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부 횟집 센도리
“ 아프냐? 마이 아프냐? 응? 그럼 말해라… 내 친구 덕수야~! 크하하하~! “
덕수는 오래 버티질 못했다. 왼쪽 엄지발가락 발톱이 떨어져 나가기도 전에 기절하고 말았다.
“ 아… 그 새끼… 군대 있을때도 중간에 탈락하더니… 겨우 이런 정신력 가지고 UDT 될려고 했어? 약골새끼… “
그림자는 칼에 묻은 피를 떨구기 위해 바닥을 향해 칼을 짧게 두어번 휘두르며 중얼거렸다.
휴하고 한숨을 쉰 그림자는 담배를 한대 빼물었다.
불빛을 등지고 있어 어둠에 가려졌던 그림자의 얼굴이 라이터 불빛에 잠깐 비쳤다.
잠깐 비친 얼굴은 고왔다. 피부가 곱고 콧날이 오똑했다. 미소년 느낌이 나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눈빛은 서늘했다. 무표정함 속에 잔인함이 감추어져 있었다.
담배를 깊게 한모금 빨고는 후하고 허공으로 담배연기를 내뿜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덕수는 꿈에서 연변댁을 보았다. 어머니도 보았다. 연변댁과 어머니가 같이 겹쳐지더니 연변댁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닌 여자가 덕수를 안고는 울기 시작했다. 덕수는 고개를 들어 그 여자를 쳐다보았다. 그 여자는 연변댁이었고 또 어머니였다. 여전히 울고 있었다.
“ 왜 울어요? 눈물 닦아 줄께요 “
덕수가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 줄려고 하니, 연변댁이자 어머니는 갑자기 물로 뛰어들었다.
“ 촤악~! “ 물이 갑자기 덕수에게로 쏟아졌다. 물은 그림자가 끼얹은 것이었다.
“ 덕수야… 이제 일어나라… 쪼매 잤제? 내가 졌다. 나가자~! “
그림자는 덕수를 끌고 지하실 밖을 나왔다. 덕수는 갑자기 쏟아지는 햇살에 눈을 찌푸렸다. 얼마만에 마셔보는 바깥공기인가…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는 낯선 곳이었다.
‘ 여기가 어디지?... ‘
잠시 주변을 둘려보았다. 주변은 수풀이 우거져 있었고, 공터가 꽤 넓었다. 뒤를 돌아다 보았다. 한 10년은 넘게 방치됐을 법한 낡은 시멘트 건물이 을씨년스럽게 서 있었다. 1층의 거실인가 싶은 곳에 음식이름이 희미하게 적혀져 있는 메뉴판이 비딱하니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예전에 망한 음식점이었던 모양이었다. 그 음식점 건물 지하실에 덕수는 감금돼 고문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공터는 10여미터 아래의 나무 사이로 보이는 도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고개를 조금 들어 멀리 바라보았다.
“ 아… “
나무에 가려져 있었지만, 얼핏 멀리 호연저수지가 눈에 들어왔다. 레이크모텔도 약간 보였다. 대략 1km정도 떨어진 거리였다.
‘ 누나… 아버지.. ‘
생사를 오락가락했던 죽음의 장소와 사랑하는 연변댁과 늙은 아비가 있는 곳은 지척이었다.
덕수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연변댁을 안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사과하고 싶었다. 몇 달전에 버릇없이 대들었던 것이 후회가 되었다.
‘ 기회가 있을려나? ‘
“ 밖에 나오니까 좋제? 그러니까 진작에 얘기하지 그랬냐… 타라~! “
그림자는 공터에 주차되어 있던 검은색 그랜져 승용차 뒷 트렁크를 열었다.
“ 쪼매 좁제? 씨발… 빨리 돈 벌어서 BMW7으로 바꿔야 되는데…그쟈? 이번 일만 잘되면 바꿀 수 있을꺼 같은데… 그러니까 니가 좀 도와줘야 된다. 알겠나? 이 씨발놈아! 그만 쳐울고 빨리 타라. 킥킥! “
그림자는 검은 야구모자를 깊이 눌려 쓰며 이죽거렸다. 그림자의 왼손에는 여전히 칼이 쥐어져 있었고 덕수의 손은 여전히 묶여져 있었다. 그림자는 머뭇거리는 덕수를 트렁크에 구겨넣듯 하고는 입에는 테이프를 붙이고, 양발을 다시 결박하였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트렁크를 닫았다.
