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번에 제 글이 짧다고 하신분이 많았네요. 사실 4부 1장, 2장 부분이 좀 많이 길었던 것이고 3장이 제 평균 분량이었는데^^; 그만큼 재미있게 읽으셨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음..;그래도 되겠죠????) 하지만 앞으로도 내용상 ?은 회가 얼마든지 나올수도 있음에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싶습니다. ^^;; 짧으면 짧을수록 글도 빨리 올라온다고 생각해주시고 너그럽게 봐주시기 바랍니다. (아닐 수도 있지만 ;;;) 하지만 이번 회는..깁니다. 아주 쪼금...요
일격평천하(一擊評天下)
일장 춘몽 4장
쿵! 쿵! 쿵!
하는 도끼 찍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천둥같은 소리에 잎새가 흔들리고, 산새들이 휘리릭 날아오른다. 월진은 이 광경을 좋아했다. 이 소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땀내도 좋아했다.
쩌어억 나무 갈리는 소리가 들리면 아버지는 미리 묶어 놓았던 밧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나무기둥에 밧줄이 휘감긴다. 월진은 이 소리도 좋아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퍼지는 아버지의 진한 땀방울.
[월진아 잘 보거라. 나무를 베는 것은 그냥 아무렇게나 도끼를 휘두른다고 될일이 아니다. 같은 힘, 같은 간격으로 같은 장소를 찍어야만 나무를 이길수 있는 것이다. 자 말해봐라, 어떻게 해야한다고?]
[같은 힘, 같은 간격, 같은 장소요]
아버지가 껄껄 웃엇다.
[맞다, 그래야 나무를 이길수 있다.]
그의 웃음 소리는 맑았다. 곧잘 화를 잘 내고 월진을 때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은 나무꾼이였다. 좋은아버지였다.
[월진아, 잘 기억해야 한다. 같은 힘, 같은 간격, 같은 장소다 그래야만.......]
나무를 이긴다.......월진은 그 말을 한 또다른 사람을 기억해냈다.
[우리 그 나무를 한번 이겨보자꾸나]
그러자 웃음 섞인, 부드러우며 아름다웠던 한 여인의 목소리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오늘 나를 만났던 것은 그에게 비밀로 해주지 않겠니?]
그녀의 사매였던 앙칼진 소녀의 목소리도 기억했다.
[흥 더러운 입이나 다물어라!]
불같이 살다 죽었던 한 남자의 외침도 기억해냈다.
[비록 피를 토하고 죽을 지언정, 결코 무릎을 끓지 않는다!!]
정말 너무 쇠어서 듣기가 싫었던, 그러나 이제는 어딘가 친숙해진 늙은 목소리도 기억해냈다
[본 공자는 천하제일 풍류 공자 이니라]
그리고....그리고....또 있었는데. 또 기억이 날듯한 목소리가 있었는데. 이사람이야 말로 잊어서는 안되는, 생각을 하려 할때마다 가슴이 메어져...그렇게 속으로 말하면서도 월진은 끝내는 마지막 그 인물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때였다.
[애송아. 9년 전 너와 나는 우연히 깊은 심저(心底)에서 접촉을 해 교감했었다.]
어떤 남자가 말하는 것을 월진은 들었다.
[그것을 실마리로 나는 너의 그때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수 잇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그냥 잊고 살거라. ]
그것은 어떤 청년의 맑은 목소리였다. 어디선가 한번 들은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9년 전 그 구결을 기억할 것이다.]
월진은 그 목소리가 그 옛날 자신에게 알수 없는 문장들을 들려주었던 바로 그것임을 깨달았다. 그때 그것은 처음에는 어린 동자의 목소리였다가, 점점 나이가 든 목소리로 변했었음을 기억해냈다.
[그것은 젊은 날 내가 유용하게 써먹던 구결들이다. 이미 그것들이 필요 없어진지 오랜 세월이 지났고, 나는 또 이미 신선이 되고 말았으니, 속세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 허니 만약 네가 그 구결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내 별호를 대신 써도 좋다.]
월진이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당신의 별호가 무엇이길래?]
그 말이 재미있다는 듯 그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웃음을 펑 터트렸다.
[하하하, 너는 이미 수도 없이 들었을 텐데? 본공자는 바로........]
월진이 귀를 기울였지만, 그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지더니 결국 들리지 않았다. 월진 자신도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그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늙은이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갈!"
월진은 자신의 머리를 뭔가가 "딱" 하고 치는 격렬한 통증를 느끼고 벌떡 일어났다.
"아얏!"
정신이 바짝들며 눈이 번쩍 떠졌다. 어안이 벙벙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낡은 천장, 헌 담요. 아늑한 분위기. 월진은 그곳이 자신의 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 사람은 머리에 흰머리가 희끗희끗 있는, 한 아낙네였다. 그녀는 월진을 바라보며 기쁨의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감격에 차 말했다.
"월진아! 아이고 네가 깨어났구나......"
월진은 어리둥절하다가,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하룻밤만에 왜 이렇게...왜 이렇게....늙으셨어요?"
그러나 월진의 어미는 그저 어리둥절하는 월진을 껴안으며 서글프게 울 뿐이었다. 월진의 아버지가 이미 예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형제 자매들이 모두 죽거나 사라졌음과 함께 자신이 정신을 잃은 사이 이미 9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월진이 안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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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의 주인들이 다가오는 초여름의 싱싱한 손님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숲은 나뭇잎들은 너무나도 싱그렇게 이파리를 펼쳤다. 대지에는 흙내음이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 그 대지를 밝아서 산을 오르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바로 월진이었다. 월진은 오늘도 나무를 하기 이곳에 올라왔다. 그의 손에는 한자루의 커다란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쓰던 도끼였다. 그는 쓸만한 나무를 발견하고는, 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도끼를 힘차게 휘둘렀다 .
쿵!
하고 나무 기둥에 깊이 도끼가 찍혔다. 깊이 박힌 날을 뽑아내고 다시 몇번 쿵, 쿵하고 쳐내렸다. 나무는 몇번의 도끼질이 끝나지도 않은 채 나무결이 맞물리는 끼익, 하는 비명소리를 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숲속이 온통 나무가 바닥에 내려 앉는 소리로 울려퍼졌다. 나무가 쓰러진 모습을 월진은 한참동안이나 멍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무를 가지친 다음 다시 다듬기 시작했다. 하루의 나무질을 끝내고 하산하려고 할때, 저 밑에 한 늙은 중이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산속에서 중을 본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중은 앉아서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쭉 뻗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참으로 편해 보였다. 월진은 신기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중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조용히 지나치려 했다. 그 때였다.
"나무아미타불. 시주, 이 화상이 길을 좀 물어도 되겠소이까?"
월진이 그 소리에 그 늙은 중을 쳐다보았다. 중은 어느새 눈을 뜨고 일어서서, 합장을 하면서 월진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띄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 노승의 인상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었다. 월진은 자기도 모르게 그 노승에게 호감을 느끼며 말했다.
"스님은 어디로 가려고 하십니까?"
"이 근처에 보각사라는 절이 있는지요?"
"보각사라면 길을 잘못 들으셨습니다. 보각사는 이 산이 아니라 좀더 남쪽으로 가셔야 하는데, 거기에 도정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중턱에 있지요"
"아, 그렇군요. 노승이 또 길을 잘못 들었군요. 나이가 들어도 너무 들었나 봅니다. 허허"
월진은 그의 소탈함이 맘에 들었다.
"헌데 시주는 혹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신지요?"
월진이 그 말에 깜짝 놀라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사실 노승은 이곳에서 그늘을 만끽하면서 시주께서 나무를 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근데 도끼질 소리가 불규칙적이고, 때때로 한참동안 들리지 않다가 다시 소리가 들리길래 이 소리의 주인은 분명 깊은 고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월진은 그 말에 노승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노승은 껄껄 웃으며
"물론 이는 모두 소승이 멋대로 하는 추측으로, 혹시 아니라면 그저 늙은 땡중이 노망이 났나 생각하십시오"
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스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무슨 고민꺼리라 할 것까진 없지만 최근 제게 몇가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일을 받아들이는데 조금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나 봅니다."
"호오, 그것 참 흥미롭군요. 이것도 인연인데 혹시 이 노승이 시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지요. 어쩌면 제가 시주의 어지러운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알지도 모르죠."
월진은 망설여졌지만, 이 중의 태도가 부드럽고 또 자신도 어딘가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터라 말을 꺼내기로 결정했다. 사실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도 아직 이야기를 못했던 것이다. 그녀에게 괜한 걱정을 끼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에게 한번 이야기 볼까"
그래서 월진은 백용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자신이 서문기를 만나 천년만화수를 베기 시작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문기, 심연수, 허난묘, 막광세 등을 만났고, 이후 천하제일 풍류공자라는 이상한 늙은이를 만났던 일. 그 늙은이가 제시했던 내기와, 그 내기를 결국 서문기의 도움으로 자신이 받아낼수 있었던 일. 그러나 이후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보니 9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 그 세월동안 자신의 가족은 모두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었고 지금 자신의 곁에는 늙어버린 모친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두 이야기했다. 사실 어머니가 말하길 9년동안 월진은 행방불명이 되어있었는데, 어느날 어머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침상위에 어른이 된 자신이 누워 있었다는 기묘한 이야기도 했다. 노승은 월진을 하는 말을 조용히 눈을 감고 듣기만 했다.
"그런데 걸리는 것은, 제가 행방불명이 된 틈에 팔에 이빨자국의 상처가 생겼습니다. 저는 그 상처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볼때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고, 볼때마다 가슴이 이상해집니다."
노승이 월진의 이야기가 끝나고도 한참동안 말을 안하고 있다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시주의 이야기는 실로 기묘하구려."
월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주의 이야기는 실로 일장춘몽의 이야기 같군요. 시주는 혹시 남가일몽(南柯一夢)이란 고사를 아십니까?"
"그것은 어떠한 이야기입니까."
노승은 월진에게 한가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당나라 시대 강남에 순우분이란 이가 살고 있었다. 그의 집 남쪽에 커다란 괴화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어느날 순우분은 친구들과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술을 마시다가 취해 잠이 들었다. 그러다 비몽사몽간에 깨어보니괴안국(槐安國)이라는 나라에서 온 사신이라면서 두 관원이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것이다. 순우분은 그들을 따라 괴화나무 아래 동굴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엔 화려한 웅장한 도성이 있었다. 순우분은 괴안국 국왕의 환대를 받고, 부마에 자리까지 오르며 남가(南柯)군이라는 지역의 태수자리까지 얻게 되었다. 그 후 행복한 삶은 살던 순우분의 공주와 다섯 아들과 두 딸을 두었고, 남가군은 20여년간 순우분의 선치로 태평성대를 맞이하며 백성들의 칭송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선치를 시기하는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를 들은 국왕은 본래 속세의 사람이니 고향에 다녀오라고 하면서 3년 후에 다시 부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관원을 따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자신의 집 앞 처마 밑에까지 오게되자 순우분의 관원이 갑자기 지르는 외침에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그랬더니 자신이 눈을 뜬 곳은 바로 술을 먹고 처음에 잠이 들었던 그 괴화나무 아래였다. 그의 아래에는, 남쪽으로 뻗은 괴화나무 밑에 있는 개미집 위에엿다. 괴화국에서의 부귀영화의 기억이 생생하였고 또 나무를 더듬어 남쪽으로 난 가지를 찾아가니 네모난 모양의 개미집이 또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다스리던 남가군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러다가 날이 어두워져 돌아가 다음날 다시 보기로 했지만, 밤 사이에 비바람에 몰아쳐 개미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뒤였다. 순우분 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도술에 전념하다 3년 후에 생을 마감했는데, 그것은 바로 괴안국의 임금과 약속했던 기한이었다.
