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이 시작되고, 늘 상 그렇듯이 모든 강사와 학생들이 일사분란하게 자신들의 위치로 향했다. 정 원장은 이것저것 확인을 하고는 학송의 전화를 받고 나갔고, 나는 내 사무실에서 그동안 밀린 학생들의 그림을 확인하고 있었다.
똑, 똑, 똑...노크소리가 들려서 문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유정이 안으로 들어오는데, 좀 전에 학송 부부와 상대할 때와는 다르게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녀는 테이블 앞 소파에 앉았고, 난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걸어갔다.
“절 부르시죠, 여기까지 올라오셨어요?”
미술학원은 7, 8, 9, 10층인 네 개 층을 쓰고 있었는데, 원장실은 7층에 있었고, 내 사무실은 10층인 입 시반 실기 실 안에 함께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면 인터폰으로 나를 부르거나, 내가 사무실에 없고, 예비반이나 입시 반 실기 실에 있을 경우는 방송을 통해서 부르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학생이나 강사들을 부를 때는 모두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가 앉으며 말하자, 유정이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얄 상한 유정의 맨 발을 타고 잘록한 복사뼈 부근을 지나면 종아리가 유연하게 뻗어 올라가 옆트임이 있는 스커트로 허벅지 깊은 곳까지 보였다. 여자들은 자신들이 좋아서 옷을 입는다고 하지만, 남자들 입장에서는 확실히 곤란한 상황들이 많았다. 테니스장에서의 베르디움 여자들이 그랬고, 상인의 아파트에서는 나리엄마와 상인의 복장이 나를 곤란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은 유정이 내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장 선생...기분 괜찮죠?...”
“예?...아...괜찮습니다. 뭐, 돈 많이 벌어서 좋죠...”
“흐음...그래도 장 선생이 쿨 해서 다행이네요...”
나는 유정이 시선을 밑으로 할 때, 얼른 그녀의 발을 보다가 다시 시선을 위로 향할 때를 맞춰서 유정의 눈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부원장님?...”
내가 유정을 보면서 물어보자, 그녀가 약간 굳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이가 말이에요...초희 아버지를 굉장히 의식하더라고...학송씨랑 그 이랑 무슨 일이 있나 해서...”
사실, 난 초희 문제를 어렵게 느끼지 않고 있었다. 내가 처음 서울 길 원장 학원에 강사로 들어갔을 때, 나는 그 학원에 인맥이 전혀 없었다. 학원 주임들과 보조강사들은 모두 나를 지나치게 의식했고, 왜 그런지 모르지만 알게 모르게 왕따를 시켰다. 그리고 이제 처음 시작한 강사인 나에게 입시 반을 맡겼는데, 8명 모두 초희와 같은 학생들이 전부였었다.
학원엔 항상, 그런 학생들이 존재했고 어떤 강사들도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처음부터 그런 학생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강사가 되어야 했다. 대형학원이다 보니 그런 학생들은 떨어져도 그만이었고, 그러다보니 나에 대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잘 생기고 어린 강사 놈이 개념 없는 애들과 잘 놀아주기 바라는 그런 생각에서 나를 입시 반에 편입 시킨 것뿐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난 그런 길 원장과 기존 주임들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 보란 듯이 학원에서 최고 수준이란 학생들이 간 대학에 내가 가르친 애들을 한 명도 빼 놓지 않고 합격시켰다. 기존 강사들은 우연이라고 별거 아닌 걸로 치부했지만, 실기가 잘 늘지 않는 학생들의 신청이 쇄도하는 바람에 나는 어린 나이에 보조강사 세 명을 둘 수밖에 없는 강사가 되고 말았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지시받는 것이 좆같은 일이지만 그 못지않게 얼굴에 좆같아요...라고 써있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부리는 것도 좆같은 일이긴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모든 보조 강사를 여자들로 바꿔버렸다. 여자들은 나이가 많더라도 나에 대한 복종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새롭게 나의 입시 반을 꾸렸고, 모두들 어쩌다 그런 것이겠거니 했지만 2년 연속해서 실기 기간이 6개월 미만의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에 합격하는 일이 벌어지자 난 순식간에 인기강사가 되었고, 학원에서도 무시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내 의도와는 다르게 길 원장은 회의시간마다 사안 사안에 대해 나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나이 많은 주임들을 의식해서 내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내 얘기는 길 원장에 의해 시행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2년 만에 난 주임 급 강사라는 타이틀을 달았고, 군에 입대를 했다. 포항에서 근무하는 동안 내 부모도 면회한 번 오지 않았는데, 길 원장 부부가 찾아왔고, 제대할 때까지 학원에서 주는 기존 월급을 그대로 받으면서 군 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제대한 뒤에는 30대 중반의 주임 급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조건으로 강사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글쎄요...저도 초희 아버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습니다.”
“그래요?...흐음...이상하게 난 그 사람이 부담되더라니까...”
유정은 사람들에 대해 뒷말을 하는 그런 부류의 여자가 아니었다. 성격이 털털하고 남성성이 많은 유정의 입에서 학송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나도 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도의원의 조카딸이었던 로미를 내게 맡겼을 때도 정 원장이 긴장을 했던 것이 떠올라 난 크게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초희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더라도 학송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 지역에서 정 원장의 파워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방의 미술학원 원장이라도 지역 유지들에 판, 검사, 경찰간부들 까지 정 원장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런 정 원장이 일개 회계사를 의식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너무 걱정 마세요, 부원장님. 초희를 합격시키면 그 뿐이니까요.”
“하하하!~~ 장 선생은...정말...!...하하하...!”
유정이 보조개를 귀엽게 보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 보였지만, 난 그녀가 왜 웃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면 빈 말이라고 느끼겠지만, 장 선생은 빈말이란 것을 모르는 남자니까...하하하!~~”
“예?...제가 그랬나요?...”
또 다시 보조개를 보이며 유정은 활짝 웃었는데, 그 모습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예뻐 보였다. 당장이라도 유정의 발을 잡고 빨아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젠 내 주변의 모든 여자들에게 시선이 향했고, 그녀들의 몸은 수시로 내 눈 가득히 들어와 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나 만 이런 식의 반응을 하는 것일까? 내가 알기론 이런 식으로 여자들의 몸을 눈으로 더듬으며 입맛을 다시는 것은 보편적인 남성들의 반응이었다.
오히려 나 보다 더 노골적이고 심하게 반응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 지하철에서 목격했던 그 수많은 변태들은 같은 남자인 나라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까지 자신의 욕구를 제어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 남성들을 보면서 안타깝게 느낀 것은 여성과 남성의 성욕의 시점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야설이나 야동에서처럼 여성들이 그런 상황에서 흥분을 하거나 느껴주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몸을 더듬는 남자의 뺨을 때리고, 그 예쁜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욕을 하는 여자도 있었고, 남자의 귀를 잡고 지하철 밖으로 끌고 가는 신기한 장면도 봤었다. 어떤 남자는 자신에게 따지는 여자에게 오히려 더욱 큰 소리로 대들다가 다른 남자에게 두들겨 맞는 상황도 목격했었다. 만약, 여자들이 남성들처럼 수시로 흥분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자들이 지하철에서 맘에 드는 남자들의 몸을 더듬고, 자지를 만지고 그러다가 섹스까지도 한다면 ...?...패션도 바뀔 것 같았다. 여자의 스커트나 바지는 엉덩이 쪽으로 쉽게 열수 있도록 디자인 되지 않을까? 여자들이 섹스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여성용 콘돔도 많이 팔릴 것 같았다.
지금, 유정도 나처럼 내 몸을 보면서 흥분하고 있다면 내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 몰래 섹스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내 앞에서 흔들거리는 유정의 맨 발을 빨고, 그녀의 두 다리를 잔뜩 벌리고 들어가 유정의 보지를 빨아댈 것이다. 그러면 유정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신음소리를 쏟아내며 내 자지를 주무르다가 앵두 같은 입으로 미친 듯이 빨아댈 것이었다.
테니스장에서는 베르디움 여자들과 함께 샤워 실에서 떼 씹을 할 것이었고, 그러다보면 잔뜩 흥분한 보연이 그동안 보여주지 않던 알몸을 한 채로 우리에게 다가와 내 자지를 경쟁하듯이 빨아댈 것이었다. 어디 그 뿐일까?
주인여자가 나를 유혹하기 위해 그림을 핑계로 내게 접근할 것이었고, 그러면 난 어렵지 않게 그녀의 발을 빨고, 보지를 빨아줄 것이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남자들이 바라는 대로 여자들이 수시로 꼴려준다면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하자 웃기기도 했지만, 야설을 그렇게 쓴다고 해도 별로 재밌을 것 같지는 않았다.
“왜 웃어요?...”
내 모습에 유정이 궁금한 얼굴로 내게 물었고, 난 피식 웃으며 별거 아니라고 답해줬다.
“뭐, 그래요. 장 선생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안심이 막 되네...! 하긴...장 선생은 그 망나니 로미 계집애도 꼼짝 못하게 했으니까, 하하하!~ 그래요, 난 그냥 휴가를 즐기다 올 테니까, 장 선생만 믿어요?”
유정이 사무실을 나가고 나는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2년 전 로미와의 일을 떠올리고 고개를 젓고 말았다. 이 지역에서 로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날라리라고 불렀지만, 유정은 망나니라고 불렀다. 그때는 날라리라는 단어와 망나니라는 단어의 차이에 대한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두 단어의 묘한 어감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전적 의미는 치워버리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볼 때, 날라리라는 말은 ‘창녀 같은 년’,‘걸레 같은 년’이란 의미로 주로 여러 남자를 사귀는 여자들을 비하해서 사용하고 있었고,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그런 여성을 욕할 때 사용했다. 결국, 날라리라는 말은 비난만이 내포되어 있을 뿐이었다. 반면에 유정이 쓰는 망나니라는 단어엔 안타까움이 내포되어 있었다. 상대에 대한 일방적인 비하나 비난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애정을 내포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유정은 보통의 여자들과는 다른 스케일을 지닌 여자였다.
내가 로미를 가르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녀석의 성욕이었다. 나이 먹은 아줌마들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서 바람이 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이제 19살짜리가 그런 욕구를 갖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었다. 정 원장도 자세한 얘기는 해주지 않았지만, 나보고 조심하라고 했고, 나는 어이없어서 그만 웃고 말았었다. 당시 만해도 난 인영의 일 때문에 여자애대한 어떤 욕구도 없었을 때였다. 정말로 고자가 된 것처럼 자지도 반응하지 않고 있었고, 그 사실은 정 원장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의 상황을 모르는 로미는 정 원장의 말대로 나를 유혹하기 시작해서 난감했다. 내 자지가 발기하고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지 못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진도를 나갈 수 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답답한 것은 논리적으로 아무리 설명을 해도 로미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란 시간을 허비한 나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로미에게 집적 시험을 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로미가 내 자지를 발기하게 만든다면 내가 감방에 가더라도 로미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 줄 것이었고,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내가 시키는 모든 것을 한다는 조건이었다.
로미는 성격이 단순하고 즉흥적이어서 그런지 승부욕이 장난이 아닌 아이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의자에 앉았고 로미는 내 앞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는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린놈이 장난이 아니었고, 로미의 표정은 자신의 그런 모습에 넘어오지 않는 남자들이 없었다...라는 자신감으로 가득차있었다. 하지만 내 몸엔 그저 멋지게 추는 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 몸에 반응이 없자, 자존심이 상한 로미는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고, 급기야 알몸이 되고 말았다. 만약, 지금이었다면 나는 로미에게 넘어가버렸을 것이었다. 그리고 감방에서 아직도 썩고 있을 것이었지만, 알몸을 한 채 육감적인 몸을 흐느적거리는 로미의 모습에 나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어느 새 그녀의 얼굴엔 땀이 흘렀고, 로미는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비벼대면서 서서히 내 바지를 벗겨버렸다. 그녀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지만, 승부였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면서 로미는 내 상의를 벗기고 내 젖꼭지를 빨아대면서 자지를 잡고 주물러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로미는 점점 당황하기 시작했고, 요란하게 내 자지를 움직이다가 자기 입에 넣고 빨아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로미의 반응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렇게까지 자극을 했음에도 내 자지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뜨끈한 느낌과 그저 간지럽다는 느낌 뿐 어떤 새큰함도 느껴지지가 않았었다. 로미는 사정까지 시키겠다고 장담했지만, 결국 내 자지를 세우는 것에도 실패하고는 숨을 몰아쉬면서 항복을 하고 말았다. 그제야 로미는 자기 부모가 왜 나를 선생으로 받아들인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수업하기가 한 결 편해졌다. 확실히 로미는 놀기만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이해력도 좋았고, 기술 습득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유정으로 인해 로미와의 일을 떠올리자, 어느 새 내 자지는 터질 듯 발기해 있었다. 지금이라면 로미가 원하는 것을 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해서 학송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정리했다. 혹시나 내가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이 있을까를 고민해 봤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결국, 문제는 학송이 아니라 초희였다. 초희만 대학에 합격시키면 그뿐이었다.
