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아는 사람-
-제 1 부 : 빽날 -
이 상황은 어떤 대답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과연 이 상황을 감당할 깜량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문제였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무슨 환자야?’
‘40대 중반쯤으로 보이고요,’
‘쯤으로? 너 지금... 나랑 노니?’
‘아니 그게 아니고, 노숙자 였던 거 같은데, 신분 증명할 만한 게 아무 것두 없어서...’
‘근데, 이 아쟈씨는 지하철에서 곤히 잠이나 쳐 자시지, ER에는 왜 오셨다니?’
그걸 내가 알면 여기서 너한테 찐빠 쳐 잡숫고 계시겠니?
‘내원 당시에 BP(혈압)는 150에 95였고, 펄스(맥박)는 98회, 호흡수는 분당 21회...그리고’
‘아이구...도대처 바이탈 체크도 한 종목씩 까쳐 드시면, 언제 닥터 소리 한번 들어 보실려나? 체온은 왜 안 재셨나? 왜? 노숙자라서 입이 없다니, 겨드랑이가 붙었대디? 정신 없으면 애널도 있겠다, 똥꼬는 뒀다 국 끓여 드실 라구요?’
하이고 째진 아가리로 씨부리는거 봐라...너라면 냄새 쩌는 노숙자 입을 벌리고 싶겠냐, 아님, 이가 드글드글할 웃도리 까고 체온계 쑤셔넣고 싶겠냐? 그래도 난 할 도리는 했다고 강변하고 싶었다.
‘내원할 당시에 의식장애 및 보행장애로 보고 되었....’
‘그럼 노숙자 아쟈씨가 지 발로 걸어 들어왔을까봐? 당연히 질질 끌려 왔을 거고, 의식도 가물가물...
신경계 진찰해 봐야, 드라우지(Drowsy:졸리듯이 어지러움) 에다, 지남력장애(환경따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인지장애), 구음장애(말을 어설프게 혹은 못하는 신경장애)에다 설라무네, 주시유발안진(gaze-evoked nystagmus:인지장애와 동반된 안구 신경계의 이상증상 중의 하나)도 나타났겠네.’
그렇게 잘 알면 어서 과장이나 해먹지, 왜 이 복마전판 ER에서 저렇게 설레발이나 치고 계시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운동검사는?’
‘상하지 근력은 모두 정상이었고 감각 이상은 없었습니다. 심한 운동 실조로, 혼자서 앉거나 서는 것이 불가능하였고, 양측 심부건반사는 대칭적으로 정상이었지만, 양측 바빈스키반사는 양성이었습니다.’
‘그래 평소에 여자들 쭉쭉 빠진 다리만 열나 훔쳐 보드만, 다리 검사는 제대로 했네.’
그러나, 나의 자랑질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 아닌, 노숙자와 거의 동일한 패션의 형사였다.
‘아무 신분 증명을 할 만한 것이 없었다고요?’
‘지금 묻고 계시잖니?’
하여간 저 립¤?지 대답하고 싶은 것만 하고, 엉뚱한 건 다 남한테 떠 넘긴 다니깐두루...
‘네...’
‘혹시 누가 저 환자의 신병을 인도해 왔는지 아십니까?’
‘그 분도 노숙자 였는데....그냥 옆에서 죽어가는 듯 싶게 헷소리를 해대느라 겁먹고 데려 왔다고만 했죠. 그리고, 환자 처치 하는 중이라, 신경도 못쓰고 있었는데, 인적사항 적기도 전에 사라져서, 저희도 난감했었습니다.’
그 형사라는 사람은 심각한 얼굴로, 누워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환자의 얼굴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살펴 보면서도, 자신의 손에 그 노숙자의 시커먼 개기름이 들러 붙는 것을 알아 차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일단, 피의자 신분 이니까, 연고자가 없어도 돌봐 주시고, 정신이 들면 이쪽으로 연락 주십쇼. 그럼...’
내가 받아 든 명함을, 형사가 사라지기 무섭게 낚아채서 살펴 보는 저 립?.형사 명함 첨보남?
‘너 아주 신났다? 저 봐라 말이야. 양 손에 수갑채워 놓은 거...일났네...링거 꼽다 칼침이라도 맞을까봐 형사님이 용쓰고 가셨는갑다. 하이고 당첨!, 빙고오...랄랄랄...’
난 멀뚱하니 서 있으면서도 그 환자의 두 손에 채워진 수갑을 눈여겨 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노숙자 주제에 뭐 대단한 범죄라도 저지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그 사람의 초췌한 행색, 배고픔과 영양실조가 완연한 혈색, 입안에서 치미는 역겨운 악취등등을 고려할 때, 한참이나 흉흉한 범죄자와는 거리가 있는 지경인데, 난 구지 저렇게 수갑을 채워 놓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마저 들고 있었다.
‘혈액검사 결과는?’
나는 다시 일상의 추격전에 몰리고 있었다.
‘총빌리루빈 1.87 mg, r-GTP 181 IU로 상승되었고, 혈중 티아민은 16.5 μg로
감소되었는데.... 다른 혈액검사는 정상이었습니다.’
‘꼭 봐야 읽지? 외우면 어디 대가리에 쥐나니? 여기서 땡시험 발사....혈중 티아민의 정상수치는?’
‘.......’
‘아이구 니이미....정상범위를 까쳐먹었는데, 검사수치가 나와봐야 까막눈이지...내가 이 자식을 콱 밟고 쇠고랑을 차? 아니다, 내 발바닥이 아깝다...티아민 정상수치 28.0에서 85.0....이제야 알았다는 표정하면 너 뒤진다?’
기억이 안나는 걸 어떡하니? 그럼 내가 이 자리에서 내 대가리 줘 박아봐야, 나만 아프지...
‘그럼 두번째, 땡 시험....이 환자의 내진 기초결과로 볼때, MRI 찍어, 말어?’
‘일단 찍어야죠. 투표도 찍으라고 있는 거고, 나무도 찍어 넘어트리라고 있고, 여자도 찍어 자빠트리라고 있는 건데, 하물며 병원에서 MRI, CT 찍는 거 겁네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
저 기가 막힌다는 표정...씨부럴 립♥? 내가 요걸 기둘렸다. 누가 그걸 모르냐? 생명 존중 나발이고, 병원비 계상하기 힘들어 뵈는 환자에게 MRI 디리 찍어 댔다가 무슨 욕지거릴 들어 먹을 라구....니이미 나두 병원밥 쳐드실만큼 자셨거덩요?
‘대가리는 아예 핸드폰 고리처럼 대롱대롱 매달려서리 하는 꼬락서니 봐라. 뭐? 뭐가 어쩌고 저째? MRI 구지 돌렸다가 그러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는 티아민 결핍으로 인한 베르니케뇌병증 인게 과장님 한테 뽀록나면 엄청 잘했다고 칭찬 들을까봐? 그러고도 의사되기를 바라셔요? 그러셔요? MRI돌려 보나마나 확산강조영상 이랑, FLAIR 영상에서두 고신호강도, 게다가 확산계수는 고신호와 저신호 강도가 혼재되어 있을거고....정 의심되면 트랜스케톨라제(Transketolase:적혈구 케톨전이효소) 활성도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하고 엿되냐 이 말이쥐. 옛말에도 있다, 너? 젊어서 사서 고생은 늙으면 지병된다는 말...’
씹탱구리 립?..그걸 개그라고...개구라를 까도 그 보담은 낫겠다.
‘일단 티아민 1500mg으로 하루 오더 때릴테니 잘 살펴봐.’
일단, 오더가 떨어지고, 스테이션의 키득거림이 잠잠해지며, 내 담당의 베드에서 그 씹립ː?사라지는 게 나은 결말 이었다. 이럴땐, 슬그머니 병원을 벗어나 담배 한대 태우는 게 최상의 해결책이기도 했다.
‘눈깔이 동태지...어찌 형사짓이나 해먹으면서 그 손마디 보면 모르나? 빽날을 못 알아보다니...쯧쯧...’
‘아저씨, 뭐라 하셨어요?’
‘젊은 의사 양반두 몸조심허쇼...’
‘왜요?’
ER내의 구역 청소를 위해 일하시는 신씨 아저씨는 대답 대신에 형사가 수갑을 채우고 돌아간 그 환자를 턱으로 슬그머니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제, 담배 한대 꾸러 갑세.’
‘조오치...’
밖은 여름의 열기를 식히려는 듯, 소낙비가 좌악좌악 퍼붓고 있었다. 이럴 때 가장 성가시는 것은, 한 손에서 놓지도 못하는 핸폰과, 그렇다고 비도 맞기 싫어 딴 손에서 놓지도 못하는 우산이기도 했다. 담배는 피워야 겠고, 핸폰도 눈 떼기 불가능하며, 비는 더더욱 맞기 싫은 이기주의의 극한체험....그걸 아시는지, 신씨는 냉큼 우산드는 것을 거들었다.
‘으이그 화상하고는...그러니 찐빠 먹는게 일상이지...뭘 하나 포기해도 되겠구만....쯧쯧..’
‘아제, 이 상황에 대가리에 빗방울 투댁이며 다시 들어가 봐요. 너 또 어디서 짱박혀 있다 왔냐고 그럴거고, 핸폰 안 받아 봐요, 똥뚜깐에 앉아 있다가도 벌떡 일어날 판에, 내가 맘 편히 담배나 탤 수 있겠수?’
‘그러게, 누가 의사 하랬나?’
하긴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말이긴 했다. 누가 등 떠민 적도 없고, 나 스스로 도취되어 여기까지 목줄 잡혀 끌려온 주제비라 뭐라 대꾸할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지경으로 나동그라질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신씨의 비아냥이 섭섭하지만은 않았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그 사이로 퍼져 나가는 담배 연기는 빗줄기를 무시하는 듯, 건방져 보이기 까지 했다.
‘근데, 아제, 아까 그 빽날은 뭐래?’
‘왜, 알고 싶어? 그 두꺼운 교과서나 열씨미 더 외우시지? 알아봐야 말짱 도루묵인 아랫것들 개차반 인생....’
‘뭐 알고 싶다라기 보다, 그 형사가 좀 너무 한 게 아닌가 해서....아니, 그 꼬라지를 좀 봐요, 흉악범은 고사하고 지 몸 건사하나 못하게 생긴 사람에게 수갑은 뭔 놈의 수갑을, 그것두 두개씩이나...요즈음 형사들 살림 쫌 나아졌남? 아주 지를 게 없어서 수갑을 다 질러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지...내 한마디만 해줄까? 내노라 하는 바닥에서는 다짜고짜 칼 들이대는 쇄끼들을 양아치라고 하지만, 개중에는 칼을 예술로 그어대는 치들이 있지...여러 명이 치고 빠지는 상황에서 아무도 누가 칼을 꺼냈는지 모르는 거야...알아? 앞에서 설쳐대는 핏댕이 들이야 제쳐두고, 쏜살 같이 떡대들의 사이를 파고 들어, 가장 먼저 손을 봐줘야 할 쇄끼를 번개같이 끊어놓고 사라지는 인물....’
‘아제...요새 영화 너무 본 거 아니우?’
‘흐흐...그럴 줄 알았네...영화 같은 그 솜씨는 영화에서도 보질 못했으니, 내 말이 영화처럼 들릴밖에...구라 같이 들리면 다음에 허지...담배도 다 탰고...’
‘헤헤...또 그렇다고 삐치면 되남?, ER에서 유일한 흡연 동지끼리 이래서야...’
‘비가 엄청 오시려나 보네....들어가지....궁금하다니 한마디만 더 해줄까? 빽날이 왜 빽날 이냐믄....너무 빠르게 칼을 휘돌리면, 그 칼날에 피가 전혀 묻지 않는다고 해서 빽날이라고 하는거지...이 칼에 네놈의 피를 묻혀주마 하고 영화에서 설레발 떠는 쇄끼들...다 구라야...굼뜬 d세이들...어디 빽날 발 뒤꿈치도 못 따라오는 것들이 영화랍시고 설쳐대는 꼬락서니라니....내 참...’
난 담배를 끄고 돌아오는 동안, 신씨의 그 소회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누구나 소싯적에 금송아지 타보지 않은 적이 있더냐라지만, 저렇게 인간 폐인이 된 전설적인 칼잡이의 말로라니....그러나, 그것도 모자라 지금껏 경찰의 수사 대상에서 쫓김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도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감을 받고 있었다. 내가 맞닥뜨린 우려와 달리 환자는 티아민을 투여한지 하루만에 정신이 들었고, 5일 정도가 지나자,안진과 운동실조도 점차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의식이 호전된 후에 추가로 기억력 장애가 확인되었고, 사건후 기억상실과 사건전 기억상실이 모두 나타났다.
‘내 뭐래디? 이래서 내가 너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이니라...아까 회진 때, 과장님 하시는 말씀...MRI까지 갈 것도 없이, 신속한 오더에 매우 흡족하시단 말씀....오금이 재려서 오줌을 다 지릴 뻔 했네...’
왜? 그 자리에서 오줌에다 똥이라두 대대하게 쎄트로 갈겨보시지?
‘근데, 형사 나리 한테 너 연락은 때렸니?’
‘아,참...곧 하겠습니다....여브쎄어...여브쎄어?....’
