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큰
1부 28장 구출작전(3)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선거 사무실은 바쁘게 움직였다. 혜령과 지은도 아침에 오자마자 점심도 잊은 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모두들 활기차 보이는 것은 아마도 여론조사의 결과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고 자원봉사하는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경쟁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고 있다는 결과에 흥이 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자... 이제 슬슬 마무리하고 합동 연설 준비 합시다.”
지은도 흥이 났다. 여론 조사의 압승, 새로운 가족,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다시 여자로 만들어 준 한 남자 이런 모든 것이 그녀를 에너지가 넘치게 했다. 그녀는 일을 습득하는데 탁월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며 그녀가 이런 선거 사무실의 베테랑으로 보여 질 것이다. 그러나 실상 그녀는 이번 선거가 첫 경험이고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은 거의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일을 잘해 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혜령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지원군이었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이렇게 그녀가 치룰 첫 선거에서 이만한 성적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지은아! 우리 아직 점심도 못 먹은거 같은데. 간단히 요기라도 좀 하자..”
“응! 언니.. 근데 배가 하나도 안고프네. 이 기사 좀 봐. 이건 뭐 거의 당선이야 당선.”
지은이 신문을 들고 한달음에 뛰어 와 펼쳤다. 이미 혜령도 본 기사였기에 혜령은 지은이 펼친 신문을 접고 무작정 지은을 데리고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아주머니, 김밥 이인분만 주세요. 아... 그 오뎅하고요..”
“아우... 우리 의원님께서도 이런 걸 잡수세요? 좋은 걸 잡수셔야죠.”
혜령은 사무실 근처 김밥 전문점에 다짜고짜 지은은 앉혀놓고 직접 주문을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겉으로는 김밥을 내어주는 게 내키지 않은 것 같이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지지하는 국회의원 후보가 이런 곳에 온 것도 기분 좋았지만 정말 서민과 같이 가식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혜령 때문에 더 기분이 좋았다.
“자... 여기 의원님.. 김밥이요...”
김밥집 주인이 내온 김밥은 이미 만들어 놓은 다른 김밥보다 양과 질에서 차이가 났다. 특별히 그녀가 만든 것일 것이다.
“아유... 아주머니 이렇게 주시면 뭐가 남는다고... 에유.. 그냥 있는거 주심 되는데..”
“아녀.. 똑같은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을 흘리며 그녀의 본연의 자리인 김밥 만드는 작업장에 앉아 연신 싱글거리며 김밥을 말았다.
“자.. 먹어.. 이렇다 너나 나나 병나겠다. 끼니는 그때그때 먹어야지..”
혜령은 김밥 한 조각을 집어 지은의 입속에 넣어주면서 말했다. 그녀들이 정겹게 김밥을 먹는 모습을 어느새 모여든 사람들에게 작은 감동을 주고 있는 듯 어떤 중년의 여자는 눈에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녀들을 지켜보는 많은 시선 때문에 허겁지겁 입속에 김밥을 쑤셔 넣다시피 김밥을 먹고 다시 사무실에 왔을 때 그녀들 앞으로 정확히 말하면 지은이 앞으로 소포가 와 있었다.
“누구지?”
소포의 겉에는 ‘박혜령 후보 보좌관 앞’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우와~ 좋겠다. 익명의 지지자... 흠... 샘나는데.. 풀러봐..”
“언니.. 아니.. 후보님은 농담도... 여태 이런 익명의 소포는 전부 의원님한테 온거였다구요.”
지은도 소포의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우선 흔들어 보니 둔탁하게 흔들리는 물건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헤치고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세련된 구두 한 켤레가 있었다. 불현 듯 지은은 자신이 신고 있는 구두를 내려 보았다. 그동안 정신없이 선거 유세를 하던 터라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나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것이 그녀의 구두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불투명하고 헤지고 심지어 굽은 언제 달았는지 플라스틱 굽 몸체까지 올라와 있었다.
“어머... 너무 이쁘다. 어쩜... 미안해.. 나도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잘 됐다. 그거 벗어 버리고 이거 신어봐.”
혜령은 손수 상자에서 구두를 꺼내 그녀의 발에 신겨 주었다. 구두는 맞춘 것처럼 지은의 발에 꼭 맞았다. 세련된 디자인의 검은색 정장 구두는 지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딱 맞춤이네 맞춤이야..”
지은도 새 구두를 신고 이리저리 살피며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
민혁의 차안에서 혜원은 아무 말도 없이 앞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된 일련의 정황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었다.
