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무영의 눈빛이 번뜩였다. 그는 건곤천무장(乾坤天武掌)의 뇌전최심(雷電催心)구결을 뇌리에 떠 올렸다. 그의 손바닥에서 번개 같은 장력이 쏟아져 나왔다.
"제발…! 손속에 배려(配慮)를........"
찰나, 설 무영은 소류진의 흑 수정 같은 눈동자에 이슬이 한 가닥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오라비를 걱정하는 애절한 사매(舍妹)의 눈빛이었다. 그녀가 설 무영에게 전음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강호 무림인들 간에 소리 없이(無音) 격공 간에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수법이다. 내공과 상승무공의 정도에 따라서 거리와 격공지간 전음 수법이 다른 것이다.
".......?"
그러나 이미 쏘아져 나간 화살! 허지만 설 무영은 급히 공력을 회수하였다.
"으윽......!"
소금호의 몸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단 한 번의 초식이었다. 차마 회수치 못한 공력이 그의 가슴에 선혈을 낭자하게 하였다. 만약 설 무영이 나머지 공력을 회수하지 않았다면 소금호는 가슴에 구멍을 뚫고 죽어 넘어졌을 것이다.
"이럴 수가.....?."
주저앉은 채 쳐다보는 소금호의 두려운 눈빛이 설 무영을 쏘아 보았다. 소금호와 장욱진(張旭珍)이 서로를 부축한 채 비척비척 일어났다.
"바득! 음…! 두고 보자! 이 치욕을 꼭 값아 주마......!"
얼굴빛이 하얗게 질린 그들은 절뚝거리며 반점을 나섰다.
"고마워요…!"
문득 그들의 뒤를 쫓아 나가려던 소류진이 뒤 돌아섰다. 그녀가 설 무영에게 자신의 목단무늬의 손수건을 내밀었다. 설 무영의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최대의 공격이 최대의 방어, 그가 급히 공력을 회수하려다 소금호의 검강에 베인 것이다.
"아름다워졌다.....!"
다가선 소류진에게서 흘러나오는 청초한 분위기와 체취. 풋풋한 모란향, 호수 같이 초롱초롱한 눈동자, 봉긋한 가슴, 허리는 한 줌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는 세류요(細柳腰)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자태에서 난숙하고 우아해진 그녀의 미모는 설 무영의 가슴에 한 가닥 정념(情念)을 일으켰다.
"당신은 진정한 남자.......!"
소류진의 샛별 같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동정심을 유발시켰던 벙어리 소년이 헌헌장부(軒軒丈夫)가 되어 있었다. 소류진의 가슴 한 구석에 설 무영의 모습이 새겨졌다. 빈틈없는 풍채, 준수한 용모. 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설 무영의 비범함 속에는 고독감이 흘러 나왔다.
과거의 어린 시절 총기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 그들이었다. 소류진이 미지의 여운을 남긴 채 그녀의 일행을 쫓아 사라졌다. 반점의 손님들은 다시 그들의 잡담으로 여흥을 시작했고, 설 무영도 제자리에 앉았다.
"철마대(鐵魔隊)는 왔을까?"
"우리 먼저 가지?...."
설 무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나이들의 전음이 들려왔다. 설 무영이 익힌 만리청천공(萬里聽天功)은 이 백장 밖의 전음도 들을 수 있는 기공이다. 설 무영은 소류진이 주고간 손수건을 매 만지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나이 오십대의 장한들. 그들은 하나같이 청색도포를 걸쳤다.
"그들의 무공이나 인원을 모르잖아~?"
"그 까짓 개방 거지들 쯤이야…! 개방의 일개지부 정도쯤은 우리 오마괴도(五魔怪盜)로도 충분할 텐데……."
(음....!?)
설 무영은 무림비연록(武林秘然錄)을 통해 강호 무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오마괴도(五魔怪盜). 그들은 이십년전, 도적질과 부녀자들을 약탈하여 세인들의 저주를 사다가 홀연히 사라졌던 악귀들이다. 정도인들의 협공에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던 그들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허지만 감숙지부에는 만개(滿芥) 엽상진(葉霜進)이 있다고 하잖아.......!"
"그가 아무리 방주일 때 강호를 누볐지만 그도 이제는 늙은 페물........"
(엽노야에게 무슨일이......?)
그들이 전음으로 말하는 사람이 설 무영이 찾고 있는 엽노야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철마대란 무얼까?....)
내심 의구심을 갖는 설 무영의 귀에 그들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벌써, 두식경이 흘렀는데…! 마냥 기다릴 수도 없잖아……."
"그래도 기다려야지……. 성주 지시가 있을 때까지……."
키가 크고 비썩 마른 남자가 우락부락한 남자의 제의를 말리고 있다.
"하지만…! 철마대가 연락 없이 먼저 갔을는지도......"
키가 작은 남자가 간사한 눈동자를 굴렸다.
"그럼~! 가 볼까.......?"
"그래! 갑시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청포의 사나이들이 번개같이 매화반점(梅花飯店)을 빠져 나갔다. 그들이 빠져 나간 반점이 고요해졌다.
설무영의 뇌리에는 그들의 말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찼다.
(철마대…오마괴도…개방…엽노야…성주… 무슨 의미가 관련된 것일까……?)
바닥에 주저앉았던 점소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손님~! 시키실 일이라도……!?"
쩔그랑~! 설 무영은 말없이 은전을 탁자에 놓고 일어섰다.
(혹시....?)
설 무영은 엽노야 주변에 무슨 일이 있는 것만 같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점소이가 은전을 집어 들었을 때, 이미 설무영은 매화반점(梅花飯店)을 떠나고 있었다. 반점을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두 여인이 주시하고 있었다.
