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 리와인더 (Time Rewinder)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36장
키스...! 그 죽일 놈의 키스!
생각해보면 그 못된 입술이 항상 문제였다. 왜 사내라는 동물은 꼭 설렘의 감정을 입술박치기로 표현하지 않고는 배기질 못하는 걸까? 이제는 유정이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의구심이 생질 지경이다. 이쯤되면 이건 의도적 상슴법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었다.
구태여 변명을 하자면 유정이를 볼 때마다 본능적인 충동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긴 했다. 욕구를 참지 못한 돌발적 충동에서 비롯된 실수가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마치 자연스러운 수순을 밟듯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따위 헛소리를 변명으로 들먹이기엔 너무 구차하지 않은가....?
굳이 입밖으로 그런 구질구질한 소리를 내뱉을바에야 기왕 저지른 것, 행위 자체에나 충실해보자는 막무가내식 마음가짐으로 나는 혀를 움직였다. 사실 이미 지나간 두번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 이렇게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이유는 나름대로의 새로운 각오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엔 물론 최근의 일로 얻은, 이른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라는 그 단순한 깨달음을 실천하고자 했던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유정이에 대한 나의 마음을 보다 분명하게 하고 싶다는 의지였다.
허울의 거리낌을 벗어던진 지금, 나는 내가 유정이를 좋아하고 있음을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그것은 심지어 현주나 서연이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감정보다도 조금 더 특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언제나 희뿌연 연기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충동적으로 저질렀던 두 번의 키스는 안개처럼 흩어져버렸고, 심지어 유정이는 그런 일이 있고나서도 나를 멀리하거나 하는 등의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우리는 항상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는 불투명한 관계를 지켜왔던 것이다. 나는 이제 그 불투명한 관계를 조금 더 뚜렷하게 만들고 싶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게도, 유정이가 내게 해주었던 조언은 서연이와 현주 사이에서 고민하던 내게 일종의 해답을 제시해 준 셈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유정이 본인에 대한 나의 마음을 뚜렷하게 잡아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비록 유정이가 그걸 스스로 느끼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어쩐다...."
분명 우리의 입술은 맞닿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겪어왔던 그 어떤 여자들보다도 유정이가 어려운 상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살짝 실눈을 떠보니 유정이는 두 눈을 얌전히 감고 있었지만 몸은 뻣뻣하게 굳은 채였고, 그저 나를 밀쳐내지 못해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보기엔 지난번처럼 본능적으로 급소를 찍어누른다거나 하는 과격한 반응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올까봐 스스로도 조심스러운 것 같았다.
게다가 이성과의 키스 자체가 내가 처음이라고 했던 이 순진한 여자애로서는, 테크닉이라는 개념 이전에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기본적인 방법조차 모르고 있을게 틀림없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애매하기만 했다.
"뭐, 뭔가 리드를 하긴 해야 하는데...."
욕구에 몸을 맡기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 이유는, 유정이가 마음만 먹으면 나를 걸레짝처럼 두들겨 팰 수 있는 상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유정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그녀의 기분을 배려하고 싶었고, 이 뻔뻔스러운 상황을 유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정이가 싫어할 만한 행위를 억지로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오빠..."
그 때, 맞닿은 입술의 경계가 살짝 벌어지면서 유정이가 그 틈새로 희미하게 나를 불렀다.
아.... 도대체 왜? 왜 그 순간의 "오빠"라는 한 마디가, 그리도 마음 속에 불을 활활 지폈단 말인가. 그저 평소처럼 "오빠"하고 불렀을 뿐인데.... 왜 그 한 마디로 인해 이성의 끈이 끊어져버린걸까.
"으... 흡..."
뭔가를 놓아버린 듯, 충동적으로 혀를 입 안 깊숙히 쑥 밀어넣자 유정이가 조금 당황하여 신음성을 흘렸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러다 유정이에게 죽도록 얻어맞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미 뽑아든 칼, 무를 썰어아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괜찮아.... 여차하면 타임 리와인더가 있잖아."
수습 못할 짓을 저지르는 대가로 그 시계의 방패 뒤에 숨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어찌보면 지금의 상황에서 내 그러한 안일함은 다소 비겁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말로 유정이가 내게 그리도 소중하다면 이것은 다른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내 마음의 간절함으로만 풀어나가야 할 문제일테니.
인정하긴 싫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투박한 초시계가 내게 줄 수 있는 "용기" 만큼은 상상 이상이었나보다. 비겁하다고 느끼면서도 나는 그 비겁한 용기에 힘입어 유정이의 몸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뻣뻣하게 굳은 몸을 껴안으면서 한 손으로는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고 다른 한 손으론 그녀의 풍성한 머릿결을 매만졌다.
"예전부터 궁금했던게 있어."
그 때, 정말로 엉뚱하게도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머리를 왜 이렇게 길게 기른 거야?"
"네...?"
그 쌩뚱맞은 질문에 유정이조차도 어안이 벙벙한 듯, 얼이 빠진 목소리로 반문한다. 그녀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질 정도라면 내 질문이 보통 어이없는게 아니었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꿋꿋하게 한번 더 물었다.
"그게.... 예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난 잘은 모르겠지만, 보통 머리가 길면 무술을 수련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나 싶어서.... 너는 여자애들 중에서도 머리가 아주 긴 편이잖아. 계속 그 이유가 궁금했었어."
"그, 글쎄요. 꼭 긴 머리를 하겠다고 생각해서 길렀던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그냥 짧은 머리가 싫었어요.... 그렇잖아도 남자애 같아 보일텐데, 머리카락까지 짧게 하고 다니면 얼마나 투박하겠어요."
그런 질문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는지 유정이는 대답할 말을 잘 고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유정이답지 않게 당황해하는 그 낯설은 모습 속에서,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그녀 본연에 가까운 모습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무예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남자애처럼 자랐다고 해도, 그녀의 알맹이는 스무살 소녀일 따름이다. 고작 머리카락의 길이 하나에서 남녀의 차이를 찾으려고 하는 그 시선은 어찌보면 정말 협소한 생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가 얼마나 여성으로서의 삶을 바랐는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단면이기도 했다. 비록 그녀 자신이 깨닫고 있진 못할지라도, 그녀의 내면은 자신이 여성임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고 있었던 것이다.
"유정아, 미친 소리로 들리겠지만...."
"......"
"나 너를 여자로 만들어주고 싶어."
그 말이 어떤 의미로 그녀에게 들렸을지는 모른다. 다만 그 의미가 무엇이 되었든 그녀가 그것을 낭만적으로 생각해주길 바랐다. 유정이에게 여성으로서의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 남자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일거란 생각은 도저히 하고 싶지 않았다.
"넌 내가 봤던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야. 네가 스스로 그걸 못 느낀다면 내가 느끼게 해주고 싶어. 그 역할이 다른 사람의 몫이 되는건 싫어. 난 네가 좋아."
"오빠...."
욕심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과할 정도로 이기적인 고백이었다. 하지만 그 이기적인 고백 뒤에 들려오는 유정이의 대답은 대조적이리만치 너무도 이타적이라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 나는.... 서연 언니처럼 오빠에게 좋은 여자는 될 수 없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서연 언니처럼 여성적인 사람은 될 수 없을 테니까요...."
"굳이 "여성적"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를 여자로 만들어주고 싶은건 여자로서의 네 모습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야. 단지 네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지. 나는 네가 스스로 원하는 모습을 찾길 바랄 뿐이야. 설령 네가 남자 같은 삶을 산다해도 난 네가 좋아. 나는 너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거니까."
그녀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이었다. 사실 그녀가 남성적이든 여성적이든, 그런건 이제 나에게 별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성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다른 누군가가 사랑해주리란 생각을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미 나는 남자로서 여자인 너를 좋아하고 있는 거야. 내가 너에게 정말로 가르쳐주고 싶은건 네가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충분히 빛난다는거였어. 예전부터 난 너에게 그걸 말해주고 싶었어."
"잘 모르겠어요.... 사실 오빠가 내게 그런 말을 할 때는 내가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자꾸만 잘 모르게 돼요."
나는 그런 그녀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들이 그녀의 귓가에 낭만적으로 들리길 바라면서도 내 손은 더없이 통속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입으로 풀기 힘든 대화는 몸으로" 라는 생각이었을까? 하지만 그게 과연 유정이에게도 통할지 어떨지....
"아...."
등을 쓸던 손이 앞으로 돌아와 배를 더듬자 유정이가 당황 섞인 신음을 또 한차례 흘렸다. 그녀답지 않게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낯선 모습이 또다시 내 야릇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여전히 비겁하게도 나는 유정이가 힘으로 나를 제압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없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그 안도감을 악용하여 오히려 더 큰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거, 거긴...."
섹스는 커녕 키스조차도 내게 처음을 빼앗겼던 그녀답게, 가슴에 손이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유정이는 심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타임 리와인더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이쯤되면 내 무모함도 도저히 답이 없는 수준이라고 봐야 했지만,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브레이크를 지워버렸다.
용기라고 칭하기엔 너무도 저돌적인 과감함으로.... 나는 유정이의 가슴에 살짝 손을 얹었다.
"아...!"
"어...?"
그 순간 우리 둘 모두의 입에서 기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정이의 당황하는 목소리야 그렇다치지만, 내 입에서도 그런 얼빠진 소리가 나왔던 이유는 손 끝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감촉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분명 봉긋한 가슴 위에 손을 얹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바닥에 전해진 느낌은 브래지어 특유의 감촉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심지어 물컹한 맨가슴의 감촉 또한 아니었다. 속옷이라기엔 너무 밋밋하고, 살결이라기엔 너무 투박한.... 이 이질적인 감촉은 도대체 뭐지?
"유정아.... 이건?"
"......"
"이것" 이라고 애매하게 지칭했지만 유정이도 내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한 것 같았다. 그녀는 내 몸 밑에 깔린 채로 애써 내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까지 당당함을 잃고 작아진 모습의 유정이는 처음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만약 그게 유정이에게 있어 타인에게 내보이기 싫은 어떤 "부끄러운" 것이라면, 그걸 그대로 두는 것이 그녀를 위한 배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정말로 배려없는 남자였는지, 몹쓸 행동이란걸 알면서도 충동적으로 그녀의 티셔츠를 위로 걷어올려버리고 말았다.
"으...."
유정이가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아주 기묘한 소리를 냈다. 부끄러워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혹시나 보이기 싫은 흉측한 자국이라도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 조심스러워졌지만, 눈 앞에 드러난 유정이의 속살을 보는 순간 다행스럽게도 그런게 아니었다는걸 깨달았다.
"이거.... 뭔지 물어봐도 돼?"
