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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꿈꾸는 늑대 - 105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9:23 924회 0건
낭만을 꿈꾸는 늑대 105부

수영은 인천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혼자 있는 사무실에서 소파에 깊숙이 앉자 생각에 잠겨 있었다. 수혼과의 만남과 조직 간의 혈투는 수영을 지치게 만들었다. 하루라는 짧은 기간에 천국과 지옥을 다녀온 느낌이다. 생각해보면 수혼이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면 자신들은 전멸(全滅)할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그나마 수혼이 순순히 물러났기에 갈치파가 전멸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수영은 머릿속이 혼란스럽다. 수혼과의 만남을 계속할수록 그에게 빠져드는 자신을 주체할 수 없다. 그와 함께 있으면 자신이 일파의 수장이라는 사실도 잊어버리고 그냥 평범한 한 여인이 되어버린다. 그에게 무슨 마력이 있는 것일까? 왜 그에게 자꾸만 빠져는 것일까? 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 자신과 비슷한 내력을 가진 사내.......자신과 비슷한 향기를 풍기는 사내.........그에게 느끼는 감정은 가족 같은 푸근한 감정이다. 그는 비록 적(滴)이지만 미워할 수 없다. 이것이 무슨 일이란 말인가? 자신이 한 남자에게 빠지다니...........상상조차 해보지 않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수영은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든다. 지금 수혼을 생각할 때가 아니지 않는가? 자파(自派)의 피해상황을 점검하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 고민해도 부족할 시간에 수혼이나 생각하고 있다니.........자신이 한심하다.

갑자기 사무실 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급하게 들어온다. 이곳은 수영의 집무실이다. 보스인 그녀의 집무실을 노크도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사무실에 들어온 남자는 무척이나 흥분한 모습이었다. 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호흡은 상당히 거칠었다. 남자는 수영이 소파에 앉아 있자 한번 심호흡을 하고나서 성큼성큼 걸어와 수영에게 인사를 했다. 수영은 남자를 보았다. 이 무석이다........평소에 차분하고 말이 없는 사람이다. 그가 무슨 일로 이렇게 흥분한 것일까? 수영이 무석을 보고 고개를 끄덕이자 무석은 수영의 반대편에 앉았다.

“원예님.........방금 병원에서 오는 길입니다. 매(梅)가 크게 다쳤더군요.”
“알고 있어요. 무석님은 매가 입원한 병원에서 오시는 모양이네요?”
“예~ 다리에 검을 맞아 한동안은 병원신세를 져야하고 잘못하면.........불구가 될 수도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 원예님은 매를 보고나 오셨는지요.”
“아직 가보지 못했어요. 지금 나머지 사군자에게 피해상황을 조사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했어요.........보고를 받고 가려고 합니다.”
“가실필요도 없어요. 매는 제가 돌보겠습니다.”

울분을 억누르는 듯한 무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수영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무석을 보니, 무석의 얼굴은 탁탁하게 굳어있었고 무릎위에 올린 손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무석을 보았던 수영이지만 무석의 이런 반응은 처음 본다.

“원예님은 많은 실수를 하셨습니다. 오늘 본 원예님은 저희들이 그동안 보았던 원예님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무석님이 오늘 제게 불만이 많은 모양이네요. 그래 제가 무슨 실수를 했다는 거죠.”
“원예님은 우리의 보스입니다. 그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지만 아무리 보스라 하여도 사전에 한마디 상의도 없이 독단적 판단으로 전투를 벌인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일은 시급(時急)을 다투는 사안이란 어쩔 수 없었어요.”
“제 말 끝나지 않았습니다. 오늘 원예님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우리는 소기의 성과도 얻지 못하고 엄청난 타격을 받았습니다.”
“지금 저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뭐죠?”
“원예님..........원예님은 그동안 냉철한 판단력과 과감한 결단력으로 우리 갈치파를 무리 없이 이끌어 오셨고, 우리들의 오랜 염원(念願)이었던 서울 정복의 목표를 반 이상을 달성하셨습니다. 하지만 원예님은 강철파가 무너진 이후 서서히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 원예님의 모습은 우리가 믿고 따르던 원예님의 모습이 아닙니다.”
“................제가 옛날과 틀려졌다는 말씀인가요?”
“예~ 오늘 일만 보아도 그래요. 옛날 원예님이라면 전투에 임하기 전에 우리와 충분하게 논의함으로서 상대방의 전력을 철저하게 파악하고,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분석하고 나서 전투에 임했을 겁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런 사전절차를 완전히 무시했습니다.”
“좀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시급을.........”
“원예님! 원예님의 잘못된 판단으로 수많은 화랑들이 죽었습니다. 더구나 사군자(四君子)중 매도 병신이 되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때 노크소리가 들리고 사군자가 들어왔다. 그녀들은 원예와 무석의 분위기를 보고 자리에 앉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녀들은 문밖까지 들려오는 무석의 고함소리를 들었다. 참분한 성격인 무석이 큰소리를 칠 정도면 분위기가 심각한 상황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수영은 억지로 웃는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피해상황 점검은 끝났어요.”
“예~ 지금 막 끝났습니다.”
“피해가 막심하겠죠. 매(梅)까지 다친 상황이니 안 들어도 뻔하겠죠.”
“무석님...........일단 들어보죠. 란(蘭)님이 보고하세요.”

