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역류-
너무 머리 속이 복잡했다. 갖가지 생각이 물밀듯이 사고의 체계 속으로 쏟아져 들어 오는 것 같았고, 두서 없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두통약을 먹는 다는 것도 별다른 해결책이 될 것 같질 않은, 그 길고 긴 싸움. 이렇게 아파 올 때면, 고개를 흔들 때마다, 머리 속의 뇌가 양푼 안의 기름 바른 고깃덩어리 같이, 흡사 두개골 안에서 이리저리 쏠리는 것 같다는 표현을 해야 옳지 싶다.
‘자기야, 어디 아파?’
‘응, 좀 피곤 했나봐. 정말이지 해골이 복잡하다고 누군가 그랬는데, 내가 꼭 그 짝이네.’
‘두통약 좀 사올까?’
‘아니야, 아까 집에서 나오기 전에 먹었는데도 그렇네…’
‘혹시 감기 아냐? 감기에 두통약을 먹었다면 들을 리 없잖아?’
‘아니래두, 내가 내 몸을 모르겠니?’
나는 몸이 말을 듣질 않음으로 해서 괜시리, 앞에 앉은 정현이 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오늘은 왠지 나를 만나러 나와 앉아 있는, 정현이의 속마음까지, 탐탁지 않게 느껴지고 있었다. 몸이 이렇게 뻔히 아픈 줄 알면서도, 내일 보자 어쩌구 하는 말도 없이, 어서 빨리 낫게시리, 두통약 어쩌구 하는 걸 보면, 기어이 기사회생 시켜서, 좇물 이나 한 따까리 잡숫고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인가 본데…..그러나, 그런 생각을 곱씹으면서도, 내 스스로 몸이 괴로우니, 애꿎은 정현이만 붙들고 실랑이 겠지 하면서, 하릴없는 나의 시큰둥 함을 스스로 끊어 버렸다.
‘오늘, 그냥 들어갈까?’
‘아니, 뭐…... 요즈음 독감이 유행이잖아? 약 먹었으니 이러다 낫겠지 뭐. 밖에 나가서 좀 걷자. 여기 실내가 너무 공기가 탁한 거 같지 않니? 난방만 디리 해대지, 실내 공기를 갈 생각을 전혀 안 하나봐.’
‘찬바람 쐬면… 더 아파지지 않을까?’
‘괜찮아… 쫌 걷다 보면 몸에 땀도 나고, 혈액순환에도 좋을 거 아냐?’
나는 껄끄러워 하는 표정의 정현이를 끌다시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길거리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끓어 넘치고 있다. 저마다 바쁜 종종 걸음으로 어디론가를 향해 나서는 사람들….할 일 없는 어느 학자가 인간의 보폭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걷는 민족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의문의 화살을 돌려보니, 그게 바로 한국인이라는 결과가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 나는 길거리의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어째서 우리들의 발걸음은 언제나 쫓기듯이, 어디론가를 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종종 의문을 가질 때가 있었는데, 아직도 해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저 민족성이나,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의 영향 탓으로 돌릴 뿐 이었고, 그렇게 걷질 않는다면, 자기가 남보다 뒤쳐져서, 언젠가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른 이들처럼 걸을 수 조차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한국인만의 유별난 위기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짐작해 볼 따름 이었다. 걸어가는 우리 두 사람의 정면으로 바람이 모질게 살을 에이면서 불어 오고 있었다.
‘자기야, 바람까지 부는데? 자기는 바람 소리 싫어하잖아!’
‘글쎄, 오늘은 괜찮네. 아마 기분 때문 이겠지 뭐.’
‘자기야,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안 좋다. 내일 만나는 건 어때?’
‘그럴까?’
나는 정현이와 헤어지면서도 평소 느끼는 안타까움이 없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만나면 다른 연인들 처럼, 영화 보고, 밥 먹고, 술에 곁들여 너무 자주는 아니더라도, 짬짬이 섹스도 나누는 사이에, 오늘처럼 무미건조하고, 별다른 감정 없이 헤어진 다는 것이 마음에 걸릴 법도 했건만, 돌아서서 여느 사람들처럼, 종종걸음으로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대하는 나의 무심함조차 거추장스럽게 보이는 오후였다. 몸도 좋질 않으면서, 장갑을 잊고 나온 것을 후회하면서도,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발길을 돌리는 사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일년 신수나 토정비결 보시지….’
돌아다 보니, 한 겨울에, 그것도 비치 파라솔에 휘장을 둘러치고, 낚시터에서나 볼 수 있는 단출한 간이 의자에 걸터 앉은, 노친네가 나를 두고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냥 길거리에 저렇게 퍼질 리고 앉아서, 별로 적중률도 없는 점괘나 들이 대면서, 무얼 조심해야 한다는 등의 위협사격만 해대는, 그런 부류로 보이고 있었지만 서도….나는 별다른 새끼줄도 없이 비어버린, 오후의 적적함도 달랠 겸, 휘장을 들치고, 안으로 몸을 움직였다.
‘날씨가 보통이 아니야, 젊은이, 그렇질 않은가 말이야!’
‘이런 조그만 난로로 이렇게 길거리에서 주구장창 버티시다뇨? 춥지도 않으세요?’
그 노인장은 대답 대신에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속으로 요 놈은 도대체 얼마짜리나 되려나 재어보는 듯한 눈매에, 금새 이 곳으로 들어온 나 자신을 후회했다.
‘뭘 좀 봐줄까? 궁합? 신수? 아니면, 일년 총운?...당사주도 좋고….’
‘글쎄요. 이런 거 여쭈어 봐도 될는지는 몰라도, 잘 맞긴 해요? 뻑 하면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돗자리 펴도 되겠다고 말이죠. 영험 하시다면 여기 계셔야 될 게 아니고, 어디 미아리 같은 곳에나 자리 틀고 계셔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말이죠.’
‘자네 몰라서 하는 말이지….이것도 종교랑 다를 게 없지.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어야 제격인 게야. 예를 들어, 불교가 기독교 보다 뒤떨어 질것도 없지만, 나을 것도 없어요. 무조건 고고합네 하면서, 머리 깎고 산에만 들어가면 모든 게 깨우쳐 지남? 종교의 진리라는 것도, 다 사람들의 입김 속에서 가깝게 느물거려야 살갑고, 정겨운 거 아니겠어? 다 인간을 중심으로 생성된 강강수월래 일 텐데, 지 혼자 잘났다고, 산속에 들어가 염불만 하면 누가 알아 주기나 하나? 그런 것들은 번뇌의 그늘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전전긍긍 하면서도, 속세의 고충을 나 몰라라 하기에, 더더욱 이나 해탈의 범상함에 낄래야 낄 수도 없는 게야. 사람이 사람을 내치고서야 어디 이룰 수 있는 공덕이 있간디? 내 말이 틀리나?’
‘옳으신 말씀이네요.’
그런 사이에 어떤 여자 한 사람이 내가 안에 있는 것을 몰랐는지, 비닐 장막을 들치고 그 좁은 구석으로 몸을 들이 밀었다.
‘어휴, 안에 손님이 계신 줄 모르고…..’
‘괜찮아요. 들어와요, 어서! 두 사람은 족히 들어와 앉을 수 있으니……’
‘그래도 될까요?’
‘거럼… 다른 사람들이야, 점을 볼 때, 천기누설의 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어찌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앉혀놓고, 그들 만의 프라이버신가, 뭔가를 상대에게 공개적으로 까발리느냐 라고 앵앵대지만, 나란 사람은 좀 다르거든. 타산지석 이라고, 이렇게 마주 대하고 앉아서, 다른 사람의 숨겨진 얘기를 경청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얘기라 이거지…..살다 보면, 그렇게 생긴 사람은 그런 운명이더라 라고 살펴보는 것도 별로 해가 되는 경험은 아니라, 이 말씀이야. 혹시 알아? 그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촉매가 될는지?’
그 노인네는 상술인지 뭔지는 몰라도, 여느 시답지 않은 점쟁이와는 노는 폼 새가 달라 보였다. 앞에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 생년월일을 묻고, 태어난 시를 물은 뒤에 노인장은 바닥에 펼쳐져 있던 여남은 권의 책을 두어 번 뒤져보고, 이리저리 생각에 잠겨,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두 사람, 나이가 비슷허네…. 그렇지? 잠시만 기둘려.’
노인장은 옆으로 치워 두었던 간이 탁자로 몸을 틀어서는, 아주 빠른 속기로 종이에 무언가를 하나 가뜩,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언뜻 옆에서 보니, 한자도 꽤나 빼곡히 적혀가고 있었고, 무슨 스토리 마냥, 길고 긴 문장을 수려한 필체로, 속사포 마냥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 노인장은 두툼한 두 개의 봉투를 밀봉해서는, 나와 옆에 앉아 있는 그 젊은 여성에게 건네 주었다.
‘적어준 그걸 베게 밑에 베고 자란 말이지, 지금 열어 보아서는 절대 안되고, 오늘 밤을 지나고, 열어 봐야지, 안 그러면 심각한 일이 벌어질지도 몰러.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얘기해서도, 눈치를 줘서도 안되고 말이야.’
‘왜 그러시는 건데요? 이거 평범하게 신수나 보는 거, 그런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종종 있어. 사람이라고 다 똑 같은가? 제 각각 생긴 모양새가 다르듯이, 살아갈, 혹은 살아온 인생의 역정은 같을 수 없는 게, 세상 이치 아니겠는가? 자기의 자의든, 아니든 간에,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야, 책으로 펴내도 모자랄 만큼 지천 일 테고, 그나마 앞으로 남겨진 인생을, 멋도 모르고 재잘댄 대서야, 어디 제대로 살아간다 할 수 있을까?’
별로 길게 살아 보지도 못한, 나 같은 젊은 나이에, 너무 거창한 말빨로 기를 죽이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우도 있었건만, 노인장을 앞에 두고, 나와 그 여자는 엄숙한 분위기를 떨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내 한마디 험세. 내 나이는 이렇게 폭삭 쭈그러 들었지만, 그래도 세계 곳곳 안 다녀본 곳이 없고, 세상 부러운 것, 가져 보지 않은 것이 없으이. 두 사람에게 동시에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나서 그러니, 노친네의 허망한 노파심에서 우러나온, 쓰잘데기 없는 헷소리 라고 일축하지 말고 들어 주게나. 언젠가 영화를 본 적이 있지…. 불과 관련된 영화 였는데, 형제가 소방관으로 나오지. 어떤 정신 병자 같은 인물이 소방서의 존폐에 악영향을 끼치는, 이를 테면 예산을 삭감한다든가, 인원의 축소를 검토한다든가 하는 인물들을 교묘한 방화 기법으로 살해하는 얘기 였는데, 그 안의 스토리 중에 백 드래프트 라는 영어 단어가 나온 다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범인이 다름 아닌, 그 형제 소방관 중의 형이었지, 아마? 지금 생각해도 그 혓바닥 처럼 이글거리는 화염의 울렁임… 정말 장관 이었어. 내가 왜 이런 얘기를 꺼내냐고? 다 이유가 있다네. 그 얘기 속에 화재의 현장이 수습되고 나서, 제일 먼저 투입되는 사람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일어난 불이 방화냐, 자연발화냐, 아니면, 제 3 의 이유에 의해 일어난 실화 이냐를 분석해 내는 전문가 말이야. 불은 묘하게도 발생한 자리로 되돌아 오는 법이 없다지, 아마? 왜냐하면 이미 불덩이 자신이 거쳐간 자리는 다 타고 없어졌기 때문이라나? 그런데, 그 전문가가 그 교묘한 트릭을 그 동생의 힘을 빌어 기어이 밝혀내는 거야. 자신까지 다쳐 가면서….방안에 화학약품을 가지고 들어가, 기가 막히게 산소만을 태워 없앤 뒤에, 칼날 같은 타이밍으로, 제거하고 싶은 인물을 불러 들여, 거의 산소가 바닥나고, 불씨만이 화학약품에 의존해서 겨우 지펴지고 있는 그 방의 문을 활짝 열게 만들지. 그리고는 뻥! 왜냐구? 문을 여는 순간, 산소가 바닥나 있지만, 그 산소를 태워 없애는 와중에, 역으로 발생한 폭발성 발화 개스가 문을 열면서 공급된, 외부로부터 밀려드는 산소와 접촉하면서, 그냥 평범한 발화가 아닌, 폭탄과 같은 산화 작용으로 둔갑된 나머지, 불과 함께 문을 연 사람마저 도 그 무지막지한 폭발력으로 살해하는 거였어. 내가 두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이거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옛말이 무섭게만 느껴지네 그랴. 이렇게 마주하고 앉아 있는 자네 두 처녀, 총각이 그 상황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 이라네. 앞으로 다시는 보지 않도록, 뒤도 돌아다 보지 말고, 이 길로 곧장 집으로 가버리게나….절대 뒤돌아 보지 말고….어여!’
‘무슨 말씀인지….’
‘어느 누가 어떤 역할 인지는 몰라도, 둘 중 한 사람이 방안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폭탄 같은 불씨라면, 다른 한 사람은 그 불씨를 향해 무심코 문을 열어 주려는 역할이기에 하는 소리지, 뭐긴 뭐겠어? 이제 대충 알아 들었으면, 냉큼 제 갈 길로 돌아들 가. 절대 뒤돌아 본다거나 전번도 교환하지 말고….돈은…… 뭐, 받은 셈 치지…..’
그 노인장은 서둘러 우리 두 사람을 포장 밖으로 내치면서, 자신도 휘장을 걷어, 그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나와 그 여자는 망연히 서로를 바라 보다가, 언뜻 그 노인장의 경고가 떠올라, 지극히 부자연스럽기는 했어도, 예의상 가벼운 목례만을 하고 그 자리를 떠야 했다.
‘왠, 별 싱거운 노인네 다 봤네… 으이그, 집에나 빨리 가서 아랫목에 몸이나 지져댈걸.’
나는 돈이 굳었다는 생각보다도, 괜한 짓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찝찝하기는 했지만, 그 봉투를 품에 접어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예상은 여지없이 들어 맞고 있었다. 전철을 타고 오는 도중에, 나는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려오면서, 열이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격심한 독감의 증상 속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조짐을 예측했더라면, 오늘 정현이를 만날 약속을 다음으로 미룰걸 그랬다는 둥의, 후회가 밀려 왔지만, 이미 온 몸을 뒤덮고 있는 독감의 치열한 발악은 겉잡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고 있었다.
‘진모야, 너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너 어디 아프니?’
문을 열자, 사색이 되어, 현관에 들어서는 내 얼굴이 그렇게 보인 모양이다. 어머님은 내 머리를 만져 보시고는, 이거 안되겠다고 하시면서, 병원에라도 가자고 성화셨지만,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었다. 온 살갗이 따가울 지경으로 아파오기 시작했고, 어떤 물건이든 간에 살에 닿는 순간, 칼로 저미는 듯한 쓰라림이 전신을 감싸고 돌았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면서도, 나는 기어이 옷을 벗고, 침대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차가운 이불 속 침대 시트의 깔깔한 감촉도 잠시 잠깐, 곧 이어, 이불 속은 화끈거리는 아궁이 마냥, 내 온 전신으로부터 뿜어내는 열로 인해, 주체를 할 수가 없었고, 그다지도 열이 나고 있으니, 안방의 아랫목을 차지하고 눕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미 입으로는 끙끙거리는 신음이 새어 나오고, 어머님은 걱정이 되신 나머지, 약사발을 챙겨 들고 방으로 뛰어 오셨다.
‘아침에 아프면 나가지를 말지, 뭐 볼 게 있다고…..’
