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부 접근
레이크모텔은 잠정휴업 상태였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곳이란 생각에서인지 왠지 모르게 기괴한 기운이 흐르는 것 같았다. 손님은 당연히 없었다. 정문에는 큼지막하게 ‘내부수리중’이란 안내판이 걸려있었다.
뒷문에도 마찬가지였다. 앞마당에는 잡초가 군데 군데 비죽이 올라오고 있었다. 더운 여름이라 그런지 사람이 조금만 손을 놓아도 금방 표가 났다.
더운 바람이 휭하니 불어와 정문 입구 가림막을 펄럭였다.
강두와 영숙은 곧바로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예상은 했지만 역시 잠겨있었다. 주차장쪽 뒷문도 마찬가지였다. 영숙이 송영감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통화가 됐다. 20분쯤 뒤에 도착한다고 했다.
영숙과 강두는 마당 한켠에 놓여있는 그늘진 벤치에 앉았다. 올 여름이 유난히 덥다고 강두는 생각했다. 영숙도 땀을 훔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 왠 한숨? 한숨 쉬지 마요~ 옆에 있는 사람도 기운 빠져~ “
“ 더워서요.. 기운 빠져요? 움… 여름에는 잘 챙겨 먹어야 해요. 기운 나는 음식으로~ “
“ 킥~ 걱정 해주는 겁니까? 와우~!! “
“ 아니거든요~!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내가 왠 걱정? 웃기셔~ “
“ 하하하~! 김형사나 잘 챙기쇼.. 난 타고 났수다. 여기서 더 챙기면 기운 뻗쳐 일 못합니다. 킥! “
“ 어련하시겠어요? 피~ “
“ 그나저나… 힘들죠? “
“ 아뇨. 힘은 무슨… 즐겁게 일하고 있어요 “
“ 즐겁기는 무슨… 괜히 의협심에 불타서 나서지 말아요. 뜻하지 않게 큰일 당할 수도 있으니깐… 재작년에 2팀에 근무하던 동기 강형사라고 있었는데… 범인하고 몸싸움 하다가 칼로 다리 인대를 찔렸어요. 그 뒤로 치료가 잘못돼서 다리를 절게 됐어요. 지금 민원과에서 근무하지만…
뭐... 암튼… 조심해요. 내 몸은 내가 챙겨야 돼… “
“ 쳇~! 내가 알아서 잘 할 수 있어요. 이형사님이나 조심하세요 “
“ 쳇~! 알았수다. 생각해서 하는 소리구만.. 하여튼 까칠하기는… 시집은 어째 갔는지 몰라…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는 몰라도… 참 좋은 사람인가봐~요 “
“ 머라구요? 말씀 다 하셨어요? “
“ 킥킥~! 아이고 무서버라… 농담이요.. 농담 “
두사람은 의미없는 말싸움을 하였다.
아니… 의미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까워지는 마음을 스스로 다잡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두사람의 머리속에는 어젯밤 일들이 한켠에 자리잡고 있었다.
“ 아이고.. 형사님요~! “
정문에서 송영감이 헐레벌떡 달려오고 있었다. 며칠 사이 폭삭 늙어버린 모습이었다. 몇가닥 남지 않는 정수리 머리는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평소 깐깐하게 자기관리 하던 송영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촌로 한명이 울 듯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 아이고… 형사님요~! 울 덕수 좀 찾아 주이소… 벌써 5일째 머리카락도 안보입니더~! 어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내사마 죽겠심미더~! “
“ 진정하시고… 차분히 말씀해보세요. 우리도 그것 때문에 왔어요 “
“ 말씀드린 그대로 임니더~ 5일전에 친군지 누군지 전화 한통 받고 나가디만, 지금까지 연락도 없고, 전화도 안되고 한다 아임미까? 지금까지 이런 적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
“ 최근에 이상한 점 없었어요? “
“ 별시리 뭐 그런건 없었어요 “
“ 아드님에 대해서 소상히 좀 말씀해주세요. 수사에 도움이 될 수 도 있으니깐요 “
송영감은 반쯤은 울면서 덕수에 대한 얘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아이였던 덕수는 고등학교까지 공부를 곧잘 하였다. 송영감은 덕수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서울에 있는 대학교 행정학과에 무난히 합격한 덕수는 공무원 시험에 매달렸다. 하지만 공부 보다는 음악이 좋았던 덕수는 공무원이 되기 싫었다. 공무원은 아버지의 꿈이었지, 덕수의 꿈이 아니였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지만 시험에 계속 낙방하였다. 그러던 중 병약했던 제 어미는 4년전 진단받은 유방암이 급속히 악화돼기 시작했고, 그 구실삼아 덕수는 공무원 시험을 포기하고 호연리로 내려왔다. 결국 제 어미는 죽고 말았다. 안그래도 말수가 적은 덕수는 그 뒤로 아예 제 아비랑은 말도 제대로 섞지 않았다. 필요한 말 이외는 일체 말없이 지냈다.
