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개태라 정초의 명동은 화사하기만 하다. 봄꽃을 닮은 기모노가 수놓아져 있는 거리엔 교자가게의 노오렌이 펄럭인다. 수줍은 벗꽃은 아직 이른 꽃망울을 내지 못하고 몽우리져 있다. 그저 그런 일요일 오후처럼 약간은 부산하지만 그렇게 벅적스럽지도 않게 아니 조용스러운 하루가 무난히 지나갈 것만 같았다.
빈 인력거를 끄는 내손이 가볍게 떨린다. 오포 무렵 명동교자를 지나 화신백화점 옆 명보극장에 히요시 데츠라가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이제 한 시진이 지났다. 되도않은 사무라이 영화는 보통 한 시진이면 충분하다. 거꾼 뒷줄에 서 손님을 서넛을 내친 후에야 사람들이 떼로 나온다.
경성 경시청 고등계 특무 1과장 히요시 테츠라. 코뮤니스트 킬러라 불리며 경성바닥을 무균지대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서른 넷에 아직 미혼 미남자라 주변엔 여자가 많다. 오늘도 작업 들어간 조선 신여성을 꼬드겨 극장통으로 들어간 것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스럽게 죽여주마’
포마드로 머리를 바싹 넘긴 그 자의 얼굴이 들어온다. 양산을 펴든 기모노 차림의 여자들 속에 양장의 조선 여자와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있다. 한담이라도 하려나 보지? 옥돌 필터에 길게 늘여뺀 궐련을 자랑스레 치켜들고 조선 한바닥에서 왜국말을 지껄이는 저자… 저자 손에 죽은 조선 청년이 기백이 넘을 진데 무슨 낯인지 조선 여자는 내리 까르르일 뿐이다.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자들이 한 무리 벚꽃으로 보인다. 인력거 구석에 처박아둔 왜검을 검집 채 잡아 앞의 인력거를 발판 삼아 녀석에게 달려간다. 아직 녀석은 내 기미를 채지 못했다. 한발 두발 양산 사이로 뛰어들어간다. 여자들은 기겁을 하고 물러나지만 내 눈에는 히요시 데츠라, 코뮤니스트 킬러만이 보일 뿐이다. 이제 5~6보…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내 손의 검을 보고 바로 기가 꺾여버렸다. 뒷걸음 치는 그 녀석의 오른쪽으로 파고들어가면서 검을 짜 쥐었다. 녀석의 눈이 깜빡인다. 이제 3보… 왼발에 무게를 실고 오른발을 구르며 녀석의 왼쪽으로 쏘아져 나간다. 검은 녀석의 정면에서 검집을 벗어나 녀석의 배꼽을 타고 갈비뼈 밑을 치고 나간다. 물컹 녀석의 대장과 소장, 간장이 검끝에 갈기갈기 찢긴다. 끝났다.
“우아아아악”
검끝에 묻은 녀석의 이물질을 주변 사람들에게 뿌리자 길이 열린다. 녀석은 무릎을 꿇은 채 내장을 쏟고 있다. 극장 뒷문에는 인한이형이 기다리고 있다.
…
- 흐으으음..
- 아흐윽 아 아 아 헉헉
- 으아아 헉 헉
목간통 위는 요지경이다. 목욕물이 넘치는 것조차 모른 채 두 남녀는 정신없이 딩굴고 있다. 남자는 중년의 뚱보인데 여자는 아직 솜털이 채 가시지도 않은 댕기머리이다. 남자에게 깔려 있는 댕기머리가 애처롭다.
마쓰이 히데요리. 동척 측량 제 1부장. 미적 토지를 거두어 일인에게 무상 배분하는 일을 하는 자다. 충실한 자로 전대 총독인 사이토 조차 인정한 일본인의 표상. 일본인이 배부른 만큼 조선 자영농은 마쓰이 히데요리가 조선땅에 근무한 10년 안에 모두 소작농이나 유민이 되어버렸다.
지금 깔고 있는 여자아이도 어느 영농에게서 빼앗아온 아이겠지. 수현이보다 더 어린 아이가 쉰을 바라보는 저자의 더러운 몸 아래 깔려 있다. 아니 이젠 그 아이가 그 자의 애기꼬추를 물고 있다. 즐길만큼 즐기거라 더러운 몸 오늘이 마지막이니 충분히 즐겨야지…
뚱보가 아이를 엎드리게 하고 뒤에 붙어 섰다.
“아흐흑 나으리 너무 아파요”
“잡년아 엉덩이 들어올리지 못하겠느냐?”
