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환진은 자신이 있었다. 약관이 지난 지 2년이 지났지만, 강호에 발을 디디지 않은 것은 준비가 되었을 때 강호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결심이 있었고, 일류급의 무위를 갖춘 지금은 때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미공자라고는 할 수 없지만, 당가 특유의 독심이 있는 그는 자신의 나이 또래라면 누구에게도 쉽게 질 것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았다.
당환진이 이런 자신만만한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가계 때문이었다. 당환진은 어렸을 때부터 뭐든 해내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면서 삶에 소극적인 태도를 가진 아버지를 바라보며 살아왔다. 당환진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얼마나 인생을 바꾸는 지를 일찍부터 알았고, 되지 않을 것 같던 일도 시간을 들여 노력하다보면 결국은 해낼 수 있다는 삶의 지혜를 일찍부터 알았던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재능이 자신에게는 있었다. 자질이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당예인을 보면서도 좌절하지 않았던 것은, 무의 경지란 누가 먼저 밟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경지에 발을 디딜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어서였다.
동생인 예인이 세책방에서 스승을 만나, 무의 길을 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당환진은 결국 이런 날이 오는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자신의 생각에도 동생인 당예인은 얼굴은 예뻤지만, 한 사람의 무인으로 자라나기에는 너무 호기심이 많았다. 작은 경지는 뛰어난 재능으로 간단히 뛰어넘을지 모르지만, 시련을 겪어야 오를 수 있는 일류의 경지는 쉽게 포기하고 말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대로 되었을 때, 당환진은 스스로의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당예인이 당가를 뛰쳐나가 잘 때를 제외하면 하루종일을 유가장에 머무르면서 당가에 퍼진 소문들을 들으면서 유관필이라는 사람이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던 당환진이 유관필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바꾼 것은 자신의 아버지를 단 하루만에 바꾼 유관필의 힘을 느꼈을 때부터였다.
당척이 만인 앞에서 당가에서는 앞으로 폐혈과 근맥을 자르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며, 박수를 받을 때, 당환진도 그 자리에 있었다. 사랑해 마지 않을 가문을 만들겠노라 선언하는 아버지가 난생 처음으로 멋있어 보였던 것이다. 유관필이 이야기했던 청성산에 도가 없다는 이야기에 크게 공감한 당환진은 시비들과 하인들, 당가의 젊은 식구들을 모아 유관필에 대한 것을 들었고, 유관필이라는 사람이 보통이 아님을 느끼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유관필이 자신을 빗대어 만고의 천재라고 이야기 하는 최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신안에서 두근거리면서 끓는 피의 박동을 느꼈던 것이다.
사인교의 가마꾼을 구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당환진은 자신을 따르던 젊은 무인 셋을 모아 아버지 당척을 찾아 유관필과의 첫 강호행을 결정했다. 당가의 대공자가 가마꾼을 한다는 부끄러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유관필은 분명 큰 사람이었고, 강호를 울리는 대협의 자리에 오르려면, 강한 무공보다는 사람으로서의 깨달음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자긍심이 강한 당환진은 가마꾼 역할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당환진은 자신을 따르는 당한, 서문진, 양우형에게 각자 간단히 행장을 꾸릴 것을 명하고는, 비장의 행장을 등에 짊어맸다. 강호초행을 준비하면서 벌써 1년 전부터 준비한 행랑이었다. 거기엔 최상급의 육포는 물론이고, 노숙할 것을 대비해서 방수처리가 된 광목천에 비상시를 대비한 환약주머니까지 들어있었다. 경사로 가는 길은 물론이고, 당환진의 머릿 속에는 강호 전역의 지도가 이미 입력되어 있었다. 자신만만한 젊은이인 당환진이었지만, 역시 강호 첫출행은 설레는 일이었다.