남자의 손에 의해 아랫배가 홀랑 드러나버린 이 상황은 단언컨대 그녀의 삶에 있어 처음 있는 일일 터였다. 사실 우리는 예전에 계곡에서의 사건으로 서로의 알몸을 맞댄 적이 있는 사이이긴 하지만, 이렇게 밝은 곳에서 속살을 눈으로 보는 것은 그것과는 또 별개의 문제였다. 그때야 워낙 캄캄한 어둠 속이라서 보이는게 없었지만, 지금은 유정이의 뽀얗고 군살 없는 매끈한 복부가 두 눈에 생생히 박히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유정이의 탐스러운 속살을 보는 순간 정신이 멍해지며 손이 굳어버린건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와중에 그녀에게 질문을 할 수 있었던건 그녀의 가슴을 꽁꽁 싸매고 있는 그 정체불명의 천쪼가리가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용도를 알 수 없는, 붕대라고 부르기엔 훨씬 매끄러운 감촉의 무언가가 그녀의 쇄골 아랫부분에서부터 상복부까지를 완전히 꽁꽁 두르고 있었다.
"이거.... 무명천이에요."
유정이가 마치 자신의 치부라도 드러내보이듯 부끄럽게 고개를 돌리며, 애써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순간 그 말이 잘 이해가 가질 않아서 나는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그녀도 부연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방금 전보다도 더욱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싸매고 다녀요...."
그러고보면, 유정이가 목이 깊게 파인 옷이나 가슴골을 조금이라도 노출시키는 형태의 옷을 입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왜...?"
유정이치고는 너무도 부끄러워하는 그 반응을 생각한다면, 더이상 묻는 것이 확실히 실례인 줄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묻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게.... 어릴 적부터 습관이었어요. 열네살 무렵부터는 가슴이 너무 부풀기 시작해서.... 수련하는데 방해가 되곤 했거든요. 가슴이 크면 의외로 무술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그, 그래서 무명천으로 감싸고 다녔던게 이제는 습관이 되서 평상시에도 계속...."
"......."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이 더듬더듬 설명하는 유정이였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유정이의 알몸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평상시에 그녀의 옷 위로 느껴졌던 몸매의 윤곽은 확실히 보통 여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려한 굴곡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녀가 오토바이를 탈 때 간혹 입는 그 바이크 슈트 위로 드러나곤 했던 풍만한 가슴 굴곡은, 그 자체로 충분히 평균 이상의 크기를 짐작케 할 만했다.
"그, 그런데 그게.... 무명천으로 싸매고 있었는데도 그 정도였단 말이야?"
차마 그 경악을 입밖으로 소리내어 표현하지는 못하고 나는 얼빠진 얼굴로 계속 유정이의 가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정이는 그 시선 때문에 더욱 부끄러워지는지 여전히 내 시선을 피하는 채로 물었다.
"이, 이상한가요...? 아무래도 보통 여자들이랑은 좀 다르죠...?"
"아, 아니.... 그렇다기보단...."
무술 수련에 방해가 된다는걸 알면서도 짧은 머리가 싫어서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기른 유정이였다. 그런 그녀가 커다란 가슴은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이렇게 무명천을 가슴에 두르고 다니는걸 보니 아주 묘하게 모순적인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역시나 유정이는 정말로 모호하면서도 이중적인 아이였다.... 어떤 한가지 기준에 의해서 뚜렷하게 흑과 백으로 나뉘는 일이 없는, 간결하게 표현하기가 불가능한 아이. 비록 나는 그녀의 그런 모호한 이중성이 싫지는 않았지만, 재미있는 점은 그녀 스스로는 결코 자신의 그런 면모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저기.... 한번 봐도 돼?"
"네에...?"
뺨을 후려맞아도 할 말이 없을, 뻔뻔하다 못해 기가 차는 질문이었다. 유정이의 반응 또한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질문에 답하느라 나와 잠깐 눈을 마주쳤다가도, 이내 다시 시선을 피하느라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이 그 와중에도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네 가슴 보고싶어."
"그, 그냥 살덩어리일 뿐인데요.... 봐서 좋을 것도 없는데...."
맨가슴을 본다는게 남자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아무래도 그녀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뭐 그건 내가 생각할 문제고."
다행스럽게도 유정이가 스무살이기에 망정이지, 미성년자였다면 이건 그야말로 어린애 하나 꼬드겨서 성추행하는 늙수구레한 변태 아저씨나 다름이 없는 꼴이었다. 물론 그녀가 성인이라고 해서 지금의 상황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 오, 오빠.... 잠깐만요...."
가슴을 싸매고 있는 무명천의 매듭 끄트머리를 잡고 풀어내기 시작하자 유정이가 당황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녀답지 않은 그런 모습이 오히려 계속해서 나를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까....
브래지어를 풀어본 적은 있어도 이런 생면부지의 속옷을 접하는 것은 난생 처음이었기에 손놀림이 여간 엉성한 것이 아니었다. 그 꼴이 오죽 한심해보였는지 결국 유정이가 소극적인 손짓으로 가운데 부분을 조심스럽게 가리켰다. 그 부분을 잡고 당기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 보기만 하는 거죠....?"
"응."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별 생각없이 뱉은 대답이었다.
"......."
그리고 그 후로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텅 비어버렸다. 그녀의 가슴을 두르고 있었던 길다란 천의 자락이 한겹 한겹 떨어져나가더니, 마침내 바닥 위로 툭 흘러내렸다. 그리고 나는 유정이의 맨가슴을 눈앞에서 목도했다.
"세상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놀라움을 속으로 삼킬 뿐이다. 빡빡하게 가슴을 싸매고 있던 가리개가 걷혀나가고 드러난 그녀의 가슴은.... 한마디로 정말 상상초월이었다.
앞서도 말했듯 평소에 봐왔던 그녀의 가슴이 결코 작다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크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 앞에 드러난 그녀의 가슴은.... 족히 90센티는 넘어보이는, 눈대중으로 따지면 적게 잡아도 D컵은 훌쩍 넘고도 남을 것 같은 그야말로 엄청난 크기였다.
"저, 저 정도면 충분히 E컵일지도...."
차마 내가 감상을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붕어처럼 뻥긋거리며 가슴만 쳐다보고 있자,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한 유정이가 결국 쑥스럽게 티셔츠 자락을 살며시 내렸다. 하지만 무명천이 걷혀나가고 티셔츠가 가슴을 덮으니, 미처 가려지지 못한 그 엄청난 볼륨이 티셔츠 위로 생생히 드러나버린다. 여태껏 그녀가 남몰래 감추고 다녔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그녀 본연의 어마어마한 굴곡이 내 눈앞에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왜, 왜 그렇게 봐요....? 역시 이상한가요?"
원래 그 이전에도 이성이 거의 끊어져있긴 했지만, 아마도 그 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끊어져버린 것 같다. 뭔가를 따지고 판단할 겨를도 없이 나는 유정이의 몸 위에 와락 올라탔다. 힘으로는 그녀가 충분히 나를 제압할 수 있을 텐데도.... 그녀는 고맙게도 내가 덮치는 대로 순순히 땅에 쓰러졌다.
"오, 오빠..."
귀를 간질이듯이 나를 부르는 유정이의 목소리는, 그녀 입장에서는 당황의 표현이었겠지만 내게 있어선 너무도 달콤한 유혹의 목소리로 들렸다. 나는 티셔츠 위로 유정이의 맨가슴을 더듬었다.
브래지어를 대신했던 천쪼가리가 걷히고 나니 티셔츠 위로는 노브라의 맨들맨들한 가슴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볼륨감이라는게 정말로 상상 이상인지라, 만져놓고도 내가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전혀 타이트한 티셔츠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부분이 눈에 띄게 솟아올라 옷을 압박하고 있었다. 더 참지 못하고 나는 다시 티셔츠를 위로 올려버렸다.
"오빠..."
유정이가 또 한번 나를 애매한 목소리로 불렀다. 제지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흑!"
나도 모르게 유정이의 한쪽 가슴을 크게 한입 베어물고 말았다. 그러면서 한쪽 손으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반대쪽 가슴을 조심히 움켜쥐었다. 유정이가 약간 흐느끼는 것처럼 기묘한 신음소릴 내었다.
베어문 입에서도, 움켜쥔 손에서도.... 도저히 생시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아늑한 감촉이 한껏 전해져왔다. 나는 솔직히 유정이가 이 정도의 거유일 거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왜 이걸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는지 억울한 기분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녀의 가슴은 정말로 내가 여태껏 봐왔던 그 어떤 가슴보다도 더 황홀했다. 이만한 크기의 가슴을 만져보는 것은 나로서는 당연히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법 크다고 생각했었던 현주의 가슴도, 지금 눈 앞의 이 크기에 비교하면 어린아이처럼 보일 것만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현주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은 결코 없었지만 내 순수한 감상만을 말하자면 유정이의 가슴은 현주 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동양 여자들과는 아예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느껴졌다.
"오.. 오빠... 잠깐만요.... 흣...."
심지어 그녀의 젖꼭지는 그 어마어마한 크기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너무도 앙증맞고 고운 빛깔을 띄고 있는지라 그 점이 또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앵두를 연상케하는 분홍 빛깔의 깨끗한 젖꼭지는 내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질감을 띄고 있는 것 같았다. 남성의 입에 빨려보기는커녕 손으로도 범해져본 역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마치 티끌 한점 묻지 않은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유정아... 네 가슴 너무 예뻐. 아니, 아름다워.... 난 이런 가슴은 태어나서 처음 봐."
그건 결코 과장의 표현이 아니었다. 실물로 접해본 적은 당연히 처음인데다, 인터넷을 통해서 접한 각종 성인물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가슴을 본 기억은 없었다. 가슴이 무식하게 큰 포르노 배우들은 분명 젖꼭지가 징그러울 정도로 넓거나, 탄력을 잃고 늘어지기 마련인데 유정이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그 또한 무술을 수련한 흔적의 덕분이라고 봐야 할진 몰라도, 그녀의 전신에 넘치고 있는 탄력들은 그 엄청난 가슴의 볼륨까지도 흐트러짐 없이 탱탱한 모양을 유지하게끔 만들고 있었고, 그 커다란 볼륨과는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작고 깨끗한 젖꼭지가 마치 예술품의 마무리를 장식하듯 젖무덤의 봉오리에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예술.... 그래, 생각해보면 그녀의 가슴에는 확실히 예술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나, 남자들은.... 왜 큰 가슴을 좋아하는 거에요....?"
따지고보면 내가 그녀를 강제로 추행하고 있는거나 다름 없는 이 상황에서, 그녀의 그 순진한 질문은 너무도 엉뚱하게만 들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 하는걸 간신히 참으며 나는 퍽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게.... 남자들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 같은 거랄까? 어릴 때 엄마 젖을 빨던 기억이 본능에 남아있어서 그런 걸거야. 아마도."
"그럼 지금 어머니 모유 먹던 기분으로 내 젖을 빨고 있는 거란 뜻이에요....?"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물어보니 할 말이 없다. 다만 유정이의 입에서 "젖"이라는 표현이 나오는게 생각보다 느낌이 야릇했다. 대답 없이 젖꼭지를 물고 빨던 혀놀림에 더욱 힘을 주니 유정이가 상반신을 움찔거리며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으흑...! 그, 그만해요 오빠...."
