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임 리와인더 (Time Rewinder)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10장
더위가 한풀 꺾인 늦여름에서 초가을 무렵의 9월 계곡은 뭔가 그 나름의 독특한 낭만이 있었다. 계곡물이 아직은 시리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물 안으로 첨벙 뛰어들길 유혹하는 무더운 날씨도 아니었기에 조용한 성격의 여학생들은 그저 도란도란 발을 담그며 수다나 떨고 싶어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장난기가 발동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하나하나 꿰어다가 물에 빠뜨리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내 학과생들은 남녀로 나뉘어 물에 빠뜨리려는 편과 달아나려는 편으로 나뉘어 놀게 되었다. 여학생들은 병아리마냥 꺅꺅 소리를 질러대며 분주하게 도망다녔고, 그런 모습에 오히려 자극받은 남학생들이 분발해서 날뛰기 시작하자 계곡 분위기는 곧 한여름날 못지 않게 활발해졌다.
늑대같은 남학생들의 본능이 어디가겠는가? 그들은 이런 분위기를 기회 삼아 마음에 드는 여학생들을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물에 더 빠뜨리고 싶어했다. 여인네를 물에 빠뜨리면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가령 젖은 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던지, 옷이 달라붙어 의외의 노출을 보게 된다던지 하는...
"꺄악!"
"학회장 누나부터 빠뜨려! 하하하."
"누나! 학회장이라고 봐주는거 없어요. 킥킥."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서연이의 안위가 궁금했다. 눈에 불을 켠 늑대들이 다른 여학생도 아닌 서연이를 곱게 놔두고 싶어할 리가 없으니. 특히 1,2 학년 쯤 되는 학번의 남학생들에게 서연이의 존재는 가히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남학생들 십수명의 손아귀를 피해 달아나려고 동동거리고 있는 서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이럴때 아니면 언제 고귀하신 학회장 여왕님을 물에 빠뜨려보겠냐는 듯 물귀신처럼 악착같다. 쯧쯧, 하여간 사내새끼들이란....
난 신경을 끄고 최대한 주목받지 않는 곳에 앉아 그저 늦여름 계곡의 선선한 분위기를 즐기고만 있었다. 물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굳이 나를 물에 빠뜨려놓고 같이 어울려 놀고 싶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꼭 내가 지난 학기에 안좋게 소문이 났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냄비근성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듯이 한때 냄비처럼 확 끓어올랐던 나에 대한 나쁜 소문은, 퍼질 때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시시하게 사그라들었다.
말 그대로 잠깐의 해프닝. 학기가 지난 지금은 그 소문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난 학기말에 지환이 녀석의 행실이 재조명되면서 나를 불쌍하게 보기 시작한 사람들도 제법 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나에 대한 학과생들의 평판은 "그저 그런" 정도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저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것은, 평판이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내가 "고학번"이기 때문이었다. 이유를 막론하고 고학번들은 새내기나 젊은 학번들과 어울려놀기 힘든 법이다.
있어도 그만이지만, 없어도 티가 안 나는 존재. 이 엠티에서 내 비중은 딱 그만큼이었다.
서글프지도 않았다. 원래 내 대학생활이 이런걸 뭐....
"그런데 이럴거면 진짜로 여기 왜 온거지?"
내가 와놓고도 내 스스로 그게 궁금했다. 뭘 기대한걸까?
서연이. 따지고 보면 서연이 때문이긴 했다. 내가 엠티에 오면 서연이가 날 뭔가 특별대접 해줄거라고 기대한걸까?
하지만 서연이는 학교에서는 우리의 애매모호한 관계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하는 일이 좀체 없었다.
지금도 저렇게 후배들이랑 즐겁게 노느라 바쁘지 않은가? 학회장이라는 직책상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풍덩~
결국 서연이가 물에 빠지나보다. 깔깔대는 웃음 소리가 들린다.
"......."
맑은 하늘과 좋은 경치를 보고 가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엠티인가보다. 그렇게 위로하기로 했다.
입맛이 쓰다.
"나 말고도 아웃사이더가 있나보네."
그 순간, 문득 아름다운 경치 외에 다른 것 하나가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헤엄치는 한 무리의 학생들 근처에서 유독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되어 바위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학생 한 명이 보인 것이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나처럼 대다수와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들이 몇명씩은 반드시 생겨나게 마련이다. 제아무리 "한 명도 소외시키지 않고 다 같이 잘 놀거야" 라는 마인드로 놀더라도 일부는 무조건 겉돌게 되어있다. 이른바 "왕따 질량보존의 법칙" 이다.
고로, 아웃사이더가 몇 명 더 있다고 해서 결코 신기해 할 일은 아니었다. 이 왕따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나 같은 아웃사이더는 반드시 생기게 되어있고, 이번 엠티에서 그게 나 하나 뿐만은 아닐 테니까. 그 예시로 조금만 주위를 살펴봐도 나처럼 섞이지 못하고 외롭게 드문드문 있는 고학번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 학생이 유독 내 시선을 끌었던 이유는, 일단 아무리 봐도 고학번은 아닌 것 같아보였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는 여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모도 나쁘지 않은 여학생. 길고 긴 생머리가 유독 눈에 띄는....
"유성이라는 그 애 아닌가?"
일단 괜찮은 외모의 여학생 치고 대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좀체 없는데, 유성이의 경우는 뭔가 독특한 케이스인 것 같아보였다. 강의실에서도 느꼈지만 저 아이는 자기 스스로 혼자 있는 것이 별로 불편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고독이나 쓸쓸함이 너무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그 순간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모르겠다. 무턱대고 유성이 옆 바위로 걸어가 그 애 곁에 앉았다.
학번을 먹을대로 먹은 나와는 달리 한창 친구, 동기들과 즐겁게 어울려 놀아야 할 시기에 잘 섞이지 못하고 있는 그 애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도 아웃사이더 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아싸들이 사교성이 부족하다거나 스스로 고립되길 원해서 그런게 아니다. 적당히 설득해서 동기들과 어울려놀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말동무라도 해주고 싶었다.
"유성아, 안녕."
유성아 하고 부르니 왠지 남자애를 부르는 듯 해서 기분이 멋쩍었다. 여자애들 중에서도 유독 긴 머리를 하고 있어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한껏 나부끼는 그 아이가 고개를 스윽 들어 나를 보았다. 계곡물에 발만 담그고 있는 그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니 뭔가 어여쁜 처녀귀신 같은 느낌이 들어 약간 오싹하기도 했다.
"저기, 나 기억해? 성진 선배야. 너 교양수업에서 같은 조 짰던...."
유성이가 시큰둥한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네" 하며 짧은 대답을 하고는 다시 앞을 보기 시작했다. 뭔가 머쓱했지만 계속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분명 서연이와 이야기를 할 때는 나름 쾌활하게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친구들 하고 안 놀아?"
"네."
"물에 들어가는거 싫어해?"
"네."
"계속 이렇게 있으려구?"
"네."
"......"
계속되는 네네 행진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혹시 내가 부담스럽나? 문득 여태껏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았던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서연이에게 인사를 했던 유성이가 내게는 인사를 하지 않았던 그 사소한 일이.
별로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았지만 내가 부담스러워서 그랬던 걸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혹시 내가 불편해?"
"......"
처음으로 "네"가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네 대신 침묵인가 싶어서 기운이 빠지려는데 유성이가 나지막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실, 남자들은 좀 불편해요."
특이한 대답이었다. 그래도 대화의 의지가 처음으로 생긴 듯 보여 나는 잽싸게 말을 받았다.
그 순간 그렇게 의욕이 생긴 걸로 봐서는, 그 쓸쓸한 엠티 자리에서 나도 내심으로는 많이 적적했었나보다.
"왜? 나 너한테 흑심 있는거 아닌데..."
"그런게 아니구요. 남자를 원래 좀 싫어해요."
더욱 특이한 대답이었다. 무슨 의미였을까?
그래도 "왜?" 라고는 묻지 않았다. 눈치가 없는 편인 나였지만 이 때는 나름 생각을 잘 한것 같다.
"그럼 여자애들이랑 놀지 그래?"
"그것도 싫어요."
"왜?"
"혼자 있는게 편해서요."
"아니, 왜?"
"그냥요."
유성이라는 아이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가 히키코모리 과로는 보이지 않았다. 단답형이긴 하지만 대답도 꼬박꼬박 한다. 무뚝뚝하다고는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서연이와 이야기 할 때 보았던 모습으로는 대화를 거부하고 사는 성격도 아닌 것 같았다.
겨우 두 번 본 사람을 느낌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거지만, 그래도 첫인상만으로 뭔가를 느낄 수 있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서 모호한 이중성을 느꼈다.
여자이면서 이름이 남자인 아이. 이성에 관심 많을 나이에 남자가 싫다고 하는 아이. 사교에 서투르면서도 대화를 거부하지는 않는 아이. 뭔가 하나의 잣대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기가 힘든 느낌이랄까.... 유성이에 대한 나의 첫느낌은 대충 그랬다.
"저기, 기분 나쁠수도 있겠지만.... 그럼 엠티엔 왜 온거야?"
"그건 왜 물으세요?"
"아니, 사실은 나도 비슷한 처지라서. 어차피 사람들이랑 놀지도 않을거 내가 왜 여길 왔나 생각중이었거든. 혹시 너도 나랑 같은 의문을 갖고 있진 않나 싶어서 물어보는거야. 기분 나쁘라고 한 말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마~"
"별 이유 없어요. 그냥... 서연 선배가 오라고 해서."
"서연이가?"
저 멀리 어딘가쯤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을 서연이의 모습을 찾으려 해보았다. 그러나 왜인지 서연이가 보이지 않았다.
"서연이랑 친해?"
"별로요."
"그런데 왜? 서연이랑 같이 놀려고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서연 선배 말은 듣고 싶어요. 웬만하면...."
"왜? 서연이가 잘해주니?"
"......."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아직 유성이에 대해 파악하진 못했지만, 직감으로 더 캐묻는건 안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연이를 유독 잘 따르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궁금증은 남았지만 나는 화제를 돌렸다.
"혹시 오토바이 타지 않아?"
"맞아요. 왜요?"
"그냥. 주차장에서 네가 바이크 타는거 몇 번 봤거든. 근데 나 궁금한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요?"
뒷말을 이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유성이가 바이크를 탄다는 것을 알고난 이후로 줄곧 그녀에게 하나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우리 한번 만난 적이 있지 않니? 강변도로에서."
"네?"
조심스레 물어보니 유성이가 무슨 소리냐는듯 고개를 든다.
강변도로에서의 기억. 황당했던 짧은 만남. 폭포수처럼 긴 생머리도, 앳되어 보이는 어린 외모도 꼭 닮았지만 이상하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는데요."
"그, 그래?"
물어보기 망설였던 이유가 이거였다. 아니라고 하면 더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어쩌면 진짜로 내가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그 계집애의 얼굴이라도 좀 자세히 봐둘걸....
"저도 묻고 싶은게 하나 있었어요."
"어? 뭔데?"
의외였다. 무뚝뚝한 반응으로 일관하던 유성이의 입에서 묻고 싶은게 있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서연 선배랑 사귀는 사이세요?"
"응?"
질문의 내용을 들어보니 더 의외였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아니.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했어?"
"그냥요. 여자의 감이랄까. 아무 사이도 아닌 것 같아보이진 않았어요."
적잖이 놀랐다. 이름은 남자애라도 역시 여자는 여자란 말인가? 떳떳이 밝힐 사이가 못되기에 말을 해줄 순 없었지만 오직 감으로 캐치할 수 있는 미묘한 무언가가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하. 아니야. 서연이랑 내가 무슨... 일단 외모부터가 나랑 서연이랑 안 어울리지 않냐?"
"하긴 그러네요."
"......."
왠지 서연이 그 계집애의 살살 긁는 말투를 고스란히 빼다 박은 것 같은데.... 이 애.
"두 사람 뭐해요? 물에도 안 들어오고."
호랑이 제말하면 온다더니 어느새 서연이가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역시 계곡물에 수차례 빠졌는지 이미 온 몸이 홀딱 젖은 채였다. 나는 되도록 무관심한 척 하려 했지만 물에 젖은 서연이의 모습을 보니 심장이 두방망이 치는 것을 자제하기 힘들었다.
