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부--------------------------
“그럼 내가 한가지 제안을 할까?”
그는 솔깃한지 내게 바짝 다가왔다.
“뭡니까?”
“뭐 일단은 내 정체가 궁금하겠지?”
“그렇습니다만. 산중에 이렇게 느긋한 것도 이상하구요.”
“요즘 녹림지존이란 인간에 대해 들어봤나?”
“네. 대단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던데요. 게다가 성격이 이상하다는... 설마...”
“성격이 이상하다라...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놈의 얼굴은 참 희안하게도 변했다.
현 무림의 최강자로 꼽히는 내가 있어서 안심을 하는듯하면서도 괜한 말을 꺼내서 혹여라도 불이익을 당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뭐 그건 그놈 사정이니까.
“아무튼 네게 한가지 제안을 하지. 내 수하가 된다면 널 보호함은 물론 네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
“예? 정말입니까?”
“그럼 농담이겠냐? 그놈들도 다 와가는 마당에.”
“고.. 고맙습니다.”
내게 넙죽 절을 하는게 싫지는 않았다.
옆에 두고 부려먹을 놈이 필요했던 거니까.
천마대에서 한놈을 불러도 되겠지만 그런놈들과 과연 재미나게 다닐 수 있을까?
일단 이놈에게 간단한 몇가지를 알려주고 데리고 다니면 그런데로 쓸모가 있을 것이다.
운지가 봉황으로 못 변하는게 아쉽지만 그 정도야 감내해야지.
“일단 네놈 이름이나 알자. 난 제갈천이다.”
“정천입니다. 주군을 뵙습니다.”
“반갑다. 네 신상에 대해선 조금 있다가 얘기하고 일단 몸이라도 풀어볼까?”
내가 말을 마치는 순간 십여명의 복면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접근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지 움직임에 소리가 없었다.
마치 살수들이 단체로 들이닥친 듯이.
요즘 살영대가 뜨고 있다는데 이놈들은 뭐하는 놈들인지.
난 운지와 정천을 등 뒤로 두고 앞에 놈들을 노려보았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내겐 그저 같은 인간일 뿐이다.
손 한번이면 끝나는 그런 상대들.
“이 밤중에 어디를 그렇게 가시는가?”
“......”
“대답이 없구만. 뭐 좋아. 살수는 말이 없어야 하니까. 그래도 소속은 말해야지.”
“......”
“이거 짜증이 나려는구만. 소속을 대라니까.”
약간의 사자후를 담아 소리를 질렀다.
짜증이 섞여서인지 조금 휘청이는 놈들도 보이는군.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
“좋아 끝까지 말을 안는다 이거지. 천마대. 조져.”
내가 직접 손을 보려다가 짜증이 너무 솟아서 천마대를 불렀다.
지금 상대라면 그냥 몽땅 죽이고 말 것 같아서.
나의 명에 그때까지 숨을 죽이고 대기하고 있던 천마대가 그들을 급습했다.
“하나만 살려.”
나의 명은 간단하다.
그런만큼 천마대의 솜씨도 일품이었다.
순식간에 검들이 오가고 몇 번의 기합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정리가 되어버렸다.
천마대주는 한놈만 데리고 내 앞으로 나왔다.
“수고했어. 가봐.”
“네. 주군.”
나의 말에는 적어도 토를 달면 안된다.
수고했다란 말이면 충분하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점혈 된 채로 눈알만 굴리는 놈을 어떻게 요리할까 고심했다.
일단은 정보를 알아야겠지.
“죽이진 않을 테니 안심해라. 그냥 네 정체만 알면 되거든.”
평소에 쓰지 않는 섭혼술을 걸었다.
가장 빠르고 편하게 정보를 읽을 수 있으니 말야.
뭐 어떤 금제가 있다면 조금 고생을 하겠지만 그 정도의 수고도 없이 정보를 얻을까.
“난 네 주인이다... 내 명에 따르거라...”
“주... 주인님...”
정신적 공황이 좀 있는 상태라 쉽게 걸려들었다.
일개 살수로 봤던 놈이 생각보다 대단한 자였다.
무림에선 벌써 오백년 전에 무림을 통일한 가문이 있었다.
군부에 몸을 담고 있다가 반역죄를 쓰고 물러난 악씨가문.