그림자는 도로 진입로에서 좌우를 두리번 거리더니 다니는 차가 없음을 확인하고 빠르게 도로로 진입하였다. 빠른 속도로 검은색 그랜져는 시야에서 사라졌다.
멀리 호연저수지가 햇빛에 반짝거리며 영롱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일식집 ‘센도리’는 손님이 그렇게 많지 않다. 광역시 고급 음식점이 즐비한 거리의 후미진 맨 끝자락에 위치한 센도리는 워낙 고가인데다가 일부 고위층이나 부유층을 상대로 영업하는 음식점이기 때문이다.
오늘 센도리 사장 조현태는 기분이 썩 좋지 않아 보였다. 매의 눈을 하고선 미간주름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누가봐도 잔뜩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이유는 오늘 점심 예약 손님 때문이었다. 예약자는 총 20개의 룸중 2층 7개의 룸 전부를 통째로 예약했다. 하지만 손님은 달랑 4명이 전부였다. 예약자는 1인당 30만원이 넘은 센도리 최고 메뉴인 참치정식를 주문하고는 200만원을 선송금했다. 하루매상을 점심 예약 하나로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사장 조현태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는 예약 손님이 바로 대왕건설 정이사였기 때문이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우고 싶은 과거인 ‘칠성파 시절’과 자꾸 엮이는 것이 너무 기분이 좋지 않았다.
“ 2층 점심 예약 VIP는 현아씨가 전적으로 담당해. 정희씨는 보조하고… “
현태는 센도리에서 가장 미모가 뛰어나고, 경력이 오래된 김현아에게 2층 VIP서빙을 맡겼다.
11시 30분 되자 검정 제네시스 한대가 들어왔다. 역시 검은 정장슈트를 입은 남자 두명이 내렸다. 한명은 현태가 알고있는 정이사였다. 날렵한 몸매에 깔끔하게 다듬은 머리와 도수없는 안경까지… 누가봐도 대기업 이사다운 용모였다.
‘ 개새끼… 생아치 새끼가 똥폼은… 그렇다고 깡패아니냐? ‘
한달음에 주차장으로 달려간 조현태는 속으로 비아냥 거렸다. 하지만 손은 자연스럽게 앞으로 공손히 모아지며, 허리는 45도 각도로 숙여졌다.
“ 아이구.. 정이사님… 오랜만입니다. 그간 잘 계셨죠? 하하~! “
“ 허허... 형님.. 왜 이러십니까? “
정이사가 현태의 두손을 맞잡아왔다. 하지만 허리는 숙이지 않았다.
“ 아이고~! 언제적 형님이라고… 이제는 제가 깍듯이 모셔야죠. 안으로 드시죠… “
“ 네.. 그럽시다. 회장님과 VIP는 조금 늦게 도착하실 겁니다. “
안으로 향하는 현태와 정이사의 뒤로 승용차를 운전하고 온 거구의 덩치가 뒤따랐다. 현태는 뒤따라오는 덩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온통 비계만 뒤룩뒤룩 찌워서는 덩치로 상대를 기죽이는 3류 양아치의 모습이 아니라, 탄탄한 근육으로 둘러쌓인 흡사 바위와 같은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그 기세만으로 현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 말씀드린대로 점심시간에는 아무도 안받죠? “
“ 아이구.. 그럼요. 누구 명이시라고… “
“ 서빙하는 사람이 누구예요? “
“ 아.. 예.. 준비 다해놨습니다. 우리집에서 가장 예쁘고 일 잘하는 아가씨로 배치했습니다 “
“ 네… 좀 있다가 별도로 좀 만날께요. 음.. 그리고 방 좀 점검해봐도 돼죠? “
“ 아이구.. 그럼요. 둘러 보십시요 “
덩치와 정이사는 2층 입구에서부터 화장실, 각 룸을 하나하나 꼼꼼히 살펴보았다. 특히 회장과 VIP가 식사할 VIP룸은 의자와 테이블… 그리고 바닥까지 하나 하나 살펴보았다.
“ 흠.. 별 이상은 없네요. 회장님과 VIP께서 도착하시면 2층에는 서빙하는 아가씨외에는 누구도 출입시켜서는 안됩니다. 형님도 마찬가지고… 이과장! 지금부터 2층 입구 통제해 “
“ 예.. 이사님! “
덩치는 몸집에 걸맞는 굵은 저음으로 대답하고는, 2층 입구를 막아섰다.
