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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0:43 1,135회 0건
"아, 왔어요?"
"아, 앗 네네!"
오늘은 강의가 많지 않는 날, 하지만 약속이라도 있는 것처럼 꼬박 시간을 죽여보내며 해가 지길 기다렸다.
행여나 오늘은 들르지 않을까 신경쓰던 찰나에, 저 멀리서 서윤이 보였던 것이다.
"마실거죠?"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캔커피를 건넨다.
"아..."
뭔가 불편해하는 그녀,
"왜요? 마시기 싫어요?"
"아, 아뇨 그런건 아닌데.."
"에이, 그럼 얼른 받아요. 이거 없는 돈 쪼개서 산 겁니다~"
하지만 나는 신경쓰지않고 서윤의 손에 캔을 쥐어준다.
"고, 고마워요.."
억지로 커피를 받아들고는 서윤은 그대로 굳어있다.
확실히 부자연스럽다.

"안마시고 뭐해요?"
"마, 마실려구요!"
재촉하면 재촉할수록 움츠러드는 그녀를 보며 나는 확신에 차오른다.

시키는대로 했구나.



<아니, 그건 좀...>
[아니, 아니라니까. 무조건 내가 시키는대로 해봐, 확실하다니까.]
<..아무래도 그건ㅠ>
[당연히 무섭고 겁나겠지. 근데 이건 그래야 하는거라 시키는거야.]
<하지만...>
[우리 이제는 좀 솔직해지자. 너 그렇게 대범하지 않다는거 이제 다 알거든? 그런데 너도 이런 네 모습 싫어서 그동안 "척"한 거잖아. 매번 그렇게 연기하는 것도 힘들지 않아? 바꿀 수 있어, 바꿀 수 있다니까.]
<...>
[걔 앞에서 당당하게 나설 수 있어, 미적대는 관계를 수월하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어. 생각보다 훨씬 빨리 걔를 가질 수 있다니까.]
<으..>
비소가 또 앓는 소리를 낸다. 하지만 나는 눈썹 하나 까딱 않는다.

[비소야, 우리 답답하게 굴지말자. 나 좋다고 하는게 아닌데 네가 이러면 이럴수록 얼마나 힘들겠냐. 좀 도와주라, 나 말고 너 좀 도와주라.]
<......>
말이 없을 정도로만 몰아부치면 그녀는 OK다.
<..알았어, 그렇게 해볼께..>
좋아.
[잘 생각했어, 그럼 아까 얘기한대로 내일은 팬티를 안 입는거야.]
<...>
[대답이 없네. 뭐 그게 별로면 노브라도 상관 없는데 말야, 근데 여름인데 노브라는 티가 너무 나지 않...]
<아, 알았어, 알았다구!>
[그럼 팬티로 낙찰.]
<..으으...>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살짜리 구워삶기쯤이야 누워서 떡먹기나 다름 없었고, 그녀는 그렇게 어거지로 몇가지 약속을 한다.

우선, 내일 팬티를 입지 않을 것.
하지만, 하루종일은 아니며 일정한 시간에 맞춘 한정적인 상황일 것.
단, 상황에 대한 결정권은 본인이 아니라 모두 나에게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다시 팬티를 입기 전에 "간단하게나마" 확실한 인증 사진을 찍어서 보낼 것.


나는 해가 기우는 6시쯤에 미리 비소에게 카톡을 보내둔 상황이었다.
[지금.]
<후... 잠시만,>
간결하지만 단호한 한마디에, 그녀는 변명 한마디 없이 금새 고개를 숙인다.

<했어.>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비소로부터 답장이 왔다.
무서워선지 아니면 기분이 나빠서인지 그녀는 매우 굳어있었지만, 그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든 나를 따라오면 그만이었으니까.

그 후로 별다른 문자를 주고 받진 않았다.
당연하다.
내가 문자를 보낸다면 그것은 팬티를 다시 입어도 된다는 허락, 굳이 이런 즐거움을 빨리 깰 이유는 없었으니까.
평소를 생각해보자.
말빨로 후리든지 술을 맥이든지 아무튼 우선적으로 적당한 계집을 찾아야했다.
그래야 벽돌로 대가리를 갈기던지해서 자빠뜨린다음 팬티를 벗겨볼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문자 한통으로 조율할 수 있는 그녀는 최고의 노리개나 다름 없었다.

꼼지락대는 손은 계속해서 치맛자락을 움켜쥐고 있다. 마치 조금이라도 펄럭이면 안된다는 듯이 말이다.
그나저나 의외다.
팬티를 벗게끔 하겠다는 건 서로가 합의한 사항이지만, 내가 복장까지 정해주진 않았다.
청바지나 그런걸 입고 올 줄 알았는데 치마는 확실히 예상 외였다.