"누구일까......?"
그를 주시하는 두 여인, 진소랑과 수여빈은 강호무인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전혀 낯 설은 설 무영의 신원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설 무영은 오마괴도가 사라졌던 서쪽 수림을 향해 경신술을 펼쳤다. 그의 신폭쾌선비(神瀑快仙飛)는 가히 바람을 가르는 화살촉과 같았다.
설 무영이 송림(松林)을 지나칠 때 송림 안으로부터 사람들의 다투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는 쏜살같이 다가가 환영귀식대법(幻影龜息大法)으로 나무 뒤에 몸을 은신했다. 흑의를 걸친 청년과 체격이 우람한 혈포괴인이 다투고 있었다.
"하하하~! 허수(許手)! 네놈이 그것을 갖고 있는 것을 이 노부가 알고 있다. 내놔!"
"이 늙은 도적놈, 마석주(麻夕舟)! 녹림채에서나 써먹는 수법을..... 으...윽!"
허수, 그는 스스로 양상군자(梁上君子)자라 하는 도적, 밤의 제왕 야투일왕(夜偸一王)의 수제자인 신투귀면(夜偸鬼面)이었다. 그의 신투술은 그의 사부인 야투일왕을 앞선다는 말이 있을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었다. 그를 핍박하는 자, 또한 도적 집단인 녹림채의 향주를 맡고 있는 절혼괴도(切魂傀盜)라는 자로서 절혼마수(切魂魔手)라는 손속과 절혼독분(切魂毒粉)으로 세인을 괴롭히는 사악한자로 유명하였다. 도적과 도적의 싸움이었다.
"허수! 네놈은 노부의 절혼독분에 중독되어서 한시진도 못 견딜 것이다. 하하하......!"
"허~억! 이 늙은 악마야…! 내, 내가 죽어도 네놈에게는 줄 수는 없다."
"흐흐흐……! 이 노부는 네놈이 내놓지 않아도 네놈 죽은 다음에 가져가면 된다!“
신투귀면은 독성이 온몸에 퍼지는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이 늙은 악귀야! 아, 아~악! 내 저승에서라도 원귀가 되어서라도, 네, 네 놈을 갈아 먹을 테다."
"흐흐흐……! 죽는 놈이 말은 많네! 시간이 없는데, 어디 견디어 봐라……!"
"으~아…악!"
절혼괴도는 분근착골수(分根着骨手)라는 수법을 쓰고 있었다. 분근착골수는 뼈와 골이 아스러지는 고통을 주는 고문 방법이었다.
"자! 내놔라! 편히 죽으려면……!"
그때였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들 앞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누, 누구냐?"
절혼괴도는 혼비백산하였다. 무공에 일가견이 있는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자를 못보고 있었다니.
"나다!"
절혼괴도가 묵인을 한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비소를 흘렸다. 강호에 식견이 있는 그로서 전혀 안면이 없는 보잘것없는 자라는 생각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도깨비 노름 하지 말고 사라져라! 노부는 바쁘다!"
"그 자를 놔줘라!"
묵인은 미동도 않고 있었다.
"미친놈! 귀잖게 구네!"
절혼괴도는 비소와 함께 절혼마수(切魂魔手)의 수법 중 가장 악랄한 음마절혼이라는 금나수(擒拿手)법을 펼쳤다. 그의 손이 묵인의 오대 사혈(死血)중 천령개를 짚어 갔다. 그런데 놀랄 일이 벌어졌다. 절대 쾌(快), 한 차례의 바람이 일어났다. 어느 사이에 묵인이 뽑아 든 묵검에 피바람과 함께 절혼괴도의 머리가 잘려 넘어가고 있었다.
"아니~! 내, 내가 어떻게.......!?"
눈이 휘둥그렇게 뜬 눈이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희대의 도적 절혼괴도 마석주의 이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묵인이 허수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허수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마지막 숨 넘어가는 자의 회광반조(廻光反照)의 눈빛이었다. 하수는 숨을 몰아쉬며 얼떡거렸다.
"난, 난.......이제 얼마 못 산다! 자네는 누, 누구인가.......?"
"무영이라 하는 강호 초출입니다!"
"이…! 이 노부의 운명도, 마, 마지막이군......!"
허수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묵인이 동정어린 눈빛을 하였다.
"노야는 사실 수 있습니다."
"아~! 아니야! 절, 절혼독에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 만년하수오(萬年何首烏)가 있으면 몰라도……. 그것도 느, 늦었어……."
"……!?"
"이~! 이것을 소협이........!"
허수가 품속에서 내민 것은 황금빛 찬란한 선녀상이었다. 그 빛의 찬란함에 설무영응 탄복하였다. 마치 하늘을 날아 갈 듯이 선녀가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황금으로 조각된 상에는 묘안석(猫眼石), 마노(瑪瑙), 호박(琥珀), 산호(珊瑚), 진주(眞珠), 수정(水晶), 영랑(盈琅)등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그 무한의 가치를 설 무영도 알 것 같았다.
"이것은.......!?"
"황…황금선녀상이라네……! 많이 갖은자 것.......것을, 가.......가난한자에게 주려 했는데, 주…주, 주인에게 돌려주던지 소제가 요긴, 요긴하게 쓰, 쓰던지 알아서…….알……."
말을 다 마치지 못한 허수는 끄윽! 하는 헛바람 세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
설 무영은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악한 자나 선량한자나 그 누구도 앞으로 닥쳐올 운명은 모르는 것이었다. 어쩌면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이 버러지만도 못한 것 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림에는 설 무영에 의해서 비석 없는 두 대의 묘지가 생겼다.
