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 리와인더 (Time Rewinder)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43장
벼락 같은 물세례가 몸에 끼얹어졌다. 기분 나쁜 충격이 의식을 억지로 늪에서 끌어올리듯이 내 정신을 들게 만들었다. 강제로 정신을 차린 내가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끔뻑여 간신히 고개를 들어보니, 희미하게 흔들리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누구였지..."
그 얼굴은 분명 내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름이 쉽게 떠오르질 않았다. 그만큼 정신이 멍멍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얼굴의 주인이 이 상황에서 내가 도저히 짐작조차 하지 못한 인물이었던 이유가 더 컸을 것이다.
"한... 수?"
간신히 입이 열리고,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눈 앞에서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한수의 얼굴이 내게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그 와중에도 굉장히 저열하게 느껴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네가 어떻게...."
현실감각이 돌아오지 않은 어리벙벙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지만 그 질문은 끝까지 이어지지도 못했다. 갑자기 날아든 한수 놈의 맹렬한 발길질을 복부에 얻어맞고 나는 속이 끊어지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커헉! 쿨럭!"
상체가 앞으로 쓰러졌지만 얼굴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등 뒤에서 양팔이 뭔가에 의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팔이 결박된 채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던 것이다. 쇼크를 받은 몸이 버둥거릴 자유조차 찾지 못하고 그저 맥없이 구역질하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어리버리 까고 있네. 새끼가."
그 극심한 고통만 아니었어도 나는 아마 이것이 꿈이라 여겼을 것이다. 상체가 고꾸라진 내가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자, 한수 놈이 내 뒤통수를 부여잡고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앞을 보게 만들었다. 그러자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겨를도 없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또 한 차례의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서, 서연아...."
"으읍.... 흡...."
나와 마찬가지로 서연이 또한 팔다리가 밧줄 따위로 결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주변이 온통 테이프로 감겨 있었고, 나와 다르게 의자에 강제로 앉혀져 있었다. 의자의 등받이 뒤로 두 손목이 묶인 채, 목소리를 낼 자유마저 뺏긴 채로 그녀가 몸을 버둥거리고 있었다.
여전히 현실감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부르르 떨렸다. 서연이가 그런 꼴이 되어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어질 일인데, 그런 그녀의 모습이 속옷 하나 걸치지 못한 전라인 채였던 것이다.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한수 새끼가 서연이의 알몸을 보고 있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이 개새끼가...."
"워, 진정하세요 선배. 아직 건드리지도 않았으니까."
버럭 고함을 지르려다 말고, 나는 등 뒤에 또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쪽에 서 있었던 누군가의 그 목소리는 치가 떨릴 정도로 내게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뚜벅거리는 발소리가 원을 그리듯이 뒤쪽에서부터 내 앞으로 걸어왔다.
"이 정도로 놀라시면 안 되죠. 이제 겨우 시작인데."
"너...."
지환이 새끼의 능글맞은 얼굴을 마주하자 이가 부드득 갈렸다. 놈은 한수와 마찬가지로 저열하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지환이에 이어서 이번엔 날카로운 하이힐의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뒤쪽에서부터 내 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실루엣은 남자의 것이 아니었다. 지환이 옆으로 다가와 멈춰선 현아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현아는 비록 지환이나 한수 놈들처럼 나를 비웃는 얼굴로 내려다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싸늘하게 굳은 표정은 여지껏 내가 알아왔던 그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현아 씨?"
그녀는 내 목소리를 완전히 묵살했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나에게 잠깐 시선을 두었던 그녀가 이내 몸을 돌려 현관 쪽으로 걸었다. 그러자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지환이 새끼가 물었다.
"어디 가?"
"키를 돌려줘야 해. 오래 지니고 있으면 지배인이 괜한 의심을 할 테니까. 어차피 이제 필요없잖아?"
현아가 품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자그마한 무언가를 꺼내 흔들어보였다. 그것은 이 호텔의 일반적인 카드키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도금처리가 되어 반짝이는 것을 보면 결코 평범한 키는 아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호텔의 마스터키임을 알 수 있었다.
"아, 그래. 천천히 다녀와. 우린 재미 좀 보고 있을 테니까. 킥킥."
벌레가 등을 기어가는 듯한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온 몸을 덮쳤다. 그녀가 이 방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눈 앞에서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것은 직감이라기보단 차라리 확신이었다. 나는 움직여지지도 않는 몸을 억지로 틀어 현아의 뒷모습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쳤다.
"야, 박현아!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당장 이거 안 풀어!? 당신 지금 무슨 실수를 하고 있는지.... 커흑!"
한수 새끼의 발길질이 다시 한번 등에 사정없이 꽂혔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상체가 다시 한번 아래로 쓰러졌다가, 결박된 양팔 때문에 허공에서 힘없이 대롱거렸다. 입이 틀어막힌 서연이가 어떻게든 소리를 질러보려고 묶인 양발을 동동 구르며 몸부림을 쳤지만 그 소리는 테이프에 가로막혀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
방을 나서려던 현아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나를 뒤돌아보았다. 이 갑작스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대화를 시도해야 할 상대가 있다면 적어도 이 방 안에서는 그녀가 유일했다. 나가려다 말고 그녀가 다시 몸을 돌려 내 쪽으로 걸어오자 나는 어떻게든 그녀를 설득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 당도한 그녀가 사정없이 내 얼굴을 후려치는 순간, 나는 내가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애초에 이 방 안에 지금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 상대 따윈 없었던 것이다.
"입 닥쳐."
"혀, 현아 씨. 당신 지금...."
그녀에게 뺨을 맞은 적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지금 맞은 따귀는 그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나를 내려치는 그녀의 손에, 혐오하는 상대에 대한 증오심이 한껏 스며있었다.
"난 당신이 정말 미워.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
현아는 내 앞에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그녀의 눈에서 문득, 로비에서 날 바라보았던 그녀의 오싹한 시선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을 미워하려고 애썼지만 누군가를 이렇게나 진심으로 증오해 본 적은 당신이 겨우 두 번째야. 첫 번째가 내 동생을 망쳐놓은 그 개새끼들이고, 그 다음이 바로 당신이지. 내게 있어선 그 짐승 같은 놈들이나 당신이나 아무 것도 다를 바가 없어. 하지만 우습게도 내 동생은 그런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
"........"
얼굴이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차가움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현아는 말을 이어갔다. 새삼 그제야, 내가 현아에게 했던 행동들이 그녀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었지만 이제와서 그런 생각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거 알아? 난 어제 평생 살면서 느껴봤던 것 중에 가장 심한 허무함에 시달렸어. 현주가 당신에게 몸을 허락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치 낭떠러지 밑으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지. 나는 내 동생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길 줄곧 원해왔지만, 결국 그걸 가능하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어. 나는 당신이 저급한 인간쓰레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현주는 그런 당신을 이미 마음 속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게.... 날 정말로 미치게 만들었어.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구."
"당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당신이 이러는거 현주가 알면 좋아할 것 같아?"
"현주가 알면?"
현아는 다시 한번 내 뺨을 있는 힘껏 철썩하고 후려쳤다. 그러고나서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단 듯 숨조차 헐떡이지 않고, 똑바로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어. 왜냐하면 이게 내가 지금껏 남자들을 지배해왔던 방식이거든. 나는 당신을 현주로부터 반드시 떨어뜨려야 할 기생충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주가 굳이 당신의 실체를 알고 또다시 상처받는건 원치 않아. 그러니 당신 스스로 내 동생에게서 떨어져나가게끔 당신을 휘두를 수 밖에."
"그게 무슨...."
이해되지 않는 말을 남기고 현아는 몸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현아가 눈짓을 보내자 그 즉시 지환이 놈은 어디서 꺼냈는지도 모를 묵직한 검은색의 캠코더를 들어보였다. 놈이 거치대를 펴고 캠코더를 설치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 속의 불안함은 더욱 커졌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내가 남자들의 약점을 잡는 방법을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당신도 이젠 그 수많은 남자들 중 하나가 되는 것 뿐이야. 물론 이제껏 내가 농락해왔던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겠지만."
룸의 정중앙에 거치대와 함께 캠코더가 놓였고, 뿐만 아니라 나와 서연이 근처에도 휴대용 캠코더가 하나씩 더 설치되었다. 전라가 되어있는 자신의 몸 앞에 캠코더가 놓이자 서연이가 흠칫 놀라며 다시 한번 발버둥을 쳤으나 의자에 팔다리가 묶여있는 그녀는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현아는 그런 서연이의 모습을 딱하다는 듯 내려다보더니 그녀를 향해 또각또각 다가가 말했다.
"같은 여자로서 당신에겐 정말 미안하네요. 난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고 싶진 않았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선 꼭 당신을 이용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치정관계에 휘말린 것치고는 너무 가혹한 대가를 치르는 것 같지만,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는 절대 다른 사람의 남자를 탐내거나 하지 마세요."
"으읍.... 읍....."
입이 막혀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서연이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현아는 평소에 지니고 다니던 백을 뒤져 뭔가를 꺼냈다. 투박한 가죽소재로 되어 있는 그 길쭉한 것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내가 현아에게 직접 채워보기도 했던 바로 그 개목걸이였다.
현아는 평소보다 유독 투박하게 보이는 그 개목걸이를 허공에 길게 펼치더니, 그것을 서연이의 목에 채웠다.
"뭐, 뭐하는 거야?"
내 질문을 가차없이 무시한 그녀는 룸 중앙의 캠코더가 서연이를 향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등을 돌렸다.
"그럼 난 나중에 올게."
"기왕 이렇게 된거 당신도 좀 구경이나 하는게 어때? 당신도 저 놈에게 쌓인 것들이 많을 텐데."
히죽거리는 얼굴로 지환이가 그녀에게 물었다.
"됐어. 최성진 저 인간 싫은 거야 마찬가지지만, 당신들과 나는 서로 원하는게 다르니까. 게다가 당신들이 여기서 하려는 짓을 계속 보고 있다간 예전의 싫은 기억이 떠오를 것 같거든."
"그래? 그럼 뭐 마음대로 해."
현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지환이, 한수, 나, 그리고 의자에 묶인 서연이만이 룸 안에 남게되자 내가 확신했던 그 불길한 공포가 삽시간에 현실이 되어 나를 덮쳤다.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지환이 놈이 서연이에게로 다가가, 현아가 그녀에게 채워두었던 개목걸이의 목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으흐읍!!"
테이프에 가로막힌 서연이의 비명소리는 맥없이 묻혀버렸다. 의자에 결박당한 몸은 움직이지도 못한 채, 지환이가 잡아당기는대로 서연이의 머리카락과 얼굴이 허공에서 사정없이 흔들렸다.
"야 이 개새끼야! 그만 안 둬!"
한차례 고함을 지르자마자 어김없이 한수 녀석이 다시 한번 구둣발로 나를 세차게 짓밟았다. 목소리는커녕 숨 쉬기조차 힘이 들어 내가 컥컥거리자 서연이가 그 와중에도 더욱 애절하게 비명을 지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지환이 놈이 그녀의 반응을 즐기듯이 서연이의 턱을 매만졌다.
"저 놈이 그렇게 걱정 돼? 우리가 헤어진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 사이에 다른 남자에게 그렇게 마음이 깊어진 거야? 그것도 저런 형편없는 찌질이에게?"
"읍! 으으읍!"
공포와 수치심으로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서연이가 지환이를 향해 뭐라고 소리쳤지만 그 목소리는 역시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서연이의 턱을 감싸쥔 지환이는 그녀의 고개를 치켜들어 자신을 마주보도록 만들고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보니 너하고 헤어지던 날이 생각나네. 넌 굉장히 단호하게 말했었지. 하지만 난 사실 그 전부터 계속 느끼고 있었어. 너한테 다른 사람이 생긴 것 같다고 말이야.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닌 최성진 저 찌질이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읍...."
