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내고 싶은 지루한 일상은 끝이 보이지 않을 듯 더디게 흐르지만, 반복되는 즐거운 일상은 서운할만큼 빠르게 지나간다. 내가 최수지에게 조금 더 특별한 사람이 되었던, 그리고 최수지가 나의 전부가 되었던 그날로부터 너무나도 빠르게 2주가 지나버렸다. 정신차리고 보니 기말고사는 끝이 났고, 처음으로 누군가가 선포해주지 않는 방학이 시작됐다.
방학이 되면 곧바로 가자던 동아리 MT가 취소됐다. 영섭이 형의 동생이 수술을 했다고 한다. 급성 백혈병이라서 헌혈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멍회장님한테 들었다. 가지고 있던 헌혈증 4장을 모두 줬다. 다음날 혹시나 해서 수지에게 말을 전하니, 서랍에서 25장 정도가 나온다. 가만보면 뭘 모으는게 취미인 모양이다.
"헌혈 되게 자주하나봐요?"
"영화도 보고, 과자도 먹고, 이럴때 써먹기도 하고. 누나가 다 생각이 있어서 모으는거야."
알고보니 헌혈중독자였나? 어쟀든, 여러모도 대단한 여자다, 최수지.
1주일 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나는 그동안의 대부분의 시간을 수지와 보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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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인생의 목표도 없었고, 남들 가는 대학인지라 나도 가야 하나보다 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니, 그냥 점수 맞춰서 들어온게 기계공학과였다. 고등학교시절 졸업만 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수학공부는 안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수학 없이는 과공부를 진행시킬수가 없었다. 부족한 수학도 다시한번 점검할 겸, 손자 걱정에 용약까지 지어 먹여주시는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사람구실도 좀 할 겸 과외거리를 찾던 도중 흔하디 흔한 루트인 엄마친구 아들의 과외를 맡게 됐다. 뭔가 돈 들어올 일이 있다는 즐거움에 수지와 술이나 한잔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과외가 끝나고 수지의 알바가 끝나는 시간까지 대략 40분 정도를 만화방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만화방에 들어가니, "안녕히 가세요"라고 누군가에게 전하는 만화방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보다. 당연히 나한테도 기분좋게 인사해줄줄 알았는데, 어서오세요를 하다 말고 나를 노려본다. 왜이래 나한테? 죽었다 깨도 모를 일이다.
"저기, 뭐 안좋은 일 있나봐요?"
내가 이렇게까지 물어보면, 너도 뭔가 이유를 말해주던지, 태도를 바꾸던지 하겠지. 예쁜 얼굴 구기지 말고 오해가 있으면 풀자는 말이야.
"..."
헐... 이년이 쌩을깐다. 내가 분명히 또박또박 물어봤는데, 빤히 쳐다보면서 대답도 안한다.
다시 한번, 뭐 안좋은 일 있냐고 물어보려고 입을 여는데, 저쪽으로 획 가더니 테이블 정리를 한다. 뭐냐, 나한테 왜그래 너? 진짜 나 좋아했던거야?
어쨌든 나 죄 지은거 없다. 쫄지 말자.
당당하게 시간제를 끊고, 한쪽에 앉아 만화책을 본다. 가끔 신경쓰여 쳐다보면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만화방 그녀도 지 할일 하면서 틈나는대로 나를 신경쓰고 있다. 여전히 나를 볼때면 눈매가 매섭다. 불편하다. 수지 오면 바로 나가야지.
한 권 정도 정독을 하니, 수지가 온다. 어서오세요라는 만화방 그녀의 인사에 눈웃음으로 대답을 한다. 오늘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래 나하고 약속 있어서 기분 좋은거구나? 고마워. 수지가 나를 발견하고 내 옆으로 온다. 손에 만화책이 들려있다.
"바로 나갈거 아니에요?"
"나도 간만에 만화책 좀 보자."
뭐 시간은 많고, 어쨌든 수지와 함께다. 나쁠게 없다.
