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늪 - 어느 아내의 이야기 - 10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9:59 1,693회 0건
이제 거리에선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할인 마트 앞에는 산타할아버지가 손을 흔들고 있고, 라디오에서도 심심찮게 캐롤을 들을 수 있었다.
게다가...
첫눈이 내린다.

그 때문인지 평소보다 많은 차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다.

유진은 여느때처럼 장중령을 만나기 위해 부대에서 좀 떨어진 모텔로 향하고 있다.
평소와 비슷한 시간에 출발했지만 오늘은 길이 막혀 약속 시간에 벌써 5분이 지났다.
유진은 장중령에게 전활했다.
"좀 늦을 것 같아요.
차가 많이 막혀서..."

"괜찮아..."
장중령은 짐짓 너그러운 목소리로 말한다.
"언제쯤 도착할 것 같아?"

유진은 신호를 받기 위해 엑셀을 밟으며 말했다.
"한 5분에서 10분..."

그 때였다.
골목에서 검은색 차 한 대가 튀어나왔다.
끼익∼!!
유진은 핸들을 재빨리 틀었다가 다시 제 위치로 들어갔다.

한숨을 내쉬는 그녀의 차 뒤로 방금 부딪칠 뻔했던 차가 뒤 따라 온다.
빵, 빵!!
검은 차가 경적을 울리며 자신의 차를 따라오고 있다는 걸 확인한 유진은 슬? 짜증이 났다.

"그래, 저런 인간들 꼭 있지...
여자가 차 몰면 별 짓을 다하며 겁주려는 인간들..."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며 백미러를 본다.
이제는 라이트까지 깜빡이며 따라온다.

최근 부쩍 예민해진 유진은 차를 세워 한 바탕 싸움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약속시간을 지키기 위해 무시하고 운전에 집중했다.

잠시 후 약속장소에 도착한 유진은 서둘러 방을 찾아 올라갔다.

장중령이 유진의 다리를 자신의 허리춤으로 끌어올리고 목덜미에 키스를 막 하려는 순간, 휴대폰 벨이 울렸다.
남편의 벨소리다.
유진이 가슴이 덜컥 주저앉는 것을 느꼈다.

장중령이 받지 말라고 했지만 유진은 휴대폰의 통화버튼을 눌렀다.

"어, 여보... 동기들 모임 있다더니... 왜, 무슨 일이야?"
"아니, 그냥... 어디야?"
유진의 가슴이 증기기관차처럼 뛰기 시작했다.
"나...? 아, 오늘... 가을이도 없고 해서 요 앞에 누굴 잠깐 만나러 나왔어. 장 볼 것도 있고..."
남편은 아무 말이 없다.
"왜 그래... 벌써 술 마셨어?"
남편의 낮은 목소리가 저편에서 들렸다.
"아냐, 암것도. 이따 봐."

유진은 휴대폰을 끄고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이렇게 사소한 통화에도 안절부절 못 하다니...


1시간이 좀 넘어... 익숙한 섹스를 나누고 유진은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차를 타고 돌아가다 유진은 문득 남편의 전화 생각이 났다.
가슴 한 구석이 무엇에 찔린 듯 쓰라리며 또다시 죄책감이 밀려온다.
유진은 아랫입술을 지긋이 깨물었다.
"어쩌면 난 영영 용서받지 못할지 몰라..."
하늘에서 내리는 눈송이가 왠지 서글퍼 보인다.



성욱은 오늘 동기들간의 모임이 있었다.
약속장소에 간 성욱은 자신의 야전상의를 대대 사무실에 두고 왔다는 걸 깨달았다.
"야,야, 나 대대 좀 갔다 올게. 야상에 지갑을 넣고 깜박했다."
여기 저기서 눈총과 야유가 쏟아진다.
"새끼, 또 은근슬쩍 빠지려는 거 아냐?
대강 좀 해라. 공처가 쉐이..."

지원대대 은상사가 자신의 차 키를 내 놓으며 말한다.
"너 차 안 가지고 왔지? 아까 형욱이 차 타고 왔잖아."
"어, 그래. 고맙다. 금방 갔다 올게."

성욱은 은상사의 검은색 옵티마에 시동을 걸어 주차장에 빠져나갔다.
"자슥... 대대장보다 더 좋은 차를 겁도 없이 잘도 타고 다니네..."

골목을 막 빠져나가려는데 흰색 차 한 대가 앞을 확 치고 들어왔다.
성욱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놀라 앞을 보니 눈에 익은 차였다.
"어?"

자신의 차다.

"유진이 어디 가나 보네?"
성욱은 반가운 마음에 자신의 차를 따라가며 경적을 울렸다.
"뭘 저리 급하게 가시나..."
성욱은 볼 일도 잊은 채 라이트를 깜빡이며 유진에게 장난을 걸었다.

하지만 잠시 후 앞서 가던 자신의 차가 주차하게 되는 곳을 보고 그는 굳어버렸다.
묵직한 어떤 것으로 머릴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멍하니 있던 성욱은 이내 다른 생각을 했다.
"아... 그래. 내가 차를 잘 못 본 거로군."
성욱은 이미 차 번호판을 확인했음에도 그런 생각을 했다.
잠시 후 성욱의 차도 모텔의 가려진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구석자리에 흰색 아반떼가 보인다.
성욱은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 서서히 고갤 들어 차의 번호판을 본다.


성욱은 핸들에 이마를 댔다.
온 몸의 피가 몸에서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왜지... 왜 유진이가 이 시간에 이런 곳에 온 거지?"

성욱은 유진에게 전활 했다.

