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色魂 無影客! - 2부10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9:00 889회 0건
거친 호흡과 운기를 가다듬은 설 무영이 고개를 돌려 하루미를 힐긋 쳐다보았다. 은은한 달빛 아래 누워있는 하루미의 모습은 얼음으로 조각한 천상소녀의 모습이었다. 나신을 감추려는 의도도 없이 누워있던 하루미와 눈길이 마주쳤다. 얼핏 그녀는 능라의로 치부를 감추고 일어나 앉았다.

"몰라요......!"

종알거리듯 내뱉는 말소리에는 여인의 다소곳함이 가득 담겨있다. 설 무영은 하루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처음으로 감당한 쾌락의 여운이 남은 그녀는 그의 이끌림에 기대여 왔다. 그의 입술이 그녀의 도톰한 입술을 가득 담았다. 그리고 그녀의 익어가는 단단한 수밀도를 손아귀에 가득 담았다.

"허…윽!"

짜릿한 쾌감이 그녀의 신경을 자극하였다. 한 번의 경험으로 호기심에 가득 찬 그녀는 이내 쉽게 달아올라 교음을 터트렸다. 설 무영의 입김이 그녀의 복부를 걸쳐 하복부로 내려갔다. 그녀의 몸이 불같이 달아오르며 뒤틀렸다. 입술이 닿는 곳마다 신경세포가 팽팽하게 일어섰다가 폭발하는 느낌에 하루미는 나직이 탄성을 질렀다.

“오, 오라버니! 하 읍.......”

설 무영의 입술은 집요하게 금발의 방초를 헤집었다. 여인의 은밀하고도 성스러운 샘에서 맑은 옥수(玉水)가 흘렀다. 야릇한 쾌감에 어쩔 줄 모르는 그녀의 나신이 남자의 몸에 밀착하여 바들바들 떨었다. 여인의 하복부로 내려왔던 설 무영의 손이 다시 그녀의 젖가슴으로 옮겨갔다.

“오라버니, 난 몰라. 아 흣........”

한손은 유실과 젖가슴을 한 움큼에 쥐고 어루만지는 설 무영의. 다른 손이 여인의 방초를 더듬었다. 다시 뜨거운 불길을 주체치 못한 설 무영의 실체가 그녀의 가녀린 하복부 사이를 비집고 침범하였다.

"아!......"

그녀는 또 다시 큰 불기둥이 비소 속으로 몰입해오는 충격에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통증과 가늠하기 어려운 희열이 그녀의 온몸의 기혈마다 동시에 밀려 들어왔다. 설 무영은 다시 바람이 되어 일렁인다. 점차 그의 움직임이 격렬해지고 그때마다 하루미는 환희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 하얗게 눈을 떴다. 그녀는 파도처럼 그의 가슴속으로 다가와 하얀 포말을 이루며 부서져갔다.

“으 읍, 하 으, 으 으, 하 응..........”
“읍, 으 읍, 흡..........”

습한 열기를 뿜어내는 숨결! 비좁은 비소 속을 터트릴 듯이 진퇴하는 남자의 실체! 열풍으로 몰아치는 남자의 가슴아래 깔린 여인은 몰아치는 열풍에 휘말려 부서진다. 견디기 어려운 희열에 몸부림치는 어린 여인은 하얀 포말을 이루며 바위에 부서지고 몸부림치며 거센 용하(鎔河)의 파도를 이룬다.

"하 읍, 아 하, 하 앙! 나…난 몰라......!"

절정(絶頂), 거센 환희에 들뜬 하루미의 몸이 활처럼 휘어 솟구쳤다. 남자의 실체가 드나드는 여인의 비소에서는 맑은 진액이 흘러넘친다. 하지만 욕화의 열기는 더욱 활활 타오른다. 어린 여인의 나신은 진퇴를 거듭하는 실체를 품고 뭍에 오른 은어처럼 퍼덕이며 부서져 내린다.

“으 읍, 하 우, 아 아, 으 하. 흐 으,........”
“흡, 으 읍, 하 으,,,,,,,,,”

끈적이는 애정의 분비물! 빙벽으로 들어오는 은은한 달빛아래 한 쌍의 불꽃을 이룬 그림자! 열풍과 파도는 빙벽을 녹일 듯 정념의 불꽃을 일으킨다.

