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무협은 매주 주말에 업데이트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오전부터 월요일까지 제가 출장이네요.
주말에 올릴 분량을 미리 올립니다.
다음 편은 다음주 주말에 준비하겠습니다.
무공이 가장 쉬웠어요. -05 : 드러난 선우영의 무공 실력
이른 아침부터 용주관문안은 소란스럽기만 하다. 갖가지 물품들을 품에 안고 뛰어다니
는 하인들이 보이고, 마차를 물에 씻는 군졸들과, 잘 조련된 군마를 끌고오는 이들로 대낮
을 방불케 하는 분주함을 보이고 있다. 그것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심훈과 그의 옆에
서 있는 선우영.
"장인 어른, 이것이 다 무엇이옵니까?"
"응? 아..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했구만. 다 자네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뭐겠나?"
"아니, 아직 집도 없는 제가 저것들을 어디에 가져다 놓으라고 저렇게 많이 준비하셨는지
요? 그저 지금은 몸만 갔다가 다음에 인사드리러 올 때 더 많이 주십시요. "
"이보게. 그래도 그게 내 맘이 그렇지가 않네. 나도 물론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하나 뿐인 딸래미가 어디 정착할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처음으로 떠나는
데, 어디 뭐가 필요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노파심에 이것도 준비하고, 저것도 준비
하고 하다 보니 마차 하나 채우는건 금방이더구만. 허허 마음 같아서는 마차를 몇 대나 주
고 싶지만.."
그렇게 말은 하지만, 짐이 하나 둘씩 마차를 채울 때 마다 곧 떠나야 할 시간이 다나오는
것이 느껴지는 듯,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을 바라보는 심훈의 눈가는 잔뜩 찌푸려져 있다.
한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던 심훈은 옆에 서 있는 선우영을 바라보며 그의 손을 잡고 말을
했다.
"사위. 내 전에도 말했지만 늙어버린 내가 이제 가진 욕심이라곤 유경이 하나 밖에 없네.
이 나이에 황궁에 들어가 호사를 누린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가겠나. 그저 딸 하나 어디서
든 몸 건강히 살아가는 것 그것 하나 뿐일세. 내 마음, 절대 잊지말게."
"장인 어른. 제가 그때도 말씀드렸듯이 제겐 이미 유경이는 제 목숨보다 소중한 여인입니
다. 그런데 어찌 저를 그리 미덥지 못한 듯이 말씀을 하시는지요. 조금 서운하옵니다."
"아니야. 내가 황궁에서도 있어 보았고, 그리고 지금까지 군문에 있으면서 숱한 무장들을
만나고 또 그들을 지켜보았네. 머릿속으로 과연 셀수나 있을까 할 정도로 많은 이들을 보
며, 나도 모르게 그들을 가늠할 수 있는 연륜이라는 것이 쌓이더구만."
뭔가 힘든 이야기를 꺼낼려는 듯이 잠시 하늘을 쳐다보던 심훈은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들을 보는 내 눈이 정확해진다는 느낌이 강해져. 아무래도 나이를 헛먹
은 것만은 아닐테지. 그리고 내가 자네를 지금껏 지켜본 결과.. 자네는 말일쎄..."
"예, 장인 어른. 어떤 말씀이시던지 하소서. 귀를 열고 경청하겠습니다."
"자네는 영웅이 될 자질이 얼핏 보이는 것 같아. 내가 역경이나 주역을 그리 깊게 배우지
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 살펴볼 줄 안다고 자부하는 편이거든. 자네는 결코 평범한 인생
을 살 인물이 아니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자네가 모든 이들이 우러러 보는 영웅이 되어
삼처사첩을 두게 되더라도, 유경이 만큼은 첫번째 정실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
네. 내 말, 무슨 뜻인지 잘 알겠는가?"
무거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심훈의 말이 선우영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
속에 꽉 차있는 단어는 오직 하나. 삼처사첩.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고 돈 많은 대감들이
나 그런 것을 한다고 생각을 했었던 그 단어가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샘솟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선우영은 뜨거운 눈으로 심훈을 바라보며 그의 두 손을 힘있게 잡
았다.
"장인 어른. 제가 정말 영웅이 될 기질이 보이시는 겁니까? "
"이 사람.. 무슨 생각을 하는겐가? 내 말이 그게 아니지 않는가? 허허.. 이 사람도 참.."
딸을 잘 부탁한다고 어렵게 말을 했더니, 엉뚱한 말에 흥분해서 혼자 만의 생각에 빠진
사위를 보는 심훈의 마음은 찹찹하기만 했다. 그래도 안보이는 곳에서 거짓 행동을 할 정
도로 속이 나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보며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 하나로
만족하기로 했다. 가끔 사위가 바보 같지만, 유경을 생각해주는 그 마음 하나면 더이상 무
엇이 부족하겠는가. 어차피 인륜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일테니.
"그래 자네가 영웅이 되든, 안되든 항상 유경이가 첫번째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되
네. 이곳은 언제 월국병사들이 쳐들어 올지 모르는 변방의 최전선일세. 내 만약 이 관문을
지키다가... 만약 내 말을 잊는다면, 내 죽어서도 자네를 용서치 않겠네."
죽어서도 딸 걱정을 하겠다는 심훈의 아비 된 마음이 고스란히 선우영에게 전해져왔다.
마주 잡고 있는 두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말이 아닌 뜨거운 체온으로 그들의 믿음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말보다 더 진실되게 전해지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곧이어 방에서 무언가를 한참 준비를 하던 심유경이 보따리를 가득 들고 다가왔다. 마차
가 준비되어 떠날 준비가 다 된 선우영과 심유경은 남겨질 심훈을 보며 애써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동안 정이 들었던 용주관문 군관들 몇이 다가와 심훈의 뒤에서 인사를 기다리
고 있었다. 처음 관문위에서 보았을 때의 위풍당당한 무장이 아니라, 어느세 나이 지긋한
부모의 모습으로 서있는 심훈의 모습에,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는 선우영이었다.
심훈이 옆으로 잠시 고개를 돌리자, 그의 표정을 지켜보던 팽위사가 길다란 나무 상자 하
나를 가지고 있다가 심훈에게 건네주었다. 상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선우영에게 건네
는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자네 이것을 가져가게."
"무엇이옵니까? 장인어른"
"일단 열어 보면 알게 아닌가?"
선우영이 나무 상자를 열어보자 푸른 빛이 나는 한 자루의 좋은 검이 상자안에 있다.
"아니 이것은 장수들의 용호검. 장인 어른. 부디 거두어 주십시요."
"아닐세. 내 자네 검을 보니 많이 망가지고 녹이 슬었더구만. 이게 전설에 나오는 보검은
아닐지라도, 딸 아이를 보호하는데 한 몫은 할 걸세. 유경이가 위험할 때 검이 부러져서야
어디 되겠는가? 그러니 어서 받게."
"장인 어른.. 이 못난 놈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시만 하시니..제가 어찌 다 갚을 수 있겠
습니까."
"아닐세. 내 자네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세. 나중에..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내
마음을 이해할 날이 올 걸세. 아마도.. 그 날이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 같구만. 그때가 되
면 부디 날 원망하지 말아주게."
"제가 감히 장인 어른을 어떻게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
선우영의 말을 끊고 다시 한번 다짐을 하는 심훈이었다.
"내 말 명심하게. 그 날이 온다면 꼭 날 이해해주기를 바라네. 그리고 그 검은 원래 유경
이 친부인 내 친우가 쓰던 검이라네. 그러니 자네가 가지고 가는게 맞을 걸세. 그의 유품
으로 유경이를 지켜주게나. 그게 자네가 할 일이야."
검을 들고 감격어린 표정으로 말을 못하고 있는 선우영의 어깨를 그저 두들겨 주고 있는
심훈이었다.
"어서 떠나거라. 더 늦으면 산에서 밤을 지세워야 할지도 모른다.
보따리를 마차에 실은 심유경이 다가오자, 곱게 입은 옷이 흙으로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
곳 하지 않고 그녀와 나란히 서서 심훈에게 대례를 올렸다.
"소인, 삼가 장인 어른께 인사올립니다. 다시 만날 날이 언제가 될른지 모르오나, 그 날이
되었을 때 오늘과 같이 강녕하시기를 빌고 또 빌겠사옵니다."
"아버지, 항상 건강하시고 또 건강하십시요. 부디.. "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심유경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흙바닥에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
다. 이것이 딸을 보는 마지막이라 생각했음인지, 심훈은 전과 같은 자상한 모습이 아니라
부하들을 조련하는 듯한 장수의 표정을 지었다.
"오늘 같은 날, 어찌 눈물을 흘리는게냐. 어서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사위. 자네는 이 아
이를 데리고 어서 떠나게. 나도 할 일이 많은 몸일세. 인사는 늦어질 수록 서로 추해질 뿐
이야. 어서 일어나거라"
"부인. 눈물을 거두시오. 장인 어른의 심정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소."
선우영의 손에 몸을 일으키던 심유경은, 눈물을 삼키다가 심훈의 가슴에 안겨 다시 눈물
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허.. 이 녀석이.. "
"아버지.. 흑흑"
두 부녀가 마지막을 나누는 것을 지켜보던 선우영은 심훈의 뒤에 도열해 있던 군관들에
게 다가가서 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팽위사, 윤위사 그간 정말 고마웠소. 두 분이 계시기 때문에 내 이렇게 마음편히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것 같구려. 너무 큰 짐을 두분께 지우고 가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 이를 때가
없소. 두 분께 고맙고 또 미안하오."
