또한 황상폐하를 위해 검을 든 무장. 어찌 사사로운 정을 이
유로 폐하의 은공을 저버릴 수 있겠소?"
"가가.. "
"소저들. 내 한 가지 부탁을 하겠소. 괜찮겠소?"
"말씀하소서.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그 무엇이라도 손을 빌려 드리겠나이다."
"여기 계신 본관의 부인은, 부친되시는 분께서 광서성 용주관문장이신 심훈 장군의 무남
독녀가 되시오. 내 소저들에게 본관의 부인을 부탁하겠소. 같은 여인들이니 서로 함께 움
직인다면 크게 불편한 일은 없을 거요. 필요한 물품은 여기 마차안에 있으니 목적지에 도
착하고 본관이 무사히 임무를 마치고 올 때까지 부인의 안전을 부탁드리겠소. 가능하겠
소?"
"저희를 믿고 대협의 부인을 의탁하시는 것이온데 어찌 저희가 목숨을 아낄 수 있겠나이
까. 무사히 임무를 마치시면 사천 아미산, 아미파로 오시옵소서. 본파에서 부인을 안전히
모시고 있겠사옵니다. 저희 아마파는 여인들만 이루어진 곳인 만큼 중원 그 어느 곳보다
안전하다고 감히 대협께 말씀드릴 수 있사옵니다."
그러면서 옥운은 그녀의 팔목에서 가느다란 옥환을 하나 빼어내 그의 손에 건내주었다.
"이 옥환을 가지고 가소서. 추후 임무를 마치시고 본파를 내방하셨을 때 이 신물을 보이
신다면, 대인을 귀인으로 맞이할 것이옵니다. 장문인을 위기에서 구해주신 분이온데 이렇
게 밖에 하지 못하는 저희를 꾸짖어 주시기를..."
"아니오. 갑자기 맞이하게 된 본관의 개인적인 부탁을 쾌히 들어주시는 두 소저께 진심으
로 감사드릴 뿐이오."
옥운과 짧은 눈인사를 마친 선우영은 몸을 일으켜 마차 밖에서 입술이 튀어 나온 상태로
안절부절 못하는 심유경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어깨를 포근하게 끌어안고 그녀에
게 말을 했다.
"부인. 내가 이렇게 떠날 수 밖에 없음을 부인께서 이해해 주시길 바라오. 군문에 몸을 담
은 자로서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어찌 주어진 명을 완수하지 못한단 말이오. 내 비록 지금은
부인과 잠시간의 짧은 이별을 고하고 있지만, 최대한 빨리 임무를 수행하고 부인의 곁에
돌아오도록 하겠소. 그때까지 강녕하시구려. 부인. 내 어디에 있더라도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함께 있다는것을 부인께서 잊지 않으셨으면 하오."
"가가. 저분들이 다친 것을 보니 위험한 일 같사온데.. 정녕 이렇게 가셔야만 하옵니까?
나중에 병졸들을 모아 그녀를 추적해도 늦지 않지 않사옵니까? 아니, 다시 이 길을 돌아
가 아버지께 도움을 청해도 되옵니다. 가가. 왜 이리 급하게 서두시옵니까?"
"부인. 시간이 늦어지면 그녀는 어디에 숨어버릴지 모르오. 아직 혈흔이 땅에 남아 있을
때 어서 추적을 해서 그녀의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오. 다녀오리다. 사랑하오"
그녀를 끌어안고 잠시간의 짧은 입맞춤을 한 선우영은, 마차안에서 그를 바라보며 얼굴
을 붉히고 있는 옥운에게 다시 눈인사를 하며 재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빠르게 달려가는
그의 뒤로 심유경이 무사히 돌아오라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에게는 그 말이 중요한게 아
니었다. 심유경의 날카로운 목소리는 지금 선우영의 몸을 휘돌아 가는 바람처럼 의미없이
지나치고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 어떤 것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오래전, 남로정벌군으로 처음 편입되어 월국 국경을 넘게 되었을 때. 한 때는 자신이 화
류계에 몸을 담았었다고 스스로 자랑을 하던 이들의 자랑이 그의 머릿속에 가득차 있었기
때문이다.
"자네 그것 아는가? 내가 세상의 별별 여인들을 다 품어보았지만, 내가 살다, 살다가 그
유명한 음교의 여인과 한번 정을 나눈 적이 있다네. 허허"
"음교의 여인이 그렇게 유명한가?"
"아니, 자네는 그것도 모른단 말인가? 허허 세상을 헛살았구만. 자네. 쯧쯧."
"놀리는 것은 그만하고..그래 뭐가 그리 유명하다는 말인가? 말이나 해주게."
"자네만 알게. 음교의 여인과 한번 정을 나누면, 그 후에 다른 여인을 절대 품을 수 없다네."
"아니..! 왜 그런가? 물건이 안 서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훗훗 순진하기는.. 그만큼 음교의 여인들이 익히고 있는 방중술이 뛰어나서, 서툰 일반
계집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말이지. 그것도 모르다니 자네도 참 딱하이. "
반시진 가량을 달리고 있는 그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목소리는 단 하나. 음교의 여인
들이 익히고 있는 방중술.
"내 그것만 익히면, 산고양이 같은 부인도 얌전해질테고..아니지, 아니야. 중원 모든 여인
들이 내 품에 안기게 하리다. 하하하하하. 음교 교주. 내게 방중술 좀 가르쳐 주셔야겠소
이다. 그대의 가르침을 받고 내 삼처사첩의 꿈을 반드시 이루리다. 아하하하하"
열심히 뛰어가고 있는 선우영의 입가에는 진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7편은 다음 이 시간에 계속됩니다.]
부탁드립니다. 제 글에 리플을 안 다셔도 좋습니다. 등수놀이 리플만은 정중히 사절합니다.
제 글을 읽으신 여러분들의 피드백을 받기 위해 올리는 것이지 등수놀이를 하는 출석부가 아닙니다.
등수놀이 리플은 모두 지우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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