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자(無名者) 1부. 시련(試鍊)***************
1부 2장. 악몽의 계속 (1)***************
인쇄되어 나온 사진들, 정확하게는 현성의 디지털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이라며 경찰 측이 인쇄해서 보여준 것들은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거기에 찍혀서 나온 여자애들은 어제 현성이 데려와서 씻기고 먹이고 옷 세탁해주고 재워준 애들이 분명한 듯했다.
그리고 분명히 자신의 방이라고 생각되는 풍경을 배경으로, 남자의 성기를 여자애들이 한 명씩 빨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
뭔가 은빛이 나는 것 같은 물체를 느슨하게 쥐고 있는 듯한 현성의 손아래 어림에, 여자애가 얼굴을 대고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놀라움은 지금 이 사진이 인쇄되어 나온 것을 보고 놀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듯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흐릿해서 ‘설마 아니겠지…’ 하고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 장은 꽤나 선명하게 나와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로 울상이 되어 입을 벌리고 있는 그 여학생은 현성이 기억하는 그 여자애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여자애의 입 속에는 분명히 뭔가 들어 있었다.
누르스름하고 갈색도 섞인 반(半)액체, 반(半)고체의 덩어리들이었다.
뭘까?
현성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대답이 나와 있었다.
현성의 것으로 생각되는 엉덩이, 그리고 그 엉덩이 사이를 아마도 혀로 어떻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사진. 그 사진에 이어지는 이런 모습과 울상이 된 여자애의 입 속에 든 것.
현성은 어제 자면서 대변을 쏟아내던 꿈을 꿨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평소 지나치게 많이 마신 탓에, 현실로 기억을 못하고 몸이 자각을 하지 못했을 뿐, 그건 꿈이 아니었던 걸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여자애들이 권하는 바람에 과음을 하긴 했다. 그래도 나중에 자리도 정리하고 따로 그 애들의 잠자리를 챙겨줄 정도로 의식이 또렷했다. 게다가 각자에게 맞는 베개를 찾아주려고 이불장을 한참 뒤진 것도 분명히 기억에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 장에 인쇄되어 나온 광경은 현성의 그런 생각을 정지시킬 지경이었다.
마치 입 속에 들어왔던 걸 다 먹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아주 살짝 누런 색깔만 묻은 혀를 길게, 분명히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내밀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 여자애는 송혜교와 김태희를 섞어서 어리게 해놓은 듯한 미모가 돋보이던 애라서 현성도 분명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제의 그 싹싹하고 착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울먹거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여자애들이 왜 이러고 있느냐 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이 사진 속에 있는 남자가 누구냐는 점이었다.
그리고 경찰은 그 남자가 현성이라고 판단하고 있었고, 이 모든 것은 강제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게 분명했다.
현성은 정말 난감했다.
현성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이 인쇄물 속의 남자는 분명 현성 자신이라고 해야 모든 정황이 잘 설명이 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현성으로서는 그런 결론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카메라 속에 찍힌 남자의 몸은 현성이 보고 또 다시 봐도 자신의 몸으로 보였다.
운동과 무술 등을 수련하며 자주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해온 현성은 자신의 몸이 눈에 익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분명히 선물 받은 그 디지털 카메라로 그날 저녁에 찍은 사진이 함께 들어있었다.
이 카메라를 선물 받은 날 후배들의 재촉에 현성은 즉석으로 자신의 얼굴까지 찍었었다.
그 얼굴 사진은 이 카메라의 저장 공간 맨 처음에 들어 있었고, 이 말도 안 되는 사진들은 현성의 얼굴 사진 뒤로 줄줄이 저장되어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건 그 얼굴 사진의 주인공이 이 카메라 주인이고, 나머지 사진들은 이 사람이 찍은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현성은 분명 이런 짓을 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건 어디까지나 정황! 정황에 의한 짐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정황이 실제로는 진실 아니냐며 현성을 압박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오해라는 것을 설득시키려면,
어떻게 해서 저런 사진들이 현성의 카메라에 들어가 있느냐 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해명해야만 했다.
현성의 얼굴 사진이 저장 공간의 맨 앞에 들어가 있는 그 카메라에 말이다.
