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0일 강원도 SW 시내 리조트(구 시내 워터파크)
리조트 입구로 206CC가 들어왔다.
"새로 지어서 그런지 괜찮네."
"응?"
"몰랐어? "여기 스파, 워터파크에 스키장까지 새로 생겼거든"
동생 말로는 대기업 계열사인 SW 레저에 인수되어 리모델링을 거쳐 SW 리조트가 되었다고 한다. 교육장교가 처가댁 식구들 왔을때 숙소를 왜 여기로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펜션 앞에 차를 세운 동생은 작은 트렁크 하나를 끌고 데스크에 가더니 언제 예약했는지 키를 받아왔다.
"오빠! 뭐해! 짐 들고 빨리와!"
"으...응..."
자신의 백팩 외에도 뒷좌석에 남겨진 아이스박스로 보이는 가방과 다른 트렁크 하나를 들고 찬수는 조금 멋쩍게 동생 뒤를 쫓았다.
"야... 이 방은..."
동생이 예약한 방은 원룸 구조에 더블 베드가 놓여 있었다. 발코니에도 욕조 같은게 있는 걸 봤는데 분명 커플용 월풀 욕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커플용 방이었다.
"다른 방 없었어? 왜 이런 방을..."
"이 방은 주방을 쓸 수 있다고 하더라구"
"주방이 꼭 필요할리 없잖아."
"우리 오빠 엉큼하네~"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응?"
"밥도 안먹고 뭘 하시려고?"
"응?"
"침대에 핑크색 베일이 쳐진 로맨틱한 방인데 그런 방을 원하셨나봐~"
아무리 삽입은 안했다지만 아슬아슬하게 애무를 주고 받던 일이 떠올라 찬수는 당황했다.
"야!"
"우리 오빠 진짜 엉큼한 생각한거야? 귀까지 빨개~"
메롱하며 혀를 내밀었다.
"야! 너..."
찬수는 동생이 자기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갖고 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참 오빠 여기 1층에 스포츠 샵 있던데 내려가는 길에 수영복 사러 가자."
"야..."
"피곤할텐데 스파에서 몸 풀어야지. 정말 벗고 스파에 들어가게?"
"그건 아니지..."
"정말 여자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으신지도 모르겠지만, 참으세요."
"야... 나도 숨 좀 쉬자..."
찬수는 동생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쩔쩔매는 자신을 보며 살짝 한 숨을 내쉬었다
"표정 살아나니까 좋네."
"응?"
"그거 알아? 요즘 오빠랑 전화하면 자꾸 어두웠던거."
"......"
찬수 자신도 알고 있었다. 나은의 일 이후로 자신이 점점 어둡고 감정적으로 문제가 있던 것을...
"아무리 남자들 군대가면 졸병때 기죽어서 지낸다지만 어쩜 그렇게 어두워지냐?"
"응?"
"그래도 내가 이렇게 놀아주니까 GI 유격대 장난감이 이제 사람처럼 보이네."
"풉..."
알면서도 능청을 떨어주는 동생이 고마웠다.
시내 리조트의 산을 낀 쪽에는 스키 코스, 펜션 뒤편으로 스파와 워터파크가 연결되어 있었다. 1층 스포츠 용품 샵에는 스키용품과 워터파크용품 코너가 함께 있었다. 물론 6월이기에 스키 용품점은 스키 용품점 자리라는 표시처럼 스키 몇 개와 장갑 몇 벌이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동생은 찬수의 팔을 잡고 거침없이 수영복 코너로 끌고 갔다.
"이거 괜찮다."
"야... 삼각은..."
"왜? 섹시하고 좋잖아~ 혹시 알아? 여기서 오빠보고 반하는 여자 나올지."
"그러지말고 그냥 이거면 될..."
눈앞에 보이는 트렁크를 집었다가 가격표를 보고 다시 내려놨다.
"우리 오빠 이제 보니까 옷 고르는 눈 있네."