헌데, 여전히 만화방 그녀는 나를 째려본다. 수지에게 팔꿈치로 신호를 보내, 쟤가 나 째려보는것좀 보라고 눈치를 주니, 수지는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아니 왜? 당신의 남자가 이유없이 적개심에 노출 되있는데, 그게 재미있어? 아무리 오늘 기분이 좋아도 날 위해 같이 심각해지면 안돼?
"쟤 너 진짜 싫어하나보다.ㅋㅋ"
"누나도 째려보잖아요. 진짜 나 좋아했었나봐요."
"병신아 세상에 어떤 모질이가 너같은걸 좋아해?"
바로 당신 최수지가 날 좋아하잖아.
수지가 내 손목을 잡는다.
"자리 옮기자."
그래 얼른 나가서 맛있는거 사먹자.
.
.
.
는 개뿔. 그냥 만화방 안에서 자리만 옮기자는 얘기였다. 수지가 가자고 한 자리는 카운터 뒤쪽에 한물 간 만화책들로 둘러쌓인 반쯤 밀폐된 공간이었다. 요즘 수지가 보는 만화책들도 그쪽에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만화방 그녀와 나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 졌다는것. 그리고 그녀는 나를 볼 수 있지만, 나는 그녀가 뭘 하는지 모른다는 것. 이유도 모른채 뒤통수라도 맞을 가능성이 있는 자리였다. 물론, 알바생이 손님 뒤통수를 때리는 일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지금 그녀의 적대감 또한 말도 않되는 것이기에 약간은 불안하다.
그래도 만화책이라는게 보고 있자면 집중하게 되는 물건인지라, 그냥 만화책만 뚫어지게 보게 된다. 마음이 편해진다. 좀전의 자리는 왠지 그만화방 그녀의 눈에서 나오는 빔이 느껴졌는데, 그런것도 없고... 역시 최수지님은 나의 구세주였구나 싶다.
고마운 마음에 수지를 보니, 만화책을 보고 있는 옆모습이 참 귀엽다. 그녀의 집 밖에서 만나는 최수지는 여전히 나를 갈구며 즐거워 하는 고약한 선배일뿐이었다. 여전히 꾸미지 않고, 여전히 딱딱한 자세를 유지한다. 하지만 만화책에 집중하고 있는 수지는 가끔 귀여운 표정이 드러난다. 나는 만화책을 보며 잠깐 잠깐 미소짓는 그 옆모습이 귀여워 머리끈에서 빠져나온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로 넘겨준다.
"응. 왜?"
용건이 있어 자기에게 신호를 보낸줄 알았나보다. 쳐다보는게 귀여워 볼에 입술을 댄다. 평소같았으면 맞았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긴 좋은가보다. 살짝 미소를 짓더니 내 볼태기를 쥐고 흔든다. 밖에서 이러니까 완전 귀엽다.
"나 지금 하고 싶어요."
농담 반 진담 반이다. 수지의 귀여운 모습을 보니 하고 싶은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냥 수지한테 "꺼져 병신아"같은 갈굼을 듣고 싶기도 해서 던진 말이다. 왠지 수지가 나를 갈구면 기분이 좋아진다. 중독인가? 나도 이상한 쪽으로 변태가 되는 것 같다.
"안돼."
수지가 곤란함과 미안함이 섞인 표정을 짓는다. 어라? 이게 아닌데 예상 외의 반응이다. 근데, 이거 완전 귀엽잖아. 이 표정을 계속 보고 싶어, 아무말 없이 바라만 본다.
"진짜야?"
수지가 걱정스러운 듯 묻는다.
"네. 미칠거 같아서..."
하려던 대답은 "뻥인데요."였다. 하지만 수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대답이 튀어 나온거다. 미칠거 같은건 지금 니 표정이 귀여워서 라고...