눈이 부시도록 아름다운 햇살이 빙벽을 타고 흘러내리는 아침이다.

"........!"

푸르스름한 빙벽으로 둘러싸인 방안에는 꿈같은 하루 밤의 열기가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있다. 눈을 뜬 설 무영은 고개를 돌려 하루미를 처다 보았다. 동안(童顔)의 앙증맞은 얼굴에는 선정적인 홍조가 깃들어 있다. 어린아이처럼 새근새근 잠 들어있는 그녀의 모습에 설 무영은 장난기가 발동하였다. 슬며시 미소를 띠운 그가 그녀의 연홍빛 유실을 매만졌다.

숨소리를 멎은 하루미가 깊고 큰 눈망울을 굴리며 꼼지락 거린다. 배시시 미소를 지은 그녀가 촉촉하게 젖은 눈빛으로 설 무영을 쳐다봤다. 유방을 더듬는 남자의 손길에 짜릿함을 느낀 그녀는 입술을 잘근 깨문다. 그녀는 더 이상 응석을 부리는 소녀가 아니고 하룻밤 사이에 어엿한 여인으로 변한 것이다.

설 무영은 그녀의 몸에서는 흘러나오는 남방 여인의 독특한 체취를 느끼며 엷은 미소를 짓는다. 청초한 애교가 깃들어 보이던 그녀의 자태에서는 선정적인 교태까지 흘러넘친다. 도톰하게 부풀어 오른 유방을 양손으로 가린 하루미는 양손으로 유방을 가리고 다소곳이 일어난다. 능라의를 걸쳐 입은 그녀가 문 쪽으로 갔다. 하얗고 조그만 그녀의 발이 돌아섰다. 눈이 마주친 그녀의 도톰한 입술이 그를 향해 삐죽 내밀면서 조그맣게 속삭였다.

"미…워요!"

하루미가 후다닥 방을 나갔다. 설 무영은 어색하고도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가 일어나 앉아 몸을 추슬렀을 때, 유라천후가 만면에 희색을 띠고 들어왔다.

"본후는 영아에게 이것을 넘겨 줄 걸세...!"

그녀가 내민 것은 황금빛이 찬연한 황금 패였다. 황금 패에는 은빛 찬란한 설국(雪菊)이 새겨져 있었다. 유라혼빙천의 천주(天主)의 권위를 상징하는 유라금패(琉羅金牌)가 아닌가? 설 무영은 정색을 하고 두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소생은 능력도 없고, 시간여유도 없습니다."
"그런 것은 염려하지 말 아! 여기에 영아가 없더라도 본후와 빙령옥모가 있으니까.......!"
"그렇다 해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설 무영은 극구사양 하였다. 그러나 유라천후는 한숨까지 내쉬면서 한탄하였다.

"본후는 이미 늙었고, 미아는 아직 어리기에 걱정이......."
".......!?"
"영아가 사적으로 힘든 것은 알아! 허지만 본후와 미아를 생각해서라도........"

설 무영의 양미간이 찌그러졌다. 그는 여러 가지를 고심하였다. 유라혼빙천에 억 메어 있을 수도 없었고, 떠나있을 때 유라혼빙천의 안위를 걱정하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그는 무작정 거절할 수도 없었다. 진퇴양난에 빠진 그는 한 가지 제안을 하였다.

"미아가 태허법천비급(太虛法天秘級)을 십성이상 달성 할 때까지만, 제가........"
"그래! 그렇게라도......."

설 무영의 말에 만족할 수 없는 유라천후도 하루미가 태허법천비급을 십성만 달성하면 역할을 충분히 하리라, 생각을 하였다. 설 무영은 유라천후의 강력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유라금패를 받기로 하였다. 아울러 유라천후는 빙하섭령검결(氷河攝靈劍訣) 비급과 패천신력탄(覇天神靂彈)이 들어있는 철함을 내놓았다.

비급은 하루미가 설 무영을 위해 배려한 것이고, 패천신력탄은 절대다수(絶對多數)를 상대하는 방법을 필요로 하던 설 무영이 부탁한 것이다. 패천신력탄은 색목국에서 사용하는 벽력탄(霹靂彈)으로서 주변 삼십 장 이내는 생물체가 살아남을 수 없는 만큼 가공할 위력이라고 하였다.

