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의 방안엔 그사람이 있다. 이 자리에 오면서 심한 경우 주먹다짐까지 각오했다. 물론 나는 싸움 잘 못하니까, 맞을 각오였다.
맞을일은 없겠다. 근데, 왜 당신이 여기에 있는거냐, 만화방 여자.
이럴때는 일단 빠르게 머리를 굴려서 상황을 파악해야한다. 근데, 이여자가 그럴 시간을 안준다.
"나 알죠? 우선 앉아요."
여전히 노려보는 눈빛의 그녀. 일단 앉고 보자.
수지의 방. 만화방 여자와 내가 마주보고 바닥에 앉아있다. 수지가 내 옆에 앉으려 자세를 잡는다.
"잠깐, 밖에서 기다릴래? 그게 좋을거 같은데."
수지는 말없이 밖으로 나간다. 이거 완전 불편하다.
"수지 후배죠? 내가 누나니까 말 놔도 될까요?"
"네"
"수지한테 다른 사람 있다는 말은 들었죠?"
"네"
"그거 어디까지 알아요?"
"거기까지요."
대답 참 병신같다. 근데, 그게 전부다 내가 알고있는... 근데, 분명히 수지는 그사람이 와있다고 했다. 지금 상황과 그 말의 의미를 조합해보면, 답은 하나다. 하지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설마"다.
"그거 나에요."
"...."
진짜냐? 진짜냐고 되묻고 싶은데, 입은 열렸는데 말은 안나온다.
"놀랐죠?"
그럼 안놀라겠냐? 그리고 너도 긴장했구나? 말 놓는다며?
"걱정 안돼요?"
?? 무슨 걱정? 갑자기 머리가 굳었는지, 말귀를 못알아먹겠다. 지금 내 얼굴 완전히 멍청한 표정이겠다.
"콘돔도 안썼다면서요. 지금까지."
아... 그얘기구나. 단 한번도 그걸 쓴적이 없다.
"갑자기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 들어서 정신이 없나보네요. 지금이라도 걱정되면 수지 그만 만나요."
머리속이 하얗다. 지금 이여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고,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수지 저하고 오래된 사이에요.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레즈비언이라구요, 저하고 수지는. 감당 못하겠으면 수지 그만 만나요. 그쪽이 서로에게 좋지 않겠어요?"
"왜 아무 말이 없어요?"
내말이 그말이다. 나는 왜 아무말도 못하고 멍때리고 있는거냐 지금. 정신 차리자.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다. 그리고 수지의 일이다.
"잠시만요."
"네. 말씀 하세요."
"생각 좀 하게 시간 좀 주세요. 너무 그렇게 몰아부치지 마시고."
"자리라도 비워줄까요?"
"네"
만화방 여자가 나간다. 원룸 문을 여는데, 수지가 보인다.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서있었다.
"한시간 후에 올게요."
만화방 여자가 수지를 데리고 사라진다.
최수지. 미안하다는 말이 이거였구나. 뭐야, 알려주고 미안하다고 했어야지 무턱대고 미안하다고만하고.
갑자기 화가난다. 왜 하필이면... 차라리 다른 남자가 있는 편이 더 편할것 같다.
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감는다. 여기서 끝인가? 왜 말을 안한거야. 속은 기분이다. 수지가 나를 속였다... 나를 좋아하긴 했나?
수지가 했던 말들, 행동들을 떠올려본다. 어제의 수지는 나를... 정말로 좋아했다. 분명히... 그래 수지가 나를 좋아한건 분명하다. 근데, 왜 말을 안해을까. 안한건가? 못한건가? 아무래도 못한거 같다. 못한거잖아... 생각해보니, 수지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일정한 선을 그어놨었다. 그 선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그걸 가장 원했던건 나... 나잖아.
수지는 왜 말을 못했을까... 처음엔 그걸 말해줄 정도로 나를 믿지 못했을거다. 아무한테나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테니까. 그럼 그 후엔? 내 반응이 두려워서? 그거겠지? 얼마나 그게 두려웠을까? 가끔 은근슬쩍 그런 이야기를 꺼냈던 적이 있었는데, 내가 뭐라고 했었지? 기억이 안난다. 내가 무슨 말을 했을까? 생각 없이 아무말이나 했던거 같은데, 내가 상처준 적은 없을까?