사군자는 두 사람의 눈치를 보다가 자리에 앉는다.

“출동했던 300명의 화랑들 중 사상자(死傷者)가 200명이 넘고 사상자 대부분이 중상이상이며 경상자는 겨의 없습니다.”
“한마디로 200명 이상의 화랑들이 전력에서 이탈(離脫)했다는 말이네요. 거기에 매(梅)까지 부상중이니........”
“무석님 아직 보고도 끝나지 않았어요. 다 듣고 나서 말씀하세요. 란님! 계속 보고하세요.”
“예~ 무석님 말씀대로 사군자 중 매(梅)님도 중상입니다. 다음으로 성민파의 피해상황을 보고하겠습니다. 성민은 죽은 것으로 판단되며 성민이 이끌고 있던 병력은 모두 전멸(全滅)했습니다.”
“천랑파의 피해상황은 파악되었나요.”
“정확한 통계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충 현장상황을 보고 판단하기로 250명 정도의 친위대 중 절반이상은 전멸했다고 판단됩니다. 다음으로 종합보고 입니다. 천랑파보다 우리 측의 피해가 많았던 이유는 천랑파에 속해 있던 일부 고수들 때문이라 판단됩니다. 특히나 유엽비도를 날리는 미희라는 여인에게 당한 화랑의 숫자가 80여명이 넘습니다. 이상입니다.”
“한명에게 80명이 당해요. 참~.........거기에 250명중 절반이라면 130명 정도인가?.........원예님........한번 따져보죠. 오늘 출동한 이유가 뭐죠. 성민파를 보호하기 위해서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성민은 죽고, 성민파는 전멸하고, 200명의 화랑들도 망가지고..........도대체 오늘 전투에서 우리가 얻은 게 뭐죠. 거기에 제가 듣기론 막판에 천랑파 기동대까지 출동해서 천랑이란 놈이 스스로 물러나지 않았다면 전멸(全滅)할 수도 있었다죠. 원예님........원예님의 잘못된 판단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어요. 이일을 어떻게 책임지실 거죠.”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원예님은 최선을 다했어요. 무석님 말씀이 심하군요.”

작가 주 : 盡人事待天命 - 최선을 다한 후에 하늘의 뜻을 기다림

“뭐가 진인사대천명입니까? 우리 본진은 인천에 있고, 천랑파 본진은 일산에 있습니다. 전투가 벌어진 곳이 용산이라면 천랑파의 이동거리가 우리보다 훨씬 짧아요. 천랑파의 지원 병력정도는 예상했어야 했어요. 거기에 우리 쪽 사상자(死傷者)가 상대방에 비해 배가 넘는다면 예초에 상대방에 대한 전력분석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다시 질문하죠. 원예님은 천랑파가 성민파를 공격할 것이란 정보를 어디서 얻으셨죠.”
“그.........그건.”
“왜 대답을 못하시죠. 흥~ 대답하시지 않아도 좋아요. 조사하면 알겠죠. 하여튼 오늘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겠습니다.”

무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원예의 말도 듣지 않고 밖으로 나가버린다. 수영은 불손한 무석의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 사군자도 분위기가 심각하니 별다른 말이 없었다.

“무석이 왜 저렇게 화를 내는 거죠? 평소에 차분한 사람인데 이상하네요.”
“저........그게........매(梅)님이 중상을 입어서 흥분한 모양입니다.”

수영의 물음에 사군자중 죽(竹)이 힘들게 입을 열었다.

“매님이 중상을 당한 것과 무석님이 흥분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죠.”
“매님과 무석님은...........연인관계 같아요. 남들 이목(耳目) 때문에 드려내 놓고 사귀지는 못해도 눈치가 그래요.”
“무석님과 매님이 연인이라.........매님이 다쳐서 흥분했다. 그럼 좀 이해가 되네요. 여러분도 내가 어떻게 정보를 입수했는지 궁금해요.”
“사........사실 모두 그 부분에 대해서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원예님은 아무런 말씀도 없이 외출하셨고 늦은 시간에 갑자기 출동명령을 내리셨어요. 문제는 우리가 승리했다면 문제가 없지만 이번 대결은 우리의 완패(完敗)라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무석님의 태도로 보아서는 가만있지 않을 것 같아요.”
“휴~ 힘들군요. 여러분도 절 의심하세요. 설마 제가 여러분을 함정에 몰아넣었다고 생각하세요.”
“그.........그건 아닙니다. 저희들은 원예님을 믿습니다. 다만 무석님이 걱정됩니다.”
“무석님이 어떻게 한다는 거죠. 제 뒷조사라도 하겠다는 건가요.”
“만일 무석님이 원예님의 뒷조사를 해서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원예님의 과오를 밝혀내고 원로원에 보고하며 원예님도 난처해지실 겁니다.”
“맘대로 하라고 하세요. 죄가 있으며 받아야겠죠. 오늘은 이만 모두 물러가세요........참 가시기 전에 란님은 저랑 잠깐만 이야기 좀 하고 가세요.”
“예~ 편해 쉬세요. 저희는 매(梅)님께 들렸다가 가겠습니다.”