탱크탑과 핫팬츠에 얇은 물놀이용 시스루 가디건 한 장만을 걸친 서연이의 모습은 너무도 고혹적이었다. 일단 허벅지부터 시작해서 맨다리가 미끈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젖어서 달라붙은 탱크탑의 표면 위로 서연이의 상체 능선이 고스란히 그려지고 있는 것이, 노출도 보통 노출이 아니었다.
게다가 몸의 굴곡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자극적이지만 물에 흠뻑 젖은 서연이가 머리칼을 뒤로 넘긴 모습이 또 색다른 매력으로 느껴져 더욱 시선을 떼기가 힘들었다. 아마 남학생 놈들이 이런 모습을 감상하고 싶어서 서연이를 물에 빠뜨렸겠지. 그런 의도였다면 아마 대성공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저 뒤쪽에서 서연이를 곁눈질하며 얼른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학과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 그냥. 아웃사이더들 끼리 담소나 나누고 있었어."
"엠티 와서 무슨 아웃사이더에요? 다 같이 놀아야지. 빨리 이리와요."
"참나~ 여태껏 버려두고 잘 놀더니 갑자기 신경 쓰고 있어."
"미안해요. 애들이 한 둘이 아니다보니... 지금이라도 같이 놀아요."
서연이는 학과생들을 챙기느라 나나 유성이를 구석에 소외시켜둔게 못내 미안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별 느낌이 없었으므로 서연이의 귀에다 대고 유성이나 잘 챙기라고 귀띔해주었다.
"유성이 잘 챙겨줘. 네가 엠티 오라고 해서 온 거래. 나야 늙은이라서 그렇다 치지만 얘는 한창 놀아야 하잖아. 얼른 얘나 데려가서 놀아."
"제가 오라고 해서 왔다구요?"
의외로 서연이는 금시초문이란 기색이었다. 서연이도 귓속말로 소근소근 대답을 하니 자연스럽게 서연이와 밀착이 되었다. 물에 젖은 그녀의 몸에서 한기까지 생생히 느낄 만큼 거리가 가까워지자 남학생들이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질투라기보단, "저 새낀 뭔데 학회장 누나랑 귓속말을 하지?" 하는 시선에 가까웠다.
"응. 그렇대. 얼른 데려가서 좀 챙겨줘. 난 경치나 감상하고 있을게."
"알았어요, 잘 챙길게요. 그리고 선배도 빨리 와서 놀아요. 무슨 엠티와서 경치를 감상해요. 신선이에요?"
"너도 이만큼 나이가 들면 물에만 들어가도 관절이 시큰거릴걸."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구요. 얘들아, 이리 와봐!"
서연이가 주변에 퍼져있는 학과생들을 불러모았다.
"성진 선배가 물에서 놀고 싶은데 너네가 안 놀아줘서 서운하시대. 빨리 모시고 놀아드려. 튜브도 귀여운걸로 하나 드리고."
"에이, 선배. 그럼 진작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일단 첫 입수는 투척인거 아시죠?"
학회장의 한 마디는 참으로 위력이 대단했다. 여태껏 내게 관심도 없던 아이들이 갑자기 몰려들더니 나를 물에 빠뜨리려고 내 양팔과 다리를 남학생 네 명이서 하나씩 붙잡았다. 물론 이런 자리에서는 평소에 그리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끼리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게 되는 것이긴 하지만 서연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남학생들을 보니 무슨 여왕의 근위대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어? 잠깐만."
남학생들이 내 사지를 붙들고는 앞뒤로 흔들어대는 스윙이 예사롭지 않다. 이대로 던져버릴 셈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 몸이 공중 위를 부웅 날았다.
풍덩!
물에 꼬르륵 잠기는 나의 몸.
결국 늙은 육신이 계곡 물에 이렇게 빠지는구나. 어린 새내기들과 몇몇 학생들이 신이 나서 깔깔 웃어대며 내게 물세례를 퍼부어댔다. 조금 짜증스럽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 이 나이 먹고 언제 또 학과 애들이랑 물놀이를 하겠냐. 엠티를 왔으니 놀긴 놀아야지. 들뜬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나도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며 어린 후배들에게 사정없는 공격을 퍼부어주었다. 그러자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그렇게 나로서는 아주 모처럼, 학과애들과 한데 어울려 놀게 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엠티는 평소에 어색했던 사람들끼리도 순식간에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나보다. 비록 일시적인 것이라 해도 말이다. 물보라 소리와 함께 높아져가는 웃음소리가 내심 나쁘지 않았다.
"것 봐요. 같이 노니까 재밌죠?"
서연이가 내게 물세례를 끼얹으며 생글생글 웃는다.
참 나, 여우 같은 기집애.
*
물 속에서 얼마쯤 놀았을까. 물놀이에 지친 몇몇 아이들이 가스 버너를 가져와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굽기 시작했을 무렵, 잊고 있었던 중요한 것 하나가 마치 뒤통수를 때리듯이 뇌를 강타하고 지나갔다.
"타임 리와인더!"
솔직히 타임 리와인더에 방수 기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에 빠져도 되는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외관상 그것은 기계의 형태를 하고 있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심장이 철렁하여 상의 안쪽 주머니를 더듬어보았다. 온몸이 물에 잠기기도 했기 때문에 분명히 주머니 안까지 물이 들어갔을 것이다.
"시계는 무사할까?"
혹시라도, 만에 하나 타임 리와인더가 작동이 안 될 경우를 가정하니 초조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나는 황급히 물 밖으로 뛰쳐나와 아무도 보지 않을 만한 인적 없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길 너머 한쪽 구석을 향해 계속 비집고 들어가다보니, 일부러 이쪽으로 찾아 들어오지 않으면 좀체 올 일이 없을 것 같은 인적이 뜸한 장소가 나왔다. 암벽으로 3면이 둘러쌓여있어 햇볕도 잘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어두침침한 장소였다. 이만하면 될 것 같아서 서둘러 안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보았다.
겉보기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시계에는 물이 침입한듯, 시계 전체에 물기가 얼룩져있는 것은 물론이고 홈 파인 곳곳에도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어, 어쩔 수 없지.. 딱 한 번만 시험해보자."
불안함을 가라앉히기 위해선 시범구동을 해볼 수 밖에 없었다. 난 조심스럽게 파란 바늘을 두 칸 옆으로 옮겼다.
두어 시간 전으로 돌아가면 대충 물에서 놀기 이전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타임 리와인더의 오작동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오작동이라기 보다는 처음으로 시간이 되감기지 않는 현상을 목격했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굳이 시간을 확인하게 위해 일반 시계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시간을 되돌아갈 때 언제나 느꼈던 특유의 요동치는 느낌이 없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여태껏 늘 시계 바늘만 존재해왔던 시계의 유리막 너머에 믿을 수 없게도 영문자들이 음각으로 새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기겁을 해서 시계를 그만 돌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다.
[WARNING - SELF REPAIR]
유리막 너머 시계의 액정 부분에 새겨진 영문자들.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시계바늘만 존재하던 평평한 기계판의 금속소재 위에 갑자기 문자들이 새겨지다니.... 게다가 한번 음각으로 새겨졌던 그 문자들은 다시 볼록 솟아오르더니 이내 평평한 면의 평소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새겨지는 다른 문자들.
[About 10 hours is the usual time required]
평평한 금속 판막이 문자의 형태대로 패이거나 솟아오르면서 하나의 문장을 내게 전달하고 있었다. 이건 도저히 과학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이건 거의 마법이나 다름 없었다. 그동안 이 비현실적인 힘에 나름대로 익숙해져 있었던 나로서도 선뜻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손이 덜덜 떨려왔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영문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셀프 리페어? 시계 스스로 수리 하고 있다는 건가? 그럼 역시 물에 들어가서 문제가 생겼다는거야?"
머릿 속이 혼란스러웠지만 늘 그렇듯이 이 시계와 관련해서 내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몇가지 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판막 위에 떠오른 영문장의 의미를 해석하는데에 힘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10시간이 소요된다...?"
문장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보건대, 시계의 수리에 10시간이 시간이 소요된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럼 10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시계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건가?
"젠장, 모르겠어."
좌우지간 시계가 어떻게든 "동작"은 하는걸 보니 못 쓰게 된 건 아닌 것 같지만, 일어난 현상으로 보아하니 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우선 영문장이 지시하는대로 10시간을 기다려볼 수 밖에 없었다.
순간,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가슴 한켠이 섬뜩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간의 생활로 인해 나는 타임 리와인더의 능력으로 나에게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 능력을 잠시나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엄습하는 기분이었다.
시계를 사용하지 못하는 동안 내게 무슨 큰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선배,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서, 서연아."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보란 듯이 당황스런 사태가 일어났다. 서연이가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이 인적 뜸한 장소까지 나를 쫓아왔던 것이다. 사실 그리 당황할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계의 작동이 마비되었다는 초유의 사태 앞에 당황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괜히 손발이 떨리고 태도가 어눌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시계를 손에 넣기 전의 그 찌질했던 내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길, 최성진. 정신차려. 별거 아니잖아. 평소처럼 대하면 돼... 달라진 건 없어."
"그게, 그냥... 잠시 조용한데서 혼자 쉬고 싶어서."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안색이 안 좋아요."
서연이가 식은 땀을 흘리고 있는 내 얼굴을 보자 놀라서 뛰어왔다.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어디 아픈거 아니에요? 식은 땀까지 흘리는데."
"괜... 찮아."
"그러지말고 말해봐요. 무슨 일 있는거 같은데."
"정말 아무 일도 없어. 그, 그냥 감기 기운이 좀 있나봐.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애들이랑 놀아. 난 숙소에서 조금 쉬고 있을 테니까."
"선배!"
서연이가 등 뒤에서 날 불렀지만 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떴다. 머릿 속이 너무도 복잡했다.
지금은 그저 혼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
"만약 시계의 힘을 잃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학과에서 숙소로 빌린 2층의 방 한 곳에 조용히 들어온 나는 바닥에 벌렁 누워 생각에 잠겼다. 여러가지 생각이 뒤죽박죽 떠오르며 나를 괴롭혔다. 아마 예전의 찌질했던 내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내가 상상했던 그 최악의 모습으로....
"젠장! 뭐야 이 기분은."
물론 이 시계는 결코 보통 시계가 아니다. 시간을 감을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시계다. 하지만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시계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내 인생에 큰일이 난 것처럼 당황하고 흔들리는 내가 싫었다.
결국 이 초시계 하나가 없으면 나는 여전히 찌질하고 소심한 인간일 뿐인가?
이건 마치 일종의 금단증상이었다. 시계의 능력을 잠시 잃은 것만으로 이렇게 불안해지고 미래가 갑자기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내가 한심하다.
"아니야. 침착하게 생각하자."
앞으로 10시간. 시계가 나타내는 바를 믿어본다면, 적어도 그 시간 동안 앞으로 나는 시계의 능력을 쓸 수 없다. 물론 시간을 되돌릴 일이 생겼다고 가정했을 때, 10시간이 지난 이후 기능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온다면 그 때 가서 시간을 감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내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그런 부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막연한 불안함이었다. 시계를 잃어버린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에 대한 미지의 불안. 타임 리와인더가 영원히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어떤 불미스런 사고로 언제든지 내 손을 떠날 수 있다는 가정을 생생하게 인식시켜 주는 끔찍한 불안.
계곡에서의 해프닝은 우연찮은 사고에 불과했지만, 자칫하면 시계의 능력을 잃을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내가 인식한 계기가 된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이 물건에 맹목적으로 의존해왔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래. 침착해. 열시간 쯤이야 뭐 없어도 그만이잖아."
어차피 평생 의존해서 살아갈 순 없어. 나도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이 기회에 시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지내보는거야.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지. 스마트폰을 하루 정도 안 쓴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선배."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계곡으로 내려갔다. 서연이가 내려온 나를 보자 고기를 굽다말고 달려왔다. 서연이가 나를 걱정해주는 얼굴을 보니 왠지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시계의 능력을 잃었어도 서연이와 나의 관계가 예전에 비해 진전되었다는 사실이 없었던 일이 되는건 아니라는걸 느꼈기 때문일까?
"미안해. 신경 쓰였지?"
"아픈 줄 알았어요. 진짜 괜찮은거 맞아요?"
"응. 아까는 그냥 좀 어지러웠어. 오랜만에 물에 들어가서 그런가부다."
"뭐에요... 선배 진짜 중늙은이 같아요. 20대 맞아요?"
"하하..."
"여기와서 고기 좀 드세요."
서연이가 고기를 굽는 버너 주변으로 새내기들 몇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그 중에 유성이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달갑지는 않지만, 멀리서 서연이를 바라보고 있는 지환이 녀석의 얼굴도 보였다.