그들이 웅크리고 있다가 일으켜 세운 금천단.
무림 정의를 부르짖으며 천사교에 대항 했던 그들은 모든 무림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천사교와의 전투에서 그들은 주력을 잃었고 천사교의 집요한 공격에 계속 시달림을 받았다.
막상 천사교의 잔당들을 제거할 때가 되자 정파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보존하기 위해 돌아갔고 그에 따른 방패는 금천단이 되었다.
이미 그 힘이 다한 금천단은 세상에 복수할 외침을 부르짖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역사상 가장 강력했을지도 모를 세가가 한순간 무너진 것이다.
그런 이름이 여기서 다시 나왔다.
금천단은 새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 사전 작업으로 삼마녀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천사교의 천강시보다 그 파괴력이나 사악함이 수십배에 달하는 것으로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그저 평범한 여인으로 오인하기 좋은 물건이다.
빙공을 익혔다고 한다면 꼼짝없이 믿을 용모라 더욱 위험하다.
사내의 정기를 주식으로 삼고 사내의 피를 음료로 삼는 요괴다.
정신은 십세의 여아지만 몸은 이미 성숙 그 자체이기에 보통 남자들은 이들의 미소만으로 자신의 생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운지의 말에 따르면 이런 것들이 조금 더 세상을 활보하게 되면 환수의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 천사교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금천단이라니.
그것도 이상한 신병기를 데리고 나온다니.
금천단의 단주가 누구냐는 질문에 이놈이 부들거리더니 축 늘어졌다.
뭔가 금제가 있었나 보다.
그래도 난 알아내야 하기에 그놈의 혼을 불렀다.
초혼술은 기분이 나빠서 안쓰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유부의 구혼이여 내게로 돌아오라....”
나의 눈은 붉게 충혈되면서 어느 한 곳을 응시했다.
그곳엔 저승으로 가려는 그놈의 혼백이 둥둥 떠 있었다.
“염왕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네 놈의 모든 것을 말하라.”
남의 이름을 팔아먹는 짓도 서슴치 않다니.
내가 많이 사악해 진 것인가?
일단 더 많은 정보를 알 수는 있었지만 결국 금천단주는 알아내지 못했다.
대대로 악씨성을 썼으니 그런 사람을 찾아봐야지.
간만에 무공을 썼더니 피로가 몰려왔다.
이미 늦었지만 난 다시금 운지에게 팔베게를 해주고 잠을 청했다.
정천은 무슨 일인지 멍한 눈으로 날 보다가 한쪽으로 찌그러졌다.
조금 있으면 해가 뜨겠지만 그래도 뜬눈으로 지내기엔 밤에게 미안하잖아.
정천은 내가 일어나기 전에 식사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역시 한놈이 있어야 이런 일에서 해방이 되는군.
“잘 잤냐?”
“좋은 아침이예요.”
“잘 주무셨습니까.”
“아침부터 많이 준비했군.”
인사는 간략하게 하고 일단 음식을 먹었다.
일행으로 받았으니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알려야 겠지?
“지금 우린 신도문으로 간다. 그곳에서 약간 만날 사람이 있거든.”
“그곳은 혹시 여인들의 문파라는...”
“맞아. 알고 있어?”
“물론이죠. 그곳에 잘못 들어가면 죽는다는...”
“사내놈이 정말 목숨에 연연하는구만. 나랑 가면 아무 문제없을 테니 걱정 말고 그나저나 무공은 어느 정도 익힌거야?”
“제가 수준은 잘 모릅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만 해서요.”
“그렇겠군. 어디 한번 볼까?”
그의 몸을 흐르는 기운을 느껴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기가 흐르고 있었고 다만 조금 사악한 기운이란 것이 맘에 걸렸다.
마공도 아닌 사공도 아닌 어정쩡한 그런 기운.
순화를 시키면 아마도 7할만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 해도 보통 사람보다는 많으니까.
“정말 조잡하게 배웠구만. 다만 공력만 올리는 그런 무공인가 보군. 지금부터 내가 일러주는 구결을 잘 외워둬. 네놈의 내력을 다듬어야 하니까.”
정천은 내가 일러주는 구결을 한자라도 놓치지 않을 모양인지 몇 번을 물어가며 외웠다.