설무영은 비급과 패천신력탄을 축잠낭(縮潛囊)에 넣을 때, 하루미가 다소곳한 발걸음으로 사뿐사뿐 찻잔을 들고 들어왔다. 그녀는 예전의 창백한 혈색과 다르게 봉옥이 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유라천후가 유심히 하루미의 옆모습을 지켜보았다.

하루미가 설 무영과 유라천후 앞 탁자위에 용정차(龍井茶)를 따랐다. 유라천후가 고소를 금치 못하고 터트렸다.

"호호호…! 미아가 제법 새색시 같아 보이네. 맵시도 고와지고.......!"
"어머니는........!?"
"...............!?"

설 무영을 힐끔 쳐다보며 어머니에게 눈을 흘기는 하루미의 봉옥이 홍조로 붉게 물들었다.

"공연히 놀리지 마세요......!"

그녀는 눈을 흘기며 부리나케 몸을 돌렸다. 하루미의 금발이 나풀거리며 사라졌다.

"호호호…! 철부지가 벌써 어른스러워 지다니........"
"........!"

공연히 설 무영까지 안절부절 하였다. 젊은 사람들이 부끄러워하고 안절부절 하는 것이 오히려 즐거웠던지 유라천후는 마냥 행복한 표정이었다. 설 무영이 항상 궁금해 하던 사항을 불쑥 질문을 하였다.

"빙모님께서 혹시 철심오마살(鐵心五魔煞)에 대해서 아시는지요?"
"철심오마살....?"

유라천후가 놀라는 표정이 역력하였다. 철심오마살을 알고 있다는 것이나 다름없는 표정이었다.

"네........! 그들의 행적이나 내력에 대해서......!"
"음…! 그들에 대해서 알려면 막연하지만, 오래된 고금비사(古今秘事)부터 알아야 할 거야."
"고금비사라면........?"

설 무영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유라천후가 천장을 주시하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석가세존이 보리수나무 밑에서 수행 중에 그림자처럼 방해한 것이 사악한 악마의 나찰(羅刹) 아수라(阿修羅)였다. 그러나 아수라를 비롯한 악귀들은 석가세존의 항마선공을 견디지 못하고 영(靈)과 육신(肉身)이 분리되어 항마법화경(抗魔法華經)에 갇히고 말았다.

그 후 아수라는 사악한 심성(心性)으로 육신은 주화입마하여 썩어 없어지고 말았다. 육신이 썩어 지하의 어둠속으로 들어간 아수라의 영(靈)은 지상으로 나올 수 없게 된 것이었다. 허지만 그 후도 아수라는 지상으로 나오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또한 아수라는 어둠속에만 오랜 세월을 살다보니 빛을 볼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것은 곧 아수라는 빛의 세계에서는 살 수 없는 영원한 어둠의 신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세월이 흘러 아수라의 사술을 배운 후계자가 탄생 하였고, 그 사술에 의한 강시( 屍)가 나타났다는 풍문이 돌게 되었다.

기이한 것은 아수라의 후계자가 곧 아수라의 실체라는 것이다. 그를 숭배하는 자들은 그를 수라천(修羅天)이라고 하였다. 아수라는 사혼이지 실체가 아님으로 아수라의 사혼이 후계자의 몸속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수라의 후계자도 어둠의 사술을 배웠기에 밝은 낮에는 활동을 못 한다는 것이다

설 무영은 문득 뇌리를 스치는 의문에 대해 물었다.

"그럼 실혼강시(失魂 屍)를 만드는 천황혼마전도 수라천의.......?"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어. 예로부터 천축(天竺)의 월지국(月脂國)등에서 영생불사(永生不死)를 위해 유래된 강시 제조 술은 신강(新彊), 서천(西天), 묘강(苗疆) 등의 사파무림에서 악용 개술(改術)되어 여러 가지로 나타나고 있지. 죽은 자의 시체에 사혼환시술(邪魂幻屍術)로 마혼을 넣어 만든 마혼강시(魔魂殭屍), 천황혼마전의 뇌멸몽윤귀공(腦滅夢輪鬼功)같이 산사람의 혼을 빼앗아 만든 실혼강시, 그중에도 제일 무서운 것은 요음강시(妖陰殭屍)야. 절대 극음사공에 의해서만 만들어져 몇 백 년 전에 실존했다는 여인의 생체강시(生體殭 屍)......"