"난 이제 너에게 아무 감정도 없어. 날 떠나서 저런 찌질이 같은 놈하고 놀아난 걸레같은 년에게 내가 더이상 무슨 미련을 가지겠어? 넌 그냥 내가 최성진에게 복수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야. 하지만 복수라는건 원래 배로 갚아줘야 계산이 맞는거 아니겠냐구. 저 놈에게 더더욱 심한 굴욕을 안겨주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쓰는게 좋을까 하다가 생각난 것이 한수 선배였지."
놈은 이제 서연이를 향해 말하고 있지 않았다. 개목줄을 채운 서연이의 얼굴을 마치 장난감처럼 흔들어가며, 녀석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소를 날리듯이 놈은 설명을 이어갔다.
"넌 내가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난 사실 너희 두 년놈들이 사귀고 있다는걸 이미 알고 있었어. 휴학은 했지만 학교 소식은 여전히 듣고 있었는데다 특히 너희 년놈들 이야기에는 관심이 많았지. 들으면 들을수록 이가 갈렸지만 난 계속해서 신경쓰고 있었어. 언젠간 내가 복수할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말 한마디 한마디를 끊을 때마다 녀석은 서연이의 목에 채운 줄을 흔들어댔고 그녀의 머리는 놈의 손짓에 따라 여기저기로 흔들렸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새하얀 알몸을 보며 한수 녀석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온 몸이 분노로 부르르 떨려오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함이 갈수록 커져갔다.
"그러던 차에 한수 선배 이야기도 듣게 됐지. 이 년이 한수 선배를 거절하고 너랑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학교에서도 꽤 유명했거든. 정말로 웃기는 일이지. 너희 년놈들이 예전에 계곡에서 떡치던 걸 봤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설마하니 진짜로 사귈거라곤 생각 못 했으니까. 게다가 이미 다른 여자도 사귀고 있었던 놈이 말이야."
그러고나서 놈은 현아가 사라진 룸의 문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사실 나는 그동안 너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박현아, 저 여자를 계속 만나왔던 거였지. 어제 너에게서 듣게 된 말은 솔직히 충격적이었어. 그동안 나는 니 여친을 따먹으며 너에게 복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좋아했었는데.... 그게 사실은 너와 박현아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밖에 되지 않았으니."
놈은 서연이의 목줄을 쥔 손을 놓고는 나에게 뚜벅뚜벅 다가왔다. 놈이 서연이에게서 떨어졌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을 여유도 없이, 다음 순간 놈은 내 얼굴에 씩 웃으며 침을 탁 뱉었다.
"내가 받은 충격과 수치심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지만 그냥 복수만으론 너무 시시했어. 너에게 평생 못 잊을 만한 굴욕을 안겨줘야겠단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기로 한 거야. 나와 이해관계가 정확하게 맞을 것 같은 사람이 마침 떠오른거지. 한수 선배라면 당연히 이 일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 길로 당장 선배를 찾았어. 선배를 이 일에 끌어들이는건 생각보다 훨씬 더 쉬운 일이었지."
"흐흐, 끌어들이다니. 그렇게 말하니까 서운한데. 난 내가 원해서 여기에 있는 거라고."
"그렇죠. 어찌됐든 우린 오늘 모두 원하는 바를 이룰 거에요."
"물론이지. 난 사실 최성진 저 놈을 괴롭히는 데에도 흥미가 있지만 그 이상으로 서연이 몸에 더 관심이 많으니까. 얄미운 놈에게 매운 맛도 제대로 보여주고, 꿈에 그리던 서연이랑 실컷 재미도 보고. 이것만큼 내게 큰 선물이 어디 있겠냐고. 하하하."
한수와 지환이 놈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들을수록 미칠 듯한 감정이 속에서부터 꾸역꾸역 차올랐다. 그 감정이 얼굴로 드러나는 것을 두 놈도 즐기고 있는지,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는 그 얼굴에 한층 더 비웃음이 짙어졌다.
"나와 한수 선배, 그리고 박현아. 세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지. 바로 너, 최성진이라는 놈을 용서할 수 없다는 공통점 말이야. 가진 것 하나 없는 찌질이 주제에 생각보다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어. 오늘 니 주제를 제대로 가르쳐 줄테니까 앞으로는 나대지말고 살라구."
그 상황에서 내가 놈들에게 비굴하게 애걸복걸 매달려 빌지 않았던 이유는, 무섭다기보다는 분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전능한 능력을 지닌 인간이다.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 능력만 쓸 수 있다면 이 두 놈을 응징하는 것 따위는 손바닥 뒤집는 것 만큼이나 쉬운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지금 이 상황이 나로서는 미칠 듯이 답답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타임 리와인더를 손에 쥐기만 하면 해결될 일임에도, 나는 지금 양팔이 묶여있는데다가 한술 더 떠서 시계를 보관하고 있는 내 상의 점퍼는 룸의 바닥 어딘가에 덩그러니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용기라기보다는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전능한 능력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자존심.... 시계를 돌릴 수만 있다면 내가 이길 수 있음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놈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비굴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얼마나 쓸 데 없는 자존심이었던가.
"개새끼들..... 경고하는데 지금이라도 그만 둬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를....."
그 으름장에 대한 대가로 돌아온 것은 한수 새끼의 무자비한 발길질 세례였다. 놈은 사정없이 내 등과 머리를 찍어내렸다. 맞은 곳이 터져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서연이는 입이 막힌 와중에도 울며불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아무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 와중에 한수 놈의 발길질이 몸에 한차례씩 꽂힐 때마다 냉혹한 진실이 하나둘씩 나를 강타하는 것 같아서 갈수록 더없이 두려워졌다.
"네까짓 놈들이 감히.... 시계만 손에 쥘 수 있으면....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이런 벌레같은 놈들 쯤은....."
쉴 새 없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속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내게 나지막히 진실을 전해오고 있었다.
너는 전능하지 않아.
너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인간이야.
눈 앞에 있는 이 두 사람보다도 더 나약한 인간일 뿐인걸.
그 시계를 사용할 수 없다면 너는 형편없는 예전의 최성진일 뿐이야.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착각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비굴하게 애원하라고.
그게 너에게 어울리는 거니까.
"씨발...."
바닥 어딘가에 허망하게 굴러다니고 있을 타임 리와인더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애초에 타임 리와인더가 없는 나는 그저 별 볼 일 없는 찌질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해왔던, 지금까지는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었던 진실이 가슴을 후벼파듯 잔혹한 모습으로 도래한 것이다.
주먹이 부르르 떨리며 깨물은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마음만 먹으면 뭐? 마음만 먹으면 니가 어쩔 건데?"
한수 새끼는, 내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도 모르는 채 감히 나에게 끊임없이 이죽거리고 있었다. 비록 여전히 전능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굽힐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기를 세웠다간 사정없는 구타만이 남을 거라는걸 알기에 나는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병신. 너는 우리 계획을 니 스스로 도와준거나 마찬가지야. 니가 주서연을 데리고 여기로 와줄거라곤 우리도 생각 못했으니까. 당분간 꾸준히 미행하면서 기회를 볼 생각이었는데 그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지. 우리로서는 여기만큼 일을 벌이기 좋은 곳이 없으니까. 박현아 그 여자의 도움으로 키까지 얻을 수 있었고."
지환이 놈은 여전히 신이 난 듯한 말투로 지껄여대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서연이의 흐느낌이 테이프에 가로막혀 읍읍대는 소리가 들렸다.
"넌 제 발로 우리 입 속으로 들어온거나 마찬가지라 이거야. 이제 남은건 쇼타임 뿐이지."
"서... 서연이는.... 서연이는 놔 줘. 서연이는 상관없잖아."
나는 마치 영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진부한 말을 했다. 전혀 통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잘 알면서도.
"상관이 없다고? 글쎄, 아닐 거야. 네가 서연이를 아끼는 모습을 보일 수록 서연이가 오늘 당할 고생은 점점 더 심해질 거거든."
"개새끼들.... 너희는.... 반드시 내가....."
이마에 맺힌 핏방울이 눈으로 타고 들어와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그 와중에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서연이의 얼굴이 보였다. 어떻게든 그녀를 안심시켜주고 싶었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오히려 욕설에 대한 응징으로 한수 녀석에게 또 한차례 얻어맞고 말았다.
"그쯤 하세요 한수 선배. 그 놈을 두들기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여기 있잖아요. 선배가 그토록 원했던."
"흐... 흐흐... 그렇지."
한수는 드디어 고대하던 시간이 다가왔다는 듯, 군침을 삼키는 소리를 숨길 생각도 않은채 마침내 나에게 퍼붓던 구타를 멈추고는 서연이를 향해 뚜벅거리며 다가갔다. 서연이를 향해 걸어가는 놈의 뒷모습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워 나는 얻어맞던 것도 잊고 다시금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 씨발새끼들아! 당장 멈춰!! 내가 기필코 맹세하는데 그만두지 않으면 너희를 반드시 갈가리 찢어죽일 거니까!! 야이 개새끼야, 듣고 있어? 멈추라고, 니미 씨발 버러지 같은 새끼야!!!"
한수 새끼의 뒷모습에다 대고 온갖 욕을 퍼부었지만 놈은 다시 나를 구타하러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되려 나에겐 오히려 더욱 끔찍한 지옥의 시작이었다.
*
"으흐읍!!"
서연이의 필사적인 비명소리가 결국 테이프를 뚫지 못하고 결국 억눌린 메아리가 되어 입속에서만 맴돌았다. 군침을 질질 흘리다시피 하며 서연이의 알몸 구석구석을 수치스러울 정도로 샅샅이 살펴보던 한수 새끼가 급기야 그녀의 한쪽 가슴에 얼굴을 처박은 것이다.
눈 앞에서 서연이가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자 나는 이성을 잃고 더더욱 고함을 질렀고, 그런 내 앞에 지환이 새끼는 허리를 굽히고 앉더니 히죽 웃음을 지었다.
"지금부터 똑바로 봐둬. 눈 앞에서 여친이 따먹히는 장면을 말이야. 그리고 무슨 기분인지 똑똑히 새겨두라고. 나도 예전에 그런 기분이었거든."
놈은 계곡에서의 일을 이야기한 것이겠지만 그 순간 내 머릿 속엔 왠지 모르게 과거의 어느 한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서연이를 처음 강간했을 때 나는 지환이 새끼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희롱하기 위해 일부러 지환이에게 그 장면을 영상통화로 보여줬던 적이 있었다. 타임 리와인더로 시간을 되돌리면서 그 기억은 지환이에게서 잊혀졌겠지만 나는 그것이 왠지 지난 날의 내 행동을 고스란히 돌려받는 것 같아서 속이 울렁거렸다.
"흐흐... 흐흐흐... 기분 죽이는구만. 이게 서연이 빨통이란 말이지. 내가 너를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하지만 넌 날 가차없이 차버렸지. 너도 결국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거야. 안 그래, 응?"
"으읍... 읍... 으읍...."
"난 하루 종일이라도 빨아줄 수 있어. 오늘 제대로 즐겨보자구."
