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풍스런 목조 테이블과 어느 예술가의 그림인지 알 수 없는 그림이 걸려져 있는 작은 까페.
비틀즈의 [Let It Be]가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며 그 분위기는 한껏 취해 있다. 드문드문 손님들이 자
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떠들석한 모습은 아니었다.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이 까페의 특유의 분위기
에 마음에 들어하는 단골과 마스터의 미모로 소문을 들어서 흑심을 품고 그저 차를 시킨채, 욕망의
눈을 붙태우는 손님으로 부류를 나눌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 까페에 들어선 남자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특유의 케이스. 잔촐한 양복에 축축히 젖은 갈색 검은색 코트를 입은 남자는 문으로 들
어서며 비를 한껏 저주하고 있었다.
"제길.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소나기인가. 덕분에 샤워 한 번 거창하게 하는군."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군요. 승민씨."
마스터 윤희는 승민이라 불리는 이 남자를 잘 아는듯이 자리로 그를 안내했다. 180을 훌쩍 넘길 훤칠
한 키에 약간은 그을린 얼굴. 호남형이라 불릴만한 마스크를 가진 승민은 윤희를 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윤희도 그리 작은 키는 아니였지만, 승민의 옆에 서자 보통 여자로 밖에 안보일 정도였다.
"갑자기 호출이라니. 무슨 일이지?"
"후후...오자마자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에요? 그러지말고 차나 한 잔해요. 마침 에스프레소 원두가
괜찮은 거 들어왔는데. 몸도 식힐 겸 가져 올게요."
윤희는 승민의 대답에 듣지도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항상 그런듯이 승민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행동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가 차를 두 잔 내오며 목을 축였다.
"얘기를 안하면 당장이라도 자리를 뜰 눈치군요. 네네...알았어요. 얘기하죠."
윤희는 승민에게 사진을 한 장 꺼냈다. 사진 속에는 10대 후반 정도의 여자가 찍혀 있었는데 금발에
어딘가 성숙해 보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외국인? 그래..이것이 의뢰인가?"
"네. 의뢰자는 이 여자애를 빨리 찾기를 원하더군요. 꽤 서두르는 걸로 봐서 중요해 보이던데..."
그러나 승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관심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알고있을텐데. 난 그런 미아찾기나 하는 사람이 아냐. 더 이상 시간 뺏기기기 싫으니, 그만 일어나
지."
윤희는 이런 승민의 모습이 당연하다는 듯이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이 남자는 내가 알고있
는 그 어떤 사람보다 자기가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는 조금도 눈길을 주지않는 사람. 하지만 윤희는
이 남자가 다시 자리에 앉게 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그런데 의뢰자가 궁금하지 않아요? 아마 들으면 놀랄텐데?"
"무슨 소리야?"
"스티브 모일드.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죠?"
무슨 생각에서인지 승민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다시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봐도 평범해
보이는 소녀인데, 그 남자와 연관이 있을 줄이야. 갑자기 흥미로운 호기심이 고개를 들면서 윤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요...그 남자가 찾아왔었죠. 스티브 모일드. 현 CIA정보수석이자, 지난 미국에서 있었던 삼합회
가 관련이 있었던 마약사건을 소탕한 남자. 그건 당신도 선이 닿아 있었던 것이니 저보다 더 잘 알고
있겠죠. 그 남자는 이틀전에 저를 찾아와 이 사진을 주며 의뢰를 하더군요."
"확실히 그인가? 모일드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확실해요.오른쪽 눈 밑에 있는 작은 흉터가 말해주고 있었으니까요. 뭐, 그 사람은 제가 단순히 전달
자인 줄만 알고 서툰 변장을 하기는 했지만."
"의외군. 이 여자애가 모일드를 움직이게 할 만한 여자인건가? 어딜봐도 평범해 보이는데."
윤희는 자신의 입안에 그윽히 퍼지는 에스프레소의 향을 한껏 만끽한 채,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그동안 이 여자에 대해서 정보를 모아봤는데, 뚜렷한 것은 없더군요. 국적이 영국으로 되
있고, 그 외에 개인정보가 이상하게도 차단되어 있어요."
"모일드가 한국으로 왔다는 것은 이 여자애도 여기에 있다는 거겠군. 재미있게 되가는걸."