수지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내 바지를 풀고, 자지를 꺼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놈은 긴장으로 힘이 풀려있다. 수지가 그놈을 삼킨다. 만화방이라는 이 뜻밖의 장소에서. 정성스레 내 것을 빨고 있는 수지를 보니 고마움과 함께 미안함이 밀려온다. 나는 도대체 이 여자한테 뭘 시킨거냐. 한참동안의 애무에 결국 신호가 온다. 수지의 입안에 가득 뿜어냈다. 수지는 그것을 삼키고, 다시 혀로 내 자지를 깨끗이 정리해준다.
"나 화장실좀"
수지가 자리를 비운다. 머리속이 멍하다. 죄책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이런게 마냥 흥분되고 좋을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일단 옷부터 추스르고, 자리를 정리한다. 수지가 돌아오면 바로 나가자고 해야겠다.
만화방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눈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봤나? 다시는 여기 못올거 같다.
수지가 돌아왔다.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준다. 미안하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 그리고 또 미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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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인지, 술자리가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수지는 기분이 좋았나보다.
택시라도 잡아서 돌아갈까 했지만, 수지는 걷고 싶다고 했다. 수지와 함께 걷는 밤길, 별이 빛나고 밤공기는 선선하다.
"야, 우리 좀 앉아서 쉬자. 나 다리 아프다."
어느 공원을 지나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보이는 수지가 좀 쉬고 싶다고 한다.
"그냥 내가 업어줄까요?"
"응. 좀 쉬었다가 업어줘. 나 무겁다고 하면 죽는다?"
수지와 함께 벤치에 앉는다.
"뭐야? 기분 않좋아? 나랑 있어서?"
"아뇨. 아까 미안했어요."
"뭐가?"
"누나 곤란했을텐데..."
"변태새끼. 알긴 아는구나, 볼따구!"
수지가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자동으로 내 머리가 수지 앞에 놓인다. 수지는 내 볼태기를 쥔다.
"근데, 어땠어? 좋았어? 너 변태라서 그런거 좋아하잖아."
"사실, 별로. 미안하기만 하고..."
갑자기 볼태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뭐? 누나가 해줬는데, 별로? 죽을래?"
아예 양쪽 볼태기를 쥐고 머리를 흔든다.
"아... 아... 완전 좋았어요. 최수지 짱"
"헤헤"
수지가 볼을 풀어주더니 머리를 쓰다듬는다.
"있잖아..."
"네"
"아무래도 내가 너를 진짜 좋아하나보다. 어? 잠깐만. 전화온다."
수지가 조금 취한 모양이다. 안하던 소리를 다하고, 평소보다 말도 조금 느리고, 발음도 살짝 꼬인거 같다.
"야, 나 쉬마려워. 저기서 쌀거니까 망봐"
"화장실 데려다 줄께요"
"싫어. 망봐!"
최수지. 취하니까 완전 재미있다.
잔디밭으로 간 수지는 통화하면서 소변을 마친다. 근데, 소리도 더는 안나는 데 일어서지를 않는다.
"뭐해요?"
"나 일으켜주라~"
내가 도착도 안했는데, 양손을 들면서 흔들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진다.
"죽을래? 왜밀어?"
"안밀었는데요."
넘어진 수지가 옆자리를 팡팡 친다.
"앉아봐"
"옷부터 입어요."
"앉아 이시꺄."
이런거 정말이지 찍어놨다가 나중에 보여주고싶다. 헤헤. 상상만해도 우습다. 좌절과 민망함으로 몸서리칠 그 모습이...
어쨌든 수지의 옆에 앉는다.
"발 쭉 뻗고 편하게 앉아봐"
네. 시키는대로 합죠.
발을 뻗고 편하게 앉았는데, 수지가 내 한쪽 허벅지에 걸터 엎드린다. 뭐할려고 그래, 무섭게?
수지는 내 바지를 푼다.
"뭐해요, 갑자기?"
"닥쳐, 나 땡긴단말야."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공원에서의 섹스. 사실 수도 없이 꿈꾸던거다. 근데, 막상 수지가 이렇게 덤비니까 무섭다.
"야, 너 내가 하고 싶을때 거부 못한다고 했지?"
