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 리와인더 (Time Rewinder)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17장
현주의 이야기가 끝났다. 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난 한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듣기만 했다.
우리는 침대 등받이에 나란히 몸을 기대고 있었지만, 나는 현주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이것이 현주에게 있어 얼마나 힘겨운 토로인지를 느낄 수 있었기에.
"오빠한텐 말하고 싶지 않았어. 내가 불감증이라는걸 오빠가 알게 되는 것보다, 그런 내 과거를 알게 되는게 더 무서웠어. 오빠가 날... 혹시라도 불결하게 볼까봐."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음 속을 처음으로 가득 메운 솔직한 감정은 "분노"였다. 불감증에 대한 실망 같은게 아니었다. 불결하다는 생각 같은건 들지도 않았다. 그저 진솔한 마음으로, 그 쓰레기 같은 놈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놈들에게 이 정도의 증오심을 느낄 수 있다는게 놀라울 정도였다. 심지어 지환이 새끼보다도 더 혐오스러웠다. 나 역시 비록 같은 강간범이지만 그 순간 그놈들을 응징하고 싶은 격렬한 분노가 치솟아 오르는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 난... 네가 이런 얘기를 해줘서 오히려 고마워. 솔직하게 얘기하기 너무 힘들었을텐데."
주체하기 힘든 분노를 겨우 다스렸다. 우선은 현주를 달래주고 싶었다. 내게 이 이야기를 하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힘겨움을 겪어야 했을지를 그녀의 목소리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가만히 현주의 몸을 품 안에 끌어안으니 그녀가 힘없이 인형처럼 내게 안겨왔다. 그 생기 없는 모습의 와중에도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기에 그녀가 지금도 불안해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비록 우리는 여전히 서로 알몸인 채였지만, 더이상 이 침대 위에서 성적인 행위를 이어나갈 수는 없다는걸 나도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난 다음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내게 미안해 하고 있었다.
"미안해... 기껏 마음의 준비 하고 왔다고 큰소리 쳐놓고 바보 같이 또 이 꼴이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참으려고 했는데... 난 정말 왜 이러는 걸까?"
"억지로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조급하게 생각한다고 해결 될 문제였으면 여태까지 네가 힘들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내 이런 점 때문에 오빠랑 더이상 틀어지는건 싫어."
"틀어지는거 아니야. 사실은 너랑 하고 나서 말해주려고 한건데... 네가 나랑 관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마음이 변하거나 그러는건 절대 아니야."
"거짓말...."
"뭐?"
비록 내 마음이 변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내가 다른 여자와 난잡한 관계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것은 정말 부끄럽게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비록 현주가 성욕을 채워주었더라도 내가 그러지 않았을거란 확신을 할 수 없었기에 그녀를 향한 내 죄의식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가 무심코 웅얼거린 그 "거짓말" 이라는 말은 나를 너무도 찔끔하게 만들었다.
뭔가를 알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았고, 심지어 나를 못 믿어서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 순간의 현주는 그저 담담했다.
"그건 거짓말이야 오빠... 난 알고 있어. 여태껏 나를 사랑했던 남자들도 다 처음엔 내게 그런 말을 했어. 내가 용기내어 이렇게 고백하면 그 남자들은 말했지. 섹스 없이도 날 사랑해 줄 수 있다고... 자신은 변하지 않겠다며, 그런 사소한 문제는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다고."
"......."
현주가 과거에 만났던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는건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는 질투라는 일차적 감정을 넘어서 뭔가 기묘한 이해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같은 남자로써 왠지 모르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달까....
그 말을 지킬 수 있고 없고의 여부를 떠나서, 사랑해서 만난 여자에게 "섹스 없이는 너와 사랑할 수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라면 오히려 더더욱 그럴 것이다. 만약 섹스가 없다는 이유로 이별을 고한다면, 그 남자는 솔직하다기보다는 애초에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 테니까.
"그렇게 말했던 남자들.... 전부 변했어. 오래 참고 기다려준 사람도 있었긴 했지만 기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지 결국 언제까지나 그러진 못했어. 내가 헤어지자고 하든, 남자가 헤어지자고 하든, 그 부분이 문제가 되어 나는 늘 이별을 겪었어."
"현주야..."
"난 그게 나쁜게 아니란걸 알아. 사실은 친구들에게 상담을 받을 필요도 없었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걸.... 남자는 그거 없인 힘들다는거."
"......"
"그러니까 나한테 섹스 없이도 괜찮다는, 그런 확신 없는 얘기 굳이 안 해도 괜찮아... 그건 나쁜게 아니야. 나는 나 버리고 떠난 남자들 미워 안 해. 그럴 만 하다는거 알고 있으니까."
바보 같이 그 순간에 "절대로 아니야!" 라며 강하게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적어도 지금의 그녀에게 허울 뿐인 겉치레에 불과한 말을 확신 없이 던진다면, 내가 너무 나쁜 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놈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현주에게, 진심 없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빠..."
"응."
"나 그런데... 오빠랑은 정말 헤어지고 싶지가 않아. 남자들이 지쳐 떠나는게 나쁜게 아니란걸 알면서도... 오빠랑은 그렇게 헤어지고 싶지 않아. 그래서 오빠한테는 더 말하기 힘들었어. 정말 오빠한테는 허락하고 싶어서 아무리 무섭고 힘들어도 참아보려고 했는데... 미, 미안해... 흑흑...."
그렇게 눈물을 쏟아내고도 현주는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현주를 끌어안고 다시 등을 토닥여 주었다. 울음을 달래 주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 거니까.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애잔한 그녀의 말에서는 나를 향한 진심이 느껴졌다. 더불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현주가 나를 많이 사랑했구나,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괜찮아, 현주야... 괜찮아."
섹스 없이 평생 사랑하겠다느니 하는 말은 감히 꺼낼 수 없었지만 괜찮다고는 말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나는 하염 없이 그녀를 달래주기만 했다.
*
왠지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직 현주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그 이야기에는 분명 내가 미처 다 듣지 못한 남은 부분이 있을 거라는 직감을 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현주의 진심을 느꼈으니.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나 또한 그녀를 사랑한다.
애당초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녀와 나 사이에 그런 문제가 있건 없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건 세상 모든 연인들이 다 마찬가지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사랑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될 수는 있을 지언정, 서로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되는건 아니다.
나중 일이야 어찌 되든 간에 지금은 서로를 아끼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솔직히 현주와 평생 사랑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
"고마워, 오빠... 나 들어갈게."
현주를 집 앞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현주는 내리기 전에 내 얼굴을 끌어당겨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키스로 넘어가지 않는 얌전한 뽀뽀. 하지만 내가 현주의 볼에 한번씩 더 뽀뽀를 해주니 그녀는 퉁퉁 부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배시시 웃었다. 왠지 안심이 되었다.
"현주야."
"응?"
"사랑해."
자기 마음에 100퍼센트 확신을 담은 채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렇게 많을까?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비록 반쪽짜리 확신에 불과하더라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는 내 마음이 결코 거짓은 아님을. 이 순간 사랑한다는 말이 그녀의 마음 한구석을 채워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의미가 있음을.
"나도 사랑해, 오빠."
그러고보니 여자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게 언제였을까?
문득 "사랑" 이라는 감정에 대한 아련한 향수 같은게 마음 한켠에서 되살아났다.
어쩌면 그동안 사랑이라는 이름 자체를 잊고 살았던건 아니었을까.
그저 외모, 섹스, 감각, 즐거움.... 이런 것들만이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라고 생각해왔던건 아닐까.
분명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는 그것보다 더욱 소중한 어떤 "무언가"가 있었을 텐데.
"자기 전에 전화할게."
수줍게 웃은 현주는 종종걸음으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빠진 나는 잡념을 애써 털어내며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뭐지?"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현주와의 일로 생겼던 복잡한 기분 때문은 아니었다.
시동을 걸고 아파트 단지 입구를 뜨는 순간, 사이드 미러에 비춰진 웬 자동차 하나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우연히도 아까 단지 앞에 차를 댈 때 잠깐 사이드 미러를 들여다 보고 있었기에, 그 자동차가 내 차를 따라서 뒤에 멈추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움직이니 따라 움직인 것이다.
"기분 탓인가."
하지만 찝찝한 기분과는 다르게 그 자동차는 삼거리로 나오자마자 다른 방향으로 유턴을 했고, 나는 이내 그 자동차의 존재를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
"이 뒤숭숭한 마음을 어떻게 달랜담..."
자취방으로 돌아갈 마음이 나질 않았다. 그 휑한 침대 위에 드러눕고나면 싫어도 현주의 눈물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착잡한 기분을 달래줄 만한 곳으로는 어디가 있을까?
차를 돌려 자취방이 아닌 강변도로 쪽으로 향했다. 예전에도 비슷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도 뒤숭숭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혼자 강변도로를 걸었었다. 비록 지금은 차를 타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곳은 바람 쐬기엔 그만인 곳이었다.
"하아..."
도로변에 차를 대충 세워두고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를 뜯었다. 거품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넘어가자 강변에서 불어온 바람이 한층 시원하게 느껴져 기분 전환에는 약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여기..."
하필 기묘하게도 이곳은 유성이를 처음 만났던 곳 근처였다.
달려오던 오토바이, 넘어지던 그녀, 욕설을 내뱉던 모습, 어이 없었던 기분까지. 모두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것들이 그렇게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게 새삼스럽게도 무척 신기했다.
왜 이런 순간에 유성이가 생각나는걸까?
다른 날도 아니고 이런 때에 속으로 다른 여자 생각을 하는게 현주에게 도저히 못할 짓이란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강변도로에서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앉아있으니 유성이의 얼굴이 떠오르는걸 내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니까.
휴대폰을 꺼내들고 너무도 구질구질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 유성아.
카톡 한 줄을 보내고 나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왜 그리 즉흥적이었을까?
보낸 카톡을 취소하는 법을 모르기도 했거니와 그런 기능을 알았다고 한들 굳이 또 취소를 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기다렸다. 좌우지간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둔게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답이 없네."
읽기는 읽었는지 1 표시가 지워졌음에도, 몇 분이 지나도록 답장이 오지 않음에 이상하리만치 나는 풀이 죽었다.
문득 유성이와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때의 괜한 대화가 그녀로 하여금 내게 경계심을 갖도록 만들어 버린 걸까...?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꺼냈다는게 어쩌면 유성이의 가치관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을지도 몰라... 사적인 연락 같은건 부담스러워 하는 걸지도.
"뭐야... 기, 기분이 왜 이렇지."
어떻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서글픈 씁슬함이 가슴 속에서 치고 올라왔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서연이를 비롯해서 얼굴 예쁜 여자라면 넋놓고 쫓아다니기만 했던 그 찌질한 시절.
눈만 높았던 바로 그 시절.
물론 난 지금도 찌질하다. 하지만 그 때는 정말 찌질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찌질했다.
수많은 여자들에게 들이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매번 돌아오는 거절의 멘트를 받으면서 느꼈던 그 씁슬함.
하지만 그 때도 이런 기분이었나?
"나 뭐하는 거냐, 진짜... 여자친구도 있는데."
수많은 여자에게서 거절 당해봤지만 지금과 같은 가슴 속을 공허하게 만드는 허무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냥 이번에도 또 실패구나, 하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해왔을 뿐.
더욱이 우스운 것은 유성이가 딱히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저 문자를 한번 씹혔다고 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이미 무슨 사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문자 하나 달랑 보내놓고 좌불안석하며 온갖 의미부여를 다 하고 있는 것도 생각해보면 가관이다. 혼자 들뜨고, 혼자 날뛰고, 혼자 실망하고... 사실 생각해보면 이런건 전형적인 어린 시절의 연애 방식 아닌가?
