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애루주23- 하산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주인님"
"아니에요, 누님 저도 금방 나왔는걸요?"
"그렇습니까? 그럼 쓸 만한 노예감이라도 찾으셨는지..."
"하아~ 그래도 나름 무림맹 지부라서 찾아봤는데 없더군요, 역시 누님 정도의 소질을 가진 미인이 그리 많을 리는 없겠죠."
유백의 칭찬에 설영의 입가에 자부심 어린 미소가 떠오른다. 그런 설영의 미소에 무림맹 감숙지부의 문을 나설 때부터
설영에게 눈을 때지 못하던 남성들 중 일부가 사타구니를 움켜쥐며 허둥지둥 자리를 떴다.
유백과 설영이 지금 서있는 곳은 감숙지부 정문 앞 이였다. 하산보고와 그 동안 받지 못한 마옥주 임무에 대한 급여를
받기 위해 꼭 들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단지 설영이 지부장과 인사를 나누고 급여를 받는 곳에 굳이 따라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유백은 설영이 지부장을 만나는 동안 혹 쓸 만한 노예감이 있나 찾아볼 겸 홀로 감숙지부를 산책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것이다.
"그런대 누님 좀 늦으셨네요?"
일다경이 안 걸릴 거라는 말과 달리 근 반시진이나 되서야 나오자 유백이 의문을 표한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맹지부장이 좀처럼 놔주질 않았습니다..."
충혈된 눈동자로 음흉하게 자신을 바라보며 만약 틈이라도 있으면 당장이라도 덮칠 듯 허리를 들썩이던
맹지부장을 떠올리던 설영이 한숨을 내쉬며 유백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한번 대주지 그랬어요."
"설령 제가 원한다고 한들 주인님의 허락과 명령이 없으면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 몸은 제 것이 아니라 주인님의 것입니다.
더군다나, 아직 다른 노예가 없는 상황에서 주인님을 홀로 두는 것은 노예로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날카로운 눈매에 단호한 눈동자로 거침없는 설영의 말에 유백이 되 물었다.
"만약 제가 허락한다면?"
"주인님께서 허락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우선순위는 주인님이십니다."
"그럼 제가 명령한다면?"
"주인님의 명령이라면 저는 지나가는 거지에게도 엎드려 스스로 보지를 벌릴 것 입니다."
"조금 붉어진 얼굴과 달리 침착한 어투로 대답하는 설영 귀여운 듯 유백이 슥슥 설영의 머리를 쓰다듬자
설영은 행복한 얼굴로 눈을 감으며 유백의 손길을 즐겼다.
"역시 누님은 최고에요. 일단 객잔을 먼저 잡도록 하죠. 날도 거의 저물었고...배도 고프네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해야겠죠."
"네, 주인님, 그전에 먼저 이것을 받아주세요"
설영이 들고 있던 전낭을 내밀자 전낭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유백은 전낭 안에 들어있는 종이를 꺼냈다.
전장과 금액이 쓰여 있는 전표를 바라보며 유백이 의문을 표한다.
"이건 뭔가요?"
"얼마 안 되는 급여이기는 하나 나름 모이니 제법 괜찮은 액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인님의 꿈에 보태십사.."
유백이 슬쩍 확인한 금액란에는 금자 스무 냥이라는 글이 쓰여 있다. 은자 열 냥이면 네 식구가 한 달을 배부르게 먹으며
생활할 수 있는 금액이며 금자 한 냥은 은자 백 냥이었다. 설영의 말대로 그리 적지 않은 금액이기는 하나 유백은 피식
웃으며 다시 설영에게 전표를 건넨다. 유백에게 있어서 금자 스무 냥은 푼돈에 불과할 뿐이다.
"괜찮아요, 누님 이것은 누님이 가지고 계시다가 필요한곳에 쓰세요."
"저는 노예이며 제 모든 것이 주인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노예에게 필요한 것은 주인님뿐이죠. 그렇기에 그 돈은
제 것이 아닌 주인님의 것입니다. 더군다나 제 옷에는 넣을 곳도 없습니다."
몸에 꼭 들러붙은 치파오를 유백에게 보이며 이상한 곳에서 고집을 피우는 설영의 말에 유백은 난처한 미소를 짓는다.
[가끔씩 생각하지만 누님은 이런 부분에서는 융통성이 없다니까...]
"일단, 객잔부터 찾아 봐요 누님"
유백과 설영이 객잔을 찾아 대로변으로 나오자 웅성웅성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함께 뭇 남성들의
시선이 설영에게 쏠린다. 날카로운 눈매와 냉정해 보이는 얼굴에 살짝 상기된 듯 붉어진 얼굴과
요염한 입술에 도발적인 웃음을 베어 물고 있는 설영의 아름다운 얼굴 또한 그들의 방심을 흔들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옷차림에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몸에 꼭 끼다시피 달라붙어 설영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치파오(차이나드레스) 위로 설영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춤을 추듯 음란하게 흔들리는 풍만한 유방에는 꼿꼿이 발기된 유두가
자신의 위치를 증명하고 유혹하듯 살랑살랑 흔들리는 투실투실하고 탐스러운 복숭아 같은 엉덩이와 치파오의 옆트임에서 모습을
들어내는 하얀 나비가 새겨진 갈색으로 빛나는 매력적인 허벅지 사이로 힐끗 힐끗 드러나는 음모의 모습에
대로변의 남성들이 눈을 빛내지만 설영의 허리춤에서 흔들리는 검과 곁에 있는 유백의 모습에 차마 다가서지 못하며 침을 삼킨다.
"무슨 날일까요? 빈방이 없네요."
유백의 물음에 설영 또한 곤혹스러운 듯 그 아름다운 얼굴을 찌푸린다.
"별다른 축제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남성들의 시선으로 인해 흥분해버린 설영은 당장이라도 유백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그러나 객잔을 잡지 못하자 설영은
슬슬 안달나기 시작했다. 이미 애액이 조금씩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설영은 입술을 깨물며 이곳저곳 시선을 돌린다.
어쩐지 어둡고 으슥한 곳에만 눈길을 돌리는 설영,
[주인님에게 저곳에서 안아달라고 졸라볼까...? 주인님이라면 흔쾌히 들어주실 지도 몰라..어쩌면 이곳에서 안아주신다면..흐~응~]
주인님이 요구한다면 이 대로변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은 치마를 들어 올릴 것이다. 남들이 보던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아니 그편이 더욱 흥분되겠지.
내심 어떻게 졸라야 주인님에게 안길 수 있을까 생각에 빠져있던 설영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아니, 한설영 소저 아니십니까. 아직 떠나지 않으셨군요."