그랬지. 저번에 야동 따라해주는 조건으로.
수지는 아까 소변보던 차림이라 엉덩이가 훤하게 드러난 채로 내 한쪽 허벅지에 몸을 걸치고 내 것을 애무해준다.
한참을 정성스럽게 핥던 수지가 얼굴을 들더니, 내 볼태기를 쥔다.
"이새끼야, 누나가 이렇게 해주는데 넌 왜 가만히 있어?"
나 무섭단 말이야. 진정해요 제발.
어쨌든 자극이 심해서인지 엄청나게 흥분되기는 한다. 손을 들어 수지의 엉덩이를 매만진다. 수지의 어느 한부분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을 곳이 있겠냐마는, 그중에서도 육체적으로 나를 가장 흥분시키는 건 역시 이 엉덩이다.
수지가 스스로 바지를 벗어버린다. 그리고 내 위에 올라탄다. 잔디에 누워 있는 내 시야엔 밤하늘과 별과, 수지가 있다. 수지의 허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지의 신음이 함께 시작된다.
"하...윽....으....음...."
수지가 내 가슴에 손을 얹는다.
"나... 지금... 하윽.... 너무 좋아.... 너는?"
그걸 물어봐야 알겠습니까? 좋아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마님.
하지만, 나는 대답대신 수지의 허리를 안고서 수지의 안으로 좀 더 깊게 들어가도록 움직인다. 수지가 좀 더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속도를 올려가며...
만약 그때 공원안을 지나는 사람이 있었다면 분명히 수지의 신음소리를 들었을거다. 공원에 울려퍼지는 수지의 신음은 충격과 흥분 그리고 공포였다.
잠시 후 사정이 끝났고, 수지가 내 몸에 쓰러지듯 안긴다.
"어땠어? 나혼자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완전 좋았죠.ㅋㅋ"
"나도 아까 만화방에서 좋았어. 미안해 하지마."
"그거 때문에 일부러 그런거에요?"
"아니. 그냥 내가 좀 땡겼어. 그리고 이거 니 소원 중에 하나잖아."
아니, 어떻게 알았지? 언젠가 내가 지나치듯이 말한 적이 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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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를 업고서 돌아간다. 걱정스러울정도로 가볍다. 앞으로 많이 먹여야겠다.
"나 무겁지?"
"무겁다고 하면요?"
"죽여버릴거야."
수지가 내 목을 꼭 껴안는다. 술은 아까전에 깼을텐데. 나한테 어리광도 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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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금방 도착한다.
"아, 자고가고 싶다."
"안돼, 미안. 일루와봐."
가까이 간다. 수지가 내 얼굴을 잡고 키스해준다. 이여자를 두고 가야한다는게 너무 아쉽다.
"내일 와. 나 내일 쉬어. 그리고 할얘기 있어 중요한 얘기."
"뭔데요?"
"와보면 알아. 내일 과외 끝나면 보자. 그리고...."
"......"
"......"
"그리고요?"
"아냐, 조심해서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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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지가 해주겠다는 중요한 이야기가 뭔지 궁금해서 잠을 설쳤다. 가보면 알겠지. 가보면 알겠지...
결국 아침도 먹는둥 마는둥 했다. 괜히 불길한 예감이 든다.
뭘 가르쳤는지도 모르게 과외가 끝났다. 이제 수지가 보자고 한 시간이다.
수지의 집 앞에서 전화를 건다. 수지가 문을 열어준다.
"왔어?"
수지는 나를 세워놓고 내 매무새를 고쳐준다.
"안에 누구 와있어."
"누구요?"
"말했었지? 나 만나는 사람 있다고..."
그놈인가? 수지는 오늘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걸까. 나와 그놈을 한자리에 놓고서...
불안하지만, 쫄지 말자.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누군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거냐.
방학이 되면 곧바로 가자던 동아리 MT가 취소됐다. 영섭이 형의 동생이 수술을 했다고 한다. 급성 백혈병이라서 헌혈증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멍회장님한테 들었다. 가지고 있던 헌혈증 4장을 모두 줬다. 다음날 혹시나 해서 수지에게 말을 전하니, 서랍에서 25장 정도가 나온다. 가만보면 뭘 모으는게 취미인 모양이다.