마음과는 달리 자꾸만 멀어지는 덕수와 관계를 송영감은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송영감은 그냥 이렇게 지내다가 참한 아가씨 만나 결혼시켜주고, 자신이 좀 더 나이가 들면 모텔을 물려주면 되겠다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다. 두달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두달전 송영감은 덕수와 연변댁이 이상스러웠다. 눈치 빠른 송영감은 둘 사이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송영감은 덕수를 어느 날 저녁 행동거지 똑바로 하라고 호되게 야단쳤다. 처음에는 얌전히 꾸지람을 듣던 덕수의 눈빛이 변하기 시작했다. 송영감은 그날 저녁 형형한 눈빛으로 자신에게 대들던 덕수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 아버지! 제발 좀 그만 하세요! 아버지는 저한테 뭐라 할 자격 없어요! 아버지가 지금까지 한번이라도 따뜻하게 저를 대해준 적 있어요? 그저 공부공부! 그 공부도 아버지를 위한 공부지 저를 위한 공부였나요? 저는 공무원 되기 싫었어요. 그리고 엄마한테도 마찬가지였어요. 술만 먹음 엄마 때리고, 바람피고… 살아계실 적에 한번이라도 진심으로 남편이라고 따뜻하게 안아주신 적 있어요? 낳기만 하면 자식인가요? 결혼만 하면 마누라야? 예? 아버지 머리속에는 오로지 돈!돈!돈! 그것밖에 없잖아요! 연변댁 아줌마가 얼마나 따뜻한 사람인지 알아요? 연변댁 아줌마 아니었음 저 나가도 벌써 나갔어요! “
“ 이.. 이눔의 자식이… ! “ 송영감의 손이 올라갔다.
“ 때릴려구요? 때려보세요. 내 가만히 있나… “
다소곳하고 얌전했던 옛날의 덕수가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송영감은 별다른 내색은 안했지만, 덕수와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덕수말처럼 오로지 돈에 환장하며 살아왔다. 죽은 마누라에게도 새삼 미안했다. 스스로 ‘내가 누구땜에 이렇게 아둥바둥 사는데… ‘ 변명해 보지만, 정말 누굴 위해 이렇게 돈의 노예가 됐는가 반문해 보게 되었다. 그 뒤로 송영감은 덕수에게 별다른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덕수도 그날 이후 별다른 말이 없었다. 그냥 그렇게 지내는가 싶었는데… 덕수가 갑자기 없어졌다. 송영감은 불길하고 또 기분이 영 좋질 않았다.
“ 어디 갈만한데 짐작가는 곳이라도 없어요? “ 송영감의 얘기를 다 들은 영숙이 말했다.
“ 아뇨… 전혀 모르겠어요 “
“ 그 전화 왔다던 친구… 누군지 짐작 가는 사람 없어요? “
“ 글씨... 워낙에 조용한 놈이 돼놔서… “
강두가 끼어들었다.
“ 찬찬히 한번 생각해보세요. 학교 친구.. 군대친구… 동네에는 친구 없나요? “
“ 글씨… 동네에는 엄고… 학교친구… 군대친구는 혹 있을랑가요? 잘 모르겠슴미더~ “
“ 음… 덕수씨 물건 같은 거 좀 볼 수 있나요? “
“ 그라지요. 수부실에 어디 있을김미더~ “
약 3평 남짓한 수부실은 한 사람이 겨우 발뻗고 잘만한 공간에 수부책상 그리고 온갖 잡동사니들로 빽빽했다.