몇 가지 일을 정리하고 나는 입시 반 실기 실로 들어가 오랜만에 학생들의 실기 상황을 둘러봤다. 강사들은 모처럼 받은 휴가로 약간 들떠있었고, 학생들도 그런 분위기를 받았는지 전체적으로 업 된 분위기였다.
“아빠!~~~~!!!!”
디자인 반을 나와 수채화 반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실기 실 안에 울려 퍼졌다. 나와 강사들 그리고 학생들이 모두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누군가 달려와 내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4, 5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 녀석이 내 다리에 안겨서 계속 아빠라고 불렀고, 그 소리에 디자인 반의 강사들뿐만 아니라 학생들까지 몰려와 상황을 지켜보느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나는 이 갑작스런 소동이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알지도 못하는 꼬마의 아빠가 되고 말았다. 모두들 나와 꼬마를 쳐다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그때 구두소리가 요란히 울리며 사무장 경숙이 실기 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수오야! 내가 여기 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경숙이 내 다리에 매달린 남자애를 잡았고, 녀석은 계속 내 다리를 잡고는 아빠라고 외치며 울부짖었다. 경숙은 얼굴이 홍당무가 된 상태로 떼를 쓰는 수오를 내 다리에서 떼어내려고 애썼지만 쉽지가 않아보였다.
“너 엄마 말, 정말 안 들을래?!~~ 아, 아빠는 하늘나라에 갔다고 했잖아!~”
“아니야!~~ 아빠는 여기 있어!~~여기 있단 말이야!~~”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었고,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홍시처럼 얼굴을 붉힌 경숙이 수오를 잡고 당기자, 급기야 녀석에게 잡혔던 내 바지가 찢어져 버리고 말았다.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오른 쪽 허벅지 부분이 훤히 들어나 버리고 말았다. 청바지만 입다가 오늘은 더워서 얇은 면바지를 입었더니 이런 사태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수오는 놀랐는지 숨소리도 내지 않았고, 그것은 실기 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경숙은 이젠 붉어진 얼굴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수오를 때릴 것 같았다.
“그, 그래! 아빠야, 수오야!~~하하하!~~아빠다!~~~내가 아빠다!~~”
나는 얼른 경숙과 수오의 사이로 들어가 녀석을 안아들어 올렸다. 내 반응에 수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얼굴에 뽀뽀를 해줬고, 녀석은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지기 시작했다.
“우리 수오, 많이 컸네!~~ 아빠 보고 싶어쪄용!~~~”
수오에게 뽀뽀를 하며 간지럼을 태우자, 녀석도 이젠 깔깔대고 웃으며 계속 손으로 내 얼굴을 만졌다. 경숙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와 수오를 바라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며 더욱 얼굴을 붉혔다.
“야, 임마!~~ 너 때문에 아빠가 노숙자가 됐잖아!~~”
내가 허벅지와 종아리까지 훤히 들어난 오른쪽 다리를 소녀시대 애들처럼 움직여대자, 학생들이 킥킥대기 시작했다.
“자, 수오야!~ 아빠에게 소원을!~~ 말해 봐!~~~~~”
되도 않는 소녀시대 흉내를 내며 그렇게 말하자, 그 많은 실기 실 안의 학생들과 강사들이 일제히 빵!~ 터져버리고 말았다. 엄청나게 큰 웃음소리가 실기 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경숙도 이내 크게 웃었다. 자칫, 무거워 질수 있는 분위기가 소녀시대 덕분에 다시, 원상복귀 되었고 내가 수오를 들고 나가자 이젠 학생들이 나보고 ‘아빠!~’라고 불렀다. 내가 돌아서서 인상을 쓰자, 녀석들은 깔깔대고 웃으며 각자의 실기실로 줄행랑을 쳐 버렸다.
내 사무실에 들어와서도 수오는 내게 안긴 채 떨어질 줄 몰랐고, 소파에 앉은 경숙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경숙의 모습을 보자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여성스러움을 느끼면서 비로써 그녀의 몸이 내 시야 들어오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장 선생님...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정말...!”
흰색 티에 빨간색 카디건을 걸친 채, 검은 색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있는 경숙이 이렇게 섹시했던가? 아니면 상인과의 일로 내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인가?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세요. 전 오늘은 바쁜 일 다 끝나서 괜찮습니다.”
“어, 어떻게 그래요...아들!~ 이제 내려와 너!~~”
수오는 경숙의 말을 무시하고는 더욱 내 품에 얼굴을 파묻고는 안기며 버텼다. 그러자 경숙이 벌떡 일어서서 내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아 녀석을 잡자, 수오는 아예 내 티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버텼다. 난감한 얼굴이 된 경숙의 몸이 내 눈에 그대로 들어오고 말았다. 무릎을 꿇고 내 앞에 앉아서 그녀의 맨 허벅지가 그대로 보였고, 긴 목과 쇄골, 그리고 티 사이로 가슴골도 보였다.
경숙의 모습에 내 자지는 터져버릴 것처럼 발기했고, 난 머리가 어지러워져버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경숙도 표정이 묘해지며, 얼굴을 더욱 붉혔고 한동안 그렇게 우리는 시선을 주고받았다. 내 몸이 후끈 달아올라 버렸고, 그녀가 시선을 돌리고 일어서려할 때 난 그녀의 어깨를 잡고 경숙의 입에 키스를 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내 몸이 저절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내 입술을 받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다가 내가 혀를 그녀의 입 안으로 넣자, 화들짝 놀라 뒤로 주저앉고 말았다.
나와 경숙은 얼굴을 붉힌 채 마라톤을 한 사람들처럼 숨을 헐떡였다. 경숙은 벌떡 일어서더니 나를 보지도 않은 채 얼굴을 만지며 내 사무실안을 나가버렸고, 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티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수오는 뭐가 재미있는지 계속 키득거리고 있었고, 난 온 몸으로 소름이 돋아 오르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인영과 사귀게 된 것도 그녀가 먼저 자신의 감정을 들어냈기 때문이었고, 상인과의 일도 그들이 먼저 시작한 것이었다. 이렇게 내가 먼저 여자에게 접근한 것은 경숙이 처음이었다. 뭐가 뭔지 분석이 되지 않았지만 상인과의 일로 난 변해버리고 만 것 같았다. 그것도 내가 생각하던 그런 이상적인 남자가 아니라, 감정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반응하는 그런류의 남자가 된 것 같았다.
[이제...이제 어쩌지?...그것도 학원 여자를...!...후우!~~]
난 분명 상인을 사랑한다고 믿었고, 광호에게서 빼앗으려는 마음까지 갖고 있었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짓을 하고 말았다. 원래 나란 인간은 이런 놈이었나? 책임지지도 못할 짓이나 벌이는 그런 부류였나?
“아빠?...”
수오가 내 티에서 얼굴을 빼고는 나를 올려다봤다. 녀석을 보자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으응?...”
“아빠?...”
“...왜에?...”
“아빠? 아빠? 아빠?”
도대체 이 녀석의 반응이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상인의 딸 미래와 나이가 같아보였는데 반응은 전혀 달랐다. 미래는 꼬마 여자애였지만 보스 기질이 있어서 상인과 싸울 때는 꼭 어른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 녀석은 완전히 어린애였다.
“아빠?...나아!~~~하드 먹고 싶어!~~으응!~~”
수오가 떼를 써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녀석을 데리고 학원을 나가 밑에 층에 있는 상가로 내려가야 했다. 아무리 봐도 미래하고는 너무나 달랐다. 미래가 인간이었다면 수오는 무슨 강아지 같았다. 마트에 들어가자 주인남자는 나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고, 난 그제야 내 오른 쪽 바지가 찢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멋쩍게 웃어버렸다. 녀석은 이것저것 지 먹을 것만 고르더니 주인 남자에게 나를 아빠라고 소개를 해버렸다. 나는 학원 상가 쪽엔 잘 오지 않아서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인 남자는 수오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아이고, 이 녀석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아파, 할머니!~~아프단 말이야!~~”
갑자기 60대 여자가 달려와 수오를 잡고 엉덩이를 때리자, 수오가 엄살을 피우며 또 다시 내 다리를 잡고 매달렸다. 이러다간 내 왼쪽 바지까지 찢어질 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수오는 하드하나를 까주자 더 이상 반항을 하지 않았다.
“저, 장 선생님이시죠?...저는 수오 외할머니에요...죄송합니다. 저 녀석이 지 애미 본다고 학원에 올라가더니만...휴우!~~”
수오의 외할머니란 여자의 머리는 너무 하예서 눈이 부실 정도였는데, 갸름하고 선한 인상의 얼굴과 오히려 잘 어울려보였다. 그리고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차분한 옷차림과 함께 너무나 지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이 여인을 만난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럼...사무장님 어머님...? 아, 안녕하세요. 장 태복이라고 합니다...”
“예...이곳에서 서점을 하고 있어요. 진즉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 그만...”
“아, 아닙니다, 별 말씀을 요... 제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들려야 하는 것이었는데...제가 좀...주변머리가 없어서요...”
경숙에게 키스를 한 일이 없는 상황에서 이 여인을 만났다면 어땠을 까? 그 사건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과장되게 반응하고 있었다. 키스도 아닌, 그저 뽀뽀일 뿐이었는데도 난 뭔가 책임질 일을 저지른 10대 소년 같은 기분이 들고 말았다. 수오의 할머니는 내 맘도 모른 채, 계속 죄송하다고 했고 친절하게 마트 주인에게도 상황을 설명 해줬다. 그러자 마트주인이 나를 보고는 크게 웃었고, 수오 할머니는 계속 내게 사과를 했다. 아무래도 경숙이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서서도 서로 사과를 했고, 3층 서점에서 내리면서도 몇 번을 굽실거리며 인사를 하고서야 헤어졌다. 수오 녀석은 그 와중에도 하드를 입에 문채로 질질 흘리면서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경숙의 엄마가 이 건물에서 서점을 하는 것을 난 3년 만에 알고 말았다. 유정의 말대로 난 정말 주변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었다. 지난 3년간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내 머릿속엔 학원에 관계된 일 외엔 입력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인과 광호로 인해 난 이제야 주변사람들이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들과의 사이에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상인과는 연인이 되었고, 광호와는 한 여자를 두고 경쟁관계가 되었다. 베르디움 여자들의 알몸을 보았고, 주인여자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이 생긴 것과는 다르게 경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아내인 사랑이 일본 여자 같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오늘 학원 동료인 경숙과 키스를 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일주일 사이에 벌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고, 불안감과 함께 뭔가 알 수 없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기분 좋은 떨림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그림을 처음 배울 때, 그리고 인영과 첫 키스를 했을 때였다. 그녀와 헤어진 뒤로 다시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할 줄 알았는데, 상인과 광호로 인해 다시 그런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난 지난 3년간 죽었었던 것인가? 분명히 밥을 먹고, 술도 마시고, 똥도 쌌고, 테니스도 배웠지만 기계적인 반응일 뿐이었다는 것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정 원장의 트레이닝복이라도 빌려 입으려고 나는 7층에서 내렸다. 그러자 휴식 시간인지 예비 반 학생들과 입시 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는데, 나를 보고 키득거리며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내 모습을 보고 희정, 경화, 유림이 피식 웃었고, 학생들은 ‘아빠!~’라고 외치고 도망가 버렸다.
