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인은 차분했다. 석가장에서 가장 공들인 건물인 내전의 안방에 앉아서 섭선으로 얼굴을 살살 부치면서 제갈지민을 맞은 오세인은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다. 나이를 보거나, 강호에서의 지위로 봐도 제갈지민이 오면 일어나 상석을 양보해야 했지만, 오세인은 그러지 않았다. 제갈지민이 눈을 찌푸리고는 풍성한 치마의 아랫단을 여미고는 오세인의 맞은 편에 앉아서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잠시간의 대치가 이어졌고, 오세인이 먼저 입술을 뗐다.
"오셨네요. 하긴, 오시지 않을 수 없겠지요. 차를 한 잔 드릴까요?"
"동생이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마음에 들지 않으시겠지만, 그냥 이대로가 좋을 것 같아요. 예의를 차리는 그런 관계가 좋을 것 같아서요. 개인적으로 전 당가의 가모님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요."
"그런 이유가 있나요?"
"전 원래 그 자리가 제 자리라고 생각하면서 20년을 살았죠. 하지만, 멀리서 온 늙은 여자가 그 자리를 홀랑 차지하는 것을 보고선 마음이 많이 상했었죠. 후에 상공을 만나서, 만약 그 자리를 그 여자가 차지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뺏긴 기분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작은 상단 같던데, 당가의 대공자와 어울렸을까요?"
"사천의 모든 여인들은 당가의 가모자리를 자기 자리라고 생각하면서 자라지요. 뭐, 골치아픈 당가의 가모 따위보다 우리 상공의 아내자리를 선택할 수 있어서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요. 그 점만은 고마워요."
"이 집의 주인장이 우리 낭군의 아우가 되었다는데, 남편의 앞에서도 이런 태도를 취할 건가요?"
"아니요. 모두가 모이는 자리를 만들지 않을 생각이에요. 곤란한 인간관계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까요. 제가 부른 건, 소실을 하나쯤 두게 두는 게 좋을 거라는 충고를 하기 위해 불렀어요."
소실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제갈지민에게서 폭발적인 기세가 일어났다. 하지만, 곧 기세를 안정시킨 제갈지민이 살풋 웃으면서 미월루의 미기 월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잘난 남자를 곁에다 두고 사는 것도 피곤할 것 같아요. 동생. 소실 걱정을 해야 하는 건, 이 집 사정이 아닌가요? 사천 제일의 기녀가 이 집의 주인에게 반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상공은 겨울 밤 길을 걷다 마주친 불길 같은 사람이에요. 옆에 있으면 따뜻해서 도무지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죠. 그 기녀도 그런 거에요. 예인이가 상공을 선생님으로 따르는 것과 같죠. 그 기녀는 제가 거두면 그 뿐이죠. 상공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니까요. 하지만, 아주버님은 다르죠. 누구든 날이 차면 옷깃을 여미고, 날이 더워지면 옷을 벗는 것처럼 사나운 부인이랑 살면서 쌓여온 불만이 터진 거에요. 하필이면 누구든 자기 마음을 털어놓게 되는 우리 상공을 만나서요. 지금 소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가 가모님이 곧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아요. 지는 게 확정된 거라면 현명하게 지는 지혜가 필요하죠. 제 대신 당가 가모가 되어 상공을 만나게 해준 답례로 이야기를 해주는 거니까 받아들이세요."
"난 동생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네. 왜 내가 초라해 진다는 거지."
"상공은 스스로 빛나는 사람은 아니지만, 상공을 만나고 난 모든 사람은 상공의 빛에 이끌려 훌륭한 사람이 되고 말거든요. 당가는 운이 좋아요. 예인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당가는 사천 삼강에서 미끄러져 버렸을 텐데. 난 유가장을 지으면서 그 생각은 한 번 했거든요."
"사천에서 당가는 법과 같아요. 당가의 법을 세우는 건 이 사람의 몫이죠."
"곧, 마교의 교주가 죽을 거예요. 그리고 아주버님이 그 일을 했다고 소문이 나겠죠."
"마교 교주 한병기가 죽는다니요."