뒤를 돌아보자 무림맹 감숙지부장 맹석천이 우연이라는 듯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념을 방해 받은 설영은 조금 짜증 섞인
어투로 맹석천의 말에 대답한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럼 설마 객잔을 찾고 계셨습니까? 이런, 이런, 어찌 코앞에 저희 지부를 내버려두고 객잔을 찾으신단 말입니까. 지부로 모시지요
이곳이 제 관할인지라 무뢰배는 없다고 자부하나, 혹 피 끓는 젊은이들이 설영소자의 미모에 끌려 무례를 범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오늘은 감숙성에 큰 장이 열리는 날입니다. 방을 구하기 어렵지요. 그리고 허름하기 짝이 없는 객잔들 보다는 저희 감숙지부
요리장의 요리솜씨가 몇 배는 더 좋습니다, 하하하,
은근 슬쩍 스스로 자신을 치켜세우며 초대하는 맹석천에게 설영은 다시금 짜증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모셔야 하는 분이 계신지라 섣불리 초대에 응할 수 없습니다."
"모셔야 할 분이라면..아~ 여기 이 훤칠하게 잘생긴 공자시겠구려"
"네 저의,"
"백이라고 합니다. 제가 검각에 볼일이 있어 여행을 하려는 찰나, 운이 좋게도 때마침 설영소저를 만나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설영의 말을 자르며 유백이 맹석천에게 포권을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유백의 눈과 맹석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유백의 눈동자가
묘하게 빛났고 이상한 자기소개와 어딘지 낯익은 얼굴에 조금 의문을 가지던 맹석천의 눈동자가 조금 풀리는가 싶더니 원래의 빛으로
돌아오며 호탕한 웃음과 함께 마주 포권을 지어 인사를 나눴다. 유백의 섭혼술로 인해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게 된 맹석천은 내심
떠오르는 생각에 홀로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각이 초대한 부호의 자제쯤 되는 인물인가 보군. 혹은 신붓감이라도 찾아보고자 검각에 가는지도?]
실제 대부분의 문파들이 그렇게 대부호를 초청하여 무위를 선보인 후 부호의 자제를 속가로 받거나 혹은 기부를 받고 자신들의 힘이나
이름을 빌려주는 경우는 많았다. 사실상 개방을 제외한다면 구파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자신 또한 선친이 소림에 상당한
기부를 한 덕에 몇 가지 무공과 함께 소림의 속가제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하하핫, 나는 맹석천이라는 사람이외다. 작게나마 소림의 은혜를 입어 이곳 감숙지부장을 맡고 있소이다."
"맹대협 이셨군요. 그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하, 작은 이름을 그리 높게 쳐주시니 영광이로소이다. 어떠신가, 백공자 자네가 생각해도 허름한 객잔보다는 그래도 감숙지부가
더 낳지 않겠는가? 내 비장의 술도 개봉 함세"
"흐음, 기대 되는군요. 맹지부장님의 비장의 술이라...이거 초대를 거절할 수 없겠는데요?"
"핫핫핫 기대해도 좋네, 자~자, 설영소저, 백공자가 허락했으니 지부로 가십시다. 내 거하게 대접하리다."
자신의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는 맹석천을 바라보며 설영은 조금 서운한 얼굴로 유백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째서..전 주인님의 노예입니다. 혹 제가 노예인 것이 창피하신 것인지...-
주인님이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며 맹석천의 초대를 받아들인 것에는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는다. 자신은 노예이니까, 다만
맹석천에게 주인님을 소개하며 자신이 노예인 것을 밝히는 것을 제지당한 것에 서운함을 느꼈다. 자신이 유백의 노예임을
만 천하에 알리고 싶은 설영이었다. 더군다나 중원에서 아니 강호인 이라면 더더욱 주인을 가졌다는 것에 그리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
목숨을 구원 받거나 커다란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그 은혜를 갚고자 수하를 자처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닌 것이다.
-걱정 말아요 누님은 제 노예이니까, 문신속의 글자를 보았지요?-
-그렇다면 어째서...-
유백은 맹석천을 따라 성큼 걸음을 옮기며 설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확인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거든요.-
유백의 입가에 떠오르는 매서운 미소에 설영은 서운함을 잊어버리며 유백의 뒤를 쫓아 종종걸음을 옮겼다.
"흐음..제법 괜찮은 방이로군."
연회가 끝나고 하녀의 안내를 받아 어쩐지 설영의 방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자신에게 배정된 방에서 벌렁 침상에 몸을 뉘이며 유백이 중얼거렸다.
고개만을 돌려 나름 화려하게 꾸며진 방을 눈으로 살피는 유백, 맹석천이 제법 신경을 쓴 모양인지
잠시 조금 전 있었던 연회를 떠올리던 유백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린다.
[그런데... 낮에 그놈들은 도대체 어떤 놈들일까..]
슬쩍 자신의 목에 걸린 광법스승이 준 목걸이를 매만지며 유백은 자신의 하산하기 전날을 떠올렸다.
"받아라."
"웬 목걸이 입니까? 광법스승님."
광법스승에게도 배운 적 없는 기묘한 법술과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되묻는 유백에게 광법이 입을 연다.
"며칠 전 꿈자리가 매우 사납더구나. 근래 그런 적이 없었기에 오랜만에 점을 쳐보았다. 그랬더니 우리가 아니라 네놈이 큰 사단에 휘말린다는
점괘가 나오더구나. 네놈의 능력을 잘 아는 나로서는 강호에 네놈을 어쩔 수 있는 이가 있다고 믿을 수 없다만...점괘가 그리 나왔으니
늙은이 노파심에 가지고 나왔다."
인상을 찡그리며 설명하는 광법의 곁에서 작은 체구의 노인이 주책없이 끼어든다.
"허, 걱정도 팔자다. 모르긴 몰라도 당금 강호에 유백을 어쩔 수 있는 놈은 없을 텐데? 그때마냥 정. 사. 마가 연합한다 해도 강호에서
사라지는 것은 그놈들일 것이야. 노망난 것이냐, 광법?"
"광투,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더냐. 그저 노파심이라고, 다만 점괘가 그리 나왔으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눈앞의 열 자루의 검보다 숨어있는 한 자루 단검이 더 무서운 법이잖은가."
"하기사...네놈의 점괘가 그리 나왔다고 하니 나도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는군."
법술과 도술에 미쳐있다고 붙여준 광법이라는 이름답게 광법은 그런 잡기에도 능했다. 그들 또한 그 덕을 제법 보았었다. 더군다나 광법은
하늘의 뜻이나 운명을 미리 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 때문에 점을 치는 일은 거의 없기도 했다. 스승들의 투닥거림을
들으며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유백이 광법에게 입을 열었다.
