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띠리리링,띠리리링.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여기가 어디지...?..."
잠시 어제의 일을 생각해본다.
"아, 그래 송선생님을 만났었지...."
어제의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난다....
소영이....
후우 대체 왜 그랬을까....마치 강간하듯이....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오재오..! 이 인간...! 더러운 수법을 쓰다니...."
한숨을 쉬면서 몸을 일으킨다. 소영이는 이미 갔는지 넓찍한 방에 혼자만 남겨져 있다.
미안하단 말이라도 해야겠는데 뭐 어쩔 수 없다.
사무실로 가는 길에 해장국집에 들렀다.
"후우. 속이라도 풀고 들어가야지..."
뼈해장국을 하나 시켜놓고 물을 한잔 들이킨다.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다.
얼마 전에도 평창동 주택 설계 의뢰가 들어왔었는데 중간에 이재오 이 인간이 가로채 갔었다.
이번엔 정말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끝나버리다니......
해장국이 나오고 후후 불어가면서 먹다가 문득 이대로 끝내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는 거야...!"
얼마 남지 않은 해장국을 마지막 국물까지 후루룩 마셔버리고 일어났다.
"그래. 해보는 거야! 힘내자!"
사무실로 들어와 의자에 등을 기대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저기....소장님....?..."
눈을 떠보니 김실장이 죄지은 사람처럼 앞에 서 있다.
"그래....오늘 9시에 회의하기로 했었지...."
"다들 오라 하세요."
회의가 시작됐다.
솔직히 회의라 할 것도 없다.
각자 아이디어랍시고 갖고 왔는데, 하루만에 만들어 온 거에 뭐 기대할 거나 있을라나...
일단은 확 깨주고 정신 바짝 차리게 한 후에 굴리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하는둥 마는둥 할 게 뻔하니....
"아니. 가영씨. 그게 뭐야?! 머리는 폼으로 달고 있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너무 유치하잖아"
직원들을 한번씩 쳐다보면서 말한다.
"다들 잘 들으세요. 3일간 시간 더 드립니다. 대충 할 생각은 버리세요!
3일 후 9시에 다시 회의합니다. 확실하게 준비해 오세요."
회의를 대강 마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도 없다. 이미 현상 설계에 참여하는 거로 결정이 나 있는데, 안 될 거 뻔히 알더라도 대강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강 했다가 챙피라도 당하면 이 업계에서 살아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될 거 뻔히 알면서 이 일에 전력을 다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어떻게 한다......"
후우....
일단은 심사위원이 누군지라도 알아야 할 것 같다.
송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보자. 설마 어제 일도 있는데 모른 체하진 않겠지....
신호음이 몇번 울리다가 선생님이 전화를 받는다.
"네"
"아,선생님 저 김민성입니다. 어젠 잘 들어가셨는지요?"
"오, 자네. 그래 잘 들어갔지. 자넨 잘 들어갔는가?"
"전 잘 들어왔죠. 하하. 사모님한텐 안 들키고 잘 들어가셨습니까 후후"
"예끼, 사람도 참. 허허"
"아, 선생님. 다름이 아니구요. 제가 이번 현상 설계에 거는 기대가 좀 컸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발을 뺄 수는 없습니다....."
"으음...그렇긴 하겠지...."
"그래서 말인데....죄송하지만 심사위원이 누군지 혹시 알아봐주실 수 없나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
"선생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에겐 사활이 걸린 일입니다!"
"음, 이러면 안된다는 거 잘 알지 않는가"
"정말 절박해서 그럽니다. 제가 언제 이런 부탁 선생님에게 한 적 있습니까?"
"음... 자네 심정은 이해한다만....."
잠시 침묵이 흐른다....
"음....확실하진 않네만 이번엔 국가적인 프로젝트인만큼 정치인도 포함돼 있다는 모양일세. 원랜 가르쳐주면 안되는 거지만 자네니 특별히 알려주는 걸세.
이익훈 의원. 박지만 의원. 김성조 서울대 교수. 이민호 연세대 교수. 이세윤 서울시장일세."
"감사합니다. 선생님"
전화를 끊고 메모지에 이름들을 적어두었다.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온다....
후우....
이익훈 의원이면 집권당인 자유당의 실세 중 하나....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이다.
오재오와 특별히 친분이 있는 정치인이다....
박지만 의원이라면 대쪽 같은 성품에 직언을 마구 날려주시는 요즘 최고 인기의 정치인이다.
얼굴도 잘 생긴 편이고 특히 여성 단체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김성조 교수나 이민호 교수는 뭐 말할 것도 없이 오재오 쪽의 인물이다....
이거 뭐 이빨도 안 들어가게 생겼다.
괜히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의욕만 더 사라지게 생겼다....
잠이나 한숨 자야겠다......
의자를 뒤로 눕히고 눈을 감는다.
따르르릉.....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다....
후우. 한참 잘 자고 있었는데
"소장님, 전화입니다."
"네, 김민성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신민당 박지만 의원입니다"
헉;;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전화로 할만한 얘기는 아닌데....음...지금 바쁘신가요?"