“아악 살살…”
“옳치 잘하는 구나 으으윽”
더 봐주기가 짜증난다. 등에 조차 삼사겹의 살이 디룩디룩 오른 늙다리와 아직 가슴 자죽도 안난 아이의 정사는 불쌍함을 넘어 괴기스럽기만 하다.
- 우지끈
가볍게 긋는 일검만으로도 문짝은 힘없이 넘어진다. 돼지 같은 대머리가 기겁을 하고 돌아본다. 녀석의 눈은 화등잔 만하다. 이미 끝났다. 녀석의 몸으로 뛰어들면서 격자부로 녀석의 정수리부터 가슴까지 내리 그었다.
뇌수가 터져나오고 갈비대가 하나 둘 끊어진다. 우둘두둘한 칼맛이 왼손 새끼손가락 끝을 타고 온다. 녀석의 뼈를 끊는 것은 힘들지 않으나 워낙 비계가 두꺼워 칼이 나가질 않는다. 녀석의 젖꼭지 사이에 박힌 칼을 비틀며 녀석의 가슴을 걷어차 빼내니 혀마저 두동강이 난 녀석은 바람 빠진 소리만 내고 있다.
"으어... 시...시...시... 흐어흐어"
녀석의 밑에 깔려 있던 여자는 소리도 못지르고 치부를 가릴 생각도 못한 채 멍하니 보고만 있다. 구석을 보니 검정색 치마, 흰색 저고리… 빈농의 아이이다. 덜덜 떨며 죽어가는 녀석을 밟아 넘고 아이의 옷가지를 던져 몸을 가려줬다. 빨리 나가야 한다. 인한이 형이 담장 아래 기다리고 있으니…
…
- 경시청 간부 명동 한복판에서 피살
- 동양척식주식회사 측량부장 자택에서 변사체로 발견
- 마쓰시다 공업 한국지사장 유곽에서 상해
- 미카자키 소상공인회회장 침상에서 급습
후훗 히요시는 조선 여성과 연애질을 하고 있다던 이야기가 빠졌고 마쓰이는 욕탕에서 변태성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으며, 고노히로는 게이샤에게 애걸복걸하다 죽었다는 이야기도 없고, 미카자키 옆에는 상사의 마누라가 누워 있었다는 이야기도 없구먼... 역시 사실과 알려진 것은 다른 법이지…
“재미있군요. 미나모토의 이야기가 빠지긴 했는데 그럭저럭 잡혔네요.”
“오늘 새벽이 아니더냐. 오훗경에나 호외가 나겠지”
“간담이 서늘해져 있을 겁니다.”
“개나리들은 보이는 것만 생각하지…”
“헌병이네요.”
먼발치 헌병이 보인다. 하긴 별 문제는 없다만…
“실례합니다. 잠시 검문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 드립니다.”
공민증을 내미는 인한이형은 영락없는 일본인이다. 히까마 차림에 천검보를 든 모양이 검도관의 사범과 큰 차이가 없고 나 역시 흰 상의에 곤색 히까마… 단을 따지 못한 수련생의 모습.. 그럴 듯 하다.
“오부가와 사범이셨군요.”
“그렇습니다. 이쪽은 히로이 군으로 도장에서 나와 목욕을 가는 중입니다.”
“알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감사합니다. 계속 수고해주세요.(간바레 구다사이)”
“이쪽이야말로 감사합니다.”
자축월이 지나 삼양이 개태하는 입춘지절이라 해도 꽃샘 추위가 매섭다. 거지엄마야 얼어죽을 자식이 없어졌다고 하고, 겨울자락 끝 무렵의 첫해가 발치에 걸리긴 해도 아직은 축토가 진토가 되진 않았으니 코끝을 스치는 바람은 서늘하다.
‘갑술에 병인(1934년 음력 2월)이라… 검이 셋이다. 모두 태워버리리라…’
To be continued…
덧말 하나>>
이제 시작이네요.
덧말 둘>>
늑대님께…
1부 말미에 길주 일행이 사냥을 나갔을 때 일본군이 마을을 점령하고 벌인 인면수심의 행위를 제 글엔 해석의 여지만 남겨두었습니다. 사실 약간은 쓰고 싶었습니다만,
하일라이트에 대해서는 외전으로 풀어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소라에는 엄청난 필력의 작가분들이 바닷가의 모래보다 더 많지만, 제 글을 잘 이해하실 뿐만 아니라, 최근 필력이 절정에 이른 늑대님께 외전을 맞기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네요.
