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저번 학기에 같이 수업 들었던 언니 둘을 만나서 학관에서 밥을 먹었어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소설 어떻게 되가고 있냐고 묻길래 그동안 올려놨던 소설과
아직 올리진 않은 10장 정도까지 되는 내용들을 보면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어요.
얼마나 뿌듯하던지~~
나란 여자, 학교 컴퓨터실에서 소라에 소설올리는 당당한 뇨자ㅎㅎ
Holtby 님, 섭섭하셨어요? 리플 안하려고 한 거 아녔구용 ㅎㅎㅎ 고마워요!!
xoxoxx 님, 재밌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네요~
2장 분량을 올려드릴게용^^
미니를 입으면 빨리 걷게 되는 이유,
계속 이어집니다!
43.
나는 보민이가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ATM기에 다가갔다.
[어서오십시오! 원하시는 메뉴를 선택해주십시오!]
흠칫.
/깜짝이야!/
정말 깜짝 놀랐다.
내 어깨가 들썩였던 것이 행여나 들켰을까 주위에 둘러봤지만 다행히 그 순간에는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숨을 깊게 내쉬고 버튼을 눌렀다.
/일단.. 카드를 먼저 넣고... 음... 돈을 찾을까? 아니야.. 그냥 잔액조회... 비밀번호가 뭐더라... 그... 설마 내 생일이겠어? 일이이칠... 엥? 맞네? 와! 467만원?? 그때 내가 받았던 상금은 200만원이었던 거 같은데...? 왜케 돈이 많지?/
생각을 하자 또 머리가 아파와서 얼른 카드를 빼내고 쇼핑을 하며 봐뒀던 엘리베이터 옆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휴.../
나는 갑자기 쇼핑 하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
사람들은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백화점 안에서도 더운지 연신 부채로 바람을 만들며 쇼핑을 하고 있었다.
나는 미용실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곽지민... 내가 그 사람을 닮았다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솔직히 연예인이지만 굉장히 낯선 이름이었다.
당장 궁금하지만 찾아볼 수 있는 방법도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야! 너 어디있어? 백화점에서 1시에 만나기로 했었잖아! 뭐? 피씨방? 너 죽을래? 빨리 안 와? 너 나보다 게임이 더 중요하지? 뭐? 인터넷으로 과제를 알아보고 있다고? ...거짓말했으면 죽는다 너!]
갑자기 엘레베이터 앞에서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자가 갑자기 소리를 꽥 질렀다.
나 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까지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큰 소리였다.
/아! 나도 피씨방 가서 알아보면 되겠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찌지직!]
난 깜짝 놀라 이리저리 살펴봤다.
한참 살펴보니 얼마나 급히 일어났던지 바지의 왼쪽 안쪽 허벅지부분 박음질 선이 터졌다.
땀에 젖은 청바지가 살에 붙어있다가 급히 일어나다가 찢어진 것 같았다.
/아... 어떡하지.../
/이 미친년아! 그러니까 내 말 듣지 그랬냐!/
걱정과 동시에 내 귀에 보민이의 욕이 들리는 듯 했다.
분명 보민이가 옆에 있었으면 욕을 먹었을 상황이긴 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약간은 어색한 걸음걸이로 엘리베이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쥬얼리 코너에 가서 물어봤다.
[저...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나요?]
[아! 손님! 왼쪽으로 쭉 가시면 화장실이 보이세요! 저~쪽! 보이시죠?]
나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특별하게 꽤 많은 사람들이 코너에서 쏟아져 나오는 곳을 발견하고는 눈인사를 하고 걸어갔다.
내가 걸어가자 내 눈과 마주치는 사람은 많았지만 다행히 사람들은 내 바지가 터진 것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휴.../
나는 줄을 서고도 한참을 기다려 화장실 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난 화장실 변기 커버를 닫고 앉아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종이백에서 꺼낸 반바지를 종이백 위에 펼쳐두고는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해서 나 스스로도 좀전에 샀던 반바지로 갈아입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고민이 됐다.
/요년~ 잘 어울리는데~? 입고 갈래?/
/와~ 잘 어울려요! 다리가 워낙 예뻐서 더 눈에 띄는걸요?/
내 머리속에서는 계속 보민이와 점원 언니의 말이 맴돌았다.
/그래... 가끔은 보민이처럼 나만 생각할 필요가 있어! 그 동안 충분히 남 눈치 봤잖아?/
주먹을 꼭 쥐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 순간 뿐, 난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리고 멍하니 있으면 언제나 머리 속에는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바퀴벌레 같이 끊이지 않는 옛날 생각에 사로잡힌다.
/난쟁이 년... /
/...너 같은 애는 좀 사라졌으면 좋겠어.../
/...니가 재민이 깔이라도 되냐?/
내 머리속에서는 계속해서 나를 짓누르는 말들이 맴돌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부들부들 떨리는 꼭 쥔 주먹으로 무릎을 탁 치고는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리고는 어금니를 힘껏 깨물고는 과감하게 허벅지 안쪽이 터진 바지를 벗어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구겨 버려버렸다.
잠시 맨살이 드러난 다리에 바람이 적셔지자, 흠칫 몸이 떨렸다.
이번에도 잠깐 망설임이 들었지만 아까 화장실 바닥에 내려놓았던 새로 산 반바지를 입었다.
/휴....../
바지를 다 입고 나서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앉자, 변기 커버가 맨살인 뒤쪽 허벅지에 닿는 시원함과 함께 원인을 알 수 없는 묘한 쾌감이 찌르르하고 가슴을 울렸다.
44.
그렇게 난 늘 눈치를 보고, 몰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생각했던,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내가 좋아하던 재민이와 같이 학교 생활을 하는 그런 꿈은 한 달이 채 가지 못했다.
나는 성격은 제멋대로인 아이였지만 여전히 쑥스러움을 타는 아이였고 아이들의 인사에 얼굴이 붉어지며 피하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태도에 의아함을 갖지만 별말없이 그 사람의 성격으로 인지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전제조건이 있는데 상대방이 보기에 첫째, 내성적이어야 하며 둘째, 자기보다 약한 존재라고 인지해야 그 사람의 수줍어하는 태도를 계속해서 수줍음으로 인식하게 된다.
어떤 요인에 의해 수줍음을 표시하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거나 인기가 많다는 사실이 알게되면 주위사람에게 비춰지는 수줍음은 곧바로 "가식"으로 변질된다.
플러스 요인으로 그 요인을 반복하게끔 만드는 원인이나 반복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촉발요인은 깊숙히 모든 사람들 마음 속에 심겨진 후, 왕따와 비슷한 미움의 싹이 트기 시작한다.
이 때 촉발요인을 반복하게끔 만들지 못하도록 초기에 조치를 취한다던가 다른 것으로 덮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사회란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구성원들과의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이루어져왔다"는 얘기를 여기서는 잠깐 접어두더라도, 그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는 것들이 학창시절에는 공부, 외모, 운동 등 몇 가지 되지 않는데다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경쟁의 풀pool이 좁기 때문에 쉽게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그렇게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내게 "촉발요인"이 발생했다.