나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벌써 온 몸은 불덩어리였고, 약을 삼키려는 내 의지와 달리, 기도와 편도선은 있는 대로 부어 올라, 무얼 삼킨다는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기 까질 했지만, 그래도 억지로 약을 삼키고, 이불 속에서 비몽사몽을 헤매며, 앓던 것이 서너 시간이 지나자, 차츰 열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만하기를 천만다행이라고 하시면서, 빈 속에 괜찮을까 하시면서도, 우선 증상이 가라 앉아야 하질 않겠느냐면서, 주스에 또 다른 약을 들고, 연이어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어머님의 신속한 대응으로, 나는 하루를 꼬박 누워서 앓을 수 밖에 없었지만, 저녁 나절이 되고부터는,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나 스스로 일어나, 먹을 걸 달라고 챙기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었다.
‘지 스스로 의사처럼, 지 몸은 지가 더 잘 안다고 자랑 할 때는 언제고, 어떻게 저 등치에 눈치도 없게시리, 하루 아침에 쓰러져 빌빌대나, 빌빌대긴?’
저녁때 퇴근하신 아버님께서 약에 취해, 침대에 누워서, 눈도 제대로 뜨질 못하는, 나를 내려다 보시면서 하신 말씀 이었다. 가족들이 잠이 든 시각이 되어서야 나는 겨우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무어라도 찍어 넣어야겠기에, 어머님께서 저녁에 만들어 놓으신 죽을 꺼내서 데워 먹기로 했다. 입천장 이고, 어디고 열 때문인지 안 까진 곳이 없었고, 허물 벗듯이 허연 살껍질이 일어나면서 쓰라린 통에, 죽도 끝까지 비울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약을 먹으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이를 악물고 죽을 입안에 퍼 넣었다. 웬만큼 허기가 가시자, 조금 기운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방으로 들어서자, 온 방안에는 내가 누워 있는 동안 입으로 뿜어져 나온 온갖 악취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것치고, 깨끗하지 않은 것 없고, 사람 입을 통해 나오는 것들 치고, 악하고 더럽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처럼, 보이지 않는 숨결조차 병이 도졌을 땐, 그토록 흉측한 냄새가 등천을 하는지는 이번에 처음 깨닫게 되었다. 약을 삼키고 바로 누우려다가 체하기까지 라도 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의자에 잠시 앉아 숨을 돌리는 사이, 나는 아까 낮에 받았던 그 봉투가 생각이 났다. 절대로 오늘 밤에는 열어보지 말라고 했는데….나는 믿는 거 반, 속는 거 반이라는 심정으로 코트 안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그 두툼한 봉투를 꺼내서는, 침대 머리맡의 베게 밑에 고이 넣어 두었다. 무슨 일이야 있을라구…..나는 다시 또 시작되는 어지러움 증은 아픈 것이 아니라, 약이 도는 것이라는 느낌에, 자다가 깨지 않을 심산으로,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마저 누고, 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몸이 좀 나으려나?’
나는 자리에 누워서 이제까지 누워있음으로 해서 배겨오는 등짝과 아울러, 뻐근한 동통을 동반하는 허리의 지끈지끈한 느낌에, 옆으로 누워서 잠을 청했다. 잠은 깊이 들어가고 있었고, 꿈조차 꾸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그건 그렇지 않았다.
‘일어나세요.. 어서요….’
나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손짓에 잠이 깨고 말았는데…..
‘왜 이리 호들갑이야!…..’
‘아니, 그게 아니고….저기 누가 문 앞에…….’
‘넌 또 뭐야?’
내 앞에는 촌시런 복장의 여자가 겁먹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방안에는 나와 그 여자 둘 뿐이었고, 곧이어, 계속해서 들리던 노크 소리와 더불어 문이 쾅 하며, 열렸다.
‘요거, 요거, 요거…..어제 회식 때도 모자라서 저 년을 간부숙소까지 끌고 오다니… 대단해!…나까무라… 저 년이 그렇게 이뻤다, 이 말이쥐?’
‘아… 그게 아니고….’
‘됐어, 그건 그렇고, 아침 10시까지 병동 전체 회의 있는 거 알고는 있지? 저 년은 어서 빨리 내 보내는 게 좋아. 부대장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에는….’
‘네, 알다 뿐입니까? 곧 준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라다 군의관이 나가고,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제의 숙취가 몰려 오고 있었고, 술 김에 게이샤를 몰래 불러 들인 와중에, 장난 삼아 떨거지로 딸려 오게 한, 신참 조센삐(정신대를 부르는 말)를 기어이 숙소로 까지 끌고 온 기억은 나는데, 그 이후로 어찌 되었는지는 기억에는 없었다.
‘어제 여기서 잤나?’
‘….네…..’
‘자, 군표 몇 장이면 되나? 여기 상자에서 가져가고 싶은 만큼 꺼내 가라……. 아니지, 그건 너무 쉬운 거 아냐?’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나에게는 이미 휴지 조각이나 다를 바 없는 군표를 꺼내기 위해 상자를 집어 들려다 멈칫했다. 군영내의 일반 시설물을 이용할 때 사용하는 군표는, 매달 어김없이 월급처럼 나의 숙소로 지급 되었지만, 어차피 장교들은 군표 없이, 모든 시설을 이용하는 것에 불편이 없었다. 일반 병사들 사이에서야 그것이 지폐처럼 통용되긴 했어도…
‘숙소로 돌아가지 말고…., 그러니까, 넌 오늘부터…. 내 시중을 들어라. 위에 다가는 내가 말해 놓을 테니…’
나는 그 여자의 촌시런 복장이 맘에 들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두 손으로 그 상의를 확 열어 젖히면서 좌우로 찢어 버렸다. 덜렁 거리면서 옷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허연 젖퉁이…. 곳곳에 이빨 자욱이 있는 걸 보면 어제 밤, 내가 짐승처럼 달려든 게 분명했다. 옷장 안에 있는 평상복을 그녀에게 던져주고, 나대로 복장을 갖추고는, 방독화와 장갑,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을 나서면서, 나는 문을 밖에서 잠글 심산 이었다. 어차피 방안에 화장실이며, 쉴 수 있는 구조는 완벽했기에, 할 일 없으면 잠이나 자겠지, 라는 생각 때문 이었다. 전시였기는 해도, 이곳 방역급수부의 시설은 천황 폐하의 은혜 아래, 최고급으로만 지어져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은 기본 이었고, 모든 방의 환기 시설은 중앙 집중 식으로 설계되어, 한치라도 잡균의 침투가 어렵도록 구조화 되어 있었으며, 소독환경 또한 완벽해서, 일종의 무균실 에서 생활하는 것과 맞먹는 환경을 조성해내고 있었다. 나는 문을 잠그면서, 이런 환경에서 지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저런 조센삐 에게는 감지덕지가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문을 걸다 말고, 나는 방안에 장승처럼, 찢어진 윗도리를 여민 채로 서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름은 있나? 이름 말이다!’
‘순임, 이순임…..’
‘다 집어 치우고, 넌 오늘부터 히미쯔(秘密)야, 히미쯔, 알았지?... 넌 나의 숙소에서 나의 정염의 화신이 될 때까지, 비밀리에 살게 될 년 이니까….깔깔깔…..’
나는 복도를 통해 회의실로 가면서, 회의 자료를 검토 해야 했다. 할 일이 태산 같았고, 전세를 뒤집을 만한 연구 결과를 내놓기 위해, 모두들 밤잠을 잊고들 있었지만, 손을 대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회의에서 지적될 사항은 그것이 아니었다. 전쟁 중이고, 군인들 이라고는 하지만, 의학을 앞장세워 이곳으로 징병된 차출 인력은, 전 현직 의사였거나, 병리학, 면역학, 미생물학 또는 세균전과 관련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쏟아 부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전문 의학도들, 뿐이었기에, 그들을 군기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정신 차리게 할 방법이 모호했기에, 소집되는 것이었다.
‘천황 폐하 만세!’
모두가 자리에 모이자, 회의는 곧바로 일일 점검부터 들어갔다.
‘병동, 사병막사, 장교숙소, 세탁실, 식당 등등 일반 기지 시설, 이상무!’
‘소독상태는 어떠한가?’
‘양호합니다. 현재, 병동과 숙소가 조금 가깝지 않느냐는 지적에 의해, 새로이 병동을 조금 떨어진 위치로 이동 중에 있으며, 별도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방비를 하고 있습니다.’
‘배양실의 상태는?’
‘현재 배양되고 있는 9가지 균류의 베타 테스트를 위해, 배양실내의 숙주 숙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폭탄 투하에 대비해서, 적정한 투하 모델이 만들어 지는 대로, 탄두에 접균 하여, 모의 실험을 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일반 실험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어제부터 마루따에 대한 총탄 관통 한도 시험 및 방한피복에 대한 동상 한계 시험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임상 실험 중에서 페스트는 어느 정도 진척이 되고 있지?’
‘현재 1개동 4개 별실에 여자 한 명, 남자 세 명씩, 짝을 지워 강제적 성교에 의한 페스트균, 전이 여부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구강, 항문, 성기, 피부, 안구점막 등의 표피 샘플이 5일 간격으로, 혈액 및 소변 샘플은 매일 채취되고 있으며, 접균된 페스트 원균과 비교해서 살상 능력이나, 항체 대항 능력의 한계에 대해서 보고서를 작성 중에 있습니다.’
‘모든 실험은 목적이 있다 이 말이다. 보고서를 만들어 내는 것에 의존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접어두고, 전선에 나가 싸우고 있는 우리 황군이, 그와 같은 지경에 처했을 때, 천황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그 어떤 나라의 군대보다도, 멋진 승리를 쟁취하면서, 고통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알겠나?’
‘천황 폐하 만세!’
‘연이어 계획되고 있다는 그 실험 계획은?’
‘다음 주부터 진공 상태 에서의 행동변이 실험과 압사사고에 대비한 골격 유지 한도에 대한 실험이 있을 예정 입니다.
‘그거 좀 자세히 얘기 좀 해봐. 흥미로운데?’
‘우리 황군의 공군 조종사가 공중전 시에 산소부족 사태를 경험하거나, 지상군이 순식간에 밀폐된 공간에 매몰되어 산소가 고갈되는 시점을 맞이 했을 때, 어느 한도까지 버틸 수 있으며, 순간 진공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내장구조가 얼마나 파괴되지 않고 버틸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거입니다. 이 이유는 전에도 말씀 드린 것 같이, 조종사가 비행기 위에서 비상 탈출하여, 바다 위 같은 곳으로 자유낙하 한다고 가정 했을 때 겪을 수 있는, 모세 혈관의 파괴속도, 심장 마비의 연쇄적 파급경로, 자유낙하와 충돌에 따른 신체 각 부위의 파손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실험으로서 압사 테스트도 그와 의미를 같이 보시면 됩니다.’
‘의미를 같이 보다니?’
‘압사사고를 재현 시켜, 과연 밑에 깔린 병사가 얼마나 골격이 부서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가를 측정해서, 군복의 제작 및 총탄 관통 한도 시험의 결과와 연계하여 특수 방탄복장의 설계에 반영할 의도가 있기 때문 입니다.’
‘시설 구조 변경 신청은 했나?’
‘이미 실험이 가능하며, 점진적 진공 상태가 체계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일부 실험실의 구조를 밀폐 구조로 변경 완료 했으며, 강제적인 실내 기압변화를 위해 특수 모터와 펌프도 환기 구에 장착하여 이미 구조화 했습니다.’
‘그래, 다른 실험 계획은?’
‘현재 마루따의 각 체형 별, 감염 질환 별, 신체 특정 부위별, 임의 절단 및 총탄 류, 파편류의 관통 시에 따른, 혈액 손실도를 측정, 시행하여 결과치를 데이터화 하고 있습니다. 또한 페스트와 장티푸스, 말라리아 원형균에 대한 왁찐(백신을 가리키는 말)의 완성은 거의 눈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내가 아까도 수없이 얘기 했지 않느냐 말이지? 눈 앞에 다가왔다? 이런 단어들은 군대 밖에서나 쓰여지는 말들이야, 알겠나? 6하 원칙에 의거해서, 실험의 결과와 과정이 똑 부러지게 대답 되어질 수 없다면, 자네들은 이미 총탄을 맞은 거나 다름 없어, 알겠나? 꼭 총알이 날라 다녀야 전쟁인줄 아는가? 자네들의 흐리멍텅한 매너리즘과 무성의 함이, 곧바로, 총도 들어보지 않은 자네들조차, 죽음으로 단번에 몰아갈 수도 있고, 나아가 황군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뿐더러, 위로는 천황폐하를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니고 뭐냔 말이지! 내 말, 이해가 가나? 제군들?’
회의를 주제하는 이시이 부대장의 서릿발 같은 발언은 모든 군의관들을 빠짝 얼어붙게 했다. 그의 명령은 이 731 부대 내에서는 신의 음성으로 받들어 졌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원불멸의 경계구역처럼 느껴지고 있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다시 한번 당부하건 데, 본인 스스로가 이 조직에서 버티기 힘들다고 여긴다면 언제든지 다른 부대로 보내줄 용의가 있음을 알아두기 바란다. 아무리 똑똑한 머리도 황군의 기대치와 다르게, 딴 곳을 보고 있다면, 바로 총알 구멍의 표적이 되 주게 끔,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측면에서, 어디든 보내 주겠다는 말이다, 알겠는가? 어제의 회식 때 봐서 알겠지만, 천황 폐하의 하사품이 영내에 도착했다. 다른 부대와 달리 70프로 이상이 일본에서 순수 게이샤의 손길로 자라난 인물들로 꾸며져 있으며, 장교들은 특별히 당부 하건 데, 사병용으로 배치된 조센삐들 과는 되도록 살을 섞지 말도록 당부하는 바이다. 그건 황군 장교로서 명예와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 임을 명심하도록…. 이상… 천황 폐하 만세!’
회의가 숙연한 분위기에서 끝이 나고, 이시이 부대장이 참모들과 회의실을 나가다가 나를 세워 불렀다. 남들이 들을 세라 조그만 목소리로,
‘나까무라 군, 아버님이 보내신 술은 잘 받았네, 구하기 힘들다는 백사를 넣어 담근 술인데, 어찌나 기운이 뻗치던지…… 허허허…. 감사히 잘 받았다고 안부나 전하게나……병원은 잘 되고 있는 거지?’
‘네, 걱정해 주신 덕분으로….’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뭐 부탁할 거라도 있나? 내 방에 가서 조용히 차나 한잔 하지….’
‘네.’
나는 방에 들어가 이시이 부대장과 독대를 하게 되었다. 남들은 부동 자세로 눈깔 하나 움직일 수 없었지만, 나는 좀 달랐다. 부친과 부대장과의 돈독했던 사이가, 지금의 나를 여기로 이끌게 한 원인이기도 했기에,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나라는 군의관은 다른 보통의 업무적 성격의 대담 상대가 아니라, 어릴 적부터 집안을 드나들며, 보아오던 꼬마가 앉아 있는 것으로 보였을 테니 말이다.
‘저…., 숙소를 책임지는 당번병을 교체하고 싶습니다.’
‘왜, 무슨 불미스런 사건이라도 생겼나? 도난, 뭐 그런 거?’
‘아닙니다. 그 병사가 보기에 조금 동성애 적인 기질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남자들끼리 있는 폐쇄사회이다 보니, 그럴 경우도 가끔, 자연 발생적으로 있을 수 있지만, 제 성격이 워낙 그래서…. 집에서도 하녀들만 제 방을 드나들 수 있었지요.’
