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마주 청사내에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 눈에 띄었다.
"좋은 일이라도 있나? 사람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서 보기 좋은걸?"
"그러게요. 저도 대마주는 처음 와보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부지런해 보여서 좋네요."
청사게이트를 지날 때 무선바코드를 인식하여 신분확인을 위한 광선이 쏘아졌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신원확인을 마친 게이트의 문이 활짝 열리고 이곳 주지사의 홀로그램이 전면에 나타나며 환대한다.
"각하, 어서 오십시오. 저는 급한 일로 직접 영접하지는 못하나 각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깍듯한 예의로써 홀로그램이 청사 안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대마주의 홀로그램 시스템은 다른 주에 비해 발달된 점을 익히 알고는 있으나 굳이 홀로그램이라 밝히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실물이라 믿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양방향으로 통신이 이루어져서 미리 프로그램된 상태 이외에 별도의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즉각 대응하는 기법은 인공지능을 뛰어 넘어 가상인간시대를 한발짝 접근 시킨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기술이다.
지하국이 비록 대마주의 사람들을 특이한 종자라 하여 오랫동안 괄시하면서도 그들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도구들을 선호했던 일들을 보면 이들 역시 뛰어난 동일 조상의 후예임을 증명하고도 남을 만했다.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 딛었다던 1960년대 보다 무려 4백년 앞선 1500년대에 지하국은 지구 시스템 감시를 위해 달 표면에 광학렌즈를 장착한 위성체를 발사했었다. 지상의 조선국이 왜와 힘겨운 싸움을 하던 7년 전쟁때 조선의 왕이 수도를 버리고 멀리 평양까지 도망가야할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지하국은 직접 원조를 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달에 쏘아진 위성체를 통해 왜구의 남쪽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해일을 일으켜 추가 병력이 반도에 상륙할 수 없도록 선단을 난파시키는 등 간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에 그쳐야했었다.
이러한 과학기술은 지상국의 부국강병을 위한 조처로써 일부 의도적인 유출을 통해 다른 나라들보다 빠른 화약제조 기술로 이어지거나 해상에서 무적 함대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거북선 제조 기술에 응용되기도 했지만 기술수준이 열악하여 신기술을 접목시킬 방도가 마땅하지 않은 지상국에서의 과학입국 실현에는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 실사구시를 주창하던 유학자들이 지상에도 존재했었지만 그들의 주장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사회적 성숙도 미비와 여건 부재로 인해 구호로만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간계로 나라를 먹어치우려는 외부세력도 있는 반면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식민지 깃발을 꼽는 취미로 여행하는 모험가들이 판을 치던 시대에 지상국 조선이 바람앞의 등불로 놓여 있을 때는 지하국의 장난감 하나면 모든 지상국들을 제압할 수 있는 파워가 넘쳐 나고 있었다 하더라도 감히 조상의 유훈을 넘어 간섭할 수 없는 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대마주는 왜와 조선이 극한 대립을 벌일 때 항상 중립적 위치에 있었던 관계로 지하국 내에서도 이단자라는 낙인의 손가락질 당한 적이 많았지만 태생적으로 옛 왜의 지하에 위치한 탓에서 발생한 오해라는 것을 유전학적으로 입증된 이후에는 많이 불식되었다. 하지만 비상한 머리와 지하국의 과학을 주도해온 부류라는 것 이외에 습성이 특이하여 왠지 화합하기 어려운 족속으로 마음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홀로그램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행사가 한창 진행중인 주정부의 청사내 스튜디오였다.
쭈쭈빵빵한 미인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번호표를 달고 몸매를 과시하며 스테이지를 누비는 것이 마치 수백년전에 유행했다던 미인선발대회를 연상시킨다.
"각하, 대마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침 이 시간은 1년에 한번씩 열리는 대마주 최고 미인선발대회를 여는 날이라서 미처 영접나가지 못했습니다."
"아닐세. 요즘 시대에도 이런 행사가 있다니 큰 볼거리구먼."