그리고 촉발요인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 상황이 동시에 발생했고(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나 역시 그런 것을 초기에 인지하지 못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수줍음이 많은 태도가 친구들에게 "가식적인 모습"으로 변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얘들아, 얘들아 이거 폐휴지 수거 하는데서 나온 신문인데~ 봐봐봐~ 우연찮게 발견했는데 수아 사진 있어!]
[뭔데뭔데?]
[수아가 2년전에 국제 생물 올림피아드에서 동상 받았대!]
[이열~ 그거 정말 대단한거 아냐?]
[그렇지 않을까?난 잘모르겠는데?]
[야! 보영아, 그거 진짜 대단한 거야! 울 오빠가 과고 다니는데~ 고2인데도 한국 올림피아드에서도 상 못 받아서 막 짜증내던데!]
[진짜? 어쩐지... 존내 잘난 척 한다더니...]
[야 수아한테 인사 받아본 사람?]
[......]
[......]
[싸가지 없네~]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모든 반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날 점심시간부터 나는 학교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쟤 고등학교 다닐 필요도 없는데 학교 나온대~]
[국제대회에서도 상받고 해서 그런지 잘난 척 쩐대~!]
안 좋은 소문은 훨씬 빨리퍼지는 것은 알았지만 나는 처음 겪는 일이어서 제대로 된 해명을 하거나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재민아.. 나 요즘 힘들어.. 애들이 막 오해해..]
[그 소문? 하하...나도 들었어~ 그냥 놔둬. 너 부러워해서 그러는거잖아~]
[진짜 괜찮아?]
[그럼~ 내가 아니라고 애들에게 소문 내줄게~ 나 믿어!]
[알겠어... 훌쩍.]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민이 또한 나를 멀리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45.
난 또 다시 생각의 역행을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면서, 더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옛날 생각만 하면 식은땀이 나서 그런 것인지 또다시 축축해진 등이 느껴졌다.
난 반바지를 입고 난 후 신고 왔던 운동화를 다시 신었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나가 출입구 근처에 있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옆에서 소근소근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휴... 되게 덥네.../
[야! 옆에 쟤 봐봐! 패션 완전 구려... 반바지에 운동화가 뭐냐?]
[그러니까 쇼핑하러 왔겠지... 크크... 병신 같이 반바지에 텍도 안뗐어! 호호호]
나는 뜨끔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자 내 눈에 내 눈과 마주친 두 명의 학생들이 보였고, 내 눈을 마주친 그 학생들은 서둘러 입을 막고 얼른 나가자라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학생 뒷모습에서 두 명 모두 슬리퍼를 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난 얼른 허리를 틀어 엉덩이를 내려다 보았다.
투명한 플라스틱 실과 같은 것에 종이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끙끙거리며 떼어내보려 했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아야야... 허리에 쥐나겠어.../
오히려 오른쪽으로 돌린 허리때문에 왼쪽 옆구리가 뻣뻣해지면서 쥐가 나려고 했다.
나는 나가서 가위를 구해보겠다는 생각에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매장에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고객님!]
멀리 서 있던 남자 직원이 얼른 내게 다가온다.
[저... 가위 좀 빌려주시겠어요?]
[무슨 일이시죠?]
[...반바지를 입었는데... 텍이 안 떼져서요... 좀 빌려주시면 안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직원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빙긋이 웃으며 나를 매장 카운터 쪽으로 안내한다.
[손님 잠시만 뒤로 돌아서 주시겠어요? 다치실 수도 있으니 제가 얼른 잘라드릴게요]
[네... 죄송해요...]
[티셔츠 좀 잡아주세요...]
난 직원의 말에 무심코 티셔츠를 살짝 들어올렸고, 여지없이 바지 안쪽에 비어있는 텅 빈 공간과 긴 바지를 입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입구가 쫘악 벌어져 있는 내 양말과 양말을 감싸는 듯한 운동화가 보였다.
난 순간 또 아찔함을 느꼈다.
그 직원은 내가 움찔한 것을 알아차리지를 못했는지 내 바지 위를 덮고 있는 티셔츠를 들어올리자, 가위를 들고 쪼그려앉아 내 엉덩이 위치에 자기 눈높이를 맞추고는 가위로 플라스틱 실을 자른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허리 부근에 걸쳐 있는 바지의 안쪽 빈 공간으로 손가락을 넣더니 바지는 들어온 손가락 만큼 밖으로 밀려났다.
직원은 바지 안쪽에 박혀있는 T자 형태의 플라스틱 실로 되어 있는 끄트머리까지 끄집어내 주었다.
[다 됐습니다. 고객님!]
어느새 매장에 다른 남자 직원 둘도 미소를 머금은 채 귓속말을 하면서 허리를 구부리고 서서 반바지의 텍을 떼는 것을 봐주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나는 인사를 얼른 하고 나가려고 했다.
왜냐하면 여전히 양말이 나에게 입을 벌리고 서서히 나를 삼킬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서 양말을 어서 벗어버리고 싶었다.
[손님...]
[네?]
난 계속 나를 붙잡는 직원이 얄밉게 느껴졌다.
[많이 더우신 가 봐요. 등이 젖었어요... 땀이 많이 나시나봐요... 게다가 스타일에 안 맞게 반바지에다가 양말에 운동화를 신으니 더 더워보이시잖아요. 이번 여름에 나왔던 신상품 구두 세일중인데 한번 보시지 않겠어요?]
옆에 서 있던 남자 직원 한 명이 아까 두 학생이 했던 비슷한 말을 한다.
/그래. 아예 신발이랑 양말을 벗어버리자!/
[네? 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요!]
난 얼른 운동화를 벗고 양말도 마저 벗어 카페트 위에 내려서버렸다.
남자 직원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금새 웃음을 짓는다.
[재밌는 분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상진씨, 여기 이 분에게 의자하나 가지고 오고, 슬리퍼도 가져와요~]
[옙!]
나는 의자에 앉아서 반바지 아래로 보이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고동색에 가까운 카페트 타일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휴... 아직 반바지는 무리일까?/
[손님~! 생각하고 오신 구두 종류가 있으냐구요?]
[네?]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내게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남자 직원이다.
/아마 내가 여러번 못 들었나봐.../
[아뇨... 구두 잘 모르는데요...]
남자 직원은 의아하다는 듯이 멀찍이 내 앞에 쭈그려 앉아서 내 눈을 맞춘다.
그리고 내 발을 살며시 드는 느낌이 난다.
내 발뒤꿈치를 감싸쥐고 발바닥을 살짝 보더니 이해했다는 듯이 말한다.
[손님! 한번도 구두 신으신 적이 없으신가봐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발뒤꿈치랑 발바닥에 굳은살이 하나도 없으시거든요.. 이렇게 예쁘신 분이라도 이런 발 보기 힘든데...]
[왜냐하면요, 그런 분들은 구두를 즐겨신으시니까 발이 많이 상하시거든요... 요즘 유명한 도수코 안보세요?]
옆에 있던 다른 직원도 다가와서 말을 거든다.
[도수코..요?]
더 이상한 듯이 나를 쳐다본다.
[도전수퍼모델코리아요.. 거기 나오는 분들 보면 다 힐을 신으시거든요?]
/그게 나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나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예요?]