“수오 그 놈이 총각을 같다가 졸지에 유부남을 만들어 버렸네!...하하하!~~”
원장실 안으로 들어가니 유정이 정 원장의 트레이닝복을 건네주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고 상담실 안으로 들어가 일단 바지를 벗어 내렸다. 팬티 바람으로 바지를 한 쪽에 두려는데, 갑자기 웃음이 밀려와 난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어이가 없어도 너무나 없어서 헛웃음이 계속 밀려나왔는데, 그때, 벌컥 문이 열려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경숙이었다. 그녀는 비닐봉투를 든 채로 나를 보고는 또 다시 얼굴을 붉혔고, 난 너무 놀라 가만히 서있어야 했다. 그러자 밖에서 또, 유정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고, 경숙은 봉투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아무래도 내 바지를 사들고 온 경숙을 놀려주려고, 유정이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너무나 정신이 없었다. 난 경숙이 사온 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가는데, 유정은 너무 잘 어울린다며 깔깔대고 놀려댔다.
이 일로 이제는 모든 학생들이 나를 ‘아빠 샘’이라고 부를 것이었다. 처음엔 ‘장 샘’이었고, 그 다음엔 ‘몸 짱 샘’이었다가, 작년부터는‘작은 원 장 샘’이었다. 희한한 일이었지만 1년 주기로 내 호칭이 변하고 있었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난 내 사무실로 들어가 마음을 정리했다. 하지만 휴식 시간이 끝나도록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고, 수업이 시작됐는데도 계속 심장이 떨려왔다. 난 어쩔 수 없이 담배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은 강사들과 학원 관계자들만이 사용하는 곳으로 나무도 심어져있었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곳도 있어서 편하게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올 해 들어서 이렇게 담배를 피울 일이 많이 생겼다.
담배를 피워 물고 무심코 난간 쪽으로 걸어가는데, 한쪽에서 경숙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녀도 꽤나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막상,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 경숙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와 경숙의 시선이 마주쳤고, 한 동안 그렇게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담배를 끄고 몸을 일으켰다.
경숙은 내 눈을 더 이상 바라보지 못하고, 나를 지나쳐 가려했는데, 내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경숙이 우뚝 멈춰서며 살짝 몸을 떨었다. 막상, 그녀가 돌아서 나를 보자 내 심장이 터질 듯이 움직였고, 뭘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목을 놓고 말았다.
“저...아까는...제가...”
“아니에요, 장 선생님...모두 제 잘못이에요...신경 쓰지 마세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숙은 그렇게 말하고는 후다닥 빌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가 그렇게 사라져버리자 뭔가 확하고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내 심장을 파고 들어왔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고, 경숙의 반응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몰라서 두려웠다. 나를 짐승 같은 놈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랬다. 내가 생각해도 난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인을 내 여자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나리엄마와 유정의 몸을 탐했다. 그리고는 경숙의 몸에 취해 그녀의 입에 키스를 했다.
머릿속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혼란스러워 미칠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상인이었다. 난 그녀의 전화번호를 보고는 경숙의 일이 정리되면서 상인이 미친 듯이 보고 싶어졌다. 들뜬 마음에 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았다.
“자..자기...!”
<어머!~ 이젠 자기란 말이 바로 나오네? 하하!>
“보, 보고 싶어요...!”
<나도 그래, 자기야...하하...근데, 우리 오늘은 좀 쉬자, 응? 가게도 그렇고, 집 정리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후우!~~>
나는 보고 싶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상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머리로는 상인의 말을 이해하지만 내 심장은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자기야?...자기야, 삐졌어?...>
“아...아니요...그래요... 많이 피곤 할 텐데 좀 쉬세요...네...네...”
상인은 내가 가깝다고 느낄 때마다 멀어졌다. 인영과는 달랐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어쩌면 상인과 나의 한계를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계속 상처를 받을 것이었다. 인영에게 받았던 것 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는 것인가? 머리로는 그렇게 인정하고, 이해했지만 나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수업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도 모르게 끝나버렸다. 학생들은 물이 빠져나가듯이 우르르 몰려나갔고, 어느새 나와 유정, 경숙만이 남고 말았다. 늘 이렇게 마지막 까지 남아서 정리를 했지만 오늘은 아빠 사건 때문에 쉽사리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자, 오늘은 그만 나갑시다!~~”
“예?...”
나와 경숙이 어리둥절해서 바라보자, 유정이 억지로 회의를 끝내버리고 우리를 내 보냈다. 학원을 나가자 복도엔 희정, 경화, 유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경숙은 그녀들에게 이끌려서 저번에 갔던 ‘닥터피쉬’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유정과 세 여자는 나와 경숙을 풀어주기 위해서 작전을 짠 모양이었다. 창 문 옆 테이블로 자리를 잡은 뒤 데킬라를 마시기 시작했다. 술이 들어가자 기분이 조금 진정되었고, 상인의 일도 누그러졌는데, 그것은 경숙도 마찬가지 인 듯 했다.
희정, 경화, 유림이 나와 경숙, 유정을 끌고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어린 친구들, 그리고 외국인들 틈에 섞여서 우리는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댔다. 나는 기타는 제법 잘 쳤지만 이상하게 춤과 노래는 젬병이어서 모두들 나를 보고 키득거렸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나는 되는대로 몸을 흔들었고, 내 동작이 크면 클수록 내 일행들 뿐 아니라 다른 손님들까지 즐거워해서 난 더욱 오버를 하고 말았다. 이것도 처음이었다. 대학생 때나 군인일 때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태어나서 이렇게 미친 척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유림은 내 춤이 민망했는지 내 앞으로 다가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희정과 경화도 익숙한 몸동작으로 나를 감싸고 에워싸듯이 한 채로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세 여자의 모습이 티브이에서 보는 것처럼 섹시했다. 유정과 경숙은 조금 지치는지 얼굴에서 땀을 흘리며 자리로 돌아가 맥주를 들이켰다.
정장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경화, 유림, 희정과 몸을 비비며 춤을 추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세 여자는 나의 새로운 모습이 재밌는지 서로 경쟁하듯 엉덩이를 밀어왔고, 점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되는대로 몸을 움직였다. 춤 실력이 형편없는 내가 미녀 세 명과 춤을 추는 것이 못 마땅했는지 다른 남자들이 점점 우리 쪽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하고 키가 비슷한 백인 녀석이 유림과 접촉하더니 뭐라고 중얼거렸고, 유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엉덩이를 부딪쳤다.
상황이 희한하게 흐르면서 어느 새 경화와 희정까지 내 앞에서 사라져 버린 채 다른 녀석들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머쓱해진 나는 힘도 들고 해서 테이블로 가 앉았고, 유정이 내 등을 때리며 데킬라를 따라주었다. 경숙도 술이 들어가고 분위기가 흥겨워서 그런지 좀 전보다는 표정이 밝아보았다.
나는 내 잔을 들었고, 경숙과 유정이 잔을 부딪치고는 건배를 외쳤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데킬라를 원 샷 해버렸다. 나와 유정은 술을 먹을 때 안주에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게 끝이었지만, 경숙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등에 소금을 핥아먹는데 그녀의 모습이 또한 묘하게 섹시했다.
한 참을 그렇게 유정, 경숙과 함께 대화도 없이 술을 마시는데 세 여자가 얼굴에 땀을 흘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야아!~~하하하!~~장 샘이 이런 면도 있는지 몰랐네!~~오늘, 장 샘의 날이에요, 날! 아시죠? 새로운 별명 생긴 거?”
“아빠 샘!~~~~~”
경화가 맥주를 마시며 말하자 희정과 유림이 합창하듯 새로운 나의 별명을 외쳤다. 그리고는 깔깔대며 자기들끼리 건배를 하고는 맥주를 마셨다.
“경숙이 언니도 이런 거 처음 봐요, 부원장님!~~ 화아!~~”
“근데, 장 샘은 ...아니, 우리 아빠 샘은 춤이 너무 엉망이다!~~ 정말, 춤 잘 추게 생겨서 어떻게 그런 움직임이 나오는 거야? 난 바람인형인 줄 알았다니까?...하하하!~~”
젠장!~ 참!~ 노래 잘 부르게 생겨서, 노래 정말 못 부른다는 말 이후에 가장 치욕스럽게 들린 말이었다. 차라리 테니스 말고 춤을 배울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대학에 입학해서 친구가 된 종석은 정말 가수 싸이를 많이 닮았는데, 개그맨 뺨치는 유머에 춤과 노래 등 못하는 것이 없는 남자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무척이나 많았다. 그런 종석은 내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다가 두 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살면서 나 같은 특수한 체질의 인간은 본적이 없다면서 종석은 꼭 나보고 사후인체기증을 하라고 했었다.
전공이 다른 종석과 친해지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도 조기 입학을 했고, 나도 조기 입학을 해서 나이가 같았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대학에선 나이가 아니라 학번으로 모든 것이 통했기 때문에 동기들이 나이가 많더라도 말을 놓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종석은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동기 중에 자기 친형의 불알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졸지에 종석은 과에서 막내가 되었고, 어린 애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녀석이 내 지갑을 줍고는 자기처럼 내가 조기 입학한 것을 알고 내게 접근해 온 것이었다.
오랜만에 이성을 놓고 그녀들과 술을 마시고 놀다가 밖으로 나왔다. 경숙과 희정은 택시를 잡아타고 먼저 돌아갔고, 유정은 나와 경화, 유림을 데리고 바로 앞의 자기 집으로 끌고 올라갔다.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올라서도 끊이지 않고 주절거렸다. 얘기의 주제는 일정하지 않았고, 10초안에 여덟 가지 종류에 대한 얘기를 했다. 결론은 없었고,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방식으로 유정의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정 원장은 들이닥친 불청객들을 보고는 잠에 취한 얼굴로 피식 웃어버렸다. 그동안 나는 이런 식의 만남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유정은 이렇게 여자들과 함께 술을 먹다가 집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고, 정 원장도 싫어하지 않았다.
세 여자는 거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정 원장은 유정의 고함소리에 굽실거리며 주방으로 가 맥주를 준비했다. 난 화장실에 들어가 오줌을 누고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밖에서 정 원장의 웃음소리와 여자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데 다들 저렇게 즐거울 까 싶었다. 찬물에 세수를 마자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니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빠!~~ 여기 앉아효~~”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유림이 풀린 눈으로 나를 보고 웃으며 외쳤고, 정 원장과 유정, 경화가 또 다시 깔깔대고 웃었다. 세수를 하는 동안 정 원장에게 오늘 있었던 수오 사건에 대한 전말을 들려준 모양이었다. 정 원장은 이제 잠이 깬 얼굴이었고, 내게 시원한 하이네켄을 건네주었다. 나는 술병을 받아들고 한 모금 마시는데 건너편에 있는 유정과 경화의 맨 다리가 시선을 끌었다. 양 옆에는 정 원장과 유림이 있었는데 자꾸 유림이 내 몸에 부딪쳐서 상황은 점점 곤란해져갔다.
“그러고 보니 장 선생이 좀 변한 것 같다...응?...무슨 일 있나?...”
정 원장이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고, 난 멋쩍게 웃어버렸다. 상인과의 일을 말 할 수는 없는 문제였고, 경숙에게 뽀뽀를 했다는 말을 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나의 변화가 보이는 모양인지 자꾸, 나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당신도 그렇게 느꼈어?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확실히 조금 유해진 것 같아...”
“어머, 어머!~ 맞아요, 언니!~~ 장 샘은 그동안 꼭 로봇이나 인조인간 같았는데 오늘은 ...사람 같더라고요!~~하하하!~”
유림은 호들갑스럽게 말했고, 경화도 맞장구를 치며 또 깔깔거렸다. 그러면서 경화는 묘하게 다리를 움직였고, 발톱에 푸른색이 발라져 있는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리는 것이 너무나 섹시했다. 난 여자들이 나를 두고 얘기를 하거나 말거나 맥주를 마시며 그녀들의 몸을 더듬었고, 그럴수록 상인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지금...형과 하고 있겠지...?...새로운 집에서...새로운 기분을 만끽할거야...내 앞에서 흐느낄 때처럼 형에게 안겨서 뜨거운 신음을 내 뱉겠지...젠장...!]
