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이 가장 쉬웠어요. -15
중원 무림 세가라고 부르기에 작은 규모이지만, 단지 아담한 장원이라고 하기에는 집안 곳곳에 베여
있는 날이 선 가풍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요국의 남하로 고향 하북을 떠나 송주에 터를 잡고 있
는 팽가였다. 늦여름이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초가을이 시작되는지 팽가주가 있는 본당의 창밖으로
잠자리 몇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의 머릿속에는 어릴
적 저 잠자리를 잡기 위해 팽가의 이곳 저곳을 제 철 만난 메뚜기처럼 뛰어나니던 때가 떠올랐다.
"숙아. "
"예, 오라버니. "
팽가의 장로이자 팽신후의 여동생인 팽위숙이 그의 비워진 잔에 차를 채워주며 대답한다.
"저걸 보니 옛생각이 나는구나. "
그녀의 오라비가 창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는 팽위숙은 자신의 찻잔에 찻물을 채우
며 눈가에 부드러운 주름을 만들어간다.
"살아보겠다고 태어난 미물인데 그걸 잡아서 어지간히 괴롭히셨지요. "
"그래도 그걸 나중에 발로 밟아 죽인 건 너 아니냐? "
"어차피 오라버니의 손에 망가진 몸으로는 하루 이상 살지 못하는 신세인데.. 일찍 죽는 것이 그나마
고통이 덜할테니까요. 다친 몸으로 놓아준다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옵니다. "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팽가의 장로라는 자신의 역활에만 충실하느
라 아직 혼례를 치루지 않은 팽위숙의 얼굴에는 세파에 묻어난 주름 만큼이나 번접할 수 없는 단호함
또한 함께 물들어 있다.
"난 그런 널 보며 네가 무척 독하고 잔인하다 생각했었다. "
"지금은 아니시구요? "
팽위숙이 채워 준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그가 가벼운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요즘은 괜한 생각이 많아지는구나. 아마도 그간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이 항상 진실만은 아니었
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게 되는 모양이다. 너무 늦게 알았다고 할까. "
"혹여, 연화 언니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
요국의 세력을 피해 함께 남하하여 타지에서 고생중인 황보세가의 여가주 황보연화와 자신의 오라
비의 관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팽위숙이 가문의 장로가 되어 무림의 동향을 파악할 때마다 가장
신경을 쓴 곳이 황보세가였기에 그곳의 가주가 지금 어떤 처지인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팽
신후의 고민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고향을 떠나 쇠락한 가문의 여가주가 가세를 일으키
기 위해 내세울 것은 단 한가지 밖에 없다. 어릴적부터 무공을 연마하여 다듬어진 빼어난 육체를 무
기로 세가연합의 수장 역활을 하는 모용가의 가주 모용철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것은 세가들 사이
에서는 비밀이라 할 것도 없었다.
같은 여인으로, 그리고 같은 몰락한 가문의 일원으로 그런 황보 연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만,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별개였다. 그리고 자신이라면 그런 방법으로 가문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결단코 없었던 터다. 뼈속까지 무인으로 자란 팽위숙에게 뭇 사내들의 노리개
가 되어 가문에 일조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황보연화를 자신의 오빠가 사모하고 있다. 그것이 문제였다. 한번 쉬운 길을 선택한 이
는 다음에 또 비슷한 어려움을 겪게 되면 똑같은 전철을 밟는다. 그것이 인간의 순리이다. 송주에 터
를 마련한 이후 수 년을 하루같이 예전 가세를 회복하기 위해 피를 말리는 고난을 겪었던 팽가에 그
런 여인이 가모로 들어온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한 명의 여인으로 인해 지금까지 쌓아놓은 팽가의 위
세를 단번에 깍아 내릴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주의 방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결정한 일이었다. 어릴적에는 말썽도 많이 일으키고 싸우
기도 많이 했던 오라버니지만, 가주가 된 후 부터 자신의 본분을 결코 잃지 않았던 팽가후였다. 그런
오라비가 지금 누이 앞에서도 말 못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팽위숙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품속에서 봉서 한 장을 꺼내어 그의 앞에 내밀었다.
"오라버니. 어쩌면 이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게 무엇이냐? "
"황금 오백정 교자이옵니다. "
(글쓴이 주, 교자(交子) : 북송 진종때부터 쓰인 약속어음의 일종으로 액면가만큼 화폐처럼 쓰였다.
처음에는 세도가와 거상을 중심으로 민간에서 발행하였으나 북송 중기부터 황실에서 발행한다.)
자신의 누이가 내놓는 교자의 액수에 놀란 팽가후가 선뜻 받지 못하고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
다. 이 정도의 액수를 마련하기 위해 팽가의 가솔들이 상주에서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는 가주인 자신
이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은자 하나도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진정 피같은 돈이었다. 가주인
자신 하나만 바라보는 많은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이 돈은 받아서는 안 되었다. 머릿속에 가득 남아있
던 미련탓에 한참을 망설이던 팽가후가 봉서를 집어 다시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내가 괜한 모습을 네게 보였구나. 이것은 잘 넣어두도록 해라. 곧 큰 전쟁이 날 것 같으니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
"많이 변하셨습니다. 오라버니. "
"후후.. "
나지막한 웃음을 흘린 그가 식어버린 찻잔을 손에 들고 입안으로 흘려 넣는다. 그리고 또 다시 창밖
으로 시선을 돌리며 화단의 중심으로 날아다니고 있는 잠자리떼를 눈으로 ?고 있었다.
"한 가문의 가주가 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더냐.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문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몸에 베인 것 같구나. 이만한 금자를 마련하기 위해 고생한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닐텐데..
내가 쓸 수 없는 돈이다. 넣어두어라. "
팽위숙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고 있는 오라버니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전대 가주였던
큰 오라버니가 일찍 병사하지만 않았어도 그는 이렇게 스스로를 자조하며 웃지 않았을 것이다. 중원
을 자유롭게 종횡하는 것이 꿈이라며 매일 같이 말을 하던 그때의 웃음띈 모습이 오늘따라 그리워지
는 그녀였다.
"어차피 돈이라는 것은 쓰기 위해 마련하는 것. 그리고 손에 쥔 만큼 새어나가는 모래와 같은 것이옵
니다. 이것으로 가주의 오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면 어찌 큰 돈이라 할 수 있겠사옵니까? "
팽신후가 작은 찻잔을 쥐고 있는 그녀의 작고 고운 손을 쓰다듬는다.
"내 너에게 뭐라 할 말이 없구나. 어쩌면 가주의 몫은 나보다 너가 더 어울리는 것을.. "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오라버니께서 태산같이 본가를 지켜주시기에 저 또한 제 몫을 다 할 수 있다
는 것을 벌써 잊으셨는지요? 오라버니는 본가의 모든 것이옵니다. 바람은 결코 한 곳에 머무르지 않
고, 시련은 언젠가 지나간다 했사옵니다. 언젠가 오늘의 일도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힘을 내소서. "
"고맙다. 정녕 고맙다. 못난 오래비가 이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
장부로써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가 눈가에 스며들기 시작한 물기를 보이기 싫어 창문밖 먼 곳으로 황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귓가에 팽위숙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부터 듣기로 신녀문의 문주가 천리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녔다고 하옵니다. 그녀에게 이 교
자를 들고 찾아가 고언을 청해보옵소서. 그녀라면 분명 오라버니의 오랜 고민에 답을 내어줄 것이옵
니다. "
가주의 방을 나선 팽위숙이 조그마하게 꾸며진 화단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크고 작은 바
위 틈세에 붉고 흰 각양 각색의 꽃들이 수줍은 듯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지만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녀였다. 또 한번의 한숨을 내쉰 후 걸음을 옮기려 할 때 자신의 왼 어깨에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있다 놀란 듯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마음껏 날 수 있다는 것이 정녕 부럽구나. "
잠시 후 담장 넘어로 날아가는 잠자리를 하염없이 눈으로 ?아가던 팽위숙이 힘없는 미소를 입에 머
금으며 팽가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지연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 * * *
구절초가 하나 둘씩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작은 화원에 백색 화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옥적
을 연주하고 있다. 그녀의 희고 고운 손가락이 바람에 이끌린 듯 움직일 때 마다 옥적에는 높고 낮은
옥피리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듯 새어나왔다. 그녀의 뒤로 발걸음 소리가 들릴까 조심스러운 걸
음으로 다가온 중년여인이 공손히 시립하며 입을 열었다.
"문주님, 음교교주께서 오셨나이다. "
"어머, 언니가? 어서 뫼시지 않고! "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후원의 작은 문이 열리며 이곳 저곳 찢어지고 헤어진 홍색 무복을 입은 여
인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년아. 나 왔다. "
"언니, 왠일이야? 자넨 어서 가서 다과를 준비해 오너라. "
"예. 문주님. "
조금전까지 중후한 멋을 자아내고 있던 신녀문주 설수련은 서소영이 들어서자 마자 푼수같은 모습
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것은 눈앞의 여인에게 만큼은 애써 긴장할 필요없이 믿고 의지하기 때
문에 가능할 것이다.
"청승맞게 혼자 피리를 불고 그래? 그러다 뱀 나오겠다. "
"언니. 오늘따라 좀 우울하네. "
"이 년아. 여자가 우울할 때는 남자 끼고 술 마시는 게 최고야. 딱 보니 사내가 그리운 거네. "
"참네. 내가 언니야? 눈에 차지 않는 사내들과는 상종하지도 않는다는 거 언니도 알잖아? "
"벗겨보면 별 것도 아닌 년이 눈만 더럽게 높아가지고.. 내가 한 명 소개시켜 줄까? "
맛있는 과자를 숨겨 놓고 줄까 말까 망설이는 꼬마처럼 득이양양한 서소영의 말에 아주 약간 구미가
당긴 설수련이 자세를 고쳐 그녀에게 다가갈 때 총관이 몇 개의 다과와 차담자를 탁자에 내려놓고 소
리없이 물러났다. 서소영의 앞에 놓은 찻잔에 찻물을 부어 주며 은근한 눈길로 바라본다.
"혹시.. 언니가 요새 만나는 사내 말하는 거 아냐? "
"히힛. 맞아. 길가다가 만났어. "
"아니 그럼 언니랑 나랑 샛서방을 사이에 두자는 말이잖아! 생각만 해도 망측하게 그게 무슨.. "
"난 그래도 널 생각해서 챙겨줄려고 한 건데.. 싫으면 말고. 좋은 건 나만 먹어야지. "
계속된 서소영의 말에 조금은 궁금증이 생긴 설수련이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그 사내 잘 생겼어? "
"아니. 빌빌 거리게 생겼어. 옷차림만 잘 꾸미면 문사라고 해도 믿을 걸? "
"그렇다면 뭐 언니가 독차지 하던 말던지.. "
구미가 동했다가 빌빌 거리게 생겼다는 말에 흥미를 잃은 설수련에게 서소영이 말없이 자신의 왼손
목을 내밀었다. 그것은 완맥을 짚어 내공을 알아보라는 뜻이며, 가족과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자가
아니면 함부로 할 수 없는 무림금기 중에 하나였다. 서로를 친자매 이상으로 여기는 서소영이 자신의
완맥을 내어주자 궁금증이 다시 일어 그녀의 손목에 자신의 손가락을 올려 공력을 끌어 올려본다. 잠
시 후 서소영의 내공 수준을 가늠하던 설수련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머, 언니 내공이 엄청 늘었네. "
"이 년아. 부럽지? "
"돈도 없는 언니가 영약을 먹은 건 아닐 거고.. 설마 몇 백명이나 되는 남정네들이랑 교합하고 원정이
라도 흡수한 거야? "
"미쳤어? 내가 무림공적이라도 되고 싶어서 발악하는 줄 알아? 나 그렇게 쉬운 년 아냐. 이거 왜 이래? "
음교교주가 쉬운 여자가 아니라는 헛소리를 한 귀로 흘린 설수련이 그녀의 곁에 조금전 보다 바싹 붙
어 앉았다. 여기까지 와서 자랑할 정도면 보통의 남정네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 다음은 그
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야 할 때였다.