난 이미 연락을 했었지만, 핸폰 꺼내는 시늉을 하면서 ER을 휑하니 빠져 나갔다. 그래야 담배 한 대, 폼나게 또 태워보지 않겠는가 하는 꼼수 때문이었다.
‘헤이, 병실에서 있는 시간 보다 담배 피우러 더 자주 만나니, 누가 자네 같은 의사 쳐다보며 살겠나? 아예, 병들어 뒈지고 말지...쯧쯧...’
‘하이, 아제 왜 이러시나....흡연 동지끼리 이러면 섭하쥐....’
‘왜 오늘은 뭔 일루다가 담배 태우면서 쓰라린 심정 오바로꾸 치러 나왔남?’
‘거 있잖수? 그 빽날 이란 환자...그 얘기나 들어 봅시다. 영화만큼은 안되도...’
‘휴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 신씨의 시선이 저 먼 곳에서 촛점이 사라지는 것처럼 힘을 잃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잘은 몰라...그때 병실에서.... 손등에 난 칼자욱을 보고.... 겨우 알았지...모자라는 치들처럼 몸에 문신도 하는 법이 없는 사람 이었고,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무섭게 끝을 맺는 그런 사람....’
난 신씨의 호흡이 잦아 들면서, 점차 조용하고 담담한 어조로 바뀌어 가는 것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 2 부 : 뭉치와 빽칼 -
신씨는 거푸 줄담배를 태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님.....매일 그렇게 앞을 서시면 저희들이 곤란하잖아요?’
우리들은 언제나 앞장서서 선봉을 때려대는 뭉치 형님을 가장 무서워 했다. 중구난방으로 설쳐대는 그의 위세 때문에, 사고뭉치를 줄여 뭉치라는 별호를 붙여주긴 했어도 언제나 말이 없고, 군소리는 더더욱 없는 형님이기에, 따르는 아이들도 하나 같이 제 몸을 사린다든가 하는 일은 추호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다 이기... 너그들 잘 되라 하는 똥푸레이 아이가? 헝헝헝..’
형님의 웃음은 그 진중한 스타일과 다르게 좀 얼빵한 구석이 있긴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형님은 동생인 나의 위치를 언제나 추켜 세워주시는 과분함이 있었다.
‘느그들이 뭘 알아?....대가리 꿰지고(터지고), 팔 몇뻔 뿌라바(뿌러져 봐)...그기 훈장인 줄 아나? 에이 빙신들...느그들 학교 가봐야 쫌팽이 소리바께 더듣나? 대갈빡 걸고 칼춤 추는 우리 빽칼이 빼고 나면, 씨레기야 씨레기...’
그 말 속에는 나와바리 쌈박질에서 인명 사고가 나도, 결국 쇠고랑을 찰 인물은 나 밖에 없다는, 자랑 아닌 자랑 이었던 것이다. 맨처음부터 내가 칼을 쥔 것은 아니었다. 몸이 잽싸고 다리가 빠른 나를 지목해서 뭉치 형님 밑으로 붙인 것은, 큰 형님의 지시 였다.
‘안될낀데요..저느마는 뱃심이 약해가 칼 몬 쥘낀데....암튼 맡아 보겠심더...’
뭉치 형님은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었지만, 다음 날부터 행동대에서 나를 축출 시켜 버렸다.
‘잘 들으래이...자고로 칼 쓰는 인가이(인간이) 세종류 있다 안있나...하나는 판검사, 또하나는 의사, 나머지 하나는 푸줏간 쥔장...’
‘그럼, 저희들은...’
‘우린 삐꾸리 아이가? 애차 사시미 쥐고 날뛰 봐야 팔찌바께(팔찌밖에) 드차겠나(더 차겠나)? 칼로 피를 보몬 그기로 끝인기라. 피를 보면 안된대이...’
‘아니, 형님, 칼침에 어떻게 피를 않 봅니까?’
‘그기 테쿠닉 인기라...요래,요래,요래.... 봤나?’
내 눈 앞엔 형님이 언제나 선봉에 서는 이유가 자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화려한 손목의 스냅이 이어지면서도 절대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 날렵한 휘돌림....
‘장검은 미친 짓이라 안하나....지가 무신 조선시대 무사가? 금도(검도)? 좇거튼 소리하고 인네...니도 알재? 딱 부트믄 간극(간격)이 얼마나 되드노? 주먹 두개 인기라...칼 빼다 뒤질일 인나! 연습은 장검으로 필을 끈어도, 갈수록 칼은 짧아져야 한대이....’
형님의 가르침은 자신이 몸으로 겪은 사실을 고스란히 전수시키고 있었다.
‘팔 똑띠이(똑바로) 안드나, 쌔끼야...니 팔이 무거버가(무거워) 지는 거이 아이고, 그 꼴난 칼무게도 몬 견디(못 견뎌) 칼침 맞는데이...알았나?’
특별히 영화에서처럼 손발목에 모래주머니나 차는 허접한 훈련도 아니었고, 형님은 언제나 칼만 들고서 앞으로 나란히를 한 채, 몇시간이고 기마자세를 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대단한 훈련을 받을 줄 알고서 내심 긴장하기도 했지만, 사실 처음에는 코웃음을 친 채, 임했다는 것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고심나...으이? 삐꾸리 새끼 주제에 칼을 노치(놓쳐)?’
훈련 중에 쓰러지면, 닭을 고아 먹이는 경우는 있었어도, 들고 있는 칼을 놓쳤다가는 그 날은 뼈도 못추릴 정도로 개밟히게 되는 날이었다.
‘니 소이(손) 칼이 되고, 칼이 니 소이(손)되는 기라. 칼을 노치몬.... 니 모기(목이) 나가는 기라...’
그 말은 실전에서 아주 중요한 지침 이었다. 쑤시면 치명적인 사시미의 경우, 그 길이를 적절히 맞추어 담그려면, 충분한 간격이 있어야 하는데, 그 간격을 일부러 허용하면서 달겨드는 짱구들은 없었다. 그저 사시미를 든 선봉은 휘두르기만 바빴지, 상대를 완벽하게 거꾸러트리는 치명타가 왠만한 접전에서는 볼 수 없는 이유 이기도 했다.
‘퍽...퍽...퍽’
그러던 어느 날인가, 난 눈 앞이 노래 지도록 맞았다. 이유도 없었고, 잘못도 없었지만 칼을 들고 기마자세로 버티고 있던 와중에 기습적으로 내려찍고, 후려치는 형님의 주먹과 발길질에 도저히 견뎌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먹도 몬 쓰는 쇄끼가, 칼은 자바(잡아) 뭐하노? 칼 먼저 날려봐야 양아치 바께 더 되겐나, 으이?’
형님은 칼을 다루는 것에만 전념하는 나에 대한 경고를 그렇게 틈틈히 하셨다. 일반들이 보기에는 사람 상하게 하는 칼춤교습이라고 욕할지는 몰라도, 이 바닥에서의 생존논리로 따지자면 자율학습이요, 전공이수일 뿐이었다. 칼로 일어난 자, 칼로 망하는 법이라고 가르치기 이전에, 칼이 없어도 자신의 맨 몸과 주먹이 무기가 되어야만 버틸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하나도 부자연스럽지 않은 것이었다. 난 서서히 형님의 지론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에 다가가고 있었고, 형님도 그것을 눈치 채셨는지, 잔소리도 점차 줄어가면서, 언제나 신의 한수 같은 팁을 알려 주는 것에 빠져 계신 듯 했다.
‘빼를(뼈) 잘 봐야 한데이...어느 순간에도 빼가 걸리몬... 칼이 힘도 몬쓰고 박히는기라...’
공부는 애초에 체질과 맞질 않는 나였지만, 형님은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인체 해부도가 나와있는 오래된 책을 구해 오셔서는 몇 분안에 과다 출혈로 즉사할 수 있는 부위와 괴롭게 천천히 죽일 수 있는 부분들을 상세하게 가르치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외울 수 있도록 눈 앞에 항상 그려보라고 채근했다.
‘형님, 실습 같은 거는...’
‘실습? 미칫나? 쌩목숨으로 실습? 닥치믄 하는기지...뭔 실습?’
형님은 소, 돼지 백날 찔러봐야 고깃덩어리에다 피칠갑이나 하고 앉아 있지, 발골이 직업이 아닌 다음에야 실습은 없다고 못박았다. 방어도, 공격 본능도 없는 짐승들이나 찌르고 앉아있을 값에는 쪼그려 뛰기를 백번 더 하는 게 낫다고 하는 인물이었다.
‘번개가치 살을 갈라도, 칼침에 빠진 몬된(못된) 쇄끼는 그 손마슬(손맛을) 몬 인는데이(못 잊는단다)...목저근(목적은) 단 하나...분명한기라...상대를 꺼꾸려트리(거꾸러트려서) 다쉬는 그 아가리로 숨돌리지 몬하게 하는 거....한번 날리봐...훅 하는 피냄새....한달은 갈끼야....’
형님은 언제나 선봉의 기세가 상대를 서서히 눌러가는 시점이 오면 나를 자신의 뒷편에 붙어오게 하면서 돌격적으로 정면을 치고 들어갔다. 상대가 반격을 하기에는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고통이 심각해져, 헉하는 비명과 함께 스러지기 시작할 무렵, 난 그 뒤에 바짝 붙어서 사전에 훈련한대로, 목표로 삼는 그 인물의 주위로 최대한 가깝게 접근해서 칼을 날렸다. 대개는 손목아지나 발목을 끊어 놓는 것이 대부분이고, 겁만 줄 경우는 십자 인대를 그어 버리는 것이 주로였다. 목숨줄을 끊어 놓기 위해서는 초근접을 해야하고, 그나마 벌거벗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나처럼 칼을 휘두르는 도법의 경우, 그 성공률이 간격을 앞에 두고 있다면 낮을 것은 뻔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또 한가지, 항상 형님을 앞세워 칼을 날리는 이유는, 여러명의 혼전이 있을 경우, 앞장에 서 있던 뭉치 형님을 기억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정작 싸움이 잦아들고 자기 편의 중요 인물이 거꾸러졌다고 할지라도, 누가 정확하게 칼을 날렸는지, 도대체 짚어낼 수 없는 상황상의 혼란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난 계속해서 사시미나 파이프도 없이, 형님과 함께 날뛰는 주먹패처럼 보였고, 칼을 후둘렀어도 양복에 피 한방울 묻히는 법이 없이 재빠르다고 해서 형님은 빽칼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거다.
‘야야, 쑤셔봐야 마슬(맛을) 안다꼬, 빽보지 아이가...헝헝헝...니가 그짝이네...빽뽀지...빽칼....헝헝헝’
난 빠르게 칼을 휘두르는 것에는 이미 이골이 나고 있었다. 어떤 치들은 내 주먹에서 섬광이 번쩍이는 것 같다고도 했고, 저 새끼 주먹 한번 잘못 맞았다가는 아가리가 죠커처럼 된다는 말도 돌고 있었다.
‘칼은 묘한기라....의지할라카믄, 저만치 퉁기고(튕겨나가고), 무정하면 니 손에 비츨(빛을) 뿜는기라...니...칼재비의 독이 뭔지 아나?....그건 칼자랑이 아닌기라..... 담그는 살마신기라(살맛 인거다).’
어릴적 공부는 하기 싫고, 무언가 집중은 하고 싶을 때, 잘 드는 도루코 면도날로 싸구려 무궁화 지우개를 석석 베어버릴 때의 그 쾌감을 말하는 듯 했다. 피 한방울 나지는 않았어도, 그 지우개에 잠기듯이 파고 들던 그 칼날....그리고 그 칼끝을 통해 전해지는 탄력과 이유를 알 수 없는 후련함....나는 아마도 형님의 교습을 통해 되지 말아야 할 그 못된 자, 즉 칼침에 빠진 못된 새끼가 되어가는 중이었던 가 보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나 쫌 보재이....’
큰 형님을 독대하고 나온 뭉치 형님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것이었다.
‘작업 쫌 해야 된다꼬....’
평소와 다르게 말끝을 흐리는 폼이 별로 달갑지 않은 일감을 지정 받은 모양새였다.
‘네, 형님....’
난 내가 할 말을 다 해버린 셈이었다. 지시는 이행이었고, 반론이나 질문이란 것은 이 바닥에선 모르는 단어 였으니까. 침통한 얼굴로 나에게 내민 것은 한장의 사진이었다. 평소 같으면, 눈에 익은 아새끼들이 분명했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눈매가 보통은 넘는, 그것도 젊은 여자 였다. 게다가 학사모를 쓴 사진으로 보자면, 대학물을 먹은 젊은 여자...왠지 깨름직한 느낌이 뇌리를 스치고 있었지만, 무어라 대꾸를 할 수는 없었다.
‘짜투리라고 니 알재?’
‘네...’
‘갸가(그 여자가), 갸(짜투리의), 이거라 안카나?’
형님은 새끼손가락을 펴서 보여주었다. 아마도 OO구에서 한창 약발로 상한가를 때리고 있는 조직과 관련된 여자, 그 중에서도 우두머리의 세컨드 인 모양이었다.
‘찝찝할끼야....빙신도 아이고....아예......’