몸을 부르르 떨며 유라천후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죽음과 암흑의 아수라를 숭배하는 집단에 의해서 수라천(修羅天)은 여러 번 무림에 부활하였다는 것이지. 그때마다 무림은 일대 혈겁을 치루면서 그들을 물리쳐야 했고 아쉽게도 일대를 풍미하던 절대무인들이 수라천과의 혈전에서 행방불명되거나 죽음을 면치 못했지.......! 아수라의 영혼이 살아있는 한 수라천의 재활을 막지 못한다는 것이 영원한 무림의 과제가 되고 말았어. 당금 무림에도 수라천의 손과 발이 되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풍문과 중원에만 해도 서너 개의 수라천(修羅天) 지부천(支部天)이 있을 것이라는 거야.......!"

유라천후는 침중한 눈빛으로 긴 한숨을 내쉬었다. 설 무영이 다그쳐 물었다.

"그러면 그들 중에, 철심오마살이....?"
"그건 확실치 않지만.......! 해남(海南) 근방에서 그들을 보았다는 사람이 있으니까, 해남 어딘가에 있는 그들의 지부천이 있고 철심오마살이 있다는 추측일 뿐이지. 그리고 변황에도 아수라에게 혼을 빼앗긴 종파가 있는 걸로 추측해. 아마도 천황혼마전도 그중에 하나가 아닌지 본후는 추측하지........"

"그래서 천황마제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설 무영은 분명히 들었다. 개봉분타에서 만난 대괴신왕(大怪神王) 뇌광(雷胱)에게서도, 천황마제에게서도, 존(尊)이라는 무형의 인물에 대한 말을 했었다. 유라천후가 침통한 어조로 이어서 말했다.

"그런데 심각한 것은 그들이 현실로 나타난다면 중원이나 변황무림에 일대 혈겁과 분란이 일어난다는 거지......!"

유라천후의 말은 분명했다. 삼백여년의 긴 세월 동안 암암리에 이루어진 일, 그것이 표면으로 나타날 때에는 어마어마한 분란이 일어날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무림뿐만 아니라, 중원대륙도 오대십국으로 매일같이 황실의 지형이 바뀌고 있지 않는가? 이 혈겁을 막을 영웅은 과연 누구인가? 먼 훗날 역사가의 기록만이 알 수 있는 노릇이다.

빙금각(氷金閣).
빙하의 수정궁에 소재한 유라혼빙천의 집회각(集會閣)이다. 유라천후와 설 무영, 그리고 하루미, 빙령옥모가 빙금각으로 들어서고 있다.

"만세! 만만세! 천후님의 옥체강령 만만세~!"
"와아아…! 와아아…!"

빙금각이 떠나갈 듯이 함성이 터져 나왔다. 빙금각에는 일백여명의 유라혼빙천의 수뇌들이 모여 있었다. 유라혈사대 대장 도인광(刀隣光), 유라비마대 대장 백뇌수(百雷壽)를 비롯한 수석소부장만 모인 것이다.

대리석의 단위로 올라선 유라천후가 두 손을 들어 답례를 하자, 모두의 시선이 단위로 집중 되었다. 유라천후의 극음의 내공이 실린 날카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본후는 유라혼빙천의 천모(天母)로 물러나고, 새로운 천주(天主)를 추대하는 바이다. 새로운 천주는 본후의 사위인 무영(霧影)이다!"

갑자기 빙금각이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적막이 흘렀다. 그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 쳐다보았다. 하루아침에 날벼락 같은 선언이었다. 무영이란 이름은 그들에게 금시초문이었다.

"무영이 누굽니까?"

그들 중에 누군가 정적을 깨고 외쳤다. 그것을 신호로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석단(石檀) 위로 묵빛 영웅건을 질끈 맨 청년이 한줄기 바람처럼 올라섰다. 흑포, 흑삼(黑杉), 검은 흑장화(黑長靴)의 청년이었다. 허리에 두른 요대(腰帶)도 흑색으로 온통 검은 흑의(黑衣)를 걸친 설 무영이었다.

용모는 지극히 청기(淸氣)하고, 풍도 또한 웅위(雄威)하였다. 표정은 무섭도록 냉막하고, 늠름한 풍채의 헌헌장부(軒軒丈夫)이었으나 어딘지 어둡고 신비스러웠다. 그가 단위로 올라서자, 다시 빙금각은 조용해졌다.