그러고보니 구태여 서연이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을 알면서도 엠티에 따라온 지환이의 행동으로 보건대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생각과 다르게 아직까지 별 해프닝이 일어나지 않았다.
"서연아."
집게를 내려놓은 서연이에게 귓속말을 했다. 지환이 녀석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그런걸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네?"
다행히 서연이는 귓가에 가까이 댄 내 얼굴을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거 먹고, 잠시 산책갈래? 우리끼리."
"산.. 책이요?"
나직하게 말한 그 말의 묘한 뉘앙스를 그녀도 알아챈 것일까? 서연이의 표정이 다소 애매하게 바뀌었지만 싫다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새내기들의 눈치를 보던 서연이가 아무도 모를 만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나는 서연이와 아까의 그 계곡 바윗길 너머 후미진 구석에 들어와 있었다. 타임 리와인더를 살펴보았던 바로 그 어두침침하고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아무도 살펴보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 나는 서연이를 평평한 바위에 앉히고는 나도 그 옆에 앉았다. 서연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선배, 갑자기 이상해요. 진짜 무슨 일 있는거 아니죠?"
"서연아. 있잖아, 뜬금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네. 말씀하세요."
잔잔한 계곡물이 흐르는 경치 좋은 자연의 품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는게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서연이가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더라도, 나는 지금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우리 저번에 잤던거... 너 기억하고 있어?"
"네에?"
서연이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당황함인지 황당함인지 모를 기묘한 기색이었다. 어쩐지 조금은 실망하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나 어떤 로맨틱한 말이라도 기대한 걸까?
"기억... 하죠. 근데... 그건 왜요...?"
"네가 그랬잖아. 섹스는 너랑 하자고... 너 그 말 진심이었어?"
"그걸 왜 물어요?"
"그냥 궁금해. 듣고 싶어."
서연이가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주변은 조용했지만,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우물우물 기어들어가듯이 말했다.
"뭐... 맘에 없는 소리는 아니었어요."
여친은 여친대로, 사랑은 사랑대로, 섹스는 섹스대로.
그런 관계는 정말 가능한걸까? 나는 여태껏 "섹파"라는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의 도덕적 허용 여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떠나서, 그렇게 생각할 만한 여자가 내 인생에 없었다.
서연이와 섹스파트너로? 그게 정말 가능할까?
"그러면 우리 지금 여기서 한번 할래?"
"뭐, 뭐라구요?"
벼락 맞은 것처럼 펄쩍 놀라는 서연이.
"여, 여기서요?"
"왜? 싫어?"
"누가 보면 어쩌려구요."
"아무도 안 올거야."
"그래도...."
그런 식의 막무가내 제안을 했던 이유를 나조차도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었다. 그저 확인받고 싶었달까?
시계가 없어진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찌질했다. 하지만 서연이가 여기서 "좋아요" 라고 대답해주면 그 자괴감에서 한층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타임 리와인더를 손에 넣고 나서 해왔던 일들이 환상이 아님을 증명받고 싶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시계가 없더라도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스스로 인식하고 싶었다.
그것을 하필 "섹스"로 인식하려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눈에 더없이 한심하고 동물적으로 보일진 모르겠으나, 그 순간에 그만큼 나에게 그런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을 만한 다른 무언가가 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순히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시계를 쓰지 않아도 예전처럼 찌질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 물건이 없더라도 그녀가 예전처럼 나를 다시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을.
"많이 하고 싶어요?"
생떼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서연이가 지금 내 복잡한 심리상태를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그녀의 대답 한 마디가 이 순간 나를 얼마나 좌지우지 할 수 있는지 그녀가 짐작이나 할까.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그녀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응. 나 지금 진짜 하고 싶어. 너랑."
주변을 의식하는 서연이의 모습이 불안해보였다. 여자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서연이는 그러면서도 놀랍게도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꺼슬꺼슬한 자갈바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무릎을 꿇자 나는 꽤 당황스러웠다.
"왜 그래?"
"입으로 해줄게요."
"뭐?"
"기왕 하는거면 오래 하고 싶은데.... 여기선 그게 힘들잖아요. 나중에 아무도 없는 데서 제대로 해요, 우리."
비록 섹스를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서연이가 하는 말이 거절의 의미가 아님이 느껴졌다.
일단은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 그럴까 그럼...."
"대신 선배 급한 것 같으니까 내가 해결해줄게요. 약속했으니까... 내가 선배 정액받이 해주겠다고."
약속. 그녀는 다른 말도 아닌 약속이라는 말을 썼다.
그 순간의 내게 그 하나의 단어가 얼마나 큰 자존감을 주었는지 그녀로서는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고마웠다. 문득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서연이의 비밀스러운 면을 볼 때면 그녀가 마치 내 연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 흥분이 지나가고나면 현주에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죄책감을 느끼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서, 서연아."
손수 내 바지 지퍼를 내리고 바지와 팬티까지 거침없이 무릎까지 벗겨내린 그녀가 마치 노예처럼 얌전히 무릎을 꿇은 채로 내 자지를 슬며시 감싸쥐었다. 곧이어 귀두 표면에 서연이의 보들보들한 입술 감촉이 느껴졌다.
얼이 빠지면서 척추를 타고 아찔한 기분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계곡에서 학과 남학생들의 선망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아름다운 서연이가, 그것도 이런 인적 드문 야외에서 무릎을 꿇고 내 자지를 입에 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다본 서연이의 모습은 너무도 예뻤다. 원래 서연이가 미모 하나는 출중했지만 지금은 물에 젖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더더욱 그랬다. 머리카락이 물에 젖은 여인의 모습은 수수해보이거나 오히려 더 색기 있어 보이거나 둘 중 하나라던데 서연이는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았다. 원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미모에 지금은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기묘한 색기까지 띄고 있는 모습이었다.
"서연아... 너 섹시하다."
내 칭찬이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그녀는 정신없이 애무에 박차를 가한다. 불알과 자지 밑뿌리를 부드럽게 쓸어올리던 손길이 좆뿌리를 움켜쥐었고 그녀의 입안으로 자지가 빨려들어갔다. 축축하고 야들야들한 입 안의 점막이 자지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등이 부르르 떨리면서 불알 밑에서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찌르르한 기분이 솟구쳤다.
쪼옥쪼옥. 쩝쩝....
곧이어 그녀의 타액이 본격적으로 내 불기둥을 적시는 소리가 그 바윗길의 은밀한 공간 안에 울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누가 보면 어쩌나? 하지만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더 흥분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가 힘껏 자지를 빨기 시작한다. 혀까지 적극적으로 써가며 자지 뿌리를 혀 끝으로 찌르고, 기둥 전체를 핥아올리면서 한편으로는 목구멍부터 시작해서 기운차게 좆을 빨아올린다.
내가 결코 많은 여자들로부터 오랄 애무를 받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서연이의 빠는 솜씨가 결코 모자란 편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많은 남자와의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기에 질투가 샘솟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유치한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만한 틈이 내 머릿 속에 없었다.
다만 그 거친 돌바닥에서 불편을 감수해가며 내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봉사를 하고 있는 서연이의 모습이 너무도 기특했고, 사랑스러웠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건 단순한 사정의 행위가 아니었음을.
"서연아. 일어나봐."
나는 서연이의 입에서 자지를 뽑았다. 보드라운 입 속을 내 좆대가 유영하는 그 기분은 너무도 아찔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다른 것을 하고 싶었다.
"왜요?"
힘차게 좆을 빨아대던 서연이는 입에서 좆이 뽑히자마자 숨을 헐떡거렸다. 숨돌릴 시간을 주고 싶기는 했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곧장 그 입술에 내 입술을 덮었다. 방금 전까지 내 좆을 정성스레 빨던 그 입에 사정없이 키스를 퍼붓는다. 잠시 놀라서 움찔하는 서연이였지만 이내 눈을 감고 내 입술과 혀를 받아들인다.
쪽. 쪼옥... 쪽쪽...
돌바위 위에서 나는 서연이를 무릎 위에 태우고 진하게 키스를 즐겼다. 현주와 가끔씩 하곤 하는 잔잔한 키스보다 더욱 뜨겁고 격정적인 키스였다. 내 혀가 서연이의 입안을 마구 넘나들었고, 서연이도 내 입 속으로 그녀의 타액을 흘려보내며 정신없이 서로를 느끼기에 바빴다.
아늑하게 그 황홀한 기분에 빠져들 때쯤, 문득 서연이와 키스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34번의 섹스 (서연이는 2번이라고 알고 있겠지만) 를 하면서, 그녀와 키스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즉, 이것은 서연이와 나의 첫키스인 셈이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녀와의 첫키스" 라는 의미를 달기에 정말 나쁘지 않은 키스라는 기분이 든 것이다.
"하아..."
거칠고 깊은 키스가 생각보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진한 스킨십을 하고 있으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반응을 읽어낼 수 있는 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서연이도 왠지 이 키스를 흡족해하며 심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딪히고 부벼지는 입술 틈새로 서연이의 숨결이 새어나오는데 볼살에 닿는 느낌이 아주 뜨거웠다. 잠깐 입술 틈새가 벌어지자 숨결에 이어 그녀의 목소리도 비집고 나온다,
"선배..."
"응..."
"마음이 바뀌었어요."
"무슨 말이야?"
"그냥 해요, 우리."
"뭐?"
내 몸 위에 포개어 앉아있던 서연이가 자세를 바꾸어 핫팬츠를 벗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갑작스런 의외의 과감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녀가 그렇게 나오니 오히려 이번엔 내 쪽에서 불안해지기 시작하는게 신기했다.
"너, 너 괜찮아?"
"몰라요.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오래 하고 싶다며?"
"오늘만 좀 빨리 끝내봐요."
서연이의 심경의 변화가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내 손은 이미 그녀가 핫팬츠를 벗는걸 돕고 있었다. 물에 젖어 몸에 딱 달라붙은 얇은 옷가지들을 벗겨내는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마 마음이 초조했기에 더 힘들게 느껴졌을 것이다.
서연이의 아름다운 하체 굴곡을 고스란히 보여주던 섹시한 핫팬츠를 벗겨내고, 물에 젖어있는 축축한 팬티마저 아래로 내려버렸다. 졸지에 계곡 한 구석에서 하체를 훤히 드러내고 야외노출을 하게 된 서연이.
갑자기 젖은 옷을 벗겨내고나니 혹시 한기가 들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내 상의를 벗어 그녀의 허리 부근에 둘러주었다. 바람도 막고, 혹시나 누가 보더라도 맨 몸을 보이지는 않을테니 보호 효과도 있고, 일석이조 아닌가. 하긴 이 꼴을 본다면 가려놨어도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는 뻔히 다 알 수 있을 테지만.
"네가 괜찮다고 했어. 혹시 애들이 우리 보더라도 후회하지 마."
문득 서연이를 물에 빠뜨리고서는 즐거워하던 남자 후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의 선망의 대상인 학회장이 불과 그들로부터 몇십 미터 떨어지지도 않은 이 후미진 곳에서 지금 무엇을 하려 하는지를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서연이를 가히 여신으로 여기고 있는 녀석들에겐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일일테지.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활력이 돋는다. 온 몸에 생동감이 넘친다. 비록 저열한 우월감이자 쾌감일지도 모르지만 그 느낌이 나의 자존감을 채워준다. 무척 야릇한 기분이었다. 말로는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애들 고기 먹느라 바쁜 것 같으니까... 괜찮을 거에요."
서연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혹시라도, 만에 하나 누가 서연이의 모습을 볼 경우를 대비해서 내 상의를 더욱 꼼꼼히 둘러 적어도 서연이의 속살이 밖으로 노출되지는 않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서연이는 이미 내 무릎 위에 올라탄 채였기 때문에 수풀이 무성한 서연이의 비밀스런 그 곳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아으음...."
물기에 젖은 서연이의 보지털을 내 상의 옷자락 안쪽에서 쓸어올리며 조갯살 표면을 살살 간질이듯 문질러주었다. 서연이의 입에서 곧장 신음소리가 터졌고, 나는 서연이의 보지가 계곡 물 이외에도 다른 것으로 축축히 젖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연아... 너 벌써 젖어 있었어?"
"몰라요.... 그런가보죠."
"왜? 혹시 키스할 때 느낀거야?"
"아, 몰라요. 묻지 마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응.. 알았어."