정희와 은숙을 남겨 두고 혜원이 먼저 모텔을 떠났었다. 은숙과의 통화로 확인해 본 것으로 정희와 은숙은 새벽녘에나 잠에서 깨 둘은 함께 모텔을 나왔고 지하철 첫 차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 후 은숙이 숙취에서 회복되어 정희와 소형차를 구입하려고 약속했던 것을 확인하려고 그녀의 집에 전화를 했고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정희가 그날 이후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종종 그런 일이 있었기에 그녀나 정희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고 혜원의 전화를 받은 은숙은 큰 충격에 휩싸여 실신했다. 다행이 집에 다른 가족들이 있어서 그녀를 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니까. 그날 정희 혼자 집에 가던 중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그 전에 종국이와 정희가 만났었다고 했으니까 그때 정희네 집을 알아 뒀을 꺼야. 그리고.... 탈영이라는게 문제인데...’
여기까지 그녀의 생각이 정리됐을 때 민혁이 차를 세웠다. 우선 계획을 세워야 했다. 혜원 말대로 경찰이 개입되면 그의 행동반경이 축소 될 수밖에 없다. 이유야 그동안의 일련의 사건과 현재 그의 신변상의 문제 때문이다. 그는 이 세상에 현재 있어야할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납치범이 군, 그것도 해병대 탈영병이라면 살인 훈련을 받았을 것이고 혹시라도 무장을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뉴스에는 그와 같은 탈영병 뉴스는 없었다. 아마도 사회적인 문제나 질책 때문에 군에서 쉬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왜?”
“너랑 내가 같이 가면 안될 꺼야.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다면 정희씨의 목숨이 위태롭겠지. 여기서부터 혼자 가. 난 은밀하게 따라갈게. 내 능력 알지. 날 믿고.... 아무일 없을 거야.”
민혁의 말에 혜원은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녀를 완전히 공포에서 해방 시켜주진 못했다.
“우선 그 기계과 창고의 위치를 자세하게 그릴 수 있을 만큼 그려봐.”
“응.. 그게..”
혜원은 기억을 더듬어 학교의 내부 구조물들의 위치를 그려 나갔다. 그리고 정희가 잡혀있을 장소로 가장 유력한 기계과 창고의 위치까지 그렸을 때 종이 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한세대학교는 산 중턱을 깎아 세우고 대부분이 그렇듯 미래를 내다보고 건물을 증축 또는 신축한 것이 아니라서 매우 복잡했다. 그리고 최근 대대적인 학교 재개발로 대부분의 건물이 리모델링되거나 철거되고 한창 건물을 올리고 있었다. 본교 학생들은 본의 아니게 분교로 수업을 받아야 했고 그것이 싫은 학생들은 휴학을 하거나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하였다. 그래서 현재 학교에는 공사 인력만이 분주하게 왕래하고 있을 것이다. 기계과 창고는 학교의 건물 중 가장 높은 곳에 그리고 가장 후미진 곳에 있었다.
민혁은 어느 정도 위치가 파악되자 혜원을 먼저 내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도 차에서 내려 그녀가 걸어간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
“지은아... 얘들 올 시간 안됐니? 지금 쯤 왔어야 하는데...”
“언니... 솔직히 말해도 될까?”
“응? 뭘?”
“언니 같으면 민혁이랑 단 둘이 있는데 다른 게 생각나겠어?”
“.... 으.... 이것들...”
혜령이 분을 삭이는 사이 합동 연설장의 장내 스피커로 혜령의 이름이 불려졌다.
“언니! 언니 차례야.. 잘해.. 파이팅!”
혜령은 대답대신 다부진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고치며 당당하게 연단으로 걸어 나갔다. 장내에는 많은 시민들이 합동 연설을 지켜보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많은 청중들은 그녀가 연단에 모습을 드러내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로 그녀를 맞아 주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인기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일편에선 현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그녀의 연설을 방해하기 위해 목이 터져라 자신들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저런 것도 선거법 위반에 해당되지만 회장에 나와 있는 선거관리위원 중 어느 누구도 그런 그들의 행동에 제제를 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랑하는 은평구민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 서있기 한없이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의 고통을 함께 해야 하지만 미천한 저는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이 나라 이 겨레가 백성들 서민들 국민들의 힘으로 지금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저 국회의 위정자들은 자신들이 그것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서야할 분은 저도 아니고 위정자들도 아닌 여러분이어야 합니다.”
“와~~ 와~~ 박혜령.. 박혜령..”
“우~ 군발이 개보지는 물러가라...”
환호 속에 희미하게 들리는 야유가 혜령의 귀에는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딱!
어디선가 날라 온 돌멩이에 그녀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그런 모습을 본 청중들은 분노하며 여당 지지자들을 무언의 압력으로 회장에서 ?아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혜령도 이마의 흘리는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말을 이었다.
“절 너무도 사랑하신 분이셨나 봅니다.”
“와하하하.....”
