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쇄무(破碎舞)-
‘정신 못 차리고, 합!’
‘도!’
사부님의 춤추듯 너울 거리는 화각수(火角手)가 바람을 갈랐다. 나와 진명은 사부님의 반복적인 것 같으면서도 서로의 허를 가만 놔두지 않는 다채로운 선방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수를 거두어라.’
‘네.’
‘너희들은 어찌 하여 십여 합도 되지 않는 나의 선방에 허점을 드러내는 고?’
‘…..’
‘무예란 다스려지지 못하면 미친 소와 같다고 내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느냐? 앞만 보고 돌진하는 소는 그 기세가 거세다 할지라도 비켜서면 그만인 것을, 너희들은 어찌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뇨?’
사부님은 다시 또 돌아서서 면벽좌선(面壁坐禪)을 위해 토굴로 들어 가신다. 사부님의 화각수는 그 예리하기가 칼끝 같고, 바로 눈 앞까지 밀치고 들어오는 장(掌)과 권(拳)에서 내뿜는 공력의 너울거림이 피부를 짓누르기까지 하는 대단한 살기를 지녔지만, 우리가 내칠 수 있는 공격의 수를 이미 간파하고 계신 탓에 끊임없는 경고의 화살 같이 우리의 급소를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나에게는 세류곤(細柳棍)을, 진명 에게는 연월장창(燕越長槍)을 들리시고, 오늘도 어김없이 파쇄보법(破碎步法)을 설파하셨지만 아둔한 우리의 머리로서는 몸을 날려 비월해 들어오시는 사부의 날카로운 공격을 되받아 치기는 커녕, 보법의 진을 펼치는 것조차 머뭇대는 실정이라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오라버니들, 진지 드셔야지요.’
‘하이구, 사매, 말도 마서요, 사부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수련도 멈추고 그냥 들어가셨을까? 끼니 값도 못하는 것들이 입만 벌리고 섰다고 또 혼이나 않 날까 몰라. 관백 사형, 어찌 할까요?’
진명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장창을 내려 놓았다. 진명은 그 골격이 장대하기가 이를데 없었고, 그 근력의 기세가 남달랐으되, 공격의 흐름을 읽는 것에 조금 늦는 감이 있었다.
‘진명 사제, 그래도 설희의 정성을 봐서 한 술 뜸세.’
나와 진명은 마당의 한구섞으로 들고 나온 쪽반상에 얹혀진 밥그릇을 집어 들었다.
‘설희도 먹자꾸나.’
‘아니요, 저는 사부님이 곡기를 끊으신지 사흘이 넘어서 미음이라도 쑤어드릴까 생각 중이어요. 드시고 계세요.’
‘설희 누이는 살림에, 무예수련에, 게다가 사부님 봉양까지 철인이 따로 없다니깐…’
진명은 설희 에게 힘내라는 칭찬을 더했다. 가뜩이나 괴팍한 사부님께서 요즈음 어쩐 일인지, 수련시간 이외에는 두문불출, 토굴에서 나오시질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산속 깊숙이 사람의 인적이 끊어진 곳에서 무예를 연마하는 사람들은 대개 과거를 보기위해 무과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지만 우리는 좀 달랐다. 세상을 등지고, 스승님께서 겨우 걸음마 정도 밖에 할 줄 모르던 우리들을 품에 안고서, 이곳으로 접어드실 때만 해도 지금의 우리들은 상상 할 수 조차 없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와 진명, 설희에게는 어떤 다른 것도 가르치시는 것이 없이 나에게는 세류곤을, 진명 에게는 연월장창을, 그리고 설희에게는 화혼쌍검(火魂雙劍)을 수련토록 명하셨다. 이제는 세 사람이서 스승님께서 무예의 절정이라고 하는 파쇄무(破碎舞)를 얼추 흉내 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파쇄무는 파쇄보법으로 펼친 진을 이용해서 세 사람이 각기 지니고 있는 무기로 온 사방에서 쳐들어 오는 적을 빠른 시간 안에 다변,연쇄 격파할 수 있는 필살기였다. 상을 물리고, 그냥 넋을 놓고 쉴 수만은 없었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이렇게 무예만을 연마 하면서도 사부는 우리에게 언제나 푸짐한 곡기를 대시고 계셨고, 달포에 한번, 어디론가를 다녀 오시는 것 이외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보내고 계셨다.
‘설희야, 너도 검을 가지고 오렴.’
‘사형, 설희 사매도 오늘은 같이 수련 하시게요?’
‘사부님의 파쇄보법의 마지막 24진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는 마당에, 언제나 엉거주춤 서성이면서 사부님의 핀잔만 들어서 되겠느냐? 어서 마무리를 해야지.’
나는 세류곤을 고쳐 잡았다. 세 사람은 서로가 등을 대고 자신의 정면을 바라다 보면서 진을 펼치기 전에 호흡을 가다 듬었다. 등 뒤로 목덜미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설희의 살내음이 은은하게 흘렀다. 그러나, 잡념을 지니기에는 앞으로 놓여진 보법의 난해함이 더욱 괴로운 짐으로 느껴지기만 하고….눈을 감고 서로의 호흡이 어느 순간 일치하면서 끊어 지는 찰나, 서로의 무기가 사방으로 향해 출수하고 있었다. 파쇄보법의 진미는 어느 한 사람이 약진공(躍進攻)을 펼치더라도 그 뒤를 번개 같이 메꾸면서 서로의 등을 대고 있는 간격을 한시도 떨어트림이 없게 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세 사람의 형체는 마치 그 사이가 진공인 것처럼 사방에 적들이 밀려 오더라도 결코 뚫을 수 없게 만드는 그 철벽이 주위로 존재하듯, 보이게 해야 했다. 또한 사부님께서는 많은 적들을 상대로 싸울 때에는 기의 소모를 최대한 도로 자제해야 하므로, 스스로 기를 뽑아 올리기 위한 기합 이라든가, 내공출수(內攻出手)등은 극도로 절제 시켜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아무리 파쇄보법의 24진을 다 펼친다 할지라도 주위에는 검기가 땅을 가르는 폭음과 우리들이 휘두르는 무기가 바람을 가르며 내는 소리이외에는 들리질 않았다. 파쇄보법의 24진은 세 사람에게 각기 자신의 특징을 극도로 활용할 수 있는 8개의 진이 교대로 나열되어 있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보법의 현란한 변화를 통해 다양한 진을 무한정으로 연결 시켜 나갈 수 있는 묘미가 버티고 있었다. 내 뒤에서 훅 하는 느낌과 함께 진명의 기가 빠져 나가면서 허공을 휘돌리는 진명의 연월장창이 번뜩였다. 이어서 설희의 화혼쌍검이 정면의 주변으로 검기를 흩뿌리면서 뒤로 비월하고, 나는 두 사람의 보조에 맞추어 제 4진의 보법을 이용해서 세류곤의 휘청거리는 끝을 뒤틀면서 내질렀다. 온 수련장을 세 사람이 춤을 추듯이 돌아가면서 진을 펼치는 모습은 뿌려지는 피와 시신이 없기 때문인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가장 어려운 과정은 바로 마지막 24진 이었는데, 이것은 다른 파쇄무의 필살진법과 다르게 서로가 진을 펼칠수록 점점 원을 크게 그려가며, 23개의 보법을 모두 자신의 무기에 적용시켜 공세를 확대해 나가는 각개격파의 진수를 담고 있었다. 이 24개의 보법이 마무리 되면, 한도 끝도 없게 펼쳐졌던 세 사람의 간격은 순식간에 맨 처음의 진으로 형태를 축소시키면서 끝을 맺게끔 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었다. 서로가 조금 서투른 감이 있기는 했지만 사부님께 혼이 난 뒤 끝이었는지, 아니면 설희의 정성이 담긴 끼니 꺼리로 인한 용기백배 였는지는 몰라도 세 사람은 오랜 만에 파쇄무의 마지막 진까지 펼치면서 서로가 마주보는 자세에서 무기를 거두어 들이며,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짝짝짝짝…..’
