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7 특수임무대대.
특전사령부 직할부대로 특전사 중의 특전사라고 불리는 최정예 부대이다. 흔히 707 특임대로 불렸으며, 이들은 외국으로 따지면 델타포스 등의 유명한 세계의 특수부대와 비슷하다. 707 특임대가 일반인들에게 낯선 이유는 무엇보다 보안이 철저했기 때문인데, 부대원들의 개인정보마저 국가기밀 2급이라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대테러 특수 임무와 전쟁이 발발할 경우 X 파일로 불리는 특수 임무이며, 현재까지도 실존하고 있는 SAS, 그린베레, GIGN 등의 정상급 특수부대와 동일한 훈련을 받을 만큼 일개 부대원들의 능력은 일반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뛰어났다.
여기까지는 707 특임대에 대해 세상에 알려진 사실이었고 - 물론, 이들에 알려진 사실도 실제에 비해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 이 707 특임대에서 더욱 특별한 부대원들로 꾸려진 집단이 있었으니, 그들이 곧 Z 부대였다.
Z 부대는 707 특임대에서 가장 뛰어난 부대원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숫자는 고작 10명에 불과 할 정도로 소수 집단이었다. 하지만, Z 부대원들의 개개인의 능력들은 707 특임대의 다른 부대원들의 4-5명 정도는 상대할 정도로 뛰어났고, 707 특임대의 다수들도 Z 부대에 들어가고 싶어 할 정도로 능력도 능력이지만 명예가 높은 집단이었다.
정부의 고위 관료 및 군 관계자 몇몇만 알고 있다는 Z 부대. 이들 부대에 소속된 부대원들의 개인정보는 국가기밀 1급에 해당되었고, 강훈이 이곳에 소속되어 있었다.
훈은 20살의 나이에 특전사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군 생활 내내 다른 전우들에 비해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서 24살의 나이에 707 특임대에 소속될 수 있었는데, 그 지옥 같다는 특임대의 훈련도 훈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주위 전우들은 그런 훈을 바라보며 운동을 했어도 국가대표로 나가 올림픽 금메달은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1년 뒤.
훈은 707 특임대의 다수가 꿈꾸던 Z 부대에 입성하게 되었다. Z 부대는 고작 10명으로 꾸려졌으며 707 특임대에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자리가 나지 않으면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물론, 애초에 707 특임대의 개인이 Z 부대의 개인보다 능력이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가정이 말이 되지 않기도 했지만...
훈은 운이 좋았던 것일까? 그건 결코 아니었다. 707 특임대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던 훈은 1년 간 의 훈련 속에서 상관 및 주위 전우들에게 이런 수식어로 불리었다.
707 특임대 역사상 최고.
훈을 지칭하는 이 수식어에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건 분명 사실이었다. 707 특임대를 넘어서 세계 정상급 특수부대와 공동 훈련을 할 때에도 홀로 튀는 훈이었다. 그만큼 훈의 능력은 뛰어났고, 이를 지켜 본 군 고위 관계자들은 협의를 거쳐 기존에 있던 규정을 깨고 Z 부대의 열 한 번째 부대원으로 훈을 선택했다.
훈이 Z 부대에 소속되면서 Z 부대는 창설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 한 명의 부대원들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는 결코 틀린 결정이 아니었다. 707 특임대의 훈련도 지옥 같았지만, Z 부대의 훈련은 세상의 어떤 단어를 가져다 쓰기 힘들 정도로 가혹하고 지독했다. 상상 그 이상의 훈련, 그 지독한 훈련 속에서도 훈은 꿋꿋이 견뎌냈고, 기존의 열 명의 Z 부대원들은 훈을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 한 번의 훈련을 마치고 Z 부대원들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던 최광필 대장은 Z 부대원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에서 훈을 두고 말했다.
“훈. 네가 최고이다.”
침투, 경계, 생존, 사격, 진압, 추적, 치료, 체력, 대결, 무기 다루는 기술 등 모든 훈련에서 훈의 역량은 최고였다. 기존의 Z 부대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쩌면 이런 훈의 능력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세계 정상급 특수 부대와 공동훈련에서도 압도적인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던 그가 아니던가.
생존을 다투는 부대에서는 뛰어난 능력이야 말로 전우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훈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Z 부대원 모두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었고, 이 신뢰를 바탕으로 훈과 Z 부대원들은 세계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 작전에 투입되어 큰 성과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또 지났다.
훈은 26살이 되었고, 여전히 실전이 없는 시기에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Z 부대의 역사상에서도 최고의 전사라 불리던 훈은 이 훈련에서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7층의 대형 건물 곳곳에서는 불이 붙었고, 새까만 유독가스를 내뿜고 있었다. 훈을 비롯한 Z 부대원들은 순차적으로 건물에 침투하여 건물 곳곳에 숨겨진 자신들의 이름표를 찾아오면 되는 훈련이었다. 비교적 간단한 것 같지만 이 훈련은 상당히 위험했다. 일단 유독가스에 장시간 노출이 되면 중독으로 인해 사망을 할 수도 있었지만, Z 부대원들에게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주지 않았고, 또한 화상의 위험이 있었지만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건 없었다. Z 부대원들이 오로지 가져갈 수 있는 건 흔한 육군에서도 쓰는 실탄이 장착 된 K-1 한 자루 뿐이었다.
건물 곳곳에는 테러범들로 가장된 철제 인형들이 있었는데, Z 부대원들은 발견 즉시 준비해 간 총으로 철제 인형의 가슴 혹은 머리 등을 쏘지 못하면 임무는 실패하게 되어 있었다. 각자의 몸에 장착 된 센서로 이것을 판별했고, 부대원들이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실전에서 임무 실패는 물론이거니와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음을 가정한 훈련이었다.