내가 했던 말들을 복기해본다. 나때문에 상처받았으면 어쩌지? 좀전에도 문앞에서 불안해했겠지? 가만, 나는 지금 내걱정을 하는거냐, 수지 걱정을 하는거냐. 나는... 수지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대로 수지를 좋아해도 되는걸까? 만화방 여자의 말처럼 콘돔 한번 써본적 없다. 수지는 괜찮은걸까? 나는 아무 문제 없는걸까? 병원가서 피검사라도 받아봐야겠다. 가만있어봐, 피검사...
순간적으로 수지가 모아두었던 헌혈증이 뇌리를 스친다. 내가 아는 최수지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여자다. 헌혈증도 그렇게 쓸 수 있다는 얘기는 사실상 문제 없다는 말이잖아. 그리고 수지가 아무 생각없이 나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을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유? 모르겠다. 최수지니까?
모르겠다. 다 집어치우고, 우선은 한가지만 확실히 해놓자. 나는 최수지를 좋아하고 있는게 맞지? 내가 지켜주고 싶은게 맞는거지?
.
.
.
생각이 정리가 된다. 근데, 이여자들 어디갔을까? 수지에게 전화를 건다.
"...."
"어디에요, 지금?"
"건물옥상"
"기다려요."
옥상으로 뛰어갔다. 커다란 평상이 놓여있다. 수지는 평상에 앉아있다. 옆엔 만화방 여자가 캔커피를 마시며 서있다.
"자리 좀 비켜줄래요?"
"그냥 저 신경쓰지 말고 할얘기 있으면 하세요."
뭐야, 만화방 여자. 좀 짜증나잖아.
수지 앞에 선다. 수지는 고개를 숙인다.
"왜그랬어요? 말 해주지."
"...."
"맨날, 미안하다는 소리만 하고."
"...."
"안힘들었어요?"
"미안해"
수지가 울음을 터트린다.
"또 미안하다고 그래요? 나 좀 병신같죠?"
수지의 앞에 앉는다. 여름이라 그런지 바닥이 뜨겁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지금.
"내가 평소에 조금만 더 진지했어도, 누나가 말할 기회가 있었겠죠? 말 꺼내면 내가 헛소리만 해서, 나때문에 말 못한거죠?"
수지는 아무말도 못하고 질질짜고 있다. 이렇게 우는건 또 처음본다. 누가 몸안에 손을 집어넣고 심장을 쥐고 흔드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다.
"그 말 한마디면 되요. 나때문이라고 해요."
수지의 울음 소리가 커진다.
"미안해, 너무 미안해. 나 못하겠어 그런말"
나도 눈앞이 흐려진다.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 하지마. 그거 진짜 싫단말이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소리를 지른다.
"그렇다고 해요, 그냥. 그 말 한마디를 왜 못해요, 바보같이."
울음을 멈추지 않는 수지 앞에서 나도 한참을 울고만 있었다.
"그만 울어요. 우니까 못생겼어요. 그리고 내 말 잘 들어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누나 계속 좋아할거에요. 누나도 그렇다고 해줘요."
"....."
"그런거죠? 누나도 나 좋아하는거 맞죠?"
수지가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인다.
"됐어요, 그럼. 더우니까 내려가요 우리."
수지의 손을 잡고 일으켜세운다. 만화방 여자가 뒤따라온다.
수지의 방에 들어가자 만화방 여자가 수지를 자리에 앉히고, 물은 한잔 가져다 준다.
"나랑 얘기좀 하죠?"
뭐야? 또 할 얘기가 뭐야. 이여자 입에서 이번에는 또 무슨 태풍을 발사하려고?
만화방 여자를 따라 문밖으로 나선다. 만화방 여자는 다시 옥상으로 향한다.
옥상 자판기에서 캔커피 두개를 뽑더니, 하나를 건낸다.
뭐야? 아까도 캔커피 마시더니, 그리고 왜 나는 뭐 마실지 물어보지도 않고 니맘대로 캔커피야?
"커피 좋아하죠? 만화방에서도 항상 몇잔씩 마셨잖아요."
"...."
그건 공짜라서 그런건데요? 어쨌든, 이건 너무 불안하다. 이여자 나를 관찰해온 여자다. 하지만, 나는 이여자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다.
만화방 여자가 나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왠지 입안에 유리가루를 섞어놓은 껌이라도 숨기고 있는듯한 자신감이다.
"의외네요. 혼자 도망칠줄 알았는데."
"...."
뭐지, 도망칠 기회를 차버린 놈은 죽여도 상관없다는건가? 이여자 왠지 싸움도 잘할거 같다.