“ 조기 박스 보이지요? 그기 덕수 물건입니더~ “
수부실 구석 한켠에 이불이 올려져 있는 박스가 하나 보였다. 강두와 영숙은 박스의 잡동사니들을 꺼내 하나씩 살펴보기 시작했다. 별 다른 단서 될 만한 것들은 없었다. 일기장이나 메모 같은 걸 기대했으나 그런 것은 없었다. 그러던 중 영숙이 박스 제일 밑바닥에서 오래된 앨범 하나를 꺼냈다. 앨범은 고등학교, 대학교, 군대시절 사진이었다. 사진의 대부분은 기타 치는 사진이었다.
“ 기타를 좋아했슴미더~! 제가 딴따라 한다고 호되게 야단치고는 뿌사뿌리서 글치 꽤나 잘 쳤음미더~ “
“ 흠… 그래요? 여기 군대 사진이 있네요. “
“ 아… 그놈아가 해군 나왔다 아임미까? 그때 사진일겁니다 “
강두는 푸른 베레모를 쓰고 찍은 단체 사진 한장을 유심히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 이건 UDT 사진인데… “
“ UD… 뭐요? “
“ UDT라고… 해군 소속 특수부대 이름입니다 “
“ 아… 맞다… 해군 지원해서 얼마 안돼서 그 지원한다 카길래… 내가 디기 뭐라 했던 기억이 있슴미더~ 그래도 고집부리가 지원하긴 했다가…훈련이 힘들어서 중간에 나온걸로 내 알고 있는데…”
“ 음… 그런거 같네요.. 1차 수료 사진만 있고… 최종수료 사진은 안보이네요 “
UDT는 해군 소속 특수전단으로 상륙작전, 수중폭파, 대테러, 인질구출등 특수임무를 수행하는 부대로 지원자 중심으로 선발하여 12주간의 지옥훈련을 무사히 통과해야만 된다. 아마도 덕수는 1차 5주 기초훈련을 마치고 사진을 찍은 모양이었다.
“ 흠… “ 강두는 흥미롭게 사진을 들여다 보기 시작했다. 성길을 살해한 놈이 사용한 칼… 그 칼은 미국 UDT대원이 실전에서 사용하는 칼이었다. 비록 마음만 먹으면 인터넷 등을 통해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지만… 칼도 UDT.. 덕수도 UDT... 뭔가 있었다.
“ 사장님…덕수가 걱정되시면… 일단 실종신고부터 하시죠. 그럼 우리들도 수사하기 편해지니깐..”
“ 아.. 알겠슴미더~ “
강두는 레이크모텔을 나서며, 꼴통진수에게 전화를 했다.
“ 송덕수가 실종상태로 5일째야. 아버지가 실종신고를 할꺼니깐, 먼저 최초 사건 5일전부터 오늘까지 송덕수 통화기록 전부 조회 좀 해줘. 그리고 신용카드 사용기록도 좀 조회해조.. 아… 또하나… 해군 나왔다고 하는데… UDT를 지원했어. 해군 쪽 협조를 좀 구해봐. 군대 생활기록들 전부 다… “
전화기 너머로 꼴통진수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 아… 새끼… 우리도 죽겠다. 나랑 바꿔서 해볼래? 더워 죽겠구만… “
강두와 영숙은 아침 10시경부터 시작한 수사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꼬르륵 소리를 함께 시계를 보니 벌써 오후 2시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 배 고푸네… 일단 요앞 국수집 있던데… 시원한 냉콩국수나 한그릇 합시다 “
이튿날 꼴통진수가 목에 힘을 잔뜩 주고는 강두에게 조사기록을 건넸다.
“ 아우… 형! 죽겠어요. 어제 이리뛰고 저리뛰고 밤새도록 조사했습니다 “
“ 고생했다. 빨리 나왔네.. “
“ 제가 누굽니까? CSI 진수 아닙니까? “
“ CSI ? 지랄… 개 풀 뜯는 소리 그만하고.. 한번 읊어봐…“
진수의 조사결과를 들으면서 강두와 영숙의 눈빛이 점점 더 빛나기 시작했다.