승민은 잠시 눈을 감으며 자신만의 상념으로 젖어들어갔다. 3년전, 자신이 어느 기관에 속해 있을당
시, 어느 한남자를 추적하던 중, 그 남자의 흔적이 미국에 남아있는 것을 알았다. 대규모의 마약이 뉴
욕항을 통해서 밀수입 되고 있는 사실을 알아낸 승민은 그쪽 지부의 CIA에게로 연락을 취했었다. 그
때 알게된 것이 스티브 모일드. 엘리트 단계를 차분히 밟으며 한국에도 그 이름이 꽤나 알려졌던 모
일드는 승민의 정보와 자신의 결단력으로 인해 삼합회의 계획을 멋지게 소탕했었다. 그때, 잠시 손
을 잡았던 것 뿐이었는데, 이제 와서 나를 찾을 줄이야. 아니, 내가 그 곳을 빠져 나온 것은 어떻게 알
았을까?
"당신을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급하다는 일이겠죠. 어때요? 할 맘이 생겼나요?"
"의뢰....접수하지. 나도 간만에 흥미가 생기는군."
"아직도....그 남자를 쫓는 거에요? 벌써 3년이나 지났어요.이제 그것에서...."
"아직 3년 밖에 안 지났어. 지금은 어디서 몸을 숨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그 자식은 반드시 나타난
다. 그 때가 비로소 마지막이 되겠지. 녀석도 알고 있을거야."
승민은 항상 그 남자에 대해서만큼은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사정을 아는 윤희도 승민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가혹하게 부릴 것 까지는 없지 않을까.
"그럼 이제부터 내가 알아 보도록 할게. 정보 고마워."
윤희는 자리를 뜨려는 승민에게 한장의 쪽지를 내밀었다. 승민은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의도하는 것
이 무엇인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소개비라도 받을 셈인가?"
"그렇네요. 하지만 요새 그거 한적이 별로 없었잖아요. 저도 슬슬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라구요."
승민은 그녀의 당당한 도발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밖은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
다. 사람들의 우산으로 거리가 알록달록 물들여져 있는 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의 눈
에 자신에게 걸어 오고 있는 한 여자가 눈에 띄었다. 등까지 칠렁이는 검은 생머리에 흑요석같이 빛
나는 눈동자를 지닌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신비한 분위기의 여자. 그녀는 자신의 비서였다.
"여기에 계실 줄 알았어요. 사건이 들어왔나요?"
"아아. 간만에 재미있는 게 들어와서 말이지. 일단은 사무실로 가 있겠어? 난 알아낼 게 있어서 잠
시 다른 곳도 들려야 해서 말이야."
승민의 능글맞은 말에 그의 비서 안유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22살에서 나오는 그녀의 청초함
에 거리의 남자들이 여러명 고개를 돌리다가 곧 옆에 있는 애인들의 손에 응징을 당하며 끌려가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럼 사무실에서 기다릴게요. 다른 지시사항은...?"
"일단은...대기로 하지. 일은 내가 정보를 알아보고 난 뒤에 시작하자. 그럼.....아, 그리고 오늘 나 조
금 늦을거야. 선약이 있거든."
"네..."
유진을 돌려보낸 승민은 번화가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정리된 대로변과는 달리
미로같이 여기저기 얽혀 있어서 처음 발을 들여선 사람들은 길이 잃기 쉽상이었지만, 승민은 유유히
발검음을 뗐다.
"누구냐. 처음보는 녀석이군. 함부로 목숨 재촉하지 말고 꺼져라."
승민의 등장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3명의 남자가 모습을 들어냈다. 그들의 위협에도 승민은 입가를
올리며 오히려, 그들에게 도발을 가했다.
"그런말은 좀 더 상대를 봐가면서 해라, 이 애송이들아. 나를 모르다니...여기 신입인 모양이군."
"저 새끼가...! 야, 볼 것도 없다. 쳐!!"
남자 셋이서 좁은 골목을 가로지르며 승민에게 달려 들었지만, 이미 그들의 눈 앞에 승민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의아해하며 멈춰서던 그들뒤로 모습을 나타낸 승민은 우선 한녀석의 등을 팔꿈치
로 강하게 내리쳤다.
"끄아아악!"
"으윽...이 자식 어느새...."
"벽을 조금 타봤을 뿐이다. 이런걸로 놀라기는 이를텐데. 아직 몸도 안풀었단 말이다...크크."
"이...이....죽어라~~!"