형님은 어디를 끊어라라는 말도 없이, 목을 긋는 시늉으로 지시를 디테일화 했다. 단 한번에 작업을 성공시켜야 하고, 누가 했는지, 밝힐 수도 없어야 하며, 만일 발각되면 나 혼자서 독박을 써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 여자를 미워해서도, 그 어떤 특정한 이유도 듣지 못한 채, 난 빨가벗겨진 채로, 칼을 든 채, 그 여자에게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잠수타믄 큰일 난대이...짭새가 와도 팽상시(평상시) 처럼...알재?’
이 세상에 완전범죄는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기에 옷을 차려입고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떼사리로 작업을 들어갈 때는, 챙겨가며 덜그럭대는 연장의 소음들마저 어깨에 힘을 실어 주었건만, 혼자서 처리해야 될 이런 작업은 처음이기도 했지만, 다시금 이 바닥으로, 이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나를 더욱 긴장 시키고 있었다.
‘형님, 다녀오겠습니다.’
‘오야...’
뒤돌아 서는 나에게 당부의 한마디가 없었다. 모든 것은 너의 책임이고, 손에 묻은 피의 댓가도 모두 내가 지불해야 한다는 것처럼, 공허하게 들렸던 형님의 모진 그 대답...난 되도록 형님이 가르치신 대로 별 계획없이 발걸음을 옮겨갔다. 누구를 타격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록 내 머리를 파먹게 된다는 형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았다. 단지 나의 머릿속에는 사진의 뒷편에 적혀 있는 대상자의 하루 동선과 예정 시각들만이 맴돌았고, 어서 이 상황이 빨리 마무리 되어, 허기진 속이라도 풀 수 있게, 순대국에 곁들인 소주 한잔이 그리워 지고 있었다.
‘스..삭.....’
카페의 계단에서 발레파킹의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는 대상자가 눈에 띄었고, 난 전혀 긴장함도 없이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손목에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상체를 스치듯이 지나치면서 정확히 두번의 스냅으로 목젖의 중앙과 경동맥을 동시에 끊어치며 지나가는 그림자.....그게 나였다. 피가 베어 나오기도 전에 대상자는 끊어진 기도로 인해 숨이 막혀 목을 부여 잡았고, 내가 자리를 뜬 얼마 뒤에야 질질 흐르던 피는 터져나왔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아마도 5분 이내에 구급차가 도착하기는 어려운 위치에다가, 젊으면 젊을 수록 피는 더 세차게 뿜어져 나올 것이 분명하기에, 절명은 이미 예정된 결과 였는지도 모른다.
‘니 술 쳐무읏나(쳐먹었냐)?’
‘땡그랑...’
난 대답 대신에 형님 앞에 한시도 놓친 적이 없는 내 몸의 분신 같은 칼을 내던져 버렸다.
‘피도 엄네? 실패가?’
그러나, 곧이어 형님은 칼날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흔적을 발견하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수고했데이...머스마...기깔나구마... 피도 한빵울 엄꼬...이기 빽날 아이가! 빽날!....헝헝헝....’
왠지 형님의 그 멍청한 웃음소리에 난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괘안타....우리들 인생사리...피풋?피 먹고) 피뿜꼬(피 뿜으며) 사는 꼬라지들 아이가?’
난 한참을 그 자리에서 소리없이 울다가 일어섰다.
-제 3 부 : 악연 -
‘퍽..퍽...퍽...퍽....’
온 몸은 독감에 걸린 것처럼 땀으로 흥건 했고, 남을 칠때보다 더한 근육의 긴장은 내 몸의 신체굴곡을 더욱 그늘지게 만들었으며, 온 몸이 무기처럼 변한 나의 살갗은 좇질조차도 주먹처럼 내지르고 있었다.
‘헉헉...오빠...오늘...내 보지 끝짱 낼 일 있쑤?....윽윽...아니, 좇대가리에 망치를 달았나?..윽윽’
그건 망치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내가 내지르는 칼 이었다. 이미 내 몸은 칼이 되어 있었고, 세상은 벨 것 천지인 선지덩어리 였기에.....
‘눈을 보면 안된다꼬....그 순간...니 칼이...힘을 잃는기라....’
그래서 그런지 나는 여자들을 사서 섹스를 할 때, 눈을 쳐다 보질 않았다. 그 눈빛이 나에게 무슨 힘이 있을까 마는, 그건 형님이 나에게 전염시킨 맹신이었으며, 일종의 타부이기도 했다.
‘오빠앙...제발...제발...살려줘....아효...보지 뚫어져.......아흑아흑.....’
내 밑에서 버둥대는 이 여자도, 돈 한푼 더 벌어 보려고 가랭이 벌리고 이 짓을 해대겠지만, 나에게도 추호의 용서란 없었다. 벌려진 가랭이와 엉밑살은 이미 벌겋게 부어 올랐을 것이고, 이 방을 나가면서 아마 걷기도 힘들 정도로, 골반은 뻐개지듯 아파올 것이 분명했다. 나의 섹스는 세상을 향한 울분이었고, 내 앞의 상대는 그저 추임새일 뿐, 감동은 없었다.
‘아우, 씨벌넘...제발 좀 싸라...윽윽윽...어디서 인삼을 타스로 꼬아 쳐먹었남?....쌀 쭐을 몰라....’
기어이 욕지기가 방안을 날라 다녔다.
‘윽윽...캑캑...억억...켁켁....캬아아아악......’
욕지기를 하던 그 아가리는 정말 추악해 보였기에, 어느새 난 좇질과 더불어 상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숨도 막혀오면서 눈동자가 휘번덕하게 돌아가던 그 여자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온몸이 활처럼 휘어 버렸다. 정신줄을 놓았어도, 두 다리를 가끔씩 발작적으로 떨어대고, 오줌마저 질질 싸대는 꼴이라니....
‘후아.....오빠앙...어디서 그런 기술 배웠대? 모가지 졸라대며, 디리 쑤시니깐두루 기어이 홍콩 가드만...담에 기회있음 또 불러주라...’
상대는 그 정확한 타이밍을 몰랐다. 숨이 막히는 그 순간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오르가즘의 극한을 향해 부들부들 떨리는 전신을 제압하고야 마는, 그 목조름의 힘조절....세상 어디를 찾아가 봐도 칼질과 섹스가 합해진 나를 찾아내기는 힘들거라는 생각을 하며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띠롱띠롱띠롱....’
그건 막둥이의 전번이었다.
‘성님....큰일 나부렀당께요...방금 큰성님이랑 뭉치 성님이랑 맞짱 떠 부러 가지고....’
‘알았다 곧 가마....’
도착하자마자, 눈 앞에 벌어진 사태는 그야말로 가관 이었다. 두패로 갈리어 으르렁대며 대치하고 있는 상황은 동네 개싸움만도 못한 지경이었고...
‘뭔 일이냐?’
서로가 등에 칼을 꽂는다든가, 자리를 탐해서 벌어진 쌈박질은 아닌 모양이었다.
‘야이, 씨발새끼야, 우리들 같이 밑바닥 굴러 먹는 새끼들, 인정 있다고, 사람답다고 누가 그러대? 시키면 시키는대로 굴러줘도 모지랄 판에, 누군 뭣땜에 안되고, 누군 뭐하러 치고, 어째고 저째? 그렇게 사람 가리다 내 밑의 식구들 굶겨 죽인 담에, 니가 짱 한번 먹어 보려구? 정신 차려 이새끼야. 가릴 게 따로 있지...딸이든 세컨드 건 간에....’
‘행님아, 그리 살지 마소...내사마 보면 모르나? 칼춤 추다, 술 쳐묵꼬 요 꼬라지 된 기...다 벌 받는 거 아잉교?’
‘개립♥? 잘났다. 그래, 누가 너 더러 꽐라되도 모지라게 술 쳐 먹으래디? 빽날처럼 니이미 오만 년 보지나 쑤시고 댕기면 보약으로 땜빵이나 되지...어휴...성질 같아서는....’
‘저 둘러선 아그들 쫌 보소...행님아..그리 살지마소....’
그 날의 헤프닝을 정확히 아는 아그들은 없었다. 아마도 내가 날린 그 대상자가 기실, 그 자의 세컨드가 아니라, 딸내미 였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 이었던 듯 싶었고....큰 형님의 폭언도 따져보면 일리가 있기는 했다. 사람 가려가며 장사해 봐야 좋을 거 없는 우리들 이었기에..., 하지만 뭉치 형님의 반발은 거기에 있지 않은 듯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들과 친족은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에서 주먹 다짐이 시작되었다는 걸 보면, 되도 않는 이 바닥 생활에 뭉치 형님의 감성팔이식 반발이, 큰 형님의 분을 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둘의 쌈박질을 목도한 것은 그게 마지막 이었다. 난 잠수도 타질 않았고, 평상시 처럼 생활하다가 미련한 형사의 끈질긴 잠복 끝에, 기어이 팔찌를 차게 되었다. 증거도 없고, 그저 심증 만으로 잡혀간 나였기에 진술도 대충대충, 현장검증도 그럭저럭, 조서는 시나리오대로 꾸며져, 나를 아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범행에 덤태기를 쓰고 대신 학교가는 꼴로 알려져 버렸다.
‘그래서요?’
‘안 바빠? 메르스 끝나고 나니, 하늘이 푸르러 보여?’
신씨의 얘기는 들을 수록 빠져들어 가는 묘한 맛이 있었다.
‘나도 거기까지 밖에 몰라. 다들 그러다 떼사리로 잽혀 들어가고, 인생 종치고 뭐 그랬겠지....나도 들어서 아는 거지 뭐....’
‘이거야 원, 끝이 개판이네...한국영화가 뭐 다 그렇지....천만이 들면 뭐하고, 주연 배우랍시고 광고 열나 찍어대면 뭐하누....일년 지나면 뭔 영화였는지 대갈빡에 하나뚜 남는 게 없는뎅....’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지나봐야 먼지보다 못한 개차반 종자들 인생...머릿속에 남겨둘 이유는 없지.’
난 괜한 시간 낭비나 했다 싶어, ER로 쫓아 들어 가면서 머리를 마구 헝클어 뜨렸다. 이렇게 라도 해야 어디 아프냐, 화장실에서 기쓰다 왔냐며 걱정이라도 해줄 것 같아서 였다.
‘너 어디서 짱 박혀 있다 왔냐? 저 옆 머리 눌린 거 봐라...졸다 흘린 침은 어쩐 일루 닦기는 했네. 아까부터 형사 양반 와서 기둘리고 있다.’
난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에 옷매무새를 고치고 그 빽날이라는 환자가 있는 베드로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다가서는 지도 모른 채, 그 너저분한 옷차림의 형사는 녹음기를 대고 무언가를 계속 경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왔는데여...’
‘쉿....’
형사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했다. 아이구 잘났어요, 정말...
‘그래서....그러니까...그런 후에....’
난 뻘쭘하게 있다가 돌아 서려는데, 그제서야 녹음기를 끄고 나를 향해 돌아서는 것이었다.
‘의사 양반, 쫌 물어 봅시다. 이 환자, 정확한 병명이 뭐요?’
‘아직 상태를 좀 지켜봐야 하지만, 글쎄요, 아까 회진 시에 과장님께서 그러셨는데, 티아민 결핍으로 인한 베르니케뇌병증 이라 하시데요...’
‘베르 뭐요?’
‘쉬운 말로 치매 병증 중에 하나에요. 지속적인 폭음에 의해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되어 있구여...’
‘아니, 치매는 알츠하이, 뭐 어쩌구 그런 거 아닌가?’
‘알츠하이머도 있고요, 이 디멘시야(치매:Dimentia)라는 게 보기보다 종류가 많아요, 알츠하이머, 혈관성 치매, 파킨슨성 치매, 루이체 치매, 베르니케뇌병증, 코르사코프 증후군....’
‘그러니까 치매란 얘기죠? 쉽게 하자면?’
‘네.’
뒤로 치나 앞으로 두들기나, 치매는 치매 였으니까.
‘그럼 이 환자의 상태는 어느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까?’
‘중증이죠. 기억상실까지 동반하고 있으니...뭐 더 볼것도...’
중증에다 기억상실이란 단어가 나오자, 형사 양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으며, 거기에 더하여 똥 밟았다는 심정마저 겉으로도 보이고 있었다. 사실 환자의 상태가 거의 금치산자에 가까운 치매 중증일 경우, 기소 유지가 어려운 것이 통례적이라고 들어왔고, 그로 인해, 겨우 잡은 범인, 공중에 붕 떠 버렸네 하는 허망한 심사가 눈가에 흘렀다.
‘잠깐만요...여긴 도대처 치워두 치워두 끝이 없어....’
신씨 였다.
‘암튼 어찌됐든 간에, 별도의 연락이 있을 때까지는 퇴원조치 하지 마시고...’
‘아니, 그럼 병원 비용은 누가 정산하시는 거죠? 행려병자도 아니고설랑, 이렇게 마구 베드 붙잡아 둘 수도 없거든요?’
‘아, 이거 참...좇됐네...어쩌지? 암튼 내일 아침까지 연락 드릴테니....’
그 기름 번들번들하니 감지도 않은 듯한 머리를 쥐고 흔들더니, 이내 쌩하고 튀어나가는 형사의 뒷모습이 민중의 지팡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약해 보이고 있었다. 사라지는 그 모습을 신씨도 고개를 끄닥이며 안됐다는 표정으로, 꼬나 잡은 마포자루만 만지작 거릴 뿐이었고....