그러나 현성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해명할 방법이 현성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알지도 못하고, 분명 한 적도 없는 일을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찰서에 끌려오자마자 처음 당한 일도 있고 해서 이들에게는 어떤 해명도 통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현성은 묵비권을 행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또다시 폭력을 행사해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그렇게 나온다면 이제는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셈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어찌된 셈일까.
현성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그들은 몇 번 대답을 채근하다가 현성을 끌고 가서는 유치장에 넣었다.
답답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유치장 안에서 현성은 잠시 숨을 돌렸다.
유치장 안에서 찜찜한 얼굴을 우선 씻고 싶어서 얼른 세수부터 했지만 닦을 수건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유치장 창살 근처에 걸려 있는 수건이 있어서 현성은 그 수건을 집어 들었다.
“어이, 여보쇼. 그건 내 수건이거든요.”
먼저 와 있던 사람이 그 수건을 낚아채면서 불쾌한 표정을 짓고는 반 토막 난 너절한 수건을 내밀었다.
“이게 이 유치장 공용이니까 닦으려면 이걸 쓰든가. 왜 남의 거에 손대고 난리쇼?”
그럼 저 수건은 어디서 난 거고 이 너절한 수건은 어떻게 된 건가 했지만, 일단 받아들었다.
하지만 반 토막 난 수건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확 풍기고 있었다.
이거 이런 곳에서도 신입이 어떻고 선임이 어떻고 하면서 걸레를 줘서는 엿 먹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할 수 없이 그 수건(?)을 적당히 구석에 던져두고 그냥 손바닥을 털고 하면서 대충 물기를 말렸다.
유치장 안을 살펴보니 현성만 제외하고는 다들 각자 세면용 수건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 된 거지?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별 다른 얘기가 없는 걸 보니 저녁은 경찰서 측에서 주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녁 먹는 시간에도 현성은 수건과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
현성에게 주어진 밥은 거친 잡곡이 섞인데다가 미지근했고, 반찬이라곤 짠 무와 단무지 몇 조각이 전부였다.
처음 받아들었을 때만 해도 이게 관식(官食)이라는 건가 보구나 생각했고, 이런 곳에서 공짜로 주는 밥이니 다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밥들은 완전 딴판이었다.
제대로 된 따뜻한 쌀밥에 반찬도 제대로 된 것들이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까지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현성을 보고 유치장 고참(?)인 반대머리 남자가 반찬을 나눠주며 챙겨준 덕분에, 현성은 그나마 훨씬 나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식사가 끝난 후에도 이것저것 설명(?)해주었고, 그제야 현성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현성은 갖고 있던 돈을 경찰 측에 맡겨서 그 돈으로 사식(私食)을 들여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칫솔과 치약 같은 것은 전부 자신의 돈으로 사서 써야만 했다.
사는 김에 수건도 깨끗하고 좋은 새 것으로 하나 샀다.
현성은 억지로 잠을 청했다.
어떻게든 이 누명을 벗어야만 했다.
지금 이 현실이 악몽에 불과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 현성의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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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다음 날은 악몽의 계속일 뿐이었다.
자백을 받아내려는 경찰 측과 당연하게도 극구 부인할 수밖에 없는 현성의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다.
억울함을 참으며 어떻게든 무고함을 밝히려 했지만, 현성의 말은 일체 들어주지 않고 폭언과 강압으로만 일관하는 형사들에게 시달리면서 쌓인 스트레스 탓일까?
현성의 뱃속에서 무언가 들끓는 것 같더니 무언가 부글거리며 무언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인마! 니가 이 여자애, 흠… 주민이 이 애랑 걔 친구… 김명주, 이 둘을 원래부터 강간할 속셈으로 끌고 들어간 거 아냐?”
현성이 욕지기를 참으며 침을 꿀꺽 삼키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후우~ 후우~. 그건 억측입니다.
어린 여자애 둘이 저녁에 구석진 곳에서 떨고 있는 게 안 되어 보여서 그냥 그랬…”
“어쭈? 야, 인마, 변태 새끼 주제에 명문대 나왔고 일류 기업에서도 아주 잘 나가는 귀하신 분이라서 우리 같은 인간들은 같잖다 이거냐? 어디서 한숨까지 팍팍 쉬어?”