여자들의 몸을 보면 볼수록 상인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고, 쉽사리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비합리적인 남자인 줄은 지금까지 몰랐다. 지극히 이성적이고, 보편타당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인영과 상인을 겪으면서 내게도 어이없을 정도로 비합리적인 면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말았다.
난 맥주 두 병을 더 마신 뒤, 초희 핑계를 대고 술자리를 빠져나왔다. 답답하기도 했고, 이상하게 상인의 대한 갈증이 더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정 원장의 집을 빠져나와 내 원룸 쪽으로 걸어갔다. 달려가는 자동차들이 빵빵대고 난리를 쳤지만 이상하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터덜터덜 걷다보니 드디어 내 원룸이 보였다. 난 일단 원룸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머리를 정리하려 애를 썼다. 시끄러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조용한 곳이어서 그런지 오히려 상인에 대한 생각이 더욱 밀려오기 시작했다. 차라리 유정과 함께 집으로 가서 술을 더 마실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초희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젠장!...그래, 돈을 받아먹었으니...받아먹은 값은 해야지...젠장 할!”
비틀대며 원룸으로 들어간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오르고 올라서 4층까지 다다랐다. 이제 코너를 돌아 끝까지 가면 내 방과 이미 떠나버린 상인의 방이 나올 것이었다. 항상, 걸을 때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 수록 내 구두소리는 더욱 크게 나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내 방 앞에 도착한 나는 열쇠를 꺼내다가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머릿속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들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 뱉지는 못했다. 겨우, 열쇠를 집어 들고 구멍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리려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상인의 집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떠나고 없는 상인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보고 싶었고, 안고 싶었다.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상인의 지난 흔적이라도 보기위해 그녀가 살던 방의 문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원룸의 빈집은 이렇게 문을 잠그지 않고 연락이 오는 사람들이 수시로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불이 켜져 있었고, 놀랍게도 주인여자가 밀대로 허리를 숙인 채 방을 닦고 있었다. 얇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그녀의 통통한 몸이 그대로 들어나 보였고, 허리를 숙이고 있어서 주인여자의 튼실한 엉덩이와 함께 종아리와 앙증맞은 맨 발이 내 눈 가득 들어와 버렸다.
주인여자는 놀랐는지 나를 보고 가만히 있었고, 나는 왜 이 시간에 주인여자가 방을 치우고 있는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미, 내 눈은 뒤집혀 버렸고, 머릿속에는 베르디움 여자들의 알몸과 함께 상인과의 섹스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짐승처럼 달려들어 주인여자를 껴안자 그녀가 놀란 듯 헉!~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뭔가가 내 머리를 마비시켰는지 오직 쑤시고 싶다는 본능밖에 없었다. 이젠 모든 것이 다 귀찮았고, 어떻게 되든지 아무 상관도 없었다. 이 여자가 칼로 날 찔러도 난 이 여자의 보지에 자지를 찔러 넣고 싶단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태, 태복씨!~~~허엌!~~”
침대에 쓰러지며 또 다시 주인여자가 소리를 질렀고, 난 그녀의 원피스 속으로 손을 넣어 젖가슴을 주무르며 내 하체를 비벼댔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주인여자가 지금 반항을 하는 움직임인지 아닌지를 알 수는 없었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내 왼손은 위로 넣어 그녀의 젖가슴을 주물렀고, 내 오른 손은 밑으로 해 원피스를 잡고 위로 올린 뒤, 주인여자의 맨 다리 살과 튼실한 엉덩이를 주물렀다. 말랑말랑한 느낌이 내 몸을 폭발 시킬 것처럼 황홀하게 만들어 그녀의 입에 내 입을 들이댔다. 발기한 자지를 축으로 하체를 비비며 혀를 집어넣으려 할 때였다.
요란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한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새벽에 저런 식으로 술에 취한 남자들이 떠들면서 우르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었다. 성격이 예민한 나는 그때마다 잠에서 깨곤 했는데, 잔뜩 흥분한 지금 하필이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난 그만 이성을 되찾고 말았다.
분명히 지금 이 방의 문은 닫혀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사실, 신경 쓰는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밖의 사람들이 내가 저지르는 이 끔찍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화들짝 놀란 나는 주인여자의 입에서 내 입을 떼고는 머리를 들어올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인여자는 벌개 진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이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던 나는 그녀의 눈빛에 압도되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올라, 머리카락이 쭈뼛거렸고 등골이 오싹했다.
불에 댄 것처럼 상체를 일으킨 나는 하복부도 벌떡 일으켜 세우고, 침대 앞에 선 채로 다시 주인여자를 바라보았다. 내 심장은 곧 터질 것처럼 뛰었고, 머리는 프레스기에 눌리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녀를 본다고 봤지만 도저히 주인여자의 눈을 볼 수는 없던 나는 그저 그녀의 들썩이는 가슴만을 쳐다보다가 이내, 도망치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나오자, 컴컴하던 복도에 불이 켜지며 환해졌다. 그러자 또 다시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위에서 내 머리를 당기는 것처럼 머리가 쭈뼛거렸다. 누군가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돌려 올라오는 계단이 있는 복도 끝을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다는 안도감에 내 문 손잡이에 걸려있는 열쇠를 돌려서 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는데, 바로 앞 창문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 그만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겨우 문손잡이를 잡고 숨을 헐떡이는데, 창문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바보같이 창문에 비친 나를 보고 놀란 것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나는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한 참 동안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나는 신발을 벗고 엉금엉금 기어서 겨우, 침대에 올라가 모로 누워버렸다.
살면서 이렇게 어이없어보긴 처음이었다. 내가 강간을 저지르려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도...정말로 단 한 번도 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별거 아닌 재주를 이용해서 입시 장사를 해먹고 있기 때문에 이런 벌이 내려진 것이라면 좀 억울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나보다 더 형편없는 놈들도 많았다. 그런 엄청난 돈을 받고 과외를 해서 난 떨어뜨린 적이 없질 않은가? 대학에 보내 준 것도 죄가 되나?
[내가 지금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궁지에 몰리고 상황이 절박해지자 나답지 않게 별 시시콜콜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이렇게까지 유치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면서 주인여자에게 강짜를 부리던 한국이 떠오르며 그가 이해가되었다. 사람, 다 거기서 거기였다. 많이 배우건 못 배우건, 절박한 상황에 마주하면 그 사람의 바닥이 들어나기 마련이었다. 나도 별 다른 것이 없는 놈이었다. 항상, 나만이 특별하고 고귀한 것처럼 살았지만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인생일 뿐이었다.
강간을 저질렀다는 당면한 문제에 대한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난 감옥에 갈 것이었다. 그동안 쌓았던 이 지역에서의 인맥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었고, 싸늘한 비판 속에 나는 사라질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무섭고 두려웠다. 그러면서 세상에 나 혼자뿐이란 생각이 들었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극한의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17살 때부터 혼자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나는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어차피 아버지도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엄마도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았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엄마와 아버지의 그 지긋지긋한 싸움을 보지 않아도 되었고, 화풀이 하듯 내게 강해지기를 강요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았다. 모든 것은 내 의지로 내가 하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고 안락한 삶이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희한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민사고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는 엄마를 닮은 내가 싫다고 하면서 나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내가 민사고를 자퇴했을 때 엄마는 아버지를 닮은 내가 끔찍하다며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각자가 재혼해서 사는 삶 은 나름 행복해보였다. 그 행복한 모습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서 나는 엄마와 아버지를 찾은 적이 없었고, 두 사람도 내가 성장할 때까지 생활비를 대주기만 했다. 그리고 서울대에 합격한 뒤 길 원장 학원에 강사로 나가면서 나는 두 사람이 주는 생활비도 더 이상 받지 않았다. 나만의 완벽한 독립이었고, 나에겐 인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게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도 없었고, 엄마도 없었고, 인영도 없었고, 상인도 없었다.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온 몸에 또 다시 소름이 밀려왔고, 한기가 느껴져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나를 떠난 것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이런 짐승 같은 모습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쭈뼛거렸다.
창피한 생각과 나 자신이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겹쳐지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느끼는 분노였고, 나 같은 것은 더 이상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나 같은 쓰레기들은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어...!...]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주방 쪽으로 걸어가 부엌칼을 집어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칼은 살기와 함께 번뜩거리는 빛을 내 뿜고 있었다. 그 칼은 상인이 준 것이었다. 집에서는 거의 음식을 해 먹지 않았는데, 상인이 김치를 썰어야 한다며 자기 집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참 희한했다.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한 여자가 가져온 칼로 나는 지금 내 손목을 그으려고 하고 있었다. 첫사랑이었던 인영이 나를 로봇으로 만들었고, 상인은 이제 나를 시체로 만들 것이었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한 대가인가?
“그, 그만둬요, 태복씨...!...”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벽에 등을 댄 채로 소리 나는 쪽을 보니, 문 앞에 주인여자가 서있었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미세한 불빛이 주인여자의 당혹스런 표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손과 다리를 떨고 있었고, 난 다리에 힘이 풀리며 벽을 댄 채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아 버렸다.
똑, 똑, 똑...노크소리가 들려서 문 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유정이 안으로 들어오는데, 좀 전에 학송 부부와 상대할 때와는 다르게 표정이 밝지 않았다. 그녀는 테이블 앞 소파에 앉았고, 난 자리에서 일어나 소파로 걸어갔다.
“절 부르시죠, 여기까지 올라오셨어요?”
미술학원은 7, 8, 9, 10층인 네 개 층을 쓰고 있었는데, 원장실은 7층에 있었고, 내 사무실은 10층인 입 시반 실기 실 안에 함께 있었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으면 인터폰으로 나를 부르거나, 내가 사무실에 없고, 예비반이나 입시 반 실기 실에 있을 경우는 방송을 통해서 부르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나뿐만 아니라, 학생이나 강사들을 부를 때는 모두 이런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가 앉으며 말하자, 유정이 미소를 지어보이며 다리를 꼬고 앉았다. 얄 상한 유정의 맨 발을 타고 잘록한 복사뼈 부근을 지나면 종아리가 유연하게 뻗어 올라가 옆트임이 있는 스커트로 허벅지 깊은 곳까지 보였다. 여자들은 자신들이 좋아서 옷을 입는다고 하지만, 남자들 입장에서는 확실히 곤란한 상황들이 많았다. 테니스장에서의 베르디움 여자들이 그랬고, 상인의 아파트에서는 나리엄마와 상인의 복장이 나를 곤란하게 했다. 그리고 지금은 유정이 내 눈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장 선생...기분 괜찮죠?...”
“예?...아...괜찮습니다. 뭐, 돈 많이 벌어서 좋죠...”
“흐음...그래도 장 선생이 쿨 해서 다행이네요...”
나는 유정이 시선을 밑으로 할 때, 얼른 그녀의 발을 보다가 다시 시선을 위로 향할 때를 맞춰서 유정의 눈을 바라봤다.
“무슨 일이 있으세요, 부원장님?...”
내가 유정을 보면서 물어보자, 그녀가 약간 굳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 이가 말이에요...초희 아버지를 굉장히 의식하더라고...학송씨랑 그 이랑 무슨 일이 있나 해서...”
사실, 난 초희 문제를 어렵게 느끼지 않고 있었다. 내가 처음 서울 길 원장 학원에 강사로 들어갔을 때, 나는 그 학원에 인맥이 전혀 없었다. 학원 주임들과 보조강사들은 모두 나를 지나치게 의식했고, 왜 그런지 모르지만 알게 모르게 왕따를 시켰다. 그리고 이제 처음 시작한 강사인 나에게 입시 반을 맡겼는데, 8명 모두 초희와 같은 학생들이 전부였었다.
학원엔 항상, 그런 학생들이 존재했고 어떤 강사들도 자신의 커리어에 흠집을 남기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처음부터 그런 학생들을 도맡아 처리하는 강사가 되어야 했다. 대형학원이다 보니 그런 학생들은 떨어져도 그만이었고, 그러다보니 나에 대한 어떤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저 잘 생기고 어린 강사 놈이 개념 없는 애들과 잘 놀아주기 바라는 그런 생각에서 나를 입시 반에 편입 시킨 것뿐이었다.
