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가 달라졌지?’
강재협은 주머니에 넣었던 수첩을 다시 꺼내, 수첩을 감싸고
있는 가죽표지 안쪽을 헤집어 무언가를 끄집어 내었다. 몇 장의
사진이었다. 그 중에서 뒷면에 부엌이라 적혀진 사진 한 장을
꺼내들고는 다시 한번 꼼꼼히 대조해가기 시작했다. 그 때
그의 눈에 마치 폭발하듯이 튀어 들어온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하얀 봉지였다. 속에 삐죽이 파가 보였다. 주머니를
둥글게 부풀리고 있는 것은 아마도 감자나 양파이리라. 수퍼의
봉지였다. 그것이 싱크 대 밑에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있었다.
왜 이것을 못 보았을까? 막상 수퍼의 봉지를 발견하고 나자,
그 하얀 봉지는 더없이 뚜렷하게 어둠속에서 확연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무도 작은 것에 연연하고 있다 보면, 커다란 것을 놓치기
쉽다고, 오래 전에 한 선배가 은퇴하면서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은 상당히 꼼꼼히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자부해왔던 강재협이었다. 실제로 그의 관찰력은 보통 사람의
세 배가 넘었다. 슬쩍 지나가는 버스의 몸에 붙은 노선표를
모두 읽어낼 정도로 눈이 빨랐다. 그런데 이런 커다란 봉지를
못보고 있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수퍼의 봉지. 그것도
속에는 모두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 뿐... 그렇단 얘긴 즉,
여기서 누군가가 요리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 아닌가.
속의 재료들은 아직 싱싱했다. 봉지 속에 들어있는 두부는
제조날짜가 오늘 아침 열 시로 적혀 있었다. 순간 강재협의
눈에 안방 문이 보였다. 강재협은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안방문을 열었다.
아니, 자신의 눈 앞에 안방문이 빠른 속도로 달려와 갑자기
열렸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 때, 강재협은 그만 몸이
산산이 굳고 말았다.
어둠... 창백한 달빛이 방안을 어둠과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마치 롯의 아내처럼 굳어 서 있는 하얀 물체가
있었다. 그 석상의 눈이 강재협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고 긴 머리,
조각상처럼 유려한 선으로 서 있는 실루엣. 문혜주였다.
‘인간이 아니야...’
문혜주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말이었다.
인간이라면 이렇게 인기척이 없을 수가 없다.
문혜주가 잠시 그대로 강재협을 바라보고 있다가, 마치 기계처럼
천천히 고개를 창쪽으로 돌렸다.
“그 사람은 아직 안 왔어요...”
아직?
“여기 오기로 했었나...?”
“오늘 그 사람 생일인 걸요...”
생일? 생일이 뭐지? 아아, 태어난 날! 그럼 오늘이 조도형이라는
희대의 악마가 태어난 날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 여자는 그런 악마가 태어난 날을 축하해주기 위해
이렇게 혼자 식사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단 말인가? 순간 갑자기
눈앞에서 불길이 일었다. 내 생일은 언제였지?
강재협의 몸이 마치 포탄처럼 날아갔다. 그리곤 아귀같은 손이
문혜주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바닥에 쓰러뜨렸다. 강재협은
마치 몸을 떠난 영혼처럼 신선한 시선으로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손이 문혜주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그녀의 머리를
방바닥에 쳐박았고, 자신의 다리가 문혜주의 허리를 밟았으며,
또 나머지 한 손이 문혜주의 목덜미를 누르고 있었다. 강재협은
웃음이 나왔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문혜주는 아무런 저항도 비명도 없었다. 강재협은 문혜주의 몸을
뒤로 덮쳐 누르면서도 이것이 정말 사람인가 싶은 의심이 들었다.
전혀 힘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문득 창문을 보았다. 창문이
열려 바람에 날려온 옷가지가 자신의 손과 발에 휘감긴 듯한
느낌이었다.
강재협의 단단한 몸에 눌린 탓인지 문혜주의 입가에서 무거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 신음마저 없었다면 아마도 강재협은
자신의 착각을 인정해 버렸을 것이다. 그녀의 무거운 신음에
문득 정신이 돌아온 강재협은 그녀의 목덜미를 누르던 손에서
힘을 뺐다.
비록 숙련된 몸짓으로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녀를 땅바닥에
엎어뜨리고 양손을 뒤로 돌려 누르긴 했지만, 문혜주는
그렇게 체포를 당할 만큼 흉악범도 힘이 센 작자도 아니었다.