Z 부대원들 중 열 번째로 훈은 평소와 같이 차분한 마음으로 건물에 들어갔다. 훈이 건물 내부에 들어서자 유독 가스가 숨을 쉬지 못하게 했고, 새까만 연기로 인해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5분 이내에 7층 건물을 뒤져서 자신의 이름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훈이었다. 그 시간이 넘어가면 아무리 뛰어난 전사인 훈이라도 유독가스를 이기기는 힘들었다.
탕.
숨을 최대한 참으로 재빠른 걸음으로 건물 내부를 수색하던 훈은 철제인형이 시야에 확보됨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고, 철제인형의 가슴에는 구멍이 하나 뚫렸다. 시야가 확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철제인형의 가슴을 정확히 사격하는 건, 정말 훈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철제인형을 사살(?)하면서 건물을 수색하던 훈은 7층에 가서야 자신의 이름표가 달린 수통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쳇... 나만 7층인가.’
뛰어난 능력을 가진 훈에 대한 배려(?)였다. 7층까지 올라 온 훈은 낮은 자세로 수통을 집어 들고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건물에 침투한 지, 약 4분이 지난 상황이었다. 다행히 수통에는 물이 있었기 때문에, 훈은 자신의 팔에 물을 부은 후 코와 입을 대고 잠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젠장.’
이제는 빠르게 다시 건물 1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훈은 잠시 물을 통해서 호흡을 한 후에 자세를 낮추고 재빠르게 건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5층에 도달했을 무렵, 훈의 시야에 철제인형이 하나 포착이 되었다.
탕.
많은 훈련 끝에 반사적으로 사격을 한 훈은 오른손 검지에 힘을 주면서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힘이 들어간 검지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시야가 제대로 확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살의 타겟이라 판단했던 철제인형(?)이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아아악.”
훈은 황급히 쓰러진 철제인형으로 달려갔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대... 대장님.”
그는 철제인형이 아니었다. 그는 훈의 다음으로, 이번 훈련의 마지막으로 건물에 침투한 최광필 대장이었다. 반사적이지만 훈의 뛰어난 사격 실력에 최 대장은 정확히 왼쪽 가슴에 총상을 입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즉사를 해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최 대장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티며 자신에게 다가 온 훈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 가... 족... 사랑... 한... 다... 전...해...”
“대장님!!!”
그렇게 최 대장은 훈의 단 한 번의 실수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훈은 울부짖었다. 실전에서는 많은 테러범들을 사살하기도 했지만, 그건 국가에서 보증한 합법행위였다. 아니, 이번 사건은 합법과 불법을 떠나서 자신의 실수 하나로 동료를 죽였다는 절망감과 죄책감이 훈의 온 몸과 정신을 감싸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죽은 최 대장 옆에서 정신을 놓아버렸다.
이때 최 대장의 나이 36살이었다.
이 참혹한 훈련의 결과는 Z 부대원들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줬고, Z 부대원들의 명예는 실추가 되었다. Z 부대의 존재를 군 고위 몇몇 관계자들은 이 사건을 은폐하였고, 훈은 몇몇 조사가 끝난 후 불명예 전역을 해야 했다. - 훈이 처벌을 받지 않는 것에는 훈련 중 단순 사고의 이유도 있었지만, 사건 은폐 때문이기도 했다 -
불명예 전역을 한 훈은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불명예 전역을 했기 때문에 국가에서 보상도 받지 못했고, 성인이 된 20살 때부터 군 생활을 했던 터라 26살의 나이에 갑작스레 사회에 나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도 못했고, 준비도 되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훈의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는 것도 한 몫 했다. 매일 밤 자신의 실수가 악몽으로 다가와 잠을 이루지 못했고, 또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어떻게 보면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든 훈이었기에 군복을 벗은 후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또 다시 1년이 흘렀고, 역사상 최고의 Z 부대원이었던 훈은 점점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술에 취해 잠을 자던 훈은 하나의 꿈을 꾸게 되었다. 훈은 꿈속에서 최 대장을 만날 수 있었고, 그는 훈을 보며 한없이 울기만 했다. 꿈속이었지만 훈은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고, 자신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하는 최 대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울고만 계십니까?”
꿈속에서 나타난 최 대장은 그런 훈의 질문에 대답을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훈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유? 어? 따?”
최 대장은 몇 개의 글자만 훈에게 계속 말을 하고 있었고, 여전히 소리가 나지 않아서 훈은 최 대장의 입모양에 집중을 해야 했다.
“유언? 딸? 말씀입니까?”
겨우 말을 알아들은 훈이 최 대장에 질문을 했고,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최 대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훈에게 손을 흔들며 점점 희미해져갔다. 훈은 그저 사라지는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꿈을 꾸고 난 훈은 자신이 얼마나 최 대장에게 미안한 짓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을 가족에게 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죄책감에 빠져 1년이라는 시간동안 술과 함께 살았던 것이었다.
이때부터 훈은 최 대장의 가족을 찾기 위해 나섰다. 최 대장의 경우 Z 부대원 소속이었기 때문에 개인정보가 국가 기밀 1급이었다. 더구나 훈은 더 이상 Z 부대원이 아니어서 최 대장의 정보에 접근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훈은 포기하지 않았다.
설령 불가능한 일이더라도, 또 무슨 짓을 하더라도 최 대장의 가족을 찾아서 사죄를 하고, 또 그의 유언을 알려야 했다. 그건 훈의 일생의 의무였다.
그렇게 최 대장의 가족 찾기를 시작한 훈에게 운이 따랐다. Z 부대원의 같은 동료에게서 최 대장의 가족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훈은 그 정보대로 최 대장의 가족을 찾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실망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훈이 찾아간 곳에는 최 대장의 가족이 살고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주소를 옮긴 듯 했다. 그때부터 훈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최 대장의 가족을 추적해 나가기 시작했고, 또 사람을 써서 그들의 행방을 알아보았다.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인내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은 훈이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드디어 최 대장의 가족들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최 대장 가족의 행방을 겨우 알아낸 훈은 기쁨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그 기쁨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최 대장의 가족 상황이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최 대장에게는 아내와 딸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최 대장이 죽은 지, 1년 6개월이 된 이 시점에서는 딸만 있을 뿐이었다. 최 대장의 아내가 모든 재산을 정리한 후, 딸을 버리고 종적을 감춰버린 것이었다. 최 대장의 하나 뿐인 딸은 고아원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고작 7살이었다.