"아이 언니도 참. 하나뿐인 동생이 속 타는 거 볼려고 그래? 어서 말 좀 해줘. 어떤 사내야? 그리고 어
떻게 만난 거야? "
얼굴을 바짝 붙이고 다급하게 묻는 설수련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느긋하게 찻잔을 기울이던 서소
영이 아주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전 려파를 지나다가 아미 땡중년 50명이랑 맞닥뜨렸거든. 난 혼자인데 50명이나 되는 땡
중들이 차륜전으로 공격하니까,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나도 인간인데 지치잖아? "
"응 그렇지. 그래서? "
"그때! "
그렇게 서소영의 말도 안 되는 무용담이 시작되었다. 음교교주의 막강한 내공을 무서워한 아미의 땡
중 50명이 한 명씩 차례로 공격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공격을 하나씩 격파하며 조금씩 지치기 시작
하는 음교교주. 자신이 쓰러진다면 대음교의 위세가 꺽인다는 사명감으로 온 몸으로 피를 흘리며 버
텨냈지만 49명을 쓰러트리고 마지막 50번째 장문인의 공격을 남겨두었을 때 그녀의 몸에는 단 한 톨
의 내공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박진감 넘치는 서소영의 이야기에 손에 땀을 쥐며 듣고 있던 설수련의
기대를 산산히 조각낼려는 듯이 서소영은 가장 중요한 마지막 싸움부분에서 말을 끊어 버렸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
"그때 그 땡중년들을 한 명씩 쓰러트리면서 내 옷이 이렇게 망가진 거야. 교를 나올 땐 제일 예쁜 옷
으로 입고 온 거였는데.. "
"그래, 언니 옷은 그렇게 찢어지고, 그래서 장문인 하나 남겨 놓았다며. 어떻게 됐어? "
"이 언니한테 예쁜 옷 하나 사주라. "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설수련이 이내 포기하고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래. 이야기 다 해주면 예쁜 옷 사줄께. "
"노리개도. "
"언니가 원하는 건 다 사줄께. 그러니까 제발 이야기나 마저 해줘. "
원하는 것을 다 얻은 서소영이 차로 입가를 적신 후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과장이 몇 배나 점철된 무용
담을 다시 털어놓기 시작했다.
"난 내공을 다 쏟아부어 49명이나 되는 땡중년을 쓰러트렸지만, 아미 장문 그 년은 뒤에서 가만히 보
고만 있다가 이제 기어 나오거야. 그러니까 쌩쌩했지. 난 개털났구. "
"응, 그래서? "
"내가 누구야? 나 음교교주 서소영이야. 절대 정파 놈들에게 질 수 없잖아. "
"언니는 자존심 빼면 시체지. "
"그렇지. 그래서 동귀어진을 하더라도 저 중년들을 모조리 쓰러트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음교교주에게
만 전해지는 비기를 써버렸어. "
"어머, 그렇게 힘든 상대였구나. 언니의 본신무공이면 나도 이기기 힘든데.. "
죽음을 각오하고 정파의 장문인과 음교교주가 벌이는 한판 승부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설수련이 바
싹 마른 입가를 붉은 혀로 축이며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아미 장문인이 다쳤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어? "
"너도 그 소문 들었어? "
"내가 하는 일이 뭐 그런 건데.. 그리고 그 일은 어차피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소문만 무성하
지 자세한 내막은 아무도 몰라. 그저 아미 장문인이 산문을 나섰다가 극심한 내상을 입고 실려왔더
라. 이 정도야. 당사자인 아미파는 환향객도 안 받고 함구하고 있으니 누가 알아? 언니가 제일 잘 알
잖아. 그래서 어떻게 됐어? "
"그 년이랑 나랑 동귀어진 한 수에 지독한 내상을 입고 움직이지 못하게 됐는데.. 바로 그때! "
이야기를 끊는 맛에 재미붙인 서소영이 또 말을 끊어 버리자, 화가 난 설수련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
져 나왔다. 그 기세에 찔끔한 서소영이 식은 땀을 흘리며 조금전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디선가 흑색 무복을 번듯하게 차려입은 무인이 하늘에서 날아와서 날 구출해 준 거야. "
"어머 멋있다. 그럼 그 남정네가 조금전에 그 사내야? "
"응. 아미파의 추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날 업고 몇날 며칠을 달려 깊은 산속에 날 숨겨주고 내상을 치
료해주다가 우리 둘은 눈이 맞아 버렸지. "
그때부터 서소영만의 상상속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미모의 여인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출한
남자는 여인의 상처를 치료하다 사랑에 빠지게 되고, 대음교의 교주라는 자신의 특수한 처지를 설명
하며 남정네의 마음을 뿌리칠려 했으나 그의 지고지순한 순정에 감동하여 받아들이게 된다는 이야
기였다.
"후우.. 그 사내가 자신의 몸에 칼을 들이대며, 소저의 마음을 얻지 못할바에는 그대가 있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행복하겠소. 라고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다 나더라구. "
"어머, 그 남자 정말 멋있다. 그 상황이라면 나라도 반할 거 같아. "
"그렇지? 그 사내의 성정도 진국인데, 양물은 더 대단해. 어찌나 양기가 양물에 똘똘 뭉쳐 있는지 한
달 사이에 반 갑자나 되는 내공이 늘어나 버렸잖아. 싫다는 대도 자꾸 달라붙는 통에 참 힘들었어. "
"어머, 그럼 언니가 이렇게 된 게 그 사내 덕분인거야? "
이야기를 하며 어느세 서소영의 시선 저 넘어에는 우영의 느끼한 미소와 함께 가라앉을 줄 모르는 그
의 양물이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우영과 황홀했던 석달간의 시간을 되세김질 하고 있는 서소영
에게 설수련이 부끄러운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그럼 그 남정네 이름이 뭐야? 이름을 가르쳐 줘야지.. "
"싫다며? "
"내가 언제 싫다고 했어. 언니가 워낙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동생된 입장으로 양보한다고 한 말이지.
언니만 괜찮다면 한번 만나는 볼려고.. "
"만나기만 하게? "
"아잉.. 그래도 난 아직 처녀인데, 만나보고 서로 사귀다가 생각해야지. 언니처럼 바로 자리깔고 누울
수 있나. "
"하긴. 이 년아 그래서 내가 소개해줄려고 한 거야. 30년 넘게 고이 간직한 처녀 딱지를 뗄려는데 어
중이 떠중이 같은 놈에게 함부로 줄 수는 없잖아? 적어도 그 놈 정도는 되야지. "
"어머, 그 놈이라니.. "
"애가 하도 착하고, 날 너무 따르기에 기명제자로 받아줬어. 히힛. 나 없으면 못산다는데 교주가 되서
혼인할 수도 없고 그냥 제자로 받아줬지. 부부지연이나 사제지간이나 그게 그거 아냐? "
서소영은 우영과 헤어지기 직전, 혹시나 그와의 연락이 끊어질까 저어되어 자신의 수신호위 중 한 명
을 그의 곁에 몰래 붙여 놓은 상태였다. 당장은 우영의 위치를 알 수 없지만 반나절 정도만 있으면 그
에게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아껴둔 곶감을 빼먹듯 우영과
의 정을 늘려갈 생각이었다. 언제 또 적당히 어둡고 한적한 곳에서 우영을 만나 못다한 운우지정을
나누어 볼까 분홍빛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서소영의 손목을 설수련이 강하게 움켜 잡았다.
"언니. 이상한 상상은 그만하구. 그 남정네 이름이 뭐야? "
"너만 알고 있어야 해! "
"당연하지. 나만 믿고 말해줘. 어서.. "
"이년 이거 몸이 달았네. 킥킥.. 하긴 30년을 수절했으니.. "
"아이 참! 실없는 소리 그만하구. "
"그 멋진 사내의 이름은 우영이라고 해. 성씨는 선가고. "
"뭐! "
서소영의 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놓칠뻔한 설수련이 신색을 애써 회복하며 그녀를 다그쳤다.
"그 남정네 이름이 선우영 맞아? "
"니가 어떻게 알아? "
"혹시 그 남자, 금군 장수 아냐? 용호검도 들고 있고... "
"너.. 걔 만났었어? "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서소영을 무시하고 한동안 머릿속을 정리하던 그녀가 무언가 깨
달은 듯 외마디 말을 내뱉었다.
"맞아! "
"뭐? "
"그 남자 냄새! 혹시.. 언니 향낭 그 남자에게 주지 않았어? "
설수련의 말에 무언가 깨달은 서소영이 자리에 벌떡 일어나 설수련의 어깨를 움켜 잡았다.
"이 년이! 너 걔랑 잤구나! "
"아파. 언니 이거 놔. "
"감히 내 남자에게 꼬리를 쳐! "
"언니가 그 남자 소개시켜 준다며! 그리고 나 안 잤어. 이거 봐! "
억울한 듯 내미는 그녀의 오른손목에는 붉은 빛깔의 수궁사가 선명하게 세겨져 있었다. 자신의 지금
추태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자리에 앉는 서소영이었다.
"크음.. 미안. "
"훗, 나보고 몸이 달았다고 놀리더니, 지금보니 정작 언니가 푹 빠졌네. "
"너도 만나봤으니 알거 아냐? 그런 사내는 흔치 않아. 그런데 향낭을 준 건 어떻게 알았어? "
"여기서 몇 달 자고 갔거든. 아침마다 물 떠다주러 방에 들어가니까 어디서 많이 맡아 본 냄새가 나잖
아. 언니 본 지가 하도 오래되서 그게 음교 향낭인 줄 나도 몰랐지. 진작 알았으면 직접 그 사내에게
물어보는 건데. 아깝네.. "
미안한 줄은 아는지 설수련의 비어진 찻잔에 찻물을 부어주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다음에 걔랑 너랑 잔다고 해도 화 안 낼께. "
"참네. 그런 그렇고, 향낭을 주면 어떻게 되는지 언니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 "
"뭐, 우리 교가 교도들은 여자여야 한다는 교칙이 있긴 한데.. 태상호법에게는 예외거든. 괜찮아. 청
순하고 가련한 교주를 지켜주는 직책이 태상호법이라서 가끔 힘은 쎄고 머리는 나쁜 남자가 맡을 때
도 있으니까 문제없어. 그리고 교주인 내가 된다는데 누가 뭐래? "
"하긴, 그래서 나도 그 남정네한테 흑적을 줬거든. "
자신이 말해놓고도 부끄러운지 옥용을 붉게 물들인 설수련이 고백하듯이 뇌까리자, 그 말을 듣고 놀
란 서소영이 한동안 멍하니 있다 중얼거렸다.