아닌게 아니라, 서연이의 몸을 탐하는 한수 새끼의 모습은 그 옛날 내가 서연이를 강간하던 당시의 내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죽어도 그걸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지금 내가 처한 이 상황이, 내가 저질렀던 것들에 대한 벌처럼 느껴질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한수 녀석은 추잡하게 쩝쩝거리는 소리를 일부러 더욱 크게 울려가며 서연이의 젖꼭지를 빨고 있었다. 보고 있는 나를 더욱 자극하기 위해서가 틀림 없었다. 지금 그녀는 두 사내놈의 욕정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향한 복수의 수단이기도 한 것이었다.
"네.... 네놈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마지막 자존심을 억지로 쥐어짜 지환이 새끼에게 위협을 가해보았다. 하지만 놈은 조소를 거두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서 설치해두었던 중앙의 대형 캠코더와 두 대의 캠코더를 매만졌다.
"그래서 지금 이게 필요한거지. 박현아, 그 여자가 말했듯이 이게 바로 그 여자가 남자들을 지배하는 방식이거든. 난 그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 상황에선 너에게 약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 무슨.... 개소리야?"
"오늘 이 카메라엔 그야말로 온갖 장면들이 찍힐 거거든. 세상에 풀어졌다간 너희 두 년놈들이 차마 고개도 들고 살지 못할 정도로 수치스런 장면들이 말이야. 네가 신고를 하거나 내게 보복을 하려한다면 어디 맘대로 해봐. 너도 그렇지만, 특히 주서연 저 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창년이 될 테니까. 어차피 난 이미 너에게 약점 하나가 잡힌 상태이니, 까짓 죄목 하나가 추가되는게 뭐 그리 대수겠어? 평생 네 눈치보며 벌벌 떨고 사는 것보다는 나도 네 약점 하나를 잡는게 훨씬 좋지 않겠냐는거지. 한수 선배야 뭐 뒤탈 걱정 없을거란 내 말만 믿고 생각없이 뛰어든 경우지만.... 흐흐."
서연이의 몸을 유린하느라 정신이 없는 한수 새끼에게 들리지 않도록, 지환이 놈은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각각의 캠코더를 조작했다. 그러고나서 놈은 별안간 내 몸을 가리고 있던 호텔 가운 한장을 벗겨내버렸다. 몸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라고는 그것 뿐이었기에 순식간에 적나라한 알몸이 되었지만 수치심보다는 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두려움이 더 컸다.
하지만 다리 사이에서 꼴사납게 덜렁이는 양물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로, 그 모습이 카메라 화면에 담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뒤늦게 수치심마저 밀려들기 시작했다. 지환이 새끼는 카메라에서 한발짝 물러나 어디에선가 꺼내든 조잡한 형태의 가면을 얼굴에 착용했다. 입과 눈 부분이 뻥 뚫려있는 가면이었지만 이목구비를 감추기에는 충분한 물건이었다. 그러고나서 녀석은 한수에게도 똑같은 가면을 쓸 것을 지시했다.
서연이의 젖가슴을 짐승처럼 게걸스럽게 탐하던 한수 새끼는 지환이의 몇 차례에 걸친 부름 끝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놈이 건네는 가면을 받아썼다. 이제 이 공간 안에서 얼굴을 노출시키고 있는 사람은 나와 서연이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지환이 놈은 마침내 중앙에 설치해두었던 대형 촬영용 캠코더의 스위치를 올렸다.
"호텔에서 떡치다말고 난입한 강도들에게 여친이 강간당하는 영상이라며 인터넷 여기저기에 퍼뜨리면 아주 반응이 뜨거울 거야. 그렇지? 넌 내가 못할거라 생각하겠지만 어디 한번 수작이라도 부려봐. 주서연은 차라리 자살이라도 하는게 나을 정도가 될 걸."
"이.... 개 같은...."
분노로 치를 떠는 모습 하나마저도 이미 녀석이 설치한 캠코더에 의해 모두 촬영되고 있었다. 게다가 저 멀리서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진 서연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차마 그 얼굴을 바라볼 자신이 없어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무력하게 주먹만 꽉 쥘 뿐이었다.
"자, 기회를 주지. 지금이라도 고개 숙여 우리에게 잘못을 빌어봐. 개새끼처럼 잘못을 빌고 우리 발이라도 핥아보라구. 그럼 혹시 내가 여기서 그만둘지도 모르지. 네가 애원하는 모습을 찍는 것만 해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니까."
지환이 새끼가 이죽거리며 내게 조롱을 던졌다. 놈의 그 비웃음을 듣는 순간 마음 속에서는 서연이를 위해서라도 녀석에게 매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구석에서 강하게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실로 단순했다. 설령 내가 애원을 한다해도 지환이나 한수 새끼가 절대 여기서 멈출 만한 놈들은 아니라는 것 때문이었고, 또 거기다 나는 여전히 타임 리와인더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놈들이 나를 죽이지 않는 이상 나는 언젠가 그 시계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이 상황에 직면해서도 나는 여전히 그런 믿음을 갖고 있었다.
"아직도 고민할 여유가 있나보네. 그럼 좀 더 맛을 보여줘야지."
지환이 새끼는 분명 내가 애걸복걸 매달리는 모습을 즐기고 싶었던 것일 터였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나와 서연이가 이 곤혹에서 풀려날 길은 이미 없어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대답을 구태여 기다리지 않고 서연이에게로 몸을 돌리는 지환이 새끼를 보니 다시 한번 공포가 엄습했다.
"아읍!!"
지환이 놈은 가차없이 서연이 목에 채워진 줄을 잡아당기며 그와 동시에 반대손으로 서연이의 다리 사이 깊숙한 곳에다 손가락을 푹 찔러넣었다. 젖지도 않은 생보지를 거칠게 손가락이 비집고 들자 서연이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통으로 가득한 소리를 냈다.
한수 녀석이 한발짝 뒤로 물러나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쩝 다시는 것이 보였다. 어물쩍거리다가 서연이의 은밀한 곳을 탐할 기회를 지환이에게 빼앗겨버렸다고 생각하는게 분명했다. 이 순간만은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생겨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소유했던 나에게도 그런 기적만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우리 서연이 몸이나 한번 맛볼까? 이렇게 보니까 옛날 생각나는걸."
가면을 쓴 채로 지환이 새끼는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졌다. 마침내 알몸이 된 지환이 새끼가 양물을 덜렁거리며 서연이 앞에 서자, 그녀는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눈물 어린 눈꺼풀을 꾹 닫으며 놈의 시선을 피했다. 한수 새끼는 지환이의 노예라도 된 듯이 놈이 옷을 벗으니 자신도 따라 벗고는, 하늘을 향해 발딱 솟아오른 뭉툭한 좆을 자신의 손으로 어루만지며 다시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예전에 우리 잘 사귀었잖아. 안 그래? 오랜만에 보는 옛남친의 좆이 반갑진 않아?"
"........"
그러자 서연이가 꾹 감았던 눈을 뜨고 표독스러운 얼굴을 한 채, 지환이를 노려보았다. 알몸이 되어 묶여있는 와중에도 그런 앙칼진 표정이 지환이의 뭔가를 자극했는지, 놈은 서연이의 입 주변을 틀어막고 있던 테이프를 떼내기 시작했다. 입에 단단히 붙어있었던 테이프가 떨어져나가면서 서연이가 움찔거리며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마침내 그녀의 입을 구속하고 있었던 테이프 쪼가리가 사라졌다. 사정없이 떼어낸 흔적을 차마 감추지 못하고 그녀의 입 주변이 온통 벌개져있었다. 억지로 눈물을 삼키고 있는 서연이에게 지환이가 말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네. 어때? 너라도 한번 애원해볼래? 비록 니가 걸레같은 년이긴 해도 하는거봐서 좀 부드럽게 다뤄줄 수도 있어. 기왕 이렇게 된거 서로 즐기면서 하면 좋잖아. 그 편이 최성진 저 놈에게도 훨씬 괴로울 테고. 흐흐. 네가 고분고분하게 굴기만 하면 충분히 너도 즐길 수 있게 해줄게."
"미친 새끼...."
"뭐?"
서연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흘러나온 한 마디를 듣는 순간 지환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서도 놈의 얼굴을 표독스럽게 올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옛 남친의 좆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 쓰레기 같은 자지 어서 내 눈앞에서 치워버려."
"......."
"서로 즐기면서 하자고? 넌 예나 지금이나 날 만족시키지 못해. 섹스든 강간이든 네 형편 없는 좆으로는 어느 여자도 만족시키지 못할걸. 잘난거 쥐뿔도 없는 주제에 번드르르한 얼굴 하나로 항상 여자를 네 발 아래 두려고 하잖아. 넌 겨우 그 정도 수준의 남자일 뿐이야. 넌 내가 왜 성진 선배와 바람이 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고 나면 더 까무러칠거야. 세상에는 나를 강간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남자도 있으니까."
"이 미친 년이...."
지나간 옛 여자로부터의 모욕은 이미 나로인해 헤집어져있었던 지환이의 콤플렉스를 더더욱 자극한 모양이었다. 여지껏 계속해서 능글맞은 비웃음만을 떠올리고 있었던 지환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이글거리는 분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넌 실수한 거야. 영상을 퍼뜨려서 나를 창녀로 만들겠다고? 웃기지 마. 난 예나 지금이나 그런거 겁 안나. 너희는 반드시 죄값을 치르게 될 거야. 너희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하던 간에 너희가 받게 될 형벌만 늘어날걸. 똑똑히 기억해. 절대 합의 같은건 없어."
서연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또 한번 예전의 어느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서연이를 수차례 반복해서 강간했을 때, 윤간이 화간으로 바뀌기 전에 그녀는 내게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극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기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은 그녀의 놀라운 점이었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서는 그녀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이 되려 지환이를 자극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지환이가 딱딱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더니, 곧 가방을 뒤져 날카로운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무식할 정도로 크게 느껴지는 가위였다. 서늘하게 날이 선 가위를 지환이가 쩔컥거리자 서연이는 본능적으로 뭔가 위험함을 느끼고 표정이 다소 딱딱하게 굳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
나는 지환이가 그 가위를 가지고 서연이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지 두려웠지만, 내 두려움은 잘못 된 것이었다. 놈은 그 가위를 서연이에게 쓰려고 꺼내든 것이 아니었다. 가위를 손에 쥔 채로 지환이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이어진 놈의 행동은 나는 물론이고 서연이까지 경악하게 만들었다.
"니가 사랑하는 이 새끼 좆이 그렇게 훌륭하단 말이지? 그럼 이걸 이렇게 잘라버리면 어떻게 될까? 아마 너도 좆나게 아쉽겠지? 그래, 어차피 임자 있는 년 보지나 따먹고 다니는 쓰레기 새끼한텐 거세가 어울리지. 자, 어디 한번 잘라볼까? 응?"
"미... 미친 새끼... 그만 둬."
지환이 놈이 가위의 아가리를 벌려 그 사이로 내 좆을 잡아 밀어넣었다. 두려움 앞에 쪼그라진 내 자지가 섬뜩한 모습을 하고 있는 가위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갖혔다. 이대로 놈이 손가락에 힘을 주기만 하면 양 옆에서 가위날이 날아와 내 물건을 잘라놓을 판이었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걸 감출 수가 없었다.
"응? 이대로 조금만 더 힘주면 싹둑 잘릴 텐데. 어때? 니가 사랑하는 이 새끼 자지가 잘리는걸 보고 싶어?"
"그만 두라고!!"
"한수 선배, 그 년 얼굴 잡아서 계속 억지로 보게 만들어요."
지환이의 지시에 한수 놈이 서연이의 턱을 우악스럽게 움켜쥐더니 그대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도록 얼굴을 고정시켰다. 그 와중에도 한수 새끼는 서연이를 마치 먹음직스런 과일이라도 되는 듯이 그녀의 뺨을 추잡스런 자신의 혀로 낼름 핥아올렸다. 서연이는 혐오감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내게 가위를 겨누고 있는 지환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 이제 조금만 더 힘 주면...."