"왜? 싫어....?"
"몰라요.... 그냥 부끄러워요. 간지럽기도 하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반응을 보일 수록 내가 그만두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걸 그녀는 모르는게 분명했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조금이나마 더 그녀의 가슴을 느끼기 위해 나는 힘껏 유두를 빨아당기며 한손으로 남은 유방을 마구 주물렀다.
한 손으로는 도저히 다 쥘 수도 없는 그 무지막지한 볼륨감이 내 손바닥 전체를 뒤덮고도 남아, 손가락 사이사이의 틈새로 뽀얀 유방의 살결들이 삐져나왔다. 아름다운 예술품이 내 손아귀에서 짓이겨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치 새하얀 눈발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자의 손을 거친 흔적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젖꼭지가 내 입 안에서 나의 침으로 더럽혀지고 있었고, 순결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한 순백색의 탐스러운 젖무덤은 내 손놀림에 의해 마구잡이로 뭉개지며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첫 흔적을 남기는 남자가 나라니....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네 가슴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 그.... 예전에 계곡에서는.... 그런 느낌을 못 받았거든."
그러고보니 문득 계곡에서의 일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알몸으로 부둥켜 안고 있었던 그 때, 분명 유정이의 맨가슴이 내 가슴에 닿은 적이 있었긴 했다. 심지어 그녀의 유두가 내 피부를 긁기도 했었으니 그 때는 무명천을 두르고 있었던 것도 아닐 터였다.
물론 목숨이 오가는 그 상황에서 온전히 내가 성적인 자극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 때 피부로 느낀 감촉이 도저히 이 정도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내 그런 의문 앞에 유정이도 그 순간의 민망했던 기분이 고스란히 떠오르는지 살짝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사실 그 때는.... 가슴이 되도록 안닿게 하려고 저도 조금 힘들었어요. 체온을 나눠야하는데 가슴이 닿는건 부끄러우니까.... 최대한 신경 쓰느라고...."
그렇게 듣고보니 아슬아슬하게 젖꼭지만 살짝 닿곤 했던 그 당시의 상황이, 아무래도 유정이의 그 힘겨운 몸부림 덕분도 있었던 듯 했다. 어둠 속에서 나를 끌어안으면서도 맨가슴이 내 가슴에 부딪혀 뭉개지지 않도록 어정쩡하게 몸을 뒤로 빼고 있었을 그녀를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왜 웃으세요?"
"아니. 그냥 귀여워서...."
대답과 동시에 나는 내 티셔츠를 훌렁 벗어던졌다. 갑작스럽게 내가 탈의를 하자 유정이가 깜짝 놀라 토끼눈이 되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다시 한번 그 때처럼 해볼래?"
"네?"
"그 때 계곡에서처럼 알몸으로 껴안고 있어보자구. 뭐... 지금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은 아니니까 그 때처럼 긴박함은 없겠지만."
유정이는 대체 왜 그런 짓을 굳이 반복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단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못본체 하며 그녀의 몸에서 완전히 티셔츠를 벗겨내버렸다. 거의 막무가내로 그녀의 두 팔을 위로 들게하고 옷을 벗겨올리니, 마지못해 따르는 모습이 귀여웠다.
거의 폭포수나 다름없는 그녀의 풍성하고 긴 머리카락이 티셔츠를 따라 올라갔다가, 출렁이듯 다시 그녀의 몸 위로 고스란히 떨어져내렸다. 반라가 된 그녀의 상반신 위를 머리카락이 뒤덮어버리니 뽀얀 속살들을 머리카락이 아슬아슬하게 가려주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특히 수박처럼 커다란 두 젖가슴을 풍성한 머릿결이 위태롭게 가리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섹시미의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성경험에 대해 거의 무지한 그녀에게 섹시하다는 표현을 쓰는게 옳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정말로 그게 섹시해보였다. 머리카락 틈새로 젖꼭지가 보일듯 말듯 반짝이는 그 모습은 나로 하여금 엄청난 색기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진주가 영롱한 빛을 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아래도 벗어야 하는 거에요...?"
"응."
이건 뭐 다섯살짜리 여자애를 꼬드겨서 못된 짓을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 그건 안 돼요...."
"왜 안 돼?"
"그게.... 남녀가 유별한데 그곳까지 벗는다는건 좀....."
"뭐 어때. 우리 벌써 서로 알몸 본 사이잖아."
"그 때는 어두웠잖아요...."
"그러니까 그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보자는거지. 추억도 회상하고 좋잖아."
"그, 그게 무슨 추억이에요?"
듣는둥 마는둥하며 나는 유정이의 바지로 손을 가져갔다. 순진한 애 꾀어다 강제로 추행하는거라고 해도 좋았다. 죄책감이야 나중에 느끼더라도 지금은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오, 오빠...."
"응?"
유정이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틈에 서둘러서 바지를 벗겨내리려고 버클을 풀고 있던 나였지만 유정이의 다음 말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우, 우리 아버지가.... 결혼할 사람 외에는 외간남자에게 함부로 몸을 보여주면 안 된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뭐? 풋... 푸하하하...."
사뭇 진지하게 꺼낸 말인데도 내가 웃어넘기자 유정이는 약간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그녀가 뾰족해진 목소리로 따지고 들었다.
"왜 웃으세요?"
"아, 미안해. 난 그냥 네가 너무 귀여워서...."
"뭐가요?"
"그냥 그런게 있어. 근데 너 그러면 나한테 이미 알몸 보인 적 있는데, 나한테 시집 와야하는거 아니야?"
"몰라요. 그 때는 어두웠으니까.... 아마도 무효겠죠."
그 궁색한 발언이라니.... 너무도 깜찍하고 귀여웠다.
"크크, 그럼 어디 밝은 곳에서 제대로 한번 볼까?"
유정이가 마음먹고 제대로 힘을 쓰면 찍소리도 못하고 얻어터질게 뻔한 주제에, 그녀가 차마 거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악용하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무척 사악해보였다. 하지만 사악하건말건 이미 내 손은 허겁지겁 그녀의 청바지를 벗기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유정이는 특유의 바이크 슈트를 제외하면 언제나 수수한 옷차림으로 일관했었다. 다양한 스타일을 즐겨 소화하는 서연이와는 다르게 늘 편하고 캐주얼한 옷차림만을 유지했던 유정이의 스타일이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몸매로 아마 제대로 마음먹고 꾸민다면 웬만한 여자들은 엄두도 못낼 만큼 화려할텐데....
"언제 한번 예쁜 옷이라도 사줄까나?"
아마 여성스런 옷에 대한 흥미가 없다기보단, 그러한 옷차림을 살아생전 한번도 소화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동안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게 틀림없었다. 쓰잘데 없는 그런 소소한 상상을 하며 나는 유정이의 청바지를 벗겨내리려고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유정이가 나를 제지하고 나섰다.
"잠깐만요...!"
아.... 역시 바지를 벗기는 것 만큼은 안 되는 걸까? 그녀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제법 완강한 거부의 표시를 하자 나는 속으로 약간 침울해졌다. 아쉽지만 그녀의 뜻을 거슬러가면서까지 추행을 감행할 수는 없었기에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도저히 불가능했다) 입맛이 썼다.
"일단 불부터 꺼요."
"어?"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의 말이 내 혼을 쏙 빼놓고 말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두 눈을 끔뻑거리고 있으니 유정이가 시선을 아래로 깔며 중얼거렸다.
"그 때처럼 해보자고 했잖아요. 그럼 똑같이 어둡게 해야죠...."
"......."
순간 내 머리에서 나사가 하나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하나....? 순진함을 넘어서 약간 바보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 기분을....?
얼이 빠진 내가 멍하니 앉아있는데, 유정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종종걸음으로 화장실 안에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곧이어 화장실 안에서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설마 유정이가 볼일이라도 보나 싶어서 깜짝 놀란 나였지만 문이 열려있는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유정이가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안에서는 물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 뭐한거야...?"
"샤워기로 물 틀었어요...."
"왜?"
"그야... 계곡 물소리도 똑같이 해야하니까..."
"......"
아무래도 유정이가 생각보다 좀 맹한 구석이 있나보다. 하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기 때문인지 그럼에도 왠지 분위기가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아서 난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 그리고.... 옷은 그냥 내가 벗을래요."
"어어? 뭐, 뭐라구?"
뜬금없지만 너무도 강력한 그 한마디에 멍하니 넋을 빼고 있었던 내 얼굴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날 계곡에서 오빠가 내 옷 벗겼던건 아니잖아요.... 이왕 할거면 리얼리티있게 하는 편이...."
"리, 리얼리티?"
이쯤되면 혹시나 그녀가 이걸 연극연습으로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솔직히 내가 원하는건 유정이의 벗은 몸을 보는 것 뿐이지 그것 말고는 그다지 중요한게 아닌데.... 쓸 데 없는 디테일에 신경을 쓰는 그녀가 귀엽긴 했지만 이거 아무래도 순진한 애 데리고 못할 짓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점점 커져만 간다.
게다가 상의는 이미 내 손에 의해 탈의된 채로 방 안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유정이를 보고 있자니, 그 커다란 젖가슴이 출렁출렁 흔들리는게 눈에 고스란히 보여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랫도리에서는 자지가 우뚝 발기해있었다. 이런 지금의 내 심정을 어떻게 유정이에게 전달해야할지, 도무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왜요...? 싫으세요?"
"아, 아냐."
하지만 어찌됐건 유정이가 직접 벗어준다는데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내 손으로 직접 벗기는 편이 흥분은 더하겠지만, 아무렴 벗어만 준다면야 더 바랄게 없었다. 유정이가 스스로 벗는건 사실 그 나름의 독특한 흥분이 있기 마련일 테니....
"그럼 잠깐 눈 돌리고 있으세요."
"으응."
커다란 유방이 적나라하게 덜렁거리는 광경을 계속 감상하지 못하는게 아쉬웠지만 이 순간이 지나가고나면 혹시 유정이의 알몸을 볼 수 있게 되는걸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나는 괜스레 두 눈을 꼭 감았다. 가슴이 두방망이쳐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설렘과 흥분이 막상막하로 뒤섞이고 있어서 내 진솔한 감정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스스로도 분간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툭, 하고 뭔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유정이의 하의일거라 내심 상상을 하니 머리의 꼭지가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상상력이 인간을 얼마나 자극할 수 있는지 나는 지금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뒤돌아보면 안 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곧바로,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유정이가 나를 등 뒤에서 꼭 껴안은 것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 같은 알몸으로 말이다.
"유, 유정아...?"
"네?"
"가, 갑자기... 왜?"
"그 때도 이렇게 내가 등 뒤에서 안고 있었잖아요.... 기억 안나요?"
물론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충실하게 상황 재현을 할 필요가 있겠니?
"그, 그럼 우리 누울래?"