"너.. 용캐도 그 놈이 멋진 놈인 걸 알았구나. "
"왠지 그 남자를 놓치면 아깝겠다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구. 그래서 내가 미리 찜 해놓을려고 흑적
을 준 건데.. 이제보니 언니가 먼저 침뱉었네. "
"그 놈도 대단하다. 우리 교에선 호법이고, 그럼 너네 문에선 장로야? "
"뭐.. 여자가 아니니까 태상장로 정도라고 할까? 이름이야 그렇지만 하는 일은 거의 없어. 언니네처
럼 태상호법이랑 비슷할 거야. "
"근데 그 놈 어디로 간다던? "
"몇 달 머물다가 아미로 간다고 갑자기 떠나더라구. "
"하긴 나한테도 아미파로 간다고 하던데.. 근데 그 놈이 하도 길치라서 제대로 갔나 모르겠네. "
"그래서 내가 지도를 만들어 줬어. 잘 했지? "
설수련이 칭찬받고 싶어하는 아이처럼 말을 하자, 서소영은 그 모습이 귀여운지 그녀의 뺨을 아프지
않게 꼬집은 후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잘 했어. 걘 사천으로 간다고 해놓고 서하로 갈 놈이야. 아미로 간다던 놈이 엉뚱하게 여기로 온 것
만 봐도 그래. "
"킥킥. 여기서도 몇 번이나 길을 잃더라구. 그 남자 볼수록 귀엽더라. "
"미친년. 별게 다 귀여워. 그렇게 귀여우면 진작 잡아 먹지 그랬어? "
비록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설수련이 다음에 우영을 만나면 어떤 행동을 할지는 얼굴만 보
아도 알 수 있었다. 부끄러운 듯 맞잡고 있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그녀의 목덜미와 귓가는 앵속
의 꽃잎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미모의 설수련과 몇 달을 함께 있으면서도 선우영이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은게 너무 기꺼운 서소영은 다음에 그를 만나게 되면 격하게 안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언니, 혹시 그 사내한테 누구 붙여 놓지 않았어? "
"그럼 너도? "
친자매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언니 동생하는 사이로 지내서인지 생각마저 자매처럼 닮은 그들이 서
로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키킥. 역시 언니야. 난 그 사내의 정체도 몰랐으니까 혹시나 하고 그림자를 달아 놓긴 했는데.. 언니
는 대단해. 정을 나눴다면서 감시자를 붙여 놓는 거 보면.. 그렇게 그 사내가 욕심나? "
"이것아. 사내라는 것은 한 눈만 팔면 계집질하게 되어 있어. 두 발 달린 짐승을 붙잡는다고 가만있는
것도 아니라면 적당한 애를 붙여 놓는 게 오히려 더 좋아. "
"와 역시 언니는 노련하네. 그런데 언니 교에서 붙여놓을 만한 애들은 다 여인아냐? 그러다 둘이 눈
맞으면 어쩔려구 그랬어? "
"히힛. 내가 그 정도 생각이 없는 줄 알아? 그래서 설아보고 그 놈을 ?아 다니라고 했어. 가기 싫다
고 엉엉 우는 거 보낸다고 애먹었네. 그러는 넌 누굴 붙인 거야? "
"언니만큼 생각한 건 아니지만.. 내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겠어? 그래서 진아를 보냈지. "
설아를 보내면서도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 걱정을 했던 서소영앞에는 자신보다 더 빈틈이 없는 설수
련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코끝을 찡긋거리고 있었다.
"너 정말 독하다. 진아가 남정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서도 보낸 거야? "
"그러니까 보냈지. 걔라면 어떤 사내에게 보내도 안전하니까. 그러고 보니 진아에게 좀 미안하네. "
* * * * * * *
아미파에서 빠져나온 은위가 마치 은가루같은 눈물을 뿌리며 달려가는 곳에는 수 많은 무인들이 칼
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는 진중안이었다.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 무인들을 무시하듯이 물 스며들
듯 뛰어든 은위가 금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진 가장 큰 막사로 들어간다. 이윽고 탁자에 큰 중원지도
를 펼쳐놓고 깊은 상념에 빠진 청년앞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흐흑. 소궁주. 소녀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
"아니, 아미를 정탐하라고 보냈더니 이 무슨 말이냐? 설마 아미에서 너의 무공으로도 ?겨나온 것은
아니겠지? "
"흐흑.. 그 놈이... 그 나쁜 놈이.. 흐흑흑 "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울고 있는 은위를 한참 바라보던 포달납궁 소궁주 안이현은 호피가 넓게
드리워진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은위를 바라본다. 울고 싶을 때 실컷 울고 나면 속시원히 말할 거라
생각한 그가 조금전 못다한 생각을 마저하고 있을 때 막사밖에서 다급한 목소리와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입자다. !! "
조금전까지 다정한 표정이었던 안이현의 얼굴에 냉막한 기운이 감싸기 시작하고, 몸을 둘러싸고 있
는 푸른색 장포가 바람을 일으킨 듯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싸움이 있기 전 몸보다 본신내공이 먼저
긴장하며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너의 말은 나중에 듣기로 하겠다. 검을 다오. "
그의 말에 뒤에 시립하고 있던 금위가 공손하게 보검 한 자루를 내어준다.
"꼬리를 달고 온 모양이군. 오랜만에 본 궁과 중원의 무공을 겨뤄볼 수 있겠구나. "
* * * * * * *
아미파를 나온 선우영은 흑색 무복과 흑면을 한 이를 ?아가고 있었다. 비록 무복으로 가려져 있었지
만 자신을 향해 소리를 칠 때 유독 두드러져 보이던 봉긋한 가슴선과 갸날펴 보이는 허리선은 옷속에
숨겨져 있는 그녀의 몸매가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여인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그리고 그녀
의 울음소리는 또 얼마나 맑고 청아했던가. 듣는 이로 하여금 애간장을 녹이게 만들던 그 목소리를
자신의 검둥이로 또 다른 울음소리로 만들어 준다면 그것이 바로 사내가 여인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며 달려가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자 온 몸에 힘이 솟구치는 기
분이었다.
반 시진 정도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달려갔을 무렵, 산등선이 넘어로 여러 개의 막사가 보이고 한
떼의 무인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침입자다. !! "
울면서 뛰어간 여인을 ?아 살포시 품에 안아 다독거려 줄 목적으로 달려왔건만, 어떤 오해인지 모르
지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말려들고 만 것 같았다. 무공이 변변찮은 선우영이 그래도 말로 잘 해
결해 볼 수 없을까 망설이고 있을 때, 헤어지기 직전 자신의 사부였던 음교교주 서소영이 당부한 말
이 떠올랐다.
"우영아. 이젠 너의 비풍초동팔삼은 드디어 오성의 경지에 다달았구나. "
"그렇다면 이 무공으로 폐하의 염원을 ?아 무장의 오랜 한을 이룰 수 있단 말씀이오? "
"으음.. "
무언가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서소영에게 선우영이 다가가 그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 챈다.
"사부, 이제 사부와 나 사이에 비밀이란 것이 없는데, 어찌 말을 못하시는거요. 설마.. 이 무공으로도
무장의 원을 접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
"후우.. "
그의 뜨거운 눈길을 받아내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서소영이 한차례 깊은 한숨을 내쉬다 고개를 돌려
나지막히 말하기 시작했다.
"우영아. 내 너에게 묻겠다. 네가 원하는 것이 모든 적을 단번에 쳐죽일 수 있는 무공을 얻고자 하는
것이냐? 아니면 황상을 보호하기 위한 무공을 얻고자 하는 것이냐? "
"당연히 안으로는 황상 폐하을 보필하고, 밖으로는 폐하의 근심이신 외세를 무찔러 대송의 깃발을 드
날리는 것이 아니겠소? "
"그렇다면 말이다.. "
"사부. 어서 말씀해 주시오. 그 무엇이든 들을 각오가 되어 있소이다. "
"이 녀석은 화가 나기만 하면 양물이 꿈틀거리는 구나"라고 혼자 생각하며,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선우영의 손에 다른 손을 겹쳐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 어떤 무인이라도 네가 전개하는 비풍초동팔삼을 파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떤
무인에게도 비풍초동팔삼으로 상처를 입힐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의 꿈은 반쪽짜리 꿈이 될 것
같구나. 미안하다. 우영아.. "
"그렇다면... 그렇다면.. "
"그래. 중원에 존재하는 수 많은 무공중에서도 방어에 극강인 무공이 바로 너의 비풍초동팔삼이다.
대신 결코 상대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고.. "
"아아아악! "
사부의 말에 지금까지 부푼 기대를 하며 무공을 닦아왔던 선우영이 깊은 실의와 함께 땅바닥에 쓰러
졌다. 한참을 울부짖고 있을 때 양손 가득 흙을 움켜잡고 울부짖고 있는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
듬어 주는 서소영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소근거려왔다.
"내 장수에 대해 잘은 모르나, 적을 죽이는 것만이 무장의 역활이 아닐 것이다. 그 어떤 적이 눈앞에
있어도 보호해야 하는 인물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것 또한 무장의 몫이 아니겠느냐? "
"흐흑.. 고강한 적을 만난다면 제자가 반쪽짜리라는 것을 알고, 제자가 지키는 쪽이 아닌 다른 쪽으로
공격할 수도 있지 않겠소? "
"그걸 누가 알고? 이 무공이 그런 것이라는 것을 너와 나, 둘 밖에 모르는데 누가 알고? 후훗.."
"그렇다면!.. "
울고 있는 선우영의 마른 입술에 살짝 입술을 가져가 물기를 전해 준 서소영이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
듯이 그의 품으로 파고들며 속삭였다.
"무공이 강한 적일 수록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끝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너의 특기가 또 한
번 빛을 발하는 것이지. "
"제자보고 사기를 치란 말씀이오? "
"후훗, 누가 사기라고 했느냐? 자고로 정종 무공에서도 허초도 무공이요, 실초 또한 무공이라 했느리
라. 당황한 적에게 자비를 배풀어주는 듯이 여유를 부리는 것 또한 능력이라 할 수 있느니라. 그건 그
렇고.. 오랫동안 널 가르치느라 기운을 다 썼는지 몸이 허하구나. 우영아 좀 안아주련? "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몸을 돌려 눕히고 다급하게 옷을 벗기는 서소영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오래전부터 끄떡거리고 있느라 목이 아팠던 검둥이를 서소영이 쓰다듬어 주자 기꺼운지 눈물을 흘
렸다.
"서당에선 책 한권을 다 배우면 책떨이를 한다던데.. 이건 그런거라 생각하거라. "
"사부,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매일같이 해온 건 무엇이란 말이오? "
다 헤어진 그녀의 붉은 무복을 헤쳐 소담하게 솟아있는 유실을 웅켜잡은 선우영이 짖궂은 표정을 지
우며 물었다.
"아흑.. 살살 하거라 이 놈아. 그건 본교의 방중술을 연마한 것이 아니더냐. "
"그렇다면 어제까진 교의 방중술을 연마한 것이고, 지금은 책떨이란 말씀이오? "
선우영의 손가락이 서소영의 하의속으로 스며들어 젖어있는 방초를 건드리자 다급한 소성이 조용한
숲속에 울려퍼졌다.
"아흑.. 그래서 불만이라도 있느냐.. "
한동안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타고 있는 서소영을 바라보던 선우영이 몸을 일으키며 그녀를 푹신한 낙
엽더미 위에 조심스럽게 눕힌다. 입고 있다기 보단 몸에 걸쳐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그녀
의 무복을 황급히 떨쳐내며 서소영의 얼굴을 뜨겁게 쳐다보았다.
"난 사부가 내 여인이었으면 하오. 방중술 연마니 책떨이니 그런 거 다 집어치우고 오직 나만 생각하
고 내 품에 안겼으면 좋겠소. "
서소영은 불덩이가 떨어질 것 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눈으로 자신의 나신을 바라보는 우영에게 두 팔
을 벌렸다. 누워있었지만 모양이 전혀 쳐지지 않고 밥공기처럼 오똑하게 서있는 자신의 가슴을 배고
픈 아이처럼 입에 물고 있는 선우영의 귓가에 부끄러운 듯 나지막히 속삭였다.
"하아... 이미 사부의 가슴속에 네 녀석밖에 없는데, 그걸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으음.."
"쩝쩝.. 쩝쩝.. 사부가 사제지간으로 날 몰아세울 때 마다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하단 말이오. 내 여자
가 날 멀리하는 것 같아 불안하단 말이오! "
선우영의 손이 가슴에서 아래로 스스륵 내려오자 모르는 척 다리를 살포시 벌려준 서소영이 그의 머
리를 밑으로 지그시 누르며 쓰다듬는다.