지환이는 마치 나와 서연이를 시험이라도 하듯이 슬금슬금 가위날을 가운데로 모으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낀 나의 양물이 마치 벌벌 떨고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이를 꾹 악물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자꾸만 타임 리와인더의 기능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타임 리와인더는 몸의 상태까지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었기에, 만약 지환이 놈이 여기서 정말로 그런 짓을 해버린다면 난 영락없이 평생 불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오싹한 공포가 밀려들어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제발 그만해.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하지 마...."
가위날이 자지를 파고 들 만큼 가까이 모이자, 서연이가 발악하듯 소리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그제야 지환이는 만족스러운 듯이 씨익 웃으며 내 물건에서 가위를 거두고는 나를 향해 비웃듯이 또 한차례의 조롱을 가했다.
"아무래도 너보단 서연이 쪽이 마음이 더 깊은가봐. 너는 저 년을 위해서 결코 애원하지 않았는데, 저 년은 너를 위해서 금방 이렇게 꼬리를 내리는걸. 참 감동적이야. 나도 모르게 질투가 나려고 하는걸. 크크...."
"........"
아무리 자존심을 세운다해도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후유증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극심한 공포로 질렸던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는 것도 느끼지 못한채 나는 말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놈은 그런 내 모습이 즐거운지 얼굴 가득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서연이에게로 돌아갔다.
"잘 들어. 네가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으면 방금 봤던 것처럼 네 자랑스런 남친은 오늘 고자가 되고 말거야. 그건 너도 싫지?"
"......."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서연이가 입술을 꾹 깨문 채 지환이의 시선을 피했다.
"저 새끼 자지 썰리는거 보기 싫으면 내게 그따위 건방진 모습 보이지 마. 알았어?"
"아, 알았어....! 너희들 원하는 대로 대주면 되는거 아니야? 그, 그러니까 빨리 하고 끝내기나 해."
차라리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려는 것이 서연이의 생각인 것 같았다. 물론 그녀의 그런 생각은 적어도 나보다는 현실적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저 두 놈에게 유린 당한다는 것은 내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환이는 내 굴욕감을 밑바닥까지 쥐어짜기 전에는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아니. 겨우 그런 시시한 섹스 따위로는 안 되지."
"뭐....?"
지환이 놈은 가위를 가방 안에 도로 집어넣고는 안쪽에서 다른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의약품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나였지만 그게 주사기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색깔이 없는 투명한 약물을 담은 채 바늘을 세우고 있는 피스톤 주사기를 보자, 또 한 차례 알 수 없는 공포가 엄습했다.
"이건 박현아 그 여자가 아주 가끔 쓰는 약물이라더군. 좀 더 특별한 방식을 즐기고 싶을 때 쓴다나."
"그.... 그게 뭐야."
여지껏 닫고 있었던 내 입이 간신히 열렸다. 그걸 묻는다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놈이 그것을 꺼내든 것을 보면 절대 평범한 물건은 아닐 것이니....
"돼지발정제만큼이나 강력하다는 최음제야. 환각성분만 따로 정제해서 쓰기도 한다지만 기본적으로 위험한 약물이라 정상적으론 구할 수가 없게 되어있는데. 참 신기한 여자지.... 최성진 네놈은 그 여자가 이렇게까지 무서운 년일거라곤 아마 생각 못했을걸."
"미... 미친, 뭘 하려는 거야."
지환이 놈은 내게 더 답해주지 않았다. 놈은 주사기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 서연이 앞까지 다가갔다. 본능적인 공포로 표정이 굳은 서연이가 의자를 덜컹거리며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한수의 손에 의해 제지당했고, 결국 지환이는 가차없이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 주사 바늘을 꽂았다.
"아얏....!"
따끔하게 바늘이 살을 파고들자 서연이가 눈을 찡그리며 몸을 움츠렸다. 주사기 안에 있는 약물이 피스톤을 따라 그녀의 몸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몸에 지독한 오한이 찾아오는 것만 같았다.
"치사량을 훌쩍 넘겼으니까 아마 너도 곧 기분이 달라질걸. 싫어도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다니 참 신기하겠지? 하하하. 그럼 어디 약효가 돌기 전에....."
지환이 놈이 서연이의 입가에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양물을 억지로 들이밀었다.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있었던 서연이는 그 물건을 못본 척 하려 했지만 되려 지환이 놈은 서연이의 입술에 쿡쿡 자지 끝을 찔러대며 그 반응을 즐겼다.
"아, 혹시 니가 싫어하는 내 좆이라서 그런거야? 그럼 어디 새로운 남자 좆은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번 볼까?"
놈은 서연이의 입을 두 손으로 억지로 열어젖히고는, 한수를 향해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한수 녀석이 함박 웃음을 짓더니 딸딸이를 치고 있던 자신의 뭉툭한 자지를 덜렁이며 서연이에게로 다가갔다.
"한수 선배 좆 한번 빨아봐. 다른 남자 좆은 얼마나 잘 먹는지 한번 보게."
"........"
억지로 우악스럽게 입이 벌려진 서연이가 의자에 결박된 사지를 부르르 떨면서 혐오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한수 녀석은 이미 극한까지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당장이라도 한수 녀석의 좆대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것을 간신히 억눌러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난 분명히 말했어. 네가 말 안들으면 오늘 네 남친은 고자가 될 거라고."
"........"
지독한 놈이었다. 내가 서연이를 강간했던 수차례의 기억들 중에서 혹시 내 모습이 그녀에게 저렇게 보였던 순간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게 무슨 쓸모없는 생각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서연이가 결정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으니 한수 선배가 리드해보세요. 얼마나 잘 빨아주는지 한번 물려봐요."
"흐, 흐흐. 진짜 내가 먼저 해봐도 돼?"
"그럼요. 난 서연이 먹어본 적이 있지만 선배는 아직 없잖아요. 그동안 서연이 생각하면서 딸딸이도 많이 치셨을텐데 오늘 소원 한번 풀어봐야죠."
"흐흐, 고맙다 진짜."
감격이라도 받은 듯한 얼굴로 한수 새끼는 서연이의 억지로 벌어진 입 속에 자신의 양물을 푸욱 하고 틀어박았다. 입 안에 순식간에 낯선 남자의 자지가 들어오자 서연이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 구역질이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수는 서연이의 입 안에 삽입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미 황홀경을 느끼는지 엉덩이를 부들거리며 앞뒤로 피스톤질을 해나가고 있었다.
"으읍... 으읍.... 흡....."
"하하하, 어때요 선배? 서연이의 입보지가 맘에 들어요?"
"아.... 씨발.... 기분 죽인다.... 아아...."
서연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그저 놈의 혐오스런 좆을 받아물기만 하고 있었지만, 한수 새끼에게는 그러한 상황 자체가 너무도 큰 자극인지 이미 온몸으로 쾌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 또한 좀 전까지의 공포를 잊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너무도 무력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이 끔찍한 상황이 대체 어디까지 이어질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에 더욱 두려웠다. 게다가 서연이의 몸이 점점 더 붉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약물의 효과가 돌기 시작한 걸까....
"제발.... 누구라도 좀 와보란 말이야. 이 개같은 호텔은 왜 이렇게 허술한 거냐고...."
혹시라도 팔을 결박하고 있는 바인더끈이 끊어질까 싶어 있는 힘껏 몸부림을 치며 팔다리를 버둥거렸지만 마치 생선이 펄떡이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지환이 놈은 한수의 자지를 받아물고 있는 서연이의 모습과, 발악하는 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만면에 희열로 가득 찬 웃음을 짓고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안녕하세요, 상상의신비입니다.
43장이 너무 늦어버렸죠....
늘 그랬지만 죄송하단 말로는 다 표현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타임 리와인더 1부를 9월 중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변함 없습니다
8월에 너무 연재가 뜸했으니 그만큼 9월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겠지요
많은 분들이 줄곧 연중에 대한 우려를 전하셔서 안타까웠습니다
지난 글을 통해서도 밝혔지만 저는 절대 연중에 대한 생각이 없습니다
아마 일이 바빠서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 진작 휴재나 연재 중단 공지를 내렸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은 저도 꼭 마무리를 보여드리고 싶단 마음 때문이니 그런 걱정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가 8월초 무렵부터 거의 소라에 들어오질 못했습니다
소라 쪽지는 일정 기간 쪽지함에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어 버리더군요
혹시 그동안 제게 쪽지를 보내주신 분이 있다면.... 수고스럽겠지만 다시 한번만 보내주실런지요? ㅠㅠ
기왕이면 모든 분에게 답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라 제가 답하지 못하고 지워진 쪽지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다음 화는 비교적 빨리 올리겠습니다
그럼 좋은 밤 되세요 ^^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43장
벼락 같은 물세례가 몸에 끼얹어졌다. 기분 나쁜 충격이 의식을 억지로 늪에서 끌어올리듯이 내 정신을 들게 만들었다. 강제로 정신을 차린 내가 잘 떠지지도 않는 눈을 끔뻑여 간신히 고개를 들어보니, 희미하게 흔들리는 누군가의 실루엣이 보였다.
"누구였지..."
그 얼굴은 분명 내가 본 적이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름이 쉽게 떠오르질 않았다. 그만큼 정신이 멍멍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얼굴의 주인이 이 상황에서 내가 도저히 짐작조차 하지 못한 인물이었던 이유가 더 컸을 것이다.
"한... 수?"
간신히 입이 열리고,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눈 앞에서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는 한수의 얼굴이 내게 기분 나쁜 웃음을 지었다. 그 와중에도 굉장히 저열하게 느껴지는 그런 웃음이었다.
"네가 어떻게...."
현실감각이 돌아오지 않은 어리벙벙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지만 그 질문은 끝까지 이어지지도 못했다. 갑자기 날아든 한수 놈의 맹렬한 발길질을 복부에 얻어맞고 나는 속이 끊어지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앞으로 고꾸라졌다.
"커헉! 쿨럭!"
상체가 앞으로 쓰러졌지만 얼굴이 바닥에 닿지 않았다. 등 뒤에서 양팔이 뭔가에 의해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두 팔이 결박된 채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던 것이다. 쇼크를 받은 몸이 버둥거릴 자유조차 찾지 못하고 그저 맥없이 구역질하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어리버리 까고 있네. 새끼가."
그 극심한 고통만 아니었어도 나는 아마 이것이 꿈이라 여겼을 것이다. 상체가 고꾸라진 내가 스스로 몸을 일으키지도 못하자, 한수 놈이 내 뒤통수를 부여잡고는 억지로 몸을 일으켜 앞을 보게 만들었다. 그러자 상황을 제대로 판단할 겨를도 없이,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또 한 차례의 광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서, 서연아...."
"으읍.... 흡...."
나와 마찬가지로 서연이 또한 팔다리가 밧줄 따위로 결박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주변이 온통 테이프로 감겨 있었고, 나와 다르게 의자에 강제로 앉혀져 있었다. 의자의 등받이 뒤로 두 손목이 묶인 채, 목소리를 낼 자유마저 뺏긴 채로 그녀가 몸을 버둥거리고 있었다.
여전히 현실감각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그녀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두 손이 부르르 떨렸다. 서연이가 그런 꼴이 되어있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어질 일인데, 그런 그녀의 모습이 속옷 하나 걸치지 못한 전라인 채였던 것이다.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한수 새끼가 서연이의 알몸을 보고 있다는 것을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이 개새끼가...."