“그래서... 내 꿈에 나왔던 거구나...”
훈은 혼자 중얼거렸다. 왜 최 대장이 나와서 ‘유언, 딸’이라는 두 단어만 언급을 했는지, 이해가 갈 듯 했다.
최 대장의 아내는 없고, 딸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훈은 유언을 알려야 하 지, 고민이 되었다. 딸이 조금 더 크면 알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은 딸을 만나보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그래서 훈은 최 대장의 딸이 있는 고아원으로 향했고, 그의 딸을 만난 후, 심각한 절망감에 빠졌다.
“아... 저씨는 누구예요?”
올망졸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여자아이에게 훈은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최 대장의 딸은 두 다리가 없었다.
“사... 삼촌이야.”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은 훈이었다. 고아원에 다녀온 후에는 다리가 없는 최 대장의 딸이 온통 머릿속에 남았다. 그 작고 여린 아이가 부모 없이 장애를 가진 상황에서 어떻게 세상에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또 너무나 괴로운 훈이었다. 자신의 실수 하나로 가정까지 깨지면서 안 그래도 장애가 있는 여자 아이의 인생을 너무나 힘들게 한 것 같았다.
“채... 책임 져야 해... 내가 평생을...”
훈은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결심을 했다. 저 작고 여린 여자 아이를 자신이 죽는 그 날까지 책임을 져야겠다고...
그 때부터 훈은 닥치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막노동이고, 시간제 알바이고 가리는 것이 없었다. 조금의 돈이라도 모을 수 있다면 기꺼이 몸을 맡겼고, 훈은 잠자는 시간, 먹는 것도 아끼며 돈을 모았다. 그리고 고아원을 통해서 최 대장의 딸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6개월이 흘렀고, 오로지 최 대장의 딸을 위해 살고 있던 훈에게 한 중년의 남자가 나타났다.
“자네 나와 일을 해보지 않겠는가?”
훈은 그 중년의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중년의 남자 옆으로 몇몇의 남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고아원의 여자 아이를 신경 쓰는 것 같은데... 내가 그 여자 아이의 평생을 책임져 주겠네. 지금 자네가 버는 돈으로는 그 여자아이를 대학에나 보낼 수 있겠는가? 난 그 여자 아이의 두 다리도 만들어 줄 수 있다네. 어떠한가?”
중년 남자의 제안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예쁜 숙녀가 되어서 보통의 남자와 결혼도 할 수 있게 해주겠네. 또 자식도 낳아서 행복한 가정도 이루게 해주고 말이야. 내 제안이 불만족스러운가?”
“지... 진짜입니까?”
“난 거짓말을 하지 않네. 자네만 내 옆에서 충성한다면 말이야.”
믿기 어려운 제안이었지만, 훈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중년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설령 자신이 악마와 손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최 대장의 딸의 인생에 행복이 깃들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선택을 하리라고 결심했던 훈이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자네를 앞으로 제트라고 부르도록 하지. 대한민국 최고의 전사가 아니었던가. 껄껄”
***
“캬아아 좋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술 한 잔 안마시던 녀석이... 어느새 불혹의 나이에 술꾼이 되어 있으니...”
선남은 민혁의 연락을 받고 밤늦게 그와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있었다.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손으로 찢어 먹는 파전은 정말 꿀맛이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민혁이 한 마디 더했다.
“그래도... 그 옛날 할머니가 해준 빈대떡이 맛있었던 말이야.”
“할머니?”
“너희 할머니 말이야. 고등학교 때 한 번씩 놀러 가면 없는 형편에도... 빈대떡 부쳐주고 그러셨는데... 참 그리워.”
“그랬었지. 나도 우리 할머니 보고 싶네.”
민혁은 선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아직 본론을 꺼내지는 않았다.
“참 좋은 분이셨지... 옛날 생각도 나고... 아무리 생각해도 옛날이 더 좋았단 말이야. 아무것도 없었어도... 잘 살았는데 말이야. 지금은 돈에 시달려서 사니 원...”
“나도 요새 그런 생각 많이 해. 차라리 옛날이 참 좋았지.”
민혁은 선남의 빈 잔에 막걸리를 따라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옛날이 좋았어. 참 대학 때 기억 나냐? 나 등록금 없을 때, 선남이 네가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보태주고 그랬잖아.”
“그 이야기를 왜 하냐?”
“참 고마웠어... 나 중동에서 돌아와서 힘들 때도... 선남이 네가 도와주고... 내가 참 받은 게 많다.”
“낯간지럽기는... 쩝... 한 잔 마시자.”
민혁의 말에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 선남이 잔을 들었고, 쭈욱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바라본 민혁도 곧바로 한 잔을 비운 후, 다시 두 잔에 막걸리를 따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선남이 너는 날 항상 도와준 것 같아.”
“에이... 그건 아니지.”
“내가 널 도와준 적도 있냐?”
민혁의 물음에 선남이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을 했다.
“나는 솔직히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왕따였잖아. 도둑으로 몰릴 때 기억 나냐? 그때도 네가 나서서 해결해줬잖아. 민혁이 네가 훔쳤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잖아.”
“하하... 그랬던가?”
“그리고 내가 민혁이 너에게 정말 고마웠던 것은... 우리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였어. 일가친척 없어서... 진짜 장례식장이 텅텅 비었는데... 너만 유일하게 3일 내내... 내 옆에 있었으니... 아 그때 느꼈지. 이 최민혁이라는 놈은... 내 친구이자 은인이라고...”