“ 일단 통화기록에서 살펴보면, 전화는 그렇게 많이 안했어요. 하루에 두세번? 그런데 두세개 번호가 좀 특이해요. 제일 많은 것은 연변댁 아줌마 전화번호… 이건 뭐 둘이 그렇고 그런 사이니깐… 또 한 번호는… 놀라지 마세요! 성길이 통화했던 대포폰 전화번호에요. 사건 발생 3개월전부터 시작해서 통화하기 시작했어요. 제가 5일전 기록부터 조사하다 보니까 이 전화번호가 나와서 그 전에 기록도 전부 조회해봤는데… 최초 통화는 사건발생 3개월전부터 시작하여 일주일에 두세번 드물게 전화하다가 사건발생 3일전부터 하루에 한번 꼴로 집중 통화하기 시작했고, 실종 후 마지막 통화도 이 번호입니다. 아마도 이 전화를 받고 나가서는 실종된 거 같아요 “
“ 음… 그렇게 연결되는구만… 혹시 김성길 전화번호는 없었어? “
“ 김성길 전화번호는 없었어요 “
“ 그리고 또? “
“ 또 주의해야 할 번호는 ‘INTEL전자’라는 광역시 전자골목시장에 있는 전자제품 가게 번호에요 “
“ 그래? 왜 특이하지? “
“ 이 번호는 사건발생 전후해서 몇번 전화했어요. 이 가게는 주로 CCTV, 몰카, 녹음기 같은거 이런거 많이 판매하는 곳이에요 “
“ 그래? 그럼 그 가게 조사해봤어? “
“ 제가 몸이 둘입니까? 이것도 하루만에 알아낸거거든요 “
“ 좋아 좋아.. 잘했어.. 신용카드 사용기록은 조사해봤어? “
“ 신용카드 기록 중에 특이한 거는 아까 말한 전자가게에 사용내역이 있어요. 사건 발생 3개월전에 두번 사용했고요. 이 신용카드 거래와 통화내역으로 그 전자가게 조사하면 뭐라도 나올꺼 같습니다. 그리고는 별 특이사항 없어요. 홈쇼핑으로 여자 속옷 뭐 이런거… 잡다한 거 좀 샀고… 연변댁 줄라고 했는가 보죠 “
“ 군대기록은? “
“ 아직 거기까지는 조사하지 못했어요. 전화하니깐 공문 보내라 마라.. 말이 많데요. 하여튼 공무원 새끼들은… 그저… “
“ 니도 공무원이거든… 좋았어~진쑤!! 간만에 일 좀 했다.. 꼴통 고생했어! “
“ 아놔…! 형! 김형사님도 계신데… 자꾸 꼴통꼴통 하실래요? 이…좆두강두야…. “
“ 야! 이 새끼… 잘했다 했더니… 죽고싶냐? “
“ 호호~! 두사람 그만 하시고… 어떡하실래요? 전 전자가게부터 먼저 가봤음 하는데… “
“ 예~! 지금 당장 가봅시다. 꼴통 군대생활 낼까지 조사해 놔~! “
“ 아놔~!!!! 안돼요! 그놈들 안해준다고~! “
“ 니가 진해까지 갔다 오던지… 알아서…잘!! 낼까지! 아님 넌 내손에 죽는다! “
“ 아놔놔!!!!!!!!!!!!!!!!! “
6.25때부터 피난 온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어 시작됐던 이 골목시장은, 지금은 대형마트등에 밀려 쇠락해 가고 있었지만, 한때는 한강 이남에서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꽤나 큰 시장이었다. 특히나 지역대표먹거리인 납작만두가 시작된 곳이기도 하였다.