물에 들어갔다와서 젖어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보니 애액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는지 음순 근처가 약간 미끌미끌했다. 서연이가 전희를 특히나 깊게 즐긴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나로서는 아무리 이렇게 긴박한 상황이더라도 최소한의 즐거움은 안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예전과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하지만 결코 무성의하지는 않게 서연이의 보짓살을 손끝으로 마구 비벼주었다.
"하음....!"
"너 평소보다 빨리 느끼는 것 같다, 서연아."
"치... 겨우 두 번밖에 안해봤으면서..."
그건 아니지. 내가 너를 얼마나 많이 먹어봤는데...
네 기억 속에 없는 우리의 섹스 횟수를 네가 알게 되면 아마 놀라 까무러칠걸.
"근데 이상하죠... 하아... 선배랑 이러고 있으면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읏.... 선배가 내 몸을 너무 잘 아는 것 같아.... 마치 선배랑 내가 수십번은 자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정말 이상한 기분... 이에요.... 하앙...."
"글쎄.... 왜 그런 기분이 들까."
속으로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녀가 어찌 진실을 알겠냐만은, 여자의 감이라는 것은 정말 무시할 수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머리로는 몰라도 그녀의 몸, 그녀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렇게 말해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선배가 내 몸을 이렇게 만지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선배는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난 그런 기분이 들어요... 참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아냐... 이상하게 들리지 않아. 난 이런 것도 알고 있는걸."
난 바위에서 내려와 서연이를 일으켜세우고는 방금 전까지 앉아있던 바위에 서연이더러 손을 짚으라고 명령하고는 그대로 엉덩이를 이쪽으로 쭉 내밀게끔 만들었다. 상의는 여전히 내 허리에 두르고 있었지만 바위에 손을 짚은 서연이가 두 다리를 곧게 펴고 엉덩이만 나를 향해 내밀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뒤로 박는 자세가 되었다.
"엉덩이 벌려, 씨발년아. 거칠게 박히는거 좋아하잖아, 안 그래?"
"흐읍... 하으읏....!"
그 자세에서 그대로 곧게 편 다리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보지를 낼름 핥아올리니 서연이의 입에서 한층 더 높은 신음소리가 터진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곧장 음순부터 그녀의 엉덩이 골 사이까지를 단숨에 혀로 긁었다. 혀 끝이 항문에 가서 닿자 그녀는 역시나 엉덩이를 바들바들 떨었다.
"난 너를 잘 알아. 도도한 척 하지만 강제로 당하면서도 느끼는 음란한 면도 있고, 심한 욕을 들어가면서도 오히려 더 흥분하기도 하는 암캐같은 년이야. 그리고 넌 지금도 아닌 척 하지만 혹시 누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더 느끼고 있는 거잖아, 안 그래?"
"흐으윽...."
보지와 항문에 각각 손가락 하나씩을 꽂으며 각각의 구멍 안에서 문질러주자 서연이가 허리를 배배 꼬며 새하얀 엉덩이를 떨어댄다. 보통 여성이라면 치부의 밑바닥까지 자극하는 폭언이겠지만 서연이에겐 그것이 또 하나의 자극이었던 모양이다. 쏟아져나오는 씹물의 양이 늘었다.
확실히 일반적인 경우에 비해서 씹물이 터지는 속도가 빠르다. 나는 서연이을 자극하는 새로운 방법을 깨우쳤다. 내 감에 불과하지만, 서연이는 지금 이런 탁 트인 야외에서 과감하게 성행위를 감행하고 있다는 스릴 그 자체로 자극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서연이에겐 또 하나의 흥분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여자가 또 어디 있을까.
그녀는 정말 남성의 머릿 속에만 들어있는 온갖 섹스 판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여자였다.
지환이 그 새끼는 서연이의 이러한 면모를 10분의 1이라도 깨우쳤을까? 그 병신 같은 새끼....
"맞아, 아니야? 빨리 대답하지 못해!"
"하흑... 그, 그래요... 난 그런 여자에요... 그래서 내가 이상한가요....?"
"아니. 넌 단지 음란할 뿐이야. 난 그런 네가 맘에 들어. 너를 공주라도 되는 듯이 바라보던 그 숱한 남자놈들이 지금 여기 와서 네 꼴을 보는 장면을 상상해봐. 기분이 어때?"
"모.. 몰라요.. 모르겠어요..."
"내숭 떨지 말고 빨리 대답해!"
"흥분돼요... 너, 너무 흥분돼요.... 하으응...."
"그래, 그게 니 솔직한 모습이야. 이 음탕한 년아."
솔직하게 말해주었으니 상을 주어야 한다. 쑤시던 손가락을 뽑아내고 그녀의 허리를 두르고 있던 내 상의 자락을 위로 걷어올렸다. 내 쪽을 향해서 그녀의 풍만하고 육감적인 엉덩이가 들이대어진다. 망설일 것 없이 곧장 사이 틈새로 담가넣는다.
"하으으으읏!"
뾰족한 신음을 지르는 서연이. 정말 누가 듣고 달려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큰 소리였다. 나는 단숨에 서연이의 질벽 안쪽까지 내 좆뿌리를 깊숙히 틀어박고는 엉덩이에 내 사타구니를 단단히 밀착시켰다. 그리고 손을 뻗어 서연이의 입을 한쪽 손으로 틀어막았다.
손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버리니 피스톤질을 생각보다 과격하게는 할 수 없었다. 대신 서연이의 상체를 조금 일으켜 입을 막기 편한 자세를 만들고는 그녀의 입 안에 아예 손가락 두어개를 집어넣고 마음껏 그녀의 엉덩이 감촉을 느껴가며 자지를 박아댔다.
"아음! 하읍! 으읍!"
피스톤질이 오고가는 거리가 비교적 짧았기에 박력이 평소만은 못했지만, 대신 짧고 강하게 끊어서 밀어부치는 새로운 맛이 있었다. 엉덩이 틈새를 비집고 자지가 틀어박힐 때마다 서연이의 입에서는 짧은 신음소리가 연이어 단말마처럼 터져나왔고, 그 소리는 내 손가락에 가로막혀 아슬아슬하게 허공에 묻히곤 했다.
쩌업! 쩌업! 쩌업!
힘주어 허리를 앞으로 쳐올릴 때마다 그녀의 엉덩이가 세차게 사타구니에 부딪히면서 뭉개지고 일그러졌다. 정말이지 한 마리의 암말을 타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죽여줬다. 감성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섹스였지만 어느새 나도 쾌감에 들떠가고 있었다.
"엉덩이가 너무 맛있어... 서연아."
"아읍... 아으으음... 하읍..."
서연이가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손가락이 입에 틀어박힌 채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자 서연이가 대신 입에 틀어박은 내 손가락을 마치 사탕처럼 쪽쪽 빨기 시작했다. 단지 손가락을 빠는 것 뿐인데도 그 상황이 주는 묘한 스릴과 쾌감에 힘입어 그것조차도 하나의 짜릿한 애무로 느껴졌다.
"너도 좋다는 거지?"
"하읍...."
"나도 이런 네 모습이 좋아. 네 말대로 내가 널 평생 정액받이로 써줄게. 그래도 되지?"
"흐읍... 흐읍...!"
뒷보지로 박히면서 서연이도 정신이 없는지, 여전히 내 손가락을 마구 빨아대면서도 고개를 끄덕끄덕거린다. 섹스에 들뜬 서연이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사람들은 이 맛에 섹스파트너를 만드는 걸까?
좀 더 오래 즐기고 싶었다. 빨리 끝낼 생각으로 시작한 섹스였긴 하지만 그렇게 빨리 끝내버리기엔 서연이는 너무도 맛있었다. 이런 긴장감 있는 상황도 하나의 즐거움으로 느껴지게 할 만큼....
"하으응! 하읍! 하으으응!"
입을 틀어막은 손으로도 미처 다 가리지 못할 만큼 서연이의 신음소리가 점점 높아져간다.
더불어 나도 서연이와 함께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서로의 몸에서 피어나는 열기가 난잡하게 뒤섞였다.
내 귓가엔 서연이의 신음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귓가에 뭔가 거슬리는 잡음이 끼어들었다.
찰칵! 하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지... 잘못 들은건가."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절정을 맞이하기 시작한 쾌감을 끊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욱 허리놀림에 박차를 가했고, 서연이는 그런 잡음 따위는 아예 듣지도 못했다는 듯 더욱 격하게 허리를 요동쳐가며 내 자지를 받아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절정에 올랐다.
대낮 야외에서....
- 다음 화에 계속 -
출장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금요일이 지나가기 전에 한 편을 올리겠다고 약속드렸지만 돌아오는 차편이 늦어져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그 죄송함을 만회하고자 한 편을 올리기 전에는 잠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모처럼 새벽까지
한 편을 마무리해 보았습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
지난 화에 출장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모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언제나 모든 댓글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지만 이번엔 유독 "카스카야"님의 댓글이 눈에 띄더군요
제가 출장 다녀온 사이에 감사하게도 1화부터 댓글을 하나씩 남겨주셨습니다.
보면서 정말 흐뭇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담백한 인삿말도 좋지만 저는 소설 내용에 대한 피드백이나 감상을 써주시는 댓글이 너무 좋습니다. 댓글을 받으려고 소설을 쓰는건 아니지만 그런 댓글들이 제 의욕을 한층 업시키더군요. 출장 복귀 후 졸린 눈을 치켜뜨며 억지로 완성시킨 한 편에 대한 보답으로 그런 댓글과 추천을 한껏 기대한다고 말씀드린다면 너무 노골적일까요?
하하... ^^
- 이 소설은 소.라.넷(sora.net) 작가 "상상의신비"가 연재 중인 작품입니다.
무단 불펌을 삼가해 주시길 부탁드리며, 퍼가시더라도 출처와 작가명을 꼭 남겨주십시오.
창작가들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자 도리입니다.
* 1부 10장
더위가 한풀 꺾인 늦여름에서 초가을 무렵의 9월 계곡은 뭔가 그 나름의 독특한 낭만이 있었다. 계곡물이 아직은 시리게 느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물 안으로 첨벙 뛰어들길 유혹하는 무더운 날씨도 아니었기에 조용한 성격의 여학생들은 그저 도란도란 발을 담그며 수다나 떨고 싶어했다.
그렇기에 오히려 장난기가 발동한 남학생들이 여학생들을 하나하나 꿰어다가 물에 빠뜨리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이내 학과생들은 남녀로 나뉘어 물에 빠뜨리려는 편과 달아나려는 편으로 나뉘어 놀게 되었다. 여학생들은 병아리마냥 꺅꺅 소리를 질러대며 분주하게 도망다녔고, 그런 모습에 오히려 자극받은 남학생들이 분발해서 날뛰기 시작하자 계곡 분위기는 곧 한여름날 못지 않게 활발해졌다.
늑대같은 남학생들의 본능이 어디가겠는가? 그들은 이런 분위기를 기회 삼아 마음에 드는 여학생들을 어떻게든 한 명이라도 물에 더 빠뜨리고 싶어했다. 여인네를 물에 빠뜨리면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아지기 때문이었다. 가령 젖은 머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던지, 옷이 달라붙어 의외의 노출을 보게 된다던지 하는...
"꺄악!"
"학회장 누나부터 빠뜨려! 하하하."
"누나! 학회장이라고 봐주는거 없어요. 킥킥."
그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서연이의 안위가 궁금했다. 눈에 불을 켠 늑대들이 다른 여학생도 아닌 서연이를 곱게 놔두고 싶어할 리가 없으니. 특히 1,2 학년 쯤 되는 학번의 남학생들에게 서연이의 존재는 가히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멀지 않은 곳에서 남학생들 십수명의 손아귀를 피해 달아나려고 동동거리고 있는 서연이의 모습이 보였다. 이럴때 아니면 언제 고귀하신 학회장 여왕님을 물에 빠뜨려보겠냐는 듯 물귀신처럼 악착같다. 쯧쯧, 하여간 사내새끼들이란....
난 신경을 끄고 최대한 주목받지 않는 곳에 앉아 그저 늦여름 계곡의 선선한 분위기를 즐기고만 있었다. 물에 빠지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굳이 나를 물에 빠뜨려놓고 같이 어울려 놀고 싶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꼭 내가 지난 학기에 안좋게 소문이 났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냄비근성이란 말이 괜히 있는게 아니듯이 한때 냄비처럼 확 끓어올랐던 나에 대한 나쁜 소문은, 퍼질 때 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시시하게 사그라들었다.