월진은 노승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또 다른 비슷한 이야기로는 한단지몽(邯鄲之夢)이란 이야기가 있지요"
노승은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시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일이다. 도사 여옹은 한단(邯鄲)으로 가는 도중 주막에서 쉬다가 노생이라는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산동(山東)에 사는데, 아무리 애를 써봐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산다며 신세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으로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 속에서 점점 커지는 베개 구멍 속으로 들어가보니, 고래등 같은 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씨 명문가인 그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하여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후 10년간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 잡혀가게 되었다. 노생은 포박당하며 "내 고향 산동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았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벼슬길에 나갔던가.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거닐던 때가 그립구나"라고 말하며 자결하려 했으나, 아내와 아들의 만류로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사형은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수년 후 모함이었음이 밝혀져 다시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후 노생은 모두 고관이 된 아들 다섯과 열 명의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다가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그런데 노생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여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밥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뜸이 들지 않았을 정도의 짧은 동안의 꿈이었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인생은 다 그런 것이라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노생은 한바탕 꿈으로 온갖 영욕과 부귀와 죽음까지도 다 겪게 해서 부질없는 욕망을 막아준 여옹의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하고 한단을 떠났다.
"스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저는 시주는 하나의 기나긴 꿈을 꾼 것과도 같다고 말하고 싶군요"
"하지만 스님. 이야기속의 꿈은 실제로는 찰나와도 같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저는 깨어나보니 실제로는 9년이나 기나긴 세월이 지났답니다."
"물론 시주가 기절한 뒤부터야 그렇죠. 하지만 그 이전에, 이 모든 것은 시작은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
월진은 그 말에 한참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어 대답했다.
"제가 백용묘를 만난 일이 아닐까요?"
노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백영묘는 순우분에게 있어서 바로 괴안국의 관원이자, 노생에게 있어 도자기 베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비록 시주의 9년 세월은 사라졌지만, 시주 자신의 기억에 있어서는 실로 찰나와도 같지 않았습니까?"
월진은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시주가 백용묘를 보고 겪은 일들은 이미 지나간 일들이고, 이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하나의 덧없는 꿈과도 같지요."
"스님은 지금 저보고 더이상 생각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을 잊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주는 이미 모든 것을 잊지 않았습니가?, 비록 다른 가족들이 모두 사라졌지만, 시주에겐 아직 자당께서 남아 계십니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은 오히려 마음에 번민만을 가져다 줄뿐이지요."
월진은 한참덩동안 생각했다.
"......스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게는 어머니가 남아있죠. 지나간 일에 자꾸 신경을 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군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시주는 참으로 영민하십니다."
"제게 좋은 말씀을 주셔 감사합니다."
그제야 월진은 가슴이 개이는 것을 느끼며 활짝 웃었다. 노승이 떠나가려는 찰나, 월진이 말했다.
"도정산까지 찾아갈수 있겠습니까? 제가 길 안내를 해드리죠"
늙은 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햇다.
"시주의 말씀은 고맙소. 하지만 사실 노승은 오래전에 이 근처를 와본적이 있소이다. 너무 오래되서 길이 잘 생각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 것 같군요"
"아, 그랬군요."
"벌써 9년전이군요. 그때는 겨울이라 산속이 온통 눈으로 덮여있었는데, 그때도 시주와 같이 번민이 많은 한 나무꾼의 이야기를 들어준 적 있었죠. 감회가 새롭군요. 나무아미타불..."
그렇게 말하며 늙은 중은 떠나갔다.
그리고 몇일 후였다. 월진이 그 날도 나무를 하고 하산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 주위가 왠지 어지럽혀지고, 한바탕 소란이 피운 듯한 흔적이 있는 것이었다.월진이 깜짝 놀라 문을 덜커덩 열자마자, 자신의 안면으로 화살처럼 다가오는 주먹을 느꼈다. 월진이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목을 돌려 가까스로 피했다.
"어라?"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자신의 허리를 누군가의 발이 강타하는 것을 느꼈다. 월진은 나뒹글어졌다. 껄껄 웃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월진이 고개를 드니 왠 콧수염을 기르고 키가 큰 중년인이 흑의를 입고 서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2명의 인물이 더 있었는데 하나는 키가 작고 몸이 왜소해 어린 아이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나이를 많이 먹은 난쟁이였다. 또 다른 한명은 머리가 길고 턱이 튀어나왔으며, 청의를 입은 남자였는데, 20대 후반으로 보였으며 검을 차고 있었다. 난쟁이가 웃었다.
"형님, 추하이다. 어찌 일권에 격중을 못합니까?"
흑의중년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 어린 놈이 의외로 몸이 잽싸군."
청의를 입은 남자가 말했다.
"큰형님께선 요즘 새로 얻은 첩때문에 허리가 안좋으신가 보군요."
그들은 그말에 와락 웃었다.
월진이 정신을 차리며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기 탁자 앞에 그의 모친이 있었는데, 혈도가 잡힌 듯 했다. 그녀는 겁에 질리고 놀란 얼굴로 월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시오? 강도요? 우린 보다시피 아무 것도 가진게 없소"
중년인이 그의 콧수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가진게 없긴? 바로 이 집이 있지 않느냐. 이 집은 이제 우리가 쓸터이니 너는 이제 우리 시중을 들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의 어미의 목숨은 없다"
월진이 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물었다 .
"당신들은 우리집에 와서 무얼 하려는 거요?"
그때 난쟁이가 말했다.
"큰형님. 그는 이 숲의 나무꾼이니 그에게 그것을 묻는게 어떻소? 혹시 단서가 잇을지 모르지 않소."
그에 흑의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월진에게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 동굴 같은 것이 있느냐? 안에 커다란 나무가 잇는...."
월진은 깜짝 놀랐다.
"당신들은 혹시 천년만화수를 말하는 것이오?"
이번엔 그들 세명이 동시에 놀랐다. 중년인이 잽싸게 손을 내밀어 월진의 목을 잡아올렸다.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
월진이 컥컥 목이 막혀옴을 느끼면서도 말했다.
"그것보다...그 나무를 찾는다면 내가 안내해주겠소."
이에 청의 남자가 말했다
"큰형님, 작은 형님. 여기선 일단 그를 내려주고 자세히 물어봅시다."
큰형님이라 불린 그 흑의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월진을 내려놓고 배를 세게 걷어찼다. 월진이 깊은 통증을 느끼며 신음했다.
"그래, 너는 천년만화수란 이름을 누구에게 들었냐?"
"예전에도 당신들처럼 그 나무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소. 하지만 그들은 모두 그 나무의 주인 때문에 모두 죽거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소."
월진은 그들과 길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고, 하루 빨리 돌아갔으면 했기 때문에 그냥 짧게 줄여 말했다.
난쟁이가 말했다.
"그 주인이란 작자는 누구냐?"
"나도 잘 모르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늙은이라는 사실뿐이외다."
흑의중년인이 크크 웃으며 말했다.
"누군지 뭔 상관이랴. 우리 하북패삼살에게 방해하는 자는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월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흥, 천하제일 풍류공자의 손에 걸리면 네놈들은 모두 다 일장감이다."
그러나 이내 생각나는것이 있었다.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슬을 먹고 다시 젊음을 얻었나?"
흑의인이 그때 말했다.
"너는 우리를 안내해라"
"그보다 먼저 어머니를 놓아주시오"
난쟁이가 비릿하게 웃었다.
"네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보고 그때 놓아주겠다. 이 년도 같이 가게 될것이다."
그리하여 월진은 그의 어미니를 인질로 삼고 있는 하북패삼살(河北覇三煞)을 동굴로 안내하게 되었다. 월진은 그들이 하나의 나무그루를 가지고 있는데, 그게 불생불사목임을 깨달았다. 하북패삼살은 첫째가 콧수염을 가진 흑의중년 호막, 둘째가 난쟁이인 맹천살, 셋째가 검을 지닌 청의남자 해막청이었다. 그들은 하북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무서운 악인들이었다. 이들도 역시 천년만화수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어 이곳까지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이 산속에 오기전, 이곳에 나무꾼 모자의 집이 있음을 미리 들어 알았기 때문에 그곳을 근거지로 수색을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웬걸, 이 나무꾼이 천년만화수의 장소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곧 천년만화수의 동굴 앞으로 오게 되었다. 월진은 실제로는 9년만에 오는 것이지만, 그동안의 기억이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불과 몇주일이 지난 것과 다름 없었다. 그런데 모든 것은 다 변함이 없었지만, 딱 한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동굴 앞에 하나의 무덤이 있었던 것이었다. 월진이 이상함을 느끼는 사이, 하북패삼살도 그 무덤에 흥미를 느낀 듯 자세히 살펴보았다. 막내인 해막청이 탄성을 내지르며 외쳤다.
"형님! 보심쇼! 이거 9년전에 갑자기 사라진 벽력마 막광세의 무덤이외다!"
월진은 속으로 놀라면서도 짐작 되는 것이 있었다.
"아마도 심연수와 허난묘가 세웠나 보구나"
그 무덤은 오랜 세월동안 관리를 하지 않아 불품없이 변해 있었다. 그러나 왜 서문기의 무덤이 없을까 잠시생각하다가, 이내 서문기는 피와 살덩이가 산산조각 흩어져 흔적도 없어졌으니 그녀들로서는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도리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곳에서 죽었다니?! 그럼 막광세도 천년만화수를 찾아왔었단 말인가?"
그들은 순간 그 무시무시한 막광세가 죽은 이유가 바로 천년만화수의 주인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속으로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둘째인 맹천살이 말했다.
"형님 어떡하죠? 그 주인이란 작자가 굉장한 고수인 모양인갑소"
막내 해막청이 말했다.
"일단 나무가 있는지 확인하고 생각해보죠. 그 주인이란 작자가 어떠한 자인지 모르지만 지금 없는 모양이니 잠시 들어가 정말 천년만화수가 있는지 보는게 어떨까요?"
그들은 그렇게 동굴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이내 동굴 입구가 굉장히 비좁았기 때문에 들어가기 힘듬을 깨달았다. 그러나 마침 맹천살이 난쟁이인지라 몸집이 작아서, 축골공을 이용해서 들어갈수 있었다.
잠시후 난쟁이가 다시 나왔을때, 그의 얼굴엔 놀람과 경악이 가득차 있었다. 그는 하얀 천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묻혀서 나왔다. 곧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황금빛의 꽃가루임을 깨달았다.
"보시오!! 형님! 아우! 이미 천년만화수는 불생불사목과 접목되어 꽃을 피우고 있었소!!"