장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 감히 말합니다. 이제껏 어느 정치인들도 이곳에 국민 여러분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저 박혜령... 여러분 모두를 이 자리에 서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목소리가 더 크고 힘 있게 저 위정자들을 깨우치게 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혜령의 연설은 계속이어 졌고 청중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연설을 경청하며 자신들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 혜령을 험악한 얼굴로 쳐다보는 정한수는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다.
**************************
혜원은 자신의 눈을 통해 들어오는 상황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바로 눈앞의 현실이었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저와 같은 처참한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키키키 마이 프린세스. 뭘 그리 놀라시나?”
“이.....이....런.... 미... 친... 새... 끼...”
혜원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에 놀랐다.
“저년은 아주 좋아 하더라고. 이런 변태 같은 년. 킬킬킬... 오죽 하고 싶었으면 칼로 보지를 쑤셔대냐? 킬킬킬...”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혜원은 다소나마 정신을 추수렷다. 그녀의 눈앞엔 정희가 발가벗겨진 체로 팔은 뒤로 묶여 치켜 올려져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취할 수 없는 형태로 매달려 있었고 다리는 벌어진 체 적나라하게 그녀의 보지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보지는 이미 그 기능을 더 이상은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질구에 군용 대검이 깊숙이 자루만을 남긴 체 박혀 있었다. 출혈은 멎은 것처럼 보였지만 바닥에 고인 피로 보아 이미 많은 피를 흘린 것으로 보였다. 아직은 숨이 붙어 있는지 간헐적으로 몸에 경련이 있었고 작지만 분명하게 가슴이 오르내렸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다.
혜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저 상태로는 얼마 되지 않아 목숨을 잃을게 뻔했다.
“이제 정희를 풀어줘... 저대로 두면 죽을꺼야.”
“킬킬킬... 죽게 내버려둬.. 저년은 죽어도 돼.. 킬킬킬...”
종국은 혜원의 주변을 돌면서 그녀의 자태를 감상하듯 위아래로 음흉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4년간의 대학 생활이 그에게는 오로지 여신 혜원을 보는 것으로 끝났다. 그녀의 졸업과 함께 군에 들어 갈 때까지 줄 곧 그는 혜원을 자신의 여신으로 믿고 지켜보았다. 심지어 그의 방에는 10대 여고생처럼 온 방안에 혜원의 사진으로 도배가 돼 있었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 다녔다. 그러나 그의 스토킹은 학교 내에서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항상 사람들에 휩싸여 있었고 따르는 친구들도 많았다. 교내 밖에서 그녀를 스토킹 했다면 그는 법적이 조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는 그냥 같은 학교 학생이기 때문에 우연이라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었다. 우연히 지나가다 그녀의 눈에 종국이 들어올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우연이지만 종국에게는 미행이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대학교 1~2학년 때 군대를 간다. 그러나 그는 4년 동안 그녀를 쫓아다니기 위해 한번은 연장 신청을 했고 한번은 스스로 팔을 부러트렸으며 한번은 좀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4학년 때는 해병대 지원으로 6개월 정도 연장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아니 자신의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그는 해병대에 입대하게 된 것이다.
“조금이라도 그녀를 살리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내가 뭘 하는 되는데?”
혜원은 정희를 살릴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가 섹스를 요구한다면 자신 또한 극단의 방법을 써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킬킬킬.... 난 어차피 끝났어. 군에서도 내부반에 수류탄 한 5개는 까고 나왔으니까. 그것도 내가 한 5초간 들고 있었으니까... 킬킬킬 넌 모르겠지... 공중에서 수류탄 5개가 한 번에 폭발하는 순간.... 킬킬킬 내가 왜 그랬는지 알아?”
“....”
“김병장이라는 개새끼가 니사진에 그 새끼의 더러운 입술을 대버린 거야... 내 프린세스의 입술에... 그래서 눈이 돌아 버렸지... 그 새끼 대갈빡에 딱총 세 방 정도 쏘니까 더 이상 쏠만한 대갈빡이 없더라고 다 날아가 버렸어. 킬킬킬... 나도 안해본 키스를 그 새끼가.... 으.....”
종국은 그때의 상황이 생각나는지 분을 참지 못하고 앞에 있던 철제의자를 걷어찼다. 그 철제의자는 공교롭게도 날아가 정희의 몸에 부딪쳤다. 그 충격으로 정희의 보지에 쑤셔 박혀 있던 대검이 조금 빠지면서 한 뭉텅이의 피가 쏟아졌다.
“아악..... 하지마... 하지마...”
“킬킬킬... 저년은 내버려둬... 마이 프린세스...”
“내가 뭘 하면 돼? 뭘 하면 풀어 줄거야? 정희는 빨리 병원에 가야한다고.”