국과 죽은 물러가고 란은 자리에 남았다. 원예는 가슴이 답답해 란을 남게 했다.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싶었기 때문이다. 란이라면 자신을 이해할 것이다. 그도 수혼을 사랑했지 않았던가? 란은 원예가 깊은 상념(想念)에 잠겨있는 것처럼 보여 쉽게 말도 꺼내지 못하고 그녀의 말을 기다렸다. 하지만 원예가 계속 말이 없자 힘들게 먼저 입을 연다.

“원예님........무슨 고민이라도 있습니까?”
“란님도 제가 의심스러워요.”
“저를 비롯하여 사군자는 언제나 원예님 편입니다. 저희가 원예님을 믿지 않으면 누굴 믿겠습니까?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휴~ 란님........란님께라도 사실대로 말하고 싶어요. 저 사실 고민이 많아요.”
“무슨 고민인지 말씀해 보세요. 제가 모두 들어 들일게요. 원예님도 제 고민 많이 들어주셨잖아요.”
“고마워요. 저 사실은 그 정보 수혼씨에게 들었어요.”
“예~ 수.......수혼씨.........에게 들어요. 어떻게 그런 일이..........혹시 원예님이 말씀도 없이 나가서 만난 사람이 수혼씨.........맞습니까?”
“맞아요. 수혼씨와 만나고 있는 와중에 수혼씨에게 걸려온 전화를 듣고 알았어요.”
“말도 안돼. 왜 수혼씨와 원예님이 만나신 거죠. 그것도 저희들에게 말씀도 없이..........호.......혹시 원예님이 수혼씨를..........아니죠. 그건 아니죠.”
“란님의 예상대로예요.”
“예~..............원예님도 수혼씨를 마음에 두고 있다는 말씀입니까?”
“그건 모르겠어요. 제가 그를 사랑하는지는 몰라요. 다만 그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져서 좋아요. 오늘도 수혼씨가 만나자고 해서 둘이서 만났어요. 아마 그 전화만 없었다면.......지금 수혼씨 품에 안겨있었을지도 몰라요.”
“하~..........원예님이 그렇게까지.........수혼씨는 뭐라고 하죠.”
“글쎄요.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같이 살자고 하네요. 풋~ 웃기죠. 그 사람에게 한명도 아니고 여러 명의 부인들이 있는데도 제가 그 말을 넘어갔다니 말이죠.”
“수혼씨가 그렇게 말했다면 진심일겁니다. 그 사람.........거짓말 못해요. 이젠 어떻게 하실 거죠. 이 사실이 밝혀지면 아무리 원예님이라도 무사히 넘어가긴 힘들어요.”
“그러겠죠. 당장 사부님부터 절 죽이려하시겠죠. 휴~ 한숨이 나오네요.”
“원예님.......정말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죠.”
“잊어야죠. 한때 스쳐가는 폭풍이겠죠.”
“글쎄요.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아요. 원예님 말씀 들어보면 원예님은 이미 수혼씨 사랑하고 있어요.............그래도 저보다 낮군요.”
“예~ 무슨 말씀이죠.”
“아니에요. 더 이상 하실 말씀 없으면 전 이말 일어나겠습니다.”
“그........그래요.”

란은 자리에서 일어나 원예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이 무척이나 슬슬하게 보인다. 란은 밖으로 나와 홀로 밤거리를 걸었다. 그를 잊으려 부단히도 노력했다. 자신의 본분에 충실하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래도 아직도 그를 잊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원예가 수혼을 좋아하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하늘이 무너진 것 같은 충격을 받았다. 자신이 수혼을 잊었다면 이런 느낌은 아니었을 것이다.

원예는 수혼을 사랑한다. ‘지금 수혼씨 품에 안겨있었을지도 몰라요’라고 말할 때 그녀의 표정은 무척 행복해 보였다. 그리고 ‘진심인지 모르겠지만 같이 살자고 하네요.’라고 할 때도 전정으로 행복해 보였다. 자신도 사랑이란 걸 해보지 않았는가? 그런데 자신은 수영의 말을 들었을 때 칼로 가슴을 후벼 파는 것처럼 아팠다. 옛날 얼마나 자신이 수혼에게 매달렸는가? 그의 사랑을 얻고자 얼마나 노력했던가? 그때 수혼은 자신을 거부했다. 그런데 원예님은 아닌 모양이다. 이젠 잊어야 한다. 원예님까지 그를 사랑한다면 정말 잊어야 한다.

무석과 매의 관계는 란과 강기와의 관계와 비슷한 관계다.(글 읽으며 잡음 들어가면 안 되겠지만 이 부분 정말 이해하기 난해하네요. ^^;;) 다만 란과 강기와 다르다면 매와 무석은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무석은 자신이 사랑하는 매가 불구가 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불같이 화가 났다. 그는 원예를 원망했다. 그녀의 잘못된 판단으로 인해 매가 그리 된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원예를 용서할 수 없었다.