‘어휴...저 담배 한대 피고 올랍니다.’
‘그래라...한 몇년, 나보다 먼저 간들...., 내 인생이랑 뭔 차이 있겄냐?’
씹립?지도 지칠대로 지쳤는지 순순히 휴식을 허락하는 폼새가 자못 생경하기 까지 했다. 밖은 다시금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저멀리 흡연동지 신씨께서도 쪼그려앉은 자세로 열심히 연기를 뿜어대는 것이 보였다.
‘아니, 어쩐 일루다가 음악감상 까정? 이제 담배 말고 다른 취미도 키워 보시려구요?’
신씨는 담배를 피우는 내내, 머리를 끄덕이며, 리듬에 맞추는 모냥새로 담배에 말려 있었고, 나는 나대로 그 음악, 안들어봐도 뻔할 예감에, 말없이 옆에 앉아 듀엣으로 연기만 디리 뿜어대는 중이었다.
‘근데, 신씨는 어쩐일루 그 손에 맨날 반창꼬래? 내가 좋은 더마톱이라도 구해줘?’
‘발라 봤자지. 자네두 잘 알겠네, 허구헌날 마포자루 빨아대, 거기다가 청소용 소독약품이 좀 쎄야지...이게 나을만 하면 도지구, 아물라 싶으면 갈라지구...이미 포기 했네그려...거어즈랑, 밴드에 물 젖으면 갈아대는 거이, 더 수월하더라구.’
‘그거 알고보니 직업병이네.....참...그 음악은 뭐유? 누가 볼까 싶어 같이 듣자는 둥, 오징어 될만한 멘트는 삼가해야지만....킬킬...’
‘별거 아니야.... 이 나이 쯤 되보면, 백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노래 한자락 쯤 생기게 되거든? 자네도 그 나이 되면 알걸?’
‘난 그래두 응댕이 빵빵에다, 다리 쭉쭉 아그들 노래가 젤루 좋드만....캬! 그 라인...’
‘정신차려, 의사 양반아!, 그 좋은 머릴 달고서 이 세상 폼나게 살아도 누가 뭐랄 사람 없겠구만, 그다지도 마음 속에 빼(뼈)가 없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신씨는 나보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벌떡 일어나는 폼이 부럽기만 했다. 젊디 젊었어도 어찌 나의 입에서는 애구구 소리가 연발로 터져 나오는 것인지....
-제 4 부 : 우린 늘 그렇듯, 그렇게....-
‘야, 드레싱을 했으면 치우라고 말을 해야지, 이 꼬라지로 넌 뭐하니?’
오더와 전산망과의 불협화음 때문에 ER로 쳐 내려온 과장님은 대뜸 베드 주변의 어수선함을 꼬집고 계셨다.
‘그게...신씨가 오늘 갑자기 연락도 없이... 결근 하는 바람에...’
‘그걸 말이라고...의사는 할 수 없다해도 청소 인력 하나 대체를 못시키나? 이런 무능력으로 타병원으로 환자는 어째 트랜스퍼 시킬고? 넌 드레싱 카터 없다고 핀셋들고 버틸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라도 버텨야지...내가 인사돌이라도 사주리?’
씹립?.. 잘 걸렸다. 아주 요절을 내버리쇼....
‘그리고....아무리 대가리도 없는 인턴이라고는 해도, 냄새 나는 거 모르나? 귀에 꼽은 거, 혹시 이어폰 이니? 너 여기 클럽인 줄 아냐?’
아닌 불똥은 나에게 튀고 있었다.
‘내원하는 분들 생각해서 저 구석 베드로 오가나이즈를 다시 하든가, 아님, 거동 불편하지 않으면, 좀 씻기든가....스테이션은 안년하세여만 앵무새처럼 지껄이면 다야?’
아주 종합선물 셋트로 아작이 나고 있었고, 신씨의 무단 결근이 가져온 결과 치고는 그 파장이 조금은 센 편이었다. 다들 지 할일 아니라고 버팅기다 와장창 깨지는 지경이 자못 볼만 했기에....
‘딜딜딜딜딜....’
‘아쭈 그리? 컬러링 봐라 말이야....지가 띨띨이 인줄은 아나 보지? 딜딜딜딜 걸려 오는 걸 보니...’
그건 형사의 전화 였다.
‘에...내가 지금 곧바로.... 그리로 갈테니, 부탁했던 그 환자 좀... 잘 부탁 드립니다.....’
그러나, 끝마디는 주변 소음과 왁자지껄한 음성들에 파묻혀 잘 들리질 않고 있었다.
‘뭐래디? 결재카드 들고 온다디, 아님, 핸폰결재 하신다디?’
비아냥 거리며, 히죽대던 씹립℉? 나도 그 대화의 끝을 맺을 수는 없었다. 저 멀리서 ER의 자동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질러지는 것을 본 것 같은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얼어 붙어 꼼짝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다름아닌 신씨 였다. 이미 온 몸을 칼로 난자당해 피투성이가 되어있고, 두 눈은 퉁퉁 부어 올라, 잘 알아 볼 수도 없었지만, 손등에 밴드를 감고 있는 낯익은 모습의 그 사람은 분명코 신씨였다. 비틀거리면서도 정확한 보폭으로 우리를 향해 걸어 들어오는 서슬에, ER은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의료진으로 이미 아수라장 이었다.
‘시..시.신씨?...’
‘젊은 의사 양반....쿨럭....내가...출근이 늦었네...쿨럭쿨럭....’
입으로 토해내는 검은 피...이미 간을 다쳤을 것이 분명했고, 몇 분안에 절명할 수 있는 처지 였음에도 그는 어찌 이 곳까지 저 지경을 해서 올 수 있었을까라는 것만이 궁금했다.
‘다...담배 한대 태지...쿨럭쿨럭....동지끼리....컥컥....’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건내고 불을 붙여 주었지만, 피 묻은 그의 손에서 담배는 쉽사리 불이 붙지는 않고 있었다.
‘신씨...안피우는 게....좋을...’
‘그래도 ...쿨럭쿨럭...막담배는 이래서 좋아..얻어 피우는 맛이....쿨럭..쿨럭...’
그때 였다. 정지된 듯한 진공의 대기를 뚫고 격한 총성이 한발 울렸다.
‘움직이면 발포한다...이미 경고 했어....빽날....손들고...순순히...자수하지?’
그러자, 베드에 기대어 피를 철철 흘리고 있던 그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총을 겨누고 있는 형사를 향해 빙그시 미소를 날렸다.
‘왜 이 씨벌놈아,....그래, 총 나부랭이 들고 덤벼 볼라구? 그래 어디 해봐, 해봐...세상사 이제 끝발 볼 거 다 봤고...쿨럭쿨럭....이제 갈 일만 남았다....그래서 뭐?....그깟 비렁뱅이 같은 쇄끼들 몇놈, 목줄 쫌 그어 놨다고 죽여 볼라구?...쿨럭쿨럭...죽여라 쇄끼들아....쿨럭쿨럭...칼 없이 사람들 뒈지게 하는데 이골난 쇄끼들은, 눈깔 버젓이 뜨고 돌아댕기고....쿨럭쿨럭...이 놈의 저주받은 개종자 인생...죽을 만한 씨벌년넘들 내가 대신 치워줬는데, 뭐? 뭐? 아아아악....’
신씨의 핏발 선 눈에서 불이 토해지는 듯이 보였다. 목의 핏줄을 있는대로 세우며 악을 써대는 그 공포감은, 이미 ER안의 사람들을 모두 얼어붙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시 한번 경고 한다....손 들어!’
‘개립℉?...평생 지적질이랑 명령에 빼가 말랐다, 이 씨벌넘들아....쿨럭쿨럭쿨럭.....어디 쏴봐, 쏴...씨벌 넘들...쏘지도 못하는 것들이....난 그래도 쿨럭쿨럭...할 일은 하고 간다....형님...뭉치 형님...흑흑...쿨럭쿨럭....같이 갑시다.... 이렇게...흑흑..쿨럭쿨럭....비루하게 살아서 뭣하우....어차피 글른 인생...지금 죽어도 울어줄 사람.. 하나 없수....미안하오.....쿨럭쿨럭...칼침 밖에 없어서....’
‘헝헝헝..오야...피 보믄 안된데이....’
‘슉...슉...슉...’
난 평생 한번도 보지 못한 날렵한 칼솜씨를, 바로 눈 앞에서 목도하고야 만다.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고, 그 어떤 스턴트도 보여주지 못했던, 빽날의 진검....그의 주먹에서 섬광이 일렁였다.
‘탕탕...탕..탕...’
그가 보여준 휘광은 슬로우비디오 처럼 내 앞에서 춤을 추었다. 비틀거리며 선혈을 뿜어내던 신씨가 자세를 신속하게 고쳐잡고 날린 칼날은, 웃으며 누워 있던 환자의 목을 정확하게 끊어냈고, 이어서 자신의 목줄기 마저 끈을 휘돌리듯이 마무리를 하는가 싶더니, 베드 위의 환자 몸에 정확하게 칼침을 박아 넣었고....그 사이 그가 맞은 총알은 네발 이었음에도, 그 상체는 그 충격으로 흔들리기는 했어도, 칼이 만들어내는 춤사위의 한자락도 끊어내지는 못했다.
‘스르르...쿵.....’
그건 심쿵보다 더한 심벌즈의 장엄한 마무리 였다. 총알은 그의 생명과 지장이 없는 부분을 관통했지만, 이미 그것은 상관이 없었기에....바닥에 널부러진 그의 시신으로 부터 마지막 선혈이 뿜어져 나와 차츰 바닥을 더럽히고 있었다.
‘얼릉...비켜서세요...어디 다친 데라도?’
‘아니오...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쓰러진 빽날과 뭉치의 시신을 소생시켜야 한다는 본능적인 메뉴얼 마저 까맣게 잊고 있는 듯 했다. 이미 내 귀에는 오늘 아침 출근부터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형사와 뭉치와의 대화가 들려지고 있었다. 나와 형사 사이에 병세에 관한 대화가 오가는 도중, 자신도 잃어 버린 것을 몰랐을 그 녹음기는 청소를 빌미로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든 빽날의 날렵한 솜씨에 사라졌고, 내용을 파악한 신씨는 곧바로 복수의 칼날을 들고 나섰던 모양 이었다. 아침에 출근 하자마자, 환복을 위해 열어재낀 내 사물함에 버티고 있던 그 소형 녹음기...
%그러니까, 당신이 죽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예, 모른다 아입니꺼?
…..
그게 당신 부인인데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그기 문제라 안캅니꺼!
뭐가 문젠데?
…..
큰행님이 모다 노은 아그들이 모두 치매 인기라...
대갈빡 줘 맞고, 빠이프에 인생 쫑나고...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키와준(키워준) 조직은 그런 아그들 내다 버리고..
시키믄 시킨대로 푹푹 찔러, 보도집에 방석(윤락녀)으로 보내믄 디리 가랭이 벌려...
수치심도 음꼬(없고), 겁또 엄꼬...
그리 살아가는 비렁뱅이 인생보다 몬하다 아잉교.....%
뭉치라는 사람은 큰형님의 조직경영 철학에 반기를 든 유일한 사람이었던가 보다. 내노라 하는 조직에서 몸바쳐 뛰어 다니다, 머리나 주어 맞고, 치매라는 길로 접어든 젊은 혈기들을, 재취업의 미끼로 꾀어다가 온갖 궂은 일을 시킨 모양 이었고..... 그 와중에 눈엣가시처럼 사사건건 반기를 든 뭉치를 제거하기 위해, 친족 살해를 명했고, 그것이 지시인 마당에, 죄의식 없이 부인을 살해한 뭉치....감옥에 들어가 세상사에 눈을 뜨고 착하게 살아가려던 빽날이, 병원으로 실려온 뭉치를 몰라볼 리 없었다. 두 사람의 손등에 똑같이 지져져 있던 우정의 맹세....빽날은 피도 눈물도 없는 큰형님을 기어이 단신으로 그어 버리고 병원으로 곧장 온 것이었다.
‘아까 보니까, 범인과 무슨 말씀을 나누시는 것 같던데...’
‘아뇨...’
‘혹시 관계가 있으신가요?’
‘아뇨...그냥...저를 아는 분이시겠죠....’
난 형사 앞에서 빽날, 아니 신씨를 그냥 오다가다 만난 사람보다 못한 종자로 만들고 있었다.
-完-
-제 1 부 : 빽날 -
이 상황은 어떤 대답을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과연 이 상황을 감당할 깜량인가 아닌가가 중요한 문제였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무슨 환자야?’
‘40대 중반쯤으로 보이고요,’
‘쯤으로? 너 지금... 나랑 노니?’
‘아니 그게 아니고, 노숙자 였던 거 같은데, 신분 증명할 만한 게 아무 것두 없어서...’
‘근데, 이 아쟈씨는 지하철에서 곤히 잠이나 쳐 자시지, ER에는 왜 오셨다니?’
그걸 내가 알면 여기서 너한테 찐빠 쳐 잡숫고 계시겠니?
‘내원 당시에 BP(혈압)는 150에 95였고, 펄스(맥박)는 98회, 호흡수는 분당 21회...그리고’
‘아이구...도대처 바이탈 체크도 한 종목씩 까쳐 드시면, 언제 닥터 소리 한번 들어 보실려나? 체온은 왜 안 재셨나? 왜? 노숙자라서 입이 없다니, 겨드랑이가 붙었대디? 정신 없으면 애널도 있겠다, 똥꼬는 뒀다 국 끓여 드실 라구요?’