"오늘이 저희 주 전통의 날이잖습니까? 볼만한 풍속을 보존시키는 것도 중요한지라, 저희 주는 매년 전통의 날에 미인대회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미인선발대회에 대한 불평은 안하던가?"
"인식하기 나름이죠. 단순히 여자의 몸매를 감상한다는 생각이라면 이 풍속이 남아있을 수 없지만 저희가 주최하는 민속대회인 미인선발은 여성이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 꾸며지는 행사인지라 자긍심이 오히려 높습니다."
"오, 그렇지. 매사 생각하기 나름인게야.
미인대회를 남성위주로 생각하면 몸매 감상일테지만 여성위주로 생각한다면 자신을 드러내는 좋은 기회가 되겠구먼."
"그렇습니다. 저희 주가 보유한 민속행사중에서 가장 여성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행사는 역시 미인선발대회를 뽑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 여기서 선발된 사람들의 역할은 뭔가?"
"특권이 부여되지요."
"특권? 아직도 특권의식이 필요한 시대란 말인가?"
"아주 특별한 특권이 부여되기 때문에 여성이라면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대회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궁금하군.
어떤 특권이 주어지는가?"
"장원한 사람에겐 남성 3명까지 지명하여 결혼할 권리가 주어집니다."
"중혼은 지하국 헌법에 위배되는 중요한 범법행위일텐데."
"헌법소원을 하기 전까진 주정부의 헌법이 우선하잖습니까?
아직까지 중앙헌법에 제소되지 않은 걸 봐서도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중혼의 스릴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지요."
"허, 주지사 양반의 이름이 결코 허명이 아니구먼."
"제 이름과 이 행사 특권이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지요?"
"글세, 주지사 양반 이름이 무대포아닌가. 헌법도 맘대로 해석하고 큰일날 사람이구먼."
"각하, 전통입니다. 단순한 문화전통인 것을 확대해석하지 말아주십시오."
"이 사람아, 구멍이 한 개 뚫리면 또 다른 구멍이 생긴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구멍이라뇨?"
"예외를 허용하니까 자꾸 예외가 양산되지 않나.
비록 문화전통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중혼을 금지하는 중앙헌법이 존재하는 마당에 눈가리고 아웅한다고 주헌법에 중혼금지가 없다는 이유로 특권을 양산한다는게 어디 말이나 될 소린가?"
"각하, 전통고수를 위해 눈 한번만 감아주십시오."
"됐네. 내가 온 목적이 자네 주의 전통문화행사를 방해하러 온 것이 아닌 마당에 이번일을 별도로 거론할 일은 없을걸세. 다만 궁금한 것은 매년 장원으로 선발된 미인들이 정말 3명의 남성과 성교하고 결혼하던가?"
"어휴, 말씀 마십시오. 오죽하면 중앙정부의 안목도 있고하여 이 대회를 폐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여성계의 반발로 이 행사가 벌써 백여년 은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말 되는군.
그럼 자네한테 얻어지는 이득은 뭔가?"
"인구가 많다보니 성적 취향이 다양합니다. 특히 저희 대마주는 전통적으로 색에 대한 감흥이 별달라서 다른 주로부터 눈치를 받아온 터에 이 대회를 통해 남자들도 첩이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과 그런 욕구를 제도적으로 분출할 기회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주민들로부터 많은 호흥을 받고 있습니다."
"음, 그럴수도 있겠군. 성은 다양한 법인데 인간들은 그냥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방법 하나만을 쓰도록 오랫동안 강요하며 살았던것인지도 몰라. 여기 대무주에 와서 배운것이라면 다양한 욕구를 무조건 누르는 것보다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분출구를 슬그머니 열어놓고 일부라도 그 욕구를 대리 만족으로 성취할 기회를 주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는 것일세."
"저희 전통을 관대히 이해해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아닐세. 사람이 모여살면 나름대로의 전통이 있지.
그 전통이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볼때는 보잘 것 없거나 음란해 보일지라도 그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라서 남아있다는 사실을 가끔은 잊고 손가락질 할 때도 있겠지. 나는 중앙정부로 돌아가서라도 이 일을 절대 문제삼지 못하도록 문헌상에 기재하여 자네의 전통을 보호하도록 하겠네."