"스승과 제자는 하늘이 이어주는 것이라 했다. 네가 이 사부를 생각하는 것의 갑절로 널 아끼는 사부
의 마음을 정녕 모른단 말이냐? 으으윽.. "
선우영이 서소영의 열려진 다리 사이에서 고개를 묻고 그녀의 비부를 빨기 시작하자, 목이 말랐던 그
의 입안에 뜨겁고 끈적한 샘물이 가득 스며들기 시작했다. 먹어도 먹어지 않고, 마셔도 마셔도 해갈
할 수 없는 그 뜨거운 물에 취해 선우영이 샘속으로 혀를 깊에 밀어넣자 살포시 벌려져 있던 서소영
의 다리가 그의 어깨를 감싸고 끌어 안을 듯 힘이 들어갔다.
"아으윽.. 내가 네 녀석만 생각하면... 하악.. 온 몸이 부서지는 것 같거늘.. 으윽. "
"쩝쩝.. 앞으로 사부는 나만 바라보아야 하오. 언제 어디서든 사부는 나만 보아야 하오. 후루룹.. "
할짝 열려진 서소영의 다리를 두 팔로 움켜잡고 위로 올리자 붉게 달아오른 비부밑으로 그녀의 국화
꽃이 벌렁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음액이 엉덩이의 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이 아까운 듯 깊은
골짜기 아래에서 부터 뜨거운 혀로 쓰다듬듯 회음부를 타고 올라오자 서소영이 번개맞은 생선처럼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하악.. 윽윽.. 그래. 그래.. 하악. 니 맘대로 할께. 너만 볼께.. 으윽. "
그녀의 다리사이에서 벗어날 줄 모르던 선우영의 얼굴이 서소영의 허벅지 양 혈을 이빨로 깨물듯이
자극하자 그녀의 다리가 풍맞은 사람처럼 부들거리기 시작하고, 발가락에 힘을 주다 못해 쥐가 날 지
경이었다. 온 몸에 퍼지기 시작한 열화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서소영이 선우영의 귀를 양 손으로 움
켜잡고 그를 자신의 몸위로 끌어올렸다.
"하악.. 제발.. 넣어줘. 아흑... 넌 어떻게 된 녀석이 사부보다 더 잘 하느냐.. 아악! "
선우영이 머리부터 턱끝까지 비에 맞은 것처럼 물기에 젖다 못해 흐르고 있는 얼굴로 그녀의 입안에
혀를 넣자 서소영이 화답하듯 입을 크게 열어 그의 침입을 받아준다. 땀이 흐르는 그의 등을 쓰다듬
고 할퀴고 있던 그녀의 한 손이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검둥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다 깊은 동굴속으
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어둡고 축축한 동굴이 제 집인냥 힘차게 검둥이가 힘차게 들어가기 시작하자
서로 붙어있는 입술사이에서 묵직한 소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우우우욱! 우욱.. "
잠시 그녀에게서 입술을 뗀 선우영이 힘겨운 듯 눈을 꼭 감고 있는 그녀의 양 눈꺼풀을 혀로 쓰다듬
었다. 그가 숨을 내쉴 때 마다 폐속깊이 잠들어 있던 뜨거움이 그녀의 얼굴로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청출어람이라 하지 않소. 아마도 우린 뛰어난 스승에 그 제자인가 보오. "
한 손으로는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를 감싸서 올려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누워있는 서소영의 뒷덜미
를 받쳐주고 힘을 주자 그녀의 몸이 둥글게 말려왔다. 그리고 그 만큼 서로의 겹쳐진 곳에서 나는 물
기젖은 소리가 더 깊어져 갔다.
"찌걱 찌걱.. 찌걱 찌걱.. "
"아아학.. 넌 정말 타고 났구나.. 으윽.. 너 떠나고 나면 보고 싶어서 어찌해야 할지.. 아흑.. "
"걱정마시오. 사부가 날 찾는다면 황궁에 있더라도 뛰쳐나오겠소. "
"아흑.. 그 말 꼭 지켜야 한다. 으으윽.. 내가 부르면 꼭 와야 한다.. 흐윽. "
그 후 며칠동안 한적한 숲속에서는 남녀의 뜨거운 소성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갑자기 자신의 앞을 막아오며 칼을 겨누는 수 십의 적들을 두고도 오래전 사부와의 뜨거웠던 날을 생
각하던 선우영의 턱에는 한줄기 침이 흐르고 있었다.
"사부, 제자도 사부의 품이 그립구려. 잘 보시오. 사부. 제자가 처음으로 무공을 발휘하는 순간을 말
이오. "
자신의 사부가 어딘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선우영이 한 손을 들어 입가를 정리한
후, 발기되어 터질것 처럼 부풀어 오른 양물을 한껏 세운 채 무인들을 향해 달려갔다.
"난 대송금군 남로정벌대 남도위 선우영이다! 길을 열지 않으면 뚫고 가겠다. "
십이신위 중 열 명의 신위가 선우영을 막아서고 나섰지만, 하의를 찢을 것처럼 양물을 부풀이고 달
려드는 낮뜨거운 모습에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진세가 흐트러지고 말았다. 셋째인 옥위가 그런 사제
들을 향해 일갈을 외쳤지만 그녀 또한 선우영이 아닌 먼 산을 보며 명령하는 것은 그녀의 사제들과
다름없었다.
"눈을 어디에 둔 게냐! 어서 저 자를 막아! "
"사저. 공격을 할려고 해도 저것이.. 저 망측한 것이 꿈틀거리는 통에.. 어머! "
"이익! 그렇다면 눈을 감앗. 모두 눈을 감고 저자를 공격한다! "
열 명의 십이신위들이 모두 눈을 감고 선우영을 둘러싸고 공격하기 시작했지만, 그런 어설픈 공격이
통할 선우영이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검세를 낙장불입의 초식으로 흘려버린 선우영이 검
패를 살짝 돌려 그녀의 어깨에 몸을 바짝 붙인 채 끈적한 신음을 흘려냈다.
"으으음, 으음.. "
"징그러! 저리가 저리가... "
길을 가다 뱀을 만난 여인처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난 적위의 몸매를 아래 위로 흘겨 보는 선우
영에게 두 명의 여인이 합공을 하며 칼을 질러왔다.
"네 이놈! 음적! 내 결단코 네 놈을 살려보내지 않겠다. "
허리를 가를 듯이 옆으로 밀려오는 검과 다리를 자를 것같은 매서운 검격을 일타쌍피의 초식으로 물
리친 선우영이 팅겨나간 공격을 회수하며 재차 밀고 들어오는 여인의 검을 바람같은 동작으로 스쳐
지나갔다. 드디어 비풍초동팔삼이 발휘된 것이었다. 잠시후 마치 환영을 그리듯이 몇 개의 몸으로 나
뉘어진 선우영의 몸이 한 여인의 등뒤에서 나타났다. 터질것 같은 자신의 양물을 그 여인의 엉덩이에
바짝 붙이고 또 다시 끈적한 신음을 흘렸다.
"하아아아아. 좋구나. 아흐흐흐흠.. "
"꺄아악! "
괴상한 무공으로 악명이 높은 포달납궁에서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변태적인 공격에 십이신위의 막
내인 풍위마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자, 눈을 감고 선우영을 공격하고 있던 나머지 신위들은 두려
운 듯 한걸음씩 물러서고 있었다. 그때 무시못할 내공을 실은 목소리가 싸움판의 한가운데 나지막히
울려왔다.
"멈추어라! "
청색 장포를 단정하게 입은 청년이 선우영의 앞에 검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후훗. 아미를 건드렸더니 재미있는 녀석이 따라 붙었군. 한번 내 공격을 받아보겠느냐? "
일생 일대의 강적을 눈앞에 둔 선우영이 바싹 마른 입안을 몇 번 달싹거렸다. 변변찮은 무공을 가진
자신이지만, 그런 자신의 막눈으로도 지금 나온 이 사내는 쉽게 도모할 수 있는 무인이 아니라는 것
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몸매가 예쁜 여인에게 눈이 어두워 이곳까지 ?아왔지만 이런 강적이
기다리고 있을거라 생각치 못한 선우영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어차피 자신의 인
생은 모 아니면 도 아니었던가.
"이것보다 더 강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한번 받아 보시겠소? "
"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
"그걸 받아낸다면 그대를 형이라 부르겠소. 어떻소? "
"호오.. 재미있군. 내 일초를 받아낸다면 그 제안을 들어주도록 하지. "
"좋소. 어디 공격해 보시오. "
그때 막사에 무릎을 꿇고 울고있던 은위가 그제서야 달려왔다. 눈가를 정리하며 싸움의 한 복판
을 바라보던 그녀의 봉목이 부릅떠지며 목뒤에 묵직한 혈압이 급격히 올라가는 것을 심법으로 겨
우 다스린 은위가 칼을 빼어들고 외쳤다.
"저.. 저 놈이옵니다. 소궁주. 아미에 저 놈이 있어서.. 이익! 잘 만났다. 내 네놈을 이 자리에서 도
륙내고 말겠다. "
"그게 무슨 말이냐? "
평소의 모습과 너무 다른 행동으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은위를 바라보던 안이현의 앞에서
선우영의 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소저. 역시 이곳에 있었구려. 내 그대가 걱정되어 이곳까지 왔소이다. "
"네 이놈! 여기서도 또 허튼 소리를 할 생각이라면 집어 치우거라. "
"이 아이를 아는가? "
뭔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듯 싶지만, 내막을 알지 못하는 안이현이 선우영에게 묻자 기다
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저 소저와 아미파에서 약간의 오해가 있었소이다.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 이렇게 달려온 것이오. "
"오해라니!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들었거늘! "
"그대같이 곱고 아리따운 소저에게 사소한 오해로 그릇된 내 모습이 보여진 거 같아 안타깝기 그
지 없었소. 자, 이제부터 우리 서로 오해를 풀어봅시다. 사해가 동도라고 하지 않소? "
끝없이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잠재우느라 입도 열지 못하고 심법을 운행하고 있는 은위와, 느끼
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웃고 있는 선우영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던 안이현의 눈동자에 한순
간 이채가 번득였다가 사라졌다.
이 소설은 싸우는 장면이 거의 안 나옵니다. 그래서 "무공이 가장 쉬웠어요"입니다. -_-;
선우영은 중원을 싸돌아 다니면서 거짓말이나 하고, 가끔 붕가나 좀 하고 그럽니다.
다음 글은 감기를 동시에 연재중이기 때문에 2주후에 뵙겠습니다.
중원 무림 세가라고 부르기에 작은 규모이지만, 단지 아담한 장원이라고 하기에는 집안 곳곳에 베여
있는 날이 선 가풍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이곳은 요국의 남하로 고향 하북을 떠나 송주에 터를 잡고 있
는 팽가였다. 늦여름이 지나 이제 본격적으로 초가을이 시작되는지 팽가주가 있는 본당의 창밖으로
잠자리 몇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그의 머릿속에는 어릴
적 저 잠자리를 잡기 위해 팽가의 이곳 저곳을 제 철 만난 메뚜기처럼 뛰어나니던 때가 떠올랐다.
"숙아. "
"예, 오라버니. "
팽가의 장로이자 팽신후의 여동생인 팽위숙이 그의 비워진 잔에 차를 채워주며 대답한다.
"저걸 보니 옛생각이 나는구나. "
그녀의 오라비가 창밖을 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알고 있는 팽위숙은 자신의 찻잔에 찻물을 채우
며 눈가에 부드러운 주름을 만들어간다.
"살아보겠다고 태어난 미물인데 그걸 잡아서 어지간히 괴롭히셨지요. "
"그래도 그걸 나중에 발로 밟아 죽인 건 너 아니냐? "
"어차피 오라버니의 손에 망가진 몸으로는 하루 이상 살지 못하는 신세인데.. 일찍 죽는 것이 그나마
고통이 덜할테니까요. 다친 몸으로 놓아준다는 것은 또 다른 고통이옵니다. "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가문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팽가의 장로라는 자신의 역활에만 충실하느
라 아직 혼례를 치루지 않은 팽위숙의 얼굴에는 세파에 묻어난 주름 만큼이나 번접할 수 없는 단호함
또한 함께 물들어 있다.