"됐어. 그냥 이거면 될 것 같아."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한 트렁크였다. 가격도 그렇게 무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음... 방금 그게 좋은데..."
"됐어."
"오빠. 이게 좋겠다. 오빠 사이즈 그대로지?"
찬수가 가격표를 보고 내려놓은 수영복을 다시 집었다.
"아니... 난 이거면..."
"뭐야? 그 삼각 입으려고?"
"야..."
찬수가 골랐다가 내려놓은 그 수영복을 들고 동생은 계산대로 향했다. 계속 휘둘리는군... 이런 생각을 했다.
"오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나온 동생은 짙은 남색 계열의 홀터넥 비키니를 입고 나왔다. 브라의 V 라인과 팬티의 윗 부분에 레이스가 달려 있었고, 브라는 가슴 부분을 제외하고 목끈과 뒤끈은 말 그대로 끈이었다. 객관적으로도 예쁜 얼굴과 170의 키에 날씬하면서도 볼륨 있는 몸매덕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듯 했다. 발에는 발목 뒤로 끈이 두르는 샌들을 신었고, 양쪽 발가락에 페디큐어를 하고 발목에 발찌를 하고 있었다. 그 사고 이후로 동생은 발에 더 도드라지게 장식을 했다.
“오빠 여기 들어가자.”
BOQ(군인 독신자용 영내 관사) 안에 있는 목욕탕의 온탕만한 곳에 ‘피로 회복용 아로마 탕’이라고 써있었다. 샌들을 벗는 동생의 발이 잘 안 보이도록 찬수는 조금 앞에서 아로마 탕에 들어갔다.
“음~ 좋다~ 그지 오빠?”
“응.”
안내판에는 7가지 이상의 아로마 향을 배합했다고 되어 있으나 찬수의 코에는 거의 라벤더 향만 느껴졌다. 어쨌든 따뜻한 물과 라벤더 향에 몸의 피로가 풀리는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몸을 풀고 있는 찬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반장님~" 낯익은 얼굴이었다.
본 적 없는 비키니 차림의 보미였다.
보미는 레이스가 가득 달리고 곳곳에 리본까지 분홍 비키니를 입었고, 서나래 중위는 주황색의 수수한 비키니를 입었다. 서나래 중위는 찬수를 보고 굳은 표정이었다.
”아, 입원관님... 간호장교님도 같이 오셨군요.“
“반장님도 놀러오신거예요?”
탕 밖에 있던 보미가 반가워하며 탕 가장자리에 앉아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레이스들로도 가려지지 않은 가슴 볼륨이 찬수의 눈 앞에 드러나는 건 신경도 안쓰는 것 같았다.
“누구야? 오빠?” 남인 것처럼 무심하게 조용히 옆에 있던 동생이 물었다.
“오.,,빠? 저... 반장님... 여자친구세요?”
보미는 잠시 당황하며 찬수를 쳐다봤다. 그 옆에 있는 간호장교는 도끼눈을 뜨고 찬수를 보는 것 같았다.
‘바람피다가 걸린 유부남이 된 기분이군...’
동생, 보미, 간호장교 세 사람의 구도가 그런 뉘앙스였다. 총각 행세하고 젊은 여자 만나다가 아내와 있는걸 들킨 장면쯤? 불륜 상대가 보미이고, 간호장교가 불륜상대의 친구, 동생이 아내 역할...
심지어 같은 탕안에 있던 아줌마들은 지금 상황을 막장 드라마 시청하듯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동생도 보미도 간호장교도 어지간한 조연 단역 탤런트들과 비교해도 별로 빠지지 않는 외모들이었기에 더 드라마 보듯 몰입한 것 같았다.
“오빠, 이 사람들은 누구야? 누구세요? 우리 이이랑 아는 사이예요?”
동생이 찬수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며 물었다.
“야! 어~어~ 푸....”