뭐 배우고자 하는데 내가 마다할 것은 없지.
되도록 이놈이 많이 알고 있을수록 내가 편하니까.
심법을 전수한 뒤에는 그놈의 초식을 점검했다.
따로 배운 것은 없는 모양인지 그저 몸이 가는대로 검을 휘둘렀다.
“너 초식은 배운게 없냐?”
“네... 실은 그저 먹고 운공하고 그게 전부였습니다.”
“뭐 오히려 잘됐어. 그럼 내가 보여주는 동작을 몇천번이고 반복하도록 해.”
난 검으로 하는 아주 간단한 몇가지 초식을 보여줬다.
상승의 검도란 것도 알고 보면 간단한 것이다.
상승으로 가기 위해 초식을 쪼개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는 것이지 그것이 상승의 무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기본에 충실한 것이 복잡하게 여러 가지를 익히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내가 일러준 심법에 이 초식만 잘 익혀도 일급은 될 것이다.
자신의 내력을 모두 소화한다면 당연히 특급이 될 것이고.
다시 마차를 사고 싶기도 했지만 이렇게 걷는 여행도 해볼만 할테지?
생각한지 만 하루가 지나자 맘이 변했다.
이건 사람이 할짓이 아니다 싶다.
혼자서 간다면 아니 운지와 둘이서 간다면 더 빨리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그래서 정천을 받아들였는데 이놈의 능력이 별로다 보니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결국 마차를 사는 것에 합의했고 가는 길에 수련을 하는 것으로 했다.
고삐만 잘 묶어두면 말이 알아서 갈 테니 좋은게 좋다고 그러기로 했다.
나와 운지는 마차 안에서 풍경을 즐기며 가고 정천은 마부석에서 내가 일러준 심법을 열심히 익히고 있었다.
어쨌거나 목적지로 가면 되는 것이고 정천의 실력만 올리면 된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충분한 음식과 물을 준비했고 그러다 보니 마차엔 온통 먹을 것만 있는 것 같았다.
사냥도 귀찮고 수련하는 놈 보내기도 짜증이라 그냥 많이 실고 다니다가 못 먹으면 탕을 해 먹는 식으로 했다.
처음엔 거부감을 가지던 두 사람도 몇 번 먹어보더니 입에 맞는지 자꾸 그것을 기다렸다.
아무튼 우리의 행보에 걸릴 것은 없었다.
금천단인지 뭔지가 따라 오더라도 상관없고 무림맹에서 추격해 오는 것도 즐기는 중이니까.
천마대에게 알아서 저지하라 이르고 조금 강하게 보이는 놈은 그냥 통과시키라고 했다.
괜한 일에 부하를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직 아무런 일이 없는 것을 보면 그저 추격대 정도를 보내나 보다.
내 의중을 떠보기 위한 부질없는 짓이겠지.
조금만 더 가면 신도문이다.
내 마차가 향하는 길은 이미 무림에 소문이 난 상태이다 보니 신도문에서는 벌써부터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그들의 구역에서 남자들 보기가 힘들 정도였으니까.
불과 일주일이지만 정천은 나름대로 수련을 했는지 자신의 내력을 3할 정도 흡수한 듯 했다.
그 정도라도 자신의 몸을 지키는 데는 무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엔 멀었다.
가는 길이 험하면 더 좋겠지만 천마대라는 든든한 호위가 있으니 그러지도 못하고 아무튼 신도문의 정문에서 우리를 반기는 검들이 정천을 긴장 시켰다.
“녹림의 제갈천이라 합니다. 미리 언질을 넣었는데 뵐 수 있겠는지요.”
우리가 개파대전을 할 때 소란을 피운 계집의 이름이 언뜻 생각이 나질 않았다.
“신도문의 총관을 보고 있는 진여희라 합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의외로 순순히 안으로 안내를 한다.
적어도 한번 정도의 실랑이는 있을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저번에 준 충격이 꽤나 컸던가?
수십개의 검들이 일렬로 벌어지며 길을 만드는데 보기는 좋지만 상대를 위협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천은 거의 얼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더군.
나와 운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걸어 들어갔고 그 와중에도 난 여자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었다.