유가장에 도착해 말을 일문에게 맡긴 유관필도 오세인이 싸준 행랑을 받아들었는데, 강호전역을 다녀야 하는 상가의 자식인 오세인은 요령있게 행랑을 싸는 법을 알고 있었다. 오세인은 행랑의 맨 아래칸에 궁에 들어갈 때 입어야 하는 화복과, 가죽신까지 챙길 정도로 빈틈이 없었다. 유관필은 서두르지 말라는 오세인의 만류에도 벌써부터 행랑을 등에 메고는 대문 앞에서 당척이 보내 줄 사람들을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자 빈 사인교를 든 네 명의 젊은 청년이 도착했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유관필은 체면을 불구하고 사인교에 올랐다. 정말 바람처럼 빨랐다. 한 식경을 넘게 달리니 이미 성도를 지나쳤고, 세 식경을 지났을 땐, 장강과 연결된 지류의 나루터에 도착했던 것이다.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장시간 동안 속도감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유관필이 어지러워하며 사인교에 내려서 쪼그려 앉았고, 네 명의 청년이 각자 숨을 크게 쉬며 사인교를 땅바닥에 두고 호흡을 고르고 있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불쑥 대나무 통을 손에 하나씩 쥐어주는 것이었다. 당예인이었다.
"역시 여기로 왔네. 복숭아 과즙에 시원한 물을 넣은 냉차야. 한 잔씩들 마셔."
"여긴 어쩐 일이야. 배웅을 왔냐?"
오빠인 당환진이 간편한 경장차림의 당예인을 보며 물었다. 당예인은 유가장을 드나들면서 무복을 입지 않았던 터였다. 당예인은 쪼그려 앉아서 자신이 준 대나무 통 속의 복숭아 냉차를 맛있게 마시는 유관필에게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오빠인 당환진의 생각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선생님 경사 가시는 데에 따라가려고 왔지. 내가 여길 왜 왔겠어."
"니가 왜?"
"생각 좀 해 봐. 경사까지 빨리 가도 열흘 길은 되잖아. 오빠 들이랑 우리 선생님이랑 처음 보잖아. 얼마나 불편하겠어. 마음이 편해야 선생님이 경사에 도착했을 때 그 소중한 분을 구하실 때 최선의 방책을 떠올리시지. 그러지 않겠어."
"놀러가는 게 아니다. 어떤 일이 있을 지 몰라."
"그럴 줄 알았어. 무슨 일이 있을 게 있어. 오빠들이 생각하는 강호에서의 모험 같은 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니까. 강호로 따지면 할아버지나, 그래 검황 같은 분을 지금 구하러 가는 거라고. 선생님께 후일을 부탁한 분은 우리가 이런 식으로 빠르게 움직일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테니까. 제일 안전한 길을 정해서 가야 해. 내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이렇게 정했으니까 오빠들은 그냥 우리 선생님 너무 어지럽지 않게 빠르면서도 천천히 그렇게 움직이면 되는 거야."
당예인은 언제 준비했는지. 작은 지도책을 펼쳤는데, 거기엔 사천을 출발해서 경사를 가는 각 지방의 자세한 지도가 나와 있었고, 일정별로 언제 어디서 묵어야 하는 지, 또 배편은 언제 출발하는지가 모두 붉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었다. 상가의 지도책이었다.
"일문 아저씨랑 상의해서 준비한 거야. 아, 오빠들은 모르지. 유가장의 총관 아저씨야. 오가상단의 책임자시기도 하고. 오빠 그 행낭은 뭐야? 다 싸들고 가는 거야? 이러니 내가 따라가야 한다니까. 사천에서는 오가상단의 지부에 들르면 되고, 아저씨가 준 이 패를 들면 금룡상단의 지부에서 필요한 것을 모두 살 수가 있으니까 그렇게 주렁주렁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당예인이 일행에 합류했다. 당예인은 능숙하게 들어온 배의 주인과 사인교와 여섯 사람분의 배삯을 흥정하고는 먼저 배에 올랐고, 그제야 한숨을 돌린 유관필과 네 명의 청년들은 당예인의 뒤를 따라 배에 올랐던 것이다. 중간 규모의 배에는 선실이 있었고, 선실에 자리를 잡자 당예인은 유관필에게 네 명의 청년을 소개했다.
"선생님. 여기는 제 오라버니에요. 아직 강호에 별호는 없어요. 이번이 초행이거든요. 그래도 영웅담에서 보는 그런 강호초행의 건방진 세가의 대공자는 아니에요. 말이 없어서 그렇지 꽤 진중한 편이거든요. 화산기담의 담무량 같은 사람이라고 보시면 되요."
"아! 그 담무량."
영웅담 따위는 읽지 않는 당환진이었기에 당예인이 말한 담무량이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는 당환진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둘이서만 아는 이야기를 나누는 당예인과 유관필은 나머지 사람들도 그들 식의 대화로 마무리했다.