"아닙니다"
"아 그러면 지금 시간 내주실 수 있나요?"
"네 물론이죠"
눈에 생기가 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심사위원단 쪽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걱정했었는데 제발로 찾아오다니...!
약속시간에 맞춰서 여의도 한 커피熾?들어갔다.
"이렇게 오시라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좀 일이 바빠서 허허"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음, 다름이 아니라 이번 현상 설계 일로 좀 알아볼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이번에 현상 설계 참여하시는 거 맞죠?"
"아...네...."
"....사실 이번 현상 설계 건에 비리가 있는 거 같아서 연락 드렸습니다. 저를 제외한 심사위원단이 다 보수당 쪽 인물들이고 오재오의 현상설계 당선이 정해졌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김민성 씨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헛수고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알고 계셨습니까?"
"....네...."
"음, 알고 계셨다면 얘기가 빠르겠군요. 실은 그 문제를 밝혀내기 위해서 특별히 검사 한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아, 마침 저기 오는군요"
고개를 돌려보니 짧은 머리에 강한 인상의 청년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인사하시죠. 이 쪽은 문재성씨. 촉망받는 검사입니다. 제가 특별히 아끼는 후배이기도 하구요"
"안녕하십니까. 문재성입니다"
"그리고 이 쪽은 아주 실력 있는 건축가 김민성 씨입니다. 이번 63빌딩 현상 설계에 참여하기로 한 분이구요"
"안녕하세요. 김민성입니다"
문재성....나는 그를 알고 있다. 나하고 같은 89학번. 서울대 동기. 전체 수석으로 입학한 사내였다.
"아. 알고 있습니다. MIT 도서관 현상 설계로 국제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사실 저하고 동문입니다."
"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같은 학번이었고 전체 수석을 했었죠. 하하. 뭐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허허. 이거 동창회 분위기군요. 저도 같은 학교 졸업생이고 재성이 직계 선배입니다 하하. 이거 다들 제 후배였군요"
"아, 선배님이셨군요. 하하"
분위기가 살짝 부드러워진듯하다.
정치인이라길래 조금은 긴장했던 게 사실이었는데 선배라고 생각하니 조금 편해진다.
"선배님,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그래그래,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네"
"그래, 그럼 편하게 말하지.
사실 이번 일은 잘만 되면 나에게도 기회야.
민성이 너도 해외에서나 유명했지 국내에선 아직 자리를 못 잡았다던데.
이번 기회에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기회고.
재성이 너도 이익훈이라는 거물을 잡아서 스타 검사가 될 수 있는 기회고.
나로서도 다음 대선 전에 내 이름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야"
뭔가 엄청난 말이 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난 평범한 국민일 뿐인데......
"그, 그래서 어떻게 한다는 얘기입니까...?"
"뭐 간단한 얘길세. 이번 일은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 아닌가?
그런데 이것들이 담합을 한데다 뇌물 수수 비리까지 있지. 우리 뿐만이 아니라 국민의 혈세까지 낭비하게 생겼어.
이걸 바로잡자는 걸세. 자네는 뭐 별로 할 게 없어. 뒷조사에 필요한 자금만 좀 대주고 오재오라는 놈의 비리 정도만 증언해주면 되네"
음...결국 돈을 요구하는 건가....
그렇다고 발을 뺄 수도 없다. 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띠리리링,띠리리링.
"아 저 잠시 전화 좀 받겠습니다"
문재성이다.
"그러게"
"실례하겠습니다"
남이 들으면 안되는 내용인지 멀리 가서 받는다.
잠시 후에 온 재성은 급한 일이 생겼다며 일어나고, 박지만 의원도 다음에 또 보자며 나갔다.
차에 시동을 걸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골똘히 생각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빠져나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에라, 될대로 되라. 어떻게든 되겠지!"
-----------------------------------------------------------------------------------------------------
문재성. 그는 이미 촉망받는 검사다.
3년이 넘는 검사 생활 중에 실패 한 번 없는 엘리트 검사이다. 남들이 보면 빈틈 하나 없는 완벽주의자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신경질적으로 차를 몰고 있다.
이번에 맡은 사건은 정말 큰 사건이다.
63빌딩 테러 용의자 리명진. 북파 공작원.
누가 봐도 대박의 기회다. 이 놈이 누군가. 대한항공 여객기에 잠입해서 조종사를 협박한 후 63빌딩에 충돌시켜서
산산조각을 낸 후 자신은 유유히 탈출한 극악무도의 죄인이 아닌가.
그런 놈을 체포하여 법정에 세우고 처벌하면 나는 단숨에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놈은 혐의 자체를 부인하지 않지만 음모가 있다고, 억울하다고 한다.
그런 게 뭔 대수인가. 탑승자 명단에 리명진의 일본 이름인 가네모토가 분명히 찍혀져 있고, 죽었어야 마땅할 이 놈이 살아있다는 게 피해갈 수 없는 증거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대로 신경 안 쓰고 구형을 내리더라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그런 것에 신경 쓰는 게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확실한 결론이 정해진 사건이 또 있을까?!