[아~ 손님이 모델 아니면 적어도 모델 지망생이신 줄 알았거든요... 고등학생? 아니세요?]
[아닌데요...]
[윽! 죄송합니다... 되게 신기한 분이시다... 그렇지 않냐? 하하하..]
쑥스러움을 감추려고 하는지 웃음으로 무마하는 직원이다.
/휴... 빨리 내가 누군지 알아보러 가야되는데... 자꾸 시간이 늦어지네../
[그러면 7센치 힐 종류를 골라드려볼게요.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높이가 있지만 대체로 7센치가 신었을 때 가장 예쁜 높이라고 알아두시면 되요!]
[......]
남자직원은 내 운동화를 슬쩍 보더니 잠깐 사라졌다가 두 명의 직원이서 장난기가 담긴 얼굴로 얘기하면서 나무색깔의 구두를 들고 왔다.
[키가 좀 되시니까 많이 높은 건 안 신으셔도 될 것 같네요... 이건 우드뮬이라고 하는 건데요. 여름에 되게 시원하실거예요.]
[아까 신발 사이즈가 240이시더라구요... 9센치 힐이지만 앞 굽이 있어서 그렇게 높은 건 아닙니다.]
[네...]
[한 번 신어보시죠...]
남자 직원 두 명이서 내 발목을 잡고 발에다가 구두를 신겨주었다.
나는 일어서보려다가 앞으로 휘청거렸다.
앞에는 다행히 남자직원이 서 있어서 내 양 어깨를 잡아 중심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아! 고맙습니다...]
/다리 전체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느낌이 이상해... 무릎은 나오고 엉덩이는 더 들리는 느낌이고.../
나는 조금 걸어봤다.
엉거주춤 걸었지만 나름 적응이 되는 것 같았다.
[잘 어울리시는데요? 7센치라도 처음에는 좀 높다고 생각되실 수도 있어요. 근데 뒤에서 보니까 다리 근육도 안 올라오고.. 괜찮겠네요... 좀 더 높은 것도 신어도 되시겠지만, 키도 있으시고 다리 자체도 기셔서 그닥... 필요는 없어보이네요...]
구두를 가지고 온 점원이 허리를 숙여서 구두를 봐주고 내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여자의 DNA 속에는 구두에 대한 적응력이 존재하거든요... 손님도 역시 금새 적응하시네요...]
내 반바지에 텍을 떼주었던, 제일 높은 직급인 것 같은 이 직원은 무표정으로 말도 안되는 얘기를 진지하게 덧붙였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자 뒤에 있는 직원들은 "오~"라는 입 모양을 서로 마주보며 어깨를 툭툭치고 웃었고 그 말을 한 직원은 돌아보며 그 둘에게 주위를 주었다.
/휴... 나는 빨리 가서 찾아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마음에 드시나요? 다른 거 더 보시겠어요? 손님?]
[아니요... 이거 할게요..]
[아... 그러시겠어요? 그럼 계산 도와드릴게요... 이쪽으로...]
나는 걸으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엉거주춤하게 다리를 약간 구부리게 되었고 그 자세로 힐을 끌면서 계산대 앞에 섰다.
[20% 할인에다가 오늘 백화점 30만원 이상 구매하시면 1만원 상품권 드리는데, 그걸로 상품권 박치기 해드릴게요... 그리고 오늘 저희 매장 회원가입하시면 추가로 5% 할인해드리는데 가입하시겠어요?]
[네?]
/아 맞다... 아까 전에도 가격 먼저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는데...이번에도 사기전에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어.. 너무 비싼데... 계산 안 하는 것도 이상하게 되어버렸네... 힝.../
[저렴하게 사시는 겁니다. 10만원이상이나 싸게 사시는 거예요...]
[네.. 회원 가입할게요..]
[여기 형광펜으로 표시되어 있는 곳에 성함이랑 주소, 전화번호만 쓰시면 됩니다.]
나는 신수아라고 적고 나머지 주소와 집 전화번호도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고객님, 핸드폰 번호는 없으신가요?]
[아... 있는데요..핸드폰 번호를 적어야하나요?]
[집 전화번호도 괜찮긴한데..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시면 더 좋거든요... 할인행사가 있을 때나 공지사항이 있을 때 문자로 연락을 드리거든요...]
[하시는 게 좋으세요... 저희도 고객관리 해드리기도 편하구요...]
옆에 서 있던 직원도 한 마디 거들었다.
[아... 네... 그럼 적을게요...]
나는 집 전화번호 옆에다가 핸드폰 번호도 썼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음...그러면 이렇게 할인 받으시면... 삼십만 구천이백원이시네요..]
난 카드를 내밀었고 직원은 부리나케 계산을 했다.
[고객님, 운동화는 버려드릴까요?]
옆에 서 있던 다른 남자 직원이 말을 걸었다.
/아... 지금까지 나를 이상하게 대하던데... 만약 내가 저것까지 가져간다고 하면 더 이상한 사람 취급할까?/
[네! 필요없어요..]
나는 호기롭게 필요없다고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오전에 나올 때와 다르게 발끝에서부터 시원한 느낌을 받았고 무엇인가 내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으며 뿌듯한 발걸음으로 백화점을 나섰다.
46.
/...내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구...
...역사를 간직한 옛 사람들의 청동 거울.../
/...무엇을 통해 비쳐지는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일까.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모습을 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무엇인가를 통해 비추어진 자기 모습은 왜곡없는 100%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47.
찡긋.
눈썹들이 이때다 싶은지 서로 가까이 다가선다.
눈이 부셨다.
그리고 백화점 안과는 다르게 후텁지근한 공기가 내 몸을 휘감았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역시 연신 손으로, 부채로 햇빛을 가리거나 바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보민이 덕분에 적어도 갑갑하게 이 더운 공기 속을 걷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몸에 이미 익숙해져 버렸던 반바지와 우드뮬 힐이 새삼 느껴졌다.
나는 백화점 쇼윈도에 조심스레 다가가서 모습을 비춰보기로 했다.
/나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진짜 오랜만이야.../
아니나 다를까, 티셔츠와 반바지, 힐, 내 손만 윈도에 비쳤다.
그래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서인지, 내가 누구인지가 궁금해서인지 두근거림은 덜했다.
/흠흠, 어서 가자, 가.. 피시방이 어디있지?/
나는 순간 어색함에 혼자 헛기침을 하면서 몸을 돌렸다.
또르각, 또르각, 또르각...
/에튀두하우스, 여기는 화장품 가게.. 파리바게쓰... 탐앤제리스, 여기는 커피집... 모텔... 디비디방... 모텔... 디비디방... 모텔... 중국집... 찜질방... 아! 저기 있네... 휴.. 되게 찾기 힘들다.../
또르각, 또르각, 또르각...
[저기요!]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친다.
/누구...?/
[......]
[혹시 핸드폰 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엄청 예쁘셔서 친해지고 싶거든요...]
/네...?!/
48.
재민이는 내게 걱정말라고 말하긴 했지만, 오히려 최근에 계속 한숨을 푹푹 내쉬는 모습을 보이는 재민이 때문에 난 재민이가 더 신경이 쓰였다.
한 동안 말이 없이 먼 산을 보기도 하고, 손톱을 물어 뜯으며 고심하는 얼굴이었다.