------------
유가장과 청성산, 당문에 커다란 혼란을 일으킨 세 명의 남자는 원경대로의 한 복판에 작지만 아름다운 청등을 걸어놓은 미월루의 문 앞에서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적송자와 당척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옷을 정리했지만, 절정고수들의 속도를 처음 체험한 유관필은 정신이 이미 날아가고 없어서 양 옆에서 붙잡고 있는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을 것이다.
사천을 울리는 명성을 가진 사람들 치고는 소박한 차림의 세 남자에게 홍등가를 오가는 화려한 복색의 사람들은 눈길을 주었지만, 저런 차림의 사람들이 당가의 가주라던가, 젊은 나이에 과거에 입격해서 경사에서 관리를 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금 자수가 박힌 공단 장의를 입은 늙수그레한 적송자의 차림새는 화려한 복색의 구경꾼들 중에서도 돋보였고, 자연스럽게 부자노인을 모시는 종복들이라고 생각되어질 정도였다.
기루들 사이에서 눈을 빛낸 한 사람의 인영이 다가와 세 사람에게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그는 장미촌이라고 불리는 이 홍등가에서 잔뼈가 굵은 노삼이라는 호객꾼 노인이었는데, 그는 손님을 기루에 모셔가는 조건으로 1할의 주대를 받고 있었다.
"술을 한 잔 하시려오. 특일급의 기녀들로부터, 회족이나 색목인의 계집도 맛볼 수 있는 사천 최고의 기루를 내가 아는데 말이오."
"아닐세. 우린 목적지가 있다네."
"그게 어딥니까? 이 노삼, 풍류와 신용만으로 살아온 세월이 삼십년입니다. 그곳이 어디든 제가 더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니야. 우리는 미월루에 들러 왔네."
"예약은 하셨습니까?"
"예약을 해야 하는가?"
"그저 그런 계집들이야 예약을 않고서도 만날 수 있지만, 미월루에 오르실 요량이면, 돈이야 물쓰듯 쓰겠다 결심을 하셨을 테니. 같은 돈을 쓰고 못난이들만 만난다면 아쉽지 않겠습니까요."
자기 또래 노인의 말에 재미를 느낀 적송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를 통하면 뭔가가 달라지는가?"
"아닙니다. 예약이 없는 한 저라고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특일급의 기녀들은 하늘에서 내린 선녀들이나 같으니까요. 다만 쉬고 있는 기녀라면 사정은 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아, 쉬고 있는 특일급의 그 선녀들이 있는가?"
"뭐든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월향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그래? 내 듣기로는 그 월향이라는 아이는 기적에서 빠졌다 하던데 말이야."
"아직, 계약일이 달포정도 남았습니다. 여태껏 술자리에 들지 않은 이유가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이유인데, 그 이유께서 이 곳에 오셨으니, 부랴부랴 옷을 입고 나올 것입니다."
"자네, 우리를 알고 있나?"
"그러믄입죠. 사천에 살면서 어떻게 당가의 가주님과 청성의 제일검. 거기에 유가장주님을 모르겠습니까?"
"그래. 좋아. 그럼 앞장을 서시게. 날 안다니 알겠지만, 이런 곳은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이야."
"저기 보이는 다루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 뫼시러 가겠습니다요."
"고맙네."
노삼이 가르킨 찻집에 든 세 사람이 다루에 들어, 군산의 은침을 세 잔 주문하고,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를 하던 중 다루에 헐떡거리며 당가의 총관 당확이 들어와 당척에게 귀엣말을 하고 갔다. 절로 눈을 찌푸리는 당척을 보고서 유관필이 물었다.
"형님,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겝니까?"
"마누라가 자네 집에 들었다네. 고문님. 청성에서도 제자가 내려 왔다가 다시 본산으로 올랐답니다. 고문님의 환속선언 때문에요."
"그래?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알려질 일이네만, 빠르군. 유장주, 마누라를 잘못 얻은 게 아닌가?"
"제 처의 장점이라면, 어떤 순간에서든 큰 일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 집사람 판단에는 청성과 당가에 알리는 편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거라는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두 분의 결심이 확실하다면 제 처가 도움이 되어 줄 겁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동생,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나?"