강재협은 비록 힘을 빼긴 했지만 여전히 문혜주의 양손을 누르던
한 쪽 손을 남겨 두고, 나머지 한 손으로 뒷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냈다. 수갑 한 쪽을 문혜주의 왼 손에 채웠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땅히 걸어둘 만한 곳이 없었다. 도리 없이 강재협은
문혜주를 일으켜 세워 수갑의 나머지 한 쪽을 창문 열쇠 고리에
걸었다. 그리고는 겨우 문혜주의 몸에서 떨어졌다. 문혜주는
이제 왼 손에 수갑이 채여 창문 틀에 걸린 채 서 있었다.
곧이어 강재협은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벽
세 시를 넘긴 시간... 수사본부도 없고, 비상대기도 없으며,
또한 문혜주는 지금 체포되어야 할 범인도 아니었다. 강재협은
씁쓸한 기분으로 무전기를 다시 주머니 속에 넣어버렸다.
하지만, 그 날은 조도형의 생일이라 했다. 어쩌면 조도형이
나타날 지도 모른다. 강재협은 그 때 본부로 전화를 해서
응원병력을 불렀어야 했다. 하지만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오로지 문혜주 때문이었다.
“그 사람 안 올 지도 몰라요...”
왜? 자기 생일에 그토록 사랑하던 자기 애인이 생일상을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 와?
강재협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섹스 이외엔 아내에게
단 한치의 섭섭함도 주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약속한 게 없으니까요…”
그럼 약속도 않고 혼자서 이런 흉가 같은 데 들어와 혼자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게 무슨 청승이야!?
강재협은 갑자기 문혜주에 대한 측은함이 온 몸에 번져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조도형에 대한 증오가 불처럼 솟아올랐다.
문혜주는 한손을 창문 틀에 빼앗긴 채, 죽은 물고기 같은 눈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것일까…’
강재협은 순간, 조도형이 밖에 있어서 들어오려는 것을 문혜주가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득달같이 창가로 뛰어들어,
문혜주를 세차게 밀치고 창문 밖을 쏘아보았다. 창밖은 어둠
뿐이었다. 조금전의 날렵한 움직임이 되려 범죄처럼 어색한
어둠이었다.
“아야…”
강재협이 순간 놀라 돌아보니, 문혜주의 코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거칠게 밀칠 때 팔에 맞은 모양이었다. 순간 강재협은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급히 주머니를 뒤졌다. 손수건이
나왔다. 아내가 깨끗이 빨아 곱게 개어놓은 손수건이었다.
강재협은 문혜주의 코에 그 손수건을 대 주었다. 문혜주가 말없이
받아 코를 누른다.
“손이…떨리고 있군요”
뭐?
강재협은 순간 크게 휘청했다.
자기가 지금 어디에,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망각하고 말았다.
잠깐이었지만, 늘 차가운 분노를 안고 사는 강재협에게 있어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고작 손수건 하나를 내주는데 손이
떨리다니…
어색한 듯 손을 주머니에 쳐박으며 고개를 돌리자, 마치 칠흑속의
후레쉬불빛처럼 문혜주의 까만 눈이 쏟아져 들어왔다.
“고마워요…”
손수건을 내민다. 강재협은 다시 손을 꺼내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그 순간, 문혜주의 손가락이 살짝 닿았다. 그것 뿐이었다.
그런데…그 닿는 순간, 어떤 기억이 마치 폭발처럼 일어났다.
얼마 전 일이었다. 조도형의 죄는 엽기살인 이외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비록 죄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명확한
죄였다. 바로 그 자의 엽기 행각 덕분에, 이 땅의 살인자들에게
또 다른 살인의 방법을 배운 것이다.
이제까지 살인은 여러가지 이유에 의해서 저질러졌다. 미운
놈을 죽이고, 자길 죽이려던 놈을 죽이고, 실수해서 죽이고,
돈이 필요해서 죽이고…등등…그러던 살인마들에게, 조도형은,
새로운 ‘쾌락을 위해서’ 라는 살인이유를 제안해준 것이다.
이것처럼 세상의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이유가 또 있을까…
자신의 목숨이 남의 쾌락의 장난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저 착하게만 살았다고 해서, 가진 게 없다고 해서, 죄지은
게 없다고 해서, 이런 잔학한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세상에 숨어있는 변태들은 기어코
조도형을 교주로 모시고 그 행위를 답습하기 시작했다.
그 악마적인 살인의 행위, 그 번식을....
<계속>
강재협은 주머니에 넣었던 수첩을 다시 꺼내, 수첩을 감싸고
있는 가죽표지 안쪽을 헤집어 무언가를 끄집어 내었다. 몇 장의
사진이었다. 그 중에서 뒷면에 부엌이라 적혀진 사진 한 장을
꺼내들고는 다시 한번 꼼꼼히 대조해가기 시작했다. 그 때
그의 눈에 마치 폭발하듯이 튀어 들어온 무언가를 발견했다.