"난 그런 널 보며 네가 무척 독하고 잔인하다 생각했었다. "
"지금은 아니시구요? "
팽위숙이 채워 준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그가 가벼운 한숨을 내뱉었다.
"후우.. 요즘은 괜한 생각이 많아지는구나. 아마도 그간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이 항상 진실만은 아니었
다는 것을 이제서야 깨달게 되는 모양이다. 너무 늦게 알았다고 할까. "
"혹여, 연화 언니 때문에 그러시는지요? "
요국의 세력을 피해 함께 남하하여 타지에서 고생중인 황보세가의 여가주 황보연화와 자신의 오라
비의 관계를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팽위숙이 가문의 장로가 되어 무림의 동향을 파악할 때마다 가장
신경을 쓴 곳이 황보세가였기에 그곳의 가주가 지금 어떤 처지인지 또한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팽
신후의 고민이 어떠한지 짐작할 수 있는 것이다. 고향을 떠나 쇠락한 가문의 여가주가 가세를 일으키
기 위해 내세울 것은 단 한가지 밖에 없다. 어릴적부터 무공을 연마하여 다듬어진 빼어난 육체를 무
기로 세가연합의 수장 역활을 하는 모용가의 가주 모용철과 모종의 거래를 했다는 것은 세가들 사이
에서는 비밀이라 할 것도 없었다.
같은 여인으로, 그리고 같은 몰락한 가문의 일원으로 그런 황보 연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
만,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별개였다. 그리고 자신이라면 그런 방법으로 가문을
일으키고 싶은 생각은 결단코 없었던 터다. 뼈속까지 무인으로 자란 팽위숙에게 뭇 사내들의 노리개
가 되어 가문에 일조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을지언정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황보연화를 자신의 오빠가 사모하고 있다. 그것이 문제였다. 한번 쉬운 길을 선택한 이
는 다음에 또 비슷한 어려움을 겪게 되면 똑같은 전철을 밟는다. 그것이 인간의 순리이다. 송주에 터
를 마련한 이후 수 년을 하루같이 예전 가세를 회복하기 위해 피를 말리는 고난을 겪었던 팽가에 그
런 여인이 가모로 들어온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한 명의 여인으로 인해 지금까지 쌓아놓은 팽가의 위
세를 단번에 깍아 내릴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가주의 방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미 결정한 일이었다. 어릴적에는 말썽도 많이 일으키고 싸우
기도 많이 했던 오라버니지만, 가주가 된 후 부터 자신의 본분을 결코 잃지 않았던 팽가후였다. 그런
오라비가 지금 누이 앞에서도 말 못하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팽위숙은 찻잔을 탁자에 내려놓고
품속에서 봉서 한 장을 꺼내어 그의 앞에 내밀었다.
"오라버니. 어쩌면 이것이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게 무엇이냐? "
"황금 오백정 교자이옵니다. "
(글쓴이 주, 교자(交子) : 북송 진종때부터 쓰인 약속어음의 일종으로 액면가만큼 화폐처럼 쓰였다.
처음에는 세도가와 거상을 중심으로 민간에서 발행하였으나 북송 중기부터 황실에서 발행한다.)
자신의 누이가 내놓는 교자의 액수에 놀란 팽가후가 선뜻 받지 못하고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본
다. 이 정도의 액수를 마련하기 위해 팽가의 가솔들이 상주에서 어떤 고초를 겪었는지는 가주인 자신
이 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었다. 은자 하나도 소홀히 다룰 수 없는 진정 피같은 돈이었다. 가주인
자신 하나만 바라보는 많은 이들을 생각해서라도 이 돈은 받아서는 안 되었다. 머릿속에 가득 남아있
던 미련탓에 한참을 망설이던 팽가후가 봉서를 집어 다시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
"내가 괜한 모습을 네게 보였구나. 이것은 잘 넣어두도록 해라. 곧 큰 전쟁이 날 것 같으니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
"많이 변하셨습니다. 오라버니. "
"후후.. "
나지막한 웃음을 흘린 그가 식어버린 찻잔을 손에 들고 입안으로 흘려 넣는다. 그리고 또 다시 창밖
으로 시선을 돌리며 화단의 중심으로 날아다니고 있는 잠자리떼를 눈으로 ?고 있었다.
"한 가문의 가주가 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더냐.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가문을 먼저 생각하게
되는 것이 몸에 베인 것 같구나. 이만한 금자를 마련하기 위해 고생한 아이들이 한 둘이 아닐텐데..
내가 쓸 수 없는 돈이다. 넣어두어라. "
팽위숙은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말하고 있는 오라버니의 모습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전대 가주였던
큰 오라버니가 일찍 병사하지만 않았어도 그는 이렇게 스스로를 자조하며 웃지 않았을 것이다. 중원
을 자유롭게 종횡하는 것이 꿈이라며 매일 같이 말을 하던 그때의 웃음띈 모습이 오늘따라 그리워지
는 그녀였다.
"어차피 돈이라는 것은 쓰기 위해 마련하는 것. 그리고 손에 쥔 만큼 새어나가는 모래와 같은 것이옵
니다. 이것으로 가주의 오랜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면 어찌 큰 돈이라 할 수 있겠사옵니까? "
팽신후가 작은 찻잔을 쥐고 있는 그녀의 작고 고운 손을 쓰다듬는다.
"내 너에게 뭐라 할 말이 없구나. 어쩌면 가주의 몫은 나보다 너가 더 어울리는 것을.. "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오라버니께서 태산같이 본가를 지켜주시기에 저 또한 제 몫을 다 할 수 있다
는 것을 벌써 잊으셨는지요? 오라버니는 본가의 모든 것이옵니다. 바람은 결코 한 곳에 머무르지 않
고, 시련은 언젠가 지나간다 했사옵니다. 언젠가 오늘의 일도 그렇게 될 것이옵니다. 힘을 내소서. "
"고맙다. 정녕 고맙다. 못난 오래비가 이 말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이 미안할 따름이다. "
장부로써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가 눈가에 스며들기 시작한 물기를 보이기 싫어 창문밖 먼 곳으로 황
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의 귓가에 팽위숙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부터 듣기로 신녀문의 문주가 천리를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지녔다고 하옵니다. 그녀에게 이 교
자를 들고 찾아가 고언을 청해보옵소서. 그녀라면 분명 오라버니의 오랜 고민에 답을 내어줄 것이옵
니다. "
가주의 방을 나선 팽위숙이 조그마하게 꾸며진 화단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크고 작은 바
위 틈세에 붉고 흰 각양 각색의 꽃들이 수줍은 듯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지만 그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녀였다. 또 한번의 한숨을 내쉰 후 걸음을 옮기려 할 때 자신의 왼 어깨에 잠자리 한 마리가
앉아있다 놀란 듯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마음껏 날 수 있다는 것이 정녕 부럽구나. "
잠시 후 담장 넘어로 날아가는 잠자리를 하염없이 눈으로 ?아가던 팽위숙이 힘없는 미소를 입에 머
금으며 팽가의 각종 정보를 수집하는 지연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 * * *
구절초가 하나 둘씩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 작은 화원에 백색 화복을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옥적
을 연주하고 있다. 그녀의 희고 고운 손가락이 바람에 이끌린 듯 움직일 때 마다 옥적에는 높고 낮은
옥피리 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는 듯 새어나왔다. 그녀의 뒤로 발걸음 소리가 들릴까 조심스러운 걸
음으로 다가온 중년여인이 공손히 시립하며 입을 열었다.
"문주님, 음교교주께서 오셨나이다. "
"어머, 언니가? 어서 뫼시지 않고! "
그녀의 말이 끝나기 전에 후원의 작은 문이 열리며 이곳 저곳 찢어지고 헤어진 홍색 무복을 입은 여
인이 들어서고 있었다.
"이년아. 나 왔다. "
"언니, 왠일이야? 자넨 어서 가서 다과를 준비해 오너라. "
"예. 문주님. "
조금전까지 중후한 멋을 자아내고 있던 신녀문주 설수련은 서소영이 들어서자 마자 푼수같은 모습
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것은 눈앞의 여인에게 만큼은 애써 긴장할 필요없이 믿고 의지하기 때
문에 가능할 것이다.
"청승맞게 혼자 피리를 불고 그래? 그러다 뱀 나오겠다. "
"언니. 오늘따라 좀 우울하네. "
"이 년아. 여자가 우울할 때는 남자 끼고 술 마시는 게 최고야. 딱 보니 사내가 그리운 거네. "
"참네. 내가 언니야? 눈에 차지 않는 사내들과는 상종하지도 않는다는 거 언니도 알잖아? "
"벗겨보면 별 것도 아닌 년이 눈만 더럽게 높아가지고.. 내가 한 명 소개시켜 줄까? "
맛있는 과자를 숨겨 놓고 줄까 말까 망설이는 꼬마처럼 득이양양한 서소영의 말에 아주 약간 구미가
당긴 설수련이 자세를 고쳐 그녀에게 다가갈 때 총관이 몇 개의 다과와 차담자를 탁자에 내려놓고 소
리없이 물러났다. 서소영의 앞에 놓은 찻잔에 찻물을 부어 주며 은근한 눈길로 바라본다.
"혹시.. 언니가 요새 만나는 사내 말하는 거 아냐? "
"히힛. 맞아. 길가다가 만났어. "
"아니 그럼 언니랑 나랑 샛서방을 사이에 두자는 말이잖아! 생각만 해도 망측하게 그게 무슨.. "
"난 그래도 널 생각해서 챙겨줄려고 한 건데.. 싫으면 말고. 좋은 건 나만 먹어야지. "
계속된 서소영의 말에 조금은 궁금증이 생긴 설수련이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그 사내 잘 생겼어? "
"아니. 빌빌 거리게 생겼어. 옷차림만 잘 꾸미면 문사라고 해도 믿을 걸? "
"그렇다면 뭐 언니가 독차지 하던 말던지.. "
구미가 동했다가 빌빌 거리게 생겼다는 말에 흥미를 잃은 설수련에게 서소영이 말없이 자신의 왼손
목을 내밀었다. 그것은 완맥을 짚어 내공을 알아보라는 뜻이며, 가족과 진정으로 믿을 수 있는 자가
아니면 함부로 할 수 없는 무림금기 중에 하나였다. 서로를 친자매 이상으로 여기는 서소영이 자신의
완맥을 내어주자 궁금증이 다시 일어 그녀의 손목에 자신의 손가락을 올려 공력을 끌어 올려본다. 잠
시 후 서소영의 내공 수준을 가늠하던 설수련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머, 언니 내공이 엄청 늘었네. "
"이 년아. 부럽지? "
"돈도 없는 언니가 영약을 먹은 건 아닐 거고.. 설마 몇 백명이나 되는 남정네들이랑 교합하고 원정이
라도 흡수한 거야? "
"미쳤어? 내가 무림공적이라도 되고 싶어서 발악하는 줄 알아? 나 그렇게 쉬운 년 아냐. 이거 왜 이래? "
음교교주가 쉬운 여자가 아니라는 헛소리를 한 귀로 흘린 설수련이 그녀의 곁에 조금전 보다 바싹 붙
어 앉았다. 여기까지 와서 자랑할 정도면 보통의 남정네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 알았으니, 다음은 그
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야 할 때였다.