찬수는 당황하며 동생쪽을 보다가 균형을 잃어 탕속에 빠져버렸다. 동생의 표정은 정말 남편의 불륜 상대를 보는 여자의 그것이었다. 찬수에게 잘 웃고, 장난도 자주 치고 애교도 자주 떠는 동생이라 잊었는데 얼굴이 정색을 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있으면 차가운 느낌이었다. 발레를 하던 시절 얌전하고 내성적이었던 동생은 그 얼굴이 가미되어 동생의 친구들도 친해지는데 한참이 걸렸는데...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찬수의 눈에 울기 직전인 보미가 보였다.
‘이 분위기가 행보관이 카크드 피스톨이라고 말하던게 맞겠지?’
간호장교는 콕드 피스톨(cocked pistol: 전투 직전 혹은 전투 개시)이었다. 그렇지않아도 처음 부임해 왔을때부터 더블 테이크(double take: 적에 대해 경계는 필요하지만 실질적 도발 가능성은 낮은 상태)였다가 보미와 삼겹살 먹던 날 이후 라운드 하우스(round house: 적의 도발이 우려되는 경계 상황)였는데...
“죄송해요~ 장난이 심했죠? 우리 오빠 동생이예요. 친동생.”
보미의 표정 변화에 찬수보다 더 놀랐는지 동생은 바로 차가운 표정을 풀고 보미를 달랬다. 탕 안의 아줌마들은 막장 드라마 라이브 공연을 기대했다가 이렇게 풀려버리니 김이 샌 듯 다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그제서야 자기 애들한테 관심을 돌렸다.
“훌쩍... 정말요?” 울 것 같은 눈을 한 상태 그대로 활짝 웃으며 보미가 물어봤다. 간호장교는 아직 경계를 풀지 않았는지 패스트 페이스(fast pace: 전투준비 완료) 같았다.
“그럼요. 오늘은 오빠 보러 놀러 왔어요. 마침 훈련 다녀왔다길래 피곤할 것 같아서 여기 오자고 했거든요.”
“오빠분이랑 같은 부대에 있는 서나래 중위예요.”
간호장교가 먼저 자기 소개를 했다. ‘라운드 하우스‘. 찬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훌쩍... 저도 같은 부대에 있는 김보미 하사예요.”
간호장교와 보미도 탕 안으로 들어와 세 여자는 찬수를 사이에 두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분도 여기 방 잡으신거예요?”
와인탕 물위로 고개만 내민 동생이 물었다. 아로마 탕에서 몸을 풀어준 네 사람은 피부에 좋다는 와인탕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 동생이 찬수를 끌고 가고 보미가 따라오고 간호장교가 보미를 쫓아오는 식이었다. 남자들은 세 여자 사이에 있는 찬수를 부러워하며 지구를 구한 놈 정도로 보고 있었다.
“네, 여기 펜션에 김하사랑 방 잡아놨어요.”
“몇 호예요?”
“607호요.”
“같은 층이네. 저희는 622호에 잡았거든요.”
“두 분이 같은 방이예요?”
“예.”
간호장교는 찬수를 흘깃 쳐다봤다.
‘미움 받는구나... 패스트 페이스...’
찬수는 한숨을 내쉬고는 생각했다. 30세의 남자와 24세의 여자가 함꼐 2인실에 묵는다. 아무리 친남매라도 그림이 이상한 것이 사실이었다. 동생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별 말을 못했지만, 이게 정상적인 반응일 것이다.
“괜찮아요. ma오빠가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설마 와인탕의 와인 냄세에 취한 것인가 생각했다. 기분이 어지간히 업 되어 있을때 찬수를 지칭하는 표현인 ma오빠(my 오빠...인듯했다.)가 쓰이고 있는걸보면...
“글쎄요...”
간호장교는 옆에서 피부에 좋다는 와인탕을 즐기려 물에서 팔다리를 허우적대고 있는 보미를 쳐다봤다. 따뜻한 물때문인지 와인향때문인지 보미도 얼굴이 살짝 홍조를 띄고 있는 것 같았다.
“참 있다가 저녁 어떻게 하실거예요?”
“그냥 여기 있는 식당에서 뭐 먹으려고요.”