하이고 째진 아가리로 씨부리는거 봐라...너라면 냄새 쩌는 노숙자 입을 벌리고 싶겠냐, 아님, 이가 드글드글할 웃도리 까고 체온계 쑤셔넣고 싶겠냐? 그래도 난 할 도리는 했다고 강변하고 싶었다.
‘내원할 당시에 의식장애 및 보행장애로 보고 되었....’
‘그럼 노숙자 아쟈씨가 지 발로 걸어 들어왔을까봐? 당연히 질질 끌려 왔을 거고, 의식도 가물가물...
신경계 진찰해 봐야, 드라우지(Drowsy:졸리듯이 어지러움) 에다, 지남력장애(환경따위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인지장애), 구음장애(말을 어설프게 혹은 못하는 신경장애)에다 설라무네, 주시유발안진(gaze-evoked nystagmus:인지장애와 동반된 안구 신경계의 이상증상 중의 하나)도 나타났겠네.’
그렇게 잘 알면 어서 과장이나 해먹지, 왜 이 복마전판 ER에서 저렇게 설레발이나 치고 계시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운동검사는?’
‘상하지 근력은 모두 정상이었고 감각 이상은 없었습니다. 심한 운동 실조로, 혼자서 앉거나 서는 것이 불가능하였고, 양측 심부건반사는 대칭적으로 정상이었지만, 양측 바빈스키반사는 양성이었습니다.’
‘그래 평소에 여자들 쭉쭉 빠진 다리만 열나 훔쳐 보드만, 다리 검사는 제대로 했네.’
그러나, 나의 자랑질을 가로막은 것은 다름 아닌, 노숙자와 거의 동일한 패션의 형사였다.
‘아무 신분 증명을 할 만한 것이 없었다고요?’
‘지금 묻고 계시잖니?’
하여간 저 립¤?지 대답하고 싶은 것만 하고, 엉뚱한 건 다 남한테 떠 넘긴 다니깐두루...
‘네...’
‘혹시 누가 저 환자의 신병을 인도해 왔는지 아십니까?’
‘그 분도 노숙자 였는데....그냥 옆에서 죽어가는 듯 싶게 헷소리를 해대느라 겁먹고 데려 왔다고만 했죠. 그리고, 환자 처치 하는 중이라, 신경도 못쓰고 있었는데, 인적사항 적기도 전에 사라져서, 저희도 난감했었습니다.’
그 형사라는 사람은 심각한 얼굴로, 누워서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환자의 얼굴을 이리 돌려보고, 저리 살펴 보면서도, 자신의 손에 그 노숙자의 시커먼 개기름이 들러 붙는 것을 알아 차리지도 못하고 있었다.
‘일단, 피의자 신분 이니까, 연고자가 없어도 돌봐 주시고, 정신이 들면 이쪽으로 연락 주십쇼. 그럼...’
내가 받아 든 명함을, 형사가 사라지기 무섭게 낚아채서 살펴 보는 저 립?.형사 명함 첨보남?
‘너 아주 신났다? 저 봐라 말이야. 양 손에 수갑채워 놓은 거...일났네...링거 꼽다 칼침이라도 맞을까봐 형사님이 용쓰고 가셨는갑다. 하이고 당첨!, 빙고오...랄랄랄...’
난 멀뚱하니 서 있으면서도 그 환자의 두 손에 채워진 수갑을 눈여겨 보지는 못하고 있었다. 노숙자 주제에 뭐 대단한 범죄라도 저지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하는 그 사람의 초췌한 행색, 배고픔과 영양실조가 완연한 혈색, 입안에서 치미는 역겨운 악취등등을 고려할 때, 한참이나 흉흉한 범죄자와는 거리가 있는 지경인데, 난 구지 저렇게 수갑을 채워 놓아야 하는가 라는 의문마저 들고 있었다.
‘혈액검사 결과는?’
나는 다시 일상의 추격전에 몰리고 있었다.
‘총빌리루빈 1.87 mg, r-GTP 181 IU로 상승되었고, 혈중 티아민은 16.5 μg로
감소되었는데.... 다른 혈액검사는 정상이었습니다.’
‘꼭 봐야 읽지? 외우면 어디 대가리에 쥐나니? 여기서 땡시험 발사....혈중 티아민의 정상수치는?’
‘.......’
‘아이구 니이미....정상범위를 까쳐먹었는데, 검사수치가 나와봐야 까막눈이지...내가 이 자식을 콱 밟고 쇠고랑을 차? 아니다, 내 발바닥이 아깝다...티아민 정상수치 28.0에서 85.0....이제야 알았다는 표정하면 너 뒤진다?’
기억이 안나는 걸 어떡하니? 그럼 내가 이 자리에서 내 대가리 줘 박아봐야, 나만 아프지...
‘그럼 두번째, 땡 시험....이 환자의 내진 기초결과로 볼때, MRI 찍어, 말어?’
‘일단 찍어야죠. 투표도 찍으라고 있는 거고, 나무도 찍어 넘어트리라고 있고, 여자도 찍어 자빠트리라고 있는 건데, 하물며 병원에서 MRI, CT 찍는 거 겁네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
저 기가 막힌다는 표정...씨부럴 립♥? 내가 요걸 기둘렸다. 누가 그걸 모르냐? 생명 존중 나발이고, 병원비 계상하기 힘들어 뵈는 환자에게 MRI 디리 찍어 댔다가 무슨 욕지거릴 들어 먹을 라구....니이미 나두 병원밥 쳐드실만큼 자셨거덩요?
‘대가리는 아예 핸드폰 고리처럼 대롱대롱 매달려서리 하는 꼬락서니 봐라. 뭐? 뭐가 어쩌고 저째? MRI 구지 돌렸다가 그러지 않아도 뻔히 알 수 있는 티아민 결핍으로 인한 베르니케뇌병증 인게 과장님 한테 뽀록나면 엄청 잘했다고 칭찬 들을까봐? 그러고도 의사되기를 바라셔요? 그러셔요? MRI돌려 보나마나 확산강조영상 이랑, FLAIR 영상에서두 고신호강도, 게다가 확산계수는 고신호와 저신호 강도가 혼재되어 있을거고....정 의심되면 트랜스케톨라제(Transketolase:적혈구 케톨전이효소) 활성도만 봐도 알 수 있는데, 왜 사서 고생하고 엿되냐 이 말이쥐. 옛말에도 있다, 너? 젊어서 사서 고생은 늙으면 지병된다는 말...’
씹탱구리 립?..그걸 개그라고...개구라를 까도 그 보담은 낫겠다.
‘일단 티아민 1500mg으로 하루 오더 때릴테니 잘 살펴봐.’
일단, 오더가 떨어지고, 스테이션의 키득거림이 잠잠해지며, 내 담당의 베드에서 그 씹립ː?사라지는 게 나은 결말 이었다. 이럴땐, 슬그머니 병원을 벗어나 담배 한대 태우는 게 최상의 해결책이기도 했다.
‘눈깔이 동태지...어찌 형사짓이나 해먹으면서 그 손마디 보면 모르나? 빽날을 못 알아보다니...쯧쯧...’
‘아저씨, 뭐라 하셨어요?’
‘젊은 의사 양반두 몸조심허쇼...’
‘왜요?’
ER내의 구역 청소를 위해 일하시는 신씨 아저씨는 대답 대신에 형사가 수갑을 채우고 돌아간 그 환자를 턱으로 슬그머니 가리키는 것이었다.
‘아제, 담배 한대 꾸러 갑세.’
‘조오치...’
밖은 여름의 열기를 식히려는 듯, 소낙비가 좌악좌악 퍼붓고 있었다. 이럴 때 가장 성가시는 것은, 한 손에서 놓지도 못하는 핸폰과, 그렇다고 비도 맞기 싫어 딴 손에서 놓지도 못하는 우산이기도 했다. 담배는 피워야 겠고, 핸폰도 눈 떼기 불가능하며, 비는 더더욱 맞기 싫은 이기주의의 극한체험....그걸 아시는지, 신씨는 냉큼 우산드는 것을 거들었다.
‘으이그 화상하고는...그러니 찐빠 먹는게 일상이지...뭘 하나 포기해도 되겠구만....쯧쯧..’
‘아제, 이 상황에 대가리에 빗방울 투댁이며 다시 들어가 봐요. 너 또 어디서 짱박혀 있다 왔냐고 그럴거고, 핸폰 안 받아 봐요, 똥뚜깐에 앉아 있다가도 벌떡 일어날 판에, 내가 맘 편히 담배나 탤 수 있겠수?’
‘그러게, 누가 의사 하랬나?’
하긴 듣고 보니 그 말도 맞는 말이긴 했다. 누가 등 떠민 적도 없고, 나 스스로 도취되어 여기까지 목줄 잡혀 끌려온 주제비라 뭐라 대꾸할 건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 지경으로 나동그라질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인지, 신씨의 비아냥이 섭섭하지만은 않았다. 비는 추적추적 내리고, 그 사이로 퍼져 나가는 담배 연기는 빗줄기를 무시하는 듯, 건방져 보이기 까지 했다.
‘근데, 아제, 아까 그 빽날은 뭐래?’
‘왜, 알고 싶어? 그 두꺼운 교과서나 열씨미 더 외우시지? 알아봐야 말짱 도루묵인 아랫것들 개차반 인생....’
‘뭐 알고 싶다라기 보다, 그 형사가 좀 너무 한 게 아닌가 해서....아니, 그 꼬라지를 좀 봐요, 흉악범은 고사하고 지 몸 건사하나 못하게 생긴 사람에게 수갑은 뭔 놈의 수갑을, 그것두 두개씩이나...요즈음 형사들 살림 쫌 나아졌남? 아주 지를 게 없어서 수갑을 다 질러요...’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지...내 한마디만 해줄까? 내노라 하는 바닥에서는 다짜고짜 칼 들이대는 쇄끼들을 양아치라고 하지만, 개중에는 칼을 예술로 그어대는 치들이 있지...여러 명이 치고 빠지는 상황에서 아무도 누가 칼을 꺼냈는지 모르는 거야...알아? 앞에서 설쳐대는 핏댕이 들이야 제쳐두고, 쏜살 같이 떡대들의 사이를 파고 들어, 가장 먼저 손을 봐줘야 할 쇄끼를 번개같이 끊어놓고 사라지는 인물....’
‘아제...요새 영화 너무 본 거 아니우?’
‘흐흐...그럴 줄 알았네...영화 같은 그 솜씨는 영화에서도 보질 못했으니, 내 말이 영화처럼 들릴밖에...구라 같이 들리면 다음에 허지...담배도 다 탰고...’
‘헤헤...또 그렇다고 삐치면 되남?, ER에서 유일한 흡연 동지끼리 이래서야...’
‘비가 엄청 오시려나 보네....들어가지....궁금하다니 한마디만 더 해줄까? 빽날이 왜 빽날 이냐믄....너무 빠르게 칼을 휘돌리면, 그 칼날에 피가 전혀 묻지 않는다고 해서 빽날이라고 하는거지...이 칼에 네놈의 피를 묻혀주마 하고 영화에서 설레발 떠는 쇄끼들...다 구라야...굼뜬 d세이들...어디 빽날 발 뒤꿈치도 못 따라오는 것들이 영화랍시고 설쳐대는 꼬락서니라니....내 참...’
난 담배를 끄고 돌아오는 동안, 신씨의 그 소회가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누구나 소싯적에 금송아지 타보지 않은 적이 있더냐라지만, 저렇게 인간 폐인이 된 전설적인 칼잡이의 말로라니....그러나, 그것도 모자라 지금껏 경찰의 수사 대상에서 쫓김을 당하고 있었다는 것도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듯한 감을 받고 있었다. 내가 맞닥뜨린 우려와 달리 환자는 티아민을 투여한지 하루만에 정신이 들었고, 5일 정도가 지나자,안진과 운동실조도 점차 호전되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나, 의식이 호전된 후에 추가로 기억력 장애가 확인되었고, 사건후 기억상실과 사건전 기억상실이 모두 나타났다.
‘내 뭐래디? 이래서 내가 너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이니라...아까 회진 때, 과장님 하시는 말씀...MRI까지 갈 것도 없이, 신속한 오더에 매우 흡족하시단 말씀....오금이 재려서 오줌을 다 지릴 뻔 했네...’
왜? 그 자리에서 오줌에다 똥이라두 대대하게 쎄트로 갈겨보시지?
‘근데, 형사 나리 한테 너 연락은 때렸니?’
‘아,참...곧 하겠습니다....여브쎄어...여브쎄어?....’
난 이미 연락을 했었지만, 핸폰 꺼내는 시늉을 하면서 ER을 휑하니 빠져 나갔다. 그래야 담배 한 대, 폼나게 또 태워보지 않겠는가 하는 꼼수 때문이었다.
‘헤이, 병실에서 있는 시간 보다 담배 피우러 더 자주 만나니, 누가 자네 같은 의사 쳐다보며 살겠나? 아예, 병들어 뒈지고 말지...쯧쯧...’
‘하이, 아제 왜 이러시나....흡연 동지끼리 이러면 섭하쥐....’