졸저에 살을 붙여주시겠습니까?
빈 인력거를 끄는 내손이 가볍게 떨린다. 오포 무렵 명동교자를 지나 화신백화점 옆 명보극장에 히요시 데츠라가 들어가는 것을 보았고 이제 한 시진이 지났다. 되도않은 사무라이 영화는 보통 한 시진이면 충분하다. 거꾼 뒷줄에 서 손님을 서넛을 내친 후에야 사람들이 떼로 나온다.
경성 경시청 고등계 특무 1과장 히요시 테츠라. 코뮤니스트 킬러라 불리며 경성바닥을 무균지대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서른 넷에 아직 미혼 미남자라 주변엔 여자가 많다. 오늘도 작업 들어간 조선 신여성을 꼬드겨 극장통으로 들어간 것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스럽게 죽여주마’
포마드로 머리를 바싹 넘긴 그 자의 얼굴이 들어온다. 양산을 펴든 기모노 차림의 여자들 속에 양장의 조선 여자와 사이좋게 팔짱을 끼고 있다. 한담이라도 하려나 보지? 옥돌 필터에 길게 늘여뺀 궐련을 자랑스레 치켜들고 조선 한바닥에서 왜국말을 지껄이는 저자… 저자 손에 죽은 조선 청년이 기백이 넘을 진데 무슨 낯인지 조선 여자는 내리 까르르일 뿐이다.
기모노를 입은 일본 여자들이 한 무리 벚꽃으로 보인다. 인력거 구석에 처박아둔 왜검을 검집 채 잡아 앞의 인력거를 발판 삼아 녀석에게 달려간다. 아직 녀석은 내 기미를 채지 못했다. 한발 두발 양산 사이로 뛰어들어간다. 여자들은 기겁을 하고 물러나지만 내 눈에는 히요시 데츠라, 코뮤니스트 킬러만이 보일 뿐이다. 이제 5~6보…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녀석은 내 손의 검을 보고 바로 기가 꺾여버렸다. 뒷걸음 치는 그 녀석의 오른쪽으로 파고들어가면서 검을 짜 쥐었다. 녀석의 눈이 깜빡인다. 이제 3보… 왼발에 무게를 실고 오른발을 구르며 녀석의 왼쪽으로 쏘아져 나간다. 검은 녀석의 정면에서 검집을 벗어나 녀석의 배꼽을 타고 갈비뼈 밑을 치고 나간다. 물컹 녀석의 대장과 소장, 간장이 검끝에 갈기갈기 찢긴다. 끝났다.
“우아아아악”
검끝에 묻은 녀석의 이물질을 주변 사람들에게 뿌리자 길이 열린다. 녀석은 무릎을 꿇은 채 내장을 쏟고 있다. 극장 뒷문에는 인한이형이 기다리고 있다.
…
- 흐으으음..
- 아흐윽 아 아 아 헉헉
- 으아아 헉 헉
목간통 위는 요지경이다. 목욕물이 넘치는 것조차 모른 채 두 남녀는 정신없이 딩굴고 있다. 남자는 중년의 뚱보인데 여자는 아직 솜털이 채 가시지도 않은 댕기머리이다. 남자에게 깔려 있는 댕기머리가 애처롭다.
마쓰이 히데요리. 동척 측량 제 1부장. 미적 토지를 거두어 일인에게 무상 배분하는 일을 하는 자다. 충실한 자로 전대 총독인 사이토 조차 인정한 일본인의 표상. 일본인이 배부른 만큼 조선 자영농은 마쓰이 히데요리가 조선땅에 근무한 10년 안에 모두 소작농이나 유민이 되어버렸다.
지금 깔고 있는 여자아이도 어느 영농에게서 빼앗아온 아이겠지. 수현이보다 더 어린 아이가 쉰을 바라보는 저자의 더러운 몸 아래 깔려 있다. 아니 이젠 그 아이가 그 자의 애기꼬추를 물고 있다. 즐길만큼 즐기거라 더러운 몸 오늘이 마지막이니 충분히 즐겨야지…
뚱보가 아이를 엎드리게 하고 뒤에 붙어 섰다.
“아흐흑 나으리 너무 아파요”
“잡년아 엉덩이 들어올리지 못하겠느냐?”
“아악 살살…”
“옳치 잘하는 구나 으으윽”
더 봐주기가 짜증난다. 등에 조차 삼사겹의 살이 디룩디룩 오른 늙다리와 아직 가슴 자죽도 안난 아이의 정사는 불쌍함을 넘어 괴기스럽기만 하다.