‘어? 사부님?’
언제 나오셨는지 미동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사부님은 우리를 굽어보고 박수를 치고 계셨다.
‘잘했다. 내가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오늘 저녁에는 모두 목욕재개 하고, 옷을 단정히 입고서 끼니를 일찌감치 떼우거라. 내 긴히 할 말이 있구나.
평소와 다르게 칭찬과 더불어 긴요한 말씀이 있으시다는 말에 세 사람은 온 몸에 솟아나는 땀방울을 훔칠 겨를도 없이 서로가 마주 볼 뿐이었다. 밤중의 깊은 산중에는 고즈넉함 보다는 적막감이 더했다. 작은 호롱불만을 밝힌 방안에 사부님을 마주하고서 나를 비롯한 세 사람은 정좌한 자세에서 사부님의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냇가에서 멱을 감고 왔음 인지, 온 몸이 서늘한 기운마저 감도는 것이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내 너희들에게 무예를 가르친 것이 어언 십 수년이 넘는구나. 허 참… 세월도 허망하지.’
‘그래도 저희가 아직 사부님이 원하시는 경지에 태부족으로 미흡합니다.’
‘아니다. 관백아, 너희는 아주 잘 따라와 주었다. 내가 평생을 걸쳐 파쇄무에 매달린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하겠다.’
우리 세 사람은 사부의 입으로부터 그런 류의 얘기는 들어 온 바가 없었다. 언제나 매일이 반복되는 고된 무예연습 뿐이었고, 앞으로 나아가기 만을 고집하실 뿐이었는데…
‘오래 전, 나는 좌의정 양반의 천거로 궁에 들어갔단다. 그 당시 나의 스승 이셨던 백운거사와 절친한 분이셨지. 파쇄무의 일부를 스승님으로부터 전수 받고, 나 나름대로는 검에 자신이 있던 때 였었지만, 스승님 께서는 파쇄무의 비급이 담긴 고서만을 남겨 주시고, 내가 마무리를 하지는 못하도록 하셨지. 다 이유가 있었지만…궁에 들어가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상감마마를 최측근 에서 보필하는 것이었다. 주위에는 비호대(飛護隊)가 버티고 있으면서 언제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상감마마를 시해할 수도 있는 자객이나 역모의 의도를 안고 접근해 오는 조정의 간신배들을 단숨에 척결해야 하는 임무를 띄고 있었지만 나의 할 일은 그 비호대의 방어선이 뚫렸을 때, 마지막까지 전하를 위해 사생결단을 내야 하는 중요한 임무였었다. 이해가 가느냐?’
‘네.’
‘세상 사에 미숙했던 나는 궁에 들어가 천하를 호령하는 상감마마의 주위에서, 그 힘보다도 더 큰 목소리로 세상을 뒤흔들어 대는 간신배들의 못된 처사를 똑똑히 대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고민으로 날을 새시는 상감마마의 쓰라린 심정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저려왔었지.’
스승님은 잠시 말씀을 놓으시면서 한숨을 내쉬셨다.
‘당파끼리 서로에게 걷잡을 수 없는 정쟁을 불러 일으키고,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물고 물리는 아수라장으로 조정이 변질되어가기 시작할 무렵, 나를 천거 하셨던 좌의정 양반이 스스로 사직하고 낙향을 하는 일이 벌어진 게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진명이 멀뚱한 표정으로 스승님께 물었다.
‘상관이 있었지. 나를 천거하셨던 그 분이 조정에서 사라지자, 그의 인맥을 타고 조정과 궁에 포진 되어 있던 세력들은 하나 같이 옷을 벗게 된 것이야. 나를 포함해서 친위대와 비호대의 많은 청렴한 무인들이 옷을 벗거나, 외지로 쫓겨나고, 심지어는 변방으로 발령을 받아 다시는 고향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게 된 사람들도 있었구나. 나는 다행히 낙향하신 양반의 보호아래 식객으로 머무를 수 있었고….그러다, 동문수학한 절친한 친구가 조정 간신배의 괴수 격인 김 대감의 음모로 인해 반역으로 몰려 본인은 참수를 당하고, 가족들은 관가의 노비로 팔려갈 것을 가까스로 빼내어 자신의 집으로 불러 들여 살게 했던 것이지.’
‘그렇다면?’
‘그래, 너희들은 가족이란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었으되, 유독 설희만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설희는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설희가 없이는 파쇄무를 완성시킬 수 없기 때문이었지.’
갑자기 닥쳐온 출생의 비밀에 대한 언급으로 인해 가슴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데, 그건 또 무슨 소리인지 감감하기만 했다. 벌써부터 진명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설희의 손을 붙들고 있었다.
‘스승님,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나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고 있었다.
‘분을 가라 앉히거라. 그리고 내 말을 똑똑히 잘 들어야 한다. 너희 삼남매는 노비로 팔려 평생을 노비의 신분으로 살았을 운명이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너희 부친을 비명에 가게 한 그 김대감 놈을 잡아 복수할 꿈이나 꿀 수 있었겠느냐? 나는 아직까지 너희들에게 파쇄무를 가르친 것에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파쇄무는 초절정의 무예이면서 한 사람으로는 완성 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심오한 깊이를 아무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스승님은 저희들의 의사 같은 것은 아예 묻지도 않으시고, 그렇듯 살상의 극을 달리는 초극살 무예를 저희들에게 전수하시려고 애쓰셨단 말입니까?’
목소리를 높일 줄 모르던 내가 버럭 소리를 치는 통에, 주위에 있던 진명과 설희가 고개를 번쩍 치켜 들었다.
‘관백아, 어린 핏덩이들에게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무예를 전해야 하는 나에게도 많은 생각이 있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그로 인해 피를 부르는 악연의 수레바퀴는 계속 돌게 될 것이라는 점, 어찌 내가 모르겠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들에게 무예를 전수 하려 한 것에는 다른 의도가 있었느니라. 이제는 자리에 누워 운신이 불가능한 좌의정 영감이 나에게 한 말 때문이었지. 언젠가 그 놈의 김대감은 조정을 장악하고, 세력을 규합하여 결국에 가서는 큰 일을 낼 것이라고 말이야.’
‘큰일 이라뇨?’
‘역모인 것이지.’
‘역모 라니요?’
‘그래, 역모지. 지금부터 사흘 후, 자시를 기해 궁을 급습해서 상감마마를 시해하고, 왕족을 비롯해서 자신의 반대 세력들을 단번에 해치울 계획이 이미 진행 중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천기를 거스르는 일을 해 본적이 없다. 내 스스로 이 날까지 살면서 너희들에게 너희의 자유 의지를 거스르면서 무예를 강제로 전수 시킨 죄 밖에는… 그러나, 내가 너희들이 어릴 적, 파쇄무의 완성을 앞두고, 그 비급의 마지막 종이갈피에 비밀스럽게 접혀져 들어가 있던 그 서찰을 보고는 너희들에게 무예를 가르치려고 했던 그 사실도 모두 역사와 세월 속에서 거스를 수 없는 또 하나의, 넘어야만 할 고갯마루 인 것을 깨닫게 되었단다.’