골목길을 이리저리 헤맨 끝에 문제의 가게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인텔전자? 간판은 거창하였다. 반면 실내는 난장판이었다. 10평정도의 꽤 큰 가게에는 온갖 잡동사니 물건이 산더미를 이루고 있었다. 전자제품을 잘 모르는 강두와 영숙에게는 그저 잡동사니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도 대부분 불법인 중국산 제품…
알바생 인듯 싶은 종업원은 제품정리를 하다가는 강두와 영숙이 자기 소개를 하자 곧바로 겁에 질렸다. 온 이유를 설명하자…
“ 저.. 전 잘 몰라요. 사장님한테… “
“ 몰라? 사장 불러와… “
“ 사장님 지금 홍콩 출장중… “
“ 가게 문닫고 싶냐? 존말할때 당장 불러와라… 사장 이름 ‘최두식’ 맞지? 칠성파 똘마니 하던 놈… “
“ 마.. 맞는데요. 저.. 정말… 출장 가셨어요 “
“ 아.. 이 새끼… 내 다 알고 왔다니깐… 지금 전화해서.. 북부서 ‘이강두 형사님’께서 좀 보잔다고 해.. 5분내로 안 튀어 옴 가게 문닫는다고 전화해 “
알바생은 핸드폰으로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3분도 채 안돼서 까까머리 덩치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 아이구마~! 형님! 잘 계셨습니꺼? 아이구마~ 좆나게 오랜만이네요~! 캬캬! “
“ 어이구… 두식이… 잘 있었어? “
두식이 너스레를 떨었다. 불룩 나온 배로 인해 울긋불긋한 쫄티셔츠가 터질 듯 했다. 목에는 금 목걸이 체인이 요란스레 덜렁거렸다. 영숙은 그런 두식의 모습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전형적인 동네양아치의 모습이었다.
그런 영숙을 쳐다 본 두식의 눈이 휘둥거래졌다.
“ 와우~! 형님! 이런 미인이~! 형님 앤? “
“ 새끼… 죽고싶냐? 말 조심해라… 김영숙 형사님이다 “
“ 헉~! 정말요? 아이구마~ 잘 부탁드리겠슴미더~! 저는 ‘인텔전자 사장~! 최!두!식!’이라고 합니다. 캬캭~! “
두식이 불쑥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하였다. 강두가 그 손을 내리쳤다.
“ 손 치워라! 니 같은 놈하고 악수할 만한 손 아니시다 “
“ 앗! 씨… 왜 치고 지랄… “
“ 어? 두식이! 방금 욕했니? 마이 컸구나~! “
“ 아.. 아님미더~ 하하! 제가 어찌 감히.. 근데… 어쩐 일로…? “
“ 차도 한잔 안주냐? “
“ 엇! 아이고마~! 내 정신 좀 봐라… 요 앞 다방으로 가시더~! 가시나들 죽이는데 있슴미더~! “
자리를 옮긴 강두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갔다.
“ 사실대로 말하는게 좋을꺼야.. 내 성격 잘 알지? 뒤끝 작렬인거… “
“ 아이구마… 와이카시노… 겁나구로.. 캬캬캬! “
“ 설레 치지마라… 너 이 사람 알지? 이름이 송덕수… 3개월전에 니 가게에서 물건을 샀을꺼야. 카드 사용내역 있으니깐… 사실대로 말해라. 뭘 사갔는지… “ 덕수의 사진을 내밀며 강두가 추궁했다.
“ 누구…?? 기억이… 잘 안나는데…. 뭐 워낙 많은 사람이 왔다 갔다해서.. “
“ 새끼… 죽고싶나? 가게 꽤 되는거 같던데… 문 닫고 싶나? 내 시청에다가 불법제품 판매한다고 바로 전화한다. 지금 전화할까? “
“ 아이구마… 와이카시노… 형님~! 기억할 시간을 줘야 될꺼 아임니까? “
“ 좋아.. 1분주께… “
“ 아.. 배야… 긴장했더니만… 형님! 화장실 좀 갔다와서… 내 말씀드릴께요 “
“ 그래? 갔다와… 그럼 난 시청 김과장한테 전화할께 “
“ 아이구마.. 형님요~! “
“ 그러니깐.. 빨리 말해… !! “
“ 아.. 마.. 죽겠네… 음… 보자… 움… 아.. 이제 살살 기억이 나네요. 이 곱상한 청년이… 네비게이션 사고.. 블랙박스… “
“ 두식아… 이 좆만한 새끼야…. 장난치냐?? 이거 무슨 사건인지 알아? 호연리 연쇄살인사건이랑 관계 있어… 너 그 사건에 엮이고 싶어? 감방에서 한 십년 썩어볼래? “
강두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
“ 헉! 호연리 연쇄 살인사건요? 아… 형님… 잘못했심미더~ “