홀의 시계가 12시 30분을 넘고 있었다. 2층 VIP룸을 써빙하던, 센도리에서 제일 일 잘하고 예쁜 김현아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왔지만, 오늘처럼 긴장되기는 처음이었다. 현태의 각별한 주의도 있었지만, 4명의 손님들이 풍기는 분위기는 일반적인 손님들과는 달랐기 때문이었다.
VIP룸의 4명의 손님은 얼핏 보기에는 여느 손님들과 같이 조용히 대화하며 식사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으나,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현아는 알 수 있었다. 정이사와 같은 편 자리에 앉아있는 50대 중반의 남자가 대화를 주도하고 있었고, 맞은 편의 60대 중반으로 보이는 중후한 모습의 남자는 편안한 미소 짓고 있었지만, 눈은 결코 웃지 않았다. 현아는 그 남자가 낯에 익다고 생각했다. 정이사와 맞은 편에 앉아있는 수행비서인 듯한 모습의 남자는 두사람의 대화를 열심히 노트하고 있었고, 정이사 역시 조용하게 두사람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었다.
식사시간이 길어지고 있었다. 현아는 마지막 후식을 셋팅하며 룸의 시계를 쳐다봤다.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최고급 참치회가 대부분 남아있었다. 처음 식사를 할때는 억지웃음이라도 짓고 있던 네 사람의 표정이 많이 굳어 있었다. 아마도 대화가 잘 풀리지 않은 모양이었다.
잠시 후 정이사 맞은 편 사람들이 먼저 룸을 나왔다. 현아는 잽싸게 구둣주걱을 내밀었다.
“ 허허~! 김회장님 오늘 대접 잘 받았습니다. 그런데 처음 전복죽하고 참치회는 괜찮던데… 끝마무리 후식이 좀~ 허허~! “
구두를 신던 중후한 60대가 흘러가듯이 말했다.
“ 죄송합니다. 손님. 후식이 입에 맞지 않은 모양입니다. 말씀해주시면 바로 시정하겠습니다 “
현아가 당황스럽게 말했다.
“ 아~! 아가씨 보고 한말이 아니에요. 괜찮아요. 허허~! “
뒤따라 나오던 회장이란 남자와 박이사의 표정이 흙빛으로 변했다.
“ 허허~! 죄송합니다. 제가 제대로 준비했어야 하는데… 곧 제가 깔끔하고 몸에 좋은 한방차를 한잔 준비하겠습니다 “
엘리베이트를 탈려는 60대에게 50대가 말했다.
“ 그래요. 허허~! 깔끔하고 몸에 좋은 한방차… 좋지요. 그게 저한테도 좋고… 회장님한테도 좋고..
꼭 한잔 합시다. 허허~! “
60대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50대는 황급히 허리를 숙이며 손을 맞잡았다.
엘리베이트가 닫히고 내려가는 것을 본 50대는 정이사란 남자에게 조용히 말했다.
“ 건욱아… 정신차리라… 티미하게 정신머리 빼놓고 있으마… 안된다. 3일 주꾸마… 알았제? “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 같던 정이사… 정건욱의 냉철한 눈이 파리하게 떨렸다.
“ 예! “
정건욱은 짧고 낮게 대답했다.
“ 뒷정리하고 온나…내 먼저 들어가꾸마 “
2층 입구를 지키던 덩치를 정건욱이 불렀다. 덩치는 50대와 함께 엘리베이트를 타고 사라졌다.
“ 아가씨… 입조심하세요. 제가 무슨 말 하는지 잘 알겠죠? “
“ 네… 잘 알겠습니다 “
“ 아가씨 이름이 뭐죠? “
“ 김현아라고 합니다 “
“ 음… 현아씨… 포미닛 현아? 기억하기 좋네요 “
정건욱도 곧 사라졌다. 현아의 떨리는 손에는 10만권 수표가 한장 쥐어져 있었다.
레이크모텔을 다녀온 다음날, 강두와 영숙은 출근하자마자 곧장 회의실로 들어갔다. 강력1팀원들이 전부 모였다. 수사의 실마리를 어느정도 잡은 만큼 다시한번 분석할 필요성이 있었다.
진수가 CCTV 파일에 대한 결과를 브리핑하였다.