/수상한데... 재민이가 왜 저러지? 나 때문인가?/
자유롭게 자리를 앉는 우리 반은 그 신문 사건이 있은 후로 나를 교실 맨 뒤쪽 복도 자리로 은근히 밀어 내었기 때문에 키가 작은 내가 수업시간에 칠판이 보이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키가 큰 재민이의 반응을 옆에서 쉽게 볼 수 있어 나름 만족하고 지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나는 자꾸 재민이가 앞에 앉은 보영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보영이가 웃으면 따라서 미소 짓고, 지우개나 수정테이프를 빌려달라고 하면 기쁜 듯이 빌려주곤 했다.
내가 눈치를 챈 날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재민이는 수업이 끝나기 전에 보영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저기... 보영아?]
[어! 왜? 나 집에 가야되니까 빨리 말해!]
[아! 많이 바뻐?]
[아씨! 왜!]
[아니.. 학교 끝나고 잠깐만... 잠깐만 나랑 얘기할 수 있어? 할 얘기가 있는데...]
흠칫.
순간 나랑 눈이 마주친 보영이었다.
그러자 보영이는 씩 웃으면서 과장스럽게 승락했다.
[그.래! 어디서 볼까? 학교 강당 옆에서 볼까?]
[그...그래! 고마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짓는 재민이의 표정을 보면서 지금까지 설마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했다.
/재...재민이가! 보영이를 좋아하나봐!/
나는 터덜터덜 걸어서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뒤에서 재민이가 성큼성큼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수아야~~]
잠깐 흘긋 쳐다보니 되게 기분 좋은 표정의 재민이었다.
[왜 불러?]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한다.
[나 보영이랑 사귄다?!]
/눈치도 없는 병신새끼... 내가 왜 고등학교를 갔는데!/
[어! 그래.. 축하해... 근데 내가 축하해주면 되는거야?]
내 목소리는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흐흐흐... 당연하지! 참! 근데 보영이가 너에 대해서 많이 묻더라? 나보고 친하냐고...]
순간 불안감이 확 밀어닥쳤다.
[설마... 너 친하다고 했어?]
[당연하지! 야! 너랑 나랑 안지가 몇 년이냐?]
/아! 아씨...그걸 말하면 어떡해.../
[아... 몰라! 나랑 친하다고 하면 어떡하냐 바보 같이! 걔 진짜 이상한 애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또 화낸다?! 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또 화를 내냐? 그리고! 나한테는 그러는 건 몰라도 너 왜 보영이한테 화내?]
재민이는 갑자기 내가 격앙된 목소리로 반응을 하니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몰라몰라... 니 맘대로 해...! 니가 나랑 친하다고 했으니까 니가 책임져!]
[아 씨ㅂ...또 뭔데 너! 지금까지 기분 좋다가 너 때문에 기분 잡쳤잖아...]
[......]
[야! 이렇게 그냥 가기냐?]
[......]
[야! 신수아!]
나는 그냥 재민이를 뒤에 놔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다음날부터, 보영이는 모든 반 아이들이 보라는 듯이 재민이의 팔을 끼고 쉬는시간에도 돌아다니고, 자기 친구들도 소개시켜주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특히 보영이가 팔짱을 낄 때마다, 재민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는데, 보영이의 한쪽 가슴이 재민이의 팔에 짓눌리는 것이 함께 보였다.
보영이가 재민이와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재민이와 나와의 대화는 줄어들었다.
그 날 저녁, 집에서 나는 재민이네 방으로 찾아갔다.
[황영동, 정기철. 잠깐 나가줄래?]
[야! 참나..여기는 우리방이야! 니가 왜 나가라마라야?]
[.....]
나는 아무말 없이 쏘아보고 있었다.
[아! 알았다 알았어! 재민아 안그래도 우리 농구 1대1 하기로 했으니까 원장 수녀님한테 운동장에 있다고 말해줘!]
[오케이!]
[하여튼 좋겠네! 재민이~ 축하해! 좀 있다가 더 얘기해줘!]
[크크크.. 알겠어! 고맙다! 짜식!]
영동이와 기철이는 농구공 하나를 들고 방을 나갔다.
[야! 그렇게 좋냐?]
재민이는 방에서도 실실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야! 좋지~ 울 학교에서 몸매라면 서보영이고, 미모도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보영이랑 사귀면...크... 어떤 느낌인지 넌 모를거다!]
/난 걔 싫어.../
[...너, 나랑 약속한 거 안 잊었지?]
[뭐?]
[얘기해주기로 했었잖아... 애들한테.. 그 신문 때문에 나 완전 이상한 사람 취급받고 있잖어...]
[아! 그거? 그거 니가 오바한 거 라던데?]
[오바라니?]
[보영이 말대로, 넌 좀.. 너무 예민해...]
[응? 걔...걔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맞잖아... 솔직히! 어릴 적부터 넌 좀 신경질 적이었고, 다른 사람 반응에 예민해서 화도 잘 내고...]
[하! 너 진짜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걔한테 그렇게 말했어? 내가 예민하고 신경질 적이라고?]
[난 틀린말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난 잠시동안 재민이를 노려봤다. 어느새 재민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나 걔 싫어.../
[재민아...난 걔 싫어...걔가 그 소문 퍼뜨린 애잖...]
[그만해 너! 보영이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마... 아무리 너라도 한 번만 더 그러면 가만 안 둬! 빨리 가! 니 방으로!]
[재민아...]
[아씨... 닥치고 빨리 나가... 게다가 원장수녀님 돌아보러 오실 시간이야...]
반 강제로 재민이가 밀어내다시피 하는 바람에 난 재민이 방 밖으로 밀려났고, 엉엉 울면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휴... 힘들다~^^
2장 분량 업뎃했는데 좀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히히~
어쩌면 좀 더 빨리 야한 장면 넣어볼지도 몰라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소설 어떻게 되가고 있냐고 묻길래 그동안 올려놨던 소설과
아직 올리진 않은 10장 정도까지 되는 내용들을 보면서 고맙다는 말을 들었어요.
얼마나 뿌듯하던지~~
나란 여자, 학교 컴퓨터실에서 소라에 소설올리는 당당한 뇨자ㅎㅎ
Holtby 님, 섭섭하셨어요? 리플 안하려고 한 거 아녔구용 ㅎㅎㅎ 고마워요!!
xoxoxx 님, 재밌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좋네요~
2장 분량을 올려드릴게용^^
미니를 입으면 빨리 걷게 되는 이유,
계속 이어집니다!
43.
나는 보민이가 멀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ATM기에 다가갔다.
[어서오십시오! 원하시는 메뉴를 선택해주십시오!]
흠칫.
/깜짝이야!/
정말 깜짝 놀랐다.
내 어깨가 들썩였던 것이 행여나 들켰을까 주위에 둘러봤지만 다행히 그 순간에는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숨을 깊게 내쉬고 버튼을 눌렀다.