“저희랑 같이 드실래요? 있다가 재료 사와서 해먹을건데.”
“그 방은 조리기구가 있나보죠?”
“예. 일부러 조리기구 있는 방으로 잡았거든요. 오빠가 입이 짧아서 사온 고기 남을 것 같았는데 잘됐다.”
“회식때 보니까 외과반장님이 고기를 잘 안드시긴 하시더라고요.”
간호장교가 살짝 찬수를 보았다.
“오빠 거기서 멍하게 있지말고 좀 도와.”
프라이팬에 오리고기를 볶던 동생이 말했다.
“자리 없어.”
“그럼 식탁 세팅이라도 해.”
622호의 한 쪽에는 작은 전기렌지와 전자렌지, 상크대, 4인용이지만 약간 작은 식탁이 있는 조리 공간이 있었다.
‘2인실인데 왜 식탁은 4인용이 마련되어 있는걸까?’
뭘 돕고 싶어도 이미 세 사람이 싱크대와 전기 렌지 앞을 꽉 채우고 있어 식탁에 앉아 있던 찬수는 실없는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다.
식탁에는 오리고기 볶음을 시작으로 저녁 상이 차려졌다.
“내가 여기 안온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랬니?”
“글쎄 오빠랑 여기 왔겠지.”
“......”
“그렇지?”
“그리고 싸온 저 메뉴들은 뭐고... 여기서 간호장교님이랑 입원관님 못 만났으면 이걸 우리 둘이 다 먹자고 하려고 한거야?”
몇 가지 재료는 펜션 지하 마트에서 사왔지만, 오리고기를 비롯해 몇 가지 재료는 작은 아이스박스에 넣어 왔다. 찬수는 자기 206에 여행용 트렁크에 아이스 박스까지 들어갈 공간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했다.
“남자들 짬밥은 먹어도 먹은거 같지 않다며. 그럼 제대로 된 밥 챙겨줘야지. 내가 안챙기면 누가 오빠 챙겨? 솔직히 오빠 인턴 레지던트때 집에 오면 오빠한테 밥 차려준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거야?”
“전기밥솥으로 2층밥 만드는 네가 할 말은 아니야.”
“그래도 딴 건 다 잘하잖아.”
“찌개는?”
“내 찌개가 어떤데”
“라면 스프 넣은거 모를 줄 알아?”
“으...”
“모든 찌개에 라면스프맛 나고 집에 라면 없는 날은 김치찌개가 김치국이 되어 있었잖아.”
“무슨 남자가 그걸 다 기억하냐?”
“... 외과반장님, 의외시네요. 평소 분위기하고 다르시네요.”
남매의 설전을 보던 간호장교는 지하철 종점에서 앉은뱅이가 걸어다니는걸 본 사람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옆에서는 원래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입에 숟가락을 문 보미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
* 등장 인물, 단체명, 지명은 실제가 아닙니다.
* 소라넷에만 연재중입니다. 허가되지 않은 복사, 변형, 도용을 금지합니다.
* 내용상으로는 본편 1부 6장과 1부 7장 사이입니다. 7장에 넣으려던건데 쓰고보니 너무 길어져서 버리기는 아까운 마음에 외전으로 뺍니다.
* 상상하시기 편하게 찬수의 동생, 보미, 서나래 중위의 설정 사이즈를 적어둡니다.
찬수의 동생: 170/60, 35(70D)-22-35 (외전 1장인 2003년 1월에는 153/37, 29(70A)-22-35. 2003년 11월에는 153/56, 36-27-35)
김보미 하사: 160/58, 36(75C)-27-35
서나래 중위: 165/50, 33(80A)-25-34
* 중간중간 글씨깨지는 현상이 생기는데 왜그런지 아시는분?
리조트 입구로 206CC가 들어왔다.
"새로 지어서 그런지 괜찮네."
"응?"