“에이... 은인까지는 무슨... 당연한 일을 한 것을...”
옛날이야기를 꺼내면서 선남과 민혁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향수에 젖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둘 사이의 친구가 된 것에 대해 흐뭇한 감정을 감추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술자리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하지만... 그 당연함이 누군가에는 큰 격려일 수도 있어.”
“그런가? 그러면 선남이 너야 말로 내 인생에 큰 도움을 준 것 같은데... 나 진짜 중동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앞길이 막막했다. 나이는 먹었지... 할 건 없지... 그런데 선남이 네가 도와주어서 커피숍도 차리고... 지금은 자리도 잡아가니... 선남이 너 사람 하나 목숨 구한거야. 아이고... 생각해보니 그 때 돈도 다 못 갚았네..”
“목숨까지는 무슨... 어려울 때 돕는 게... 친구지.. 안 그래? 그리고 돈은 별로 신경 쓰지 마. 우리 사이에 돈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
선남의 말을 들은 민혁인 지금이 그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맞아. 어려울 때 도우는 게 진정한 친구지. 선남아.”
“왜?”
“너 지난번에 나 만날 때... 했던 말 기억 나냐?”
민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선남에게 질문을 던지자, 그 의도를 알아 챈 선남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대충...”
“힘들었지?”
“솔직히... 뭐 그렇지.”
선남은 일부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지만, 민혁은 그런 선남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야. 너 정말 어려운 상황이야.”
“......”
“선남아. 사실 나 말이야. 그 날 이후... 많은 생각을 했어. 내 친구 선남이가 이렇게 힘든데...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진짜 고민이 많았지.”
“... 휴우.”
“선남아. 나 너에게 도움 주고 싶어.”
선남이는 민혁이가 고마웠다. 자신을 생각해준 것도 고마웠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도 고마웠다. 하지만, 민혁에게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건 자신만이 해결해야 했고, 무엇보다 위험했다. 친구인 민혁을 위험지대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안 돼.”
“왜? 위험해서?”
“음...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 위험해. 그래서 안 돼.”
“너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니야?”
선남의 말을 들을 민혁이 순간 불같이 화를 냈고, 깜짝 놀란 선남이 뒤로 넘어질 뻔 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한 줄 알아. 위험할 것 뻔히 알면서도 너를 도와준다는 결심... 나 무시하는 거야? 나 못 믿는 거야? 우린 친구 아닌 거야?”
“... 민혁아... 고마운데...”
“왜 너만 착한 척 하는 건데? 나도 너 도와줄 수 있다고!!”
민혁의 단호한 말에 선남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선남이 너를 위해서 나름 계획도 세웠단 말이야... 가정 문제를 해결하고... 강 이사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내 진심 이렇게 몰라주면 나 서운하다. 친구가 힘들 때 도와주는 게 진짜 친구라면서... ”
“............”
“선남이 넌 모르겠지만... 그 날 나에게 했던 이야기 대단히 충격적이었지만... 왜 나에게 다 말했을 것 같아? 너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단 뜻이야. 기쁨은 나누면 2배가 되고, 걱정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하더라. 머리가 하나보다는 두 개인 것이 훨씬 상황을 헤쳐 나가기 편하다는 것... 너도 알잖아. 선남이 너 스스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야. 그날... 술기운에 나에게 도와달라고 울부짖은 거라고... 넌 그거 왜 모른 척 하는 건데?”
강한 어투로 말하는 민혁의 말을 듣고 선남은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민혁의 말이 다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힘들어서 자신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민혁아...”
“왜 임마?”
“... 고맙다... 너 근데 정말 괜찮아?”
“새꺄. 커피숍이라도 팔아서 도와 줄 테니까... 함께 하자.”
민혁의 굳은 결심을 느낀 선남은 결국 그에게 도움을 받기로 결심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손을 내민 친구의 진심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선남은 민혁을 바라보며 웃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게... 우정인가.’
... 계속
도장 찍어보자고 했더니, 댓글이나 추천수가 많아지는군요 -_-a
쪽지로 삭제 된 글을 볼 수 없냐는 문의를 하셨는데,
이미 9월 23일부터 공지를 했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지워진 글은 당분간 볼 수 없습니다.
완결 후에, 다시 보고 싶은 분들이나 새로 보고 싶은 분들의 성원이 있으면
일정 기간을 두고 재공개 하는 방식을 취하겠습니다.
특전사령부 직할부대로 특전사 중의 특전사라고 불리는 최정예 부대이다. 흔히 707 특임대로 불렸으며, 이들은 외국으로 따지면 델타포스 등의 유명한 세계의 특수부대와 비슷하다. 707 특임대가 일반인들에게 낯선 이유는 무엇보다 보안이 철저했기 때문인데, 부대원들의 개인정보마저 국가기밀 2급이라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이들의 주요 임무는 대테러 특수 임무와 전쟁이 발발할 경우 X 파일로 불리는 특수 임무이며, 현재까지도 실존하고 있는 SAS, 그린베레, GIGN 등의 정상급 특수부대와 동일한 훈련을 받을 만큼 일개 부대원들의 능력은 일반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뛰어났다.
여기까지는 707 특임대에 대해 세상에 알려진 사실이었고 - 물론, 이들에 알려진 사실도 실제에 비해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 이 707 특임대에서 더욱 특별한 부대원들로 꾸려진 집단이 있었으니, 그들이 곧 Z 부대였다.
Z 부대는 707 특임대에서 가장 뛰어난 부대원들로 구성되었으며, 그 숫자는 고작 10명에 불과 할 정도로 소수 집단이었다. 하지만, Z 부대원들의 개개인의 능력들은 707 특임대의 다른 부대원들의 4-5명 정도는 상대할 정도로 뛰어났고, 707 특임대의 다수들도 Z 부대에 들어가고 싶어 할 정도로 능력도 능력이지만 명예가 높은 집단이었다.