말 그대로 잠깐의 해프닝. 학기가 지난 지금은 그 소문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난 학기말에 지환이 녀석의 행실이 재조명되면서 나를 불쌍하게 보기 시작한 사람들도 제법 되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나에 대한 학과생들의 평판은 "그저 그런" 정도라고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렇게 저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되어 있는 것은, 평판이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내가 "고학번"이기 때문이었다. 이유를 막론하고 고학번들은 새내기나 젊은 학번들과 어울려놀기 힘든 법이다.
있어도 그만이지만, 없어도 티가 안 나는 존재. 이 엠티에서 내 비중은 딱 그만큼이었다.
서글프지도 않았다. 원래 내 대학생활이 이런걸 뭐....
"그런데 이럴거면 진짜로 여기 왜 온거지?"
내가 와놓고도 내 스스로 그게 궁금했다. 뭘 기대한걸까?
서연이. 따지고 보면 서연이 때문이긴 했다. 내가 엠티에 오면 서연이가 날 뭔가 특별대접 해줄거라고 기대한걸까?
하지만 서연이는 학교에서는 우리의 애매모호한 관계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하거나 하는 일이 좀체 없었다.
지금도 저렇게 후배들이랑 즐겁게 노느라 바쁘지 않은가? 학회장이라는 직책상 당연히 그래야겠지만.
풍덩~
결국 서연이가 물에 빠지나보다. 깔깔대는 웃음 소리가 들린다.
"......."
맑은 하늘과 좋은 경치를 보고 가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엠티인가보다. 그렇게 위로하기로 했다.
입맛이 쓰다.
"나 말고도 아웃사이더가 있나보네."
그 순간, 문득 아름다운 경치 외에 다른 것 하나가 내 시선을 끌어당겼다. 헤엄치는 한 무리의 학생들 근처에서 유독 어울리지 못하고 소외되어 바위에 우두커니 앉아있는 학생 한 명이 보인 것이다.
사실 이런 자리에서는 나처럼 대다수와 어울리지 못하고 겉도는 아이들이 몇명씩은 반드시 생겨나게 마련이다. 제아무리 "한 명도 소외시키지 않고 다 같이 잘 놀거야" 라는 마인드로 놀더라도 일부는 무조건 겉돌게 되어있다. 이른바 "왕따 질량보존의 법칙" 이다.
고로, 아웃사이더가 몇 명 더 있다고 해서 결코 신기해 할 일은 아니었다. 이 왕따 질량보존의 법칙에 따르면 나 같은 아웃사이더는 반드시 생기게 되어있고, 이번 엠티에서 그게 나 하나 뿐만은 아닐 테니까. 그 예시로 조금만 주위를 살펴봐도 나처럼 섞이지 못하고 외롭게 드문드문 있는 고학번들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그 학생이 유독 내 시선을 끌었던 이유는, 일단 아무리 봐도 고학번은 아닌 것 같아보였기 때문이며, 두 번째로는 여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외모도 나쁘지 않은 여학생. 길고 긴 생머리가 유독 눈에 띄는....
"유성이라는 그 애 아닌가?"
일단 괜찮은 외모의 여학생 치고 대학교에서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좀체 없는데, 유성이의 경우는 뭔가 독특한 케이스인 것 같아보였다. 강의실에서도 느꼈지만 저 아이는 자기 스스로 혼자 있는 것이 별로 불편하지 않은 듯한 모습이었다. 고독이나 쓸쓸함이 너무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
그 순간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모르겠다. 무턱대고 유성이 옆 바위로 걸어가 그 애 곁에 앉았다.
학번을 먹을대로 먹은 나와는 달리 한창 친구, 동기들과 즐겁게 어울려 놀아야 할 시기에 잘 섞이지 못하고 있는 그 애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나도 아웃사이더 생활을 해봐서 알지만, 아싸들이 사교성이 부족하다거나 스스로 고립되길 원해서 그런게 아니다. 적당히 설득해서 동기들과 어울려놀게 해주고 싶었지만, 그게 아니라면 말동무라도 해주고 싶었다.
"유성아, 안녕."
유성아 하고 부르니 왠지 남자애를 부르는 듯 해서 기분이 멋쩍었다. 여자애들 중에서도 유독 긴 머리를 하고 있어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한껏 나부끼는 그 아이가 고개를 스윽 들어 나를 보았다. 계곡물에 발만 담그고 있는 그 아이가 고개를 들어 나를 보니 뭔가 어여쁜 처녀귀신 같은 느낌이 들어 약간 오싹하기도 했다.
"저기, 나 기억해? 성진 선배야. 너 교양수업에서 같은 조 짰던...."
유성이가 시큰둥한 눈으로 나를 잠시 바라보다가, "네" 하며 짧은 대답을 하고는 다시 앞을 보기 시작했다. 뭔가 머쓱했지만 계속 대화를 시도해 보았다. 분명 서연이와 이야기를 할 때는 나름 쾌활하게 대화를 했던 것 같은데...
"친구들 하고 안 놀아?"
"네."
"물에 들어가는거 싫어해?"
"네."
"계속 이렇게 있으려구?"
"네."
"......"
계속되는 네네 행진에 말문이 막혀버렸다. 혹시 내가 부담스럽나? 문득 여태껏 별로 신경쓰고 있지 않았던 장면 하나가 떠올랐다. 서연이에게 인사를 했던 유성이가 내게는 인사를 하지 않았던 그 사소한 일이.
별로 신경 쓰고 있지는 않았지만 내가 부담스러워서 그랬던 걸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혹시 내가 불편해?"
"......"
처음으로 "네"가 나오지 않았다. 이번에는 네 대신 침묵인가 싶어서 기운이 빠지려는데 유성이가 나지막히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실, 남자들은 좀 불편해요."
특이한 대답이었다. 그래도 대화의 의지가 처음으로 생긴 듯 보여 나는 잽싸게 말을 받았다.
그 순간 그렇게 의욕이 생긴 걸로 봐서는, 그 쓸쓸한 엠티 자리에서 나도 내심으로는 많이 적적했었나보다.
"왜? 나 너한테 흑심 있는거 아닌데..."
"그런게 아니구요. 남자를 원래 좀 싫어해요."
더욱 특이한 대답이었다. 무슨 의미였을까?
그래도 "왜?" 라고는 묻지 않았다. 눈치가 없는 편인 나였지만 이 때는 나름 생각을 잘 한것 같다.
"그럼 여자애들이랑 놀지 그래?"
"그것도 싫어요."
"왜?"
"혼자 있는게 편해서요."
"아니, 왜?"
"그냥요."
유성이라는 아이에게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그녀가 히키코모리 과로는 보이지 않았다. 단답형이긴 하지만 대답도 꼬박꼬박 한다. 무뚝뚝하다고는 볼 수 있지만 그래도 서연이와 이야기 할 때 보았던 모습으로는 대화를 거부하고 사는 성격도 아닌 것 같았다.
겨우 두 번 본 사람을 느낌으로 판단할 수는 없는 거지만, 그래도 첫인상만으로 뭔가를 느낄 수 있다면 나는 그 아이에게서 모호한 이중성을 느꼈다.
여자이면서 이름이 남자인 아이. 이성에 관심 많을 나이에 남자가 싫다고 하는 아이. 사교에 서투르면서도 대화를 거부하지는 않는 아이. 뭔가 하나의 잣대로 이렇다 저렇다 평가하기가 힘든 느낌이랄까.... 유성이에 대한 나의 첫느낌은 대충 그랬다.
"저기, 기분 나쁠수도 있겠지만.... 그럼 엠티엔 왜 온거야?"
"그건 왜 물으세요?"
"아니, 사실은 나도 비슷한 처지라서. 어차피 사람들이랑 놀지도 않을거 내가 왜 여길 왔나 생각중이었거든. 혹시 너도 나랑 같은 의문을 갖고 있진 않나 싶어서 물어보는거야. 기분 나쁘라고 한 말 아니니까 오해는 하지마~"
"별 이유 없어요. 그냥... 서연 선배가 오라고 해서."
"서연이가?"
저 멀리 어딘가쯤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을 서연이의 모습을 찾으려 해보았다. 그러나 왜인지 서연이가 보이지 않았다.
"서연이랑 친해?"
"별로요."
"그런데 왜? 서연이랑 같이 놀려고 하는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서연 선배 말은 듣고 싶어요. 웬만하면...."
"왜? 서연이가 잘해주니?"
"......."
대답을 하지 않는다. 아직 유성이에 대해 파악하진 못했지만, 직감으로 더 캐묻는건 안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연이를 유독 잘 따르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걸까? 궁금증은 남았지만 나는 화제를 돌렸다.
"혹시 오토바이 타지 않아?"
"맞아요. 왜요?"
"그냥. 주차장에서 네가 바이크 타는거 몇 번 봤거든. 근데 나 궁금한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
"뭔데요?"
뒷말을 이어야하나 말아야하나 잠시 고민했다. 유성이가 바이크를 탄다는 것을 알고난 이후로 줄곧 그녀에게 하나 물어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다.
"우리 한번 만난 적이 있지 않니? 강변도로에서."
"네?"
조심스레 물어보니 유성이가 무슨 소리냐는듯 고개를 든다.
강변도로에서의 기억. 황당했던 짧은 만남. 폭포수처럼 긴 생머리도, 앳되어 보이는 어린 외모도 꼭 닮았지만 이상하게 확신이 들지 않았다. 분위기가 다르기 때문일까?
"잘 모르겠는데요."
"그, 그래?"
물어보기 망설였던 이유가 이거였다. 아니라고 하면 더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어쩌면 진짜로 내가 착각한 걸지도 모른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 때 그 계집애의 얼굴이라도 좀 자세히 봐둘걸....
"저도 묻고 싶은게 하나 있었어요."
"어? 뭔데?"
의외였다. 무뚝뚝한 반응으로 일관하던 유성이의 입에서 묻고 싶은게 있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다.
"서연 선배랑 사귀는 사이세요?"
"응?"
질문의 내용을 들어보니 더 의외였다.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걸까?
"아니. 아무 사이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했어?"
"그냥요. 여자의 감이랄까. 아무 사이도 아닌 것 같아보이진 않았어요."
적잖이 놀랐다. 이름은 남자애라도 역시 여자는 여자란 말인가? 떳떳이 밝힐 사이가 못되기에 말을 해줄 순 없었지만 오직 감으로 캐치할 수 있는 미묘한 무언가가 있기는 있었던 모양이었다.
"하하. 아니야. 서연이랑 내가 무슨... 일단 외모부터가 나랑 서연이랑 안 어울리지 않냐?"
"하긴 그러네요."
"......."
왠지 서연이 그 계집애의 살살 긁는 말투를 고스란히 빼다 박은 것 같은데.... 이 애.
"두 사람 뭐해요? 물에도 안 들어오고."
호랑이 제말하면 온다더니 어느새 서연이가 근처까지 다가와 있었다. 역시 계곡물에 수차례 빠졌는지 이미 온 몸이 홀딱 젖은 채였다. 나는 되도록 무관심한 척 하려 했지만 물에 젖은 서연이의 모습을 보니 심장이 두방망이 치는 것을 자제하기 힘들었다.
탱크탑과 핫팬츠에 얇은 물놀이용 시스루 가디건 한 장만을 걸친 서연이의 모습은 너무도 고혹적이었다. 일단 허벅지부터 시작해서 맨다리가 미끈하게 드러나 있는 것은 물론이고 젖어서 달라붙은 탱크탑의 표면 위로 서연이의 상체 능선이 고스란히 그려지고 있는 것이, 노출도 보통 노출이 아니었다.
게다가 몸의 굴곡을 드러내고 있는 것도 자극적이지만 물에 흠뻑 젖은 서연이가 머리칼을 뒤로 넘긴 모습이 또 색다른 매력으로 느껴져 더욱 시선을 떼기가 힘들었다. 아마 남학생 놈들이 이런 모습을 감상하고 싶어서 서연이를 물에 빠뜨렸겠지. 그런 의도였다면 아마 대성공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저 뒤쪽에서 서연이를 곁눈질하며 얼른 그녀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학과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아, 그냥. 아웃사이더들 끼리 담소나 나누고 있었어."
"엠티 와서 무슨 아웃사이더에요? 다 같이 놀아야지. 빨리 이리와요."
"참나~ 여태껏 버려두고 잘 놀더니 갑자기 신경 쓰고 있어."
"미안해요. 애들이 한 둘이 아니다보니... 지금이라도 같이 놀아요."