황보전장(黃寶錢莊)의 깊숙한 내실.
금나에 금실의 수실로 원앙이 새겨진 휘장 안에 백옥으로 만든 침대, 자단목(紫檀木)과 흑오목(黑烏木)으로 만든 가구 등, 황금의 권위를 대변하는 듯하였다. 바닥에는 백호피(白虎皮)가 깔려있고, 산호(珊瑚), 상아(象牙), 흑옥(黑玉) 등의 보석으로 된 물품들이 가득하였다.
그 실내에서 금화상군 금원상은 오만상을 찡그리고는 안절부절 하였다. 황금선녀상이 그에게 어떤 것이냐? 멀리 서역까지 가서 일국(一國)의 황실을 살만한 값을 치르고 구입한 것이었다. 그런 황금선녀상을 도적맞은 것이었다.
".......!?"
금원상이 흠칫 놀라면서 창문을 바라봤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창문을 가린 휘장이 흔들렸다.
"신경과민인가.......?"
그는 요사이 밤잠을 설치는 중이었다. 헌데 휘장 뒤로부터 시커먼 묵인이 서 있었다.
"헛~!"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누구....?"
".......!"
흑립을 눌러쓴 묵인은 말없이 탁자위에 덜커덕! 소리를 내며 황금빛 물건을 내려놓았다. 금원상이 그리도 안절부절못하며 찾던 황금천녀상이었다. 금원상은 부리나케 황금선녀상을 집어 들었다. 그는 선녀상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틀림없이 그가 잃어버렸던 황금천녀상이었다. 순간 금원상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당신이 훔쳐 갔소?"
"아니요! 가져간 사람은 야투귀면(夜偸鬼面) 허수(許手)! 송림 무덤 속에 있소!"
"그럼 어떻게……!?"
"꼭 대답을........?"
금원상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훔쳐간 자의 죄과도 묻지 않는다고 했고, 훔쳐간 사람은 송림무덤 속에 시체가 되어 있다고 하는데, 확인 해 보면 될 일이고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다.
"뭘 원하느냐?"
"도화성(桃花城)!"
금원상은 기가 막혔다. 뭐든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는데, 고작 폐성을 달라니! 도화성은 그에게 애물단지였다. 팔려고 내 놓아도 작자도 없었고, 관리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헐값에 내놓는 다는 것은 너무 아쉬움이 많았다.
갖은자의 욕심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굳이 더 많은 재화를 요구하지 않고, 쓸모없는 도화성을 요구하는 묵인의 심정이 의심스러웠다.
"무엇에 쓸게요?"
"복숭아나 키우려고……!"
묵인은 너무나 간단명료한 답변을 하고 있었다. 묵인은 다름 아닌 설 무영이었다. 설 무영도 나름대로 생각을 한 것이었다. 당장은 아니라도 그는 기거할 곳이 필요했다. 세인의 눈에 띠지 않는 곳이라면 더욱 좋았다. 그래서 설 무영은 도화성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가 막상 도화성을 구입하려고 하면 금원상은 엄청난 금액을 요구하였을 것이다. 갖은자의 욕심일 것이다. 설 무영은 묵묵히 손을 내밀었다.
"주쇼!"
금원상은 자단목의 봉황장(鳳凰欌)에서 금합(金盒)를 열고 도화성의 소유문서(所有文書)를 꺼냈다. 금원상은 막상 도화성의 문서를 넘겨주려니 아쉬움이 남았다. 설 무영이 받아들었으나 놓으려 하지 않았다. 설 무영이 신비스런 미소를 띠었다.
암중의 압력이 금원상의 손목에 힘을 가해 왔다. 문서는 스르르 설 무영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설 무영의 몸이 그림자같이 창문으로 사라졌다. 실내에는 금원상의 아쉬움만이 남아 있었다.
개방( 幇)의 감숙지부.
회의청 주변과 방주와 원로가 기거하는 원무각(苑霧閣)주변, 신음성이 난무하다.
"크~억! 동쪽에 괴한이……."
개방의 한 무리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여기저기서 창과 칼이 난무했다.
"아니 서쪽에도…….으악~!"
"허~헉! 허, 여긴 남문…….윽~!"
갑자기 들이 닥친 괴한들로 인해 개방이 피로 물들고 있었다. 당황한 개방 거지들의 무리가
이리저리 몰리고 있었다. 오마괴도는 개방의 감숙지부의 원무각의 오 방향에서 주살을 하였다. 일거에 혼란을 주고 원무각에 침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오마괴도(五魔怪盜)가 한꺼번에 원무각 안으로 들이 닥쳤다.
"감히 어떤 놈들이냐?"
감숙 분타주인 세화타(笹靴他) 궁나조(穹拿爪)가 쌍장을 휘둘렀다. 맹룡한 장력이 오마괴도중 적살마(赤殺魔)를 향해 쏟아갔다. 삐쩍 마른 적살마는 부지불식간에 적도(赤刀)를 휘둘러 살수를 펼쳤다.
퍼엉!...파팍!
장풍과 도풍이 부딪쳐 원무각을 흔들었다. 일장 뒤로 물러난 궁나조의 왼쪽 어깨에 선혈이 낭자하였다. 반면 적살마의 발밑이 한자 깊이로 패였다.
"흐흐흐......! 어른들은 시간이 없다."
적살마의 적도가 다시 적색 도풍을 일으키며 궁나조의 정수리를 향했다.
"네놈들은 오마괴도....."