법암은 성민부자가 떠나자 자신도 길을 나섰다. 이젠 자신도 마음속에 번뇌(煩惱)로 남아있는 과거를 정리해야 되지 않는가? 그는 수혼에게 봉황검(鳳凰劍)을 주었기에 성민의 집에 있던 한 자루 검을 챙겼다. 그가 막 성민의 집을 떠나려는데 청니가 법암에게 달려왔다. 청니는 싸움이 시작되고 불안한 마음에 집안에 숨어 있었다. 그리고 법암의 품에 안겨온 성민의 모습과 성민을 안고 떠나는 성철을 모습을 보았다. 이제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성민이 데리고 있던 다른 여자들이야 갈 때라도 있다. 그녀들은 이곳이 자기나라이니 말이다. 하지만 자신은 아니지 않는가? 그녀는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법암의 앞을 막은 것이다.

“스님 절 대려가 주세요. 거두어 주시면 뭐든지 하겠습니다.”
“성민은 이미 죽은 거나 진배없어요. 시주도 이제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세요.”
“전........조선족입니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돈도 없고, 이런 망가진 몸으로 어떻게 고향으로 돌아간단 말입니까?”
“조선족?........그럼 중국이 고향이란 말이요..........시주 인생이란 길을 걷다보면 언덕도 있고, 비탈길도 있고 많은 시련이 있기 마련이요. 희망을 잃지 마시요. 내가 중국으로 돌아갈 경비는 마련해 줄 것이니 고향에 돌아가 새로운 삶을 살기 바라오.”
“스님.......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습니다.”

법암은 그녀에게 중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경비와 얼마간의 돈을 마련해 주었다. 법암이 그녀에게 준돈은 절에 들어가긴 전 자신이 살던 집을 처분하고 은행에 맡겼던 돈 중 일부였다. 법암도 한때는 한 여인과 결혼하여 애까지 낮고 행복하게 살았던 사람이다. 법암은 청니와 헤어지고 강원도로 향했다. 과거의 인연을 정리하기 위해서다. 강원도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과거를 정리하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 순서인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천마월영검(天馬月影劍)이 있지 않는가? 일단 그 검을 찾아야 한다.

수혼은 지나와의 황홀한 첫날밤을 보내고 아침 일찍 깨어났다. 시계를 보니 이제야 5시가 조금 넘었다. 수혼은 전날 많은 잠을 잤기 때문에 일찍 깨어난 것이다. 수혼이 다시 고개를 돌려보니 지나가 자신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그녀는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전날 수혼을 간호하기 위해 밤을 세고, 어제는 수혼에게 시달려 무척 피곤한 모양이다. 수혼은 잠들어 있는 지나의 얼굴을 보다가 손을 들어 흘러내린 머리까락을 머리 뒤로 넘긴다. 지나는 얌전한 고양이처럼 세근거리며 잠들어 있었다. 그녀의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다. 이제 그녀는 자신의 여인이 되었다. 많은 세월동안 서로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서로를 사랑하면서도 쉽게 맺어지기 힘들었던 지나다. 수혼은 그녀의 이마에 키스를 한다.

“음~ 수혼씨 가지 마”
“어디안가? 지금 지나 겉에 있잖아.”

그녀는 수혼의 품으로 파고든다. 아무래도 잠꼬대를 하는 모양이다. 꿈속에서 자신이 또다시 도망이라도 가는 걸까? 수혼은 피식 웃더니 지나의 뺨에 키스를 하고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을 감아도 더 이상 잠이 오기 않았기 때문이다.

수혼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시원한 새벽공기가 창문을 통해 들어온다. 이제 날씨는 완연한 가을이다. 정원에 심어진 나무들이 모두들 형형색색의 옷으로 갈아입었다. 맑은 공기를 마시던 수혼은 다시 창문을 닦았다. 지나가 아직 잠들어 있지 않는가? 지나가 찬바람에 감기라도 들면 큰일이다. 수혼은 다시 침대로 올라왔다. 지나는 옆으로 누워 있었다. 수혼은 그녀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보다가 다시 봉황도를 보았다. 어제부터 여러 번 보았지만 아직까지 그림 속에 숨은 뜻을 모르겠다. 수혼은 다시 정신을 집중하고 봉황도의 숨은 뜻을 찾아보기로 했다.

아침이 되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미나와 미희가 들어왔다. 수혼은 봉황도에 정신을 집중하고 있다가 그녀들이 들어오자 손을 들어 입술을 대고 조용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쌍둥이 자매는 빙그레 웃더니 밖으로 나오라는 신호를 보내고 조용히 나갔다. 수혼은 지나가 깨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옷을 걸치고 밖으로 나오니 쌍둥이 자매가 수혼을 기다리고 있었다.

“동생은 아직 자요. 하긴 이곳에 도착해서 쉬지도 못하고 또 수혼씨 간호하다고 한잠도 못 잤으니 피곤하기도 하겠네요. 수혼씨는 좀 어때요.”
“많이 좋아졌어. 무슨 일이야.”
“식사하셔야죠. 배 안 고파요. 어제부터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요.”
“어쩐지 배가 고프다했어.”
“호~ 지금 보니까 수혼씨 혈색이 좋아진 것 같은데요. 사랑하는 지나씨와 첫날밤을 지내셔서 그런가? 힘들지 않았어요. 몸도 성치 않은데.........하긴 얼마나 바라던 일이야. 힘든지도 몰랐죠.”
“미희. 자꾸 놀리며 다시는 미희 방에 안 들어가는 수가 있어.”
“어머~ 이 남자가 이젠 별 희한한 방법으로 협박하네. 흥~ 누가 그런 협박에 겁낼 줄 알아요. 수혼씨 맘대로 해요. 대신.........제 유엽비도 조심하세요.”
“허걱~ 미.......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호호호~ 농담은 그만하고 식당으로 가요. 다들 기다리고 있어요.”