“ CCTV 동영상 파일은 조작되었습니다. 송덕수에게 압수한 파일은 최미정이 피살됐던 8.3일 20시부터 8.4일 07시까지 파일로 수부실쪽 파일과 5층 엘리베이트 입구쪽 파일 두개를 조사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보과 전문요원이 면밀히 조사한 결과 아주 용의주도하게 편집되어 있었음을 발견했습니다. 수부실과 5층 두개의 파일 모두 동일하게 8.3일 22:40분에서 22:50분까지 편집돼 있었습니다. 또 23:30분부터 23:40분까지 편집돼 있습니다 “
“ 편집돼 있다는 것이 정확하게 어떻게 편집됐단 얘기야? “
팀장이 물었다.
“ 네… 원래 그 시간에 촬영된 부분을 잘라내고, 다른 시간에 촬영한 것을 그 부분만큼 이어붙였다는 겁니다. 우리 같은 문외한 같은 경우는 잘 모릅니다만, 약간의 지식만 있으면 가능하다고 하네요 “
“ 결국 문제가 된 그 시각이 결정적이단 말이네… 즉, 범인으로 추정할 수 있는 사람이 들락날락 했단 얘기? “
“ 네.. 그렇게 추정할 수 있을 겁니다 “
“ 강두… 이해했어? 알기 쉽게 다시한번 정리해줘봐 “
사건을 가장 잘 알고 있는 강두가 종합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1. 8.3일 22:30분경 최미정과 명품와이셔츠를 입은 의문의 남자가 모텔 들어옴. 남자는 의도적으로 CCTV에 신원이 노출되는 것을 숨길려고 함.
2. 8.3일 22:40~22:50분까지 편집됨. 문제의 시각에 5013호에 들고 나는 사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
3. 8.3일 23:30~23:40분까지 편집됨. 문제의 시각에 역시 5013호에 들고 나는 사람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됨.
4. 8.4일 01:30분경 최미정 사망한 것으로 감식반에서 추정함.
“ 음… 결국 삭제된 영상이 있어야 뭔가 알 수 있는 거잖아? 원본영상을 찾아 복구할 수는 없어? “ 팀장이 말했다.
“ 그게 좀 곤란한게요. 송덕수가 얼마나 용의주도한지, 우리가 압수한 파일이 복사본이라네요. CCTV원본파일은 송덕수의 노트북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아마도 송덕수는 노트북에서 영상을 짜집기 한후에 짜집기 한 파일을 복사하여 우리한테 넘겨준 거 같아요. 결국 짜집기한 원본파일이 담겨있는 노트북을 찾아야만 이게 복구가 가능하다는 거죠 “
“ 노트북은 어디 있어? “
“ 노트북은 없어졌어요. 송덕수가 아마도 없앴거나, 어디다가 숨겨놨겠죠. 5013호 몰래카메라 하고 같이 숨겼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 강두가 말했다.
회의 시작전 기대에 찼던 팀장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 강두… 몰래카메라에 대해 얘기해봐.. “
“ 네… 뭐 CCTV와 마찬가지인데요. 송덕수가 인텔전자라는 상점에서 구입하여 5013호에 천장에 몰래 설치한 것 같습니다. 역시 없어졌구요 “
“ 야… 강두! 뭐냐? 결국 아무것도 알아낸 것 없잖아! “
강두가 고개를 숙였다.
“ 팀장님.. 결정적인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우리는 많은 것을 추리할 수 는 있을꺼 같아요 “
“ 어.. 김형사… 그래 한번 얘기해 봐 “
영숙이 담담하게 이번 사건을 추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 두 사람이 모텔에 들어가서는 여자는 죽었고, 남자는 방을 나오는 게 파일에 있어요. 우리가 편집된것을 그냥 모르고 지나갔다면, 남자가 여자를 살해하고 나온 것으로 알았을 꺼예요. 범인도 우리들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하기 위해 편집을 했을 거구요. 그렇다면 실제는 어땠을까? 두 사람외 다른 사람이 5013호에 들어갔다는 거겠죠? 즉, 공범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송덕수는 그 부분을 감추기 위해 편집을 했을 겁니다. 그 공범은 편집된 22:40분에서 22:50분 사이에 5013호에 들어갔을 겁니다. 그리고 23:30분에서 23:40분 사이에 방에서 나왔을 것이구요 “
“ 음… 계속해봐… “
“ 그런데 문제는 최미정이 8.4일 01:30분에 사망했다는 거죠. 즉, 편집된 영상속에 들어왔다 나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공범은 최미정을 살해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23:30~40분 사이에 나갔으니깐요. 결국 최미정을 살해한 사람은 최미정과 같이 들어간 남자의 단독 범행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 아… 씨발… 머리 아파… 뭐예요? 그럼 왜 편집했어? 편집하나 안하나 여자는 와이셔츠 남자가 죽였다는 얘기인데… “ 꼴통진수가 머리를 싸맸다. 강두도 마찬가지였다.