궁나조의 일갈과 함께 두 손을 뻗쳐 옥룡팔장의 장법을 펄쳤다.
"어딜…!?"
동시에 키가 작은 오마괴도 흑살마(黑殺魔)의 흑도(黑刀)가 궁나조의 허리를 베어갔다.
"헉~!"
궁나조는 기겁을 하였다. 적살마를 향한 장력을 회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공좌방(右功左防). 왼손에 강기(剛氣)를 일으켜 막아갔다. 허지만 보고만 있을 괴도들이 아니다. 연이어 청, 황, 백의 도풍이 궁나조의 몸을 에워쌌다. 중원을 난도질하던 괴도들의 협공은 궁나조에게 중과부적이었다.
"비열한 도적들.......!"
언제부터인가 궁나조의 뒤편에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다가와 있었다. 개방의 원로 만개(滿芥) 엽상진(葉霜進)이었다. 엽상진은 궁나조의 위급한 상황을 막으려 타구봉을 휘둘렀다. 타구봉은 노도와 같은 공력을 싫고 오마괴도의 도풍을 막아갔다. 허지만 이미 늦었다
"크~악!"
외마디 소리와 함께 궁나조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피로 물든 육신이 털썩하고 쓰러지고 원무각의 바닥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반면 적살마는 한 움큼의 선혈을 울컥! 하고 입에서 뿜어냈다.
"이놈들! 천벌을 받고도 모자란 놈들......! 이 엽노야가 네놈들의 내장으로 궁타주의 제사를 지내마!"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엽노야의 목소리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될까?"
우락부락한 황살마의 입가에 음험한 미소가 흘렀다. 그것을 신호로 오마괴도는 엽상진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개! 너무 오래 살았어...!"
청, 황, 백, 흑, 적색의 도풍이 엽상진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오살마도진(五殺魔刀陣)! 오마괴도가 협공으로 사용하는 간악하고 잔인무도한 진법(陳法)이다. 그 누구도 오마괴도의 오살마도진을 상대하기를 꺼려할 만큼 그 위력이 대단하다.
휘리릭...!
엽상진은 타구봉을 감아쥐었다.
"오냐! 이 노야가 너희들의 간악함을 잠 재워주마..."
엽상진의 타구봉이 오색도풍을 뚫고 오마괴도를 격살해 나갔다. 그러나 타구봉은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다. 엽상진은 눈을 감았다. 청음마살(淸音魔殺), 소리로 상대를 격살하기 위함이다.
"풍(風).....구(龜)....난(亂)....교(膠)!"
엽상진의 일갈과 함께 오색도풍을 향해 주살해 나갔다.
"으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목이 부러진 흑살마의 몸이 풀썩! 바닥을 뒹굴었다. 동시에 엽상진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흠......!"
엽상진의 몸이 휘청거렸다. 도흔이 깊게 패인 그의 얼굴에서 피가 솟았다. 그도 당한 것이다.
"역시~! 만개! 다르군! 허지만......."
오마괴도의 사색도광이 무서운 빛을 발하며 회전을 하였다.
"천(天), 마(魔), 번(飜)!"
천둥과 같은 소리와 함께 수천 개의 도가 엽상진의 몸을 상하좌우에서 갈랐다.
"악랄한 마도들...!"
위기일발의 엽상진은 되 내이며 타구봉에 공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 도광을 막아갔다.
꽈 과광...!
타구봉의 공력과 도풍이 맞받아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원무각의 기왓장이 들썩거렸다.
"허 억~!"
엽상진이 자리에 털썩 주저 안았다. 오마괴도도 이장을 물러나서 섰다.
"커~억!"
엽상진의 옷은 도흔에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왈칵! 입에서 피를 쏟았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흐흐흐......!목숨이 아깝거든 내놔라! 축망소낭(縮網小囊)을........"
적살마가 엽상진을 향해 도를 겨냥하며 핍박을 가했다.
"노, 노야는 모르는 일......! 설마 있어도........ 네놈들에게는 못 준다."
"그럼, 이 어른들이 공력을 소모해야 겠구만...!"
그들은 다시 엽상진의 주위로 다가섰다. 쓰러져 있던 엽상진이 타구봉을 의지하고 일어섰다.
휘리리릭...!
엽상진은 마지막 공력을 다해 타구봉을 감아쥐었다. 사력을 다하는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크 헉~!"
엽상진은 다시 시뻘건 피를 토해 냈다.
"늙은 거러지! 가랏...!"
적살마의 적도가 바람을 가르며 엽상진의 목줄을 갈랐다. 사력을 다한 엽상진의 타구봉이 적도를 막아갔다. 그러나 이미 꺼진 등불.
"허 걱~! 크윽!"
엽상진의 목줄로 적도가 날아들었다. 허나 목이 덜렁 매달려 피를 괄괄 쏟는 것은 적살마였다. 적살마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검강을 향해 눈을 치떴다.
"누구......!?"
목이 잘려 머리만 덜렁 매달린 적살마의 눈동자가 의구심으로 가득 찼다. 모두의 시선이 한군데로 모아졌다.-------------------------------------
"제발…! 손속에 배려(配慮)를........"
찰나, 설 무영은 소류진의 흑 수정 같은 눈동자에 이슬이 한 가닥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오라비를 걱정하는 애절한 사매(舍妹)의 눈빛이었다. 그녀가 설 무영에게 전음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강호 무림인들 간에 소리 없이(無音) 격공 간에 대화를 주고 받을 수 있는 수법이다. 내공과 상승무공의 정도에 따라서 거리와 격공지간 전음 수법이 다른 것이다.