왜 그랬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난 그런 길 원장과 기존 주임들의 태도에 화가 치밀어 올랐고, 보란 듯이 학원에서 최고 수준이란 학생들이 간 대학에 내가 가르친 애들을 한 명도 빼 놓지 않고 합격시켰다. 기존 강사들은 우연이라고 별거 아닌 걸로 치부했지만, 실기가 잘 늘지 않는 학생들의 신청이 쇄도하는 바람에 나는 어린 나이에 보조강사 세 명을 둘 수밖에 없는 강사가 되고 말았다. 자기보다 어린 사람에게 지시받는 것이 좆같은 일이지만 그 못지않게 얼굴에 좆같아요...라고 써있는 나이 많은 사람들을 부리는 것도 좆같은 일이긴 마찬가지였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모든 보조 강사를 여자들로 바꿔버렸다. 여자들은 나이가 많더라도 나에 대한 복종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런 식으로 새롭게 나의 입시 반을 꾸렸고, 모두들 어쩌다 그런 것이겠거니 했지만 2년 연속해서 실기 기간이 6개월 미만의 학생들이 상위권 대학에 합격하는 일이 벌어지자 난 순식간에 인기강사가 되었고, 학원에서도 무시 할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렇게 되면서 내 의도와는 다르게 길 원장은 회의시간마다 사안 사안에 대해 나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했다.
나이 많은 주임들을 의식해서 내 의견을 조심스럽게 말했지만, 내 얘기는 길 원장에 의해 시행되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렇게 2년 만에 난 주임 급 강사라는 타이틀을 달았고, 군에 입대를 했다. 포항에서 근무하는 동안 내 부모도 면회한 번 오지 않았는데, 길 원장 부부가 찾아왔고, 제대할 때까지 학원에서 주는 기존 월급을 그대로 받으면서 군 생활을 했었다. 그리고 제대한 뒤에는 30대 중반의 주임 급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조건으로 강사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다.
“글쎄요...저도 초희 아버님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습니다.”
“그래요?...흐음...이상하게 난 그 사람이 부담되더라니까...”
유정은 사람들에 대해 뒷말을 하는 그런 부류의 여자가 아니었다. 성격이 털털하고 남성성이 많은 유정의 입에서 학송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나도 좀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도의원의 조카딸이었던 로미를 내게 맡겼을 때도 정 원장이 긴장을 했던 것이 떠올라 난 크게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초희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하더라도 학송이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었다. 이 지역에서 정 원장의 파워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방의 미술학원 원장이라도 지역 유지들에 판, 검사, 경찰간부들 까지 정 원장의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이런 정 원장이 일개 회계사를 의식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너무 걱정 마세요, 부원장님. 초희를 합격시키면 그 뿐이니까요.”
“하하하!~~ 장 선생은...정말...!...하하하...!”
유정이 보조개를 귀엽게 보이며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 보였지만, 난 그녀가 왜 웃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면 빈 말이라고 느끼겠지만, 장 선생은 빈말이란 것을 모르는 남자니까...하하하!~~”
“예?...제가 그랬나요?...”
또 다시 보조개를 보이며 유정은 활짝 웃었는데, 그 모습이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예뻐 보였다. 당장이라도 유정의 발을 잡고 빨아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이젠 내 주변의 모든 여자들에게 시선이 향했고, 그녀들의 몸은 수시로 내 눈 가득히 들어와 내 머리를 어지럽히고 있었다. 나 만 이런 식의 반응을 하는 것일까? 내가 알기론 이런 식으로 여자들의 몸을 눈으로 더듬으며 입맛을 다시는 것은 보편적인 남성들의 반응이었다.
오히려 나 보다 더 노골적이고 심하게 반응하는 남자들이 많았다. 서울에서 생활할 때 지하철에서 목격했던 그 수많은 변태들은 같은 남자인 나라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까지 자신의 욕구를 제어할 수 없을 정도라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그런 남성들을 보면서 안타깝게 느낀 것은 여성과 남성의 성욕의 시점이 다르다는 것이었다. 야설이나 야동에서처럼 여성들이 그런 상황에서 흥분을 하거나 느껴주면 좋겠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몸을 더듬는 남자의 뺨을 때리고, 그 예쁜 입에서 나올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욕을 하는 여자도 있었고, 남자의 귀를 잡고 지하철 밖으로 끌고 가는 신기한 장면도 봤었다. 어떤 남자는 자신에게 따지는 여자에게 오히려 더욱 큰 소리로 대들다가 다른 남자에게 두들겨 맞는 상황도 목격했었다. 만약, 여자들이 남성들처럼 수시로 흥분한다면 어떻게 될까?
여자들이 지하철에서 맘에 드는 남자들의 몸을 더듬고, 자지를 만지고 그러다가 섹스까지도 한다면 ...?...패션도 바뀔 것 같았다. 여자의 스커트나 바지는 엉덩이 쪽으로 쉽게 열수 있도록 디자인 되지 않을까? 여자들이 섹스에 대한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여성용 콘돔도 많이 팔릴 것 같았다.
지금, 유정도 나처럼 내 몸을 보면서 흥분하고 있다면 내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 몰래 섹스를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내 앞에서 흔들거리는 유정의 맨 발을 빨고, 그녀의 두 다리를 잔뜩 벌리고 들어가 유정의 보지를 빨아댈 것이다. 그러면 유정은 잔뜩 붉어진 얼굴로 신음소리를 쏟아내며 내 자지를 주무르다가 앵두 같은 입으로 미친 듯이 빨아댈 것이었다.
테니스장에서는 베르디움 여자들과 함께 샤워 실에서 떼 씹을 할 것이었고, 그러다보면 잔뜩 흥분한 보연이 그동안 보여주지 않던 알몸을 한 채로 우리에게 다가와 내 자지를 경쟁하듯이 빨아댈 것이었다. 어디 그 뿐일까?
주인여자가 나를 유혹하기 위해 그림을 핑계로 내게 접근할 것이었고, 그러면 난 어렵지 않게 그녀의 발을 빨고, 보지를 빨아줄 것이었다. 그렇게 어렵지 않게 남자들이 바라는 대로 여자들이 수시로 꼴려준다면 행복할까?
그런 생각을 하자 웃기기도 했지만, 야설을 그렇게 쓴다고 해도 별로 재밌을 것 같지는 않았다.
“왜 웃어요?...”
내 모습에 유정이 궁금한 얼굴로 내게 물었고, 난 피식 웃으며 별거 아니라고 답해줬다.
“뭐, 그래요. 장 선생이 그렇게 말해주니까, 안심이 막 되네...! 하긴...장 선생은 그 망나니 로미 계집애도 꼼짝 못하게 했으니까, 하하하!~ 그래요, 난 그냥 휴가를 즐기다 올 테니까, 장 선생만 믿어요?”
유정이 사무실을 나가고 나는 자리로 돌아가 의자에 등을 기대고 앉아 2년 전 로미와의 일을 떠올리고 고개를 젓고 말았다. 이 지역에서 로미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날라리라고 불렀지만, 유정은 망나니라고 불렀다. 그때는 날라리라는 단어와 망나니라는 단어의 차이에 대한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두 단어의 묘한 어감의 차이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사전적 의미는 치워버리고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방식을 볼 때, 날라리라는 말은 ‘창녀 같은 년’,‘걸레 같은 년’이란 의미로 주로 여러 남자를 사귀는 여자들을 비하해서 사용하고 있었고, 남성뿐만 아니라 여성도 그런 여성을 욕할 때 사용했다. 결국, 날라리라는 말은 비난만이 내포되어 있을 뿐이었다. 반면에 유정이 쓰는 망나니라는 단어엔 안타까움이 내포되어 있었다. 상대에 대한 일방적인 비하나 비난이 아니라 상대에 대한 가능성을 염두에 둔 애정을 내포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확실히 유정은 보통의 여자들과는 다른 스케일을 지닌 여자였다.
내가 로미를 가르치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녀석의 성욕이었다. 나이 먹은 아줌마들이 성욕을 주체하지 못해서 바람이 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이제 19살짜리가 그런 욕구를 갖고 있을 줄은 정말 몰랐었다. 정 원장도 자세한 얘기는 해주지 않았지만, 나보고 조심하라고 했고, 나는 어이없어서 그만 웃고 말았었다. 당시 만해도 난 인영의 일 때문에 여자애대한 어떤 욕구도 없었을 때였다. 정말로 고자가 된 것처럼 자지도 반응하지 않고 있었고, 그 사실은 정 원장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나의 상황을 모르는 로미는 정 원장의 말대로 나를 유혹하기 시작해서 난감했다. 내 자지가 발기하고 끓어오르는 욕정을 참지 못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진도를 나갈 수 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답답한 것은 논리적으로 아무리 설명을 해도 로미가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달이란 시간을 허비한 나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로미에게 집적 시험을 해보라는 제안을 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로미가 내 자지를 발기하게 만든다면 내가 감방에 가더라도 로미가 원하는 모든 것을 해 줄 것이었고, 그렇지 않다면 그녀가 내가 시키는 모든 것을 한다는 조건이었다.
로미는 성격이 단순하고 즉흥적이어서 그런지 승부욕이 장난이 아닌 아이였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의자에 앉았고 로미는 내 앞에서 짧은 치마를 입고는 흐느적거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린놈이 장난이 아니었고, 로미의 표정은 자신의 그런 모습에 넘어오지 않는 남자들이 없었다...라는 자신감으로 가득차있었다. 하지만 내 몸엔 그저 멋지게 추는 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내 몸에 반응이 없자, 자존심이 상한 로미는 옷을 하나씩 벗기 시작했고, 급기야 알몸이 되고 말았다. 만약, 지금이었다면 나는 로미에게 넘어가버렸을 것이었다. 그리고 감방에서 아직도 썩고 있을 것이었지만, 알몸을 한 채 육감적인 몸을 흐느적거리는 로미의 모습에 나는 어떤 반응도 없었다. 어느 새 그녀의 얼굴엔 땀이 흘렀고, 로미는 내 몸에 자신의 몸을 비벼대면서 서서히 내 바지를 벗겨버렸다. 그녀의 반응에 조금 당황했지만, 승부였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면서 로미는 내 상의를 벗기고 내 젖꼭지를 빨아대면서 자지를 잡고 주물러댔지만 소용이 없었다.
로미는 점점 당황하기 시작했고, 요란하게 내 자지를 움직이다가 자기 입에 넣고 빨아대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로미의 반응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렇게까지 자극을 했음에도 내 자지는 전혀 반응이 없었다. 뜨끈한 느낌과 그저 간지럽다는 느낌 뿐 어떤 새큰함도 느껴지지가 않았었다. 로미는 사정까지 시키겠다고 장담했지만, 결국 내 자지를 세우는 것에도 실패하고는 숨을 몰아쉬면서 항복을 하고 말았다. 그제야 로미는 자기 부모가 왜 나를 선생으로 받아들인 것인지를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수업하기가 한 결 편해졌다. 확실히 로미는 놀기만 하는 아이는 아니었다. 이해력도 좋았고, 기술 습득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유정으로 인해 로미와의 일을 떠올리자, 어느 새 내 자지는 터질 듯 발기해 있었다. 지금이라면 로미가 원하는 것을 해 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웃음이 터져버렸다. 나는 다시, 정신을 집중해서 학송에 대해 다시금 생각을 정리했다. 혹시나 내가 모르고 지나치는 부분이 있을까를 고민해 봤지만 특별한 것은 없었다. 결국, 문제는 학송이 아니라 초희였다. 초희만 대학에 합격시키면 그뿐이었다.
몇 가지 일을 정리하고 나는 입시 반 실기 실로 들어가 오랜만에 학생들의 실기 상황을 둘러봤다. 강사들은 모처럼 받은 휴가로 약간 들떠있었고, 학생들도 그런 분위기를 받았는지 전체적으로 업 된 분위기였다.
“아빠!~~~~!!!!”