‘서찰은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내가 다시 물었다. 밤은 깊어 가는데 방안은 더욱더 복잡하고 미묘하게 꼬여가는 세상사의 얘기들로 후끈 달아 오르고 있었다.
‘나의 스승이셨던 백운 거사님 조차도 파쇄무를 완성하실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 파쇄무는 고래로 자객에게 전수되었던 무예라고 밝히셨던 것이지. 그 비급을 우연 찮게 손에 넣게 된 스승님께서 그 비급을 보다 좋은 일에 쓰려고 면벽참선 하시는 도중에, 앞날의 일을 꿰뚫으신 게지. 이제부터 하는 말을 잘 듣고, 이제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너희들의 의견을 마지막으로 물을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세 사람 모두 끝끝내 긴장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파쇄무는 네 사람이 한 무리가 되어 이루어지는 필살무예다. 그러나, 정작 무예를 휘두르는 것은 세 사람이고, 너희들도 연마 했다시피, 24진법은 모두 세 사람만을 위한 보법으로 꾸며져 있다. 그 말은 세 사람을 위해 누군가 한 사람은 희생되어야 한다는 말이고, 그로 인해 세 사람은, 세상에 보기 드문, 절세의 공력을 갖춘, 무예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는 말이지. 더군다나 내가 말했듯이 이 무예는 누군가를 반드시 암살해야만 할 때, 죽기를 각오하고 연마하는, 살기(殺氣)로 점철된 것이란다. 그런데, 어째서 혼자서는 완성할 수가 없는 것인지 알 수 있겠느냐?’
나는 그때서야 무릎을 탁 쳤다.
‘혹시 마지막 24진법은 죽음을 앞두고, 온 몸을 불사르면서 서로의 무운을 빌며, 초개와 같이 산화하는 진법이란 말입니까?’
‘역시 맏이 답구나. 그래, 너희들의 무예는 죽음을 전제로 한 무예 비급인 게야.’
가장 어린 진명의 눈이 커지면서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눈물을 훔치며, 울먹였다.
‘사부님…. 누님과 형님이, 사형과 사매가 아닌 것을 이제 사 알았는데, 벌써 죽으라니요? 해도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어찌 사내 대장부가 큰일을 앞두고, 미미한 속세의 인연에 연연해 하느냐? 내가 너희를 그렇게 가르쳤더냐?’
‘죄송합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내 가슴도 무척이나 쓰리고 아프다. 젊디 젊은 너희들에게 세상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지는 못할 망정, 이렇듯 죽음으로 내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잘 들어라, 나라가 있고, 군왕이 건재해야, 너희들도 있는 법, 위기에 처한 한 나라의 군왕을 죽음으로 보필하러 나가는 일에 머뭇거려서는 안 될 일. 설령 내가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짓이기는 초극살 무예를 전수하였다 손 치더라도 쓰레기 같은 것들을 쓸어버리고, 군왕을 보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찌 저어할 수 있는 이유가 되리!’
세 사람은 장엄한 스승님의 서슬에 감히 고개도 들지를 못하고 있었다.
‘다만, 이 모든 완성의 열쇠를 설희가 쥐고 있기에, 나는 여태까지 그 답을 듣지 못하여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다. 설희야, 어떠하냐? 이제 마음의 결정을 보았느냐?’
설희는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이어 단호한 얼굴로 설희가 고개를 들었다.
‘오라버니, 그리고, 동생, 아버님의 원수를 갚아야 된다는 생각에 이제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 왔지요. 눈물을 흘리며, 화혼쌍검을 휘두르면서 저는 사실,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고백하렵니다. 어차피 인생에 두 번의 죽음은 없지요. 살아서 욕 되느니, 죽어서 아버님의 상한 혼령이나마 위로해 드리렵니다. 누구를 본의 아니게 죽이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는 임금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 있질 않습니까? 저는 스승님의 말씀에 따를 것입니다.’
나와 진명은 설희의 단호한 결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도 잘 들었으리라 믿는다. 너희들은 어떠하냐, 마지막으로 물으마.’
그러나, 설희의 말대로 우리의 출사는 그 명분이 있었다. 더 이상의 주저함은 스스로 욕됨을 자처하는 길일 뿐이라는 생각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형님, 누님, 저는 스승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나는 대답 대신 스승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장하다. 그럼, 이제부터 파쇄무의 마지막을 전수하겠다. 설희는 그것을 갖고 오너라, 알았지?’
설희는 방을 나가더니만 술잔 셋과 술병을 들고 들어왔다. 사람은 넷인데, 잔은 세개라,…. 이별주라도 해야 할 판인데 세 개뿐인 잔으로 인해 어리둥절 하고 있었고…
‘자, 이 술잔이 너희들과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나누는 술이 될 듯 싶구나, 어서 주욱 들이키거라.’
스승님께서는 세 사람에게 술을 잔에 가득 따라 주시었다. 녹차와 같은 연한 빛깔의 술이었으되, 냄새는 없었다.
‘너희의 할 일을 끝까지 마쳐야 하느니라. 그 전에는 죽을 수도, 살수도 없음을 명심하도록… 어서 들라!’
술을 들이키자, 목구멍에서부터 짜르르하니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술의 여운이 속속들이 느껴졌다. 술이 위장에 도달하기도 전에 갑자기 눈알이 튀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온 전신을 덮치기 시작했다.
‘모두 가부좌로 틀어 앉아 행공을 중지하고, 기맥에 집중 하지 마라. 절대 움직여서는 아니 된다.’
앞에 앉아 계시던 스승님께서 바람같이 우리 세 사람의 주위로 오시더니 번개 같은 솜씨로 온몸의 기맥(氣脈)과 경혈(經血)을 심타법(深打法)으로 내리치고 찍어 버렸다. 눈 앞이 까매지는 것 같더니만 이내 정신이 돌아왔다. 온 몸의 피가 끓어 오르는 것 같으면서 근질 거려 왔다. 세 사람에게 심타법을 시술하자마자, 나와 진명은 괜찮았지만 설희가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방바닥에 고꾸라져 있던 설희가 온 몸을 비비적대는 것이 나의 느낌과 같은 것을 받는 모양 이었다. 설희가 누운 채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예전의 설희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은 도화빛으로 물들고, 눈은 반쯤 돌아간 상태로 입가에서는 침을 머금고,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자, 너희는 이제 말도 할 수가 없다. 방금 전에 마신 것은 음혼경활환(淫魂經活丸)이 섞인 술이었다. 그 술을 먹게 되면, 참을 수 없는 음욕이 치밀어 합환하지 않고는 기맥이 역류하여 살 수가 없게 된다. 더군다나 그 약은 파쇄무를 마지막으로 전수 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비약이다. 그 약의 성분 중에는 기맥이 역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너희의 신체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경맥류를 다 열고야 마는 효능이 있지. 이제 너희들은 나의 마지막 전수를 위해 음교접합익(淫橋接合翼)의 자세로 전환 될 것이다. 수리수리 000 000 0000 000…….’