"난망.."
대마주 무대포 주지사와 은밀한 대화를 이어가는 순간에도 수백명의 아름다운 미녀들이 짜여진 스케쥴에 맞춰 자신을 만방에 과시하기 위한 온갖 몸짓을 연출하고 있다. 내 눈도 어느새 주지사의 얼굴에서 벗어나 무대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출연자들의 자태를 나간 듯 쳐다보는데 더 치중하고 있다.
"각하, 맘에 드는 아이의 번호를 하나 찍어 두십시오. 저녁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찍은 그 아이가 장원이라도 해서 나를 첩으로 받아 들이면 어찌하려구 그러나?"
"하하, 그럴수도 있겠군요.
그럼 맘에 드는 아이 번호를 몇 개 찍어 주세요. 장원될 만한 아이는 피하시고..."
많은 관객들은 미인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숨을 죽이고 있다.
우측에 앉은 진실 역시 그 미인들의 움직임에 눈을 맞추고 숨을 죽이며 관중이 되어 있다.
이 곳 대마주의 형질적 특질은 남성들의 좆이 작고 여성들의 이빨이 조금은 튀어 나와 있다는 것인데 대회에 참석한 미인들은 대체적으로 이빨이 고른 것이 손안대고 나온 사람이 없다. 3차원 그래픽으로 얼굴성형을 디자인하여 성형기에 밀어 넣으면 순식간에 기본 틀을 제외한 대체적인 윤곽을 마음대로 바꿀수 있는 상황에서 얼굴 이쁜것과 미운 것은 단지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차이 뿐이다.
얼굴이 변형될 경우 중앙정부의 컴퓨터에는 원형과 변형 이력이 자동적으로 기록되어 그 사람이 아무리 외형을 바꾼다해도 실체를 알아 볼수 있는 정교한 추적장치가 있다.
그 사람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의 심미안을 위해 성형하는 것이지 결코 자신의 본질이 감춰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지하국 사람들은 그래서 일부러 성형하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불의의 재난으로 신체 일부에 손상이 된 경우에도 장기복원 시스템을 이용하여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며 비용은 전액 국가 부담으로 하지만 이곳 대마주의 미인대회 처럼 성형을 위한 비용은 개인 비용이 요구된다.
"저 아이들은 얼굴이나 몸매가 비슷비슷한데 성형이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것 아닌가?"
"어릴 때는 뽑내는 것도 성장의 촉매라고 봅니다. 싫증나면 나중에라도 원래 형상으로 돌아오니까 모른 척 하며 보는 것도 괜찮지 않습니까?"
"그럼 무 주지사는 저 아이들의 실체 모습을 다 알고 있단 말이요?"
"저희 주에서 태어난 아이들인데 제가 모를 리 있습니까?
이 단말기를 한번 보시죠."
무대포 주지사가 가리키는 화면에는 미인대회에 참가한 아가씨들의 프로필이 화면 가득 차 있었다. 그 중 한명을 손가락으로 누르자 성형전 모습과 성형후 모습이 대조되어 나타난다.
"음, 좋은 시스템이군."
"각하는 전 지하국을 검색할 권한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12억 인구를 다 뒤진다고 얻어질게 뭔가?
그냥 내가 소중히 여길 사람 한사람이나 맘 상하지 않게 잘 챙기면 그게 낙일세."
미인대회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면서 사회자가 호명하는 참가자들은 환호하며 시상대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진실아, 찜한 아이들이 시상자 명단에 포함된 것 같은데 내 안목도 아직 좋지?"
"각하, 어쩌시려고 찜하셨어요?"
"글쎄다. 주지사 양반이 이름 그대로 무대포로 찍으라니까 재미삼아 찍긴 했다만, 밤에 네가 적적하지 않겠느냐?"
"각하만 좋다면 찜한 애는 없던 걸로 하면 돼죠 뭐."
"무대포 주지사가 접대 소홀로 민망해 할텐데. 그래도 될까?"