"그런대 광법스승님, 이 문양과 술법은 본적이 없는 것이 온데.."
"나 역시 그 여원은 잘 모른다. 한때 목걸이에 새겨진 법술과 문양의 뜻을 풀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다만..."
"다만?"
"그 목걸이를 나에게 팔던 떠돌이 도사가 이렇게 말하더구나. 상고시대부터 내려온 물건으로 합당한 주인의 손에 들어갈 경우 그 능력을
개방할 것이다. 라고. 처음에는 사기꾼인줄 알았으나. 나름 목걸이를 연구해보니 몇 가지 성과가 있기에 가지고 있었다. 그런대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야 문득 그 존재가 생각나더구나. 그래서 네놈에게 주자고 마음먹었다."
새겨진 문양이 묘하게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듯해 마음에 들었던 유백은 냉큼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감사 합니다,광법스승님"
"됐다. 그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 다만, 하산해서 혹여 사단에 휘말리거든 한번쯤 전 후를 파악 해본 후에 움직이도록 하거라. 그리고..."
유백은 말 꼬리를 흐리는 광법스승에게 의문을 느끼며 광법스승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후우..."
한숨을 내쉬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던 광법은 결심이 섰는지 유백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늘이 무슨 연유가 있어 너와 같은 아이를 내려 보내셨는지 알 수도 없거니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다고 해도 나의 능력으로는
결과를 바꿀 수 없기에, 그렇기에 너를 처음 본 순간 이것 또한 운명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다.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라는 것이기에,
그저 하늘의 뜻이 인세에 나쁜 방향으로 퍼지는 것이 아닌 것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네놈이 속내를 비추지 않아, 네꿈이 어떠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네가 세상을 호령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아는 만큼 이 스승이
당부 하나만 하마, 네 처음의 꿈을 잊지 말고 그 꿈만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거라. 네 힘을 오로지 네 꿈을 이루기 위한 것에만
썼으면 하는구나.."
"물론이죠. 스승님"
스승의 걱정스러운 당부에 유백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의 점술은 역시나 틀리지 않네요.]
감숙지부 정문을 나서면서 부터 느껴지던 묘한 시선들, 처음에는 설영의 미모와 옷차림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며 느껴지는 기색들은 무지렁이가 아닌 일류라고 불리 울 수 있을 만큼 실력 있는 무인들이 상당수 섞여있었다. 우연을 가장해
나타난 맹석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 딴에는 숨는다고 숨었던 모양이나 유백의 감각을 속일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은 없었던지라,
유백은 졸졸 쫓아다니던 맹석천의 기색을 진즉 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나 누님을 어쩔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자는 없었어, 하지만... 그 상당수가 맹석천보다는 강자들이였어. 변두리라고는 하나
무림맹지부의 지부장보다 강자들을 다수 부릴 수 있다면...개인이라고 보기 힘들겠지. 어딜까...무림맹, 사파연합, 마교 일단 생각나는 건
이 셋뿐이군.]
한 개인이 저 정도의 강자들을 고작 미행에 투입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지니기란 매우 어렵다. 관부라면 가능할지 모르나 무림과 관부의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특성상 관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더군다나 자신은 관부와 인연이 없다. 어릴 적 양어머니를 만나기전
자신을 대리고 있었던 그 내숭덩어리 여인 또한 상인의 부인이었고, 그나마 자신을 찾아 사람을 풀었다가 결국 적화에게 죽었다. 사실상 강호, 아니
천하를 통틀어 자신을 알고 있는 자는 어릴 적 양모와 같이 살았던 섬서의 작은 시골마을 사람들과 설영, 그리고 스승님들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결국...국한 되는 것은 무림맹과 사파연합 ,마교 뿐인가. 하기야 저 정도의 실력자 들을 동원할 수 있는 단체, 그리고 동시에 나의 존재에
관심을 보일만한 곳은 그 셋뿐이 없지.]
만마대전의 발생원인과 만마동에 있는 스승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고 있을만한 곳은 그 셋뿐,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존재가 그들에게
알려 졌다면 그들의 관심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다만... 그 기색에 적대감이나 살기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자신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알려졌다면...소림인가? 그들의 입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무림맹에 전해 졌다면, 사파연합과 마교에도 당연히 알려 졌을 테지.
하지만 소림이 과연 내 존재를 고해 바쳤을까? 아니.. 그럴 리 없어]
고개를 흔드는 유백, 소림이 자신의 존재를 알렸을 리 만무하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또 만마동에 가두었다고 무림맹에게 고하기 위해선
자신들의 치부를 들어내야 한다. 설령 자신들의 치부를 숨겼다고 해도 양어머니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은 숨기기 어렵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알려진다면 소림은 무림맹에서의 입지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림맹의 이름에 먹칠 하는가 보다 자신들의 작은 치부가 알려지는 것을
더 무서워하는 구파이니만큼 그럴 일은 없다. 더군다나...어머니와 소림의 전대방장 승허와의 약속이 있기에 자신은 소림에 들려 봐야한다.
[확실히 나는 그들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먹잇감일수도 있지...잘만 하면 열두 스승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무림맹이든 사파연합이든 마교든 천하통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테지. 하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커, 나머지 두 단체가 힘을 합하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세인들에게 스승들의 존재를 설명해야 돼...그것은 자신들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꼴이니..]
또 하나 걸리는 문제도 있다. 스승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자가 있다면 만마동에 보급품이 끊겼을 리 없다. 실제 양어머니 손에 죽은 목허조차
모르고 있었고...더군다나 감숙지부에서 시작된 기색들도 이상하다.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라면 자신을 기다리기 위해 감숙지부 근처에서
잠복할 이유가 없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스승들은 세간에 마두로 알려져 있으니...소림이 알렸다고 한다면 차라리 소림사 근처에서 대기하는 편이
나았다. 자신이 감숙지부에 들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니. 그리고 감숙지부에 들어서자 감숙지부에 들어오지 않고 근처로 흩어진 기색들
또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어렵군..."
도무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적에 쓴 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는 유백의 귀로 설영의 열기 띤 비음과 맹석천의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색녀 같으니, 내 오늘 아주 죽여주마."
"후으응~ 좀더~"
자신의 방에 안내될 때부터 설영의 방에 천리지청술을 펼쳐놓았던 유백이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후후, 맹석천 이 양반이 급했나 보군. 연회가 파한지 아직 한식경(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자신들의 뒤를 미행하던 맹석천이 우연을 가장해 모습을 드러내자 무림맹을 의심한 유백은 맹석천의 초대를 흔쾌히 승낙했던 것이다.