"......!?"

태황적도 도인광은 불만스런 표정으로 석단을 바라봤다. 그도 한때 변황을 주름잡았었다. 그가 유라혼빙천을 떠나지 못하는 것은 전(前) 천주의 은공을 배반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백귀나찰 백뇌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것도 여인인 유라천후 밑에 있을 수 밖에 없다는 것에 불만을 갖고 있었으나 천주라는 자리를 차지하는 은근한 미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소천주였던 하용빈(賀龍彬)도 없어진 지금, 그에게 장애가 되는 것은 유라천후와 늙은 총관 빙령옥모와 도인광 뿐이다. 설사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그를 머물게 하는 작은 희망이었건만, 그 희망마저도 없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별안간 하늘에서 떨어지듯 극빙한담으로 뚝 떨어진 자를 하루아침에 천제로 한다니, 그에게는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지하에 계신 천주께서 웃으시겠소! 하하하......!"

백뇌수가 비소와 함께 앙천대소 하였다. 빙금각내는 또 다시 술렁거렸다. 유라천후의 안색이 파리해 졌다. 백뇌수가 그녀가 추천한 천주를 완강히 거부할 줄은 미리 예견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유라천후는 말을 잊었다. 아무리 천후라 해도 혼자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그들 모두가 그의 남편 하용문의 부하들이다.

그들이 적극적으로 설 무영을 천주로 하는 추천에 반대한다면 그녀로서도 불가항력이었다. 귀밑까지 쭉 찢어진 검미에 살기를 띠운 백뇌수가 쌍장을 펼쳤다.

"어디 애송이! 이 노부의 초식을 받아 보아라! 그렇지 못하면 이곳에서 썩 꺼져라!"

백뇌수의 쌍장에서 하얀 운무가 피어나며 맹렬한 장력이 설 무영을 향해 쏟아져 갔다. 그의 이름을 대신하는 백운비뢰장(白雲飛雷掌)이었다.

"콰콰....쾅!"

빙벽이 우르르 흔들리며 설 무영의 가슴을 향해 무자비하게 강타했다.

"으윽!"

그러나 신음을 뱉어낸 것은 백뇌수. 그는 선혈을 왈칵! 뱉어내며 오장을 물러섰다. 그리고 극음과 극양의 양강지기를 이룬 설무영은 요지부동의 자세로 서있었다. 그의 옷깃하나 건드리지 못한 장력은 도리어 반탄강기로 백뇌수의 옷을 너덜너덜하게 찢어낸 것이었다. 설 무영은 무언의 자세로 형형한 눈길을 백뇌수에게 보내고 있었다.

"아니 이럴 수가......?"

백뇌수와 도인광은 동시에 설 무영을 경악스런 눈빛으로 처다봤다. 백뇌수가 누구인가? 어 느 문파의 장주도 백 초식이내 꺽을 수 없는 고수가 아닌가? 그런데, 그가 단 일격에 패하다니, 그것도 반탄강기에 의해서.

"어딜…! 건방진.......!"

도인광이 이를 부드득 갈면서 애병(愛兵)인 적룡도를 빼 들었다.

"스르르...릉!"

혈색 도광이 번쩍! 하고 빙음각 내에 퍼졌다. 도(刀)는 검(劍)과 달리 일도(一刀)에 의한 강(强)과 패(覇)였다. 도인광의 검과 전신이 하나의 혈무로 변했다.

"태(太)양(陽)일(一)도(刀)!"

도인광의 일갈과 함께 도에서 뿜어져 나온 혈무가 설무영의 정수리를 쪼개갔다.

"콰르르....릉!"

허나 설 무영의 자세는 움직임이 없는 하나의 묵상(默像)이다. 정수리가 퍽! 두 조각으로 피를 튀겼다 싶었다. 그러나 허허실실(虛虛實實), 설 무영의 모습은 존재치 않았다.

스르르....!

어느새 설 무영은 도인광의 뒤편에서 안개 같은 무거움으로 서있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단지 설 무영의 베어진 옷소매가 나풀거렸다. 도인광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도인광은 내공을 십성 끌어올리며 몸을 회전시켰다.

"혈(血)륜(輪)광(光)뢰(雷)!"