"허허.. 아닙니다. 저희들도 정말 놀랬습니다. 오자 마자 남도위께서 사위가 되시다니. 정
말 그 능력이 부러울 지경입니다. 다음에 만나면 저희들에게 한수 지도 부탁드리옵니다.
하하"
"허허 그게 말이오. 나도 몰랐는데 사실 심소서가 알고 보면 밤에.. 크헉"
틈만 나면 뒤에서 마누라 욕을 하는 선우영이기에 심훈의 품에 안겨 울면서도 긴장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 위사를 앞에 두고 자신 욕을 하는 그가 보였다. 눈물을 닦으면
서 다가와서 선우영의 품에 안겨 지그시 그의 발을 밟아 버리는 심유경.
"하하하.. 해가 벌써 떳구나. 슬슬 가야지. 하하하하."
뜬금없는 소리를 하며 마차쪽으로 도망가는 그를 보며 두 위사는 안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유경의 숨겨진 모습은 아직 반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저러면 어떻게 하나 하
는 걱정을 같은 남자로써의 느낄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이였다.
심유경과 선우영이 마차에 올라타고, 용주관문 군졸들이 모두 선을 흔드는 가운데 그들
은 그렇게 중원을 향해 출발했다.
"사위. 여기서 전림으로 가려면 관도만 따라가면 되네. 갈림길이 나오면 무조건 왼쪽일
세.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길이니까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지만 꼭 왼쪽이라는 것 잊지
말게."
믿음직스럽다가도 가끔 바보같아 지는 사위가 이럴때 원망스럽기만 한 심훈이었다. 마
치 물가에 철없는 애 둘을 내어놓는 기분이라고 할까. 걱정말라며 손흔드는 선우영의 모
습이 오늘따라 유달리 미덥지 못하게 보이는 것은 그의 노파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인 어른. 걱정 붙들어 메십시요. 제가 이래뵈도 월국에서 3년 넘게 살았던 놈입니다.
설마 중원 한복판에서 길이야 잃겠습니까. 하하하하. 그럼 다음에 만나는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이랴~ "
중원을 나서는 심유경과 선우영을 바라보는 용주관문 관병들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
다. 가족처럼, 누이 같기만 했던 심유경이 얼렁뚱땅 결혼을 해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어찌 편하기만 하겠는가.
"남도위가 고생이 크겠어."
"그러게... 에휴. 불쌍하군."
심훈의 뒤에서 속닥거리는 두 위사의 곁에 몇몇 군관들이 다가와서 말을 이었다.
"눈에 콩깍지기 씌이면 보이기나 하겠습니까"
"그래도 같은 남자인데 미안하군. 꼭 시골 촌놈에게 사기 친 기분이야.. 쯧쯧."
"남도위가 저리 어리숙하니 당하지. 자네들도 결혼할 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네."
그때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심훈이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다가왔다. 다가오고 있는 심훈
의 얼굴은 그가 지금 얼마나 심적으로 복잡한지 보여주고 있었다. 팽위사가 그에게 다가
와서 그의 손을 잡아주며 말을 했다.
"장군.. 정말 잘 하셨습니다."
"자네.. "
팽위사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자신을 둘러싼 군관들을 둘러보는 심훈. 그리고 그런
심훈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진한 동료애가 물씬 풍기고 있
었다.
"장군 감축드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장군"
"허허.. 자네들 마음이 내 마음과 같았구만!"
눈물로 젖어있는 심훈의 눈가에 진한 웃음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랜 짐을 겨우
떨쳐버린 자가 가질 수 있는 해방감이었다.
"저희가 장군과 한두해를 함께 했사옵니까? 다시 한번 감축드리옵니다. 장군."
"허허 고맙네. 아무도 안데려가던 산고양이를 그 녀석이 떠안았어. 허허.. 이렇게 기쁠수
가.."
"남도위가 사위로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착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유경이 성격도 잘
맞춰줄테구요. 정말 하늘이 내려 준 베필입니다. 장군."
"그 녀석에게 몇 번 보여주었더니 입질도 안하고 그냥 덥썩 물더라구. 허허. 내 앞에서 딸
을 달라고 맹세할 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자네들은 아마 모를 걸세. 허허.. 그 녀석, 참 순
진하기도 하지..허허"
"충분히 알고도 남습니다. 저희가 유경이를 어디 하루 이틀 보았습니까. 정말 큰 일 하셨
습니다. 이제서야 장군의 큰 짐을 덜은 것 같습니다. 그 분도 기뻐하실테지요."
충심어린 수하의 말에, 오래전에 떠나 간 하나 뿐이었던 친우의 얼굴이 떠오르는 심훈이
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기 직전 딸을 맡겼던 그 친구의 얼굴이 지금 떠오르는 것은,
이제서야 나중에 친구를 보게 되더라도 당당해 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에게 생겼기 때
문인지도 모른다.
"잘 한 거겠지?"
"그럼요. 틀림없이 그 분도 좋은 사위 구해주었다고 기뻐하실 겁니다. 장군."
"사위 녀석이 벌써 날 원망이나 하지 않을련지.. 허허. 부디 잘 살아야 할 터인데.."
그의 기쁨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주는 충복들의 말을 들으며, 몸을 돌려 심유경과 선우
영이 떠난 관도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심훈. 먼 곳을 한동안 바라보며 잠시 눈가를 정
리한 그는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군관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내 마음을 자네들이 들여다 보고 온 것 같아 정말 기쁘이. 오늘은 최소 병력을 제외하고
마음껏 먹고 취하세나. 제장들을 여기로 불러 오게. 허허 정말 기쁜 날이야."
"와아~ !!"
용주 관문의 모든 병졸들이 지르는 함성소리가 하늘에 울려퍼지고 있을 그 시각. 선우영
이 꿈꾸던 달콤한 신혼의 꿈은 관도로 접어들어 용주관문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때 부터
끝이 났다.
"가가. 저 피곤해요. 잠시 마차 뒤에서 눈 좀 붙이고 있을께요."
"부인 그러시구려. 내 마을에 도착하면 부인을 깨워주겠소."
천천히 관도를 가고 있던 마차바퀴에 작은 돌멩이가 부딪혔는지 마차가 살짝 흔들렸다.
"아야. 가가!"
"왜 그러시오? 부인?"
"마차를 제대로 몰지도 못하는 거예요? 도대체 잠을 잘수가 없잖아요. 가가"
"그럼 내 옆에서 이야기나 하시구려. 전림까지 갈려면 길도 먼데 심심하구려."
"피곤하다고 했잖아요."
"뭐 그리 피곤하다고.. 어차피 지금은 할 일도 없지않소?"
"어머 이 사람 좀 봐. 지금 피곤한게 다 누구때문인데요. 잠을 안재운게 누구예요!"
어제 잠을 안재웠다는 심유경의 말에 그의 하물에서 반응이 나타났다. 은근한 미소를 지
으며 마차 뒷칸에 누워 딩굴거리고 있는 심유경을 바라보는 선우영. 마차 바닥에 잘 펼쳐
진 심유경의 치마 사이로 뻗은 하얗고 긴 두 다리를 바라보는 그의 느끼한 눈빛을 발견한
심유경은 앙칼진 목소리로 그를 몰아 세우기 시작했다.
"아니, 이 짐승같은 양반이! 어제 그렇게 했으면 됐지 그 눈빛 뭐에요? 그거 못해서 죽은
귀신이라도 달라 붙었어요? 어서 똑바로 앞을 보지 못해요! 지금 피곤하다고 했지 그런
눈빛으로 돌아보래요? 사람이 왜 말길을 못알아 들어요. 정말? "
"허허.. "
마차를 몰고 있는 선우영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그 누가 말을 했던가. 여자를 이해
한다는 것은 천기를 이해하는 것 보다 어렵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자신을 위해 지어진
말인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제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했을까
애꿎은 자신의 잘못을 곰곰히 돌아보는 선우영이었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원하는 마을은 안나오고 끝없이 이어진 두 갈래의 관도만 눈앞에 펼
쳐져 있다. 해는 벌써 정오를 넘어 한쪽으로 치우치기 시작한 시각. 마차가 흔들린다고 그
렇게 잔소리를 늘어놓던 심유경은 어느세 잠이 들었는지 섹섹 거리는 숨소리만 내며 잘
도 자고 있다. 저렇게 낮잠을 자다가 밤에 잠안오면 내일 또 자신 때문에 잠을 못잤다는
불평을 할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 선우영. 점심이라도 먹이고 재워야겠가는 생각으로 갈
랫길을 지나기 전 마차를 관도 한쪽의 시원하게 보이는 숲속에 세우고 그녀를 깨우기 시
작했다.
"부인.. 부인.."
"으응? 시끄러"
"부인. 밥은 먹고 자야할꺼 아니오?"
"아 몰라.. 나 잔다니까요..아웅 아웅"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는데 일어날 생각을 못하는 심유경을 바라보던 선우영. 그의 눈에
잠을 자느라 살짝 풀어진 옷사이 그녀의 속살이 보이고, 마차를 모느라 잊고 있었던 어젯
밤 그녀의 뜨거운 체온이 다시 전해져 오는 듯 하다. 입으로는 그녀를 깨우며, 손으로는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는 선우영. 붉은 기가 도는 유두와 뽀얀 가슴이 보이기 시작하고,
몇개의 속옷을 벗기자 그녀의 풍성한 검은 방초가 선우영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탐스럽기 그지 없는 그녀의 수풀.