디자인 반을 나와 수채화 반을 둘러보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실기 실 안에 울려 퍼졌다. 나와 강사들 그리고 학생들이 모두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고, 누군가 달려와 내 몸을 와락 끌어안았다. 4, 5살 쯤 되어 보이는 남자 녀석이 내 다리에 안겨서 계속 아빠라고 불렀고, 그 소리에 디자인 반의 강사들뿐만 아니라 학생들까지 몰려와 상황을 지켜보느라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나는 이 갑작스런 소동이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알지도 못하는 꼬마의 아빠가 되고 말았다. 모두들 나와 꼬마를 쳐다보며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그때 구두소리가 요란히 울리며 사무장 경숙이 실기 실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수오야! 내가 여기 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경숙이 내 다리에 매달린 남자애를 잡았고, 녀석은 계속 내 다리를 잡고는 아빠라고 외치며 울부짖었다. 경숙은 얼굴이 홍당무가 된 상태로 떼를 쓰는 수오를 내 다리에서 떼어내려고 애썼지만 쉽지가 않아보였다.
“너 엄마 말, 정말 안 들을래?!~~ 아, 아빠는 하늘나라에 갔다고 했잖아!~”
“아니야!~~ 아빠는 여기 있어!~~여기 있단 말이야!~~”
상황은 더욱 나빠지고 있었고,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홍시처럼 얼굴을 붉힌 경숙이 수오를 잡고 당기자, 급기야 녀석에게 잡혔던 내 바지가 찢어져 버리고 말았다.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내 오른 쪽 허벅지 부분이 훤히 들어나 버리고 말았다. 청바지만 입다가 오늘은 더워서 얇은 면바지를 입었더니 이런 사태가 터져버리고 말았다.
수오는 놀랐는지 숨소리도 내지 않았고, 그것은 실기 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경숙은 이젠 붉어진 얼굴에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수오를 때릴 것 같았다.
“그, 그래! 아빠야, 수오야!~~하하하!~~아빠다!~~~내가 아빠다!~~”
나는 얼른 경숙과 수오의 사이로 들어가 녀석을 안아들어 올렸다. 내 반응에 수오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녀석을 보며 얼굴에 뽀뽀를 해줬고, 녀석은 손으로 내 얼굴을 만지기 시작했다.
“우리 수오, 많이 컸네!~~ 아빠 보고 싶어쪄용!~~~”
수오에게 뽀뽀를 하며 간지럼을 태우자, 녀석도 이젠 깔깔대고 웃으며 계속 손으로 내 얼굴을 만졌다. 경숙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와 수오를 바라보다가 주위를 둘러보며 더욱 얼굴을 붉혔다.
“야, 임마!~~ 너 때문에 아빠가 노숙자가 됐잖아!~~”
내가 허벅지와 종아리까지 훤히 들어난 오른쪽 다리를 소녀시대 애들처럼 움직여대자, 학생들이 킥킥대기 시작했다.
“자, 수오야!~ 아빠에게 소원을!~~ 말해 봐!~~~~~”
되도 않는 소녀시대 흉내를 내며 그렇게 말하자, 그 많은 실기 실 안의 학생들과 강사들이 일제히 빵!~ 터져버리고 말았다. 엄청나게 큰 웃음소리가 실기 실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고, 경숙도 이내 크게 웃었다. 자칫, 무거워 질수 있는 분위기가 소녀시대 덕분에 다시, 원상복귀 되었고 내가 수오를 들고 나가자 이젠 학생들이 나보고 ‘아빠!~’라고 불렀다. 내가 돌아서서 인상을 쓰자, 녀석들은 깔깔대고 웃으며 각자의 실기실로 줄행랑을 쳐 버렸다.
내 사무실에 들어와서도 수오는 내게 안긴 채 떨어질 줄 몰랐고, 소파에 앉은 경숙은 얼굴을 잔뜩 붉힌 채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 경숙의 모습을 보자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여성스러움을 느끼면서 비로써 그녀의 몸이 내 시야 들어오기 시작했다.
“죄송해요, 장 선생님...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정말...!”
흰색 티에 빨간색 카디건을 걸친 채, 검은 색 h라인 스커트를 입고 있는 경숙이 이렇게 섹시했던가? 아니면 상인과의 일로 내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인가?
“신경 쓰지 마시고, 일 보세요. 전 오늘은 바쁜 일 다 끝나서 괜찮습니다.”
“어, 어떻게 그래요...아들!~ 이제 내려와 너!~~”
수오는 경숙의 말을 무시하고는 더욱 내 품에 얼굴을 파묻고는 안기며 버텼다. 그러자 경숙이 벌떡 일어서서 내 앞에 다가와 무릎을 꿇고 앉아 녀석을 잡자, 수오는 아예 내 티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고 버텼다. 난감한 얼굴이 된 경숙의 몸이 내 눈에 그대로 들어오고 말았다. 무릎을 꿇고 내 앞에 앉아서 그녀의 맨 허벅지가 그대로 보였고, 긴 목과 쇄골, 그리고 티 사이로 가슴골도 보였다.
경숙의 모습에 내 자지는 터져버릴 것처럼 발기했고, 난 머리가 어지러워져버렸다. 나와 눈이 마주친 경숙도 표정이 묘해지며, 얼굴을 더욱 붉혔고 한동안 그렇게 우리는 시선을 주고받았다. 내 몸이 후끈 달아올라 버렸고, 그녀가 시선을 돌리고 일어서려할 때 난 그녀의 어깨를 잡고 경숙의 입에 키스를 하고 말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고, 내 몸이 저절로 그렇게 한 것이었다. 그녀는 가만히 내 입술을 받은 채로 꼼짝도 하지 않다가 내가 혀를 그녀의 입 안으로 넣자, 화들짝 놀라 뒤로 주저앉고 말았다.
나와 경숙은 얼굴을 붉힌 채 마라톤을 한 사람들처럼 숨을 헐떡였다. 경숙은 벌떡 일어서더니 나를 보지도 않은 채 얼굴을 만지며 내 사무실안을 나가버렸고, 난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티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수오는 뭐가 재미있는지 계속 키득거리고 있었고, 난 온 몸으로 소름이 돋아 오르며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말았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인영과 사귀게 된 것도 그녀가 먼저 자신의 감정을 들어냈기 때문이었고, 상인과의 일도 그들이 먼저 시작한 것이었다. 이렇게 내가 먼저 여자에게 접근한 것은 경숙이 처음이었다. 뭐가 뭔지 분석이 되지 않았지만 상인과의 일로 난 변해버리고 만 것 같았다. 그것도 내가 생각하던 그런 이상적인 남자가 아니라, 감정이 생기면 생기는 대로 반응하는 그런류의 남자가 된 것 같았다.
[이제...이제 어쩌지?...그것도 학원 여자를...!...후우!~~]
난 분명 상인을 사랑한다고 믿었고, 광호에게서 빼앗으려는 마음까지 갖고 있었으면서 생각지도 못한 짓을 하고 말았다. 원래 나란 인간은 이런 놈이었나? 책임지지도 못할 짓이나 벌이는 그런 부류였나?
“아빠?...”
수오가 내 티에서 얼굴을 빼고는 나를 올려다봤다. 녀석을 보자 눈이 초롱초롱 빛나고 있었다.
“으응?...”
“아빠?...”
“...왜에?...”
“아빠? 아빠? 아빠?”
도대체 이 녀석의 반응이 뭔지를 알 수가 없었다. 상인의 딸 미래와 나이가 같아보였는데 반응은 전혀 달랐다. 미래는 꼬마 여자애였지만 보스 기질이 있어서 상인과 싸울 때는 꼭 어른 같은 모습이었는데, 이 녀석은 완전히 어린애였다.
“아빠?...나아!~~~하드 먹고 싶어!~~으응!~~”
수오가 떼를 써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녀석을 데리고 학원을 나가 밑에 층에 있는 상가로 내려가야 했다. 아무리 봐도 미래하고는 너무나 달랐다. 미래가 인간이었다면 수오는 무슨 강아지 같았다. 마트에 들어가자 주인남자는 나를 보고 이상하다는 듯이 쳐다봤고, 난 그제야 내 오른 쪽 바지가 찢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멋쩍게 웃어버렸다. 녀석은 이것저것 지 먹을 것만 고르더니 주인 남자에게 나를 아빠라고 소개를 해버렸다. 나는 학원 상가 쪽엔 잘 오지 않아서 아는 사람들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주인 남자는 수오의 말을 믿는 눈치였다.
“아이고, 이 녀석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고 있어!~~”
“아파, 할머니!~~아프단 말이야!~~”
갑자기 60대 여자가 달려와 수오를 잡고 엉덩이를 때리자, 수오가 엄살을 피우며 또 다시 내 다리를 잡고 매달렸다. 이러다간 내 왼쪽 바지까지 찢어질 판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수오는 하드하나를 까주자 더 이상 반항을 하지 않았다.
“저, 장 선생님이시죠?...저는 수오 외할머니에요...죄송합니다. 저 녀석이 지 애미 본다고 학원에 올라가더니만...휴우!~~”
수오의 외할머니란 여자의 머리는 너무 하예서 눈이 부실 정도였는데, 갸름하고 선한 인상의 얼굴과 오히려 잘 어울려보였다. 그리고 동그란 안경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차분한 옷차림과 함께 너무나 지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난 3년간 이 여인을 만난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럼...사무장님 어머님...? 아, 안녕하세요. 장 태복이라고 합니다...”
“예...이곳에서 서점을 하고 있어요. 진즉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린다는 것이 그만...”
“아, 아닙니다, 별 말씀을 요... 제가 먼저 찾아뵙고 인사를 들려야 하는 것이었는데...제가 좀...주변머리가 없어서요...”
경숙에게 키스를 한 일이 없는 상황에서 이 여인을 만났다면 어땠을 까? 그 사건이 있어서 그런지 나는 과장되게 반응하고 있었다. 키스도 아닌, 그저 뽀뽀일 뿐이었는데도 난 뭔가 책임질 일을 저지른 10대 소년 같은 기분이 들고 말았다. 수오의 할머니는 내 맘도 모른 채, 계속 죄송하다고 했고 친절하게 마트 주인에게도 상황을 설명 해줬다. 그러자 마트주인이 나를 보고는 크게 웃었고, 수오 할머니는 계속 내게 사과를 했다. 아무래도 경숙이 전화를 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엘리베이터에 올라서서도 서로 사과를 했고, 3층 서점에서 내리면서도 몇 번을 굽실거리며 인사를 하고서야 헤어졌다. 수오 녀석은 그 와중에도 하드를 입에 문채로 질질 흘리면서 내게 손을 흔들고 있었다.
경숙의 엄마가 이 건물에서 서점을 하는 것을 난 3년 만에 알고 말았다. 유정의 말대로 난 정말 주변에 대해 무관심했던 것이었다. 지난 3년간의 기억을 더듬어 봐도 내 머릿속엔 학원에 관계된 일 외엔 입력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싶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인과 광호로 인해 난 이제야 주변사람들이 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들과의 사이에 이야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상인과는 연인이 되었고, 광호와는 한 여자를 두고 경쟁관계가 되었다. 베르디움 여자들의 알몸을 보았고, 주인여자가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이 생긴 것과는 다르게 경우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의 아내인 사랑이 일본 여자 같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오늘 학원 동료인 경숙과 키스를 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일주일 사이에 벌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신기했고, 불안감과 함께 뭔가 알 수 없는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살면서 기분 좋은 떨림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다. 그림을 처음 배울 때, 그리고 인영과 첫 키스를 했을 때였다. 그녀와 헤어진 뒤로 다시는 그런 것을 느끼지 못할 줄 알았는데, 상인과 광호로 인해 다시 그런 기분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난 지난 3년간 죽었었던 것인가? 분명히 밥을 먹고, 술도 마시고, 똥도 쌌고, 테니스도 배웠지만 기계적인 반응일 뿐이었다는 것이 놀랍고도 신기했다.
정 원장의 트레이닝복이라도 빌려 입으려고 나는 7층에서 내렸다. 그러자 휴식 시간인지 예비 반 학생들과 입시 반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는데, 나를 보고 키득거리며 걸어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내 모습을 보고 희정, 경화, 유림이 피식 웃었고, 학생들은 ‘아빠!~’라고 외치고 도망가 버렸다.
