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유관필과 일행, 상가의 식구들이 모여 앉았다. 두부와 돼지고기 요리가 차려졌지만, 유관필의 앞엔 그릇에 반 정도 담긴 흰 죽이 다였다. 오래 굶은만큼 갑자기 음식을 먹는 게 좋을 것이 없다는 이유였다. 늘 찬모인 일지할머니가 차려주는 정성이 가득한 식단을 먹게 되면서, 밖의 밥이 얼마나 속에 들어가지 않는지를 잘 알게 된 당예인이 안타까운 얼굴로 혈색이 좋지 않은 선생님을 바라봤다. 유관필은 먹자라는 말과 함께 씩씩하게 음식을 먹었고, 다들 열심히 숫가락과 젓가락을 놀렸다. 당예인만이 식사를 하지 않은 채, 깨어난 유관필에게 궁금한 점을 물었다.
"선생님.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경사에 가셔서, 최학사님의 문상을 하시는 건가요?"
"아니다. 표국을 통해, 관상명정을 보내면 될 일이다. 서둘렀던 건, 최학사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해서이지, 최학사가 떠난 마당에 굳이 경사까지 갈 일이 있겠느냐. 부인이 온다니. 하루 이틀 경계나 구경하다가 돌아가면그 그만이다."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서문 오라버니의 말을 듣자마자 최학사님이 돌아가신 걸 알셨어요?"
"사람의 목숨이 달리다보니 내가 최학사의 성정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최학사님은 어떤 각오를 하고서, 내게 각오를 다짐하기 위해, 아니면 후일을 부탁하기 위해 내게 관상명정을 부탁할 사람이 아니다. 고작 죽고 사는 것으로 선비의 뜻을 꺾을 수 있겠느냐. 알아보지 않아도 알 알이다. 그 전언은 최학사님이 이미 죽고 나서, 내게 보내진 것일 것이다. 마지막 정리인게지."
"서문 오라버니. 밥을 드세요. 그렇게 두근두근하는 눈으로 선생님만 보고 계시지 말고요. 언니가 오면 일러버리던지 해야지."
"괜챃다. 누구나 저럴 때가 있는 법이다. 진이만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느냐. 형이도 밥을 못 먹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내가 아니라 예인이 널 보고 있어서 그렇기는 하다만."
"아닙니다! 유 숙!"
양우형이 부끄러운 기색으로 일어나 달아나자, 당예인이 켁켁거리면서 재채기를 했고, 당환진으로부터 건내받은 물을 마시고 나서야 분한 얼굴을 했다. 당한이 짓꿎은 얼굴로 당예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형은 널 생각한지 꽤나 오래 되었다. 이 오라버니와는 널 두고서 누가 먼저 좋아했는지로 몇 번 다투기도 했었다. 내가 이기기는 했는데, 밤에 자려다가 묵린혈망이 침상에 또라이를 튼 것을 보고 내가 항복을 했었지."
"말도 안돼요. 난 아직 누구를 좋아하거나 하지 않아요. 그리고 양 오라버니를 생각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난 좀 더 두근거리는 사람이 좋아요. 어제 우리 선생님처럼요."
"하하. 이거 내가 형이에게 미움을 사겠구나. 좋은 청년 같으니 예인이너도 한 번 더 생각을 해보거라. 남녀관계라는 것은 좀 더 진전이 되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지금, 이 선생님을 아주 많이 좋아해주는 네 언니되는 사람도 처음에는 이 선생님을 질색했단다."
"진짜요? 세인언니가요? 거짓말. 저번에 선생님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말만 듣고 쓰러졌던 언닌데요?"
"사실이란다. 나중에 물어보던지."
"숙부님. 그럼 다음 여정은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모처럼 관심이 많은 주제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당예인은 분위기를 깨고 마는 당환진의 말에 도끼눈을 뜨고 자기 오라버니를 노려보았지만, 당환진으로서는 그 토록 바라왔던 강호 첫출도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가해서 초조할 뿐이어서 여동생의 눈총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유관필이 씩 웃으면서 당환진에게 되물었다.
"환진이는 가고 싶은 곳이 따로 있었던 것이냐?"
"예?"
"강호 첫출행이 아니냐? 관리로 말하면 과거에 입격을 해서 첫 출사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대로는 역시 아쉽질 않겠느냐."
"괜찮습니다. 볼 일이 끝이 났으면 돌아가는 것이지요. 유 숙을 편하고 안전하게 보필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니 다음에 기회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입니다."