‘왜 오늘은 뭔 일루다가 담배 태우면서 쓰라린 심정 오바로꾸 치러 나왔남?’
‘거 있잖수? 그 빽날 이란 환자...그 얘기나 들어 봅시다. 영화만큼은 안되도...’
‘휴우.....’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는 신씨의 시선이 저 먼 곳에서 촛점이 사라지는 것처럼 힘을 잃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도 잘은 몰라...그때 병실에서.... 손등에 난 칼자욱을 보고.... 겨우 알았지...모자라는 치들처럼 몸에 문신도 하는 법이 없는 사람 이었고,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무섭게 끝을 맺는 그런 사람....’
난 신씨의 호흡이 잦아 들면서, 점차 조용하고 담담한 어조로 바뀌어 가는 것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제 2 부 : 뭉치와 빽칼 -
신씨는 거푸 줄담배를 태우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형님.....매일 그렇게 앞을 서시면 저희들이 곤란하잖아요?’
우리들은 언제나 앞장서서 선봉을 때려대는 뭉치 형님을 가장 무서워 했다. 중구난방으로 설쳐대는 그의 위세 때문에, 사고뭉치를 줄여 뭉치라는 별호를 붙여주긴 했어도 언제나 말이 없고, 군소리는 더더욱 없는 형님이기에, 따르는 아이들도 하나 같이 제 몸을 사린다든가 하는 일은 추호도 생각할 수 없었다.
‘다 이기... 너그들 잘 되라 하는 똥푸레이 아이가? 헝헝헝..’
형님의 웃음은 그 진중한 스타일과 다르게 좀 얼빵한 구석이 있긴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형님은 동생인 나의 위치를 언제나 추켜 세워주시는 과분함이 있었다.
‘느그들이 뭘 알아?....대가리 꿰지고(터지고), 팔 몇뻔 뿌라바(뿌러져 봐)...그기 훈장인 줄 아나? 에이 빙신들...느그들 학교 가봐야 쫌팽이 소리바께 더듣나? 대갈빡 걸고 칼춤 추는 우리 빽칼이 빼고 나면, 씨레기야 씨레기...’
그 말 속에는 나와바리 쌈박질에서 인명 사고가 나도, 결국 쇠고랑을 찰 인물은 나 밖에 없다는, 자랑 아닌 자랑 이었던 것이다. 맨처음부터 내가 칼을 쥔 것은 아니었다. 몸이 잽싸고 다리가 빠른 나를 지목해서 뭉치 형님 밑으로 붙인 것은, 큰 형님의 지시 였다.
‘안될낀데요..저느마는 뱃심이 약해가 칼 몬 쥘낀데....암튼 맡아 보겠심더...’
뭉치 형님은 고개를 짤래짤래 흔들었지만, 다음 날부터 행동대에서 나를 축출 시켜 버렸다.
‘잘 들으래이...자고로 칼 쓰는 인가이(인간이) 세종류 있다 안있나...하나는 판검사, 또하나는 의사, 나머지 하나는 푸줏간 쥔장...’
‘그럼, 저희들은...’
‘우린 삐꾸리 아이가? 애차 사시미 쥐고 날뛰 봐야 팔찌바께(팔찌밖에) 드차겠나(더 차겠나)? 칼로 피를 보몬 그기로 끝인기라. 피를 보면 안된대이...’
‘아니, 형님, 칼침에 어떻게 피를 않 봅니까?’
‘그기 테쿠닉 인기라...요래,요래,요래.... 봤나?’
내 눈 앞엔 형님이 언제나 선봉에 서는 이유가 자명하게 보이고 있었다. 화려한 손목의 스냅이 이어지면서도 절대 자신의 몸에 상처를 입히지 않는 날렵한 휘돌림....
‘장검은 미친 짓이라 안하나....지가 무신 조선시대 무사가? 금도(검도)? 좇거튼 소리하고 인네...니도 알재? 딱 부트믄 간극(간격)이 얼마나 되드노? 주먹 두개 인기라...칼 빼다 뒤질일 인나! 연습은 장검으로 필을 끈어도, 갈수록 칼은 짧아져야 한대이....’
형님의 가르침은 자신이 몸으로 겪은 사실을 고스란히 전수시키고 있었다.
‘팔 똑띠이(똑바로) 안드나, 쌔끼야...니 팔이 무거버가(무거워) 지는 거이 아이고, 그 꼴난 칼무게도 몬 견디(못 견뎌) 칼침 맞는데이...알았나?’
특별히 영화에서처럼 손발목에 모래주머니나 차는 허접한 훈련도 아니었고, 형님은 언제나 칼만 들고서 앞으로 나란히를 한 채, 몇시간이고 기마자세를 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대단한 훈련을 받을 줄 알고서 내심 긴장하기도 했지만, 사실 처음에는 코웃음을 친 채, 임했다는 것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죽고심나...으이? 삐꾸리 새끼 주제에 칼을 노치(놓쳐)?’
훈련 중에 쓰러지면, 닭을 고아 먹이는 경우는 있었어도, 들고 있는 칼을 놓쳤다가는 그 날은 뼈도 못추릴 정도로 개밟히게 되는 날이었다.
‘니 소이(손) 칼이 되고, 칼이 니 소이(손)되는 기라. 칼을 노치몬.... 니 모기(목이) 나가는 기라...’
그 말은 실전에서 아주 중요한 지침 이었다. 쑤시면 치명적인 사시미의 경우, 그 길이를 적절히 맞추어 담그려면, 충분한 간격이 있어야 하는데, 그 간격을 일부러 허용하면서 달겨드는 짱구들은 없었다. 그저 사시미를 든 선봉은 휘두르기만 바빴지, 상대를 완벽하게 거꾸러트리는 치명타가 왠만한 접전에서는 볼 수 없는 이유 이기도 했다.
‘퍽...퍽...퍽’
그러던 어느 날인가, 난 눈 앞이 노래 지도록 맞았다. 이유도 없었고, 잘못도 없었지만 칼을 들고 기마자세로 버티고 있던 와중에 기습적으로 내려찍고, 후려치는 형님의 주먹과 발길질에 도저히 견뎌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주먹도 몬 쓰는 쇄끼가, 칼은 자바(잡아) 뭐하노? 칼 먼저 날려봐야 양아치 바께 더 되겐나, 으이?’
형님은 칼을 다루는 것에만 전념하는 나에 대한 경고를 그렇게 틈틈히 하셨다. 일반들이 보기에는 사람 상하게 하는 칼춤교습이라고 욕할지는 몰라도, 이 바닥에서의 생존논리로 따지자면 자율학습이요, 전공이수일 뿐이었다. 칼로 일어난 자, 칼로 망하는 법이라고 가르치기 이전에, 칼이 없어도 자신의 맨 몸과 주먹이 무기가 되어야만 버틸 수 있다고 가르치는 것이 하나도 부자연스럽지 않은 것이었다. 난 서서히 형님의 지론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것에 다가가고 있었고, 형님도 그것을 눈치 채셨는지, 잔소리도 점차 줄어가면서, 언제나 신의 한수 같은 팁을 알려 주는 것에 빠져 계신 듯 했다.
‘빼를(뼈) 잘 봐야 한데이...어느 순간에도 빼가 걸리몬... 칼이 힘도 몬쓰고 박히는기라...’
공부는 애초에 체질과 맞질 않는 나였지만, 형님은 어디서 구해 오셨는지, 인체 해부도가 나와있는 오래된 책을 구해 오셔서는 몇 분안에 과다 출혈로 즉사할 수 있는 부위와 괴롭게 천천히 죽일 수 있는 부분들을 상세하게 가르치면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외울 수 있도록 눈 앞에 항상 그려보라고 채근했다.
‘형님, 실습 같은 거는...’
‘실습? 미칫나? 쌩목숨으로 실습? 닥치믄 하는기지...뭔 실습?’
형님은 소, 돼지 백날 찔러봐야 고깃덩어리에다 피칠갑이나 하고 앉아 있지, 발골이 직업이 아닌 다음에야 실습은 없다고 못박았다. 방어도, 공격 본능도 없는 짐승들이나 찌르고 앉아있을 값에는 쪼그려 뛰기를 백번 더 하는 게 낫다고 하는 인물이었다.
‘번개가치 살을 갈라도, 칼침에 빠진 몬된(못된) 쇄끼는 그 손마슬(손맛을) 몬 인는데이(못 잊는단다)...목저근(목적은) 단 하나...분명한기라...상대를 꺼꾸려트리(거꾸러트려서) 다쉬는 그 아가리로 숨돌리지 몬하게 하는 거....한번 날리봐...훅 하는 피냄새....한달은 갈끼야....’
형님은 언제나 선봉의 기세가 상대를 서서히 눌러가는 시점이 오면 나를 자신의 뒷편에 붙어오게 하면서 돌격적으로 정면을 치고 들어갔다. 상대가 반격을 하기에는 생명에 지장을 주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그 고통이 심각해져, 헉하는 비명과 함께 스러지기 시작할 무렵, 난 그 뒤에 바짝 붙어서 사전에 훈련한대로, 목표로 삼는 그 인물의 주위로 최대한 가깝게 접근해서 칼을 날렸다. 대개는 손목아지나 발목을 끊어 놓는 것이 대부분이고, 겁만 줄 경우는 십자 인대를 그어 버리는 것이 주로였다. 목숨줄을 끊어 놓기 위해서는 초근접을 해야하고, 그나마 벌거벗고 있지 않은 다음에야, 나처럼 칼을 휘두르는 도법의 경우, 그 성공률이 간격을 앞에 두고 있다면 낮을 것은 뻔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또 한가지, 항상 형님을 앞세워 칼을 날리는 이유는, 여러명의 혼전이 있을 경우, 앞장에 서 있던 뭉치 형님을 기억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정작 싸움이 잦아들고 자기 편의 중요 인물이 거꾸러졌다고 할지라도, 누가 정확하게 칼을 날렸는지, 도대체 짚어낼 수 없는 상황상의 혼란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난 계속해서 사시미나 파이프도 없이, 형님과 함께 날뛰는 주먹패처럼 보였고, 칼을 후둘렀어도 양복에 피 한방울 묻히는 법이 없이 재빠르다고 해서 형님은 빽칼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던 거다.
‘야야, 쑤셔봐야 마슬(맛을) 안다꼬, 빽보지 아이가...헝헝헝...니가 그짝이네...빽뽀지...빽칼....헝헝헝’
난 빠르게 칼을 휘두르는 것에는 이미 이골이 나고 있었다. 어떤 치들은 내 주먹에서 섬광이 번쩍이는 것 같다고도 했고, 저 새끼 주먹 한번 잘못 맞았다가는 아가리가 죠커처럼 된다는 말도 돌고 있었다.
‘칼은 묘한기라....의지할라카믄, 저만치 퉁기고(튕겨나가고), 무정하면 니 손에 비츨(빛을) 뿜는기라...니...칼재비의 독이 뭔지 아나?....그건 칼자랑이 아닌기라..... 담그는 살마신기라(살맛 인거다).’
어릴적 공부는 하기 싫고, 무언가 집중은 하고 싶을 때, 잘 드는 도루코 면도날로 싸구려 무궁화 지우개를 석석 베어버릴 때의 그 쾌감을 말하는 듯 했다. 피 한방울 나지는 않았어도, 그 지우개에 잠기듯이 파고 들던 그 칼날....그리고 그 칼끝을 통해 전해지는 탄력과 이유를 알 수 없는 후련함....나는 아마도 형님의 교습을 통해 되지 말아야 할 그 못된 자, 즉 칼침에 빠진 못된 새끼가 되어가는 중이었던 가 보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나 쫌 보재이....’
큰 형님을 독대하고 나온 뭉치 형님의 얼굴이 무겁게 가라앉아 있는 것이었다.
‘작업 쫌 해야 된다꼬....’
평소와 다르게 말끝을 흐리는 폼이 별로 달갑지 않은 일감을 지정 받은 모양새였다.
‘네, 형님....’
난 내가 할 말을 다 해버린 셈이었다. 지시는 이행이었고, 반론이나 질문이란 것은 이 바닥에선 모르는 단어 였으니까. 침통한 얼굴로 나에게 내민 것은 한장의 사진이었다. 평소 같으면, 눈에 익은 아새끼들이 분명했지만, 오늘은 뭔가 달랐다. 눈매가 보통은 넘는, 그것도 젊은 여자 였다. 게다가 학사모를 쓴 사진으로 보자면, 대학물을 먹은 젊은 여자...왠지 깨름직한 느낌이 뇌리를 스치고 있었지만, 무어라 대꾸를 할 수는 없었다.
‘짜투리라고 니 알재?’
‘네...’
‘갸가(그 여자가), 갸(짜투리의), 이거라 안카나?’
형님은 새끼손가락을 펴서 보여주었다. 아마도 OO구에서 한창 약발로 상한가를 때리고 있는 조직과 관련된 여자, 그 중에서도 우두머리의 세컨드 인 모양이었다.
‘찝찝할끼야....빙신도 아이고....아예......’
형님은 어디를 끊어라라는 말도 없이, 목을 긋는 시늉으로 지시를 디테일화 했다. 단 한번에 작업을 성공시켜야 하고, 누가 했는지, 밝힐 수도 없어야 하며, 만일 발각되면 나 혼자서 독박을 써야 하는 작업이었다. 그 여자를 미워해서도, 그 어떤 특정한 이유도 듣지 못한 채, 난 빨가벗겨진 채로, 칼을 든 채, 그 여자에게 가야만 하는 상황이었다.