하지만 마치 소꿉놀이에 억지로 이끌려가는 아빠의 기분으로, 나는 그녀의 장단을 맞추어준다. 어찌됐든 등 뒤에서 느껴지는 보들보들하고 매끄러운 살결의 감촉은 지금 그녀의 몸이 전라의 상태임을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스르르 바닥에 몸을 눕히자 유정이도 나를 따라 조심스럽게 누웠다. 나를 여전히 뒤에서 끌어안은 채로 말이다.
"어... 음... 그 때랑 비슷한가요...?"
끝까지 역할에 충실하려는 유정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굳이 그걸 진정시켜야겠냐며 나를 타박하고 있었다.
나는 은근슬쩍 몸을 더더욱 유정이의 품 속으로 밀착시켰다. 유정이의 몸을 조금 더 생생하게 느끼기 위함이었다. 내가 몸을 깊숙히 밀어넣자 유정이의 가슴이 내 등에 더욱 밀착되며 부드럽게 뭉개지는 유방의 감촉이 한층 더 또렷하게 전달되어왔다. 그러자 그녀가 무척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오, 오빠... 가만히 있어요."
"좀 더 가까이 붙으면 안 돼?"
"그 때는 이렇게 딱 붙어있진 않았단 말이에요. 되도록 비슷하게 해야죠."
"굳이 비슷할 필요는 없는데.... 나 돌아누우면 안 돼?"
"절대 안 돼요."
절대 안 된다니.... 내가 유정이에게 들어봤던 말 중에 가장 완강한 표현이었다. 아쉬운 대로 등으로 느껴지는 가슴의 감촉을 느끼려고 나는 살결이 전하는 느낌에 최대한 집중했다.
도드라진 유두가 은근히 내 등에 닿으면서 살을 부드럽게 긁는 것이, 정말로 유정이의 말마따나 그 날 있었던 일을 아주 선명하게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닿을듯 말듯한 그 아슬아슬한 느낌과 애타는 감각은 마치 어제 겪은 일인 것마냥 계곡에서 보냈던 잊을 수 없는 순간의 기분을 내게 되새기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섬세하게 말이다.
"오빠."
"응?"
알몸으로 방바닥에 누워 끌어안고 있는 와중에 대화를 나누려니 무척 기분이 이상했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 기분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유정이의 말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생각해보면 그 날 있었던 일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거겠죠....?"
"이렇게"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무얼 가르키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유정이 또한 나와 그녀가 불투명하면서도 미묘한 관계에 놓여있다는 사실만큼은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왠지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그 때 오빠를 돕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서로 이런 감정을 느낄 일도 없었을까요?"
"글쎄...."
이성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선 흥분을 가라앉혀야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진 않았다. 나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며 억지로 말을 끄집어냈다.
"잘 모르겠지만 사실 널 보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들어. 내가 너에게 빠지는게 너무 당연한 것처럼.... 마치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처럼 내가 너에게 이끌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진지하게 꺼낸 것치곤 너무 진부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려다보니 꾸밈이 없어져버린 느낌이었다.
"운명이라던지.... 하는 그런 이야기를 오빠는 믿는 거에요?"
"운명?"
신기하게도 유정이가 건네는 그 질문이, 언젠가 내가 옆집 여자에게 던졌던 어느 질문과 너무도 비슷하게 들렸다.
"그런건 잘 몰라. 그냥 요샌 너무 막연한 기분이 들 때가 가끔 있어서.... 그저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는 일들이 있는 것 같아.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된 것처럼."
내 입으로 말을 하면서도 듣기에 따라선 너무 유치하게 느껴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유정이는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거 참 신기하네요."
"뭐가?"
그 때 유정이가 꺼낸 말은 내게는 너무도 뜻밖이었는지, 그 후로도 그 말이 오랜 세월동안 기억에 박혀버렸다.
"나도 오빠를 볼 때마다 비슷한 기분이 들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서로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는지, 아마도 우리 둘 다 그것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면 이것은 그 자체로 이미 납득의 차원을 벗어나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전하고, 그녀가 그것을 이해한 순간부터 우리는 인과의 차원을 한참 벗어난 우리만의 세계에 도달해있었다.
논리도, 법칙도, 이유도 없는.... 오직 몽환적인 감성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그 기묘한 아늑함. 그것은 마치 옆집 여자의 방에 발을 들였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감각이었다. 우리는 굳이 말로써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가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서로가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이 좁은 방 안이 우리만의 우주가 되었다.
"돌아누워도 돼?"
"......."
아까와 같은 물음을 한번 더 던진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나는 이것이 승낙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 사이에 더이상 말은 필요없기 때문이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 순간의 우리는 분명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할 수가 없는 어떤 기묘한 힘에 의해 이끌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돌아누웠다.
"유정아. 너 정말 예뻐."
처음으로 유정이의 알몸을 보았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하나도 숨김 없는,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을 두 눈에 새겼다.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뭐랄까.... 그 기분은 정말이지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했다. 마치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온 것처럼 아늑함과 반가움이 나를 감쌌다.
"서연 언니보다도 더...?"
이 순간에 하필 서연이의 이름이라니.... 마음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치고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그 대답을 바라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었기에.
"하읏...."
이끌림을 이기지 못하고 유정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다시 한번 세차게 유두를 빨기 시작하는 내 혀놀림 앞에 유정이가 신음을 흘렸다. 아까와는 다르게 몸을 배배꼬기 시작하는 그녀의 반응이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그녀가 두 팔을 들어 내 머리를 다정하게 감싸안은 것이었다.
가슴을 애무하는 나를 반기듯이 두 팔로 나를 감싸 자신의 몸으로 더욱 깊숙히 끌어안는 그녀. 그 사랑스런 행위는 분명 섹스를 처음 접하는 여성이 보여줄 수 있는 반응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내가 그녀의 첫 남자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건 도대체 왜였을까?
"오빠.... 나 이상해요."
"뭐가?"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무 것도 모르는데....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오빠와 사랑을 나누는 내 모습이 그려지고 있어요. 마치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것처럼 내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오빠는 이런 기분 이해할 수 있어요....?"
그걸 굳이 표현하자면 텔레파시라는 단어가 그나마 가장 근접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분명 우리는 같은 감각을 이 순간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야."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에서 같은 것을 읽었나보다. 정신이 들고보니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무아지경으로 탐하고 있었다. 마치 이끌리듯이, 무언가에 취하듯이, 우리는 뜨겁게 키스 속으로 빠져들었다. 혀와 혀가 얽히면서 열기가 피어올랐고 유정이는 그 열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오빠... 오빠..."
그녀의 입술과 혀를 물고 빨던 내 입술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 가슴을 지나쳐 배꼽에 이르자, 유정이가 애타게 나를 불렀다. 내가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그녀의 말을 듣고 있음을, 그녀도 이 아늑한 감각에 힘입어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두 눈을 꼭 감은채, 허공에 대고 말했다.
"나.... 나 사실 나쁜 애에요. 난 후회했어요. 서연 언니에게 가라고 오빠를 등떠밀어놓고.... 언니에게로 가는 오빠를 보면서 많이 슬퍼했어요. 서연 언니가 오빠의 곁에서 행복해하는 얼굴을 봤는데도 내 마음 속에는 그걸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겉으로만 오빠를 축복했어요.... 이런 내가 너무 위선적인가요?"
"아니야. 그런 네가 좋아. 난 너를 사랑해."
사랑!
그 놈의 사랑이란 단어는 마음 먹기에 따라선 그 얼마나 헤픈 말인지!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마음을 표현하기에 그 이상의 단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빠..."
마침내 내 입술은 그녀의 배꼽을 지나, 그녀의 가장 은밀한 곳을 향해 숨결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유정이는 무서운 듯 눈을 꼭 감았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나는 유정이의 보들보들한 수풀 위에 입을 한번 맞추었다. 그러자 그녀가 부르르 몸을 한 차례 떨었다.
"내가 널 여자로 만들어줄거야."
사뭇 통속적이면서도 진지한 고백이었다. 유정이가 토끼처럼 바르르 떠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너무도 사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제 우리 둘 사이에 거리낄 이유라곤 하나도 없었다....
*
딩동!
그 순간 천둥처럼 크게 울린 초인종 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자기야, 나 왔어!"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서연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치 유리가 산산히 부수어지듯 나와 유정이의 우주가 무너져내렸다. 우리는 그렇게 몽환에서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 신이시여!
- 다음 화에 계속 -
원래는 어제 올리려고 했었는데 분량 마무리 때문에 조금 더 작업하고 올리게 되네요
다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어느새 또 금요일이군요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36장
키스...! 그 죽일 놈의 키스!
생각해보면 그 못된 입술이 항상 문제였다. 왜 사내라는 동물은 꼭 설렘의 감정을 입술박치기로 표현하지 않고는 배기질 못하는 걸까? 이제는 유정이 입장에서 내가 어떻게 보일지 의구심이 생질 지경이다. 이쯤되면 이건 의도적 상슴법이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었다.
구태여 변명을 하자면 유정이를 볼 때마다 본능적인 충동 그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긴 했다. 욕구를 참지 못한 돌발적 충동에서 비롯된 실수가 아니라, 내 안의 무언가가 마치 자연스러운 수순을 밟듯이 나를 그렇게 이끌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따위 헛소리를 변명으로 들먹이기엔 너무 구차하지 않은가....?
굳이 입밖으로 그런 구질구질한 소리를 내뱉을바에야 기왕 저지른 것, 행위 자체에나 충실해보자는 막무가내식 마음가짐으로 나는 혀를 움직였다. 사실 이미 지나간 두번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오늘 또 이렇게 똑같은 실수를 저지른 이유는 나름대로의 새로운 각오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거기엔 물론 최근의 일로 얻은, 이른바 "내 마음 내키는 대로" 라는 그 단순한 깨달음을 실천하고자 했던 까닭도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중요한 이유는 유정이에 대한 나의 마음을 보다 분명하게 하고 싶다는 의지였다.
허울의 거리낌을 벗어던진 지금, 나는 내가 유정이를 좋아하고 있음을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하게 실감하고 있었다. 그것은 심지어 현주나 서연이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감정보다도 조금 더 특별한 것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관계는 언제나 희뿌연 연기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충동적으로 저질렀던 두 번의 키스는 안개처럼 흩어져버렸고, 심지어 유정이는 그런 일이 있고나서도 나를 멀리하거나 하는 등의 반응조차 보이지 않았기에 우리는 항상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는 불투명한 관계를 지켜왔던 것이다. 나는 이제 그 불투명한 관계를 조금 더 뚜렷하게 만들고 싶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게도, 유정이가 내게 해주었던 조언은 서연이와 현주 사이에서 고민하던 내게 일종의 해답을 제시해 준 셈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유정이 본인에 대한 나의 마음을 뚜렷하게 잡아준 계기가 되기도 했다. 비록 유정이가 그걸 스스로 느끼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거 어쩐다...."
분명 우리의 입술은 맞닿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겪어왔던 그 어떤 여자들보다도 유정이가 어려운 상대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 행동을 결정하는 것이 너무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살짝 실눈을 떠보니 유정이는 두 눈을 얌전히 감고 있었지만 몸은 뻣뻣하게 굳은 채였고, 그저 나를 밀쳐내지 못해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보기엔 지난번처럼 본능적으로 급소를 찍어누른다거나 하는 과격한 반응이 자기도 모르게 튀어나올까봐 스스로도 조심스러운 것 같았다.