스승님은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주문을 외우고 계셨다. 우리 세 사람은 방금 에서야 알아 본 친 혈육임을 알면서도 서로의 옷을 친절하게 맛이 간 얼굴로 벗겨 주고 있었다. 알몸이 되고 나서 말도 행동도 내 마음대로 되질 않고 귀만 열려있는 내 자신이 제일 놀란 것은 몸의 상태 였다. 머릿 속은 참을 수 없는 음탕한 생각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동생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누워 옷이 벗겨진 채로 온 몸을 손으로 연신 쓸어대고 있는 사람이 한낱 여자로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남근은 하늘을 찌를 듯이, 거세게 발기되어 온통 살거죽이 터질 듯이 빤질거렸다. 설희도 마찬가지 였다. 벌려진 가랭이 사이로 생전 처음 대한 여인네의 음곡이었으나, 그곳에서 시내 흐르듯이 질질 흘러 내리는 음수는 멀리서도 확연히 보이고 있었다. 주문이 더해지자, 세 사람은 꼭두각씨 인형처럼 스승님의 주문에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진명이 천장을 보고 드러눕고, 그 위에 설희가 스승님을 향해 얼굴을 든 채로, 음문에다가 진명의 거대하게 발기된 남근을 맞추어, 꼭꼭 포개서 박아 버렸다. 나는 설희의 뒤로 다가가 설희의 그 허연 엉덩이를 붙들고, 설희의 항문에 내 샅을 거시게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우리 앞에 서 계시던 스승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관백아! 너만 온전히 정신이 들어 있을게다. 진명과 설희는 해독약을 먹이고 나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너희와 나도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구나. 나의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 주려므나. 이제 나의 모든 진기와 공력이 설희의 입을 타고 너희 세 사람에게 도달할 것이다. 그리 된 후에는 이미 너희의 몸은 칼이나 창으로도 뚫을 수 없이 탈태환골된 초절정 육신으로 화해 있을 것일 테지만 아마도 나흘을 넘기진 못할 게야. 칼에 베어도, 창에 찔려도 나의 공력과 진기가 너희의 기맥을 제압하고 있어서 통증도, 피도 별로 나오지 않을 것이니까. 그러나, 그 기력이 사라지기 전에 너희 세 사람은 상감마마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 한다. 이미 도성 주변의 우군진영에 파발마가 떠났고, 역모에 동참한 도성 근교의 세력들이 궁안의 역모세력과 규합하지 못하게 궁 밖에서는 그들이 도맡아 싸울 것이다. 너희들이 할 일은 죽기를 결심하고, 상감마마의 주위에서 결사적으로 싸우는 일밖에 남질 않은 것이야.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짊어지고 다니는 바리떼 에서 비단에 싸인 뭉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는 상감마마께서 하사하신 어패가 있다. 그것을 상감마마를 알현할 때까지 몸에 지니고 수문을 통과해야 한다. 상감께서 그 어패를 보시면 너희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실 것이야. 그 다음은 더 이상 내가 말해 줄 것이 없구나. 너희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남기고 가야 하는 내가 사부로서 너희를 대할 면목이 없다.’
스승님은 마지막으로 궁궐쪽을 향해 마지막 하직인사를 올리고, 옷을 벗으셨다.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심타법으로 곳곳의 기혈을 난타하셨는데, 우리와는 조금 다른 부위를 집중적으로 스스로를 가격하셨다. 두 손을 합장한 채로 눈을 감으셨는데, 눈 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노인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거봉이 스승님의 아랫도리에서 쑥쑥 자라나듯이 커져 가는 것이었다. 온 몸의 핏줄은 퍼렇게 피부 밖으로 튀어 나올 것처럼 불거져 나오고, 스승님의 남근은 그 크기가 잘자란 무우만 했고, 그 색은 거의 흑색에 가깝도록 변하고 있었다. 스승님은 자신의 음문과 항문에 동시에 박혀있는 두 남자의 색끈한 좇대가리에 넋을 놓고, 입을 벌린 채로 생글거리고 있는 설희의 입안에 그 무지막지한 좇을 서서히 들이미셨다. 그리고, 다시 또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셨다.
‘아! 스승님, 스승님, 스승님!’
그러나, 그 목소리는 내 목 안에서만 뱅뱅 돌뿐, 들리질 않았다. 주문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설희의 항문에 박혀 있던 내 좇몽둥이를 타고 시원한 물줄기 같은 것이 씨웅씨웅 하면서 쳐들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사부님의 피와 살이 뭉쳐진 공력과 진기였다. 소리를 친 이유는 시간이 경과 할수록 주문을 외우시는 사부님의 살거죽이 점차 말라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주문 소리도 들리질 않을 정도로 죽어 들어가고, 스승님의 몸은 뼈와 가죽 밖에 남질 않았고, 몸을 움직거리지 못하는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더 이상 내 경도를 타고 흐르는 그 느낌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곧 이어서, 내 남근은 미친 듯이 참았던 좇물을 설희의 항문 속으로 뿜어대며 허릿짓으로 정신을 놓았다. 밑에서 설희의 음문에 좇을 끼워 넣은 채로 발광을 떨던 진명도 이내 몸의 경련을 하더니만 기진해서 혼절하고, 설희도, 두 남자의 사정과 때를 같이해서 진명의 몸 위로 스승님의 남근을 입에 문 채로 엎푸러지고…..나는 그리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기맥이 조금씩 정상을 찾아 가면서 몸을 가까스로 추스리며 두 사람에게 옷을 입히려고 다가갔을 때, 무슨 풀쪼가리 같이 덜럭대면서, 가죽 같은 것이 설희의 입에 물려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피 한방울도, 남지 않고 살거죽만 남은 스승님의 좇을 물고 쓰러지니 찢어질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우선 스승님의 시신에 옷을 입히고, 나머지 설희와 진명에게 차례로 옷을 입히고, 나를 포함해서 세 사람 모두 스승님이 말해 놓으신 그 해독약을 들이키게 했다. 정신을 차린 진명과 설희는 흉한 뼈다귀 몰골로 변해 세상을 뜬 스승님의 시신을 붙들고 대성통곡을 했지만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었다. 날이 밝기 무섭게 나와 진명, 설희는 서로의 무기를 챙겨 들고, 길 떠날 채비를 했다. 스승님을 뒤로 묻고, 거처를 떠나는 세 사람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고…나는 그곳을 떠나기 전, 스승님께서 가슴에 품고 계시던 파쇄무의 비급을 스승님의 시신과 함께 묻어 버렸다. 더 이상, 이렇게 불행한 스승과 수제자가 생겨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이후로 그 세 사람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비단에 싸여, 어패로 봉해진 채, 상감마마의 침소에 걸려있는 세류곤과 연월장창, 그리고, 화혼쌍검만이 상감마마의 서글픈 심사를 시시때때로 달래 주었다고 전해진다.
-끝-
‘정신 못 차리고, 합!’
‘도!’
사부님의 춤추듯 너울 거리는 화각수(火角手)가 바람을 갈랐다. 나와 진명은 사부님의 반복적인 것 같으면서도 서로의 허를 가만 놔두지 않는 다채로운 선방에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수를 거두어라.’
‘네.’
‘너희들은 어찌 하여 십여 합도 되지 않는 나의 선방에 허점을 드러내는 고?’
‘…..’
‘무예란 다스려지지 못하면 미친 소와 같다고 내 몇 번을 말해야 알아 듣겠느냐? 앞만 보고 돌진하는 소는 그 기세가 거세다 할지라도 비켜서면 그만인 것을, 너희들은 어찌 그것을 깨닫지 못하느뇨?’