그것은 하얀 봉지였다. 속에 삐죽이 파가 보였다. 주머니를
둥글게 부풀리고 있는 것은 아마도 감자나 양파이리라. 수퍼의
봉지였다. 그것이 싱크 대 밑에 아무렇지도 않게 놓여있었다.
왜 이것을 못 보았을까? 막상 수퍼의 봉지를 발견하고 나자,
그 하얀 봉지는 더없이 뚜렷하게 어둠속에서 확연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너무도 작은 것에 연연하고 있다 보면, 커다란 것을 놓치기
쉽다고, 오래 전에 한 선배가 은퇴하면서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자신은 상당히 꼼꼼히 모든 것을 보고 있다고
자부해왔던 강재협이었다. 실제로 그의 관찰력은 보통 사람의
세 배가 넘었다. 슬쩍 지나가는 버스의 몸에 붙은 노선표를
모두 읽어낼 정도로 눈이 빨랐다. 그런데 이런 커다란 봉지를
못보고 있었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수퍼의 봉지. 그것도
속에는 모두 음식을 만들기 위한 재료들 뿐... 그렇단 얘긴 즉,
여기서 누군가가 요리를 하려고 했다는 것이 아닌가.
속의 재료들은 아직 싱싱했다. 봉지 속에 들어있는 두부는
제조날짜가 오늘 아침 열 시로 적혀 있었다. 순간 강재협의
눈에 안방 문이 보였다. 강재협은 마치 무언가에 이끌리듯이
안방문을 열었다.
아니, 자신의 눈 앞에 안방문이 빠른 속도로 달려와 갑자기
열렸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그 때, 강재협은 그만 몸이
산산이 굳고 말았다.
어둠... 창백한 달빛이 방안을 어둠과 공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한 가운데... 마치 롯의 아내처럼 굳어 서 있는 하얀 물체가
있었다. 그 석상의 눈이 강재협을 바라보고 있었다. 검고 긴 머리,
조각상처럼 유려한 선으로 서 있는 실루엣. 문혜주였다.
‘인간이 아니야...’
문혜주의 모습을 발견한 순간, 제일 먼저 떠오른 말이었다.
인간이라면 이렇게 인기척이 없을 수가 없다.
문혜주가 잠시 그대로 강재협을 바라보고 있다가, 마치 기계처럼
천천히 고개를 창쪽으로 돌렸다.
“그 사람은 아직 안 왔어요...”
아직?
“여기 오기로 했었나...?”
“오늘 그 사람 생일인 걸요...”
생일? 생일이 뭐지? 아아, 태어난 날! 그럼 오늘이 조도형이라는
희대의 악마가 태어난 날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 여자는 그런 악마가 태어난 날을 축하해주기 위해
이렇게 혼자 식사거리를 준비하고 있었단 말인가? 순간 갑자기
눈앞에서 불길이 일었다. 내 생일은 언제였지?
강재협의 몸이 마치 포탄처럼 날아갔다. 그리곤 아귀같은 손이
문혜주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바닥에 쓰러뜨렸다. 강재협은
마치 몸을 떠난 영혼처럼 신선한 시선으로 자신의 몸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손이 문혜주의 머리채를 휘어잡아 그녀의 머리를
방바닥에 쳐박았고, 자신의 다리가 문혜주의 허리를 밟았으며,
또 나머지 한 손이 문혜주의 목덜미를 누르고 있었다. 강재협은
웃음이 나왔다.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
문혜주는 아무런 저항도 비명도 없었다. 강재협은 문혜주의 몸을
뒤로 덮쳐 누르면서도 이것이 정말 사람인가 싶은 의심이 들었다.
전혀 힘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문득 창문을 보았다. 창문이
열려 바람에 날려온 옷가지가 자신의 손과 발에 휘감긴 듯한
느낌이었다.
강재협의 단단한 몸에 눌린 탓인지 문혜주의 입가에서 무거운
신음이 새어나왔다. 그 신음마저 없었다면 아마도 강재협은
자신의 착각을 인정해 버렸을 것이다. 그녀의 무거운 신음에
문득 정신이 돌아온 강재협은 그녀의 목덜미를 누르던 손에서
힘을 뺐다.
비록 숙련된 몸짓으로 득달같이 달려들어 그녀를 땅바닥에
엎어뜨리고 양손을 뒤로 돌려 누르긴 했지만, 문혜주는
그렇게 체포를 당할 만큼 흉악범도 힘이 센 작자도 아니었다.