"부인.. 부인 잠이 쏟아지오?"
"아웅..시끄럽다니까요. 가가. 닥치고 마차나 모세요."
"부인..그래도 밥은 먹고 자야할거 아니오?"
"가가도..잠 좀... 어머? 가가!"
잠에 취해있을 때는 몰랐는데, 갑자기 온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바람을 느끼고 정
신을 살짝 차려보니 자신의 옷이 모두 벗겨져 있는게 아닌가.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두 다
리를 살짝 벌리면서 방초를 쳐다보고 있는 선우영. 그리고 그 순간 그녀와 그의 눈이 마주
쳤다. 벌려졌던 다리에 힘을 주고 한쪽 다리를 들어 그의 머리쪽을 힘껏 발로 찼다.
"퍼억~!!"
"어이쿠.. 부인. 이게 무슨 짓이오?"
"이 인간아! 그래, 밤에도 덤비더니 이젠 낮에도 덤벼? 인간아.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 응? 내가 잔다고 했지? 지금 내가 피곤한게 다 누구 때문인데 시도 때도
없이 그거 세우고 덤비는거야 응? 흉측한 검둥이 저리 치우지 못해요? 지금이 밤이야? 밤
이냐구! 이 짐승만도 못한 가가야!!"
잔소리를 하면서 옷을 껴입고 있는 심유경. 낮에 한번 더 할 수 있을려나 하는 기대를 품
었다가 여지없이 무너지자 입맛이 쓰기만 했다. 마차 뒷칸에서 몇가지 짐을 꺼내 물통에
서 물을 받고 점심을 차리기 시작했다. 한참 준비하고 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모
습이 군에서 병졸이었을 때와 달라진게 없는게 아닌가. 며칠 전만 하더라도 상전 모시듯
이 갖은 애교를 늘어 놓던 심유경의 모습은 이젠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밤에만 빼고.
갑자기 입에서 깊은 한숨이 세어 나왔는지는 선우영 자신도 몰랐다.
"후우... "
"아니 이 사람이 밥하다가 한숨은... "
"아.. 아니오 부인. 하아... "
"아니 왠 한숨을 그렇게 쉬는거예요. 혹시 나랑 결혼한 거 후회라도 하는거예요?"
아니, 어떻게 알았소?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입안까지 나왔다가 겨우 속으로 삼켜야만
하는 선우영이었다. 그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만약 그렇다고 했다가는 이 자리에서
사생결단을 내거나, 심훈에게 돌아가서 어떤 말이라도 해야 속시원하다고 할 정도로 차
갑기 그지 없었다.
"아니오. 설마 내가 이렇게 어여쁜 부인을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하겠소. 아니오.."
"그럼 내 뒤에서는 후회한다는 말이네요?"
"아니오. 내 말이 그런 말이 아니오. 부인이 너무 예쁘다 그런 말이오. 후우.."
"이 사람이 또 한숨을.. 뭐예요! 그래 뭐가 그리 속상해요? 응? "
지금 자신의 손에 한 잔의 술잔이 있다면 단숨에 입에 털어 놓고 싶은 선우영이었다. 결
혼전과 결혼 후. 아니 어쩌면 볼장 다 보고 나기 전과 볼장 다 보고 난 후가 어쩌면 이리도
차이가 나는 것인지, 선우영은 자신이 왜 결혼을 하고자 했는지 그 즉흥적인 결정이 잠깐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오늘따라 심훈에게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지..
"부인 점심이 다 된 듯 싶으니 요기라도 하십시다. 먹고 잠을 자는게 좋지 않겠소?"
"가가. 고마워요. 조금전 제가 때린 곳이 아프지 않으셨어요? 호호호"
"아 괜찮소. 부인의 작은 발이 어찌나 귀여운지.. 조금 어지러운 것 빼곤..
"뭐예욧! "
"아니오. 점심이 참 맛나구려. "
밤에는 싫다는 듯이 하면서도 잘 받아주면서, 낮에는 어찌나 앙칼스럽게 구는지 종잡을
수 없는 심우경이었다. 둘이서 투닥 거리는 말싸움을 하며 점심을 먹은지 한 시진 가량 흘
렀을 무렵. 배도 불렀고 슬슬 후군기지 전림을 향해 출발할려는데 뜬금없는 난감이 눈앞
에 펼쳐졌다. 심유경과 흐믓한 분위기를 잡으려 급하게 숲으로 마차를 몰았는데 갈래길
이 오른쪽이나 왼쪽이 다 같은 모양이었다. 어느 쪽이 돌아서 오는 길이었는지 그리고 어
느 쪽이 심훈이 왼쪽으로 꺽어 가라고 한 길이었는지 그 길이 그 길 같고, 저 길이 저 길
같은게 알 수가 없었다. 갈래길 가운데 마차를 세우고 선우영은 또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거 참.."
"또 한숨을 쉬십니다. 가가. 왜 또 그런 바보같은 표정을 지으세요? 혹시 길이라도 잃은
건 아니겠지요? 네? 우리 가가가 아무리 바보라지만, 이런데서 길을 잃을 정도는 아니라
고 가가께서 말하셨잖아요? 안그래요? 우리 가가."
"하하 부인도 참. 내가 설마 이곳에서 길을 잃었겠소? 내가 이래 뵈도 월국에서.."
"네 알아요. 우리 가가께서 월국 그 깊은 오지에서 3년 넘게 있으셨다구요. 네, 알고 말구
요. 그러니 어서 출발하세요. 이러다가 밤이 되어도 마을에 도착하지 못하겠어요. 틈만 나
면 덤비는 누구 때문에 시간이 너무 지났네요. 에휴. 꼭 누구 탓이라고 그런 건 아니예요.
가가."
"하아.. "
"가가!"
조금이라도 한숨을 쉬면 득달같이 자신을 몰아세우는 심유경때문에 급하게 마차를 몰아
가는 선우영이었다.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그 길이 그 길 같으니, 어느 한쪽으로 가다보면
전림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가까운 길로 마차를 몰아가는 선우영이었다. 저녁
이 될 때까지 마을이 나오지 않고 길만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게 땅거미가 지고 있는 숲길
을 가고 있을 무렵. 숲길이 꺽이는 곳에 왠지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
게 들기 시작했다. 언제 부턴가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지 않아도 존재를 느낄 수 있게 된
선우영은 허리춤에 메달린 검을 확인한 후 마차 고삐를 고쳐 잡았다.
"부인.. 저 앞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소."
"뭐가 보인다고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이래뵈도.."
"아 시끄러워요. 혹시나 저 앞에 사람있다고 해 놓고 여기서 쉬고 가자고 하면 가만 안둘
거예요. 짐승같은 인간이 시도 때도 없어요."
"아니 정말 저 앞에 사람이 있다니까 그러오. 5명이 확실하오. 어?"
"왜 그러세요? 가가? "
"두명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 같은데.. 이거 안되겠구려. 이건 분명히 매복이오. 내가 월
국에서 많이 겪었던.."
"가가! 제발 그 월국 이야기는 그만 좀 하면 안되겠어요? 어떻게 뭐 하나만 나오면 그때
이야기가 빠지질 않아요? 그러니까 꼭 월국 촌놈 같잖아요. 가가"
"아니 부인 그게 무슨 말씀이오? 내가 월국 촌놈이라니! 이래 뵈도 내가..."
"가가! 시끄러워요!"
마차를 세우고 매복에 대응해야 한다는 말을 할려는 찰라, 엉뚱한 말싸움이 붙어 버린 선
우영과 심유경이었다. 한참 큰소리를 내며 화를 내는 그녀를 달래느라 전방을 주시하지
못했던 숲길에 사람 그림자 셋이 나타나서 길을 막아왔다.
"흐흐흐 이런 한적한 곳에서 사랑 싸움하는 년놈들이라니.. 후후 "
"돈은 안줘도 되니 그 계집을 놓고 사라지거라"
어차피 미리 알고 있던 터라 놀라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심유경은 선우영을 몰아
세우고 있었다.
"가가! 정말 나타났네요. 굼벵이도 열번 찍으면 한번은 맞춘다더니 가가가 딱 그 짝이네
요. 뭐하세요? 월국에서 그렇게 용맹하게 싸우셨다는 분이 고작 저 산적들을 보고 겁먹은
것은 아니겠지요? 여기에 아버지만 계셨으면 이런 일도 없으셨을 건데요. 가가."
"부인..여기서 월국 이야기가 왜 나오오? 그리고 지아비에게 굼벵이라니 어찌 그런 말씀
을 하시는게요? 내가 이래 뵈도.."
"아, 죄송해요. 가가. 그래도 가가의 검둥이를 봐서라도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건데. 맞
죠?"
"이 년놈들이! 우리 말이 말 같지 않은 것이냐? 가진 것을 내어 놓고, 그 말 많은 계집도
놓고 사라지거라."
"미안하오. 내 지금 부인과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니, 다 끝나고 먹을 걸 좀 주리다. 기다
리시구려"
"이 놈이. 우리가 거지 새낀 줄 아나? 쳐라!"
세명이 동시에 무기를 뽑아들고 마차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둘도 마
차 뒤에서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자기도 못이기는 심유경을 생각하고
앞에 있는 셋만 상대하기로 선우영은 결정했다. 혹시라도 위험하면 그에겐 필살의 죽은
척하기가 있으니 일단은 안심이었다.