역시 여자들이 많이 있으니 예쁘다고 생각되는 애들도 그저그렇게 보였다.
비슷한 부류가 많으니 그냥 그렇게 보이는 거지.
일단은 총관이라는 여인이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이 정도 문파가 날 어쩌지 못할 테니 걱정은 없다.
미리 천마대에게 언질을 주어 감시만 하라 일렀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철저하게 지우란 마지막 명령도 곁들였다.
내가 들어간 곳은 신도문에서도 귀빈을 모시는 곳이었다.
신도문주인 진여여는 면사를 한 상태로 우리를 접대했다.
이름에서 풍기는 걸로 봐서는 총관인 진여희와 자매지간인 듯 했다.
그런거야 나완 상관없지만 자매가 나란히 문을 지킨다는게 힘들 텐데.
더구나 세상에서 버림받은 여인들이 모여든다면 알게 모르게 사건도 많을 테고.
문주는 면사를 벗을 생각이 없는지 그 상태로 인사를 해 왔다.
“안녕하십니까. 신도문의 문주 진여여라 합니다.”
“녹림 제갈천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전에 제자들의 얘기를 들으니 일간 보자고 하셨다구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걸리셨네요.”
“하하. 제가 좀 바쁜 사람이다보니. 그나저나 그때의 얘기를 하시는 것을 보니 아마도 맘속에 딴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 봅니다.”
ps 흠 답글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참 자료실에 이름 올려주신 "공처가"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름이 환타지에 쓰이는 거라는....
저보고 환타지까지 가라는 말은 아니겠죠? ^^
일단 슬슬 싸우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데
80부 정도부터는 안되겠어요?
제가 질질 끄는 것 같아서 죄송하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내가 한가지 제안을 할까?”
그는 솔깃한지 내게 바짝 다가왔다.
“뭡니까?”
“뭐 일단은 내 정체가 궁금하겠지?”
“그렇습니다만. 산중에 이렇게 느긋한 것도 이상하구요.”
“요즘 녹림지존이란 인간에 대해 들어봤나?”
“네. 대단한 사람이라고 소문이 났던데요. 게다가 성격이 이상하다는... 설마...”
“성격이 이상하다라... 죽고 싶은 모양이구나.”
그놈의 얼굴은 참 희안하게도 변했다.
현 무림의 최강자로 꼽히는 내가 있어서 안심을 하는듯하면서도 괜한 말을 꺼내서 혹여라도 불이익을 당할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다.
뭐 그건 그놈 사정이니까.
“아무튼 네게 한가지 제안을 하지. 내 수하가 된다면 널 보호함은 물론 네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다.”
“예? 정말입니까?”
“그럼 농담이겠냐? 그놈들도 다 와가는 마당에.”
“고.. 고맙습니다.”
내게 넙죽 절을 하는게 싫지는 않았다.
옆에 두고 부려먹을 놈이 필요했던 거니까.
천마대에서 한놈을 불러도 되겠지만 그런놈들과 과연 재미나게 다닐 수 있을까?
일단 이놈에게 간단한 몇가지를 알려주고 데리고 다니면 그런데로 쓸모가 있을 것이다.
운지가 봉황으로 못 변하는게 아쉽지만 그 정도야 감내해야지.
“일단 네놈 이름이나 알자. 난 제갈천이다.”
“정천입니다. 주군을 뵙습니다.”
“반갑다. 네 신상에 대해선 조금 있다가 얘기하고 일단 몸이라도 풀어볼까?”
내가 말을 마치는 순간 십여명의 복면인이 우리를 둘러싸고 접근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실력이 있는지 움직임에 소리가 없었다.
마치 살수들이 단체로 들이닥친 듯이.
요즘 살영대가 뜨고 있다는데 이놈들은 뭐하는 놈들인지.
난 운지와 정천을 등 뒤로 두고 앞에 놈들을 노려보았다.
실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내겐 그저 같은 인간일 뿐이다.
손 한번이면 끝나는 그런 상대들.
“이 밤중에 어디를 그렇게 가시는가?”
“......”
“대답이 없구만. 뭐 좋아. 살수는 말이 없어야 하니까. 그래도 소속은 말해야지.”
“......”
“이거 짜증이 나려는구만. 소속을 대라니까.”