알콜이 조금 들어갔기 때문인지 이성이 무뎌지고 쓸데없이 감성만 부풀어오르는 기분이다. 유성이는 나를 왠지 그 시절의 순수한 나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같다. 병원에서도 느꼈지만 이 나이에 걸맞지 않는 두근거림을 내게 가져다준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게다가 나는 여자친구도 있는 몸인데...
도대체 왜?
"으앗!"
혼자만의 잡생각이 한계선 없이 쭉쭉 위로 치달아 오르고 있는데 문득 핸드폰이 울렸다.
카톡 답장이 온게 아니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순간 호흡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여, 여보세요?"
- 선배.
유성이였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끔 마음을 다잡았지만 쉬운건 아니었다.
"유성아."
- 무슨 일이에요?
전화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좋지만, 한편으론 너무 즉각적이다.
고심해서 멘트를 정리할 수 있는 문자와는 다르게 할 말을 바로바로 생각해내야 하고, 한번 뱉으면 돌이킬 수도 없다. 게다가 목소리의 떨림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단점도 있고.
"그.. 그냥... 생각나서."
여자친구도 있다는 놈이 엄한 여자에게 연락해서 한다는 소리가 그냥 생각나서, 라니.
현주가 이 꼴을 보면 도대체 무슨 표정을 지을까.
- 그냥 생각이요...?
유성이도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게 분명했다.
사실 서연이나 현아 씨 정도의 내공만 되더라도 이쯤 얘기하면 내가 무슨 마음으로 연락을 한건지 어렵지 않게 알아챌 텐데, 유성이는 전혀 그런 것이 없이 문맥만으로 이해를 하려니 내가 이상해 보였나보다.
"응. 나 지금 강변도로에 있거든... 그 있잖아. 내가 너랑 처음 만났던."
- 강변도로엔 갑자기 왜요?
"그냥 좀 기분이 답답해서."
이제보니 휴대폰 너머의 유성이에게서도 목소리 외에 주변 배경의 잡음소리가 여기까지 전해져왔다.
차들이 곁으로 달리고 있는지 빵빵거리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타고 흘러오는 것을 봐서 바깥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유성아, 우리 잠시 볼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 단도직입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차피 전화통을 계속 붙들고 있어봤자 별 가닥 없는 얘기로 빙빙 돌기만 할 것 같아서 그랬나보다.
그렇지 않아도 유성이가 나에 대해 거북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어찌보면 이건 무덤을 파는 행위와 다를게 없었다. 그래서 뱉고나서 조금 아차 싶긴 했다. 이래서 전화는 안 된다니까...
-.......
유성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고민의 의미인지, 아니면 거북함의 의미인지 내가 어찌 알리요.
스스로 이해가 안 될 만큼 초조했다.
- 지금요?
"응."
거절을 하더라도 "다음에 봐요" 정도로만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싫어요"라는 대답만은 듣고 싶지 않았다.
- 기다려요.
바보 같기는.
그 짧은 한 마디에 왜 그렇게 두근거렸을까.
*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로변에 오토바이 두 대가 멈춰 섰다. 괜시리 마음이 벌써부터 들뜨는걸 자제하며 고개를 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뇌가 알콜에 마비된 상태로 대화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선배."
그녀는 여전히 변함없이 담담한 톤으로 나를 부른다. 헬멧 안쪽이어서 그런지 평소보다는 희미한 목소리였다.
유성이가 헬멧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자 역시나 폭포수 같은 그녀의 머릿결이 어깨를 넘어 허리까지 흘러 내렸다.
쏟아져 내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파도처럼 등을 뒤덮는 그녀의 장발. 언뜻 차르륵, 하는 효과음까지 들리는 것만 같다. 그것은 마치 유성이의 상징 같아 보였다. 웬만한 여자애들보다 훨씬 더 긴, 마치 공주 인형에게나 어울릴 법한 그런 곱고 풍성한 머릿결.
유성이에 대해 알기 전에는 그저 머리가 참 길구나, 하는 생각만 했는데 그녀를 조금 알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남자애가 되려는 삶을 살아왔다던 그녀가 머리는 왜 저렇게 길게 길렀을까? 무술에 대해 무지한 나지만 아무래도 몸을 움직이는데 있어서는 짧은 머리가 더 편할 텐데.
기회가 되면 나중에 한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응, 유성아."
그녀와 짧은 인삿말을 주고받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도로변에 멈춰선 오토바이가 두 대였다는 사실을 다시 인지할 수 있었다. 유성이의 옆으로 웬 떡대 넘치는 사내자식 한 명이 같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정말 반사적으로, 속에서 왠지 모를 아니꼬운 감정이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저 놈은 뭐지? 친구인가?
"야, 이제 그만 가라. 왜 자꾸 따라오는거야?"
다행히도 유성이가 원해서 같이 온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매몰차게 사내를 돌려보내려는 유성이의 모습을 보자 아니꼬운 마음이 아주 약간 사그라 들었지만, 그래도 왠지 유성이 옆에 남자가 있는 모습을 보는게 썩 즐겁지는 않았다.
"뭐야. 급한 일 있다는게 남자 만나는 거였어?"
떡대 넘치는 그 사내녀석의 목소리는 외모만큼이나 걸걸하고 투박했다. 도저히 첫인상이 좋을 수가 없었거니와, 게다가 말의 내용도 대놓고 나를 하대하는 말투였기에 순간 기분이 욱했다. 하지만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유성이가 먼저 성질을 내고 있었다.
"내가 남자를 만나든 게이를 만나든 무슨 상관이야? 꺼져."
누군지도 모르는 그 놈이 욕 먹는게 왜 그렇게나 고소한지.
잘했다고 유성이 어깨라도 토닥여주고 싶었다.
"오늘 같이 놀기로 해놓고 말도 없이 가버리니까 그런거 아냐.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따라온 거라구."
"뭘 같이 놀아. 우리가 언제 그런거 정해놓고 보는 사이였어? 그냥 달리다 면상 보이면 가끔 어울리는거지."
그 덩치는 여전히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내고 있었다. 그 무례한 태도에 기분이 더더욱 상했던 것은 물론이다.
두 사람이 아웅다웅 대는 모습을 보니 "설마 남자친구인가?" 하고 속에서 싹 텄던 의심은 그나마 사라졌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였다. 보고 싶어서 부른건데 왜 저런 곰 같은 자식까지 같이 딸려온 걸까?
"미안해요, 선배. 아는 앤데 어쩌다보니..."
내가 기분이 상한걸 유성이도 느꼈던 걸까? 그녀가 내게 사과를 한다.
괜찮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돌려보낼 때까지 잠자코 두고 보는게 좋을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그 곰 같은 자식의 동태 같은 두 눈이 번쩍 뜨이며 입이 쩍 벌어졌다. 생긴게 하도 험악해 놔서 무슨 표정을 짓던 위협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이목구비로 짐작하건대 놀란 표정인 것 같았다.
"야... 하, 한유성. 너 뭐야?"
"뭐?"
"저 형씨가 네 남친이라도 되는 거냐?"
"뭐야? 무슨 개소리야, 또?"
"똑바로 말해!! 남친도 아닌데 그 조신한 태도는 뭐야?! 너 답지 않게."
안 그래도 맹수 같이 생긴 놈이 버럭 소리까지 지르니 솔직히 무식해 보였지만 한편으론 박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제 보니 정말 덩치가 크다. 나를 옆으로 두 명 정도 붙여놓은 것보다 더 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떡대 앞에서 유성이는 조금도, 정말 조금도 움츠러 드는 모습이 없이 앙칼진 목소리로 말을 받아쳤다.
"남친이든 아니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피곤하니까 꺼져 이 새끼야!!"
서, 성질 나오는 구나....
지환이를 참혹하게 두들겨 팼던 유성이의 그 모습이 다시 선명하게 뇌리에 떠오르는 것 같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웬만한 사내놈들이 유성이의 성질을 건드렸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하지만 떡대가 벌어진 그 곰 같은 녀석의 외모는 상식 이상으로 험악해 보였기에 보는 입장에선 조마조마 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나 그 놈이 울컥해서 유성이에게 몹쓸 짓이라도 하려고 하면 당장 뛰어들어야겠다 싶어 마음의 준비를 했다. 솔직히 맞짱 뜨면 100퍼센트 내가 질 것 같이 생겼지만.
"야.. 야, 한유성. 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너.. 너 저번에도 나한테 대답 미루고 피하더니.. 그렇게 애매하게 굴면서 뒤에서는 다른 남자 만나고 다녔다는 거야...? 너, 너도 어장관리하는 그런 년이었다 이거냐?"
"뭐...?"
"한 마디만 더 지껄였다간 죽여버리겠어." 라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유성이였지만 마치 울먹이는 듯한 그 떡대 녀석의 말을 듣고 나자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당황을 했다기 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더 험악하게 화를 터뜨릴 거라 생각했던 곰 같은 녀석이 그렇게 갑자기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자 보는 입장에서 심히 당황스러웠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확실하게 말을 해줘야 될 거 아니야!! 기껏 용기내서 고백했는데 대답도 없이 그냥 피하기만 하다가 이제 와서 다른 남자 만나고 있었다고? 아무리 네가 자유분방해도 이건 너무하는거 아니야? 너... 너 사람 마음 갖고 논 거 아니냐고!!"
덩치는 산만한 인간이 눈물까지 글썽거릴 기세로 울먹이며 따지고 드니 그 모습이 무섭다기 보다는 상당히 괴이해 보였다.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정도라면 말 다 했을까? 심지어 유성이마저도 그 모습 앞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이 두 사람 사이의 정확한 상황 같은건 모르지만 유성이가 말이 없자 왠지 더 두고 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오바를 할 생각까지도 없었는데, 왜 다음 순간 그런 턱도 없는 대사를 날리며 끼어들었는지 모르겠다.
"저기, 이봐요."
"뭐야?"
"그만 해요. 남의 여자친구한테 이게 지금 뭐하는 겁니까?"
"뭐, 뭐라고?"
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홱 돌아와 꽂혔다. 내가 독심술은 배운 적이 없지만 지금 이 두 사람의 표정에서 충분히 대사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유성이는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하는 표정이고 덩치 큰 녀석은 "씨발, 그게 무슨 소리야?" 하는 표정이었다.
"유성이는 내 여자친구라구요. 내 여자한테 그렇게 무례하게 구는걸 보니까 솔직히 기분이 안 좋네요. 두 사람 문제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쯤에서 그만해 줬으면 하는데...."
미친. 내가 꼴에 어디서 본건 있었나보다. 어떻게 그 상황에 그런 낯간지럽고 뻔뻔한 멘트가 나왔는지.
타임 리와인더라도 있었을 적의 나라면 몰라도 솔직히 무슨 깡으로 그랬는지 나조차도 도무지 모를 일이다.
"......."
곰 같은 녀석의 표정이 충격으로 덜컥 굳어서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대답할 말도 찾지 못하고 굳어져 있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약간 움찔했다. 사실 저 놈이 이성을 잃고 덤벼들기라도 한다거나 하면 감당할 자신은 없었기에.
"야... 하... 한유성...."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덩치 녀석이 더듬더듬 입을 연다. 놈은 예상과는 다르게 덤벼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후에 놈이 보인 행동은 정말이지 내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세상에 그렇게까지 눈물이 안 어울리는 남자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뚜렷이 보일 만큼 닭똥같은 눈물이 그 곰 같은 놈의 두 눈에서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태어나서 보았던 가장 비현실적인 장면 TOP 10안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 괴기스런 장면 앞에 나 또한 할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나... 나쁜 년... 결국 이럴 거면서..."