게다가 이성과의 키스 자체가 내가 처음이라고 했던 이 순진한 여자애로서는, 테크닉이라는 개념 이전에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기본적인 방법조차 모르고 있을게 틀림없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애매하기만 했다.
"뭐, 뭔가 리드를 하긴 해야 하는데...."
욕구에 몸을 맡기고 함부로 행동하지 못한 이유는, 유정이가 마음만 먹으면 나를 걸레짝처럼 두들겨 팰 수 있는 상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누가 뭐래도 나는 유정이를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그녀의 기분을 배려하고 싶었고, 이 뻔뻔스러운 상황을 유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정이가 싫어할 만한 행위를 억지로 이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오빠..."
그 때, 맞닿은 입술의 경계가 살짝 벌어지면서 유정이가 그 틈새로 희미하게 나를 불렀다.
아.... 도대체 왜? 왜 그 순간의 "오빠"라는 한 마디가, 그리도 마음 속에 불을 활활 지폈단 말인가. 그저 평소처럼 "오빠"하고 불렀을 뿐인데.... 왜 그 한 마디로 인해 이성의 끈이 끊어져버린걸까.
"으... 흡..."
뭔가를 놓아버린 듯, 충동적으로 혀를 입 안 깊숙히 쑥 밀어넣자 유정이가 조금 당황하여 신음성을 흘렸다. 하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러다 유정이에게 죽도록 얻어맞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이미 뽑아든 칼, 무를 썰어아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괜찮아.... 여차하면 타임 리와인더가 있잖아."
수습 못할 짓을 저지르는 대가로 그 시계의 방패 뒤에 숨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어찌보면 지금의 상황에서 내 그러한 안일함은 다소 비겁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말로 유정이가 내게 그리도 소중하다면 이것은 다른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내 마음의 간절함으로만 풀어나가야 할 문제일테니.
인정하긴 싫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 투박한 초시계가 내게 줄 수 있는 "용기" 만큼은 상상 이상이었나보다. 비겁하다고 느끼면서도 나는 그 비겁한 용기에 힘입어 유정이의 몸을 두 팔로 끌어안았다. 뻣뻣하게 굳은 몸을 껴안으면서 한 손으로는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고 다른 한 손으론 그녀의 풍성한 머릿결을 매만졌다.
"예전부터 궁금했던게 있어."
그 때, 정말로 엉뚱하게도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질문이 입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머리를 왜 이렇게 길게 기른 거야?"
"네...?"
그 쌩뚱맞은 질문에 유정이조차도 어안이 벙벙한 듯, 얼이 빠진 목소리로 반문한다. 그녀의 포커페이스가 무너질 정도라면 내 질문이 보통 어이없는게 아니었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꿋꿋하게 한번 더 물었다.
"그게.... 예전부터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난 잘은 모르겠지만, 보통 머리가 길면 무술을 수련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나 싶어서.... 너는 여자애들 중에서도 머리가 아주 긴 편이잖아. 계속 그 이유가 궁금했었어."
"그, 글쎄요. 꼭 긴 머리를 하겠다고 생각해서 길렀던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그냥 짧은 머리가 싫었어요.... 그렇잖아도 남자애 같아 보일텐데, 머리카락까지 짧게 하고 다니면 얼마나 투박하겠어요."
그런 질문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는지 유정이는 대답할 말을 잘 고르지 못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유정이답지 않게 당황해하는 그 낯설은 모습 속에서,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그녀 본연에 가까운 모습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무예가의 집안에서 태어나 남자애처럼 자랐다고 해도, 그녀의 알맹이는 스무살 소녀일 따름이다. 고작 머리카락의 길이 하나에서 남녀의 차이를 찾으려고 하는 그 시선은 어찌보면 정말 협소한 생각이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녀가 얼마나 여성으로서의 삶을 바랐는지를 보여주는 확실한 단면이기도 했다. 비록 그녀 자신이 깨닫고 있진 못할지라도, 그녀의 내면은 자신이 여성임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뇌고 있었던 것이다.
"유정아, 미친 소리로 들리겠지만...."
"......"
"나 너를 여자로 만들어주고 싶어."
그 말이 어떤 의미로 그녀에게 들렸을지는 모른다. 다만 그 의미가 무엇이 되었든 그녀가 그것을 낭만적으로 생각해주길 바랐다. 유정이에게 여성으로서의 행복을 안겨줄 수 있는 남자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일거란 생각은 도저히 하고 싶지 않았다.
"넌 내가 봤던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야. 네가 스스로 그걸 못 느낀다면 내가 느끼게 해주고 싶어. 그 역할이 다른 사람의 몫이 되는건 싫어. 난 네가 좋아."
"오빠...."
욕심이라고 부르기에도 너무 과할 정도로 이기적인 고백이었다. 하지만 그 이기적인 고백 뒤에 들려오는 유정이의 대답은 대조적이리만치 너무도 이타적이라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나, 나는.... 서연 언니처럼 오빠에게 좋은 여자는 될 수 없어요.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서연 언니처럼 여성적인 사람은 될 수 없을 테니까요...."
"굳이 "여성적"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괜찮아. 너를 여자로 만들어주고 싶은건 여자로서의 네 모습을 바라기 때문이 아니야. 단지 네가 그걸 원하기 때문이지. 나는 네가 스스로 원하는 모습을 찾길 바랄 뿐이야. 설령 네가 남자 같은 삶을 산다해도 난 네가 좋아. 나는 너라는 사람 자체를 좋아하는 거니까."
그녀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단 표정이었다. 사실 그녀가 남성적이든 여성적이든, 그런건 이제 나에게 별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여성이 아닌" 자신의 모습을 다른 누군가가 사랑해주리란 생각을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이미 나는 남자로서 여자인 너를 좋아하고 있는 거야. 내가 너에게 정말로 가르쳐주고 싶은건 네가 그런 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충분히 빛난다는거였어. 예전부터 난 너에게 그걸 말해주고 싶었어."
"잘 모르겠어요.... 사실 오빠가 내게 그런 말을 할 때는 내가 어떻게 대답하면 좋을지 자꾸만 잘 모르게 돼요."
나는 그런 그녀의 순수한 마음을 이용하고 있었다. 내가 하는 말들이 그녀의 귓가에 낭만적으로 들리길 바라면서도 내 손은 더없이 통속적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입으로 풀기 힘든 대화는 몸으로" 라는 생각이었을까? 하지만 그게 과연 유정이에게도 통할지 어떨지....
"아...."
등을 쓸던 손이 앞으로 돌아와 배를 더듬자 유정이가 당황 섞인 신음을 또 한차례 흘렸다. 그녀답지 않게 어쩔 줄 몰라하는 그 낯선 모습이 또다시 내 야릇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여전히 비겁하게도 나는 유정이가 힘으로 나를 제압하려 들지 않는다는 사실에 더없는 안도감을 느끼면서, 한편으로는 그 안도감을 악용하여 오히려 더 큰 만행을 저지르고 말았다.
"거, 거긴...."
섹스는 커녕 키스조차도 내게 처음을 빼앗겼던 그녀답게, 가슴에 손이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유정이는 심하게 당황하고 있었다. 타임 리와인더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이쯤되면 내 무모함도 도저히 답이 없는 수준이라고 봐야 했지만,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브레이크를 지워버렸다.
용기라고 칭하기엔 너무도 저돌적인 과감함으로.... 나는 유정이의 가슴에 살짝 손을 얹었다.
"아...!"
"어...?"
그 순간 우리 둘 모두의 입에서 기묘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유정이의 당황하는 목소리야 그렇다치지만, 내 입에서도 그런 얼빠진 소리가 나왔던 이유는 손 끝에서 무언가 이질적인 감촉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분명 봉긋한 가슴 위에 손을 얹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손바닥에 전해진 느낌은 브래지어 특유의 감촉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심지어 물컹한 맨가슴의 감촉 또한 아니었다. 속옷이라기엔 너무 밋밋하고, 살결이라기엔 너무 투박한.... 이 이질적인 감촉은 도대체 뭐지?
"유정아.... 이건?"
"......"
"이것" 이라고 애매하게 지칭했지만 유정이도 내가 뭘 말하고자 하는지 이해한 것 같았다. 그녀는 내 몸 밑에 깔린 채로 애써 내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까지 당당함을 잃고 작아진 모습의 유정이는 처음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만약 그게 유정이에게 있어 타인에게 내보이기 싫은 어떤 "부끄러운" 것이라면, 그걸 그대로 두는 것이 그녀를 위한 배려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순간의 나는 정말로 배려없는 남자였는지, 몹쓸 행동이란걸 알면서도 충동적으로 그녀의 티셔츠를 위로 걷어올려버리고 말았다.
"으...."
유정이가 나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아주 기묘한 소리를 냈다. 부끄러워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괴로워하는 것 같았다. 혹시나 보이기 싫은 흉측한 자국이라도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 조심스러워졌지만, 눈 앞에 드러난 유정이의 속살을 보는 순간 다행스럽게도 그런게 아니었다는걸 깨달았다.
"이거.... 뭔지 물어봐도 돼?"
남자의 손에 의해 아랫배가 홀랑 드러나버린 이 상황은 단언컨대 그녀의 삶에 있어 처음 있는 일일 터였다. 사실 우리는 예전에 계곡에서의 사건으로 서로의 알몸을 맞댄 적이 있는 사이이긴 하지만, 이렇게 밝은 곳에서 속살을 눈으로 보는 것은 그것과는 또 별개의 문제였다. 그때야 워낙 캄캄한 어둠 속이라서 보이는게 없었지만, 지금은 유정이의 뽀얗고 군살 없는 매끈한 복부가 두 눈에 생생히 박히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유정이의 탐스러운 속살을 보는 순간 정신이 멍해지며 손이 굳어버린건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와중에 그녀에게 질문을 할 수 있었던건 그녀의 가슴을 꽁꽁 싸매고 있는 그 정체불명의 천쪼가리가 너무도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용도를 알 수 없는, 붕대라고 부르기엔 훨씬 매끄러운 감촉의 무언가가 그녀의 쇄골 아랫부분에서부터 상복부까지를 완전히 꽁꽁 두르고 있었다.
"이거.... 무명천이에요."
유정이가 마치 자신의 치부라도 드러내보이듯 부끄럽게 고개를 돌리며, 애써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순간 그 말이 잘 이해가 가질 않아서 나는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았다. 그녀도 부연설명이 필요하다고 느꼈는지 방금 전보다도 더욱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평소에는 그렇게 싸매고 다녀요...."
그러고보면, 유정이가 목이 깊게 파인 옷이나 가슴골을 조금이라도 노출시키는 형태의 옷을 입은 적이 단 한번도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왜...?"