사부님은 다시 또 돌아서서 면벽좌선(面壁坐禪)을 위해 토굴로 들어 가신다. 사부님의 화각수는 그 예리하기가 칼끝 같고, 바로 눈 앞까지 밀치고 들어오는 장(掌)과 권(拳)에서 내뿜는 공력의 너울거림이 피부를 짓누르기까지 하는 대단한 살기를 지녔지만, 우리가 내칠 수 있는 공격의 수를 이미 간파하고 계신 탓에 끊임없는 경고의 화살 같이 우리의 급소를 훑고 지나갈 뿐이었다. 나에게는 세류곤(細柳棍)을, 진명 에게는 연월장창(燕越長槍)을 들리시고, 오늘도 어김없이 파쇄보법(破碎步法)을 설파하셨지만 아둔한 우리의 머리로서는 몸을 날려 비월해 들어오시는 사부의 날카로운 공격을 되받아 치기는 커녕, 보법의 진을 펼치는 것조차 머뭇대는 실정이라 제대로 된 공격을 가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오라버니들, 진지 드셔야지요.’
‘하이구, 사매, 말도 마서요, 사부님이 얼마나 화가 나셨으면 수련도 멈추고 그냥 들어가셨을까? 끼니 값도 못하는 것들이 입만 벌리고 섰다고 또 혼이나 않 날까 몰라. 관백 사형, 어찌 할까요?’
진명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장창을 내려 놓았다. 진명은 그 골격이 장대하기가 이를데 없었고, 그 근력의 기세가 남달랐으되, 공격의 흐름을 읽는 것에 조금 늦는 감이 있었다.
‘진명 사제, 그래도 설희의 정성을 봐서 한 술 뜸세.’
나와 진명은 마당의 한구섞으로 들고 나온 쪽반상에 얹혀진 밥그릇을 집어 들었다.
‘설희도 먹자꾸나.’
‘아니요, 저는 사부님이 곡기를 끊으신지 사흘이 넘어서 미음이라도 쑤어드릴까 생각 중이어요. 드시고 계세요.’
‘설희 누이는 살림에, 무예수련에, 게다가 사부님 봉양까지 철인이 따로 없다니깐…’
진명은 설희 에게 힘내라는 칭찬을 더했다. 가뜩이나 괴팍한 사부님께서 요즈음 어쩐 일인지, 수련시간 이외에는 두문불출, 토굴에서 나오시질 않는 것이었다. 이렇게 산속 깊숙이 사람의 인적이 끊어진 곳에서 무예를 연마하는 사람들은 대개 과거를 보기위해 무과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지만 우리는 좀 달랐다. 세상을 등지고, 스승님께서 겨우 걸음마 정도 밖에 할 줄 모르던 우리들을 품에 안고서, 이곳으로 접어드실 때만 해도 지금의 우리들은 상상 할 수 조차 없었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와 진명, 설희에게는 어떤 다른 것도 가르치시는 것이 없이 나에게는 세류곤을, 진명 에게는 연월장창을, 그리고 설희에게는 화혼쌍검(火魂雙劍)을 수련토록 명하셨다. 이제는 세 사람이서 스승님께서 무예의 절정이라고 하는 파쇄무(破碎舞)를 얼추 흉내 낼 수 있는 경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파쇄무는 파쇄보법으로 펼친 진을 이용해서 세 사람이 각기 지니고 있는 무기로 온 사방에서 쳐들어 오는 적을 빠른 시간 안에 다변,연쇄 격파할 수 있는 필살기였다. 상을 물리고, 그냥 넋을 놓고 쉴 수만은 없었다.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이렇게 무예만을 연마 하면서도 사부는 우리에게 언제나 푸짐한 곡기를 대시고 계셨고, 달포에 한번, 어디론가를 다녀 오시는 것 이외에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감옥 아닌 감옥 생활을 보내고 계셨다.
‘설희야, 너도 검을 가지고 오렴.’
‘사형, 설희 사매도 오늘은 같이 수련 하시게요?’
‘사부님의 파쇄보법의 마지막 24진까지 모두 기억하고 있는 마당에, 언제나 엉거주춤 서성이면서 사부님의 핀잔만 들어서 되겠느냐? 어서 마무리를 해야지.’
나는 세류곤을 고쳐 잡았다. 세 사람은 서로가 등을 대고 자신의 정면을 바라다 보면서 진을 펼치기 전에 호흡을 가다 듬었다. 등 뒤로 목덜미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설희의 살내음이 은은하게 흘렀다. 그러나, 잡념을 지니기에는 앞으로 놓여진 보법의 난해함이 더욱 괴로운 짐으로 느껴지기만 하고….눈을 감고 서로의 호흡이 어느 순간 일치하면서 끊어 지는 찰나, 서로의 무기가 사방으로 향해 출수하고 있었다. 파쇄보법의 진미는 어느 한 사람이 약진공(躍進攻)을 펼치더라도 그 뒤를 번개 같이 메꾸면서 서로의 등을 대고 있는 간격을 한시도 떨어트림이 없게 하는 것이었다. 그로 인해 세 사람의 형체는 마치 그 사이가 진공인 것처럼 사방에 적들이 밀려 오더라도 결코 뚫을 수 없게 만드는 그 철벽이 주위로 존재하듯, 보이게 해야 했다. 또한 사부님께서는 많은 적들을 상대로 싸울 때에는 기의 소모를 최대한 도로 자제해야 하므로, 스스로 기를 뽑아 올리기 위한 기합 이라든가, 내공출수(內攻出手)등은 극도로 절제 시켜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아무리 파쇄보법의 24진을 다 펼친다 할지라도 주위에는 검기가 땅을 가르는 폭음과 우리들이 휘두르는 무기가 바람을 가르며 내는 소리이외에는 들리질 않았다. 파쇄보법의 24진은 세 사람에게 각기 자신의 특징을 극도로 활용할 수 있는 8개의 진이 교대로 나열되어 있고, 상황의 변화에 따라 시시각각, 보법의 현란한 변화를 통해 다양한 진을 무한정으로 연결 시켜 나갈 수 있는 묘미가 버티고 있었다. 내 뒤에서 훅 하는 느낌과 함께 진명의 기가 빠져 나가면서 허공을 휘돌리는 진명의 연월장창이 번뜩였다. 이어서 설희의 화혼쌍검이 정면의 주변으로 검기를 흩뿌리면서 뒤로 비월하고, 나는 두 사람의 보조에 맞추어 제 4진의 보법을 이용해서 세류곤의 휘청거리는 끝을 뒤틀면서 내질렀다. 온 수련장을 세 사람이 춤을 추듯이 돌아가면서 진을 펼치는 모습은 뿌려지는 피와 시신이 없기 때문인지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 같은 형상이었다. 가장 어려운 과정은 바로 마지막 24진 이었는데, 이것은 다른 파쇄무의 필살진법과 다르게 서로가 진을 펼칠수록 점점 원을 크게 그려가며, 23개의 보법을 모두 자신의 무기에 적용시켜 공세를 확대해 나가는 각개격파의 진수를 담고 있었다. 이 24개의 보법이 마무리 되면, 한도 끝도 없게 펼쳐졌던 세 사람의 간격은 순식간에 맨 처음의 진으로 형태를 축소시키면서 끝을 맺게끔 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었다. 서로가 조금 서투른 감이 있기는 했지만 사부님께 혼이 난 뒤 끝이었는지, 아니면 설희의 정성이 담긴 끼니 꺼리로 인한 용기백배 였는지는 몰라도 세 사람은 오랜 만에 파쇄무의 마지막 진까지 펼치면서 서로가 마주보는 자세에서 무기를 거두어 들이며, 마무리를 할 수 있었다.
‘짝짝짝짝…..’
‘어? 사부님?’
언제 나오셨는지 미동도 알아차릴 수 없을 만큼 순식간에 사부님은 우리를 굽어보고 박수를 치고 계셨다.