남자 한명이 승민의 배를 목표로 주먹을 힘차게 갈랐지만, 그것은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남자의 주
먹을 한 쪽 발로 차면서 막아낸 승민은 그 자리에서 다른 발을 차며 몸을 공중에서 한바퀴 돌렸다.
-콰직-
정확히 턱을 가격장한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 그자리에서 앞으로 쓰러졌다. 소리로 봐서는
턱뼈가 산산 조각난 듯 했고, 입에서는 벌써부터 피가 새어나왔다.
"으아아악~ 이 새끼가.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몰라도 가만 안두겠어~!"
남은 남자가 품 속에서 칼을 꺼내며 승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쉭 쉭 쉭-
하지만 승민은 가벼운 스텝으로 남자의 칼을 피했다. 허리를 굽히며 남자의 공격을 피해낸 승민은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올리며 남자의 코에 정확히 박았다. 남자는 자신의 코를 쥐면서 쓰러지느라
칼을 그만 떨어트리고 말았다.
"크큭. 칼이란 말이다. 너희들이 장난감으로 쓰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흐이익...."
승민이 떨어진 칼을 줏으며 남자에게 접근하자, 그는 벌써부터 바지를 적시며 뒷걸음을 쳤다. 이미
본능이 자신의 눈 앞의 남자가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려주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등을 보일 수
는 없었다. 그러다가는 진짜로 죽을 것만 같아서였다.
"칼에 목숨을 걸어라. 칼이란 언제든지 등을 돌려서 널 죽일수가 있거든. 그런 거 없이 어설프게 쓰
지 말라는 소리다."
"네..네...알겠습니다...그러니..목, 목숨만은..."
"너같은 녀석에게 이런거 쓰기도 귀찮아. 내가 원하는 것은 여기에 있을 재민이란 녀석이다. 이 곳을
접수했다고 하던데. 알고 있겠지?"
남자는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1년전, 단신으로 주먹 하나로 이 지역을 제패한 그를 모
를 사람은 없었다.
"불러라."
마치 뉘집 개이름을 부르는 듯한 말투에 어안이 벙벙한 남자였지만,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승민은 바지에 있던 담배 한 가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폐안으로 들어서
는 연기를 느끼며 그것을 길게 내뿜는 짓을 3번 정도 하자, 저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
였다.
"선배님~~"
"하하, 강재민, 이 녀석. 내가 이렇게 나서야 모습을 보이냐.그 동안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 한 번 안
주고 이런 일을 벌이다니."
면도를 하지 않았는지 수염이 덥수룩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날카롭게 서 있는 재민이라 불린 그는 승
민과는 안식이 트여 있는 사이인 듯, 자연스럽게 포옹을 했다.
"선배님이 탐정일을 시작하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한 번 찾아뵐까 했지만, 저 같은 놈이 가봤자
폐만 끼칠 것 같아서요. 하하.."
"언제나 그렇게 약한 소리만 하는구나. 나는 언제나 환영이다."
그렇게 그동안 못 풀었던 아쉬움을 달랜 둘은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섰다.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감시자들의 눈이 한 둘은 아닐텐데요."
"훗, 네가 여기에서 자리를 튼 덕에 꽤 재미 좀 봤어. 아직도 헤매고 있을걸. 아, 그리고 너 이 사진 속
사람 좀 조사해 줘라."
재민은 승민이 꺼낸 사진을 한참동안 들여다 봤지만, 자신의 느낌으로는 별로 특이할만한 사항은 없
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정보력으로 너만한 사람은 없지. 나도 오늘 의뢰로 접수하기는 했는데...심상치가 않
아. 스티브 모일드가 나섰으니 말이다."
"네? 스티브 모일드라면...CIA의....그? 흐음....이거 뭔가 하나 터지겠군요."
"알아 낼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알아내. 과거, 인간관계, 직업, 팬티 갯수까지도."
승민의 실없는 농담에 가볍게 입술을 올리는 재민이었지만,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진심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재민은 사진을 자신의 품속에 넣으며, 몇일 후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근데...선배님. 아직도 그 남자를 쫓는 겁니까?"
"당연하잖아. 아직 승부를 짓지 못했어. 그 녀석 손 안에 죽어간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서도 말이다."
승민은 분을 못이겨 물었던 담배 필터를 이로 끊었다.
"전... 그 사건이 있은 후로 총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아직도 밤마다 악몽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
래서 이런 짓이나 하지만..."