".......?"
그러나 이미 쏘아져 나간 화살! 허지만 설 무영은 급히 공력을 회수하였다.
"으윽......!"
소금호의 몸이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단 한 번의 초식이었다. 차마 회수치 못한 공력이 그의 가슴에 선혈을 낭자하게 하였다. 만약 설 무영이 나머지 공력을 회수하지 않았다면 소금호는 가슴에 구멍을 뚫고 죽어 넘어졌을 것이다.
"이럴 수가.....?."
주저앉은 채 쳐다보는 소금호의 두려운 눈빛이 설 무영을 쏘아 보았다. 소금호와 장욱진(張旭珍)이 서로를 부축한 채 비척비척 일어났다.
"바득! 음…! 두고 보자! 이 치욕을 꼭 값아 주마......!"
얼굴빛이 하얗게 질린 그들은 절뚝거리며 반점을 나섰다.
"고마워요…!"
문득 그들의 뒤를 쫓아 나가려던 소류진이 뒤 돌아섰다. 그녀가 설 무영에게 자신의 목단무늬의 손수건을 내밀었다. 설 무영의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 최대의 공격이 최대의 방어, 그가 급히 공력을 회수하려다 소금호의 검강에 베인 것이다.
"아름다워졌다.....!"
다가선 소류진에게서 흘러나오는 청초한 분위기와 체취. 풋풋한 모란향, 호수 같이 초롱초롱한 눈동자, 봉긋한 가슴, 허리는 한 줌밖에 되지 않을 정도로 가는 세류요(細柳腰)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자태에서 난숙하고 우아해진 그녀의 미모는 설 무영의 가슴에 한 가닥 정념(情念)을 일으켰다.
"당신은 진정한 남자.......!"
소류진의 샛별 같은 눈동자가 반짝였다. 동정심을 유발시켰던 벙어리 소년이 헌헌장부(軒軒丈夫)가 되어 있었다. 소류진의 가슴 한 구석에 설 무영의 모습이 새겨졌다. 빈틈없는 풍채, 준수한 용모. 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설 무영의 비범함 속에는 고독감이 흘러 나왔다.
과거의 어린 시절 총기와는 또 다른 모습으로 성장한 그들이었다. 소류진이 미지의 여운을 남긴 채 그녀의 일행을 쫓아 사라졌다. 반점의 손님들은 다시 그들의 잡담으로 여흥을 시작했고, 설 무영도 제자리에 앉았다.
"철마대(鐵魔隊)는 왔을까?"
"우리 먼저 가지?...."
설 무영의 건너편에 앉아 있는 사나이들의 전음이 들려왔다. 설 무영이 익힌 만리청천공(萬里聽天功)은 이 백장 밖의 전음도 들을 수 있는 기공이다. 설 무영은 소류진이 주고간 손수건을 매 만지며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나이 오십대의 장한들. 그들은 하나같이 청색도포를 걸쳤다.
"그들의 무공이나 인원을 모르잖아~?"
"그 까짓 개방 거지들 쯤이야…! 개방의 일개지부 정도쯤은 우리 오마괴도(五魔怪盜)로도 충분할 텐데……."
(음....!?)
설 무영은 무림비연록(武林秘然錄)을 통해 강호 무림에 대해 알고 있었다.
오마괴도(五魔怪盜). 그들은 이십년전, 도적질과 부녀자들을 약탈하여 세인들의 저주를 사다가 홀연히 사라졌던 악귀들이다. 정도인들의 협공에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던 그들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허지만 감숙지부에는 만개(滿芥) 엽상진(葉霜進)이 있다고 하잖아.......!"
"그가 아무리 방주일 때 강호를 누볐지만 그도 이제는 늙은 페물........"
(엽노야에게 무슨일이......?)
그들이 전음으로 말하는 사람이 설 무영이 찾고 있는 엽노야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철마대란 무얼까?....)
내심 의구심을 갖는 설 무영의 귀에 그들의 전음이 다시 들려왔다.
"벌써, 두식경이 흘렀는데…! 마냥 기다릴 수도 없잖아……."
"그래도 기다려야지……. 성주 지시가 있을 때까지……."
키가 크고 비썩 마른 남자가 우락부락한 남자의 제의를 말리고 있다.
"하지만…! 철마대가 연락 없이 먼저 갔을는지도......"
키가 작은 남자가 간사한 눈동자를 굴렸다.
"그럼~! 가 볼까.......?"
"그래! 갑시다!"
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청포의 사나이들이 번개같이 매화반점(梅花飯店)을 빠져 나갔다. 그들이 빠져 나간 반점이 고요해졌다.
설무영의 뇌리에는 그들의 말에 대한 의문으로 가득찼다.
(철마대…오마괴도…개방…엽노야…성주… 무슨 의미가 관련된 것일까……?)
바닥에 주저앉았던 점소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어설픈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손님~! 시키실 일이라도……!?"
쩔그랑~! 설 무영은 말없이 은전을 탁자에 놓고 일어섰다.
(혹시....?)
설 무영은 엽노야 주변에 무슨 일이 있는 것만 같아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점소이가 은전을 집어 들었을 때, 이미 설무영은 매화반점(梅花飯店)을 떠나고 있었다. 반점을 빠져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두 여인이 주시하고 있었다.
"누구일까......?"
그를 주시하는 두 여인, 진소랑과 수여빈은 강호무인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하기에 전혀 낯 설은 설 무영의 신원에 대한 궁금증으로 가득 찼다.