약간의 사자후를 담아 소리를 질렀다.
짜증이 섞여서인지 조금 휘청이는 놈들도 보이는군.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
“좋아 끝까지 말을 안는다 이거지. 천마대. 조져.”
내가 직접 손을 보려다가 짜증이 너무 솟아서 천마대를 불렀다.
지금 상대라면 그냥 몽땅 죽이고 말 것 같아서.
나의 명에 그때까지 숨을 죽이고 대기하고 있던 천마대가 그들을 급습했다.
“하나만 살려.”
나의 명은 간단하다.
그런만큼 천마대의 솜씨도 일품이었다.
순식간에 검들이 오가고 몇 번의 기합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정리가 되어버렸다.
천마대주는 한놈만 데리고 내 앞으로 나왔다.
“수고했어. 가봐.”
“네. 주군.”
나의 말에는 적어도 토를 달면 안된다.
수고했다란 말이면 충분하지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어?
점혈 된 채로 눈알만 굴리는 놈을 어떻게 요리할까 고심했다.
일단은 정보를 알아야겠지.
“죽이진 않을 테니 안심해라. 그냥 네 정체만 알면 되거든.”
평소에 쓰지 않는 섭혼술을 걸었다.
가장 빠르고 편하게 정보를 읽을 수 있으니 말야.
뭐 어떤 금제가 있다면 조금 고생을 하겠지만 그 정도의 수고도 없이 정보를 얻을까.
“난 네 주인이다... 내 명에 따르거라...”
“주... 주인님...”
정신적 공황이 좀 있는 상태라 쉽게 걸려들었다.
일개 살수로 봤던 놈이 생각보다 대단한 자였다.
무림에선 벌써 오백년 전에 무림을 통일한 가문이 있었다.
군부에 몸을 담고 있다가 반역죄를 쓰고 물러난 악씨가문.
그들이 웅크리고 있다가 일으켜 세운 금천단.
무림 정의를 부르짖으며 천사교에 대항 했던 그들은 모든 무림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하지만 천사교와의 전투에서 그들은 주력을 잃었고 천사교의 집요한 공격에 계속 시달림을 받았다.
막상 천사교의 잔당들을 제거할 때가 되자 정파의 인물들은 자신들의 세력을 보존하기 위해 돌아갔고 그에 따른 방패는 금천단이 되었다.
이미 그 힘이 다한 금천단은 세상에 복수할 외침을 부르짖고 역사에서 사라졌다.
어쩌면 역사상 가장 강력했을지도 모를 세가가 한순간 무너진 것이다.
그런 이름이 여기서 다시 나왔다.
금천단은 새로 모습을 드러내기 전 사전 작업으로 삼마녀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들은 천사교의 천강시보다 그 파괴력이나 사악함이 수십배에 달하는 것으로 정체를 밝히지 않으면 그저 평범한 여인으로 오인하기 좋은 물건이다.
빙공을 익혔다고 한다면 꼼짝없이 믿을 용모라 더욱 위험하다.
사내의 정기를 주식으로 삼고 사내의 피를 음료로 삼는 요괴다.
정신은 십세의 여아지만 몸은 이미 성숙 그 자체이기에 보통 남자들은 이들의 미소만으로 자신의 생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운지의 말에 따르면 이런 것들이 조금 더 세상을 활보하게 되면 환수의 모습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했다.
지금 천사교만으로도 머리가 아픈데 금천단이라니.
그것도 이상한 신병기를 데리고 나온다니.
금천단의 단주가 누구냐는 질문에 이놈이 부들거리더니 축 늘어졌다.
뭔가 금제가 있었나 보다.
그래도 난 알아내야 하기에 그놈의 혼을 불렀다.
초혼술은 기분이 나빠서 안쓰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유부의 구혼이여 내게로 돌아오라....”
나의 눈은 붉게 충혈되면서 어느 한 곳을 응시했다.
그곳엔 저승으로 가려는 그놈의 혼백이 둥둥 떠 있었다.
“염왕의 이름으로 말하노니 네 놈의 모든 것을 말하라.”
남의 이름을 팔아먹는 짓도 서슴치 않다니.
내가 많이 사악해 진 것인가?