뭐, 후딱 벗고 후딱 입을 수 있는게 낫다고 생각한건가?
자기 나름대로 생각한게 있었겠지 싶었다.
나는 그저 치마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저열한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봤자 무릎을 한참 지날만큼 긴 치마지만, 뭐 어떤가?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다는게 중요한 거니까.

"치마..."
"네, 넷!?"
자지러지는 반응이 좋다.
"..예뻐서요."
"아, 네.."
"무슨 문제라도..?"
"아, 아뇨! 완전 괜찮아요!"
으이구~ 무슨 문제있다고 광고하는 것도 아니고 말야.
나는 웃음을 꾹 참으며 그녀를 놀린다.
"어? 자세히 보니까 치마에..."
"..히끅!"
"아, 잘못봤나봐요. 벌레가 붙은줄 알았거든요. 하하~"
슬쩍 다가가며 겁을 줬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빠져준다.
서윤의 반응은 충분히 즐길만 했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줄까봐 이쯤에서 자제하기로 했다.

후릅-
"요즘 남자친구 분이랑 잘되시나봐요."
커피를 마시며 그녀에게 넌지시 말을 건넨다.
"엣, 네?"
"아, 요즘 들어 서윤씨가 예뻐진 것 같아서요."
일단은 그녀를 슬쩍 띄워준다.
"가, 감사합니다."
"하하, 뭘요. 오히려 눈 호강하는 제가 고맙죠. 오늘도 역시 옷차림 센스가 좋으세요."
복장을 언급해서일까, 서윤은 눈에 띄게 당황스러워하지만 나는 모른 척 실실 웃어준다.
"...저,"
"네?"
"그게, 저..오늘 이상한데는 없나..요?"
우물쭈물대는 서윤이 어렵사리 입을 뗀다.
이미 수십, 수백번 체크했겠지만 행여나 자신이 놓친 부분이 있진 않을지 걱정했을게 분명했다.
그녀는 그런 불안감을 나로 인해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싶은 듯 하다.
"네, 괜찮은데요?"
"저, 정말요?"
"네, 완전 예쁜데요. 평소랑 조금도 다르지 않고 완전 멀쩡해요."
나는 몇번에 걸쳐서 서윤을 안심시키자, 비로소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헤헤, 감사해요."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치마를 들춰버리고 싶지만,꾹 참고 나 역시도 헤프게 웃어준다.

아, 깜박할 뻔 했다.
"서윤씨 부탁이 있는데요,"
"뭔데요?"
"예전부터 봐왔는데 옷을 참 잘 입으시는거 같아서요. 어디서 사셨어요?"
"어, 이거 그냥 싸구려에요. 그냥 막 산건데.."
"에이~ 옷이 예쁘면 다죠, 비싼게 중요한가요?"
"에, 하지만.."
"다름이 아니라, 선물을 준비하고 있는데 여자옷은 제가 잘 모르겠더라구요."
"아, 그러세요?"
"그런데 주변에서 물어볼만한 사람이 서윤씨 뿐이고, 마침 서윤씨는 옷도 잘입으시고.."
"에.."
"완전히 같은 옷을 산다기보다는 그냥 디자인이나 느낌 같은걸 좀 참고하려구요."
나는 슬슬 밑밥을 깐다.
"서윤씨만 괜찮으시면 사진 좀 찍어도 괜찮을까요?"
"엑, 저를요??"
"네. 물론 의상 위주로 찍을거라.. 안될까요?"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런 부탁 때문인지 서윤은 좀처럼 확답을 내려주질 못한다.

분명 내키진 않겠지. 그렇다고 거절할 마땅한 이유도 없고,
오히려 이럴땐 이쪽에서 나서줘야한다.
"역시 좀 무리한 부탁이었나봐요. 아무리 친해도 그렇지 대뜸 사진을 찍는건 충분히 기분 나쁠 수 있는거니까요. 미안해요, 서윤씨. 그냥 없던걸로 하는게.."
"아뇨, 전 괜찮아요..!"
조금만 우는 소리를 해도 그녀는 덥썩 미끼를 문다.
"괜찮나요?"
"네, 네. 그냥 사진인데요 뭘.."
"아 감사합니다. 서윤씨 제가 나중에 술한잔 살게요."
그렇게 말하곤 나는 휴대폰을 들고 그녀와 간격을 살짝 벌린다. 그리고나서 몇장의 사진을 찍는다.
애당초 말한 것과는 다르게, 그녀의 얼굴도 충분히 알아볼 수 있게끔 사진 속에 꼭꼭 담아둔다.
"이정도면 충분할 듯 싶어요."
"아, 끝났나요?"
"네, 정말 감사해요."
나는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서윤은 자신이 도움이 된다면 언제든지 모델이 되어주겠다며 흔쾌히 승낙을 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전해졌는지 우리는 좀 더 따뜻한 분위기에서 노닥거렸고, 캔커피가 떨어지고 한참이 지나서야 도서관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럼 공부 열심히 하고 나중에 봐요."
"네!"
서윤은 배시시 웃으며 대답한다.