‘그래도 영내에서 여자들을 구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그건 걱정 마십시오. 벌써 구해 놓았습니다.’
‘그래? 역시 아버님 닮아, 수완이 대단하구먼. 그래, 누군데?’
‘그게 다름아닌….., 조센삐 입니다. 지금 제 방에 넣어두고 왔습니다만….’
‘조센삐라…..흠……식사나 그런 건 어떻게 할 참이지? 장교 숙소는 워낙 출입이 없다고는 하지만, 동료들 눈을 피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텐데….’
‘그건 걱정 마십시오. 어차피 소모품인 조센삐 인데 뭘 그리 걱정 하십니까? 적적해 하는 동료들도, 긴긴 밤을 위로해줄 여자가, 자기 옆방에서 하인처럼, 주인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면, 싫지는 않으리라고 여겨집니다만….’
‘호오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다니…… 그래도 조심하게나….’
‘걱정 마십시오. 그러다, 싫증나면 마루따로 내보내 버리면, 쉽게 처리되는 거 아닐까요?’
‘신선하게 황군 옆에서 다듬어진 재료로, 보다 충실한 실험을 하겠다? 그것도 말은 되는 구만…. 어쨌든 만사에 조심하게. 조센삐는 보기 보다 독한 것들 이거던….’
방을 나오면서 나는 짐을 덜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잡다한 일들도 눈치 보지 않고 시킬 수 있을뿐더러, 밤마다 온수 통에 물을 데워 넣고, 발에 끼고 자는 일도 없이, 뜨끈한 여자를 품고 잘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속이 다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먹거리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왜냐하면, 영내의 청결과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쥐와 각종 잡균, 벌레들의 번식을 막기 위해서 음식물은 철저하게 식당 이외로는 반출을 허용하지 않는 규칙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무슨 수가 생기겠지 라는 생각에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있었다는 편이 옳았다. 방을 나와 실험실로 가면서, 나는 어제부터 계속될 실험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고 있어서, 곧바로 그 여자에 대한 문제는 뇌리에서 씻은듯이 사라져 버렸다.
‘어이, 나까무라! 독대는 성공 했는가? 아마 영창 행이 아니었을까 싶네만….’
선배인 하라다 였다.
‘아닙니다. 가까스로 제가 데리고 있게끔 허락 하셨습니다. 그것도 비밀리에…… 누구에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특별히 제 옆 숙소에 계시니 말씀 드리는 겁니다만……’
‘아니, 그런 일도 있나? 천하의 호랑이, 이시이 부대장이 그런 배려를? 하늘이 쪼개질 지경이네. 허, 참…아무튼 축하하네. 좋은 하인 하나, 생겼구먼.’
‘가끔 선배님께도 혜택이 돌아가야 하질 않겠습니까?’
‘그럼……이를 말인가? 언제부텀?’
‘아니, 당장은 아니고, 좀 훈련이 되어야 하질 않겠습니까? 황군의 예의범절과 장교에 대한 접대 법을 어느 정도 익혀야, 쓰기에 유용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어차피 소모품 이기는 해도…… 연필도 잘 깎아야 글씨가 제대로 나오는 법,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똑똑하고 치밀하단 말이야. 그럼 이따가 보세……’
하라다 소좌는 페스트의 숙주 배양실에서 근무했다. 내가 그렇긴 해도, 우리는 언제나 실험실과 작업실을 드나들 때마다 해야 하는, 전신 소독을 제일 껄끄러워 했지만, 특히나 숙주 배양실은 더더욱 심했다. 특수 제작된 대형 밀폐 탱크에서 길러지고 있는, 수억 마리의 이와 벼룩들….페스트에 감염시킨 모르모트를 그 안에 잡아 넣으면, 순식간에 뼈 밖에 남질 않는다. 그렇게 페스트에 접균 된 숙주 벼룩을 생존, 번성시켜, 다른 건강한 쥐에게 기생시키고, 그 같은 작업을 계속 반복 하다 보면, 보다 살상력이 극대화 된 균이 남겨진 숙주만이 잔존하게 되는데,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그 였다. 그렇게 얻어진 각기 다른 버전의 균을 접종 팀에게 넘기고 나면, 그 균을 마루따 에게 주입하고 데이터를 받아오는 것은 그의 책임 밖의 일 이었고……그는 언제나 자신을 동물원 사육사 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할 일이 무언가를 키워내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붙여 본 별명이라고 했지만, 그는 유독 자신의 그 별명에 애착을 갖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내 옆방에 같이 있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하는 곳이 달라도 같이 붙어 다니는 일이 많아서, 때때로 우리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다가 상대편 작업실 입구에 설치된 전신 소독실에 들어가서, 소독 세례를 받을 때까지, 모르고 있다가 앗차 하는 적도 꽤나 많은 일과 중의 하나 였기에……그는 나에게도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언제나 수술과 피를 보는 일이 많은 나를 가리켜, 요리사라고 했었다. 자신이 먹을 것도 아닌, 음식을 줄창, 썰고, 찢고, 씻어 내는 그 행위의 특징을 어찌나 잘 잡아낸 별명이던지, 나는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 별명으로 인해, 내가 하는 일을 돌아 볼 때마다, 그 별명으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해 왔었다. 나의 작업실은 다른 곳보다 조금 서늘하다. 하루 종일 마루따를 해부하고, 접균 되어 감염된 장기를 적출해서, 병리학 팀으로 보내고, 일일이 중요한 병발 부위는, 클로로포름에 담가서 샘플화 하는 과정들 문 이기도 했지만….언젠가 업무상 우리 작업실로 들어선 하라다는 그렇게 얘기 했다.
‘거 봐,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 하다니 깐! 보니깐 두루…. 요리가 한창 이 구만……저기 늘어선 병들은 뭐야? 꼭 오이지 담구어 놓은 피클 병들 같구먼. 요리사가 밑반찬은 저렇게 쟁여 놓아 뭣에 쓸려 구?’
그의 나불대는 소리에도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할 수 없었던 것은 해부실 천정에 마련된 관찰창구로 영내의 중요 임원들이 해부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 보다도 마취가 되지 않은 마루따를 결박한 채로, 개복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시체라면 모를까, 살아있는, 그것도 마취가 되지 않은 상황하에서는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 지고, 되도록 숨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직접적인 타격이 좀 덜한 장기부터, 적출을 하기 시작하는데, 쇼크가 빨리 오지 못하도록 간간히 부위 별로 절개해 내고 남은 신경 부위에, 국소 마취약을 조금씩 발라주어야 하는 번잡스러움은 말상대를 하기에는 역부족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장기의 상태를 검사하는 팀에서는 되도록 적출된 원래의 상태를 좋아했으며, 세척한다거나, 마취약, 지혈제와 같은 화학 물질이 장기에 묻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평소 징집되기 전, 부친의 병원에서 일할 때에는 수술의 마무리를 위해서 언제나 바느질만 열심히 해대는 통에, 그 어려운 의학공부를 해 온 것이, 고작 이런 살 꿰매는 일이나 하려고 배웠는가 싶은 후회가 막급 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봉합이라는 작업이 없어서, 그것이 우선 좋았다. 장기가 적출되어 해당 팀으로 보내어지고, 바람 터진 고무공 마냥, 뱃속이 횡 하니 비워진 마루따는 봉합의 필요성도 없었고, 그저, 방호포대에 실려 소각실로 끌어가 태워 버리면 그만 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이 사실 이었다. 요리사가 요리하는 식 재료를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긍휼과 연민의 심정으로 바라본다면 요리가 될 수 있었겠는가? 오늘도 밀려 있을 해부 스케줄 표는 멀리서 봐도 빼곡히 검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오늘은 오후에 중요한 껀이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돼, 부대장님께서 직접 보러 오신 다니깐.’
그것은 다름 아닌, 아침에 얘기한 진공 실험에 따른 해부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밀폐된 방안의 공기를 급격하게 빼면서 기압을 엄청난 속도로 낮추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서 실험 한다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그 마루따는 생전 처음 자신의 속 내장과 겉이 양말 벗다가 뒤집어지는 것처럼, 홀라당 바뀌어 지는 통쾌한 마술을 경험하게 될 거 라고 들 했다. 항문과 입을 통해 배 안의 창자들이 꾸역꾸역 튀어 나오면서, 눈알도 뽑아질 듯이 돌출되는 기가 막힌 매직쇼…..아마도 우리 팀은 적출을 하면서도 이게 어떤 부위 였는지 퍼즐 맞추기 같은 곡예를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런 나날들의 연속…… 우리는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었지만, 아무런 접촉도 없이, 넓은 평원의 개활지 위에 세워진 무시무시한 연구소 내에서 이런 짓거리로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것이 자랑스런 일이라는 것에 추호도 의심을 하질 않고 있었다. 모든 것은 진정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일환이었고, 우리가 총탄을 한 발 쏘는 대신, 손에 든 메스로 우리의 애국심을 표현해야 될 거라는 부대장의 명령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었던, 우리들의 가슴속에 파고든 한가지 신념은,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일들이 숭고한 역사의식이 베어 있는, 전문가 만이 할 수 있다는 특권 의식…… 그런 것이었다.
‘아함… 피곤하네…… 내일 뵙겠습니다.’
나는 해부실을 나서면서 오늘은 유달리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다. 겉에 입고 있는 방역 복을 벗어 소각함에 집어 넣고, 마지막 소독실을 거치고 나자, 나는 비로소 방에 남겨진 그 여자에게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가져다 주질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종이 봉투를 하나 빌렸다. 두 사람 분의 식사를 받아다가, 한 사람 분은 어떻게 되던가 말던가 봉투 안에 쓸어 잡아 넣어 넣고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고….내 앞에 앉아 식사를 하는 하라다는 발 밑에 놓아 두었던 봉투를 힐끔 보고서는, 씨익 웃기만 했다. 방으로 향하면서 하라다는 나의 옆구리를 쿡 치면서 말을 건넸다.
‘사료?’
‘네…..’
그것뿐이었다. 방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나는 그 조센삐가 보이질 않는 것에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화장실에서 기겁을 하며, 튀어 나오는 그녀 때문에 내가 더 놀라고 말았다. 입가를 훔치면서 나오는 그녀는 내가 아침에 던져주고 나간 내 옷을 헐렁하지만 입고는 있었고, 아마도 주린 배를 움켜 잡고 화장실에서 물로 배를 채우고 있었던 모양 이었다. 방안을 둘러보니, 아침과 다르게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고, 바닥도 말끔하게 닦여져 있었다. 구석에는 아침에 내가 찢어 놓고 나간 옷이 걸레로 썼는지, 물기가 짜여진 채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놀진 않은 모양 이구만. 자 이거 받아.’
다 식어 빠진 채로 종이 봉투가 찢어질 것 같은 형상의 음식 덩어리는 그렇게 마구잡이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 하질 않는 눈치였다. 옷을 갈아 입는 나를 쳐다 보면서 봉투를 들고 서 있기에,
‘왜? 뭐가 더 필요해?’
‘아닙니다. 목욕하러 들어가시면, 그때 먹겠습니다.’
가르치지도 않은 정갈한 예절……마음에 들고 있었다.
‘아니야…… 히미쯔! 어서 먹도록 해. 그리고, 할 일이 있어. 자고로 남자가 목욕할 때는 여자가 옆에서 시중을 들어야 하는 것도 모르나?’
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돌아서서 구석으로 가더니만, 쪼그려 앉은 채로, 나를 향해 등을 돌린 채로, 맨손이 더럽지도 않은지, 봉투 안의 음식을 허겁지겁 집어 먹기 시작했다. 떨어져 있어도 들리는 꿀꺽대는 음식 넘기는 소리….아마도 저 쩝쩝거림은 손에 묻은 음식 찌꺼기 마저 도 핥아먹는 소리일 것이다. 동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조센삐 같으니라고….그렇지만, 나는 그래도 시간적인 여유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군복을 천천히 벗어갔다. 침대에 걸터 앉아 군화를 벗으려고 하는데, 이미 음식을 다 쳐먹었는지, 아니면, 손에 번들 거리는 음식 찌꺼기와 침이 묻은 채로 군화를 벗겨 주려는 의도 에서 였는지, 내 앞으로 쪼르륵 달려왔지만, 그 손으로 군화를 잡으려는 그녀의 가슴팍을 나는 냅다 걷어차 버렸다.
‘무식한 조센삐 같으니라고, 어디 그 따위 손으로 황군 장교의 군화를 붙들려 하나!’
그러나, 나는 그녀가 손을 덜덜 떨면서, 나를 올려다 보는 눈빛에 가슴이 찡 하다는 느낌을 받아 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눈빛은,
‘당신이 준 옷에다 이 오물을 닦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라는 호소의 외침 같았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마저 음식을 먹고, 욕실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음식은 구석에 내팽개친 채로, 나를 따라 욕실로 들어 왔다. 내가 옷을 모두 벗고, 서 있자, 재빨리 자신의 손부터 씻고, 탕에 물을 받기 시작하는 그녀……조선의 어디에서 살다 왔길래, 시키질 않아도 저렇게 재빠르게 몸을 사리는지, 의문 이었지만, 족히 하루 종일 방안에서 있었을 시간을 감안하고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욕조에 물이 거지반 차오르자, 그녀는 나를 탕 안으로 앉혔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게 알맞게 덥힌 물…. 나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에 휩싸였다. 얼마간을 그렇게 있다가 내가 눈을 뜨자, 나를 탕 밖으로 이끌어 내고는, 수건에 비누를 묻혀 전신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구석구석 빈틈없이 찬찬한 솜씨로 닦아내는, 그 손길 때문 인지는 몰라도, 가슴팍에 나 있을, 내 군홧발 자욱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겨주는 그 손길은 일본 여자에게서나 느끼던 섬세한 손길임을 알고, 나 자신 깜짝 놀라고 있었다. 무식하고, 배운 것 없이, 동물 같다고만 여겨온 조센삐 였는데…… 그 부드럽고, 연약한 듯한 손 끝의 야들 거림은 소름이 돋게 하기에 충분한 여운이 있었다. 목욕이 끝난 내 몸을 마른 수건으로 닦으며,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그녀의 검은 머리 결이 눈에 들어왔다. 소 불알처럼 축 늘어진 나의 고환까지 살포시 손바닥으로 받쳐들고, 그 밑까지 닦아내는 그녀의 세세함은 더더욱 이나 나를 놀래 키고 있었고…욕실을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와, 나는 책상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얼마간의 물소리와 함께 그녀가 나오고, 그녀는 구석에 내버려 두었던 음식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무얼 하는가 하고 일어나 욕실을 들여다 보는데,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더럽지도 않은지, 좌변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음식을 퍼먹는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음식이 바닥이 났는지, 봉투를 뒤집어 안 쪽에 묻은 국물과 양념마저도, 종이가 찢어질 듯이 핥고, 빨아대던 그 모습….나는 자리로 다시 돌아와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봉투는 어떻게 했나?’
욕실에서 나오는 그녀에게 나는 큰 소리로 물었다.
‘물에 헹구어, 조각조각 낸 뒤에, 좌변기에 넣고 버렸습니다.’
‘음…… 생각보단 제법 똑똑 하군……입가에 묻은 번들거리는 거랑, 몸도 마저 씻고 나와. 들어가기 전에 저 옷장의 세 번째 서랍에 들어가 있는 내 속옷도 챙겨서 들어 가고…… 갈아 입어야 하질 않겠나 말이다!’