“킬킬킬... 저년을 살리고 싶어? 그럼 벗어!”
혜원은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버러진 이 상황이 지옥 같이 느껴졌다.
‘오빠... 제발... 민혁오빠...’
사실 민혁이 왔다면 벌써 어떤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있는 곳에는 민혁이 없었다. 민혁과 혜원이 예상했던 장소는 정확하게 맞았다. 그러나 그녀가 그려준 지도가 문제였다. 교내에는 공사중이라서 이정표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려준 지도 상의 이 장소는 반대편에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 민혁은 있지도 않은 곳에서 그녀를 찾고 있을 것이었다.
혜원은 천천히 손을 들어 셔츠의 단추를 풀다가 사뭇 놀라며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 그녀가 옷을 벗는다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경우와 같았다.
‘어쩌지....’
혜원은 민혁의 집에서 입고 있던 붉은색 레진 팬티와 브라를 그대로 입고 있는 상태였다. 너무 경황이 없던 터라 그 상태에서 바지와 셔츠만 입고 집을 나선 것이다.
“킬킬킬... 역시 안되겠어? 저년은 그럼 죽어... 아니 내가 이렇게 할꺼야.”
종국은 정희를 향해 손에 짚이는 벽돌을 던졌다. 벽돌은 정희의 몸통을 가격했고 또 한번 정희의 보지에선 핏덩이가 쏟아져 내렸다.
“아악... 아니.. 할게.. 할게..”
혜원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셔츠의 단추를 풀고 이내 바지까지 벗어 붉은색 레진 브라와 팬티를 걸친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냈다.
종국의 눈에 종국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나타난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프린세스는 이러면 안 되는 것이다. 순결한 공주여야 했다. 이런 뇌쇄적인 속옷을 입는 공주는 없다. 적어도 종국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아악.... 아니야... 아니야... 니가 왜 이래? 넌 순백색의 속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구..”
종국은 미친 듯이 뛰어 다녔다. 말 그대로 발광하는 미치광이의 그 모습이었다. 그의 눈에 K-2 소총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 앞에 붉은색 레진 속옷을 입은 자신의 프린세스는 잘 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녀는 하늘거리는 레이스 달린 순백색의 속옷이 아니라면 적어도 순백색이어야 했다. 저런 추잡한 색깔이 아니었다. 종국은 K-2 소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혜원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그곳에서 온 게 아니야.... 으으... 잘못됐다고..”
종국은 총구를 거둬 자신의 입속에 넣었다. 그러다 다시 그녀를 향해 겨눴다. 그는 이미 모든 생각을 정리 한 듯 했다. 그녀를 쏘고 자신도 자살할 생각이었다. 잠깐 동안은 그래도 자신의 프린세스였던 혜원을 두고 자살 하려고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도 더 이상은 프린세스가 아니었다. 그의 눈에서 다시 한 번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 내렸다.
‘쉬익~’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사람의 인영으로 보이는 물체가 도저히 사람의 움직임이라고 보기 힘든 움직임으로 종국 쪽을 향해 치달았다. 종국의 오른 손의 신경은 정확하게 날카로운 마찰음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단도로 인해 끊어져 손가락에 힘을 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신의 앞을 밀고 들어온 인영의 무릎이 자신의 얼굴에 부딪쳤을 때 그의 기억은 거기서 끝이 났다. 단 한방으로 상황을 종료시킨 인영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아직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는 혜원의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이~ 정신 차리라고 공주님...”
민혁은 부드러운 미소를 가득 머금고 혜원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그제야 혜원의 눈에서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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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28장 구출작전(3)
거의 막바지에 다다른 선거 사무실은 바쁘게 움직였다. 혜령과 지은도 아침에 오자마자 점심도 잊은 채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렇게 바쁘게 움직이면서도 모두들 활기차 보이는 것은 아마도 여론조사의 결과 때문일 것이다. 자신이 지지하고 자원봉사하는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경쟁자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앞서고 있다는 결과에 흥이 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자... 이제 슬슬 마무리하고 합동 연설 준비 합시다.”
지은도 흥이 났다. 여론 조사의 압승, 새로운 가족,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의 다시 여자로 만들어 준 한 남자 이런 모든 것이 그녀를 에너지가 넘치게 했다. 그녀는 일을 습득하는데 탁월했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며 그녀가 이런 선거 사무실의 베테랑으로 보여 질 것이다. 그러나 실상 그녀는 이번 선거가 첫 경험이고 그녀가 하는 모든 일은 거의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일을 잘해 내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이 혜령는 누구보다도 훌륭한 지원군이었다. 만약 그녀가 없었다면 이렇게 그녀가 치룰 첫 선거에서 이만한 성적을 거둘 수 없었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했다.