설 무영은 오마괴도가 사라졌던 서쪽 수림을 향해 경신술을 펼쳤다. 그의 신폭쾌선비(神瀑快仙飛)는 가히 바람을 가르는 화살촉과 같았다.
설 무영이 송림(松林)을 지나칠 때 송림 안으로부터 사람들의 다투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는 쏜살같이 다가가 환영귀식대법(幻影龜息大法)으로 나무 뒤에 몸을 은신했다. 흑의를 걸친 청년과 체격이 우람한 혈포괴인이 다투고 있었다.
"하하하~! 허수(許手)! 네놈이 그것을 갖고 있는 것을 이 노부가 알고 있다. 내놔!"
"이 늙은 도적놈, 마석주(麻夕舟)! 녹림채에서나 써먹는 수법을..... 으...윽!"
허수, 그는 스스로 양상군자(梁上君子)자라 하는 도적, 밤의 제왕 야투일왕(夜偸一王)의 수제자인 신투귀면(夜偸鬼面)이었다. 그의 신투술은 그의 사부인 야투일왕을 앞선다는 말이 있을 만큼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었다. 그를 핍박하는 자, 또한 도적 집단인 녹림채의 향주를 맡고 있는 절혼괴도(切魂傀盜)라는 자로서 절혼마수(切魂魔手)라는 손속과 절혼독분(切魂毒粉)으로 세인을 괴롭히는 사악한자로 유명하였다. 도적과 도적의 싸움이었다.
"허수! 네놈은 노부의 절혼독분에 중독되어서 한시진도 못 견딜 것이다. 하하하......!"
"허~억! 이 늙은 악마야…! 내, 내가 죽어도 네놈에게는 줄 수는 없다."
"흐흐흐……! 이 노부는 네놈이 내놓지 않아도 네놈 죽은 다음에 가져가면 된다!“
신투귀면은 독성이 온몸에 퍼지는지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이 늙은 악귀야! 아, 아~악! 내 저승에서라도 원귀가 되어서라도, 네, 네 놈을 갈아 먹을 테다."
"흐흐흐……! 죽는 놈이 말은 많네! 시간이 없는데, 어디 견디어 봐라……!"
"으~아…악!"
절혼괴도는 분근착골수(分根着骨手)라는 수법을 쓰고 있었다. 분근착골수는 뼈와 골이 아스러지는 고통을 주는 고문 방법이었다.
"자! 내놔라! 편히 죽으려면……!"
그때였다. 검은 그림자 하나가 그들 앞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누, 누구냐?"
절혼괴도는 혼비백산하였다. 무공에 일가견이 있는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자를 못보고 있었다니.
"나다!"
절혼괴도가 묵인을 한 동안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비소를 흘렸다. 강호에 식견이 있는 그로서 전혀 안면이 없는 보잘것없는 자라는 생각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도깨비 노름 하지 말고 사라져라! 노부는 바쁘다!"
"그 자를 놔줘라!"
묵인은 미동도 않고 있었다.
"미친놈! 귀잖게 구네!"
절혼괴도는 비소와 함께 절혼마수(切魂魔手)의 수법 중 가장 악랄한 음마절혼이라는 금나수(擒拿手)법을 펼쳤다. 그의 손이 묵인의 오대 사혈(死血)중 천령개를 짚어 갔다. 그런데 놀랄 일이 벌어졌다. 절대 쾌(快), 한 차례의 바람이 일어났다. 어느 사이에 묵인이 뽑아 든 묵검에 피바람과 함께 절혼괴도의 머리가 잘려 넘어가고 있었다.
"아니~! 내, 내가 어떻게.......!?"
눈이 휘둥그렇게 뜬 눈이 땅바닥에 굴러 떨어졌다, 희대의 도적 절혼괴도 마석주의 이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괜찮으십니까?"
묵인이 허수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허수의 눈동자가 빛을 발했다. 마지막 숨 넘어가는 자의 회광반조(廻光反照)의 눈빛이었다. 하수는 숨을 몰아쉬며 얼떡거렸다.
"난, 난.......이제 얼마 못 산다! 자네는 누, 누구인가.......?"
"무영이라 하는 강호 초출입니다!"
"이…! 이 노부의 운명도, 마, 마지막이군......!"
허수의 눈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묵인이 동정어린 눈빛을 하였다.
"노야는 사실 수 있습니다."
"아~! 아니야! 절, 절혼독에 살아남은 사람은 없어……! 만년하수오(萬年何首烏)가 있으면 몰라도……. 그것도 느, 늦었어……."
"……!?"
"이~! 이것을 소협이........!"
허수가 품속에서 내민 것은 황금빛 찬란한 선녀상이었다. 그 빛의 찬란함에 설무영응 탄복하였다. 마치 하늘을 날아 갈 듯이 선녀가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황금으로 조각된 상에는 묘안석(猫眼石), 마노(瑪瑙), 호박(琥珀), 산호(珊瑚), 진주(眞珠), 수정(水晶), 영랑(盈琅)등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그 무한의 가치를 설 무영도 알 것 같았다.
"이것은.......!?"
"황…황금선녀상이라네……! 많이 갖은자 것.......것을, 가.......가난한자에게 주려 했는데, 주…주, 주인에게 돌려주던지 소제가 요긴, 요긴하게 쓰, 쓰던지 알아서…….알……."
말을 다 마치지 못한 허수는 끄윽! 하는 헛바람 세는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떨어뜨렸다.
".......!?"
설 무영은 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악한 자나 선량한자나 그 누구도 앞으로 닥쳐올 운명은 모르는 것이었다. 어쩌면 사람의 목숨이라는 것이 버러지만도 못한 것 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송림에는 설 무영에 의해서 비석 없는 두 대의 묘지가 생겼다.