하지만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검문 차량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후우, 짜증나네"
"야 임마 무슨 일인데 길을 가로막고 있어?!"
저 쪽에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경찰 한명이 걸어온다.
"검문 중입니다. 공무집행 방해죄로 끌려갈 수도 있습니다"
"나 대한민국 검찰이야 임마. 빨리 길 뚫어"
신분증을 보인 내게 가볍게 거수를 한 놈이 재수없다는 표정으로 길을 내준다.
요즘따라 검문이 잦다. 비상사태는 비상사태지만 기회가 왔다는 식으로 이렇게 공권력을 동원하는 정부라니....
민주주의를 10년 이상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던 정권이니 이런 기회가 더 반갑기도 할 것이다.
다시 생각에 잠겨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가 않다.
4월 2일.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더라면 리명진은 테러를 성공시키고 유유히 이 도시를 떠났으리라.
박씨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사람은 테러범으로 추정되는 수상한 사람이 묵고 있는 집을 안다고.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수상하다 생각했었는데 오늘 온 몸이 젖은 채로 들어왔다고. 수상하다는 연락이 왔다.
자신도 혼자 사는 처지라 가끔 술도 한잔씩 하고 했다는데 술에 취하면 좀 있으면 자기가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될 거고 그 일만 끝나면 팔자 피게 되는 거라며 자랑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오늘 들어왔다는 것이다.
경찰들을 이끌고 쳐들어간 그 집에는 정말로 리명진이 숨어 있었고, 권총과 나이프 등이 증거물로 나왔다.
가네모토라고 써 있는 여권도 나왔다.
조서실 문을 확 열고 들어갔다.
"야 이 새끼야.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 넌 빼도박도 못해. 이렇게 증거들이 나왔고 증인까지 있어 이놈아.
옆집 사는 박씨 알지? 그 사람이 다 불었어!"
리명진이 나를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뭘 쳐다봐 이 새끼야!"
난 조서를 들어서 그놈의 머리를 툭 내려치고 다시 펜을 집어든다.
"누가 시켰어? "
"..................."
"아, 씨발 누가 시켰냐고?!"
"..................."
"후우. 소모전은 하지 말자. 누가 시켰냐고"
"박씨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너 박씨 몰라? 옆집 사는 박씨!"
"모르는 사람입니다"
돌아버리겠다. 이놈이 이런 상황인데도 발뺌을 하네.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다. 이러저러해서 박씨라는 네 옆집 사람이 신고를 해서 널 잡으러 간 거였다고.
"그 박씨라는 사람 대질 심문 좀 시켜 주십쇼"
"야 임마. 이제 와서 대질 심문이란 게 의미가 있어?! 그냥 네 죄만 인정하면 될 거 아냐!"
"불러주시면 다 말하겠습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안 들어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질 심문을 시켜주면 다 불겠다니......
심문실을 나와서 저장해놨던 박씨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이 어이없는 시츄에이션은 뭐야?!"
난 다시 한번 걸어본다.
"지금 거신 번호는....."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덮는다.
그리고 옆에 경찰 한명을 시켜서 주소를 알려주면서 박씨라는 인물을 찾아오라고 시켰다.
"후우...."
"내가 오늘 내로 찾아다 줄 테니까 그냥 순순히 불어. 이렇게 버텨봐야 너한테 좋을 거 하나 없어."
"불러 주십쇼. 얘길 해봐야겠습니다"
"아, 씨발!"
의자를 발로 걷어차면서 나왔다.
담배를 한대 물고 불을 붙힌다. 일단 머리를 식혀야 한다. 이럴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애초에 저놈의 자백 따위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옆집 박씨의 증언. 그리고 저 놈의 집에서 나온 총. 이런 것들만 봐도 저놈의 범행은 명백하다. 이제 나는 앉아서 박씨가 오는 것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어이 자네. 저 놈 설렁탕이나 한그릇 시켜줘. 뭘 좀 먹여야 조서라도 쓰지"
"넵"
나도 내 방에 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쉬어야겠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깜박 졸았나보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조금 피곤했나보다. 박지만 선배님이 내일 보자고 했는데
후딱 마무리짓고 좀 쉬어야겠다.
"문검사님. 찾아가봤었는데 박씨란 인물은 없었습니다"
아까 그 경관이다.
"뭔소리야? 증인이 사라졌다니"
"제가 찾아봤는데 옆집 뿐만이 아니라 그 건물에 박씨 성을 가진 이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뭐야?!"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이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이란 말인가.
"알았어. 나가 봐요"
경관을 내보내고 생각에 빠진다.
쉽게 생각했던 사건인데 이렇게 꼬일지는 몰랐다.
하지만 자백 따윈 받을 필요도 없다. 그놈의 집에선 총기가 나왔고 그것만으로도 분명 기소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난 조서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끼이익-
문 여는 소리가 이렇게 소름끼치게 들린적은 없었다.
의자를 당겨 앉고 리명진을 노려보았다.
"아직도 자백할 마음이 들지 않은 건가"
"증인은 언제 오는 겁니까?"