고지식한 말에 유관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라고 생각한 서문진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실망했다. 발만큼 입도 빠른 당예인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당환진의 제지를 받고는 볼이 부풀어 올랐다. 유관필이 곱게 포장이 되어 나무 곽에 넣은 관상명정을 눈으로 흘깃 쳐다보고서는 말했다.
"좋아.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예정대로 사는 것은 아무 재미가 없으니, 부인이 오면, 부인 편에 예인이는 돌려보내고, 사내들끼리 좀 더 여행을 해보자꾸나. 기담집에서 읽으니 강호 초행엔 동정호를 가서 보아야 한다는데, 내 일로 젊은 사람들의 기대를 꺾을 수야 없지."
"네!"
금방 희희낙락해진 당한과 당환진, 서문진이 밖으로 나가고 당예인만이 얼굴이 붉어져서는 씩씩거렸다.
"선생님. 왜 저는 따라가지 못하죠? 저도 따라갈래요."
"저들 넷은 형님께 허락을 얻어 온 것이지만, 너는 그냥 온 것이 아니냐. 다 큰 딸을 아무리 숙질간이고, 오남매들 사이라고는 하나 사내들과 오랜 기간 밖에서 보내게 할 수는 없다. 넌 부인이 오면, 그 편에 당가로 돌아가거라."
"언니랑 저를 두고 가시는 데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응?"
"혹시, 오라버니들을 데리고 기루라도 가시려는 게 아니냐구요. 선생님께서 그 여자를 경민이 선생님으로 들이시려 한다는 것을 언니에게 들었어요. 말도 안되요. 이번에 가셔서 또 다른 선생님들을 데려 오시려고 그러는 게 아니냐는 것을 묻습니다."
"그게 걸렸던 것이냐? 그건 오해다. 내가 쓴 관상명정의 글씨를 기억하느냐?"
"네. 여자 글씨 같았어요."
"그게 최학사님의 필선이었다. 난 윤영, 그녀에게서 그 필선을 보았단다. 그래서, 그녀를 청했지. 단지 그것 뿐이다."
"하지만, 전 그 최학사님의 글씨를 본 일이 있어요. 선생님께 전하는 전언의 봉투에서요. 달랐어요."
"그게 원래 내 서체였다. 겉멋이 가득한 필선이지."
추억에 잠겨 말이 없어진 유관필에게 말을 걸지 못한 당예인이 밖으로 나왔더니, 당환과 당환진, 서문진과 양우형이 제법 진지하게 다음의 일정을 상의하고 있었다. 역시나 동정호쪽으로 가닥을 잡는 네 사람에게 괜히 신경질이 난 당예인이 툴툴거리는데, 상단 지부의 대문이 열리면서 오세인과 시비 화영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당예인이 언니를 외치며 오세인을 맞았다.
"언니, 보고 싶었어요."
"그래, 상공은?"
"어제 관상명정을 쓰고 탈진하셨다가 방금 전에 일어나서 죽을 드셨어요."
"응. 잠깐만. 좀 보고 올게."
오세인은 뭔가 비장했다. 오세인이 방으로 들어가고, 당예인은 화영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 있어? 부고는 여기서 받았는데, 왜 언니는 여기까지 온 거야?"
"그게요. 아가씨. 아가씨 어머니 때문에 좀 난리가 났었어요."
"우리 엄마? 왜?"
"저희 장주님이랑 당가 공자분들이 떠나신 후에, 적송자 어르신이 오셨거든요. 저희 장주님을 만나시러요. 그런데, 급한 일이 있어서 경사로 가셨다는 소식을 마님이 전하니까, 적 어르신이 저희 장주님께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다면서, 무인이 되든, 도인이 되든 하나가 되는 날에 다시 돌아오시겠다고 어르신 마음을 확실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시게 되었다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일지 할머니께 정명단이라는 것을 주고 가셨어요. 그 동안 맛있는 밥을 먹여주어 행복하셨다구요."
"정명단을?"
"아세요?"
"응. 그거 청성 비전의 단약인데, 같은 부피의 금보다도 비쌀 걸. 좋으셨겠네. 할머니."
"네. 적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일지 할머니랑 사모님이랑 그 정명단 때문에 티격태격을 하셨거든요. 사모님은 공짜로 좋은 게 생겼을 땐 얼른 먹어버리는 게 최고라면서 할머니께 그 자리에서 드시라 하시고,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늙은 몸이 보신해야 뭐 하시겠느냐면서 장주님이 오시면 장주님께 드리라면서 사모님께 정명단을 건내시고요."