수혼은 지나를 제외한 나머지 여인들과 식사를 했다. 부인들도 수혼이 몸을 털고 있어나 자신들과 식사를 하자 무척 밝은 표정들이다. 그녀들은 수혼에게 어제 밤일에 대해 짓궂은 질문을 하다가 이내 지나의 몸에 있는 문신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래 지나씨 몸에 무슨 문신이 있는 거죠.”
“한 폭의 봉황도야. 붉은 봉황이 하늘을 날고 있는 그림인데........아직까지 무슨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감도 못 잡겠어.”
“아니 수혼씨 사부님이 수혼씨를 위해 남긴 그림인데 수혼씨가 몰라요.”
“그림 속에 무슨 비밀이 있는 것은 확실하데 정확하게 뭔지 모르겠어. 아무래도 사부가 장난을 친 모양이야. 내가 쉽게 발견하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숨겨놓은 느낌이란 말이야.”
“예~ 사부님이 왜 그런 장난을..........혹시 지나씨와 둘만 보내려고 거짓말하는 건 아니죠.”
“허허 참~ 내가 그런 거짓말이나 할 사람으로 보여.”
“아니면 됐어요. 지나씨가 깨어나면 음검의 시범을 보도록 하죠. 그걸 보면 뭐가 잡히지 않겠어요. 지나씨도 얼마간 수련했으니까 음검을 알고 있겠죠.”
“글쎄..........일단 그 일은 나중 문제고........식사 끝나면 회의를 소집해야겠어.”

아침 식사를 마치고 회의가 소집되었다. 이번회의는 용산 전투결과에 대한 보고와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수혼이 소집한 회의였다. 회의에는 길식과 호식을 비롯하여 기동대의 대장들과 별동대 대장이 참석했다. 수혼은 사람들이 모두 회의실에 집합하자 부인들과 함께 회의장으로 들어갔다.

“모두 앉으세요. 이번에 다들 수고가 많았어요.”
“저희들이 무슨..........몸은 괜찮습니까?”
“여러분들이 걱정해 주시는 덕분에 많이 좋아졌어요. 먼저 우리 쪽 피해상황부터 보고하시죠.”

죽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혼은 죽죽을 별동대 대장으로 임명했다. 별동대 중에서 그의 무공이 당연 발군일 뿐만 아니라 리더십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 대결로 230명의 별동대 중 130명의 사상자(死傷者)가 발생했습니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사망 및 중상 98명, 경상 32명으로 경상자들은 치료가 끝나면 바로 복귀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사상자들이 많군요. 길식님. 사상자(死傷者)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보답을 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성과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이번 전투결과 성민과 성민파의 본진은 전멸(全滅)했습니다. 다만 성민은 죽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지만 양다리가 잘려 다시 활동하기는 힘들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리고 갈치파의 피해 상황은 정확한 통계를 말씀드릴 순 없지만 출동한 화랑들 중에서 삼분의 이가 전멸(全滅)한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번 전투에 갈치파 화랑들 중 300명이 참가했어요. 그중에서 삼분의 이라면 200명이 전멸했다는 말인데.........갈치파의 피해가 예상외로 심각하네요.”
“그건 링링님과 미희, 미나님의 활약 때문입니다.”
“참~ 그날 출동했던 사군자 중에서 매(梅)라고 불리는 여자는 제가 처리했어요. 아마 병신은 되지 않겠지만 최소한 한달정도는 요양해야 될 겁니다.”

미희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전체적으로 이번 전투를 평가한다면 비록 우리 쪽 피해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우리의 승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천랑이 기동대를 철수시킨 것을 두고 말들이 많았지만, 제가 확인해 본 결과 천랑의 판단이 정확했다고 확인되었습니다. 우리가 철수하고 30분이 지나지 않아 경찰이 출동했다고 합니다.”
“잘 들었습니다. 먼저 여러분에게 할 말이 있습니다. 지금에 와서 이야기하지만 그날 제가 만난 친구는 갈치파의 원예였습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길식님에게 전화가 왔고 통화내역을 들은 원예가 갈치파를 출동시킨 겁니다.”
“예~ 그........그럼 갈치파가 우리들의 움직임을 파악한 것이 천랑을 통해서라는 말씀입니까?”
“맞아요. 일이 그렇게 됐어요. 그래서 제가 기동대까지 출동시킨 겁니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갈치파가 추가병력에 대비하기 위해서죠.”
“잠깐만. 수혼씨..........수혼씨와 원예가 무슨 일로 두 분이서 만나신 거죠.”