두식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챘는지,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손이 땀이 차는지 다리에다가 연신 손을 문질러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 형님~! 와~ 이거 좆됐네… 내 이거 말하면 죽는데… “
“ 야~ 최두식! 물건 판매한거 사실대로만 얘기하면 돼… 내 니 안걸고 넘어진다. 그냥 있는 사실 그대로 얘기하면 된다 “
“ 아니… 그기 아이고~… 와.. 죽겠다. 내 우째 해야 되노… “ 두식의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 비밀 지키고… 내 니 보호해주께… 걱정하지마라.. “
“ 정말이지요? 내 형님만 믿겠심미더~ 예? “
“ 아.. 그 새끼.. 알았다니깐.. 걱정하지 말고 얘기해봐.. “
“ 예… 사실은… “
덕수는 사건발생 3개월전쯤 CCTV를 두대 사고, 그후 사건발생 1주일전쯤 초소형 카메라를 한대 사갔다고 했다. CCTV는 보안기능이 해제된 것으로 중국산 불법제품이었고, 초소형 카메라 역시 몰래카메라로 주로 쓰이는 중국산 불법제품이었다고 했다. 두식의 가게에서 판매하는 주된 상품은 이런류의 불법제품이 대부분이었다. 원가에 최고 10배까지 판매되는 상품으로 주로 아는 사람 소개로 음성적으로 유통되는 제품이었다. 두식의 주수입원이기도 하였다. 두식이 시청감사를 겁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 니 말대로 아는 사람한테만 판매하는 건데, 그럼 그 전부터 그럼 송덕수를 알고 있었어? 솔직히 말해! “
“ 사실은 이 청년 오기전에… 아씨 이거 얘기함 좆돼는데…사실은 저… 종팔이 형님한테 전화가 와가… 판매했슴미더~ “
“ 종팔이? 김종팔이? 옛날 칠성파 부두목? “
“ 예… 형님! 이 사실 종팔이 형님한테 들키면.. 저는 죽은 목숨임미더~ 제발 좀 저는 모르는 걸로 꼭 해주이소! 알았지요? 예? “
“ 알았어.. 걱정마… 내 정보원 하나는 200% 지키니깐! 그나저나 김종팔이 요즘 뭐해? “
골목시장을 중심으로 성장한 칠성파는 한때 역시 지역조폭세력인 향로파와 광역시 지하경제를 양분할 정도로 큰 세력의 조폭이었다. 80년대 범죄와의 전쟁등 사회정화 차원으로 진행된 일련의 정책으로 지금은 지리멸멸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유흥가를 중심으로 합법 또는 불법적으로 요소요소에 자리잡고 있었다. 김종팔은 그때 칠성파의 부두목까지 올랐던 사람이었다.
“ 종팔이 형님은 요즘 사업한다 아임미까~ 회장님이라예~ ‘대왕건설’ 회장님… “
“ 뭐? 대왕건설이 김종팔이꺼야? “
“ 몰랐슴미까? 이름은 다른 사람이지만, 실질적인 오너는 김종팔 형님이지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데… 형님이 우예 몰랐슴미까? 그저 술집가시나 한테 파묻히가 세상 우예 돌아가는지 잘 모르시는 갑지예? 캬캬! “
“ 이…이 새끼 내가 언제… 콱!? “
“ 앗따… 와이카시노… 내가 대준 가시나만 해도 한 트럭이구만… “
두식의 말에 강두가 얼굴이 붉어졌다. 몇 년전 두식이 불법노래주점 했을 때 알게 모르게 뒤를 봐주고, 술 얻어먹고, 여자 얻어먹고 하였다.
“ 됐고… 김종팔이 전화번호 대봐… “
“ 아이고마.. 형님~! 너무하시네… 내 차마 그거까진 못갈켜 주지요. 의리가 있지.. “
“ 의리 같은 좆까는 소릴랑은 개한테나 하시고… 빨리 말해!! “
“ 아씨… 이런거 까지 말해 줌 안되는데… 에이 씨발 모르겠다. 내 먼저 살고 봐야지… 말하께요… 소개한다고 직접 전화한 사람은 형님이 아이고.. 그 밑에 있는 정이사라 카던가… 그 사람입니더. 그 사람 전화번호가 보자…. 아.. 여 있네… 010-0000-0000입니더. 카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는 정말로 보호해주셔야 합니더. 오늘부터 저는 잠수 탈끼구만… “
의외로 많은 수확을 얻었다. CCTV와 몰래카메라… CCTV는 옛날부터 있었을 터인데.. 아마도 교체했을 것이다. 보안기능이 해제된 것이라면 사용자가 임의로 조작내지 편집도 가능했을 것이다. 몰래카메라는 어디에 설치했을까? 아마도 최미정이 죽은 5013호 일 것이다. 덕수는 사건과 직접 연결되어 있음을 강두는 확신했다.