"몰랐어? "여기 스파, 워터파크에 스키장까지 새로 생겼거든"
동생 말로는 대기업 계열사인 SW 레저에 인수되어 리모델링을 거쳐 SW 리조트가 되었다고 한다. 교육장교가 처가댁 식구들 왔을때 숙소를 왜 여기로 했는지 알 것 같았다.
펜션 앞에 차를 세운 동생은 작은 트렁크 하나를 끌고 데스크에 가더니 언제 예약했는지 키를 받아왔다.
"오빠! 뭐해! 짐 들고 빨리와!"
"으...응..."
자신의 백팩 외에도 뒷좌석에 남겨진 아이스박스로 보이는 가방과 다른 트렁크 하나를 들고 찬수는 조금 멋쩍게 동생 뒤를 쫓았다.
"야... 이 방은..."
동생이 예약한 방은 원룸 구조에 더블 베드가 놓여 있었다. 발코니에도 욕조 같은게 있는 걸 봤는데 분명 커플용 월풀 욕조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커플용 방이었다.
"다른 방 없었어? 왜 이런 방을..."
"이 방은 주방을 쓸 수 있다고 하더라구"
"주방이 꼭 필요할리 없잖아."
"우리 오빠 엉큼하네~"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응?"
"밥도 안먹고 뭘 하시려고?"
"응?"
"침대에 핑크색 베일이 쳐진 로맨틱한 방인데 그런 방을 원하셨나봐~"
아무리 삽입은 안했다지만 아슬아슬하게 애무를 주고 받던 일이 떠올라 찬수는 당황했다.
"야!"
"우리 오빠 진짜 엉큼한 생각한거야? 귀까지 빨개~"
메롱하며 혀를 내밀었다.
"야! 너..."
찬수는 동생이 자기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갖고 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참 오빠 여기 1층에 스포츠 샵 있던데 내려가는 길에 수영복 사러 가자."
"야..."
"피곤할텐데 스파에서 몸 풀어야지. 정말 벗고 스파에 들어가게?"
"그건 아니지..."
"정말 여자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으신지도 모르겠지만, 참으세요."
"야... 나도 숨 좀 쉬자..."
찬수는 동생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쩔쩔매는 자신을 보며 살짝 한 숨을 내쉬었다
"표정 살아나니까 좋네."
"응?"
"그거 알아? 요즘 오빠랑 전화하면 자꾸 어두웠던거."
"......"
찬수 자신도 알고 있었다. 나은의 일 이후로 자신이 점점 어둡고 감정적으로 문제가 있던 것을...
"아무리 남자들 군대가면 졸병때 기죽어서 지낸다지만 어쩜 그렇게 어두워지냐?"
"응?"
"그래도 내가 이렇게 놀아주니까 GI 유격대 장난감이 이제 사람처럼 보이네."
"풉..."
알면서도 능청을 떨어주는 동생이 고마웠다.
시내 리조트의 산을 낀 쪽에는 스키 코스, 펜션 뒤편으로 스파와 워터파크가 연결되어 있었다. 1층 스포츠 용품 샵에는 스키용품과 워터파크용품 코너가 함께 있었다. 물론 6월이기에 스키 용품점은 스키 용품점 자리라는 표시처럼 스키 몇 개와 장갑 몇 벌이 띄엄띄엄 놓여 있었다. 동생은 찬수의 팔을 잡고 거침없이 수영복 코너로 끌고 갔다.
"이거 괜찮다."
"야... 삼각은..."
"왜? 섹시하고 좋잖아~ 혹시 알아? 여기서 오빠보고 반하는 여자 나올지."
"그러지말고 그냥 이거면 될..."
눈앞에 보이는 트렁크를 집었다가 가격표를 보고 다시 내려놨다.
"우리 오빠 이제 보니까 옷 고르는 눈 있네."
"됐어. 그냥 이거면 될 것 같아."
지극히 평범하고 무난한 트렁크였다. 가격도 그렇게 무리한 것 같지는 않았다.
"음... 방금 그게 좋은데..."
"됐어."