서연이는 학과생들을 챙기느라 나나 유성이를 구석에 소외시켜둔게 못내 미안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별 느낌이 없었으므로 서연이의 귀에다 대고 유성이나 잘 챙기라고 귀띔해주었다.
"유성이 잘 챙겨줘. 네가 엠티 오라고 해서 온 거래. 나야 늙은이라서 그렇다 치지만 얘는 한창 놀아야 하잖아. 얼른 얘나 데려가서 놀아."
"제가 오라고 해서 왔다구요?"
의외로 서연이는 금시초문이란 기색이었다. 서연이도 귓속말로 소근소근 대답을 하니 자연스럽게 서연이와 밀착이 되었다. 물에 젖은 그녀의 몸에서 한기까지 생생히 느낄 만큼 거리가 가까워지자 남학생들이 질투 어린 시선을 보내는게 느껴졌다. 하지만 질투라기보단, "저 새낀 뭔데 학회장 누나랑 귓속말을 하지?" 하는 시선에 가까웠다.
"응. 그렇대. 얼른 데려가서 좀 챙겨줘. 난 경치나 감상하고 있을게."
"알았어요, 잘 챙길게요. 그리고 선배도 빨리 와서 놀아요. 무슨 엠티와서 경치를 감상해요. 신선이에요?"
"너도 이만큼 나이가 들면 물에만 들어가도 관절이 시큰거릴걸."
"말도 안 되는 소리 말구요. 얘들아, 이리 와봐!"
서연이가 주변에 퍼져있는 학과생들을 불러모았다.
"성진 선배가 물에서 놀고 싶은데 너네가 안 놀아줘서 서운하시대. 빨리 모시고 놀아드려. 튜브도 귀여운걸로 하나 드리고."
"에이, 선배. 그럼 진작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일단 첫 입수는 투척인거 아시죠?"
학회장의 한 마디는 참으로 위력이 대단했다. 여태껏 내게 관심도 없던 아이들이 갑자기 몰려들더니 나를 물에 빠뜨리려고 내 양팔과 다리를 남학생 네 명이서 하나씩 붙잡았다. 물론 이런 자리에서는 평소에 그리 친하지 않았던 사람들끼리도 자연스럽게 어울려 놀게 되는 것이긴 하지만 서연이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남학생들을 보니 무슨 여왕의 근위대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어? 잠깐만."
남학생들이 내 사지를 붙들고는 앞뒤로 흔들어대는 스윙이 예사롭지 않다. 이대로 던져버릴 셈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내 몸이 공중 위를 부웅 날았다.
풍덩!
물에 꼬르륵 잠기는 나의 몸.
결국 늙은 육신이 계곡 물에 이렇게 빠지는구나. 어린 새내기들과 몇몇 학생들이 신이 나서 깔깔 웃어대며 내게 물세례를 퍼부어댔다. 조금 짜증스럽긴 했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 이 나이 먹고 언제 또 학과 애들이랑 물놀이를 하겠냐. 엠티를 왔으니 놀긴 놀아야지. 들뜬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나도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며 어린 후배들에게 사정없는 공격을 퍼부어주었다. 그러자 깔깔대는 웃음소리가 한층 더 커졌다.
그렇게 나로서는 아주 모처럼, 학과애들과 한데 어울려 놀게 되었다. 기분이 묘했다. 엠티는 평소에 어색했던 사람들끼리도 순식간에 친밀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나보다. 비록 일시적인 것이라 해도 말이다. 물보라 소리와 함께 높아져가는 웃음소리가 내심 나쁘지 않았다.
"것 봐요. 같이 노니까 재밌죠?"
서연이가 내게 물세례를 끼얹으며 생글생글 웃는다.
참 나, 여우 같은 기집애.
*
물 속에서 얼마쯤 놀았을까. 물놀이에 지친 몇몇 아이들이 가스 버너를 가져와 이것저것 먹을거리를 굽기 시작했을 무렵, 잊고 있었던 중요한 것 하나가 마치 뒤통수를 때리듯이 뇌를 강타하고 지나갔다.
"타임 리와인더!"
솔직히 타임 리와인더에 방수 기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물에 빠져도 되는건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외관상 그것은 기계의 형태를 하고 있었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문득 심장이 철렁하여 상의 안쪽 주머니를 더듬어보았다. 온몸이 물에 잠기기도 했기 때문에 분명히 주머니 안까지 물이 들어갔을 것이다.
"시계는 무사할까?"
혹시라도, 만에 하나 타임 리와인더가 작동이 안 될 경우를 가정하니 초조함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다. 나는 황급히 물 밖으로 뛰쳐나와 아무도 보지 않을 만한 인적 없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계곡을 둘러싸고 있는 바위길 너머 한쪽 구석을 향해 계속 비집고 들어가다보니, 일부러 이쪽으로 찾아 들어오지 않으면 좀체 올 일이 없을 것 같은 인적이 뜸한 장소가 나왔다. 암벽으로 3면이 둘러쌓여있어 햇볕도 잘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어두침침한 장소였다. 이만하면 될 것 같아서 서둘러 안주머니에서 시계를 꺼내보았다.
겉보기로는 아무 이상이 없었다. 하지만 분명히 시계에는 물이 침입한듯, 시계 전체에 물기가 얼룩져있는 것은 물론이고 홈 파인 곳곳에도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덜컥 겁이 났다.
"어, 어쩔 수 없지.. 딱 한 번만 시험해보자."
불안함을 가라앉히기 위해선 시범구동을 해볼 수 밖에 없었다. 난 조심스럽게 파란 바늘을 두 칸 옆으로 옮겼다.
두어 시간 전으로 돌아가면 대충 물에서 놀기 이전의 어느 순간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타임 리와인더의 오작동을 볼 수 있었다.
아니, 오작동이라기 보다는 처음으로 시간이 되감기지 않는 현상을 목격했다고 표현해야 할 것이다.
굳이 시간을 확인하게 위해 일반 시계를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시간을 되돌아갈 때 언제나 느꼈던 특유의 요동치는 느낌이 없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여태껏 늘 시계 바늘만 존재해왔던 시계의 유리막 너머에 믿을 수 없게도 영문자들이 음각으로 새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순간 기겁을 해서 시계를 그만 돌바닥에 떨어뜨릴 뻔 했다.
[WARNING - SELF REPAIR]
유리막 너머 시계의 액정 부분에 새겨진 영문자들.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시계바늘만 존재하던 평평한 기계판의 금속소재 위에 갑자기 문자들이 새겨지다니.... 게다가 한번 음각으로 새겨졌던 그 문자들은 다시 볼록 솟아오르더니 이내 평평한 면의 평소 모습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새겨지는 다른 문자들.
[About 10 hours is the usual time required]
평평한 금속 판막이 문자의 형태대로 패이거나 솟아오르면서 하나의 문장을 내게 전달하고 있었다. 이건 도저히 과학이라고 부를 수도 없었다. 이건 거의 마법이나 다름 없었다. 그동안 이 비현실적인 힘에 나름대로 익숙해져 있었던 나로서도 선뜻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손이 덜덜 떨려왔다. 어찌나 당황했는지 영문의 의미를 해석하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셀프 리페어? 시계 스스로 수리 하고 있다는 건가? 그럼 역시 물에 들어가서 문제가 생겼다는거야?"
머릿 속이 혼란스러웠지만 늘 그렇듯이 이 시계와 관련해서 내가 내놓을 수 있는 답은 몇가지 되지 않았다. 나는 그저 판막 위에 떠오른 영문장의 의미를 해석하는데에 힘을 쏟을 수 밖에 없었다.
"10시간이 소요된다...?"
문장의 의미를 있는 그대로 보건대, 시계의 수리에 10시간이 시간이 소요된다는 뜻인 것 같았다.
그럼 10시간이 지나고 나면 다시 시계를 사용할 수 있게 되는건가?
"젠장, 모르겠어."
좌우지간 시계가 어떻게든 "동작"은 하는걸 보니 못 쓰게 된 건 아닌 것 같지만, 일어난 현상으로 보아하니 시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우선 영문장이 지시하는대로 10시간을 기다려볼 수 밖에 없었다.
순간, 그렇게 생각하니 뭔가 가슴 한켠이 섬뜩해지는 기분이었다. 그간의 생활로 인해 나는 타임 리와인더의 능력으로 나에게 닥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었기에 그 능력을 잠시나마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엄습하는 기분이었다.
시계를 사용하지 못하는 동안 내게 무슨 큰 문제라도 생기면 어떡하지?
"선배, 여기서 뭐하고 있어요?"
"서, 서연아."
그리고 그 다음 순간, 보란 듯이 당황스런 사태가 일어났다. 서연이가 아무도 들어오지 않을 것 같은 이 인적 뜸한 장소까지 나를 쫓아왔던 것이다. 사실 그리 당황할 일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계의 작동이 마비되었다는 초유의 사태 앞에 당황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괜히 손발이 떨리고 태도가 어눌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 시계를 손에 넣기 전의 그 찌질했던 내 모습으로 회귀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길, 최성진. 정신차려. 별거 아니잖아. 평소처럼 대하면 돼... 달라진 건 없어."
"그게, 그냥... 잠시 조용한데서 혼자 쉬고 싶어서."
"선배. 무슨 일 있어요? 안색이 안 좋아요."
서연이가 식은 땀을 흘리고 있는 내 얼굴을 보자 놀라서 뛰어왔다.
"아, 아무 것도 아니야."
"어디 아픈거 아니에요? 식은 땀까지 흘리는데."
"괜... 찮아."
"그러지말고 말해봐요. 무슨 일 있는거 같은데."
"정말 아무 일도 없어. 그, 그냥 감기 기운이 좀 있나봐. 신경 쓰지 말고 가서 애들이랑 놀아. 난 숙소에서 조금 쉬고 있을 테니까."
"선배!"
서연이가 등 뒤에서 날 불렀지만 난 도망치듯 그 자리를 떴다. 머릿 속이 너무도 복잡했다.
지금은 그저 혼자 조용히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
"만약 시계의 힘을 잃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학과에서 숙소로 빌린 2층의 방 한 곳에 조용히 들어온 나는 바닥에 벌렁 누워 생각에 잠겼다. 여러가지 생각이 뒤죽박죽 떠오르며 나를 괴롭혔다. 아마 예전의 찌질했던 내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겠지? 내가 상상했던 그 최악의 모습으로....
"젠장! 뭐야 이 기분은."
물론 이 시계는 결코 보통 시계가 아니다. 시간을 감을 수 있는 전지전능한 시계다. 하지만 그것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이 점을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시계에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고 해서 내 인생에 큰일이 난 것처럼 당황하고 흔들리는 내가 싫었다.
결국 이 초시계 하나가 없으면 나는 여전히 찌질하고 소심한 인간일 뿐인가?
이건 마치 일종의 금단증상이었다. 시계의 능력을 잠시 잃은 것만으로 이렇게 불안해지고 미래가 갑자기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하는 내가 한심하다.
"아니야. 침착하게 생각하자."
앞으로 10시간. 시계가 나타내는 바를 믿어본다면, 적어도 그 시간 동안 앞으로 나는 시계의 능력을 쓸 수 없다. 물론 시간을 되돌릴 일이 생겼다고 가정했을 때, 10시간이 지난 이후 기능이 다시 정상적으로 돌아온다면 그 때 가서 시간을 감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내가 진정으로 걱정하는 것은 그런 부분이 아니었다.
그것은 막연한 불안함이었다. 시계를 잃어버린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에 대한 미지의 불안. 타임 리와인더가 영원히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어떤 불미스런 사고로 언제든지 내 손을 떠날 수 있다는 가정을 생생하게 인식시켜 주는 끔찍한 불안.
계곡에서의 해프닝은 우연찮은 사고에 불과했지만, 자칫하면 시계의 능력을 잃을 수도 있음을 처음으로 내가 인식한 계기가 된 사건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이 물건에 맹목적으로 의존해왔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이기도 했다.
"그래. 침착해. 열시간 쯤이야 뭐 없어도 그만이잖아."
어차피 평생 의존해서 살아갈 순 없어. 나도 그 사실을 느끼고 있었다. 이 기회에 시계가 없다고 생각하고 지내보는거야.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간단한 일이지. 스마트폰을 하루 정도 안 쓴다고 생각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선배."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계곡으로 내려갔다. 서연이가 내려온 나를 보자 고기를 굽다말고 달려왔다. 서연이가 나를 걱정해주는 얼굴을 보니 왠지 불안했던 마음이 조금 가라앉는다. 시계의 능력을 잃었어도 서연이와 나의 관계가 예전에 비해 진전되었다는 사실이 없었던 일이 되는건 아니라는걸 느꼈기 때문일까?