"워, 진정하세요 선배. 아직 건드리지도 않았으니까."
버럭 고함을 지르려다 말고, 나는 등 뒤에 또다른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뒤쪽에 서 있었던 누군가의 그 목소리는 치가 떨릴 정도로 내게 익숙한 느낌을 주었다. 뚜벅거리는 발소리가 원을 그리듯이 뒤쪽에서부터 내 앞으로 걸어왔다.
"이 정도로 놀라시면 안 되죠. 이제 겨우 시작인데."
"너...."
지환이 새끼의 능글맞은 얼굴을 마주하자 이가 부드득 갈렸다. 놈은 한수와 마찬가지로 저열하고 기분 나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이 아니었다. 지환이에 이어서 이번엔 날카로운 하이힐의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뒤쪽에서부터 내 앞까지 다가온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실루엣은 남자의 것이 아니었다. 지환이 옆으로 다가와 멈춰선 현아의 얼굴을 올려다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현아는 비록 지환이나 한수 놈들처럼 나를 비웃는 얼굴로 내려다보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그 싸늘하게 굳은 표정은 여지껏 내가 알아왔던 그녀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현아 씨?"
그녀는 내 목소리를 완전히 묵살했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라도 보는 듯한 눈으로 나에게 잠깐 시선을 두었던 그녀가 이내 몸을 돌려 현관 쪽으로 걸었다. 그러자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지환이 새끼가 물었다.
"어디 가?"
"키를 돌려줘야 해. 오래 지니고 있으면 지배인이 괜한 의심을 할 테니까. 어차피 이제 필요없잖아?"
현아가 품에서 금빛으로 빛나는 자그마한 무언가를 꺼내 흔들어보였다. 그것은 이 호텔의 일반적인 카드키와 같은 형태를 하고 있었지만, 도금처리가 되어 반짝이는 것을 보면 결코 평범한 키는 아니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호텔의 마스터키임을 알 수 있었다.
"아, 그래. 천천히 다녀와. 우린 재미 좀 보고 있을 테니까. 킥킥."
벌레가 등을 기어가는 듯한 불길한 느낌이 스멀스멀 온 몸을 덮쳤다. 그녀가 이 방에서 나가는 순간부터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들이 눈 앞에서 벌어질 것만 같았다. 그것은 직감이라기보단 차라리 확신이었다. 나는 움직여지지도 않는 몸을 억지로 틀어 현아의 뒷모습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쳤다.
"야, 박현아! 너 지금 뭐하는 거야! 당장 이거 안 풀어!? 당신 지금 무슨 실수를 하고 있는지.... 커흑!"
한수 새끼의 발길질이 다시 한번 등에 사정없이 꽂혔다. 충격을 이기지 못한 상체가 다시 한번 아래로 쓰러졌다가, 결박된 양팔 때문에 허공에서 힘없이 대롱거렸다. 입이 틀어막힌 서연이가 어떻게든 소리를 질러보려고 묶인 양발을 동동 구르며 몸부림을 쳤지만 그 소리는 테이프에 가로막혀 목구멍 밖으로 나오지도 못했다.
"......."
방을 나서려던 현아가 우뚝 걸음을 멈추고 나를 뒤돌아보았다. 이 갑작스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내가 지금 대화를 시도해야 할 상대가 있다면 적어도 이 방 안에서는 그녀가 유일했다. 나가려다 말고 그녀가 다시 몸을 돌려 내 쪽으로 걸어오자 나는 어떻게든 그녀를 설득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하지만 내 앞에 당도한 그녀가 사정없이 내 얼굴을 후려치는 순간, 나는 내가 잘못 생각했음을 깨달았다. 애초에 이 방 안에 지금 나와 대화를 하고 싶은 상대 따윈 없었던 것이다.
"입 닥쳐."
"혀, 현아 씨. 당신 지금...."
그녀에게 뺨을 맞은 적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지금 맞은 따귀는 그 때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위협적이었다. 나를 내려치는 그녀의 손에, 혐오하는 상대에 대한 증오심이 한껏 스며있었다.
"난 당신이 정말 미워.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
현아는 내 앞에 무릎을 쪼그리고 앉아 나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내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는 그녀의 눈에서 문득, 로비에서 날 바라보았던 그녀의 오싹한 시선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지금까지 수많은 남자들을 미워하려고 애썼지만 누군가를 이렇게나 진심으로 증오해 본 적은 당신이 겨우 두 번째야. 첫 번째가 내 동생을 망쳐놓은 그 개새끼들이고, 그 다음이 바로 당신이지. 내게 있어선 그 짐승 같은 놈들이나 당신이나 아무 것도 다를 바가 없어. 하지만 우습게도 내 동생은 그런 당신을 사랑하고 있으니....."
"........"
얼굴이 맞닿을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차가움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현아는 말을 이어갔다. 새삼 그제야, 내가 현아에게 했던 행동들이 그녀에게는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 떠올릴 수 있었지만 이제와서 그런 생각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거 알아? 난 어제 평생 살면서 느껴봤던 것 중에 가장 심한 허무함에 시달렸어. 현주가 당신에게 몸을 허락하는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치 낭떠러지 밑으로 추락하는 것만 같았지. 나는 내 동생이 트라우마로부터 벗어나길 줄곧 원해왔지만, 결국 그걸 가능하게 한 사람이 다른 사람도 아닌 당신이라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어. 나는 당신이 저급한 인간쓰레기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지만, 현주는 그런 당신을 이미 마음 속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게.... 날 정말로 미치게 만들었어. 도저히 견딜 수 없게 만들었다구."
"당신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거야.... 당신이 이러는거 현주가 알면 좋아할 것 같아?"
"현주가 알면?"
현아는 다시 한번 내 뺨을 있는 힘껏 철썩하고 후려쳤다. 그러고나서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단 듯 숨조차 헐떡이지 않고, 똑바로 내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그럴 일은 없어. 왜냐하면 이게 내가 지금껏 남자들을 지배해왔던 방식이거든. 나는 당신을 현주로부터 반드시 떨어뜨려야 할 기생충이라고 생각하지만, 현주가 굳이 당신의 실체를 알고 또다시 상처받는건 원치 않아. 그러니 당신 스스로 내 동생에게서 떨어져나가게끔 당신을 휘두를 수 밖에."
"그게 무슨...."
이해되지 않는 말을 남기고 현아는 몸을 일으켰다. 자리에서 일어난 현아가 눈짓을 보내자 그 즉시 지환이 놈은 어디서 꺼냈는지도 모를 묵직한 검은색의 캠코더를 들어보였다. 놈이 거치대를 펴고 캠코더를 설치하는 모습을 보자 마음 속의 불안함은 더욱 커졌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내가 남자들의 약점을 잡는 방법을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텐데. 당신도 이젠 그 수많은 남자들 중 하나가 되는 것 뿐이야. 물론 이제껏 내가 농락해왔던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이겠지만."
룸의 정중앙에 거치대와 함께 캠코더가 놓였고, 뿐만 아니라 나와 서연이 근처에도 휴대용 캠코더가 하나씩 더 설치되었다. 전라가 되어있는 자신의 몸 앞에 캠코더가 놓이자 서연이가 흠칫 놀라며 다시 한번 발버둥을 쳤으나 의자에 팔다리가 묶여있는 그녀는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현아는 그런 서연이의 모습을 딱하다는 듯 내려다보더니 그녀를 향해 또각또각 다가가 말했다.
"같은 여자로서 당신에겐 정말 미안하네요. 난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고 싶진 않았지만, 우리 중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선 꼭 당신을 이용해야만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치정관계에 휘말린 것치고는 너무 가혹한 대가를 치르는 것 같지만, 이번 일을 교훈 삼아 앞으로는 절대 다른 사람의 남자를 탐내거나 하지 마세요."
"으읍.... 읍....."
입이 막혀 필사적으로 버둥거리는 서연이의 모습에도 아랑곳 않고, 현아는 평소에 지니고 다니던 백을 뒤져 뭔가를 꺼냈다. 투박한 가죽소재로 되어 있는 그 길쭉한 것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물건이었다. 내가 현아에게 직접 채워보기도 했던 바로 그 개목걸이였다.
현아는 평소보다 유독 투박하게 보이는 그 개목걸이를 허공에 길게 펼치더니, 그것을 서연이의 목에 채웠다.
"뭐, 뭐하는 거야?"
내 질문을 가차없이 무시한 그녀는 룸 중앙의 캠코더가 서연이를 향해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등을 돌렸다.
"그럼 난 나중에 올게."
"기왕 이렇게 된거 당신도 좀 구경이나 하는게 어때? 당신도 저 놈에게 쌓인 것들이 많을 텐데."
히죽거리는 얼굴로 지환이가 그녀에게 물었다.
"됐어. 최성진 저 인간 싫은 거야 마찬가지지만, 당신들과 나는 서로 원하는게 다르니까. 게다가 당신들이 여기서 하려는 짓을 계속 보고 있다간 예전의 싫은 기억이 떠오를 것 같거든."
"그래? 그럼 뭐 마음대로 해."
현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지환이, 한수, 나, 그리고 의자에 묶인 서연이만이 룸 안에 남게되자 내가 확신했던 그 불길한 공포가 삽시간에 현실이 되어 나를 덮쳤다.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지환이 놈이 서연이에게로 다가가, 현아가 그녀에게 채워두었던 개목걸이의 목줄을 힘껏 잡아당겼다.
"으흐읍!!"
테이프에 가로막힌 서연이의 비명소리는 맥없이 묻혀버렸다. 의자에 결박당한 몸은 움직이지도 못한 채, 지환이가 잡아당기는대로 서연이의 머리카락과 얼굴이 허공에서 사정없이 흔들렸다.
"야 이 개새끼야! 그만 안 둬!"
한차례 고함을 지르자마자 어김없이 한수 녀석이 다시 한번 구둣발로 나를 세차게 짓밟았다. 목소리는커녕 숨 쉬기조차 힘이 들어 내가 컥컥거리자 서연이가 그 와중에도 더욱 애절하게 비명을 지르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자 지환이 놈이 그녀의 반응을 즐기듯이 서연이의 턱을 매만졌다.
"저 놈이 그렇게 걱정 돼? 우리가 헤어진지 얼마나 지났다고, 그 사이에 다른 남자에게 그렇게 마음이 깊어진 거야? 그것도 저런 형편없는 찌질이에게?"
"읍! 으으읍!"
공포와 수치심으로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서연이가 지환이를 향해 뭐라고 소리쳤지만 그 목소리는 역시 밖으로 나오지 못했다. 서연이의 턱을 감싸쥔 지환이는 그녀의 고개를 치켜들어 자신을 마주보도록 만들고는 여유롭게 말을 이었다.
"이렇게보니 너하고 헤어지던 날이 생각나네. 넌 굉장히 단호하게 말했었지. 하지만 난 사실 그 전부터 계속 느끼고 있었어. 너한테 다른 사람이 생긴 것 같다고 말이야. 그게 다른 사람도 아닌 최성진 저 찌질이였을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
"읍...."
"난 이제 너에게 아무 감정도 없어. 날 떠나서 저런 찌질이 같은 놈하고 놀아난 걸레같은 년에게 내가 더이상 무슨 미련을 가지겠어? 넌 그냥 내가 최성진에게 복수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야. 하지만 복수라는건 원래 배로 갚아줘야 계산이 맞는거 아니겠냐구. 저 놈에게 더더욱 심한 굴욕을 안겨주기 위해서 어떤 방법을 쓰는게 좋을까 하다가 생각난 것이 한수 선배였지."