"아이 언니도 참. 하나뿐인 동생이 속 타는 거 볼려고 그래? 어서 말 좀 해줘. 어떤 사내야? 그리고 어
떻게 만난 거야? "
얼굴을 바짝 붙이고 다급하게 묻는 설수련의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느긋하게 찻잔을 기울이던 서소
영이 아주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내가 얼마전 려파를 지나다가 아미 땡중년 50명이랑 맞닥뜨렸거든. 난 혼자인데 50명이나 되는 땡
중들이 차륜전으로 공격하니까, 아무리 무공이 강해도 나도 인간인데 지치잖아? "
"응 그렇지. 그래서? "
"그때! "
그렇게 서소영의 말도 안 되는 무용담이 시작되었다. 음교교주의 막강한 내공을 무서워한 아미의 땡
중 50명이 한 명씩 차례로 공격하기 시작하고, 그들의 공격을 하나씩 격파하며 조금씩 지치기 시작
하는 음교교주. 자신이 쓰러진다면 대음교의 위세가 꺽인다는 사명감으로 온 몸으로 피를 흘리며 버
텨냈지만 49명을 쓰러트리고 마지막 50번째 장문인의 공격을 남겨두었을 때 그녀의 몸에는 단 한 톨
의 내공도 남아 있지 않았다. 박진감 넘치는 서소영의 이야기에 손에 땀을 쥐며 듣고 있던 설수련의
기대를 산산히 조각낼려는 듯이 서소영은 가장 중요한 마지막 싸움부분에서 말을 끊어 버렸다.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
"그때 그 땡중년들을 한 명씩 쓰러트리면서 내 옷이 이렇게 망가진 거야. 교를 나올 땐 제일 예쁜 옷
으로 입고 온 거였는데.. "
"그래, 언니 옷은 그렇게 찢어지고, 그래서 장문인 하나 남겨 놓았다며. 어떻게 됐어? "
"이 언니한테 예쁜 옷 하나 사주라. "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짓던 설수련이 이내 포기하고 고개를 끄떡거렸다.
"그래. 이야기 다 해주면 예쁜 옷 사줄께. "
"노리개도. "
"언니가 원하는 건 다 사줄께. 그러니까 제발 이야기나 마저 해줘. "
원하는 것을 다 얻은 서소영이 차로 입가를 적신 후 기분 좋은 표정으로 과장이 몇 배나 점철된 무용
담을 다시 털어놓기 시작했다.
"난 내공을 다 쏟아부어 49명이나 되는 땡중년을 쓰러트렸지만, 아미 장문 그 년은 뒤에서 가만히 보
고만 있다가 이제 기어 나오거야. 그러니까 쌩쌩했지. 난 개털났구. "
"응, 그래서? "
"내가 누구야? 나 음교교주 서소영이야. 절대 정파 놈들에게 질 수 없잖아. "
"언니는 자존심 빼면 시체지. "
"그렇지. 그래서 동귀어진을 하더라도 저 중년들을 모조리 쓰러트려야겠다고 마음먹고 음교교주에게
만 전해지는 비기를 써버렸어. "
"어머, 그렇게 힘든 상대였구나. 언니의 본신무공이면 나도 이기기 힘든데.. "
죽음을 각오하고 정파의 장문인과 음교교주가 벌이는 한판 승부가 머릿속에 그려지는 설수련이 바
싹 마른 입가를 붉은 혀로 축이며 다음 이야기를 재촉했다.
"아미 장문인이 다쳤다는 말은 들었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어? "
"너도 그 소문 들었어? "
"내가 하는 일이 뭐 그런 건데.. 그리고 그 일은 어차피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소문만 무성하
지 자세한 내막은 아무도 몰라. 그저 아미 장문인이 산문을 나섰다가 극심한 내상을 입고 실려왔더
라. 이 정도야. 당사자인 아미파는 환향객도 안 받고 함구하고 있으니 누가 알아? 언니가 제일 잘 알
잖아. 그래서 어떻게 됐어? "
"그 년이랑 나랑 동귀어진 한 수에 지독한 내상을 입고 움직이지 못하게 됐는데.. 바로 그때! "
이야기를 끊는 맛에 재미붙인 서소영이 또 말을 끊어 버리자, 화가 난 설수련의 몸에서 살기가 뿜어
져 나왔다. 그 기세에 찔끔한 서소영이 식은 땀을 흘리며 조금전 이야기를 계속했다.
"어디선가 흑색 무복을 번듯하게 차려입은 무인이 하늘에서 날아와서 날 구출해 준 거야. "
"어머 멋있다. 그럼 그 남정네가 조금전에 그 사내야? "
"응. 아미파의 추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날 업고 몇날 며칠을 달려 깊은 산속에 날 숨겨주고 내상을 치
료해주다가 우리 둘은 눈이 맞아 버렸지. "
그때부터 서소영만의 상상속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었다. 미모의 여인을 죽음의 문턱에서 구출한
남자는 여인의 상처를 치료하다 사랑에 빠지게 되고, 대음교의 교주라는 자신의 특수한 처지를 설명
하며 남정네의 마음을 뿌리칠려 했으나 그의 지고지순한 순정에 감동하여 받아들이게 된다는 이야
기였다.
"후우.. 그 사내가 자신의 몸에 칼을 들이대며, 소저의 마음을 얻지 못할바에는 그대가 있는 이곳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게 행복하겠소. 라고 말하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다 나더라구. "
"어머, 그 남자 정말 멋있다. 그 상황이라면 나라도 반할 거 같아. "
"그렇지? 그 사내의 성정도 진국인데, 양물은 더 대단해. 어찌나 양기가 양물에 똘똘 뭉쳐 있는지 한
달 사이에 반 갑자나 되는 내공이 늘어나 버렸잖아. 싫다는 대도 자꾸 달라붙는 통에 참 힘들었어. "
"어머, 그럼 언니가 이렇게 된 게 그 사내 덕분인거야? "
이야기를 하며 어느세 서소영의 시선 저 넘어에는 우영의 느끼한 미소와 함께 가라앉을 줄 모르는 그
의 양물이 눈에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우영과 황홀했던 석달간의 시간을 되세김질 하고 있는 서소영
에게 설수련이 부끄러운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언니. 그럼 그 남정네 이름이 뭐야? 이름을 가르쳐 줘야지.. "
"싫다며? "
"내가 언제 싫다고 했어. 언니가 워낙 좋아하는 거 같으니까 동생된 입장으로 양보한다고 한 말이지.
언니만 괜찮다면 한번 만나는 볼려고.. "
"만나기만 하게? "
"아잉.. 그래도 난 아직 처녀인데, 만나보고 서로 사귀다가 생각해야지. 언니처럼 바로 자리깔고 누울
수 있나. "
"하긴. 이 년아 그래서 내가 소개해줄려고 한 거야. 30년 넘게 고이 간직한 처녀 딱지를 뗄려는데 어
중이 떠중이 같은 놈에게 함부로 줄 수는 없잖아? 적어도 그 놈 정도는 되야지. "
"어머, 그 놈이라니.. "
"애가 하도 착하고, 날 너무 따르기에 기명제자로 받아줬어. 히힛. 나 없으면 못산다는데 교주가 되서
혼인할 수도 없고 그냥 제자로 받아줬지. 부부지연이나 사제지간이나 그게 그거 아냐? "
서소영은 우영과 헤어지기 직전, 혹시나 그와의 연락이 끊어질까 저어되어 자신의 수신호위 중 한 명
을 그의 곁에 몰래 붙여 놓은 상태였다. 당장은 우영의 위치를 알 수 없지만 반나절 정도만 있으면 그
에게 언제든 연락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그녀는 아껴둔 곶감을 빼먹듯 우영과
의 정을 늘려갈 생각이었다. 언제 또 적당히 어둡고 한적한 곳에서 우영을 만나 못다한 운우지정을
나누어 볼까 분홍빛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서소영의 손목을 설수련이 강하게 움켜 잡았다.
"언니. 이상한 상상은 그만하구. 그 남정네 이름이 뭐야? "
"너만 알고 있어야 해! "
"당연하지. 나만 믿고 말해줘. 어서.. "
"이년 이거 몸이 달았네. 킥킥.. 하긴 30년을 수절했으니.. "
"아이 참! 실없는 소리 그만하구. "
"그 멋진 사내의 이름은 우영이라고 해. 성씨는 선가고. "
"뭐! "
서소영의 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놓칠뻔한 설수련이 신색을 애써 회복하며 그녀를 다그쳤다.
"그 남정네 이름이 선우영 맞아? "
"니가 어떻게 알아? "
"혹시 그 남자, 금군 장수 아냐? 용호검도 들고 있고... "
"너.. 걔 만났었어? "
떨리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서소영을 무시하고 한동안 머릿속을 정리하던 그녀가 무언가 깨
달은 듯 외마디 말을 내뱉었다.
"맞아! "
"뭐? "
"그 남자 냄새! 혹시.. 언니 향낭 그 남자에게 주지 않았어? "
설수련의 말에 무언가 깨달은 서소영이 자리에 벌떡 일어나 설수련의 어깨를 움켜 잡았다.
"이 년이! 너 걔랑 잤구나! "
"아파. 언니 이거 놔. "
"감히 내 남자에게 꼬리를 쳐! "
"언니가 그 남자 소개시켜 준다며! 그리고 나 안 잤어. 이거 봐! "
억울한 듯 내미는 그녀의 오른손목에는 붉은 빛깔의 수궁사가 선명하게 세겨져 있었다. 자신의 지금
추태가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리며 자리에 앉는 서소영이었다.
"크음.. 미안. "
"훗, 나보고 몸이 달았다고 놀리더니, 지금보니 정작 언니가 푹 빠졌네. "
"너도 만나봤으니 알거 아냐? 그런 사내는 흔치 않아. 그런데 향낭을 준 건 어떻게 알았어? "
"여기서 몇 달 자고 갔거든. 아침마다 물 떠다주러 방에 들어가니까 어디서 많이 맡아 본 냄새가 나잖
아. 언니 본 지가 하도 오래되서 그게 음교 향낭인 줄 나도 몰랐지. 진작 알았으면 직접 그 사내에게
물어보는 건데. 아깝네.. "
미안한 줄은 아는지 설수련의 비어진 찻잔에 찻물을 부어주며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다음에 걔랑 너랑 잔다고 해도 화 안 낼께. "
"참네. 그런 그렇고, 향낭을 주면 어떻게 되는지 언니가 모르는 것도 아니고.. 괜찮아? "
"뭐, 우리 교가 교도들은 여자여야 한다는 교칙이 있긴 한데.. 태상호법에게는 예외거든. 괜찮아. 청
순하고 가련한 교주를 지켜주는 직책이 태상호법이라서 가끔 힘은 쎄고 머리는 나쁜 남자가 맡을 때
도 있으니까 문제없어. 그리고 교주인 내가 된다는데 누가 뭐래? "
"하긴, 그래서 나도 그 남정네한테 흑적을 줬거든. "
자신이 말해놓고도 부끄러운지 옥용을 붉게 물들인 설수련이 고백하듯이 뇌까리자, 그 말을 듣고 놀
란 서소영이 한동안 멍하니 있다 중얼거렸다.