"......"
"너... 너 그러는 거 아니야. 너 벌 받을 거야. 나쁜 년... 훌쩍..."
"......"
산적 같이 생긴 놈은 구슬프게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코까지 훌쩍거리며 서글프게 등을 돌렸다. 등빨이 남산만한 뒷모습이 힘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꼴이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다. 놈은 삶의 의욕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서럽게 자신이 타고 온 오토바이 위에 걸터 앉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엑셀을 당겨 우리 앞에서 금새 모습을 감추었다.
오토바이가 떠나고 남은 자리에 드디어 나와 유성이만 남게 되었지만, 우리는 왠지 모를 어색함 속에서 둘 다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
"유, 유성아. 일단 우리 앉을까?"
"아.. 네."
조촐한 나무 벤치 위에 나란히 앉는 우리. 뭔가 서늘하면서도 어색한 바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제, 젠장. 도대체 뭐지, 이 상황은?
*
"미안해요, 선배."
불어오는 밤바람을 잠자코 계속 맞고 있으려니 문득 유성이가 그런 말을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딱히 그녀가 사과할 일까지는 아니지만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이 적막을 깨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심 유성이의 사과가 반가웠다.
"아, 아냐.. 근데 그 사람은 누구야?"
물을까 말까 많이 망설였는데, 아무래도 궁금증을 참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유성이도 별로 숨길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무덤덤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왠지 그 차분한 태도 앞에 안심이 되는 내 모습은 참 바보 같게 느껴졌다.
"자주 보는 폭주족 리더에요. 오토바이로 달릴 만한 곳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마주치게 될 때가 있는데, 얼마 전부터 유독 귀찮게 구네요. 방금도 데려올 생각은 없었는데 계속 따라오길래..."
"너, 너 좋아하는 것 같던데..."
솔직히 내가 말해놓고도 그건 너무 순화된 표현이었다. 그 덩치 큰 떡대에게선 뭐랄까.... 예전 그 시절의 내게서 느낄 수 있었던 특유의 어떤 "찌질함"이 느껴졌다. 외모에 대해서 얘기하는게 아니라, 여자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의욕 하나만 보고 앞으로 달려가는 특유의 무모함이랄까....?
경험으로 인해 나는 그게 대충 어떤 기분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그 덩치에게 공감 섞인 동정심마저 우러날 지경이었다. 찌질이들 특유의 연대 의식 같은게 있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성이가 그 놈이랑 어울리는 꼴을 보는게 괜찮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남자들은 좋아하면 그러나요?"
"뭐, 뭐를?"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고, 혼자 화내고.... 뭐 그런 것들이요. 귀찮게 구는 것까지 포함해서."
유성이에게선 현주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순진함이 느껴졌다. 사실, 순진하다기보단 "남녀의 관계"라는 문제 자체에 대한 특별한 인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유성이였기에 남자가 집적거리든 말든 어떠한 의사표현 없이 그냥 그렇게 무심하게 내버려 두었던게 아닐까?
"그, 글쎄.. 하지만 남자들은 대개 단순해서,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해줘야 알아듣거든. 아까 그 친구도 꽤 여러번 너한테 마음 표현을 했다는거 같던데... 그럴 때 남자들은 차라리 확실하게 싫다고 해줘야 마음을 정리하게 되거든. 혹시 확실하게 거절하거나 싫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
"거... 절이요?"
물론 그 이름도 모를 덩치 큰 녀석을 두둔해 주고픈 마음 따위는 전혀 없었다. 동류로서의 어떤 찌질한 유대감을 살짝 느끼기는 했어도 그런 산적 같은 놈이 유성이에게 추근거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나는 이 사실을 유성이에게 말해줘야했다.
이런 당연한 것도 잘 모르고 있는 스무살 여자애가 있다니 정말 신기할 노릇이긴 했지만 누군가가 나서서 이런 부분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아마 앞으로도 유성이에게 꼬이는 날파리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어쨌거나 유성이도 충분히 매력 있으니까...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남자들은 싫다고 확실하게 말해 주질 않으면 잘 모른다는 거죠?"
"으, 으응. 그렇지."
왠지 그 덩치 큰 녀석에게 쪼금 미안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뭐 어때?
"그렇군요... 선배한테 또 하나 배웠네요. 선배하고는 유독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태껏 그런걸 가르쳐준 사람은 잘 없었는데."
"그, 그래? 하하."
어쩌면 유성이의 말은 내가 그녀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반증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할 일이 많아질 수 밖에... 하지만 유성이는 그걸 눈치채기엔 너무 백지 같은 아이였다.
"있잖아. 음,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너도 아까 그 친구한테 혹시 마음이 있다거나 하는건 아니었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호감이 있다거나..."
"호감" 이라는 단어 하나에 대해 그렇게까지 심도 있게 고찰하는 여학생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사뭇 진지해진 표정의 유성이가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낮은 목소리로 "호감..?" 이라 중얼거린다. 순수하다 못해 약간 바보같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그 모습이 귀엽게 보이는 걸 보면 나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호감...?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여자들이 남자에게 호감을 갖는다는건 어떤 기분인가요?"
"그, 글쎄....?"
여자들의 마음을 남자인 내게 묻다니... 이런건 나보다 서연이한테 물어보는게 훨씬 낫지 않을까.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뭐,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는다는건 대체로 비슷한 기분일 거라 생각해. 그 사람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같이 있으면 뭔가 기분이 좋고, 다른 사람들보다 그 사람이 더 특별해 보이는... 그런 기분이 아닐까?"
"음...."
내가 말한걸 수학공식이라도 되는 것 마냥 따라 읊으며 고민하기 시작하는 유성이의 모습이 뭐랄까, 참으로....
순간 그녀를 와락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자제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유성이의 담담한 말은 나에게 충동이 아닌 충격을 주었다.
"그런 거라면 성진 선배도 저한텐 그런 사람인 것 같은데요. 그럼 제가 성진 선배한테 호감이 있는 거에요?"
"콜록!"
약간은 멋쩍은 분위기를 달래보고자 아까 남은 맥주캔을 홀짝 들이마시고 있었는데, 그게 코로 튀어나왔다. 담담하게 말하는 유성이의 모습을 봐서 나 혼자 망측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는건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남자라면 아마 누구도 그런 말을 듣고 덤덤하진 못 했으리라.
"콜록! 콜록!"
"괜찮아요?"
젠장. 이 타이밍에 한심하게 사레가 들려가지고...
유성이의 말에 대해 뭔가 대답을 해주고 싶었는데 진정이 되고 보니 대답 할 타이밍이 넘어가 있었다.
"미안해요, 그러고 보니 우리 너무 이상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네요. 무슨 일로 불렀던 거에요?"
유성이는 그 문제가 진짜 대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어 그녀에게 연락을 했을까?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난 거지...
솔직히 그런 시덥잖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보다는 방금 전의 화제로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굴뚝이었다. 그러나 내 아쉬운 눈빛만 보고 유성이가 그 마음을 캐치해 줄 가능성은 아쉽게도 0%에 육박했다.
"아, 그냥... 강변도로에 오니까 네 생각이 난거지 뭐."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아, 아니. 왜?"
솔직히 말하면 안 좋은 일이 맞긴 하지만 굳이 현주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를 유성이에게 하고 싶진 않았기에 그냥 아닌 척을 했다.
"저는 기분이 안 좋을 때 여기 이 도로에 와서 달리거든요. 선배도 혹시 비슷한 마음이었나 해서요."
"어, 으음, 그렇게 들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뭔 소리냐? 젠장. 내가 말해놓고도 바보 같다.
"오늘 선배 기분이 좀 안 좋아보이긴 하네요."
"그, 그게 느껴지니?"
"그냥 평소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유성이가 나를 간파하고 있다는 듯한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그래서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드라이브라도 할래요?"
"뭐?"
유성이는 나무 벤치 근처 도로변에 세워져있는 그녀의 오토바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기분전환에 이것 만한 것도 없는데. 생각 있으시면 뒷자리에 태워줄게요."
지나치게 상상력이 풍부한 것도 그닥 좋은 일은 아닌가보다. 쓸 데 없이 가슴은 왜 그렇게 두근거리는지. 유성이의 뒤에 타는 모습을 상상만 했을 뿐인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유성이가 부디 그걸 알콜 때문이라 생각해주길 바랐다.
"그.. 그럴까?"
왠지 병원에서의 어느 한 장면이 떠올라 피식 웃음까지 나올 뻔 했다.
세 번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두번은 튕길 수도 있는 건데 자꾸 왜 이러는 건지.
문득 도로변에 세워두었던 차 생각이 났다. 드라이브를 할 거라면 오토바이보단 자동차가 더 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유성이에게 그걸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아늑한 차보다는... 지금은 왠지 오토바이가 끌리니까.
*
사실 오토바이를 타본건 처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뒷좌석에 앉아본 적도 처음이고, 더군다나 여자애의 뒷좌석에 앉아본건 더더욱 처음이다. 질주하는 바이크 위에서 맞는 바람이 이렇게나 아찔하고 짜릿한 줄은 미처 몰랐다.
"유성아!"
그녀를 한번 불러보았는데, 목소리가 닿질 않는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헬멧 안에서 목소리가 공허하게 바람 속으로 묻혀들었다.
어쩌다 보니 유성이의 헬멧을 내가 쓰게 되었다. 단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기는 했지만 그녀는 원래 헬멧 쓰는게 싫었댄다. 그렇다고 그걸 덥썩 내게 씌우는 유성이도 참 터프했지만, 엉겁결에 그걸 또 받아쓴 나도 참...
"그.. 그래도.. 뭔가 짜릿하네."
헬멧 안쪽에서 왠지 유성이의 향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변태 같을지도 모르지만 뭔가 알싸한 향이 났는데 그게 그렇게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유성이는 병원에서 보았던 바로 그 섹시한 슈트를 입고 있었다. 온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슈트를 입은 여자가 바이크를 몰고 가는 모습을, 바로 등 뒤에 붙어서 바라보는 기분이 그렇게나 아찔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 했었다. 내 손은 얌전히 유성이의 허리를 두르고 있었고, 손 끝으로는 매끈한 슈트의 감촉이 생생히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유성이는 이 슈트 안에 아무 것도 입지 않는다고 했었지... 비록 슈트로 덮여 있긴 했지만 나는 지금 유성이의 몸을 더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걸까?
자연스럽게 계곡에서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서로의 알몸을 껴안았던 사이라는 사실이 새삼 강렬하게 뇌리에 때려박히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이 가슴 속을 울렁울렁 메웠다.
너도 가끔 그 순간을 떠올릴 때가 있니?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이크."
생각에 빠져있다가 하마터면 배를 두르고 있었던 손이 위로 올라갈 뻔 했다. 조금만 손이 위로 올라가도 가슴이 고스란히 만져질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손을 내렸다. 하지만 배 위를 덮은 손의 느낌도 왠지 쑥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속에 아무 것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극도로 긴장하게 만드는 듯 했다.
어쩔 수 없는 사내놈인지라 이대로 유성이의 가슴 위를 더듬으면 무슨 감촉이 느껴질까 하는 못 된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녀의 유두가 내 가슴팍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의 그 짜릿한 감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애써 고개를 털어 그 느낌을 잠시 지웠다. 지금은 성적인 자극 말고도 나를 들뜨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만약 평소의 이성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 이 순간 현주에게 미안했을 것이다. 그녀와 그런 일을 겪고도 지금 이런 마음을 갖는 내가 스스로도 혐오스럽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설레이는 감정은 그런 죄책감마저도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고 만다.