"걱정마라. 너와 나 생존자가 둘밖에 없지만 그걸로 충분해. 녀석의 심장에 바람구멍 내는 것은..."
승민은 재민과 작별을 한 후에 다시 골목을 빠져나왔다. 아직 남아있는 눈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이제는 어느정도 면역이 되는지라, 그러려니 하고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아까 윤희가 줬던 쪽지에 적혀있던 호텔과 호수를 확인한 승민은 문앞에서 노크를 했다. 잠시 시간
이 흐르자, 타월 한 장을 걸친 윤희가 문을 열어주며, 승민과 가벼운 키스를 나눴다.
~~~~~~~~~~~~~~~~~~~~~~~~~~~~~~~~~~~~~~~~~~~~~~~~~~~~~~~~~~~~~~~~~~~~
드디어 글을 올립니다. 이번 글은 전에 썼던 것과는 성격이 조금 틀려서요. 가벼운 느낌보다는 약간 묵직한 글이
되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올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이번에는 이 글을 올려보기로 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도전적이랄까...그런 작품이자만, 읽으시고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시면 리플로 남겨주시면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몇 일 더 쉬고 싶지만, 이제는 일상적이 되어버린 컴 앞에서 타자치기....
전에 있던 글만큼 리플이 있었으면 하지만...으음...솔직히 이번글은 여러모로 인기 끌기 애매한 글.
뭐, 언제는 그런거에 연연했었나. 그럼 즐감하시고 무더운 여름을 잘 헤쳐나가시길.
비틀즈의 [Let It Be]가 라디오에서 울려 퍼지며 그 분위기는 한껏 취해 있다. 드문드문 손님들이 자
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떠들석한 모습은 아니었다. 이 곳에 오는 사람들은 이 까페의 특유의 분위기
에 마음에 들어하는 단골과 마스터의 미모로 소문을 들어서 흑심을 품고 그저 차를 시킨채, 욕망의
눈을 붙태우는 손님으로 부류를 나눌수가 있었다. 하지만 이 까페에 들어선 남자는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특유의 케이스. 잔촐한 양복에 축축히 젖은 갈색 검은색 코트를 입은 남자는 문으로 들
어서며 비를 한껏 저주하고 있었다.
"제길. 일기예보에도 없었던 소나기인가. 덕분에 샤워 한 번 거창하게 하는군."
"어서 오세요. 오랜만이군요. 승민씨."
마스터 윤희는 승민이라 불리는 이 남자를 잘 아는듯이 자리로 그를 안내했다. 180을 훌쩍 넘길 훤칠
한 키에 약간은 그을린 얼굴. 호남형이라 불릴만한 마스크를 가진 승민은 윤희를 보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윤희도 그리 작은 키는 아니였지만, 승민의 옆에 서자 보통 여자로 밖에 안보일 정도였다.
"갑자기 호출이라니. 무슨 일이지?"
"후후...오자마자 그런 재미없는 이야기에요? 그러지말고 차나 한 잔해요. 마침 에스프레소 원두가
괜찮은 거 들어왔는데. 몸도 식힐 겸 가져 올게요."
윤희는 승민의 대답에 듣지도 않고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항상 그런듯이 승민은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행동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 이윽고 그녀가 차를 두 잔 내오며 목을 축였다.
"얘기를 안하면 당장이라도 자리를 뜰 눈치군요. 네네...알았어요. 얘기하죠."
윤희는 승민에게 사진을 한 장 꺼냈다. 사진 속에는 10대 후반 정도의 여자가 찍혀 있었는데 금발에
어딘가 성숙해 보이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외국인? 그래..이것이 의뢰인가?"
"네. 의뢰자는 이 여자애를 빨리 찾기를 원하더군요. 꽤 서두르는 걸로 봐서 중요해 보이던데..."
그러나 승민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관심없다는 듯이 시선을 돌렸다.
"알고있을텐데. 난 그런 미아찾기나 하는 사람이 아냐. 더 이상 시간 뺏기기기 싫으니, 그만 일어나
지."
윤희는 이런 승민의 모습이 당연하다는 듯이 살며시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이 남자는 내가 알고있
는 그 어떤 사람보다 자기가 관심이 없는 분야에서는 조금도 눈길을 주지않는 사람. 하지만 윤희는
이 남자가 다시 자리에 앉게 할 수 있는 비장의 카드가 있었다.