"그래서?"
"그런데, 그 순간에 아가씨 어머니께서 오신 거예요. 아가씨를 찾으러요. 아가씨 당가주님께 몰래 도망쳐 오신거라면서요?"
"응.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난리 쳤구나?"
"그건 아닌데, 아가씨 어머니께서 정명단을 보신 거예요.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하신거죠."
"어떻게?"
"일지 할머니같이 노인에게는 정명단 같이 효과가 강한 영단이 좋지 않으니, 정명단을 대신해서 당가의 의각에서 할머니의 건강을 종합적으로 진단을 해서 효과가 좋은 보약을 지어주기로 하시면서, 대신에 정명단을 당가에서 구매하시겠다고 하신 거에요. 영단은 유가장 같은 상가의 집안보다는 당가 같은 무가에 더 필요하시다면서요. 물론, 적당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하셨어요."
"일지 할머니가 선물로 받은 걸 돈으로 사겠다고? 엄마도 참."
제갈지민의 판단은 일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이치를 따져 생각하면 제갈지민의 제안은 합리적이다. 건강이 필요한 일지 할머니에게 더 효과적인 건강증진을, 정명단을 먹어도 그저 조금 좋은 보신단일게 뻔한 유가장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정명단으로 내공의 증진이라는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당가, 그리고 그것을 대신해서 적절한 비용을 받아 살림이 늘 일지 할머니와 유가장. 하지만 당예인은 그런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제갈지민에게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선물이란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이다. 성도에서 제일 가는 숙수도 시도조차 하지 못할 정성으로 밥을 짓는 일지 할머니와 그렇게 지은 밥을 한 자리에서 함께 먹는 유관필, 청성파의 제일 어른으로 자신과 맛있는 반찬으로 다투고, 그에게도 내주는 게 쉽지 않을 영단을 장주인 유관필이 아니라 찬모에게 줄 수 있는 적송자를 대하며 살아온 시간 때문이었다.
"어떻게 됐어? 그래서?"
"마님은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셨나봐요. 일지 할머니에게도 좋은 일이고, 어차피 유가장엔 정명단으로 크게 효과를 볼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두 분이 해선정에서 차를 한 잔 하시면서 그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에서 문제가 생겼어요."
"선생님. 그럼, 이제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경사에 가셔서, 최학사님의 문상을 하시는 건가요?"
"아니다. 표국을 통해, 관상명정을 보내면 될 일이다. 서둘렀던 건, 최학사의 목숨을 구할 수 있을까 해서이지, 최학사가 떠난 마당에 굳이 경사까지 갈 일이 있겠느냐. 부인이 온다니. 하루 이틀 경계나 구경하다가 돌아가면그 그만이다."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은 어떻게 서문 오라버니의 말을 듣자마자 최학사님이 돌아가신 걸 알셨어요?"
"사람의 목숨이 달리다보니 내가 최학사의 성정을 생각하지 못했었다. 최학사님은 어떤 각오를 하고서, 내게 각오를 다짐하기 위해, 아니면 후일을 부탁하기 위해 내게 관상명정을 부탁할 사람이 아니다. 고작 죽고 사는 것으로 선비의 뜻을 꺾을 수 있겠느냐. 알아보지 않아도 알 알이다. 그 전언은 최학사님이 이미 죽고 나서, 내게 보내진 것일 것이다. 마지막 정리인게지."
"서문 오라버니. 밥을 드세요. 그렇게 두근두근하는 눈으로 선생님만 보고 계시지 말고요. 언니가 오면 일러버리던지 해야지."
"괜챃다. 누구나 저럴 때가 있는 법이다. 진이만 그런 것이 아니지 않느냐. 형이도 밥을 못 먹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다. 내가 아니라 예인이 널 보고 있어서 그렇기는 하다만."
"아닙니다! 유 숙!"
양우형이 부끄러운 기색으로 일어나 달아나자, 당예인이 켁켁거리면서 재채기를 했고, 당환진으로부터 건내받은 물을 마시고 나서야 분한 얼굴을 했다. 당한이 짓꿎은 얼굴로 당예인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 우형은 널 생각한지 꽤나 오래 되었다. 이 오라버니와는 널 두고서 누가 먼저 좋아했는지로 몇 번 다투기도 했었다. 내가 이기기는 했는데, 밤에 자려다가 묵린혈망이 침상에 또라이를 튼 것을 보고 내가 항복을 했었지."