그... 강렬함.
분명 그것은 성욕보다도 더 강렬한 감각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 때, 나는 실감했다.
세상과 동떨어진 시간 속에 있다고 착각할 만큼 비현실적인 속도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오히려 이상하게도 그 순간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한 확신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이 애를...."
바람결에 유성이의 길고 고운 머리카락이 물결처럼 마구 흩날린다.
그녀가 내 마음을 알 수 없다는게 너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
"오늘 고마웠어, 유성아."
"별로 한 것도 없는 데요."
유성이는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도로변에 내 자동차가 세워져있다는 말을 굳이 그녀에게 하지 않았던 것은 유성이의 등 뒤에 조금 더 오래 타고 있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자동차야 뭐... 이따가 가지러 가도 되겠지.
"유성아, 가끔 이렇게 연락해도 될까?"
"그러세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덤덤하게 대꾸하는 유성이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이 멘트에서 느껴지는 어떤 "이성적"인 의미에 대해 그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게 틀림 없었다. 정말 백지장 같은 아이로구나.
"아, 그리고..."
다시 시동을 거는 유성이를 나는 문득 불러세웠다.
"아깐 미안해."
"뭐가요?"
"네 남자친구라고 거짓말 한 거."
이상하게도 내내 그게 신경이 쓰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괜찮아요." 라고 담담하게 대꾸할 줄 알았던 유성이였는데 의외로 그 사과 앞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요? 저를 도와주려고 그런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 혹시 네가 기분 나빴을 수도 있잖아."
그 때 나는 정말로 의외의 것을 보았다. 유성이가 피식 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지 않나?
"기분 나빴으면 그 자리에서 화를 냈겠죠."
긴 머리카락을 등 뒤로 쓸어 넘기며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웃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예뻤다.
"그럼 갈게요. 학교에서 봐요."
"아, 유성아!"
엑셀을 당기려고 하는 그녀를 다시 잡아세우자 금방 앞으로 튕겨져 나갈 것만 같았던 오토바이가 다행히도 잠시 요동을 멈춘다.
"네?"
"나 있잖아. 너한테 부탁이 있는데."
"부탁이요? 말해보세요."
고민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해도 될까?
마음은 정해졌지만 막상 꺼내려니 망설여졌다. 타임 리와인더가 있었다면 망설이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게 있건 없건, 할 말은 해야 한다.
"이제부턴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될까?"
"네?"
"네 원래 이름 말야. 유성이 말고... 여자애 다운 예쁜 이름이 따로 있잖아. 한유정."
그녀의 아버지가 딸이 태어났을 때 붙여주고 싶어했다던 그 이름. 한유성이 아닌 한유정.
용케도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는게 그녀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나보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
"그 이름은 왜...?"
"너 여자애처럼 살고 싶다고 했잖아. 내 생각에 유성이란 이름... 네가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나라도 괜찮다면 그 이름으로 불러줄게. 사실 그게 너한테 더 잘 어울리고..."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내내 망설였던 이유는 주제넘는 행동이 될까봐서였다. 특별한 사이도 아닌데 이름을 바꾸어 부르겠다면 당연히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것이 유성이 본인을 위해서도 좋은 생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건..."
망설이는 유성이의 모습을 보니 괜한 이야기를 한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차분하게 기다렸다.
"좋아요."
짧은 기다림 끝에 그녀가 승낙을 한다.
"대신 저도 조건이 있어요."
"으응? 조건?"
그녀가 뭔가를 요구한다는건 이례적인 일이었기에 나는 바짝 긴장하면서도 속으로 호기심을 느꼈다.
"오빠."
"어? 뭐라고?"
"어렸을 때부터 나는 오빠가 갖고 싶었어요. 오빠 한 명만 있었어도 여자애처럼 살 수 있었을 텐데 싶기도 하고...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오빠 있는 애들이 내심 부러웠어요. 부모님이 동생은 만들어 줬지만 오빠까지 만들어 줄 수 있는건 아니니까... 아쉬운 대로 선배가 오빠 노릇 좀 해주세요."
오, 오빠...?
"괜찮죠?"
"어... 으, 으응. 괜찮지. 그럼."
사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을 다 끝내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입에서 뇌를 거치지 않고 대답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유성이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그럼 저도 이제부터 오빠라 부를 게요."
"어어... 응."
그 특유의 담담한 투로 말을 하는 건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건지 모르겠다. 다시 엑셀을 당기기 시작하는 유성이의 뒷모습을 보며 굳이 뭔가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이라도 흔들어 줘야겠다 싶어 어색하게 오른손을 드는데 유성이가 먼저 인사를 한다.
"학교에서 봐요, 오빠."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부르릉 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멀어져가는 유성이.... 아니, 유정이의 뒷모습을 보며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
*
"혹시 여자친구?"
오늘은 하루 만에 정말 다양한 감정을 체험하는 것 같다. 현주를 만나고 유정이를 만나면서 오늘 하루 동안 정말로 다이나믹할 만큼 상반된 여러가지 감정을 겪었다. 허무함도 느꼈고, 분노도 느꼈고, 설레임도 느꼈다. 하지만 그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놀라움" 이었다.
"그.. 그쪽은?"
원룸텔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누군가가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려니 하며 지나치려는데 그 누군지 모를 형체의 목소리가 나를 불러세웠다. 건물 입구의 희미한 조명등 아래에 서고 나서야 나는 그 얼굴이 내가 아는 얼굴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비록 "아는 사이"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관계였긴 하지만...
"재밌어 보이네."
언제나처럼 삭막하고 건조한 얼굴. 그리고 얼굴만큼이나 메마른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에 지난 번과는 다르게 미세한 생기가 깔려있다.
바로 옆집 여자였다.
"어.. 그게, 저기..."
그녀의 얼굴을 평소에 워낙 보기 힘들긴 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게 되니 말이 나오질 않는다.
하긴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당신의 물건을 훔쳤었는데 어쩌다 보니 고장이 났어요?
"언제 한 번 찾아와도 괜찮아."
이 원룸에 살면서 옆집 여자에게 들어본 말 중 가장 길었던 말이었다.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그녀는 당황하는 나를 신경쓰지 않고 담뱃재를 털었다. 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져넣은 그녀는 그렇게 먼저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302호의 문이 열고 닫히는 것 같은 소리가 아득하게 1층까지 울려 내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서도 나는 한동안 303호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현관에 못 박힌 듯 서 있어야 했다.
- 다음 화에 계속 -
아침이 밝았네요. 또 일을 하러 가야겠지요!
독자분들도 오늘 하루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보내실 수 있길 바래요
이야기를 할까말까 많이 망설였는데, 지난 화의 댓글들 중에서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언급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전개나 의도에 대해서 댓글로 독자분들 나름대로의 예측을 써주시는 분들을,
좋게 보시는 분들도 있고 안좋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더군요
음... 솔직하게 제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사실 제 글을 읽고 나서 독자분들이
나름대로의 예측이나 감상, 글에 대한 피드백 등등을 해주시는 댓글이 더 좋습니다
물론 어느 댓글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솔직히 짤막한 인삿말 한마디 보다는
그렇게 독자분들이 나름대로 스토리에 대한 예측을 하시거나 제가 쓴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고 감상의 흔적을 남겨주는게 작가 입장에선 정말 즐거운 일이거든요
물론 오해는 하지 마세요! 어느 한쪽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건 아닙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선호도를 말씀드리는거죠
아마 독자분들의 그런 예측이나 피드백에 대해 경계의 시선을 보내시는 독자분들은 아마도,
독자분들의 목소리에 행여나 제가 중심을 잃고 원래 의도했던 스토리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일거라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그 또한 작품을 사랑해주시는 마음이니 충분히 감사한 말씀입니다.
저는 사실 텍스트로 완성을 시키지 못했을 뿐, 전체적인 스토리에 대한 윤곽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정하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이라 행여나 어떤 부분에 있어
독자분들의 호응이 미미하거나 반대가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 제가 처음에 기획한 바대로
글을 써야 한답니다... ^^;
제가 너무 독자분들의 호응을 중요시하게 여긴 나머지 중심을 잃을까봐
우려해주시는 분들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좌우지간 저는 길고 상세한 댓글이 좋답니다
제 글을 심도 있게 읽어주셨다는 흔적을 볼 수 있어서 읽는 순간 보람을 느낀 달까요...?
너무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거라면 죄송합니다
사설이 너무 길었네요. 상처 받는 독자님들이 계실까봐 이렇게 짤막하게 글을 남겼습니다.
길고 상세한 댓글 저는 좋아하니까 많이 남기셔도 됩니다 ^^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17장
현주의 이야기가 끝났다. 긴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난 한번도 입을 열지 않았다. 그저 듣기만 했다.
우리는 침대 등받이에 나란히 몸을 기대고 있었지만, 나는 현주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이것이 현주에게 있어 얼마나 힘겨운 토로인지를 느낄 수 있었기에.
"오빠한텐 말하고 싶지 않았어. 내가 불감증이라는걸 오빠가 알게 되는 것보다, 그런 내 과거를 알게 되는게 더 무서웠어. 오빠가 날... 혹시라도 불결하게 볼까봐."
이야기를 듣고 나서 마음 속을 처음으로 가득 메운 솔직한 감정은 "분노"였다. 불감증에 대한 실망 같은게 아니었다. 불결하다는 생각 같은건 들지도 않았다. 그저 진솔한 마음으로, 그 쓰레기 같은 놈들을 모두 없애버리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놈들에게 이 정도의 증오심을 느낄 수 있다는게 놀라울 정도였다. 심지어 지환이 새끼보다도 더 혐오스러웠다. 나 역시 비록 같은 강간범이지만 그 순간 그놈들을 응징하고 싶은 격렬한 분노가 치솟아 오르는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 난... 네가 이런 얘기를 해줘서 오히려 고마워. 솔직하게 얘기하기 너무 힘들었을텐데."
주체하기 힘든 분노를 겨우 다스렸다. 우선은 현주를 달래주고 싶었다. 내게 이 이야기를 하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많은 고민과 힘겨움을 겪어야 했을지를 그녀의 목소리에서부터 느낄 수 있다.
가만히 현주의 몸을 품 안에 끌어안으니 그녀가 힘없이 인형처럼 내게 안겨왔다. 그 생기 없는 모습의 와중에도 몸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기에 그녀가 지금도 불안해하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비록 우리는 여전히 서로 알몸인 채였지만, 더이상 이 침대 위에서 성적인 행위를 이어나갈 수는 없다는걸 나도 그녀도 느끼고 있었다. 시간이 좀 지나고 난 다음엔 모르겠지만 적어도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내게 미안해 하고 있었다.
"미안해... 기껏 마음의 준비 하고 왔다고 큰소리 쳐놓고 바보 같이 또 이 꼴이야.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참으려고 했는데... 난 정말 왜 이러는 걸까?"
"억지로 그렇게 생각할 필요 없어. 조급하게 생각한다고 해결 될 문제였으면 여태까지 네가 힘들지도 않았겠지...."
"그래도 내 이런 점 때문에 오빠랑 더이상 틀어지는건 싫어."
"틀어지는거 아니야. 사실은 너랑 하고 나서 말해주려고 한건데... 네가 나랑 관계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마음이 변하거나 그러는건 절대 아니야."
"거짓말...."
"뭐?"