"이 놈들이..월국에서 3년을 굴러다닌 날 우숩게 아는구나. 챙~!"
"월국에서 니가 뭘 한지 몰라도 우린 여기서 십년을 살았다 이 새끼야!"
"죽여!"
칼을 뽑고 마차를 뛰쳐나가는 순간, 마차의 뒤에서 심유경의 앙칼진 목소리가 동시에 들
려오기 시작했다
"가가! 뒤에도 왔어요!"
"내가 뒤에도 있다고 하지 않았소. 나한테 하듯이 하면 결코 위험하지 않을거요. 부인!"
"그럼 앞으로 검둥이는 굶을 줄 아세요!"
앞에서 달려오는 세놈의 위험보다 검둥이는 앞으로 밤마다 굶을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말이 더 무섭게 다가오는 선우영이었다. 앞을 먼저 막을 것인가, 뒤로 돌아가 그녀를 먼저
구할 것인지는 당연한 쪽을 먼저 선택했다. 어쨋든 자신은 굶어도 검둥이는 만큼은 굶기
면 안되니까. 그와 동시에 처음 월국에 들어와서 실전검술을 가르쳐 주었던 훈육군관의
말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그
검술.
(앞으로 본관이 너희들에게 가르칠 검술은 비록 세가지 초식밖에 안되지만, 너희들의 목
숨을 구해줄 소중한 검술이다. 한번만 일러 줄 터이니 제대로 듣고 외우기를 바란다. 초식
의 이름들은 일타쌍피, 낙장불입, 면피우선 이라고 한다.)
딱딱한 훈시와 함께 모아 놓은 병졸들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었던 교관.
(전장에서 칼을 뽑게 되면 적의 장수가 나오지 않는 이상, 너희 앞에는 너희와 똑같은 장
졸들이 있을 것이다. 너희가 두려움을 느끼는 만큼 그놈들도 똑같이 두려움을 느낀다. 한
명이 앞에 있든, 여러 명이 앞에 있든 공격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 지금부터 본
관이 가르쳐 주는 초식을 상황에 맞게 응용한다면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훈육교관이 가르쳐 주었던 검술이 몸에 스며들기 시작하고, 동시에 심유경을 향해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런 순간에도 자신을 향해 달려오며 잔소리를 하고 있는 그녀가 어이
없었지만 일단 그녀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칼을 쳐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의 곁에 다
달았을 때 선우영은 그녀의 어깨를 한쪽 손으로 움켜잡고 소리쳤다.
"부인. 고개를 숙이시오. 받아랏~"
(잘 기억해 두거라. 이 초식의 이름은 일타쌍피라고 한다. 한번 내뻗은 검으로 두명의 적
이 내지르는 검을 쳐내고, 다시 공격의 기회를 잡아오는 초식이라 할 수 있다. 일대 이의
공격에서 가장 유효한 실전검법이다. 반드시 몸에 익을 때 까지 연습해야 한다.)
교관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2년 동안 실전으로 몸에 익힌 검술이 자연스럽게 심훈이 선물
한 용호검으로 흘러나왔다.
"채챙, 챙!"
"이 이놈이..."
마차 밑에 바짝 엎드리고 있는 심유경을 확인한 선우영은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애워싼 다섯명과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공격에 튕겨져 나간 두명의 틈을 채우기 위해
투박한 도로 자신을 공격해 오는 산적 세명. 몸을 돌려 공간을 확보한 후 또 다른 초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번 내질렀던 검을 회수하지 않은 채 그대로 몸과 함께 돌리는 선우
영의 공격.
(이것은 한번의 공격 후 새로운 적들이 너희들에게 다가올 때 사용할 수 있는 초식이다.
낙장불입이라고 한다. 한번 내지른 검을 회수하지 않은 채, 공격해오는 적을 맞아 다시 내
치는 초식이라 할 수 있다. 단 공간이 확보되어 있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언제나 적
과의 거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돌아서며 자연스럽게 한 발 물러선 선우영은, 자신을 공격해 오는 산적들과 검을 맞닥뜨
렸다. 강한 검의 기운에 산적 한명이 들고 있는 도가 한쪽으로 치우치고, 그 공격권에서
벗어난 선우영은 재빨리 심유경이 웅크리고 있는 쪽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때 대장
인 듯한 산적 한명의 눈짓으로 두명이 동시에 도를 휘두르며 짓쳐들어 오기 시작했다. 이
도를 피하더라도 두번째 공격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
"쳐라! "
(이 초식은 면피우선이라는 초식이다. 적에게 둘러싸여 포위될 순간. 자신의 위기를 모
면하고 공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구명절초의 초식이라 말할 수 있다. 면피우선 초식을
사용한 후에는 반드시 일타쌍피의 상승초식인 일타오피로 마무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포위된 상황에서 한번의 공격으로 다섯명의 검을 내칠 수 있는 일타오피의 초식이야 말
로, 군문에 몸을 담고 있는 자라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궁극의 실전검술이라 할 수 있다.)
"이야아앗!"
온 몸의 기운을 양발에 몰아가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선우영. 그의 몸을 스쳐지나가는 두
자루의 도를 느낄 새도 없이 다시 눈앞에 세자루의 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쳐갔
던 두 자루의 도도 자신을 향해 다시 돌아오고 있는 포위되어 있는 상황. 용호검을 쥐고
있는 선웅영의 손이 역수로 바뀌더니 몸을 한바퀴 돌리며 날아오는 도를 쳐내기 시작했
다.
"채챙, 챙챙, 챙.."
"크흑, 우욱..."
갑작스러운 공격에 팔과 어깨에 상처를 입고 주춤 뒤로 물러서는 산적 다섯명. 그들을 바
라보는 선우영의 눈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전장의 피냄새에 잠시 흥분
했던 자신을 추스린 선우영은, 손에 든 용호검을 그들의 눈앞에 내지르며 그들을 향해 나
지막히 말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너희들의 눈에는 이 용호검이 보이지도 않는 것이냐? 난 남로평정경
략안무사의 남도위 선우영이다."
어차피 이 놈들에게 황군 장수들의 제식검인 용호검을 들먹이는 것이 그리 필요없을 줄
알지만, 이럴 때 일수록 황군을 들먹이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고 써먹을
수 있는 것은 다 쓰기로 마음먹었다.
"대인. 황군이신 줄 몰라뵈었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요. 대인.."
"대인, 제발 살려주십시요. 대인께서 황군이신 줄 정말 몰라뵈었습니다."
"황군인 줄 몰라서 그랬다면, 일반 백성이라면 괜찮다는 말이냐? 네놈들은 관군을 끌어
모아 이곳을 토벌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순순히 무릎을 꿇어라. 그렇지 않고 도망이라
도 간다면 광서서로사사 무위태군을 모두 이끌고 와서 너희 일가족까지 죽여버리겠다."
"대인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요. 배가 고파서.. 제발 .."
갑작스러운 산적의 공격이었지만, 이렇게 마무리 된 것이 오히려 반가운 선우영이었다.
사실 선우영은 그들 산적을 사로 잡을 생각도, 사로 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몸
에 익히고 있는 최고의 검술, 일타오피의 초식은 살상무공이 아니라 적의 공격을 무위로
돌리고 다음 공격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만드는 초식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정종무공
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자신은 어차피 다시 산적과 붙어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오게 될거
라 생각하고 있는 선우영.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놈들에게나 써먹을 수 있는 초식으
로 위기를 모면한 선우영은 산적들을 대충 어름장을 주고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내 지금 공무가 바빠 너희들에게 교훈을 내려 줄 수 없으나, 다시 이곳에서 산적질을 하
는 놈들이 있다는 말이 내 귀에 들리면, 그때는 광남서로에 있는 모든 관군들이 이곳으로
몰려올 거라 생각하면 된다. 너희들, 너희 가족들, 그리고 너희가 아는 모든 놈들을 싸그
리 목을 베어 기름을 짜버리겠다. 알겠느냐!"
"네 대인.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인"
"대인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
"가거라!"
무릎을 꿇고 울부짓던 산적들은 선우영의 외침에 모두 손살같이 산속으로 사라졌다.
다음주 주말에 계속됩니다...
그러나 오늘 오전부터 월요일까지 제가 출장이네요.
주말에 올릴 분량을 미리 올립니다.
다음 편은 다음주 주말에 준비하겠습니다.
무공이 가장 쉬웠어요. -05 : 드러난 선우영의 무공 실력
이른 아침부터 용주관문안은 소란스럽기만 하다. 갖가지 물품들을 품에 안고 뛰어다니
는 하인들이 보이고, 마차를 물에 씻는 군졸들과, 잘 조련된 군마를 끌고오는 이들로 대낮
을 방불케 하는 분주함을 보이고 있다. 그것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 심훈과 그의 옆에
서 있는 선우영.
"장인 어른, 이것이 다 무엇이옵니까?"
"응? 아.. 내가 잠시 딴 생각을 했구만. 다 자네들을 위한 것이 아니고 뭐겠나?"
"아니, 아직 집도 없는 제가 저것들을 어디에 가져다 놓으라고 저렇게 많이 준비하셨는지
요? 그저 지금은 몸만 갔다가 다음에 인사드리러 올 때 더 많이 주십시요. "
"이보게. 그래도 그게 내 맘이 그렇지가 않네. 나도 물론 조금 과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하나 뿐인 딸래미가 어디 정착할지도 모르는 곳을 향해 처음으로 떠나는
데, 어디 뭐가 필요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그저 노파심에 이것도 준비하고, 저것도 준비
하고 하다 보니 마차 하나 채우는건 금방이더구만. 허허 마음 같아서는 마차를 몇 대나 주
고 싶지만.."