이것도 나름 재밌는데?
나는 도서관 자리에 앉아서 의외의 즐거움을 즐긴다.
확실히 오래 알아온 그녀는 약간 답답하긴 했지만, 충분히 재밌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으음, 그래도 하던건 마저 해야지.
서윤이 자리에 앉기까지 계속 주시하던 나는 적당한 타이밍에 문자를 보낸다.
[오늘은 여기까지.]

부르르-
<이제 입어도 되는거야?>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녀의 문자가 매우 빠르게 도착한다.
[응, 근데 알지? 인증사진 찍는거.]
<..아, 알았어..>
[그럼, 기다린다.]

그걸 끝으로 나는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는다.
그러기 무섭게 도서관 한켠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있다.
서윤이다.
그녀는 자그마한 스마트폰과 조그만 파우치를 들고 독서실을 빠져나갔다.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토익책을 편다.
문제를 풀기 위해 집중해보지만 오늘따라 영어가 영 들어오지 않는다.
머릿속은 온통 서윤이 비소의 이름으로 보내올 사진에만 가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바심 내진 말자, 이젠 순순히 보내올테니까.


그건 옳은 선택이었다.
마음을 비우자 시간은 나름대로 흘러갔고, 내가 내려둔 스마트폰도 가볍게 진동했다.

그녀가 보내온 사진은 2장,
나는 누가 훔쳐볼 새라 조심스레 사진을 다운받는다.

사진 속에서 그녀는 한쪽의 치마를 허리춤까지 걷어올린채 있어야 할 팬티라인이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다음 사진 역시 첫번째와 마찬가지로 같은 장소, 같은 구도와 포즈로 촬영했었다.
차이점이 있다면 두번째 사진에서는 앞에는 없었던 팬티라인이 드러났다는 정도.

이 정도면 나쁘지 않네.
여자 화장실에서 갈아입었는지 구조와 조명이 영 조악스러웠지만 처음치곤 봐줄만 했다.
[좋아, 성공적.]
나는 그녀에게 OK 사인을 보낸다.
<흐..~ 내가 얼마나 간 떨렸는줄 알아? 진짜 이게 무슨 일이야..>
이제야 좀 살만한지 그녀로부터 툴툴대는 메세지가 쏟아진다.
[그래도 별거 아니지? 주변에서 알아보는 사람 있던?]
<으음, 티 안나는거 같긴 하던데...>
[그래! 바로 그렇다니까. 아~무도 몰라, 티도 안나고 신경도 안쓴다니깐.]
얄팍한 수긍을 낚아채서 확실하게 만들어준다.

[근데 치마가 인간적으로 너무 길다. 그런거 입어서 종현이 사로잡을 수 있겠어?]
<이거는 그..! 어휴...>
[암튼 우선 순위는 잊지마. 네가 대범해지는 것도 좋지만, 네가 좋아하는 그 남자애를 확실하게 꼬시는게 먼저라는 걸.]
<...>
종현이 얘기만 꺼내면 그녀는 꿀먹은 벙어리처럼 되어버린다.
[다음부턴 복장도 신경쓰고, 밤에 다음 미션 보내줄게.]
<..알았어.>

그녀와의 문자를 끝내고는, 나는 사진을 잘 정리해둔다.
이건 분명 요긴하게 쓰일 것이다.

자, 이제 다음은 뭘 시켜볼까.
비소와 문자를 재개하기까지 남은 시간은, 2시간 남짓.
엉큼한 상상을 감당하기엔 2시간은 짧아도 너무 짧았다.



그 다음으로 요구한 미션은 첫번째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번에는 좀 더 짧은 치마를 입을 것.

한번 겪어본 덕분인지 비소는 순순히 받아들였고, 우리는 서로가 피곤하지 않게 미션을 완료했다.
[좋아. 확실히 지난번보다 낫네.]
<어휴, 난 얼마나 떨었는줄 알아?>
무신경한 태도에 발끈한건지 비소가 버럭 언성을 높인다.
[진정해, 진정. 그러니까 잘했다는 거 아냐. ]
나는 그녀를 잘 다독였다.

[자, 그럼 다음은...]



