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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의 딸 외전 - 상편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2:54 695회 0건
[상편]



<첫번째 임무다. 여기 이 사람을 죽이고 와.>
<죽이고 오라구요?>

그 녀석은 나보다 한살 어렸는데, 처음에 봤을땐 덩치가 너무 커서 나이가 스물쯤 된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녀석보다 나이가 한살 많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명태파에서 내가 그 녀석보다 서열이 밑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존대를 하고있다.

<그래. 왜. 죽이고 오라니까 쫄았냐?>
<그런건 아니지만...근데 왜 죽여야 합니까?>
<네가 그 이유를 알 필요가 뭐있어? 그냥 죽이고 오라면 죽이고 오는거지.>

난 그 녀석의 퉁명스런 말투를 떠올리며 길가에다 침을 탁 뱉었다. 이름이 심현석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그 녀석이 죽이고 오라면서 쥐어준건 조그만 과도 하나였다. 그러면서 주소를 하나 적어주었는데, 난 글을 읽을줄 몰랐기 때문에 그 녀석이 읽어준 주소를 잘 외워두었다가 사람들에게 물어 물어 겨우 내가 죽여야 될 사람이 사는 집에 도달할 수 있었다. 그 사람은 대단한 부자인지 집이 굉장히 으리으리 했다. 난 이런 부자를 어째서 일개 양아치인 명태 형님이 죽이라고 시키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일단 임무를 수행하는게 먼저였기 때문에 주위를 조심스레 살펴보곤 힘껏 도움닫기해서 담벼락 끝퉁이를 잡았다. 벽이 원체 높은데다 벽 위로는 가시 철망까지 설치되어 있어서 더욱 넘기가 힘들었지만 나는 살갗이 ?겨나가는걸 감수하며 간신히 그 담을 넘을 수 있었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문도 잠겨있지 않았다.) 으리으리한 바깥 모습과는 달리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온 집안이 어질러져 있었고 가구라든지 TV, 냉장고 같은곳에 무슨 딱지가 붙어있었는데 나중에 현석이 녀석에게 물어서 안 사실이지만 녀석은 사업을 하던 사람이 부도가 나면 이런꼴을 당하는거라고 했다.(물론 이런꼴에 나같은 녀석이 죽이러 오는건 포함되지 않는다. ...아니, 포함되는건가...?)

달그락--.

그때 어느 방(안방쯤이라 짐작된다.)에서 그릇 소리가 났다. 나는 조심스레 발소리를 죽여 그 방으로 다가갔다.

[누구요.]

하지만 이미 알아챈걸까? 난 방안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라며 재빨리 방문을 열고 그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거기엔 내가 사진에서 본 반백의 중년인이 담담한 얼굴로 차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는 내가 손에 칼을 쥐고 뛰쳐들어왔는데도 그다지 표정에 변화가 없었다.

[무슨일로 오신거요.]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서 창가로 다가가 거기 있는 어떤 난같이 생긴것에 분무기로 물을 주었다. 난 그의 조용한 물음에 뭐라 대답해야 좋을지 몰랐다. 아니, 대답을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를 몰랐다고 하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누구의 명령으로 온거요.]

물을 따 뿌렸는지 그가 분무기를 있던 자리에 놓으며 날 바라보았다. 역시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고 그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이런일에 익숙하지 않나보군.]

난 급히 내 손을 바라보았다. 떨리고 있다. 하긴 누군가를 죽여보는건 이게 처음이니까. 솔직히 나는 지금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막상 죽여야 할 사람을 앞에두고 무서워지는 이유는 내가 이 사람을 죽이고 난 다음에 어떻게 될것인가 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정작 무서운것은 칼을 어디에 찔러야 될것인지 이 사람이 바로 죽을것인지 피는 얼마나 튈것인지 내가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때. 이렇게 어찌해야 될지를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 날 소스라치게 놀라게 하는 소리가 울려왔다.

띵동...띵동...

[우와악!!!]