그녀는 아무런 대꾸 없이 내가 시킨 대로 옷을 챙겨 들고, 욕실로 다시 들어갔다. 담배를 서너 개쯤 피웠을까? 그녀가 욕실에서 나왔다. 아까와 다르게 뽀얘진 피부 하며, 붉게 홍조를 띈 양 볼이 꽤나 고혹 스럽게 보였다. 다른 곳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온수와 비누 거품의 효과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히미쯔, 여기 와서 앉아라.’
그녀는 나와 멀찌감치 의자를 가져다가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무릎을 꼭 붙인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나와 마주했다. 반바지 같은 나의 팬티가 그녀에게는 좀 커 보였고, 아무래도 그 사이로 거뭇한 보지털 이라도 보일까 싶어 조심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몇 살이냐?’
‘스물 하나 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그녀가 조센삐 였음 에도 유창한 일본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일본말은 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정신대 같은 부류의 여자들을 이제까지 접하지는 못했지만, 일본어만큼은 기본적으로 하고 있어야 된다고 여겼기 때문 이리라.
‘이곳에는 언제 왔느냐?’
‘어제가 처음 이었습니다.’
‘그래? 주욱 조선에서만 살다가 왔느냐?’
‘아닙니다. 저는 일본에서 이곳으로 바로 끌려…… 아니, 오게 되었습니다.’
‘일본? 거 듣고 보니, 희한 하구만. 그럼 넌 게이샤 출신이라고?’
‘……’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질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잘은 몰라도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파르르 떨리는 것으로 보아 울먹이고 있는 것 같았다.
‘게이샤는 아닙니다. 그냥…… 일본에서 체포되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지요. 말씀 드리자면……후……. 길고 긴 얘기 입니다.’
‘그래? 담배 피울 줄 아느냐?’
‘네……’
나는 그녀에게 팔을 뻗어 담배를 내밀었다. 그 하얀 손가락에 담배를 끼워, 피워 무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고, 그녀가 내뿜는 파란 연기가 허공에 흩어지면서, 그녀의 눈이 스르르 감기는 장면에서, 나는 모데라토의 음률을 느끼고 있었다.
‘담배는 누구에게서 배웠지?’
‘일본에 있을 때 입니다. 공부에 방해 된다고 끊으려고 했었는데….’
‘공부? 무슨?’
나는 그녀가 일본으로 유학을 올 정도의 조선 여자라면, 그래도 조선에서 내노라 하는 집안의 자제라는 생각에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신학문 이지요. 여자가 뭘 배운 다는 게…… 조선에서는 받아들여 지질 않아서……’
‘혼자는 아니었겠군!’
‘……’
그녀가 다시 또 한숨 같은 연기를 길게 내 뿜는다. 어지러운 모양인지, 조금씩 고개가 좌우로 흔들거렸다.
‘결혼 했나?’
‘할 뻔 했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독립 운동에 연루되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담배를 하나 더 피워도 되겠냐는 당돌한 질문과 함께, 서서히 나에 대한 긴장을 풀어갔다. 그녀는 일찍이 개화한 부친의 권유로,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메이지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얘기해 주었고, 유학 생활의 외로움과 일가 친척도 없이, 인종적 차별이 극심했던 그 당시, 조선인 유학생의 신분으로 지낸다는 것은 살얼음 판을 딛고 서 있는 느낌 이었단다. 그러다가 만난 다른 조선인 유학생과 사랑에 빠졌었다는 그녀…..한동안 말을 잊질 못했다. 풍족하게 보내 오던 부친으로부터의 용돈은, 곤궁했던, 사랑하는 사람의 생활고를 덜어주기 위해 모두 쓰여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아낌없는 뒷바라지도 뒤로 한 채, 그 남자는 히미쯔 로부터 받아 든 생활비의 일부를 쪼개어,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으로 계속해서 자금책에게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체포되는 당시까지 그녀는 몰랐다고 한탄했다.
‘후회하고 있나?’
‘아닙니다.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섭섭할 따름 이지요. 그를 정말 사랑 했기에,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녀의 하숙집으로 왜경의 추격을 피해 도망쳐 왔을 때에도, 그녀는 자신과의 섹스가 그리워서 기어이 달려온 줄로만 알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만 했다. 그녀가 정말 모르고 있었기에 모른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지만, 왜경은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질 않았고, 범법자를 숨겨주었다는, 크나 큰 범죄행위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강제로 게이샤들의 무리와 함께 이 곳으로 보내 버렸다는 얘기였다.
‘재판도 없이?’
‘일본에서 조선인 유학생의 권리나 신분보장 이라는 것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지요. 죄나 짓지 않고 살아간다면 모를까……’
나는 이제 두 다리를 꼬글 치고 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은 기간 사이에, 일본 사회에서 가슴을 펴고 살아가던 유학생이, 이렇게 전쟁의 한가운데에, 버려진 듯이 떨구어 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때리면 때리는 대로, 쓸리면 쓸리는 대로, 생을 이어 나가려는 그녀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이었다. 그저 보통의 조센삐가 아니라, 조금은 일본인에 근접했을 거라는 나만의 생각 인지는 몰라도, 아까의 지분거림은 어디로 가고,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이제는 가여운 한 명의 여성으로 차츰 보이기 시작하고 있음에도 놀라고 있었다.
‘똑똑!’
‘자나? 나 하라달세….’
문을 열자, 가운 차림의 하라다가 빙글빙글 웃는 모습으로,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슬며시 가운의 가운데를 열었다가 닫는 것이었고…… 안에는 아무 것도 입은 것이 없었다.
‘들어 오십시오.’
언제 그랬는지, 벌써 히미쯔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머리를 숙인 채, 방 구석으로 몸을 피해 있었다. 멀리서 봐도 내 내의를 입고 있어서 인지, 헐렁한 모습이 역력 했고, 팬티 아래로 죽 뻗은 두 다리의 살결이 빛나고 있었다. 하라다는 탁자 옆의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재미 쫌 봤나?’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니, 그 가운이 좌우로 열리면서, 흉측한 하라다의 좇대가 축 쳐져 옆으로 늘어진 채로 세상 구경을 하고 있었다.
‘아직……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없었다……그런데, 어찌 자네 내복을 입고 있지? 입을 옷이 없을 정도로 찢어 발기면서 섹스를 한 건 아니고? 그러니 갈아 입을 옷이 없어서 저렇게 벌을 서고 있는 것이 아니냔 말이지, 내 말은?’
‘아닙니다.’
‘그래? 그럼, 오늘 밤, 나에게 자네 하인을 좀 빌려 줄 수 있겠나? 밤이 워낙 길어야지! 또 비밀을 지키려면, 같은 배를 탄 사람에게, 노 한쪽은 내어 줄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어때?’
‘글쎄요…… 아직 배가 타기에는 준비가……뭐 할 수 없죠…… 그런데, 이건 어떨까요? 노를 같이 저어 보는 건…… 어차피 한 쪽만 저어 봐야, 그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 자네가 내 취향을 어느 정도 아는 구만… 그래, 가릴 거 없지, 좋아…. 어이 조센삐! 여기 와서 대 일본 제국의 황군 장교님들 몸 쫌 풀어 봐라. 어여?’
의자에 앉아 있다가 하라다는 냉큼 침대로 옮겨 앉아, 가운을 걸친 채로 두 가랑이를 좌악 벌렸다. 가운의 중앙 부분이 벌어지면서, 가랑이 사이로 차츰 발기되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하라다의 좇대가, 거수기처럼, 슬며시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히미쯔는 나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나는 구석에 서 있는 그녀에게로 다가 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고 있는 그녀의 귀에 대고 나즈막 하게 속삭였다.
‘곧 끝날 거다.’
‘저….부탁이 한가지 있습니다….’
‘무슨…’
‘같이 한 곳에 넣지는 말아 주십시오….’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녀의 돌연한 질문을 대답도 없이 듣고 있었다. 어깨를 감싸며, 침대 앞으로 다가 왔을 때, 하라다가 느물거리며, 말했다.
‘역시, 네 놈의 눈은 정확해. 요리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여자 고르는 눈도 제법이야. 나 같은 사육사야, 인간 꼴을 못 보니, 눈깔이라고 달려 있어봐야, 제대로 고를 안목이나 있을 라구. 어서 옷이나 벗지. 그거 자네 속옷이니, 내가 찢을 수는 없지 않겠나? 하하하….’
그녀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속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등판을 타고 흘러, 그 풍만한 히프의 첨두를 지나는, 긴 소름의 행렬을 보고 있었다. 하라다의 앞에 히미쯔가 무릎을 꿇자, 하라다는 어서 오라는 식으로 두 팔을 벌려, 그녀의 어깨로부터 겨드랑이, 젖 무덤으로 이어지는 곡선을 향해 팔을 뻗었고, 이어서 그녀의 젖을 쥐어 터져라, 주물렀다. 이미 그의 좇대는 배꼽까지 발기되어, 아랫배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강직한 각도를 유지하며 하늘을 향해 서 있었고, 히미쯔는 그 좇을 아랫배에서 떼어내는 것 같은 손 동작으로 거머쥐면서, 서서히 입 속으로 그 좇을 침몰 시켜 갔다. 젖을 주무르면서도 연신 입으로 옳지, 좋아, 좋았어 를 중얼대는 하라다. 나는 그녀의 꿈틀거리는 어깨의 근육과 아울러 그녀가 밥을 먹으며 내던 것 같은, 쩝쩝거림과 훌쩍거리는 소리 전부를 뒤에서 듣고 있었다.
‘뭐하고 있어? 자네도 뒤에서 보지 맛이나 좀 보게…..엄청 맛있어 보이던데, 식사도 했겠다, 디저트로 씹물 칵테일도 그런대로 먹을 만 하잖아?’
‘그러죠….’
나는 뒤로 다가가 히미쯔처럼 무릎을 꿇고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뒤도 돌아다 보지 않은 자세에서, 히미쯔는 꿇어 있던 두 다리를 무릎으로 버티면서, 나를 향해 히프를 선뜻 올려서 벌려 주었다. 자세가 불안 했는지, 히미쯔는 좇대를 붙들던 손을 잠시 놓더니, 양 팔꿈치를 벌려진 하라다의 넓적다리에 올려 놓고, 다시 좇대를 손바닥으로 합장하듯이 거머 쥐고, 빨았다. 나는 그녀의 뒤에서 그 풍요로운 히프를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움찔하는 그녀, 그러나, 그리 오래 버둥대지는 못했다. 나의 손이 좌우로 벌려진 그녀의 씹 살에 멈추었기 때문이었고….오랜만에 대하는 여자의 체취였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의 부드러운 곡선에 코를 부벼 가며, 가슴 깊이 치밀어 오르는 그 육욕의 불길을 애써 진정 시키면서, 살 냄새를 일일이 들이키기에 급급했다. 그녀의 씹 살 사이로, 코가 쳐 박혀, 뱀 혓바닥처럼 내 의지와 다르게, 쑥 내밀려진 혀끝은, 그녀의 공알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고, 이미 척척 해진 코 끝을 통해 그녀가 하라다의 좇을 빨면서 흔드는 고갯짓의 진동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 이런 맛이야…… 옳지…… 여자의 혀는 뭐가 달라도 달라…… 그래…… 쑥쑥……쑤욱……쑤욱…… 옳지…… 그렇게……’
하라다는 스스로 미쳐 돌아가고 있었고, 나 또한, 그녀의 가녀린 삶의 조각을 비추어 보았음에도 아랑곳 하질 않고, 한 마리 동물처럼 그녀의 보지 속조차, 샅샅이 주어 먹으려는 것처럼, 쭉쭉 소리를 내며, 씹 살 마저 도 입안에 머금고 빨아댔다.
‘윽윽윽…… 억억…… 그래.. 그래…… 고개를 빼지마…… 계속 입안에 넣고…… 그렇게……욱욱욱……’
하라다의 좇이 그녀의 입안에 박힌 채로, 내 예상과 맞아 떨어지듯이, 그는 계속되는 히미쯔의 끈질긴 고갯짓으로, 좇물을 토해 놓고 말았다. 그러나, 그 여운을 끝까지 즐기려는 속셈인 것처럼, 좇물을 뱉을 사이도 없게시리, 두 팔로 그녀의 머리를 내리 누르며, 입에서 좇을 빼지 못하게 붙들고 있었다. 그가 침대위로 발랑 나자빠 지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후아 하는 탄성과 함께 다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스고이, 스고이 데스네!(정말, 정말 끝내주는 구만)’
그는 탄성과 함께 나와 히미쯔를 뒤로 하고, 탁자로 가서 담배를 피워 물며, 나와 히미쯔에게 침대로 올라가, 멋들어지게 한판 벌이라고 격려하고 나섰다. 자기는 담배 좀 피우면서 기운을 차린 후에, 다시 동참하겠다고 하면서……나는 그의 명령에 따라, 내가 먼저 침대에 누웠다. 뒤이어, 히미쯔가 나의 아랫도리에 엎드려, 나를 잠시지만, 좇대를 입에 물기 전에, 물끄러미 올려 보다가, 나와 그녀의 시선이 잠시 마주쳐 버렸고……나는 그녀를 향해 처음으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너무 머리 속이 복잡했다. 갖가지 생각이 물밀듯이 사고의 체계 속으로 쏟아져 들어 오는 것 같았고, 두서 없음은 말할 것도 없었다. 두통약을 먹는 다는 것도 별다른 해결책이 될 것 같질 않은, 그 길고 긴 싸움. 이렇게 아파 올 때면, 고개를 흔들 때마다, 머리 속의 뇌가 양푼 안의 기름 바른 고깃덩어리 같이, 흡사 두개골 안에서 이리저리 쏠리는 것 같다는 표현을 해야 옳지 싶다.
‘자기야, 어디 아파?’
‘응, 좀 피곤 했나봐. 정말이지 해골이 복잡하다고 누군가 그랬는데, 내가 꼭 그 짝이네.’
‘두통약 좀 사올까?’
‘아니야, 아까 집에서 나오기 전에 먹었는데도 그렇네…’
‘혹시 감기 아냐? 감기에 두통약을 먹었다면 들을 리 없잖아?’
‘아니래두, 내가 내 몸을 모르겠니?’
나는 몸이 말을 듣질 않음으로 해서 괜시리, 앞에 앉은 정현이 에게 짜증을 내고 있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오늘은 왠지 나를 만나러 나와 앉아 있는, 정현이의 속마음까지, 탐탁지 않게 느껴지고 있었다. 몸이 이렇게 뻔히 아픈 줄 알면서도, 내일 보자 어쩌구 하는 말도 없이, 어서 빨리 낫게시리, 두통약 어쩌구 하는 걸 보면, 기어이 기사회생 시켜서, 좇물 이나 한 따까리 잡숫고 들어가야 겠다는 생각인가 본데…..그러나, 그런 생각을 곱씹으면서도, 내 스스로 몸이 괴로우니, 애꿎은 정현이만 붙들고 실랑이 겠지 하면서, 하릴없는 나의 시큰둥 함을 스스로 끊어 버렸다.
‘오늘, 그냥 들어갈까?’
‘아니, 뭐…... 요즈음 독감이 유행이잖아? 약 먹었으니 이러다 낫겠지 뭐. 밖에 나가서 좀 걷자. 여기 실내가 너무 공기가 탁한 거 같지 않니? 난방만 디리 해대지, 실내 공기를 갈 생각을 전혀 안 하나봐.’
‘찬바람 쐬면… 더 아파지지 않을까?’
‘괜찮아… 쫌 걷다 보면 몸에 땀도 나고, 혈액순환에도 좋을 거 아냐?’