‘잘했다. 내가 가르친 보람이 있구나. 오늘 저녁에는 모두 목욕재개 하고, 옷을 단정히 입고서 끼니를 일찌감치 떼우거라. 내 긴히 할 말이 있구나.
평소와 다르게 칭찬과 더불어 긴요한 말씀이 있으시다는 말에 세 사람은 온 몸에 솟아나는 땀방울을 훔칠 겨를도 없이 서로가 마주 볼 뿐이었다. 밤중의 깊은 산중에는 고즈넉함 보다는 적막감이 더했다. 작은 호롱불만을 밝힌 방안에 사부님을 마주하고서 나를 비롯한 세 사람은 정좌한 자세에서 사부님의 가르침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냇가에서 멱을 감고 왔음 인지, 온 몸이 서늘한 기운마저 감도는 것이 소름이 돋기까지 한다.
‘내 너희들에게 무예를 가르친 것이 어언 십 수년이 넘는구나. 허 참… 세월도 허망하지.’
‘그래도 저희가 아직 사부님이 원하시는 경지에 태부족으로 미흡합니다.’
‘아니다. 관백아, 너희는 아주 잘 따라와 주었다. 내가 평생을 걸쳐 파쇄무에 매달린 이유를 지금부터 설명하겠다.’
우리 세 사람은 사부의 입으로부터 그런 류의 얘기는 들어 온 바가 없었다. 언제나 매일이 반복되는 고된 무예연습 뿐이었고, 앞으로 나아가기 만을 고집하실 뿐이었는데…
‘오래 전, 나는 좌의정 양반의 천거로 궁에 들어갔단다. 그 당시 나의 스승 이셨던 백운거사와 절친한 분이셨지. 파쇄무의 일부를 스승님으로부터 전수 받고, 나 나름대로는 검에 자신이 있던 때 였었지만, 스승님 께서는 파쇄무의 비급이 담긴 고서만을 남겨 주시고, 내가 마무리를 하지는 못하도록 하셨지. 다 이유가 있었지만…궁에 들어가 나에게 주어진 임무는 상감마마를 최측근 에서 보필하는 것이었다. 주위에는 비호대(飛護隊)가 버티고 있으면서 언제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상감마마를 시해할 수도 있는 자객이나 역모의 의도를 안고 접근해 오는 조정의 간신배들을 단숨에 척결해야 하는 임무를 띄고 있었지만 나의 할 일은 그 비호대의 방어선이 뚫렸을 때, 마지막까지 전하를 위해 사생결단을 내야 하는 중요한 임무였었다. 이해가 가느냐?’
‘네.’
‘세상 사에 미숙했던 나는 궁에 들어가 천하를 호령하는 상감마마의 주위에서, 그 힘보다도 더 큰 목소리로 세상을 뒤흔들어 대는 간신배들의 못된 처사를 똑똑히 대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고민으로 날을 새시는 상감마마의 쓰라린 심정을 대할 때마다 가슴이 저려왔었지.’
스승님은 잠시 말씀을 놓으시면서 한숨을 내쉬셨다.
‘당파끼리 서로에게 걷잡을 수 없는 정쟁을 불러 일으키고,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죽여야 하는, 물고 물리는 아수라장으로 조정이 변질되어가기 시작할 무렵, 나를 천거 하셨던 좌의정 양반이 스스로 사직하고 낙향을 하는 일이 벌어진 게다.’
‘그게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진명이 멀뚱한 표정으로 스승님께 물었다.
‘상관이 있었지. 나를 천거하셨던 그 분이 조정에서 사라지자, 그의 인맥을 타고 조정과 궁에 포진 되어 있던 세력들은 하나 같이 옷을 벗게 된 것이야. 나를 포함해서 친위대와 비호대의 많은 청렴한 무인들이 옷을 벗거나, 외지로 쫓겨나고, 심지어는 변방으로 발령을 받아 다시는 고향 땅을 밟아 보지도 못하게 된 사람들도 있었구나. 나는 다행히 낙향하신 양반의 보호아래 식객으로 머무를 수 있었고….그러다, 동문수학한 절친한 친구가 조정 간신배의 괴수 격인 김 대감의 음모로 인해 반역으로 몰려 본인은 참수를 당하고, 가족들은 관가의 노비로 팔려갈 것을 가까스로 빼내어 자신의 집으로 불러 들여 살게 했던 것이지.’
‘그렇다면?’
‘그래, 너희들은 가족이란다.’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있었으되, 유독 설희만은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설희는 애초부터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설희가 없이는 파쇄무를 완성시킬 수 없기 때문이었지.’
갑자기 닥쳐온 출생의 비밀에 대한 언급으로 인해 가슴이 소용돌이 치고 있는데, 그건 또 무슨 소리인지 감감하기만 했다. 벌써부터 진명은 눈물을 글썽이면서 설희의 손을 붙들고 있었다.
‘스승님,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나의 눈에서는 불똥이 튀고 있었다.
‘분을 가라 앉히거라. 그리고 내 말을 똑똑히 잘 들어야 한다. 너희 삼남매는 노비로 팔려 평생을 노비의 신분으로 살았을 운명이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너희 부친을 비명에 가게 한 그 김대감 놈을 잡아 복수할 꿈이나 꿀 수 있었겠느냐? 나는 아직까지 너희들에게 파쇄무를 가르친 것에 후회를 해 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파쇄무는 초절정의 무예이면서 한 사람으로는 완성 될 수도 없을 뿐더러 그 심오한 깊이를 아무도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지.’
‘그래서 스승님은 저희들의 의사 같은 것은 아예 묻지도 않으시고, 그렇듯 살상의 극을 달리는 초극살 무예를 저희들에게 전수하시려고 애쓰셨단 말입니까?’
목소리를 높일 줄 모르던 내가 버럭 소리를 치는 통에, 주위에 있던 진명과 설희가 고개를 번쩍 치켜 들었다.
‘관백아, 어린 핏덩이들에게 사람을 죽여야만 하는 무예를 전해야 하는 나에게도 많은 생각이 있었다. 복수는 복수를 낳고, 그로 인해 피를 부르는 악연의 수레바퀴는 계속 돌게 될 것이라는 점, 어찌 내가 모르겠느냐? 그러나, 내가 너희들에게 무예를 전수 하려 한 것에는 다른 의도가 있었느니라. 이제는 자리에 누워 운신이 불가능한 좌의정 영감이 나에게 한 말 때문이었지. 언젠가 그 놈의 김대감은 조정을 장악하고, 세력을 규합하여 결국에 가서는 큰 일을 낼 것이라고 말이야.’
‘큰일 이라뇨?’
‘역모인 것이지.’
‘역모 라니요?’
‘그래, 역모지. 지금부터 사흘 후, 자시를 기해 궁을 급습해서 상감마마를 시해하고, 왕족을 비롯해서 자신의 반대 세력들을 단번에 해치울 계획이 이미 진행 중인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천기를 거스르는 일을 해 본적이 없다. 내 스스로 이 날까지 살면서 너희들에게 너희의 자유 의지를 거스르면서 무예를 강제로 전수 시킨 죄 밖에는… 그러나, 내가 너희들이 어릴 적, 파쇄무의 완성을 앞두고, 그 비급의 마지막 종이갈피에 비밀스럽게 접혀져 들어가 있던 그 서찰을 보고는 너희들에게 무예를 가르치려고 했던 그 사실도 모두 역사와 세월 속에서 거스를 수 없는 또 하나의, 넘어야만 할 고갯마루 인 것을 깨닫게 되었단다.’