그렇게 말은 하지만, 짐이 하나 둘씩 마차를 채울 때 마다 곧 떠나야 할 시간이 다나오는
것이 느껴지는 듯, 분주히 움직이는 이들을 바라보는 심훈의 눈가는 잔뜩 찌푸려져 있다.
한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던 심훈은 옆에 서 있는 선우영을 바라보며 그의 손을 잡고 말을
했다.
"사위. 내 전에도 말했지만 늙어버린 내가 이제 가진 욕심이라곤 유경이 하나 밖에 없네.
이 나이에 황궁에 들어가 호사를 누린다고 해도 그게 얼마나 가겠나. 그저 딸 하나 어디서
든 몸 건강히 살아가는 것 그것 하나 뿐일세. 내 마음, 절대 잊지말게."
"장인 어른. 제가 그때도 말씀드렸듯이 제겐 이미 유경이는 제 목숨보다 소중한 여인입니
다. 그런데 어찌 저를 그리 미덥지 못한 듯이 말씀을 하시는지요. 조금 서운하옵니다."
"아니야. 내가 황궁에서도 있어 보았고, 그리고 지금까지 군문에 있으면서 숱한 무장들을
만나고 또 그들을 지켜보았네. 머릿속으로 과연 셀수나 있을까 할 정도로 많은 이들을 보
며, 나도 모르게 그들을 가늠할 수 있는 연륜이라는 것이 쌓이더구만."
뭔가 힘든 이야기를 꺼낼려는 듯이 잠시 하늘을 쳐다보던 심훈은 다시 이야기를 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그들을 보는 내 눈이 정확해진다는 느낌이 강해져. 아무래도 나이를 헛먹
은 것만은 아닐테지. 그리고 내가 자네를 지금껏 지켜본 결과.. 자네는 말일쎄..."
"예, 장인 어른. 어떤 말씀이시던지 하소서. 귀를 열고 경청하겠습니다."
"자네는 영웅이 될 자질이 얼핏 보이는 것 같아. 내가 역경이나 주역을 그리 깊게 배우지
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 살펴볼 줄 안다고 자부하는 편이거든. 자네는 결코 평범한 인생
을 살 인물이 아니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자네가 모든 이들이 우러러 보는 영웅이 되어
삼처사첩을 두게 되더라도, 유경이 만큼은 첫번째 정실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
네. 내 말, 무슨 뜻인지 잘 알겠는가?"
무거운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심훈의 말이 선우영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
속에 꽉 차있는 단어는 오직 하나. 삼처사첩.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고 돈 많은 대감들이
나 그런 것을 한다고 생각을 했었던 그 단어가 자신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샘솟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선우영은 뜨거운 눈으로 심훈을 바라보며 그의 두 손을 힘있게 잡
았다.
"장인 어른. 제가 정말 영웅이 될 기질이 보이시는 겁니까? "
"이 사람.. 무슨 생각을 하는겐가? 내 말이 그게 아니지 않는가? 허허.. 이 사람도 참.."
딸을 잘 부탁한다고 어렵게 말을 했더니, 엉뚱한 말에 흥분해서 혼자 만의 생각에 빠진
사위를 보는 심훈의 마음은 찹찹하기만 했다. 그래도 안보이는 곳에서 거짓 행동을 할 정
도로 속이 나쁜 인간은 아니라는 것을 지금까지 보며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 하나로
만족하기로 했다. 가끔 사위가 바보 같지만, 유경을 생각해주는 그 마음 하나면 더이상 무
엇이 부족하겠는가. 어차피 인륜이라는 것은 모든 것을 만족할 수는 없는 일일테니.
"그래 자네가 영웅이 되든, 안되든 항상 유경이가 첫번째라는 것을 절대 잊어서는 안되
네. 이곳은 언제 월국병사들이 쳐들어 올지 모르는 변방의 최전선일세. 내 만약 이 관문을
지키다가... 만약 내 말을 잊는다면, 내 죽어서도 자네를 용서치 않겠네."
죽어서도 딸 걱정을 하겠다는 심훈의 아비 된 마음이 고스란히 선우영에게 전해져왔다.
마주 잡고 있는 두 남자의 손에 힘이 들어가고, 말이 아닌 뜨거운 체온으로 그들의 믿음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가끔은 말보다 더 진실되게 전해지는 것이 있는 법이니까.
곧이어 방에서 무언가를 한참 준비를 하던 심유경이 보따리를 가득 들고 다가왔다. 마차
가 준비되어 떠날 준비가 다 된 선우영과 심유경은 남겨질 심훈을 보며 애써 웃음을 짓고
있었다. 그동안 정이 들었던 용주관문 군관들 몇이 다가와 심훈의 뒤에서 인사를 기다리
고 있었다. 처음 관문위에서 보았을 때의 위풍당당한 무장이 아니라, 어느세 나이 지긋한
부모의 모습으로 서있는 심훈의 모습에, 마음 한 켠이 무거워지는 선우영이었다.
심훈이 옆으로 잠시 고개를 돌리자, 그의 표정을 지켜보던 팽위사가 길다란 나무 상자 하
나를 가지고 있다가 심훈에게 건네주었다. 상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선우영에게 건네
는 그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자네 이것을 가져가게."
"무엇이옵니까? 장인어른"
"일단 열어 보면 알게 아닌가?"
선우영이 나무 상자를 열어보자 푸른 빛이 나는 한 자루의 좋은 검이 상자안에 있다.
"아니 이것은 장수들의 용호검. 장인 어른. 부디 거두어 주십시요."
"아닐세. 내 자네 검을 보니 많이 망가지고 녹이 슬었더구만. 이게 전설에 나오는 보검은
아닐지라도, 딸 아이를 보호하는데 한 몫은 할 걸세. 유경이가 위험할 때 검이 부러져서야
어디 되겠는가? 그러니 어서 받게."
"장인 어른.. 이 못난 놈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주시만 하시니..제가 어찌 다 갚을 수 있겠
습니까."
"아닐세. 내 자네에게 바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닐세. 나중에..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내
마음을 이해할 날이 올 걸세. 아마도.. 그 날이 그리 멀지만은 않을 것 같구만. 그때가 되
면 부디 날 원망하지 말아주게."
"제가 감히 장인 어른을 어떻게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
선우영의 말을 끊고 다시 한번 다짐을 하는 심훈이었다.
"내 말 명심하게. 그 날이 온다면 꼭 날 이해해주기를 바라네. 그리고 그 검은 원래 유경
이 친부인 내 친우가 쓰던 검이라네. 그러니 자네가 가지고 가는게 맞을 걸세. 그의 유품
으로 유경이를 지켜주게나. 그게 자네가 할 일이야."
검을 들고 감격어린 표정으로 말을 못하고 있는 선우영의 어깨를 그저 두들겨 주고 있는
심훈이었다.
"어서 떠나거라. 더 늦으면 산에서 밤을 지세워야 할지도 모른다.
보따리를 마차에 실은 심유경이 다가오자, 곱게 입은 옷이 흙으로 더러워지는 것도 아랑
곳 하지 않고 그녀와 나란히 서서 심훈에게 대례를 올렸다.
"소인, 삼가 장인 어른께 인사올립니다. 다시 만날 날이 언제가 될른지 모르오나, 그 날이
되었을 때 오늘과 같이 강녕하시기를 빌고 또 빌겠사옵니다."
"아버지, 항상 건강하시고 또 건강하십시요. 부디.. "
마지막 인사를 올리는 심유경은 채 말을 잇지 못하고 흙바닥에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
다. 이것이 딸을 보는 마지막이라 생각했음인지, 심훈은 전과 같은 자상한 모습이 아니라
부하들을 조련하는 듯한 장수의 표정을 지었다.
"오늘 같은 날, 어찌 눈물을 흘리는게냐. 어서 일어나지 못하겠느냐. 사위. 자네는 이 아
이를 데리고 어서 떠나게. 나도 할 일이 많은 몸일세. 인사는 늦어질 수록 서로 추해질 뿐
이야. 어서 일어나거라"
"부인. 눈물을 거두시오. 장인 어른의 심정을 모르시는 것도 아니잖소."
선우영의 손에 몸을 일으키던 심유경은, 눈물을 삼키다가 심훈의 가슴에 안겨 다시 눈물
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허.. 이 녀석이.. "
"아버지.. 흑흑"
두 부녀가 마지막을 나누는 것을 지켜보던 선우영은 심훈의 뒤에 도열해 있던 군관들에
게 다가가서 그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팽위사, 윤위사 그간 정말 고마웠소. 두 분이 계시기 때문에 내 이렇게 마음편히 이곳을
떠날 수 있는 것 같구려. 너무 큰 짐을 두분께 지우고 가는 것 같아 죄송한 마음 이를 때가
없소. 두 분께 고맙고 또 미안하오."
"허허.. 아닙니다. 저희들도 정말 놀랬습니다. 오자 마자 남도위께서 사위가 되시다니. 정
말 그 능력이 부러울 지경입니다. 다음에 만나면 저희들에게 한수 지도 부탁드리옵니다.