""어, 여보... 동기들 모임 있다더니... 왜, 무슨 일이야?"
"아니, 그냥... 어디야?"
"나...? 아, 오늘... 가을이도 없고 해서 요 앞에 누굴 잠깐 만나러 나왔어. 장 볼 것도 있고..."
"……."
"왜 그래... 벌써 술 마셨어?"
"...아냐, 아무것도... 이따 봐."

성욱은 최선의 노력을 다해 아내를 믿으려 했다.
멀리서 친구가 온 것이다.
남편이 있는 집에서 재우기 뭐해서 모텔에 재운다.
잠깐 들러서 얘기라도 나누려고 할거야.
아니, 곧 나와서 저녁이라도 같이 먹겠지.

성욱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주차장에서 자신의 아내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내는 1시간이 지나도록 나오지 않았다.


유진이 집에 도착하니 집안은 온통 깜깜했다.
딸, 가을이는 겨울방학을 하자마자 하나 밖에 없는 친척인 자신의 동생, 동진의 집으로 놀러갔다.
유진은 텅빈 집에 왠지 모를 적적함을 느끼며 불을 켰다.
"어머나!!"

남편이 소파에 앉아있었다.

"당신, 왜 그러고 앉아 있어...? 불도 안 켜고..."
남편은 아무 말없이 자신을 쳐다본다.

"오늘 모임있다 그러지 않았어?
벌써 끝난거야?"
"...그럴 일이 좀 있어서...
근데... 유진아..."

유진은 부엌에 들어가 사온 과일이며, 홍합이며 싱크대 옆에 풀어놓는다.
그러며 그녀는 왠지 남편의 태도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유진이 다시 거실로 걸어나가자 성욱은 말을 이었다.
"...친구 만나서 뭐했어?"

유진의 가슴이 또다시 철렁 내려앉았다.
"아... 왜 있잖아. 영옥이. 걔가 여기 들렸다길래 시내에서 차 한잔 마시고 헤어졌어."
성욱은 발끝부터 부서지는 기분이 들었다.
유진이...
자신의 아내, 유진이...

유진은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녀는 직감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제 다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성욱은 소파에 기대 머릴 젖혔다.
눈을 감은 채 잠시 그렇게 있었다.
유진은 꼼짝할 수 없었다.
마치 모든 것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유진아... 너..."
성욱이 유진을 바라보며 어렵사리 입을 연다.
"나 사랑하니...?"

유진은 그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더 서있다가는 쓰러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 당연한 걸 왜 묻고 그래..."
"아까... 너... 모텔에 들어가는 거 봤어."

유진의 하얀 얼굴이 더더욱 창백하게 변했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이들 부부에게는 그 시간이 영원처럼 길게 느껴졌다.
유진이 성욱에게로 다가간다.

"성욱씨... "
유진은 무릎을 꿇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이내 유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정말 내가 잘못했어... 내가 미쳤나봐..."

성욱은 멍하니 유진을 바라볼 뿐이다.

유진은 두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가을이 아빠... 성욱씨... 나 정말 미안해... 미안해...."

성욱이 이윽고 입을 연다.
"누구... 야...?"

유진은 손바닥에 얼굴을 묻고 오열한다.
유진의 아래턱이 덜덜 떨려온다.
"상대가 누구냐니까?"
성욱이 재촉한다.

한참을 망설이다 유진은 성욱의 무릎에 손을 모으고 울음섞인 대답을 했다.

"대대...장님..."
성욱은 등줄기를 지나 머리끝이 구쳐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뭐...?!
장재홍 중령 말하는 거야...?"

유진이 고갤 끄덕였다.
그녀의 고운 뺨을 타고 투명한 눈물이 쉴새없이 떨어지고 있다.

유진이 눈물을 흘릴 때면 언제나 그녀를 안아주던 그였다.
눈물을 보이면 어쩔 줄 몰라하며 자신의 손으로 닦아주곤 하던 그였다.
그런 성욱이었지만 이번엔 달랐다.

"왜!!!"
성욱이 벌떡 일어서며 유진에게 소리를 지른다.
"도대체 왜!!!
왜 남편 상관하고 붙어먹은건데!!!"

유진은 남편의 무릎에 이마를 기대고 눈물을 흘릴뿐이었다.
성욱은 더욱 격양된 목소리로 고함을 친다.
"거짓말!!
그래, 거짓말이지?!
지금 나 놀리는 거지?!"

그때 성욱의 귀에 어떤 소리가 들렸다.
"... 몰랐어."
성욱이 다시 앉아 유진의 얼굴을 쳐다본다.
"나도.. 이렇게 까지 될 줄은 몰랐어...
어쩌다보니... "

성욱이 어이없다는 듯한 웃음 터뜨리며 말한다.
"하하하... 재미 좀 볼려고 했는데 끊지를 못하겠던가 보지? 그런 거야?"
성욱의 바지 소매를 잡고 있던 유진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재미 좋았어? 그래, 나 바보 만들고 대대장 새끼랑 놀아나니 신나든?"

유진이 눈물 젖은 눈길로 남편을 올려다보았다.
억울함이나 분노는 찾아볼 수 없다.
"성욱씨... 정말 미안해..."

그렇게 잠시동안 유진의 흐느낌만이 들릴 뿐이다.


유진의 뺨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이 문득 성욱의 눈에 들어왔다.
마스카라가 지워져 삐에로 같은 모습이 되어있다.
성욱이 손을 뻗었다.
성욱의 손끝이 가늘게 떨려왔다.
손바닥으로 유진의 눈물을 한 번 훔친다.
그리고는 말했다.
"혹시..."

성욱의 입술이 메말라있다.

"혹시..."

유진의 어깨가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것이 성욱의 눈에 들어온다.
성욱이 그 어깨를 잡으며 입을 연다.
"혹시 내 진급... 때문이야...?"



-11부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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