미나가 심각하게 수혼에게 물어본다. 수혼은 잠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그녀와의 일을 솔직하게 말해야하나. 이미 대충 말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숨기면 의심만 깊어진다. 솔직해지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제가 저번에 요키에와 함께 그녀를 만난 것은 여러분도 모두 알고 있을 겁니다. 그 후 그녀와 가끔 통화를 했어요. 그러다가 그날은 그녀와 단둘이서 만나게 된 겁니다.”
“수혼씨는 무슨 생각으로 원예를 만나 거죠.”
“글쎄..........그녀와는 친구하기로 했어. 그녀가 갈치파의 수장인건 나도 알아. 하지만 나도 그녀도 조직을 떠나 생각하면 그냥 평범한 한 사람을 뿐이야. 서로 마음이 통해서 친구하기로 했지. 물론 공과 사는 구분해. 다만 그때는 일이 이상하게 꼬인 거야.”
“수혼씨........이걸 생각하세요. 수혼씨의 말 한마디에 수많은 사람들이 죽을 수도 있고 살수도 있어요. 만일 그날 갈치파가 출동하지 않았다면 우리 쪽 피해는 미미했을 겁니다. 이번 일은 수혼씨가 잘못한 겁니다.”
“쩝~ 나도 알아. 그 문제에 대해서는 나도 반성하고 있어.”

수혼에게 따진 사람은 의외로 미나였다. 수혼은 미나의 말에 틀린 부분이 없기 때문에 순순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미나가 수혼에게 따지고 수혼이 사과하자 장내는 한동안 술렁거린다.

“자자~ 천랑이 사과했으니 대충 넘어갑시다. 사실 갈치파가 출동해서 우리 쪽도 많은 피해를 보았지만 전투결과만 놓고 본다면 승리한 전투 아닙니까? 그리고 사실 갈치파와는 시기가 문제지 언제 가는 싸워할 상대 아닙니까?”
“맞습니다. 저희 별동대도 불만 없습니다. 성민파나 갈치파나 어차피 싸워야 할 상대입니다. 그리고 전투에서 사상자가 발생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저희가 언제라도 죽을 각오가 없다면 천랑파에 투신(投身)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호식과 죽죽이 오히려 수혼의 편을 들고 나선다.

“수혼씨.........이번문제는 이렇게 넘어 가는 것 같지만 다음에는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이건 제가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천랑파을 구성하는 우리 모두의 뜻입니다.”
“미나.........그리고 여기 있는 모든 분들........제가 공과 사도 구분 못하고 조직에 피해 입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다면........지금이라도 당장 보스자리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수혼씨 그런 말이 아니잖아.”
“잠깐만........이건 확실히 해야 합니다. 전 최선을 대해 천랑파를 이끌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하지만 방금도 말씀드렸지만 지금이라도 여러분이 보스자리에서 물러나라하신다면 바로 물러나겠습니다.”

수혼의 말을 듣던 호식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천랑 무슨 말씀입니까? 저희를 버리시겠단 말씀입니까? 제발 고정하세요............누가 천랑이 하는 일에 불만 있는 사람 있어. 그런 사람 있으면 먼저 내 앞으로 나서. 내가 아주 박살을 내버리겠어.”
“호식님 진정하세요. 그리고 천랑도 말씀이 좀 심했어요. 저희들 중에 누구도 천랑을 의심하거나 천랑이 하시는 일에 불만을 품은 사람은 없습니다. 저희들이 누구보고 천랑파에 있습니까? 바로 천랑 한사람을 믿고 따르기 때문에 천랑파에 있는 겁니다. 천랑이 저희들을 버리고 가시겠다면 먼저 이 쓸모없는 노인부터 죽이고 가세요.”
“죄송합니다. 제 말이 심했군요. 이번 일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자~ 회의를 계속 진행하죠.”

회의장은 한순간 폭풍우가 지나간 것 같았다. 수혼은 다시 장내를 정리하고 회의를 진행했다.

“성민파에 대해서 말씀들 해보세요. 저 판단으로 성민이 그렇게 된 이상 성민파는 이제 끝났다고 봐야합니다. 성민파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성철파의 잔당들과 부산 영도파에서 흡수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였습니다. 하지만 그들 중 핵심간부들은 우리와의 전투에서 모두 전멸했고 지금은 보잘것없는 사람들만 남은 상태입니다. 그나마 성민이라는 구심점이 없어진 이상 성민파는 끝났다고 봐야 됩니다.”
“천랑은 어떻게 하신 계획입니까?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성민파가 가지고 구역은 손쉽게 차지할 수 있을 겁니다.”
“여러분은 생각은 어때요.”
“저희들은 천랑의 결정에 따르겠습니다. 천랑파에서 천랑의 뜻을 거역할 사람은 암무도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리죠.”
“휴~ 좋습니다. 그럼 이렇게 하죠. 성민파가 가지고 있던 구역은..........그대로 방치하세요.”
“예~ 방치하란 말씀입니까? 저대로 둔다면 갈치파가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현재 구역은 의미가 없어요. 성민파가 가지고 있던, 갈치파가 가지고 있던 우리가 갈치파의 핵심전력들만 박살내 버리면 구역은 언제라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굳이 위협을 무릅쓰고 전력을 분산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현제가지고 있는 구역만 관리해도 천랑파를 유지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럼 천랑의 뜻은 성민파가 차지하고 있던 구역은 갈치파가 차지하던 말든 방치해 버리고 우리들은 갈치파 본진만 부셔버릴 궁리만 하지는 뜻입니까?”
“호식이가 오랜만에 바른 말을 했네. 맞아요. 갈치파 본진만 부셔버리며 갈치파는 자연스럽게 무너져요. 그 후 서울을 장악해도 늦지 않습니다.”
“알겠습니다. 천랑의 뜻에 따르도록 하죠. 그럼 저희들은 갈치파 본진을 상대할 전력을 키우는데 최선을 다해야겠군요.”
“예~ 이번에 별동대의 피해가 많습니다. 해서 기존의 기동대와 별동대는 모두 해산하고 새로운 기동대를 편성하도록 하세요. 앞으로 천랑파는 친위대와 기동대의 두개 부대 체제로 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먼저.........죽죽님 그래도 되겠습니까? 만일 별동대 대장인 죽죽님이 반대한다면 별동대를 해산하지 않겠습니다.”
“이미 천랑께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한 놈들입니다. 별동대로 불리든 기동대로 불리든 저희들은 상관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길식님과 죽죽님은 새로운 부대를 편성하시고 훈련에 전념에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호식은 갈치파의 동향에 대해 조사해 주세요. 이상입니다.”