강재협은 비록 힘을 빼긴 했지만 여전히 문혜주의 양손을 누르던
한 쪽 손을 남겨 두고, 나머지 한 손으로 뒷주머니에서 수갑을
꺼냈다. 수갑 한 쪽을 문혜주의 왼 손에 채웠다. 그리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마땅히 걸어둘 만한 곳이 없었다. 도리 없이 강재협은
문혜주를 일으켜 세워 수갑의 나머지 한 쪽을 창문 열쇠 고리에
걸었다. 그리고는 겨우 문혜주의 몸에서 떨어졌다. 문혜주는
이제 왼 손에 수갑이 채여 창문 틀에 걸린 채 서 있었다.
곧이어 강재협은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새벽
세 시를 넘긴 시간... 수사본부도 없고, 비상대기도 없으며,
또한 문혜주는 지금 체포되어야 할 범인도 아니었다. 강재협은
씁쓸한 기분으로 무전기를 다시 주머니 속에 넣어버렸다.
하지만, 그 날은 조도형의 생일이라 했다. 어쩌면 조도형이
나타날 지도 모른다. 강재협은 그 때 본부로 전화를 해서
응원병력을 불렀어야 했다. 하지만 미처 거기까지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오로지 문혜주 때문이었다.
“그 사람 안 올 지도 몰라요...”
왜? 자기 생일에 그토록 사랑하던 자기 애인이 생일상을
준비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 와?
강재협 같았으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그는 섹스 이외엔 아내에게
단 한치의 섭섭함도 주지 않으려 최선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약속한 게 없으니까요…”
그럼 약속도 않고 혼자서 이런 흉가 같은 데 들어와 혼자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단 말인가? 이게 무슨 청승이야!?
강재협은 갑자기 문혜주에 대한 측은함이 온 몸에 번져오는
것을 느꼈다. 또한 조도형에 대한 증오가 불처럼 솟아올랐다.
문혜주는 한손을 창문 틀에 빼앗긴 채, 죽은 물고기 같은 눈으로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뭘 보고 있는 것일까…’
강재협은 순간, 조도형이 밖에 있어서 들어오려는 것을 문혜주가
신호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어 득달같이 창가로 뛰어들어,
문혜주를 세차게 밀치고 창문 밖을 쏘아보았다. 창밖은 어둠
뿐이었다. 조금전의 날렵한 움직임이 되려 범죄처럼 어색한
어둠이었다.
“아야…”
강재협이 순간 놀라 돌아보니, 문혜주의 코에서 피가 나고 있었다.
거칠게 밀칠 때 팔에 맞은 모양이었다. 순간 강재협은 온 몸에서
힘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급히 주머니를 뒤졌다. 손수건이
나왔다. 아내가 깨끗이 빨아 곱게 개어놓은 손수건이었다.
강재협은 문혜주의 코에 그 손수건을 대 주었다. 문혜주가 말없이
받아 코를 누른다.
“손이…떨리고 있군요”
뭐?
강재협은 순간 크게 휘청했다.
자기가 지금 어디에, 그리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망각하고 말았다.
잠깐이었지만, 늘 차가운 분노를 안고 사는 강재협에게 있어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다. 고작 손수건 하나를 내주는데 손이
떨리다니…
어색한 듯 손을 주머니에 쳐박으며 고개를 돌리자, 마치 칠흑속의
후레쉬불빛처럼 문혜주의 까만 눈이 쏟아져 들어왔다.
“고마워요…”
손수건을 내민다. 강재협은 다시 손을 꺼내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그 순간, 문혜주의 손가락이 살짝 닿았다. 그것 뿐이었다.
그런데…그 닿는 순간, 어떤 기억이 마치 폭발처럼 일어났다.
얼마 전 일이었다. 조도형의 죄는 엽기살인 이외에 한 가지가
더 있었다. 비록 죄로 인정되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명확한
죄였다. 바로 그 자의 엽기 행각 덕분에, 이 땅의 살인자들에게
또 다른 살인의 방법을 배운 것이다.
이제까지 살인은 여러가지 이유에 의해서 저질러졌다. 미운
놈을 죽이고, 자길 죽이려던 놈을 죽이고, 실수해서 죽이고,
돈이 필요해서 죽이고…등등…그러던 살인마들에게, 조도형은,
새로운 ‘쾌락을 위해서’ 라는 살인이유를 제안해준 것이다.
이것처럼 세상의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이유가 또 있을까…
자신의 목숨이 남의 쾌락의 장난감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저 착하게만 살았다고 해서, 가진 게 없다고 해서, 죄지은
게 없다고 해서, 이런 잔학한 범죄의 대상이 되지 않을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세상에 숨어있는 변태들은 기어코
조도형을 교주로 모시고 그 행위를 답습하기 시작했다.
그 악마적인 살인의 행위, 그 번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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