"제가 제 처를 알기 때문입니다. 제 처는 태어날 때부터 상가에서 자라 매 순간을 선택을 하며 책임을 지며 살아왔습니다. 제 처는 제가 화날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두 분 마음에 변화는 없는 것입니까?"
"마음의 변화라니."
"언제가 되었든 사람은 한 번쯤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위해 자신의 삶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경사에서 잘먹고 잘 살던 제가 사천행을 결정했을 때가 그랬습니다. 제게는 큰 꿈이 있었고, 그 보다 큰 좌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좌절의 끝에서 저를 지켜주던 가족을 봤습니다. 어디서든 이 사람들이랑은 다시 시작할수 있을 것 같아 모든 것을 던져둔 채로 도망을 쳤지요. 아내는 그런 저를 이해해 줬습니다. 두 분은 모두 두 분의 인생에서 큰 성취를 이루신 분들입니다. 적송자 어르신, 어르신은 청성의 문도라는 자부심을 버리고, 차명환이라는 그저 한 사람의 남자로 다시 사실 각오를 다지신 것입니까? 형님, 형님은 높은 명성을 원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형수님의 사랑을 원하시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랫 사람으로부터의 존경을 원하는 것인지 확실히 마음이 서셨습니까?"
유관필의 말은 화두와 같아서, 어지간한 두 사람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 때 노삼이 돌아왔고, 준비를 마쳤다는 말에도 꼼짝하지 않고 있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유관필이 두 사람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네고는 노삼의 뒤를 따랐다.
"진심을 알게 되면, 다시 절 찾아 주세요. 그 때는 제가 두 분의 마음을 확실히 지지하겠습니다. 아내에게 들었는데, 예인이가 땅을 아주 잘 판다고 하던데, 차가장을 지을 땐 첫 삽은 제가, 두 번째 삽은 예인이에게 뜨라 하겠습니다. 그럼, 전 제 마음을 확인하러 이 사람을 따라 갔다 오겠습니다. 마음이 서시면 미월루로 오셔도 좋습니다."
미월루의 정문을 넘어서자, 성장을 차려입은 고운 미색의 여인이 초조한듯 발을 살짝 구르면서 머리를 흔들다 들어오는 인적을 보고서 조심스럽게 한쪽으로 비켜서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하얀 목이 몹시도 아름다웠다.
"오셨습니까? 월향입니다."
"들어가십시다."
월향이 앞서고, 두어 발자국을 뒤이어 유관필이 걸었다. 어느덧 휘영청 뜬 달이 살살부는 구름에 가려서 사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별채로 가던 월향이 살짝 뒤를 돌아보며 조심을 말하려다가 그저 앞을 보고 걷던 유관필과 부딪칠 뻔하고서는 부끄러워 몸을 떨었다.
별채엔 이미 한 상이 잘 차려져 있었다. 노삼이 세 사람의 객을 이야기 했는지 가지런한 상차림에 4개의 술잔과 예스런 자기의 술병이 놓여져 있었다. 똑바로 앉지 못하고 유관필이 앉은 곳에서 쌀짝 틀어서 옆모습을 보인 월향이 달뜬 목소리로 유관필을 청했다.
"무산의 화련주입니다. 향이 좋으니 한 잔을 받으시지요?"
"내가 어떠시오? 보니 실망스럽지 않소. 그대의 마음을 시험한 나를 원망하시오."
"보고 싶었습니다. 보지 않고도 연모하게 되었습니다. 연모하는 마음보다 더 그리워 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나를 어찌 그랬단 말이오?"
"여기에 장주님의 마음이 쓰여 있었습니다."
월향이 가르킨 곳엔 자신의 편지를 똑같이 필사한 두뼘 두께의 종이 뭉치가 있었다. 단정하고 흔들림이 없는 필적이었다. 유관필은 월향에게서 각오를 보았다.
"오셨네요. 하긴, 오시지 않을 수 없겠지요. 차를 한 잔 드릴까요?"