"곧 올 걸세. 일단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얘길 좀 하지"
"증인이 오기 전까진 얘기 못합니다"
열이 확 치솟는다.
"야 이 새끼야 넌 양심도 없어?! 죄 없는 국민이 백명이 넘게 죽었어! 너 한 놈 때문에! 그러고도 넌 뭔 놈의 증인 타령이야?!"
".........."
아 냉정해야 되는데 도저히 냉정해질 수가 없다.
"전 범인 아닙니다. 증인이라는 사람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이죠? 냉정하게 생각해보십쇼. 그렇게 큰 사건을 일으킬 저였다면 그렇게 허술하게 일반인과 친분을 가졌겠습니까? 그 집도 제가 계약한 게 아니고 당에서 정해준 집으로 들어간 것 뿐입니다.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고 술을 마시며 얘기했다는 건 어처구니 없을 따름입니다. 제가 정말 테러범이라면 그렇게 허술하게 제 신분을 노출 시켰을까요?!"
나를 정면에서 바라보면서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그.....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눈 앞에서 왠지 내 쪽에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내가 왜 이러지?! 그는 명백한 범죄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네 집에서 나온 권총은 뭐란 말이냐! 그런 증거를 가지고도 아니라고 계속 말할 건가?!"
"제가 정말 항공기를 납치해서 테러를 가한 범죄자라면, 그 권총이 필요했겠습니까? 금속 탐지기에 걸릴 게 뻔한 그런 물건이 필요했겠습니까?"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듯했다. 어떤 순간에도 합리적인 사고를 했다고 자부했던 내가 논리에서 밀리고 있다니.....
그런데 사실이었다. 나는 완벽할 정도로 딱딱 들어맞는 물증과 정황 증거에 의심 한번 안 하고 내심 결론짓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후우...그래....제보자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제보자는 있었고, 실제로 그 집에 네가 있었고, 너의 집에서 수상한 증거물들이 나왔어. 그래, 총만 해도 그래. 네가 테러를 했던 안 했던 그거 하나로 너 집어넣는 건 일도 아니야. 게다가 넌 이미 정황 증거만으로도 빼도박도 못해"
"............."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나도 왠지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단지 그의 눈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동안의 침묵을 깨고 그가 말을 꺼냈다.
"제 말을 믿어줄 수 있겠습니까?"
"....."
"저는 북파 공작원이 맞습니다"
당연하겠지. 누가 그걸 몰라서 가만 있나?!
"저에겐 여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그 애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나왔습니다. 지금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죠. 헤어진지 10년이 넘었는데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길래 왔습니다. 총도 안전을 위해서 지급받은 것입니다. 이건 정말 거짓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어떤 임무가 하나 있는데 임무는 나중에 알려주겠다. 일단은 지정된 집에 가서 기다려라. 임무는 극비 사항이니 나중에 하달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임무가 끝나면 여동생을 만나게 해주겠다 했습니다"
이 무슨 허무맹랑한 얘기란 말인가?!
"리명진. 당신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안 믿어주셔도 상관없습니다.이건 사실입니다. 믿든 안 믿든 동무의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
"제 여동생의 이름은 리명숙입니다. 알아봐주십시오. 저도 절박한 상황입니다. 문재성 동지가 믿을만한 사람이라 느껴져서 말하는 겁니다"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버린다.
머릿 속이 복잡하다.
난 보조관에게 비밀리에 리명숙이라는 여자에 대해 조사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내일은 박지만 선배님과 약속이 있다.
바쁜 나날이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선배님과의 약속이다.
게다가 이번엔 내가 부탁한 일이기도 했다.
이 사건이 이리 질질 끌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머리가 아파온다.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하나 들고 뚜껑을 딴다.
후우...일단 머리를 비워보자......
소설은 처음 써 보는데 이게 쉽지가 않네요.....
갈수록 졸필이 되는 것 같습니다......
띠리리링,띠리리링.
핸드폰 알람 소리에 잠이 깼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여기가 어디지...?..."
잠시 어제의 일을 생각해본다.
"아, 그래 송선생님을 만났었지...."
어제의 기억이 어렴풋이 되살아난다....
소영이....
후우 대체 왜 그랬을까....마치 강간하듯이....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오재오..! 이 인간...! 더러운 수법을 쓰다니...."
한숨을 쉬면서 몸을 일으킨다. 소영이는 이미 갔는지 넓찍한 방에 혼자만 남겨져 있다.
미안하단 말이라도 해야겠는데 뭐 어쩔 수 없다.
사무실로 가는 길에 해장국집에 들렀다.
"후우. 속이라도 풀고 들어가야지..."
뼈해장국을 하나 시켜놓고 물을 한잔 들이킨다.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다.
얼마 전에도 평창동 주택 설계 의뢰가 들어왔었는데 중간에 이재오 이 인간이 가로채 갔었다.
이번엔 정말 절호의 기회라 생각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끝나버리다니......
해장국이 나오고 후후 불어가면서 먹다가 문득 이대로 끝내버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는 거야...!"