“수오 그 놈이 총각을 같다가 졸지에 유부남을 만들어 버렸네!...하하하!~~”
원장실 안으로 들어가니 유정이 정 원장의 트레이닝복을 건네주면서 깔깔대고 웃었다. 나는 멋쩍게 웃으며 그것을 받아들고 상담실 안으로 들어가 일단 바지를 벗어 내렸다. 팬티 바람으로 바지를 한 쪽에 두려는데, 갑자기 웃음이 밀려와 난 그만 크게 웃고 말았다. 어이가 없어도 너무나 없어서 헛웃음이 계속 밀려나왔는데, 그때, 벌컥 문이 열려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경숙이었다. 그녀는 비닐봉투를 든 채로 나를 보고는 또 다시 얼굴을 붉혔고, 난 너무 놀라 가만히 서있어야 했다. 그러자 밖에서 또, 유정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고, 경숙은 봉투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아무래도 내 바지를 사들고 온 경숙을 놀려주려고, 유정이 장난을 친 모양이었다. 아무튼 오늘은 너무나 정신이 없었다. 난 경숙이 사온 바지를 입고 밖으로 나가는데, 유정은 너무 잘 어울린다며 깔깔대고 놀려댔다.
이 일로 이제는 모든 학생들이 나를 ‘아빠 샘’이라고 부를 것이었다. 처음엔 ‘장 샘’이었고, 그 다음엔 ‘몸 짱 샘’이었다가, 작년부터는‘작은 원 장 샘’이었다. 희한한 일이었지만 1년 주기로 내 호칭이 변하고 있었다. 하도 정신이 없어서 난 내 사무실로 들어가 마음을 정리했다. 하지만 휴식 시간이 끝나도록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고, 수업이 시작됐는데도 계속 심장이 떨려왔다. 난 어쩔 수 없이 담배를 들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은 강사들과 학원 관계자들만이 사용하는 곳으로 나무도 심어져있었고, 비를 피할 수 있는 곳도 있어서 편하게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지만 올 해 들어서 이렇게 담배를 피울 일이 많이 생겼다.
담배를 피워 물고 무심코 난간 쪽으로 걸어가는데, 한쪽에서 경숙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녀도 꽤나 혼란스러운 모양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막상,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 경숙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묘했다. 나와 경숙의 시선이 마주쳤고, 한 동안 그렇게 나를 바라보던 그녀가 담배를 끄고 몸을 일으켰다.
경숙은 내 눈을 더 이상 바라보지 못하고, 나를 지나쳐 가려했는데, 내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그러자, 경숙이 우뚝 멈춰서며 살짝 몸을 떨었다. 막상, 그녀가 돌아서 나를 보자 내 심장이 터질 듯이 움직였고, 뭘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그녀의 손목을 놓고 말았다.
“저...아까는...제가...”
“아니에요, 장 선생님...모두 제 잘못이에요...신경 쓰지 마세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경숙은 그렇게 말하고는 후다닥 빌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녀가 그렇게 사라져버리자 뭔가 확하고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 내 심장을 파고 들어왔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고, 경숙의 반응이 뭘 의미하는 것인지 몰라서 두려웠다. 나를 짐승 같은 놈이라고 생각할 것 같았다. 그랬다. 내가 생각해도 난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인을 내 여자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으면서도 나리엄마와 유정의 몸을 탐했다. 그리고는 경숙의 몸에 취해 그녀의 입에 키스를 했다.
머릿속이 헝클어진 실타래처럼 혼란스러워 미칠 때, 갑자기 핸드폰이 울렸다. 상인이었다. 난 그녀의 전화번호를 보고는 경숙의 일이 정리되면서 상인이 미친 듯이 보고 싶어졌다. 들뜬 마음에 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받았다.
“자..자기...!”
<어머!~ 이젠 자기란 말이 바로 나오네? 하하!>
“보, 보고 싶어요...!”
<나도 그래, 자기야...하하...근데, 우리 오늘은 좀 쉬자, 응? 가게도 그렇고, 집 정리 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 후우!~~>
나는 보고 싶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데, 상인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었다. 머리로는 상인의 말을 이해하지만 내 심장은 강하게 거부하고 있었다.
<자기야?...자기야, 삐졌어?...>
“아...아니요...그래요... 많이 피곤 할 텐데 좀 쉬세요...네...네...”
상인은 내가 가깝다고 느낄 때마다 멀어졌다. 인영과는 달랐지만 상황은 비슷했다. 어쩌면 상인과 나의 한계를 인정해야 할 것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계속 상처를 받을 것이었다. 인영에게 받았던 것 보다 더 큰 상처를 받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게 뜻대로 되는 것인가? 머리로는 그렇게 인정하고, 이해했지만 나의 심장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수업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도 모르게 끝나버렸다. 학생들은 물이 빠져나가듯이 우르르 몰려나갔고, 어느새 나와 유정, 경숙만이 남고 말았다. 늘 이렇게 마지막 까지 남아서 정리를 했지만 오늘은 아빠 사건 때문에 쉽사리 집중할 수가 없었다.
“자, 오늘은 그만 나갑시다!~~”
“예?...”
나와 경숙이 어리둥절해서 바라보자, 유정이 억지로 회의를 끝내버리고 우리를 내 보냈다. 학원을 나가자 복도엔 희정, 경화, 유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경숙은 그녀들에게 이끌려서 저번에 갔던 ‘닥터피쉬’로 들어갔다. 아무래도 유정과 세 여자는 나와 경숙을 풀어주기 위해서 작전을 짠 모양이었다. 창 문 옆 테이블로 자리를 잡은 뒤 데킬라를 마시기 시작했다. 술이 들어가자 기분이 조금 진정되었고, 상인의 일도 누그러졌는데, 그것은 경숙도 마찬가지 인 듯 했다.
희정, 경화, 유림이 나와 경숙, 유정을 끌고나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어린 친구들, 그리고 외국인들 틈에 섞여서 우리는 미친 듯이 몸을 흔들어댔다. 나는 기타는 제법 잘 쳤지만 이상하게 춤과 노래는 젬병이어서 모두들 나를 보고 키득거렸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나는 되는대로 몸을 흔들었고, 내 동작이 크면 클수록 내 일행들 뿐 아니라 다른 손님들까지 즐거워해서 난 더욱 오버를 하고 말았다. 이것도 처음이었다. 대학생 때나 군인일 때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태어나서 이렇게 미친 척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유림은 내 춤이 민망했는지 내 앞으로 다가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고, 희정과 경화도 익숙한 몸동작으로 나를 감싸고 에워싸듯이 한 채로 춤을 추기 시작했는데 세 여자의 모습이 티브이에서 보는 것처럼 섹시했다. 유정과 경숙은 조금 지치는지 얼굴에서 땀을 흘리며 자리로 돌아가 맥주를 들이켰다.
정장차림에 하이힐을 신은 경화, 유림, 희정과 몸을 비비며 춤을 추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었다. 세 여자는 나의 새로운 모습이 재밌는지 서로 경쟁하듯 엉덩이를 밀어왔고, 점점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되는대로 몸을 움직였다. 춤 실력이 형편없는 내가 미녀 세 명과 춤을 추는 것이 못 마땅했는지 다른 남자들이 점점 우리 쪽으로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나하고 키가 비슷한 백인 녀석이 유림과 접촉하더니 뭐라고 중얼거렸고, 유림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그의 엉덩이를 부딪쳤다.
상황이 희한하게 흐르면서 어느 새 경화와 희정까지 내 앞에서 사라져 버린 채 다른 녀석들과 춤을 추기 시작했다. 머쓱해진 나는 힘도 들고 해서 테이블로 가 앉았고, 유정이 내 등을 때리며 데킬라를 따라주었다. 경숙도 술이 들어가고 분위기가 흥겨워서 그런지 좀 전보다는 표정이 밝아보았다.
나는 내 잔을 들었고, 경숙과 유정이 잔을 부딪치고는 건배를 외쳤다. 그리고 우리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데킬라를 원 샷 해버렸다. 나와 유정은 술을 먹을 때 안주에 연연하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그게 끝이었지만, 경숙은 인상을 찌푸리며 손등에 소금을 핥아먹는데 그녀의 모습이 또한 묘하게 섹시했다.
한 참을 그렇게 유정, 경숙과 함께 대화도 없이 술을 마시는데 세 여자가 얼굴에 땀을 흘리며 자리로 돌아왔다.
“야아!~~하하하!~~장 샘이 이런 면도 있는지 몰랐네!~~오늘, 장 샘의 날이에요, 날! 아시죠? 새로운 별명 생긴 거?”
“아빠 샘!~~~~~”
경화가 맥주를 마시며 말하자 희정과 유림이 합창하듯 새로운 나의 별명을 외쳤다. 그리고는 깔깔대며 자기들끼리 건배를 하고는 맥주를 마셨다.
“경숙이 언니도 이런 거 처음 봐요, 부원장님!~~ 화아!~~”
“근데, 장 샘은 ...아니, 우리 아빠 샘은 춤이 너무 엉망이다!~~ 정말, 춤 잘 추게 생겨서 어떻게 그런 움직임이 나오는 거야? 난 바람인형인 줄 알았다니까?...하하하!~~”
젠장!~ 참!~ 노래 잘 부르게 생겨서, 노래 정말 못 부른다는 말 이후에 가장 치욕스럽게 들린 말이었다. 차라리 테니스 말고 춤을 배울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대학에 입학해서 친구가 된 종석은 정말 가수 싸이를 많이 닮았는데, 개그맨 뺨치는 유머에 춤과 노래 등 못하는 것이 없는 남자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무척이나 많았다. 그런 종석은 내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다가 두 손 두발 다 들고 말았다. 살면서 나 같은 특수한 체질의 인간은 본적이 없다면서 종석은 꼭 나보고 사후인체기증을 하라고 했었다.
전공이 다른 종석과 친해지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녀석도 조기 입학을 했고, 나도 조기 입학을 해서 나이가 같았기 때문이었다. 보통의 대학에선 나이가 아니라 학번으로 모든 것이 통했기 때문에 동기들이 나이가 많더라도 말을 놓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종석은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공교롭게도 동기 중에 자기 친형의 불알친구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졸지에 종석은 과에서 막내가 되었고, 어린 애 취급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녀석이 내 지갑을 줍고는 자기처럼 내가 조기 입학한 것을 알고 내게 접근해 온 것이었다.
오랜만에 이성을 놓고 그녀들과 술을 마시고 놀다가 밖으로 나왔다. 경숙과 희정은 택시를 잡아타고 먼저 돌아갔고, 유정은 나와 경화, 유림을 데리고 바로 앞의 자기 집으로 끌고 올라갔다.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에 올라서도 끊이지 않고 주절거렸다. 얘기의 주제는 일정하지 않았고, 10초안에 여덟 가지 종류에 대한 얘기를 했다. 결론은 없었고, 그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대화방식으로 유정의 집으로 들어갈 때까지 계속 이어졌다.
정 원장은 들이닥친 불청객들을 보고는 잠에 취한 얼굴로 피식 웃어버렸다. 그동안 나는 이런 식의 만남을 거의 하지 않았지만, 유정은 이렇게 여자들과 함께 술을 먹다가 집으로 끌고 들어가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특별한 일은 아니었고, 정 원장도 싫어하지 않았다.
세 여자는 거실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았고, 정 원장은 유정의 고함소리에 굽실거리며 주방으로 가 맥주를 준비했다. 난 화장실에 들어가 오줌을 누고 세수를 하기 시작했다. 거울에 비친 얼굴을 바라보고 있자니 밖에서 정 원장의 웃음소리와 여자들의 깔깔대는 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데 다들 저렇게 즐거울 까 싶었다. 찬물에 세수를 마자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니 조금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아빠!~~ 여기 앉아효~~”
내가 화장실에서 나오자 유림이 풀린 눈으로 나를 보고 웃으며 외쳤고, 정 원장과 유정, 경화가 또 다시 깔깔대고 웃었다. 세수를 하는 동안 정 원장에게 오늘 있었던 수오 사건에 대한 전말을 들려준 모양이었다. 정 원장은 이제 잠이 깬 얼굴이었고, 내게 시원한 하이네켄을 건네주었다. 나는 술병을 받아들고 한 모금 마시는데 건너편에 있는 유정과 경화의 맨 다리가 시선을 끌었다. 양 옆에는 정 원장과 유림이 있었는데 자꾸 유림이 내 몸에 부딪쳐서 상황은 점점 곤란해져갔다.
“그러고 보니 장 선생이 좀 변한 것 같다...응?...무슨 일 있나?...”