놈은 이제 서연이를 향해 말하고 있지 않았다. 개목줄을 채운 서연이의 얼굴을 마치 장난감처럼 흔들어가며, 녀석은 나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조소를 날리듯이 놈은 설명을 이어갔다.
"넌 내가 모른다고 생각한 모양이지만, 난 사실 너희 두 년놈들이 사귀고 있다는걸 이미 알고 있었어. 휴학은 했지만 학교 소식은 여전히 듣고 있었는데다 특히 너희 년놈들 이야기에는 관심이 많았지. 들으면 들을수록 이가 갈렸지만 난 계속해서 신경쓰고 있었어. 언젠간 내가 복수할 기회가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
말 한마디 한마디를 끊을 때마다 녀석은 서연이의 목에 채운 줄을 흔들어댔고 그녀의 머리는 놈의 손짓에 따라 여기저기로 흔들렸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녀의 새하얀 알몸을 보며 한수 녀석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연신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온 몸이 분노로 부르르 떨려오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함이 갈수록 커져갔다.
"그러던 차에 한수 선배 이야기도 듣게 됐지. 이 년이 한수 선배를 거절하고 너랑 사귀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학교에서도 꽤 유명했거든. 정말로 웃기는 일이지. 너희 년놈들이 예전에 계곡에서 떡치던 걸 봤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설마하니 진짜로 사귈거라곤 생각 못 했으니까. 게다가 이미 다른 여자도 사귀고 있었던 놈이 말이야."
그러고나서 놈은 현아가 사라진 룸의 문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사실 나는 그동안 너에게 복수하겠다는 생각 하나로 박현아, 저 여자를 계속 만나왔던 거였지. 어제 너에게서 듣게 된 말은 솔직히 충격적이었어. 그동안 나는 니 여친을 따먹으며 너에게 복수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좋아했었는데.... 그게 사실은 너와 박현아에게 놀아나고 있는 것밖에 되지 않았으니."
놈은 서연이의 목줄을 쥔 손을 놓고는 나에게 뚜벅뚜벅 다가왔다. 놈이 서연이에게서 떨어졌다는 사실에 마음을 놓을 여유도 없이, 다음 순간 놈은 내 얼굴에 씩 웃으며 침을 탁 뱉었다.
"내가 받은 충격과 수치심을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지만 그냥 복수만으론 너무 시시했어. 너에게 평생 못 잊을 만한 굴욕을 안겨줘야겠단 생각이 들더군. 그래서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기로 한 거야. 나와 이해관계가 정확하게 맞을 것 같은 사람이 마침 떠오른거지. 한수 선배라면 당연히 이 일에 관심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나는 그 길로 당장 선배를 찾았어. 선배를 이 일에 끌어들이는건 생각보다 훨씬 더 쉬운 일이었지."
"흐흐, 끌어들이다니. 그렇게 말하니까 서운한데. 난 내가 원해서 여기에 있는 거라고."
"그렇죠. 어찌됐든 우린 오늘 모두 원하는 바를 이룰 거에요."
"물론이지. 난 사실 최성진 저 놈을 괴롭히는 데에도 흥미가 있지만 그 이상으로 서연이 몸에 더 관심이 많으니까. 얄미운 놈에게 매운 맛도 제대로 보여주고, 꿈에 그리던 서연이랑 실컷 재미도 보고. 이것만큼 내게 큰 선물이 어디 있겠냐고. 하하하."
한수와 지환이 놈들이 주고 받는 대화를 들을수록 미칠 듯한 감정이 속에서부터 꾸역꾸역 차올랐다. 그 감정이 얼굴로 드러나는 것을 두 놈도 즐기고 있는지, 여전히 나를 내려다보는 그 얼굴에 한층 더 비웃음이 짙어졌다.
"나와 한수 선배, 그리고 박현아. 세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지. 바로 너, 최성진이라는 놈을 용서할 수 없다는 공통점 말이야. 가진 것 하나 없는 찌질이 주제에 생각보다 적을 너무 많이 만들었어. 오늘 니 주제를 제대로 가르쳐 줄테니까 앞으로는 나대지말고 살라구."
그 상황에서 내가 놈들에게 비굴하게 애걸복걸 매달려 빌지 않았던 이유는, 무섭다기보다는 분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누구인가. 나는 시간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전능한 능력을 지닌 인간이다. 내가 마음 먹기에 따라서, 능력만 쓸 수 있다면 이 두 놈을 응징하는 것 따위는 손바닥 뒤집는 것 만큼이나 쉬운 일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능력을 자유롭게 쓸 수 없는 지금 이 상황이 나로서는 미칠 듯이 답답할 수 밖에 없었다. 모든 것은 타임 리와인더를 손에 쥐기만 하면 해결될 일임에도, 나는 지금 양팔이 묶여있는데다가 한술 더 떠서 시계를 보관하고 있는 내 상의 점퍼는 룸의 바닥 어딘가에 덩그러니 뒹굴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용기라기보다는 일종의 자존심이었다. 전능한 능력을 지닌 인간으로서의 존엄한 자존심.... 시계를 돌릴 수만 있다면 내가 이길 수 있음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이 극한의 상황에서도 놈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비굴한 모습을 보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그 얼마나 쓸 데 없는 자존심이었던가.
"개새끼들..... 경고하는데 지금이라도 그만 둬라. 내가 마음만 먹으면 너희를....."
그 으름장에 대한 대가로 돌아온 것은 한수 새끼의 무자비한 발길질 세례였다. 놈은 사정없이 내 등과 머리를 찍어내렸다. 맞은 곳이 터져 피가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서연이는 입이 막힌 와중에도 울며불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아무도 들어줄 사람은 없었다.
나는 그 와중에 한수 놈의 발길질이 몸에 한차례씩 꽂힐 때마다 냉혹한 진실이 하나둘씩 나를 강타하는 것 같아서 갈수록 더없이 두려워졌다.
"네까짓 놈들이 감히.... 시계만 손에 쥘 수 있으면....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이런 벌레같은 놈들 쯤은....."
쉴 새 없이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음 속에서 또 하나의 목소리가 내게 나지막히 진실을 전해오고 있었다.
너는 전능하지 않아.
너는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인간이야.
눈 앞에 있는 이 두 사람보다도 더 나약한 인간일 뿐인걸.
그 시계를 사용할 수 없다면 너는 형편없는 예전의 최성진일 뿐이야.
스스로를 위대하다고 착각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비굴하게 애원하라고.
그게 너에게 어울리는 거니까.
"씨발...."
바닥 어딘가에 허망하게 굴러다니고 있을 타임 리와인더가 그렇게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수가 없었다. 애초에 타임 리와인더가 없는 나는 그저 별 볼 일 없는 찌질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해왔던, 지금까지는 굳이 떠올릴 필요가 없었던 진실이 가슴을 후벼파듯 잔혹한 모습으로 도래한 것이다.
주먹이 부르르 떨리며 깨물은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마음만 먹으면 뭐? 마음만 먹으면 니가 어쩔 건데?"
한수 새끼는, 내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도 모르는 채 감히 나에게 끊임없이 이죽거리고 있었다. 비록 여전히 전능한 인간으로서의 자존심을 굽힐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더 기를 세웠다간 사정없는 구타만이 남을 거라는걸 알기에 나는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병신. 너는 우리 계획을 니 스스로 도와준거나 마찬가지야. 니가 주서연을 데리고 여기로 와줄거라곤 우리도 생각 못했으니까. 당분간 꾸준히 미행하면서 기회를 볼 생각이었는데 그 기회가 이렇게 빨리 찾아올 줄은 몰랐지. 우리로서는 여기만큼 일을 벌이기 좋은 곳이 없으니까. 박현아 그 여자의 도움으로 키까지 얻을 수 있었고."
지환이 놈은 여전히 신이 난 듯한 말투로 지껄여대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내가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 서연이의 흐느낌이 테이프에 가로막혀 읍읍대는 소리가 들렸다.
"넌 제 발로 우리 입 속으로 들어온거나 마찬가지라 이거야. 이제 남은건 쇼타임 뿐이지."
"서... 서연이는.... 서연이는 놔 줘. 서연이는 상관없잖아."
나는 마치 영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진부한 말을 했다. 전혀 통하지 않을 것임을 스스로 잘 알면서도.
"상관이 없다고? 글쎄, 아닐 거야. 네가 서연이를 아끼는 모습을 보일 수록 서연이가 오늘 당할 고생은 점점 더 심해질 거거든."
"개새끼들.... 너희는.... 반드시 내가....."
이마에 맺힌 핏방울이 눈으로 타고 들어와 시야가 붉게 물들었다. 그 와중에도 눈물을 줄줄 흘리는 서연이의 얼굴이 보였다. 어떻게든 그녀를 안심시켜주고 싶었지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오히려 욕설에 대한 응징으로 한수 녀석에게 또 한차례 얻어맞고 말았다.
"그쯤 하세요 한수 선배. 그 놈을 두들기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방법이 여기 있잖아요. 선배가 그토록 원했던."
"흐... 흐흐... 그렇지."
한수는 드디어 고대하던 시간이 다가왔다는 듯, 군침을 삼키는 소리를 숨길 생각도 않은채 마침내 나에게 퍼붓던 구타를 멈추고는 서연이를 향해 뚜벅거리며 다가갔다. 서연이를 향해 걸어가는 놈의 뒷모습이 너무나도 혐오스러워 나는 얻어맞던 것도 잊고 다시금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 씨발새끼들아! 당장 멈춰!! 내가 기필코 맹세하는데 그만두지 않으면 너희를 반드시 갈가리 찢어죽일 거니까!! 야이 개새끼야, 듣고 있어? 멈추라고, 니미 씨발 버러지 같은 새끼야!!!"
한수 새끼의 뒷모습에다 대고 온갖 욕을 퍼부었지만 놈은 다시 나를 구타하러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이 되려 나에겐 오히려 더욱 끔찍한 지옥의 시작이었다.
*
"으흐읍!!"
서연이의 필사적인 비명소리가 결국 테이프를 뚫지 못하고 결국 억눌린 메아리가 되어 입속에서만 맴돌았다. 군침을 질질 흘리다시피 하며 서연이의 알몸 구석구석을 수치스러울 정도로 샅샅이 살펴보던 한수 새끼가 급기야 그녀의 한쪽 가슴에 얼굴을 처박은 것이다.
눈 앞에서 서연이가 유린당하는 모습을 보자 나는 이성을 잃고 더더욱 고함을 질렀고, 그런 내 앞에 지환이 새끼는 허리를 굽히고 앉더니 히죽 웃음을 지었다.
"지금부터 똑바로 봐둬. 눈 앞에서 여친이 따먹히는 장면을 말이야. 그리고 무슨 기분인지 똑똑히 새겨두라고. 나도 예전에 그런 기분이었거든."
놈은 계곡에서의 일을 이야기한 것이겠지만 그 순간 내 머릿 속엔 왠지 모르게 과거의 어느 한 장면이 뇌리를 스쳤다. 서연이를 처음 강간했을 때 나는 지환이 새끼가 보는 앞에서 그녀를 희롱하기 위해 일부러 지환이에게 그 장면을 영상통화로 보여줬던 적이 있었다. 타임 리와인더로 시간을 되돌리면서 그 기억은 지환이에게서 잊혀졌겠지만 나는 그것이 왠지 지난 날의 내 행동을 고스란히 돌려받는 것 같아서 속이 울렁거렸다.
"흐흐... 흐흐흐... 기분 죽이는구만. 이게 서연이 빨통이란 말이지. 내가 너를 얼마나 먹고 싶었는데. 하지만 넌 날 가차없이 차버렸지. 너도 결국 이렇게 될 줄은 몰랐을 거야. 안 그래, 응?"