"이미 그 주인이란 작자가 이미 시도를 했었군."
"이 꽃가루를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 따르는 구만! 실제로 있을 줄이야!"
그들이 환희에 차 이렇게 이야기 할때, 월진은 오히려 안타까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서문기의 부탁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의 딸은 아마 저 꽃가루가 없어서 4년전에 죽었겠지. 나도 어쩔수 없었지만, 그에게 정말 미안하구나. "
그러나 이내 의문이 들었다.
"천하제일 풍류공자는 정말 약속을 지켜 천년만화수를 포기했나 보구나. 그렇다면 누가 접목을 했을까? 9년 사이에 누군가가 다시 천년만화수를 찾아왔던 것일까?"
그러나 이내 월진은 속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혹시 그 노인이 스스로 접목을 한것이 아닐까? 나를 위해?"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고, 설사 자신을 위해 했더라도 이미 9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사이 5년안에 해야할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게 되었다. 또 자신이 저 꽃가루를 가진다 할지라도 어떤 방법으로 환단을 만드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는 기쁨에 차서 들뜬 그들 세명에게 말했다.
"원하는 것을 얻었으면 이제 우릴 놓아주시오."
이에 해막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월진의 어미의 혈도를 풀고 놓아주었다. 아혈이 풀린 그녀가 월진을 붙잡고 물었다.
"월진아!...이게...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어머니, 죄송해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그가 모친과 함께 그자리를 떠나려는 찰나, 맹천살이 말했다.
"잠깐 멈추거라."
월진이 그 말에 뒤돌아 보며,
"또 무슨 일이오?"
그러나 맹천살은는 흐흐 웃으며 첫째인 호막에게 말했다.
"형님. 저들을 그냥 돌려보낼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 꽃가루를 가졌다는 사실이 강호에 퍼지면 귀찮은 일만 생기지 않겠소이까?"
그 말에 호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둘째아우는 면밀주도하군."
월진은 속으로 섬칫 하며 급히 말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소. 맹세하오"
호막이 흐흐흐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을 어떻게 믿느냐?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죽은자는 말이 없다는 사실 뿐이다."
그리고는 막내인 해막청에게 눈빛을 보냈다. 해막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았다.
"어찌 이토록 악독할수 있소?! 약속이 틀리잖소!"
그러나 해막청은 그 말을 무시하고는 일검을 스윽 내질렀다. 쾌검이었다. 월진은 재빠르게 피하며 나뒹굴어졌다.
"어랍쇼!"
해막청은 월진이 피하자 놀라워 했다. 그러나 월진이 나자빠진 것을 보고 그저 몸만 굉장히 빨랐지 경신법을 익힌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좀더 살벌하게 검을 휘둘렀다. 월진은 순식간에 온몸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간신히 치명상은 면할 수 있었다. 몇번의 나뒹굴어짐 끝에 월진은 동굴 벽을 등을 마주하게 되어 더이상 피할 곳이 없게 되었다. 해막청이 흐흐 웃으며 마지막 일검을 내지려는 찰나, 그의 몸앞을 가로막는 인영이 잇었다. 순식간에 월진 대신 그 인영은 해막청의 일검을 복부에 깊이 찔리게 되었다. 월진이 그것을 보고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어...어머니!!!!"
해막청은 의외의 일에 잠시 멈칫 했으나,
"흥 좀 있으면 아들과 같이 보내줄텐데, 급하기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그녀의 복부에서 뽑아냈다. 피가 주르륵 뿜어져 나왔다. 월진이 눈물이 앞을 가리며 얼른 쓰러진 모친 곁으로 가려 했지만 다시 해막청의 일검이 그의 왼발을 찔러왔다. 가슴이 천갈래만갈래 찢어지는 가운데, 월진은 심장에서부터 퍼지는 격렬한 복수심을 느꼈다.
"너!!!...너.!!"
그리고 앞뒤 가릴 것 없이 해막청을 향해 뛰어들었다. 해막청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코웃음치며 일검을 정확히 월진의 심장을 향해 찔러갔다. 그때였다. 월진의 몸이 살짝 비켜지는 것이 아닌가? 일검은 그의 겨드랑이를 스쳐지나갔고, 월진은 오른손은 내j어 일장을 내질렀다. 해막청이 대경실색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얼른 한손으로 그의 일장을 내받았다. 펑! 하고 소리가 나며 해막청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뒤로 물러난 해막청이 그자리에서 무릎을 끓고 피를 울컥 쏟아냈다. 그것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와 같은 고수가 설마 저런 벽지의 젊은 나무꾼에게 단지 일장에 피를 쏟고 무릎을 끓다니! 호막과 맹천살은 너무나 깜짝 놀라 그만 할말을 잃고 말았다.
월진이 자신도 모르게 내지른 것은 바로 그 옛날 서문기가 가르친 항룡유회 초식이었다. 비록 부지불식간에 낸 일장이었지만 그 위력은 실로 놀라웠다. 월진은 스스로 놀라는 가운데 황급히 모친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출혈이 심하고 정신을 잃고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었다간 목숨이 위험했다.
한편 하북패삼살은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둘째 맹천살이 분노어린 가운데 이를 바득 갈며 외쳤다.
"너 이 새끼. 이제보니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그리고 그도 월진을 향해 달려들며 일권을 내질렀다. 그 일권에 서린 위력은 가히 굉장한 것이어서, 그는 이 일권으로 하북에서 파암권(破巖拳)이란 별명마저 얻었다. 월진이 그 주먹에 단숨에 뻗어져 나가면 뒹굴었지만, 이내 벌떡 일어나서 맹천살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첫째 호막이 깜짝 놀랐다.
"이놈, 맷집이 왜 이리도 세단 말인가?"
한편 맹천살의 일권이 월진이 복부에 다시 정통으로 강타되었다. 월진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옴을 느끼면서도 왼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바로 허리춤을 격타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흐흐, 간지럽구나"
그렇게 웃는 맹천살이 자신도 오른발로 월진의 허리춤을 격타했다. 월진은 격렬한 고통을 느끼는 가운데에서도 초조함과 분노로 다시 한번 항룡유회 초식을 내질렀다. 맹천살은 이미 그 일장을 대비하고 있었기에 진기를 끌어올리며 자신도 대담하게 맞받아쳤다. 펑! 하고 굉음이 들렸다. 맹천살은 그의 일장을 맞받아칠수 있었지만 속으로 경악했다.
"어찌 이런 위력이 있을 수 있는가? 내 일권은 하북에서도 받아낼수 잇는 자가 손에 꼽힐 정도인데?"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월진이 자신의 일장이 효과가 없자 재차 다시 한번 더 내지르는 것이 아닌가?
"이런 미친 놈!"
놀라는 가운데 허겁지겁 다시 그의 일권을 맞받아쳤다. 맹천살은 이미 처음 일장는 대비하고 있었지만, 두번 째 일장은 미처 예상을 못했다. 이런 변화가 없는 반복된 공격은 무술에 있어서 효과를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빠르게 다시 공격해왔기 때문에 미처 피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맹천살은 또 한번 월진과 펑!하고 일장을 맞받아쳤다. 맹천살은 그의 팔 전체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뒤이어, 또다시 이 어린 것이 같은 공격을 또 내지르는 것을 보고 그만 대경실색하여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의 실수였다. 월진의 일장은 정확하게 더욱 빠르게 그를 따라잡아 마침내 그의 가슴을 격장하고 말았다. 맹천살은 뒤로 나자빠지며 피를 주욱 흘리며 무릎을 끓고 말았다.
호막은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는 월진이 내지르는 초식이 바로 그 항룡십팔장의 절초 항룡유회라고 처음에 생각했지만, 그가 세번이나 연속으로 그 초식을 내지르는 것을 보고 경악함을 느낄 따름이었다. 항룡유회는 원래 기력을 극히 소비하는 일격필살의 초식으로, 저처럼 계속적으로 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의문을 품는 가운데에서도 호막은 이놈이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님을 알고, 맹천살과 해막청에게 말했다.
"같이 공격함세!"
두명은 비록 내상을 입었지만 몸을 가눌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윽고 하북패삼살이 함께 월진에게 달려들었다. 먼저 해막청의 일검이 월진의 정수리를 찔러왔다. 그러나 월진이이 오히려 일검을 가까스로 관자놀이 바로 옆으로 비끼더니 강하게 머리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해막청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그만 월진에게 박치기를 당해 머리가 깨지고 말았다. 한편 호막과 맹천살은 각각 일장과 일권을 월진의 등과 배를 향해 내질렀다. 월진은 등의 일권은 무시했다.그는 호막의 일장을 받아쳤다. 그는 아까전, 맹천살에게 세번의 격을 시전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머리속에 시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같은 힘, 같은 간격, 같은 장소]
도끼 대신 손바닥을 휘둘렀을 뿐이지,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살아오면서 평생 해오던 바로 그 동작이 아닌가? 그것만이 머릿속에 계속 읊조리면서 순식간에 호막에게 삼격(三擊)을 연속가격했다. 그 가운데 맹천살의 일권이 등을 가격해 척추가 부서지는 듯한 강렬한 아픔을 맛보았지만, 월진은 마침내 호막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맹천살은 찰나에 호막과 해막청이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월진은 몸을 휫 돌려 다시 그에게 일장을 내질렀다. 맹천살은 속으로 화가 치밀어 외쳤다.
"몇번이나 같은 공격이 통할 것 같으냐!!"
그는 월진의 일장을 맞받아치는 대신, 그의 손목을 부여잡고 몸을 피하면서 강하게 발뒤꿈치로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다시한번 월진의 옆구리를 강하게 가격했다. 이 일각은 실로 위력적이어서, 월진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에서도 이판사판으로 반대편 손으로 일장을 내질렀다. 이처럼 중심이 잡히지 않는 자세에서 나온 일장에 무슨 위력이 있으리라, 맹천살은 이렇게 판단하며 자신도 맞받아쳤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 일권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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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위험하구만."
월진이 그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상처가 그렇게 깊었나요?"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상처야 물론 깊지만 심장과 폐는 무사하니 그것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울 일은 없겠지"
"그럼 어째서?"
"자넨 몰랐나? 원래부터 자네 어머니는 이미 기혈이 약해지고 몸이 많이 안 좋으셨네. 그런 가운데 칼에 찔리기 까지 했으니, 몸이 버텨내지 못할걸세."
월진은 그저 그 말에 멍하니 가만 있었다.
"요 며칠이 고비이니, 잘 간호하게.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저 하늘의 뜻이니 각오는 하두게"
그말에 깜짝 놀란 월진이 말했다.
"각오? 무슨 각오 말입니까?"
그러나 의원은 그 말에 대답않고 그저 월진의 눈만 바라보았다. 이내 월진이 그의 말뜻을 깨닫고, 억장이 무너지듯, 가슴이 조각이 나듯, 그렇게 충격속에 의원이 떠나가는 것을 구경만 할수 밖에 없었다.