그렇게 몇번의 미션을 거치며 익숙해지자 소심했던 그녀가 조금씩 살아났다.
브래지어쪽도 도전해보고 싶었지만, 비소는 극심하게 막아섰고 결국 팬티에 대한 노출을 이어왔다.
그렇다고 계속 같은 걸 할 필요는 없는 법, 나는 그녀에게 조금 더 높은 수위와 대담함을 요구했고, 약간의 저항을 이겨내고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점점 짧아지는 치마와 길어지는 탈의 시간.그리고 어두운 화장실이 아닌 빈 강의실이나 옥상, 때로는 건물 뒷편에서의 인증 샷.
어느새 사진속 그녀의 포즈는 한결 자연스럽고 생생하게 변해갔고, 나는 그녀를 추켜세우며 행위를 가속시켜갔다.
<이것도 하다보니까 익숙된다는게 신기하다..>
비소는 이런 자신이 신기한가보다.
[뭐 다 그렇지, 솔직히 이게 뭐라고 그렇게 겁을 냈었냐? 해보면 아무것도 아냐.]
<그런가?>
[다른 것도 다 똑같애. 해본 적 없으니까, 할 수 있는지 모르니까 무섭다고 겁내고 피하고 그런거지. 다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거라니까.]
<음..>
그녀는 딱히 부정하지 않는다.

[아, 그리고 오늘 보내준 사진으로 또 딸친다? 괜찮지?]
<아이고..네네~ 딸을 치던지 아들을 치던지 마음대로 하세요~~>
[이야, 우리 비소 이제 이정도로는 끄떡도 안하네. 고생한 보람이 있구만~]
나는 그녀를 추켜세워주며 사진보관함을 뒤진다. 말은 그렇게했지만, 비소가 보내준 사진으로 자위를 하기엔 너무 밋밋한 감이 있었다.
하반신만 겨우 나오는 사진들, 그나마 유연해졌다고 하지만 보지털이 약간 찍히는 정도에 항상 바로선 자세가 전부다보니 싱거움이 느껴진건 당연하리라.
나는 아쉬움에 입맛을 다신다.

내일은 다리를 평소보다는 조금 벌리고 찍어보라고 해볼까.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일단 내일도 팬티로 간다. 근데 다리 좀 벌리고...]
<아, 맞다! 나 당분간은 못할지도 모르는데..>
[엥, 왜?]
처음 있는 거절에 나는 적잖이 당황한다.

<나 슬슬 생리주기라.. 예상일은 모레인데, 그러다 갑자기 터지면 어떡해.>
아,
[그래? 그건 확실히 곤란하지.]
곤란하다.

<헤헷, 내가 이래서 형을 좋아한다니깐. 땡큐~>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나는 머릿속으로 뭔가 다른 것을 열심히 찾아본다.
생리가 터져버리면 당분간은 꼼짝없이 묶여버린다. 그렇다고 브래지어로 가기에는 여러모로 시간이 필요한데...
길게 잡아도 이틀, 그 안에 비소에게 요구할 수 있는거라곤 많지 않았다.
[야, 그럼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고 나 자위하는거나 좀 도와주라.]
<헐, 내가 그걸 어떻게 도와줘? 나보고 오라고??>
그녀의 문자에 당황함이 한가득 묻어있다.
[나 어디사는 줄은 알고 그러니? 안부르니까 걱정말고.]
<뭐, 그건 그렇지..>
담백하게 해명한 나는 슬슬 얘기를 꺼낸다.
[맨날 나는 자위한다고 말하는데... 비소 넌 어떻게 하는 편이야?]
<...응?>
[왜, 쑥스러?]
<아, 아니 그런건 아닌데 갑자기 그러니까..>
비소가 움츠리기 전에 나는 얼른 그녀를 도발한다.
[이거 이거, 그동안 열심히해서 좀 바뀌었나 싶었는데 여전히 그대로네. 이래서 언제 써먹냐?]
나는 최대한 유치하게 굴어서 그녀의 화를 돋군다.

<누굴 애로 아시나, 나도 다 하거든!>
[오, 그래?]
그 뒤로 이어지는 비소의 장황한 설명들, 나는 흥미롭다는 듯이 그녀의 맞장구를 쳐간다.
<...암튼 그러니까 여자가 성욕이 없다 이런건 다 구라라고! 할거 다하면서 산다구!>
[신기하네. 나는 무조건 손가락 넣는 줄 알았는데, 클리토리스를 문지르는 경우가 더 많구나.]
<처녀막 있는 사람들이 손가락을 어떻게 넣겠어? 야동만 보니까 남자들이 전부 이상한 선입견이 생겼단 말야, 으이그...>