얼마 남지 않은 해장국을 마지막 국물까지 후루룩 마셔버리고 일어났다.
"그래. 해보는 거야! 힘내자!"
사무실로 들어와 의자에 등을 기대고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저기....소장님....?..."
눈을 떠보니 김실장이 죄지은 사람처럼 앞에 서 있다.
"그래....오늘 9시에 회의하기로 했었지...."
"다들 오라 하세요."
회의가 시작됐다.
솔직히 회의라 할 것도 없다.
각자 아이디어랍시고 갖고 왔는데, 하루만에 만들어 온 거에 뭐 기대할 거나 있을라나...
일단은 확 깨주고 정신 바짝 차리게 한 후에 굴리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안 하면 하는둥 마는둥 할 게 뻔하니....
"아니. 가영씨. 그게 뭐야?! 머리는 폼으로 달고 있어? 생각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너무 유치하잖아"
직원들을 한번씩 쳐다보면서 말한다.
"다들 잘 들으세요. 3일간 시간 더 드립니다. 대충 할 생각은 버리세요!
3일 후 9시에 다시 회의합니다. 확실하게 준비해 오세요."
회의를 대강 마친 나는 다시 생각에 잠긴다....
이제 와서 발을 뺄 수도 없다. 이미 현상 설계에 참여하는 거로 결정이 나 있는데, 안 될 거 뻔히 알더라도 대강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대강 했다가 챙피라도 당하면 이 업계에서 살아나갈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안될 거 뻔히 알면서 이 일에 전력을 다 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어떻게 한다......"
후우....
일단은 심사위원이 누군지라도 알아야 할 것 같다.
송선생님에게 전화를 걸어보자. 설마 어제 일도 있는데 모른 체하진 않겠지....
신호음이 몇번 울리다가 선생님이 전화를 받는다.
"네"
"아,선생님 저 김민성입니다. 어젠 잘 들어가셨는지요?"
"오, 자네. 그래 잘 들어갔지. 자넨 잘 들어갔는가?"
"전 잘 들어왔죠. 하하. 사모님한텐 안 들키고 잘 들어가셨습니까 후후"
"예끼, 사람도 참. 허허"
"아, 선생님. 다름이 아니구요. 제가 이번 현상 설계에 거는 기대가 좀 컸었는데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대로 발을 뺄 수는 없습니다....."
"으음...그렇긴 하겠지...."
"그래서 말인데....죄송하지만 심사위원이 누군지 혹시 알아봐주실 수 없나 해서 전화 드렸습니다...."
"....."
"선생님. 제발 부탁드립니다. 저에겐 사활이 걸린 일입니다!"
"음, 이러면 안된다는 거 잘 알지 않는가"
"정말 절박해서 그럽니다. 제가 언제 이런 부탁 선생님에게 한 적 있습니까?"
"음... 자네 심정은 이해한다만....."
잠시 침묵이 흐른다....
"음....확실하진 않네만 이번엔 국가적인 프로젝트인만큼 정치인도 포함돼 있다는 모양일세. 원랜 가르쳐주면 안되는 거지만 자네니 특별히 알려주는 걸세.
이익훈 의원. 박지만 의원. 김성조 서울대 교수. 이민호 연세대 교수. 이세윤 서울시장일세."
"감사합니다. 선생님"
전화를 끊고 메모지에 이름들을 적어두었다.
생각할수록 한숨만 나온다....
후우....
이익훈 의원이면 집권당인 자유당의 실세 중 하나....온갖 비리에 연루되어 있다는 소문이다.
오재오와 특별히 친분이 있는 정치인이다....
박지만 의원이라면 대쪽 같은 성품에 직언을 마구 날려주시는 요즘 최고 인기의 정치인이다.
얼굴도 잘 생긴 편이고 특히 여성 단체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김성조 교수나 이민호 교수는 뭐 말할 것도 없이 오재오 쪽의 인물이다....
이거 뭐 이빨도 안 들어가게 생겼다.
괜히 들었다는 생각이 든다....의욕만 더 사라지게 생겼다....
잠이나 한숨 자야겠다......
의자를 뒤로 눕히고 눈을 감는다.
따르르릉.....
전화벨 소리에 잠이 깬다....
후우. 한참 잘 자고 있었는데
"소장님, 전화입니다."
"네, 김민성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신민당 박지만 의원입니다"
헉;;
"네. 그런데 무슨 일이시죠...?"
"전화로 할만한 얘기는 아닌데....음...지금 바쁘신가요?"
"아닙니다"
"아 그러면 지금 시간 내주실 수 있나요?"
"네 물론이죠"
눈에 생기가 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쩌면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건지도 모르겠다.
안 그래도 심사위원단 쪽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나 걱정했었는데 제발로 찾아오다니...!
약속시간에 맞춰서 여의도 한 커피熾?들어갔다.
"이렇게 오시라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좀 일이 바빠서 허허"
"아닙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음, 다름이 아니라 이번 현상 설계 일로 좀 알아볼 게 있어서 전화 드렸습니다.
이번에 현상 설계 참여하시는 거 맞죠?"
"아...네...."