정 원장이 나를 보고 웃으며 말했고, 난 멋쩍게 웃어버렸다. 상인과의 일을 말 할 수는 없는 문제였고, 경숙에게 뽀뽀를 했다는 말을 할 수는 더더욱 없는 일 아닌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내가 얘기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나의 변화가 보이는 모양인지 자꾸, 나에 대한 분석을 시도했다.
“당신도 그렇게 느꼈어? ...나도 그렇게 느꼈는데...확실히 조금 유해진 것 같아...”
“어머, 어머!~ 맞아요, 언니!~~ 장 샘은 그동안 꼭 로봇이나 인조인간 같았는데 오늘은 ...사람 같더라고요!~~하하하!~”
유림은 호들갑스럽게 말했고, 경화도 맞장구를 치며 또 깔깔거렸다. 그러면서 경화는 묘하게 다리를 움직였고, 발톱에 푸른색이 발라져 있는 발가락들이 꼼지락거리는 것이 너무나 섹시했다. 난 여자들이 나를 두고 얘기를 하거나 말거나 맥주를 마시며 그녀들의 몸을 더듬었고, 그럴수록 상인이 더욱 보고 싶어졌다.
[지금...형과 하고 있겠지...?...새로운 집에서...새로운 기분을 만끽할거야...내 앞에서 흐느낄 때처럼 형에게 안겨서 뜨거운 신음을 내 뱉겠지...젠장...!]
여자들의 몸을 보면 볼수록 상인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왔고, 쉽사리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내가 이렇게까지 비합리적인 남자인 줄은 지금까지 몰랐다. 지극히 이성적이고, 보편타당한 성격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인영과 상인을 겪으면서 내게도 어이없을 정도로 비합리적인 면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말았다.
난 맥주 두 병을 더 마신 뒤, 초희 핑계를 대고 술자리를 빠져나왔다. 답답하기도 했고, 이상하게 상인의 대한 갈증이 더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정 원장의 집을 빠져나와 내 원룸 쪽으로 걸어갔다. 달려가는 자동차들이 빵빵대고 난리를 쳤지만 이상하게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렇게 터덜터덜 걷다보니 드디어 내 원룸이 보였다. 난 일단 원룸 앞에 있는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머리를 정리하려 애를 썼다. 시끄러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조용한 곳이어서 그런지 오히려 상인에 대한 생각이 더욱 밀려오기 시작했다. 차라리 유정과 함께 집으로 가서 술을 더 마실 걸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초희 생각이 났기 때문이었다.
“젠장!...그래, 돈을 받아먹었으니...받아먹은 값은 해야지...젠장 할!”
비틀대며 원룸으로 들어간 나는 천천히 계단을 오르고 올라서 4층까지 다다랐다. 이제 코너를 돌아 끝까지 가면 내 방과 이미 떠나버린 상인의 방이 나올 것이었다. 항상, 걸을 때마다 소리를 내지 않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 수록 내 구두소리는 더욱 크게 나는 것 같아서 신경이 쓰였다. 내 방 앞에 도착한 나는 열쇠를 꺼내다가 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머릿속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들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 뱉지는 못했다. 겨우, 열쇠를 집어 들고 구멍에 끼워 넣었다. 그리고 손잡이를 돌리려다가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상인의 집을 바라보았다. 이제는 떠나고 없는 상인이었다. 하지만 그래서 더욱 보고 싶었고, 안고 싶었다.
무엇엔가 홀린 것처럼 상인의 지난 흔적이라도 보기위해 그녀가 살던 방의 문을 열어버리고 말았다. 원룸의 빈집은 이렇게 문을 잠그지 않고 연락이 오는 사람들이 수시로 확인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불이 켜져 있었고, 놀랍게도 주인여자가 밀대로 허리를 숙인 채 방을 닦고 있었다. 얇은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어서 그녀의 통통한 몸이 그대로 들어나 보였고, 허리를 숙이고 있어서 주인여자의 튼실한 엉덩이와 함께 종아리와 앙증맞은 맨 발이 내 눈 가득 들어와 버렸다.
주인여자는 놀랐는지 나를 보고 가만히 있었고, 나는 왜 이 시간에 주인여자가 방을 치우고 있는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미, 내 눈은 뒤집혀 버렸고, 머릿속에는 베르디움 여자들의 알몸과 함께 상인과의 섹스가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짐승처럼 달려들어 주인여자를 껴안자 그녀가 놀란 듯 헉!~ 하고 신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뭔가가 내 머리를 마비시켰는지 오직 쑤시고 싶다는 본능밖에 없었다. 이젠 모든 것이 다 귀찮았고, 어떻게 되든지 아무 상관도 없었다. 이 여자가 칼로 날 찔러도 난 이 여자의 보지에 자지를 찔러 넣고 싶단 생각밖에는 들지 않았다.
“태, 태복씨!~~~허엌!~~”
침대에 쓰러지며 또 다시 주인여자가 소리를 질렀고, 난 그녀의 원피스 속으로 손을 넣어 젖가슴을 주무르며 내 하체를 비벼댔다.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주인여자가 지금 반항을 하는 움직임인지 아닌지를 알 수는 없었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내 왼손은 위로 넣어 그녀의 젖가슴을 주물렀고, 내 오른 손은 밑으로 해 원피스를 잡고 위로 올린 뒤, 주인여자의 맨 다리 살과 튼실한 엉덩이를 주물렀다. 말랑말랑한 느낌이 내 몸을 폭발 시킬 것처럼 황홀하게 만들어 그녀의 입에 내 입을 들이댔다. 발기한 자지를 축으로 하체를 비비며 혀를 집어넣으려 할 때였다.
요란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왁자지껄한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씩 새벽에 저런 식으로 술에 취한 남자들이 떠들면서 우르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었다. 성격이 예민한 나는 그때마다 잠에서 깨곤 했는데, 잔뜩 흥분한 지금 하필이면 이런 상황이 벌어지자 난 그만 이성을 되찾고 말았다.
분명히 지금 이 방의 문은 닫혀있기 때문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사실, 신경 쓰는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밖의 사람들이 내가 저지르는 이 끔찍한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 말았다. 화들짝 놀란 나는 주인여자의 입에서 내 입을 떼고는 머리를 들어올리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주인여자는 벌개 진 얼굴로 숨을 헐떡이며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도대체 이 여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생각할 겨를이 없던 나는 그녀의 눈빛에 압도되어서 온 몸에 소름이 돋아 올라, 머리카락이 쭈뼛거렸고 등골이 오싹했다.
불에 댄 것처럼 상체를 일으킨 나는 하복부도 벌떡 일으켜 세우고, 침대 앞에 선 채로 다시 주인여자를 바라보았다. 내 심장은 곧 터질 것처럼 뛰었고, 머리는 프레스기에 눌리는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그녀를 본다고 봤지만 도저히 주인여자의 눈을 볼 수는 없던 나는 그저 그녀의 들썩이는 가슴만을 쳐다보다가 이내, 도망치듯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내가 나오자, 컴컴하던 복도에 불이 켜지며 환해졌다. 그러자 또 다시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위에서 내 머리를 당기는 것처럼 머리가 쭈뼛거렸다. 누군가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에 고개를 돌려 올라오는 계단이 있는 복도 끝을 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아무도 없다는 안도감에 내 문 손잡이에 걸려있는 열쇠를 돌려서 문을 열었다. 그러다가 무심코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는데, 바로 앞 창문에서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어서 그만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말았다. 겨우 문손잡이를 잡고 숨을 헐떡이는데, 창문에서 나를 보고 있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바보같이 창문에 비친 나를 보고 놀란 것이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온 나는 그만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고 말았다. 한 참 동안 숨을 몰아쉬고 나서야 나는 신발을 벗고 엉금엉금 기어서 겨우, 침대에 올라가 모로 누워버렸다.
살면서 이렇게 어이없어보긴 처음이었다. 내가 강간을 저지르려 하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 번도...정말로 단 한 번도 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친 적이 없었다. 별거 아닌 재주를 이용해서 입시 장사를 해먹고 있기 때문에 이런 벌이 내려진 것이라면 좀 억울했다. 나만 그런 것도 아니고, 나보다 더 형편없는 놈들도 많았다. 그런 엄청난 돈을 받고 과외를 해서 난 떨어뜨린 적이 없질 않은가? 대학에 보내 준 것도 죄가 되나?
[내가 지금 뭔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궁지에 몰리고 상황이 절박해지자 나답지 않게 별 시시콜콜한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이렇게까지 유치해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러면서 주인여자에게 강짜를 부리던 한국이 떠오르며 그가 이해가되었다. 사람, 다 거기서 거기였다. 많이 배우건 못 배우건, 절박한 상황에 마주하면 그 사람의 바닥이 들어나기 마련이었다. 나도 별 다른 것이 없는 놈이었다. 항상, 나만이 특별하고 고귀한 것처럼 살았지만 대단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그저 그런 인생일 뿐이었다.
강간을 저질렀다는 당면한 문제에 대한 어떤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제 난 감옥에 갈 것이었다. 그동안 쌓았던 이 지역에서의 인맥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었고, 싸늘한 비판 속에 나는 사라질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무섭고 두려웠다. 그러면서 세상에 나 혼자뿐이란 생각이 들었고,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극한의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17살 때부터 혼자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나는 외로움을 느낀 적이 없었다. 어차피 아버지도 새로운 가정을 꾸렸고, 엄마도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잘 살았기 때문이었다. 더 이상 엄마와 아버지의 그 지긋지긋한 싸움을 보지 않아도 되었고, 화풀이 하듯 내게 강해지기를 강요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듣지 않아서 좋았다. 모든 것은 내 의지로 내가 하고 싶은 그림을 마음껏 그릴 수 있어서 너무나 행복하고 안락한 삶이었다.
아버지와 엄마는 정말이지 내가 생각해도 희한한 사람들이었다. 내가 민사고에 합격했을 때, 아버지는 엄마를 닮은 내가 싫다고 하면서 나를 떠나버렸다. 그리고 내가 민사고를 자퇴했을 때 엄마는 아버지를 닮은 내가 끔찍하다며 더 이상 나를 찾지 않았다. 그리고 각자가 재혼해서 사는 삶 은 나름 행복해보였다. 그 행복한 모습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아서 나는 엄마와 아버지를 찾은 적이 없었고, 두 사람도 내가 성장할 때까지 생활비를 대주기만 했다. 그리고 서울대에 합격한 뒤 길 원장 학원에 강사로 나가면서 나는 두 사람이 주는 생활비도 더 이상 받지 않았다. 나만의 완벽한 독립이었고, 나에겐 인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내게 아무도 없었다. 아버지도 없었고, 엄마도 없었고, 인영도 없었고, 상인도 없었다. 갑자기 서러움이 밀려오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고 말았다. 온 몸에 또 다시 소름이 밀려왔고, 한기가 느껴져 이불을 뒤집어썼다. 나를 사랑하던 사람들이 나를 떠난 것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이런 짐승 같은 모습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서 머리가 쭈뼛거렸다.
창피한 생각과 나 자신이 쓰레기 같다는 생각이 겹쳐지면서 분노가 치밀어 올라왔다. 누구도 아닌 나 자신에게 느끼는 분노였고, 나 같은 것은 더 이상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나 같은 쓰레기들은 세상에 존재할 가치가 없어...!...]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주방 쪽으로 걸어가 부엌칼을 집어 들었다. 어둠 속에서도 칼은 살기와 함께 번뜩거리는 빛을 내 뿜고 있었다. 그 칼은 상인이 준 것이었다. 집에서는 거의 음식을 해 먹지 않았는데, 상인이 김치를 썰어야 한다며 자기 집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참 희한했다.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한 여자가 가져온 칼로 나는 지금 내 손목을 그으려고 하고 있었다. 첫사랑이었던 인영이 나를 로봇으로 만들었고, 상인은 이제 나를 시체로 만들 것이었다.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하려한 대가인가?
“그, 그만둬요, 태복씨...!...”
화들짝 놀라 나도 모르게 벽에 등을 댄 채로 소리 나는 쪽을 보니, 문 앞에 주인여자가 서있었다. 창 밖에서 들어오는 미세한 불빛이 주인여자의 당혹스런 표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손과 다리를 떨고 있었고, 난 다리에 힘이 풀리며 벽을 댄 채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아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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