일단 더 많은 정보를 알 수는 있었지만 결국 금천단주는 알아내지 못했다.
대대로 악씨성을 썼으니 그런 사람을 찾아봐야지.
간만에 무공을 썼더니 피로가 몰려왔다.
이미 늦었지만 난 다시금 운지에게 팔베게를 해주고 잠을 청했다.
정천은 무슨 일인지 멍한 눈으로 날 보다가 한쪽으로 찌그러졌다.
조금 있으면 해가 뜨겠지만 그래도 뜬눈으로 지내기엔 밤에게 미안하잖아.
정천은 내가 일어나기 전에 식사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역시 한놈이 있어야 이런 일에서 해방이 되는군.
“잘 잤냐?”
“좋은 아침이예요.”
“잘 주무셨습니까.”
“아침부터 많이 준비했군.”
인사는 간략하게 하고 일단 음식을 먹었다.
일행으로 받았으니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정도는 알려야 겠지?
“지금 우린 신도문으로 간다. 그곳에서 약간 만날 사람이 있거든.”
“그곳은 혹시 여인들의 문파라는...”
“맞아. 알고 있어?”
“물론이죠. 그곳에 잘못 들어가면 죽는다는...”
“사내놈이 정말 목숨에 연연하는구만. 나랑 가면 아무 문제없을 테니 걱정 말고 그나저나 무공은 어느 정도 익힌거야?”
“제가 수준은 잘 모릅니다. 그저 시키는 대로 따라만 해서요.”
“그렇겠군. 어디 한번 볼까?”
그의 몸을 흐르는 기운을 느껴보았다.
생각보다 많은 양의 기가 흐르고 있었고 다만 조금 사악한 기운이란 것이 맘에 걸렸다.
마공도 아닌 사공도 아닌 어정쩡한 그런 기운.
순화를 시키면 아마도 7할만 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 해도 보통 사람보다는 많으니까.
“정말 조잡하게 배웠구만. 다만 공력만 올리는 그런 무공인가 보군. 지금부터 내가 일러주는 구결을 잘 외워둬. 네놈의 내력을 다듬어야 하니까.”
정천은 내가 일러주는 구결을 한자라도 놓치지 않을 모양인지 몇 번을 물어가며 외웠다.
뭐 배우고자 하는데 내가 마다할 것은 없지.
되도록 이놈이 많이 알고 있을수록 내가 편하니까.
심법을 전수한 뒤에는 그놈의 초식을 점검했다.
따로 배운 것은 없는 모양인지 그저 몸이 가는대로 검을 휘둘렀다.
“너 초식은 배운게 없냐?”
“네... 실은 그저 먹고 운공하고 그게 전부였습니다.”
“뭐 오히려 잘됐어. 그럼 내가 보여주는 동작을 몇천번이고 반복하도록 해.”
난 검으로 하는 아주 간단한 몇가지 초식을 보여줬다.
상승의 검도란 것도 알고 보면 간단한 것이다.
상승으로 가기 위해 초식을 쪼개기도 하고 합치기도 하는 것이지 그것이 상승의 무도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기본에 충실한 것이 복잡하게 여러 가지를 익히는 것보다 효과적이다.
내가 일러준 심법에 이 초식만 잘 익혀도 일급은 될 것이다.
자신의 내력을 모두 소화한다면 당연히 특급이 될 것이고.
다시 마차를 사고 싶기도 했지만 이렇게 걷는 여행도 해볼만 할테지?
생각한지 만 하루가 지나자 맘이 변했다.
이건 사람이 할짓이 아니다 싶다.
혼자서 간다면 아니 운지와 둘이서 간다면 더 빨리 갈 수는 있다.
하지만 재미가 없다.
그래서 정천을 받아들였는데 이놈의 능력이 별로다 보니 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결국 마차를 사는 것에 합의했고 가는 길에 수련을 하는 것으로 했다.
고삐만 잘 묶어두면 말이 알아서 갈 테니 좋은게 좋다고 그러기로 했다.
나와 운지는 마차 안에서 풍경을 즐기며 가고 정천은 마부석에서 내가 일러준 심법을 열심히 익히고 있었다.
어쨌거나 목적지로 가면 되는 것이고 정천의 실력만 올리면 된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충분한 음식과 물을 준비했고 그러다 보니 마차엔 온통 먹을 것만 있는 것 같았다.