"그런데 의뢰자가 궁금하지 않아요? 아마 들으면 놀랄텐데?"
"무슨 소리야?"
"스티브 모일드. 이것만으로도 충분하죠?"
무슨 생각에서인지 승민은 다시 자리에 앉으며 다시 사진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리 봐도 평범해
보이는 소녀인데, 그 남자와 연관이 있을 줄이야. 갑자기 흥미로운 호기심이 고개를 들면서 윤희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래요...그 남자가 찾아왔었죠. 스티브 모일드. 현 CIA정보수석이자, 지난 미국에서 있었던 삼합회
가 관련이 있었던 마약사건을 소탕한 남자. 그건 당신도 선이 닿아 있었던 것이니 저보다 더 잘 알고
있겠죠. 그 남자는 이틀전에 저를 찾아와 이 사진을 주며 의뢰를 하더군요."
"확실히 그인가? 모일드가 한국에 들어왔다는 말은 듣지 못했는데..."
"확실해요.오른쪽 눈 밑에 있는 작은 흉터가 말해주고 있었으니까요. 뭐, 그 사람은 제가 단순히 전달
자인 줄만 알고 서툰 변장을 하기는 했지만."
"의외군. 이 여자애가 모일드를 움직이게 할 만한 여자인건가? 어딜봐도 평범해 보이는데."
윤희는 자신의 입안에 그윽히 퍼지는 에스프레소의 향을 한껏 만끽한 채, 말을 이었다.
"사실 저도 그동안 이 여자에 대해서 정보를 모아봤는데, 뚜렷한 것은 없더군요. 국적이 영국으로 되
있고, 그 외에 개인정보가 이상하게도 차단되어 있어요."
"모일드가 한국으로 왔다는 것은 이 여자애도 여기에 있다는 거겠군. 재미있게 되가는걸."
승민은 잠시 눈을 감으며 자신만의 상념으로 젖어들어갔다. 3년전, 자신이 어느 기관에 속해 있을당
시, 어느 한남자를 추적하던 중, 그 남자의 흔적이 미국에 남아있는 것을 알았다. 대규모의 마약이 뉴
욕항을 통해서 밀수입 되고 있는 사실을 알아낸 승민은 그쪽 지부의 CIA에게로 연락을 취했었다. 그
때 알게된 것이 스티브 모일드. 엘리트 단계를 차분히 밟으며 한국에도 그 이름이 꽤나 알려졌던 모
일드는 승민의 정보와 자신의 결단력으로 인해 삼합회의 계획을 멋지게 소탕했었다. 그때, 잠시 손
을 잡았던 것 뿐이었는데, 이제 와서 나를 찾을 줄이야. 아니, 내가 그 곳을 빠져 나온 것은 어떻게 알
았을까?
"당신을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급하다는 일이겠죠. 어때요? 할 맘이 생겼나요?"
"의뢰....접수하지. 나도 간만에 흥미가 생기는군."
"아직도....그 남자를 쫓는 거에요? 벌써 3년이나 지났어요.이제 그것에서...."
"아직 3년 밖에 안 지났어. 지금은 어디서 몸을 숨기고 있는지 모르겠지만...그 자식은 반드시 나타난
다. 그 때가 비로소 마지막이 되겠지. 녀석도 알고 있을거야."
승민은 항상 그 남자에 대해서만큼은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사정을 아는 윤희도 승민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그것으로 인해 자신의 미래를 가혹하게 부릴 것 까지는 없지 않을까.
"그럼 이제부터 내가 알아 보도록 할게. 정보 고마워."
윤희는 자리를 뜨려는 승민에게 한장의 쪽지를 내밀었다. 승민은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의도하는 것
이 무엇인지 눈치를 챌 수 있었다.
"소개비라도 받을 셈인가?"
"그렇네요. 하지만 요새 그거 한적이 별로 없었잖아요. 저도 슬슬 몸이 근질거리던 참이라구요."
승민은 그녀의 당당한 도발에 어깨를 으쓱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밖은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었
다. 사람들의 우산으로 거리가 알록달록 물들여져 있는 모습을 차가운 시선으로 바라보던 그의 눈
에 자신에게 걸어 오고 있는 한 여자가 눈에 띄었다. 등까지 칠렁이는 검은 생머리에 흑요석같이 빛
나는 눈동자를 지닌 아름다운 미모를 가진 신비한 분위기의 여자. 그녀는 자신의 비서였다.