‘잠수타믄 큰일 난대이...짭새가 와도 팽상시(평상시) 처럼...알재?’
이 세상에 완전범죄는 있을 수 없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기에 옷을 차려입고 나서는 나의 발걸음은 더욱 무거울 수 밖에 없었다. 떼사리로 작업을 들어갈 때는, 챙겨가며 덜그럭대는 연장의 소음들마저 어깨에 힘을 실어 주었건만, 혼자서 처리해야 될 이런 작업은 처음이기도 했지만, 다시금 이 바닥으로, 이 사람들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나를 더욱 긴장 시키고 있었다.
‘형님, 다녀오겠습니다.’
‘오야...’
뒤돌아 서는 나에게 당부의 한마디가 없었다. 모든 것은 너의 책임이고, 손에 묻은 피의 댓가도 모두 내가 지불해야 한다는 것처럼, 공허하게 들렸던 형님의 모진 그 대답...난 되도록 형님이 가르치신 대로 별 계획없이 발걸음을 옮겨갔다. 누구를 타격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록 내 머리를 파먹게 된다는 형님의 말씀은 언제나 옳았다. 단지 나의 머릿속에는 사진의 뒷편에 적혀 있는 대상자의 하루 동선과 예정 시각들만이 맴돌았고, 어서 이 상황이 빨리 마무리 되어, 허기진 속이라도 풀 수 있게, 순대국에 곁들인 소주 한잔이 그리워 지고 있었다.
‘스..삭.....’
카페의 계단에서 발레파킹의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는 대상자가 눈에 띄었고, 난 전혀 긴장함도 없이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가며 손목에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상체를 스치듯이 지나치면서 정확히 두번의 스냅으로 목젖의 중앙과 경동맥을 동시에 끊어치며 지나가는 그림자.....그게 나였다. 피가 베어 나오기도 전에 대상자는 끊어진 기도로 인해 숨이 막혀 목을 부여 잡았고, 내가 자리를 뜬 얼마 뒤에야 질질 흐르던 피는 터져나왔다. 사람들이 모여들고 소리를 질러댔지만, 아마도 5분 이내에 구급차가 도착하기는 어려운 위치에다가, 젊으면 젊을 수록 피는 더 세차게 뿜어져 나올 것이 분명하기에, 절명은 이미 예정된 결과 였는지도 모른다.
‘니 술 쳐무읏나(쳐먹었냐)?’
‘땡그랑...’
난 대답 대신에 형님 앞에 한시도 놓친 적이 없는 내 몸의 분신 같은 칼을 내던져 버렸다.
‘피도 엄네? 실패가?’
그러나, 곧이어 형님은 칼날에 희미하게 남아있는 흔적을 발견하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수고했데이...머스마...기깔나구마... 피도 한빵울 엄꼬...이기 빽날 아이가! 빽날!....헝헝헝....’
왠지 형님의 그 멍청한 웃음소리에 난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괘안타....우리들 인생사리...피풋?피 먹고) 피뿜꼬(피 뿜으며) 사는 꼬라지들 아이가?’
난 한참을 그 자리에서 소리없이 울다가 일어섰다.
-제 3 부 : 악연 -
‘퍽..퍽...퍽...퍽....’
온 몸은 독감에 걸린 것처럼 땀으로 흥건 했고, 남을 칠때보다 더한 근육의 긴장은 내 몸의 신체굴곡을 더욱 그늘지게 만들었으며, 온 몸이 무기처럼 변한 나의 살갗은 좇질조차도 주먹처럼 내지르고 있었다.
‘헉헉...오빠...오늘...내 보지 끝짱 낼 일 있쑤?....윽윽...아니, 좇대가리에 망치를 달았나?..윽윽’
그건 망치가 아니라, 세상을 향해 내가 내지르는 칼 이었다. 이미 내 몸은 칼이 되어 있었고, 세상은 벨 것 천지인 선지덩어리 였기에.....
‘눈을 보면 안된다꼬....그 순간...니 칼이...힘을 잃는기라....’
그래서 그런지 나는 여자들을 사서 섹스를 할 때, 눈을 쳐다 보질 않았다. 그 눈빛이 나에게 무슨 힘이 있을까 마는, 그건 형님이 나에게 전염시킨 맹신이었으며, 일종의 타부이기도 했다.
‘오빠앙...제발...제발...살려줘....아효...보지 뚫어져.......아흑아흑.....’
내 밑에서 버둥대는 이 여자도, 돈 한푼 더 벌어 보려고 가랭이 벌리고 이 짓을 해대겠지만, 나에게도 추호의 용서란 없었다. 벌려진 가랭이와 엉밑살은 이미 벌겋게 부어 올랐을 것이고, 이 방을 나가면서 아마 걷기도 힘들 정도로, 골반은 뻐개지듯 아파올 것이 분명했다. 나의 섹스는 세상을 향한 울분이었고, 내 앞의 상대는 그저 추임새일 뿐, 감동은 없었다.
‘아우, 씨벌넘...제발 좀 싸라...윽윽윽...어디서 인삼을 타스로 꼬아 쳐먹었남?....쌀 쭐을 몰라....’
기어이 욕지기가 방안을 날라 다녔다.
‘윽윽...캑캑...억억...켁켁....캬아아아악......’
욕지기를 하던 그 아가리는 정말 추악해 보였기에, 어느새 난 좇질과 더불어 상대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숨도 막혀오면서 눈동자가 휘번덕하게 돌아가던 그 여자는, 단말마의 비명과 함께, 온몸이 활처럼 휘어 버렸다. 정신줄을 놓았어도, 두 다리를 가끔씩 발작적으로 떨어대고, 오줌마저 질질 싸대는 꼴이라니....
‘후아.....오빠앙...어디서 그런 기술 배웠대? 모가지 졸라대며, 디리 쑤시니깐두루 기어이 홍콩 가드만...담에 기회있음 또 불러주라...’
상대는 그 정확한 타이밍을 몰랐다. 숨이 막히는 그 순간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서, 오르가즘의 극한을 향해 부들부들 떨리는 전신을 제압하고야 마는, 그 목조름의 힘조절....세상 어디를 찾아가 봐도 칼질과 섹스가 합해진 나를 찾아내기는 힘들거라는 생각을 하며 담배를 피워 물고 있었다.
‘띠롱띠롱띠롱....’
그건 막둥이의 전번이었다.
‘성님....큰일 나부렀당께요...방금 큰성님이랑 뭉치 성님이랑 맞짱 떠 부러 가지고....’
‘알았다 곧 가마....’
도착하자마자, 눈 앞에 벌어진 사태는 그야말로 가관 이었다. 두패로 갈리어 으르렁대며 대치하고 있는 상황은 동네 개싸움만도 못한 지경이었고...
‘뭔 일이냐?’
서로가 등에 칼을 꽂는다든가, 자리를 탐해서 벌어진 쌈박질은 아닌 모양이었다.
‘야이, 씨발새끼야, 우리들 같이 밑바닥 굴러 먹는 새끼들, 인정 있다고, 사람답다고 누가 그러대? 시키면 시키는대로 굴러줘도 모지랄 판에, 누군 뭣땜에 안되고, 누군 뭐하러 치고, 어째고 저째? 그렇게 사람 가리다 내 밑의 식구들 굶겨 죽인 담에, 니가 짱 한번 먹어 보려구? 정신 차려 이새끼야. 가릴 게 따로 있지...딸이든 세컨드 건 간에....’
‘행님아, 그리 살지 마소...내사마 보면 모르나? 칼춤 추다, 술 쳐묵꼬 요 꼬라지 된 기...다 벌 받는 거 아잉교?’
‘개립♥? 잘났다. 그래, 누가 너 더러 꽐라되도 모지라게 술 쳐 먹으래디? 빽날처럼 니이미 오만 년 보지나 쑤시고 댕기면 보약으로 땜빵이나 되지...어휴...성질 같아서는....’
‘저 둘러선 아그들 쫌 보소...행님아..그리 살지마소....’
그 날의 헤프닝을 정확히 아는 아그들은 없었다. 아마도 내가 날린 그 대상자가 기실, 그 자의 세컨드가 아니라, 딸내미 였다는 것이 문제의 발단 이었던 듯 싶었고....큰 형님의 폭언도 따져보면 일리가 있기는 했다. 사람 가려가며 장사해 봐야 좋을 거 없는 우리들 이었기에..., 하지만 뭉치 형님의 반발은 거기에 있지 않은 듯 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애들과 친족은 건드리지 말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에서 주먹 다짐이 시작되었다는 걸 보면, 되도 않는 이 바닥 생활에 뭉치 형님의 감성팔이식 반발이, 큰 형님의 분을 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둘의 쌈박질을 목도한 것은 그게 마지막 이었다. 난 잠수도 타질 않았고, 평상시 처럼 생활하다가 미련한 형사의 끈질긴 잠복 끝에, 기어이 팔찌를 차게 되었다. 증거도 없고, 그저 심증 만으로 잡혀간 나였기에 진술도 대충대충, 현장검증도 그럭저럭, 조서는 시나리오대로 꾸며져, 나를 아는 사람들은 누군가의 범행에 덤태기를 쓰고 대신 학교가는 꼴로 알려져 버렸다.
‘그래서요?’
‘안 바빠? 메르스 끝나고 나니, 하늘이 푸르러 보여?’
신씨의 얘기는 들을 수록 빠져들어 가는 묘한 맛이 있었다.
‘나도 거기까지 밖에 몰라. 다들 그러다 떼사리로 잽혀 들어가고, 인생 종치고 뭐 그랬겠지....나도 들어서 아는 거지 뭐....’
‘이거야 원, 끝이 개판이네...한국영화가 뭐 다 그렇지....천만이 들면 뭐하고, 주연 배우랍시고 광고 열나 찍어대면 뭐하누....일년 지나면 뭔 영화였는지 대갈빡에 하나뚜 남는 게 없는뎅....’
‘그래, 자네 말이 맞아. 지나봐야 먼지보다 못한 개차반 종자들 인생...머릿속에 남겨둘 이유는 없지.’
난 괜한 시간 낭비나 했다 싶어, ER로 쫓아 들어 가면서 머리를 마구 헝클어 뜨렸다. 이렇게 라도 해야 어디 아프냐, 화장실에서 기쓰다 왔냐며 걱정이라도 해줄 것 같아서 였다.
‘너 어디서 짱 박혀 있다 왔냐? 저 옆 머리 눌린 거 봐라...졸다 흘린 침은 어쩐 일루 닦기는 했네. 아까부터 형사 양반 와서 기둘리고 있다.’
난 오히려 잘 되었다는 생각에 옷매무새를 고치고 그 빽날이라는 환자가 있는 베드로 천천히 다가갔다.
내가 다가서는 지도 모른 채, 그 너저분한 옷차림의 형사는 녹음기를 대고 무언가를 계속 경청하는 것처럼 보였다.
‘저...왔는데여...’
‘쉿....’
형사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나에게 조용히 하라고 손짓을 했다. 아이구 잘났어요, 정말...
‘그래서....그러니까...그런 후에....’
난 뻘쭘하게 있다가 돌아 서려는데, 그제서야 녹음기를 끄고 나를 향해 돌아서는 것이었다.
‘의사 양반, 쫌 물어 봅시다. 이 환자, 정확한 병명이 뭐요?’
‘아직 상태를 좀 지켜봐야 하지만, 글쎄요, 아까 회진 시에 과장님께서 그러셨는데, 티아민 결핍으로 인한 베르니케뇌병증 이라 하시데요...’
‘베르 뭐요?’
‘쉬운 말로 치매 병증 중에 하나에요. 지속적인 폭음에 의해 발생할 확률이 높다고 되어 있구여...’
‘아니, 치매는 알츠하이, 뭐 어쩌구 그런 거 아닌가?’
‘알츠하이머도 있고요, 이 디멘시야(치매:Dimentia)라는 게 보기보다 종류가 많아요, 알츠하이머, 혈관성 치매, 파킨슨성 치매, 루이체 치매, 베르니케뇌병증, 코르사코프 증후군....’
‘그러니까 치매란 얘기죠? 쉽게 하자면?’
‘네.’
뒤로 치나 앞으로 두들기나, 치매는 치매 였으니까.
‘그럼 이 환자의 상태는 어느 정도라고 볼 수 있습니까?’
‘중증이죠. 기억상실까지 동반하고 있으니...뭐 더 볼것도...’
중증에다 기억상실이란 단어가 나오자, 형사 양반의 안색이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으며, 거기에 더하여 똥 밟았다는 심정마저 겉으로도 보이고 있었다. 사실 환자의 상태가 거의 금치산자에 가까운 치매 중증일 경우, 기소 유지가 어려운 것이 통례적이라고 들어왔고, 그로 인해, 겨우 잡은 범인, 공중에 붕 떠 버렸네 하는 허망한 심사가 눈가에 흘렀다.
‘잠깐만요...여긴 도대처 치워두 치워두 끝이 없어....’
신씨 였다.
‘암튼 어찌됐든 간에, 별도의 연락이 있을 때까지는 퇴원조치 하지 마시고...’