유정이치고는 너무도 부끄러워하는 그 반응을 생각한다면, 더이상 묻는 것이 확실히 실례인 줄은 알았지만 그렇다고 이 상황에서 묻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게.... 어릴 적부터 습관이었어요. 열네살 무렵부터는 가슴이 너무 부풀기 시작해서.... 수련하는데 방해가 되곤 했거든요. 가슴이 크면 의외로 무술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그, 그래서 무명천으로 감싸고 다녔던게 이제는 습관이 되서 평상시에도 계속...."
"......."
마치 변명이라도 하듯이 더듬더듬 설명하는 유정이였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속으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내가 유정이의 알몸을 제대로 본 적은 없지만, 평상시에 그녀의 옷 위로 느껴졌던 몸매의 윤곽은 확실히 보통 여인들과 비교할 수 없는 수려한 굴곡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녀가 오토바이를 탈 때 간혹 입는 그 바이크 슈트 위로 드러나곤 했던 풍만한 가슴 굴곡은, 그 자체로 충분히 평균 이상의 크기를 짐작케 할 만했다.
"그, 그런데 그게.... 무명천으로 싸매고 있었는데도 그 정도였단 말이야?"
차마 그 경악을 입밖으로 소리내어 표현하지는 못하고 나는 얼빠진 얼굴로 계속 유정이의 가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유정이는 그 시선 때문에 더욱 부끄러워지는지 여전히 내 시선을 피하는 채로 물었다.
"이, 이상한가요...? 아무래도 보통 여자들이랑은 좀 다르죠...?"
"아, 아니.... 그렇다기보단...."
무술 수련에 방해가 된다는걸 알면서도 짧은 머리가 싫어서 머리를 허리까지 길게 기른 유정이였다. 그런 그녀가 커다란 가슴은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이렇게 무명천을 가슴에 두르고 다니는걸 보니 아주 묘하게 모순적인 기분이 들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지만 역시나 유정이는 정말로 모호하면서도 이중적인 아이였다.... 어떤 한가지 기준에 의해서 뚜렷하게 흑과 백으로 나뉘는 일이 없는, 간결하게 표현하기가 불가능한 아이. 비록 나는 그녀의 그런 모호한 이중성이 싫지는 않았지만, 재미있는 점은 그녀 스스로는 결코 자신의 그런 면모를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저기.... 한번 봐도 돼?"
"네에...?"
뺨을 후려맞아도 할 말이 없을, 뻔뻔하다 못해 기가 차는 질문이었다. 유정이의 반응 또한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질문에 답하느라 나와 잠깐 눈을 마주쳤다가도, 이내 다시 시선을 피하느라 고개를 돌려버리는 모습이 그 와중에도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네 가슴 보고싶어."
"그, 그냥 살덩어리일 뿐인데요.... 봐서 좋을 것도 없는데...."
맨가슴을 본다는게 남자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아무래도 그녀는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듯 했다.
"뭐 그건 내가 생각할 문제고."
다행스럽게도 유정이가 스무살이기에 망정이지, 미성년자였다면 이건 그야말로 어린애 하나 꼬드겨서 성추행하는 늙수구레한 변태 아저씨나 다름이 없는 꼴이었다. 물론 그녀가 성인이라고 해서 지금의 상황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 오, 오빠.... 잠깐만요...."
가슴을 싸매고 있는 무명천의 매듭 끄트머리를 잡고 풀어내기 시작하자 유정이가 당황하면서 얼굴을 붉혔다. 그녀답지 않은 그런 모습이 오히려 계속해서 나를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까....
브래지어를 풀어본 적은 있어도 이런 생면부지의 속옷을 접하는 것은 난생 처음이었기에 손놀림이 여간 엉성한 것이 아니었다. 그 꼴이 오죽 한심해보였는지 결국 유정이가 소극적인 손짓으로 가운데 부분을 조심스럽게 가리켰다. 그 부분을 잡고 당기라는 뜻인 것 같았다.
"그.... 보기만 하는 거죠....?"
"응."
그녀에게는 미안하지만 사실 별 생각없이 뱉은 대답이었다.
"......."
그리고 그 후로는 머릿속이 새하얗게 텅 비어버렸다. 그녀의 가슴을 두르고 있었던 길다란 천의 자락이 한겹 한겹 떨어져나가더니, 마침내 바닥 위로 툭 흘러내렸다. 그리고 나는 유정이의 맨가슴을 눈앞에서 목도했다.
"세상에...."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저 놀라움을 속으로 삼킬 뿐이다. 빡빡하게 가슴을 싸매고 있던 가리개가 걷혀나가고 드러난 그녀의 가슴은.... 한마디로 정말 상상초월이었다.
앞서도 말했듯 평소에 봐왔던 그녀의 가슴이 결코 작다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크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내 눈 앞에 드러난 그녀의 가슴은.... 족히 90센티는 넘어보이는, 눈대중으로 따지면 적게 잡아도 D컵은 훌쩍 넘고도 남을 것 같은 그야말로 엄청난 크기였다.
"저, 저 정도면 충분히 E컵일지도...."
차마 내가 감상을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붕어처럼 뻥긋거리며 가슴만 쳐다보고 있자,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한 유정이가 결국 쑥스럽게 티셔츠 자락을 살며시 내렸다. 하지만 무명천이 걷혀나가고 티셔츠가 가슴을 덮으니, 미처 가려지지 못한 그 엄청난 볼륨이 티셔츠 위로 생생히 드러나버린다. 여태껏 그녀가 남몰래 감추고 다녔던,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그녀 본연의 어마어마한 굴곡이 내 눈앞에 처음으로 드러난 것이다.
"왜, 왜 그렇게 봐요....? 역시 이상한가요?"
원래 그 이전에도 이성이 거의 끊어져있긴 했지만, 아마도 그 순간을 기점으로 완전히 끊어져버린 것 같다. 뭔가를 따지고 판단할 겨를도 없이 나는 유정이의 몸 위에 와락 올라탔다. 힘으로는 그녀가 충분히 나를 제압할 수 있을 텐데도.... 그녀는 고맙게도 내가 덮치는 대로 순순히 땅에 쓰러졌다.
"오, 오빠..."
귀를 간질이듯이 나를 부르는 유정이의 목소리는, 그녀 입장에서는 당황의 표현이었겠지만 내게 있어선 너무도 달콤한 유혹의 목소리로 들렸다. 나는 티셔츠 위로 유정이의 맨가슴을 더듬었다.
브래지어를 대신했던 천쪼가리가 걷히고 나니 티셔츠 위로는 노브라의 맨들맨들한 가슴 감촉이 고스란히 전해져오고 있었다. 그런데 그 볼륨감이라는게 정말로 상상 이상인지라, 만져놓고도 내가 깜짝 놀랄 지경이었다.
전혀 타이트한 티셔츠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 부분이 눈에 띄게 솟아올라 옷을 압박하고 있었다. 더 참지 못하고 나는 다시 티셔츠를 위로 올려버렸다.
"오빠..."
유정이가 또 한번 나를 애매한 목소리로 불렀다. 제지하고 싶었던 걸까? 하지만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흑!"
나도 모르게 유정이의 한쪽 가슴을 크게 한입 베어물고 말았다. 그러면서 한쪽 손으로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반대쪽 가슴을 조심히 움켜쥐었다. 유정이가 약간 흐느끼는 것처럼 기묘한 신음소릴 내었다.
베어문 입에서도, 움켜쥔 손에서도.... 도저히 생시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아늑한 감촉이 한껏 전해져왔다. 나는 솔직히 유정이가 이 정도의 거유일 거라고는 단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왜 이걸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는지 억울한 기분마저 들 지경이었다.
그녀의 가슴은 정말로 내가 여태껏 봐왔던 그 어떤 가슴보다도 더 황홀했다. 이만한 크기의 가슴을 만져보는 것은 나로서는 당연히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제법 크다고 생각했었던 현주의 가슴도, 지금 눈 앞의 이 크기에 비교하면 어린아이처럼 보일 것만 같았다.
물론 그렇다고 현주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싶은 마음은 결코 없었지만 내 순수한 감상만을 말하자면 유정이의 가슴은 현주 뿐만이 아니라, 웬만한 동양 여자들과는 아예 비교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으로 느껴졌다.
"오.. 오빠... 잠깐만요.... 흣...."
심지어 그녀의 젖꼭지는 그 어마어마한 크기와는 어울리지 않게도, 너무도 앙증맞고 고운 빛깔을 띄고 있는지라 그 점이 또 묘한 흥분을 불러일으켰다. 앵두를 연상케하는 분홍 빛깔의 깨끗한 젖꼭지는 내가 살아오면서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질감을 띄고 있는 것 같았다. 남성의 입에 빨려보기는커녕 손으로도 범해져본 역사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마치 티끌 한점 묻지 않은 것 같은 그런 모습이었다.
"유정아... 네 가슴 너무 예뻐. 아니, 아름다워.... 난 이런 가슴은 태어나서 처음 봐."
그건 결코 과장의 표현이 아니었다. 실물로 접해본 적은 당연히 처음인데다, 인터넷을 통해서 접한 각종 성인물에서도 이런 아름다운 가슴을 본 기억은 없었다. 가슴이 무식하게 큰 포르노 배우들은 분명 젖꼭지가 징그러울 정도로 넓거나, 탄력을 잃고 늘어지기 마련인데 유정이에겐 그런 것이 없었다.
그 또한 무술을 수련한 흔적의 덕분이라고 봐야 할진 몰라도, 그녀의 전신에 넘치고 있는 탄력들은 그 엄청난 가슴의 볼륨까지도 흐트러짐 없이 탱탱한 모양을 유지하게끔 만들고 있었고, 그 커다란 볼륨과는 대조적으로 느껴지는 작고 깨끗한 젖꼭지가 마치 예술품의 마무리를 장식하듯 젖무덤의 봉오리에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예술.... 그래, 생각해보면 그녀의 가슴에는 확실히 예술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나, 남자들은.... 왜 큰 가슴을 좋아하는 거에요....?"
따지고보면 내가 그녀를 강제로 추행하고 있는거나 다름 없는 이 상황에서, 그녀의 그 순진한 질문은 너무도 엉뚱하게만 들렸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올 뻔 하는걸 간신히 참으며 나는 퍽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게.... 남자들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 같은 거랄까? 어릴 때 엄마 젖을 빨던 기억이 본능에 남아있어서 그런 걸거야. 아마도."
"그럼 지금 어머니 모유 먹던 기분으로 내 젖을 빨고 있는 거란 뜻이에요....?"
그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물어보니 할 말이 없다. 다만 유정이의 입에서 "젖"이라는 표현이 나오는게 생각보다 느낌이 야릇했다. 대답 없이 젖꼭지를 물고 빨던 혀놀림에 더욱 힘을 주니 유정이가 상반신을 움찔거리며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으흑...! 그, 그만해요 오빠...."
"왜? 싫어....?"