월진은 며칠동안 밤낮없이 간호했다. 그리고 어느날, 월진은 침대 앞에 앉아 머리를 침대 맡에 두고 얕은 잠에 빠졌다가, 문득 머리에 어떤 손이 올려지는 것을 느끼고 깨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깨어나셨군요!"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듯 정신이 맑아보이고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월진은 너무나도 기뻐서 눈물이 왈칵 쏘아지며 그녀의 품에 안겨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가족들도 모두 사라진 지금, 어미마저 죽어, 혼자 남겨질 것이 그는 너무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의 마음은 사실 아직 13살의 어린아이의 마음,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착하지..아이야.. 울지마라 울지마라. 어미는 괜찮다."
그렇게 그녀가 월진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월진은 더욱 격하게 울었다. 한참동안이나 그렇게 운 뒤, 월진은 그의 모친에게 자신이 9년 전 겪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했다. 모친은 그 놀라운 이야기들을 그저 담담히 듣기만 할 뿐이었다. 월진이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머니, 이제 저는 깨달았어요. 저같은 나무꾼의 자식은 그저 아무런 욕심도 내지 말고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이 맞다는 것을요."
그러면서 그는 얼마전 만났던 스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생의 덧없음과, 이제 평생 어머니께 효도하며 살것이라고 다짐했다.
월진의 말이 끝나자, 그녀가 한참동안이나 깊은 회상에 잠기는 듯하니,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 분수에 맞는 삶을 산다라....아이야, 너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월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모친을 바라보았다. 모친은 그런 월진을 한참동안이나 쳐다본 후,
"내 패물 상자를 가져다 주지 않으렴?"
라고 말했다. 월진이 그녀가 시키는 대로 패물상자를 서랍에서 꺼내와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상자를 열고 안에서 하나의 푸르른 옥반지를 꺼냈다.
"이것이 뭔지 아느냐?"
월진이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니 애비가 나와 혼례를 올릴때 유일하게 준 예물이란다"
옥은 물론 싸구려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유일한 예물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한 것이었다. 하지만 월진은 놀라지 않았다. 그의 부모가 가난한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옥반지를 보면서, 추억에 회상하며 이야기 했다.
"니 애비가 가난한 나무꾼이란 사실은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 그러나 니 애미는 원래 높은 관직에 있는 관원의 여식이었다. "
월진은 그 말에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런 월진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래전 월진의 아버지 월강은 산속에서 나무를 하다가 마침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하다 길을 잃고 헤매던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둘은 서로 한눈에 반하게 되었는데, 현실은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그러나 월강은 대담하게도 그녀를 데리고 도망치고는 머나먼 길을 떠나 마침내 이런 벽지로 들어와 그녀와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오랜 세월동안 함께 지내며 수많은 고난을 함께 겪었다. 그리고 6명의 자식까지 얻어 나름 행복을 얻었다. 그러나 월진도 알다시피, 그후 위로 3명의 아들들은 징병이 된후 소식이 끊겼고, 한명의 딸은 흉적에게 납치되었으며 또 다른 딸은 역병으로 죽었던 것이다. 그리고 막내였던 월진마저 위독한 가운데 사라지고 말아, 그들은 커다란 절망과 슬픔속에 몇년동안을 지내야만 했다. 그리고 급기야, 월진의 아버지 월강마저 죽었을 때, 그녀는 세상만사에 진저리가 나고 허무함만이 느껴져 속세를 버리고 비구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집안을 정리하기 위해 몇가지 물품을 시중에 팔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침대 위에 월진이 누워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월진은 그녀의 인생사를 가만히 들으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고 마음이 뭉그러졌다. 차례차례 자식을 모두 잃고 끝내 지아비를 잃어 혼자서 몇년간을 외롭게 살아왔던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쓰려왔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야, 너는 옛날 부터 다른 사람 말을 잘 듣고, 곧이 곧대로 깊이 믿곤 했지. 그 중이 말한 것은 옳다. 실제로 니 애미도 네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진 이 모든 것이 덧없는 꿈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네가 돌아왔을 때 여태까지의 모든 괴로움도, 모든 절망도 잊고 하늘께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렸다. 내게 이토록 커다란 기쁨을 주신 것을 감사했단다. 내게 있어 너는 결코 덧없는 것이 될수 없다."
월진은 자신도 볼에 뜨거운 눈물이 조용히 흐름을 느꼇다. 그녀 또한 눈가에 물기가 젖어 있었다.
"니 애비가 혹시 분수에 맞게 살며, 이 애미를 포기했다면, 내게 이런 행복이 있었을까? 많은 자식들이 내곁에 떠나가 니 애미는 너무 괴로웠지만 결국 너는 지금 내 앞에 있기 때문에 또 다시 행복하다... . 니 애비가 혹시 분수에 맞게 살았다면, 너는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월진의 오른손 소매를 걷었다. 거기에는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난 깊은 상처가 있었다.
"너는 이 자국이 누구것인지 생각해보았느냐?"
눈물을 훔치며 월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바로 네가 문것이란다...."
월진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이 이빨자국이 제것이라고요?"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너의 애미다. 나는 너의 이빨이 몇개이고, 하나하나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알고 있다. 이 것은 물론 너의 것이다. 진아, 너는 9년간 아무런 기억이 없겠지. 나는 왜 네가 네 팔을 그토록 처절하게 물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토록 깊은 상처를 스스로 내는 사람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일을 겪은 사람이 아니겠느냐? 너는 9년간 깊은 꿈을 꾸었고, 그것은 어쩌면 덧없이 지나간 꿈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꿈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그러한 꿈이 아닐까?"
월진은 그 말에 멍히 자신의 오른팔에 난 그 자국을 보았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것이라니? 나는 왜 이토록 깊은 상처를 냈을까? 그는 도저히 알수 없었다...
"누군가 말하지. 삶은 그저 일장춘몽과도 같아 깨어나고 나면 그저 덧없을 뿐이라고. 어쩌면 그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진아. 너는 아직 20살이고 하물며 너의 마음은 아직도 어린아이의 그것과도 같지 않느냐.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될지라도, 너는 아직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니 애미는 생각한다. 너처럼 어린 아이가 분수에 맞는 삶이란 생각을 가진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 아니겠느냐... "
월진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이며 굵은 눈물을 뚝뚝 손등위로 떨어트릴 뿐이었다.
"...진아......너는 아직 꿈에서 깨어나서는 안되는 아직 어린 아이란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조용해졌다. 월진이 문득 이상해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그녀는 얼굴 한가득 행복한 모습을 짓고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어머니...?"
이내 월진은 깨달았다. 그녀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월진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침대위에 천천히 눕히고 담요를 단정히 덮었다. 그리고 절을 크게 세번 했다.
"편히 쉬십시오 어머니"
월진은 결국 모든 가족을 잃고 만것이었다.
며칠 후, 월진은 천년만화수의 동굴 앞으로 갔다. 그는 막광세의 무덤을 잠시 손질 한 후, 동굴 입구를 향해 바라보았다. 잠시동안 회상에 잠긴 후, 발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그의 품에는 하북패삼살이 죽으면서 남긴 황금빛의 꽃가루가 있었다. 그는 서문주영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지만, 혹시 죽었다 할지라도 그 꽃가루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설사 그녀의 무덤 위에 뿌리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하여 여기 강호에 또 다른, 꿈처럼 덧없는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었다. 월진의 앞날은 어떠할까. 하루에도 무수히 목숨이 스러져 가는 이 험난한 강호에서 그는 어떠한 이름을 남기게 될까? 월진이 이제부터 꾸게 될 한바탕의 꿈은 과연 어떠한 꿈일까. 그것은 오로지 하늘만이 알 것이리라.
그리고 사라져 가는 월진의 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한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그것은 자그마한 짐승의 것이었다. 하얀 털에 뒤덮인 그것은 바로 백영묘였다. 백영묘는 마침내 월진이 하나의 점이 되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끝까지 지켜본후에야 어디론가 달려갔다. 풀잎과 바람 사이를 가르며 한참동안 달려간 후 백용묘가 도착한 곳은 바로 흰 옷을 입은 한 인물의 무릎 위였다. 백영묘는 아늑한 보금자리에 들어선 듯 눈을 감고 조용히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백영묘의 자그마한 머리와 등허리를 보드랍게 쓰다듬는 아름다운 손이 있었다. 그것은 여인의 손이었다. 그 손을 한번 바라보는 자는 다들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이미 이 손만으로도 미녀라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을 것이라고.
4분 일장춘몽(一場春夢) 끝.
일격평천하(一擊平天下) 1권 , 백영묘(白英猫) 끝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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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페이퍼로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용상 1권이 끝났습니다.
나름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이글을 읽고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꾸준히 연재할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2권은 좀 더 플롯들 다듬어서 완성되는 대로 올리기 시작하겠습니다. 그동안 만사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일격평천하(一擊評天下)
일장 춘몽 4장
쿵! 쿵! 쿵!
하는 도끼 찍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그 천둥같은 소리에 잎새가 흔들리고, 산새들이 휘리릭 날아오른다. 월진은 이 광경을 좋아했다. 이 소리를 좋아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땀내도 좋아했다.
쩌어억 나무 갈리는 소리가 들리면 아버지는 미리 묶어 놓았던 밧줄을 당기기 시작했다. 끼익, 끼익 나무기둥에 밧줄이 휘감긴다. 월진은 이 소리도 좋아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퍼지는 아버지의 진한 땀방울.
[월진아 잘 보거라. 나무를 베는 것은 그냥 아무렇게나 도끼를 휘두른다고 될일이 아니다. 같은 힘, 같은 간격으로 같은 장소를 찍어야만 나무를 이길수 있는 것이다. 자 말해봐라, 어떻게 해야한다고?]
[같은 힘, 같은 간격, 같은 장소요]
아버지가 껄껄 웃엇다.
[맞다, 그래야 나무를 이길수 있다.]
그의 웃음 소리는 맑았다. 곧잘 화를 잘 내고 월진을 때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은 나무꾼이였다. 좋은아버지였다.
[월진아, 잘 기억해야 한다. 같은 힘, 같은 간격, 같은 장소다 그래야만.......]
나무를 이긴다.......월진은 그 말을 한 또다른 사람을 기억해냈다.
[우리 그 나무를 한번 이겨보자꾸나]
그러자 웃음 섞인, 부드러우며 아름다웠던 한 여인의 목소리도 기억해낼 수 있었다.
[오늘 나를 만났던 것은 그에게 비밀로 해주지 않겠니?]
그녀의 사매였던 앙칼진 소녀의 목소리도 기억했다.
[흥 더러운 입이나 다물어라!]
불같이 살다 죽었던 한 남자의 외침도 기억해냈다.
[비록 피를 토하고 죽을 지언정, 결코 무릎을 끓지 않는다!!]
정말 너무 쇠어서 듣기가 싫었던, 그러나 이제는 어딘가 친숙해진 늙은 목소리도 기억해냈다
[본 공자는 천하제일 풍류 공자 이니라]
그리고....그리고....또 있었는데. 또 기억이 날듯한 목소리가 있었는데. 이사람이야 말로 잊어서는 안되는, 생각을 하려 할때마다 가슴이 메어져...그렇게 속으로 말하면서도 월진은 끝내는 마지막 그 인물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때였다.