“ 결국은 우리의 예측을 벗어난 뭔가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왜 공범은 최미정 살해와 관계없이 그 방에 들어갔을까요? 아무 의미없이 그러지는 않았을 겁니다. 분명히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방에 들어갔다 나왔을 겁니다. 저는 세가지 의문점을 가지고 있어요 “
“ 좋아… 계속해봐 “
영숙이 차분하게 의문점을 말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촉각을 곤두세웠다.
“ 첫째, 왜 호연리일까요? 또 왜 레이크모텔일까요? 송영감 말에 따르면 최미정은 단골도 아니었어요. 하고 많은 장소중 왜 하필 호연리.. 그리고.. 레이크모텔일까요? “
“ 그거야… 우연히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 진수가 말했다.
턱을 괴고 있던 강두가 말문을 열었다.
“ 음.. 맞아.. 김형사 말이 맞아… 이건 계획된 범죄야. 사건발생 3개월전 덕수는 보안이 해제된 CCTV를 설치했어. 목적은 이번 사건이야. 그리고 범인은 최미정과 여러 모텔중 레이크모텔을 골라서 들어갔잖아 “
“ 그렇죠. 그리고 또 하나 저수지 남자에요. 제가 감식반 조사발표때도 말씀드렸지만, 사망시간이 8.3일 밤 11시경이라고 감식반이 말했어요. 그리고 사체를 곧바로 저수지에 빠트리지 않고 약 10시간이 경과한 다음 8.4일 밤 9시경에 저수지에 빠트렸다고 했구요. 그리고 연변댁과 덕수가 카섹스후 최초로 발견한 시각은 8.5일 새벽 01시경… 이상하지 않나요? 이게 두번째 의문점입니다. 왜 하필 하고 많은 장소중 호연리 저수지 일까요? 그것도 최미정이 살해된 모텔 바로 앞에 있는 저수지에… “
“ 그럼 세번째 의문점은 뭐야? “
“ 네.. 세번째 의문점은 성길입니다. 별 상관없을꺼 같은 성길은 왜 죽었을까요? 이형사님과 격투를 벌인 성길의 살해범은 저수지남자 살해범과 동일범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길을 죽인 칼과 저수지남자를 죽인 칼의 흔적이 거의 유사하니깐요 “
“ 자 그럼… 다시한번 인물들의 관계를 정리해봐.. 강두 니가 한번 해봐
강두는 회의실 화이트 보드를 자신의 옆으로 당겨와서는 삐뚤한 글씨로 정리해 가기 시작했다.
“ 현재까지 밝혀진 것들을 종합해보면… 결정적인 증거는 없고… 송덕수가 핵심입니다. 덕수를 중심으로 하나씩 정리해보겠습니다. “
첫번째, 덕수가 살인에 어느 정도 관여했을까? 두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겠죠.
① 살인에 직접 참여했다! 왜? CCTV를 편집했으니깐… 자신이 참여했다면 자신의 흔적을 지우고 싶었을 거니깐!!
② 살인에 직접 참여 안했다! 왜? 몰래카메라를 설치했으니깐… 변태나 바보가 아닌 이상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영상을 촬영하진 않을꺼니깐!!
결국, 덕수는 살인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음… 반대로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살인청부업자처럼 ‘이 살인은 내가 했다’ 라는 증명 같은거?… 뭐 그렇게 해서 촬영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 꼴통진수가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
“ 그래, 그럴 수 도 있겠지만… 그건 너무 앞서가지 않나 생각이 들고… 물론 저의 느낌이긴 하지만, 덕수가 살인을 하고, 그 장면을 촬영할 정도의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을 뿐더러, 살인청부업자? 더더욱 느낌이 안옵니다 “
강두의 의견이 계속 이어졌다.