“지은아! 우리 아직 점심도 못 먹은거 같은데. 간단히 요기라도 좀 하자..”
“응! 언니.. 근데 배가 하나도 안고프네. 이 기사 좀 봐. 이건 뭐 거의 당선이야 당선.”
지은이 신문을 들고 한달음에 뛰어 와 펼쳤다. 이미 혜령도 본 기사였기에 혜령은 지은이 펼친 신문을 접고 무작정 지은을 데리고 사무실을 빠져 나왔다.
“아주머니, 김밥 이인분만 주세요. 아... 그 오뎅하고요..”
“아우... 우리 의원님께서도 이런 걸 잡수세요? 좋은 걸 잡수셔야죠.”
혜령은 사무실 근처 김밥 전문점에 다짜고짜 지은은 앉혀놓고 직접 주문을 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겉으로는 김밥을 내어주는 게 내키지 않은 것 같이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기분이 좋았다. 자신이 지지하는 국회의원 후보가 이런 곳에 온 것도 기분 좋았지만 정말 서민과 같이 가식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는 혜령 때문에 더 기분이 좋았다.
“자... 여기 의원님.. 김밥이요...”
김밥집 주인이 내온 김밥은 이미 만들어 놓은 다른 김밥보다 양과 질에서 차이가 났다. 특별히 그녀가 만든 것일 것이다.
“아유... 아주머니 이렇게 주시면 뭐가 남는다고... 에유.. 그냥 있는거 주심 되는데..”
“아녀.. 똑같은거예요..”
그녀는 그렇게 말을 흘리며 그녀의 본연의 자리인 김밥 만드는 작업장에 앉아 연신 싱글거리며 김밥을 말았다.
“자.. 먹어.. 이렇다 너나 나나 병나겠다. 끼니는 그때그때 먹어야지..”
혜령은 김밥 한 조각을 집어 지은의 입속에 넣어주면서 말했다. 그녀들이 정겹게 김밥을 먹는 모습을 어느새 모여든 사람들에게 작은 감동을 주고 있는 듯 어떤 중년의 여자는 눈에서 눈물을 찍어내고 있었다.
그녀들을 지켜보는 많은 시선 때문에 허겁지겁 입속에 김밥을 쑤셔 넣다시피 김밥을 먹고 다시 사무실에 왔을 때 그녀들 앞으로 정확히 말하면 지은이 앞으로 소포가 와 있었다.
“누구지?”
소포의 겉에는 ‘박혜령 후보 보좌관 앞’이라고만 쓰여 있었다.
“우와~ 좋겠다. 익명의 지지자... 흠... 샘나는데.. 풀러봐..”
“언니.. 아니.. 후보님은 농담도... 여태 이런 익명의 소포는 전부 의원님한테 온거였다구요.”
지은도 소포의 내용이 무척이나 궁금했다. 우선 흔들어 보니 둔탁하게 흔들리는 물건이 있었다. 조심스럽게 포장을 헤치고 상자의 뚜껑을 열어보니 그곳에는 세련된 구두 한 켤레가 있었다. 불현 듯 지은은 자신이 신고 있는 구두를 내려 보았다. 그동안 정신없이 선거 유세를 하던 터라 자신을 돌아볼 시간이나 여유를 갖지 못했다. 그것이 그녀의 구두에 그대로 남아있었다. 불투명하고 헤지고 심지어 굽은 언제 달았는지 플라스틱 굽 몸체까지 올라와 있었다.
“어머... 너무 이쁘다. 어쩜... 미안해.. 나도 미처 생각도 못했는데.. 잘 됐다. 그거 벗어 버리고 이거 신어봐.”
혜령은 손수 상자에서 구두를 꺼내 그녀의 발에 신겨 주었다. 구두는 맞춘 것처럼 지은의 발에 꼭 맞았다. 세련된 디자인의 검은색 정장 구두는 지은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 충분했다.
“딱 맞춤이네 맞춤이야..”
지은도 새 구두를 신고 이리저리 살피며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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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혁의 차안에서 혜원은 아무 말도 없이 앞만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된 일련의 정황을 머릿속에서 정리하고 있었다.
정희와 은숙을 남겨 두고 혜원이 먼저 모텔을 떠났었다. 은숙과의 통화로 확인해 본 것으로 정희와 은숙은 새벽녘에나 잠에서 깨 둘은 함께 모텔을 나왔고 지하철 첫 차를 타고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 후 은숙이 숙취에서 회복되어 정희와 소형차를 구입하려고 약속했던 것을 확인하려고 그녀의 집에 전화를 했고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정희가 그날 이후로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종종 그런 일이 있었기에 그녀나 정희 어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고 혜원의 전화를 받은 은숙은 큰 충격에 휩싸여 실신했다. 다행이 집에 다른 가족들이 있어서 그녀를 병원으로 옮겼다.