사냥도 귀찮고 수련하는 놈 보내기도 짜증이라 그냥 많이 실고 다니다가 못 먹으면 탕을 해 먹는 식으로 했다.
처음엔 거부감을 가지던 두 사람도 몇 번 먹어보더니 입에 맞는지 자꾸 그것을 기다렸다.
아무튼 우리의 행보에 걸릴 것은 없었다.
금천단인지 뭔지가 따라 오더라도 상관없고 무림맹에서 추격해 오는 것도 즐기는 중이니까.
천마대에게 알아서 저지하라 이르고 조금 강하게 보이는 놈은 그냥 통과시키라고 했다.
괜한 일에 부하를 잃고 싶지는 않으니까.
아직 아무런 일이 없는 것을 보면 그저 추격대 정도를 보내나 보다.
내 의중을 떠보기 위한 부질없는 짓이겠지.
조금만 더 가면 신도문이다.
내 마차가 향하는 길은 이미 무림에 소문이 난 상태이다 보니 신도문에서는 벌써부터 긴장감이 돌고 있었다.
그들의 구역에서 남자들 보기가 힘들 정도였으니까.
불과 일주일이지만 정천은 나름대로 수련을 했는지 자신의 내력을 3할 정도 흡수한 듯 했다.
그 정도라도 자신의 몸을 지키는 데는 무리가 없겠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엔 멀었다.
가는 길이 험하면 더 좋겠지만 천마대라는 든든한 호위가 있으니 그러지도 못하고 아무튼 신도문의 정문에서 우리를 반기는 검들이 정천을 긴장 시켰다.
“녹림의 제갈천이라 합니다. 미리 언질을 넣었는데 뵐 수 있겠는지요.”
우리가 개파대전을 할 때 소란을 피운 계집의 이름이 언뜻 생각이 나질 않았다.
“신도문의 총관을 보고 있는 진여희라 합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의외로 순순히 안으로 안내를 한다.
적어도 한번 정도의 실랑이는 있을 것으로 예상을 했는데.
저번에 준 충격이 꽤나 컸던가?
수십개의 검들이 일렬로 벌어지며 길을 만드는데 보기는 좋지만 상대를 위협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천은 거의 얼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하더군.
나와 운지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걸어 들어갔고 그 와중에도 난 여자들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었다.
역시 여자들이 많이 있으니 예쁘다고 생각되는 애들도 그저그렇게 보였다.
비슷한 부류가 많으니 그냥 그렇게 보이는 거지.
일단은 총관이라는 여인이 안내하는 곳으로 따라 들어갔다.
이 정도 문파가 날 어쩌지 못할 테니 걱정은 없다.
미리 천마대에게 언질을 주어 감시만 하라 일렀다.
만약의 사태가 벌어지면 철저하게 지우란 마지막 명령도 곁들였다.
내가 들어간 곳은 신도문에서도 귀빈을 모시는 곳이었다.
신도문주인 진여여는 면사를 한 상태로 우리를 접대했다.
이름에서 풍기는 걸로 봐서는 총관인 진여희와 자매지간인 듯 했다.
그런거야 나완 상관없지만 자매가 나란히 문을 지킨다는게 힘들 텐데.
더구나 세상에서 버림받은 여인들이 모여든다면 알게 모르게 사건도 많을 테고.
문주는 면사를 벗을 생각이 없는지 그 상태로 인사를 해 왔다.
“안녕하십니까. 신도문의 문주 진여여라 합니다.”
“녹림 제갈천이라 합니다. 반갑습니다.”
“전에 제자들의 얘기를 들으니 일간 보자고 하셨다구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걸리셨네요.”
“하하. 제가 좀 바쁜 사람이다보니. 그나저나 그때의 얘기를 하시는 것을 보니 아마도 맘속에 딴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 봅니다.”
ps 흠 답글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네요
참 자료실에 이름 올려주신 "공처가"님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름이 환타지에 쓰이는 거라는....
저보고 환타지까지 가라는 말은 아니겠죠? ^^
일단 슬슬 싸우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하는데
80부 정도부터는 안되겠어요?
제가 질질 끄는 것 같아서 죄송하구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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