"오빠. 이게 좋겠다. 오빠 사이즈 그대로지?"
찬수가 가격표를 보고 내려놓은 수영복을 다시 집었다.
"아니... 난 이거면..."
"뭐야? 그 삼각 입으려고?"
"야..."
찬수가 골랐다가 내려놓은 그 수영복을 들고 동생은 계산대로 향했다. 계속 휘둘리는군... 이런 생각을 했다.
"오빠~"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 입고 나온 동생은 짙은 남색 계열의 홀터넥 비키니를 입고 나왔다. 브라의 V 라인과 팬티의 윗 부분에 레이스가 달려 있었고, 브라는 가슴 부분을 제외하고 목끈과 뒤끈은 말 그대로 끈이었다. 객관적으로도 예쁜 얼굴과 170의 키에 날씬하면서도 볼륨 있는 몸매덕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듯 했다. 발에는 발목 뒤로 끈이 두르는 샌들을 신었고, 양쪽 발가락에 페디큐어를 하고 발목에 발찌를 하고 있었다. 그 사고 이후로 동생은 발에 더 도드라지게 장식을 했다.
“오빠 여기 들어가자.”
BOQ(군인 독신자용 영내 관사) 안에 있는 목욕탕의 온탕만한 곳에 ‘피로 회복용 아로마 탕’이라고 써있었다. 샌들을 벗는 동생의 발이 잘 안 보이도록 찬수는 조금 앞에서 아로마 탕에 들어갔다.
“음~ 좋다~ 그지 오빠?”
“응.”
안내판에는 7가지 이상의 아로마 향을 배합했다고 되어 있으나 찬수의 코에는 거의 라벤더 향만 느껴졌다. 어쨌든 따뜻한 물과 라벤더 향에 몸의 피로가 풀리는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그렇게 몸을 풀고 있는 찬수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반장님~" 낯익은 얼굴이었다.
본 적 없는 비키니 차림의 보미였다.
보미는 레이스가 가득 달리고 곳곳에 리본까지 분홍 비키니를 입었고, 서나래 중위는 주황색의 수수한 비키니를 입었다. 서나래 중위는 찬수를 보고 굳은 표정이었다.
”아, 입원관님... 간호장교님도 같이 오셨군요.“
“반장님도 놀러오신거예요?”
탕 밖에 있던 보미가 반가워하며 탕 가장자리에 앉아 허리를 숙이며 물었다. 레이스들로도 가려지지 않은 가슴 볼륨이 찬수의 눈 앞에 드러나는 건 신경도 안쓰는 것 같았다.
“누구야? 오빠?” 남인 것처럼 무심하게 조용히 옆에 있던 동생이 물었다.
“오.,,빠? 저... 반장님... 여자친구세요?”
보미는 잠시 당황하며 찬수를 쳐다봤다. 그 옆에 있는 간호장교는 도끼눈을 뜨고 찬수를 보는 것 같았다.
‘바람피다가 걸린 유부남이 된 기분이군...’
동생, 보미, 간호장교 세 사람의 구도가 그런 뉘앙스였다. 총각 행세하고 젊은 여자 만나다가 아내와 있는걸 들킨 장면쯤? 불륜 상대가 보미이고, 간호장교가 불륜상대의 친구, 동생이 아내 역할...
심지어 같은 탕안에 있던 아줌마들은 지금 상황을 막장 드라마 시청하듯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동생도 보미도 간호장교도 어지간한 조연 단역 탤런트들과 비교해도 별로 빠지지 않는 외모들이었기에 더 드라마 보듯 몰입한 것 같았다.
“오빠, 이 사람들은 누구야? 누구세요? 우리 이이랑 아는 사이예요?”
동생이 찬수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며 물었다.
“야! 어~어~ 푸....”