‘그러니까. 그날 정희 혼자 집에 가던 중에 납치됐을 가능성이 높아. 그리고 그 전에 종국이와 정희가 만났었다고 했으니까 그때 정희네 집을 알아 뒀을 꺼야. 그리고.... 탈영이라는게 문제인데...’
여기까지 그녀의 생각이 정리됐을 때 민혁이 차를 세웠다. 우선 계획을 세워야 했다. 혜원 말대로 경찰이 개입되면 그의 행동반경이 축소 될 수밖에 없다. 이유야 그동안의 일련의 사건과 현재 그의 신변상의 문제 때문이다. 그는 이 세상에 현재 있어야할 존재가 아니다. 그리고 납치범이 군, 그것도 해병대 탈영병이라면 살인 훈련을 받았을 것이고 혹시라도 무장을 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뉴스에는 그와 같은 탈영병 뉴스는 없었다. 아마도 사회적인 문제나 질책 때문에 군에서 쉬쉬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왜?”
“너랑 내가 같이 가면 안될 꺼야.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다면 정희씨의 목숨이 위태롭겠지. 여기서부터 혼자 가. 난 은밀하게 따라갈게. 내 능력 알지. 날 믿고.... 아무일 없을 거야.”
민혁의 말에 혜원은 다소 안심이 되었지만 그래도 그녀를 완전히 공포에서 해방 시켜주진 못했다.
“우선 그 기계과 창고의 위치를 자세하게 그릴 수 있을 만큼 그려봐.”
“응.. 그게..”
혜원은 기억을 더듬어 학교의 내부 구조물들의 위치를 그려 나갔다. 그리고 정희가 잡혀있을 장소로 가장 유력한 기계과 창고의 위치까지 그렸을 때 종이 위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그녀가 감당하기 힘든 상황임에는 틀림없었다.
한세대학교는 산 중턱을 깎아 세우고 대부분이 그렇듯 미래를 내다보고 건물을 증축 또는 신축한 것이 아니라서 매우 복잡했다. 그리고 최근 대대적인 학교 재개발로 대부분의 건물이 리모델링되거나 철거되고 한창 건물을 올리고 있었다. 본교 학생들은 본의 아니게 분교로 수업을 받아야 했고 그것이 싫은 학생들은 휴학을 하거나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하였다. 그래서 현재 학교에는 공사 인력만이 분주하게 왕래하고 있을 것이다. 기계과 창고는 학교의 건물 중 가장 높은 곳에 그리고 가장 후미진 곳에 있었다.
민혁은 어느 정도 위치가 파악되자 혜원을 먼저 내보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도 차에서 내려 그녀가 걸어간 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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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아... 얘들 올 시간 안됐니? 지금 쯤 왔어야 하는데...”
“언니... 솔직히 말해도 될까?”
“응? 뭘?”
“언니 같으면 민혁이랑 단 둘이 있는데 다른 게 생각나겠어?”
“.... 으.... 이것들...”
혜령이 분을 삭이는 사이 합동 연설장의 장내 스피커로 혜령의 이름이 불려졌다.
“언니! 언니 차례야.. 잘해.. 파이팅!”
혜령은 대답대신 다부진 표정으로 옷매무새를 고치며 당당하게 연단으로 걸어 나갔다. 장내에는 많은 시민들이 합동 연설을 지켜보기 위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많은 청중들은 그녀가 연단에 모습을 드러내자 우레와 같은 박수와 환호로 그녀를 맞아 주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인기를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일편에선 현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세력들이 그녀의 연설을 방해하기 위해 목이 터져라 자신들의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저런 것도 선거법 위반에 해당되지만 회장에 나와 있는 선거관리위원 중 어느 누구도 그런 그들의 행동에 제제를 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랑하는 은평구민 여러분. 저는 이 자리에 서있기 한없이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여러분들의 고통을 함께 해야 하지만 미천한 저는 그렇게 하질 못했습니다. 이 나라 이 겨레가 백성들 서민들 국민들의 힘으로 지금의 위치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저 국회의 위정자들은 자신들이 그것을 만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 서야할 분은 저도 아니고 위정자들도 아닌 여러분이어야 합니다.”
“와~~ 와~~ 박혜령.. 박혜령..”
“우~ 군발이 개보지는 물러가라...”
환호 속에 희미하게 들리는 야유가 혜령의 귀에는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딱!
어디선가 날라 온 돌멩이에 그녀의 이마에서 피가 흘렀다. 그런 모습을 본 청중들은 분노하며 여당 지지자들을 무언의 압력으로 회장에서 ?아내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혜령도 이마의 흘리는 피를 손수건으로 닦아내고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말을 이었다.