나는 껄끄러워 하는 표정의 정현이를 끌다시피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길거리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끓어 넘치고 있다. 저마다 바쁜 종종 걸음으로 어디론가를 향해 나서는 사람들….할 일 없는 어느 학자가 인간의 보폭에 대한 연구를 하다가, 세계적으로 가장 빠르게 걷는 민족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의문의 화살을 돌려보니, 그게 바로 한국인이라는 결과가 방송에 나온 적이 있었다. 나는 길거리의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어째서 우리들의 발걸음은 언제나 쫓기듯이, 어디론가를 향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종종 의문을 가질 때가 있었는데, 아직도 해답을 찾지는 못하고 있었다. 그저 민족성이나, 살고 있는 주변 환경의 영향 탓으로 돌릴 뿐 이었고, 그렇게 걷질 않는다면, 자기가 남보다 뒤쳐져서, 언젠가는 어깨를 나란히 하고, 다른 이들처럼 걸을 수 조차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한국인만의 유별난 위기의식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고 짐작해 볼 따름 이었다. 걸어가는 우리 두 사람의 정면으로 바람이 모질게 살을 에이면서 불어 오고 있었다.
‘자기야, 바람까지 부는데? 자기는 바람 소리 싫어하잖아!’
‘글쎄, 오늘은 괜찮네. 아마 기분 때문 이겠지 뭐.’
‘자기야, 아무래도 오늘은 날이 안 좋다. 내일 만나는 건 어때?’
‘그럴까?’
나는 정현이와 헤어지면서도 평소 느끼는 안타까움이 없는 것에 놀라고 있었다. 만나면 다른 연인들 처럼, 영화 보고, 밥 먹고, 술에 곁들여 너무 자주는 아니더라도, 짬짬이 섹스도 나누는 사이에, 오늘처럼 무미건조하고, 별다른 감정 없이 헤어진 다는 것이 마음에 걸릴 법도 했건만, 돌아서서 여느 사람들처럼, 종종걸음으로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대하는 나의 무심함조차 거추장스럽게 보이는 오후였다. 몸도 좋질 않으면서, 장갑을 잊고 나온 것을 후회하면서도, 코트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으며, 발길을 돌리는 사이,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일년 신수나 토정비결 보시지….’
돌아다 보니, 한 겨울에, 그것도 비치 파라솔에 휘장을 둘러치고, 낚시터에서나 볼 수 있는 단출한 간이 의자에 걸터 앉은, 노친네가 나를 두고 부르는 소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냥 길거리에 저렇게 퍼질 리고 앉아서, 별로 적중률도 없는 점괘나 들이 대면서, 무얼 조심해야 한다는 등의 위협사격만 해대는, 그런 부류로 보이고 있었지만 서도….나는 별다른 새끼줄도 없이 비어버린, 오후의 적적함도 달랠 겸, 휘장을 들치고, 안으로 몸을 움직였다.
‘날씨가 보통이 아니야, 젊은이, 그렇질 않은가 말이야!’
‘이런 조그만 난로로 이렇게 길거리에서 주구장창 버티시다뇨? 춥지도 않으세요?’
그 노인장은 대답 대신에 나를 물끄러미 보면서, 속으로 요 놈은 도대체 얼마짜리나 되려나 재어보는 듯한 눈매에, 금새 이 곳으로 들어온 나 자신을 후회했다.
‘뭘 좀 봐줄까? 궁합? 신수? 아니면, 일년 총운?...당사주도 좋고….’
‘글쎄요. 이런 거 여쭈어 봐도 될는지는 몰라도, 잘 맞긴 해요? 뻑 하면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돗자리 펴도 되겠다고 말이죠. 영험 하시다면 여기 계셔야 될 게 아니고, 어디 미아리 같은 곳에나 자리 틀고 계셔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말이죠.’
‘자네 몰라서 하는 말이지….이것도 종교랑 다를 게 없지. 사람들 속으로 파고 들어야 제격인 게야. 예를 들어, 불교가 기독교 보다 뒤떨어 질것도 없지만, 나을 것도 없어요. 무조건 고고합네 하면서, 머리 깎고 산에만 들어가면 모든 게 깨우쳐 지남? 종교의 진리라는 것도, 다 사람들의 입김 속에서 가깝게 느물거려야 살갑고, 정겨운 거 아니겠어? 다 인간을 중심으로 생성된 강강수월래 일 텐데, 지 혼자 잘났다고, 산속에 들어가 염불만 하면 누가 알아 주기나 하나? 그런 것들은 번뇌의 그늘에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전전긍긍 하면서도, 속세의 고충을 나 몰라라 하기에, 더더욱 이나 해탈의 범상함에 낄래야 낄 수도 없는 게야. 사람이 사람을 내치고서야 어디 이룰 수 있는 공덕이 있간디? 내 말이 틀리나?’
‘옳으신 말씀이네요.’
그런 사이에 어떤 여자 한 사람이 내가 안에 있는 것을 몰랐는지, 비닐 장막을 들치고 그 좁은 구석으로 몸을 들이 밀었다.
‘어휴, 안에 손님이 계신 줄 모르고…..’
‘괜찮아요. 들어와요, 어서! 두 사람은 족히 들어와 앉을 수 있으니……’
‘그래도 될까요?’
‘거럼… 다른 사람들이야, 점을 볼 때, 천기누설의 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어찌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앉혀놓고, 그들 만의 프라이버신가, 뭔가를 상대에게 공개적으로 까발리느냐 라고 앵앵대지만, 나란 사람은 좀 다르거든. 타산지석 이라고, 이렇게 마주 대하고 앉아서, 다른 사람의 숨겨진 얘기를 경청하는 것도, 나쁘진 않다는 얘기라 이거지…..살다 보면, 그렇게 생긴 사람은 그런 운명이더라 라고 살펴보는 것도 별로 해가 되는 경험은 아니라, 이 말씀이야. 혹시 알아? 그게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촉매가 될는지?’
그 노인네는 상술인지 뭔지는 몰라도, 여느 시답지 않은 점쟁이와는 노는 폼 새가 달라 보였다. 앞에 앉아 있는 두 사람에게 생년월일을 묻고, 태어난 시를 물은 뒤에 노인장은 바닥에 펼쳐져 있던 여남은 권의 책을 두어 번 뒤져보고, 이리저리 생각에 잠겨,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두 사람, 나이가 비슷허네…. 그렇지? 잠시만 기둘려.’
노인장은 옆으로 치워 두었던 간이 탁자로 몸을 틀어서는, 아주 빠른 속기로 종이에 무언가를 하나 가뜩,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언뜻 옆에서 보니, 한자도 꽤나 빼곡히 적혀가고 있었고, 무슨 스토리 마냥, 길고 긴 문장을 수려한 필체로, 속사포 마냥 적어 내려가고 있었다. 한참이 지나서 노인장은 두툼한 두 개의 봉투를 밀봉해서는, 나와 옆에 앉아 있는 그 젊은 여성에게 건네 주었다.
‘적어준 그걸 베게 밑에 베고 자란 말이지, 지금 열어 보아서는 절대 안되고, 오늘 밤을 지나고, 열어 봐야지, 안 그러면 심각한 일이 벌어질지도 몰러.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은 아무에게도 얘기해서도, 눈치를 줘서도 안되고 말이야.’
‘왜 그러시는 건데요? 이거 평범하게 신수나 보는 거, 그런 거 아닌가요?’
‘그렇긴 하지. 그렇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종종 있어. 사람이라고 다 똑 같은가? 제 각각 생긴 모양새가 다르듯이, 살아갈, 혹은 살아온 인생의 역정은 같을 수 없는 게, 세상 이치 아니겠는가? 자기의 자의든, 아니든 간에,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야, 책으로 펴내도 모자랄 만큼 지천 일 테고, 그나마 앞으로 남겨진 인생을, 멋도 모르고 재잘댄 대서야, 어디 제대로 살아간다 할 수 있을까?’
별로 길게 살아 보지도 못한, 나 같은 젊은 나이에, 너무 거창한 말빨로 기를 죽이고 계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우도 있었건만, 노인장을 앞에 두고, 나와 그 여자는 엄숙한 분위기를 떨칠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내 한마디 험세. 내 나이는 이렇게 폭삭 쭈그러 들었지만, 그래도 세계 곳곳 안 다녀본 곳이 없고, 세상 부러운 것, 가져 보지 않은 것이 없으이. 두 사람에게 동시에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나서 그러니, 노친네의 허망한 노파심에서 우러나온, 쓰잘데기 없는 헷소리 라고 일축하지 말고 들어 주게나. 언젠가 영화를 본 적이 있지…. 불과 관련된 영화 였는데, 형제가 소방관으로 나오지. 어떤 정신 병자 같은 인물이 소방서의 존폐에 악영향을 끼치는, 이를 테면 예산을 삭감한다든가, 인원의 축소를 검토한다든가 하는 인물들을 교묘한 방화 기법으로 살해하는 얘기 였는데, 그 안의 스토리 중에 백 드래프트 라는 영어 단어가 나온 다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범인이 다름 아닌, 그 형제 소방관 중의 형이었지, 아마? 지금 생각해도 그 혓바닥 처럼 이글거리는 화염의 울렁임… 정말 장관 이었어. 내가 왜 이런 얘기를 꺼내냐고? 다 이유가 있다네. 그 얘기 속에 화재의 현장이 수습되고 나서, 제일 먼저 투입되는 사람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일어난 불이 방화냐, 자연발화냐, 아니면, 제 3 의 이유에 의해 일어난 실화 이냐를 분석해 내는 전문가 말이야. 불은 묘하게도 발생한 자리로 되돌아 오는 법이 없다지, 아마? 왜냐하면 이미 불덩이 자신이 거쳐간 자리는 다 타고 없어졌기 때문이라나? 그런데, 그 전문가가 그 교묘한 트릭을 그 동생의 힘을 빌어 기어이 밝혀내는 거야. 자신까지 다쳐 가면서….방안에 화학약품을 가지고 들어가, 기가 막히게 산소만을 태워 없앤 뒤에, 칼날 같은 타이밍으로, 제거하고 싶은 인물을 불러 들여, 거의 산소가 바닥나고, 불씨만이 화학약품에 의존해서 겨우 지펴지고 있는 그 방의 문을 활짝 열게 만들지. 그리고는 뻥! 왜냐구? 문을 여는 순간, 산소가 바닥나 있지만, 그 산소를 태워 없애는 와중에, 역으로 발생한 폭발성 발화 개스가 문을 열면서 공급된, 외부로부터 밀려드는 산소와 접촉하면서, 그냥 평범한 발화가 아닌, 폭탄과 같은 산화 작용으로 둔갑된 나머지, 불과 함께 문을 연 사람마저 도 그 무지막지한 폭발력으로 살해하는 거였어. 내가 두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은 얘기는 바로 이거야.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옛말이 무섭게만 느껴지네 그랴. 이렇게 마주하고 앉아 있는 자네 두 처녀, 총각이 그 상황과 너무 잘 맞아 떨어지고 있기 때문 이라네. 앞으로 다시는 보지 않도록, 뒤도 돌아다 보지 말고, 이 길로 곧장 집으로 가버리게나….절대 뒤돌아 보지 말고….어여!’
‘무슨 말씀인지….’
‘어느 누가 어떤 역할 인지는 몰라도, 둘 중 한 사람이 방안에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폭탄 같은 불씨라면, 다른 한 사람은 그 불씨를 향해 무심코 문을 열어 주려는 역할이기에 하는 소리지, 뭐긴 뭐겠어? 이제 대충 알아 들었으면, 냉큼 제 갈 길로 돌아들 가. 절대 뒤돌아 본다거나 전번도 교환하지 말고….돈은…… 뭐, 받은 셈 치지…..’
그 노인장은 서둘러 우리 두 사람을 포장 밖으로 내치면서, 자신도 휘장을 걷어, 그 자리를 뜨는 것이었다. 나와 그 여자는 망연히 서로를 바라 보다가, 언뜻 그 노인장의 경고가 떠올라, 지극히 부자연스럽기는 했어도, 예의상 가벼운 목례만을 하고 그 자리를 떠야 했다.
‘왠, 별 싱거운 노인네 다 봤네… 으이그, 집에나 빨리 가서 아랫목에 몸이나 지져댈걸.’
나는 돈이 굳었다는 생각보다도, 괜한 짓 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찝찝하기는 했지만, 그 봉투를 품에 접어 넣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 예상은 여지없이 들어 맞고 있었다. 전철을 타고 오는 도중에, 나는 온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이 떨려오면서, 열이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오르는 격심한 독감의 증상 속에 빠져들고 있었기 때문 이었다. 조짐을 예측했더라면, 오늘 정현이를 만날 약속을 다음으로 미룰걸 그랬다는 둥의, 후회가 밀려 왔지만, 이미 온 몸을 뒤덮고 있는 독감의 치열한 발악은 겉잡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되고 있었다.
‘진모야, 너 얼굴이 왜 그 모양이냐? 너 어디 아프니?’
문을 열자, 사색이 되어, 현관에 들어서는 내 얼굴이 그렇게 보인 모양이다. 어머님은 내 머리를 만져 보시고는, 이거 안되겠다고 하시면서, 병원에라도 가자고 성화셨지만, 나는 괜찮다고 하면서, 방으로 들어가 옷을 벗었다. 온 살갗이 따가울 지경으로 아파오기 시작했고, 어떤 물건이든 간에 살에 닿는 순간, 칼로 저미는 듯한 쓰라림이 전신을 감싸고 돌았다. 눈물이 찔끔찔끔 나오면서도, 나는 기어이 옷을 벗고, 침대 안으로 기어 들어갔다. 차가운 이불 속 침대 시트의 깔깔한 감촉도 잠시 잠깐, 곧 이어, 이불 속은 화끈거리는 아궁이 마냥, 내 온 전신으로부터 뿜어내는 열로 인해, 주체를 할 수가 없었고, 그다지도 열이 나고 있으니, 안방의 아랫목을 차지하고 눕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뿐이었다. 이미 입으로는 끙끙거리는 신음이 새어 나오고, 어머님은 걱정이 되신 나머지, 약사발을 챙겨 들고 방으로 뛰어 오셨다.
‘아침에 아프면 나가지를 말지, 뭐 볼 게 있다고…..’
나는 괜찮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벌써 온 몸은 불덩어리였고, 약을 삼키려는 내 의지와 달리, 기도와 편도선은 있는 대로 부어 올라, 무얼 삼킨다는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게 느껴지기 까질 했지만, 그래도 억지로 약을 삼키고, 이불 속에서 비몽사몽을 헤매며, 앓던 것이 서너 시간이 지나자, 차츰 열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만하기를 천만다행이라고 하시면서, 빈 속에 괜찮을까 하시면서도, 우선 증상이 가라 앉아야 하질 않겠느냐면서, 주스에 또 다른 약을 들고, 연이어 나를 일으켜 세우셨다. 어머님의 신속한 대응으로, 나는 하루를 꼬박 누워서 앓을 수 밖에 없었지만, 저녁 나절이 되고부터는, 약을 먹기 위해서라도, 나 스스로 일어나, 먹을 걸 달라고 챙기는, 여유까지 부리고 있었다.
‘지 스스로 의사처럼, 지 몸은 지가 더 잘 안다고 자랑 할 때는 언제고, 어떻게 저 등치에 눈치도 없게시리, 하루 아침에 쓰러져 빌빌대나, 빌빌대긴?’