/일단.. 카드를 먼저 넣고... 음... 돈을 찾을까? 아니야.. 그냥 잔액조회... 비밀번호가 뭐더라... 그... 설마 내 생일이겠어? 일이이칠... 엥? 맞네? 와! 467만원?? 그때 내가 받았던 상금은 200만원이었던 거 같은데...? 왜케 돈이 많지?/
생각을 하자 또 머리가 아파와서 얼른 카드를 빼내고 쇼핑을 하며 봐뒀던 엘리베이터 옆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휴.../
나는 갑자기 쇼핑 하고 싶은 생각이 싹 달아났다.
사람들은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백화점 안에서도 더운지 연신 부채로 바람을 만들며 쇼핑을 하고 있었다.
나는 미용실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곽지민... 내가 그 사람을 닮았다고? 처음 들어보는 이름인데.../
솔직히 연예인이지만 굉장히 낯선 이름이었다.
당장 궁금하지만 찾아볼 수 있는 방법도 딱히 생각나지 않았다.
[야! 너 어디있어? 백화점에서 1시에 만나기로 했었잖아! 뭐? 피씨방? 너 죽을래? 빨리 안 와? 너 나보다 게임이 더 중요하지? 뭐? 인터넷으로 과제를 알아보고 있다고? ...거짓말했으면 죽는다 너!]
갑자기 엘레베이터 앞에서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자가 갑자기 소리를 꽥 질렀다.
나 뿐만 아니라 지나가던 다른 사람들까지 돌아보게 만들 정도로 큰 소리였다.
/아! 나도 피씨방 가서 알아보면 되겠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나에 대해 알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이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순간...
[찌지직!]
난 깜짝 놀라 이리저리 살펴봤다.
한참 살펴보니 얼마나 급히 일어났던지 바지의 왼쪽 안쪽 허벅지부분 박음질 선이 터졌다.
땀에 젖은 청바지가 살에 붙어있다가 급히 일어나다가 찢어진 것 같았다.
/아... 어떡하지.../
/이 미친년아! 그러니까 내 말 듣지 그랬냐!/
걱정과 동시에 내 귀에 보민이의 욕이 들리는 듯 했다.
분명 보민이가 옆에 있었으면 욕을 먹었을 상황이긴 했다.
나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면서 약간은 어색한 걸음걸이로 엘리베이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쥬얼리 코너에 가서 물어봤다.
[저... 여기 화장실이 어디에 있나요?]
[아! 손님! 왼쪽으로 쭉 가시면 화장실이 보이세요! 저~쪽! 보이시죠?]
나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특별하게 꽤 많은 사람들이 코너에서 쏟아져 나오는 곳을 발견하고는 눈인사를 하고 걸어갔다.
내가 걸어가자 내 눈과 마주치는 사람은 많았지만 다행히 사람들은 내 바지가 터진 것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휴.../
나는 줄을 서고도 한참을 기다려 화장실 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난 화장실 변기 커버를 닫고 앉아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바닥에는 종이백에서 꺼낸 반바지를 종이백 위에 펼쳐두고는 생각에 잠겼다.
솔직히 말해서 나 스스로도 좀전에 샀던 반바지로 갈아입는 방법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고민이 됐다.
/요년~ 잘 어울리는데~? 입고 갈래?/
/와~ 잘 어울려요! 다리가 워낙 예뻐서 더 눈에 띄는걸요?/
내 머리속에서는 계속 보민이와 점원 언니의 말이 맴돌았다.
/그래... 가끔은 보민이처럼 나만 생각할 필요가 있어! 그 동안 충분히 남 눈치 봤잖아?/
주먹을 꼭 쥐고 마음을 먹었지만 그 순간 뿐, 난 한참동안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리고 멍하니 있으면 언제나 머리 속에는 스멀스멀 기어나오는 바퀴벌레 같이 끊이지 않는 옛날 생각에 사로잡힌다.
/난쟁이 년... /
/...너 같은 애는 좀 사라졌으면 좋겠어.../
/...니가 재민이 깔이라도 되냐?/
내 머리속에서는 계속해서 나를 짓누르는 말들이 맴돌았다.
나는 어느 순간부터 부들부들 떨리는 꼭 쥔 주먹으로 무릎을 탁 치고는 머리를 마구 흔들었다.
그리고는 어금니를 힘껏 깨물고는 과감하게 허벅지 안쪽이 터진 바지를 벗어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구겨 버려버렸다.
잠시 맨살이 드러난 다리에 바람이 적셔지자, 흠칫 몸이 떨렸다.
이번에도 잠깐 망설임이 들었지만 아까 화장실 바닥에 내려놓았던 새로 산 반바지를 입었다.
/휴....../
바지를 다 입고 나서 한숨을 내쉬며 다시 앉자, 변기 커버가 맨살인 뒤쪽 허벅지에 닿는 시원함과 함께 원인을 알 수 없는 묘한 쾌감이 찌르르하고 가슴을 울렸다.
44.
그렇게 난 늘 눈치를 보고, 몰래 눈물을 흘렸다.
내가 생각했던,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내가 좋아하던 재민이와 같이 학교 생활을 하는 그런 꿈은 한 달이 채 가지 못했다.
나는 성격은 제멋대로인 아이였지만 여전히 쑥스러움을 타는 아이였고 아이들의 인사에 얼굴이 붉어지며 피하기 일쑤였다.
사람들은 대부분 그런 태도에 의아함을 갖지만 별말없이 그 사람의 성격으로 인지하고 넘어간다.
하지만 여기에는 큰 전제조건이 있는데 상대방이 보기에 첫째, 내성적이어야 하며 둘째, 자기보다 약한 존재라고 인지해야 그 사람의 수줍어하는 태도를 계속해서 수줍음으로 인식하게 된다.
어떤 요인에 의해 수줍음을 표시하는 사람이 공부를 잘하거나 인기가 많다는 사실이 알게되면 주위사람에게 비춰지는 수줍음은 곧바로 "가식"으로 변질된다.
플러스 요인으로 그 요인을 반복하게끔 만드는 원인이나 반복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촉발요인은 깊숙히 모든 사람들 마음 속에 심겨진 후, 왕따와 비슷한 미움의 싹이 트기 시작한다.
이 때 촉발요인을 반복하게끔 만들지 못하도록 초기에 조치를 취한다던가 다른 것으로 덮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사회란 "의식 혹은 무의식적으로 구성원들과의 끊임없는 비교 속에서 이루어져왔다"는 얘기를 여기서는 잠깐 접어두더라도, 그 비교대상이 될 수 있는 것들이 학창시절에는 공부, 외모, 운동 등 몇 가지 되지 않는데다가 다른 사람에게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경쟁의 풀pool이 좁기 때문에 쉽게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살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그렇게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내게 "촉발요인"이 발생했다.
그리고 촉발요인이 반복적으로 나타나게 된 상황이 동시에 발생했고(후에 알게된 일이지만), 나 역시 그런 것을 초기에 인지하지 못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아 수줍음이 많은 태도가 친구들에게 "가식적인 모습"으로 변하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얘들아, 얘들아 이거 폐휴지 수거 하는데서 나온 신문인데~ 봐봐봐~ 우연찮게 발견했는데 수아 사진 있어!]
[뭔데뭔데?]
[수아가 2년전에 국제 생물 올림피아드에서 동상 받았대!]
[이열~ 그거 정말 대단한거 아냐?]
[그렇지 않을까?난 잘모르겠는데?]