“ 여자를 무우척 좋아하시나봐요~! “ 차에 오르며 영숙이 말했다.
“ 조.. 좋아하긴 뭘 좋아해요? “
“ 한 트럭이라.. 어머나… 좋으셨겠어요? “
“ 아씨… 아니라고 했잖아요! 그 참 나… 짜증나게… 하여튼 두식이 그 개새끼… “
“ 어머 어머… 왜 죄다 말해준 솔직한 두식이 욕은 하실까…? “
서로 들어온 강두와 영숙은 정보과를 통해 김종팔과 두식에게 전화한 ‘정이사’란 사람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하였다. 김종팔은 대왕건설 본사건물에 입주한 ‘서림컨설팅’ 이란 곳의 대표로 등록되어 있었다. 보기에는 대왕건설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듯 보였지만, 실질적으로 대왕건설을 움직이고 있었다. 김종팔은 초창기 대왕산업이란 이름으로 아파트 샷시 발주부터 시작하여 재개발관련 용역사업, 나이트클럽운영, 주류도매 등으로 자금을 모아서는 지금의 대왕건설로 사세를 확장하였다. 대왕건설은 광역시 건설업체중 하도급 순위 다섯번째 손가락안에 들어가는 탄탄한 회사였다. 골목시장에서 상인들 자릿세나 뜯던 동네 양아치가 그야말로 잘나가는 기업체 대표가 되어 있었다.
정이사란 놈은 그 밑의 부하였다. 아마도 김종팔의 수족 노릇을 하는 놈일 것이다.
“ 이 씨발 좆 같은 세상… 누구는 좆뺑이 치면서 하루 하루 연명하는 구만… 이런 개양아치 같은 놈들은 떵떵거리며 살고 있으니… 아.. 씨발 좆 같은 세상!! “
조사를 마친 강두는 쌍욕을 지껄였다.
“ 시끄러워요. 욕 좀 그만하세요 “
강두는 영숙의 잔소리를 귓등으로 듣고는 차에 올라 다시 레이크 모텔로 차를 몰았다.
“ 아니… 대왕건설로 안가구요? 그쪽을 파면 금방 실마리 풀릴 것 같은데… “
“ 에헤… 아직 잘 모르시나본데… 김종팔 같은 놈 한테 섣불리 접근하면 안돼요. 도마뱀 꼬리 자르듯 하고는 바로 숨어요.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닌 것 같아요. 복잡하게 얽히고 있어요. 레이크모텔 갔다와서 다시 한번 정리해봅시다 “
“ 음… 그럴수도 있겠네요 “
레이크모텔에 도착한 강두와 영숙은 송영감에게 그간의 일을 얘기했다. 송영감은 겁에 질려 떨기 시작했다. CCTV는 그렇다 치고, 몰래카메라가 만약 객실에 설치됐다면 문제는 심각해지기 때문이었다. 일단 사건해결이 우선임을 수차례 주지시킨 후 송영감을 대동하고 CCTV와 5013호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수부실과 5층 CCTV를 3개월전에 교체했다고 송영감이 말했다. 아들 덕수가 CCTV가 고장이 났다며 어디선가 사들고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컴퓨터나 CCTV는 나이많은 사람들이 의례히 그렇듯 잼병이었다. 아들 덕수가 알아서 하겠거니 하고 내버려 두었다고 했다. 강두는 진수에게 전화하여 압수한 CCTV파일을 정보팀에 넘겨서 면밀히 조사할 것을 주문했다.
다음은 몰래카메라였다. 5013호를 이잡듯이 뒤지기 시작했다. 천정 중앙등이 위치한 자리에 희미하게 설치흔적이 보였다. 몰래카메라는 당연히 없었다. 만약 덕수가 설치했다면, 사건이 일어난 후 제일 먼저 없앴을 것이다.