하하"
"허허 그게 말이오. 나도 몰랐는데 사실 심소서가 알고 보면 밤에.. 크헉"
틈만 나면 뒤에서 마누라 욕을 하는 선우영이기에 심훈의 품에 안겨 울면서도 긴장하고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두 위사를 앞에 두고 자신 욕을 하는 그가 보였다. 눈물을 닦으면
서 다가와서 선우영의 품에 안겨 지그시 그의 발을 밟아 버리는 심유경.
"하하하.. 해가 벌써 떳구나. 슬슬 가야지. 하하하하."
뜬금없는 소리를 하며 마차쪽으로 도망가는 그를 보며 두 위사는 안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심유경의 숨겨진 모습은 아직 반도 나오지 않았는데 벌써 저러면 어떻게 하나 하
는 걱정을 같은 남자로써의 느낄 수 밖에 없는 두 사람이였다.
심유경과 선우영이 마차에 올라타고, 용주관문 군졸들이 모두 선을 흔드는 가운데 그들
은 그렇게 중원을 향해 출발했다.
"사위. 여기서 전림으로 가려면 관도만 따라가면 되네. 갈림길이 나오면 무조건 왼쪽일
세.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길이니까 길을 잃을 염려는 없겠지만 꼭 왼쪽이라는 것 잊지
말게."
믿음직스럽다가도 가끔 바보같아 지는 사위가 이럴때 원망스럽기만 한 심훈이었다. 마
치 물가에 철없는 애 둘을 내어놓는 기분이라고 할까. 걱정말라며 손흔드는 선우영의 모
습이 오늘따라 유달리 미덥지 못하게 보이는 것은 그의 노파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장인 어른. 걱정 붙들어 메십시요. 제가 이래뵈도 월국에서 3년 넘게 살았던 놈입니다.
설마 중원 한복판에서 길이야 잃겠습니까. 하하하하. 그럼 다음에 만나는 날을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이랴~ "
중원을 나서는 심유경과 선우영을 바라보는 용주관문 관병들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
다. 가족처럼, 누이 같기만 했던 심유경이 얼렁뚱땅 결혼을 해서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어찌 편하기만 하겠는가.
"남도위가 고생이 크겠어."
"그러게... 에휴. 불쌍하군."
심훈의 뒤에서 속닥거리는 두 위사의 곁에 몇몇 군관들이 다가와서 말을 이었다.
"눈에 콩깍지기 씌이면 보이기나 하겠습니까"
"그래도 같은 남자인데 미안하군. 꼭 시골 촌놈에게 사기 친 기분이야.. 쯧쯧."
"남도위가 저리 어리숙하니 당하지. 자네들도 결혼할 땐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하네."
그때 그들의 말을 듣고 있던 심훈이 고개를 돌려 그들에게 다가왔다. 다가오고 있는 심훈
의 얼굴은 그가 지금 얼마나 심적으로 복잡한지 보여주고 있었다. 팽위사가 그에게 다가
와서 그의 손을 잡아주며 말을 했다.
"장군.. 정말 잘 하셨습니다."
"자네.. "
팽위사의 말에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자신을 둘러싼 군관들을 둘러보는 심훈. 그리고 그런
심훈을 바라보는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을 다 이해한다는 진한 동료애가 물씬 풍기고 있
었다.
"장군 감축드리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장군"
"허허.. 자네들 마음이 내 마음과 같았구만!"
눈물로 젖어있는 심훈의 눈가에 진한 웃음이 묻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오랜 짐을 겨우
떨쳐버린 자가 가질 수 있는 해방감이었다.
"저희가 장군과 한두해를 함께 했사옵니까? 다시 한번 감축드리옵니다. 장군."
"허허 고맙네. 아무도 안데려가던 산고양이를 그 녀석이 떠안았어. 허허.. 이렇게 기쁠수
가.."
"남도위가 사위로 좀 부족하지만.. 그래도 착하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유경이 성격도 잘
맞춰줄테구요. 정말 하늘이 내려 준 베필입니다. 장군."
"그 녀석에게 몇 번 보여주었더니 입질도 안하고 그냥 덥썩 물더라구. 허허. 내 앞에서 딸
을 달라고 맹세할 때, 내 기분이 어땠는지 자네들은 아마 모를 걸세. 허허.. 그 녀석, 참 순
진하기도 하지..허허"
"충분히 알고도 남습니다. 저희가 유경이를 어디 하루 이틀 보았습니까. 정말 큰 일 하셨
습니다. 이제서야 장군의 큰 짐을 덜은 것 같습니다. 그 분도 기뻐하실테지요."
충심어린 수하의 말에, 오래전에 떠나 간 하나 뿐이었던 친우의 얼굴이 떠오르는 심훈이
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기 직전 딸을 맡겼던 그 친구의 얼굴이 지금 떠오르는 것은,
이제서야 나중에 친구를 보게 되더라도 당당해 질 수 있다는 자신감이 그에게 생겼기 때
문인지도 모른다.
"잘 한 거겠지?"
"그럼요. 틀림없이 그 분도 좋은 사위 구해주었다고 기뻐하실 겁니다. 장군."
"사위 녀석이 벌써 날 원망이나 하지 않을련지.. 허허. 부디 잘 살아야 할 터인데.."
그의 기쁨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주는 충복들의 말을 들으며, 몸을 돌려 심유경과 선우
영이 떠난 관도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심훈. 먼 곳을 한동안 바라보며 잠시 눈가를 정
리한 그는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군관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내 마음을 자네들이 들여다 보고 온 것 같아 정말 기쁘이. 오늘은 최소 병력을 제외하고
마음껏 먹고 취하세나. 제장들을 여기로 불러 오게. 허허 정말 기쁜 날이야."
"와아~ !!"
용주 관문의 모든 병졸들이 지르는 함성소리가 하늘에 울려퍼지고 있을 그 시각. 선우영
이 꿈꾸던 달콤한 신혼의 꿈은 관도로 접어들어 용주관문이 보이지 않게 되자 그때 부터
끝이 났다.
"가가. 저 피곤해요. 잠시 마차 뒤에서 눈 좀 붙이고 있을께요."
"부인 그러시구려. 내 마을에 도착하면 부인을 깨워주겠소."
천천히 관도를 가고 있던 마차바퀴에 작은 돌멩이가 부딪혔는지 마차가 살짝 흔들렸다.
"아야. 가가!"
"왜 그러시오? 부인?"
"마차를 제대로 몰지도 못하는 거예요? 도대체 잠을 잘수가 없잖아요. 가가"
"그럼 내 옆에서 이야기나 하시구려. 전림까지 갈려면 길도 먼데 심심하구려."
"피곤하다고 했잖아요."
"뭐 그리 피곤하다고.. 어차피 지금은 할 일도 없지않소?"
"어머 이 사람 좀 봐. 지금 피곤한게 다 누구때문인데요. 잠을 안재운게 누구예요!"
어제 잠을 안재웠다는 심유경의 말에 그의 하물에서 반응이 나타났다. 은근한 미소를 지
으며 마차 뒷칸에 누워 딩굴거리고 있는 심유경을 바라보는 선우영. 마차 바닥에 잘 펼쳐
진 심유경의 치마 사이로 뻗은 하얗고 긴 두 다리를 바라보는 그의 느끼한 눈빛을 발견한
심유경은 앙칼진 목소리로 그를 몰아 세우기 시작했다.
"아니, 이 짐승같은 양반이! 어제 그렇게 했으면 됐지 그 눈빛 뭐에요? 그거 못해서 죽은
귀신이라도 달라 붙었어요? 어서 똑바로 앞을 보지 못해요! 지금 피곤하다고 했지 그런
눈빛으로 돌아보래요? 사람이 왜 말길을 못알아 들어요. 정말? "
"허허.. "
마차를 몰고 있는 선우영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그 누가 말을 했던가. 여자를 이해
한다는 것은 천기를 이해하는 것 보다 어렵다고 하더니, 그 말이 딱 자신을 위해 지어진
말인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제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무엇이 그녀를 변하게 했을까
애꿎은 자신의 잘못을 곰곰히 돌아보는 선우영이었다.
한참을 가고 있는데 원하는 마을은 안나오고 끝없이 이어진 두 갈래의 관도만 눈앞에 펼
쳐져 있다. 해는 벌써 정오를 넘어 한쪽으로 치우치기 시작한 시각. 마차가 흔들린다고 그
렇게 잔소리를 늘어놓던 심유경은 어느세 잠이 들었는지 섹섹 거리는 숨소리만 내며 잘
도 자고 있다. 저렇게 낮잠을 자다가 밤에 잠안오면 내일 또 자신 때문에 잠을 못잤다는
불평을 할까 걱정이 되기 시작한 선우영. 점심이라도 먹이고 재워야겠가는 생각으로 갈
랫길을 지나기 전 마차를 관도 한쪽의 시원하게 보이는 숲속에 세우고 그녀를 깨우기 시
작했다.
"부인.. 부인.."
"으응? 시끄러"
"부인. 밥은 먹고 자야할꺼 아니오?"
"아 몰라.. 나 잔다니까요..아웅 아웅"
점심을 먹을 때가 되었는데 일어날 생각을 못하는 심유경을 바라보던 선우영. 그의 눈에
잠을 자느라 살짝 풀어진 옷사이 그녀의 속살이 보이고, 마차를 모느라 잊고 있었던 어젯
밤 그녀의 뜨거운 체온이 다시 전해져 오는 듯 하다. 입으로는 그녀를 깨우며, 손으로는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는 선우영. 붉은 기가 도는 유두와 뽀얀 가슴이 보이기 시작하고,
몇개의 속옷을 벗기자 그녀의 풍성한 검은 방초가 선우영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언제
보아도 탐스럽기 그지 없는 그녀의 수풀.