"미안해. 신경 쓰였지?"
"아픈 줄 알았어요. 진짜 괜찮은거 맞아요?"
"응. 아까는 그냥 좀 어지러웠어. 오랜만에 물에 들어가서 그런가부다."
"뭐에요... 선배 진짜 중늙은이 같아요. 20대 맞아요?"
"하하..."
"여기와서 고기 좀 드세요."
서연이가 고기를 굽는 버너 주변으로 새내기들 몇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있었다. 그 중에 유성이의 모습도 보였다. 그리고 달갑지는 않지만, 멀리서 서연이를 바라보고 있는 지환이 녀석의 얼굴도 보였다.
그러고보니 구태여 서연이의 얼굴을 보게 될 것을 알면서도 엠티에 따라온 지환이의 행동으로 보건대 뭔가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지만, 생각과 다르게 아직까지 별 해프닝이 일어나지 않았다.
"서연아."
집게를 내려놓은 서연이에게 귓속말을 했다. 지환이 녀석이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지금은 그런걸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네?"
다행히 서연이는 귓가에 가까이 댄 내 얼굴을 불편해하지 않는 것 같았다.
"이거 먹고, 잠시 산책갈래? 우리끼리."
"산.. 책이요?"
나직하게 말한 그 말의 묘한 뉘앙스를 그녀도 알아챈 것일까? 서연이의 표정이 다소 애매하게 바뀌었지만 싫다고는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새내기들의 눈치를 보던 서연이가 아무도 모를 만큼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나는 서연이와 아까의 그 계곡 바윗길 너머 후미진 구석에 들어와 있었다. 타임 리와인더를 살펴보았던 바로 그 어두침침하고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아무도 살펴보고 있지 않음을 확인한 나는 서연이를 평평한 바위에 앉히고는 나도 그 옆에 앉았다. 서연이가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선배, 갑자기 이상해요. 진짜 무슨 일 있는거 아니죠?"
"서연아. 있잖아, 뜬금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네. 말씀하세요."
잔잔한 계곡물이 흐르는 경치 좋은 자연의 품 안에서 이런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는게 기분이 이상했다. 하지만 서연이가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더라도, 나는 지금 그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우리 저번에 잤던거... 너 기억하고 있어?"
"네에?"
서연이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당황함인지 황당함인지 모를 기묘한 기색이었다. 어쩐지 조금은 실망하는 것 같기도 했다. 혹시나 어떤 로맨틱한 말이라도 기대한 걸까?
"기억... 하죠. 근데... 그건 왜요...?"
"네가 그랬잖아. 섹스는 너랑 하자고... 너 그 말 진심이었어?"
"그걸 왜 물어요?"
"그냥 궁금해. 듣고 싶어."
서연이가 주변을 잠시 둘러보았다. 주변은 조용했지만,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며 우물우물 기어들어가듯이 말했다.
"뭐... 맘에 없는 소리는 아니었어요."
여친은 여친대로, 사랑은 사랑대로, 섹스는 섹스대로.
그런 관계는 정말 가능한걸까? 나는 여태껏 "섹파"라는 개념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것의 도덕적 허용 여부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떠나서, 그렇게 생각할 만한 여자가 내 인생에 없었다.
서연이와 섹스파트너로? 그게 정말 가능할까?
"그러면 우리 지금 여기서 한번 할래?"
"뭐, 뭐라구요?"
벼락 맞은 것처럼 펄쩍 놀라는 서연이.
"여, 여기서요?"
"왜? 싫어?"
"누가 보면 어쩌려구요."
"아무도 안 올거야."
"그래도...."
그런 식의 막무가내 제안을 했던 이유를 나조차도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었다. 그저 확인받고 싶었달까?
시계가 없어진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찌질했다. 하지만 서연이가 여기서 "좋아요" 라고 대답해주면 그 자괴감에서 한층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타임 리와인더를 손에 넣고 나서 해왔던 일들이 환상이 아님을 증명받고 싶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시계가 없더라도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스스로 인식하고 싶었다.
그것을 하필 "섹스"로 인식하려 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 눈에 더없이 한심하고 동물적으로 보일진 모르겠으나, 그 순간에 그만큼 나에게 그런 자신감을 심어줄 수 있을 만한 다른 무언가가 또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단순히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시계를 쓰지 않아도 예전처럼 찌질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 물건이 없더라도 그녀가 예전처럼 나를 다시 무시하지는 않을 것이란 사실을.
"많이 하고 싶어요?"
생떼라는 것을 나도 알고 있었다. 서연이가 지금 내 복잡한 심리상태를 어떻게 헤아리겠는가. 그녀의 대답 한 마디가 이 순간 나를 얼마나 좌지우지 할 수 있는지 그녀가 짐작이나 할까. 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면서도 그녀는 그렇게 말해주었다. 그게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응. 나 지금 진짜 하고 싶어. 너랑."
주변을 의식하는 서연이의 모습이 불안해보였다. 여자라면 당연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서연이는 그러면서도 놀랍게도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꺼슬꺼슬한 자갈바닥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무릎을 꿇자 나는 꽤 당황스러웠다.
"왜 그래?"
"입으로 해줄게요."
"뭐?"
"기왕 하는거면 오래 하고 싶은데.... 여기선 그게 힘들잖아요. 나중에 아무도 없는 데서 제대로 해요, 우리."
비록 섹스를 허락하지는 않았지만 서연이가 하는 말이 거절의 의미가 아님이 느껴졌다.
일단은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그, 그럴까 그럼...."
"대신 선배 급한 것 같으니까 내가 해결해줄게요. 약속했으니까... 내가 선배 정액받이 해주겠다고."
약속. 그녀는 다른 말도 아닌 약속이라는 말을 썼다.
그 순간의 내게 그 하나의 단어가 얼마나 큰 자존감을 주었는지 그녀로서는 아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가 고마웠다. 문득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다.
많은 사람들은 결코 알지 못하는 서연이의 비밀스러운 면을 볼 때면 그녀가 마치 내 연인이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이 흥분이 지나가고나면 현주에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죄책감을 느끼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서, 서연아."
손수 내 바지 지퍼를 내리고 바지와 팬티까지 거침없이 무릎까지 벗겨내린 그녀가 마치 노예처럼 얌전히 무릎을 꿇은 채로 내 자지를 슬며시 감싸쥐었다. 곧이어 귀두 표면에 서연이의 보들보들한 입술 감촉이 느껴졌다.
얼이 빠지면서 척추를 타고 아찔한 기분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계곡에서 학과 남학생들의 선망의 시선을 한 몸에 받던 아름다운 서연이가, 그것도 이런 인적 드문 야외에서 무릎을 꿇고 내 자지를 입에 물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아래로 내려다본 서연이의 모습은 너무도 예뻤다. 원래 서연이가 미모 하나는 출중했지만 지금은 물에 젖은 모습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더더욱 그랬다. 머리카락이 물에 젖은 여인의 모습은 수수해보이거나 오히려 더 색기 있어 보이거나 둘 중 하나라던데 서연이는 아무래도 후자인 것 같았다. 원래부터 지니고 있었던 미모에 지금은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기묘한 색기까지 띄고 있는 모습이었다.
"서연아... 너 섹시하다."
내 칭찬이 들리는지 안들리는지 그녀는 정신없이 애무에 박차를 가한다. 불알과 자지 밑뿌리를 부드럽게 쓸어올리던 손길이 좆뿌리를 움켜쥐었고 그녀의 입안으로 자지가 빨려들어갔다. 축축하고 야들야들한 입 안의 점막이 자지를 감싸는 것이 느껴졌다. 등이 부르르 떨리면서 불알 밑에서 뭐라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찌르르한 기분이 솟구쳤다.
쪼옥쪼옥. 쩝쩝....
곧이어 그녀의 타액이 본격적으로 내 불기둥을 적시는 소리가 그 바윗길의 은밀한 공간 안에 울리기 시작했다.
정말로 누가 보면 어쩌나? 하지만 오히려 그런 생각을 하니 조금 더 흥분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가 힘껏 자지를 빨기 시작한다. 혀까지 적극적으로 써가며 자지 뿌리를 혀 끝으로 찌르고, 기둥 전체를 핥아올리면서 한편으로는 목구멍부터 시작해서 기운차게 좆을 빨아올린다.
내가 결코 많은 여자들로부터 오랄 애무를 받아본 것은 아니었지만 서연이의 빠는 솜씨가 결코 모자란 편이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그만큼 많은 남자와의 경험이 있었다는 것이기에 질투가 샘솟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런 유치한 감정이 비집고 들어올 만한 틈이 내 머릿 속에 없었다.
다만 그 거친 돌바닥에서 불편을 감수해가며 내 욕구를 채워주기 위해 봉사를 하고 있는 서연이의 모습이 너무도 기특했고, 사랑스러웠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내게 필요한건 단순한 사정의 행위가 아니었음을.
"서연아. 일어나봐."
나는 서연이의 입에서 자지를 뽑았다. 보드라운 입 속을 내 좆대가 유영하는 그 기분은 너무도 아찔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보다는 다른 것을 하고 싶었다.
"왜요?"
힘차게 좆을 빨아대던 서연이는 입에서 좆이 뽑히자마자 숨을 헐떡거렸다. 숨돌릴 시간을 주고 싶기는 했지만, 나는 참지 못하고 곧장 그 입술에 내 입술을 덮었다. 방금 전까지 내 좆을 정성스레 빨던 그 입에 사정없이 키스를 퍼붓는다. 잠시 놀라서 움찔하는 서연이였지만 이내 눈을 감고 내 입술과 혀를 받아들인다.
쪽. 쪼옥... 쪽쪽...
돌바위 위에서 나는 서연이를 무릎 위에 태우고 진하게 키스를 즐겼다. 현주와 가끔씩 하곤 하는 잔잔한 키스보다 더욱 뜨겁고 격정적인 키스였다. 내 혀가 서연이의 입안을 마구 넘나들었고, 서연이도 내 입 속으로 그녀의 타액을 흘려보내며 정신없이 서로를 느끼기에 바빴다.
아늑하게 그 황홀한 기분에 빠져들 때쯤, 문득 서연이와 키스를 하는 것은 처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34번의 섹스 (서연이는 2번이라고 알고 있겠지만) 를 하면서, 그녀와 키스를 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즉, 이것은 서연이와 나의 첫키스인 셈이었다.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녀와의 첫키스" 라는 의미를 달기에 정말 나쁘지 않은 키스라는 기분이 든 것이다.
"하아..."
거칠고 깊은 키스가 생각보다 오랜 시간 이어졌다. 진한 스킨십을 하고 있으면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반응을 읽어낼 수 있는 상태에 빠질 때가 있다. 서연이도 왠지 이 키스를 흡족해하며 심취하고 있는 것 같았다.
부딪히고 부벼지는 입술 틈새로 서연이의 숨결이 새어나오는데 볼살에 닿는 느낌이 아주 뜨거웠다. 잠깐 입술 틈새가 벌어지자 숨결에 이어 그녀의 목소리도 비집고 나온다,
"선배..."
"응..."
"마음이 바뀌었어요."
"무슨 말이야?"
"그냥 해요, 우리."
"뭐?"
내 몸 위에 포개어 앉아있던 서연이가 자세를 바꾸어 핫팬츠를 벗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 갑작스런 의외의 과감함에 놀라기도 했지만, 그녀가 그렇게 나오니 오히려 이번엔 내 쪽에서 불안해지기 시작하는게 신기했다.
"너, 너 괜찮아?"
"몰라요. 마음 바뀌기 전에 빨리."
"오래 하고 싶다며?"
"오늘만 좀 빨리 끝내봐요."
서연이의 심경의 변화가 갑작스럽기는 했지만 내 손은 이미 그녀가 핫팬츠를 벗는걸 돕고 있었다. 물에 젖어 몸에 딱 달라붙은 얇은 옷가지들을 벗겨내는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마 마음이 초조했기에 더 힘들게 느껴졌을 것이다.
서연이의 아름다운 하체 굴곡을 고스란히 보여주던 섹시한 핫팬츠를 벗겨내고, 물에 젖어있는 축축한 팬티마저 아래로 내려버렸다. 졸지에 계곡 한 구석에서 하체를 훤히 드러내고 야외노출을 하게 된 서연이.