정부의 고위 관료 및 군 관계자 몇몇만 알고 있다는 Z 부대. 이들 부대에 소속된 부대원들의 개인정보는 국가기밀 1급에 해당되었고, 강훈이 이곳에 소속되어 있었다.
훈은 20살의 나이에 특전사로 군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군 생활 내내 다른 전우들에 비해서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아서 24살의 나이에 707 특임대에 소속될 수 있었는데, 그 지옥 같다는 특임대의 훈련도 훈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주위 전우들은 그런 훈을 바라보며 운동을 했어도 국가대표로 나가 올림픽 금메달은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1년 뒤.
훈은 707 특임대의 다수가 꿈꾸던 Z 부대에 입성하게 되었다. Z 부대는 고작 10명으로 꾸려졌으며 707 특임대에서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자리가 나지 않으면 들어가기가 힘들었다. 물론, 애초에 707 특임대의 개인이 Z 부대의 개인보다 능력이 더 뛰어날 수 있다는 가정이 말이 되지 않기도 했지만...
훈은 운이 좋았던 것일까? 그건 결코 아니었다. 707 특임대에서 월등한 능력을 보여주던 훈은 1년 간 의 훈련 속에서 상관 및 주위 전우들에게 이런 수식어로 불리었다.
707 특임대 역사상 최고.
훈을 지칭하는 이 수식어에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그건 분명 사실이었다. 707 특임대를 넘어서 세계 정상급 특수부대와 공동 훈련을 할 때에도 홀로 튀는 훈이었다. 그만큼 훈의 능력은 뛰어났고, 이를 지켜 본 군 고위 관계자들은 협의를 거쳐 기존에 있던 규정을 깨고 Z 부대의 열 한 번째 부대원으로 훈을 선택했다.
훈이 Z 부대에 소속되면서 Z 부대는 창설 이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열 한 명의 부대원들을 보유하게 되었고, 이는 결코 틀린 결정이 아니었다. 707 특임대의 훈련도 지옥 같았지만, Z 부대의 훈련은 세상의 어떤 단어를 가져다 쓰기 힘들 정도로 가혹하고 지독했다. 상상 그 이상의 훈련, 그 지독한 훈련 속에서도 훈은 꿋꿋이 견뎌냈고, 기존의 열 명의 Z 부대원들은 훈을 인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단 한 번의 훈련을 마치고 Z 부대원들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던 최광필 대장은 Z 부대원들이 모두 모여 있는 곳에서 훈을 두고 말했다.
“훈. 네가 최고이다.”
침투, 경계, 생존, 사격, 진압, 추적, 치료, 체력, 대결, 무기 다루는 기술 등 모든 훈련에서 훈의 역량은 최고였다. 기존의 Z 부대원들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어쩌면 이런 훈의 능력은 이미 예견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세계 정상급 특수 부대와 공동훈련에서도 압도적인 능력을 자랑하지 않았던 그가 아니던가.
생존을 다투는 부대에서는 뛰어난 능력이야 말로 전우의 신뢰를 얻을 수 있었다. 훈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Z 부대원 모두에게 신뢰를 받을 수 있었고, 이 신뢰를 바탕으로 훈과 Z 부대원들은 세계의 곳곳에서 일어나는 테러 작전에 투입되어 큰 성과들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년이 또 지났다.
훈은 26살이 되었고, 여전히 실전이 없는 시기에는 강도 높은 훈련을 받고 있었다. 그리고 Z 부대의 역사상에서도 최고의 전사라 불리던 훈은 이 훈련에서 자신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7층의 대형 건물 곳곳에서는 불이 붙었고, 새까만 유독가스를 내뿜고 있었다. 훈을 비롯한 Z 부대원들은 순차적으로 건물에 침투하여 건물 곳곳에 숨겨진 자신들의 이름표를 찾아오면 되는 훈련이었다. 비교적 간단한 것 같지만 이 훈련은 상당히 위험했다. 일단 유독가스에 장시간 노출이 되면 중독으로 인해 사망을 할 수도 있었지만, Z 부대원들에게는 어떠한 안전장치도 주지 않았고, 또한 화상의 위험이 있었지만 그들이 가져갈 수 있는 건 없었다. Z 부대원들이 오로지 가져갈 수 있는 건 흔한 육군에서도 쓰는 실탄이 장착 된 K-1 한 자루 뿐이었다.
건물 곳곳에는 테러범들로 가장된 철제 인형들이 있었는데, Z 부대원들은 발견 즉시 준비해 간 총으로 철제 인형의 가슴 혹은 머리 등을 쏘지 못하면 임무는 실패하게 되어 있었다. 각자의 몸에 장착 된 센서로 이것을 판별했고, 부대원들이 조금이라도 반응이 늦었다면 실전에서 임무 실패는 물론이거니와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음을 가정한 훈련이었다.
Z 부대원들 중 열 번째로 훈은 평소와 같이 차분한 마음으로 건물에 들어갔다. 훈이 건물 내부에 들어서자 유독 가스가 숨을 쉬지 못하게 했고, 새까만 연기로 인해 시야 확보에 어려움이 있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5분 이내에 7층 건물을 뒤져서 자신의 이름표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훈이었다. 그 시간이 넘어가면 아무리 뛰어난 전사인 훈이라도 유독가스를 이기기는 힘들었다.
탕.
숨을 최대한 참으로 재빠른 걸음으로 건물 내부를 수색하던 훈은 철제인형이 시야에 확보됨과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고, 철제인형의 가슴에는 구멍이 하나 뚫렸다. 시야가 확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나타난 철제인형의 가슴을 정확히 사격하는 건, 정말 훈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렇게 철제인형을 사살(?)하면서 건물을 수색하던 훈은 7층에 가서야 자신의 이름표가 달린 수통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쳇... 나만 7층인가.’