“절 너무도 사랑하신 분이셨나 봅니다.”
“와하하하.....”
장내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전.... 감히 말합니다. 이제껏 어느 정치인들도 이곳에 국민 여러분을 세우지 못했습니다. 저 박혜령... 여러분 모두를 이 자리에 서게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목소리가 더 크고 힘 있게 저 위정자들을 깨우치게 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혜령의 연설은 계속이어 졌고 청중들은 하나같이 그녀의 연설을 경청하며 자신들의 얼굴에 행복한 미소를 피우고 있었다.
그런 혜령을 험악한 얼굴로 쳐다보는 정한수는 이를 부득부득 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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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원은 자신의 눈을 통해 들어오는 상황이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바로 눈앞의 현실이었다. 그녀가 살아오면서 저와 같은 처참한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키키키 마이 프린세스. 뭘 그리 놀라시나?”
“이.....이....런.... 미... 친... 새... 끼...”
혜원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 나온 말에 놀랐다.
“저년은 아주 좋아 하더라고. 이런 변태 같은 년. 킬킬킬... 오죽 하고 싶었으면 칼로 보지를 쑤셔대냐? 킬킬킬...”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혜원은 다소나마 정신을 추수렷다. 그녀의 눈앞엔 정희가 발가벗겨진 체로 팔은 뒤로 묶여 치켜 올려져 정상적인 사람으로서는 취할 수 없는 형태로 매달려 있었고 다리는 벌어진 체 적나라하게 그녀의 보지를 드러내놓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보지는 이미 그 기능을 더 이상은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질구에 군용 대검이 깊숙이 자루만을 남긴 체 박혀 있었다. 출혈은 멎은 것처럼 보였지만 바닥에 고인 피로 보아 이미 많은 피를 흘린 것으로 보였다. 아직은 숨이 붙어 있는지 간헐적으로 몸에 경련이 있었고 작지만 분명하게 가슴이 오르내렸다.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다.
혜원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저 상태로는 얼마 되지 않아 목숨을 잃을게 뻔했다.
“이제 정희를 풀어줘... 저대로 두면 죽을꺼야.”
“킬킬킬... 죽게 내버려둬.. 저년은 죽어도 돼.. 킬킬킬...”
종국은 혜원의 주변을 돌면서 그녀의 자태를 감상하듯 위아래로 음흉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가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4년간의 대학 생활이 그에게는 오로지 여신 혜원을 보는 것으로 끝났다. 그녀의 졸업과 함께 군에 들어 갈 때까지 줄 곧 그는 혜원을 자신의 여신으로 믿고 지켜보았다. 심지어 그의 방에는 10대 여고생처럼 온 방안에 혜원의 사진으로 도배가 돼 있었고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 다녔다. 그러나 그의 스토킹은 학교 내에서 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녀는 항상 사람들에 휩싸여 있었고 따르는 친구들도 많았다. 교내 밖에서 그녀를 스토킹 했다면 그는 법적이 조치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학교 안에서는 그냥 같은 학교 학생이기 때문에 우연이라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었다. 우연히 지나가다 그녀의 눈에 종국이 들어올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우연이지만 종국에게는 미행이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대학교 1~2학년 때 군대를 간다. 그러나 그는 4년 동안 그녀를 쫓아다니기 위해 한번은 연장 신청을 했고 한번은 스스로 팔을 부러트렸으며 한번은 좀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4학년 때는 해병대 지원으로 6개월 정도 연장을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의 아니 자신의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그는 해병대에 입대하게 된 것이다.
“조금이라도 그녀를 살리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게 좋을 거야.”
“무슨... 내가 뭘 하는 되는데?”
혜원은 정희를 살릴 수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가 섹스를 요구한다면 자신 또한 극단의 방법을 써야 할지도 모를 것이다.
“킬킬킬.... 난 어차피 끝났어. 군에서도 내부반에 수류탄 한 5개는 까고 나왔으니까. 그것도 내가 한 5초간 들고 있었으니까... 킬킬킬 넌 모르겠지... 공중에서 수류탄 5개가 한 번에 폭발하는 순간.... 킬킬킬 내가 왜 그랬는지 알아?”
“....”
“김병장이라는 개새끼가 니사진에 그 새끼의 더러운 입술을 대버린 거야... 내 프린세스의 입술에... 그래서 눈이 돌아 버렸지... 그 새끼 대갈빡에 딱총 세 방 정도 쏘니까 더 이상 쏠만한 대갈빡이 없더라고 다 날아가 버렸어. 킬킬킬... 나도 안해본 키스를 그 새끼가.... 으.....”