"몰라요.... 그냥 부끄러워요. 간지럽기도 하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런 반응을 보일 수록 내가 그만두기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걸 그녀는 모르는게 분명했다. 그만둘 때 그만두더라도 조금이나마 더 그녀의 가슴을 느끼기 위해 나는 힘껏 유두를 빨아당기며 한손으로 남은 유방을 마구 주물렀다.
한 손으로는 도저히 다 쥘 수도 없는 그 무지막지한 볼륨감이 내 손바닥 전체를 뒤덮고도 남아, 손가락 사이사이의 틈새로 뽀얀 유방의 살결들이 삐져나왔다. 아름다운 예술품이 내 손아귀에서 짓이겨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마치 새하얀 눈발에 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남자의 손을 거친 흔적이라곤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깨끗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젖꼭지가 내 입 안에서 나의 침으로 더럽혀지고 있었고, 순결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한 순백색의 탐스러운 젖무덤은 내 손놀림에 의해 마구잡이로 뭉개지며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첫 흔적을 남기는 남자가 나라니....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네 가슴이 이렇게 클 줄은 몰랐어. 그.... 예전에 계곡에서는.... 그런 느낌을 못 받았거든."
그러고보니 문득 계곡에서의 일이 다시 한번 떠올랐다. 알몸으로 부둥켜 안고 있었던 그 때, 분명 유정이의 맨가슴이 내 가슴에 닿은 적이 있었긴 했다. 심지어 그녀의 유두가 내 피부를 긁기도 했었으니 그 때는 무명천을 두르고 있었던 것도 아닐 터였다.
물론 목숨이 오가는 그 상황에서 온전히 내가 성적인 자극에 집중하고 있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그 때 피부로 느낀 감촉이 도저히 이 정도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내 그런 의문 앞에 유정이도 그 순간의 민망했던 기분이 고스란히 떠오르는지 살짝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사실 그 때는.... 가슴이 되도록 안닿게 하려고 저도 조금 힘들었어요. 체온을 나눠야하는데 가슴이 닿는건 부끄러우니까.... 최대한 신경 쓰느라고...."
그렇게 듣고보니 아슬아슬하게 젖꼭지만 살짝 닿곤 했던 그 당시의 상황이, 아무래도 유정이의 그 힘겨운 몸부림 덕분도 있었던 듯 했다. 어둠 속에서 나를 끌어안으면서도 맨가슴이 내 가슴에 부딪혀 뭉개지지 않도록 어정쩡하게 몸을 뒤로 빼고 있었을 그녀를 상상하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왜 웃으세요?"
"아니. 그냥 귀여워서...."
대답과 동시에 나는 내 티셔츠를 훌렁 벗어던졌다. 갑작스럽게 내가 탈의를 하자 유정이가 깜짝 놀라 토끼눈이 되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우리 다시 한번 그 때처럼 해볼래?"
"네?"
"그 때 계곡에서처럼 알몸으로 껴안고 있어보자구. 뭐... 지금은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상황은 아니니까 그 때처럼 긴박함은 없겠지만."
유정이는 대체 왜 그런 짓을 굳이 반복해야 하는지 도통 이해하지 못하겠단 얼굴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순진무구한 얼굴을 못본체 하며 그녀의 몸에서 완전히 티셔츠를 벗겨내버렸다. 거의 막무가내로 그녀의 두 팔을 위로 들게하고 옷을 벗겨올리니, 마지못해 따르는 모습이 귀여웠다.
거의 폭포수나 다름없는 그녀의 풍성하고 긴 머리카락이 티셔츠를 따라 올라갔다가, 출렁이듯 다시 그녀의 몸 위로 고스란히 떨어져내렸다. 반라가 된 그녀의 상반신 위를 머리카락이 뒤덮어버리니 뽀얀 속살들을 머리카락이 아슬아슬하게 가려주는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특히 수박처럼 커다란 두 젖가슴을 풍성한 머릿결이 위태롭게 가리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섹시미의 절정을 달리고 있었다. 성경험에 대해 거의 무지한 그녀에게 섹시하다는 표현을 쓰는게 옳을지는 모르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정말로 그게 섹시해보였다. 머리카락 틈새로 젖꼭지가 보일듯 말듯 반짝이는 그 모습은 나로 하여금 엄청난 색기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마치 진주가 영롱한 빛을 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아래도 벗어야 하는 거에요...?"
"응."
이건 뭐 다섯살짜리 여자애를 꼬드겨서 못된 짓을 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그, 그건 안 돼요...."
"왜 안 돼?"
"그게.... 남녀가 유별한데 그곳까지 벗는다는건 좀....."
"뭐 어때. 우리 벌써 서로 알몸 본 사이잖아."
"그 때는 어두웠잖아요...."
"그러니까 그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보자는거지. 추억도 회상하고 좋잖아."
"그, 그게 무슨 추억이에요?"
듣는둥 마는둥하며 나는 유정이의 바지로 손을 가져갔다. 순진한 애 꾀어다 강제로 추행하는거라고 해도 좋았다. 죄책감이야 나중에 느끼더라도 지금은 도저히 그만둘 수가 없었다.
"오, 오빠...."
"응?"
유정이가 갈팡질팡하고 있는 틈에 서둘러서 바지를 벗겨내리려고 버클을 풀고 있던 나였지만 유정이의 다음 말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우, 우리 아버지가.... 결혼할 사람 외에는 외간남자에게 함부로 몸을 보여주면 안 된다고 그랬단 말이에요...."
"뭐? 풋... 푸하하하...."
사뭇 진지하게 꺼낸 말인데도 내가 웃어넘기자 유정이는 약간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그녀가 뾰족해진 목소리로 따지고 들었다.
"왜 웃으세요?"
"아, 미안해. 난 그냥 네가 너무 귀여워서...."
"뭐가요?"
"그냥 그런게 있어. 근데 너 그러면 나한테 이미 알몸 보인 적 있는데, 나한테 시집 와야하는거 아니야?"
"몰라요. 그 때는 어두웠으니까.... 아마도 무효겠죠."
그 궁색한 발언이라니.... 너무도 깜찍하고 귀여웠다.
"크크, 그럼 어디 밝은 곳에서 제대로 한번 볼까?"
유정이가 마음먹고 제대로 힘을 쓰면 찍소리도 못하고 얻어터질게 뻔한 주제에, 그녀가 차마 거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악용하는 내 모습은 내가 생각하기에도 무척 사악해보였다. 하지만 사악하건말건 이미 내 손은 허겁지겁 그녀의 청바지를 벗기고 있었다.
그러고보면 유정이는 특유의 바이크 슈트를 제외하면 언제나 수수한 옷차림으로 일관했었다. 다양한 스타일을 즐겨 소화하는 서연이와는 다르게 늘 편하고 캐주얼한 옷차림만을 유지했던 유정이의 스타일이 문득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몸매로 아마 제대로 마음먹고 꾸민다면 웬만한 여자들은 엄두도 못낼 만큼 화려할텐데....
"언제 한번 예쁜 옷이라도 사줄까나?"
아마 여성스런 옷에 대한 흥미가 없다기보단, 그러한 옷차림을 살아생전 한번도 소화해본 적이 없었기에 그동안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었던게 틀림없었다. 쓰잘데 없는 그런 소소한 상상을 하며 나는 유정이의 청바지를 벗겨내리려고 더욱 힘을 주었다. 그런데 그 순간 유정이가 나를 제지하고 나섰다.
"잠깐만요...!"
아.... 역시 바지를 벗기는 것 만큼은 안 되는 걸까? 그녀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제법 완강한 거부의 표시를 하자 나는 속으로 약간 침울해졌다. 아쉽지만 그녀의 뜻을 거슬러가면서까지 추행을 감행할 수는 없었기에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도저히 불가능했다) 입맛이 썼다.
"일단 불부터 꺼요."
"어?"
하지만 다음 순간 그녀의 말이 내 혼을 쏙 빼놓고 말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내가 두 눈을 끔뻑거리고 있으니 유정이가 시선을 아래로 깔며 중얼거렸다.
"그 때처럼 해보자고 했잖아요. 그럼 똑같이 어둡게 해야죠...."
"......."
순간 내 머리에서 나사가 하나 툭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해야하나....? 순진함을 넘어서 약간 바보스럽게까지 느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이 기분을....?
얼이 빠진 내가 멍하니 앉아있는데, 유정이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종종걸음으로 화장실 안에 뛰어들어갔다. 그리고 곧이어 화장실 안에서 졸졸거리는 물소리가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설마 유정이가 볼일이라도 보나 싶어서 깜짝 놀란 나였지만 문이 열려있는걸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잠시 후에 유정이가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안에서는 물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뭐, 뭐한거야...?"
"샤워기로 물 틀었어요...."
"왜?"
"그야... 계곡 물소리도 똑같이 해야하니까..."
"......"
아무래도 유정이가 생각보다 좀 맹한 구석이 있나보다. 하지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기 때문인지 그럼에도 왠지 분위기가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아서 난 굳이 제지하지 않았다.
"그, 그리고.... 옷은 그냥 내가 벗을래요."
"어어? 뭐, 뭐라구?"
뜬금없지만 너무도 강력한 그 한마디에 멍하니 넋을 빼고 있었던 내 얼굴이 순식간에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 날 계곡에서 오빠가 내 옷 벗겼던건 아니잖아요.... 이왕 할거면 리얼리티있게 하는 편이...."
"리, 리얼리티?"
이쯤되면 혹시나 그녀가 이걸 연극연습으로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솔직히 내가 원하는건 유정이의 벗은 몸을 보는 것 뿐이지 그것 말고는 그다지 중요한게 아닌데.... 쓸 데 없는 디테일에 신경을 쓰는 그녀가 귀엽긴 했지만 이거 아무래도 순진한 애 데리고 못할 짓을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점점 커져만 간다.
게다가 상의는 이미 내 손에 의해 탈의된 채로 방 안을 뽈뽈거리며 돌아다니는 유정이를 보고 있자니, 그 커다란 젖가슴이 출렁출렁 흔들리는게 눈에 고스란히 보여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랫도리에서는 자지가 우뚝 발기해있었다. 이런 지금의 내 심정을 어떻게 유정이에게 전달해야할지, 도무지 나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왜요...? 싫으세요?"
"아, 아냐."
하지만 어찌됐건 유정이가 직접 벗어준다는데 나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내 손으로 직접 벗기는 편이 흥분은 더하겠지만, 아무렴 벗어만 준다면야 더 바랄게 없었다. 유정이가 스스로 벗는건 사실 그 나름의 독특한 흥분이 있기 마련일 테니....
"그럼 잠깐 눈 돌리고 있으세요."
"으응."
커다란 유방이 적나라하게 덜렁거리는 광경을 계속 감상하지 못하는게 아쉬웠지만 이 순간이 지나가고나면 혹시 유정이의 알몸을 볼 수 있게 되는걸까 하는 기대감 때문에 나는 괜스레 두 눈을 꼭 감았다. 가슴이 두방망이쳐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설렘과 흥분이 막상막하로 뒤섞이고 있어서 내 진솔한 감정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스스로도 분간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툭, 하고 뭔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게 유정이의 하의일거라 내심 상상을 하니 머리의 꼭지가 핑핑 도는 기분이었다. 상상력이 인간을 얼마나 자극할 수 있는지 나는 지금 몸소 체험하고 있었다.