"말도 안돼요. 난 아직 누구를 좋아하거나 하지 않아요. 그리고 양 오라버니를 생각해도 아무런 느낌이 없어요. 난 좀 더 두근거리는 사람이 좋아요. 어제 우리 선생님처럼요."
"하하. 이거 내가 형이에게 미움을 사겠구나. 좋은 청년 같으니 예인이너도 한 번 더 생각을 해보거라. 남녀관계라는 것은 좀 더 진전이 되지 않고서는 모르는 일이다. 지금, 이 선생님을 아주 많이 좋아해주는 네 언니되는 사람도 처음에는 이 선생님을 질색했단다."
"진짜요? 세인언니가요? 거짓말. 저번에 선생님이 다른 여자를 만난다는 말만 듣고 쓰러졌던 언닌데요?"
"사실이란다. 나중에 물어보던지."
"숙부님. 그럼 다음 여정은 역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까?"
모처럼 관심이 많은 주제에 대해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당예인은 분위기를 깨고 마는 당환진의 말에 도끼눈을 뜨고 자기 오라버니를 노려보았지만, 당환진으로서는 그 토록 바라왔던 강호 첫출도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버리는 것이 아닌가해서 초조할 뿐이어서 여동생의 눈총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유관필이 씩 웃으면서 당환진에게 되물었다.
"환진이는 가고 싶은 곳이 따로 있었던 것이냐?"
"예?"
"강호 첫출행이 아니냐? 관리로 말하면 과거에 입격을 해서 첫 출사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이대로는 역시 아쉽질 않겠느냐."
"괜찮습니다. 볼 일이 끝이 났으면 돌아가는 것이지요. 유 숙을 편하고 안전하게 보필하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니 다음에 기회가 생길 때까지 기다리면 그만입니다."
고지식한 말에 유관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다라고 생각한 서문진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실망했다. 발만큼 입도 빠른 당예인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당환진의 제지를 받고는 볼이 부풀어 올랐다. 유관필이 곱게 포장이 되어 나무 곽에 넣은 관상명정을 눈으로 흘깃 쳐다보고서는 말했다.
"좋아. 예정에 없던 일이지만, 예정대로 사는 것은 아무 재미가 없으니, 부인이 오면, 부인 편에 예인이는 돌려보내고, 사내들끼리 좀 더 여행을 해보자꾸나. 기담집에서 읽으니 강호 초행엔 동정호를 가서 보아야 한다는데, 내 일로 젊은 사람들의 기대를 꺾을 수야 없지."
"네!"
금방 희희낙락해진 당한과 당환진, 서문진이 밖으로 나가고 당예인만이 얼굴이 붉어져서는 씩씩거렸다.
"선생님. 왜 저는 따라가지 못하죠? 저도 따라갈래요."
"저들 넷은 형님께 허락을 얻어 온 것이지만, 너는 그냥 온 것이 아니냐. 다 큰 딸을 아무리 숙질간이고, 오남매들 사이라고는 하나 사내들과 오랜 기간 밖에서 보내게 할 수는 없다. 넌 부인이 오면, 그 편에 당가로 돌아가거라."
"언니랑 저를 두고 가시는 데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응?"
"혹시, 오라버니들을 데리고 기루라도 가시려는 게 아니냐구요. 선생님께서 그 여자를 경민이 선생님으로 들이시려 한다는 것을 언니에게 들었어요. 말도 안되요. 이번에 가셔서 또 다른 선생님들을 데려 오시려고 그러는 게 아니냐는 것을 묻습니다."
"그게 걸렸던 것이냐? 그건 오해다. 내가 쓴 관상명정의 글씨를 기억하느냐?"
"네. 여자 글씨 같았어요."
"그게 최학사님의 필선이었다. 난 윤영, 그녀에게서 그 필선을 보았단다. 그래서, 그녀를 청했지. 단지 그것 뿐이다."
"하지만, 전 그 최학사님의 글씨를 본 일이 있어요. 선생님께 전하는 전언의 봉투에서요. 달랐어요."
"그게 원래 내 서체였다. 겉멋이 가득한 필선이지."
추억에 잠겨 말이 없어진 유관필에게 말을 걸지 못한 당예인이 밖으로 나왔더니, 당환과 당환진, 서문진과 양우형이 제법 진지하게 다음의 일정을 상의하고 있었다. 역시나 동정호쪽으로 가닥을 잡는 네 사람에게 괜히 신경질이 난 당예인이 툴툴거리는데, 상단 지부의 대문이 열리면서 오세인과 시비 화영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던 당예인이 언니를 외치며 오세인을 맞았다.