결론이 나왔다. 송덕수는 사건에 대해 많을 걸 알고 있었고, 직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보안이 해제된 CCTV 촬영파일은 사용자가 임의로 편집이 가능하다. CCTV 파일은 곧 조사결과가 나올 것이다.
5013호 몰래카메라 파일이 결정적인 증거가 될 것이라 예상했다. 아마도 최미정 살해 당시의 영상이 생생히 담겨져 있을 것이다. 분명 덕수는 그 동영상파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강두와 영숙의 심장이 급격히 뛰기 시작했다. 송영감의 얼굴은 잿빛으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남자는 힘겹게 눈을 떴다. 하지만 눈을 떠도 별 소용 없었다. 감으나 뜨나 똑같았기 때문이었다.온통 암흑이었다. 습기가 가득한 쾌쾌한 냄새가 이곳이 지하실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오늘이 며칠인지 남자는 알지 못했다. 오락가락 하는 정신에 시간감각이 없어져 버렸다. 평소에 말이 없는 남자는 생각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곳에 끌려온 뒤로는 아주 단순해져 버렸다.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덜 아팠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것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다. 움직이는 것은 포기했다. 몇번 시도해본 끝에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다. 나무의자에 손을 뒤로 하여 묶여져 있고, 양발도 꼼짝 못하게 결박되어 있었다. 이 방면에 전문가가 본다면 손가락을 치켜세웠을 정도로 단단히 묶여져 있었다.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결박이었다. 전문가의 솜씨였다.
덕수의 몸은 군데 군데 피가 흐르고 있었다. 고문의 흔적이 역력했다.
“ 어이… 정신이 좀 드냐? “
낮게 웅얼거리는 목소리와 함께 갑자기 눈앞이 밝아졌다. 이곳에 끌려온 뒤로 딱 세번 이렇게 밝아졌던 것 같았다. 기절하고 깨어나면서 두번… 그리고 지금…
“ 으.. 으.. “
“ 아…씨발새끼… 아프제? 야.. 나도 힘들다… 우리 친구 아이가? 응? 그러니까… 고집부리지 말고 그거 나한테 넘겨…그럼 다 끝나… 왜 말을 안듣냐? 친구야… “
불빛을 등진 그림자가 낮게 웅얼거렸다. 가늘고 낮게 웅얼거리는 목소리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못 알아들을 정도였지만, 그 느낌만은 소름 끼쳤다. 날카롭게 날이 선 칼이 조금씩 조금씩 살점을 잘라내는 듯한 소리였다.
남자는 그림자를 잘 볼 수 없었다. 오락가락 하는 정신에다가 불빛에 눈이 부셨다. 얼핏 보기에 왼손에 번뜩이는 뭔가를 쥐고 있는 것 같았다.
“ 으… 친구야… 먼저 돈을 줘… 그럼 넘겨줄께… 약속했던… 2억… 그거 받지 않고는 죽어도 말 못해… “
남자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 야… 친구야… 2억이 뉘집 개이름이냐? 그 돈 못줘… 병신아… 너 말 안하면 죽는다. 나도 친구 죽이기 싫다 “
“ 퇘~! 개새끼… 맘대로 해! “ 남자가 그림자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 병신… 지랄을 한다… 지랄을 해… 안되겠다. 조금 더 해보자. 이번에는 양쪽 엄지발가락 발톱을 도려내 줄께… 그 다음 엄지 손가락 손톱… 생각이 바뀌면 바로 스톱! … 알았지? “
그림자는 왼손에 든 칼로 남자의 오른쪽 엄지발가락 발톱을 도려내기 시작했다. 능숙한 솜씨로 발톱 밑으로부터 천천히 칼을 찔러 넣어서는 위로 재겼다. 한번에 재끼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칼을 이리저리 놀려가며 고통을 극대화 시켰다.
“ 크아아악~! 아아악!!!! “
남자의 비명소리가 지하실을 울렸다. 지하실을 울린 비명소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벽에 부딪히고는 다시 남자에게로 돌아왔다.
“ 아프냐? 마이 아프냐? 응? 그럼 말해라… 내 친구 덕수야~! 크하하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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