"뒤돌아보면 안 돼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 순간 곧바로,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유정이가 나를 등 뒤에서 꼭 껴안은 것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것 같은 알몸으로 말이다.
"유, 유정아...?"
"네?"
"가, 갑자기... 왜?"
"그 때도 이렇게 내가 등 뒤에서 안고 있었잖아요.... 기억 안나요?"
물론 그렇긴 하지....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충실하게 상황 재현을 할 필요가 있겠니?
"그, 그럼 우리 누울래?"
하지만 마치 소꿉놀이에 억지로 이끌려가는 아빠의 기분으로, 나는 그녀의 장단을 맞추어준다. 어찌됐든 등 뒤에서 느껴지는 보들보들하고 매끄러운 살결의 감촉은 지금 그녀의 몸이 전라의 상태임을 내게 말해주고 있었다. 내가 스르르 바닥에 몸을 눕히자 유정이도 나를 따라 조심스럽게 누웠다. 나를 여전히 뒤에서 끌어안은 채로 말이다.
"어... 음... 그 때랑 비슷한가요...?"
끝까지 역할에 충실하려는 유정이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두근대는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선 굳이 그걸 진정시켜야겠냐며 나를 타박하고 있었다.
나는 은근슬쩍 몸을 더더욱 유정이의 품 속으로 밀착시켰다. 유정이의 몸을 조금 더 생생하게 느끼기 위함이었다. 내가 몸을 깊숙히 밀어넣자 유정이의 가슴이 내 등에 더욱 밀착되며 부드럽게 뭉개지는 유방의 감촉이 한층 더 또렷하게 전달되어왔다. 그러자 그녀가 무척 움찔거리는 것 같았다.
"오, 오빠... 가만히 있어요."
"좀 더 가까이 붙으면 안 돼?"
"그 때는 이렇게 딱 붙어있진 않았단 말이에요. 되도록 비슷하게 해야죠."
"굳이 비슷할 필요는 없는데.... 나 돌아누우면 안 돼?"
"절대 안 돼요."
절대 안 된다니.... 내가 유정이에게 들어봤던 말 중에 가장 완강한 표현이었다. 아쉬운 대로 등으로 느껴지는 가슴의 감촉을 느끼려고 나는 살결이 전하는 느낌에 최대한 집중했다.
도드라진 유두가 은근히 내 등에 닿으면서 살을 부드럽게 긁는 것이, 정말로 유정이의 말마따나 그 날 있었던 일을 아주 선명하게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닿을듯 말듯한 그 아슬아슬한 느낌과 애타는 감각은 마치 어제 겪은 일인 것마냥 계곡에서 보냈던 잊을 수 없는 순간의 기분을 내게 되새기고 있었다. 필요 이상으로 섬세하게 말이다.
"오빠."
"응?"
알몸으로 방바닥에 누워 끌어안고 있는 와중에 대화를 나누려니 무척 기분이 이상했다. 그녀도 나와 마찬가지 기분일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더더욱 유정이의 말 하나하나에 집중했다.
"생각해보면 그 날 있었던 일이 우리를 이렇게 만든거겠죠....?"
"이렇게"라는 표현이 정확하게 무얼 가르키는지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힘들었다. 다만 유정이 또한 나와 그녀가 불투명하면서도 미묘한 관계에 놓여있다는 사실만큼은 스스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게 왠지 다행스런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럴지도 모르지."
"내가 그 때 오빠를 돕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서로 이런 감정을 느낄 일도 없었을까요?"
"글쎄...."
이성적인 대화를 하기 위해선 흥분을 가라앉혀야했지만 그게 말처럼 쉽진 않았다. 나는 최대한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며 억지로 말을 끄집어냈다.
"잘 모르겠지만 사실 널 보고 있으면 그런 기분이 들어. 내가 너에게 빠지는게 너무 당연한 것처럼.... 마치 그렇게 정해져 있는 것처럼 내가 너에게 이끌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야."
진지하게 꺼낸 것치곤 너무 진부하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려다보니 꾸밈이 없어져버린 느낌이었다.
"운명이라던지.... 하는 그런 이야기를 오빠는 믿는 거에요?"
"운명?"
신기하게도 유정이가 건네는 그 질문이, 언젠가 내가 옆집 여자에게 던졌던 어느 질문과 너무도 비슷하게 들렸다.
"그런건 잘 몰라. 그냥 요샌 너무 막연한 기분이 들 때가 가끔 있어서.... 그저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는 일들이 있는 것 같아. 내가 너를 좋아하게 된 것처럼."
내 입으로 말을 하면서도 듣기에 따라선 너무 유치하게 느껴질 것 같다는 기분이 들어 나는 조금 부끄러웠다. 하지만 유정이는 생각보다 꽤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거 참 신기하네요."
"뭐가?"
그 때 유정이가 꺼낸 말은 내게는 너무도 뜻밖이었는지, 그 후로도 그 말이 오랜 세월동안 기억에 박혀버렸다.
"나도 오빠를 볼 때마다 비슷한 기분이 들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서로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는지, 아마도 우리 둘 다 그것을 제대로 설명해내지 못할 것이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이 하나 있다면 이것은 그 자체로 이미 납득의 차원을 벗어나있었다. 내가 그녀에게 전하고, 그녀가 그것을 이해한 순간부터 우리는 인과의 차원을 한참 벗어난 우리만의 세계에 도달해있었다.
논리도, 법칙도, 이유도 없는.... 오직 몽환적인 감성만이 존재하는 것 같은 그 기묘한 아늑함. 그것은 마치 옆집 여자의 방에 발을 들였을 때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감각이었다. 우리는 굳이 말로써 표현하지 않아도 서로가 비슷한 기분을 느끼고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서로가 그것을 깨달은 순간부터, 이 좁은 방 안이 우리만의 우주가 되었다.
"돌아누워도 돼?"
"......."
아까와 같은 물음을 한번 더 던진다. 하지만 이번에 그녀는 대답이 없었다.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나는 이것이 승낙임을 알 수 있다. 이제 우리 사이에 더이상 말은 필요없기 때문이었다.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도저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 순간의 우리는 분명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할 수가 없는 어떤 기묘한 힘에 의해 이끌리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돌아누웠다.
"유정아. 너 정말 예뻐."
처음으로 유정이의 알몸을 보았다. 머리부터 발 끝까지 하나도 숨김 없는, 그녀의 아름다운 나신을 두 눈에 새겼다.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그 아름다움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뭐랄까.... 그 기분은 정말이지 말로는 표현이 불가능했다. 마치 어머니의 품으로 돌아온 것처럼 아늑함과 반가움이 나를 감쌌다.
"서연 언니보다도 더...?"
이 순간에 하필 서연이의 이름이라니.... 마음을 확인하기 위한 질문치고는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그 대답을 바라고 있다는걸 느낄 수 있었기에.
"하읏...."
이끌림을 이기지 못하고 유정이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다시 한번 세차게 유두를 빨기 시작하는 내 혀놀림 앞에 유정이가 신음을 흘렸다. 아까와는 다르게 몸을 배배꼬기 시작하는 그녀의 반응이 놀라웠지만, 더 놀라운 일은 그 후에 일어났다. 그녀가 두 팔을 들어 내 머리를 다정하게 감싸안은 것이었다.
가슴을 애무하는 나를 반기듯이 두 팔로 나를 감싸 자신의 몸으로 더욱 깊숙히 끌어안는 그녀. 그 사랑스런 행위는 분명 섹스를 처음 접하는 여성이 보여줄 수 있는 반응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는 내가 그녀의 첫 남자라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건 도대체 왜였을까?
"오빠.... 나 이상해요."
"뭐가?"
"나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아무 것도 모르는데....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오빠와 사랑을 나누는 내 모습이 그려지고 있어요. 마치 누군가가 가르쳐주는 것처럼 내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오빠는 이런 기분 이해할 수 있어요....?"
그걸 굳이 표현하자면 텔레파시라는 단어가 그나마 가장 근접했을 것이다. 논리적으로 설명은 불가능하지만 분명 우리는 같은 감각을 이 순간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도야."
눈빛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눈동자에서 같은 것을 읽었나보다. 정신이 들고보니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무아지경으로 탐하고 있었다. 마치 이끌리듯이, 무언가에 취하듯이, 우리는 뜨겁게 키스 속으로 빠져들었다. 혀와 혀가 얽히면서 열기가 피어올랐고 유정이는 그 열기를 거부하지 않았다.
"오빠... 오빠..."
그녀의 입술과 혀를 물고 빨던 내 입술이 서서히 아래로 내려가 가슴을 지나쳐 배꼽에 이르자, 유정이가 애타게 나를 불렀다. 내가 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그녀의 말을 듣고 있음을, 그녀도 이 아늑한 감각에 힘입어 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두 눈을 꼭 감은채, 허공에 대고 말했다.
"나.... 나 사실 나쁜 애에요. 난 후회했어요. 서연 언니에게 가라고 오빠를 등떠밀어놓고.... 언니에게로 가는 오빠를 보면서 많이 슬퍼했어요. 서연 언니가 오빠의 곁에서 행복해하는 얼굴을 봤는데도 내 마음 속에는 그걸 온전히 기뻐하지 못하는 내 자신이 있었어요. 그러면서도 겉으로만 오빠를 축복했어요.... 이런 내가 너무 위선적인가요?"
"아니야. 그런 네가 좋아. 난 너를 사랑해."
사랑!
그 놈의 사랑이란 단어는 마음 먹기에 따라선 그 얼마나 헤픈 말인지!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이 마음을 표현하기에 그 이상의 단어가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오빠..."
마침내 내 입술은 그녀의 배꼽을 지나, 그녀의 가장 은밀한 곳을 향해 숨결을 들이밀기 시작했다. 유정이는 무서운 듯 눈을 꼭 감았지만 그러면서도 나를 거부하지 않았다. 나는 유정이의 보들보들한 수풀 위에 입을 한번 맞추었다. 그러자 그녀가 부르르 몸을 한 차례 떨었다.
"내가 널 여자로 만들어줄거야."
사뭇 통속적이면서도 진지한 고백이었다. 유정이가 토끼처럼 바르르 떠는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더니, 너무도 사랑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이제 우리 둘 사이에 거리낄 이유라곤 하나도 없었다....
*
딩동!
그 순간 천둥처럼 크게 울린 초인종 소리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자기야, 나 왔어!"
바깥에서 문을 두드리는 서연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마치 유리가 산산히 부수어지듯 나와 유정이의 우주가 무너져내렸다. 우리는 그렇게 몽환에서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 신이시여!
- 다음 화에 계속 -
원래는 어제 올리려고 했었는데 분량 마무리 때문에 조금 더 작업하고 올리게 되네요
다들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어느새 또 금요일이군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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