"각하는 한 입으로 두말 하셔도 되나요?
아까는 한 사람이나 맘 상하지 않게 잘 챙기는게 낙이라 하셨잖아요?"
"위로 올라갈수록 맘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단다."
"저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기만 하다면 마음먹으면 되는 일을 못할 것도 없지 않겠어요?"
"허, 니가 벌써부터 앙탈이 심하구나."
"몰라요. 각하 하기 나름인 것을 고민하는 척 하니까 속상하잖아요."
"그래, 알았다. 오늘 밤은 모든 걸 물리치고 너만 챙기도록 하마."
"고마워요." 진실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내 어깨에 머리를 묻어 온다.
"진실아, 그러자면 일단 대마주를 시찰하는 일은 포기해야겠구나."
"왜죠?"
"이 땅에 머물면서 호의를 거절했다는 걸 주지사 양반이 알면 얼마나 서운해 하겠느냐?"
"그럼 저 때문에 시찰을 포기 하려고요?"
"원래 모든 일이 그렇단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만 된다.
모두 다 얻으려는 것은 욕심이 되어 오히려 모든 일을 그르치는 결과로 돌아온단다."
"만약 각하께서 저를 위해 대마주 시찰을 뒤로 미뤄주고 저만을 사랑해 주신다면 제 한목숨 다 바쳐 각하의 사랑만 받는 여자가 되겠어요."
"그래, 너의 야망이 커서 언젠가는 지구와 우주를 지배하는 큰 힘을 얻게 될 것 같구나."
"좋은 일이라도 있나? 사람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서 보기 좋은걸?"
"그러게요. 저도 대마주는 처음 와보는 것이지만 사람들이 부지런해 보여서 좋네요."
청사게이트를 지날 때 무선바코드를 인식하여 신분확인을 위한 광선이 쏘아졌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신원확인을 마친 게이트의 문이 활짝 열리고 이곳 주지사의 홀로그램이 전면에 나타나며 환대한다.
"각하, 어서 오십시오. 저는 급한 일로 직접 영접하지는 못하나 각하의 방문을 환영합니다."
깍듯한 예의로써 홀로그램이 청사 안으로 우리 일행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대마주의 홀로그램 시스템은 다른 주에 비해 발달된 점을 익히 알고는 있으나 굳이 홀로그램이라 밝히지 않았다면 누구라도 실물이라 믿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다. 양방향으로 통신이 이루어져서 미리 프로그램된 상태 이외에 별도의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즉각 대응하는 기법은 인공지능을 뛰어 넘어 가상인간시대를 한발짝 접근 시킨 쾌거라 하지 않을 수 없는 기술이다.
지하국이 비록 대마주의 사람들을 특이한 종자라 하여 오랫동안 괄시하면서도 그들이 만들어낸 여러 가지 도구들을 선호했던 일들을 보면 이들 역시 뛰어난 동일 조상의 후예임을 증명하고도 남을 만했다.
인류가 달에 첫발을 내 딛었다던 1960년대 보다 무려 4백년 앞선 1500년대에 지하국은 지구 시스템 감시를 위해 달 표면에 광학렌즈를 장착한 위성체를 발사했었다. 지상의 조선국이 왜와 힘겨운 싸움을 하던 7년 전쟁때 조선의 왕이 수도를 버리고 멀리 평양까지 도망가야할 어려움에 처했을 때도 지하국은 직접 원조를 할 수 없는 안타까운 마음에 달에 쏘아진 위성체를 통해 왜구의 남쪽 침략을 저지하기 위한 해일을 일으켜 추가 병력이 반도에 상륙할 수 없도록 선단을 난파시키는 등 간접적인 도움을 주는 것에 그쳐야했었다.