"동생이 이러는 데는 이유가 있겠죠?"
"마음에 들지 않으시겠지만, 그냥 이대로가 좋을 것 같아요. 예의를 차리는 그런 관계가 좋을 것 같아서요. 개인적으로 전 당가의 가모님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까요."
"그런 이유가 있나요?"
"전 원래 그 자리가 제 자리라고 생각하면서 20년을 살았죠. 하지만, 멀리서 온 늙은 여자가 그 자리를 홀랑 차지하는 것을 보고선 마음이 많이 상했었죠. 후에 상공을 만나서, 만약 그 자리를 그 여자가 차지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 했나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어쨌거나 뺏긴 기분이라는 게 있으니까요?"
"작은 상단 같던데, 당가의 대공자와 어울렸을까요?"
"사천의 모든 여인들은 당가의 가모자리를 자기 자리라고 생각하면서 자라지요. 뭐, 골치아픈 당가의 가모 따위보다 우리 상공의 아내자리를 선택할 수 있어서 고마운 마음도 있지만요. 그 점만은 고마워요."
"이 집의 주인장이 우리 낭군의 아우가 되었다는데, 남편의 앞에서도 이런 태도를 취할 건가요?"
"아니요. 모두가 모이는 자리를 만들지 않을 생각이에요. 곤란한 인간관계는 피하는 게 상책이니까요. 제가 부른 건, 소실을 하나쯤 두게 두는 게 좋을 거라는 충고를 하기 위해 불렀어요."
소실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제갈지민에게서 폭발적인 기세가 일어났다. 하지만, 곧 기세를 안정시킨 제갈지민이 살풋 웃으면서 미월루의 미기 월향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잘난 남자를 곁에다 두고 사는 것도 피곤할 것 같아요. 동생. 소실 걱정을 해야 하는 건, 이 집 사정이 아닌가요? 사천 제일의 기녀가 이 집의 주인에게 반했다는 소문을 들었는데요."
"상공은 겨울 밤 길을 걷다 마주친 불길 같은 사람이에요. 옆에 있으면 따뜻해서 도무지 다른 곳으로 갈 수가 없죠. 그 기녀도 그런 거에요. 예인이가 상공을 선생님으로 따르는 것과 같죠. 그 기녀는 제가 거두면 그 뿐이죠. 상공과는 일면식도 없는 사이니까요. 하지만, 아주버님은 다르죠. 누구든 날이 차면 옷깃을 여미고, 날이 더워지면 옷을 벗는 것처럼 사나운 부인이랑 살면서 쌓여온 불만이 터진 거에요. 하필이면 누구든 자기 마음을 털어놓게 되는 우리 상공을 만나서요. 지금 소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당가 가모님이 곧 보잘 것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아요. 지는 게 확정된 거라면 현명하게 지는 지혜가 필요하죠. 제 대신 당가 가모가 되어 상공을 만나게 해준 답례로 이야기를 해주는 거니까 받아들이세요."
"난 동생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하겠네. 왜 내가 초라해 진다는 거지."
"상공은 스스로 빛나는 사람은 아니지만, 상공을 만나고 난 모든 사람은 상공의 빛에 이끌려 훌륭한 사람이 되고 말거든요. 당가는 운이 좋아요. 예인이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면, 당가는 사천 삼강에서 미끄러져 버렸을 텐데. 난 유가장을 지으면서 그 생각은 한 번 했거든요."
"사천에서 당가는 법과 같아요. 당가의 법을 세우는 건 이 사람의 몫이죠."
"곧, 마교의 교주가 죽을 거예요. 그리고 아주버님이 그 일을 했다고 소문이 나겠죠."
"마교 교주 한병기가 죽는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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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장과 청성산, 당문에 커다란 혼란을 일으킨 세 명의 남자는 원경대로의 한 복판에 작지만 아름다운 청등을 걸어놓은 미월루의 문 앞에서 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적송자와 당척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옷을 정리했지만, 절정고수들의 속도를 처음 체험한 유관필은 정신이 이미 날아가고 없어서 양 옆에서 붙잡고 있는 두 사람이 아니었다면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을 것이다.