찬수는 당황하며 동생쪽을 보다가 균형을 잃어 탕속에 빠져버렸다. 동생의 표정은 정말 남편의 불륜 상대를 보는 여자의 그것이었다. 찬수에게 잘 웃고, 장난도 자주 치고 애교도 자주 떠는 동생이라 잊었는데 얼굴이 정색을 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있으면 차가운 느낌이었다. 발레를 하던 시절 얌전하고 내성적이었던 동생은 그 얼굴이 가미되어 동생의 친구들도 친해지는데 한참이 걸렸는데...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민 찬수의 눈에 울기 직전인 보미가 보였다.
‘이 분위기가 행보관이 카크드 피스톨이라고 말하던게 맞겠지?’
간호장교는 콕드 피스톨(cocked pistol: 전투 직전 혹은 전투 개시)이었다. 그렇지않아도 처음 부임해 왔을때부터 더블 테이크(double take: 적에 대해 경계는 필요하지만 실질적 도발 가능성은 낮은 상태)였다가 보미와 삼겹살 먹던 날 이후 라운드 하우스(round house: 적의 도발이 우려되는 경계 상황)였는데...
“죄송해요~ 장난이 심했죠? 우리 오빠 동생이예요. 친동생.”
보미의 표정 변화에 찬수보다 더 놀랐는지 동생은 바로 차가운 표정을 풀고 보미를 달랬다. 탕 안의 아줌마들은 막장 드라마 라이브 공연을 기대했다가 이렇게 풀려버리니 김이 샌 듯 다시 자기들끼리 수다를 떨거나 그제서야 자기 애들한테 관심을 돌렸다.
“훌쩍... 정말요?” 울 것 같은 눈을 한 상태 그대로 활짝 웃으며 보미가 물어봤다. 간호장교는 아직 경계를 풀지 않았는지 패스트 페이스(fast pace: 전투준비 완료) 같았다.
“그럼요. 오늘은 오빠 보러 놀러 왔어요. 마침 훈련 다녀왔다길래 피곤할 것 같아서 여기 오자고 했거든요.”
“오빠분이랑 같은 부대에 있는 서나래 중위예요.”
간호장교가 먼저 자기 소개를 했다. ‘라운드 하우스‘. 찬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훌쩍... 저도 같은 부대에 있는 김보미 하사예요.”
간호장교와 보미도 탕 안으로 들어와 세 여자는 찬수를 사이에 두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시작했다.
“두 분도 여기 방 잡으신거예요?”
와인탕 물위로 고개만 내민 동생이 물었다. 아로마 탕에서 몸을 풀어준 네 사람은 피부에 좋다는 와인탕에 몸을 담그고 있었다. 정확히 말해 동생이 찬수를 끌고 가고 보미가 따라오고 간호장교가 보미를 쫓아오는 식이었다. 남자들은 세 여자 사이에 있는 찬수를 부러워하며 지구를 구한 놈 정도로 보고 있었다.
“네, 여기 펜션에 김하사랑 방 잡아놨어요.”
“몇 호예요?”
“607호요.”
“같은 층이네. 저희는 622호에 잡았거든요.”
“두 분이 같은 방이예요?”
“예.”
간호장교는 찬수를 흘깃 쳐다봤다.
‘미움 받는구나... 패스트 페이스...’
찬수는 한숨을 내쉬고는 생각했다. 30세의 남자와 24세의 여자가 함꼐 2인실에 묵는다. 아무리 친남매라도 그림이 이상한 것이 사실이었다. 동생의 페이스에 말려들어 별 말을 못했지만, 이게 정상적인 반응일 것이다.
“괜찮아요. ma오빠가 이상한 사람도 아니고.”
설마 와인탕의 와인 냄세에 취한 것인가 생각했다. 기분이 어지간히 업 되어 있을때 찬수를 지칭하는 표현인 ma오빠(my 오빠...인듯했다.)가 쓰이고 있는걸보면...
“글쎄요...”
간호장교는 옆에서 피부에 좋다는 와인탕을 즐기려 물에서 팔다리를 허우적대고 있는 보미를 쳐다봤다. 따뜻한 물때문인지 와인향때문인지 보미도 얼굴이 살짝 홍조를 띄고 있는 것 같았다.