비록 내 마음이 변하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로 인해 내가 다른 여자와 난잡한 관계를 만들지도 모른다는 것은 정말 부끄럽게도 사실이었다. 게다가 비록 현주가 성욕을 채워주었더라도 내가 그러지 않았을거란 확신을 할 수 없었기에 그녀를 향한 내 죄의식은 더욱 커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랬기에 그녀가 무심코 웅얼거린 그 "거짓말" 이라는 말은 나를 너무도 찔끔하게 만들었다.
뭔가를 알고 한 말은 아닌 것 같았고, 심지어 나를 못 믿어서 그렇게 말한 것도 아닌 것 같았다.
그 순간의 현주는 그저 담담했다.
"그건 거짓말이야 오빠... 난 알고 있어. 여태껏 나를 사랑했던 남자들도 다 처음엔 내게 그런 말을 했어. 내가 용기내어 이렇게 고백하면 그 남자들은 말했지. 섹스 없이도 날 사랑해 줄 수 있다고... 자신은 변하지 않겠다며, 그런 사소한 문제는 내가 준비가 될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려 줄 수 있다고."
"......."
현주가 과거에 만났던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는건 나로서는 기분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지금의 나는 질투라는 일차적 감정을 넘어서 뭔가 기묘한 이해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은 아주 이상한 기분이었다. 같은 남자로써 왠지 모르게 이해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달까....
그 말을 지킬 수 있고 없고의 여부를 떠나서, 사랑해서 만난 여자에게 "섹스 없이는 너와 사랑할 수 없어."라고 말할 수 있는 남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한 남자라면 오히려 더더욱 그럴 것이다. 만약 섹스가 없다는 이유로 이별을 고한다면, 그 남자는 솔직하다기보다는 애초에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것일 테니까.
"그렇게 말했던 남자들.... 전부 변했어. 오래 참고 기다려준 사람도 있었긴 했지만 기간의 차이가 있었을 뿐이지 결국 언제까지나 그러진 못했어. 내가 헤어지자고 하든, 남자가 헤어지자고 하든, 그 부분이 문제가 되어 나는 늘 이별을 겪었어."
"현주야..."
"난 그게 나쁜게 아니란걸 알아. 사실은 친구들에게 상담을 받을 필요도 없었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걸.... 남자는 그거 없인 힘들다는거."
"......"
"그러니까 나한테 섹스 없이도 괜찮다는, 그런 확신 없는 얘기 굳이 안 해도 괜찮아... 그건 나쁜게 아니야. 나는 나 버리고 떠난 남자들 미워 안 해. 그럴 만 하다는거 알고 있으니까."
바보 같이 그 순간에 "절대로 아니야!" 라며 강하게 그녀의 말을 부정하지 못하는 내가 한심했다. 적어도 지금의 그녀에게 허울 뿐인 겉치레에 불과한 말을 확신 없이 던진다면, 내가 너무 나쁜 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쁜 놈이 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의 현주에게, 진심 없이 말하고 싶지 않았다.
"오빠..."
"응."
"나 그런데... 오빠랑은 정말 헤어지고 싶지가 않아. 남자들이 지쳐 떠나는게 나쁜게 아니란걸 알면서도... 오빠랑은 그렇게 헤어지고 싶지 않아. 그래서 오빠한테는 더 말하기 힘들었어. 정말 오빠한테는 허락하고 싶어서 아무리 무섭고 힘들어도 참아보려고 했는데... 미, 미안해... 흑흑...."
그렇게 눈물을 쏟아내고도 현주는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 나는 가만히 현주를 끌어안고 다시 등을 토닥여 주었다. 울음을 달래 주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해줄 수 있는 거니까.
그녀의 말을 믿을 수 있었다. 애잔한 그녀의 말에서는 나를 향한 진심이 느껴졌다. 더불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현주가 나를 많이 사랑했구나, 하는 것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괜찮아, 현주야... 괜찮아."
섹스 없이 평생 사랑하겠다느니 하는 말은 감히 꺼낼 수 없었지만 괜찮다고는 말해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나는 하염 없이 그녀를 달래주기만 했다.
*
왠지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아직 현주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걸.
그 이야기에는 분명 내가 미처 다 듣지 못한 남은 부분이 있을 거라는 직감을 버릴 수 없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현주의 진심을 느꼈으니.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나 또한 그녀를 사랑한다.
애당초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녀와 나 사이에 그런 문제가 있건 없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앞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해야 하는건 세상 모든 연인들이 다 마찬가지다. 미래에 대한 불안함 때문에 사랑을 하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니까. 그것은 극복해야 할 과제가 될 수는 있을 지언정, 서로를 사랑하지 못할 이유가 되는건 아니다.
나중 일이야 어찌 되든 간에 지금은 서로를 아끼고 있으니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솔직히 현주와 평생 사랑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걸로 충분할 것 같다.
"고마워, 오빠... 나 들어갈게."
현주를 집 앞까지 차로 데려다주었다. 현주는 내리기 전에 내 얼굴을 끌어당겨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키스로 넘어가지 않는 얌전한 뽀뽀. 하지만 내가 현주의 볼에 한번씩 더 뽀뽀를 해주니 그녀는 퉁퉁 부은 모습에도 불구하고 배시시 웃었다. 왠지 안심이 되었다.
"현주야."
"응?"
"사랑해."
자기 마음에 100퍼센트 확신을 담은 채로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렇게 많을까?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비록 반쪽짜리 확신에 불과하더라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믿는 내 마음이 결코 거짓은 아님을. 이 순간 사랑한다는 말이 그녀의 마음 한구석을 채워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의미가 있음을.
"나도 사랑해, 오빠."
그러고보니 여자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본게 언제였을까?
문득 "사랑" 이라는 감정에 대한 아련한 향수 같은게 마음 한켠에서 되살아났다.
어쩌면 그동안 사랑이라는 이름 자체를 잊고 살았던건 아니었을까.
그저 외모, 섹스, 감각, 즐거움.... 이런 것들만이 사랑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라고 생각해왔던건 아닐까.
분명 사랑이라는 이름 안에는 그것보다 더욱 소중한 어떤 "무언가"가 있었을 텐데.
"자기 전에 전화할게."
수줍게 웃은 현주는 종종걸음으로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갔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에 빠진 나는 잡념을 애써 털어내며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
"뭐지?"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현주와의 일로 생겼던 복잡한 기분 때문은 아니었다.
시동을 걸고 아파트 단지 입구를 뜨는 순간, 사이드 미러에 비춰진 웬 자동차 하나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우연히도 아까 단지 앞에 차를 댈 때 잠깐 사이드 미러를 들여다 보고 있었기에, 그 자동차가 내 차를 따라서 뒤에 멈추었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움직이니 따라 움직인 것이다.
"기분 탓인가."
하지만 찝찝한 기분과는 다르게 그 자동차는 삼거리로 나오자마자 다른 방향으로 유턴을 했고, 나는 이내 그 자동차의 존재를 머리에서 지워버렸다.
*
"이 뒤숭숭한 마음을 어떻게 달랜담..."
자취방으로 돌아갈 마음이 나질 않았다. 그 휑한 침대 위에 드러눕고나면 싫어도 현주의 눈물이 떠오를 것만 같았다. 착잡한 기분을 달래줄 만한 곳으로는 어디가 있을까?
차를 돌려 자취방이 아닌 강변도로 쪽으로 향했다. 예전에도 비슷한 적이 있었던 것 같다. 그 때도 뒤숭숭한 기분을 달래기 위해 혼자 강변도로를 걸었었다. 비록 지금은 차를 타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곳은 바람 쐬기엔 그만인 곳이었다.
"하아..."
도로변에 차를 대충 세워두고 편의점에서 사온 맥주를 뜯었다. 거품이 목구멍을 타고 흘러넘어가자 강변에서 불어온 바람이 한층 시원하게 느껴져 기분 전환에는 약간 도움이 되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여기..."
하필 기묘하게도 이곳은 유성이를 처음 만났던 곳 근처였다.
달려오던 오토바이, 넘어지던 그녀, 욕설을 내뱉던 모습, 어이 없었던 기분까지. 모두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것들이 그렇게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게 새삼스럽게도 무척 신기했다.
왜 이런 순간에 유성이가 생각나는걸까?
다른 날도 아니고 이런 때에 속으로 다른 여자 생각을 하는게 현주에게 도저히 못할 짓이란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강변도로에서 그렇게 바람을 맞으며 앉아있으니 유성이의 얼굴이 떠오르는걸 내 스스로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마음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니까.
휴대폰을 꺼내들고 너무도 구질구질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 유성아.
카톡 한 줄을 보내고 나서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왜 그리 즉흥적이었을까?
보낸 카톡을 취소하는 법을 모르기도 했거니와 그런 기능을 알았다고 한들 굳이 또 취소를 했을 것 같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무작정 기다렸다. 좌우지간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둔게 내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 답이 없네."
읽기는 읽었는지 1 표시가 지워졌음에도, 몇 분이 지나도록 답장이 오지 않음에 이상하리만치 나는 풀이 죽었다.
문득 유성이와 병원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 때의 괜한 대화가 그녀로 하여금 내게 경계심을 갖도록 만들어 버린 걸까...?
사귀는 사람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말을 꺼냈다는게 어쩌면 유성이의 가치관에선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었을지도 몰라... 사적인 연락 같은건 부담스러워 하는 걸지도.
"뭐야... 기, 기분이 왜 이렇지."
어떻게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서글픈 씁슬함이 가슴 속에서 치고 올라왔다.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서연이를 비롯해서 얼굴 예쁜 여자라면 넋놓고 쫓아다니기만 했던 그 찌질한 시절.
눈만 높았던 바로 그 시절.
물론 난 지금도 찌질하다. 하지만 그 때는 정말 찌질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찌질했다.
수많은 여자들에게 들이댔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매번 돌아오는 거절의 멘트를 받으면서 느꼈던 그 씁슬함.
하지만 그 때도 이런 기분이었나?
"나 뭐하는 거냐, 진짜... 여자친구도 있는데."
수많은 여자에게서 거절 당해봤지만 지금과 같은 가슴 속을 공허하게 만드는 허무함을 느끼지는 못했다.
그냥 이번에도 또 실패구나, 하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해왔을 뿐.
더욱이 우스운 것은 유성이가 딱히 무슨 말을 한 것도 아닌데 그저 문자를 한번 씹혔다고 해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자신이었다.
게다가 우리가 이미 무슨 사이라도 되었던 것처럼 문자 하나 달랑 보내놓고 좌불안석하며 온갖 의미부여를 다 하고 있는 것도 생각해보면 가관이다. 혼자 들뜨고, 혼자 날뛰고, 혼자 실망하고... 사실 생각해보면 이런건 전형적인 어린 시절의 연애 방식 아닌가?
알콜이 조금 들어갔기 때문인지 이성이 무뎌지고 쓸데없이 감성만 부풀어오르는 기분이다. 유성이는 나를 왠지 그 시절의 순수한 나로 돌아가게 만드는 것 같다. 병원에서도 느꼈지만 이 나이에 걸맞지 않는 두근거림을 내게 가져다준다. 도대체 그 이유가 뭘까? 게다가 나는 여자친구도 있는 몸인데...
도대체 왜?
"으앗!"
혼자만의 잡생각이 한계선 없이 쭉쭉 위로 치달아 오르고 있는데 문득 핸드폰이 울렸다.
카톡 답장이 온게 아니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순간 호흡이 빨라지는 것을 느꼈다.
"여, 여보세요?"
- 선배.
유성이였다.
목소리가 떨리지 않게끔 마음을 다잡았지만 쉬운건 아니었다.
"유성아."
- 무슨 일이에요?
전화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기에 좋지만, 한편으론 너무 즉각적이다.