그러나... 설영의 음식과 술에만 슬쩍 가미된 춘약과 맹석천의 음흉한 눈동자에 유백은 맹석천에 대한 의심을 접어 버렸다.
애초에 소인배인 맹석천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하고 또 무림맹이 자신의 존재를 안다면 그야말로 유백에게 일초지척조차 안될 것인 맹석천에게
무슨 밀명을 내릴 리 없으니. 다만 유백은 생각을 정리하고자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고 또 다른 행동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설영에게 미리 춘약에 대해
귀띔해주고 즐기고 오라고 말해 놓았다.
[자~ 이렇게 엄연하게도 무림맹 지부에 들어왔음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무림맹은 아닌 것 같고...나머진 사파연합과, 마교 뿐인가...
아니 이들도 아니야...그들의 실력이라면 본맹도 아닌 이곳 변두리 지부에 들어오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지. 그러니 그들 중 하나는 혹은 둘 모두
모두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옳아. 그렇다면 사파연합과 마교도 아니란 말인데...]
"하아앙~흐응~아아아~"
골치가 아픈 듯 이마에 손을 가져가던 유백의 귓가에 약에 취한 설영의 몽롱한 비음이 들려온다.
[훗 정말 즐기고 있는 모양이네. 그리 강한 춘약도 아니던데 말이지. 하긴 미인화심법을 완성한 누님에게는
그저 그런 삼류 춘약이라도 엄청나게 효과를 발휘하겠지.]
원채 민감하던 설영이다. 거기에 자신의 조교와 미인화심법을 극성으로 익혀놨으니 춘약이 없어도 항상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일 터이다.
한참 달아올랐을 설영을 떠올리며 미소 짓던 유백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가만! 내가 아니라...누님을 노렸다?]
말이 된다. 마옥주로 6년을 마옥에서 보냈다고는 하지만 자신과 다르게 나름 강호에서 명호까지 얻은 설영이다. 더군다나 그 무공수위 또한
모르긴 몰라도 후지기수 중에서는 적이 없을 것이다. 연회에서 어떻게든 춘약의 존재를 숨기고자 과장되게 설영의 무공수위와 미모
그리고 검각의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주절주절 떠벌리며 설영에게 연신 술과 음식을 권하던 맹석천의 말이 떠오른다. 실상 과장도 아니다. 설영의
미모와 무위 그리고 일처리 능력이라면 검각의 후계자 중에서도 단연 돋보일 것이다. 비록 오랜 마옥주 생활로 검각내에 세력이 없는 설영이지만
그리 큰 문제도 아니다. 안 그래도 뛰어난 실력의 설영에게 자신이 건넨 대환단과 월광옥녀검법을 익힌 설영이 검각에 돌아가는 순간 세력 추는
급격히 설영 쪽으로 기울 것이다. 한 삼사년 후에는 검후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설영이기에 설사 검각의 각주가 될 수 없다고 해도 그 발언권은 각주조차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할 것이다. 검각이 비록 구파일방과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이름이 높은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오대세가에 비견될 힘과 이름,
그리고 역사를 가졌다. 몇 대나 검후를 배출하지 못해 그 위명이 조금 바랬다고 하지만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인들만이 모여 생활하며 무공을 익히는
검각인지라 신붓감을 찾아 외부에서 부호나 명가의 자제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제법 많다. 그리고 그렇게 결혼한 검각의 여인들은 검각을 떠날지언정
음으로 양으로 검각을 지원한다. 대부분이 부호들과 제법 이름 있는 관부의 자제들 그리고 명가의 자제들이 검각의 제자들과 엮이다 보니 그런 지원들
까지 합한다면 오대세가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런 검각이기에 무림맹에서의 발언권 또한 그리 적지 않다. 비록 무림맹에 별다른 직책을 가진 검각 여인은 없지만 맹주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이 검각의 실세이다. 실제 설영의 스승이 슬쩍 내비친 요구를 무림맹은 흔쾌히 받아들여 설영을 마옥주로 임명했을 정도니. 검각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런 검각의 힘과 영향력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뛰어나다고 알려진 설영이 마침 세상에 나와있다. 이보다 더 군침 나는 먹잇감은 없을 것이다.
유백은 가만히 눈을 감고 낮에 느꼈던 기색들의 방향을 더듬어 떠올려 본다.
[과연...나보다는 누님 쪽으로 더 쏠려있었어. 누님의 옷차림과 미모에 이끌린 사람들의 시선에 묻혀버린 나머지 나조차 알아차리기 힘들었던가.? 방심했군. 스승님의 말이 있었음에도 아직 강호 초출이니 사건에 휘말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끙~ 그러고 보니 스승님도 내가 사단에휘말린다고 했지 내가 사건의 당사자라고는 하지 않으셨지...]
조금 인상을 찌푸리던 유백은 훗, 하고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침상에 몸을 뉘인 다.
[뭐, 상관없나, 아직 적의 정체도 모르고 지금까지는 전부 추론에 불과 하니까. 단순히 누님을 한번 맛보고 싶다면 한번쯤 빌려 줄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누님 전부를 원한다면...지워버리면 그만이야, 어떠한 곳이 되었던 말이지...]
천정을 바라보는 유백의 입가에 스산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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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드리겠습니다. 설령 단 하나의 추천과 욕설로 점철 되었을망정
단 하나의 리플이라도 달리는 한 이 글은 반드시 완결 짓겠습니다.
(낮은 조회 수에 조금 실망했다가, 추천수와 리플이 그분들과 비슷한 것에
감동 받아 울 뻔한 다람쥐가 올림)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주인님"
"아니에요, 누님 저도 금방 나왔는걸요?"
"그렇습니까? 그럼 쓸 만한 노예감이라도 찾으셨는지..."
"하아~ 그래도 나름 무림맹 지부라서 찾아봤는데 없더군요, 역시 누님 정도의 소질을 가진 미인이 그리 많을 리는 없겠죠."
유백의 칭찬에 설영의 입가에 자부심 어린 미소가 떠오른다. 그런 설영의 미소에 무림맹 감숙지부의 문을 나설 때부터
설영에게 눈을 때지 못하던 남성들 중 일부가 사타구니를 움켜쥐며 허둥지둥 자리를 떴다.
유백과 설영이 지금 서있는 곳은 감숙지부 정문 앞 이였다. 하산보고와 그 동안 받지 못한 마옥주 임무에 대한 급여를
받기 위해 꼭 들려야만 했기 때문이다. 단지 설영이 지부장과 인사를 나누고 급여를 받는 곳에 굳이 따라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유백은 설영이 지부장을 만나는 동안 혹 쓸 만한 노예감이 있나 찾아볼 겸 홀로 감숙지부를 산책하며
여기저기 기웃거렸던 것이다.