[야! 보영아, 그거 진짜 대단한 거야! 울 오빠가 과고 다니는데~ 고2인데도 한국 올림피아드에서도 상 못 받아서 막 짜증내던데!]
[진짜? 어쩐지... 존내 잘난 척 한다더니...]
[야 수아한테 인사 받아본 사람?]
[......]
[......]
[싸가지 없네~]
나는 흠칫 몸을 떨었다. 모든 반 아이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날 점심시간부터 나는 학교에서 유명한 사람이 되었다.
[쟤 고등학교 다닐 필요도 없는데 학교 나온대~]
[국제대회에서도 상받고 해서 그런지 잘난 척 쩐대~!]
안 좋은 소문은 훨씬 빨리퍼지는 것은 알았지만 나는 처음 겪는 일이어서 제대로 된 해명을 하거나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지 못했다.
[재민아.. 나 요즘 힘들어.. 애들이 막 오해해..]
[그 소문? 하하...나도 들었어~ 그냥 놔둬. 너 부러워해서 그러는거잖아~]
[진짜 괜찮아?]
[그럼~ 내가 아니라고 애들에게 소문 내줄게~ 나 믿어!]
[알겠어... 훌쩍.]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민이 또한 나를 멀리하게 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45.
난 또 다시 생각의 역행을 절대 막을 수 없다는 것을 뼈져리게 느끼면서, 더워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옛날 생각만 하면 식은땀이 나서 그런 것인지 또다시 축축해진 등이 느껴졌다.
난 반바지를 입고 난 후 신고 왔던 운동화를 다시 신었다.
그리고는 문을 열고 나가 출입구 근처에 있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데 옆에서 소근소근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휴... 되게 덥네.../
[야! 옆에 쟤 봐봐! 패션 완전 구려... 반바지에 운동화가 뭐냐?]
[그러니까 쇼핑하러 왔겠지... 크크... 병신 같이 반바지에 텍도 안뗐어! 호호호]
나는 뜨끔하며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자 내 눈에 내 눈과 마주친 두 명의 학생들이 보였고, 내 눈을 마주친 그 학생들은 서둘러 입을 막고 얼른 나가자라며 밖으로 빠져나갔다.
밖으로 나가는 학생 뒷모습에서 두 명 모두 슬리퍼를 신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난 얼른 허리를 틀어 엉덩이를 내려다 보았다.
투명한 플라스틱 실과 같은 것에 종이가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다.
끙끙거리며 떼어내보려 했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아야야... 허리에 쥐나겠어.../
오히려 오른쪽으로 돌린 허리때문에 왼쪽 옆구리가 뻣뻣해지면서 쥐가 나려고 했다.
나는 나가서 가위를 구해보겠다는 생각에 화장실을 나오자마자 오른쪽에 있는 매장에 들어갔다.
[어서오세요 고객님!]
멀리 서 있던 남자 직원이 얼른 내게 다가온다.
[저... 가위 좀 빌려주시겠어요?]
[무슨 일이시죠?]
[...반바지를 입었는데... 텍이 안 떼져서요... 좀 빌려주시면 안될까요?]
[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겠어요?]
직원은 나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빙긋이 웃으며 나를 매장 카운터 쪽으로 안내한다.
[손님 잠시만 뒤로 돌아서 주시겠어요? 다치실 수도 있으니 제가 얼른 잘라드릴게요]
[네... 죄송해요...]
[티셔츠 좀 잡아주세요...]
난 직원의 말에 무심코 티셔츠를 살짝 들어올렸고, 여지없이 바지 안쪽에 비어있는 텅 빈 공간과 긴 바지를 입을 때는 미처 알지 못했던 입구가 쫘악 벌어져 있는 내 양말과 양말을 감싸는 듯한 운동화가 보였다.
난 순간 또 아찔함을 느꼈다.
그 직원은 내가 움찔한 것을 알아차리지를 못했는지 내 바지 위를 덮고 있는 티셔츠를 들어올리자, 가위를 들고 쪼그려앉아 내 엉덩이 위치에 자기 눈높이를 맞추고는 가위로 플라스틱 실을 자른다.
그리고는 자연스럽게 허리 부근에 걸쳐 있는 바지의 안쪽 빈 공간으로 손가락을 넣더니 바지는 들어온 손가락 만큼 밖으로 밀려났다.
직원은 바지 안쪽에 박혀있는 T자 형태의 플라스틱 실로 되어 있는 끄트머리까지 끄집어내 주었다.
[다 됐습니다. 고객님!]
어느새 매장에 다른 남자 직원 둘도 미소를 머금은 채 귓속말을 하면서 허리를 구부리고 서서 반바지의 텍을 떼는 것을 봐주고 있었다.
[고맙습니다...]
나는 인사를 얼른 하고 나가려고 했다.
왜냐하면 여전히 양말이 나에게 입을 벌리고 서서히 나를 삼킬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었다.
나는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서 양말을 어서 벗어버리고 싶었다.
[손님...]
[네?]
난 계속 나를 붙잡는 직원이 얄밉게 느껴졌다.
[많이 더우신 가 봐요. 등이 젖었어요... 땀이 많이 나시나봐요... 게다가 스타일에 안 맞게 반바지에다가 양말에 운동화를 신으니 더 더워보이시잖아요. 이번 여름에 나왔던 신상품 구두 세일중인데 한번 보시지 않겠어요?]
옆에 서 있던 남자 직원 한 명이 아까 두 학생이 했던 비슷한 말을 한다.
/그래. 아예 신발이랑 양말을 벗어버리자!/
[네? 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요!]
난 얼른 운동화를 벗고 양말도 마저 벗어 카페트 위에 내려서버렸다.
남자 직원은 순간 당황한 표정을 짓더니 금새 웃음을 짓는다.
[재밌는 분이시군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상진씨, 여기 이 분에게 의자하나 가지고 오고, 슬리퍼도 가져와요~]
[옙!]
나는 의자에 앉아서 반바지 아래로 보이는 따뜻한 느낌을 주는 고동색에 가까운 카페트 타일들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휴... 아직 반바지는 무리일까?/
[손님~! 생각하고 오신 구두 종류가 있으냐구요?]
[네?]
약간 격앙된 목소리로 내게 목소리를 높여 말하는 남자 직원이다.
/아마 내가 여러번 못 들었나봐.../
[아뇨... 구두 잘 모르는데요...]
남자 직원은 의아하다는 듯이 멀찍이 내 앞에 쭈그려 앉아서 내 눈을 맞춘다.
그리고 내 발을 살며시 드는 느낌이 난다.
내 발뒤꿈치를 감싸쥐고 발바닥을 살짝 보더니 이해했다는 듯이 말한다.
[손님! 한번도 구두 신으신 적이 없으신가봐요?]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발뒤꿈치랑 발바닥에 굳은살이 하나도 없으시거든요.. 이렇게 예쁘신 분이라도 이런 발 보기 힘든데...]
[왜냐하면요, 그런 분들은 구두를 즐겨신으시니까 발이 많이 상하시거든요... 요즘 유명한 도수코 안보세요?]
옆에 있던 다른 직원도 다가와서 말을 거든다.
[도수코..요?]