외모만 놓고 보면 폭력배인지 경찰인지 구분이 안 되는 배불뚝이 형사가 눈을 부라리며 성질을 부렸다.
“아니, 억지를 써도 근거와 경우가…”
그러나 현성은 미처 그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 S새끼가! 그래도 잘났다고 훈계냐?!”
우당탕
형사가 울화통을 터뜨리더니 책상 위로 올라와서는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책상을 넘어온 그 형사는 다짜고짜 현성의 복부를 걷어차려고 했다.
허리 뒤로 수갑이 채워져 의자에 앉혀져 있던 현성은 그 발길질에 속수무책으로 얻어맞고 말았다.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던 터라 그 격심한 충격에 한계선이 넘어가 결국 구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우웨에엑~.”
그 와중에도 현성은 거의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왼쪽으로 토하려 애썼다.
옷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와장창 쿵탕
현성이 구토를 하는데도 달려들어 다시 발길질을 퍼붓는 형사의 기세에 현성은 의자와 함께 뒤로 나동그라졌다.
토사물이 쏟아진 곳은 현성의 왼쪽 편이었기에, 현성은 필사적으로 오른쪽으로 쓰러지려고 애썼다.
“명문대 나오고 일류기업 엘리트면 변태 짓해도 된다는 거냐? 니가 그렇게 잘났어? 이 Z같은 새끼!”
그 형사는 욕설을 퍼부으며 다시 현성을 마구 발로 밟기 시작했다.
설마 의도적인 것일까?
그 발길질에 현성의 몸은 조금씩 현성이 토한 토사물 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야! 저거 말려!”
누군가가 달려오더니 현성을 일으켰고, 조금 젊어 보이는 다른 형사가 그 배나온 형사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우욱…, 코, 콜록 콜록!”
“야! 빨리 데려가서 마저 토하게 하고 좀 씻기든지 해! 귀찮아지기 전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짜증난다는 투의 목소리가 뚜렷이 들려왔다.
“끄윽… 콜록…”
기침이 좀 잦아드니 자신을 부축해가는 사람이 현성의 눈에 들어왔다.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었다.
현성을 화장실로 데려간 그 경찰관은 현성을 양변기 앞에 앉혀주더니 등을 두들겨주었다.
탁 탁 탁
“콜록, 콜록, 퉤?!”
나올 것도 다 나왔는지 속이 좀 편해지면서 안정되었다.
“후우… 후우….”
“좀 괜찮으세요? 세상에… 후유~.”
그 젊은 경관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더니 작은 목소리로 현성에게 말을 건넸다.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저기요… 고소하세요.
저 전역 얼마 안 남았으니 제가 증인을 설 용의도 있습니다.
고소해버려요. 왜 그렇게 당하고 계세요?”
뚜렷한 호의가 담긴 어조인데다가 여기 와서는 거의 처음 들어보는 듯한 깍듯한 존댓말에 현성이 고개를 돌려보니,
선해 보이는 인상의,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제복 경찰관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역한다고? 아마 의경(義警)인 모양이다.
가슴께에 있는 이름표를 보니 조형우라고 되어 있었다.
음악을 듣던 것인지, 아니면 평소 외국어 공부라도 하는 모양인지, 앞주머니에 이어폰(earphone) 같은 것이 살짝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현성은 경찰 쪽의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었기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 의경은 현성에게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눈치였지만, 다 씻겼냐며 쳐들어온 형사들에게 현성은 다시 끌려 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상황은 현성에게 갈수록 불리해져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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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거 한 번 보실까?”
형사들 중의 한 명이 현성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
발신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였는데 얼른 그 내용을 읽은 현성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뢰된 의류와 수건 등을 검사했는데 극소량이지만 여성의 체액과 남성의 정액, 특이하게도 인분(人糞)이 적지 않게 검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게 현성과 무슨 상관이라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 새끼 표정 연기 완전 아카데미상 감이네. 모르는 사람이면 꺼뻑 속아 넘어가겠어.”