‘서찰은 또 무슨 말씀이신지요?’
내가 다시 물었다. 밤은 깊어 가는데 방안은 더욱더 복잡하고 미묘하게 꼬여가는 세상사의 얘기들로 후끈 달아 오르고 있었다.
‘나의 스승이셨던 백운 거사님 조차도 파쇄무를 완성하실 수 없었다는 내용이었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 파쇄무는 고래로 자객에게 전수되었던 무예라고 밝히셨던 것이지. 그 비급을 우연 찮게 손에 넣게 된 스승님께서 그 비급을 보다 좋은 일에 쓰려고 면벽참선 하시는 도중에, 앞날의 일을 꿰뚫으신 게지. 이제부터 하는 말을 잘 듣고, 이제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너희들의 의견을 마지막으로 물을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세 사람 모두 끝끝내 긴장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파쇄무는 네 사람이 한 무리가 되어 이루어지는 필살무예다. 그러나, 정작 무예를 휘두르는 것은 세 사람이고, 너희들도 연마 했다시피, 24진법은 모두 세 사람만을 위한 보법으로 꾸며져 있다. 그 말은 세 사람을 위해 누군가 한 사람은 희생되어야 한다는 말이고, 그로 인해 세 사람은, 세상에 보기 드문, 절세의 공력을 갖춘, 무예의 경지에 오르게 된다는 말이지. 더군다나 내가 말했듯이 이 무예는 누군가를 반드시 암살해야만 할 때, 죽기를 각오하고 연마하는, 살기(殺氣)로 점철된 것이란다. 그런데, 어째서 혼자서는 완성할 수가 없는 것인지 알 수 있겠느냐?’
나는 그때서야 무릎을 탁 쳤다.
‘혹시 마지막 24진법은 죽음을 앞두고, 온 몸을 불사르면서 서로의 무운을 빌며, 초개와 같이 산화하는 진법이란 말입니까?’
‘역시 맏이 답구나. 그래, 너희들의 무예는 죽음을 전제로 한 무예 비급인 게야.’
가장 어린 진명의 눈이 커지면서 아직 채 마르지도 않은 눈물을 훔치며, 울먹였다.
‘사부님…. 누님과 형님이, 사형과 사매가 아닌 것을 이제 사 알았는데, 벌써 죽으라니요? 해도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어찌 사내 대장부가 큰일을 앞두고, 미미한 속세의 인연에 연연해 하느냐? 내가 너희를 그렇게 가르쳤더냐?’
‘죄송합니다.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내 가슴도 무척이나 쓰리고 아프다. 젊디 젊은 너희들에게 세상의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지는 못할 망정, 이렇듯 죽음으로 내몰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잘 들어라, 나라가 있고, 군왕이 건재해야, 너희들도 있는 법, 위기에 처한 한 나라의 군왕을 죽음으로 보필하러 나가는 일에 머뭇거려서는 안 될 일. 설령 내가 사람의 목숨을 파리처럼 짓이기는 초극살 무예를 전수하였다 손 치더라도 쓰레기 같은 것들을 쓸어버리고, 군왕을 보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어찌 저어할 수 있는 이유가 되리!’
세 사람은 장엄한 스승님의 서슬에 감히 고개도 들지를 못하고 있었다.
‘다만, 이 모든 완성의 열쇠를 설희가 쥐고 있기에, 나는 여태까지 그 답을 듣지 못하여 고민하고 있었을 뿐이다. 설희야, 어떠하냐? 이제 마음의 결정을 보았느냐?’
설희는 대답을 못하고 있었다. 이어 단호한 얼굴로 설희가 고개를 들었다.
‘오라버니, 그리고, 동생, 아버님의 원수를 갚아야 된다는 생각에 이제까지 이를 악물고 버텨 왔지요. 눈물을 흘리며, 화혼쌍검을 휘두르면서 저는 사실, 오늘이 오기만을 기다렸다고 고백하렵니다. 어차피 인생에 두 번의 죽음은 없지요. 살아서 욕 되느니, 죽어서 아버님의 상한 혼령이나마 위로해 드리렵니다. 누구를 본의 아니게 죽이는 것도 아니고, 우리에게는 임금을 지켜야 한다는 명분이 있질 않습니까? 저는 스승님의 말씀에 따를 것입니다.’
나와 진명은 설희의 단호한 결심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었다.
‘그래, 너희들도 잘 들었으리라 믿는다. 너희들은 어떠하냐, 마지막으로 물으마.’
그러나, 설희의 말대로 우리의 출사는 그 명분이 있었다. 더 이상의 주저함은 스스로 욕됨을 자처하는 길일 뿐이라는 생각이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
‘형님, 누님, 저는 스승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나는 대답 대신 스승님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오냐, 장하다. 그럼, 이제부터 파쇄무의 마지막을 전수하겠다. 설희는 그것을 갖고 오너라, 알았지?’
설희는 방을 나가더니만 술잔 셋과 술병을 들고 들어왔다. 사람은 넷인데, 잔은 세개라,…. 이별주라도 해야 할 판인데 세 개뿐인 잔으로 인해 어리둥절 하고 있었고…
‘자, 이 술잔이 너희들과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나누는 술이 될 듯 싶구나, 어서 주욱 들이키거라.’
스승님께서는 세 사람에게 술을 잔에 가득 따라 주시었다. 녹차와 같은 연한 빛깔의 술이었으되, 냄새는 없었다.
‘너희의 할 일을 끝까지 마쳐야 하느니라. 그 전에는 죽을 수도, 살수도 없음을 명심하도록… 어서 들라!’
술을 들이키자, 목구멍에서부터 짜르르하니 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술의 여운이 속속들이 느껴졌다. 술이 위장에 도달하기도 전에 갑자기 눈알이 튀어 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온 전신을 덮치기 시작했다.
‘모두 가부좌로 틀어 앉아 행공을 중지하고, 기맥에 집중 하지 마라. 절대 움직여서는 아니 된다.’
앞에 앉아 계시던 스승님께서 바람같이 우리 세 사람의 주위로 오시더니 번개 같은 솜씨로 온몸의 기맥(氣脈)과 경혈(經血)을 심타법(深打法)으로 내리치고 찍어 버렸다. 눈 앞이 까매지는 것 같더니만 이내 정신이 돌아왔다. 온 몸의 피가 끓어 오르는 것 같으면서 근질 거려 왔다. 세 사람에게 심타법을 시술하자마자, 나와 진명은 괜찮았지만 설희가 앞으로 고꾸라져 버렸다. 방바닥에 고꾸라져 있던 설희가 온 몸을 비비적대는 것이 나의 느낌과 같은 것을 받는 모양 이었다. 설희가 누운 채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예전의 설희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은 도화빛으로 물들고, 눈은 반쯤 돌아간 상태로 입가에서는 침을 머금고, 배시시 웃기 시작했다.
‘자, 너희는 이제 말도 할 수가 없다. 방금 전에 마신 것은 음혼경활환(淫魂經活丸)이 섞인 술이었다. 그 술을 먹게 되면, 참을 수 없는 음욕이 치밀어 합환하지 않고는 기맥이 역류하여 살 수가 없게 된다. 더군다나 그 약은 파쇄무를 마지막으로 전수 하는 데에 없어서는 안 될 비약이다. 그 약의 성분 중에는 기맥이 역류하는 것을 막기 위해, 너희의 신체상에 존재하는 모든 기경맥류를 다 열고야 마는 효능이 있지. 이제 너희들은 나의 마지막 전수를 위해 음교접합익(淫橋接合翼)의 자세로 전환 될 것이다. 수리수리 000 000 0000 000…….’