"여기 한이 오라버니는 저희 둘째 고모의 아들인데요. 고모부님이 당가의 속가인 양씨 집안 사람인데, 고모와 결혼하면서 당씨성을 물려받아서 양한이 아니라, 당한이 되셨어요. 독공자 당민에서 당휘와 같아요. 무위는 오라버니와 비슷비슷하세요. 어릴 적엔 한이 오라버니가 무조건 이겼었는데, 환진 오라버니가 가주공인 사갈편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비슷비슷하시죠."
당예인의 말에 당한도, 당환진도 발끈했다. 서로가 경쟁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양 측 모두 현재에는 자신의 실력이 윗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발끈하든 말든 당예인은 나머지 두 사람인 서문진과 양우형을 마저 소개했다.
"저기 키가 큰 오라버니가 서문진 오라버니인데요. 아마 선생님이랑 제일 말이 잘 통할지도 몰라요. 서문가는 당가의 속가이긴 한데, 늘 군사역할을 해와서요. 어릴 적부터 서문 오라버니도 내내 공부를 열심히 했거든요. 저기 덩치가 좋은 오라버니는 양우형 오라버니인데, 양 오라버니는, 아! 오라버니. 사육장은요? 오라버니가 없어도 돼요?"
"사람들에게 한 달 정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지 지침을 주고 왔다."
"양 오라버니는 세가의 독물들을 관리하세요. 할아버지가 소중히 생각하시죠. 그런데, 오라버니, 할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오라버니가 이렇게 독물들 내팽겨쳐 두고 우리 선생님 따라붙은 거 알면 가만이 계실까요?"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왔다. 뭐, 네 오라비가 막아주겠지."
"오라버니는 할아버지 앞에서 말도 잘 못하는데요. 차라리 나한테 붙어요. 내가 말해 줄게요."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당환진은 자신의 동생이 가볍게 입을 놀리는 것이 싫어서, 참다가 한 소리를 하고 말았지만, 유관필의 너그러운 웃음을 보고서는 스르르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별 말이 없는 사람 같은데도 이상하게 존재감이 있었다. 유관필은 자신을 둘러싸고 앉은 네 명의 청년에게 깊게 고개를 숙였다.
"유관필이라 하네. 자네들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네. 예인의 오라비들이라니 내 편히 하겠네. 예인이가 말한 그대로야. 내 멀쩡한 두다리를 가지고 자네들이 들어주는 사인교에 오른 이유는 시간이 급박해서네. 환진이라고 했나. 형님이 아들을 잘 키우셨네. 자네 혹시 그 점혈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말이야."
"할 줄 압니다. 왜 그러십니까?"
"최 학사님을 만나면 말이야. 내가 눈짓으로 신호를 줌세. 그리하면 자네가 보자마자 혈도를 점하게."
"네?"
"자네들이 태워주는 사인교에서 내내 생각했네. 최학사님을 설득하기에 앞서 일단 목숨을 확보해야겠어."
당예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하지만, 그런 분을 힘으로 다루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죽으면 소용이 없다. 죽어서는 안될 사람이야. 영웅담을 읽으면서, 난 두근거림을 느끼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무림인들은 무뢰배와 같다고 생각했었다. 관과 무림이 다른 세계라는 것도 이상했었지. 사람에게는 인의라는 게 있어서 누구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알고, 그런 기준이 서로 다를 때엔 법이 있어서 시비를 가리면 되는 것인데, 무림인들은 인의와 법 위에 힘을 두고서, 힘이 있는 사람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지못하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실질적인 힘이라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구나. 환진아 실수가 없어야 한다. 자네의 한 수가 이 나라 억조창생의 앞날을 크게 좌우할 한 수인게야."
"네. 숙부남,"
그 때 큰 소리가 났다. 얌전하게 생긴 당한이 한 손을 번쩍 들었던 것이다. 당한의 손가락엔 잘 보이지도 않는 우모침이 쥐어져 있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유 숙. 철이 나기 전부터 던져온 침입니다. 환진이도 잘 해내겠지만, 만의 하나라도 실수가 없어야 하는 일이라면 제가 하겠습니다. 유 숙."