"그런대 누님 좀 늦으셨네요?"
일다경이 안 걸릴 거라는 말과 달리 근 반시진이나 되서야 나오자 유백이 의문을 표한다.
"죄송합니다. 주인님. 맹지부장이 좀처럼 놔주질 않았습니다..."
충혈된 눈동자로 음흉하게 자신을 바라보며 만약 틈이라도 있으면 당장이라도 덮칠 듯 허리를 들썩이던
맹지부장을 떠올리던 설영이 한숨을 내쉬며 유백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한번 대주지 그랬어요."
"설령 제가 원한다고 한들 주인님의 허락과 명령이 없으면 그럴 수는 없습니다. 제 몸은 제 것이 아니라 주인님의 것입니다.
더군다나, 아직 다른 노예가 없는 상황에서 주인님을 홀로 두는 것은 노예로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날카로운 눈매에 단호한 눈동자로 거침없는 설영의 말에 유백이 되 물었다.
"만약 제가 허락한다면?"
"주인님께서 허락한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우선순위는 주인님이십니다."
"그럼 제가 명령한다면?"
"주인님의 명령이라면 저는 지나가는 거지에게도 엎드려 스스로 보지를 벌릴 것 입니다."
"조금 붉어진 얼굴과 달리 침착한 어투로 대답하는 설영 귀여운 듯 유백이 슥슥 설영의 머리를 쓰다듬자
설영은 행복한 얼굴로 눈을 감으며 유백의 손길을 즐겼다.
"역시 누님은 최고에요. 일단 객잔을 먼저 잡도록 하죠. 날도 거의 저물었고...배도 고프네요.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움직일지 생각해야겠죠."
"네, 주인님, 그전에 먼저 이것을 받아주세요"
설영이 들고 있던 전낭을 내밀자 전낭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유백은 전낭 안에 들어있는 종이를 꺼냈다.
전장과 금액이 쓰여 있는 전표를 바라보며 유백이 의문을 표한다.
"이건 뭔가요?"
"얼마 안 되는 급여이기는 하나 나름 모이니 제법 괜찮은 액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인님의 꿈에 보태십사.."
유백이 슬쩍 확인한 금액란에는 금자 스무 냥이라는 글이 쓰여 있다. 은자 열 냥이면 네 식구가 한 달을 배부르게 먹으며
생활할 수 있는 금액이며 금자 한 냥은 은자 백 냥이었다. 설영의 말대로 그리 적지 않은 금액이기는 하나 유백은 피식
웃으며 다시 설영에게 전표를 건넨다. 유백에게 있어서 금자 스무 냥은 푼돈에 불과할 뿐이다.
"괜찮아요, 누님 이것은 누님이 가지고 계시다가 필요한곳에 쓰세요."
"저는 노예이며 제 모든 것이 주인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노예에게 필요한 것은 주인님뿐이죠. 그렇기에 그 돈은
제 것이 아닌 주인님의 것입니다. 더군다나 제 옷에는 넣을 곳도 없습니다."
몸에 꼭 들러붙은 치파오를 유백에게 보이며 이상한 곳에서 고집을 피우는 설영의 말에 유백은 난처한 미소를 짓는다.
[가끔씩 생각하지만 누님은 이런 부분에서는 융통성이 없다니까...]
"일단, 객잔부터 찾아 봐요 누님"
유백과 설영이 객잔을 찾아 대로변으로 나오자 웅성웅성 사람들의 수군거림과 함께 뭇 남성들의
시선이 설영에게 쏠린다. 날카로운 눈매와 냉정해 보이는 얼굴에 살짝 상기된 듯 붉어진 얼굴과
요염한 입술에 도발적인 웃음을 베어 물고 있는 설영의 아름다운 얼굴 또한 그들의 방심을 흔들었지만
무엇보다도 그 옷차림에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있었다. 몸에 꼭 끼다시피 달라붙어 설영의 몸매를 그대로 드러내는
치파오(차이나드레스) 위로 설영의 걸음걸이에 맞추어 춤을 추듯 음란하게 흔들리는 풍만한 유방에는 꼿꼿이 발기된 유두가
자신의 위치를 증명하고 유혹하듯 살랑살랑 흔들리는 투실투실하고 탐스러운 복숭아 같은 엉덩이와 치파오의 옆트임에서 모습을
들어내는 하얀 나비가 새겨진 갈색으로 빛나는 매력적인 허벅지 사이로 힐끗 힐끗 드러나는 음모의 모습에
대로변의 남성들이 눈을 빛내지만 설영의 허리춤에서 흔들리는 검과 곁에 있는 유백의 모습에 차마 다가서지 못하며 침을 삼킨다.
"무슨 날일까요? 빈방이 없네요."
유백의 물음에 설영 또한 곤혹스러운 듯 그 아름다운 얼굴을 찌푸린다.
"별다른 축제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만..."
남성들의 시선으로 인해 흥분해버린 설영은 당장이라도 유백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그러나 객잔을 잡지 못하자 설영은
슬슬 안달나기 시작했다. 이미 애액이 조금씩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것을 느끼며 설영은 입술을 깨물며 이곳저곳 시선을 돌린다.
어쩐지 어둡고 으슥한 곳에만 눈길을 돌리는 설영,
[주인님에게 저곳에서 안아달라고 졸라볼까...? 주인님이라면 흔쾌히 들어주실 지도 몰라..어쩌면 이곳에서 안아주신다면..흐~응~]
주인님이 요구한다면 이 대로변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은 치마를 들어 올릴 것이다. 남들이 보던 말든 신경 쓰지 않고, 아니 그편이 더욱 흥분되겠지.
내심 어떻게 졸라야 주인님에게 안길 수 있을까 생각에 빠져있던 설영의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니 아니, 한설영 소저 아니십니까. 아직 떠나지 않으셨군요."
뒤를 돌아보자 무림맹 감숙지부장 맹석천이 우연이라는 듯 반갑게 인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상념을 방해 받은 설영은 조금 짜증 섞인
어투로 맹석천의 말에 대답한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그럼 설마 객잔을 찾고 계셨습니까? 이런, 이런, 어찌 코앞에 저희 지부를 내버려두고 객잔을 찾으신단 말입니까. 지부로 모시지요
이곳이 제 관할인지라 무뢰배는 없다고 자부하나, 혹 피 끓는 젊은이들이 설영소자의 미모에 끌려 무례를 범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오늘은 감숙성에 큰 장이 열리는 날입니다. 방을 구하기 어렵지요. 그리고 허름하기 짝이 없는 객잔들 보다는 저희 감숙지부
요리장의 요리솜씨가 몇 배는 더 좋습니다, 하하하,
은근 슬쩍 스스로 자신을 치켜세우며 초대하는 맹석천에게 설영은 다시금 짜증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모셔야 하는 분이 계신지라 섣불리 초대에 응할 수 없습니다."