- 우지끈
가볍게 긋는 일검만으로도 문짝은 힘없이 넘어진다. 돼지 같은 대머리가 기겁을 하고 돌아본다. 녀석의 눈은 화등잔 만하다. 이미 끝났다. 녀석의 몸으로 뛰어들면서 격자부로 녀석의 정수리부터 가슴까지 내리 그었다.
뇌수가 터져나오고 갈비대가 하나 둘 끊어진다. 우둘두둘한 칼맛이 왼손 새끼손가락 끝을 타고 온다. 녀석의 뼈를 끊는 것은 힘들지 않으나 워낙 비계가 두꺼워 칼이 나가질 않는다. 녀석의 젖꼭지 사이에 박힌 칼을 비틀며 녀석의 가슴을 걷어차 빼내니 혀마저 두동강이 난 녀석은 바람 빠진 소리만 내고 있다.
"으어... 시...시...시... 흐어흐어"
녀석의 밑에 깔려 있던 여자는 소리도 못지르고 치부를 가릴 생각도 못한 채 멍하니 보고만 있다. 구석을 보니 검정색 치마, 흰색 저고리… 빈농의 아이이다. 덜덜 떨며 죽어가는 녀석을 밟아 넘고 아이의 옷가지를 던져 몸을 가려줬다. 빨리 나가야 한다. 인한이 형이 담장 아래 기다리고 있으니…
…
- 경시청 간부 명동 한복판에서 피살
- 동양척식주식회사 측량부장 자택에서 변사체로 발견
- 마쓰시다 공업 한국지사장 유곽에서 상해
- 미카자키 소상공인회회장 침상에서 급습
후훗 히요시는 조선 여성과 연애질을 하고 있다던 이야기가 빠졌고 마쓰이는 욕탕에서 변태성행위를 하고 있었다는 내용은 보이지 않으며, 고노히로는 게이샤에게 애걸복걸하다 죽었다는 이야기도 없고, 미카자키 옆에는 상사의 마누라가 누워 있었다는 이야기도 없구먼... 역시 사실과 알려진 것은 다른 법이지…
“재미있군요. 미나모토의 이야기가 빠지긴 했는데 그럭저럭 잡혔네요.”
“오늘 새벽이 아니더냐. 오훗경에나 호외가 나겠지”
“간담이 서늘해져 있을 겁니다.”
“개나리들은 보이는 것만 생각하지…”
“헌병이네요.”
먼발치 헌병이 보인다. 하긴 별 문제는 없다만…
“실례합니다. 잠시 검문하겠습니다.”
“아무쪼록 잘 부탁 드립니다.”
공민증을 내미는 인한이형은 영락없는 일본인이다. 히까마 차림에 천검보를 든 모양이 검도관의 사범과 큰 차이가 없고 나 역시 흰 상의에 곤색 히까마… 단을 따지 못한 수련생의 모습.. 그럴 듯 하다.
“오부가와 사범이셨군요.”
“그렇습니다. 이쪽은 히로이 군으로 도장에서 나와 목욕을 가는 중입니다.”
“알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감사합니다. 계속 수고해주세요.(간바레 구다사이)”
“이쪽이야말로 감사합니다.”
자축월이 지나 삼양이 개태하는 입춘지절이라 해도 꽃샘 추위가 매섭다. 거지엄마야 얼어죽을 자식이 없어졌다고 하고, 겨울자락 끝 무렵의 첫해가 발치에 걸리긴 해도 아직은 축토가 진토가 되진 않았으니 코끝을 스치는 바람은 서늘하다.
‘갑술에 병인(1934년 음력 2월)이라… 검이 셋이다. 모두 태워버리리라…’
To be continued…
덧말 하나>>
이제 시작이네요.
덧말 둘>>
늑대님께…
1부 말미에 길주 일행이 사냥을 나갔을 때 일본군이 마을을 점령하고 벌인 인면수심의 행위를 제 글엔 해석의 여지만 남겨두었습니다. 사실 약간은 쓰고 싶었습니다만,
하일라이트에 대해서는 외전으로 풀어내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소라에는 엄청난 필력의 작가분들이 바닷가의 모래보다 더 많지만, 제 글을 잘 이해하실 뿐만 아니라, 최근 필력이 절정에 이른 늑대님께 외전을 맞기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닐까 싶네요.
졸저에 살을 붙여주시겠습니까?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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