[애송아. 9년 전 너와 나는 우연히 깊은 심저(心底)에서 접촉을 해 교감했었다.]
어떤 남자가 말하는 것을 월진은 들었다.
[그것을 실마리로 나는 너의 그때 이전의 기억을 되살리수 잇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것은 나로서도 어쩔 수 없다. 그냥 잊고 살거라. ]
그것은 어떤 청년의 맑은 목소리였다. 어디선가 한번 들은 듯한 목소리였다.
[그리고 9년 전 그 구결을 기억할 것이다.]
월진은 그 목소리가 그 옛날 자신에게 알수 없는 문장들을 들려주었던 바로 그것임을 깨달았다. 그때 그것은 처음에는 어린 동자의 목소리였다가, 점점 나이가 든 목소리로 변했었음을 기억해냈다.
[그것은 젊은 날 내가 유용하게 써먹던 구결들이다. 이미 그것들이 필요 없어진지 오랜 세월이 지났고, 나는 또 이미 신선이 되고 말았으니, 속세에 아무런 미련이 없다. 허니 만약 네가 그 구결을 완전히 이해하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내 별호를 대신 써도 좋다.]
월진이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당신의 별호가 무엇이길래?]
그 말이 재미있다는 듯 그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웃음을 펑 터트렸다.
[하하하, 너는 이미 수도 없이 들었을 텐데? 본공자는 바로........]
월진이 귀를 기울였지만, 그 목소리는 점점 가늘어지더니 결국 들리지 않았다. 월진 자신도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그때였다. 갑자기 어디선가 늙은이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갈!"
월진은 자신의 머리를 뭔가가 "딱" 하고 치는 격렬한 통증를 느끼고 벌떡 일어났다.
"아얏!"
정신이 바짝들며 눈이 번쩍 떠졌다. 어안이 벙벙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낡은 천장, 헌 담요. 아늑한 분위기. 월진은 그곳이 자신의 집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곁에 누군가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 사람은 머리에 흰머리가 희끗희끗 있는, 한 아낙네였다. 그녀는 월진을 바라보며 기쁨의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감격에 차 말했다.
"월진아! 아이고 네가 깨어났구나......"
월진은 어리둥절하다가,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임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 괜찮으세요? 하룻밤만에 왜 이렇게...왜 이렇게....늙으셨어요?"
그러나 월진의 어미는 그저 어리둥절하는 월진을 껴안으며 서글프게 울 뿐이었다. 월진의 아버지가 이미 예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형제 자매들이 모두 죽거나 사라졌음과 함께 자신이 정신을 잃은 사이 이미 9년의 세월이 흘렀음을 월진이 안 것은 얼마 뒤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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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봄의 주인들이 다가오는 초여름의 싱싱한 손님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숲은 나뭇잎들은 너무나도 싱그렇게 이파리를 펼쳤다. 대지에는 흙내음이 흐드러지게 피어올랐다. 그 대지를 밝아서 산을 오르는 한 젊은이가 있었다. 바로 월진이었다. 월진은 오늘도 나무를 하기 이곳에 올라왔다. 그의 손에는 한자루의 커다란 도끼가 쥐어져 있었다. 그것은 아버지가 쓰던 도끼였다. 그는 쓸만한 나무를 발견하고는, 그 앞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도끼를 힘차게 휘둘렀다 .
쿵!
하고 나무 기둥에 깊이 도끼가 찍혔다. 깊이 박힌 날을 뽑아내고 다시 몇번 쿵, 쿵하고 쳐내렸다. 나무는 몇번의 도끼질이 끝나지도 않은 채 나무결이 맞물리는 끼익, 하는 비명소리를 내며 쓰러지기 시작했다.
숲속이 온통 나무가 바닥에 내려 앉는 소리로 울려퍼졌다. 나무가 쓰러진 모습을 월진은 한참동안이나 멍히 쳐다보았다. 그러나 이내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나무를 가지친 다음 다시 다듬기 시작했다. 하루의 나무질을 끝내고 하산하려고 할때, 저 밑에 한 늙은 중이 나무 그늘 밑에서 쉬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런 산속에서 중을 본다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 중은 앉아서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다리를 쭉 뻗고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참으로 편해 보였다. 월진은 신기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 중의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냥 조용히 지나치려 했다. 그 때였다.
"나무아미타불. 시주, 이 화상이 길을 좀 물어도 되겠소이까?"
월진이 그 소리에 그 늙은 중을 쳐다보았다. 중은 어느새 눈을 뜨고 일어서서, 합장을 하면서 월진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가 띄고 있었는데, 그것이 그 노승의 인상을 부드럽게 만들고 있었다. 월진은 자기도 모르게 그 노승에게 호감을 느끼며 말했다.
"스님은 어디로 가려고 하십니까?"
"이 근처에 보각사라는 절이 있는지요?"
"보각사라면 길을 잘못 들으셨습니다. 보각사는 이 산이 아니라 좀더 남쪽으로 가셔야 하는데, 거기에 도정산이라는 곳이 있습니다. 그 중턱에 있지요"
"아, 그렇군요. 노승이 또 길을 잘못 들었군요. 나이가 들어도 너무 들었나 봅니다. 허허"
월진은 그의 소탈함이 맘에 들었다.
"헌데 시주는 혹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신지요?"
월진이 그 말에 깜짝 놀라 말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요?"
"사실 노승은 이곳에서 그늘을 만끽하면서 시주께서 나무를 하고 있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근데 도끼질 소리가 불규칙적이고, 때때로 한참동안 들리지 않다가 다시 소리가 들리길래 이 소리의 주인은 분명 깊은 고민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월진은 그 말에 노승을 멍청히 바라보았다. 노승은 껄껄 웃으며
"물론 이는 모두 소승이 멋대로 하는 추측으로, 혹시 아니라면 그저 늙은 땡중이 노망이 났나 생각하십시오"
라고 말했다.
"아닙니다. 스님의 말씀이 틀리지 않았습니다. 사실 무슨 고민꺼리라 할 것까진 없지만 최근 제게 몇가지 일들이 일어났는데, 그 일을 받아들이는데 조금 마음이 안정되지 못했나 봅니다."
"호오, 그것 참 흥미롭군요. 이것도 인연인데 혹시 이 노승이 시주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지요. 어쩌면 제가 시주의 어지러운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 수 있는 방안을 알지도 모르죠."
월진은 망설여졌지만, 이 중의 태도가 부드럽고 또 자신도 어딘가 이야기가 하고 싶었던 터라 말을 꺼내기로 결정했다. 사실 그는 그의 어머니에게도 아직 이야기를 못했던 것이다. 그녀에게 괜한 걱정을 끼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에게 한번 이야기 볼까"
그래서 월진은 백용묘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으로, 자신이 서문기를 만나 천년만화수를 베기 시작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서문기, 심연수, 허난묘, 막광세 등을 만났고, 이후 천하제일 풍류공자라는 이상한 늙은이를 만났던 일. 그 늙은이가 제시했던 내기와, 그 내기를 결국 서문기의 도움으로 자신이 받아낼수 있었던 일. 그러나 이후 정신을 잃었는데 깨어나보니 9년의 세월이 흘렀던 것. 그 세월동안 자신의 가족은 모두 죽거나 행방불명이 되었고 지금 자신의 곁에는 늙어버린 모친만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모두 이야기했다. 사실 어머니가 말하길 9년동안 월진은 행방불명이 되어있었는데, 어느날 어머니가 잠시 집을 비운 사이에 침상위에 어른이 된 자신이 누워 있었다는 기묘한 이야기도 했다. 노승은 월진을 하는 말을 조용히 눈을 감고 듣기만 했다.
"그런데 걸리는 것은, 제가 행방불명이 된 틈에 팔에 이빨자국의 상처가 생겼습니다. 저는 그 상처를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상처를 볼때마다 뭔가 중요한 것을 잊고 있는 것 같고, 볼때마다 가슴이 이상해집니다."
노승이 월진의 이야기가 끝나고도 한참동안 말을 안하고 있다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시주의 이야기는 실로 기묘하구려."
월진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시주의 이야기는 실로 일장춘몽의 이야기 같군요. 시주는 혹시 남가일몽(南柯一夢)이란 고사를 아십니까?"
"그것은 어떠한 이야기입니까."
노승은 월진에게 한가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당나라 시대 강남에 순우분이란 이가 살고 있었다. 그의 집 남쪽에 커다란 괴화나무 한그루가 있었는데, 어느날 순우분은 친구들과 그 나무 그늘 아래에서 술을 마시다가 취해 잠이 들었다. 그러다 비몽사몽간에 깨어보니괴안국(槐安國)이라는 나라에서 온 사신이라면서 두 관원이 자신을 데리러 왔다는 것이다. 순우분은 그들을 따라 괴화나무 아래 동굴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곳엔 화려한 웅장한 도성이 있었다. 순우분은 괴안국 국왕의 환대를 받고, 부마에 자리까지 오르며 남가(南柯)군이라는 지역의 태수자리까지 얻게 되었다. 그 후 행복한 삶은 살던 순우분의 공주와 다섯 아들과 두 딸을 두었고, 남가군은 20여년간 순우분의 선치로 태평성대를 맞이하며 백성들의 칭송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선치를 시기하는 자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이를 들은 국왕은 본래 속세의 사람이니 고향에 다녀오라고 하면서 3년 후에 다시 부르겠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관원을 따라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자신의 집 앞 처마 밑에까지 오게되자 순우분의 관원이 갑자기 지르는 외침에 눈을 번쩍 뜨게 되었다. 그랬더니 자신이 눈을 뜬 곳은 바로 술을 먹고 처음에 잠이 들었던 그 괴화나무 아래였다. 그의 아래에는, 남쪽으로 뻗은 괴화나무 밑에 있는 개미집 위에엿다. 괴화국에서의 부귀영화의 기억이 생생하였고 또 나무를 더듬어 남쪽으로 난 가지를 찾아가니 네모난 모양의 개미집이 또 있었다. 그것은 자신이 다스리던 남가군의 모습과 비슷했다. 그러다가 날이 어두워져 돌아가 다음날 다시 보기로 했지만, 밤 사이에 비바람에 몰아쳐 개미집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 뒤였다. 순우분 생의 덧없음을 깨닫고 도술에 전념하다 3년 후에 생을 마감했는데, 그것은 바로 괴안국의 임금과 약속했던 기한이었다.
월진은 노승의 이야기에 깊이 빠져들었다.
"또 다른 비슷한 이야기로는 한단지몽(邯鄲之夢)이란 이야기가 있지요"
노승은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했다.