"여기에 계실 줄 알았어요. 사건이 들어왔나요?"
"아아. 간만에 재미있는 게 들어와서 말이지. 일단은 사무실로 가 있겠어? 난 알아낼 게 있어서 잠
시 다른 곳도 들려야 해서 말이야."
승민의 능글맞은 말에 그의 비서 안유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22살에서 나오는 그녀의 청초함
에 거리의 남자들이 여러명 고개를 돌리다가 곧 옆에 있는 애인들의 손에 응징을 당하며 끌려가는
모습이 꽤나 인상적이었지만, 그녀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럼 사무실에서 기다릴게요. 다른 지시사항은...?"
"일단은...대기로 하지. 일은 내가 정보를 알아보고 난 뒤에 시작하자. 그럼.....아, 그리고 오늘 나 조
금 늦을거야. 선약이 있거든."
"네..."
유진을 돌려보낸 승민은 번화가의 골목길로 들어섰다. 차가 다닐 수 있도록 정리된 대로변과는 달리
미로같이 여기저기 얽혀 있어서 처음 발을 들여선 사람들은 길이 잃기 쉽상이었지만, 승민은 유유히
발검음을 뗐다.
"누구냐. 처음보는 녀석이군. 함부로 목숨 재촉하지 말고 꺼져라."
승민의 등장에 어디서 나타났는지 3명의 남자가 모습을 들어냈다. 그들의 위협에도 승민은 입가를
올리며 오히려, 그들에게 도발을 가했다.
"그런말은 좀 더 상대를 봐가면서 해라, 이 애송이들아. 나를 모르다니...여기 신입인 모양이군."
"저 새끼가...! 야, 볼 것도 없다. 쳐!!"
남자 셋이서 좁은 골목을 가로지르며 승민에게 달려 들었지만, 이미 그들의 눈 앞에 승민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다. 의아해하며 멈춰서던 그들뒤로 모습을 나타낸 승민은 우선 한녀석의 등을 팔꿈치
로 강하게 내리쳤다.
"끄아아악!"
"으윽...이 자식 어느새...."
"벽을 조금 타봤을 뿐이다. 이런걸로 놀라기는 이를텐데. 아직 몸도 안풀었단 말이다...크크."
"이...이....죽어라~~!"
남자 한명이 승민의 배를 목표로 주먹을 힘차게 갈랐지만, 그것은 그의 생각일 뿐이었다. 남자의 주
먹을 한 쪽 발로 차면서 막아낸 승민은 그 자리에서 다른 발을 차며 몸을 공중에서 한바퀴 돌렸다.
-콰직-
정확히 턱을 가격장한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한채, 그자리에서 앞으로 쓰러졌다. 소리로 봐서는
턱뼈가 산산 조각난 듯 했고, 입에서는 벌써부터 피가 새어나왔다.
"으아아악~ 이 새끼가. 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몰라도 가만 안두겠어~!"
남은 남자가 품 속에서 칼을 꺼내며 승민을 향해 달려들었다.
-쉭 쉭 쉭-
하지만 승민은 가벼운 스텝으로 남자의 칼을 피했다. 허리를 굽히며 남자의 공격을 피해낸 승민은
그 자세 그대로 고개를 올리며 남자의 코에 정확히 박았다. 남자는 자신의 코를 쥐면서 쓰러지느라
칼을 그만 떨어트리고 말았다.
"크큭. 칼이란 말이다. 너희들이 장난감으로 쓰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흐이익...."
승민이 떨어진 칼을 줏으며 남자에게 접근하자, 그는 벌써부터 바지를 적시며 뒷걸음을 쳤다. 이미
본능이 자신의 눈 앞의 남자가 평범한 사람이 아님을 알려주었지만, 그렇다고 함부로 등을 보일 수
는 없었다. 그러다가는 진짜로 죽을 것만 같아서였다.
"칼에 목숨을 걸어라. 칼이란 언제든지 등을 돌려서 널 죽일수가 있거든. 그런 거 없이 어설프게 쓰
지 말라는 소리다."
"네..네...알겠습니다...그러니..목, 목숨만은..."
"너같은 녀석에게 이런거 쓰기도 귀찮아. 내가 원하는 것은 여기에 있을 재민이란 녀석이다. 이 곳을
접수했다고 하던데. 알고 있겠지?"