사천을 울리는 명성을 가진 사람들 치고는 소박한 차림의 세 남자에게 홍등가를 오가는 화려한 복색의 사람들은 눈길을 주었지만, 저런 차림의 사람들이 당가의 가주라던가, 젊은 나이에 과거에 입격해서 경사에서 관리를 하던 사람이라고는 생각치 못했다. 금 자수가 박힌 공단 장의를 입은 늙수그레한 적송자의 차림새는 화려한 복색의 구경꾼들 중에서도 돋보였고, 자연스럽게 부자노인을 모시는 종복들이라고 생각되어질 정도였다.
기루들 사이에서 눈을 빛낸 한 사람의 인영이 다가와 세 사람에게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그는 장미촌이라고 불리는 이 홍등가에서 잔뼈가 굵은 노삼이라는 호객꾼 노인이었는데, 그는 손님을 기루에 모셔가는 조건으로 1할의 주대를 받고 있었다.
"술을 한 잔 하시려오. 특일급의 기녀들로부터, 회족이나 색목인의 계집도 맛볼 수 있는 사천 최고의 기루를 내가 아는데 말이오."
"아닐세. 우린 목적지가 있다네."
"그게 어딥니까? 이 노삼, 풍류와 신용만으로 살아온 세월이 삼십년입니다. 그곳이 어디든 제가 더 좋은 곳으로 모시겠습니다."
"아니야. 우리는 미월루에 들러 왔네."
"예약은 하셨습니까?"
"예약을 해야 하는가?"
"그저 그런 계집들이야 예약을 않고서도 만날 수 있지만, 미월루에 오르실 요량이면, 돈이야 물쓰듯 쓰겠다 결심을 하셨을 테니. 같은 돈을 쓰고 못난이들만 만난다면 아쉽지 않겠습니까요."
자기 또래 노인의 말에 재미를 느낀 적송자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네를 통하면 뭔가가 달라지는가?"
"아닙니다. 예약이 없는 한 저라고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특일급의 기녀들은 하늘에서 내린 선녀들이나 같으니까요. 다만 쉬고 있는 기녀라면 사정은 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아, 쉬고 있는 특일급의 그 선녀들이 있는가?"
"뭐든 방법이 있지 않겠습니까? 월향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그래? 내 듣기로는 그 월향이라는 아이는 기적에서 빠졌다 하던데 말이야."
"아직, 계약일이 달포정도 남았습니다. 여태껏 술자리에 들지 않은 이유가 진짜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이유인데, 그 이유께서 이 곳에 오셨으니, 부랴부랴 옷을 입고 나올 것입니다."
"자네, 우리를 알고 있나?"
"그러믄입죠. 사천에 살면서 어떻게 당가의 가주님과 청성의 제일검. 거기에 유가장주님을 모르겠습니까?"
"그래. 좋아. 그럼 앞장을 서시게. 날 안다니 알겠지만, 이런 곳은 익숙하지가 않아서 말이야."
"저기 보이는 다루에서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모든 것을 준비해놓고 뫼시러 가겠습니다요."
"고맙네."
노삼이 가르킨 찻집에 든 세 사람이 다루에 들어, 군산의 은침을 세 잔 주문하고, 앞으로의 일을 이야기를 하던 중 다루에 헐떡거리며 당가의 총관 당확이 들어와 당척에게 귀엣말을 하고 갔다. 절로 눈을 찌푸리는 당척을 보고서 유관필이 물었다.
"형님, 혹시 무슨 문제가 있는 겝니까?"
"마누라가 자네 집에 들었다네. 고문님. 청성에서도 제자가 내려 왔다가 다시 본산으로 올랐답니다. 고문님의 환속선언 때문에요."
"그래?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알려질 일이네만, 빠르군. 유장주, 마누라를 잘못 얻은 게 아닌가?"
"제 처의 장점이라면, 어떤 순간에서든 큰 일을 만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아마, 집사람 판단에는 청성과 당가에 알리는 편이 더 좋은 결과를 낳을거라는 거라고 생각했나 봅니다. 두 분의 결심이 확실하다면 제 처가 도움이 되어 줄 겁니다. 틀림이 없습니다."