이러한 과학기술은 지상국의 부국강병을 위한 조처로써 일부 의도적인 유출을 통해 다른 나라들보다 빠른 화약제조 기술로 이어지거나 해상에서 무적 함대로 불릴 정도로 강력한 거북선 제조 기술에 응용되기도 했지만 기술수준이 열악하여 신기술을 접목시킬 방도가 마땅하지 않은 지상국에서의 과학입국 실현에는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한때 실사구시를 주창하던 유학자들이 지상에도 존재했었지만 그들의 주장을 받아 들일 수 있는 사회적 성숙도 미비와 여건 부재로 인해 구호로만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간계로 나라를 먹어치우려는 외부세력도 있는 반면 지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식민지 깃발을 꼽는 취미로 여행하는 모험가들이 판을 치던 시대에 지상국 조선이 바람앞의 등불로 놓여 있을 때는 지하국의 장난감 하나면 모든 지상국들을 제압할 수 있는 파워가 넘쳐 나고 있었다 하더라도 감히 조상의 유훈을 넘어 간섭할 수 없는 점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대마주는 왜와 조선이 극한 대립을 벌일 때 항상 중립적 위치에 있었던 관계로 지하국 내에서도 이단자라는 낙인의 손가락질 당한 적이 많았지만 태생적으로 옛 왜의 지하에 위치한 탓에서 발생한 오해라는 것을 유전학적으로 입증된 이후에는 많이 불식되었다. 하지만 비상한 머리와 지하국의 과학을 주도해온 부류라는 것 이외에 습성이 특이하여 왠지 화합하기 어려운 족속으로 마음의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홀로그램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행사가 한창 진행중인 주정부의 청사내 스튜디오였다.
쭈쭈빵빵한 미인들이 비키니 차림으로 번호표를 달고 몸매를 과시하며 스테이지를 누비는 것이 마치 수백년전에 유행했다던 미인선발대회를 연상시킨다.
"각하, 대마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마침 이 시간은 1년에 한번씩 열리는 대마주 최고 미인선발대회를 여는 날이라서 미처 영접나가지 못했습니다."
"아닐세. 요즘 시대에도 이런 행사가 있다니 큰 볼거리구먼."
"오늘이 저희 주 전통의 날이잖습니까? 볼만한 풍속을 보존시키는 것도 중요한지라, 저희 주는 매년 전통의 날에 미인대회 명맥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미인선발대회에 대한 불평은 안하던가?"
"인식하기 나름이죠. 단순히 여자의 몸매를 감상한다는 생각이라면 이 풍속이 남아있을 수 없지만 저희가 주최하는 민속대회인 미인선발은 여성이 스스로를 과시하기 위해 꾸며지는 행사인지라 자긍심이 오히려 높습니다."
"오, 그렇지. 매사 생각하기 나름인게야.
미인대회를 남성위주로 생각하면 몸매 감상일테지만 여성위주로 생각한다면 자신을 드러내는 좋은 기회가 되겠구먼."
"그렇습니다. 저희 주가 보유한 민속행사중에서 가장 여성들에게 자긍심을 주는 행사는 역시 미인선발대회를 뽑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 여기서 선발된 사람들의 역할은 뭔가?"
"특권이 부여되지요."
"특권? 아직도 특권의식이 필요한 시대란 말인가?"
"아주 특별한 특권이 부여되기 때문에 여성이라면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은 대회로 명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궁금하군.
어떤 특권이 주어지는가?"
"장원한 사람에겐 남성 3명까지 지명하여 결혼할 권리가 주어집니다."
"중혼은 지하국 헌법에 위배되는 중요한 범법행위일텐데."
"헌법소원을 하기 전까진 주정부의 헌법이 우선하잖습니까?
아직까지 중앙헌법에 제소되지 않은 걸 봐서도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중혼의 스릴을 원하는지 알 수 있는 것이지요."
"허, 주지사 양반의 이름이 결코 허명이 아니구먼."
"제 이름과 이 행사 특권이 무슨 연관이라도 있는지요?"
"글세, 주지사 양반 이름이 무대포아닌가. 헌법도 맘대로 해석하고 큰일날 사람이구먼."
"각하, 전통입니다. 단순한 문화전통인 것을 확대해석하지 말아주십시오."
"이 사람아, 구멍이 한 개 뚫리면 또 다른 구멍이 생긴다는 걸 모른단 말인가?"
"구멍이라뇨?"