"....사실 이번 현상 설계 건에 비리가 있는 거 같아서 연락 드렸습니다. 저를 제외한 심사위원단이 다 보수당 쪽 인물들이고 오재오의 현상설계 당선이 정해졌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김민성 씨가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헛수고로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는 거죠. 알고 계셨습니까?"
"....네...."
"음, 알고 계셨다면 얘기가 빠르겠군요. 실은 그 문제를 밝혀내기 위해서 특별히 검사 한분을 모시려고 합니다. 아, 마침 저기 오는군요"
고개를 돌려보니 짧은 머리에 강한 인상의 청년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었다.
"인사하시죠. 이 쪽은 문재성씨. 촉망받는 검사입니다. 제가 특별히 아끼는 후배이기도 하구요"
"안녕하십니까. 문재성입니다"
"그리고 이 쪽은 아주 실력 있는 건축가 김민성 씨입니다. 이번 63빌딩 현상 설계에 참여하기로 한 분이구요"
"안녕하세요. 김민성입니다"
문재성....나는 그를 알고 있다. 나하고 같은 89학번. 서울대 동기. 전체 수석으로 입학한 사내였다.
"아. 알고 있습니다. MIT 도서관 현상 설계로 국제적으로 유명한 건축가를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사실 저하고 동문입니다."
"아, 저도 알고 있습니다. 같은 학번이었고 전체 수석을 했었죠. 하하. 뭐 개인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허허. 이거 동창회 분위기군요. 저도 같은 학교 졸업생이고 재성이 직계 선배입니다 하하. 이거 다들 제 후배였군요"
"아, 선배님이셨군요. 하하"
분위기가 살짝 부드러워진듯하다.
정치인이라길래 조금은 긴장했던 게 사실이었는데 선배라고 생각하니 조금 편해진다.
"선배님, 말씀 편하게 하십시오"
"그래그래, 이렇게 만나니 정말 반갑네"
"그래, 그럼 편하게 말하지.
사실 이번 일은 잘만 되면 나에게도 기회야.
민성이 너도 해외에서나 유명했지 국내에선 아직 자리를 못 잡았다던데.
이번 기회에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기회고.
재성이 너도 이익훈이라는 거물을 잡아서 스타 검사가 될 수 있는 기회고.
나로서도 다음 대선 전에 내 이름을 전 국민에게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놓칠 수 없는 기회야"
뭔가 엄청난 말이 오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난 평범한 국민일 뿐인데......
"그, 그래서 어떻게 한다는 얘기입니까...?"
"뭐 간단한 얘길세. 이번 일은 국가적 차원의 프로젝트 아닌가?
그런데 이것들이 담합을 한데다 뇌물 수수 비리까지 있지. 우리 뿐만이 아니라 국민의 혈세까지 낭비하게 생겼어.
이걸 바로잡자는 걸세. 자네는 뭐 별로 할 게 없어. 뒷조사에 필요한 자금만 좀 대주고 오재오라는 놈의 비리 정도만 증언해주면 되네"
음...결국 돈을 요구하는 건가....
그렇다고 발을 뺄 수도 없다. 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으니까.
띠리리링,띠리리링.
"아 저 잠시 전화 좀 받겠습니다"
문재성이다.
"그러게"
"실례하겠습니다"
남이 들으면 안되는 내용인지 멀리 가서 받는다.
잠시 후에 온 재성은 급한 일이 생겼다며 일어나고, 박지만 의원도 다음에 또 보자며 나갔다.
차에 시동을 걸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골똘히 생각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이제 빠져나갈 수 없게 됐다는 것이다.
"에라, 될대로 되라. 어떻게든 되겠지!"
-----------------------------------------------------------------------------------------------------
문재성. 그는 이미 촉망받는 검사다.
3년이 넘는 검사 생활 중에 실패 한 번 없는 엘리트 검사이다. 남들이 보면 빈틈 하나 없는 완벽주의자로 비춰지기도 한다.
하지만 지금은 거의 신경질적으로 차를 몰고 있다.
이번에 맡은 사건은 정말 큰 사건이다.
63빌딩 테러 용의자 리명진. 북파 공작원.
누가 봐도 대박의 기회다. 이 놈이 누군가. 대한항공 여객기에 잠입해서 조종사를 협박한 후 63빌딩에 충돌시켜서
산산조각을 낸 후 자신은 유유히 탈출한 극악무도의 죄인이 아닌가.
그런 놈을 체포하여 법정에 세우고 처벌하면 나는 단숨에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이 놈은 혐의 자체를 부인하지 않지만 음모가 있다고, 억울하다고 한다.
그런 게 뭔 대수인가. 탑승자 명단에 리명진의 일본 이름인 가네모토가 분명히 찍혀져 있고, 죽었어야 마땅할 이 놈이 살아있다는 게 피해갈 수 없는 증거가 아니면 뭐란 말인가.
이대로 신경 안 쓰고 구형을 내리더라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오히려 그런 것에 신경 쓰는 게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확실한 결론이 정해진 사건이 또 있을까?!