뛰어난 능력을 가진 훈에 대한 배려(?)였다. 7층까지 올라 온 훈은 낮은 자세로 수통을 집어 들고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했다. 건물에 침투한 지, 약 4분이 지난 상황이었다. 다행히 수통에는 물이 있었기 때문에, 훈은 자신의 팔에 물을 부은 후 코와 입을 대고 잠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젠장.’
이제는 빠르게 다시 건물 1층으로 내려가야 했다. 훈은 잠시 물을 통해서 호흡을 한 후에 자세를 낮추고 재빠르게 건물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5층에 도달했을 무렵, 훈의 시야에 철제인형이 하나 포착이 되었다.
탕.
많은 훈련 끝에 반사적으로 사격을 한 훈은 오른손 검지에 힘을 주면서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힘이 들어간 검지를 멈출 수는 없었다. 그리고 시야가 제대로 확보가 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살의 타겟이라 판단했던 철제인형(?)이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아아악.”
훈은 황급히 쓰러진 철제인형으로 달려갔고, 그곳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대... 대장님.”
그는 철제인형이 아니었다. 그는 훈의 다음으로, 이번 훈련의 마지막으로 건물에 침투한 최광필 대장이었다. 반사적이지만 훈의 뛰어난 사격 실력에 최 대장은 정확히 왼쪽 가슴에 총상을 입었다. 다른 사람이었으면 즉사를 해도 이상할 게 없었지만, 최 대장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버티며 자신에게 다가 온 훈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 가... 족... 사랑... 한... 다... 전...해...”
“대장님!!!”
그렇게 최 대장은 훈의 단 한 번의 실수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훈은 울부짖었다. 실전에서는 많은 테러범들을 사살하기도 했지만, 그건 국가에서 보증한 합법행위였다. 아니, 이번 사건은 합법과 불법을 떠나서 자신의 실수 하나로 동료를 죽였다는 절망감과 죄책감이 훈의 온 몸과 정신을 감싸기 시작했고, 결국 그는 죽은 최 대장 옆에서 정신을 놓아버렸다.
이때 최 대장의 나이 36살이었다.
이 참혹한 훈련의 결과는 Z 부대원들에게 큰 상실감을 안겨줬고, Z 부대원들의 명예는 실추가 되었다. Z 부대의 존재를 군 고위 몇몇 관계자들은 이 사건을 은폐하였고, 훈은 몇몇 조사가 끝난 후 불명예 전역을 해야 했다. - 훈이 처벌을 받지 않는 것에는 훈련 중 단순 사고의 이유도 있었지만, 사건 은폐 때문이기도 했다 -
불명예 전역을 한 훈은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했다. 불명예 전역을 했기 때문에 국가에서 보상도 받지 못했고, 성인이 된 20살 때부터 군 생활을 했던 터라 26살의 나이에 갑작스레 사회에 나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도 못했고, 준비도 되지 않았다. 물론, 여기에는 훈의 정신 상태가 온전하지 않는 것도 한 몫 했다. 매일 밤 자신의 실수가 악몽으로 다가와 잠을 이루지 못했고, 또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어떻게 보면 제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든 훈이었기에 군복을 벗은 후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또 다시 1년이 흘렀고, 역사상 최고의 Z 부대원이었던 훈은 점점 폐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날처럼 술에 취해 잠을 자던 훈은 하나의 꿈을 꾸게 되었다. 훈은 꿈속에서 최 대장을 만날 수 있었고, 그는 훈을 보며 한없이 울기만 했다. 꿈속이었지만 훈은 죄책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고, 자신을 보고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하는 최 대장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울고만 계십니까?”
꿈속에서 나타난 최 대장은 그런 훈의 질문에 대답을 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훈이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유? 어? 따?”
최 대장은 몇 개의 글자만 훈에게 계속 말을 하고 있었고, 여전히 소리가 나지 않아서 훈은 최 대장의 입모양에 집중을 해야 했다.
“유언? 딸? 말씀입니까?”
겨우 말을 알아들은 훈이 최 대장에 질문을 했고,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최 대장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훈에게 손을 흔들며 점점 희미해져갔다. 훈은 그저 사라지는 그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 꿈을 꾸고 난 훈은 자신이 얼마나 최 대장에게 미안한 짓을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의 마지막 유언을 가족에게 전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죄책감에 빠져 1년이라는 시간동안 술과 함께 살았던 것이었다.
이때부터 훈은 최 대장의 가족을 찾기 위해 나섰다. 최 대장의 경우 Z 부대원 소속이었기 때문에 개인정보가 국가 기밀 1급이었다. 더구나 훈은 더 이상 Z 부대원이 아니어서 최 대장의 정보에 접근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훈은 포기하지 않았다.
설령 불가능한 일이더라도, 또 무슨 짓을 하더라도 최 대장의 가족을 찾아서 사죄를 하고, 또 그의 유언을 알려야 했다. 그건 훈의 일생의 의무였다.
그렇게 최 대장의 가족 찾기를 시작한 훈에게 운이 따랐다. Z 부대원의 같은 동료에게서 최 대장의 가족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훈은 그 정보대로 최 대장의 가족을 찾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큰 실망감을 감출 수는 없었다.
훈이 찾아간 곳에는 최 대장의 가족이 살고 있지 않았다. 아무래도 주소를 옮긴 듯 했다. 그때부터 훈은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최 대장의 가족을 추적해 나가기 시작했고, 또 사람을 써서 그들의 행방을 알아보았다. 많은 실패가 있었지만 인내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은 훈이었다.
그리고 6개월 만에 드디어 최 대장의 가족들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최 대장 가족의 행방을 겨우 알아낸 훈은 기쁨 마음을 감출 수는 없었지만, 그 기쁨은 결코 오래가지 못했다. 최 대장의 가족 상황이 처참했기 때문이었다.