"예외를 허용하니까 자꾸 예외가 양산되지 않나.
비록 문화전통이라고는 하지만 엄연히 중혼을 금지하는 중앙헌법이 존재하는 마당에 눈가리고 아웅한다고 주헌법에 중혼금지가 없다는 이유로 특권을 양산한다는게 어디 말이나 될 소린가?"
"각하, 전통고수를 위해 눈 한번만 감아주십시오."
"됐네. 내가 온 목적이 자네 주의 전통문화행사를 방해하러 온 것이 아닌 마당에 이번일을 별도로 거론할 일은 없을걸세. 다만 궁금한 것은 매년 장원으로 선발된 미인들이 정말 3명의 남성과 성교하고 결혼하던가?"
"어휴, 말씀 마십시오. 오죽하면 중앙정부의 안목도 있고하여 이 대회를 폐지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지만 여성계의 반발로 이 행사가 벌써 백여년 은밀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말 되는군.
그럼 자네한테 얻어지는 이득은 뭔가?"
"인구가 많다보니 성적 취향이 다양합니다. 특히 저희 대마주는 전통적으로 색에 대한 감흥이 별달라서 다른 주로부터 눈치를 받아온 터에 이 대회를 통해 남자들도 첩이되고 싶어 한다는 사실과 그런 욕구를 제도적으로 분출할 기회를 준다는 것만으로도 주민들로부터 많은 호흥을 받고 있습니다."
"음, 그럴수도 있겠군. 성은 다양한 법인데 인간들은 그냥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방법 하나만을 쓰도록 오랫동안 강요하며 살았던것인지도 몰라. 여기 대무주에 와서 배운것이라면 다양한 욕구를 무조건 누르는 것보다는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또 다른 분출구를 슬그머니 열어놓고 일부라도 그 욕구를 대리 만족으로 성취할 기회를 주는 것이 나쁠 것은 없다는 것일세."
"저희 전통을 관대히 이해해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아닐세. 사람이 모여살면 나름대로의 전통이 있지.
그 전통이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볼때는 보잘 것 없거나 음란해 보일지라도 그 사회에서 필요한 것이라서 남아있다는 사실을 가끔은 잊고 손가락질 할 때도 있겠지. 나는 중앙정부로 돌아가서라도 이 일을 절대 문제삼지 못하도록 문헌상에 기재하여 자네의 전통을 보호하도록 하겠네."
"난망.."
대마주 무대포 주지사와 은밀한 대화를 이어가는 순간에도 수백명의 아름다운 미녀들이 짜여진 스케쥴에 맞춰 자신을 만방에 과시하기 위한 온갖 몸짓을 연출하고 있다. 내 눈도 어느새 주지사의 얼굴에서 벗어나 무대에서 펼쳐지는 아름다운 출연자들의 자태를 나간 듯 쳐다보는데 더 치중하고 있다.
"각하, 맘에 드는 아이의 번호를 하나 찍어 두십시오. 저녁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람아, 내가 찍은 그 아이가 장원이라도 해서 나를 첩으로 받아 들이면 어찌하려구 그러나?"
"하하, 그럴수도 있겠군요.
그럼 맘에 드는 아이 번호를 몇 개 찍어 주세요. 장원될 만한 아이는 피하시고..."
많은 관객들은 미인들의 움직임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숨을 죽이고 있다.
우측에 앉은 진실 역시 그 미인들의 움직임에 눈을 맞추고 숨을 죽이며 관중이 되어 있다.
이 곳 대마주의 형질적 특질은 남성들의 좆이 작고 여성들의 이빨이 조금은 튀어 나와 있다는 것인데 대회에 참석한 미인들은 대체적으로 이빨이 고른 것이 손안대고 나온 사람이 없다. 3차원 그래픽으로 얼굴성형을 디자인하여 성형기에 밀어 넣으면 순식간에 기본 틀을 제외한 대체적인 윤곽을 마음대로 바꿀수 있는 상황에서 얼굴 이쁜것과 미운 것은 단지 게으름과 부지런함의 차이 뿐이다.