"부인.. 부인 잠이 쏟아지오?"
"아웅..시끄럽다니까요. 가가. 닥치고 마차나 모세요."
"부인..그래도 밥은 먹고 자야할거 아니오?"
"가가도..잠 좀... 어머? 가가!"
잠에 취해있을 때는 몰랐는데, 갑자기 온 몸을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바람을 느끼고 정
신을 살짝 차려보니 자신의 옷이 모두 벗겨져 있는게 아닌가. 능글거리는 표정으로 두 다
리를 살짝 벌리면서 방초를 쳐다보고 있는 선우영. 그리고 그 순간 그녀와 그의 눈이 마주
쳤다. 벌려졌던 다리에 힘을 주고 한쪽 다리를 들어 그의 머리쪽을 힘껏 발로 찼다.
"퍼억~!!"
"어이쿠.. 부인. 이게 무슨 짓이오?"
"이 인간아! 그래, 밤에도 덤비더니 이젠 낮에도 덤벼? 인간아. 머릿속에는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거야? 응? 내가 잔다고 했지? 지금 내가 피곤한게 다 누구 때문인데 시도 때도
없이 그거 세우고 덤비는거야 응? 흉측한 검둥이 저리 치우지 못해요? 지금이 밤이야? 밤
이냐구! 이 짐승만도 못한 가가야!!"
잔소리를 하면서 옷을 껴입고 있는 심유경. 낮에 한번 더 할 수 있을려나 하는 기대를 품
었다가 여지없이 무너지자 입맛이 쓰기만 했다. 마차 뒷칸에서 몇가지 짐을 꺼내 물통에
서 물을 받고 점심을 차리기 시작했다. 한참 준비하고 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런 모
습이 군에서 병졸이었을 때와 달라진게 없는게 아닌가. 며칠 전만 하더라도 상전 모시듯
이 갖은 애교를 늘어 놓던 심유경의 모습은 이젠 도저히 찾을 수가 없었다. 밤에만 빼고.
갑자기 입에서 깊은 한숨이 세어 나왔는지는 선우영 자신도 몰랐다.
"후우... "
"아니 이 사람이 밥하다가 한숨은... "
"아.. 아니오 부인. 하아... "
"아니 왠 한숨을 그렇게 쉬는거예요. 혹시 나랑 결혼한 거 후회라도 하는거예요?"
아니, 어떻게 알았소?라고 말하고 싶은 욕구가 입안까지 나왔다가 겨우 속으로 삼켜야만
하는 선우영이었다. 그를 쳐다보는 그녀의 눈빛은 만약 그렇다고 했다가는 이 자리에서
사생결단을 내거나, 심훈에게 돌아가서 어떤 말이라도 해야 속시원하다고 할 정도로 차
갑기 그지 없었다.
"아니오. 설마 내가 이렇게 어여쁜 부인을 앞에 두고 그런 생각을 하겠소. 아니오.."
"그럼 내 뒤에서는 후회한다는 말이네요?"
"아니오. 내 말이 그런 말이 아니오. 부인이 너무 예쁘다 그런 말이오. 후우.."
"이 사람이 또 한숨을.. 뭐예요! 그래 뭐가 그리 속상해요? 응? "
지금 자신의 손에 한 잔의 술잔이 있다면 단숨에 입에 털어 놓고 싶은 선우영이었다. 결
혼전과 결혼 후. 아니 어쩌면 볼장 다 보고 나기 전과 볼장 다 보고 난 후가 어쩌면 이리도
차이가 나는 것인지, 선우영은 자신이 왜 결혼을 하고자 했는지 그 즉흥적인 결정이 잠깐
후회되는 순간이었다. 오늘따라 심훈에게 속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인지..
"부인 점심이 다 된 듯 싶으니 요기라도 하십시다. 먹고 잠을 자는게 좋지 않겠소?"
"가가. 고마워요. 조금전 제가 때린 곳이 아프지 않으셨어요? 호호호"
"아 괜찮소. 부인의 작은 발이 어찌나 귀여운지.. 조금 어지러운 것 빼곤..
"뭐예욧! "
"아니오. 점심이 참 맛나구려. "
밤에는 싫다는 듯이 하면서도 잘 받아주면서, 낮에는 어찌나 앙칼스럽게 구는지 종잡을
수 없는 심우경이었다. 둘이서 투닥 거리는 말싸움을 하며 점심을 먹은지 한 시진 가량 흘
렀을 무렵. 배도 불렀고 슬슬 후군기지 전림을 향해 출발할려는데 뜬금없는 난감이 눈앞
에 펼쳐졌다. 심유경과 흐믓한 분위기를 잡으려 급하게 숲으로 마차를 몰았는데 갈래길
이 오른쪽이나 왼쪽이 다 같은 모양이었다. 어느 쪽이 돌아서 오는 길이었는지 그리고 어
느 쪽이 심훈이 왼쪽으로 꺽어 가라고 한 길이었는지 그 길이 그 길 같고, 저 길이 저 길
같은게 알 수가 없었다. 갈래길 가운데 마차를 세우고 선우영은 또 다시 한숨을 쉬었다.
"하아.. 이거 참.."
"또 한숨을 쉬십니다. 가가. 왜 또 그런 바보같은 표정을 지으세요? 혹시 길이라도 잃은
건 아니겠지요? 네? 우리 가가가 아무리 바보라지만, 이런데서 길을 잃을 정도는 아니라
고 가가께서 말하셨잖아요? 안그래요? 우리 가가."
"하하 부인도 참. 내가 설마 이곳에서 길을 잃었겠소? 내가 이래 뵈도 월국에서.."
"네 알아요. 우리 가가께서 월국 그 깊은 오지에서 3년 넘게 있으셨다구요. 네, 알고 말구
요. 그러니 어서 출발하세요. 이러다가 밤이 되어도 마을에 도착하지 못하겠어요. 틈만 나
면 덤비는 누구 때문에 시간이 너무 지났네요. 에휴. 꼭 누구 탓이라고 그런 건 아니예요.
가가."
"하아.. "
"가가!"
조금이라도 한숨을 쉬면 득달같이 자신을 몰아세우는 심유경때문에 급하게 마차를 몰아
가는 선우영이었다. 오른쪽이나 왼쪽이나 그 길이 그 길 같으니, 어느 한쪽으로 가다보면
전림이 나오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냥 가까운 길로 마차를 몰아가는 선우영이었다. 저녁
이 될 때까지 마을이 나오지 않고 길만 계속되고 있었다. 그렇게 땅거미가 지고 있는 숲길
을 가고 있을 무렵. 숲길이 꺽이는 곳에 왠지 사람이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강하
게 들기 시작했다. 언제 부턴가 사람의 인기척이 들리지 않아도 존재를 느낄 수 있게 된
선우영은 허리춤에 메달린 검을 확인한 후 마차 고삐를 고쳐 잡았다.
"부인.. 저 앞에 누군가 기다리고 있소."
"뭐가 보인다고 사람이 있다는 거예요?"
"내가 이래뵈도.."
"아 시끄러워요. 혹시나 저 앞에 사람있다고 해 놓고 여기서 쉬고 가자고 하면 가만 안둘
거예요. 짐승같은 인간이 시도 때도 없어요."
"아니 정말 저 앞에 사람이 있다니까 그러오. 5명이 확실하오. 어?"
"왜 그러세요? 가가? "
"두명이 다른 곳으로 가는 것 같은데.. 이거 안되겠구려. 이건 분명히 매복이오. 내가 월
국에서 많이 겪었던.."
"가가! 제발 그 월국 이야기는 그만 좀 하면 안되겠어요? 어떻게 뭐 하나만 나오면 그때
이야기가 빠지질 않아요? 그러니까 꼭 월국 촌놈 같잖아요. 가가"
"아니 부인 그게 무슨 말씀이오? 내가 월국 촌놈이라니! 이래 뵈도 내가..."
"가가! 시끄러워요!"
마차를 세우고 매복에 대응해야 한다는 말을 할려는 찰라, 엉뚱한 말싸움이 붙어 버린 선
우영과 심유경이었다. 한참 큰소리를 내며 화를 내는 그녀를 달래느라 전방을 주시하지
못했던 숲길에 사람 그림자 셋이 나타나서 길을 막아왔다.
"흐흐흐 이런 한적한 곳에서 사랑 싸움하는 년놈들이라니.. 후후 "
"돈은 안줘도 되니 그 계집을 놓고 사라지거라"
어차피 미리 알고 있던 터라 놀라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심유경은 선우영을 몰아
세우고 있었다.
"가가! 정말 나타났네요. 굼벵이도 열번 찍으면 한번은 맞춘다더니 가가가 딱 그 짝이네
요. 뭐하세요? 월국에서 그렇게 용맹하게 싸우셨다는 분이 고작 저 산적들을 보고 겁먹은
것은 아니겠지요? 여기에 아버지만 계셨으면 이런 일도 없으셨을 건데요. 가가."
"부인..여기서 월국 이야기가 왜 나오오? 그리고 지아비에게 굼벵이라니 어찌 그런 말씀
을 하시는게요? 내가 이래 뵈도.."
"아, 죄송해요. 가가. 그래도 가가의 검둥이를 봐서라도 그런 말을 하면 안되는건데. 맞
죠?"
"이 년놈들이! 우리 말이 말 같지 않은 것이냐? 가진 것을 내어 놓고, 그 말 많은 계집도
놓고 사라지거라."