역시 당나라 현종(玄宗) 때의 일이다. 도사 여옹은 한단(邯鄲)으로 가는 도중 주막에서 쉬다가 노생이라는 젊은이를 만났다. 그는 산동(山東)에 사는데, 아무리 애를 써봐도 가난을 면치 못하고 산다며 신세한탄을 하고는 졸기 시작했다. 여옹이 보따리 속에서 양쪽으로 구멍이 뚫린 도자기 베개를 꺼내 주자 노생은 그것을 베고 잠이 들었다. 노생이 꿈 속에서 점점 커지는 베개 구멍 속으로 들어가보니, 고래등 같은 집이 있었다. 노생은 최씨 명문가인 그집 딸과 결혼하고 과거에 급제한 뒤 벼슬길에 나아가 순조롭게 승진하여 마침내 재상이 되었다. 그후 10년간 명재상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어느 날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 잡혀가게 되었다. 노생은 포박당하며 "내 고향 산동에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았으면 이런 억울한 누명은 쓰지 않았을 텐데, 무엇 때문에 벼슬길에 나갔던가. 그 옛날 누더기를 걸치고 한단의 거리를 거닐던 때가 그립구나"라고 말하며 자결하려 했으나, 아내와 아들의 만류로 이루지 못했다. 다행히 사형은 면하고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수년 후 모함이었음이 밝혀져 다시 재상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후 노생은 모두 고관이 된 아들 다섯과 열 명의 손자를 거느리고 행복하게 살다가 80세의 나이로 세상을 마쳤다. 그런데 노생이 기지개를 켜며 깨어 보니 꿈이었다. 옆에는 여옹이 앉아 있었고, 주막집 주인이 밥을 짓고 있었는데, 아직 뜸이 들지 않았을 정도의 짧은 동안의 꿈이었다. 노생을 바라보고 있던 여옹은 "인생은 다 그런 것이라네"라고 웃으며 말했다. 노생은 한바탕 꿈으로 온갖 영욕과 부귀와 죽음까지도 다 겪게 해서 부질없는 욕망을 막아준 여옹의 가르침에 머리 숙여 감사하고 한단을 떠났다.
"스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저는 시주는 하나의 기나긴 꿈을 꾼 것과도 같다고 말하고 싶군요"
"하지만 스님. 이야기속의 꿈은 실제로는 찰나와도 같은 시간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저는 깨어나보니 실제로는 9년이나 기나긴 세월이 지났답니다."
"물론 시주가 기절한 뒤부터야 그렇죠. 하지만 그 이전에, 이 모든 것은 시작은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
월진은 그 말에 한참 생각하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 있어 대답했다.
"제가 백용묘를 만난 일이 아닐까요?"
노승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백영묘는 순우분에게 있어서 바로 괴안국의 관원이자, 노생에게 있어 도자기 베게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비록 시주의 9년 세월은 사라졌지만, 시주 자신의 기억에 있어서는 실로 찰나와도 같지 않았습니까?"
월진은 그저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시주가 백용묘를 보고 겪은 일들은 이미 지나간 일들이고, 이제 다시는 나타나지 않을 하나의 덧없는 꿈과도 같지요."
"스님은 지금 저보고 더이상 생각할 필요 없이 모든 것을 잊으라고 말씀하시는 겁니까?"
중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시주는 이미 모든 것을 잊지 않았습니가?, 비록 다른 가족들이 모두 사라졌지만, 시주에겐 아직 자당께서 남아 계십니다. 과거에 연연하는 것은 오히려 마음에 번민만을 가져다 줄뿐이지요."
월진은 한참덩동안 생각했다.
"......스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제게는 어머니가 남아있죠. 지나간 일에 자꾸 신경을 쓰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군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시주는 참으로 영민하십니다."
"제게 좋은 말씀을 주셔 감사합니다."
그제야 월진은 가슴이 개이는 것을 느끼며 활짝 웃었다. 노승이 떠나가려는 찰나, 월진이 말했다.
"도정산까지 찾아갈수 있겠습니까? 제가 길 안내를 해드리죠"
늙은 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햇다.
"시주의 말씀은 고맙소. 하지만 사실 노승은 오래전에 이 근처를 와본적이 있소이다. 너무 오래되서 길이 잘 생각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 것 같군요"
"아, 그랬군요."
"벌써 9년전이군요. 그때는 겨울이라 산속이 온통 눈으로 덮여있었는데, 그때도 시주와 같이 번민이 많은 한 나무꾼의 이야기를 들어준 적 있었죠. 감회가 새롭군요. 나무아미타불..."
그렇게 말하며 늙은 중은 떠나갔다.
그리고 몇일 후였다. 월진이 그 날도 나무를 하고 하산하여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 주위가 왠지 어지럽혀지고, 한바탕 소란이 피운 듯한 흔적이 있는 것이었다.월진이 깜짝 놀라 문을 덜커덩 열자마자, 자신의 안면으로 화살처럼 다가오는 주먹을 느꼈다. 월진이 놀라운 반사신경으로 목을 돌려 가까스로 피했다.
"어라?"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자신의 허리를 누군가의 발이 강타하는 것을 느꼈다. 월진은 나뒹글어졌다. 껄껄 웃는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월진이 고개를 드니 왠 콧수염을 기르고 키가 큰 중년인이 흑의를 입고 서 있었다. 그의 주위에는, 2명의 인물이 더 있었는데 하나는 키가 작고 몸이 왜소해 어린 아이같았지만 자세히 보니 나이를 많이 먹은 난쟁이였다. 또 다른 한명은 머리가 길고 턱이 튀어나왔으며, 청의를 입은 남자였는데, 20대 후반으로 보였으며 검을 차고 있었다. 난쟁이가 웃었다.
"형님, 추하이다. 어찌 일권에 격중을 못합니까?"
흑의중년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 어린 놈이 의외로 몸이 잽싸군."
청의를 입은 남자가 말했다.
"큰형님께선 요즘 새로 얻은 첩때문에 허리가 안좋으신가 보군요."
그들은 그말에 와락 웃었다.
월진이 정신을 차리며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저기 탁자 앞에 그의 모친이 있었는데, 혈도가 잡힌 듯 했다. 그녀는 겁에 질리고 놀란 얼굴로 월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신들은 누구시오? 강도요? 우린 보다시피 아무 것도 가진게 없소"
중년인이 그의 콧수염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가진게 없긴? 바로 이 집이 있지 않느냐. 이 집은 이제 우리가 쓸터이니 너는 이제 우리 시중을 들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너의 어미의 목숨은 없다"
월진이 속으로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고 물었다 .
"당신들은 우리집에 와서 무얼 하려는 거요?"
그때 난쟁이가 말했다.
"큰형님. 그는 이 숲의 나무꾼이니 그에게 그것을 묻는게 어떻소? 혹시 단서가 잇을지 모르지 않소."
그에 흑의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월진에게 물었다.
"혹시 이 근처에 동굴 같은 것이 있느냐? 안에 커다란 나무가 잇는...."
월진은 깜짝 놀랐다.
"당신들은 혹시 천년만화수를 말하는 것이오?"
이번엔 그들 세명이 동시에 놀랐다. 중년인이 잽싸게 손을 내밀어 월진의 목을 잡아올렸다.
"네가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
월진이 컥컥 목이 막혀옴을 느끼면서도 말했다.
"그것보다...그 나무를 찾는다면 내가 안내해주겠소."
이에 청의 남자가 말했다
"큰형님, 작은 형님. 여기선 일단 그를 내려주고 자세히 물어봅시다."
큰형님이라 불린 그 흑의중년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월진을 내려놓고 배를 세게 걷어찼다. 월진이 깊은 통증을 느끼며 신음했다.
"그래, 너는 천년만화수란 이름을 누구에게 들었냐?"
"예전에도 당신들처럼 그 나무를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소. 하지만 그들은 모두 그 나무의 주인 때문에 모두 죽거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갔소."
월진은 그들과 길게 이야기 하고 싶지 않고, 하루 빨리 돌아갔으면 했기 때문에 그냥 짧게 줄여 말했다.
난쟁이가 말했다.
"그 주인이란 작자는 누구냐?"
"나도 잘 모르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늙은이라는 사실뿐이외다."
흑의중년인이 크크 웃으며 말했다.
"누군지 뭔 상관이랴. 우리 하북패삼살에게 방해하는 자는 모조리 죽여버리겠다"
월진은 속으로 생각했다.
"흥, 천하제일 풍류공자의 손에 걸리면 네놈들은 모두 다 일장감이다."
그러나 이내 생각나는것이 있었다.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이슬을 먹고 다시 젊음을 얻었나?"
흑의인이 그때 말했다.
"너는 우리를 안내해라"
"그보다 먼저 어머니를 놓아주시오"
난쟁이가 비릿하게 웃었다.
"네 말이 거짓인지 아닌지 보고 그때 놓아주겠다. 이 년도 같이 가게 될것이다."
그리하여 월진은 그의 어미니를 인질로 삼고 있는 하북패삼살(河北覇三煞)을 동굴로 안내하게 되었다. 월진은 그들이 하나의 나무그루를 가지고 있는데, 그게 불생불사목임을 깨달았다. 하북패삼살은 첫째가 콧수염을 가진 흑의중년 호막, 둘째가 난쟁이인 맹천살, 셋째가 검을 지닌 청의남자 해막청이었다. 그들은 하북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는 무서운 악인들이었다. 이들도 역시 천년만화수의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되어 이곳까지 찾아왔던 것이었다. 그들은 이미 이 산속에 오기전, 이곳에 나무꾼 모자의 집이 있음을 미리 들어 알았기 때문에 그곳을 근거지로 수색을 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웬걸, 이 나무꾼이 천년만화수의 장소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그들은 곧 천년만화수의 동굴 앞으로 오게 되었다. 월진은 실제로는 9년만에 오는 것이지만, 그동안의 기억이 없기 때문에 그에게는 불과 몇주일이 지난 것과 다름 없었다. 그런데 모든 것은 다 변함이 없었지만, 딱 한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동굴 앞에 하나의 무덤이 있었던 것이었다. 월진이 이상함을 느끼는 사이, 하북패삼살도 그 무덤에 흥미를 느낀 듯 자세히 살펴보았다. 막내인 해막청이 탄성을 내지르며 외쳤다.
"형님! 보심쇼! 이거 9년전에 갑자기 사라진 벽력마 막광세의 무덤이외다!"
월진은 속으로 놀라면서도 짐작 되는 것이 있었다.
"아마도 심연수와 허난묘가 세웠나 보구나"
그 무덤은 오랜 세월동안 관리를 하지 않아 불품없이 변해 있었다. 그러나 왜 서문기의 무덤이 없을까 잠시생각하다가, 이내 서문기는 피와 살덩이가 산산조각 흩어져 흔적도 없어졌으니 그녀들로서는 그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도리가 없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가 이곳에서 죽었다니?! 그럼 막광세도 천년만화수를 찾아왔었단 말인가?"
그들은 순간 그 무시무시한 막광세가 죽은 이유가 바로 천년만화수의 주인때문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러자 속으로 갑자기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둘째인 맹천살이 말했다.
"형님 어떡하죠? 그 주인이란 작자가 굉장한 고수인 모양인갑소"
막내 해막청이 말했다.
"일단 나무가 있는지 확인하고 생각해보죠. 그 주인이란 작자가 어떠한 자인지 모르지만 지금 없는 모양이니 잠시 들어가 정말 천년만화수가 있는지 보는게 어떨까요?"
그들은 그렇게 동굴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이내 동굴 입구가 굉장히 비좁았기 때문에 들어가기 힘듬을 깨달았다. 그러나 마침 맹천살이 난쟁이인지라 몸집이 작아서, 축골공을 이용해서 들어갈수 있었다.