“ 두번째, 그럼 덕수는 왜 CCTV를 조작하고, 몰카를 촬영했을까? 역시 두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① 두명 이상으로 보이는 범인들과 원래 한패거리로써, 자신의 역할이 촬영과 편집이었을 가능성
② 협박이나 강요… 뭐 그런걸로 어쩔 수 없이 참여했을 가능성
이 두가지 가능성을 모두 상존합니다. 현재로서는 협박이나 강요 같은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사건 발생직후 CCTV를 제일 먼저 조사했을 때 제가 유심히 봤는데 너무나 침작했습니다. 어느정도 자발적인 의사 없이 협박이나 강요 같은 것을 받았다면, 불안한 행동을 조금이라도 보였을텐데… 너무나 침착했습니다 “
“ 셋번째, 아주 중요한 연결고리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덕수를 두식에게 소개시켜 준 ‘정건욱’
이란 김종팔의 오른팔… 덕수와 정건욱의 관계를 밝혀내면, 어느 정도 그림의 윤곽은 잡을 수 있을꺼 같습니다. 사건의 첫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꺼 같습니다.
“ 그럼 정건욱 이란 그 놈 불러다 빨리 족쳐봅시다 “ 꼴통이 나섰다.
“ 음… 물론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 볼 때, 몰카는 그렇다치고 CCTV는 살인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으므로 정건욱을 불려다가 족쳐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확실하게 잡아두기에는 부족합니다. 정건욱이 ‘덕수랑 그냥 아는 사이다. 소개해 달라고 해서 소개해줬다’ 그럼 끝나거든요. 또 정건욱 뒤에는 김종팔이 있습니다. CCTV사장 최두식은 누구 소개냐고 물었을 때, 김종팔이 소개해줬다고 말했습니다. 직접적으로 전화가 와서 소개한 것은 정건욱이라도, 두식은 김종팔이 시켜서 정건욱이 전화한 것이라는 생각이겠죠. 두식과 정건욱은 잘 모르는 사이입니다. 증거는 없지만 김종팔이 정건욱에게 지시하여 덕수를 두식에게 소개해줬을 것입니다 “
“ 김종팔이…. 종팔이… 아 그 새끼… 만만찮은데… “ 팀장이 중얼거렸다.
“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두식에게 들었을 때 바로 쳐들어 갈려다가 말았습니다 “
“ 그래… 옛날의 칠성파 건달이 아니야.. 지금은 완전 사업가야… 로비도 엄청나… 우리 서장하고는 말할 것도 없고, 시장, 지역출신 국회의원들 하고도 술한잔씩 한다고 들었어. 잘못 건들였다가는 오히려 우리가 당해.. “
“ 예… 그래서… 결정적인 증거나 정황을 확보해야 합니다 “
“ 결국 송덕수 행방을 빨리 찾아야 겠네… 조형사쪽은 뭐 없어? “
가만히 듣고만 있던 조형사와 김형사가 머뭇거리며 일어섰다. 강두의 눈빛이 안좋다. 두 사람은 늘 이런식이다.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는… 자신도 복지부동이지만, 두 사람은 아예 젖은 낙엽이다. 짝 달라붙어서는 절대 꿈쩍하지 않는다.
“ 네… 몇날 며칠 두고봐도 최미정 남편 최정재 쪽은 별다른 의심점이 없어요. 집, 병원 두군데 시계처럼 왔다갔다 하고 있어요. 통화기록을 몰래 조회해 봤는데도… 별 이상한 것은 없어요. 극히 폐쇄적인 사람 같아요. 그런데 실력이 있는지, 병원은 아주 잘돼요. 우리 지역에서는 세손가락 안에 들어간다 하더라구요. 최미정은 유명 패션디자이너에요. “
“ 주변인들은 어때요? “ 강두가 물었다.
“ 뭐… 특별한 거 없어… 동료의사들 몇 명과 교류하는 거 같고… 아..! 최정재 아버지가 북구갑에서 당선된 국회의원이야. 최국환 의원… 지금 여당의 떠오르는 실세… 이번이 3선이죠 “
“ 그래? 그런데 왜 언론에서도 몰랐지? 그런건 우리보다 언론이 더 잘 알잖아 “ 팀장이 물었다.
“ 아..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요. 첩의 아들이에요. 호적에는 최국환의 아들로 올라있지도 않아요.