회의가 끝나고 부인들만 남고 모두 나가자 미나가 수혼을 보고 빙그레 웃는다.

“수혼씨 제가 한 말에 기분상하지 않았죠.”
“아니야. 틀린 말도 아니데 뭐...........잘했어. 덕분에 자칫 흐트러질 수도 있었던 분위기를 미나 때문에 수습할 수 있었어.”
“그래요. 이런 문제는 흐지부지 넘어가면 나중에 더 큰문제가 생겨요. 골은 상처는 방치하기 보다는 오히려 터트려버리고 수습하는 편이 좋아요.”
“미나, 그동안 병법 책 열심히 읽더니 많이 유식해졌다.”
“이런.........야~ 네가 언니야. 내가 말이야 존댓말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제발 깐죽거리지만 마라. 이게 하나있는 동생이라고 말이야. 내가 조용하니까 지가 언니노릇하려고 들어.”
“허허 기가 막혀. 야~ 3분 먼저 태어났다고 언니냐. 너하고 나하고 3분 차이 밖에 안나.”
“두 분 부인님들 그만하시죠. 제가 잘못했어요. 분위기 때문에 두 분이서 싸우지 마세요.”
“수혼씨 기분 풀어진 거죠. 삐진 거 아니죠.”
“내가 어린애야. 그만한 일에 삐지게. 자자~ 모두 일어나..........하여간 당신들 앞에서 무슨 말도 못해요.”

지나가 깨어난 것은 회의가 끝나기 전이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깜짝 놀랐다. 자신이 혼자 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곁에 있어야할 수혼이 없다. 꿈속에서 수혼은 또다시 자신의 곁을 떠났다. 지나는 벌떡 일어나 주위로 살펴본다. 분명 수혼의 방이다. 수혼은 어디 간 것일까? 그녀는 옷을 입으려했다. 그런데 주위에 있는 것은 자신이 어제 입은 야한 드레스가 전부다. 지나는 일단 그것이라도 입고 문을 나섰다. 5층은 수혼과 부인들, 그리고 가끔 들려 부인들을 보조하는 아줌마들만 올라온다. 지금은 아줌마들도 올라오지 않는 시간이다. 지나는 오층을 배회했다. 미희의 방도, 미나의 방도, 요코의 방에도 사람이 없다. 다들 어딜 간 것일까? 지나는 갑자기 눈물이 나려했다. 혹시 또다시 버려진 것은 아닐까? 그때 계단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수혼과 부인들이 올라왔다. 지나는 수혼을 보자마자 그에게 달려갔다.

수혼은 지나가 품으로 뛰어들자 그녀를 안아주다가 그녀의 눈물을 보았다.

“지나야. 무슨 일이야. 왜~ 울어.”
“자다가 일어났는데 수혼씨도 안보이고, 다른 분들도 아무도 없고...........또 다시 혼자가 된 것 같아 무서워서........”
“바보야. 우리가 가긴 어딜 가? 이 울보를 어떡하면 좋아. 자자~ 그만 울어.”
“응~ 알았어. 수혼씨 어디가면 안돼.”
“다음부터는 지나도 회의 참석해. 참~ 이거야 원~. 아~ 참~ 지나에게 좋은 소식이 있다. 이곳에 죽죽씨와 형님의 친위대들이 있어. 지금까지 정신없어서 만나지 못했지. 이제 천천히 만나봐~”
“정말~ 죽죽 아저씨가 이곳에 있어. 다른 아저씨들도 있고.”
“응~ 형님이 밑에 있던 사람들 이곳에 많아. 아마 그 사람들도 지나 보면 좋아할 거야.”
“알았어. 천천히 만나볼게.”
“지나 배고프지 않아.”
“조금...........지금 모두들 어디 갔다 오는 거야.”
“회의?..........앞으로 지나도 참석해. 일단 밥부터 먹고 오후에 지나가 익힌 음검 좀 보자”
“음검? 내가 익힌 건 형식뿐이야. 아직 음검 속에 감추어진 깊은 뜻은 몰라.”
“그 정도면 충분해.”

수혼과 지나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부인들이 두 사람을 빙~ 돌려 싸고 지나와 수혼의 번갈아본다.

