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화는 며칠이나마 가슴의 짐을 덜어놓고 지낼 수 있었다.
영권이 상호간에 얽혀있던 실타래를 깨끗이 자르고 떠나간 후로는 가슴을 조리며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마치 수술을 받아 혹을 떼어낸 것처럼 일시적인 고통이 따랐지만 앞으로 시간이 흐르고 상처가 아물면 한결 괜찮을 것이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말할 순 없어도 힘든 기간이었음은 틀림이 없었다.
처음 경험한 사건과 감정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선화는 자신이 성인이라는 사실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 사는 동안 새롭고 충격적이고 어려운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겠지.
욕심낼 필요가 있을까,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이젠 더 원하는 게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평화로움이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자극이 생기고 열등감이 생기고 욕심이 생긴다면 스스로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법이겠지.
그래도, 힘든 업무를 끝낸 후처럼이라도 당분간의 여유가 허락되기를 빌뿐이다.
그렇게 바라던 오후 중에 하나처럼 평범하고 한가로운, 늦은 오후였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아도 그리 춥지 않을 만큼 봄이 가까이 있었고 바람마저 향기롭게 피부를 스치며 흐르고 있는 좋은 날.
선화는 집에서 영권의 남은 짐을 분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지만 지난 날의 기억도 함께 정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는 했다.
벨소리가 울렸다. 늦은 오후의 방문자는 누구일까. 병희가 병원 문을 일찍 닫고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누군가 물건을 팔기위해 초인종을 눌렀을 수도 있다.
문도 열어주지 말고 거절해 버려야지. 그런 귀찮음을 허락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때가 아니니까.
선화는 현관문 앞으로 갔다.
그리고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어 어안렌즈를 통해 밖을 보았으나 너무 가까이 서있는 사람이 보이자 않았다.
관심을 꺼버릴까 생각했지만 선화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외치듯 물었다.
"누구세요!"
그러자 밖으로부터의 음성이 철문을 뚫고 집 안으로 전달되었다.
"저예요, 누나. 동수."
처음에 선화는 금방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동수라는 이름을 잊고 지낸지가 오래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누구의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지금 그 사람의 방문이 어떤 위험성을 갖는 다는 것을 느꼈을 때 선화는 잡상인을 회피하는 것보다 강도 높은 방법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망설이고 있을 때 밖에서 다시 들려왔다.
"저 휴가 나왔어요. 잠깐 누나 얼굴 좀 보려고 찾아왔어요."
모범장병 같은 목소리로 바르게 말하는 동수, 휴가를 나온 그가 자기를 보고 싶어서 잠깐 들렀단다.
힘든 군생활을 하다가 나온 사람을 매정하게 돌려보내야 하는 걸까.
선화는 측은한 마음이 생겼고 동수는 잠깐 동안의 추억을 간직한 좋은 동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마치 오래 걸리지만 예정되어 있는 일처럼 선화는 천천히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우당탕 하는 소리를 내며 우악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왔다면, 그랬다면 당장에 동수를 쫓아버렸을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하지만 그는 조용히 문 근처에 서있었고 차분한 표정으로 선화를 보고 웃었다.
영권이 상호간에 얽혀있던 실타래를 깨끗이 자르고 떠나간 후로는 가슴을 조리며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었다.
마치 수술을 받아 혹을 떼어낸 것처럼 일시적인 고통이 따랐지만 앞으로 시간이 흐르고 상처가 아물면 한결 괜찮을 것이다.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정확히 말할 순 없어도 힘든 기간이었음은 틀림이 없었다.
처음 경험한 사건과 감정들,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
선화는 자신이 성인이라는 사실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 사는 동안 새롭고 충격적이고 어려운 일은 얼마든지 일어나겠지.
욕심낼 필요가 있을까, 집착할 필요가 있을까.
이젠 더 원하는 게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다만 이 평화로움이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세상을 사는 건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새로운 자극이 생기고 열등감이 생기고 욕심이 생긴다면 스스로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법이겠지.
그래도, 힘든 업무를 끝낸 후처럼이라도 당분간의 여유가 허락되기를 빌뿐이다.
그렇게 바라던 오후 중에 하나처럼 평범하고 한가로운, 늦은 오후였다.
창문을 조금 열어놓아도 그리 춥지 않을 만큼 봄이 가까이 있었고 바람마저 향기롭게 피부를 스치며 흐르고 있는 좋은 날.
선화는 집에서 영권의 남은 짐을 분리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었지만 지난 날의 기억도 함께 정리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기는 했다.
벨소리가 울렸다. 늦은 오후의 방문자는 누구일까. 병희가 병원 문을 일찍 닫고 돌아왔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누군가 물건을 팔기위해 초인종을 눌렀을 수도 있다.
문도 열어주지 말고 거절해 버려야지. 그런 귀찮음을 허락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때가 아니니까.
선화는 현관문 앞으로 갔다.
그리고 누구냐고 물었지만 아무런 대답이 없어 어안렌즈를 통해 밖을 보았으나 너무 가까이 서있는 사람이 보이자 않았다.
관심을 꺼버릴까 생각했지만 선화는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다시 한번 외치듯 물었다.
"누구세요!"
그러자 밖으로부터의 음성이 철문을 뚫고 집 안으로 전달되었다.
"저예요, 누나. 동수."
처음에 선화는 금방 이해가 가지 않았다.
동수라는 이름을 잊고 지낸지가 오래 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누구의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지금 그 사람의 방문이 어떤 위험성을 갖는 다는 것을 느꼈을 때 선화는 잡상인을 회피하는 것보다 강도 높은 방법을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며 망설이고 있을 때 밖에서 다시 들려왔다.
"저 휴가 나왔어요. 잠깐 누나 얼굴 좀 보려고 찾아왔어요."
모범장병 같은 목소리로 바르게 말하는 동수, 휴가를 나온 그가 자기를 보고 싶어서 잠깐 들렀단다.
힘든 군생활을 하다가 나온 사람을 매정하게 돌려보내야 하는 걸까.
선화는 측은한 마음이 생겼고 동수는 잠깐 동안의 추억을 간직한 좋은 동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되었다. 마치 오래 걸리지만 예정되어 있는 일처럼 선화는 천천히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우당탕 하는 소리를 내며 우악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왔다면, 그랬다면 당장에 동수를 쫓아버렸을 것이다.
어떤 수를 써서라도, 하지만 그는 조용히 문 근처에 서있었고 차분한 표정으로 선화를 보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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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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