"괜찮겠어요? 내가 말했던거 생각은 해봤을텐데."
"네. 어떻게든 괜찮게 할거에요."
"너무 걱정 안해도 되요, 그거. 사실 오래전 이야기니까."
"...."
만화방 여자는 수지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다고, 고등학교때 만화방 여자를 미친듯이 따라다니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때 수지가 장난으로 자기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한마디 했더니, 그 남자가 떨어져 나갔다고. 그후로도 그런식으로 지냈는데, 어느순간 호기심이 발동해서 시작한 동성애였다고. 자기도, 수지도 서로가 좋은 남자 만나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대학생이 되고나서, 수지가 처음 남자친구가 생겼을때 누구보다 축하해줬고, 자기도 진심으로 기뻤었다고. 하지만, 그 남자의 동생이 자기 학교 후배였다고, 결국 소문을 접한 남자친구의 추궁에 수지는 사실을 말했고, 그남자는 수지에게 심한 모욕을 주고 떠났다고 한다.
만화방 여자는 모든게 자기 잘못 같아서, 일부러 주변에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수지에게 소개 시켜 줬다고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수지의 외모에 호감을 가지고 접근했던 남자도 있었고. 그렇게 수지를 지나쳤던 남자들도, 지나가는 말과 행동으로 수지에게 상처만 줬다고 한다.
올해 개강을 하고나서, 수지가 조금은 달라진걸 느꼈고, 그게 나때문이라는 걸 알았을때, 만화방 여자는 또다시 수지가 상처받는게 두려웠다고 한다. 그리고, 한 1주일쯤 전에 수지가 정말로 나를 좋아한다고 자기에게 말했을때,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고마워요. 끝까지 수지 옆에 남아줘서. 잘해봐요."
"네"
"수지, 잘 부탁해요."
만화방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다. 그리고 알듯말듯한 미소를 짓는다.
"네. 잘할께요."
"저는 그냥 바로 갈게요. 수지한테 가보세요."
만화방 여자가 그렇게 갔다.
.
.
.
.
수지의 집 안으로 들어가니, 수지는 침대에 기대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다.
"신혜는 갔어?"
만화방 여자 이름이 신혜였나.
"네. 좀 어때요?"
수지는 나를 말없이 바라본다.
"나 완전 잘생겼죠?"
"그건 아니고."
썅. 이럴때는 그렇다고 해줘.
이마에 흐르는 수지의 머리카락을 넘겨본다. 그리고 수지의 양 볼에 손을 대본다. 최수지, 내 앞에 있는 여자. 내여자.
입술을 포갠다. 볼에 댄 손은 수지의 목과 어깨를 타고 내려가 허리를 감싸 안는다. 수지가 내 목을 껴앉는다.
.
.
.
.
한여름에, 그것도 대낮이라서 그랬을까? 지금까지 했던 중에 가장 격렬하고, 뜨거웠던 섹스가 끝났다.
서로 마주 보는 얼굴에 아무 말도 필요가 없는것 같다.
그냥... 사랑한다. 최수지. 지금부터 진짜로 더.
....................................................................................................................................
여기까지 하고 일단 잠시 멈추겠습니다. 뭐 계속 쓸 수도 있구요.
사실, 직접 쓸 생각은 없었는데, 일부 작가님들 연재하시는거 기다리다 짜증나서 내가 쓰고 만다는 식으로 욱하고 시작했습니다.
써보면서 느낀건, 그럴만 했구나 하는 거였습니다. 쉽지가 않네요.
이야기 진행시키면서, 섹스신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느껴졌습니다. 지금껏 읽어온 야설만 해도 수백편은 될텐데, 막상 표현을 하려니 힘드네요.
실전경험도 충분치 못하구요...ㅋㅋ
처음엔, 환상의 테크닉을 가진 서브성향의 수지로 인해 재수가 섭에게 정신적으로 지배당하는 돔이 되는 SM으로 마음을 먹고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자가당착에 빠져버렸네요.
뒷이야기도 대충 감은 잡아놨는데,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시분들 감사드리고, 댓글까지 달아주신 분들 더욱 감사드립니다. 댓글만큼 힘이 되는게 없더군요. 저도 앞으로는 댓글 꼭 달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보다 풍부한 묘사로 뒷이야기를 진행시키겠습니다.
맞을일은 없겠다. 근데, 왜 당신이 여기에 있는거냐, 만화방 여자.
