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헉....
조금만 더 가면 결승지점이다. 민성은 이미 땀으로 온몸을 적셨지만 마지막까지 이를 악물로 한발 더 내딛였다. 오후가 되니까 이제 막 여름의 문턱에 들어 선 초여름의 날씨도 매우 덥게 느껴졌다. 도착~!
-민성아, 미안하다. 타이머 못눌렀다. 다시한번 뛰자.
-김형호 하사님, 무슨 소립니까.. 헉..헉.. 아우 죽겠네..
김형호 하사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야.. 그래도 시간 안에 들어왔네. 너 특급전사 된다고 졸라 열심히 운동했다더니만 결국 했네. 이새끼 독한 새끼네
-아! 감사합니다. 오예~
민성은 중대 앞 벤치에 앉아 음료수 캔을 열고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 입대할 때 특급전사 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전역 전에는 반드시 시험에 통과하고자 했다. 입대할 때 주위에서 군생활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꼭 한번 자기 자신을 업그레이드 시켜야 겠다는 다짐이 군 생활 내내 의지를 다져줬다.
-야, 근데 너 사격 했냐?
-아, 사격 못했습니다.
-사격 안하고 어떻게 통과하게?
-그거 연대장님이 가라 쳐주신답니다.
-와 이새끼. 빽 좋네.. 너 다음주에 진급하냐?
-네 이제 병장이라 불러주십시오. ㅋㅋ 작대기 하나 더 받으려고 진짜... 이 땀보다 눈물을 더 많이 흘렸을겁니다.
-민성이.... 얼마전까지 진짜 개짬찌였는데 시간 진짜 빠르네.
-김형호 하사님 저 전역하면 술한잔 사주십시오. 그때 형님 대접 확실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ㅋㅋ
그때 행정반에서 배차계원 박경철 상병이 뛰어나왔다.
-민성아, 1호 올라오래
-어 알았어. 저 올라가보겠습니다. 수고하십시오.
본부중대 소속인 최민성은 본부중대 건물 옆에 레토나 운전병의 생활관인 컨네이너로 뛰어갔다. 그때 수송관인 주헌 상사와 마주쳤다.
-민성, 잘 뛰었는가?
-네, 수송관님. 시간안에 들어왔답니다. ㅎㅎ
-아이고 이거 이놈 너무 젖었다. 연대장님한테 땀냄새 나니까 대충 샤워라도 하고 가라.
-근데 지금 1호차 올라오라고 해서...
-그거 내가 부른거야. 연대장님 조금 있다가 신교대 가신단다. 너 체력측정 하는거 아시니깐 얼른 씻고가.
-네 알겠습니다.
민성은 샤워 후에 연대장앞에 차를 갔다 댔다. 연대장실 문앞에서 <똑,똑>
-상병 최민성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어..? 아야, 그냥 바로 시동 걸어놔라.
-네 알겠습니다.
민성은 시동을 걸고 차에서 대기했다. 잠시 후 연대장인 강진후 대령이 차에 탔다. 부릉~
원래는 <출발하겠습니다> 부터 시작해서 운전병이라면 차를 조작하거나 방향을 변경할 때 마다 그에 맞는 복명복창을 해야 하는게 원칙이지만 일병때부터 강진후 대령과 쭉 운전병생활을 해온 민성은 달리 복명복창을 하지 않았다. 1년 넘게 운행을 다니면서 민성을 아들처럼 대해주었기 때문이다.
-민성아, 내 떠나면 니 슬퍼서 우짜냐?
-연대장님.. 저도 여기 곧 떠납니다.
-뭣이..? 하하하 느 전역이 언제지?
-예 연대장님, 저 한 70일정도 남았습니다.
-워메... 시간이 그리 됐뿌냐.. 빠르기도 하다 정말. 느 처음 왔을때 진짜 비리비리 하고 흐리멍텅한것이.. 내가 느 사람하나 만들어줬다. 체력검정 했담서?
-예 했습니다. 다 특급 나왔는데 사격을 아직 못했습니다.
-아, 그냐? 근디 너 하나 쏘게 해줄라고 사격장 문을 못여니께... 애들 다같이 쏠때 쐈어야 하는데.. 그때는 또 운행이 있었고.. 너 그냥 쏘지 마라. 내가 느그 중대장한테 말 해놀팅게.
-예 알겠습니다. 연대장님 도착했습니다.
민성은 일환을 데리고 신교대 피엑스로 갔다. 이일환은 신교대 대대장 운전병이다.
-최민성 상병님, 다음주에 병장 아닙니까?
-오냐. 그렇게 개처럼 기었는데 병장 하나 달아줘야지. 암..
-최민성 상병님, 1호차로 개망고 빨아놓고 무슨 개처럼 깁니까? ㅋㅋ
-지랄하네.. 대대에서 개망고 빠는 놈이 무슨 망고를 논해. 뒤질래 ㅋㅋ
-저는 운전병에 당번병까지 다 합니다. 제일 짜증나는건 온 간부들이다 당번병실 문 휙휙 열면서 <야 대대장님 어디 계시냐?> 이러고 갑니다. 최민성 상병님 처럼 핸드폰이라도 있으면 모를까.. 제가 대대장님 어딨는지 매번 어떻게 압니까?
-ㅋㅋㅋㅋ 대대 망고 빨면서 그정도 갖고 앓는 소리 하기는..