황보전장(黃寶錢莊)의 깊숙한 내실.
금나에 금실의 수실로 원앙이 새겨진 휘장 안에 백옥으로 만든 침대, 자단목(紫檀木)과 흑오목(黑烏木)으로 만든 가구 등, 황금의 권위를 대변하는 듯하였다. 바닥에는 백호피(白虎皮)가 깔려있고, 산호(珊瑚), 상아(象牙), 흑옥(黑玉) 등의 보석으로 된 물품들이 가득하였다.
그 실내에서 금화상군 금원상은 오만상을 찡그리고는 안절부절 하였다. 황금선녀상이 그에게 어떤 것이냐? 멀리 서역까지 가서 일국(一國)의 황실을 살만한 값을 치르고 구입한 것이었다. 그런 황금선녀상을 도적맞은 것이었다.
".......!?"
금원상이 흠칫 놀라면서 창문을 바라봤다. 바람도 불지 않는데 창문을 가린 휘장이 흔들렸다.
"신경과민인가.......?"
그는 요사이 밤잠을 설치는 중이었다. 헌데 휘장 뒤로부터 시커먼 묵인이 서 있었다.
"헛~!"
그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누...누구....?"
".......!"
흑립을 눌러쓴 묵인은 말없이 탁자위에 덜커덕! 소리를 내며 황금빛 물건을 내려놓았다. 금원상이 그리도 안절부절못하며 찾던 황금천녀상이었다. 금원상은 부리나케 황금선녀상을 집어 들었다. 그는 선녀상을 요리조리 살펴보았다. 틀림없이 그가 잃어버렸던 황금천녀상이었다. 순간 금원상의 안면이 일그러졌다.
"당신이 훔쳐 갔소?"
"아니요! 가져간 사람은 야투귀면(夜偸鬼面) 허수(許手)! 송림 무덤 속에 있소!"
"그럼 어떻게……!?"
"꼭 대답을........?"
금원상은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훔쳐간 자의 죄과도 묻지 않는다고 했고, 훔쳐간 사람은 송림무덤 속에 시체가 되어 있다고 하는데, 확인 해 보면 될 일이고 굳이 밝힐 필요가 없었다.
"뭘 원하느냐?"
"도화성(桃花城)!"
금원상은 기가 막혔다. 뭐든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는데, 고작 폐성을 달라니! 도화성은 그에게 애물단지였다. 팔려고 내 놓아도 작자도 없었고, 관리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헐값에 내놓는 다는 것은 너무 아쉬움이 많았다.
갖은자의 욕심이 더 무섭다고 했던가? 굳이 더 많은 재화를 요구하지 않고, 쓸모없는 도화성을 요구하는 묵인의 심정이 의심스러웠다.
"무엇에 쓸게요?"
"복숭아나 키우려고……!"
묵인은 너무나 간단명료한 답변을 하고 있었다. 묵인은 다름 아닌 설 무영이었다. 설 무영도 나름대로 생각을 한 것이었다. 당장은 아니라도 그는 기거할 곳이 필요했다. 세인의 눈에 띠지 않는 곳이라면 더욱 좋았다. 그래서 설 무영은 도화성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가 막상 도화성을 구입하려고 하면 금원상은 엄청난 금액을 요구하였을 것이다. 갖은자의 욕심일 것이다. 설 무영은 묵묵히 손을 내밀었다.
"주쇼!"
금원상은 자단목의 봉황장(鳳凰欌)에서 금합(金盒)를 열고 도화성의 소유문서(所有文書)를 꺼냈다. 금원상은 막상 도화성의 문서를 넘겨주려니 아쉬움이 남았다. 설 무영이 받아들었으나 놓으려 하지 않았다. 설 무영이 신비스런 미소를 띠었다.
암중의 압력이 금원상의 손목에 힘을 가해 왔다. 문서는 스르르 설 무영의 손안으로 들어갔다. 설 무영의 몸이 그림자같이 창문으로 사라졌다. 실내에는 금원상의 아쉬움만이 남아 있었다.
개방( 幇)의 감숙지부.
회의청 주변과 방주와 원로가 기거하는 원무각(苑霧閣)주변, 신음성이 난무하다.
"크~억! 동쪽에 괴한이……."
개방의 한 무리가 피를 토하고 쓰러지고 여기저기서 창과 칼이 난무했다.
"아니 서쪽에도…….으악~!"
"허~헉! 허, 여긴 남문…….윽~!"
갑자기 들이 닥친 괴한들로 인해 개방이 피로 물들고 있었다. 당황한 개방 거지들의 무리가
이리저리 몰리고 있었다. 오마괴도는 개방의 감숙지부의 원무각의 오 방향에서 주살을 하였다. 일거에 혼란을 주고 원무각에 침입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오마괴도(五魔怪盜)가 한꺼번에 원무각 안으로 들이 닥쳤다.
"감히 어떤 놈들이냐?"
감숙 분타주인 세화타(笹靴他) 궁나조(穹拿爪)가 쌍장을 휘둘렀다. 맹룡한 장력이 오마괴도중 적살마(赤殺魔)를 향해 쏟아갔다. 삐쩍 마른 적살마는 부지불식간에 적도(赤刀)를 휘둘러 살수를 펼쳤다.
퍼엉!...파팍!
장풍과 도풍이 부딪쳐 원무각을 흔들었다. 일장 뒤로 물러난 궁나조의 왼쪽 어깨에 선혈이 낭자하였다. 반면 적살마의 발밑이 한자 깊이로 패였다.