"미안하오. 내 지금 부인과 할 얘기가 있어서 그러니, 다 끝나고 먹을 걸 좀 주리다. 기다
리시구려"
"이 놈이. 우리가 거지 새낀 줄 아나? 쳐라!"
세명이 동시에 무기를 뽑아들고 마차를 향해 뛰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머지 둘도 마
차 뒤에서 조금씩 다가오고 있는 것이 느껴졌지만, 자기도 못이기는 심유경을 생각하고
앞에 있는 셋만 상대하기로 선우영은 결정했다. 혹시라도 위험하면 그에겐 필살의 죽은
척하기가 있으니 일단은 안심이었다.
"이 놈들이..월국에서 3년을 굴러다닌 날 우숩게 아는구나. 챙~!"
"월국에서 니가 뭘 한지 몰라도 우린 여기서 십년을 살았다 이 새끼야!"
"죽여!"
칼을 뽑고 마차를 뛰쳐나가는 순간, 마차의 뒤에서 심유경의 앙칼진 목소리가 동시에 들
려오기 시작했다
"가가! 뒤에도 왔어요!"
"내가 뒤에도 있다고 하지 않았소. 나한테 하듯이 하면 결코 위험하지 않을거요. 부인!"
"그럼 앞으로 검둥이는 굶을 줄 아세요!"
앞에서 달려오는 세놈의 위험보다 검둥이는 앞으로 밤마다 굶을지도 모른다는 그녀의
말이 더 무섭게 다가오는 선우영이었다. 앞을 먼저 막을 것인가, 뒤로 돌아가 그녀를 먼저
구할 것인지는 당연한 쪽을 먼저 선택했다. 어쨋든 자신은 굶어도 검둥이는 만큼은 굶기
면 안되니까. 그와 동시에 처음 월국에 들어와서 실전검술을 가르쳐 주었던 훈육군관의
말이 떠오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었던 그
검술.
(앞으로 본관이 너희들에게 가르칠 검술은 비록 세가지 초식밖에 안되지만, 너희들의 목
숨을 구해줄 소중한 검술이다. 한번만 일러 줄 터이니 제대로 듣고 외우기를 바란다. 초식
의 이름들은 일타쌍피, 낙장불입, 면피우선 이라고 한다.)
딱딱한 훈시와 함께 모아 놓은 병졸들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었던 교관.
(전장에서 칼을 뽑게 되면 적의 장수가 나오지 않는 이상, 너희 앞에는 너희와 똑같은 장
졸들이 있을 것이다. 너희가 두려움을 느끼는 만큼 그놈들도 똑같이 두려움을 느낀다. 한
명이 앞에 있든, 여러 명이 앞에 있든 공격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때 지금부터 본
관이 가르쳐 주는 초식을 상황에 맞게 응용한다면 전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훈육교관이 가르쳐 주었던 검술이 몸에 스며들기 시작하고, 동시에 심유경을 향해 몸을
던지기 시작했다. 이런 순간에도 자신을 향해 달려오며 잔소리를 하고 있는 그녀가 어이
없었지만 일단 그녀의 뒤에 도사리고 있는 칼을 쳐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녀의 곁에 다
달았을 때 선우영은 그녀의 어깨를 한쪽 손으로 움켜잡고 소리쳤다.
"부인. 고개를 숙이시오. 받아랏~"
(잘 기억해 두거라. 이 초식의 이름은 일타쌍피라고 한다. 한번 내뻗은 검으로 두명의 적
이 내지르는 검을 쳐내고, 다시 공격의 기회를 잡아오는 초식이라 할 수 있다. 일대 이의
공격에서 가장 유효한 실전검법이다. 반드시 몸에 익을 때 까지 연습해야 한다.)
교관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2년 동안 실전으로 몸에 익힌 검술이 자연스럽게 심훈이 선물
한 용호검으로 흘러나왔다.
"채챙, 챙!"
"이 이놈이..."
마차 밑에 바짝 엎드리고 있는 심유경을 확인한 선우영은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을
애워싼 다섯명과 싸울 수 있게 되었다. 그의 공격에 튕겨져 나간 두명의 틈을 채우기 위해
투박한 도로 자신을 공격해 오는 산적 세명. 몸을 돌려 공간을 확보한 후 또 다른 초식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한번 내질렀던 검을 회수하지 않은 채 그대로 몸과 함께 돌리는 선우
영의 공격.
(이것은 한번의 공격 후 새로운 적들이 너희들에게 다가올 때 사용할 수 있는 초식이다.
낙장불입이라고 한다. 한번 내지른 검을 회수하지 않은 채, 공격해오는 적을 맞아 다시 내
치는 초식이라 할 수 있다. 단 공간이 확보되어 있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언제나 적
과의 거리에 신경을 써야 한다.)
돌아서며 자연스럽게 한 발 물러선 선우영은, 자신을 공격해 오는 산적들과 검을 맞닥뜨
렸다. 강한 검의 기운에 산적 한명이 들고 있는 도가 한쪽으로 치우치고, 그 공격권에서
벗어난 선우영은 재빨리 심유경이 웅크리고 있는 쪽으로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때 대장
인 듯한 산적 한명의 눈짓으로 두명이 동시에 도를 휘두르며 짓쳐들어 오기 시작했다. 이
도를 피하더라도 두번째 공격이 기다리고 있는 상황.
"쳐라! "
(이 초식은 면피우선이라는 초식이다. 적에게 둘러싸여 포위될 순간. 자신의 위기를 모
면하고 공격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구명절초의 초식이라 말할 수 있다. 면피우선 초식을
사용한 후에는 반드시 일타쌍피의 상승초식인 일타오피로 마무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포위된 상황에서 한번의 공격으로 다섯명의 검을 내칠 수 있는 일타오피의 초식이야 말
로, 군문에 몸을 담고 있는 자라면 반드시 익혀야 하는 궁극의 실전검술이라 할 수 있다.)
"이야아앗!"
온 몸의 기운을 양발에 몰아가며 앞으로 달려나가는 선우영. 그의 몸을 스쳐지나가는 두
자루의 도를 느낄 새도 없이 다시 눈앞에 세자루의 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스쳐갔
던 두 자루의 도도 자신을 향해 다시 돌아오고 있는 포위되어 있는 상황. 용호검을 쥐고
있는 선웅영의 손이 역수로 바뀌더니 몸을 한바퀴 돌리며 날아오는 도를 쳐내기 시작했
다.
"채챙, 챙챙, 챙.."
"크흑, 우욱..."
갑작스러운 공격에 팔과 어깨에 상처를 입고 주춤 뒤로 물러서는 산적 다섯명. 그들을 바
라보는 선우영의 눈은 차갑기 그지 없었다. 오랜만에 느끼는 전장의 피냄새에 잠시 흥분
했던 자신을 추스린 선우영은, 손에 든 용호검을 그들의 눈앞에 내지르며 그들을 향해 나
지막히 말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너희들의 눈에는 이 용호검이 보이지도 않는 것이냐? 난 남로평정경
략안무사의 남도위 선우영이다."
어차피 이 놈들에게 황군 장수들의 제식검인 용호검을 들먹이는 것이 그리 필요없을 줄
알지만, 이럴 때 일수록 황군을 들먹이는 것이 자신에게 유리할 것이라 생각하고 써먹을
수 있는 것은 다 쓰기로 마음먹었다.
"대인. 황군이신 줄 몰라뵈었습니다. 목숨만 살려주십시요. 대인.."
"대인, 제발 살려주십시요. 대인께서 황군이신 줄 정말 몰라뵈었습니다."
"황군인 줄 몰라서 그랬다면, 일반 백성이라면 괜찮다는 말이냐? 네놈들은 관군을 끌어
모아 이곳을 토벌해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순순히 무릎을 꿇어라. 그렇지 않고 도망이라
도 간다면 광서서로사사 무위태군을 모두 이끌고 와서 너희 일가족까지 죽여버리겠다."
"대인 제발 제발 목숨만 살려주십시요. 배가 고파서.. 제발 .."
갑작스러운 산적의 공격이었지만, 이렇게 마무리 된 것이 오히려 반가운 선우영이었다.
사실 선우영은 그들 산적을 사로 잡을 생각도, 사로 잡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몸
에 익히고 있는 최고의 검술, 일타오피의 초식은 살상무공이 아니라 적의 공격을 무위로
돌리고 다음 공격 기회를 잡을 수 있게 만드는 초식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다. 정종무공
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자신은 어차피 다시 산적과 붙어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오게 될거
라 생각하고 있는 선우영. 자신과 비슷한 실력을 가진 놈들에게나 써먹을 수 있는 초식으
로 위기를 모면한 선우영은 산적들을 대충 어름장을 주고 보내주기로 결정했다.
"내 지금 공무가 바빠 너희들에게 교훈을 내려 줄 수 없으나, 다시 이곳에서 산적질을 하
는 놈들이 있다는 말이 내 귀에 들리면, 그때는 광남서로에 있는 모든 관군들이 이곳으로
몰려올 거라 생각하면 된다. 너희들, 너희 가족들, 그리고 너희가 아는 모든 놈들을 싸그
리 목을 베어 기름을 짜버리겠다. 알겠느냐!"
"네 대인.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대인"
"대인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
"가거라!"
무릎을 꿇고 울부짓던 산적들은 선우영의 외침에 모두 손살같이 산속으로 사라졌다.
다음주 주말에 계속됩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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