민성과 일환은 피엑스에서 나와 대대장 당번병실로 이동했다. 연병장에는 이제 막 신교대에 들어온 훈련병들이 포복 훈련을 받고 있었다. 각잡힌 표정의 조교들과 어리버리한 훈련병들의 표정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민성은 자신의 훈련병때를 생각했다. <아.. 나도 저런때가 있었지. 내가 훈련받았을때는 진짜 너무 추워서 이런 날씨에도 살 수가 있나 싶었는데... 그땐 참 찌질했지.> 민성은 소심하고 나약한 자신을 바꿔보고자 했다. 입대전에는 마음만 있다가 입대후에 비로소 다짐을 굳혔다. 언제까지 찌질하고 병약하게 다른애들의 멸시를 받으면서 살 수는 없었다. 자신도 한번 당당해지고 싶었다. 군대는 민성에게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고마운 시간이었다.
본부중대 행정반에는 신병 두명이 의류대를 메고 어리버리하게 서있었다.
인사계원 박선보 상병이 그 둘의 신상 명세서를 컴터에 입력하고 있었다.
-야
-예?
-뭐? 예~~에?
-아, 아닙니다. 이병 배원찬
-아! 아닙니다? 이새끼 감탄사가 졸라 쩌네. 둘다 베레모 벗고 의자에 앉아
박선보 옆에 배원찬 이병이 착석했다. 박선보는 배원찬이 적어낸 신상 명세서를 쭉 훑어보았다. 뺀질뺀질하게 생긴것이 참 말도 안듣게 보였다.
-야, 너 사회에서 뭐 하다 왔냐?
-이병 배원찬, 대학교 다니다 왔습니다.
-그럼 씨발놈아, 니 나이에 대학교 다니지 그럼 고등학교 다닐까? 그냥 학교 다닌다고 말해 개새끼야.
-예 알겠습니다. 학교 다닙니다.
배원찬 이병이 완전 쫄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오.. 씨발 좀 좋은 학교 다니네.. 거기 여자애들 많이 먹었냐?
-이병 배원찬, 많이 못먹었습니다.
-야, 나 휴가 나가면 나도 좀 먹게 해줄 수 있냐? 니네 학교 여대생 졸라 먹고싶었는데..
-예 전화한번 해보겠습니다.
-오.. 알았어. 너 주특기가 운전이네? 운전잘해? 니 맞선임 누구지? 박경철 상병님, 레토나 막내 누굽니까?
배차계원 박경철 상병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일신이 아니야? 어... 일신이 맞네. 막내하느라 오래 고생하더니만 이제 걸레 그만 빨겠다.ㅋㅋ
-그렇습니다. 민준아 방송으로 조일신 오라고 해. 걔 오늘 운행없지?
옆에 있던 또다른 행정병 우민준 일병이 대답했다.
-일신이 아마 수송부 연병장에 있을겁니다. 제가 가서 데리고 오겠습니다.
박선보는 다시 배원찬을 바라보며 말했다.
-야
-이병 배원찬
-야 앞으로 병사끼리 부를때는 관등성명 대지마. 여기 룰이야.
-예 알겠습니다.
-됐고. 여자친구 있어?
-예..있습니다.
-오~ 몇살인데 사진있냐?
-동갑이고. 사진은 의류대 안에 있습니다.
-이따가 보러 갈게. 관물대 정리할때 꺼내놔라
-예, 알겠습니다.
레토나 운전병인 조일신 일병이 행정반으로 들어왔다. 조일신 170이 조금 안되는 키에 뽀얀 피부를 가지고 있는 미소년 같은 외모를 가졌다. 성격도 아주 착하고 일도 야무지게 해내서 중대에서 모든 선임이 예뻐하는 친구였다.
-박선보 상병님, 찾으셨습니까.?
-너 후임 들어왔다.
조일신은 소리가 나지 않게 함박 미소를 지었다.
-야.. 일신이 새끼.. 좋아하는 거봐라. 짬찌면 짬찌지 막내 들어왔다고 농땡이 칠 생각이냐?
박경철이 놀리는 투로 말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너 운전 잘해?
조일신이 배원찬에게 물었다.
-이병 배... 아닙니다. 잘 못합니다.
-그래? 어차피 잘 풀려야 일병 꺾일때 까지도 차 못받아.. 그때까지 운전 열심히 하면 되겠네.
박선보가 끼어들었다.
-일신이 너도 운전 졸라 못하잖아.ㅋㅋ
-무슨 말씀입니까. ㅋㅋ 저 운전 잘합니다. 기두식 상병님이 이제 운행 나가도 된다고 했습니다.
-일신아, 너 운행나가고 싶으면 두식이 말고 나한테 비벼야 된다잉~
팔짱을 끼고 시니컬하게 박경철이 말했다.
일신은 박경철의 어깨를 주물르며 애교 있는 제스쳐를 취했다.
-당연한거 아닙니까? 배차느님이 배차 내 주셔야 운행 나가는거 아닙니까. 저 가까운 곳으로는 수송관님 허락 맡아서 저 이제 내보내 주시면 안됩니까?
-하는거 봐서.. 오늘 피엑스에 라보떼 들어왔나 모르겠네.. 먹고 싶다는건 아니고.. 식단표 보니까 저녁 메뉴가 많이 짜네.
-ㅋㅋㅋㅋㅋㅋ 박경철 상병님. 일단 저녁 드시고 생활관에서 뵙겠습니다. ㅋㅋ
일신은 원찬을 데리고 컨테이너에 들어갔다.
-우리는 본부중대 수송부 소속이야. 우리 왼쪽건물이 본부중대 건물이고 저 넘어가 수송부 생활관건물인데, 다 같은 본부중대니까 전부 다 니 선임이야. 여건상 저녁점호는 따로하는데 아침점호는 요 앞에서 같이 하니까 알아두고. 운전병중에 레토나 분대원만 요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니까 알아두고. 일단 자세한건 차차 알려줄테니까 관물대 정리하고 샤워부터 해라. 빨래할거 있으면 내놔봐.
-예 알겠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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