더 이상한 듯이 나를 쳐다본다.
[도전수퍼모델코리아요.. 거기 나오는 분들 보면 다 힐을 신으시거든요?]
/그게 나랑 무슨 관계가 있는 거지?/
나는 순간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예요?]
[아~ 손님이 모델 아니면 적어도 모델 지망생이신 줄 알았거든요... 고등학생? 아니세요?]
[아닌데요...]
[윽! 죄송합니다... 되게 신기한 분이시다... 그렇지 않냐? 하하하..]
쑥스러움을 감추려고 하는지 웃음으로 무마하는 직원이다.
/휴... 빨리 내가 누군지 알아보러 가야되는데... 자꾸 시간이 늦어지네../
[그러면 7센치 힐 종류를 골라드려볼게요. 사람마다 자기에게 맞는 높이가 있지만 대체로 7센치가 신었을 때 가장 예쁜 높이라고 알아두시면 되요!]
[......]
남자직원은 내 운동화를 슬쩍 보더니 잠깐 사라졌다가 두 명의 직원이서 장난기가 담긴 얼굴로 얘기하면서 나무색깔의 구두를 들고 왔다.
[키가 좀 되시니까 많이 높은 건 안 신으셔도 될 것 같네요... 이건 우드뮬이라고 하는 건데요. 여름에 되게 시원하실거예요.]
[아까 신발 사이즈가 240이시더라구요... 9센치 힐이지만 앞 굽이 있어서 그렇게 높은 건 아닙니다.]
[네...]
[한 번 신어보시죠...]
남자 직원 두 명이서 내 발목을 잡고 발에다가 구두를 신겨주었다.
나는 일어서보려다가 앞으로 휘청거렸다.
앞에는 다행히 남자직원이 서 있어서 내 양 어깨를 잡아 중심을 찾도록 도와주었다.
[아! 고맙습니다...]
/다리 전체에 힘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 느낌이 이상해... 무릎은 나오고 엉덩이는 더 들리는 느낌이고.../
나는 조금 걸어봤다.
엉거주춤 걸었지만 나름 적응이 되는 것 같았다.
[잘 어울리시는데요? 7센치라도 처음에는 좀 높다고 생각되실 수도 있어요. 근데 뒤에서 보니까 다리 근육도 안 올라오고.. 괜찮겠네요... 좀 더 높은 것도 신어도 되시겠지만, 키도 있으시고 다리 자체도 기셔서 그닥... 필요는 없어보이네요...]
구두를 가지고 온 점원이 허리를 숙여서 구두를 봐주고 내 주위를 돌아다니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해주었다.
[여자의 DNA 속에는 구두에 대한 적응력이 존재하거든요... 손님도 역시 금새 적응하시네요...]
내 반바지에 텍을 떼주었던, 제일 높은 직급인 것 같은 이 직원은 무표정으로 말도 안되는 얘기를 진지하게 덧붙였다.
그 모습에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그러자 뒤에 있는 직원들은 "오~"라는 입 모양을 서로 마주보며 어깨를 툭툭치고 웃었고 그 말을 한 직원은 돌아보며 그 둘에게 주위를 주었다.
/휴... 나는 빨리 가서 찾아보고 싶은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지?/
[마음에 드시나요? 다른 거 더 보시겠어요? 손님?]
[아니요... 이거 할게요..]
[아... 그러시겠어요? 그럼 계산 도와드릴게요... 이쪽으로...]
나는 걸으려고 하니 자연스럽게 엉거주춤하게 다리를 약간 구부리게 되었고 그 자세로 힐을 끌면서 계산대 앞에 섰다.
[20% 할인에다가 오늘 백화점 30만원 이상 구매하시면 1만원 상품권 드리는데, 그걸로 상품권 박치기 해드릴게요... 그리고 오늘 저희 매장 회원가입하시면 추가로 5% 할인해드리는데 가입하시겠어요?]
[네?]
/아 맞다... 아까 전에도 가격 먼저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는데...이번에도 사기전에 물어본다는 걸 깜빡했어.. 너무 비싼데... 계산 안 하는 것도 이상하게 되어버렸네... 힝.../
[저렴하게 사시는 겁니다. 10만원이상이나 싸게 사시는 거예요...]
[네.. 회원 가입할게요..]
[여기 형광펜으로 표시되어 있는 곳에 성함이랑 주소, 전화번호만 쓰시면 됩니다.]
나는 신수아라고 적고 나머지 주소와 집 전화번호도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고객님, 핸드폰 번호는 없으신가요?]
[아... 있는데요..핸드폰 번호를 적어야하나요?]
[집 전화번호도 괜찮긴한데..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시면 더 좋거든요... 할인행사가 있을 때나 공지사항이 있을 때 문자로 연락을 드리거든요...]
[하시는 게 좋으세요... 저희도 고객관리 해드리기도 편하구요...]
옆에 서 있던 직원도 한 마디 거들었다.
[아... 네... 그럼 적을게요...]
나는 집 전화번호 옆에다가 핸드폰 번호도 썼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음...그러면 이렇게 할인 받으시면... 삼십만 구천이백원이시네요..]
난 카드를 내밀었고 직원은 부리나케 계산을 했다.
[고객님, 운동화는 버려드릴까요?]
옆에 서 있던 다른 남자 직원이 말을 걸었다.
/아... 지금까지 나를 이상하게 대하던데... 만약 내가 저것까지 가져간다고 하면 더 이상한 사람 취급할까?/
[네! 필요없어요..]
나는 호기롭게 필요없다고 하고 발걸음을 돌렸다.
오전에 나올 때와 다르게 발끝에서부터 시원한 느낌을 받았고 무엇인가 내가 달라졌다는 느낌을 받으며 뿌듯한 발걸음으로 백화점을 나섰다.
46.
/...내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구...
...역사를 간직한 옛 사람들의 청동 거울.../
/...무엇을 통해 비쳐지는 내 모습이 진짜 내 모습일까.
나르시스는 물에 비친 모습을 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무엇인가를 통해 비추어진 자기 모습은 왜곡없는 100% 자신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47.
찡긋.
눈썹들이 이때다 싶은지 서로 가까이 다가선다.
눈이 부셨다.
그리고 백화점 안과는 다르게 후텁지근한 공기가 내 몸을 휘감았다.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 역시 연신 손으로, 부채로 햇빛을 가리거나 바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보민이 덕분에 적어도 갑갑하게 이 더운 공기 속을 걷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몸에 이미 익숙해져 버렸던 반바지와 우드뮬 힐이 새삼 느껴졌다.
나는 백화점 쇼윈도에 조심스레 다가가서 모습을 비춰보기로 했다.
/나를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건 진짜 오랜만이야.../
아니나 다를까, 티셔츠와 반바지, 힐, 내 손만 윈도에 비쳤다.
그래도 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서인지, 내가 누구인지가 궁금해서인지 두근거림은 덜했다.
/흠흠, 어서 가자, 가.. 피시방이 어디있지?/
나는 순간 어색함에 혼자 헛기침을 하면서 몸을 돌렸다.
또르각, 또르각, 또르각...