"언니, 보고 싶었어요."
"그래, 상공은?"
"어제 관상명정을 쓰고 탈진하셨다가 방금 전에 일어나서 죽을 드셨어요."
"응. 잠깐만. 좀 보고 올게."
오세인은 뭔가 비장했다. 오세인이 방으로 들어가고, 당예인은 화영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 있어? 부고는 여기서 받았는데, 왜 언니는 여기까지 온 거야?"
"그게요. 아가씨. 아가씨 어머니 때문에 좀 난리가 났었어요."
"우리 엄마? 왜?"
"저희 장주님이랑 당가 공자분들이 떠나신 후에, 적송자 어르신이 오셨거든요. 저희 장주님을 만나시러요. 그런데, 급한 일이 있어서 경사로 가셨다는 소식을 마님이 전하니까, 적 어르신이 저희 장주님께 아직 결정을 하지 못했다면서, 무인이 되든, 도인이 되든 하나가 되는 날에 다시 돌아오시겠다고 어르신 마음을 확실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하시게 되었다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일지 할머니께 정명단이라는 것을 주고 가셨어요. 그 동안 맛있는 밥을 먹여주어 행복하셨다구요."
"정명단을?"
"아세요?"
"응. 그거 청성 비전의 단약인데, 같은 부피의 금보다도 비쌀 걸. 좋으셨겠네. 할머니."
"네. 적 어르신이 돌아가시고, 일지 할머니랑 사모님이랑 그 정명단 때문에 티격태격을 하셨거든요. 사모님은 공짜로 좋은 게 생겼을 땐 얼른 먹어버리는 게 최고라면서 할머니께 그 자리에서 드시라 하시고,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늙은 몸이 보신해야 뭐 하시겠느냐면서 장주님이 오시면 장주님께 드리라면서 사모님께 정명단을 건내시고요."
"그래서?"
"그런데, 그 순간에 아가씨 어머니께서 오신 거예요. 아가씨를 찾으러요. 아가씨 당가주님께 몰래 도망쳐 오신거라면서요?"
"응. 그래서 우리 엄마가 난리 쳤구나?"
"그건 아닌데, 아가씨 어머니께서 정명단을 보신 거예요. 그리고 해결책을 제시하신거죠."
"어떻게?"
"일지 할머니같이 노인에게는 정명단 같이 효과가 강한 영단이 좋지 않으니, 정명단을 대신해서 당가의 의각에서 할머니의 건강을 종합적으로 진단을 해서 효과가 좋은 보약을 지어주기로 하시면서, 대신에 정명단을 당가에서 구매하시겠다고 하신 거에요. 영단은 유가장 같은 상가의 집안보다는 당가 같은 무가에 더 필요하시다면서요. 물론, 적당한 대가를 치르겠다고 하셨어요."
"일지 할머니가 선물로 받은 걸 돈으로 사겠다고? 엄마도 참."
제갈지민의 판단은 일견 나빠 보이지 않는다. 이치를 따져 생각하면 제갈지민의 제안은 합리적이다. 건강이 필요한 일지 할머니에게 더 효과적인 건강증진을, 정명단을 먹어도 그저 조금 좋은 보신단일게 뻔한 유가장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정명단으로 내공의 증진이라는 실질적인 효과를 볼 수 있는 당가, 그리고 그것을 대신해서 적절한 비용을 받아 살림이 늘 일지 할머니와 유가장. 하지만 당예인은 그런 냉정한 판단을 내리는 제갈지민에게 공감을 할 수 없었다. 선물이란 마음을 주고 받는 일이다. 성도에서 제일 가는 숙수도 시도조차 하지 못할 정성으로 밥을 짓는 일지 할머니와 그렇게 지은 밥을 한 자리에서 함께 먹는 유관필, 청성파의 제일 어른으로 자신과 맛있는 반찬으로 다투고, 그에게도 내주는 게 쉽지 않을 영단을 장주인 유관필이 아니라 찬모에게 줄 수 있는 적송자를 대하며 살아온 시간 때문이었다.
"어떻게 됐어? 그래서?"
"마님은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셨나봐요. 일지 할머니에게도 좋은 일이고, 어차피 유가장엔 정명단으로 크게 효과를 볼 사람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두 분이 해선정에서 차를 한 잔 하시면서 그 일을 마무리 지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에서 문제가 생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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