스승님은 알아 들을 수도 없는 주문을 외우고 계셨다. 우리 세 사람은 방금 에서야 알아 본 친 혈육임을 알면서도 서로의 옷을 친절하게 맛이 간 얼굴로 벗겨 주고 있었다. 알몸이 되고 나서 말도 행동도 내 마음대로 되질 않고 귀만 열려있는 내 자신이 제일 놀란 것은 몸의 상태 였다. 머릿 속은 참을 수 없는 음탕한 생각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고, 동생 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앞에 누워 옷이 벗겨진 채로 온 몸을 손으로 연신 쓸어대고 있는 사람이 한낱 여자로 보이고 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남근은 하늘을 찌를 듯이, 거세게 발기되어 온통 살거죽이 터질 듯이 빤질거렸다. 설희도 마찬가지 였다. 벌려진 가랭이 사이로 생전 처음 대한 여인네의 음곡이었으나, 그곳에서 시내 흐르듯이 질질 흘러 내리는 음수는 멀리서도 확연히 보이고 있었다. 주문이 더해지자, 세 사람은 꼭두각씨 인형처럼 스승님의 주문에 맞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진명이 천장을 보고 드러눕고, 그 위에 설희가 스승님을 향해 얼굴을 든 채로, 음문에다가 진명의 거대하게 발기된 남근을 맞추어, 꼭꼭 포개서 박아 버렸다. 나는 설희의 뒤로 다가가 설희의 그 허연 엉덩이를 붙들고, 설희의 항문에 내 샅을 거시게 들이미는 것이 아닌가? 우리 앞에 서 계시던 스승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내렸다.
‘관백아! 너만 온전히 정신이 들어 있을게다. 진명과 설희는 해독약을 먹이고 나면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너희와 나도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 온 것 같구나. 나의 유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 주려므나. 이제 나의 모든 진기와 공력이 설희의 입을 타고 너희 세 사람에게 도달할 것이다. 그리 된 후에는 이미 너희의 몸은 칼이나 창으로도 뚫을 수 없이 탈태환골된 초절정 육신으로 화해 있을 것일 테지만 아마도 나흘을 넘기진 못할 게야. 칼에 베어도, 창에 찔려도 나의 공력과 진기가 너희의 기맥을 제압하고 있어서 통증도, 피도 별로 나오지 않을 것이니까. 그러나, 그 기력이 사라지기 전에 너희 세 사람은 상감마마를 안전한 곳으로 모셔야 한다. 이미 도성 주변의 우군진영에 파발마가 떠났고, 역모에 동참한 도성 근교의 세력들이 궁안의 역모세력과 규합하지 못하게 궁 밖에서는 그들이 도맡아 싸울 것이다. 너희들이 할 일은 죽기를 결심하고, 상감마마의 주위에서 결사적으로 싸우는 일밖에 남질 않은 것이야. 내가 죽고 나면, 내가 짊어지고 다니는 바리떼 에서 비단에 싸인 뭉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안에는 상감마마께서 하사하신 어패가 있다. 그것을 상감마마를 알현할 때까지 몸에 지니고 수문을 통과해야 한다. 상감께서 그 어패를 보시면 너희에게 모든 것을 일임하실 것이야. 그 다음은 더 이상 내가 말해 줄 것이 없구나. 너희에게 이런 무거운 짐을 남기고 가야 하는 내가 사부로서 너희를 대할 면목이 없다.’
스승님은 마지막으로 궁궐쪽을 향해 마지막 하직인사를 올리고, 옷을 벗으셨다.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심타법으로 곳곳의 기혈을 난타하셨는데, 우리와는 조금 다른 부위를 집중적으로 스스로를 가격하셨다. 두 손을 합장한 채로 눈을 감으셨는데, 눈 앞에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졌다. 노인의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거봉이 스승님의 아랫도리에서 쑥쑥 자라나듯이 커져 가는 것이었다. 온 몸의 핏줄은 퍼렇게 피부 밖으로 튀어 나올 것처럼 불거져 나오고, 스승님의 남근은 그 크기가 잘자란 무우만 했고, 그 색은 거의 흑색에 가깝도록 변하고 있었다. 스승님은 자신의 음문과 항문에 동시에 박혀있는 두 남자의 색끈한 좇대가리에 넋을 놓고, 입을 벌린 채로 생글거리고 있는 설희의 입안에 그 무지막지한 좇을 서서히 들이미셨다. 그리고, 다시 또 주문을 외우기 시작하셨다.
‘아! 스승님, 스승님, 스승님!’
그러나, 그 목소리는 내 목 안에서만 뱅뱅 돌뿐, 들리질 않았다. 주문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설희의 항문에 박혀 있던 내 좇몽둥이를 타고 시원한 물줄기 같은 것이 씨웅씨웅 하면서 쳐들어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사부님의 피와 살이 뭉쳐진 공력과 진기였다. 소리를 친 이유는 시간이 경과 할수록 주문을 외우시는 사부님의 살거죽이 점차 말라 들어갔기 때문이었다. 이제는 주문 소리도 들리질 않을 정도로 죽어 들어가고, 스승님의 몸은 뼈와 가죽 밖에 남질 않았고, 몸을 움직거리지 못하는 나의 눈에서도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더 이상 내 경도를 타고 흐르는 그 느낌을 받을 수 없게 되자, 곧 이어서, 내 남근은 미친 듯이 참았던 좇물을 설희의 항문 속으로 뿜어대며 허릿짓으로 정신을 놓았다. 밑에서 설희의 음문에 좇을 끼워 넣은 채로 발광을 떨던 진명도 이내 몸의 경련을 하더니만 기진해서 혼절하고, 설희도, 두 남자의 사정과 때를 같이해서 진명의 몸 위로 스승님의 남근을 입에 문 채로 엎푸러지고…..나는 그리하고 있을 겨를이 없었다. 기맥이 조금씩 정상을 찾아 가면서 몸을 가까스로 추스리며 두 사람에게 옷을 입히려고 다가갔을 때, 무슨 풀쪼가리 같이 덜럭대면서, 가죽 같은 것이 설희의 입에 물려 있는 것이 보였다. 이미 피 한방울도, 남지 않고 살거죽만 남은 스승님의 좇을 물고 쓰러지니 찢어질 수밖에 없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우선 스승님의 시신에 옷을 입히고, 나머지 설희와 진명에게 차례로 옷을 입히고, 나를 포함해서 세 사람 모두 스승님이 말해 놓으신 그 해독약을 들이키게 했다. 정신을 차린 진명과 설희는 흉한 뼈다귀 몰골로 변해 세상을 뜬 스승님의 시신을 붙들고 대성통곡을 했지만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었다. 날이 밝기 무섭게 나와 진명, 설희는 서로의 무기를 챙겨 들고, 길 떠날 채비를 했다. 스승님을 뒤로 묻고, 거처를 떠나는 세 사람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고…나는 그곳을 떠나기 전, 스승님께서 가슴에 품고 계시던 파쇄무의 비급을 스승님의 시신과 함께 묻어 버렸다. 더 이상, 이렇게 불행한 스승과 수제자가 생겨나지 않기를 기원하면서…..
이후로 그 세 사람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다만 비단에 싸여, 어패로 봉해진 채, 상감마마의 침소에 걸려있는 세류곤과 연월장창, 그리고, 화혼쌍검만이 상감마마의 서글픈 심사를 시시때때로 달래 주었다고 전해진다.
-끝-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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