"모셔야 할 분이라면..아~ 여기 이 훤칠하게 잘생긴 공자시겠구려"
"네 저의,"
"백이라고 합니다. 제가 검각에 볼일이 있어 여행을 하려는 찰나, 운이 좋게도 때마침 설영소저를 만나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설영의 말을 자르며 유백이 맹석천에게 포권을 지으며 자신을 소개했다. 유백의 눈과 맹석천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유백의 눈동자가
묘하게 빛났고 이상한 자기소개와 어딘지 낯익은 얼굴에 조금 의문을 가지던 맹석천의 눈동자가 조금 풀리는가 싶더니 원래의 빛으로
돌아오며 호탕한 웃음과 함께 마주 포권을 지어 인사를 나눴다. 유백의 섭혼술로 인해 아무런 의심도 가지지 않게 된 맹석천은 내심
떠오르는 생각에 홀로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각이 초대한 부호의 자제쯤 되는 인물인가 보군. 혹은 신붓감이라도 찾아보고자 검각에 가는지도?]
실제 대부분의 문파들이 그렇게 대부호를 초청하여 무위를 선보인 후 부호의 자제를 속가로 받거나 혹은 기부를 받고 자신들의 힘이나
이름을 빌려주는 경우는 많았다. 사실상 개방을 제외한다면 구파에서도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다. 자신 또한 선친이 소림에 상당한
기부를 한 덕에 몇 가지 무공과 함께 소림의 속가제자로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하하핫, 나는 맹석천이라는 사람이외다. 작게나마 소림의 은혜를 입어 이곳 감숙지부장을 맡고 있소이다."
"맹대협 이셨군요. 그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하하, 작은 이름을 그리 높게 쳐주시니 영광이로소이다. 어떠신가, 백공자 자네가 생각해도 허름한 객잔보다는 그래도 감숙지부가
더 낳지 않겠는가? 내 비장의 술도 개봉 함세"
"흐음, 기대 되는군요. 맹지부장님의 비장의 술이라...이거 초대를 거절할 수 없겠는데요?"
"핫핫핫 기대해도 좋네, 자~자, 설영소저, 백공자가 허락했으니 지부로 가십시다. 내 거하게 대접하리다."
자신의 대답도 듣지 않고 몸을 돌려 성큼성큼 걸어가는 맹석천을 바라보며 설영은 조금 서운한 얼굴로 유백에게 전음을 보냈다.
-어째서..전 주인님의 노예입니다. 혹 제가 노예인 것이 창피하신 것인지...-
주인님이 자신의 의사를 무시하며 맹석천의 초대를 받아들인 것에는 아무런 의문도 가지지 않는다. 자신은 노예이니까, 다만
맹석천에게 주인님을 소개하며 자신이 노예인 것을 밝히는 것을 제지당한 것에 서운함을 느꼈다. 자신이 유백의 노예임을
만 천하에 알리고 싶은 설영이었다. 더군다나 중원에서 아니 강호인 이라면 더더욱 주인을 가졌다는 것에 그리 의문을 표하지 않는다.
목숨을 구원 받거나 커다란 은혜를 입은 사람에게 그 은혜를 갚고자 수하를 자처하는 것은 그리 드문 일도 아닌 것이다.
-걱정 말아요 누님은 제 노예이니까, 문신속의 글자를 보았지요?-
-그렇다면 어째서...-
유백은 맹석천을 따라 성큼 걸음을 옮기며 설영에게 전음을 보냈다.
-확인 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거든요.-
유백의 입가에 떠오르는 매서운 미소에 설영은 서운함을 잊어버리며 유백의 뒤를 쫓아 종종걸음을 옮겼다.
"흐음..제법 괜찮은 방이로군."
연회가 끝나고 하녀의 안내를 받아 어쩐지 설영의 방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자신에게 배정된 방에서 벌렁 침상에 몸을 뉘이며 유백이 중얼거렸다.
고개만을 돌려 나름 화려하게 꾸며진 방을 눈으로 살피는 유백, 맹석천이 제법 신경을 쓴 모양인지
잠시 조금 전 있었던 연회를 떠올리던 유백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어린다.
[그런데... 낮에 그놈들은 도대체 어떤 놈들일까..]
슬쩍 자신의 목에 걸린 광법스승이 준 목걸이를 매만지며 유백은 자신의 하산하기 전날을 떠올렸다.
"받아라."
"웬 목걸이 입니까? 광법스승님."
광법스승에게도 배운 적 없는 기묘한 법술과 문양이 새겨진 목걸이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되묻는 유백에게 광법이 입을 연다.
"며칠 전 꿈자리가 매우 사납더구나. 근래 그런 적이 없었기에 오랜만에 점을 쳐보았다. 그랬더니 우리가 아니라 네놈이 큰 사단에 휘말린다는
점괘가 나오더구나. 네놈의 능력을 잘 아는 나로서는 강호에 네놈을 어쩔 수 있는 이가 있다고 믿을 수 없다만...점괘가 그리 나왔으니
늙은이 노파심에 가지고 나왔다."
인상을 찡그리며 설명하는 광법의 곁에서 작은 체구의 노인이 주책없이 끼어든다.
"허, 걱정도 팔자다. 모르긴 몰라도 당금 강호에 유백을 어쩔 수 있는 놈은 없을 텐데? 그때마냥 정. 사. 마가 연합한다 해도 강호에서
사라지는 것은 그놈들일 것이야. 노망난 것이냐, 광법?"
"광투, 그래서 내가 말하지 않더냐. 그저 노파심이라고, 다만 점괘가 그리 나왔으니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눈앞의 열 자루의 검보다 숨어있는 한 자루 단검이 더 무서운 법이잖은가."
"하기사...네놈의 점괘가 그리 나왔다고 하니 나도 조금 걱정이 되기는 하는군."
법술과 도술에 미쳐있다고 붙여준 광법이라는 이름답게 광법은 그런 잡기에도 능했다. 그들 또한 그 덕을 제법 보았었다. 더군다나 광법은
하늘의 뜻이나 운명을 미리 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기 때문에 점을 치는 일은 거의 없기도 했다. 스승들의 투닥거림을
들으며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던 유백이 광법에게 입을 열었다.
"그런대 광법스승님, 이 문양과 술법은 본적이 없는 것이 온데.."