[그래서, 넌?]
<응?>
[넌 어떻게 하는데?]
<어, 음...>
[문질러?]
화살표가 정확히 자신을 찌르면 아무리 강심장도 움츠러들기 마련, 그녀도 예외는 아니었다.
<문지르기도 하고..>
[그리고?]
<...손가락도 좀 쓰고 뭐...>
[그래?]
<그, 그렇지.>
나는 그녀가 부끄러움에 사라져 버릴까봐 일부러 호기심 가득한 모양새를 흉내내며 물고 늘어진다.
마치 여체를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여성의 신비를 그녀로 하여금 처음 알아가는 사람인양 연기를 한다.
[얼마나 자주해?]
<으음..항상 다른데, 일주일에 3번 정도는 뭐..>
많은건지 적은건지 모르겠다.
[그럼 보통 무슨 생각하면서 자위해? 남자들은 보통 야동을 보고 하니까, 여자는 남자인가? 남자 몸? 남자 좆?]
<아, 아니 그런건 아니고...아오 진짜! 뭔 좆같은 얘기야!>
참지 못한 그녀가 폭발했다.

<보통 상상이지! 어떤 사람을 상상하면서 그 분위기에 흥분하는거라고! 그리고 여자도 야동 보거든요? 남자배우들 때문이 아니라, 거기 나오는 여자들 보면서 감정이입 비슷하게 하면서 그렇게 느끼는거라고!>
[아, 그렇구나. 미안해 잘 몰랐거든.]
나는 침착하게 한발 물러선다.


약간의 뜸을 들이자 우리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른다. 나는 그것이 창피함으로 바뀌길 원하지 않았다.
[넌, 뭐 궁금한거 없어?]
<나??>
[응. 내가 묻는거에 대답 잘 해줬으니 나도 도와줘야지. 기브앤테이크 몰라?]
방향만 살짝 바꿔도 묘한 분위기는 잘 쥐고 갈 수 있다.
<음, 음...>
그럴싸한 말에 비소는 수긍하는 모습을 보인다.

<사실 나도 궁금한게 있긴한데,>
[뭔데?]
<음음...>
좀처럼 말을 잇지 못하는 그녀를 보니 확실히 알고 싶은게 있기는 한듯 싶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얌전히 기다려주는 편이다.

<음.. 자위하는 여자 어때?>
순순히 토해내는건 상대방의 몫이고.
[어떻긴, 여자도 성욕이 있다며? 그럼 당연한거지.]
<아니 아니, 그러니까 괜찮냐는 그..!>
[물론 괜찮지, 문제될거 있나?]
<으...!>
받은게 있다보니 재깍재깍 말해준다.
<내 말 좀 끝까지 들어봐!>
[미안.]
나름대로 성실하게 대답한다고 했건만 오히려 이쪽에서 말을 잘라먹은 모양새가 된 듯 하다.
나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비소에게 줬고, 그녀는 잘 받아먹는다.
<그러니까 남자들이 생각할때, 여자가 자위하는게 충분히 매력적이고 야하게 느껴지냔 말야.>
[사람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대부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걸?]
<..확실해?>
[남자는 말야, 여자가 하는건 뭐든 상관 없이 좋아해. 아, 물론 무개념 된장짓 이런거말고 성적인 부분에서 말야.]
나는 그녀에게 좀더 확신을 심어주기로 마음 먹는다.

<...종현이도 좋아할까?>
좋아하는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가장 원초적인 곳에서도 나타난다.
[걔가 혈기왕성하고 남자에 관심없는 정상적인 고추라면 당연하지.]
<그렇구나.>
짧막한 문장이었지만, 그녀는 그 메세지에 만족감을 듬뿍 담아보냈다.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나는 본능적으로 하나의 문을 열었다고 감지한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는 서로가 좀더 현실 깊숙한 곳까지 관여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비소를 넘어 서윤에게까지 엉겨붙고자 한 나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좋은 기회였다.

[아까는 말을 안했지만 나도 여자가 자위하는거 좋아해.]
<그래?>
이것을 놓칠 순 없었고 나는 계속해서 발을 끼워 넣는다.
[종현이 생각하면서 자위해?]
<..가끔,>
[오늘은 했어?]
<..아직>
[하고싶지 않아?]
<...말 안할래.>
그녀는 오히려 바보같이 털어놓고 만다.

[지금 할 수 있겠어?]
나는 점점 노골적이고 직선적으로 변해간다.
<......>
[지금 가능해?]
<...그건 왜?>
[대답부터,]
단호하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할 수는 있지.>
비소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해봐.]
무리한 요구에는 약간의 뜸이 필요하다.