“지나씨 예쁘다. 질투 나는데........요코와 요키에가 너무 예쁘게 치장했네. 대충 입어도 이정도니 어제는 얼마나 예뻤겠어. 수혼씨 좋았겠어요.”
“험험~ 이거 부인들이 너무 많아도 문제야. 설마 서로 싸우는 건 아니겠지.”
“호호호~ 수혼씨가 똑같이 대해주면 싸울 일 없죠. 다 수혼씨하기 나름이죠.”
“예~ 잘 알겠습니다. 오늘 부인들에게 여러 가지로 당하네.”
“그만 하시고 자~ 지나씨도 식사해야죠. 아니다. 벌써 점심시간이네요. 우리 다같이 식사해요. 식사 준비는 오랜만에 나와 미나가 하죠. 미나 괜찮지.”
“쩝~ 하여튼 지가 언니노릇 다한다니까? 좋아. 오랜만에 부엌에 한번 들어가 보자.”

쌍둥이 자매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그때 링링이 수혼에게 다가왔다.

“왜~ 링링도 할말 있어. 오늘 내가 당하는 날 같은데 말해 다 들어줄게.”
“호호호~ 그건 아니고, 아저씨한테 보여줄게 있어.”
“뭐~”
“따라와. 지나 언니도 같이 와요.”

수혼은 지나와 함께 링링을 따라 그녀의 방으로 갔고, 요코와 요키에는 쌍둥이 자매를 돕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다.

링링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더니 수혼과 지나를 한쪽에 앉게 하고, 장롱을 뒤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작은 가방을 꺼낸다. 바로 링링이 국선도문을 때날 때 가지고 온 가방이다. 링링은 가방을 수혼에게 내밀었다.

“이거 뭐야.”
“나도 몰라. 사부님이 수혼씨에게 전해주라고 준 가방이야.”
“뭐~ 국선도 문주님께서...........그런데 왜~ 지금 주는 거야.”
“사부님이 내게 이걸 주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어. 아저씨가 한국에 돌아가서 무술을 계속 수련하면 이걸 전해주고...........아니면 다시 중국으로 보내라하셨어. 지금까지 아저씨는 무술을 수련하기 보다는 조직 일에 매달려 있었잖아. 그래서 전해주지 않은 거야.”
“그럼 지금은 내가 음양검법을 수련하겠다고 하니까 주는 거야.”
“응~.......나도 가방 속에 뭐가 들었는지는 몰라. 하지만 분명 아저씨에게 도움이 될 거야.”
“일단 뭐지 보기나 하자.”

수혼은 가방을 열어보았다. 그곳에는 포장지로 감싸인 두개의 족자와 한권의 책이 들어 있었다. 책이나 족자나 아주 작은 크기라서 조그만 가방에도 들어갔다. 수혼은 먼저 책을 보았다. ‘국선도’라는 간단한 제목이다. 책을 넘겨 살펴보니 바로 국선도문의 무술들이 적혀있는 무경(武經)이다. 다음으로 하나의 족자를 풀어본다. 족자를 펼치자 ‘천부경 도해’라는 제목과 함께 글자들이 깨알같이 적혀 있었다. 마지막 족자를 풀어본다. 족자에는 천부경 원본이 적혀 있고, 한쪽에 다시 깨알 같은 글자들이 적혀 있다. 수혼이 정신없이 족자들을 살펴보는데 지나가 가방을 살펴보더니 봉투를 하나 발견하고 수혼에게 내민다. 수혼은 편지를 펼쳐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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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보게나.
자네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무도의 뜻을 꺾지 않고 무도에 정진하고 있을 것이네.
자네의 무도정진에 작은 도움이나마 주기 위해 이 늙은 친구가 선물을 준비했다네.
가방에 들어있는 책자는 이 늙은 친구의 사문인 국선도문의 무경이네. 하지만 원본은 아니고 국선도 검법과 자네에게 도움을 될만한 무공들만 간추려서 내가 작성한 것이라네.

그리고 함께 들어있는 두개의 족자는 ‘천부경 도해’와 천부경 원본이네.
천부경 도해는 천부경을 해석한 족자로 누가 작성했는지도 모르지만 몇 천 년을 전해 오는 희귀한 책이네.

내가 젊어서 중국을 여행하는 중에 한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하고 가지고 있었지만 뜻이 너무 난해하고 이 늙은 친구가 우매하여 평생을 연구해도 모두 해석하지 못하고 있었네.

그리고 천부경 원본이라 적힌 족자는 내가 백두산에 올라가 천부경 원본을 직접 보고 작성했고, 그곳에 있는 나머지 글은 이 늙은 친구가 천부경 원본과 천부경 도해를 내 나름대로 해석한 것이라네.

본래 국선도, 원예도, 음양도는 그 뿌리가 천부경 있다는 것은 자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네.
이 책자와 족자들이 자네의 무도정진에 작은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네.

혹시.........내가 준 선물이 자네에게 도움이 되었다면 이 늙은 친구를 잊지 말고 기억해 주기 바라네.

마지막으로..........우리 링링 잘 부탁하네.

멀리 중국에서 친구가.


ps : 오늘 내용은 앞으로 전개될 많은 사건들의 암시 부분과 지금까지 밝혀지지 않았던 몇 가지 사실을 밝히는 장입니다. 이마 오늘 105부을 시작으로 낭만을 꿈꾸는 늑대는 그 끝을 향해 달려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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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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