"나 역시 그 여원은 잘 모른다. 한때 목걸이에 새겨진 법술과 문양의 뜻을 풀어내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여보았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다만..."
"다만?"
"그 목걸이를 나에게 팔던 떠돌이 도사가 이렇게 말하더구나. 상고시대부터 내려온 물건으로 합당한 주인의 손에 들어갈 경우 그 능력을
개방할 것이다. 라고. 처음에는 사기꾼인줄 알았으나. 나름 목걸이를 연구해보니 몇 가지 성과가 있기에 가지고 있었다. 그런대 지금까지 까맣게
잊고 있다가 오늘 아침에야 문득 그 존재가 생각나더구나. 그래서 네놈에게 주자고 마음먹었다."
새겨진 문양이 묘하게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듯해 마음에 들었던 유백은 냉큼 목걸이를 목에 걸었다.
"감사 합니다,광법스승님"
"됐다. 그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 다만, 하산해서 혹여 사단에 휘말리거든 한번쯤 전 후를 파악 해본 후에 움직이도록 하거라. 그리고..."
유백은 말 꼬리를 흐리는 광법스승에게 의문을 느끼며 광법스승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후우..."
한숨을 내쉬며 차마 말을 잇지 못하던 광법은 결심이 섰는지 유백을 향해 입을 열었다.
"하늘이 무슨 연유가 있어 너와 같은 아이를 내려 보내셨는지 알 수도 없거니와 알려고 하지 않았다. 어차피 안다고 해도 나의 능력으로는
결과를 바꿀 수 없기에, 그렇기에 너를 처음 본 순간 이것 또한 운명이겠거니 하고 받아들였다. 하늘이 정해준 인연이라는 것이기에,
그저 하늘의 뜻이 인세에 나쁜 방향으로 퍼지는 것이 아닌 것을 바랄 수밖에 없었다.
네놈이 속내를 비추지 않아, 네꿈이 어떠한 것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네가 세상을 호령하는 데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아는 만큼 이 스승이
당부 하나만 하마, 네 처음의 꿈을 잊지 말고 그 꿈만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도록 하거라. 네 힘을 오로지 네 꿈을 이루기 위한 것에만
썼으면 하는구나.."
"물론이죠. 스승님"
스승의 걱정스러운 당부에 유백은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스승님의 점술은 역시나 틀리지 않네요.]
감숙지부 정문을 나서면서 부터 느껴지던 묘한 시선들, 처음에는 설영의 미모와 옷차림으로 당연하다고 생각했으나 점차 시간이
지나며 느껴지는 기색들은 무지렁이가 아닌 일류라고 불리 울 수 있을 만큼 실력 있는 무인들이 상당수 섞여있었다. 우연을 가장해
나타난 맹석천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 딴에는 숨는다고 숨었던 모양이나 유백의 감각을 속일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은 없었던지라,
유백은 졸졸 쫓아다니던 맹석천의 기색을 진즉 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나 누님을 어쩔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지닌 자는 없었어, 하지만... 그 상당수가 맹석천보다는 강자들이였어. 변두리라고는 하나
무림맹지부의 지부장보다 강자들을 다수 부릴 수 있다면...개인이라고 보기 힘들겠지. 어딜까...무림맹, 사파연합, 마교 일단 생각나는 건
이 셋뿐이군.]
한 개인이 저 정도의 강자들을 고작 미행에 투입할 수 있을 만큼의 힘을 지니기란 매우 어렵다. 관부라면 가능할지 모르나 무림과 관부의
서로 소 닭 보듯 하는 특성상 관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진다고 보기 어렵다. 더군다나 자신은 관부와 인연이 없다. 어릴 적 양어머니를 만나기전
자신을 대리고 있었던 그 내숭덩어리 여인 또한 상인의 부인이었고, 그나마 자신을 찾아 사람을 풀었다가 결국 적화에게 죽었다. 사실상 강호, 아니
천하를 통틀어 자신을 알고 있는 자는 어릴 적 양모와 같이 살았던 섬서의 작은 시골마을 사람들과 설영, 그리고 스승님들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결국...국한 되는 것은 무림맹과 사파연합 ,마교 뿐인가. 하기야 저 정도의 실력자 들을 동원할 수 있는 단체, 그리고 동시에 나의 존재에
관심을 보일만한 곳은 그 셋뿐이 없지.]
만마대전의 발생원인과 만마동에 있는 스승들의 존재를 제대로 알고 있을만한 곳은 그 셋뿐,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존재가 그들에게
알려 졌다면 그들의 관심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다만... 그 기색에 적대감이나 살기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 자신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고 있었다.
[내가 알려졌다면...소림인가? 그들의 입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무림맹에 전해 졌다면, 사파연합과 마교에도 당연히 알려 졌을 테지.
하지만 소림이 과연 내 존재를 고해 바쳤을까? 아니.. 그럴 리 없어]
고개를 흔드는 유백, 소림이 자신의 존재를 알렸을 리 만무하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또 만마동에 가두었다고 무림맹에게 고하기 위해선
자신들의 치부를 들어내야 한다. 설령 자신들의 치부를 숨겼다고 해도 양어머니와 거래를 했다는 사실은 숨기기 어렵다. 그리고 그 사실이
알려진다면 소림은 무림맹에서의 입지가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무림맹의 이름에 먹칠 하는가 보다 자신들의 작은 치부가 알려지는 것을
더 무서워하는 구파이니만큼 그럴 일은 없다. 더군다나...어머니와 소림의 전대방장 승허와의 약속이 있기에 자신은 소림에 들려 봐야한다.
[확실히 나는 그들에게 있어서 매력적인 먹잇감일수도 있지...잘만 하면 열두 스승들의 도움도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다면
무림맹이든 사파연합이든 마교든 천하통일도 그리 어렵지 않을 테지. 하지만 위험부담이 너무 커, 나머지 두 단체가 힘을 합하는 것은
상관없겠지만, 세인들에게 스승들의 존재를 설명해야 돼...그것은 자신들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꼴이니..]
또 하나 걸리는 문제도 있다. 스승들의 존재를 기억하는 자가 있다면 만마동에 보급품이 끊겼을 리 없다. 실제 양어머니 손에 죽은 목허조차
모르고 있었고...더군다나 감숙지부에서 시작된 기색들도 이상하다. 자신의 존재를 알고 있는 자라면 자신을 기다리기 위해 감숙지부 근처에서
잠복할 이유가 없다. 어찌되었든 자신의 스승들은 세간에 마두로 알려져 있으니...소림이 알렸다고 한다면 차라리 소림사 근처에서 대기하는 편이
나았다. 자신이 감숙지부에 들릴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테니. 그리고 감숙지부에 들어서자 감숙지부에 들어오지 않고 근처로 흩어진 기색들
또한 의문을 품게 만든다.