<..솔직히 말할게, 사실 좀 이따 할려고 생각하긴 했어.>
기겁하고 빼는 분위기는 아니다.
몇번의 실랑이를 거쳐서 그녀를 구워삶을 생각을 하고 있던 나에게는 훨씬 빠르게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찾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잘됐네, 종현이도 좋아할거야.]
<......>
최선의 선택인양, 맞장구를 쳐준다.
[걔한테 보여주고 싶진 않아?]
<자위하는걸?..그래도 이건 좀...>
[왜, 너무 빠른거 같아?]
<아무래도 좀...>
꾸역꾸역 뒷걸음질치는 그녀의 목덜이를 잡아서는 그 자리에 콱-하고 앉힌다.
[할거 다해놓고 뭔 또 내숭이야.]
<...>
[처녀면 또 모를까, 걔랑 진도 다 뺐잖아? 섹스했다며?]
<응, 뭐 했지..>
[그럼 다음엔 뭘 할건데?]
<..응?>
나는 아랫배에 힘을 준다.
[그 남자애랑 잘 되고 싶다며. 그럼 가만히 있지말고 계속해서 다음을 생각해야지. 스스로 생각해도 한번 잔걸로는 부족하다 싶어서 나한테 도움을 바란거 아니었어?]
<으, 응..>
[그런데 그렇게 겁부터 집어먹으면 어떻게 할려고 그래. 아무리 내가 발벗고 나서서 도와준다해도 네가 안바뀌면 나도 방법이 없어.]
<...>
[당연히 두렵겠지, 안해본거니까.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 해봐서 익숙하게 만들면 되잖아.]

충분히 채찍질을 가했다고 생각한 나는 말투를 부드럽게 바꿔 그녀에게 던질 당근을 손질한다.
[종현이가 요즘도 잘해줘?]
<응, 잘 챙겨주고 살갑고 그렇지..>
[다른 사람 아니, 다른 여자들한테도 그러지?]
<...>
말이 없다.

[그 나이때 남자는 말야, 생각보다 엄청 단순하거든. 거의 절반정도는 여자 경험이 없다고 봐도 무방해.]
<...>
[물론 종현이는 아니겠지, 비소 너랑 했으니까. 그치만 네가 첫경험이었다고해서 걔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어. 뭐, 좀 빨리 조숙할 수도 있는거니까.]
<...>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진 마. 갓 스무살짜리가 해봤자, 얼마나 해봤겠어? 기껏해야 여자 한 두명, 다 고만고만한 수준이지.]
<으음...>
[자고로 남자를 꼬실땐 두가지 방법이 있어.]
<..뭔데?>
처음으로 반응이 있다.

[첫째, 수지나 김태희처럼 엄~~청 예쁠 것.]
<...>
[비소 너 그만큼 예뻐?]
굳이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는 질문.
<...아니>
서윤이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잘 알고 있다. 얼굴은 그럭저럭 봐줄만했지만, 그렇다고 비교대상에게 갖다 대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럼 전자보단 후자를 써야지.]
<어떤 방법인데?>
궁금증을 바짝 추켜세운 물음새다.

[육탄돌격.]
<??>
[그러니까 쉽게 말해서 몸을 써야지.]
<...>
어이없다면 충분히 어이없을, 하지만 아주 엉망은 아닌 방법.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이것은 꽤 그럴싸한 해결책이 되기도 했다.
[보통은 이렇게 두가지 방법으로 나누는데, 비소 넌 이미 두번째 방법에 어느 정도 걸쳤다고 볼 수 있어.]
<..걸쳤다고? 성공이 아니라..?>
[에이 에이~ 어쩌다 한번 했다고 성공이라고 볼 수는 없지. 조선시대도 아니고... 섹스 한번으로 확실하게 사로잡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겠냐.]
<...>
[그래도 확실한건 아무것도 아닌 사이는 아니라는 거지. 넌 이미 현재진행형이야,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관계가 크게 좌지우지될 수 있어.]
<으음...>
비소가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모호한 위치를 점할 때마다, 나는 멈추지 않고 찔러 들어간다.
[오랄은 해줬어?]
<..오랄이라면 그...>
[응, 걔 자지 빨아줬냐고.]
<엑!?>
[뭘 빼고 그래. 어차피 섹스하면서 페팅정도는 전희에 포함되잖아?]
나는 당황하는 그녀를 확 밀치곤 꼼짝 못하게 올라탄다.
[더러워?]
<어, 음..>
[자지 빠는게 더럽냐고.]
<아, 아니 그런건 아닌데. 후, 사실 그 날 너무 취해서 잘 기억이 안나서...>
[그러니까 했는지 안했는지 잘 모르겠다 이거지?]
<응, 근데 아마 취했으니까 못하지 않았을까.>
그 날에 있었던 일, 모든게 벌어지고 난 뒤의 불안감을 다시금 상기시켜 준다.
낯선 장소와 발가벗겨진 옷가지 그리고 식기 시작한 열기들.
터져버린 하복부의 통증은 두번 다시 감을 수 없는 태엽과도 같아서 그녀 자신을 궁지로 몰아넣는다.
그나마,
그나마 그 대상이 짝사랑의 상대라는게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면죄부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뿐,
필름이 끊긴 시점부터 침대에서 깨어났을 때까지는?
혹시 마음대로 가지고 놀진 않았을까,
필름이 끊겼으니 마구잡이로 돌리진 않았을까,
여기저기 물고 빨고 깨물어대진 않았을까,
부끄러운 사진을 찍진 않았을까,
자신이 어떤 식의 취급을 받았는지 그녀는 결코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사그라들듯한 믿음 하나 만으로 스스로를 납득시키고 믿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상냥했는지,
배려심은 충분했는지,
조심스레 다뤄줬는지,
그만큼 아껴줬는지,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타협점.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소는 자기 입을 통해 "아마도" 당하지 않았을거라는 불안감을 드러낸다.