갑자기 젖은 옷을 벗겨내고나니 혹시 한기가 들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내 상의를 벗어 그녀의 허리 부근에 둘러주었다. 바람도 막고, 혹시나 누가 보더라도 맨 몸을 보이지는 않을테니 보호 효과도 있고, 일석이조 아닌가. 하긴 이 꼴을 본다면 가려놨어도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는 뻔히 다 알 수 있을 테지만.
"네가 괜찮다고 했어. 혹시 애들이 우리 보더라도 후회하지 마."
문득 서연이를 물에 빠뜨리고서는 즐거워하던 남자 후배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의 선망의 대상인 학회장이 불과 그들로부터 몇십 미터 떨어지지도 않은 이 후미진 곳에서 지금 무엇을 하려 하는지를 알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서연이를 가히 여신으로 여기고 있는 녀석들에겐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일일테지.
그렇게 생각하니 갑자기 활력이 돋는다. 온 몸에 생동감이 넘친다. 비록 저열한 우월감이자 쾌감일지도 모르지만 그 느낌이 나의 자존감을 채워준다. 무척 야릇한 기분이었다. 말로는 그 느낌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애들 고기 먹느라 바쁜 것 같으니까... 괜찮을 거에요."
서연이가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혹시라도, 만에 하나 누가 서연이의 모습을 볼 경우를 대비해서 내 상의를 더욱 꼼꼼히 둘러 적어도 서연이의 속살이 밖으로 노출되지는 않게끔 만들었다. 하지만 서연이는 이미 내 무릎 위에 올라탄 채였기 때문에 수풀이 무성한 서연이의 비밀스런 그 곳 안으로 파고 들어가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아으음...."
물기에 젖은 서연이의 보지털을 내 상의 옷자락 안쪽에서 쓸어올리며 조갯살 표면을 살살 간질이듯 문질러주었다. 서연이의 입에서 곧장 신음소리가 터졌고, 나는 서연이의 보지가 계곡 물 이외에도 다른 것으로 축축히 젖어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연아... 너 벌써 젖어 있었어?"
"몰라요.... 그런가보죠."
"왜? 혹시 키스할 때 느낀거야?"
"아, 몰라요. 묻지 마요...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닌데."
"응.. 알았어."
물에 들어갔다와서 젖어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이제보니 애액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었는지 음순 근처가 약간 미끌미끌했다. 서연이가 전희를 특히나 깊게 즐긴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는 나로서는 아무리 이렇게 긴박한 상황이더라도 최소한의 즐거움은 안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예전과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하지만 결코 무성의하지는 않게 서연이의 보짓살을 손끝으로 마구 비벼주었다.
"하음....!"
"너 평소보다 빨리 느끼는 것 같다, 서연아."
"치... 겨우 두 번밖에 안해봤으면서..."
그건 아니지. 내가 너를 얼마나 많이 먹어봤는데...
네 기억 속에 없는 우리의 섹스 횟수를 네가 알게 되면 아마 놀라 까무러칠걸.
"근데 이상하죠... 하아... 선배랑 이러고 있으면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하읏.... 선배가 내 몸을 너무 잘 아는 것 같아.... 마치 선배랑 내가 수십번은 자본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에요. 정말 이상한 기분... 이에요.... 하앙...."
"글쎄.... 왜 그런 기분이 들까."
속으로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녀가 어찌 진실을 알겠냐만은, 여자의 감이라는 것은 정말 무시할 수 없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어쩌면 머리로는 몰라도 그녀의 몸, 그녀의 세포 하나하나가 그렇게 말해주는 건지도 모르겠다.
"선배가 내 몸을 이렇게 만지면...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선배는 알고 있는 것 같아요. 난 그런 기분이 들어요... 참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아냐... 이상하게 들리지 않아. 난 이런 것도 알고 있는걸."
난 바위에서 내려와 서연이를 일으켜세우고는 방금 전까지 앉아있던 바위에 서연이더러 손을 짚으라고 명령하고는 그대로 엉덩이를 이쪽으로 쭉 내밀게끔 만들었다. 상의는 여전히 내 허리에 두르고 있었지만 바위에 손을 짚은 서연이가 두 다리를 곧게 펴고 엉덩이만 나를 향해 내밀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뒤로 박는 자세가 되었다.
"엉덩이 벌려, 씨발년아. 거칠게 박히는거 좋아하잖아, 안 그래?"
"흐읍... 하으읏....!"
그 자세에서 그대로 곧게 편 다리 사이에 얼굴을 처박고 보지를 낼름 핥아올리니 서연이의 입에서 한층 더 높은 신음소리가 터진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곧장 음순부터 그녀의 엉덩이 골 사이까지를 단숨에 혀로 긁었다. 혀 끝이 항문에 가서 닿자 그녀는 역시나 엉덩이를 바들바들 떨었다.
"난 너를 잘 알아. 도도한 척 하지만 강제로 당하면서도 느끼는 음란한 면도 있고, 심한 욕을 들어가면서도 오히려 더 흥분하기도 하는 암캐같은 년이야. 그리고 넌 지금도 아닌 척 하지만 혹시 누가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더 느끼고 있는 거잖아, 안 그래?"
"흐으윽...."
보지와 항문에 각각 손가락 하나씩을 꽂으며 각각의 구멍 안에서 문질러주자 서연이가 허리를 배배 꼬며 새하얀 엉덩이를 떨어댄다. 보통 여성이라면 치부의 밑바닥까지 자극하는 폭언이겠지만 서연이에겐 그것이 또 하나의 자극이었던 모양이다. 쏟아져나오는 씹물의 양이 늘었다.
확실히 일반적인 경우에 비해서 씹물이 터지는 속도가 빠르다. 나는 서연이을 자극하는 새로운 방법을 깨우쳤다. 내 감에 불과하지만, 서연이는 지금 이런 탁 트인 야외에서 과감하게 성행위를 감행하고 있다는 스릴 그 자체로 자극 받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서연이에겐 또 하나의 흥분이었던 것이다.
세상에 이런 여자가 또 어디 있을까.
그녀는 정말 남성의 머릿 속에만 들어있는 온갖 섹스 판타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여자였다.
지환이 그 새끼는 서연이의 이러한 면모를 10분의 1이라도 깨우쳤을까? 그 병신 같은 새끼....
"맞아, 아니야? 빨리 대답하지 못해!"
"하흑... 그, 그래요... 난 그런 여자에요... 그래서 내가 이상한가요....?"
"아니. 넌 단지 음란할 뿐이야. 난 그런 네가 맘에 들어. 너를 공주라도 되는 듯이 바라보던 그 숱한 남자놈들이 지금 여기 와서 네 꼴을 보는 장면을 상상해봐. 기분이 어때?"
"모.. 몰라요.. 모르겠어요..."
"내숭 떨지 말고 빨리 대답해!"
"흥분돼요... 너, 너무 흥분돼요.... 하으응...."
"그래, 그게 니 솔직한 모습이야. 이 음탕한 년아."
솔직하게 말해주었으니 상을 주어야 한다. 쑤시던 손가락을 뽑아내고 그녀의 허리를 두르고 있던 내 상의 자락을 위로 걷어올렸다. 내 쪽을 향해서 그녀의 풍만하고 육감적인 엉덩이가 들이대어진다. 망설일 것 없이 곧장 사이 틈새로 담가넣는다.
"하으으으읏!"
뾰족한 신음을 지르는 서연이. 정말 누가 듣고 달려오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큰 소리였다. 나는 단숨에 서연이의 질벽 안쪽까지 내 좆뿌리를 깊숙히 틀어박고는 엉덩이에 내 사타구니를 단단히 밀착시켰다. 그리고 손을 뻗어 서연이의 입을 한쪽 손으로 틀어막았다.
손으로 그녀의 입을 틀어막아버리니 피스톤질을 생각보다 과격하게는 할 수 없었다. 대신 서연이의 상체를 조금 일으켜 입을 막기 편한 자세를 만들고는 그녀의 입 안에 아예 손가락 두어개를 집어넣고 마음껏 그녀의 엉덩이 감촉을 느껴가며 자지를 박아댔다.
"아음! 하읍! 으읍!"
피스톤질이 오고가는 거리가 비교적 짧았기에 박력이 평소만은 못했지만, 대신 짧고 강하게 끊어서 밀어부치는 새로운 맛이 있었다. 엉덩이 틈새를 비집고 자지가 틀어박힐 때마다 서연이의 입에서는 짧은 신음소리가 연이어 단말마처럼 터져나왔고, 그 소리는 내 손가락에 가로막혀 아슬아슬하게 허공에 묻히곤 했다.
쩌업! 쩌업! 쩌업!
힘주어 허리를 앞으로 쳐올릴 때마다 그녀의 엉덩이가 세차게 사타구니에 부딪히면서 뭉개지고 일그러졌다. 정말이지 한 마리의 암말을 타는 느낌이었다. 기분이 죽여줬다. 감성적인 이유에서 시작한 섹스였지만 어느새 나도 쾌감에 들떠가고 있었다.
"엉덩이가 너무 맛있어... 서연아."
"아읍... 아으으음... 하읍..."
서연이가 무어라 말을 하는 것 같았지만 손가락이 입에 틀어박힌 채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말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자 서연이가 대신 입에 틀어박은 내 손가락을 마치 사탕처럼 쪽쪽 빨기 시작했다. 단지 손가락을 빠는 것 뿐인데도 그 상황이 주는 묘한 스릴과 쾌감에 힘입어 그것조차도 하나의 짜릿한 애무로 느껴졌다.
"너도 좋다는 거지?"
"하읍...."
"나도 이런 네 모습이 좋아. 네 말대로 내가 널 평생 정액받이로 써줄게. 그래도 되지?"
"흐읍... 흐읍...!"
뒷보지로 박히면서 서연이도 정신이 없는지, 여전히 내 손가락을 마구 빨아대면서도 고개를 끄덕끄덕거린다. 섹스에 들뜬 서연이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럽다. 사람들은 이 맛에 섹스파트너를 만드는 걸까?
좀 더 오래 즐기고 싶었다. 빨리 끝낼 생각으로 시작한 섹스였긴 하지만 그렇게 빨리 끝내버리기엔 서연이는 너무도 맛있었다. 이런 긴장감 있는 상황도 하나의 즐거움으로 느껴지게 할 만큼....
"하으응! 하읍! 하으으응!"
입을 틀어막은 손으로도 미처 다 가리지 못할 만큼 서연이의 신음소리가 점점 높아져간다.
더불어 나도 서연이와 함께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서로의 몸에서 피어나는 열기가 난잡하게 뒤섞였다.
내 귓가엔 서연이의 신음소리 말고는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야만 했다.
그런데 그 순간 귓가에 뭔가 거슬리는 잡음이 끼어들었다.
찰칵! 하는 소리가 귓전을 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지... 잘못 들은건가."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를 들었지만 절정을 맞이하기 시작한 쾌감을 끊어낼 수는 없었다.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더욱 허리놀림에 박차를 가했고, 서연이는 그런 잡음 따위는 아예 듣지도 못했다는 듯 더욱 격하게 허리를 요동쳐가며 내 자지를 받아주었다.
우리는 그렇게 절정에 올랐다.
대낮 야외에서....
- 다음 화에 계속 -
출장을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금요일이 지나가기 전에 한 편을 올리겠다고 약속드렸지만 돌아오는 차편이 늦어져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점
정말 죄송합니다. 그 죄송함을 만회하고자 한 편을 올리기 전에는 잠들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모처럼 새벽까지
한 편을 마무리해 보았습니다.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
지난 화에 출장 잘 다녀오라고 응원해주신 분들께 모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언제나 모든 댓글 하나하나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지만 이번엔 유독 "카스카야"님의 댓글이 눈에 띄더군요
제가 출장 다녀온 사이에 감사하게도 1화부터 댓글을 하나씩 남겨주셨습니다.
보면서 정말 흐뭇했습니다. 고맙습니다.
담백한 인삿말도 좋지만 저는 소설 내용에 대한 피드백이나 감상을 써주시는 댓글이 너무 좋습니다. 댓글을 받으려고 소설을 쓰는건 아니지만 그런 댓글들이 제 의욕을 한층 업시키더군요. 출장 복귀 후 졸린 눈을 치켜뜨며 억지로 완성시킨 한 편에 대한 보답으로 그런 댓글과 추천을 한껏 기대한다고 말씀드린다면 너무 노골적일까요?
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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