"으읍... 읍... 으읍...."
"난 하루 종일이라도 빨아줄 수 있어. 오늘 제대로 즐겨보자구."
아닌게 아니라, 서연이의 몸을 탐하는 한수 새끼의 모습은 그 옛날 내가 서연이를 강간하던 당시의 내 모습과 너무나도 닮아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죽어도 그걸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지금 내가 처한 이 상황이, 내가 저질렀던 것들에 대한 벌처럼 느껴질 것만 같아서 두려웠다.
한수 녀석은 추잡하게 쩝쩝거리는 소리를 일부러 더욱 크게 울려가며 서연이의 젖꼭지를 빨고 있었다. 보고 있는 나를 더욱 자극하기 위해서가 틀림 없었다. 지금 그녀는 두 사내놈의 욕정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나를 향한 복수의 수단이기도 한 것이었다.
"네.... 네놈들이.... 이러고도 무사할 것 같아?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아?"
마지막 자존심을 억지로 쥐어짜 지환이 새끼에게 위협을 가해보았다. 하지만 놈은 조소를 거두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앞에서 설치해두었던 중앙의 대형 캠코더와 두 대의 캠코더를 매만졌다.
"그래서 지금 이게 필요한거지. 박현아, 그 여자가 말했듯이 이게 바로 그 여자가 남자들을 지배하는 방식이거든. 난 그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진 않지만 적어도 이 상황에선 너에게 약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은데."
"무, 무슨.... 개소리야?"
"오늘 이 카메라엔 그야말로 온갖 장면들이 찍힐 거거든. 세상에 풀어졌다간 너희 두 년놈들이 차마 고개도 들고 살지 못할 정도로 수치스런 장면들이 말이야. 네가 신고를 하거나 내게 보복을 하려한다면 어디 맘대로 해봐. 너도 그렇지만, 특히 주서연 저 년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창년이 될 테니까. 어차피 난 이미 너에게 약점 하나가 잡힌 상태이니, 까짓 죄목 하나가 추가되는게 뭐 그리 대수겠어? 평생 네 눈치보며 벌벌 떨고 사는 것보다는 나도 네 약점 하나를 잡는게 훨씬 좋지 않겠냐는거지. 한수 선배야 뭐 뒤탈 걱정 없을거란 내 말만 믿고 생각없이 뛰어든 경우지만.... 흐흐."
서연이의 몸을 유린하느라 정신이 없는 한수 새끼에게 들리지 않도록, 지환이 놈은 능글맞은 웃음과 함께 각각의 캠코더를 조작했다. 그러고나서 놈은 별안간 내 몸을 가리고 있던 호텔 가운 한장을 벗겨내버렸다. 몸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라고는 그것 뿐이었기에 순식간에 적나라한 알몸이 되었지만 수치심보다는 놈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에 대한 의구심과 두려움이 더 컸다.
하지만 다리 사이에서 꼴사납게 덜렁이는 양물을 고스란히 드러낸 채로, 그 모습이 카메라 화면에 담기고 있다고 생각하니 뒤늦게 수치심마저 밀려들기 시작했다. 지환이 새끼는 카메라에서 한발짝 물러나 어디에선가 꺼내든 조잡한 형태의 가면을 얼굴에 착용했다. 입과 눈 부분이 뻥 뚫려있는 가면이었지만 이목구비를 감추기에는 충분한 물건이었다. 그러고나서 녀석은 한수에게도 똑같은 가면을 쓸 것을 지시했다.
서연이의 젖가슴을 짐승처럼 게걸스럽게 탐하던 한수 새끼는 지환이의 몇 차례에 걸친 부름 끝에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놈이 건네는 가면을 받아썼다. 이제 이 공간 안에서 얼굴을 노출시키고 있는 사람은 나와 서연이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지환이 놈은 마침내 중앙에 설치해두었던 대형 촬영용 캠코더의 스위치를 올렸다.
"호텔에서 떡치다말고 난입한 강도들에게 여친이 강간당하는 영상이라며 인터넷 여기저기에 퍼뜨리면 아주 반응이 뜨거울 거야. 그렇지? 넌 내가 못할거라 생각하겠지만 어디 한번 수작이라도 부려봐. 주서연은 차라리 자살이라도 하는게 나을 정도가 될 걸."
"이.... 개 같은...."
분노로 치를 떠는 모습 하나마저도 이미 녀석이 설치한 캠코더에 의해 모두 촬영되고 있었다. 게다가 저 멀리서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붉어진 서연이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차마 그 얼굴을 바라볼 자신이 없어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무력하게 주먹만 꽉 쥘 뿐이었다.
"자, 기회를 주지. 지금이라도 고개 숙여 우리에게 잘못을 빌어봐. 개새끼처럼 잘못을 빌고 우리 발이라도 핥아보라구. 그럼 혹시 내가 여기서 그만둘지도 모르지. 네가 애원하는 모습을 찍는 것만 해도 충분히 즐거운 일이니까."
지환이 새끼가 이죽거리며 내게 조롱을 던졌다. 놈의 그 비웃음을 듣는 순간 마음 속에서는 서연이를 위해서라도 녀석에게 매달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한구석에서 강하게 울려퍼졌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던 이유는 실로 단순했다. 설령 내가 애원을 한다해도 지환이나 한수 새끼가 절대 여기서 멈출 만한 놈들은 아니라는 것 때문이었고, 또 거기다 나는 여전히 타임 리와인더에 대한 집착을 놓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놈들이 나를 죽이지 않는 이상 나는 언젠가 그 시계를 손에 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다. 이 상황에 직면해서도 나는 여전히 그런 믿음을 갖고 있었다.
"아직도 고민할 여유가 있나보네. 그럼 좀 더 맛을 보여줘야지."
지환이 새끼는 분명 내가 애걸복걸 매달리는 모습을 즐기고 싶었던 것일 터였다.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나와 서연이가 이 곤혹에서 풀려날 길은 이미 없어보였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대답을 구태여 기다리지 않고 서연이에게로 몸을 돌리는 지환이 새끼를 보니 다시 한번 공포가 엄습했다.
"아읍!!"
지환이 놈은 가차없이 서연이 목에 채워진 줄을 잡아당기며 그와 동시에 반대손으로 서연이의 다리 사이 깊숙한 곳에다 손가락을 푹 찔러넣었다. 젖지도 않은 생보지를 거칠게 손가락이 비집고 들자 서연이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고통으로 가득한 소리를 냈다.
한수 녀석이 한발짝 뒤로 물러나 아쉬운 얼굴로 입맛을 쩝 다시는 것이 보였다. 어물쩍거리다가 서연이의 은밀한 곳을 탐할 기회를 지환이에게 빼앗겨버렸다고 생각하는게 분명했다. 이 순간만은 눈빛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생겨나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시간을 돌리는 능력을 소유했던 나에게도 그런 기적만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랜만에 우리 서연이 몸이나 한번 맛볼까? 이렇게 보니까 옛날 생각나는걸."
가면을 쓴 채로 지환이 새끼는 옷을 훌렁훌렁 벗어던졌다. 마침내 알몸이 된 지환이 새끼가 양물을 덜렁거리며 서연이 앞에 서자, 그녀는 꼴도 보기 싫다는 듯 눈물 어린 눈꺼풀을 꾹 닫으며 놈의 시선을 피했다. 한수 새끼는 지환이의 노예라도 된 듯이 놈이 옷을 벗으니 자신도 따라 벗고는, 하늘을 향해 발딱 솟아오른 뭉툭한 좆을 자신의 손으로 어루만지며 다시 차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예전에 우리 잘 사귀었잖아. 안 그래? 오랜만에 보는 옛남친의 좆이 반갑진 않아?"
"........"
그러자 서연이가 꾹 감았던 눈을 뜨고 표독스러운 얼굴을 한 채, 지환이를 노려보았다. 알몸이 되어 묶여있는 와중에도 그런 앙칼진 표정이 지환이의 뭔가를 자극했는지, 놈은 서연이의 입 주변을 틀어막고 있던 테이프를 떼내기 시작했다. 입에 단단히 붙어있었던 테이프가 떨어져나가면서 서연이가 움찔거리며 고통스런 표정을 지었다.
마침내 그녀의 입을 구속하고 있었던 테이프 쪼가리가 사라졌다. 사정없이 떼어낸 흔적을 차마 감추지 못하고 그녀의 입 주변이 온통 벌개져있었다. 억지로 눈물을 삼키고 있는 서연이에게 지환이가 말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표정이네. 어때? 너라도 한번 애원해볼래? 비록 니가 걸레같은 년이긴 해도 하는거봐서 좀 부드럽게 다뤄줄 수도 있어. 기왕 이렇게 된거 서로 즐기면서 하면 좋잖아. 그 편이 최성진 저 놈에게도 훨씬 괴로울 테고. 흐흐. 네가 고분고분하게 굴기만 하면 충분히 너도 즐길 수 있게 해줄게."
"미친 새끼...."
"뭐?"
서연이의 입에서 처음으로 흘러나온 한 마디를 듣는 순간 지환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하고서도 놈의 얼굴을 표독스럽게 올려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옛 남친의 좆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 쓰레기 같은 자지 어서 내 눈앞에서 치워버려."
"......."
"서로 즐기면서 하자고? 넌 예나 지금이나 날 만족시키지 못해. 섹스든 강간이든 네 형편 없는 좆으로는 어느 여자도 만족시키지 못할걸. 잘난거 쥐뿔도 없는 주제에 번드르르한 얼굴 하나로 항상 여자를 네 발 아래 두려고 하잖아. 넌 겨우 그 정도 수준의 남자일 뿐이야. 넌 내가 왜 성진 선배와 바람이 날 수 밖에 없었는지를 알고 나면 더 까무러칠거야. 세상에는 나를 강간으로 만족시킬 수 있는 남자도 있으니까."
"이 미친 년이...."
지나간 옛 여자로부터의 모욕은 이미 나로인해 헤집어져있었던 지환이의 콤플렉스를 더더욱 자극한 모양이었다. 여지껏 계속해서 능글맞은 비웃음만을 떠올리고 있었던 지환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이글거리는 분노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넌 실수한 거야. 영상을 퍼뜨려서 나를 창녀로 만들겠다고? 웃기지 마. 난 예나 지금이나 그런거 겁 안나. 너희는 반드시 죄값을 치르게 될 거야. 너희가 나에게 무슨 짓을 하던 간에 너희가 받게 될 형벌만 늘어날걸. 똑똑히 기억해. 절대 합의 같은건 없어."
서연이의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또 한번 예전의 어느 한 장면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서연이를 수차례 반복해서 강간했을 때, 윤간이 화간으로 바뀌기 전에 그녀는 내게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극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기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은 그녀의 놀라운 점이었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서는 그녀가 그러지 않기를 바랐다. 그것이 되려 지환이를 자극하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래?"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지환이가 딱딱한 표정으로 뚜벅뚜벅 어딘가를 향해 걸어가더니, 곧 가방을 뒤져 날카로운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무식할 정도로 크게 느껴지는 가위였다. 서늘하게 날이 선 가위를 지환이가 쩔컥거리자 서연이는 본능적으로 뭔가 위험함을 느끼고 표정이 다소 딱딱하게 굳었다.
"그럼 이건 어떨까."
나는 지환이가 그 가위를 가지고 서연이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지 두려웠지만, 내 두려움은 잘못 된 것이었다. 놈은 그 가위를 서연이에게 쓰려고 꺼내든 것이 아니었다. 가위를 손에 쥔 채로 지환이는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이어진 놈의 행동은 나는 물론이고 서연이까지 경악하게 만들었다.