이럴때는 일단 빠르게 머리를 굴려서 상황을 파악해야한다. 근데, 이여자가 그럴 시간을 안준다.
"나 알죠? 우선 앉아요."
여전히 노려보는 눈빛의 그녀. 일단 앉고 보자.
수지의 방. 만화방 여자와 내가 마주보고 바닥에 앉아있다. 수지가 내 옆에 앉으려 자세를 잡는다.
"잠깐, 밖에서 기다릴래? 그게 좋을거 같은데."
수지는 말없이 밖으로 나간다. 이거 완전 불편하다.
"수지 후배죠? 내가 누나니까 말 놔도 될까요?"
"네"
"수지한테 다른 사람 있다는 말은 들었죠?"
"네"
"그거 어디까지 알아요?"
"거기까지요."
대답 참 병신같다. 근데, 그게 전부다 내가 알고있는... 근데, 분명히 수지는 그사람이 와있다고 했다. 지금 상황과 그 말의 의미를 조합해보면, 답은 하나다. 하지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설마"다.
"그거 나에요."
"...."
진짜냐? 진짜냐고 되묻고 싶은데, 입은 열렸는데 말은 안나온다.
"놀랐죠?"
그럼 안놀라겠냐? 그리고 너도 긴장했구나? 말 놓는다며?
"걱정 안돼요?"
?? 무슨 걱정? 갑자기 머리가 굳었는지, 말귀를 못알아먹겠다. 지금 내 얼굴 완전히 멍청한 표정이겠다.
"콘돔도 안썼다면서요. 지금까지."
아... 그얘기구나. 단 한번도 그걸 쓴적이 없다.
"갑자기 너무 충격적인 이야기 들어서 정신이 없나보네요. 지금이라도 걱정되면 수지 그만 만나요."
머리속이 하얗다. 지금 이여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고, 나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걸까?
"수지 저하고 오래된 사이에요. 세상사람들이 말하는 레즈비언이라구요, 저하고 수지는. 감당 못하겠으면 수지 그만 만나요. 그쪽이 서로에게 좋지 않겠어요?"
"왜 아무 말이 없어요?"
내말이 그말이다. 나는 왜 아무말도 못하고 멍때리고 있는거냐 지금. 정신 차리자. 남의 일이 아니라 내 일이다. 그리고 수지의 일이다.
"잠시만요."
"네. 말씀 하세요."
"생각 좀 하게 시간 좀 주세요. 너무 그렇게 몰아부치지 마시고."
"자리라도 비워줄까요?"
"네"
만화방 여자가 나간다. 원룸 문을 여는데, 수지가 보인다. 고개를 떨구고 힘없이 서있었다.
"한시간 후에 올게요."
만화방 여자가 수지를 데리고 사라진다.
최수지. 미안하다는 말이 이거였구나. 뭐야, 알려주고 미안하다고 했어야지 무턱대고 미안하다고만하고.
갑자기 화가난다. 왜 하필이면... 차라리 다른 남자가 있는 편이 더 편할것 같다.
바닥에 드러누워 눈을 감는다. 여기서 끝인가? 왜 말을 안한거야. 속은 기분이다. 수지가 나를 속였다... 나를 좋아하긴 했나?
수지가 했던 말들, 행동들을 떠올려본다. 어제의 수지는 나를... 정말로 좋아했다. 분명히... 그래 수지가 나를 좋아한건 분명하다. 근데, 왜 말을 안해을까. 안한건가? 못한건가? 아무래도 못한거 같다. 못한거잖아... 생각해보니, 수지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일정한 선을 그어놨었다. 그 선은 어느 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그걸 가장 원했던건 나... 나잖아.
수지는 왜 말을 못했을까... 처음엔 그걸 말해줄 정도로 나를 믿지 못했을거다. 아무한테나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닐테니까. 그럼 그 후엔? 내 반응이 두려워서? 그거겠지? 얼마나 그게 두려웠을까? 가끔 은근슬쩍 그런 이야기를 꺼냈던 적이 있었는데, 내가 뭐라고 했었지? 기억이 안난다. 내가 무슨 말을 했을까? 생각 없이 아무말이나 했던거 같은데, 내가 상처준 적은 없을까?
내가 했던 말들을 복기해본다. 나때문에 상처받았으면 어쩌지? 좀전에도 문앞에서 불안해했겠지? 가만, 나는 지금 내걱정을 하는거냐, 수지 걱정을 하는거냐. 나는... 수지를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이대로 수지를 좋아해도 되는걸까? 만화방 여자의 말처럼 콘돔 한번 써본적 없다. 수지는 괜찮은걸까? 나는 아무 문제 없는걸까? 병원가서 피검사라도 받아봐야겠다. 가만있어봐, 피검사...