잠시후 난쟁이가 다시 나왔을때, 그의 얼굴엔 놀람과 경악이 가득차 있었다. 그는 하얀 천에 뭔가 반짝이는 것이 묻혀서 나왔다. 곧 다른 사람들은 그것이 황금빛의 꽃가루임을 깨달았다.
"보시오!! 형님! 아우! 이미 천년만화수는 불생불사목과 접목되어 꽃을 피우고 있었소!!"
"이미 그 주인이란 작자가 이미 시도를 했었군."
"이 꽃가루를 이렇게 쉽게 얻을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 따르는 구만! 실제로 있을 줄이야!"
그들이 환희에 차 이렇게 이야기 할때, 월진은 오히려 안타까움을 느꼈다. 왜냐하면 서문기의 부탁이 다시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그의 딸은 아마 저 꽃가루가 없어서 4년전에 죽었겠지. 나도 어쩔수 없었지만, 그에게 정말 미안하구나. "
그러나 이내 의문이 들었다.
"천하제일 풍류공자는 정말 약속을 지켜 천년만화수를 포기했나 보구나. 그렇다면 누가 접목을 했을까? 9년 사이에 누군가가 다시 천년만화수를 찾아왔던 것일까?"
그러나 이내 월진은 속으로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혹시 그 노인이 스스로 접목을 한것이 아닐까? 나를 위해?"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고, 설사 자신을 위해 했더라도 이미 9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사이 5년안에 해야할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게 되었다. 또 자신이 저 꽃가루를 가진다 할지라도 어떤 방법으로 환단을 만드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는 기쁨에 차서 들뜬 그들 세명에게 말했다.
"원하는 것을 얻었으면 이제 우릴 놓아주시오."
이에 해막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월진의 어미의 혈도를 풀고 놓아주었다. 아혈이 풀린 그녀가 월진을 붙잡고 물었다.
"월진아!...이게...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어머니, 죄송해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그가 모친과 함께 그자리를 떠나려는 찰나, 맹천살이 말했다.
"잠깐 멈추거라."
월진이 그 말에 뒤돌아 보며,
"또 무슨 일이오?"
그러나 맹천살은는 흐흐 웃으며 첫째인 호막에게 말했다.
"형님. 저들을 그냥 돌려보낼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 꽃가루를 가졌다는 사실이 강호에 퍼지면 귀찮은 일만 생기지 않겠소이까?"
그 말에 호막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둘째아우는 면밀주도하군."
월진은 속으로 섬칫 하며 급히 말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소. 맹세하오"
호막이 흐흐흐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것을 어떻게 믿느냐?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죽은자는 말이 없다는 사실 뿐이다."
그리고는 막내인 해막청에게 눈빛을 보냈다. 해막청이 고개를 끄덕이며 검을 뽑았다.
"어찌 이토록 악독할수 있소?! 약속이 틀리잖소!"
그러나 해막청은 그 말을 무시하고는 일검을 스윽 내질렀다. 쾌검이었다. 월진은 재빠르게 피하며 나뒹굴어졌다.
"어랍쇼!"
해막청은 월진이 피하자 놀라워 했다. 그러나 월진이 나자빠진 것을 보고 그저 몸만 굉장히 빨랐지 경신법을 익힌 것은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좀더 살벌하게 검을 휘둘렀다. 월진은 순식간에 온몸에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간신히 치명상은 면할 수 있었다. 몇번의 나뒹굴어짐 끝에 월진은 동굴 벽을 등을 마주하게 되어 더이상 피할 곳이 없게 되었다. 해막청이 흐흐 웃으며 마지막 일검을 내지려는 찰나, 그의 몸앞을 가로막는 인영이 잇었다. 순식간에 월진 대신 그 인영은 해막청의 일검을 복부에 깊이 찔리게 되었다. 월진이 그것을 보고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어...어머니!!!!"
해막청은 의외의 일에 잠시 멈칫 했으나,
"흥 좀 있으면 아들과 같이 보내줄텐데, 급하기는"
그렇게 말하며 검을 그녀의 복부에서 뽑아냈다. 피가 주르륵 뿜어져 나왔다. 월진이 눈물이 앞을 가리며 얼른 쓰러진 모친 곁으로 가려 했지만 다시 해막청의 일검이 그의 왼발을 찔러왔다. 가슴이 천갈래만갈래 찢어지는 가운데, 월진은 심장에서부터 퍼지는 격렬한 복수심을 느꼈다.
"너!!!...너.!!"
그리고 앞뒤 가릴 것 없이 해막청을 향해 뛰어들었다. 해막청은 오히려 잘됐다는 듯 코웃음치며 일검을 정확히 월진의 심장을 향해 찔러갔다. 그때였다. 월진의 몸이 살짝 비켜지는 것이 아닌가? 일검은 그의 겨드랑이를 스쳐지나갔고, 월진은 오른손은 내j어 일장을 내질렀다. 해막청이 대경실색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얼른 한손으로 그의 일장을 내받았다. 펑! 하고 소리가 나며 해막청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뒤로 물러난 해막청이 그자리에서 무릎을 끓고 피를 울컥 쏟아냈다. 그것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와 같은 고수가 설마 저런 벽지의 젊은 나무꾼에게 단지 일장에 피를 쏟고 무릎을 끓다니! 호막과 맹천살은 너무나 깜짝 놀라 그만 할말을 잃고 말았다.
월진이 자신도 모르게 내지른 것은 바로 그 옛날 서문기가 가르친 항룡유회 초식이었다. 비록 부지불식간에 낸 일장이었지만 그 위력은 실로 놀라웠다. 월진은 스스로 놀라는 가운데 황급히 모친 곁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출혈이 심하고 정신을 잃고 있었다. 시간이 지체되었다간 목숨이 위험했다.
한편 하북패삼살은 깜짝 놀라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둘째 맹천살이 분노어린 가운데 이를 바득 갈며 외쳤다.
"너 이 새끼. 이제보니 실력을 숨기고 있었구나!"
그리고 그도 월진을 향해 달려들며 일권을 내질렀다. 그 일권에 서린 위력은 가히 굉장한 것이어서, 그는 이 일권으로 하북에서 파암권(破巖拳)이란 별명마저 얻었다. 월진이 그 주먹에 단숨에 뻗어져 나가면 뒹굴었지만, 이내 벌떡 일어나서 맹천살에게 달려들었다. 그것을 지켜보던 첫째 호막이 깜짝 놀랐다.
"이놈, 맷집이 왜 이리도 세단 말인가?"
한편 맹천살의 일권이 월진이 복부에 다시 정통으로 강타되었다. 월진은 피가 울컥 쏟아져 나옴을 느끼면서도 왼손으로 그의 손목을 잡고 바로 허리춤을 격타했다. 그러나 그것은 그다지 효과가 없었다.
"흐흐, 간지럽구나"
그렇게 웃는 맹천살이 자신도 오른발로 월진의 허리춤을 격타했다. 월진은 격렬한 고통을 느끼는 가운데에서도 초조함과 분노로 다시 한번 항룡유회 초식을 내질렀다. 맹천살은 이미 그 일장을 대비하고 있었기에 진기를 끌어올리며 자신도 대담하게 맞받아쳤다. 펑! 하고 굉음이 들렸다. 맹천살은 그의 일장을 맞받아칠수 있었지만 속으로 경악했다.
"어찌 이런 위력이 있을 수 있는가? 내 일권은 하북에서도 받아낼수 잇는 자가 손에 꼽힐 정도인데?"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월진이 자신의 일장이 효과가 없자 재차 다시 한번 더 내지르는 것이 아닌가?
"이런 미친 놈!"
놀라는 가운데 허겁지겁 다시 그의 일권을 맞받아쳤다. 맹천살은 이미 처음 일장는 대비하고 있었지만, 두번 째 일장은 미처 예상을 못했다. 이런 변화가 없는 반복된 공격은 무술에 있어서 효과를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빠르게 다시 공격해왔기 때문에 미처 피할수가 없었던 것이다.
맹천살은 또 한번 월진과 펑!하고 일장을 맞받아쳤다. 맹천살은 그의 팔 전체가 으스러지는 듯한 고통을 맛보아야만 했다. 그리고, 뒤이어, 또다시 이 어린 것이 같은 공격을 또 내지르는 것을 보고 그만 대경실색하여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그의 실수였다. 월진의 일장은 정확하게 더욱 빠르게 그를 따라잡아 마침내 그의 가슴을 격장하고 말았다. 맹천살은 뒤로 나자빠지며 피를 주욱 흘리며 무릎을 끓고 말았다.
호막은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았다. 그는 월진이 내지르는 초식이 바로 그 항룡십팔장의 절초 항룡유회라고 처음에 생각했지만, 그가 세번이나 연속으로 그 초식을 내지르는 것을 보고 경악함을 느낄 따름이었다. 항룡유회는 원래 기력을 극히 소비하는 일격필살의 초식으로, 저처럼 계속적으로 시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의문을 품는 가운데에서도 호막은 이놈이 결코 만만한 놈이 아님을 알고, 맹천살과 해막청에게 말했다.
"같이 공격함세!"
두명은 비록 내상을 입었지만 몸을 가눌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윽고 하북패삼살이 함께 월진에게 달려들었다. 먼저 해막청의 일검이 월진의 정수리를 찔러왔다. 그러나 월진이이 오히려 일검을 가까스로 관자놀이 바로 옆으로 비끼더니 강하게 머리를 들이대는 것이 아닌가? 해막청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게 그만 월진에게 박치기를 당해 머리가 깨지고 말았다. 한편 호막과 맹천살은 각각 일장과 일권을 월진의 등과 배를 향해 내질렀다. 월진은 등의 일권은 무시했다.그는 호막의 일장을 받아쳤다. 그는 아까전, 맹천살에게 세번의 격을 시전했을 때 자신도 모르게 머리속에 시쳐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같은 힘, 같은 간격, 같은 장소]
도끼 대신 손바닥을 휘둘렀을 뿐이지,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살아오면서 평생 해오던 바로 그 동작이 아닌가? 그것만이 머릿속에 계속 읊조리면서 순식간에 호막에게 삼격(三擊)을 연속가격했다. 그 가운데 맹천살의 일권이 등을 가격해 척추가 부서지는 듯한 강렬한 아픔을 맛보았지만, 월진은 마침내 호막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맹천살은 찰나에 호막과 해막청이 나가떨어지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월진은 몸을 휫 돌려 다시 그에게 일장을 내질렀다. 맹천살은 속으로 화가 치밀어 외쳤다.
"몇번이나 같은 공격이 통할 것 같으냐!!"
그는 월진의 일장을 맞받아치는 대신, 그의 손목을 부여잡고 몸을 피하면서 강하게 발뒤꿈치로 허리의 반동을 이용해 다시한번 월진의 옆구리를 강하게 가격했다. 이 일각은 실로 위력적이어서, 월진은 정신이 아득해지는 가운데에서도 이판사판으로 반대편 손으로 일장을 내질렀다. 이처럼 중심이 잡히지 않는 자세에서 나온 일장에 무슨 위력이 있으리라, 맹천살은 이렇게 판단하며 자신도 맞받아쳤지만, 그것이 그의 마지막 일권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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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위험하구만."