"헌혈 되게 자주하나봐요?"
"영화도 보고, 과자도 먹고, 이럴때 써먹기도 하고. 누나가 다 생각이 있어서 모으는거야."
알고보니 헌혈중독자였나? 어쟀든, 여러모도 대단한 여자다, 최수지.
1주일 후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나는 그동안의 대부분의 시간을 수지와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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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인생의 목표도 없었고, 남들 가는 대학인지라 나도 가야 하나보다 하는 마음으로 살다보니, 그냥 점수 맞춰서 들어온게 기계공학과였다. 고등학교시절 졸업만 하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수학공부는 안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수학 없이는 과공부를 진행시킬수가 없었다. 부족한 수학도 다시한번 점검할 겸, 손자 걱정에 용약까지 지어 먹여주시는 할아버지를 생각해서 사람구실도 좀 할 겸 과외거리를 찾던 도중 흔하디 흔한 루트인 엄마친구 아들의 과외를 맡게 됐다. 뭔가 돈 들어올 일이 있다는 즐거움에 수지와 술이나 한잔 하기로 약속을 잡았다.
과외가 끝나고 수지의 알바가 끝나는 시간까지 대략 40분 정도를 만화방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만화방에 들어가니, "안녕히 가세요"라고 누군가에게 전하는 만화방 그녀의 상냥한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은 기분이 좋은가보다. 당연히 나한테도 기분좋게 인사해줄줄 알았는데, 어서오세요를 하다 말고 나를 노려본다. 왜이래 나한테? 죽었다 깨도 모를 일이다.
"저기, 뭐 안좋은 일 있나봐요?"
내가 이렇게까지 물어보면, 너도 뭔가 이유를 말해주던지, 태도를 바꾸던지 하겠지. 예쁜 얼굴 구기지 말고 오해가 있으면 풀자는 말이야.
"..."
헐... 이년이 쌩을깐다. 내가 분명히 또박또박 물어봤는데, 빤히 쳐다보면서 대답도 안한다.
다시 한번, 뭐 안좋은 일 있냐고 물어보려고 입을 여는데, 저쪽으로 획 가더니 테이블 정리를 한다. 뭐냐, 나한테 왜그래 너? 진짜 나 좋아했던거야?
어쨌든 나 죄 지은거 없다. 쫄지 말자.
당당하게 시간제를 끊고, 한쪽에 앉아 만화책을 본다. 가끔 신경쓰여 쳐다보면 눈이 마주치기도 한다. 만화방 그녀도 지 할일 하면서 틈나는대로 나를 신경쓰고 있다. 여전히 나를 볼때면 눈매가 매섭다. 불편하다. 수지 오면 바로 나가야지.
한 권 정도 정독을 하니, 수지가 온다. 어서오세요라는 만화방 그녀의 인사에 눈웃음으로 대답을 한다. 오늘 기분이 좋은 모양이다.
그래 나하고 약속 있어서 기분 좋은거구나? 고마워. 수지가 나를 발견하고 내 옆으로 온다. 손에 만화책이 들려있다.
"바로 나갈거 아니에요?"
"나도 간만에 만화책 좀 보자."
뭐 시간은 많고, 어쨌든 수지와 함께다. 나쁠게 없다.
헌데, 여전히 만화방 그녀는 나를 째려본다. 수지에게 팔꿈치로 신호를 보내, 쟤가 나 째려보는것좀 보라고 눈치를 주니, 수지는 재미있다는 표정이다. 아니 왜? 당신의 남자가 이유없이 적개심에 노출 되있는데, 그게 재미있어? 아무리 오늘 기분이 좋아도 날 위해 같이 심각해지면 안돼?
"쟤 너 진짜 싫어하나보다.ㅋㅋ"
"누나도 째려보잖아요. 진짜 나 좋아했었나봐요."