순간적으로 수지가 모아두었던 헌혈증이 뇌리를 스친다. 내가 아는 최수지는 자기 관리가 철저한 여자다. 헌혈증도 그렇게 쓸 수 있다는 얘기는 사실상 문제 없다는 말이잖아. 그리고 수지가 아무 생각없이 나를 받아들이지는 않았을거라는 확신이 든다. 이유? 모르겠다. 최수지니까?
모르겠다. 다 집어치우고, 우선은 한가지만 확실히 해놓자. 나는 최수지를 좋아하고 있는게 맞지? 내가 지켜주고 싶은게 맞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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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정리가 된다. 근데, 이여자들 어디갔을까? 수지에게 전화를 건다.
"...."
"어디에요, 지금?"
"건물옥상"
"기다려요."
옥상으로 뛰어갔다. 커다란 평상이 놓여있다. 수지는 평상에 앉아있다. 옆엔 만화방 여자가 캔커피를 마시며 서있다.
"자리 좀 비켜줄래요?"
"그냥 저 신경쓰지 말고 할얘기 있으면 하세요."
뭐야, 만화방 여자. 좀 짜증나잖아.
수지 앞에 선다. 수지는 고개를 숙인다.
"왜그랬어요? 말 해주지."
"...."
"맨날, 미안하다는 소리만 하고."
"...."
"안힘들었어요?"
"미안해"
수지가 울음을 터트린다.
"또 미안하다고 그래요? 나 좀 병신같죠?"
수지의 앞에 앉는다. 여름이라 그런지 바닥이 뜨겁다.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지금.
"내가 평소에 조금만 더 진지했어도, 누나가 말할 기회가 있었겠죠? 말 꺼내면 내가 헛소리만 해서, 나때문에 말 못한거죠?"
수지는 아무말도 못하고 질질짜고 있다. 이렇게 우는건 또 처음본다. 누가 몸안에 손을 집어넣고 심장을 쥐고 흔드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고 아프다.
"그 말 한마디면 되요. 나때문이라고 해요."
수지의 울음 소리가 커진다.
"미안해, 너무 미안해. 나 못하겠어 그런말"
나도 눈앞이 흐려진다. 나한테 미안하다는 말 하지마. 그거 진짜 싫단말이다.
나도 모르게 일어나서 소리를 지른다.
"그렇다고 해요, 그냥. 그 말 한마디를 왜 못해요, 바보같이."
울음을 멈추지 않는 수지 앞에서 나도 한참을 울고만 있었다.
"그만 울어요. 우니까 못생겼어요. 그리고 내 말 잘 들어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누나 계속 좋아할거에요. 누나도 그렇다고 해줘요."
"....."
"그런거죠? 누나도 나 좋아하는거 맞죠?"
수지가 눈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인다.
"됐어요, 그럼. 더우니까 내려가요 우리."
수지의 손을 잡고 일으켜세운다. 만화방 여자가 뒤따라온다.
수지의 방에 들어가자 만화방 여자가 수지를 자리에 앉히고, 물은 한잔 가져다 준다.
"나랑 얘기좀 하죠?"
뭐야? 또 할 얘기가 뭐야. 이여자 입에서 이번에는 또 무슨 태풍을 발사하려고?
만화방 여자를 따라 문밖으로 나선다. 만화방 여자는 다시 옥상으로 향한다.
옥상 자판기에서 캔커피 두개를 뽑더니, 하나를 건낸다.
뭐야? 아까도 캔커피 마시더니, 그리고 왜 나는 뭐 마실지 물어보지도 않고 니맘대로 캔커피야?
"커피 좋아하죠? 만화방에서도 항상 몇잔씩 마셨잖아요."
"...."
그건 공짜라서 그런건데요? 어쨌든, 이건 너무 불안하다. 이여자 나를 관찰해온 여자다. 하지만, 나는 이여자에 대해 아는게 거의 없다.
만화방 여자가 나를 보더니 씨익 웃는다.
왠지 입안에 유리가루를 섞어놓은 껌이라도 숨기고 있는듯한 자신감이다.
"의외네요. 혼자 도망칠줄 알았는데."
"...."
뭐지, 도망칠 기회를 차버린 놈은 죽여도 상관없다는건가? 이여자 왠지 싸움도 잘할거 같다.