하지만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검문 차량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후우, 짜증나네"
"야 임마 무슨 일인데 길을 가로막고 있어?!"
저 쪽에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경찰 한명이 걸어온다.
"검문 중입니다. 공무집행 방해죄로 끌려갈 수도 있습니다"
"나 대한민국 검찰이야 임마. 빨리 길 뚫어"
신분증을 보인 내게 가볍게 거수를 한 놈이 재수없다는 표정으로 길을 내준다.
요즘따라 검문이 잦다. 비상사태는 비상사태지만 기회가 왔다는 식으로 이렇게 공권력을 동원하는 정부라니....
민주주의를 10년 이상 후퇴시켰다는 평가를 받던 정권이니 이런 기회가 더 반갑기도 할 것이다.
다시 생각에 잠겨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석연치가 않다.
4월 2일.
한 통의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더라면 리명진은 테러를 성공시키고 유유히 이 도시를 떠났으리라.
박씨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 사람은 테러범으로 추정되는 수상한 사람이 묵고 있는 집을 안다고.
처음 이사 왔을 때부터 수상하다 생각했었는데 오늘 온 몸이 젖은 채로 들어왔다고. 수상하다는 연락이 왔다.
자신도 혼자 사는 처지라 가끔 술도 한잔씩 하고 했다는데 술에 취하면 좀 있으면 자기가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될 거고 그 일만 끝나면 팔자 피게 되는 거라며 자랑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했었는데 오늘 들어왔다는 것이다.
경찰들을 이끌고 쳐들어간 그 집에는 정말로 리명진이 숨어 있었고, 권총과 나이프 등이 증거물로 나왔다.
가네모토라고 써 있는 여권도 나왔다.
조서실 문을 확 열고 들어갔다.
"야 이 새끼야. 그런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 넌 빼도박도 못해. 이렇게 증거들이 나왔고 증인까지 있어 이놈아.
옆집 사는 박씨 알지? 그 사람이 다 불었어!"
리명진이 나를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뭘 쳐다봐 이 새끼야!"
난 조서를 들어서 그놈의 머리를 툭 내려치고 다시 펜을 집어든다.
"누가 시켰어? "
"..................."
"아, 씨발 누가 시켰냐고?!"
"..................."
"후우. 소모전은 하지 말자. 누가 시켰냐고"
"박씨라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너 박씨 몰라? 옆집 사는 박씨!"
"모르는 사람입니다"
돌아버리겠다. 이놈이 이런 상황인데도 발뺌을 하네.
나는 차근차근 설명을 해줬다. 이러저러해서 박씨라는 네 옆집 사람이 신고를 해서 널 잡으러 간 거였다고.
"그 박씨라는 사람 대질 심문 좀 시켜 주십쇼"
"야 임마. 이제 와서 대질 심문이란 게 의미가 있어?! 그냥 네 죄만 인정하면 될 거 아냐!"
"불러주시면 다 말하겠습니다"
나를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니 안 들어줄 수가 없었다.
게다가 대질 심문을 시켜주면 다 불겠다니......
심문실을 나와서 저장해놨던 박씨의 번호로 전화를 걸어본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이오니......"
"이 어이없는 시츄에이션은 뭐야?!"
난 다시 한번 걸어본다.
"지금 거신 번호는....."
신경질적으로 전화기를 덮는다.
그리고 옆에 경찰 한명을 시켜서 주소를 알려주면서 박씨라는 인물을 찾아오라고 시켰다.
"후우...."
"내가 오늘 내로 찾아다 줄 테니까 그냥 순순히 불어. 이렇게 버텨봐야 너한테 좋을 거 하나 없어."
"불러 주십쇼. 얘길 해봐야겠습니다"
"아, 씨발!"
의자를 발로 걷어차면서 나왔다.
담배를 한대 물고 불을 붙힌다. 일단 머리를 식혀야 한다. 이럴수록 냉정해져야 한다.
애초에 저놈의 자백 따위 없어도 그만인 것이다. 옆집 박씨의 증언. 그리고 저 놈의 집에서 나온 총. 이런 것들만 봐도 저놈의 범행은 명백하다. 이제 나는 앉아서 박씨가 오는 것만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어이 자네. 저 놈 설렁탕이나 한그릇 시켜줘. 뭘 좀 먹여야 조서라도 쓰지"
"넵"
나도 내 방에 가서 커피라도 한 잔 마시면서 쉬어야겠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깜박 졸았나보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조금 피곤했나보다. 박지만 선배님이 내일 보자고 했는데
후딱 마무리짓고 좀 쉬어야겠다.
"문검사님. 찾아가봤었는데 박씨란 인물은 없었습니다"
아까 그 경관이다.
"뭔소리야? 증인이 사라졌다니"
"제가 찾아봤는데 옆집 뿐만이 아니라 그 건물에 박씨 성을 가진 이가 한명도 없었습니다"
"뭐야?!"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다.
이게 무슨 어처구니없는 일이란 말인가.
"알았어. 나가 봐요"
경관을 내보내고 생각에 빠진다.
쉽게 생각했던 사건인데 이렇게 꼬일지는 몰랐다.