"병신아 세상에 어떤 모질이가 너같은걸 좋아해?"
바로 당신 최수지가 날 좋아하잖아.
수지가 내 손목을 잡는다.
"자리 옮기자."
그래 얼른 나가서 맛있는거 사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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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개뿔. 그냥 만화방 안에서 자리만 옮기자는 얘기였다. 수지가 가자고 한 자리는 카운터 뒤쪽에 한물 간 만화책들로 둘러쌓인 반쯤 밀폐된 공간이었다. 요즘 수지가 보는 만화책들도 그쪽에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문제는 만화방 그녀와 나의 거리가 좀 더 가까워 졌다는것. 그리고 그녀는 나를 볼 수 있지만, 나는 그녀가 뭘 하는지 모른다는 것. 이유도 모른채 뒤통수라도 맞을 가능성이 있는 자리였다. 물론, 알바생이 손님 뒤통수를 때리는 일 자체가 말도 안되는 것이지만, 지금 그녀의 적대감 또한 말도 않되는 것이기에 약간은 불안하다.
그래도 만화책이라는게 보고 있자면 집중하게 되는 물건인지라, 그냥 만화책만 뚫어지게 보게 된다. 마음이 편해진다. 좀전의 자리는 왠지 그만화방 그녀의 눈에서 나오는 빔이 느껴졌는데, 그런것도 없고... 역시 최수지님은 나의 구세주였구나 싶다.
고마운 마음에 수지를 보니, 만화책을 보고 있는 옆모습이 참 귀엽다. 그녀의 집 밖에서 만나는 최수지는 여전히 나를 갈구며 즐거워 하는 고약한 선배일뿐이었다. 여전히 꾸미지 않고, 여전히 딱딱한 자세를 유지한다. 하지만 만화책에 집중하고 있는 수지는 가끔 귀여운 표정이 드러난다. 나는 만화책을 보며 잠깐 잠깐 미소짓는 그 옆모습이 귀여워 머리끈에서 빠져나온 머리카락을 쓸어 귀 뒤로 넘겨준다.
"응. 왜?"
용건이 있어 자기에게 신호를 보낸줄 알았나보다. 쳐다보는게 귀여워 볼에 입술을 댄다. 평소같았으면 맞았을지도 모르지만, 오늘은 기분이 좋긴 좋은가보다. 살짝 미소를 짓더니 내 볼태기를 쥐고 흔든다. 밖에서 이러니까 완전 귀엽다.
"나 지금 하고 싶어요."
농담 반 진담 반이다. 수지의 귀여운 모습을 보니 하고 싶은것도 사실이었지만, 그냥 수지한테 "꺼져 병신아"같은 갈굼을 듣고 싶기도 해서 던진 말이다. 왠지 수지가 나를 갈구면 기분이 좋아진다. 중독인가? 나도 이상한 쪽으로 변태가 되는 것 같다.
"안돼."
수지가 곤란함과 미안함이 섞인 표정을 짓는다. 어라? 이게 아닌데 예상 외의 반응이다. 근데, 이거 완전 귀엽잖아. 이 표정을 계속 보고 싶어, 아무말 없이 바라만 본다.
"진짜야?"
수지가 걱정스러운 듯 묻는다.
"네. 미칠거 같아서..."
하려던 대답은 "뻥인데요."였다. 하지만 수지의 얼굴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그런 대답이 튀어 나온거다. 미칠거 같은건 지금 니 표정이 귀여워서 라고...
수지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내 바지를 풀고, 자지를 꺼낸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이놈은 긴장으로 힘이 풀려있다. 수지가 그놈을 삼킨다. 만화방이라는 이 뜻밖의 장소에서. 정성스레 내 것을 빨고 있는 수지를 보니 고마움과 함께 미안함이 밀려온다. 나는 도대체 이 여자한테 뭘 시킨거냐. 한참동안의 애무에 결국 신호가 온다. 수지의 입안에 가득 뿜어냈다. 수지는 그것을 삼키고, 다시 혀로 내 자지를 깨끗이 정리해준다.