“참 있다가 저녁 어떻게 하실거예요?”
“그냥 여기 있는 식당에서 뭐 먹으려고요.”
“저희랑 같이 드실래요? 있다가 재료 사와서 해먹을건데.”
“그 방은 조리기구가 있나보죠?”
“예. 일부러 조리기구 있는 방으로 잡았거든요. 오빠가 입이 짧아서 사온 고기 남을 것 같았는데 잘됐다.”
“회식때 보니까 외과반장님이 고기를 잘 안드시긴 하시더라고요.”
간호장교가 살짝 찬수를 보았다.
“오빠 거기서 멍하게 있지말고 좀 도와.”
프라이팬에 오리고기를 볶던 동생이 말했다.
“자리 없어.”
“그럼 식탁 세팅이라도 해.”
622호의 한 쪽에는 작은 전기렌지와 전자렌지, 상크대, 4인용이지만 약간 작은 식탁이 있는 조리 공간이 있었다.
‘2인실인데 왜 식탁은 4인용이 마련되어 있는걸까?’
뭘 돕고 싶어도 이미 세 사람이 싱크대와 전기 렌지 앞을 꽉 채우고 있어 식탁에 앉아 있던 찬수는 실없는 생각이라도 하고 있었다.
식탁에는 오리고기 볶음을 시작으로 저녁 상이 차려졌다.
“내가 여기 안온다고 하면 어쩌려고 그랬니?”
“글쎄 오빠랑 여기 왔겠지.”
“......”
“그렇지?”
“그리고 싸온 저 메뉴들은 뭐고... 여기서 간호장교님이랑 입원관님 못 만났으면 이걸 우리 둘이 다 먹자고 하려고 한거야?”
몇 가지 재료는 펜션 지하 마트에서 사왔지만, 오리고기를 비롯해 몇 가지 재료는 작은 아이스박스에 넣어 왔다. 찬수는 자기 206에 여행용 트렁크에 아이스 박스까지 들어갈 공간이 있었나...라는 생각을 했다.
“남자들 짬밥은 먹어도 먹은거 같지 않다며. 그럼 제대로 된 밥 챙겨줘야지. 내가 안챙기면 누가 오빠 챙겨? 솔직히 오빠 인턴 레지던트때 집에 오면 오빠한테 밥 차려준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거야?”
“전기밥솥으로 2층밥 만드는 네가 할 말은 아니야.”
“그래도 딴 건 다 잘하잖아.”
“찌개는?”
“내 찌개가 어떤데”
“라면 스프 넣은거 모를 줄 알아?”
“으...”
“모든 찌개에 라면스프맛 나고 집에 라면 없는 날은 김치찌개가 김치국이 되어 있었잖아.”
“무슨 남자가 그걸 다 기억하냐?”
“... 외과반장님, 의외시네요. 평소 분위기하고 다르시네요.”
남매의 설전을 보던 간호장교는 지하철 종점에서 앉은뱅이가 걸어다니는걸 본 사람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 옆에서는 원래 동그란 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 입에 숟가락을 문 보미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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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 인물, 단체명, 지명은 실제가 아닙니다.
* 소라넷에만 연재중입니다. 허가되지 않은 복사, 변형, 도용을 금지합니다.
* 내용상으로는 본편 1부 6장과 1부 7장 사이입니다. 7장에 넣으려던건데 쓰고보니 너무 길어져서 버리기는 아까운 마음에 외전으로 뺍니다.
* 상상하시기 편하게 찬수의 동생, 보미, 서나래 중위의 설정 사이즈를 적어둡니다.
찬수의 동생: 170/60, 35(70D)-22-35 (외전 1장인 2003년 1월에는 153/37, 29(70A)-22-35. 2003년 11월에는 153/56, 36-27-35)
김보미 하사: 160/58, 36(75C)-27-35
서나래 중위: 165/50, 33(80A)-25-34
* 중간중간 글씨깨지는 현상이 생기는데 왜그런지 아시는분?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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