"괜찮겠어요? 내가 말했던거 생각은 해봤을텐데."
"네. 어떻게든 괜찮게 할거에요."
"너무 걱정 안해도 되요, 그거. 사실 오래전 이야기니까."
"...."
만화방 여자는 수지와 자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중학교 때부터 단짝이었다고, 고등학교때 만화방 여자를 미친듯이 따라다니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때 수지가 장난으로 자기들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한마디 했더니, 그 남자가 떨어져 나갔다고. 그후로도 그런식으로 지냈는데, 어느순간 호기심이 발동해서 시작한 동성애였다고. 자기도, 수지도 서로가 좋은 남자 만나기를 바라고 있었다고.
대학생이 되고나서, 수지가 처음 남자친구가 생겼을때 누구보다 축하해줬고, 자기도 진심으로 기뻤었다고. 하지만, 그 남자의 동생이 자기 학교 후배였다고, 결국 소문을 접한 남자친구의 추궁에 수지는 사실을 말했고, 그남자는 수지에게 심한 모욕을 주고 떠났다고 한다.
만화방 여자는 모든게 자기 잘못 같아서, 일부러 주변에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수지에게 소개 시켜 줬다고 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수지의 외모에 호감을 가지고 접근했던 남자도 있었고. 그렇게 수지를 지나쳤던 남자들도, 지나가는 말과 행동으로 수지에게 상처만 줬다고 한다.
올해 개강을 하고나서, 수지가 조금은 달라진걸 느꼈고, 그게 나때문이라는 걸 알았을때, 만화방 여자는 또다시 수지가 상처받는게 두려웠다고 한다. 그리고, 한 1주일쯤 전에 수지가 정말로 나를 좋아한다고 자기에게 말했을때, 자기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고 한다.
"고마워요. 끝까지 수지 옆에 남아줘서. 잘해봐요."
"네"
"수지, 잘 부탁해요."
만화방 여자가 고개를 숙이고 인사한다. 그리고 알듯말듯한 미소를 짓는다.
"네. 잘할께요."
"저는 그냥 바로 갈게요. 수지한테 가보세요."
만화방 여자가 그렇게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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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의 집 안으로 들어가니, 수지는 침대에 기대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있다.
"신혜는 갔어?"
만화방 여자 이름이 신혜였나.
"네. 좀 어때요?"
수지는 나를 말없이 바라본다.
"나 완전 잘생겼죠?"
"그건 아니고."
썅. 이럴때는 그렇다고 해줘.
이마에 흐르는 수지의 머리카락을 넘겨본다. 그리고 수지의 양 볼에 손을 대본다. 최수지, 내 앞에 있는 여자. 내여자.
입술을 포갠다. 볼에 댄 손은 수지의 목과 어깨를 타고 내려가 허리를 감싸 안는다. 수지가 내 목을 껴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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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그것도 대낮이라서 그랬을까? 지금까지 했던 중에 가장 격렬하고, 뜨거웠던 섹스가 끝났다.
서로 마주 보는 얼굴에 아무 말도 필요가 없는것 같다.
그냥... 사랑한다. 최수지. 지금부터 진짜로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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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 하고 일단 잠시 멈추겠습니다. 뭐 계속 쓸 수도 있구요.
사실, 직접 쓸 생각은 없었는데, 일부 작가님들 연재하시는거 기다리다 짜증나서 내가 쓰고 만다는 식으로 욱하고 시작했습니다.
써보면서 느낀건, 그럴만 했구나 하는 거였습니다. 쉽지가 않네요.
이야기 진행시키면서, 섹스신에서 가장 큰 어려움이 느껴졌습니다. 지금껏 읽어온 야설만 해도 수백편은 될텐데, 막상 표현을 하려니 힘드네요.
실전경험도 충분치 못하구요...ㅋㅋ
처음엔, 환상의 테크닉을 가진 서브성향의 수지로 인해 재수가 섭에게 정신적으로 지배당하는 돔이 되는 SM으로 마음을 먹고 시작했는데, 쓰다보니 자가당착에 빠져버렸네요.
뒷이야기도 대충 감은 잡아놨는데, 장담은 못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시분들 감사드리고, 댓글까지 달아주신 분들 더욱 감사드립니다. 댓글만큼 힘이 되는게 없더군요. 저도 앞으로는 댓글 꼭 달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보다 풍부한 묘사로 뒷이야기를 진행시키겠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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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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