한마디 혼음(魂音)과 함께 혈무가 삼장이내에 피어나며 원형 도강(刀剛)이 번개같이 설 무영의 허리를 두 동강을 냈다.

"아…악~!"

바라보고 있던 하루미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녀의 파란 눈동자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백뇌수를 비롯하여 보고 있던 사람들은 태연한 표정이었다. 의당히 설 무영이 백뇌수의 도(刀) 아래 굴복할 것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억!"

모든 사람들의 눈이 흰자위가 하얗게 들어나도록 경악으로 가득 찼다. 백뇌수의 머리 위 삼장 높이에 흑무가 피어 있었다. 아니 그것은 설 무영이 허공에 수평으로 와립(臥立)하고 있었다.
부공선화(浮空仙花). 부공삼매(浮空三昧)만도 최극의 상승무공 수련자만이 가능한 일이거늘, 전설로만 존재한 고금기공었다. 뿐만 아니라, 삼 갑자 이상의 내공을 소유한 도인광의 손아귀에 있던 적룡도가 설 무영의 손에 쥐어져 있지 않는가? 허공접인(虛空接引)의 수법에 도인광은 자신의 애도(愛刀)를 빼앗긴 것이다.

설 무영이 서서히 도인광의 앞에 내려와 섰다. 찰나 간에 일어난 상황에 빙금각의 모든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 하였다.

"도 대장의 적룡도를 잠시 보았소!"

설 무영은 적룡도를 도인광에게 건네주었다. 도(刀)를 다루는 무인이 검을 빼앗기면 그것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적룡도를 받아든 도인광이 넙죽 부복 하였다.

"천주(天主)님! 과오에 대한 벌을 주십시오!"
"천주님! 소신도 벌을 기다립니다...!"

도인광의 부복에 잇따라, 백뇌수도 부복을 하였다. 설 무영이 환한 미소와 함께 그들을 격려하였다.

"당치도 않는 말씀들이요! 유라혼빙전의 무장들이라면 의당한 일이요.!"

젊은 설 무영이지만 누구 못지않은 인자한 표정이었다. 그에게 숨어있던 웅위한 협심이 표현된 말이었다.

"일어들 나시오! 그대들의 충심에 탄복하였소!"
"만세! 만세! 유라천주 만만세!"

빙금각이 떠나갈듯이 함성과 함께 모든 사람들이 부복하였다. 그들은 보았던 것이다. 가히 최극의 상승무공과 심성이 태산 같은 일대영웅의 모습을. 그는 그들로부터 유라혼빙천의 천주로 받들려 진 것이다.

유라천후는 자신의 남편인 천주 하용문이 살아 돌아온 것보다 더한 기쁨에 젖어 들었다. 가슴을 조이던 하루미는 감격하여 파아란 용목(容目)에 눈물을 글썽거렸다.

석빙산(石氷山)으로 이르는 사막의 초입(初入).
대석산으로 부터 희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온 한 무리의 군마와 철륜거(鐵輪車)가 멈추었다. 네 마리의 백마가 이끄는 철륜거의 문이 열리고 한 묵인의 청년과 두 여인이 내려섰다.

이어서 군마 속에서 황포의 두 무인이 일장 뒤에 다가섰다. 묵인의 청년은 설 무영, 그의 옆에 다가서는 벽안금발(壁眼金髮)의 색목미녀(色目美女)는 하루미, 그리고 오십 세의 벽안금발녀는 유라천후이다.

일장 뒤의 황포무인은 도인광과 백뇌수이다. 사막의 지평선을 바라보는 설 무영의 눈에는 침묵의 바다처럼 무거운 의지가 담겨있다. 그에게서 천정무심(天井無心)의 기도(氣道)가 흘러 넘쳤다.

(이제 나는 또 가야한다. 설령 이 길이 죽음의 길이라도 천년의 업보를 풀어야 한다.......!)

설 무영의 뇌리에는 그가 가야할 길들이 바람처럼 스쳐갔다. 그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통해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진한 열기를 보고 있었다. 태산의 그 웅장함이 감동을 주듯, 무저(無底)의 깊이를 간작한 바다가 사람의 마음을 빼앗듯, 위대한 영웅은 우러나는 풍위만으로 세인을 이끈다. 설 무영에게 잠재된 것은 바로 그런 인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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