"니가 사랑하는 이 새끼 좆이 그렇게 훌륭하단 말이지? 그럼 이걸 이렇게 잘라버리면 어떻게 될까? 아마 너도 좆나게 아쉽겠지? 그래, 어차피 임자 있는 년 보지나 따먹고 다니는 쓰레기 새끼한텐 거세가 어울리지. 자, 어디 한번 잘라볼까? 응?"
"미... 미친 새끼... 그만 둬."
지환이 놈이 가위의 아가리를 벌려 그 사이로 내 좆을 잡아 밀어넣었다. 두려움 앞에 쪼그라진 내 자지가 섬뜩한 모습을 하고 있는 가위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갖혔다. 이대로 놈이 손가락에 힘을 주기만 하면 양 옆에서 가위날이 날아와 내 물건을 잘라놓을 판이었다.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는걸 감출 수가 없었다.
"응? 이대로 조금만 더 힘주면 싹둑 잘릴 텐데. 어때? 니가 사랑하는 이 새끼 자지가 잘리는걸 보고 싶어?"
"그만 두라고!!"
"한수 선배, 그 년 얼굴 잡아서 계속 억지로 보게 만들어요."
지환이의 지시에 한수 놈이 서연이의 턱을 우악스럽게 움켜쥐더니 그대로 나를 똑바로 쳐다보도록 얼굴을 고정시켰다. 그 와중에도 한수 새끼는 서연이를 마치 먹음직스런 과일이라도 되는 듯이 그녀의 뺨을 추잡스런 자신의 혀로 낼름 핥아올렸다. 서연이는 혐오감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내게 가위를 겨누고 있는 지환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 이제 조금만 더 힘 주면...."
지환이는 마치 나와 서연이를 시험이라도 하듯이 슬금슬금 가위날을 가운데로 모으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낀 나의 양물이 마치 벌벌 떨고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이를 꾹 악물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자꾸만 타임 리와인더의 기능에 대해 떠올리고 있었다.
내가 알기론 타임 리와인더는 몸의 상태까지 되돌려주는 것이 아니었기에, 만약 지환이 놈이 여기서 정말로 그런 짓을 해버린다면 난 영락없이 평생 불구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오싹한 공포가 밀려들어 몸이 덜덜 떨려왔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제발 그만해. 내가 이렇게 빌게.... 제발 하지 마...."
가위날이 자지를 파고 들 만큼 가까이 모이자, 서연이가 발악하듯 소리지르며 눈물을 흘렸다. 그제야 지환이는 만족스러운 듯이 씨익 웃으며 내 물건에서 가위를 거두고는 나를 향해 비웃듯이 또 한차례의 조롱을 가했다.
"아무래도 너보단 서연이 쪽이 마음이 더 깊은가봐. 너는 저 년을 위해서 결코 애원하지 않았는데, 저 년은 너를 위해서 금방 이렇게 꼬리를 내리는걸. 참 감동적이야. 나도 모르게 질투가 나려고 하는걸. 크크...."
"........"
아무리 자존심을 세운다해도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후유증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극심한 공포로 질렸던 얼굴에 핏기가 돌아오는 것도 느끼지 못한채 나는 말없이 숨을 몰아쉬었다. 놈은 그런 내 모습이 즐거운지 얼굴 가득 만족스런 웃음을 지으며 서연이에게로 돌아갔다.
"잘 들어. 네가 고분고분하게 굴지 않으면 방금 봤던 것처럼 네 자랑스런 남친은 오늘 고자가 되고 말거야. 그건 너도 싫지?"
"......."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서연이가 입술을 꾹 깨문 채 지환이의 시선을 피했다.
"저 새끼 자지 썰리는거 보기 싫으면 내게 그따위 건방진 모습 보이지 마. 알았어?"
"아, 알았어....! 너희들 원하는 대로 대주면 되는거 아니야? 그, 그러니까 빨리 하고 끝내기나 해."
차라리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려는 것이 서연이의 생각인 것 같았다. 물론 그녀의 그런 생각은 적어도 나보다는 현실적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저 두 놈에게 유린 당한다는 것은 내게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지환이는 내 굴욕감을 밑바닥까지 쥐어짜기 전에는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는 것 같았다.
"아니. 겨우 그런 시시한 섹스 따위로는 안 되지."
"뭐....?"
지환이 놈은 가위를 가방 안에 도로 집어넣고는 안쪽에서 다른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의약품에 대해 아무런 지식이 없는 나였지만 그게 주사기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색깔이 없는 투명한 약물을 담은 채 바늘을 세우고 있는 피스톤 주사기를 보자, 또 한 차례 알 수 없는 공포가 엄습했다.
"이건 박현아 그 여자가 아주 가끔 쓰는 약물이라더군. 좀 더 특별한 방식을 즐기고 싶을 때 쓴다나."
"그.... 그게 뭐야."
여지껏 닫고 있었던 내 입이 간신히 열렸다. 그걸 묻는다는 것이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놈이 그것을 꺼내든 것을 보면 절대 평범한 물건은 아닐 것이니....
"돼지발정제만큼이나 강력하다는 최음제야. 환각성분만 따로 정제해서 쓰기도 한다지만 기본적으로 위험한 약물이라 정상적으론 구할 수가 없게 되어있는데. 참 신기한 여자지.... 최성진 네놈은 그 여자가 이렇게까지 무서운 년일거라곤 아마 생각 못했을걸."
"미... 미친, 뭘 하려는 거야."
지환이 놈은 내게 더 답해주지 않았다. 놈은 주사기를 들고 성큼성큼 걸어 서연이 앞까지 다가갔다. 본능적인 공포로 표정이 굳은 서연이가 의자를 덜컹거리며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한수의 손에 의해 제지당했고, 결국 지환이는 가차없이 그녀의 허벅지 안쪽에 주사 바늘을 꽂았다.
"아얏....!"
따끔하게 바늘이 살을 파고들자 서연이가 눈을 찡그리며 몸을 움츠렸다. 주사기 안에 있는 약물이 피스톤을 따라 그녀의 몸 안으로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나도 모르게 몸에 지독한 오한이 찾아오는 것만 같았다.
"치사량을 훌쩍 넘겼으니까 아마 너도 곧 기분이 달라질걸. 싫어도 기분이 좋을 수 밖에 없다니 참 신기하겠지? 하하하. 그럼 어디 약효가 돌기 전에....."
지환이 놈이 서연이의 입가에 자신의 가랑이 사이에서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양물을 억지로 들이밀었다. 여전히 입술을 깨물고 있었던 서연이는 그 물건을 못본 척 하려 했지만 되려 지환이 놈은 서연이의 입술에 쿡쿡 자지 끝을 찔러대며 그 반응을 즐겼다.
"아, 혹시 니가 싫어하는 내 좆이라서 그런거야? 그럼 어디 새로운 남자 좆은 얼마나 좋아하는지 한번 볼까?"
놈은 서연이의 입을 두 손으로 억지로 열어젖히고는, 한수를 향해 씨익 웃음을 지었다. 그러자 한수 녀석이 함박 웃음을 짓더니 딸딸이를 치고 있던 자신의 뭉툭한 자지를 덜렁이며 서연이에게로 다가갔다.
"한수 선배 좆 한번 빨아봐. 다른 남자 좆은 얼마나 잘 먹는지 한번 보게."
"........"
억지로 우악스럽게 입이 벌려진 서연이가 의자에 결박된 사지를 부르르 떨면서 혐오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한수 녀석은 이미 극한까지 달아오른 모습이었다. 당장이라도 한수 녀석의 좆대에 침이라도 뱉고 싶은 것을 간신히 억눌러 참는 듯한 모습이었다.
"난 분명히 말했어. 네가 말 안들으면 오늘 네 남친은 고자가 될 거라고."
"........"
지독한 놈이었다. 내가 서연이를 강간했던 수차례의 기억들 중에서 혹시 내 모습이 그녀에게 저렇게 보였던 순간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제와서 그게 무슨 쓸모없는 생각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서연이가 결정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으니 한수 선배가 리드해보세요. 얼마나 잘 빨아주는지 한번 물려봐요."
"흐, 흐흐. 진짜 내가 먼저 해봐도 돼?"
"그럼요. 난 서연이 먹어본 적이 있지만 선배는 아직 없잖아요. 그동안 서연이 생각하면서 딸딸이도 많이 치셨을텐데 오늘 소원 한번 풀어봐야죠."
"흐흐, 고맙다 진짜."
감격이라도 받은 듯한 얼굴로 한수 새끼는 서연이의 억지로 벌어진 입 속에 자신의 양물을 푸욱 하고 틀어박았다. 입 안에 순식간에 낯선 남자의 자지가 들어오자 서연이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면서 구역질이 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한수는 서연이의 입 안에 삽입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미 황홀경을 느끼는지 엉덩이를 부들거리며 앞뒤로 피스톤질을 해나가고 있었다.
"으읍... 으읍.... 흡....."
"하하하, 어때요 선배? 서연이의 입보지가 맘에 들어요?"
"아.... 씨발.... 기분 죽인다.... 아아...."
서연이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그저 놈의 혐오스런 좆을 받아물기만 하고 있었지만, 한수 새끼에게는 그러한 상황 자체가 너무도 큰 자극인지 이미 온몸으로 쾌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나 또한 좀 전까지의 공포를 잊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너무도 무력한 메아리일 뿐이었다.
나는 두려웠다. 이 끔찍한 상황이 대체 어디까지 이어질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에 더욱 두려웠다. 게다가 서연이의 몸이 점점 더 붉게 달아오르고 있는 것 같았다. 약물의 효과가 돌기 시작한 걸까....
"제발.... 누구라도 좀 와보란 말이야. 이 개같은 호텔은 왜 이렇게 허술한 거냐고...."
혹시라도 팔을 결박하고 있는 바인더끈이 끊어질까 싶어 있는 힘껏 몸부림을 치며 팔다리를 버둥거렸지만 마치 생선이 펄떡이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지환이 놈은 한수의 자지를 받아물고 있는 서연이의 모습과, 발악하는 나를 번갈아 바라보면서 만면에 희열로 가득 찬 웃음을 짓고 있었다.
- 다음 화에 계속 -
안녕하세요, 상상의신비입니다.
43장이 너무 늦어버렸죠....
늘 그랬지만 죄송하단 말로는 다 표현이 안되는 것 같습니다
타임 리와인더 1부를 9월 중으로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은 여전히 변함 없습니다
8월에 너무 연재가 뜸했으니 그만큼 9월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겠지요
많은 분들이 줄곧 연중에 대한 우려를 전하셔서 안타까웠습니다
지난 글을 통해서도 밝혔지만 저는 절대 연중에 대한 생각이 없습니다
아마 일이 바빠서 글을 쓰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면 진작 휴재나 연재 중단 공지를 내렸을 것 같습니다
지금 이렇게 쓰고 있는 것은 저도 꼭 마무리를 보여드리고 싶단 마음 때문이니 그런 걱정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제가 8월초 무렵부터 거의 소라에 들어오질 못했습니다
소라 쪽지는 일정 기간 쪽지함에 있다가 시간이 지나면 소멸되어 버리더군요
혹시 그동안 제게 쪽지를 보내주신 분이 있다면.... 수고스럽겠지만 다시 한번만 보내주실런지요? ㅠㅠ
기왕이면 모든 분에게 답장을 하고 싶은 마음이라 제가 답하지 못하고 지워진 쪽지가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픕니다
다음 화는 비교적 빨리 올리겠습니다
그럼 좋은 밤 되세요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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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0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태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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