월진이 그 말에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상처가 그렇게 깊었나요?"
의원이 고개를 저었다.
"상처야 물론 깊지만 심장과 폐는 무사하니 그것때문에 목숨이 위태로울 일은 없겠지"
"그럼 어째서?"
"자넨 몰랐나? 원래부터 자네 어머니는 이미 기혈이 약해지고 몸이 많이 안 좋으셨네. 그런 가운데 칼에 찔리기 까지 했으니, 몸이 버텨내지 못할걸세."
월진은 그저 그 말에 멍하니 가만 있었다.
"요 며칠이 고비이니, 잘 간호하게.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저 하늘의 뜻이니 각오는 하두게"
그말에 깜짝 놀란 월진이 말했다.
"각오? 무슨 각오 말입니까?"
그러나 의원은 그 말에 대답않고 그저 월진의 눈만 바라보았다. 이내 월진이 그의 말뜻을 깨닫고, 억장이 무너지듯, 가슴이 조각이 나듯, 그렇게 충격속에 의원이 떠나가는 것을 구경만 할수 밖에 없었다.
월진은 며칠동안 밤낮없이 간호했다. 그리고 어느날, 월진은 침대 앞에 앉아 머리를 침대 맡에 두고 얕은 잠에 빠졌다가, 문득 머리에 어떤 손이 올려지는 것을 느끼고 깨어났다. 그의 어머니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어머니! 깨어나셨군요!"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듯 정신이 맑아보이고 혈색이 돌아와 있었다. 월진은 너무나도 기뻐서 눈물이 왈칵 쏘아지며 그녀의 품에 안겨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가족들도 모두 사라진 지금, 어미마저 죽어, 혼자 남겨질 것이 그는 너무 두려웠던 것이었다. 그의 마음은 사실 아직 13살의 어린아이의 마음, 그곳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착하지..아이야.. 울지마라 울지마라. 어미는 괜찮다."
그렇게 그녀가 월진의 등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월진은 더욱 격하게 울었다. 한참동안이나 그렇게 운 뒤, 월진은 그의 모친에게 자신이 9년 전 겪었던 일을 전부 이야기했다. 모친은 그 놀라운 이야기들을 그저 담담히 듣기만 할 뿐이었다. 월진이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어머니, 이제 저는 깨달았어요. 저같은 나무꾼의 자식은 그저 아무런 욕심도 내지 말고 분수에 맞게 사는 것이 맞다는 것을요."
그러면서 그는 얼마전 만났던 스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인생의 덧없음과, 이제 평생 어머니께 효도하며 살것이라고 다짐했다.
월진의 말이 끝나자, 그녀가 한참동안이나 깊은 회상에 잠기는 듯하니, 길게 탄식하며 말했다.
".... 분수에 맞는 삶을 산다라....아이야, 너는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
월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모친을 바라보았다. 모친은 그런 월진을 한참동안이나 쳐다본 후,
"내 패물 상자를 가져다 주지 않으렴?"
라고 말했다. 월진이 그녀가 시키는 대로 패물상자를 서랍에서 꺼내와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가 상자를 열고 안에서 하나의 푸르른 옥반지를 꺼냈다.
"이것이 뭔지 아느냐?"
월진이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니 애비가 나와 혼례를 올릴때 유일하게 준 예물이란다"
옥은 물론 싸구려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유일한 예물이라고 하기엔 너무 평범한 것이었다. 하지만 월진은 놀라지 않았다. 그의 부모가 가난한 것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옥반지를 보면서, 추억에 회상하며 이야기 했다.
"니 애비가 가난한 나무꾼이란 사실은 너도 이미 알고 있겠지. 그러나 니 애미는 원래 높은 관직에 있는 관원의 여식이었다. "
월진은 그 말에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그런 월진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오래전 월진의 아버지 월강은 산속에서 나무를 하다가 마침 아버지와 함께 사냥을 하다 길을 잃고 헤매던 그녀를 만나게 되었다. 둘은 서로 한눈에 반하게 되었는데, 현실은 신분의 차이가 있었다.그러나 월강은 대담하게도 그녀를 데리고 도망치고는 머나먼 길을 떠나 마침내 이런 벽지로 들어와 그녀와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오랜 세월동안 함께 지내며 수많은 고난을 함께 겪었다. 그리고 6명의 자식까지 얻어 나름 행복을 얻었다. 그러나 월진도 알다시피, 그후 위로 3명의 아들들은 징병이 된후 소식이 끊겼고, 한명의 딸은 흉적에게 납치되었으며 또 다른 딸은 역병으로 죽었던 것이다. 그리고 막내였던 월진마저 위독한 가운데 사라지고 말아, 그들은 커다란 절망과 슬픔속에 몇년동안을 지내야만 했다. 그리고 급기야, 월진의 아버지 월강마저 죽었을 때, 그녀는 세상만사에 진저리가 나고 허무함만이 느껴져 속세를 버리고 비구니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집안을 정리하기 위해 몇가지 물품을 시중에 팔고 돌아왔을 때, 그녀는 침대 위에 월진이 누워 있는 것을 보았던 것이다.
월진은 그녀의 인생사를 가만히 들으며 뭐라고 말해야 할지 잘 모르고 마음이 뭉그러졌다. 차례차례 자식을 모두 잃고 끝내 지아비를 잃어 혼자서 몇년간을 외롭게 살아왔던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쓰려왔다.
그녀가 말했다.
"아이야, 너는 옛날 부터 다른 사람 말을 잘 듣고, 곧이 곧대로 깊이 믿곤 했지. 그 중이 말한 것은 옳다. 실제로 니 애미도 네가 다시 돌아오기 전까진 이 모든 것이 덧없는 꿈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나는 네가 돌아왔을 때 여태까지의 모든 괴로움도, 모든 절망도 잊고 하늘께 감사드리고 또 감사드렸다. 내게 이토록 커다란 기쁨을 주신 것을 감사했단다. 내게 있어 너는 결코 덧없는 것이 될수 없다."
월진은 자신도 볼에 뜨거운 눈물이 조용히 흐름을 느꼇다. 그녀 또한 눈가에 물기가 젖어 있었다.
"니 애비가 혹시 분수에 맞게 살며, 이 애미를 포기했다면, 내게 이런 행복이 있었을까? 많은 자식들이 내곁에 떠나가 니 애미는 너무 괴로웠지만 결국 너는 지금 내 앞에 있기 때문에 또 다시 행복하다... . 니 애비가 혹시 분수에 맞게 살았다면, 너는 지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월진의 오른손 소매를 걷었다. 거기에는 이빨자국이 선명하게 난 깊은 상처가 있었다.
"너는 이 자국이 누구것인지 생각해보았느냐?"
눈물을 훔치며 월진은 고개를 저었다.
"이것은 바로 네가 문것이란다...."
월진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
"이 이빨자국이 제것이라고요?"
그녀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는 너의 애미다. 나는 너의 이빨이 몇개이고, 하나하나의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 다 알고 있다. 이 것은 물론 너의 것이다. 진아, 너는 9년간 아무런 기억이 없겠지. 나는 왜 네가 네 팔을 그토록 처절하게 물었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러나 이토록 깊은 상처를 스스로 내는 사람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일을 겪은 사람이 아니겠느냐? 너는 9년간 깊은 꿈을 꾸었고, 그것은 어쩌면 덧없이 지나간 꿈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 꿈은 결코 잊어서는 안될 그러한 꿈이 아닐까?"
월진은 그 말에 멍히 자신의 오른팔에 난 그 자국을 보았다. 이것이 바로 자신의 것이라니? 나는 왜 이토록 깊은 상처를 냈을까? 그는 도저히 알수 없었다...
"누군가 말하지. 삶은 그저 일장춘몽과도 같아 깨어나고 나면 그저 덧없을 뿐이라고. 어쩌면 그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진아. 너는 아직 20살이고 하물며 너의 마음은 아직도 어린아이의 그것과도 같지 않느냐.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될지라도, 너는 아직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니 애미는 생각한다. 너처럼 어린 아이가 분수에 맞는 삶이란 생각을 가진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슬픈 일이 아니겠느냐... "
월진은 그저 고개를 푹 숙이며 굵은 눈물을 뚝뚝 손등위로 떨어트릴 뿐이었다.
"...진아......너는 아직 꿈에서 깨어나서는 안되는 아직 어린 아이란다......"
그리고 그녀는 그렇게 조용해졌다. 월진이 문득 이상해 그녀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그녀는 얼굴 한가득 행복한 모습을 짓고 눈을 감은 채 미동도 없었다.
"어머니...?"
이내 월진은 깨달았다. 그녀가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월진은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며, 그녀를 침대위에 천천히 눕히고 담요를 단정히 덮었다. 그리고 절을 크게 세번 했다.
"편히 쉬십시오 어머니"
월진은 결국 모든 가족을 잃고 만것이었다.
며칠 후, 월진은 천년만화수의 동굴 앞으로 갔다. 그는 막광세의 무덤을 잠시 손질 한 후, 동굴 입구를 향해 바라보았다. 잠시동안 회상에 잠긴 후, 발길을 돌려 그 자리를 떠났다. 그의 품에는 하북패삼살이 죽으면서 남긴 황금빛의 꽃가루가 있었다. 그는 서문주영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몰랐지만, 혹시 죽었다 할지라도 그 꽃가루를 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설사 그녀의 무덤 위에 뿌리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리하여 여기 강호에 또 다른, 꿈처럼 덧없는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었다. 월진의 앞날은 어떠할까. 하루에도 무수히 목숨이 스러져 가는 이 험난한 강호에서 그는 어떠한 이름을 남기게 될까? 월진이 이제부터 꾸게 될 한바탕의 꿈은 과연 어떠한 꿈일까. 그것은 오로지 하늘만이 알 것이리라.
그리고 사라져 가는 월진의 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한쌍의 눈동자가 있었다. 그것은 자그마한 짐승의 것이었다. 하얀 털에 뒤덮인 그것은 바로 백영묘였다. 백영묘는 마침내 월진이 하나의 점이 되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끝까지 지켜본후에야 어디론가 달려갔다. 풀잎과 바람 사이를 가르며 한참동안 달려간 후 백용묘가 도착한 곳은 바로 흰 옷을 입은 한 인물의 무릎 위였다. 백영묘는 아늑한 보금자리에 들어선 듯 눈을 감고 조용히 꿈을 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백영묘의 자그마한 머리와 등허리를 보드랍게 쓰다듬는 아름다운 손이 있었다. 그것은 여인의 손이었다. 그 손을 한번 바라보는 자는 다들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이미 이 손만으로도 미녀라는 소리를 들을 자격이 있을 것이라고.
4분 일장춘몽(一場春夢) 끝.
일격평천하(一擊平天下) 1권 , 백영묘(白英猫) 끝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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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페이퍼로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용상 1권이 끝났습니다.
나름 아쉽고 부족한 점이 많다고 스스로 생각했지만 이글을 읽고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주신 여러분들 덕분에 꾸준히 연재할수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2권은 좀 더 플롯들 다듬어서 완성되는 대로 올리기 시작하겠습니다. 그동안 만사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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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2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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