"너.. 용캐도 그 놈이 멋진 놈인 걸 알았구나. "
"왠지 그 남자를 놓치면 아깝겠다 하는 생각이 퍼뜩 들더라구. 그래서 내가 미리 찜 해놓을려고 흑적
을 준 건데.. 이제보니 언니가 먼저 침뱉었네. "
"그 놈도 대단하다. 우리 교에선 호법이고, 그럼 너네 문에선 장로야? "
"뭐.. 여자가 아니니까 태상장로 정도라고 할까? 이름이야 그렇지만 하는 일은 거의 없어. 언니네처
럼 태상호법이랑 비슷할 거야. "
"근데 그 놈 어디로 간다던? "
"몇 달 머물다가 아미로 간다고 갑자기 떠나더라구. "
"하긴 나한테도 아미파로 간다고 하던데.. 근데 그 놈이 하도 길치라서 제대로 갔나 모르겠네. "
"그래서 내가 지도를 만들어 줬어. 잘 했지? "
설수련이 칭찬받고 싶어하는 아이처럼 말을 하자, 서소영은 그 모습이 귀여운지 그녀의 뺨을 아프지
않게 꼬집은 후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잘 했어. 걘 사천으로 간다고 해놓고 서하로 갈 놈이야. 아미로 간다던 놈이 엉뚱하게 여기로 온 것
만 봐도 그래. "
"킥킥. 여기서도 몇 번이나 길을 잃더라구. 그 남자 볼수록 귀엽더라. "
"미친년. 별게 다 귀여워. 그렇게 귀여우면 진작 잡아 먹지 그랬어? "
비록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지만, 설수련이 다음에 우영을 만나면 어떤 행동을 할지는 얼굴만 보
아도 알 수 있었다. 부끄러운 듯 맞잡고 있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는 그녀의 목덜미와 귓가는 앵속
의 꽃잎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미모의 설수련과 몇 달을 함께 있으면서도 선우영이 그녀에게 손을
대지 않은게 너무 기꺼운 서소영은 다음에 그를 만나게 되면 격하게 안아주기로 마음먹었다.
"언니, 혹시 그 사내한테 누구 붙여 놓지 않았어? "
"그럼 너도? "
친자매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언니 동생하는 사이로 지내서인지 생각마저 자매처럼 닮은 그들이 서
로 황당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키킥. 역시 언니야. 난 그 사내의 정체도 몰랐으니까 혹시나 하고 그림자를 달아 놓긴 했는데.. 언니
는 대단해. 정을 나눴다면서 감시자를 붙여 놓는 거 보면.. 그렇게 그 사내가 욕심나? "
"이것아. 사내라는 것은 한 눈만 팔면 계집질하게 되어 있어. 두 발 달린 짐승을 붙잡는다고 가만있는
것도 아니라면 적당한 애를 붙여 놓는 게 오히려 더 좋아. "
"와 역시 언니는 노련하네. 그런데 언니 교에서 붙여놓을 만한 애들은 다 여인아냐? 그러다 둘이 눈
맞으면 어쩔려구 그랬어? "
"히힛. 내가 그 정도 생각이 없는 줄 알아? 그래서 설아보고 그 놈을 ?아 다니라고 했어. 가기 싫다
고 엉엉 우는 거 보낸다고 애먹었네. 그러는 넌 누굴 붙인 거야? "
"언니만큼 생각한 건 아니지만.. 내가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겠어? 그래서 진아를 보냈지. "
설아를 보내면서도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 걱정을 했던 서소영앞에는 자신보다 더 빈틈이 없는 설수
련이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코끝을 찡긋거리고 있었다.
"너 정말 독하다. 진아가 남정네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서도 보낸 거야? "
"그러니까 보냈지. 걔라면 어떤 사내에게 보내도 안전하니까. 그러고 보니 진아에게 좀 미안하네. "
* * * * * * *
아미파에서 빠져나온 은위가 마치 은가루같은 눈물을 뿌리며 달려가는 곳에는 수 많은 무인들이 칼
을 들고 경계를 서고 있는 진중안이었다. 삼엄한 경계를 서고 있는 무인들을 무시하듯이 물 스며들
듯 뛰어든 은위가 금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진 가장 큰 막사로 들어간다. 이윽고 탁자에 큰 중원지도
를 펼쳐놓고 깊은 상념에 빠진 청년앞에 엎드려 통곡하기 시작하였다.
"흐흑. 소궁주. 소녀를 벌하여 주시옵소서. "
"아니, 아미를 정탐하라고 보냈더니 이 무슨 말이냐? 설마 아미에서 너의 무공으로도 ?겨나온 것은
아니겠지? "
"흐흑.. 그 놈이... 그 나쁜 놈이.. 흐흑흑 "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울고 있는 은위를 한참 바라보던 포달납궁 소궁주 안이현은 호피가 넓게
드리워진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은위를 바라본다. 울고 싶을 때 실컷 울고 나면 속시원히 말할 거라
생각한 그가 조금전 못다한 생각을 마저하고 있을 때 막사밖에서 다급한 목소리와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침입자다. !! "
조금전까지 다정한 표정이었던 안이현의 얼굴에 냉막한 기운이 감싸기 시작하고, 몸을 둘러싸고 있
는 푸른색 장포가 바람을 일으킨 듯 일렁거리기 시작했다. 싸움이 있기 전 몸보다 본신내공이 먼저
긴장하며 일어나는 현상이었다.
"너의 말은 나중에 듣기로 하겠다. 검을 다오. "
그의 말에 뒤에 시립하고 있던 금위가 공손하게 보검 한 자루를 내어준다.
"꼬리를 달고 온 모양이군. 오랜만에 본 궁과 중원의 무공을 겨뤄볼 수 있겠구나. "
* * * * * * *
아미파를 나온 선우영은 흑색 무복과 흑면을 한 이를 ?아가고 있었다. 비록 무복으로 가려져 있었지
만 자신을 향해 소리를 칠 때 유독 두드러져 보이던 봉긋한 가슴선과 갸날펴 보이는 허리선은 옷속에
숨겨져 있는 그녀의 몸매가 결코 쉽게 볼 수 있는 여인이 아니라는 것을 짐작하게 했다. 그리고 그녀
의 울음소리는 또 얼마나 맑고 청아했던가. 듣는 이로 하여금 애간장을 녹이게 만들던 그 목소리를
자신의 검둥이로 또 다른 울음소리로 만들어 준다면 그것이 바로 사내가 여인에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아닐까 스스로 생각하며 달려가고 있었다. 그 생각을 하자 온 몸에 힘이 솟구치는 기
분이었다.
반 시진 정도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달려갔을 무렵, 산등선이 넘어로 여러 개의 막사가 보이고 한
떼의 무인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보였다.
"침입자다. !! "
울면서 뛰어간 여인을 ?아 살포시 품에 안아 다독거려 줄 목적으로 달려왔건만, 어떤 오해인지 모르
지만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일에 말려들고 만 것 같았다. 무공이 변변찮은 선우영이 그래도 말로 잘 해
결해 볼 수 없을까 망설이고 있을 때, 헤어지기 직전 자신의 사부였던 음교교주 서소영이 당부한 말
이 떠올랐다.
"우영아. 이젠 너의 비풍초동팔삼은 드디어 오성의 경지에 다달았구나. "
"그렇다면 이 무공으로 폐하의 염원을 ?아 무장의 오랜 한을 이룰 수 있단 말씀이오? "
"으음.. "
무언가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 서소영에게 선우영이 다가가 그의 손목을 강하게 잡아 챈다.
"사부, 이제 사부와 나 사이에 비밀이란 것이 없는데, 어찌 말을 못하시는거요. 설마.. 이 무공으로도
무장의 원을 접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겠지요? "
"후우.. "
그의 뜨거운 눈길을 받아내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서소영이 한차례 깊은 한숨을 내쉬다 고개를 돌려
나지막히 말하기 시작했다.
"우영아. 내 너에게 묻겠다. 네가 원하는 것이 모든 적을 단번에 쳐죽일 수 있는 무공을 얻고자 하는
것이냐? 아니면 황상을 보호하기 위한 무공을 얻고자 하는 것이냐? "
"당연히 안으로는 황상 폐하을 보필하고, 밖으로는 폐하의 근심이신 외세를 무찔러 대송의 깃발을 드
날리는 것이 아니겠소? "
"그렇다면 말이다.. "
"사부. 어서 말씀해 주시오. 그 무엇이든 들을 각오가 되어 있소이다. "
"이 녀석은 화가 나기만 하면 양물이 꿈틀거리는 구나"라고 혼자 생각하며,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는
선우영의 손에 다른 손을 겹쳐 올리며 말을 이었다.
"그 어떤 무인이라도 네가 전개하는 비풍초동팔삼을 파훼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떤
무인에게도 비풍초동팔삼으로 상처를 입힐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니 너의 꿈은 반쪽짜리 꿈이 될 것
같구나. 미안하다. 우영아.. "
"그렇다면... 그렇다면.. "
"그래. 중원에 존재하는 수 많은 무공중에서도 방어에 극강인 무공이 바로 너의 비풍초동팔삼이다.
대신 결코 상대를 공격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고.. "
"아아아악! "
사부의 말에 지금까지 부푼 기대를 하며 무공을 닦아왔던 선우영이 깊은 실의와 함께 땅바닥에 쓰러
졌다. 한참을 울부짖고 있을 때 양손 가득 흙을 움켜잡고 울부짖고 있는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
듬어 주는 서소영의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소근거려왔다.
"내 장수에 대해 잘은 모르나, 적을 죽이는 것만이 무장의 역활이 아닐 것이다. 그 어떤 적이 눈앞에
있어도 보호해야 하는 인물을 끝까지 지켜낼 수 있는 것 또한 무장의 몫이 아니겠느냐? "
"흐흑.. 고강한 적을 만난다면 제자가 반쪽짜리라는 것을 알고, 제자가 지키는 쪽이 아닌 다른 쪽으로
공격할 수도 있지 않겠소? "
"그걸 누가 알고? 이 무공이 그런 것이라는 것을 너와 나, 둘 밖에 모르는데 누가 알고? 후훗.."
"그렇다면!.. "
울고 있는 선우영의 마른 입술에 살짝 입술을 가져가 물기를 전해 준 서소영이 달아오른 얼굴을 숨기
듯이 그의 품으로 파고들며 속삭였다.
"무공이 강한 적일 수록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끝나면 당황하기 마련이다. 그럴 때 너의 특기가 또 한
번 빛을 발하는 것이지. "
"제자보고 사기를 치란 말씀이오? "
"후훗, 누가 사기라고 했느냐? 자고로 정종 무공에서도 허초도 무공이요, 실초 또한 무공이라 했느리
라. 당황한 적에게 자비를 배풀어주는 듯이 여유를 부리는 것 또한 능력이라 할 수 있느니라. 그건 그
렇고.. 오랫동안 널 가르치느라 기운을 다 썼는지 몸이 허하구나. 우영아 좀 안아주련? "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몸을 돌려 눕히고 다급하게 옷을 벗기는 서소영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오래전부터 끄떡거리고 있느라 목이 아팠던 검둥이를 서소영이 쓰다듬어 주자 기꺼운지 눈물을 흘
렸다.
"서당에선 책 한권을 다 배우면 책떨이를 한다던데.. 이건 그런거라 생각하거라. "
"사부,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매일같이 해온 건 무엇이란 말이오? "
다 헤어진 그녀의 붉은 무복을 헤쳐 소담하게 솟아있는 유실을 웅켜잡은 선우영이 짖궂은 표정을 지
우며 물었다.
"아흑.. 살살 하거라 이 놈아. 그건 본교의 방중술을 연마한 것이 아니더냐. "
"그렇다면 어제까진 교의 방중술을 연마한 것이고, 지금은 책떨이란 말씀이오? "
선우영의 손가락이 서소영의 하의속으로 스며들어 젖어있는 방초를 건드리자 다급한 소성이 조용한
숲속에 울려퍼졌다.
"아흑.. 그래서 불만이라도 있느냐.. "
한동안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타고 있는 서소영을 바라보던 선우영이 몸을 일으키며 그녀를 푹신한 낙
엽더미 위에 조심스럽게 눕힌다. 입고 있다기 보단 몸에 걸쳐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그녀
의 무복을 황급히 떨쳐내며 서소영의 얼굴을 뜨겁게 쳐다보았다.
"난 사부가 내 여인이었으면 하오. 방중술 연마니 책떨이니 그런 거 다 집어치우고 오직 나만 생각하
고 내 품에 안겼으면 좋겠소. "
서소영은 불덩이가 떨어질 것 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눈으로 자신의 나신을 바라보는 우영에게 두 팔
을 벌렸다. 누워있었지만 모양이 전혀 쳐지지 않고 밥공기처럼 오똑하게 서있는 자신의 가슴을 배고
픈 아이처럼 입에 물고 있는 선우영의 귓가에 부끄러운 듯 나지막히 속삭였다.