하지만 자백 따윈 받을 필요도 없다. 그놈의 집에선 총기가 나왔고 그것만으로도 분명 기소 대상이 되는 것이다.
난 조서실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끼이익-
문 여는 소리가 이렇게 소름끼치게 들린적은 없었다.
의자를 당겨 앉고 리명진을 노려보았다.
"아직도 자백할 마음이 들지 않은 건가"
"증인은 언제 오는 겁니까?"
"곧 올 걸세. 일단 이번 사건에 대해서 얘길 좀 하지"
"증인이 오기 전까진 얘기 못합니다"
열이 확 치솟는다.
"야 이 새끼야 넌 양심도 없어?! 죄 없는 국민이 백명이 넘게 죽었어! 너 한 놈 때문에! 그러고도 넌 뭔 놈의 증인 타령이야?!"
".........."
아 냉정해야 되는데 도저히 냉정해질 수가 없다.
"전 범인 아닙니다. 증인이라는 사람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이죠? 냉정하게 생각해보십쇼. 그렇게 큰 사건을 일으킬 저였다면 그렇게 허술하게 일반인과 친분을 가졌겠습니까? 그 집도 제가 계약한 게 아니고 당에서 정해준 집으로 들어간 것 뿐입니다. 외출도 거의 하지 않았고 술을 마시며 얘기했다는 건 어처구니 없을 따름입니다. 제가 정말 테러범이라면 그렇게 허술하게 제 신분을 노출 시켰을까요?!"
나를 정면에서 바라보면서 논리적으로 반박하는 그.....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는 그의 눈 앞에서 왠지 내 쪽에서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았다. 내가 왜 이러지?! 그는 명백한 범죄자일 뿐이다!
"그렇다면 네 집에서 나온 권총은 뭐란 말이냐! 그런 증거를 가지고도 아니라고 계속 말할 건가?!"
"제가 정말 항공기를 납치해서 테러를 가한 범죄자라면, 그 권총이 필요했겠습니까? 금속 탐지기에 걸릴 게 뻔한 그런 물건이 필요했겠습니까?"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듯했다. 어떤 순간에도 합리적인 사고를 했다고 자부했던 내가 논리에서 밀리고 있다니.....
그런데 사실이었다. 나는 완벽할 정도로 딱딱 들어맞는 물증과 정황 증거에 의심 한번 안 하고 내심 결론짓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후우...그래....제보자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분명히 제보자는 있었고, 실제로 그 집에 네가 있었고, 너의 집에서 수상한 증거물들이 나왔어. 그래, 총만 해도 그래. 네가 테러를 했던 안 했던 그거 하나로 너 집어넣는 건 일도 아니야. 게다가 넌 이미 정황 증거만으로도 빼도박도 못해"
"............."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고 나도 왠지 말을 걸 수가 없었다.
단지 그의 눈만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한참동안의 침묵을 깨고 그가 말을 꺼냈다.
"제 말을 믿어줄 수 있겠습니까?"
"....."
"저는 북파 공작원이 맞습니다"
당연하겠지. 누가 그걸 몰라서 가만 있나?!
"저에겐 여동생이 한 명 있습니다. 그 애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나왔습니다. 지금 스파이로 활동하고 있죠. 헤어진지 10년이 넘었는데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하길래 왔습니다. 총도 안전을 위해서 지급받은 것입니다. 이건 정말 거짓이 아닙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어떤 임무가 하나 있는데 임무는 나중에 알려주겠다. 일단은 지정된 집에 가서 기다려라. 임무는 극비 사항이니 나중에 하달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임무가 끝나면 여동생을 만나게 해주겠다 했습니다"
이 무슨 허무맹랑한 얘기란 말인가?!
"리명진. 당신 지금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안 믿어주셔도 상관없습니다.이건 사실입니다. 믿든 안 믿든 동무의 마음에 달린 것입니다"
"........"
"제 여동생의 이름은 리명숙입니다. 알아봐주십시오. 저도 절박한 상황입니다. 문재성 동지가 믿을만한 사람이라 느껴져서 말하는 겁니다"
"........"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밖으로 나와버린다.
머릿 속이 복잡하다.
난 보조관에게 비밀리에 리명숙이라는 여자에 대해 조사해보라는 지시를 내렸다.
내일은 박지만 선배님과 약속이 있다.
바쁜 나날이지만 가장 믿을 수 있는 선배님과의 약속이다.
게다가 이번엔 내가 부탁한 일이기도 했다.
이 사건이 이리 질질 끌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머리가 아파온다. 냉장고에서 캔맥주를 하나 들고 뚜껑을 딴다.
후우...일단 머리를 비워보자......
소설은 처음 써 보는데 이게 쉽지가 않네요.....
갈수록 졸필이 되는 것 같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
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0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태그 | |||
황진이-무료한국야동,일본야동,중국야동,성인야설,토렌트,성인야사,애니야동
야동토렌트, 국산야동토렌트, 성인토렌트, 한국야동, 중국야동토렌트, 19금토렌트 |
추천 0 비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