"동생,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나?"
"제가 제 처를 알기 때문입니다. 제 처는 태어날 때부터 상가에서 자라 매 순간을 선택을 하며 책임을 지며 살아왔습니다. 제 처는 제가 화날 일을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두 분 마음에 변화는 없는 것입니까?"
"마음의 변화라니."
"언제가 되었든 사람은 한 번쯤은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위해 자신의 삶을 던질 때가 있습니다. 경사에서 잘먹고 잘 살던 제가 사천행을 결정했을 때가 그랬습니다. 제게는 큰 꿈이 있었고, 그 보다 큰 좌절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좌절의 끝에서 저를 지켜주던 가족을 봤습니다. 어디서든 이 사람들이랑은 다시 시작할수 있을 것 같아 모든 것을 던져둔 채로 도망을 쳤지요. 아내는 그런 저를 이해해 줬습니다. 두 분은 모두 두 분의 인생에서 큰 성취를 이루신 분들입니다. 적송자 어르신, 어르신은 청성의 문도라는 자부심을 버리고, 차명환이라는 그저 한 사람의 남자로 다시 사실 각오를 다지신 것입니까? 형님, 형님은 높은 명성을 원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형수님의 사랑을 원하시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아랫 사람으로부터의 존경을 원하는 것인지 확실히 마음이 서셨습니까?"
유관필의 말은 화두와 같아서, 어지간한 두 사람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 때 노삼이 돌아왔고, 준비를 마쳤다는 말에도 꼼짝하지 않고 있는 두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유관필이 두 사람에게 한 마디 말을 건네고는 노삼의 뒤를 따랐다.
"진심을 알게 되면, 다시 절 찾아 주세요. 그 때는 제가 두 분의 마음을 확실히 지지하겠습니다. 아내에게 들었는데, 예인이가 땅을 아주 잘 판다고 하던데, 차가장을 지을 땐 첫 삽은 제가, 두 번째 삽은 예인이에게 뜨라 하겠습니다. 그럼, 전 제 마음을 확인하러 이 사람을 따라 갔다 오겠습니다. 마음이 서시면 미월루로 오셔도 좋습니다."
미월루의 정문을 넘어서자, 성장을 차려입은 고운 미색의 여인이 초조한듯 발을 살짝 구르면서 머리를 흔들다 들어오는 인적을 보고서 조심스럽게 한쪽으로 비켜서서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긴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하얀 목이 몹시도 아름다웠다.
"오셨습니까? 월향입니다."
"들어가십시다."
월향이 앞서고, 두어 발자국을 뒤이어 유관필이 걸었다. 어느덧 휘영청 뜬 달이 살살부는 구름에 가려서 사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별채로 가던 월향이 살짝 뒤를 돌아보며 조심을 말하려다가 그저 앞을 보고 걷던 유관필과 부딪칠 뻔하고서는 부끄러워 몸을 떨었다.
별채엔 이미 한 상이 잘 차려져 있었다. 노삼이 세 사람의 객을 이야기 했는지 가지런한 상차림에 4개의 술잔과 예스런 자기의 술병이 놓여져 있었다. 똑바로 앉지 못하고 유관필이 앉은 곳에서 쌀짝 틀어서 옆모습을 보인 월향이 달뜬 목소리로 유관필을 청했다.
"무산의 화련주입니다. 향이 좋으니 한 잔을 받으시지요?"
"내가 어떠시오? 보니 실망스럽지 않소. 그대의 마음을 시험한 나를 원망하시오."
"보고 싶었습니다. 보지 않고도 연모하게 되었습니다. 연모하는 마음보다 더 그리워 했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나를 어찌 그랬단 말이오?"
"여기에 장주님의 마음이 쓰여 있었습니다."
월향이 가르킨 곳엔 자신의 편지를 똑같이 필사한 두뼘 두께의 종이 뭉치가 있었다. 단정하고 흔들림이 없는 필적이었다. 유관필은 월향에게서 각오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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