"나 화장실좀"
수지가 자리를 비운다. 머리속이 멍하다. 죄책감이 가슴을 짓누른다. 이런게 마냥 흥분되고 좋을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다. 일단 옷부터 추스르고, 자리를 정리한다. 수지가 돌아오면 바로 나가자고 해야겠다.
만화방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눈에서 살기가 느껴진다. 봤나? 다시는 여기 못올거 같다.
수지가 돌아왔다. 나를 보며 미소를 지어준다. 미안하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 그리고 또 미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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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한 마음이 너무 커서인지, 술자리가 그리 즐겁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수지는 기분이 좋았나보다.
택시라도 잡아서 돌아갈까 했지만, 수지는 걷고 싶다고 했다. 수지와 함께 걷는 밤길, 별이 빛나고 밤공기는 선선하다.
"야, 우리 좀 앉아서 쉬자. 나 다리 아프다."
어느 공원을 지나며,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보이는 수지가 좀 쉬고 싶다고 한다.
"그냥 내가 업어줄까요?"
"응. 좀 쉬었다가 업어줘. 나 무겁다고 하면 죽는다?"
수지와 함께 벤치에 앉는다.
"뭐야? 기분 않좋아? 나랑 있어서?"
"아뇨. 아까 미안했어요."
"뭐가?"
"누나 곤란했을텐데..."
"변태새끼. 알긴 아는구나, 볼따구!"
수지가 손가락을 까딱거린다. 자동으로 내 머리가 수지 앞에 놓인다. 수지는 내 볼태기를 쥔다.
"근데, 어땠어? 좋았어? 너 변태라서 그런거 좋아하잖아."
"사실, 별로. 미안하기만 하고..."
갑자기 볼태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뭐? 누나가 해줬는데, 별로? 죽을래?"
아예 양쪽 볼태기를 쥐고 머리를 흔든다.
"아... 아... 완전 좋았어요. 최수지 짱"
"헤헤"
수지가 볼을 풀어주더니 머리를 쓰다듬는다.
"있잖아..."
"네"
"아무래도 내가 너를 진짜 좋아하나보다. 어? 잠깐만. 전화온다."
수지가 조금 취한 모양이다. 안하던 소리를 다하고, 평소보다 말도 조금 느리고, 발음도 살짝 꼬인거 같다.
"야, 나 쉬마려워. 저기서 쌀거니까 망봐"
"화장실 데려다 줄께요"
"싫어. 망봐!"
최수지. 취하니까 완전 재미있다.
잔디밭으로 간 수지는 통화하면서 소변을 마친다. 근데, 소리도 더는 안나는 데 일어서지를 않는다.
"뭐해요?"
"나 일으켜주라~"
내가 도착도 안했는데, 양손을 들면서 흔들더니 그대로 뒤로 넘어진다.
"죽을래? 왜밀어?"
"안밀었는데요."
넘어진 수지가 옆자리를 팡팡 친다.
"앉아봐"
"옷부터 입어요."
"앉아 이시꺄."
이런거 정말이지 찍어놨다가 나중에 보여주고싶다. 헤헤. 상상만해도 우습다. 좌절과 민망함으로 몸서리칠 그 모습이...
어쨌든 수지의 옆에 앉는다.
"발 쭉 뻗고 편하게 앉아봐"
네. 시키는대로 합죠.
발을 뻗고 편하게 앉았는데, 수지가 내 한쪽 허벅지에 걸터 엎드린다. 뭐할려고 그래, 무섭게?
수지는 내 바지를 푼다.
"뭐해요, 갑자기?"
"닥쳐, 나 땡긴단말야."
"여기서 이러면 어떡해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공원에서의 섹스. 사실 수도 없이 꿈꾸던거다. 근데, 막상 수지가 이렇게 덤비니까 무섭다.
"야, 너 내가 하고 싶을때 거부 못한다고 했지?"
그랬지. 저번에 야동 따라해주는 조건으로.