고심해서 멘트를 정리할 수 있는 문자와는 다르게 할 말을 바로바로 생각해내야 하고, 한번 뱉으면 돌이킬 수도 없다. 게다가 목소리의 떨림을 상대에게 고스란히 드러낸다는 단점도 있고.
"그.. 그냥... 생각나서."
여자친구도 있다는 놈이 엄한 여자에게 연락해서 한다는 소리가 그냥 생각나서, 라니.
현주가 이 꼴을 보면 도대체 무슨 표정을 지을까.
- 그냥 생각이요...?
유성이도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게 분명했다.
사실 서연이나 현아 씨 정도의 내공만 되더라도 이쯤 얘기하면 내가 무슨 마음으로 연락을 한건지 어렵지 않게 알아챌 텐데, 유성이는 전혀 그런 것이 없이 문맥만으로 이해를 하려니 내가 이상해 보였나보다.
"응. 나 지금 강변도로에 있거든... 그 있잖아. 내가 너랑 처음 만났던."
- 강변도로엔 갑자기 왜요?
"그냥 좀 기분이 답답해서."
이제보니 휴대폰 너머의 유성이에게서도 목소리 외에 주변 배경의 잡음소리가 여기까지 전해져왔다.
차들이 곁으로 달리고 있는지 빵빵거리는 소리와 바람소리가 타고 흘러오는 것을 봐서 바깥이라는 것은 분명했다.
"유성아, 우리 잠시 볼 수 있을까?"
그렇게까지 단도직입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었을까?
어차피 전화통을 계속 붙들고 있어봤자 별 가닥 없는 얘기로 빙빙 돌기만 할 것 같아서 그랬나보다.
그렇지 않아도 유성이가 나에 대해 거북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상황에서 어찌보면 이건 무덤을 파는 행위와 다를게 없었다. 그래서 뱉고나서 조금 아차 싶긴 했다. 이래서 전화는 안 된다니까...
-.......
유성이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이 고민의 의미인지, 아니면 거북함의 의미인지 내가 어찌 알리요.
스스로 이해가 안 될 만큼 초조했다.
- 지금요?
"응."
거절을 하더라도 "다음에 봐요" 정도로만 말해주면 좋을 것 같았다.
"싫어요"라는 대답만은 듣고 싶지 않았다.
- 기다려요.
바보 같기는.
그 짧은 한 마디에 왜 그렇게 두근거렸을까.
*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도로변에 오토바이 두 대가 멈춰 섰다. 괜시리 마음이 벌써부터 들뜨는걸 자제하며 고개를 들었다. 기다리는 동안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맥주를 너무 많이 마시지는 않았다. 뇌가 알콜에 마비된 상태로 대화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선배."
그녀는 여전히 변함없이 담담한 톤으로 나를 부른다. 헬멧 안쪽이어서 그런지 평소보다는 희미한 목소리였다.
유성이가 헬멧을 머리 위로 들어올리자 역시나 폭포수 같은 그녀의 머릿결이 어깨를 넘어 허리까지 흘러 내렸다.
쏟아져 내린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로 파도처럼 등을 뒤덮는 그녀의 장발. 언뜻 차르륵, 하는 효과음까지 들리는 것만 같다. 그것은 마치 유성이의 상징 같아 보였다. 웬만한 여자애들보다 훨씬 더 긴, 마치 공주 인형에게나 어울릴 법한 그런 곱고 풍성한 머릿결.
유성이에 대해 알기 전에는 그저 머리가 참 길구나, 하는 생각만 했는데 그녀를 조금 알고 나니 문득 궁금해졌다.
남자애가 되려는 삶을 살아왔다던 그녀가 머리는 왜 저렇게 길게 길렀을까? 무술에 대해 무지한 나지만 아무래도 몸을 움직이는데 있어서는 짧은 머리가 더 편할 텐데.
기회가 되면 나중에 한번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으응, 유성아."
그녀와 짧은 인삿말을 주고받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도로변에 멈춰선 오토바이가 두 대였다는 사실을 다시 인지할 수 있었다. 유성이의 옆으로 웬 떡대 넘치는 사내자식 한 명이 같이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순간 정말 반사적으로, 속에서 왠지 모를 아니꼬운 감정이 삐죽 고개를 내밀었다.
저 놈은 뭐지? 친구인가?
"야, 이제 그만 가라. 왜 자꾸 따라오는거야?"
다행히도 유성이가 원해서 같이 온 사이는 아닌 것 같았다. 매몰차게 사내를 돌려보내려는 유성이의 모습을 보자 아니꼬운 마음이 아주 약간 사그라 들었지만, 그래도 왠지 유성이 옆에 남자가 있는 모습을 보는게 썩 즐겁지는 않았다.
"뭐야. 급한 일 있다는게 남자 만나는 거였어?"
떡대 넘치는 그 사내녀석의 목소리는 외모만큼이나 걸걸하고 투박했다. 도저히 첫인상이 좋을 수가 없었거니와, 게다가 말의 내용도 대놓고 나를 하대하는 말투였기에 순간 기분이 욱했다. 하지만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유성이가 먼저 성질을 내고 있었다.
"내가 남자를 만나든 게이를 만나든 무슨 상관이야? 꺼져."
누군지도 모르는 그 놈이 욕 먹는게 왜 그렇게나 고소한지.
잘했다고 유성이 어깨라도 토닥여주고 싶었다.
"오늘 같이 놀기로 해놓고 말도 없이 가버리니까 그런거 아냐.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따라온 거라구."
"뭘 같이 놀아. 우리가 언제 그런거 정해놓고 보는 사이였어? 그냥 달리다 면상 보이면 가끔 어울리는거지."
그 덩치는 여전히 내가 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쏟아내고 있었다. 그 무례한 태도에 기분이 더더욱 상했던 것은 물론이다.
두 사람이 아웅다웅 대는 모습을 보니 "설마 남자친구인가?" 하고 속에서 싹 텄던 의심은 그나마 사라졌지만, 그래도 기분이 나쁜 건 나쁜 거였다. 보고 싶어서 부른건데 왜 저런 곰 같은 자식까지 같이 딸려온 걸까?
"미안해요, 선배. 아는 앤데 어쩌다보니..."
내가 기분이 상한걸 유성이도 느꼈던 걸까? 그녀가 내게 사과를 한다.
괜찮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돌려보낼 때까지 잠자코 두고 보는게 좋을지를 고민하고 있는데 그 곰 같은 자식의 동태 같은 두 눈이 번쩍 뜨이며 입이 쩍 벌어졌다. 생긴게 하도 험악해 놔서 무슨 표정을 짓던 위협적으로 보이긴 했지만 이목구비로 짐작하건대 놀란 표정인 것 같았다.
"야... 하, 한유성. 너 뭐야?"
"뭐?"
"저 형씨가 네 남친이라도 되는 거냐?"
"뭐야? 무슨 개소리야, 또?"
"똑바로 말해!! 남친도 아닌데 그 조신한 태도는 뭐야?! 너 답지 않게."
안 그래도 맹수 같이 생긴 놈이 버럭 소리까지 지르니 솔직히 무식해 보였지만 한편으론 박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제 보니 정말 덩치가 크다. 나를 옆으로 두 명 정도 붙여놓은 것보다 더 클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떡대 앞에서 유성이는 조금도, 정말 조금도 움츠러 드는 모습이 없이 앙칼진 목소리로 말을 받아쳤다.
"남친이든 아니든 니가 무슨 상관이야!? 피곤하니까 꺼져 이 새끼야!!"
서, 성질 나오는 구나....
지환이를 참혹하게 두들겨 팼던 유성이의 그 모습이 다시 선명하게 뇌리에 떠오르는 것 같다. 농담이 아니라 정말 웬만한 사내놈들이 유성이의 성질을 건드렸다간 뼈도 못 추릴 것 같았다.
하지만 떡대가 벌어진 그 곰 같은 녀석의 외모는 상식 이상으로 험악해 보였기에 보는 입장에선 조마조마 할 수 밖에 없었다. 혹시나 그 놈이 울컥해서 유성이에게 몹쓸 짓이라도 하려고 하면 당장 뛰어들어야겠다 싶어 마음의 준비를 했다. 솔직히 맞짱 뜨면 100퍼센트 내가 질 것 같이 생겼지만.
"야.. 야, 한유성. 니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 너.. 너 저번에도 나한테 대답 미루고 피하더니.. 그렇게 애매하게 굴면서 뒤에서는 다른 남자 만나고 다녔다는 거야...? 너, 너도 어장관리하는 그런 년이었다 이거냐?"
"뭐...?"
"한 마디만 더 지껄였다간 죽여버리겠어." 라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던 유성이였지만 마치 울먹이는 듯한 그 떡대 녀석의 말을 듣고 나자 할 말을 잃은 것 같았다. 당황을 했다기 보다는 어이가 없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모습이었다. 게다가 더 험악하게 화를 터뜨릴 거라 생각했던 곰 같은 녀석이 그렇게 갑자기 울먹거리는 모습을 보자 보는 입장에서 심히 당황스러웠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확실하게 말을 해줘야 될 거 아니야!! 기껏 용기내서 고백했는데 대답도 없이 그냥 피하기만 하다가 이제 와서 다른 남자 만나고 있었다고? 아무리 네가 자유분방해도 이건 너무하는거 아니야? 너... 너 사람 마음 갖고 논 거 아니냐고!!"
덩치는 산만한 인간이 눈물까지 글썽거릴 기세로 울먹이며 따지고 드니 그 모습이 무섭다기 보다는 상당히 괴이해 보였다.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정도라면 말 다 했을까? 심지어 유성이마저도 그 모습 앞에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솔직히 이 두 사람 사이의 정확한 상황 같은건 모르지만 유성이가 말이 없자 왠지 더 두고 봐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까지 오바를 할 생각까지도 없었는데, 왜 다음 순간 그런 턱도 없는 대사를 날리며 끼어들었는지 모르겠다.
"저기, 이봐요."
"뭐야?"
"그만 해요. 남의 여자친구한테 이게 지금 뭐하는 겁니까?"
"뭐, 뭐라고?"
그 순간, 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내게 홱 돌아와 꽂혔다. 내가 독심술은 배운 적이 없지만 지금 이 두 사람의 표정에서 충분히 대사 정도는 읽을 수 있었다. 유성이는 "그게 무슨 소리에요?" 하는 표정이고 덩치 큰 녀석은 "씨발, 그게 무슨 소리야?" 하는 표정이었다.
"유성이는 내 여자친구라구요. 내 여자한테 그렇게 무례하게 구는걸 보니까 솔직히 기분이 안 좋네요. 두 사람 문제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이쯤에서 그만해 줬으면 하는데...."
미친. 내가 꼴에 어디서 본건 있었나보다. 어떻게 그 상황에 그런 낯간지럽고 뻔뻔한 멘트가 나왔는지.
타임 리와인더라도 있었을 적의 나라면 몰라도 솔직히 무슨 깡으로 그랬는지 나조차도 도무지 모를 일이다.
"......."
곰 같은 녀석의 표정이 충격으로 덜컥 굳어서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대답할 말도 찾지 못하고 굳어져 있는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약간 움찔했다. 사실 저 놈이 이성을 잃고 덤벼들기라도 한다거나 하면 감당할 자신은 없었기에.
"야... 하... 한유성...."
어색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마침내 덩치 녀석이 더듬더듬 입을 연다. 놈은 예상과는 다르게 덤벼들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 후에 놈이 보인 행동은 정말이지 내가 도저히 예측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세상에 그렇게까지 눈물이 안 어울리는 남자의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도 뚜렷이 보일 만큼 닭똥같은 눈물이 그 곰 같은 놈의 두 눈에서 주르르 흘러내리는 것이 보였다. 태어나서 보았던 가장 비현실적인 장면 TOP 10안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그 괴기스런 장면 앞에 나 또한 할 말을 잃을 수 밖에 없었다.