저녁때 퇴근하신 아버님께서 약에 취해, 침대에 누워서, 눈도 제대로 뜨질 못하는, 나를 내려다 보시면서 하신 말씀 이었다. 가족들이 잠이 든 시각이 되어서야 나는 겨우 몸을 추스릴 수 있었다. 무어라도 찍어 넣어야겠기에, 어머님께서 저녁에 만들어 놓으신 죽을 꺼내서 데워 먹기로 했다. 입천장 이고, 어디고 열 때문인지 안 까진 곳이 없었고, 허물 벗듯이 허연 살껍질이 일어나면서 쓰라린 통에, 죽도 끝까지 비울 수조차 없었다. 그러나, 약을 먹으려면 이 방법 밖에 없다는 심정으로, 이를 악물고 죽을 입안에 퍼 넣었다. 웬만큼 허기가 가시자, 조금 기운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방으로 들어서자, 온 방안에는 내가 누워 있는 동안 입으로 뿜어져 나온 온갖 악취가 진동을 하고 있었다. 사람 입으로 들어가는 것치고, 깨끗하지 않은 것 없고, 사람 입을 통해 나오는 것들 치고, 악하고 더럽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처럼, 보이지 않는 숨결조차 병이 도졌을 땐, 그토록 흉측한 냄새가 등천을 하는지는 이번에 처음 깨닫게 되었다. 약을 삼키고 바로 누우려다가 체하기까지 라도 하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의자에 잠시 앉아 숨을 돌리는 사이, 나는 아까 낮에 받았던 그 봉투가 생각이 났다. 절대로 오늘 밤에는 열어보지 말라고 했는데….나는 믿는 거 반, 속는 거 반이라는 심정으로 코트 안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그 두툼한 봉투를 꺼내서는, 침대 머리맡의 베게 밑에 고이 넣어 두었다. 무슨 일이야 있을라구…..나는 다시 또 시작되는 어지러움 증은 아픈 것이 아니라, 약이 도는 것이라는 느낌에, 자다가 깨지 않을 심산으로, 화장실에 가서 오줌을 마저 누고, 자리에 들었다.
‘내일은 몸이 좀 나으려나?’
나는 자리에 누워서 이제까지 누워있음으로 해서 배겨오는 등짝과 아울러, 뻐근한 동통을 동반하는 허리의 지끈지끈한 느낌에, 옆으로 누워서 잠을 청했다. 잠은 깊이 들어가고 있었고, 꿈조차 꾸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그건 그렇지 않았다.
‘일어나세요.. 어서요….’
나는 나를 흔들어 깨우는 손짓에 잠이 깨고 말았는데…..
‘왜 이리 호들갑이야!…..’
‘아니, 그게 아니고….저기 누가 문 앞에…….’
‘넌 또 뭐야?’
내 앞에는 촌시런 복장의 여자가 겁먹은 얼굴로 나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방안에는 나와 그 여자 둘 뿐이었고, 곧이어, 계속해서 들리던 노크 소리와 더불어 문이 쾅 하며, 열렸다.
‘요거, 요거, 요거…..어제 회식 때도 모자라서 저 년을 간부숙소까지 끌고 오다니… 대단해!…나까무라… 저 년이 그렇게 이뻤다, 이 말이쥐?’
‘아… 그게 아니고….’
‘됐어, 그건 그렇고, 아침 10시까지 병동 전체 회의 있는 거 알고는 있지? 저 년은 어서 빨리 내 보내는 게 좋아. 부대장 눈에 띄기라도 하는 날에는….’
‘네, 알다 뿐입니까? 곧 준비 하도록 하겠습니다.’
하라다 군의관이 나가고, 나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제의 숙취가 몰려 오고 있었고, 술 김에 게이샤를 몰래 불러 들인 와중에, 장난 삼아 떨거지로 딸려 오게 한, 신참 조센삐(정신대를 부르는 말)를 기어이 숙소로 까지 끌고 온 기억은 나는데, 그 이후로 어찌 되었는지는 기억에는 없었다.
‘어제 여기서 잤나?’
‘….네…..’
‘자, 군표 몇 장이면 되나? 여기 상자에서 가져가고 싶은 만큼 꺼내 가라……. 아니지, 그건 너무 쉬운 거 아냐?’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나에게는 이미 휴지 조각이나 다를 바 없는 군표를 꺼내기 위해 상자를 집어 들려다 멈칫했다. 군영내의 일반 시설물을 이용할 때 사용하는 군표는, 매달 어김없이 월급처럼 나의 숙소로 지급 되었지만, 어차피 장교들은 군표 없이, 모든 시설을 이용하는 것에 불편이 없었다. 일반 병사들 사이에서야 그것이 지폐처럼 통용되긴 했어도…
‘숙소로 돌아가지 말고…., 그러니까, 넌 오늘부터…. 내 시중을 들어라. 위에 다가는 내가 말해 놓을 테니…’
나는 그 여자의 촌시런 복장이 맘에 들지 않아서, 그 자리에서 두 손으로 그 상의를 확 열어 젖히면서 좌우로 찢어 버렸다. 덜렁 거리면서 옷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허연 젖퉁이…. 곳곳에 이빨 자욱이 있는 걸 보면 어제 밤, 내가 짐승처럼 달려든 게 분명했다. 옷장 안에 있는 평상복을 그녀에게 던져주고, 나대로 복장을 갖추고는, 방독화와 장갑, 마스크를 착용하고 방을 나서면서, 나는 문을 밖에서 잠글 심산 이었다. 어차피 방안에 화장실이며, 쉴 수 있는 구조는 완벽했기에, 할 일 없으면 잠이나 자겠지, 라는 생각 때문 이었다. 전시였기는 해도, 이곳 방역급수부의 시설은 천황 폐하의 은혜 아래, 최고급으로만 지어져 있었다. 수세식 화장실은 기본 이었고, 모든 방의 환기 시설은 중앙 집중 식으로 설계되어, 한치라도 잡균의 침투가 어렵도록 구조화 되어 있었으며, 소독환경 또한 완벽해서, 일종의 무균실 에서 생활하는 것과 맞먹는 환경을 조성해내고 있었다. 나는 문을 잠그면서, 이런 환경에서 지내게 해주는 것만으로도, 저런 조센삐 에게는 감지덕지가 아니겠는가라는 생각을 했다. 문을 걸다 말고, 나는 방안에 장승처럼, 찢어진 윗도리를 여민 채로 서있는 그녀에게 물었다.
‘이름은 있나? 이름 말이다!’
‘순임, 이순임…..’
‘다 집어 치우고, 넌 오늘부터 히미쯔(秘密)야, 히미쯔, 알았지?... 넌 나의 숙소에서 나의 정염의 화신이 될 때까지, 비밀리에 살게 될 년 이니까….깔깔깔…..’
나는 복도를 통해 회의실로 가면서, 회의 자료를 검토 해야 했다. 할 일이 태산 같았고, 전세를 뒤집을 만한 연구 결과를 내놓기 위해, 모두들 밤잠을 잊고들 있었지만, 손을 대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번 회의에서 지적될 사항은 그것이 아니었다. 전쟁 중이고, 군인들 이라고는 하지만, 의학을 앞장세워 이곳으로 징병된 차출 인력은, 전 현직 의사였거나, 병리학, 면역학, 미생물학 또는 세균전과 관련해서, 전문적인 지식을 쏟아 부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전문 의학도들, 뿐이었기에, 그들을 군기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정신 차리게 할 방법이 모호했기에, 소집되는 것이었다.
‘천황 폐하 만세!’
모두가 자리에 모이자, 회의는 곧바로 일일 점검부터 들어갔다.
‘병동, 사병막사, 장교숙소, 세탁실, 식당 등등 일반 기지 시설, 이상무!’
‘소독상태는 어떠한가?’
‘양호합니다. 현재, 병동과 숙소가 조금 가깝지 않느냐는 지적에 의해, 새로이 병동을 조금 떨어진 위치로 이동 중에 있으며, 별도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의 방비를 하고 있습니다.’
‘배양실의 상태는?’
‘현재 배양되고 있는 9가지 균류의 베타 테스트를 위해, 배양실내의 숙주 숙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폭탄 투하에 대비해서, 적정한 투하 모델이 만들어 지는 대로, 탄두에 접균 하여, 모의 실험을 할 계획으로 있습니다.’
‘일반 실험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어제부터 마루따에 대한 총탄 관통 한도 시험 및 방한피복에 대한 동상 한계 시험이 실시되고 있습니다.’
‘임상 실험 중에서 페스트는 어느 정도 진척이 되고 있지?’
‘현재 1개동 4개 별실에 여자 한 명, 남자 세 명씩, 짝을 지워 강제적 성교에 의한 페스트균, 전이 여부에 대한 실험을 하고 있습니다. 구강, 항문, 성기, 피부, 안구점막 등의 표피 샘플이 5일 간격으로, 혈액 및 소변 샘플은 매일 채취되고 있으며, 접균된 페스트 원균과 비교해서 살상 능력이나, 항체 대항 능력의 한계에 대해서 보고서를 작성 중에 있습니다.’
‘모든 실험은 목적이 있다 이 말이다. 보고서를 만들어 내는 것에 의존한다는 구시대적 발상을 접어두고, 전선에 나가 싸우고 있는 우리 황군이, 그와 같은 지경에 처했을 때, 천황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그 어떤 나라의 군대보다도, 멋진 승리를 쟁취하면서, 고통을 벗어날 수 있겠는가 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알겠나?’
‘천황 폐하 만세!’
‘연이어 계획되고 있다는 그 실험 계획은?’
‘다음 주부터 진공 상태 에서의 행동변이 실험과 압사사고에 대비한 골격 유지 한도에 대한 실험이 있을 예정 입니다.
‘그거 좀 자세히 얘기 좀 해봐. 흥미로운데?’
‘우리 황군의 공군 조종사가 공중전 시에 산소부족 사태를 경험하거나, 지상군이 순식간에 밀폐된 공간에 매몰되어 산소가 고갈되는 시점을 맞이 했을 때, 어느 한도까지 버틸 수 있으며, 순간 진공이라는 특수 환경에서 내장구조가 얼마나 파괴되지 않고 버틸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거입니다. 이 이유는 전에도 말씀 드린 것 같이, 조종사가 비행기 위에서 비상 탈출하여, 바다 위 같은 곳으로 자유낙하 한다고 가정 했을 때 겪을 수 있는, 모세 혈관의 파괴속도, 심장 마비의 연쇄적 파급경로, 자유낙하와 충돌에 따른 신체 각 부위의 파손 정도를 가늠하기 위해서 행해지는 실험으로서 압사 테스트도 그와 의미를 같이 보시면 됩니다.’
‘의미를 같이 보다니?’
‘압사사고를 재현 시켜, 과연 밑에 깔린 병사가 얼마나 골격이 부서지지 않고 버틸 수 있는가를 측정해서, 군복의 제작 및 총탄 관통 한도 시험의 결과와 연계하여 특수 방탄복장의 설계에 반영할 의도가 있기 때문 입니다.’
‘시설 구조 변경 신청은 했나?’
‘이미 실험이 가능하며, 점진적 진공 상태가 체계적으로, 빠른 시간 내에 이루어 질 수 있도록 일부 실험실의 구조를 밀폐 구조로 변경 완료 했으며, 강제적인 실내 기압변화를 위해 특수 모터와 펌프도 환기 구에 장착하여 이미 구조화 했습니다.’
‘그래, 다른 실험 계획은?’
‘현재 마루따의 각 체형 별, 감염 질환 별, 신체 특정 부위별, 임의 절단 및 총탄 류, 파편류의 관통 시에 따른, 혈액 손실도를 측정, 시행하여 결과치를 데이터화 하고 있습니다. 또한 페스트와 장티푸스, 말라리아 원형균에 대한 왁찐(백신을 가리키는 말)의 완성은 거의 눈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내가 아까도 수없이 얘기 했지 않느냐 말이지? 눈 앞에 다가왔다? 이런 단어들은 군대 밖에서나 쓰여지는 말들이야, 알겠나? 6하 원칙에 의거해서, 실험의 결과와 과정이 똑 부러지게 대답 되어질 수 없다면, 자네들은 이미 총탄을 맞은 거나 다름 없어, 알겠나? 꼭 총알이 날라 다녀야 전쟁인줄 아는가? 자네들의 흐리멍텅한 매너리즘과 무성의 함이, 곧바로, 총도 들어보지 않은 자네들조차, 죽음으로 단번에 몰아갈 수도 있고, 나아가 황군의 목숨을 위태롭게 할뿐더러, 위로는 천황폐하를 욕되게 하는 일이 아니고 뭐냔 말이지! 내 말, 이해가 가나? 제군들?’
회의를 주제하는 이시이 부대장의 서릿발 같은 발언은 모든 군의관들을 빠짝 얼어붙게 했다. 그의 명령은 이 731 부대 내에서는 신의 음성으로 받들어 졌고, 그의 일거수, 일투족은 우리들에게 있어서,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영원불멸의 경계구역처럼 느껴지고 있었으니, 더 말할 필요가 있었겠는가!
‘그리고, 다시 한번 당부하건 데, 본인 스스로가 이 조직에서 버티기 힘들다고 여긴다면 언제든지 다른 부대로 보내줄 용의가 있음을 알아두기 바란다. 아무리 똑똑한 머리도 황군의 기대치와 다르게, 딴 곳을 보고 있다면, 바로 총알 구멍의 표적이 되 주게 끔, 자유 의지를 존중하는 측면에서, 어디든 보내 주겠다는 말이다, 알겠는가? 어제의 회식 때 봐서 알겠지만, 천황 폐하의 하사품이 영내에 도착했다. 다른 부대와 달리 70프로 이상이 일본에서 순수 게이샤의 손길로 자라난 인물들로 꾸며져 있으며, 장교들은 특별히 당부 하건 데, 사병용으로 배치된 조센삐들 과는 되도록 살을 섞지 말도록 당부하는 바이다. 그건 황군 장교로서 명예와 관련되는 일이기 때문 임을 명심하도록…. 이상… 천황 폐하 만세!’
회의가 숙연한 분위기에서 끝이 나고, 이시이 부대장이 참모들과 회의실을 나가다가 나를 세워 불렀다. 남들이 들을 세라 조그만 목소리로,
‘나까무라 군, 아버님이 보내신 술은 잘 받았네, 구하기 힘들다는 백사를 넣어 담근 술인데, 어찌나 기운이 뻗치던지…… 허허허…. 감사히 잘 받았다고 안부나 전하게나……병원은 잘 되고 있는 거지?’
‘네, 걱정해 주신 덕분으로….’
‘내가 뭐 한 게 있다고…. 뭐 부탁할 거라도 있나? 내 방에 가서 조용히 차나 한잔 하지….’
‘네.’
나는 방에 들어가 이시이 부대장과 독대를 하게 되었다. 남들은 부동 자세로 눈깔 하나 움직일 수 없었지만, 나는 좀 달랐다. 부친과 부대장과의 돈독했던 사이가, 지금의 나를 여기로 이끌게 한 원인이기도 했기에, 그의 앞에 앉아 있는 나라는 군의관은 다른 보통의 업무적 성격의 대담 상대가 아니라, 어릴 적부터 집안을 드나들며, 보아오던 꼬마가 앉아 있는 것으로 보였을 테니 말이다.
‘저…., 숙소를 책임지는 당번병을 교체하고 싶습니다.’
‘왜, 무슨 불미스런 사건이라도 생겼나? 도난, 뭐 그런 거?’
‘아닙니다. 그 병사가 보기에 조금 동성애 적인 기질이 있는 것 같아서 말이죠. 남자들끼리 있는 폐쇄사회이다 보니, 그럴 경우도 가끔, 자연 발생적으로 있을 수 있지만, 제 성격이 워낙 그래서…. 집에서도 하녀들만 제 방을 드나들 수 있었지요.’