수지는 아까 소변보던 차림이라 엉덩이가 훤하게 드러난 채로 내 한쪽 허벅지에 몸을 걸치고 내 것을 애무해준다.
한참을 정성스럽게 핥던 수지가 얼굴을 들더니, 내 볼태기를 쥔다.
"이새끼야, 누나가 이렇게 해주는데 넌 왜 가만히 있어?"
나 무섭단 말이야. 진정해요 제발.
어쨌든 자극이 심해서인지 엄청나게 흥분되기는 한다. 손을 들어 수지의 엉덩이를 매만진다. 수지의 어느 한부분 나에게 사랑스럽지 않을 곳이 있겠냐마는, 그중에서도 육체적으로 나를 가장 흥분시키는 건 역시 이 엉덩이다.
수지가 스스로 바지를 벗어버린다. 그리고 내 위에 올라탄다. 잔디에 누워 있는 내 시야엔 밤하늘과 별과, 수지가 있다. 수지의 허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지의 신음이 함께 시작된다.
"하...윽....으....음...."
수지가 내 가슴에 손을 얹는다.
"나... 지금... 하윽.... 너무 좋아.... 너는?"
그걸 물어봐야 알겠습니까? 좋아서 죽어도 여한이 없습니다 마님.
하지만, 나는 대답대신 수지의 허리를 안고서 수지의 안으로 좀 더 깊게 들어가도록 움직인다. 수지가 좀 더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속도를 올려가며...
만약 그때 공원안을 지나는 사람이 있었다면 분명히 수지의 신음소리를 들었을거다. 공원에 울려퍼지는 수지의 신음은 충격과 흥분 그리고 공포였다.
잠시 후 사정이 끝났고, 수지가 내 몸에 쓰러지듯 안긴다.
"어땠어? 나혼자 하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완전 좋았죠.ㅋㅋ"
"나도 아까 만화방에서 좋았어. 미안해 하지마."
"그거 때문에 일부러 그런거에요?"
"아니. 그냥 내가 좀 땡겼어. 그리고 이거 니 소원 중에 하나잖아."
아니, 어떻게 알았지? 언젠가 내가 지나치듯이 말한 적이 있었나보다.
.
.
.
.
.
수지를 업고서 돌아간다. 걱정스러울정도로 가볍다. 앞으로 많이 먹여야겠다.
"나 무겁지?"
"무겁다고 하면요?"
"죽여버릴거야."
수지가 내 목을 꼭 껴안는다. 술은 아까전에 깼을텐데. 나한테 어리광도 피운다.
.
.
.
그리 가까운 거리도 아닌데, 금방 도착한다.
"아, 자고가고 싶다."
"안돼, 미안. 일루와봐."
가까이 간다. 수지가 내 얼굴을 잡고 키스해준다. 이여자를 두고 가야한다는게 너무 아쉽다.
"내일 와. 나 내일 쉬어. 그리고 할얘기 있어 중요한 얘기."
"뭔데요?"
"와보면 알아. 내일 과외 끝나면 보자. 그리고...."
"......"
"......"
"그리고요?"
"아냐, 조심해서 가."
.
.
.
.
수지가 해주겠다는 중요한 이야기가 뭔지 궁금해서 잠을 설쳤다. 가보면 알겠지. 가보면 알겠지...
결국 아침도 먹는둥 마는둥 했다. 괜히 불길한 예감이 든다.
뭘 가르쳤는지도 모르게 과외가 끝났다. 이제 수지가 보자고 한 시간이다.
수지의 집 앞에서 전화를 건다. 수지가 문을 열어준다.
"왔어?"
수지는 나를 세워놓고 내 매무새를 고쳐준다.
"안에 누구 와있어."
"누구요?"
"말했었지? 나 만나는 사람 있다고..."
그놈인가? 수지는 오늘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걸까. 나와 그놈을 한자리에 놓고서...
불안하지만, 쫄지 말자.
문을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누군가 있다... 내가 알고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왜 여기에 있는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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