종국은 그때의 상황이 생각나는지 분을 참지 못하고 앞에 있던 철제의자를 걷어찼다. 그 철제의자는 공교롭게도 날아가 정희의 몸에 부딪쳤다. 그 충격으로 정희의 보지에 쑤셔 박혀 있던 대검이 조금 빠지면서 한 뭉텅이의 피가 쏟아졌다.
“아악..... 하지마... 하지마...”
“킬킬킬... 저년은 내버려둬... 마이 프린세스...”
“내가 뭘 하면 돼? 뭘 하면 풀어 줄거야? 정희는 빨리 병원에 가야한다고.”
“킬킬킬... 저년을 살리고 싶어? 그럼 벗어!”
혜원은 결국 우려했던 일이 버러진 이 상황이 지옥 같이 느껴졌다.
‘오빠... 제발... 민혁오빠...’
사실 민혁이 왔다면 벌써 어떤 행동을 취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있는 곳에는 민혁이 없었다. 민혁과 혜원이 예상했던 장소는 정확하게 맞았다. 그러나 그녀가 그려준 지도가 문제였다. 교내에는 공사중이라서 이정표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려준 지도 상의 이 장소는 반대편에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 민혁은 있지도 않은 곳에서 그녀를 찾고 있을 것이었다.
혜원은 천천히 손을 들어 셔츠의 단추를 풀다가 사뭇 놀라며 움직임을 멈췄다. 지금 그녀가 옷을 벗는다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경우와 같았다.
‘어쩌지....’
혜원은 민혁의 집에서 입고 있던 붉은색 레진 팬티와 브라를 그대로 입고 있는 상태였다. 너무 경황이 없던 터라 그 상태에서 바지와 셔츠만 입고 집을 나선 것이다.
“킬킬킬... 역시 안되겠어? 저년은 그럼 죽어... 아니 내가 이렇게 할꺼야.”
종국은 정희를 향해 손에 짚이는 벽돌을 던졌다. 벽돌은 정희의 몸통을 가격했고 또 한번 정희의 보지에선 핏덩이가 쏟아져 내렸다.
“아악... 아니.. 할게.. 할게..”
혜원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셔츠의 단추를 풀고 이내 바지까지 벗어 붉은색 레진 브라와 팬티를 걸친 육감적인 몸매를 드러냈다.
종국의 눈에 종국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나타난 것이다. 적어도 자신의 프린세스는 이러면 안 되는 것이다. 순결한 공주여야 했다. 이런 뇌쇄적인 속옷을 입는 공주는 없다. 적어도 종국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아악.... 아니야... 아니야... 니가 왜 이래? 넌 순백색의 속옷을 입고 있어야 한다구..”
종국은 미친 듯이 뛰어 다녔다. 말 그대로 발광하는 미치광이의 그 모습이었다. 그의 눈에 K-2 소총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 앞에 붉은색 레진 속옷을 입은 자신의 프린세스는 잘 못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그녀는 하늘거리는 레이스 달린 순백색의 속옷이 아니라면 적어도 순백색이어야 했다. 저런 추잡한 색깔이 아니었다. 종국은 K-2 소총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혜원을 향해 총구를 겨눴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 내렸다.
“이런 모습을 보려고 그곳에서 온 게 아니야.... 으으... 잘못됐다고..”
종국은 총구를 거둬 자신의 입속에 넣었다. 그러다 다시 그녀를 향해 겨눴다. 그는 이미 모든 생각을 정리 한 듯 했다. 그녀를 쏘고 자신도 자살할 생각이었다. 잠깐 동안은 그래도 자신의 프린세스였던 혜원을 두고 자살 하려고 생각도 들었지만 그녀도 더 이상은 프린세스가 아니었다. 그의 눈에서 다시 한 번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 내렸다.
‘쉬익~’
그 순간 바람을 가르는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사람의 인영으로 보이는 물체가 도저히 사람의 움직임이라고 보기 힘든 움직임으로 종국 쪽을 향해 치달았다. 종국의 오른 손의 신경은 정확하게 날카로운 마찰음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단도로 인해 끊어져 손가락에 힘을 줄 수 없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신의 앞을 밀고 들어온 인영의 무릎이 자신의 얼굴에 부딪쳤을 때 그의 기억은 거기서 끝이 났다. 단 한방으로 상황을 종료시킨 인영이 사뿐히 내려앉았다. 그리고 아직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는 혜원의 앞으로 몸을 움직였다.
“어이~ 정신 차리라고 공주님...”
민혁은 부드러운 미소를 가득 머금고 혜원의 앞에 섰다. 그리고 그녀를 가볍게 안아 주었다. 그제야 혜원의 눈에서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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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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