나중에 생각했을땐 웃겼지만, 지금 날 그렇게나 놀라게 한건 다름아닌 초인종 소리였다. 이때 내가 무슨 이유로 그 초인종 소리에 그렇게나 놀랐던 것일까. 그 이유는 시간이 한참이나 흐른뒤에도 알 수 없는 것이었지만 분명한건 이때 너무나 긴장을 하고 있던 내가 그 소리에 앞뒤 가리지 않고 그 사람에게 달려들었다는 것이다.

푸욱 푸욱 푸욱 푸욱 푸욱...

비명소리조차 없다. 끈적한 액체의 흘러내림을 느끼면서 내가 정신을 차렸을땐 이미 그 남자는 바닥에 쓰러진채 사방으로 피를 쏟아내고 있었고 나는 그의 배 깊숙히 칼을 찔러 넣고 있는 중이었다.

[흐억!! 헉!! ....헉...! ...헉...!!]

그걸 알아 차렸을때 나는 기겁을 하며 몸을 뒤로 물렸다. 만약 눈도 감지 않은채 죽은 그 남자의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었다면 나는 그자리에서 기절해 버렸을지도 몰랐다. 나는 가슴이 미칠듯이 박동질 치는걸 느끼며 나 자신도 모르게 그의 시선이 향해있는 곳으로 눈을 돌렸다. 그가 죽는순간까지 바라보고 있었던건 다름아닌 방금전 그가 물을 줬던 난 앞쪽에 놓여있던 사진액자였다. 그의 피는 그 액자에까지 튀어서 흘러내리고 있었는데, 그 붉은피 안으로는 세명의 사람이 찍혀있었다. 가족사진인걸까...?

난 부모가 없다. 아니, 부모 없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리는 없지만 난 날 태어나자마자 버려버린 그들을 부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부모가 없다.
언제였던가...? (굉장히 어렸을때의 일인걸로 기억한다.) 어느날 난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엄마라고 딱 한번 불러본적이 있었다. 그 여자는 내가 있던 고아원의 보모였다. 어린마음에 부모의 사랑이 고팠던 걸까...? 하지만 그녀를 엄마라고 부른 그날 나는 원장 선생님에게 종아리가 퉁퉁 부어 오를때까지 회초리로 얻어 맞았다. 그래서일까...엄마 아빠라던지 부모..가족같은 단어는 나에게 그리 따뜻하게 와닿지 않는 단어였다.

내 시선은 자연스레 이 남자를 아빠라고 부를 그의 딸에게로 향했다. 하필 피가 그쪽으로 흘러내려 얼굴은 확실히 알아볼 수 없었지만, 분명 예쁘장하게 생긴 내또래의 여자애였다. ...그녀는 오늘 누가 자신의 아빠를 죽였는지 알지도 못한채 눈물을 흘리겠지. ......누가 죽였는지 알지도 못한채라고...? 난 그때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소스라치듯이 정신을 차린 나는 허둥대며 일단 그 남자의 몸에서 칼을 뽑아내곤 급히 방에서 뛰어나왔다. 그리고 어쩔줄 모르며 주위를 휘둘러보던 나는 집에 뒷문이 있음을 발견했고, 나는 거기를 통해서 미친듯이 그 집밖으로 뛰쳐나가 도망쳐버렸다.
이날 일은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이유로 인해 신문지 귀퉁이 하나 차지하지 못한채 조용히 뭍혀져 버렸고, 나는 아무런 법적 처벌도 받지 않은채 그 다음날에도 뻔뻔하게 밥을 먹고, 볼일을 보고, 잠을 잤다.
...하지만 만약 그때 알고 있었더라면...
그녀가...그 사진속에서 예쁘게 미소짓고 있던 그 여자아이가 나중에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했고, 또 사랑했던 두명의 여인중 한명이 될것이란걸 그때 알고 있었더라면...그리고 그녀가 시간이 흐른뒤 나머지 한명의 여인까지 나에게 안겨줄 사람이 될것이란걸 그때 알고 있었더라면...

...나는 그때 그렇게 멀쩡하게 생활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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