얼굴이 변형될 경우 중앙정부의 컴퓨터에는 원형과 변형 이력이 자동적으로 기록되어 그 사람이 아무리 외형을 바꾼다해도 실체를 알아 볼수 있는 정교한 추적장치가 있다.
그 사람의 얼굴은 다른 사람들의 심미안을 위해 성형하는 것이지 결코 자신의 본질이 감춰지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지하국 사람들은 그래서 일부러 성형하는 경우는 없다. 심지어 불의의 재난으로 신체 일부에 손상이 된 경우에도 장기복원 시스템을 이용하여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며 비용은 전액 국가 부담으로 하지만 이곳 대마주의 미인대회 처럼 성형을 위한 비용은 개인 비용이 요구된다.
"저 아이들은 얼굴이나 몸매가 비슷비슷한데 성형이 너무 흔하게 일어나는 것 아닌가?"
"어릴 때는 뽑내는 것도 성장의 촉매라고 봅니다. 싫증나면 나중에라도 원래 형상으로 돌아오니까 모른 척 하며 보는 것도 괜찮지 않습니까?"
"그럼 무 주지사는 저 아이들의 실체 모습을 다 알고 있단 말이요?"
"저희 주에서 태어난 아이들인데 제가 모를 리 있습니까?
이 단말기를 한번 보시죠."
무대포 주지사가 가리키는 화면에는 미인대회에 참가한 아가씨들의 프로필이 화면 가득 차 있었다. 그 중 한명을 손가락으로 누르자 성형전 모습과 성형후 모습이 대조되어 나타난다.
"음, 좋은 시스템이군."
"각하는 전 지하국을 검색할 권한이 있지 않습니까?"
"내가 12억 인구를 다 뒤진다고 얻어질게 뭔가?
그냥 내가 소중히 여길 사람 한사람이나 맘 상하지 않게 잘 챙기면 그게 낙일세."
미인대회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면서 사회자가 호명하는 참가자들은 환호하며 시상대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진실아, 찜한 아이들이 시상자 명단에 포함된 것 같은데 내 안목도 아직 좋지?"
"각하, 어쩌시려고 찜하셨어요?"
"글쎄다. 주지사 양반이 이름 그대로 무대포로 찍으라니까 재미삼아 찍긴 했다만, 밤에 네가 적적하지 않겠느냐?"
"각하만 좋다면 찜한 애는 없던 걸로 하면 돼죠 뭐."
"무대포 주지사가 접대 소홀로 민망해 할텐데. 그래도 될까?"
"각하는 한 입으로 두말 하셔도 되나요?
아까는 한 사람이나 맘 상하지 않게 잘 챙기는게 낙이라 하셨잖아요?"
"위로 올라갈수록 맘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단다."
"저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기만 하다면 마음먹으면 되는 일을 못할 것도 없지 않겠어요?"
"허, 니가 벌써부터 앙탈이 심하구나."
"몰라요. 각하 하기 나름인 것을 고민하는 척 하니까 속상하잖아요."
"그래, 알았다. 오늘 밤은 모든 걸 물리치고 너만 챙기도록 하마."
"고마워요." 진실은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도 불구하고 내 어깨에 머리를 묻어 온다.
"진실아, 그러자면 일단 대마주를 시찰하는 일은 포기해야겠구나."
"왜죠?"
"이 땅에 머물면서 호의를 거절했다는 걸 주지사 양반이 알면 얼마나 서운해 하겠느냐?"
"그럼 저 때문에 시찰을 포기 하려고요?"
"원래 모든 일이 그렇단다. 하나를 얻기 위해서는 다른 하나를 포기해야만 된다.
모두 다 얻으려는 것은 욕심이 되어 오히려 모든 일을 그르치는 결과로 돌아온단다."
"만약 각하께서 저를 위해 대마주 시찰을 뒤로 미뤄주고 저만을 사랑해 주신다면 제 한목숨 다 바쳐 각하의 사랑만 받는 여자가 되겠어요."
"그래, 너의 야망이 커서 언젠가는 지구와 우주를 지배하는 큰 힘을 얻게 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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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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