쉬쉬하지만, 알만한 사람은 안다고 하더라구요. 우리도 병원건물 수위랑 얘기하다가 우연히 알았어요. 언론이 알았다 하더라도, 섣불리 얘기할 수 없겠죠? 정확한 증거가 없는 이상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으니깐.. 그것도 거물정치인의 숨겨진 아들이라.. 조심할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지난 총선에서 상대방 야당 후보가 이걸 가지고 떠들다가 결정적인 증거가 없어 오히려 역공 당해 졌잖아요. 최정재는 어릴때부터 외국에서 생활했고, 귀국하여 병원 개원한 건 채 5년도 안됐다 하더라구요 “
“ 야… 선배~! 정말 중요한 걸 알아냈어요. 모처럼 한건 했네요.. 하하~! “
“ 허허~! 그런가…? “
강두가 눈빛을 빛내며 빠른 속도로 말하기 시작했다.
“ 우리 단순하게 생각해 보자구요. 죽은 최미정의 시아버지가 최국환 의원… CCTV하고 몰카 소개자가 김종팔 하수인… 아까 팀장님이 김종팔이 국회의원한테도 로비한다고 하셨는데, 만약 김종팔과 최국환이 예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면? 이건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뭔가 냄새가 확 나지 않습니까? “
“ 음… 최정재가 ‘자기 아내를 죽여달라고’ 아버지를 통해 김종팔에게 부탁했다? “
“ 그렇죠. 죽은 남자는 최미정의 애인일 수 있고… “
영숙이 끼어들었다.
“ 그럼 CCTV 남자는요? CCTV남자는요… 처음 들어갔을 때 누가봐도 최미정의 애인이었어요. “
“ 아… 씨발… 그렇네… “
식당을 나온 정건욱은 회사로 곧장 가지 않고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부르투스를 끼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참을 말없이 있던 정건욱이 갑자기 핸들을 내리쳤다.
“ 이 개 좆 같은 새끼는 전화도 안받고 뭐하고 있는거야? “
분에 차는지 욕설과 함께 정건욱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갑자기 핸드폰이 벨이 울렸다. 순간 움찔하던 건욱은 화를 참으며 전화를 받았다.
“ 응.. 나야.. “
“ ….. “
“ 그래? 알았어.. 회장님께 말씀 드리고고… 준비해서 한시간 내로 도착할께 “
전화를 끓자마자 건욱은 급하게 차를 몰고 회사를 향했다.
덕수는 정신을 최대한 집중하려 했다. 아니 정신을 반드시 차려야 했다. 하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자꾸만 눈이 감겨오고 있었다. 여기서 눈을 감으면 두 번 다시 뜨지 못할 것 같았다.
온몸이 아프지 않은 데가 없었다. 특히 발가락이 뜯겨져 나간 오른발 엄지발가락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림자 차의 뒷트렁크에 갇혀있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차는 호연리 일대를 빠른 속도로 벗어나 시내로 진입하는가 싶더니 곧 다시 외곽으로 빠지는 것 같았다. 시끄러운 소음속에서 그림자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하는지 조그맣게 말소리가 들려왔다.
“ 지금 싣고 갑니다. 돈 준비해주세요. 그곳에서 봅시다 “
그림자는 짧게 통화하고 끓었다.
덕수는 속으로 이제 거의 다 끝나간다고… 조금만 더 힘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 그래… 이제 돈 받고, 물건 넘겨주고… 연변댁 누나와 같이… ‘
그리고는 정신을 잃었다.
“ 야! 그만 쳐자고 일어나! “
그림자의 말에 덕수는 눈을 떴다.
무슨 건물 공사장인 것 같았다. 해가 질려 하는지 어둠이 점차 몰려들고 있었다. 인적은 없었고 공사 폐기물 잔해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멀리서 쿵쾅거리는 공사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자는 덕수를 트렁크에서 꺼내 먼지 가득한 공사장 바닥에 무릎을 꿇리고는 입을 막은 테이프를 떼어냈다.
“ 형님 묻는 말에 조용히 대답만 해… 안그럼 죽는다. 마지막 기회다. 친구야… “
덕수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흐릿한 시선으로 앞을 보았다. 저물어 가는 햇살을 등에 진 검은 정장차림의 사내가 덕수에게로 천천히 다가왔다. 정건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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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너무 오랜만에 뵙죠? 독자님들 그간 잘 계셨나요? 밥벌이를 게으름의 핑계로... 무려 한달 넘게 잠수를 탓네요. 죄송하다는 말씀과... 느리지만... 반드시 꼭, 기필코.. 완결지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좋은 밤 되십시요 ^-----^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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