당환진이 이런 자신만만한 성격을 가지게 된 것은 그의 가계 때문이었다. 당환진은 어렸을 때부터 뭐든 해내는 할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눈치를 보면서 삶에 소극적인 태도를 가진 아버지를 바라보며 살아왔다. 당환진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얼마나 인생을 바꾸는 지를 일찍부터 알았고, 되지 않을 것 같던 일도 시간을 들여 노력하다보면 결국은 해낼 수 있다는 삶의 지혜를 일찍부터 알았던 것이다.
뒤를 돌아보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는 재능이 자신에게는 있었다. 자질이 자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당예인을 보면서도 좌절하지 않았던 것은, 무의 경지란 누가 먼저 밟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그 경지에 발을 디딜 수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어서였다.
동생인 예인이 세책방에서 스승을 만나, 무의 길을 버렸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당환진은 결국 이런 날이 오는구나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자신의 생각에도 동생인 당예인은 얼굴은 예뻤지만, 한 사람의 무인으로 자라나기에는 너무 호기심이 많았다. 작은 경지는 뛰어난 재능으로 간단히 뛰어넘을지 모르지만, 시련을 겪어야 오를 수 있는 일류의 경지는 쉽게 포기하고 말거라 생각했었는데, 그대로 되었을 때, 당환진은 스스로의 생각에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당예인이 당가를 뛰쳐나가 잘 때를 제외하면 하루종일을 유가장에 머무르면서 당가에 퍼진 소문들을 들으면서 유관필이라는 사람이 특이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던 당환진이 유관필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바꾼 것은 자신의 아버지를 단 하루만에 바꾼 유관필의 힘을 느꼈을 때부터였다.
당척이 만인 앞에서 당가에서는 앞으로 폐혈과 근맥을 자르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하며, 박수를 받을 때, 당환진도 그 자리에 있었다. 사랑해 마지 않을 가문을 만들겠노라 선언하는 아버지가 난생 처음으로 멋있어 보였던 것이다. 유관필이 이야기했던 청성산에 도가 없다는 이야기에 크게 공감한 당환진은 시비들과 하인들, 당가의 젊은 식구들을 모아 유관필에 대한 것을 들었고, 유관필이라는 사람이 보통이 아님을 느끼고 말았다. 그리고 그런 유관필이 자신을 빗대어 만고의 천재라고 이야기 하는 최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자신안에서 두근거리면서 끓는 피의 박동을 느꼈던 것이다.
사인교의 가마꾼을 구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당환진은 자신을 따르던 젊은 무인 셋을 모아 아버지 당척을 찾아 유관필과의 첫 강호행을 결정했다. 당가의 대공자가 가마꾼을 한다는 부끄러움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유관필은 분명 큰 사람이었고, 강호를 울리는 대협의 자리에 오르려면, 강한 무공보다는 사람으로서의 깨달음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자긍심이 강한 당환진은 가마꾼 역할이 아무렇지도 않았다.
당환진은 자신을 따르는 당한, 서문진, 양우형에게 각자 간단히 행장을 꾸릴 것을 명하고는, 비장의 행장을 등에 짊어맸다. 강호초행을 준비하면서 벌써 1년 전부터 준비한 행랑이었다. 거기엔 최상급의 육포는 물론이고, 노숙할 것을 대비해서 방수처리가 된 광목천에 비상시를 대비한 환약주머니까지 들어있었다. 경사로 가는 길은 물론이고, 당환진의 머릿 속에는 강호 전역의 지도가 이미 입력되어 있었다. 자신만만한 젊은이인 당환진이었지만, 역시 강호 첫출행은 설레는 일이었다.
유가장에 도착해 말을 일문에게 맡긴 유관필도 오세인이 싸준 행랑을 받아들었는데, 강호전역을 다녀야 하는 상가의 자식인 오세인은 요령있게 행랑을 싸는 법을 알고 있었다. 오세인은 행랑의 맨 아래칸에 궁에 들어갈 때 입어야 하는 화복과, 가죽신까지 챙길 정도로 빈틈이 없었다. 유관필은 서두르지 말라는 오세인의 만류에도 벌써부터 행랑을 등에 메고는 대문 앞에서 당척이 보내 줄 사람들을 기다렸다.