"나... 나쁜 년... 결국 이럴 거면서..."
"......"
"너... 너 그러는 거 아니야. 너 벌 받을 거야. 나쁜 년... 훌쩍..."
"......"
산적 같이 생긴 놈은 구슬프게 눈물을 주르르 흘리더니 코까지 훌쩍거리며 서글프게 등을 돌렸다. 등빨이 남산만한 뒷모습이 힘 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꼴이 그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없었다. 놈은 삶의 의욕을 잃은 듯한 모습으로 서럽게 자신이 타고 온 오토바이 위에 걸터 앉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엑셀을 당겨 우리 앞에서 금새 모습을 감추었다.
오토바이가 떠나고 남은 자리에 드디어 나와 유성이만 남게 되었지만, 우리는 왠지 모를 어색함 속에서 둘 다 잠시 동안 말이 없었다.
"......"
"유, 유성아. 일단 우리 앉을까?"
"아.. 네."
조촐한 나무 벤치 위에 나란히 앉는 우리. 뭔가 서늘하면서도 어색한 바람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제, 젠장. 도대체 뭐지, 이 상황은?
*
"미안해요, 선배."
불어오는 밤바람을 잠자코 계속 맞고 있으려니 문득 유성이가 그런 말을 한다. 사실 생각해보면 딱히 그녀가 사과할 일까지는 아니지만 그녀도 그녀 나름대로 이 적막을 깨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내심 유성이의 사과가 반가웠다.
"아, 아냐.. 근데 그 사람은 누구야?"
물을까 말까 많이 망설였는데, 아무래도 궁금증을 참기는 힘들었다. 게다가 유성이도 별로 숨길 만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무덤덤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왠지 그 차분한 태도 앞에 안심이 되는 내 모습은 참 바보 같게 느껴졌다.
"자주 보는 폭주족 리더에요. 오토바이로 달릴 만한 곳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까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마주치게 될 때가 있는데, 얼마 전부터 유독 귀찮게 구네요. 방금도 데려올 생각은 없었는데 계속 따라오길래..."
"너, 너 좋아하는 것 같던데..."
솔직히 내가 말해놓고도 그건 너무 순화된 표현이었다. 그 덩치 큰 떡대에게선 뭐랄까.... 예전 그 시절의 내게서 느낄 수 있었던 특유의 어떤 "찌질함"이 느껴졌다. 외모에 대해서 얘기하는게 아니라, 여자의 마음을 고려하지 않고 오직 의욕 하나만 보고 앞으로 달려가는 특유의 무모함이랄까....?
경험으로 인해 나는 그게 대충 어떤 기분인지 충분히 알고 있었기에, 그 덩치에게 공감 섞인 동정심마저 우러날 지경이었다. 찌질이들 특유의 연대 의식 같은게 있는 건가.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성이가 그 놈이랑 어울리는 꼴을 보는게 괜찮다는 의미는 절대 아니다.
"남자들은 좋아하면 그러나요?"
"뭐, 뭐를?"
"혼자 말하고, 혼자 대답하고, 혼자 화내고.... 뭐 그런 것들이요. 귀찮게 구는 것까지 포함해서."
유성이에게선 현주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순진함이 느껴졌다. 사실, 순진하다기보단 "남녀의 관계"라는 문제 자체에 대한 특별한 인식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런 유성이였기에 남자가 집적거리든 말든 어떠한 의사표현 없이 그냥 그렇게 무심하게 내버려 두었던게 아닐까?
"그, 글쎄.. 하지만 남자들은 대개 단순해서, 확실하게 의사 표현을 해줘야 알아듣거든. 아까 그 친구도 꽤 여러번 너한테 마음 표현을 했다는거 같던데... 그럴 때 남자들은 차라리 확실하게 싫다고 해줘야 마음을 정리하게 되거든. 혹시 확실하게 거절하거나 싫다고 말한 적이 있었어?"
"거... 절이요?"
물론 그 이름도 모를 덩치 큰 녀석을 두둔해 주고픈 마음 따위는 전혀 없었다. 동류로서의 어떤 찌질한 유대감을 살짝 느끼기는 했어도 그런 산적 같은 놈이 유성이에게 추근거리는 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기에 나는 이 사실을 유성이에게 말해줘야했다.
이런 당연한 것도 잘 모르고 있는 스무살 여자애가 있다니 정말 신기할 노릇이긴 했지만 누군가가 나서서 이런 부분에 대해 가르쳐주지 않는다면 아마 앞으로도 유성이에게 꼬이는 날파리들이 꽤나 많을 것이다. 어쨌거나 유성이도 충분히 매력 있으니까...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네요. 남자들은 싫다고 확실하게 말해 주질 않으면 잘 모른다는 거죠?"
"으, 으응. 그렇지."
왠지 그 덩치 큰 녀석에게 쪼금 미안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뭐 어때?
"그렇군요... 선배한테 또 하나 배웠네요. 선배하고는 유독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여태껏 그런걸 가르쳐준 사람은 잘 없었는데."
"그, 그래? 하하."
어쩌면 유성이의 말은 내가 그녀에게 이성적인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반증 같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니 그런 주제로 이야기를 할 일이 많아질 수 밖에... 하지만 유성이는 그걸 눈치채기엔 너무 백지 같은 아이였다.
"있잖아. 음, 아니라고는 생각하지만... 너도 아까 그 친구한테 혹시 마음이 있다거나 하는건 아니었어?"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러니까, 호감이 있다거나..."
"호감" 이라는 단어 하나에 대해 그렇게까지 심도 있게 고찰하는 여학생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사뭇 진지해진 표정의 유성이가 한 손으로 턱을 괴며 낮은 목소리로 "호감..?" 이라 중얼거린다. 순수하다 못해 약간 바보같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그 모습이 귀엽게 보이는 걸 보면 나도 확실히 정상은 아니었다.
"호감...? 그게 뭔지 모르겠어요. 여자들이 남자에게 호감을 갖는다는건 어떤 기분인가요?"
"그, 글쎄....?"
여자들의 마음을 남자인 내게 묻다니... 이런건 나보다 서연이한테 물어보는게 훨씬 낫지 않을까.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뭐, 남자든 여자든 누군가에게 호감을 갖는다는건 대체로 비슷한 기분일 거라 생각해. 그 사람이 자꾸 눈에 들어오고, 같이 있으면 뭔가 기분이 좋고, 다른 사람들보다 그 사람이 더 특별해 보이는... 그런 기분이 아닐까?"
"음...."
내가 말한걸 수학공식이라도 되는 것 마냥 따라 읊으며 고민하기 시작하는 유성이의 모습이 뭐랄까, 참으로....
순간 그녀를 와락 안아주고 싶은 충동을 자제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곧이어 나온 유성이의 담담한 말은 나에게 충동이 아닌 충격을 주었다.
"그런 거라면 성진 선배도 저한텐 그런 사람인 것 같은데요. 그럼 제가 성진 선배한테 호감이 있는 거에요?"
"콜록!"
약간은 멋쩍은 분위기를 달래보고자 아까 남은 맥주캔을 홀짝 들이마시고 있었는데, 그게 코로 튀어나왔다. 담담하게 말하는 유성이의 모습을 봐서 나 혼자 망측한 의미부여를 하고 있다는건 쉽게 알 수 있었지만 남자라면 아마 누구도 그런 말을 듣고 덤덤하진 못 했으리라.
"콜록! 콜록!"
"괜찮아요?"
젠장. 이 타이밍에 한심하게 사레가 들려가지고...
유성이의 말에 대해 뭔가 대답을 해주고 싶었는데 진정이 되고 보니 대답 할 타이밍이 넘어가 있었다.
"미안해요, 그러고 보니 우리 너무 이상한 이야기만 하고 있었네요. 무슨 일로 불렀던 거에요?"
유성이는 그 문제가 진짜 대화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 나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어 그녀에게 연락을 했을까? 그냥 갑자기 생각이 난 거지...
솔직히 그런 시덥잖은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보다는 방금 전의 화제로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은 마음이 더 굴뚝이었다. 그러나 내 아쉬운 눈빛만 보고 유성이가 그 마음을 캐치해 줄 가능성은 아쉽게도 0%에 육박했다.
"아, 그냥... 강변도로에 오니까 네 생각이 난거지 뭐."
"혹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아, 아니. 왜?"
솔직히 말하면 안 좋은 일이 맞긴 하지만 굳이 현주에 대한 세세한 이야기를 유성이에게 하고 싶진 않았기에 그냥 아닌 척을 했다.
"저는 기분이 안 좋을 때 여기 이 도로에 와서 달리거든요. 선배도 혹시 비슷한 마음이었나 해서요."
"어, 으음, 그렇게 들으니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뭔 소리냐? 젠장. 내가 말해놓고도 바보 같다.
"오늘 선배 기분이 좀 안 좋아보이긴 하네요."
"그, 그게 느껴지니?"
"그냥 평소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유성이가 나를 간파하고 있다는 듯한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그래서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드라이브라도 할래요?"
"뭐?"
유성이는 나무 벤치 근처 도로변에 세워져있는 그녀의 오토바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기분전환에 이것 만한 것도 없는데. 생각 있으시면 뒷자리에 태워줄게요."
지나치게 상상력이 풍부한 것도 그닥 좋은 일은 아닌가보다. 쓸 데 없이 가슴은 왜 그렇게 두근거리는지. 유성이의 뒤에 타는 모습을 상상만 했을 뿐인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유성이가 부디 그걸 알콜 때문이라 생각해주길 바랐다.
"그.. 그럴까?"
왠지 병원에서의 어느 한 장면이 떠올라 피식 웃음까지 나올 뻔 했다.
세 번까지는 아니더라도 한두번은 튕길 수도 있는 건데 자꾸 왜 이러는 건지.
문득 도로변에 세워두었던 차 생각이 났다. 드라이브를 할 거라면 오토바이보단 자동차가 더 편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유성이에게 그걸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아늑한 차보다는... 지금은 왠지 오토바이가 끌리니까.
*
사실 오토바이를 타본건 처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뒷좌석에 앉아본 적도 처음이고, 더군다나 여자애의 뒷좌석에 앉아본건 더더욱 처음이다. 질주하는 바이크 위에서 맞는 바람이 이렇게나 아찔하고 짜릿한 줄은 미처 몰랐다.
"유성아!"
그녀를 한번 불러보았는데, 목소리가 닿질 않는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헬멧 안에서 목소리가 공허하게 바람 속으로 묻혀들었다.
어쩌다 보니 유성이의 헬멧을 내가 쓰게 되었다. 단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쓰기는 했지만 그녀는 원래 헬멧 쓰는게 싫었댄다. 그렇다고 그걸 덥썩 내게 씌우는 유성이도 참 터프했지만, 엉겁결에 그걸 또 받아쓴 나도 참...
"그.. 그래도.. 뭔가 짜릿하네."
헬멧 안쪽에서 왠지 유성이의 향기가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변태 같을지도 모르지만 뭔가 알싸한 향이 났는데 그게 그렇게나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유성이는 병원에서 보았던 바로 그 섹시한 슈트를 입고 있었다. 온 몸의 굴곡이 드러나는 슈트를 입은 여자가 바이크를 몰고 가는 모습을, 바로 등 뒤에 붙어서 바라보는 기분이 그렇게나 아찔할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 했었다. 내 손은 얌전히 유성이의 허리를 두르고 있었고, 손 끝으로는 매끈한 슈트의 감촉이 생생히 느껴지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유성이는 이 슈트 안에 아무 것도 입지 않는다고 했었지... 비록 슈트로 덮여 있긴 했지만 나는 지금 유성이의 몸을 더듬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걸까?