‘그래도 영내에서 여자들을 구하기가 어디 그리 쉬운가?’
‘그건 걱정 마십시오. 벌써 구해 놓았습니다.’
‘그래? 역시 아버님 닮아, 수완이 대단하구먼. 그래, 누군데?’
‘그게 다름아닌….., 조센삐 입니다. 지금 제 방에 넣어두고 왔습니다만….’
‘조센삐라…..흠……식사나 그런 건 어떻게 할 참이지? 장교 숙소는 워낙 출입이 없다고는 하지만, 동료들 눈을 피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텐데….’
‘그건 걱정 마십시오. 어차피 소모품인 조센삐 인데 뭘 그리 걱정 하십니까? 적적해 하는 동료들도, 긴긴 밤을 위로해줄 여자가, 자기 옆방에서 하인처럼, 주인을 기다리며, 대기하고 있다면, 싫지는 않으리라고 여겨집니다만….’
‘호오라!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다니…… 그래도 조심하게나….’
‘걱정 마십시오. 그러다, 싫증나면 마루따로 내보내 버리면, 쉽게 처리되는 거 아닐까요?’
‘신선하게 황군 옆에서 다듬어진 재료로, 보다 충실한 실험을 하겠다? 그것도 말은 되는 구만…. 어쨌든 만사에 조심하게. 조센삐는 보기 보다 독한 것들 이거던….’
방을 나오면서 나는 짐을 덜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제부터 잡다한 일들도 눈치 보지 않고 시킬 수 있을뿐더러, 밤마다 온수 통에 물을 데워 넣고, 발에 끼고 자는 일도 없이, 뜨끈한 여자를 품고 잘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속이 다 후련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제일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먹거리를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왜냐하면, 영내의 청결과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쥐와 각종 잡균, 벌레들의 번식을 막기 위해서 음식물은 철저하게 식당 이외로는 반출을 허용하지 않는 규칙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무슨 수가 생기겠지 라는 생각에 별로 마음에 두지 않고 있었다는 편이 옳았다. 방을 나와 실험실로 가면서, 나는 어제부터 계속될 실험 생각에 신경이 곤두서고 있어서, 곧바로 그 여자에 대한 문제는 뇌리에서 씻은듯이 사라져 버렸다.
‘어이, 나까무라! 독대는 성공 했는가? 아마 영창 행이 아니었을까 싶네만….’
선배인 하라다 였다.
‘아닙니다. 가까스로 제가 데리고 있게끔 허락 하셨습니다. 그것도 비밀리에…… 누구에게 말씀하지 마십시오. 특별히 제 옆 숙소에 계시니 말씀 드리는 겁니다만……’
‘아니, 그런 일도 있나? 천하의 호랑이, 이시이 부대장이 그런 배려를? 하늘이 쪼개질 지경이네. 허, 참…아무튼 축하하네. 좋은 하인 하나, 생겼구먼.’
‘가끔 선배님께도 혜택이 돌아가야 하질 않겠습니까?’
‘그럼……이를 말인가? 언제부텀?’
‘아니, 당장은 아니고, 좀 훈련이 되어야 하질 않겠습니까? 황군의 예의범절과 장교에 대한 접대 법을 어느 정도 익혀야, 쓰기에 유용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죠. 어차피 소모품 이기는 해도…… 연필도 잘 깎아야 글씨가 제대로 나오는 법,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똑똑하고 치밀하단 말이야. 그럼 이따가 보세……’
하라다 소좌는 페스트의 숙주 배양실에서 근무했다. 내가 그렇긴 해도, 우리는 언제나 실험실과 작업실을 드나들 때마다 해야 하는, 전신 소독을 제일 껄끄러워 했지만, 특히나 숙주 배양실은 더더욱 심했다. 특수 제작된 대형 밀폐 탱크에서 길러지고 있는, 수억 마리의 이와 벼룩들….페스트에 감염시킨 모르모트를 그 안에 잡아 넣으면, 순식간에 뼈 밖에 남질 않는다. 그렇게 페스트에 접균 된 숙주 벼룩을 생존, 번성시켜, 다른 건강한 쥐에게 기생시키고, 그 같은 작업을 계속 반복 하다 보면, 보다 살상력이 극대화 된 균이 남겨진 숙주만이 잔존하게 되는데, 그 일을 하고 있는 것이 그 였다. 그렇게 얻어진 각기 다른 버전의 균을 접종 팀에게 넘기고 나면, 그 균을 마루따 에게 주입하고 데이터를 받아오는 것은 그의 책임 밖의 일 이었고……그는 언제나 자신을 동물원 사육사 이라고 불렀다. 자신의 할 일이 무언가를 키워내는 일이기 때문이라고 붙여 본 별명이라고 했지만, 그는 유독 자신의 그 별명에 애착을 갖고 있는 듯이 보였다. 내 옆방에 같이 있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하는 곳이 달라도 같이 붙어 다니는 일이 많아서, 때때로 우리 두 사람은 이야기를 하다가 상대편 작업실 입구에 설치된 전신 소독실에 들어가서, 소독 세례를 받을 때까지, 모르고 있다가 앗차 하는 적도 꽤나 많은 일과 중의 하나 였기에……그는 나에게도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언제나 수술과 피를 보는 일이 많은 나를 가리켜, 요리사라고 했었다. 자신이 먹을 것도 아닌, 음식을 줄창, 썰고, 찢고, 씻어 내는 그 행위의 특징을 어찌나 잘 잡아낸 별명이던지, 나는 좋지도 싫지도 않은 그 별명으로 인해, 내가 하는 일을 돌아 볼 때마다, 그 별명으로 인해 많은 생각을 해 왔었다. 나의 작업실은 다른 곳보다 조금 서늘하다. 하루 종일 마루따를 해부하고, 접균 되어 감염된 장기를 적출해서, 병리학 팀으로 보내고, 일일이 중요한 병발 부위는, 클로로포름에 담가서 샘플화 하는 과정들 문 이기도 했지만….언젠가 업무상 우리 작업실로 들어선 하라다는 그렇게 얘기 했다.
‘거 봐, 내가 사람 보는 눈은 정확 하다니 깐! 보니깐 두루…. 요리가 한창 이 구만……저기 늘어선 병들은 뭐야? 꼭 오이지 담구어 놓은 피클 병들 같구먼. 요리사가 밑반찬은 저렇게 쟁여 놓아 뭣에 쓸려 구?’
그의 나불대는 소리에도 나는 별다른 대꾸를 할 수 없었던 것은 해부실 천정에 마련된 관찰창구로 영내의 중요 임원들이 해부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 보다도 마취가 되지 않은 마루따를 결박한 채로, 개복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시체라면 모를까, 살아있는, 그것도 마취가 되지 않은 상황하에서는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워 지고, 되도록 숨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로, 직접적인 타격이 좀 덜한 장기부터, 적출을 하기 시작하는데, 쇼크가 빨리 오지 못하도록 간간히 부위 별로 절개해 내고 남은 신경 부위에, 국소 마취약을 조금씩 발라주어야 하는 번잡스러움은 말상대를 하기에는 역부족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장기의 상태를 검사하는 팀에서는 되도록 적출된 원래의 상태를 좋아했으며, 세척한다거나, 마취약, 지혈제와 같은 화학 물질이 장기에 묻는 것을 제일 싫어했다. 평소 징집되기 전, 부친의 병원에서 일할 때에는 수술의 마무리를 위해서 언제나 바느질만 열심히 해대는 통에, 그 어려운 의학공부를 해 온 것이, 고작 이런 살 꿰매는 일이나 하려고 배웠는가 싶은 후회가 막급 이었지만, 이곳에서는 봉합이라는 작업이 없어서, 그것이 우선 좋았다. 장기가 적출되어 해당 팀으로 보내어지고, 바람 터진 고무공 마냥, 뱃속이 횡 하니 비워진 마루따는 봉합의 필요성도 없었고, 그저, 방호포대에 실려 소각실로 끌어가 태워 버리면 그만 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인간이라는 생각은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이 사실 이었다. 요리사가 요리하는 식 재료를 살아있는 생물이라는 긍휼과 연민의 심정으로 바라본다면 요리가 될 수 있었겠는가? 오늘도 밀려 있을 해부 스케줄 표는 멀리서 봐도 빼곡히 검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오늘은 오후에 중요한 껀이 있으니 정신 바짝 차려야 돼, 부대장님께서 직접 보러 오신 다니깐.’
그것은 다름 아닌, 아침에 얘기한 진공 실험에 따른 해부를 의미하는 말이었다. 밀폐된 방안의 공기를 급격하게 빼면서 기압을 엄청난 속도로 낮추게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서 실험 한다는 것이었는데, 아마도, 그 마루따는 생전 처음 자신의 속 내장과 겉이 양말 벗다가 뒤집어지는 것처럼, 홀라당 바뀌어 지는 통쾌한 마술을 경험하게 될 거 라고 들 했다. 항문과 입을 통해 배 안의 창자들이 꾸역꾸역 튀어 나오면서, 눈알도 뽑아질 듯이 돌출되는 기가 막힌 매직쇼…..아마도 우리 팀은 적출을 하면서도 이게 어떤 부위 였는지 퍼즐 맞추기 같은 곡예를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런 나날들의 연속…… 우리는 전쟁의 한가운데에 있었지만, 아무런 접촉도 없이, 넓은 평원의 개활지 위에 세워진 무시무시한 연구소 내에서 이런 짓거리로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것이 자랑스런 일이라는 것에 추호도 의심을 하질 않고 있었다. 모든 것은 진정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한 일환이었고, 우리가 총탄을 한 발 쏘는 대신, 손에 든 메스로 우리의 애국심을 표현해야 될 거라는 부대장의 명령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었던, 우리들의 가슴속에 파고든 한가지 신념은, 우리가 매일 하고 있는 일들이 숭고한 역사의식이 베어 있는, 전문가 만이 할 수 있다는 특권 의식…… 그런 것이었다.
‘아함… 피곤하네…… 내일 뵙겠습니다.’
나는 해부실을 나서면서 오늘은 유달리 피곤함을 느끼고 있었다. 겉에 입고 있는 방역 복을 벗어 소각함에 집어 넣고, 마지막 소독실을 거치고 나자, 나는 비로소 방에 남겨진 그 여자에게 오늘 하루 종일 아무것도 가져다 주질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식당으로 가서 저녁을 먹으면서, 종이 봉투를 하나 빌렸다. 두 사람 분의 식사를 받아다가, 한 사람 분은 어떻게 되던가 말던가 봉투 안에 쓸어 잡아 넣어 넣고서야 식사를 할 수 있었고….내 앞에 앉아 식사를 하는 하라다는 발 밑에 놓아 두었던 봉투를 힐끔 보고서는, 씨익 웃기만 했다. 방으로 향하면서 하라다는 나의 옆구리를 쿡 치면서 말을 건넸다.
‘사료?’
‘네…..’
그것뿐이었다. 방문을 따고 안으로 들어서는데, 나는 그 조센삐가 보이질 않는 것에 순간, 당황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화장실에서 기겁을 하며, 튀어 나오는 그녀 때문에 내가 더 놀라고 말았다. 입가를 훔치면서 나오는 그녀는 내가 아침에 던져주고 나간 내 옷을 헐렁하지만 입고는 있었고, 아마도 주린 배를 움켜 잡고 화장실에서 물로 배를 채우고 있었던 모양 이었다. 방안을 둘러보니, 아침과 다르게 깨끗이 정돈이 되어 있고, 바닥도 말끔하게 닦여져 있었다. 구석에는 아침에 내가 찢어 놓고 나간 옷이 걸레로 썼는지, 물기가 짜여진 채로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놀진 않은 모양 이구만. 자 이거 받아.’
다 식어 빠진 채로 종이 봉투가 찢어질 것 같은 형상의 음식 덩어리는 그렇게 마구잡이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지만, 그녀는 아랑곳 하질 않는 눈치였다. 옷을 갈아 입는 나를 쳐다 보면서 봉투를 들고 서 있기에,
‘왜? 뭐가 더 필요해?’
‘아닙니다. 목욕하러 들어가시면, 그때 먹겠습니다.’
가르치지도 않은 정갈한 예절……마음에 들고 있었다.
‘아니야…… 히미쯔! 어서 먹도록 해. 그리고, 할 일이 있어. 자고로 남자가 목욕할 때는 여자가 옆에서 시중을 들어야 하는 것도 모르나?’
그 말과 동시에 그녀는 돌아서서 구석으로 가더니만, 쪼그려 앉은 채로, 나를 향해 등을 돌린 채로, 맨손이 더럽지도 않은지, 봉투 안의 음식을 허겁지겁 집어 먹기 시작했다. 떨어져 있어도 들리는 꿀꺽대는 음식 넘기는 소리….아마도 저 쩝쩝거림은 손에 묻은 음식 찌꺼기 마저 도 핥아먹는 소리일 것이다. 동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조센삐 같으니라고….그렇지만, 나는 그래도 시간적인 여유를 주어야 한다는 생각에 군복을 천천히 벗어갔다. 침대에 걸터 앉아 군화를 벗으려고 하는데, 이미 음식을 다 쳐먹었는지, 아니면, 손에 번들 거리는 음식 찌꺼기와 침이 묻은 채로 군화를 벗겨 주려는 의도 에서 였는지, 내 앞으로 쪼르륵 달려왔지만, 그 손으로 군화를 잡으려는 그녀의 가슴팍을 나는 냅다 걷어차 버렸다.
‘무식한 조센삐 같으니라고, 어디 그 따위 손으로 황군 장교의 군화를 붙들려 하나!’
그러나, 나는 그녀가 손을 덜덜 떨면서, 나를 올려다 보는 눈빛에 가슴이 찡 하다는 느낌을 받아 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눈빛은,
‘당신이 준 옷에다 이 오물을 닦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라는 호소의 외침 같았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마저 음식을 먹고, 욕실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음식은 구석에 내팽개친 채로, 나를 따라 욕실로 들어 왔다. 내가 옷을 모두 벗고, 서 있자, 재빨리 자신의 손부터 씻고, 탕에 물을 받기 시작하는 그녀……조선의 어디에서 살다 왔길래, 시키질 않아도 저렇게 재빠르게 몸을 사리는지, 의문 이었지만, 족히 하루 종일 방안에서 있었을 시간을 감안하고는,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욕조에 물이 거지반 차오르자, 그녀는 나를 탕 안으로 앉혔다. 뜨겁지도, 차지도 않게 알맞게 덥힌 물…. 나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것 같은 느낌에 휩싸였다. 얼마간을 그렇게 있다가 내가 눈을 뜨자, 나를 탕 밖으로 이끌어 내고는, 수건에 비누를 묻혀 전신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구석구석 빈틈없이 찬찬한 솜씨로 닦아내는, 그 손길 때문 인지는 몰라도, 가슴팍에 나 있을, 내 군홧발 자욱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마지막으로 머리를 감겨주는 그 손길은 일본 여자에게서나 느끼던 섬세한 손길임을 알고, 나 자신 깜짝 놀라고 있었다. 무식하고, 배운 것 없이, 동물 같다고만 여겨온 조센삐 였는데…… 그 부드럽고, 연약한 듯한 손 끝의 야들 거림은 소름이 돋게 하기에 충분한 여운이 있었다. 목욕이 끝난 내 몸을 마른 수건으로 닦으며,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그녀의 검은 머리 결이 눈에 들어왔다. 소 불알처럼 축 늘어진 나의 고환까지 살포시 손바닥으로 받쳐들고, 그 밑까지 닦아내는 그녀의 세세함은 더더욱 이나 나를 놀래 키고 있었고…욕실을 내버려 두고, 밖으로 나와, 나는 책상에 앉아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얼마간의 물소리와 함께 그녀가 나오고, 그녀는 구석에 내버려 두었던 음식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나는 무얼 하는가 하고 일어나 욕실을 들여다 보는데, 나는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 했다. 더럽지도 않은지, 좌변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손으로 음식을 퍼먹는 그녀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음식이 바닥이 났는지, 봉투를 뒤집어 안 쪽에 묻은 국물과 양념마저도, 종이가 찢어질 듯이 핥고, 빨아대던 그 모습….나는 자리로 다시 돌아와 어떻게 해야 할 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봉투는 어떻게 했나?’