잠시 기다리자 빈 사인교를 든 네 명의 젊은 청년이 도착했고,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유관필은 체면을 불구하고 사인교에 올랐다. 정말 바람처럼 빨랐다. 한 식경을 넘게 달리니 이미 성도를 지나쳤고, 세 식경을 지났을 땐, 장강과 연결된 지류의 나루터에 도착했던 것이다. 흔들리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장시간 동안 속도감을 경험한 적이 없었던 유관필이 어지러워하며 사인교에 내려서 쪼그려 앉았고, 네 명의 청년이 각자 숨을 크게 쉬며 사인교를 땅바닥에 두고 호흡을 고르고 있었을 때, 누군가 다가와 불쑥 대나무 통을 손에 하나씩 쥐어주는 것이었다. 당예인이었다.
"역시 여기로 왔네. 복숭아 과즙에 시원한 물을 넣은 냉차야. 한 잔씩들 마셔."
"여긴 어쩐 일이야. 배웅을 왔냐?"
오빠인 당환진이 간편한 경장차림의 당예인을 보며 물었다. 당예인은 유가장을 드나들면서 무복을 입지 않았던 터였다. 당예인은 쪼그려 앉아서 자신이 준 대나무 통 속의 복숭아 냉차를 맛있게 마시는 유관필에게 눈을 떼지 못하면서도 오빠인 당환진의 생각 따윈 중요하지 않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선생님 경사 가시는 데에 따라가려고 왔지. 내가 여길 왜 왔겠어."
"니가 왜?"
"생각 좀 해 봐. 경사까지 빨리 가도 열흘 길은 되잖아. 오빠 들이랑 우리 선생님이랑 처음 보잖아. 얼마나 불편하겠어. 마음이 편해야 선생님이 경사에 도착했을 때 그 소중한 분을 구하실 때 최선의 방책을 떠올리시지. 그러지 않겠어."
"놀러가는 게 아니다. 어떤 일이 있을 지 몰라."
"그럴 줄 알았어. 무슨 일이 있을 게 있어. 오빠들이 생각하는 강호에서의 모험 같은 게 중요한 일이 아니라니까. 강호로 따지면 할아버지나, 그래 검황 같은 분을 지금 구하러 가는 거라고. 선생님께 후일을 부탁한 분은 우리가 이런 식으로 빠르게 움직일거라고 생각하지는 못할 테니까. 제일 안전한 길을 정해서 가야 해. 내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이렇게 정했으니까 오빠들은 그냥 우리 선생님 너무 어지럽지 않게 빠르면서도 천천히 그렇게 움직이면 되는 거야."
당예인은 언제 준비했는지. 작은 지도책을 펼쳤는데, 거기엔 사천을 출발해서 경사를 가는 각 지방의 자세한 지도가 나와 있었고, 일정별로 언제 어디서 묵어야 하는 지, 또 배편은 언제 출발하는지가 모두 붉은 글씨로 표시되어 있었다. 상가의 지도책이었다.
"일문 아저씨랑 상의해서 준비한 거야. 아, 오빠들은 모르지. 유가장의 총관 아저씨야. 오가상단의 책임자시기도 하고. 오빠 그 행낭은 뭐야? 다 싸들고 가는 거야? 이러니 내가 따라가야 한다니까. 사천에서는 오가상단의 지부에 들르면 되고, 아저씨가 준 이 패를 들면 금룡상단의 지부에서 필요한 것을 모두 살 수가 있으니까 그렇게 주렁주렁 들고 다닐 필요가 없다고."
그렇게 당예인이 일행에 합류했다. 당예인은 능숙하게 들어온 배의 주인과 사인교와 여섯 사람분의 배삯을 흥정하고는 먼저 배에 올랐고, 그제야 한숨을 돌린 유관필과 네 명의 청년들은 당예인의 뒤를 따라 배에 올랐던 것이다. 중간 규모의 배에는 선실이 있었고, 선실에 자리를 잡자 당예인은 유관필에게 네 명의 청년을 소개했다.
"선생님. 여기는 제 오라버니에요. 아직 강호에 별호는 없어요. 이번이 초행이거든요. 그래도 영웅담에서 보는 그런 강호초행의 건방진 세가의 대공자는 아니에요. 말이 없어서 그렇지 꽤 진중한 편이거든요. 화산기담의 담무량 같은 사람이라고 보시면 되요."
"아! 그 담무량."
영웅담 따위는 읽지 않는 당환진이었기에 당예인이 말한 담무량이 어떤 사람인지 알 길이 없는 당환진은 무척 궁금했다. 하지만, 둘이서만 아는 이야기를 나누는 당예인과 유관필은 나머지 사람들도 그들 식의 대화로 마무리했다.