“젠장.”
최 대장에게는 아내와 딸만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최 대장이 죽은 지, 1년 6개월이 된 이 시점에서는 딸만 있을 뿐이었다. 최 대장의 아내가 모든 재산을 정리한 후, 딸을 버리고 종적을 감춰버린 것이었다. 최 대장의 하나 뿐인 딸은 고아원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리고 고작 7살이었다.
“그래서... 내 꿈에 나왔던 거구나...”
훈은 혼자 중얼거렸다. 왜 최 대장이 나와서 ‘유언, 딸’이라는 두 단어만 언급을 했는지, 이해가 갈 듯 했다.
최 대장의 아내는 없고, 딸이 너무 어렸기 때문에 훈은 유언을 알려야 하 지, 고민이 되었다. 딸이 조금 더 크면 알릴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은 딸을 만나보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그래서 훈은 최 대장의 딸이 있는 고아원으로 향했고, 그의 딸을 만난 후, 심각한 절망감에 빠졌다.
“아... 저씨는 누구예요?”
올망졸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는 여자아이에게 훈은 제대로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최 대장의 딸은 두 다리가 없었다.
“사... 삼촌이야.”
어떻게 대답을 했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은 훈이었다. 고아원에 다녀온 후에는 다리가 없는 최 대장의 딸이 온통 머릿속에 남았다. 그 작고 여린 아이가 부모 없이 장애를 가진 상황에서 어떻게 세상에 살아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고, 또 너무나 괴로운 훈이었다. 자신의 실수 하나로 가정까지 깨지면서 안 그래도 장애가 있는 여자 아이의 인생을 너무나 힘들게 한 것 같았다.
“채... 책임 져야 해... 내가 평생을...”
훈은 눈물로 밤을 지새우며 결심을 했다. 저 작고 여린 여자 아이를 자신이 죽는 그 날까지 책임을 져야겠다고...
그 때부터 훈은 닥치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막노동이고, 시간제 알바이고 가리는 것이 없었다. 조금의 돈이라도 모을 수 있다면 기꺼이 몸을 맡겼고, 훈은 잠자는 시간, 먹는 것도 아끼며 돈을 모았다. 그리고 고아원을 통해서 최 대장의 딸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6개월이 흘렀고, 오로지 최 대장의 딸을 위해 살고 있던 훈에게 한 중년의 남자가 나타났다.
“자네 나와 일을 해보지 않겠는가?”
훈은 그 중년의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중년의 남자 옆으로 몇몇의 남자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가 범상치 않음을 알 수 있었다.
“고아원의 여자 아이를 신경 쓰는 것 같은데... 내가 그 여자 아이의 평생을 책임져 주겠네. 지금 자네가 버는 돈으로는 그 여자아이를 대학에나 보낼 수 있겠는가? 난 그 여자 아이의 두 다리도 만들어 줄 수 있다네. 어떠한가?”
중년 남자의 제안은 매우 파격적이었다.
“예쁜 숙녀가 되어서 보통의 남자와 결혼도 할 수 있게 해주겠네. 또 자식도 낳아서 행복한 가정도 이루게 해주고 말이야. 내 제안이 불만족스러운가?”
“지... 진짜입니까?”
“난 거짓말을 하지 않네. 자네만 내 옆에서 충성한다면 말이야.”
믿기 어려운 제안이었지만, 훈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중년 남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설령 자신이 악마와 손을 잡는다고 하더라도 최 대장의 딸의 인생에 행복이 깃들 수 있다면 기꺼이 그 선택을 하리라고 결심했던 훈이었다.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좋아. 자네를 앞으로 제트라고 부르도록 하지. 대한민국 최고의 전사가 아니었던가. 껄껄”
***
“캬아아 좋다.”
“참 신기하단 말이야. 술 한 잔 안마시던 녀석이... 어느새 불혹의 나이에 술꾼이 되어 있으니...”
선남은 민혁의 연락을 받고 밤늦게 그와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있었다. 막걸리 한 잔을 마시고 손으로 찢어 먹는 파전은 정말 꿀맛이었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민혁이 한 마디 더했다.
“그래도... 그 옛날 할머니가 해준 빈대떡이 맛있었던 말이야.”
“할머니?”
“너희 할머니 말이야. 고등학교 때 한 번씩 놀러 가면 없는 형편에도... 빈대떡 부쳐주고 그러셨는데... 참 그리워.”
“그랬었지. 나도 우리 할머니 보고 싶네.”
민혁은 선남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지만, 아직 본론을 꺼내지는 않았다.
“참 좋은 분이셨지... 옛날 생각도 나고... 아무리 생각해도 옛날이 더 좋았단 말이야. 아무것도 없었어도... 잘 살았는데 말이야. 지금은 돈에 시달려서 사니 원...”
“나도 요새 그런 생각 많이 해. 차라리 옛날이 참 좋았지.”
민혁은 선남의 빈 잔에 막걸리를 따라주며 말을 이어갔다.
“그래 옛날이 좋았어. 참 대학 때 기억 나냐? 나 등록금 없을 때, 선남이 네가 알바해서 모은 돈으로 보태주고 그랬잖아.”
“그 이야기를 왜 하냐?”
“참 고마웠어... 나 중동에서 돌아와서 힘들 때도... 선남이 네가 도와주고... 내가 참 받은 게 많다.”
“낯간지럽기는... 쩝... 한 잔 마시자.”
민혁의 말에 어색함을 감추지 못한 선남이 잔을 들었고, 쭈욱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켰다. 그 모습을 바라본 민혁도 곧바로 한 잔을 비운 후, 다시 두 잔에 막걸리를 따르기 시작했다.
“생각해 보면... 선남이 너는 날 항상 도와준 것 같아.”
“에이... 그건 아니지.”
“내가 널 도와준 적도 있냐?”
민혁의 물음에 선남이 희미한 미소를 띠며 말을 했다.