욕실에서 나오는 그녀에게 나는 큰 소리로 물었다.
‘물에 헹구어, 조각조각 낸 뒤에, 좌변기에 넣고 버렸습니다.’
‘음…… 생각보단 제법 똑똑 하군……입가에 묻은 번들거리는 거랑, 몸도 마저 씻고 나와. 들어가기 전에 저 옷장의 세 번째 서랍에 들어가 있는 내 속옷도 챙겨서 들어 가고…… 갈아 입어야 하질 않겠나 말이다!’
그녀는 아무런 대꾸 없이 내가 시킨 대로 옷을 챙겨 들고, 욕실로 다시 들어갔다. 담배를 서너 개쯤 피웠을까? 그녀가 욕실에서 나왔다. 아까와 다르게 뽀얘진 피부 하며, 붉게 홍조를 띈 양 볼이 꽤나 고혹 스럽게 보였다. 다른 곳에서는 구경하기도 힘든, 온수와 비누 거품의 효과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히미쯔, 여기 와서 앉아라.’
그녀는 나와 멀찌감치 의자를 가져다가 두 손을 앞으로 모아 무릎을 꼭 붙인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나와 마주했다. 반바지 같은 나의 팬티가 그녀에게는 좀 커 보였고, 아무래도 그 사이로 거뭇한 보지털 이라도 보일까 싶어 조심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몇 살이냐?’
‘스물 하나 입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그녀가 조센삐 였음 에도 유창한 일본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당연히 일본말은 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고, 정신대 같은 부류의 여자들을 이제까지 접하지는 못했지만, 일본어만큼은 기본적으로 하고 있어야 된다고 여겼기 때문 이리라.
‘이곳에는 언제 왔느냐?’
‘어제가 처음 이었습니다.’
‘그래? 주욱 조선에서만 살다가 왔느냐?’
‘아닙니다. 저는 일본에서 이곳으로 바로 끌려…… 아니, 오게 되었습니다.’
‘일본? 거 듣고 보니, 희한 하구만. 그럼 넌 게이샤 출신이라고?’
‘……’
그녀는 더 이상 말을 하질 못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잘은 몰라도 그녀의 어깨가 가늘게 파르르 떨리는 것으로 보아 울먹이고 있는 것 같았다.
‘게이샤는 아닙니다. 그냥…… 일본에서 체포되어…… 이곳까지 오게 되었지요. 말씀 드리자면……후……. 길고 긴 얘기 입니다.’
‘그래? 담배 피울 줄 아느냐?’
‘네……’
나는 그녀에게 팔을 뻗어 담배를 내밀었다. 그 하얀 손가락에 담배를 끼워, 피워 무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고, 그녀가 내뿜는 파란 연기가 허공에 흩어지면서, 그녀의 눈이 스르르 감기는 장면에서, 나는 모데라토의 음률을 느끼고 있었다.
‘담배는 누구에게서 배웠지?’
‘일본에 있을 때 입니다. 공부에 방해 된다고 끊으려고 했었는데….’
‘공부? 무슨?’
나는 그녀가 일본으로 유학을 올 정도의 조선 여자라면, 그래도 조선에서 내노라 하는 집안의 자제라는 생각에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냥 신학문 이지요. 여자가 뭘 배운 다는 게…… 조선에서는 받아들여 지질 않아서……’
‘혼자는 아니었겠군!’
‘……’
그녀가 다시 또 한숨 같은 연기를 길게 내 뿜는다. 어지러운 모양인지, 조금씩 고개가 좌우로 흔들거렸다.
‘결혼 했나?’
‘할 뻔 했지요. 사랑하는 사람이 독립 운동에 연루되지만 않았어도….’
그녀는 담배를 하나 더 피워도 되겠냐는 당돌한 질문과 함께, 서서히 나에 대한 긴장을 풀어갔다. 그녀는 일찍이 개화한 부친의 권유로, 신학문을 배우기 위해, 메이지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고 얘기해 주었고, 유학 생활의 외로움과 일가 친척도 없이, 인종적 차별이 극심했던 그 당시, 조선인 유학생의 신분으로 지낸다는 것은 살얼음 판을 딛고 서 있는 느낌 이었단다. 그러다가 만난 다른 조선인 유학생과 사랑에 빠졌었다는 그녀…..한동안 말을 잊질 못했다. 풍족하게 보내 오던 부친으로부터의 용돈은, 곤궁했던, 사랑하는 사람의 생활고를 덜어주기 위해 모두 쓰여지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아낌없는 뒷바라지도 뒤로 한 채, 그 남자는 히미쯔 로부터 받아 든 생활비의 일부를 쪼개어, 독립운동을 위한 자금으로 계속해서 자금책에게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체포되는 당시까지 그녀는 몰랐다고 한탄했다.
‘후회하고 있나?’
‘아닙니다. 그걸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섭섭할 따름 이지요. 그를 정말 사랑 했기에, 그 모든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있었으니까요.’
그녀의 하숙집으로 왜경의 추격을 피해 도망쳐 왔을 때에도, 그녀는 자신과의 섹스가 그리워서 기어이 달려온 줄로만 알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만 했다. 그녀가 정말 모르고 있었기에 모른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지만, 왜경은 그 사실을 믿으려 하질 않았고, 범법자를 숨겨주었다는, 크나 큰 범죄행위를 속죄하는 의미에서, 강제로 게이샤들의 무리와 함께 이 곳으로 보내 버렸다는 얘기였다.
‘재판도 없이?’
‘일본에서 조선인 유학생의 권리나 신분보장 이라는 것은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 지요. 죄나 짓지 않고 살아간다면 모를까……’
나는 이제 두 다리를 꼬글 치고 의자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그녀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얼마 되지 않은 기간 사이에, 일본 사회에서 가슴을 펴고 살아가던 유학생이, 이렇게 전쟁의 한가운데에, 버려진 듯이 떨구어 졌다는 사실에 대해서, 별로 놀라는 기색도 없이, 때리면 때리는 대로, 쓸리면 쓸리는 대로, 생을 이어 나가려는 그녀가 가엽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이었다. 그저 보통의 조센삐가 아니라, 조금은 일본인에 근접했을 거라는 나만의 생각 인지는 몰라도, 아까의 지분거림은 어디로 가고, 내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 이제는 가여운 한 명의 여성으로 차츰 보이기 시작하고 있음에도 놀라고 있었다.
‘똑똑!’
‘자나? 나 하라달세….’
문을 열자, 가운 차림의 하라다가 빙글빙글 웃는 모습으로,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그리고는 나에게 슬며시 가운의 가운데를 열었다가 닫는 것이었고…… 안에는 아무 것도 입은 것이 없었다.
‘들어 오십시오.’
언제 그랬는지, 벌써 히미쯔는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머리를 숙인 채, 방 구석으로 몸을 피해 있었다. 멀리서 봐도 내 내의를 입고 있어서 인지, 헐렁한 모습이 역력 했고, 팬티 아래로 죽 뻗은 두 다리의 살결이 빛나고 있었다. 하라다는 탁자 옆의 의자에 앉아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재미 쫌 봤나?’
자리에 앉아, 다리를 꼬니, 그 가운이 좌우로 열리면서, 흉측한 하라다의 좇대가 축 쳐져 옆으로 늘어진 채로 세상 구경을 하고 있었다.
‘아직……그럴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없었다……그런데, 어찌 자네 내복을 입고 있지? 입을 옷이 없을 정도로 찢어 발기면서 섹스를 한 건 아니고? 그러니 갈아 입을 옷이 없어서 저렇게 벌을 서고 있는 것이 아니냔 말이지, 내 말은?’
‘아닙니다.’
‘그래? 그럼, 오늘 밤, 나에게 자네 하인을 좀 빌려 줄 수 있겠나? 밤이 워낙 길어야지! 또 비밀을 지키려면, 같은 배를 탄 사람에게, 노 한쪽은 내어 줄 수 있는 거 아니겠어? 어때?’
‘글쎄요…… 아직 배가 타기에는 준비가……뭐 할 수 없죠…… 그런데, 이건 어떨까요? 노를 같이 저어 보는 건…… 어차피 한 쪽만 저어 봐야, 그 자리에서 뱅글뱅글 돌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 자네가 내 취향을 어느 정도 아는 구만… 그래, 가릴 거 없지, 좋아…. 어이 조센삐! 여기 와서 대 일본 제국의 황군 장교님들 몸 쫌 풀어 봐라. 어여?’
의자에 앉아 있다가 하라다는 냉큼 침대로 옮겨 앉아, 가운을 걸친 채로 두 가랑이를 좌악 벌렸다. 가운의 중앙 부분이 벌어지면서, 가랑이 사이로 차츰 발기되어, 고개를 들기 시작하는 하라다의 좇대가, 거수기처럼, 슬며시 하늘을 향하고 있었다. 히미쯔는 나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나는 구석에 서 있는 그녀에게로 다가 갔다. 그리고는 고개를 숙이고 벌벌 떨고 있는 그녀의 귀에 대고 나즈막 하게 속삭였다.
‘곧 끝날 거다.’
‘저….부탁이 한가지 있습니다….’
‘무슨…’
‘같이 한 곳에 넣지는 말아 주십시오….’
나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녀의 돌연한 질문을 대답도 없이 듣고 있었다. 어깨를 감싸며, 침대 앞으로 다가 왔을 때, 하라다가 느물거리며, 말했다.
‘역시, 네 놈의 눈은 정확해. 요리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여자 고르는 눈도 제법이야. 나 같은 사육사야, 인간 꼴을 못 보니, 눈깔이라고 달려 있어봐야, 제대로 고를 안목이나 있을 라구. 어서 옷이나 벗지. 그거 자네 속옷이니, 내가 찢을 수는 없지 않겠나? 하하하….’
그녀가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속옷을 벗기 시작했다. 나는 그녀의 뒤에서 그녀의 등판을 타고 흘러, 그 풍만한 히프의 첨두를 지나는, 긴 소름의 행렬을 보고 있었다. 하라다의 앞에 히미쯔가 무릎을 꿇자, 하라다는 어서 오라는 식으로 두 팔을 벌려, 그녀의 어깨로부터 겨드랑이, 젖 무덤으로 이어지는 곡선을 향해 팔을 뻗었고, 이어서 그녀의 젖을 쥐어 터져라, 주물렀다. 이미 그의 좇대는 배꼽까지 발기되어, 아랫배에 붙어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로, 강직한 각도를 유지하며 하늘을 향해 서 있었고, 히미쯔는 그 좇을 아랫배에서 떼어내는 것 같은 손 동작으로 거머쥐면서, 서서히 입 속으로 그 좇을 침몰 시켜 갔다. 젖을 주무르면서도 연신 입으로 옳지, 좋아, 좋았어 를 중얼대는 하라다. 나는 그녀의 꿈틀거리는 어깨의 근육과 아울러 그녀가 밥을 먹으며 내던 것 같은, 쩝쩝거림과 훌쩍거리는 소리 전부를 뒤에서 듣고 있었다.
‘뭐하고 있어? 자네도 뒤에서 보지 맛이나 좀 보게…..엄청 맛있어 보이던데, 식사도 했겠다, 디저트로 씹물 칵테일도 그런대로 먹을 만 하잖아?’
‘그러죠….’
나는 뒤로 다가가 히미쯔처럼 무릎을 꿇고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뒤도 돌아다 보지 않은 자세에서, 히미쯔는 꿇어 있던 두 다리를 무릎으로 버티면서, 나를 향해 히프를 선뜻 올려서 벌려 주었다. 자세가 불안 했는지, 히미쯔는 좇대를 붙들던 손을 잠시 놓더니, 양 팔꿈치를 벌려진 하라다의 넓적다리에 올려 놓고, 다시 좇대를 손바닥으로 합장하듯이 거머 쥐고, 빨았다. 나는 그녀의 뒤에서 그 풍요로운 히프를 손으로 쓰다듬어 보았다. 움찔하는 그녀, 그러나, 그리 오래 버둥대지는 못했다. 나의 손이 좌우로 벌려진 그녀의 씹 살에 멈추었기 때문이었고….오랜만에 대하는 여자의 체취였다. 나는 그녀의 엉덩이의 부드러운 곡선에 코를 부벼 가며, 가슴 깊이 치밀어 오르는 그 육욕의 불길을 애써 진정 시키면서, 살 냄새를 일일이 들이키기에 급급했다. 그녀의 씹 살 사이로, 코가 쳐 박혀, 뱀 혓바닥처럼 내 의지와 다르게, 쑥 내밀려진 혀끝은, 그녀의 공알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고, 이미 척척 해진 코 끝을 통해 그녀가 하라다의 좇을 빨면서 흔드는 고갯짓의 진동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 이런 맛이야…… 옳지…… 여자의 혀는 뭐가 달라도 달라…… 그래…… 쑥쑥……쑤욱……쑤욱…… 옳지…… 그렇게……’
하라다는 스스로 미쳐 돌아가고 있었고, 나 또한, 그녀의 가녀린 삶의 조각을 비추어 보았음에도 아랑곳 하질 않고, 한 마리 동물처럼 그녀의 보지 속조차, 샅샅이 주어 먹으려는 것처럼, 쭉쭉 소리를 내며, 씹 살 마저 도 입안에 머금고 빨아댔다.
‘윽윽윽…… 억억…… 그래.. 그래…… 고개를 빼지마…… 계속 입안에 넣고…… 그렇게……욱욱욱……’
하라다의 좇이 그녀의 입안에 박힌 채로, 내 예상과 맞아 떨어지듯이, 그는 계속되는 히미쯔의 끈질긴 고갯짓으로, 좇물을 토해 놓고 말았다. 그러나, 그 여운을 끝까지 즐기려는 속셈인 것처럼, 좇물을 뱉을 사이도 없게시리, 두 팔로 그녀의 머리를 내리 누르며, 입에서 좇을 빼지 못하게 붙들고 있었다. 그가 침대위로 발랑 나자빠 지면서, 웃음을 터뜨리고, 후아 하는 탄성과 함께 다시 몸을 벌떡 일으켰다.
‘스고이, 스고이 데스네!(정말, 정말 끝내주는 구만)’
그는 탄성과 함께 나와 히미쯔를 뒤로 하고, 탁자로 가서 담배를 피워 물며, 나와 히미쯔에게 침대로 올라가, 멋들어지게 한판 벌이라고 격려하고 나섰다. 자기는 담배 좀 피우면서 기운을 차린 후에, 다시 동참하겠다고 하면서……나는 그의 명령에 따라, 내가 먼저 침대에 누웠다. 뒤이어, 히미쯔가 나의 아랫도리에 엎드려, 나를 잠시지만, 좇대를 입에 물기 전에, 물끄러미 올려 보다가, 나와 그녀의 시선이 잠시 마주쳐 버렸고……나는 그녀를 향해 처음으로 웃음을 지어 보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웃음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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