/에튀두하우스, 여기는 화장품 가게.. 파리바게쓰... 탐앤제리스, 여기는 커피집... 모텔... 디비디방... 모텔... 디비디방... 모텔... 중국집... 찜질방... 아! 저기 있네... 휴.. 되게 찾기 힘들다.../
또르각, 또르각, 또르각...
[저기요!]
갑자기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톡톡 친다.
/누구...?/
[......]
[혹시 핸드폰 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엄청 예쁘셔서 친해지고 싶거든요...]
/네...?!/
48.
재민이는 내게 걱정말라고 말하긴 했지만, 오히려 최근에 계속 한숨을 푹푹 내쉬는 모습을 보이는 재민이 때문에 난 재민이가 더 신경이 쓰였다.
한 동안 말이 없이 먼 산을 보기도 하고, 손톱을 물어 뜯으며 고심하는 얼굴이었다.
/수상한데... 재민이가 왜 저러지? 나 때문인가?/
자유롭게 자리를 앉는 우리 반은 그 신문 사건이 있은 후로 나를 교실 맨 뒤쪽 복도 자리로 은근히 밀어 내었기 때문에 키가 작은 내가 수업시간에 칠판이 보이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래도 키가 큰 재민이의 반응을 옆에서 쉽게 볼 수 있어 나름 만족하고 지내는 중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 나는 자꾸 재민이가 앞에 앉은 보영이의 일거수일투족을 유심히 보고 있다는 걸 눈치 챘다.
보영이가 웃으면 따라서 미소 짓고, 지우개나 수정테이프를 빌려달라고 하면 기쁜 듯이 빌려주곤 했다.
내가 눈치를 챈 날로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오후, 재민이는 수업이 끝나기 전에 보영이의 어깨를 툭툭 쳤다.
[저기... 보영아?]
[어! 왜? 나 집에 가야되니까 빨리 말해!]
[아! 많이 바뻐?]
[아씨! 왜!]
[아니.. 학교 끝나고 잠깐만... 잠깐만 나랑 얘기할 수 있어? 할 얘기가 있는데...]
흠칫.
순간 나랑 눈이 마주친 보영이었다.
그러자 보영이는 씩 웃으면서 과장스럽게 승락했다.
[그.래! 어디서 볼까? 학교 강당 옆에서 볼까?]
[그...그래! 고마워!!]
나는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짓는 재민이의 표정을 보면서 지금까지 설마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했다.
/재...재민이가! 보영이를 좋아하나봐!/
나는 터덜터덜 걸어서 집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뒤에서 재민이가 성큼성큼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수아야~~]
잠깐 흘긋 쳐다보니 되게 기분 좋은 표정의 재민이었다.
[왜 불러?]
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한다.
[나 보영이랑 사귄다?!]
/눈치도 없는 병신새끼... 내가 왜 고등학교를 갔는데!/
[어! 그래.. 축하해... 근데 내가 축하해주면 되는거야?]
내 목소리는 눈에 띄게 흔들리고 있었다.
[흐흐흐... 당연하지! 참! 근데 보영이가 너에 대해서 많이 묻더라? 나보고 친하냐고...]
순간 불안감이 확 밀어닥쳤다.
[설마... 너 친하다고 했어?]
[당연하지! 야! 너랑 나랑 안지가 몇 년이냐?]
/아! 아씨...그걸 말하면 어떡해.../
[아... 몰라! 나랑 친하다고 하면 어떡하냐 바보 같이! 걔 진짜 이상한 애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 또 화낸다?! 야...! 내가 뭘 잘못했다고 또 화를 내냐? 그리고! 나한테는 그러는 건 몰라도 너 왜 보영이한테 화내?]
재민이는 갑자기 내가 격앙된 목소리로 반응을 하니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
[몰라몰라... 니 맘대로 해...! 니가 나랑 친하다고 했으니까 니가 책임져!]
[아 씨ㅂ...또 뭔데 너! 지금까지 기분 좋다가 너 때문에 기분 잡쳤잖아...]
[......]
[야! 이렇게 그냥 가기냐?]
[......]
[야! 신수아!]
나는 그냥 재민이를 뒤에 놔두고 방으로 들어왔다.
다음날부터, 보영이는 모든 반 아이들이 보라는 듯이 재민이의 팔을 끼고 쉬는시간에도 돌아다니고, 자기 친구들도 소개시켜주고 하는 모습을 보았다.
특히 보영이가 팔짱을 낄 때마다, 재민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는데, 보영이의 한쪽 가슴이 재민이의 팔에 짓눌리는 것이 함께 보였다.
보영이가 재민이와의 시간이 늘어날수록 재민이와 나와의 대화는 줄어들었다.
그 날 저녁, 집에서 나는 재민이네 방으로 찾아갔다.
[황영동, 정기철. 잠깐 나가줄래?]
[야! 참나..여기는 우리방이야! 니가 왜 나가라마라야?]
[.....]
나는 아무말 없이 쏘아보고 있었다.
[아! 알았다 알았어! 재민아 안그래도 우리 농구 1대1 하기로 했으니까 원장 수녀님한테 운동장에 있다고 말해줘!]
[오케이!]
[하여튼 좋겠네! 재민이~ 축하해! 좀 있다가 더 얘기해줘!]
[크크크.. 알겠어! 고맙다! 짜식!]
영동이와 기철이는 농구공 하나를 들고 방을 나갔다.
[야! 그렇게 좋냐?]
재민이는 방에서도 실실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야! 좋지~ 울 학교에서 몸매라면 서보영이고, 미모도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보영이랑 사귀면...크... 어떤 느낌인지 넌 모를거다!]
/난 걔 싫어.../
[...너, 나랑 약속한 거 안 잊었지?]
[뭐?]
[얘기해주기로 했었잖아... 애들한테.. 그 신문 때문에 나 완전 이상한 사람 취급받고 있잖어...]
[아! 그거? 그거 니가 오바한 거 라던데?]
[오바라니?]
[보영이 말대로, 넌 좀.. 너무 예민해...]
[응? 걔...걔가 나에 대해서 뭘 안다고?]
[맞잖아... 솔직히! 어릴 적부터 넌 좀 신경질 적이었고, 다른 사람 반응에 예민해서 화도 잘 내고...]
[하! 너 진짜 나에 대해서 그렇게 생각해? 그리고 걔한테 그렇게 말했어? 내가 예민하고 신경질 적이라고?]
[난 틀린말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
난 잠시동안 재민이를 노려봤다. 어느새 재민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사라져 있었다.
/나 걔 싫어.../
[재민아...난 걔 싫어...걔가 그 소문 퍼뜨린 애잖...]
[그만해 너! 보영이에 대해서 나쁘게 말하지마... 아무리 너라도 한 번만 더 그러면 가만 안 둬! 빨리 가! 니 방으로!]
[재민아...]
[아씨... 닥치고 빨리 나가... 게다가 원장수녀님 돌아보러 오실 시간이야...]
반 강제로 재민이가 밀어내다시피 하는 바람에 난 재민이 방 밖으로 밀려났고, 엉엉 울면서 내 방으로 돌아왔다.
휴... 힘들다~^^
2장 분량 업뎃했는데 좀 많이 보셨으면 좋겠다 히히~
어쩌면 좀 더 빨리 야한 장면 넣어볼지도 몰라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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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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