‘아니, 그럼 병원 비용은 누가 정산하시는 거죠? 행려병자도 아니고설랑, 이렇게 마구 베드 붙잡아 둘 수도 없거든요?’
‘아, 이거 참...좇됐네...어쩌지? 암튼 내일 아침까지 연락 드릴테니....’
그 기름 번들번들하니 감지도 않은 듯한 머리를 쥐고 흔들더니, 이내 쌩하고 튀어나가는 형사의 뒷모습이 민중의 지팡이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약해 보이고 있었다. 사라지는 그 모습을 신씨도 고개를 끄닥이며 안됐다는 표정으로, 꼬나 잡은 마포자루만 만지작 거릴 뿐이었고....
‘어휴...저 담배 한대 피고 올랍니다.’
‘그래라...한 몇년, 나보다 먼저 간들...., 내 인생이랑 뭔 차이 있겄냐?’
씹립?지도 지칠대로 지쳤는지 순순히 휴식을 허락하는 폼새가 자못 생경하기 까지 했다. 밖은 다시금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고 있었고, 저멀리 흡연동지 신씨께서도 쪼그려앉은 자세로 열심히 연기를 뿜어대는 것이 보였다.
‘아니, 어쩐 일루다가 음악감상 까정? 이제 담배 말고 다른 취미도 키워 보시려구요?’
신씨는 담배를 피우는 내내, 머리를 끄덕이며, 리듬에 맞추는 모냥새로 담배에 말려 있었고, 나는 나대로 그 음악, 안들어봐도 뻔할 예감에, 말없이 옆에 앉아 듀엣으로 연기만 디리 뿜어대는 중이었다.
‘근데, 신씨는 어쩐일루 그 손에 맨날 반창꼬래? 내가 좋은 더마톱이라도 구해줘?’
‘발라 봤자지. 자네두 잘 알겠네, 허구헌날 마포자루 빨아대, 거기다가 청소용 소독약품이 좀 쎄야지...이게 나을만 하면 도지구, 아물라 싶으면 갈라지구...이미 포기 했네그려...거어즈랑, 밴드에 물 젖으면 갈아대는 거이, 더 수월하더라구.’
‘그거 알고보니 직업병이네.....참...그 음악은 뭐유? 누가 볼까 싶어 같이 듣자는 둥, 오징어 될만한 멘트는 삼가해야지만....킬킬...’
‘별거 아니야.... 이 나이 쯤 되보면, 백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노래 한자락 쯤 생기게 되거든? 자네도 그 나이 되면 알걸?’
‘난 그래두 응댕이 빵빵에다, 다리 쭉쭉 아그들 노래가 젤루 좋드만....캬! 그 라인...’
‘정신차려, 의사 양반아!, 그 좋은 머릴 달고서 이 세상 폼나게 살아도 누가 뭐랄 사람 없겠구만, 그다지도 마음 속에 빼(뼈)가 없어서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신씨는 나보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벌떡 일어나는 폼이 부럽기만 했다. 젊디 젊었어도 어찌 나의 입에서는 애구구 소리가 연발로 터져 나오는 것인지....
-제 4 부 : 우린 늘 그렇듯, 그렇게....-
‘야, 드레싱을 했으면 치우라고 말을 해야지, 이 꼬라지로 넌 뭐하니?’
오더와 전산망과의 불협화음 때문에 ER로 쳐 내려온 과장님은 대뜸 베드 주변의 어수선함을 꼬집고 계셨다.
‘그게...신씨가 오늘 갑자기 연락도 없이... 결근 하는 바람에...’
‘그걸 말이라고...의사는 할 수 없다해도 청소 인력 하나 대체를 못시키나? 이런 무능력으로 타병원으로 환자는 어째 트랜스퍼 시킬고? 넌 드레싱 카터 없다고 핀셋들고 버틸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라도 버텨야지...내가 인사돌이라도 사주리?’
씹립?.. 잘 걸렸다. 아주 요절을 내버리쇼....
‘그리고....아무리 대가리도 없는 인턴이라고는 해도, 냄새 나는 거 모르나? 귀에 꼽은 거, 혹시 이어폰 이니? 너 여기 클럽인 줄 아냐?’
아닌 불똥은 나에게 튀고 있었다.
‘내원하는 분들 생각해서 저 구석 베드로 오가나이즈를 다시 하든가, 아님, 거동 불편하지 않으면, 좀 씻기든가....스테이션은 안년하세여만 앵무새처럼 지껄이면 다야?’
아주 종합선물 셋트로 아작이 나고 있었고, 신씨의 무단 결근이 가져온 결과 치고는 그 파장이 조금은 센 편이었다. 다들 지 할일 아니라고 버팅기다 와장창 깨지는 지경이 자못 볼만 했기에....
‘딜딜딜딜딜....’
‘아쭈 그리? 컬러링 봐라 말이야....지가 띨띨이 인줄은 아나 보지? 딜딜딜딜 걸려 오는 걸 보니...’
그건 형사의 전화 였다.
‘에...내가 지금 곧바로.... 그리로 갈테니, 부탁했던 그 환자 좀... 잘 부탁 드립니다.....’
그러나, 끝마디는 주변 소음과 왁자지껄한 음성들에 파묻혀 잘 들리질 않고 있었다.
‘뭐래디? 결재카드 들고 온다디, 아님, 핸폰결재 하신다디?’
비아냥 거리며, 히죽대던 씹립℉? 나도 그 대화의 끝을 맺을 수는 없었다. 저 멀리서 ER의 자동문이 열리고, 사람들의 비명이 질러지는 것을 본 것 같은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얼어 붙어 꼼짝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다름아닌 신씨 였다. 이미 온 몸을 칼로 난자당해 피투성이가 되어있고, 두 눈은 퉁퉁 부어 올라, 잘 알아 볼 수도 없었지만, 손등에 밴드를 감고 있는 낯익은 모습의 그 사람은 분명코 신씨였다. 비틀거리면서도 정확한 보폭으로 우리를 향해 걸어 들어오는 서슬에, ER은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의료진으로 이미 아수라장 이었다.
‘시..시.신씨?...’
‘젊은 의사 양반....쿨럭....내가...출근이 늦었네...쿨럭쿨럭....’
입으로 토해내는 검은 피...이미 간을 다쳤을 것이 분명했고, 몇 분안에 절명할 수 있는 처지 였음에도 그는 어찌 이 곳까지 저 지경을 해서 올 수 있었을까라는 것만이 궁금했다.
‘다...담배 한대 태지...쿨럭쿨럭....동지끼리....컥컥....’
나는 떨리는 손으로 담배를 건내고 불을 붙여 주었지만, 피 묻은 그의 손에서 담배는 쉽사리 불이 붙지는 않고 있었다.
‘신씨...안피우는 게....좋을...’
‘그래도 ...쿨럭쿨럭...막담배는 이래서 좋아..얻어 피우는 맛이....쿨럭..쿨럭...’
그때 였다. 정지된 듯한 진공의 대기를 뚫고 격한 총성이 한발 울렸다.
‘움직이면 발포한다...이미 경고 했어....빽날....손들고...순순히...자수하지?’
그러자, 베드에 기대어 피를 철철 흘리고 있던 그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더니, 총을 겨누고 있는 형사를 향해 빙그시 미소를 날렸다.
‘왜 이 씨벌놈아,....그래, 총 나부랭이 들고 덤벼 볼라구? 그래 어디 해봐, 해봐...세상사 이제 끝발 볼 거 다 봤고...쿨럭쿨럭....이제 갈 일만 남았다....그래서 뭐?....그깟 비렁뱅이 같은 쇄끼들 몇놈, 목줄 쫌 그어 놨다고 죽여 볼라구?...쿨럭쿨럭...죽여라 쇄끼들아....쿨럭쿨럭...칼 없이 사람들 뒈지게 하는데 이골난 쇄끼들은, 눈깔 버젓이 뜨고 돌아댕기고....쿨럭쿨럭...이 놈의 저주받은 개종자 인생...죽을 만한 씨벌년넘들 내가 대신 치워줬는데, 뭐? 뭐? 아아아악....’
신씨의 핏발 선 눈에서 불이 토해지는 듯이 보였다. 목의 핏줄을 있는대로 세우며 악을 써대는 그 공포감은, 이미 ER안의 사람들을 모두 얼어붙게 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다시 한번 경고 한다....손 들어!’
‘개립℉?...평생 지적질이랑 명령에 빼가 말랐다, 이 씨벌넘들아....쿨럭쿨럭쿨럭.....어디 쏴봐, 쏴...씨벌 넘들...쏘지도 못하는 것들이....난 그래도 쿨럭쿨럭...할 일은 하고 간다....형님...뭉치 형님...흑흑...쿨럭쿨럭....같이 갑시다.... 이렇게...흑흑..쿨럭쿨럭....비루하게 살아서 뭣하우....어차피 글른 인생...지금 죽어도 울어줄 사람.. 하나 없수....미안하오.....쿨럭쿨럭...칼침 밖에 없어서....’
‘헝헝헝..오야...피 보믄 안된데이....’
‘슉...슉...슉...’
난 평생 한번도 보지 못한 날렵한 칼솜씨를, 바로 눈 앞에서 목도하고야 만다. 그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고, 그 어떤 스턴트도 보여주지 못했던, 빽날의 진검....그의 주먹에서 섬광이 일렁였다.
‘탕탕...탕..탕...’
그가 보여준 휘광은 슬로우비디오 처럼 내 앞에서 춤을 추었다. 비틀거리며 선혈을 뿜어내던 신씨가 자세를 신속하게 고쳐잡고 날린 칼날은, 웃으며 누워 있던 환자의 목을 정확하게 끊어냈고, 이어서 자신의 목줄기 마저 끈을 휘돌리듯이 마무리를 하는가 싶더니, 베드 위의 환자 몸에 정확하게 칼침을 박아 넣었고....그 사이 그가 맞은 총알은 네발 이었음에도, 그 상체는 그 충격으로 흔들리기는 했어도, 칼이 만들어내는 춤사위의 한자락도 끊어내지는 못했다.
‘스르르...쿵.....’
그건 심쿵보다 더한 심벌즈의 장엄한 마무리 였다. 총알은 그의 생명과 지장이 없는 부분을 관통했지만, 이미 그것은 상관이 없었기에....바닥에 널부러진 그의 시신으로 부터 마지막 선혈이 뿜어져 나와 차츰 바닥을 더럽히고 있었다.
‘얼릉...비켜서세요...어디 다친 데라도?’
‘아니오...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 하나 쓰러진 빽날과 뭉치의 시신을 소생시켜야 한다는 본능적인 메뉴얼 마저 까맣게 잊고 있는 듯 했다. 이미 내 귀에는 오늘 아침 출근부터 이어폰을 통해 들려오는 형사와 뭉치와의 대화가 들려지고 있었다. 나와 형사 사이에 병세에 관한 대화가 오가는 도중, 자신도 잃어 버린 것을 몰랐을 그 녹음기는 청소를 빌미로 우리 둘 사이에 끼어든 빽날의 날렵한 솜씨에 사라졌고, 내용을 파악한 신씨는 곧바로 복수의 칼날을 들고 나섰던 모양 이었다. 아침에 출근 하자마자, 환복을 위해 열어재낀 내 사물함에 버티고 있던 그 소형 녹음기...
%그러니까, 당신이 죽인 사람이 누군지 모른다?
예, 모른다 아입니꺼?
…..
그게 당신 부인인데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그기 문제라 안캅니꺼!
뭐가 문젠데?
…..
큰행님이 모다 노은 아그들이 모두 치매 인기라...
대갈빡 줘 맞고, 빠이프에 인생 쫑나고...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키와준(키워준) 조직은 그런 아그들 내다 버리고..
시키믄 시킨대로 푹푹 찔러, 보도집에 방석(윤락녀)으로 보내믄 디리 가랭이 벌려...
수치심도 음꼬(없고), 겁또 엄꼬...
그리 살아가는 비렁뱅이 인생보다 몬하다 아잉교.....%
뭉치라는 사람은 큰형님의 조직경영 철학에 반기를 든 유일한 사람이었던가 보다. 내노라 하는 조직에서 몸바쳐 뛰어 다니다, 머리나 주어 맞고, 치매라는 길로 접어든 젊은 혈기들을, 재취업의 미끼로 꾀어다가 온갖 궂은 일을 시킨 모양 이었고..... 그 와중에 눈엣가시처럼 사사건건 반기를 든 뭉치를 제거하기 위해, 친족 살해를 명했고, 그것이 지시인 마당에, 죄의식 없이 부인을 살해한 뭉치....감옥에 들어가 세상사에 눈을 뜨고 착하게 살아가려던 빽날이, 병원으로 실려온 뭉치를 몰라볼 리 없었다. 두 사람의 손등에 똑같이 지져져 있던 우정의 맹세....빽날은 피도 눈물도 없는 큰형님을 기어이 단신으로 그어 버리고 병원으로 곧장 온 것이었다.
‘아까 보니까, 범인과 무슨 말씀을 나누시는 것 같던데...’
‘아뇨...’
‘혹시 관계가 있으신가요?’
‘아뇨...그냥...저를 아는 분이시겠죠....’
난 형사 앞에서 빽날, 아니 신씨를 그냥 오다가다 만난 사람보다 못한 종자로 만들고 있었다.
-完-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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