"어렵군..."
도무지 정체를 짐작할 수 없는 적에 쓴 웃음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는 유백의 귀로 설영의 열기 띤 비음과 맹석천의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런 색녀 같으니, 내 오늘 아주 죽여주마."
"후으응~ 좀더~"
자신의 방에 안내될 때부터 설영의 방에 천리지청술을 펼쳐놓았던 유백이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후후, 맹석천 이 양반이 급했나 보군. 연회가 파한지 아직 한식경(30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자신들의 뒤를 미행하던 맹석천이 우연을 가장해 모습을 드러내자 무림맹을 의심한 유백은 맹석천의 초대를 흔쾌히 승낙했던 것이다.
그러나... 설영의 음식과 술에만 슬쩍 가미된 춘약과 맹석천의 음흉한 눈동자에 유백은 맹석천에 대한 의심을 접어 버렸다.
애초에 소인배인 맹석천이 그런 연기를 할 수 있을 리 만무하고 또 무림맹이 자신의 존재를 안다면 그야말로 유백에게 일초지척조차 안될 것인 맹석천에게
무슨 밀명을 내릴 리 없으니. 다만 유백은 생각을 정리하고자 조용한 시간이 필요했고 또 다른 행동이 발생할 것을 대비해 설영에게 미리 춘약에 대해
귀띔해주고 즐기고 오라고 말해 놓았다.
[자~ 이렇게 엄연하게도 무림맹 지부에 들어왔음에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것으로 보아 무림맹은 아닌 것 같고...나머진 사파연합과, 마교 뿐인가...
아니 이들도 아니야...그들의 실력이라면 본맹도 아닌 이곳 변두리 지부에 들어오는 것쯤이야 어렵지 않지. 그러니 그들 중 하나는 혹은 둘 모두
모두 어떤 행동을 취했어야 옳아. 그렇다면 사파연합과 마교도 아니란 말인데...]
"하아앙~흐응~아아아~"
골치가 아픈 듯 이마에 손을 가져가던 유백의 귓가에 약에 취한 설영의 몽롱한 비음이 들려온다.
[훗 정말 즐기고 있는 모양이네. 그리 강한 춘약도 아니던데 말이지. 하긴 미인화심법을 완성한 누님에게는
그저 그런 삼류 춘약이라도 엄청나게 효과를 발휘하겠지.]
원채 민감하던 설영이다. 거기에 자신의 조교와 미인화심법을 극성으로 익혀놨으니 춘약이 없어도 항상 끓어오르는 성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일 터이다.
한참 달아올랐을 설영을 떠올리며 미소 짓던 유백은 퍼뜩 떠오르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가만! 내가 아니라...누님을 노렸다?]
말이 된다. 마옥주로 6년을 마옥에서 보냈다고는 하지만 자신과 다르게 나름 강호에서 명호까지 얻은 설영이다. 더군다나 그 무공수위 또한
모르긴 몰라도 후지기수 중에서는 적이 없을 것이다. 연회에서 어떻게든 춘약의 존재를 숨기고자 과장되게 설영의 무공수위와 미모
그리고 검각의 후계자로서의 위치를 주절주절 떠벌리며 설영에게 연신 술과 음식을 권하던 맹석천의 말이 떠오른다. 실상 과장도 아니다. 설영의
미모와 무위 그리고 일처리 능력이라면 검각의 후계자 중에서도 단연 돋보일 것이다. 비록 오랜 마옥주 생활로 검각내에 세력이 없는 설영이지만
그리 큰 문제도 아니다. 안 그래도 뛰어난 실력의 설영에게 자신이 건넨 대환단과 월광옥녀검법을 익힌 설영이 검각에 돌아가는 순간 세력 추는
급격히 설영 쪽으로 기울 것이다. 한 삼사년 후에는 검후가 될 가능성이 충분한 설영이기에 설사 검각의 각주가 될 수 없다고 해도 그 발언권은 각주조차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할 것이다. 검각이 비록 구파일방과 비견될 수 있을 정도로 이름이 높은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오대세가에 비견될 힘과 이름,
그리고 역사를 가졌다. 몇 대나 검후를 배출하지 못해 그 위명이 조금 바랬다고 하지만 건강하고 아름다운 여인들만이 모여 생활하며 무공을 익히는
검각인지라 신붓감을 찾아 외부에서 부호나 명가의 자제들이 찾아오는 경우도 제법 많다. 그리고 그렇게 결혼한 검각의 여인들은 검각을 떠날지언정
음으로 양으로 검각을 지원한다. 대부분이 부호들과 제법 이름 있는 관부의 자제들 그리고 명가의 자제들이 검각의 제자들과 엮이다 보니 그런 지원들
까지 합한다면 오대세가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는 않았다. 그런 검각이기에 무림맹에서의 발언권 또한 그리 적지 않다. 비록 무림맹에 별다른 직책을 가진 검각 여인은 없지만 맹주조차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것이 검각의 실세이다. 실제 설영의 스승이 슬쩍 내비친 요구를 무림맹은 흔쾌히 받아들여 설영을 마옥주로 임명했을 정도니. 검각을 손에 넣을 수 있다면 그런 검각의 힘과 영향력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할 수 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뛰어나다고 알려진 설영이 마침 세상에 나와있다. 이보다 더 군침 나는 먹잇감은 없을 것이다.
유백은 가만히 눈을 감고 낮에 느꼈던 기색들의 방향을 더듬어 떠올려 본다.
[과연...나보다는 누님 쪽으로 더 쏠려있었어. 누님의 옷차림과 미모에 이끌린 사람들의 시선에 묻혀버린 나머지 나조차 알아차리기 힘들었던가.? 방심했군. 스승님의 말이 있었음에도 아직 강호 초출이니 사건에 휘말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끙~ 그러고 보니 스승님도 내가 사단에휘말린다고 했지 내가 사건의 당사자라고는 하지 않으셨지...]
조금 인상을 찌푸리던 유백은 훗, 하고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침상에 몸을 뉘인 다.
[뭐, 상관없나, 아직 적의 정체도 모르고 지금까지는 전부 추론에 불과 하니까. 단순히 누님을 한번 맛보고 싶다면 한번쯤 빌려 줄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누님 전부를 원한다면...지워버리면 그만이야, 어떠한 곳이 되었던 말이지...]
천정을 바라보는 유백의 입가에 스산한 웃음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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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조회 수에 조금 실망했다가, 추천수와 리플이 그분들과 비슷한 것에
감동 받아 울 뻔한 다람쥐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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