남자는 겁에 질린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1년전, 단신으로 주먹 하나로 이 지역을 제패한 그를 모
를 사람은 없었다.
"불러라."
마치 뉘집 개이름을 부르는 듯한 말투에 어안이 벙벙한 남자였지만,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재빨리 자리를 피했다. 승민은 바지에 있던 담배 한 가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폐안으로 들어서
는 연기를 느끼며 그것을 길게 내뿜는 짓을 3번 정도 하자, 저 멀리서 누군가가 뛰어오는 모습이 보
였다.
"선배님~~"
"하하, 강재민, 이 녀석. 내가 이렇게 나서야 모습을 보이냐.그 동안 죽었는지 살았는지 소식 한 번 안
주고 이런 일을 벌이다니."
면도를 하지 않았는지 수염이 덥수룩해 보였지만 눈빛만은 날카롭게 서 있는 재민이라 불린 그는 승
민과는 안식이 트여 있는 사이인 듯, 자연스럽게 포옹을 했다.
"선배님이 탐정일을 시작하셨다는 얘기는 들었습니다. 한 번 찾아뵐까 했지만, 저 같은 놈이 가봤자
폐만 끼칠 것 같아서요. 하하.."
"언제나 그렇게 약한 소리만 하는구나. 나는 언제나 환영이다."
그렇게 그동안 못 풀었던 아쉬움을 달랜 둘은 본격적인 얘기로 들어섰다.
"그나저나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감시자들의 눈이 한 둘은 아닐텐데요."
"훗, 네가 여기에서 자리를 튼 덕에 꽤 재미 좀 봤어. 아직도 헤매고 있을걸. 아, 그리고 너 이 사진 속
사람 좀 조사해 줘라."
재민은 승민이 꺼낸 사진을 한참동안 들여다 봤지만, 자신의 느낌으로는 별로 특이할만한 사항은 없
어 보였다.
"우리나라에서 정보력으로 너만한 사람은 없지. 나도 오늘 의뢰로 접수하기는 했는데...심상치가 않
아. 스티브 모일드가 나섰으니 말이다."
"네? 스티브 모일드라면...CIA의....그? 흐음....이거 뭔가 하나 터지겠군요."
"알아 낼 수 있는 것은 뭐든지 알아내. 과거, 인간관계, 직업, 팬티 갯수까지도."
승민의 실없는 농담에 가볍게 입술을 올리는 재민이었지만,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진심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재민은 사진을 자신의 품속에 넣으며, 몇일 후에 연락하겠다고 말했다.
"근데...선배님. 아직도 그 남자를 쫓는 겁니까?"
"당연하잖아. 아직 승부를 짓지 못했어. 그 녀석 손 안에 죽어간 영혼들을 달래기 위해서도 말이다."
승민은 분을 못이겨 물었던 담배 필터를 이로 끊었다.
"전... 그 사건이 있은 후로 총을 잡지 못하겠습니다. 아직도 밤마다 악몽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
래서 이런 짓이나 하지만..."
"걱정마라. 너와 나 생존자가 둘밖에 없지만 그걸로 충분해. 녀석의 심장에 바람구멍 내는 것은..."
승민은 재민과 작별을 한 후에 다시 골목을 빠져나왔다. 아직 남아있는 눈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이제는 어느정도 면역이 되는지라, 그러려니 하고 반쯤 포기한 상태였다.
아까 윤희가 줬던 쪽지에 적혀있던 호텔과 호수를 확인한 승민은 문앞에서 노크를 했다. 잠시 시간
이 흐르자, 타월 한 장을 걸친 윤희가 문을 열어주며, 승민과 가벼운 키스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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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글을 올립니다. 이번 글은 전에 썼던 것과는 성격이 조금 틀려서요. 가벼운 느낌보다는 약간 묵직한 글이
되었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올릴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서 이번에는 이 글을 올려보기로 했어요.
저 개인적으로는 도전적이랄까...그런 작품이자만, 읽으시고 개인적인 의견이 있으시면 리플로 남겨주시면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몇 일 더 쉬고 싶지만, 이제는 일상적이 되어버린 컴 앞에서 타자치기....
전에 있던 글만큼 리플이 있었으면 하지만...으음...솔직히 이번글은 여러모로 인기 끌기 애매한 글.
뭐, 언제는 그런거에 연연했었나. 그럼 즐감하시고 무더운 여름을 잘 헤쳐나가시길.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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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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