[하긴, 이제 스무살짜리가 알면 얼마나 알겠어? 너 모텔 데려가서 따먹은 것만해도 대단한거지.]
<......>
나는 괜한 심술에 그 녀석을 깎아내린다.
[암튼 내가 말할려는건 비소 네가 얼마나 다양성을 가지고 있느냐는거지, 물론 성적으로말야.]
<이해가 잘..>
[요점은 이쪽에서 얼마나 많은 자극을 그쪽에게 "제공"하느냐, 바로 이거지.]
나는 비소를 밀어붙이기위해 잠시 숨을 가다듬는다.
[그동안 지켜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종현이랑 너 사이가 그렇게 끈끈하다고 볼 수는 없는거 같거든. 이대로 있다가는 그냥 원나잇으로 흐지부지 끝나는게 거의 확실해.]
<......>
[넌 그래도 몸과 마음을 다해서 순정을 바친건데, 그렇게 물거품처럼 사라지는건 너무 억울하지 않겠어?]
나는 은근하게 비소를 떠봤고,
<..내가 어떡하면 되는데?>
그녀가 넘어온다.
[스무살의 풋내기는 상상도 못할 자극으로 걔를 공략해주는거지. 사실 그동안 네가 했던 미션들은 이런 것들을 위한 전 단계였어. 물론 대담함을 키워서 당당하게 나가는 효과도 있지만 그건 부산물일 뿐이고, 비소 네가 성적으로 충분히 열린 마음을 가지게 하는게 최종 목적이었거든.]
<......>
[당장 체위만해도 열손가락에 꼽을 수 없을만큼 많아, 그만큼 재미가 다르다는 거지. 아까 말한 오랄은? 혀만 날름대는게 아니라, 개처럼 게걸스럽게 빨아줄 수 있다면?]
<그, 그런건...>
[왜, 못하겠어?]
<...>
[더러워서?]
나는 단번에 정곡을 찌른다.
<으,으음...>
[뭔가 착각하는가본데 섹스는 지저분하게 물고 빨수록 더 자극적인 법이야, 원래 그런거야. 그리고 어차피 결국 너한테 여러가지를 시킬 생각이었어, 다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 단지 그게 약간 앞당겨졌을 뿐이야. 솔직히 초조한건 이쪽인데 우리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상황은 아니잖아.]
<......>
비소의 입이 조개처럼 굳게 다물어진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적당히 풀어낼줄 안다.
[전혀 어렵지 않아, 생각보다 그리 나쁘지도 않고 말야. 너무 겁낼 필요는 없어, 쉽다니까.]
달콤하지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케이크처럼 나는 속삭인다.
떠먹으라고, 계속 그렇게 퍼먹으라고.
귀퉁이를 포크로 뭉개듯 짓누른다고 그 자체가 바뀌는건 아니다.
[모양이 중요한게 아냐, 중요한 건 맛이지.]
<...그런가,>
개똥철학도 계속해서 씨부리면 제법 그럴싸해 보이게 된다.
[그렇지, 물론 그렇고말고. 그러니까....]
한번 내뱉으면 다시는 주워담을 수 없는, 아직은 확신이 없는 상황에서 던지는 패.
나는 말꼬리를 길게 늘인다.