“나는 솔직히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왕따였잖아. 도둑으로 몰릴 때 기억 나냐? 그때도 네가 나서서 해결해줬잖아. 민혁이 네가 훔쳤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니잖아.”
“하하... 그랬던가?”
“그리고 내가 민혁이 너에게 정말 고마웠던 것은... 우리 할머니 돌아가셨을 때였어. 일가친척 없어서... 진짜 장례식장이 텅텅 비었는데... 너만 유일하게 3일 내내... 내 옆에 있었으니... 아 그때 느꼈지. 이 최민혁이라는 놈은... 내 친구이자 은인이라고...”
“에이... 은인까지는 무슨... 당연한 일을 한 것을...”
옛날이야기를 꺼내면서 선남과 민혁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향수에 젖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둘 사이의 친구가 된 것에 대해 흐뭇한 감정을 감추지는 않았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술자리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당연하지만... 그 당연함이 누군가에는 큰 격려일 수도 있어.”
“그런가? 그러면 선남이 너야 말로 내 인생에 큰 도움을 준 것 같은데... 나 진짜 중동에서 돌아왔을 때에는 앞길이 막막했다. 나이는 먹었지... 할 건 없지... 그런데 선남이 네가 도와주어서 커피숍도 차리고... 지금은 자리도 잡아가니... 선남이 너 사람 하나 목숨 구한거야. 아이고... 생각해보니 그 때 돈도 다 못 갚았네..”
“목숨까지는 무슨... 어려울 때 돕는 게... 친구지.. 안 그래? 그리고 돈은 별로 신경 쓰지 마. 우리 사이에 돈이 중요한 건 아니잖아?”
선남의 말을 들은 민혁인 지금이 그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맞아. 어려울 때 도우는 게 진정한 친구지. 선남아.”
“왜?”
“너 지난번에 나 만날 때... 했던 말 기억 나냐?”
민혁이 진지한 표정으로 선남에게 질문을 던지자, 그 의도를 알아 챈 선남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 그러나 이내 곧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했다.
“대충...”
“힘들었지?”
“솔직히... 뭐 그렇지.”
선남은 일부로 대수롭지 않게 대답을 했지만, 민혁은 그런 선남을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야. 너 정말 어려운 상황이야.”
“......”
“선남아. 사실 나 말이야. 그 날 이후... 많은 생각을 했어. 내 친구 선남이가 이렇게 힘든데...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진짜 고민이 많았지.”
“... 휴우.”
“선남아. 나 너에게 도움 주고 싶어.”
선남이는 민혁이가 고마웠다. 자신을 생각해준 것도 고마웠고, 도움을 주려고 하는 것도 고마웠다. 하지만, 민혁에게 도움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건 자신만이 해결해야 했고, 무엇보다 위험했다. 친구인 민혁을 위험지대로 끌어들일 수는 없었다.
“안 돼.”
“왜? 위험해서?”
“음... 내가 어디까지 이야기 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래 위험해. 그래서 안 돼.”
“너 정말 너무 하는 것 아니야?”
선남의 말을 들을 민혁이 순간 불같이 화를 냈고, 깜짝 놀란 선남이 뒤로 넘어질 뻔 했다.
“내가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한 줄 알아. 위험할 것 뻔히 알면서도 너를 도와준다는 결심... 나 무시하는 거야? 나 못 믿는 거야? 우린 친구 아닌 거야?”
“... 민혁아... 고마운데...”
“왜 너만 착한 척 하는 건데? 나도 너 도와줄 수 있다고!!”
민혁의 단호한 말에 선남은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무어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선남이 너를 위해서 나름 계획도 세웠단 말이야... 가정 문제를 해결하고... 강 이사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내 진심 이렇게 몰라주면 나 서운하다. 친구가 힘들 때 도와주는 게 진짜 친구라면서... ”
“............”
“선남이 넌 모르겠지만... 그 날 나에게 했던 이야기 대단히 충격적이었지만... 왜 나에게 다 말했을 것 같아? 너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단 뜻이야. 기쁨은 나누면 2배가 되고, 걱정을 나누면 절반이 된다고 하더라. 머리가 하나보다는 두 개인 것이 훨씬 상황을 헤쳐 나가기 편하다는 것... 너도 알잖아. 선남이 너 스스로 나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야. 그날... 술기운에 나에게 도와달라고 울부짖은 거라고... 넌 그거 왜 모른 척 하는 건데?”
강한 어투로 말하는 민혁의 말을 듣고 선남은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생각하면 민혁의 말이 다 맞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힘들어서 자신의 손을 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민혁아...”
“왜 임마?”
“... 고맙다... 너 근데 정말 괜찮아?”
“새꺄. 커피숍이라도 팔아서 도와 줄 테니까... 함께 하자.”
민혁의 굳은 결심을 느낀 선남은 결국 그에게 도움을 받기로 결심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손을 내민 친구의 진심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선남은 민혁을 바라보며 웃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런 게... 우정인가.’
... 계속
도장 찍어보자고 했더니, 댓글이나 추천수가 많아지는군요 -_-a
쪽지로 삭제 된 글을 볼 수 없냐는 문의를 하셨는데,
이미 9월 23일부터 공지를 했었습니다.
안타깝지만 지워진 글은 당분간 볼 수 없습니다.
완결 후에, 다시 보고 싶은 분들이나 새로 보고 싶은 분들의 성원이 있으면
일정 기간을 두고 재공개 하는 방식을 취하겠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
가입일 | 2016-08-11 | ||
접속일 | 2024-11-03 | ||
서명 | 황진이-19금 성인놀이터 | ||
태그 | |||
황진이-무료한국야동,일본야동,중국야동,성인야설,토렌트,성인야사,애니야동
야동토렌트, 국산야동토렌트, 성인토렌트, 한국야동, 중국야동토렌트, 19금토렌트 |
추천 0 비추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