자연스럽게 계곡에서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가 서로의 알몸을 껴안았던 사이라는 사실이 새삼 강렬하게 뇌리에 때려박히면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기분이 가슴 속을 울렁울렁 메웠다.
너도 가끔 그 순간을 떠올릴 때가 있니?
그녀에게 묻고 싶었다.
"이크."
생각에 빠져있다가 하마터면 배를 두르고 있었던 손이 위로 올라갈 뻔 했다. 조금만 손이 위로 올라가도 가슴이 고스란히 만져질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손을 내렸다. 하지만 배 위를 덮은 손의 느낌도 왠지 쑥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속에 아무 것도 입지 않았다는 사실이 나를 극도로 긴장하게 만드는 듯 했다.
어쩔 수 없는 사내놈인지라 이대로 유성이의 가슴 위를 더듬으면 무슨 감촉이 느껴질까 하는 못 된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녀의 유두가 내 가슴팍을 스치고 지나갔을 때의 그 짜릿한 감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애써 고개를 털어 그 느낌을 잠시 지웠다. 지금은 성적인 자극 말고도 나를 들뜨게 하는 무언가가 있었다.
만약 평소의 이성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 이 순간 현주에게 미안했을 것이다. 그녀와 그런 일을 겪고도 지금 이런 마음을 갖는 내가 스스로도 혐오스럽다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설레이는 감정은 그런 죄책감마저도 마음 속에서 지워버리고 만다.
그... 강렬함.
분명 그것은 성욕보다도 더 강렬한 감각이었다.
"아... 그렇구나."
그 때, 나는 실감했다.
세상과 동떨어진 시간 속에 있다고 착각할 만큼 비현실적인 속도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오히려 이상하게도 그 순간 그 어느 때보다도 선명한 확신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이 애를...."
바람결에 유성이의 길고 고운 머리카락이 물결처럼 마구 흩날린다.
그녀가 내 마음을 알 수 없다는게 너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
"오늘 고마웠어, 유성아."
"별로 한 것도 없는 데요."
유성이는 집 앞까지 나를 데려다 주었다. 도로변에 내 자동차가 세워져있다는 말을 굳이 그녀에게 하지 않았던 것은 유성이의 등 뒤에 조금 더 오래 타고 있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다. 자동차야 뭐... 이따가 가지러 가도 되겠지.
"유성아, 가끔 이렇게 연락해도 될까?"
"그러세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덤덤하게 대꾸하는 유성이를 보니 웃음이 나왔다. 이 멘트에서 느껴지는 어떤 "이성적"인 의미에 대해 그녀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게 틀림 없었다. 정말 백지장 같은 아이로구나.
"아, 그리고..."
다시 시동을 거는 유성이를 나는 문득 불러세웠다.
"아깐 미안해."
"뭐가요?"
"네 남자친구라고 거짓말 한 거."
이상하게도 내내 그게 신경이 쓰였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괜찮아요." 라고 담담하게 대꾸할 줄 알았던 유성이였는데 의외로 그 사과 앞에 고개를 갸웃거린다.
"왜요? 저를 도와주려고 그런 거잖아요."
"그렇긴 한데... 혹시 네가 기분 나빴을 수도 있잖아."
그 때 나는 정말로 의외의 것을 보았다. 유성이가 피식 웃음을 지었던 것이다.
그녀가 웃는 모습을 본 건... 처음이지 않나?
"기분 나빴으면 그 자리에서 화를 냈겠죠."
긴 머리카락을 등 뒤로 쓸어 넘기며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웃는 그 모습이 너무나도 예뻤다.
"그럼 갈게요. 학교에서 봐요."
"아, 유성아!"
엑셀을 당기려고 하는 그녀를 다시 잡아세우자 금방 앞으로 튕겨져 나갈 것만 같았던 오토바이가 다행히도 잠시 요동을 멈춘다.
"네?"
"나 있잖아. 너한테 부탁이 있는데."
"부탁이요? 말해보세요."
고민이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함부로 해도 될까?
마음은 정해졌지만 막상 꺼내려니 망설여졌다. 타임 리와인더가 있었다면 망설이지 않았을 텐데.
하지만 그게 있건 없건, 할 말은 해야 한다.
"이제부턴 다른 이름으로 부르면 안 될까?"
"네?"
"네 원래 이름 말야. 유성이 말고... 여자애 다운 예쁜 이름이 따로 있잖아. 한유정."
그녀의 아버지가 딸이 태어났을 때 붙여주고 싶어했다던 그 이름. 한유성이 아닌 한유정.
용케도 나는 그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그걸 기억하고 있었다는게 그녀로서도 놀라운 일이었나보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뜨는 그녀.
"그 이름은 왜...?"
"너 여자애처럼 살고 싶다고 했잖아. 내 생각에 유성이란 이름... 네가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아서. 나라도 괜찮다면 그 이름으로 불러줄게. 사실 그게 너한테 더 잘 어울리고..."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내내 망설였던 이유는 주제넘는 행동이 될까봐서였다. 특별한 사이도 아닌데 이름을 바꾸어 부르겠다면 당연히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것이 유성이 본인을 위해서도 좋은 생각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건..."
망설이는 유성이의 모습을 보니 괜한 이야기를 한건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차분하게 기다렸다.
"좋아요."
짧은 기다림 끝에 그녀가 승낙을 한다.
"대신 저도 조건이 있어요."
"으응? 조건?"
그녀가 뭔가를 요구한다는건 이례적인 일이었기에 나는 바짝 긴장하면서도 속으로 호기심을 느꼈다.
"오빠."
"어? 뭐라고?"
"어렸을 때부터 나는 오빠가 갖고 싶었어요. 오빠 한 명만 있었어도 여자애처럼 살 수 있었을 텐데 싶기도 하고... 뭐 꼭 그게 아니더라도 오빠 있는 애들이 내심 부러웠어요. 부모님이 동생은 만들어 줬지만 오빠까지 만들어 줄 수 있는건 아니니까... 아쉬운 대로 선배가 오빠 노릇 좀 해주세요."
오, 오빠...?
"괜찮죠?"
"어... 으, 으응. 괜찮지. 그럼."
사실 이게 무슨 의미인지 생각을 다 끝내기도 전에 반사적으로 입에서 뇌를 거치지 않고 대답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유성이는 그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그럼 저도 이제부터 오빠라 부를 게요."
"어어... 응."
그 특유의 담담한 투로 말을 하는 건데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심장이 뛰는 건지 모르겠다. 다시 엑셀을 당기기 시작하는 유성이의 뒷모습을 보며 굳이 뭔가 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손이라도 흔들어 줘야겠다 싶어 어색하게 오른손을 드는데 유성이가 먼저 인사를 한다.
"학교에서 봐요, 오빠."
그녀는 그 말을 남기고 부르릉 소리를 내며 쏜살같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멀어져가는 유성이.... 아니, 유정이의 뒷모습을 보며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서 있었다.
*
"혹시 여자친구?"
오늘은 하루 만에 정말 다양한 감정을 체험하는 것 같다. 현주를 만나고 유정이를 만나면서 오늘 하루 동안 정말로 다이나믹할 만큼 상반된 여러가지 감정을 겪었다. 허무함도 느꼈고, 분노도 느꼈고, 설레임도 느꼈다. 하지만 그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놀라움" 이었다.
"그.. 그쪽은?"
원룸텔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입구에서 누군가가 담배를 피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려니 하며 지나치려는데 그 누군지 모를 형체의 목소리가 나를 불러세웠다. 건물 입구의 희미한 조명등 아래에 서고 나서야 나는 그 얼굴이 내가 아는 얼굴임을 인지할 수 있었다. 비록 "아는 사이" 라고 말할 수는 없는 관계였긴 하지만...
"재밌어 보이네."
언제나처럼 삭막하고 건조한 얼굴. 그리고 얼굴만큼이나 메마른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에 지난 번과는 다르게 미세한 생기가 깔려있다.
바로 옆집 여자였다.
"어.. 그게, 저기..."
그녀의 얼굴을 평소에 워낙 보기 힘들긴 했지만 막상 얼굴을 보게 되니 말이 나오질 않는다.
하긴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내가 당신의 물건을 훔쳤었는데 어쩌다 보니 고장이 났어요?
"언제 한 번 찾아와도 괜찮아."
이 원룸에 살면서 옆집 여자에게 들어본 말 중 가장 길었던 말이었다. 내가 고민하는 모습을 볼 필요도 없다는 듯이 그녀는 당황하는 나를 신경쓰지 않고 담뱃재를 털었다. 꽁초를 쓰레기통에 던져넣은 그녀는 그렇게 먼저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302호의 문이 열고 닫히는 것 같은 소리가 아득하게 1층까지 울려 내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서도 나는 한동안 303호로 들어가지 못하고 한참을 현관에 못 박힌 듯 서 있어야 했다.
- 다음 화에 계속 -
아침이 밝았네요. 또 일을 하러 가야겠지요!
독자분들도 오늘 하루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보내실 수 있길 바래요
이야기를 할까말까 많이 망설였는데, 지난 화의 댓글들 중에서
조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 이렇게 언급을 하게 됩니다
이야기의 전개나 의도에 대해서 댓글로 독자분들 나름대로의 예측을 써주시는 분들을,
좋게 보시는 분들도 있고 안좋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더군요
음... 솔직하게 제 입장을 말씀드리자면 저는 사실 제 글을 읽고 나서 독자분들이
나름대로의 예측이나 감상, 글에 대한 피드백 등등을 해주시는 댓글이 더 좋습니다
물론 어느 댓글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솔직히 짤막한 인삿말 한마디 보다는
그렇게 독자분들이 나름대로 스토리에 대한 예측을 하시거나 제가 쓴 이야기에 대해서
생각해 보시고 감상의 흔적을 남겨주는게 작가 입장에선 정말 즐거운 일이거든요
물론 오해는 하지 마세요! 어느 한쪽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건 아닙니다
다만 제 개인적인 선호도를 말씀드리는거죠
아마 독자분들의 그런 예측이나 피드백에 대해 경계의 시선을 보내시는 독자분들은 아마도,
독자분들의 목소리에 행여나 제가 중심을 잃고 원래 의도했던 스토리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진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일거라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그 또한 작품을 사랑해주시는 마음이니 충분히 감사한 말씀입니다.
저는 사실 텍스트로 완성을 시키지 못했을 뿐, 전체적인 스토리에 대한 윤곽을
처음부터 끝까지 설정하고 글을 쓰고 있는 것이라 행여나 어떤 부분에 있어
독자분들의 호응이 미미하거나 반대가 있더라도 어쩔 수 없이 (?) 제가 처음에 기획한 바대로
글을 써야 한답니다... ^^;
제가 너무 독자분들의 호응을 중요시하게 여긴 나머지 중심을 잃을까봐
우려해주시는 분들은 안심하셔도 됩니다
좌우지간 저는 길고 상세한 댓글이 좋답니다
제 글을 심도 있게 읽어주셨다는 흔적을 볼 수 있어서 읽는 순간 보람을 느낀 달까요...?
너무 욕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거라면 죄송합니다
사설이 너무 길었네요. 상처 받는 독자님들이 계실까봐 이렇게 짤막하게 글을 남겼습니다.
길고 상세한 댓글 저는 좋아하니까 많이 남기셔도 됩니다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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