"여기 한이 오라버니는 저희 둘째 고모의 아들인데요. 고모부님이 당가의 속가인 양씨 집안 사람인데, 고모와 결혼하면서 당씨성을 물려받아서 양한이 아니라, 당한이 되셨어요. 독공자 당민에서 당휘와 같아요. 무위는 오라버니와 비슷비슷하세요. 어릴 적엔 한이 오라버니가 무조건 이겼었는데, 환진 오라버니가 가주공인 사갈편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비슷비슷하시죠."
당예인의 말에 당한도, 당환진도 발끈했다. 서로가 경쟁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양 측 모두 현재에는 자신의 실력이 윗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발끈하든 말든 당예인은 나머지 두 사람인 서문진과 양우형을 마저 소개했다.
"저기 키가 큰 오라버니가 서문진 오라버니인데요. 아마 선생님이랑 제일 말이 잘 통할지도 몰라요. 서문가는 당가의 속가이긴 한데, 늘 군사역할을 해와서요. 어릴 적부터 서문 오라버니도 내내 공부를 열심히 했거든요. 저기 덩치가 좋은 오라버니는 양우형 오라버니인데, 양 오라버니는, 아! 오라버니. 사육장은요? 오라버니가 없어도 돼요?"
"사람들에게 한 달 정도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 지 지침을 주고 왔다."
"양 오라버니는 세가의 독물들을 관리하세요. 할아버지가 소중히 생각하시죠. 그런데, 오라버니, 할아버지가 돌아오셨을 때, 오라버니가 이렇게 독물들 내팽겨쳐 두고 우리 선생님 따라붙은 거 알면 가만이 계실까요?"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왔다. 뭐, 네 오라비가 막아주겠지."
"오라버니는 할아버지 앞에서 말도 잘 못하는데요. 차라리 나한테 붙어요. 내가 말해 줄게요."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당환진은 자신의 동생이 가볍게 입을 놀리는 것이 싫어서, 참다가 한 소리를 하고 말았지만, 유관필의 너그러운 웃음을 보고서는 스르르 마음이 풀리는 것을 느꼈다. 참 신기한 사람이었다. 별 말이 없는 사람 같은데도 이상하게 존재감이 있었다. 유관필은 자신을 둘러싸고 앉은 네 명의 청년에게 깊게 고개를 숙였다.
"유관필이라 하네. 자네들에게 신세를 지게 되었네. 예인의 오라비들이라니 내 편히 하겠네. 예인이가 말한 그대로야. 내 멀쩡한 두다리를 가지고 자네들이 들어주는 사인교에 오른 이유는 시간이 급박해서네. 환진이라고 했나. 형님이 아들을 잘 키우셨네. 자네 혹시 그 점혈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것 말이야."
"할 줄 압니다. 왜 그러십니까?"
"최 학사님을 만나면 말이야. 내가 눈짓으로 신호를 줌세. 그리하면 자네가 보자마자 혈도를 점하게."
"네?"
"자네들이 태워주는 사인교에서 내내 생각했네. 최학사님을 설득하기에 앞서 일단 목숨을 확보해야겠어."
당예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생님. 하지만, 그런 분을 힘으로 다루는 것이 옳은 일일까요?"
"죽으면 소용이 없다. 죽어서는 안될 사람이야. 영웅담을 읽으면서, 난 두근거림을 느끼기도 했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무림인들은 무뢰배와 같다고 생각했었다. 관과 무림이 다른 세계라는 것도 이상했었지. 사람에게는 인의라는 게 있어서 누구나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알고, 그런 기준이 서로 다를 때엔 법이 있어서 시비를 가리면 되는 것인데, 무림인들은 인의와 법 위에 힘을 두고서, 힘이 있는 사람만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지못하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실질적인 힘이라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구나. 환진아 실수가 없어야 한다. 자네의 한 수가 이 나라 억조창생의 앞날을 크게 좌우할 한 수인게야."
"네. 숙부남,"
그 때 큰 소리가 났다. 얌전하게 생긴 당한이 한 손을 번쩍 들었던 것이다. 당한의 손가락엔 잘 보이지도 않는 우모침이 쥐어져 있었다.
"제가 하겠습니다. 유 숙. 철이 나기 전부터 던져온 침입니다. 환진이도 잘 해내겠지만, 만의 하나라도 실수가 없어야 하는 일이라면 제가 하겠습니다. 유 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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