[자위하는거 동영상으로 찍어서 보내봐. 내가 종현이라고 생각하고 얼마나 꼴리는지 대신 확인해줄게.]
그녀에게 처음으로 들이댄 날카로운 이빨.
기나긴 대화 속에, 어쩌면 그 훨씬 이전부터 숨겨왔던 사리사욕을 이제는 유감없이 발휘한다.
[뭐, 겸사겸사 나도 물 좀 빼고 말야. 이게 아까 말한 부탁인데, 힘 좀 내줘봐.]
<...>
당황할 시간마저 뺏어가며 몰이사냥을 계속 이어간다.
[여기까지와서 못하겠다는 둥, 안하겠다는 둥의 소모적인 줄다리기는 하지 말자. 돌아가기엔 이미 너무 멀리 왔고 돌아갈 이유도 없고 말야. 혹시 창피해? 그런거라면 적어도 내 앞에서는 그런 감정 버리는게 좋을거야. 여기까지 왔다면 내가 너의 확실한 우방으로 동반하고 있다는 것쯤은 받아들여. 나를 밀어내지마, 스스로에게 나를 겹쳐. 말로만 그러는게 아니라 진심으로 모든걸 오픈하는거야. 그래야 겨우 잡을 수 있어.]
나는 스스로가 이렇게 말을 잘하나 싶어서 깜짝 놀란다.
[비소야 잘 생각해봐, 게이가 아닌 이상 여자를 싫어할 남자는 없어. 그리고 남자들은 누군가가 자신의 섹스 판타지를 실현시켜주길 원해.]
<...>
[무슨 말인지 알겠어? 해달라는거 아니, 그 이상으로 네가 해줄 수 있다면 그때도 종현이가 널 무시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끔 확실한 쐐기를 박아 넣었다.

<이제는 뭐가 뭔지...>
나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꾸준하게 비소의 수치심을 마모시켜갔고, 장시간에 의해 이루어진 감정소모의 결과 그녀는 사고의 끈을 놓는다.
<도움이 된다면야, 할게.>
심각할 정도의 정신적 피로와 풀리지 않는 문제의 콜라보는 결국 이와 같은 결과를 낳는다.
[얼마든지 기다릴게.]
<알았어..>

그녀는 울고, 나는 웃는다.
더 크게 웃었다.






"..으으..."
어둡다. 게다가 휴대폰을 들고 찍었는지 앵글도 연신 흔들린다.
한마디로 조악함.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영상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하아..하아..!"
가벼운 나시 차림에 뭔가 어정쩡한 자세, 하복부 어딘가로 사라진 손과 가늘게 떨리는 어깨죽지는 그녀가 하고 있는 모든 행위를 대변했다.
"아윽..!"
참지못한 한조각의 신음이 스피커를 찌른다.
화들짝 놀란 손이 움츠러들지만 이윽고 움직임을 재개한다.
영상 안에서의 비소는 어설프게나마 자신을 위로하고 있었다.

나는 자세를 바꿔 침대에 비스듬이 기댄다.
삐그덕대는 프레임의 소리가 생생한 현실감을 알려준다.
내 방에서는 흥분감을 궂이 감출 필요도 없었기에 편한 자세를 찾아 연신 몸을 움직였고, 금새 느슨하게 몸을 풀어냈다.

"아으으...아으..."
잘못을 저지른 아이가 꾸지람을 기다리듯 그녀는 스스로를 위한다. 그 과정마저도 평소의 서윤과 소름끼치도록 같아서 나는 묘한 기시감에 시달린다.
"...어,어떡해...아!"
꾹 다문 입을 비집는 신음은 쾌락보다는 고통에 가깝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비소의 손이 멈춘다. 가볍게 떨어댄 몸이 멎고 헐떡대는 깊은 숨이 동영상의 작은 화면을 채웠다.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를 죄책감에 밀어넣곤 죄 많은 행위의 방점을 찍었다.

꽤 즐겁게 보긴 했지만, 뒤늦게 입 안을 텁텁하게 메우는 진득함에 나는 인상을 찌푸린다.
즐거웠어?
라는 문자는 보낼 엄두도 아니, 필요성도 느낄 수 없었다.
A부터 Z까지 이어진 모든 과정에는 끝없은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할 순 없었다.
나는 스마트폰을 배게 귀퉁이에 쑤셔넣곤 잠잠해지길 기다린다.
어르고 달래서 겨우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이제 좀 뭔가 되나 싶은데, 내 쪽에서 먼저 손을 털어버릴 순 없었다.

그래도 얼굴은 한번 봐야지.
마음을 가다듬은 나는 다시금 스마트폰을 손에 쥔다.
[괜찮네.]

까톡-
메세지를 보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답장이 온다.
<..정말? 안..이상해??>
[응, 좋았어.]
<다행이다..>
쯧쯧-
이 상황까지도 남의 눈치를 보는 그녀가 딱해서 나는 혀를 차고 만다.
[암튼 오늘 고생했고, 이만 쉬어.]

그래, 너는 모르겠지. 하지만 난 네가 누군지 알지.
어떻게 생겼고 어떤 복장을 하고 누굴 좋아하는지도 다 알지.
그러니까 내일 보자, 내일도 내가 실컷 봐줄게.
는 말은 속으로 꾹 삼킨다.
이제 서윤에 대한 밑그림이 얼추 그려진다.

귀찮은건 어쩔 수 없는데 말야,
그래도 확실히 죽은 것보단 살아있는걸 가지고 노는게 몇배는 재밌어.

아, 그리고 순순해져서 좋은건 덤이고.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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