"하아... 이미 사부의 가슴속에 네 녀석밖에 없는데, 그걸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으음.."
"쩝쩝.. 쩝쩝.. 사부가 사제지간으로 날 몰아세울 때 마다 멀어지는 것 같아 불안하단 말이오. 내 여자
가 날 멀리하는 것 같아 불안하단 말이오! "
선우영의 손이 가슴에서 아래로 스스륵 내려오자 모르는 척 다리를 살포시 벌려준 서소영이 그의 머
리를 밑으로 지그시 누르며 쓰다듬는다.
"스승과 제자는 하늘이 이어주는 것이라 했다. 네가 이 사부를 생각하는 것의 갑절로 널 아끼는 사부
의 마음을 정녕 모른단 말이냐? 으으윽.. "
선우영이 서소영의 열려진 다리 사이에서 고개를 묻고 그녀의 비부를 빨기 시작하자, 목이 말랐던 그
의 입안에 뜨겁고 끈적한 샘물이 가득 스며들기 시작했다. 먹어도 먹어지 않고, 마셔도 마셔도 해갈
할 수 없는 그 뜨거운 물에 취해 선우영이 샘속으로 혀를 깊에 밀어넣자 살포시 벌려져 있던 서소영
의 다리가 그의 어깨를 감싸고 끌어 안을 듯 힘이 들어갔다.
"아으윽.. 내가 네 녀석만 생각하면... 하악.. 온 몸이 부서지는 것 같거늘.. 으윽. "
"쩝쩝.. 앞으로 사부는 나만 바라보아야 하오. 언제 어디서든 사부는 나만 보아야 하오. 후루룹.. "
할짝 열려진 서소영의 다리를 두 팔로 움켜잡고 위로 올리자 붉게 달아오른 비부밑으로 그녀의 국화
꽃이 벌렁거리며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음액이 엉덩이의 골을 따라 흘러내리는 것이 아까운 듯 깊은
골짜기 아래에서 부터 뜨거운 혀로 쓰다듬듯 회음부를 타고 올라오자 서소영이 번개맞은 생선처럼
파닥거리기 시작했다.
"하악.. 윽윽.. 그래. 그래.. 하악. 니 맘대로 할께. 너만 볼께.. 으윽. "
그녀의 다리사이에서 벗어날 줄 모르던 선우영의 얼굴이 서소영의 허벅지 양 혈을 이빨로 깨물듯이
자극하자 그녀의 다리가 풍맞은 사람처럼 부들거리기 시작하고, 발가락에 힘을 주다 못해 쥐가 날 지
경이었다. 온 몸에 퍼지기 시작한 열화를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서소영이 선우영의 귀를 양 손으로 움
켜잡고 그를 자신의 몸위로 끌어올렸다.
"하악.. 제발.. 넣어줘. 아흑... 넌 어떻게 된 녀석이 사부보다 더 잘 하느냐.. 아악! "
선우영이 머리부터 턱끝까지 비에 맞은 것처럼 물기에 젖다 못해 흐르고 있는 얼굴로 그녀의 입안에
혀를 넣자 서소영이 화답하듯 입을 크게 열어 그의 침입을 받아준다. 땀이 흐르는 그의 등을 쓰다듬
고 할퀴고 있던 그녀의 한 손이 독이 오를 대로 오른 검둥이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다 깊은 동굴속으
로 인도하기 시작했다. 어둡고 축축한 동굴이 제 집인냥 힘차게 검둥이가 힘차게 들어가기 시작하자
서로 붙어있는 입술사이에서 묵직한 소성이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우우우욱! 우욱.. "
잠시 그녀에게서 입술을 뗀 선우영이 힘겨운 듯 눈을 꼭 감고 있는 그녀의 양 눈꺼풀을 혀로 쓰다듬
었다. 그가 숨을 내쉴 때 마다 폐속깊이 잠들어 있던 뜨거움이 그녀의 얼굴로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청출어람이라 하지 않소. 아마도 우린 뛰어난 스승에 그 제자인가 보오. "
한 손으로는 그녀의 풍만한 엉덩이를 감싸서 올려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누워있는 서소영의 뒷덜미
를 받쳐주고 힘을 주자 그녀의 몸이 둥글게 말려왔다. 그리고 그 만큼 서로의 겹쳐진 곳에서 나는 물
기젖은 소리가 더 깊어져 갔다.
"찌걱 찌걱.. 찌걱 찌걱.. "
"아아학.. 넌 정말 타고 났구나.. 으윽.. 너 떠나고 나면 보고 싶어서 어찌해야 할지.. 아흑.. "
"걱정마시오. 사부가 날 찾는다면 황궁에 있더라도 뛰쳐나오겠소. "
"아흑.. 그 말 꼭 지켜야 한다. 으으윽.. 내가 부르면 꼭 와야 한다.. 흐윽. "
그 후 며칠동안 한적한 숲속에서는 남녀의 뜨거운 소성이 끊임없이 들려왔다.
갑자기 자신의 앞을 막아오며 칼을 겨누는 수 십의 적들을 두고도 오래전 사부와의 뜨거웠던 날을 생
각하던 선우영의 턱에는 한줄기 침이 흐르고 있었다.
"사부, 제자도 사부의 품이 그립구려. 잘 보시오. 사부. 제자가 처음으로 무공을 발휘하는 순간을 말
이오. "
자신의 사부가 어딘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선우영이 한 손을 들어 입가를 정리한
후, 발기되어 터질것 처럼 부풀어 오른 양물을 한껏 세운 채 무인들을 향해 달려갔다.
"난 대송금군 남로정벌대 남도위 선우영이다! 길을 열지 않으면 뚫고 가겠다. "
십이신위 중 열 명의 신위가 선우영을 막아서고 나섰지만, 하의를 찢을 것처럼 양물을 부풀이고 달
려드는 낮뜨거운 모습에 눈을 어디에 둘지 몰라 진세가 흐트러지고 말았다. 셋째인 옥위가 그런 사제
들을 향해 일갈을 외쳤지만 그녀 또한 선우영이 아닌 먼 산을 보며 명령하는 것은 그녀의 사제들과
다름없었다.
"눈을 어디에 둔 게냐! 어서 저 자를 막아! "
"사저. 공격을 할려고 해도 저것이.. 저 망측한 것이 꿈틀거리는 통에.. 어머! "
"이익! 그렇다면 눈을 감앗. 모두 눈을 감고 저자를 공격한다! "
열 명의 십이신위들이 모두 눈을 감고 선우영을 둘러싸고 공격하기 시작했지만, 그런 어설픈 공격이
통할 선우영이 아니었다.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검세를 낙장불입의 초식으로 흘려버린 선우영이 검
패를 살짝 돌려 그녀의 어깨에 몸을 바짝 붙인 채 끈적한 신음을 흘려냈다.
"으으음, 으음.. "
"징그러! 저리가 저리가... "
길을 가다 뱀을 만난 여인처럼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난 적위의 몸매를 아래 위로 흘겨 보는 선우
영에게 두 명의 여인이 합공을 하며 칼을 질러왔다.
"네 이놈! 음적! 내 결단코 네 놈을 살려보내지 않겠다. "
허리를 가를 듯이 옆으로 밀려오는 검과 다리를 자를 것같은 매서운 검격을 일타쌍피의 초식으로 물
리친 선우영이 팅겨나간 공격을 회수하며 재차 밀고 들어오는 여인의 검을 바람같은 동작으로 스쳐
지나갔다. 드디어 비풍초동팔삼이 발휘된 것이었다. 잠시후 마치 환영을 그리듯이 몇 개의 몸으로 나
뉘어진 선우영의 몸이 한 여인의 등뒤에서 나타났다. 터질것 같은 자신의 양물을 그 여인의 엉덩이에
바짝 붙이고 또 다시 끈적한 신음을 흘렸다.
"하아아아아. 좋구나. 아흐흐흐흠.. "
"꺄아악! "
괴상한 무공으로 악명이 높은 포달납궁에서도 생전 듣도 보도 못한 변태적인 공격에 십이신위의 막
내인 풍위마저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지자, 눈을 감고 선우영을 공격하고 있던 나머지 신위들은 두려
운 듯 한걸음씩 물러서고 있었다. 그때 무시못할 내공을 실은 목소리가 싸움판의 한가운데 나지막히
울려왔다.
"멈추어라! "
청색 장포를 단정하게 입은 청년이 선우영의 앞에 검을 겨누며 말을 이었다.
"후훗. 아미를 건드렸더니 재미있는 녀석이 따라 붙었군. 한번 내 공격을 받아보겠느냐? "
일생 일대의 강적을 눈앞에 둔 선우영이 바싹 마른 입안을 몇 번 달싹거렸다. 변변찮은 무공을 가진
자신이지만, 그런 자신의 막눈으로도 지금 나온 이 사내는 쉽게 도모할 수 있는 무인이 아니라는 것
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몸매가 예쁜 여인에게 눈이 어두워 이곳까지 ?아왔지만 이런 강적이
기다리고 있을거라 생각치 못한 선우영이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말을 내뱉었다. 어차피 자신의 인
생은 모 아니면 도 아니었던가.
"이것보다 더 강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한번 받아 보시겠소? "
"내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
"그걸 받아낸다면 그대를 형이라 부르겠소. 어떻소? "
"호오.. 재미있군. 내 일초를 받아낸다면 그 제안을 들어주도록 하지. "
"좋소. 어디 공격해 보시오. "
그때 막사에 무릎을 꿇고 울고있던 은위가 그제서야 달려왔다. 눈가를 정리하며 싸움의 한 복판
을 바라보던 그녀의 봉목이 부릅떠지며 목뒤에 묵직한 혈압이 급격히 올라가는 것을 심법으로 겨
우 다스린 은위가 칼을 빼어들고 외쳤다.
"저.. 저 놈이옵니다. 소궁주. 아미에 저 놈이 있어서.. 이익! 잘 만났다. 내 네놈을 이 자리에서 도
륙내고 말겠다. "
"그게 무슨 말이냐? "
평소의 모습과 너무 다른 행동으로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은위를 바라보던 안이현의 앞에서
선우영의 포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 소저. 역시 이곳에 있었구려. 내 그대가 걱정되어 이곳까지 왔소이다. "
"네 이놈! 여기서도 또 허튼 소리를 할 생각이라면 집어 치우거라. "
"이 아이를 아는가? "
뭔가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듯 싶지만, 내막을 알지 못하는 안이현이 선우영에게 묻자 기다
렸다는 듯이 활짝 웃으며 대답한다.
"저 소저와 아미파에서 약간의 오해가 있었소이다. 그것을 해명하기 위해 이렇게 달려온 것이오. "
"오해라니!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들었거늘! "
"그대같이 곱고 아리따운 소저에게 사소한 오해로 그릇된 내 모습이 보여진 거 같아 안타깝기 그
지 없었소. 자, 이제부터 우리 서로 오해를 풀어봅시다. 사해가 동도라고 하지 않소? "
끝없이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잠재우느라 입도 열지 못하고 심법을 운행하고 있는 은위와, 느끼
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며 웃고 있는 선우영을 신기한 듯이 바라보던 안이현의 눈동자에 한순
간 이채가 번득였다가 사라졌다.
이 소설은 싸우는 장면이 거의 안 나옵니다. 그래서 "무공이 가장 쉬웠어요"입니다. -_-;
선우영은 중원을 싸돌아 다니면서 거짓말이나 하고, 가끔 붕가나 좀 하고 그럽니다.
다음 글은 감기를 동시에 연재중이기 때문에 2주후에 뵙겠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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