"흐흐흐......! 어른들은 시간이 없다."
적살마의 적도가 다시 적색 도풍을 일으키며 궁나조의 정수리를 향했다.
"네놈들은 오마괴도....."
궁나조의 일갈과 함께 두 손을 뻗쳐 옥룡팔장의 장법을 펄쳤다.
"어딜…!?"
동시에 키가 작은 오마괴도 흑살마(黑殺魔)의 흑도(黑刀)가 궁나조의 허리를 베어갔다.
"헉~!"
궁나조는 기겁을 하였다. 적살마를 향한 장력을 회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우공좌방(右功左防). 왼손에 강기(剛氣)를 일으켜 막아갔다. 허지만 보고만 있을 괴도들이 아니다. 연이어 청, 황, 백의 도풍이 궁나조의 몸을 에워쌌다. 중원을 난도질하던 괴도들의 협공은 궁나조에게 중과부적이었다.
"비열한 도적들.......!"
언제부터인가 궁나조의 뒤편에 허리가 구부정한 노인이 다가와 있었다. 개방의 원로 만개(滿芥) 엽상진(葉霜進)이었다. 엽상진은 궁나조의 위급한 상황을 막으려 타구봉을 휘둘렀다. 타구봉은 노도와 같은 공력을 싫고 오마괴도의 도풍을 막아갔다. 허지만 이미 늦었다
"크~악!"
외마디 소리와 함께 궁나조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피로 물든 육신이 털썩하고 쓰러지고 원무각의 바닥을 시뻘겋게 물들였다. 반면 적살마는 한 움큼의 선혈을 울컥! 하고 입에서 뿜어냈다.
"이놈들! 천벌을 받고도 모자란 놈들......! 이 엽노야가 네놈들의 내장으로 궁타주의 제사를 지내마!"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엽노야의 목소리에는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될까?"
우락부락한 황살마의 입가에 음험한 미소가 흘렀다. 그것을 신호로 오마괴도는 엽상진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만개! 너무 오래 살았어...!"
청, 황, 백, 흑, 적색의 도풍이 엽상진의 주위를 감싸기 시작했다.
오살마도진(五殺魔刀陣)! 오마괴도가 협공으로 사용하는 간악하고 잔인무도한 진법(陳法)이다. 그 누구도 오마괴도의 오살마도진을 상대하기를 꺼려할 만큼 그 위력이 대단하다.
휘리릭...!
엽상진은 타구봉을 감아쥐었다.
"오냐! 이 노야가 너희들의 간악함을 잠 재워주마..."
엽상진의 타구봉이 오색도풍을 뚫고 오마괴도를 격살해 나갔다. 그러나 타구봉은 허공을 가로지르고 있다. 엽상진은 눈을 감았다. 청음마살(淸音魔殺), 소리로 상대를 격살하기 위함이다.
"풍(風).....구(龜)....난(亂)....교(膠)!"
엽상진의 일갈과 함께 오색도풍을 향해 주살해 나갔다.
"으아악...!"
외마디 비명과 함께 목이 부러진 흑살마의 몸이 풀썩! 바닥을 뒹굴었다. 동시에 엽상진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흠......!"
엽상진의 몸이 휘청거렸다. 도흔이 깊게 패인 그의 얼굴에서 피가 솟았다. 그도 당한 것이다.
"역시~! 만개! 다르군! 허지만......."
오마괴도의 사색도광이 무서운 빛을 발하며 회전을 하였다.
"천(天), 마(魔), 번(飜)!"
천둥과 같은 소리와 함께 수천 개의 도가 엽상진의 몸을 상하좌우에서 갈랐다.
"악랄한 마도들...!"
위기일발의 엽상진은 되 내이며 타구봉에 공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 도광을 막아갔다.
꽈 과광...!
타구봉의 공력과 도풍이 맞받아치는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원무각의 기왓장이 들썩거렸다.
"허 억~!"
엽상진이 자리에 털썩 주저 안았다. 오마괴도도 이장을 물러나서 섰다.
"커~억!"
엽상진의 옷은 도흔에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왈칵! 입에서 피를 쏟았다. 내상을 입은 것이다.
"흐흐흐......!목숨이 아깝거든 내놔라! 축망소낭(縮網小囊)을........"
적살마가 엽상진을 향해 도를 겨냥하며 핍박을 가했다.
"노, 노야는 모르는 일......! 설마 있어도........ 네놈들에게는 못 준다."
"그럼, 이 어른들이 공력을 소모해야 겠구만...!"
그들은 다시 엽상진의 주위로 다가섰다. 쓰러져 있던 엽상진이 타구봉을 의지하고 일어섰다.
휘리리릭...!
엽상진은 마지막 공력을 다해 타구봉을 감아쥐었다. 사력을 다하는 그의 몸이 휘청거렸다.
"크 헉~!"
엽상진은 다시 시뻘건 피를 토해 냈다.
"늙은 거러지! 가랏...!"
적살마의 적도가 바람을 가르며 엽상진의 목줄을 갈랐다. 사력을 다한 엽상진의 타구봉이 적도를 막아갔다. 그러나 이미 꺼진 등불.
"허 걱~! 크윽!"
엽상진의 목줄로 적도가 날아들었다. 허나 목이 덜렁 매달려 피를 괄괄 쏟는 것은 적살마였다. 적살마가 자신의 목숨을 앗아간 검강을 향해 눈을 치떴다.
"누구......!?"
목이 잘려 머리만 덜렁 매달린 적살마의 눈동자가 의구심으로 가득 찼다. 모두의 시선이 한군데로 모아졌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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