이죽거리는 형사반장의 옆에 서있던 형사가 그 서류를 다시 챙기더니 현성에게 말을 건넸다.
자신은 오픈 마인드로 사는 사람이라며 현성에게 프린터 출력물을 보여주었던 그 젊은 형사였다.
“채현성 씨 오피스텔 안과 거기 있던 세탁기에서 수거된 걸레와 수건 등등을 검사한 겁니다. 웬만하면 서로 피곤하게 않으시는 게…”
“……!!?”
어디서 나왔다고? 뭐가 묻어 있었다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건 엉터리라고, 조작이고 억지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하도 어이가 없어서인지 멍하니 벌어진 현성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줄줄이 쏟아지는 증거(?)들이 등장을 알리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비닐봉투에 담긴 칼이 대롱거리며 현성의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 봉투를 들고 있는 형사가 같잖다는 듯한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이거 니 오피스텔 수색해보니까 나온 칼이거든. 니가 Z나게 여자애들 성폭행하려고 걔들 위협한 그 칼 맞지? 부인해봤자 소용없어. 니 오피스텔에서 나온 거고 사진에도 찍혀 있으니까.”
사진에 찍힌 칼?
사진 두어 장에 희미하게 보이는 은빛 물체? 그게 칼이라고?
현성은 저런 칼을 본 적도 없고 구입한 적도 사용한 적도 없었다.
게다가 저 칼이 현성의 오피스텔에서 나왔다고?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도 기가 막혀서 어이가 없는 현성과는 달리,
넘치는 증거(?)들로 여유를 갖게 된 것인지, 눈에 띄게 경찰의 조사가 부드러워졌다.
현성에게 커피를 뽑아주는가 하면, 음료수를 주기도 했다.
심지어는 저녁 무렵 식사를 할 때가 되니,
따로 현성에게 설렁탕을 시켜주고는 반주로 소주까지 몇 잔 마시게 해주었다.
식사와 잠깐의 휴식 후 그들은 현성에게 몇 가지를 더 질문했다.
하지만 그 기세는 눈에 띄게 약해져 있었고, 답변을 들어야겠다는 의지 같은 것도 별로 없는 듯했다.
그것은 현성의 억측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현성이 부인을 계속하자 더 이상 심문할 생각이 없는지 현성을 유치장에 넣었다.
현성에게는 차라리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휴식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다시 조서를 점검해야 한다며, 현성을 유치장 밖으로 끌어낸 것이다.
잠시 짜증이 나던 현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리고 말았다.
카메라 플래시와 조명이 터지더니 사람들이 현성에게로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기자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경찰은 그들을 별로 제지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현성은 할 수 없이 입고 있던 양복 상의를 뒤집어써야만 했다.
억울했다. 너무나 억울했다.
그들은 현성을 유죄가 확정된 죄인처럼 취급하며 이것저것 질문했다.
하지만 현성은 분노를 삼키며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가 갈리기도 했고 수치스럽기도 했던 시간이 지나고 기자들이 떠나고 나자,
경찰은 약물검사를 해야 한다며 현성의 소변을 받아서 즉석에서 간이 시약 검사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현성은 조금 자신이 생겨 자신의 주장을 다시 되풀이했다.
이건 뭔가 오해가 있는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현성의 정수리 부근에서 모근(毛根)이 달린 머리카락을 수십 가닥 뽑았다.
그리고 다시 소변 시료도 채취했다.
정밀검사를 위해서라는 거였다.
당연히 지은 죄가 없는 현성으로서는 전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날 조서 꾸미기는 그만 하자며 그들은 현성을 유치장으로 들여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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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오전부터 현성에게 낯이 익을 수밖에 없는 형사 한 명이 불쑥 유치장으로 들어왔다.
“이야, 아주 유명인사가 되셨더구만~.”
현성을 가리키며 낄낄대던 그 형사는 현성의 유치장 창살 앞에 신문을 몇 부 던지고는 나갔다.
주워볼 이유가 없었던 현성은 손도 대지 않았다.
그 신문들은 현성이 임자라고 생각한 탓일까?
같은 유치장에 있던 사람들이 우물쭈물 하며 현성의 눈치를 살폈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나던 현성은 유치장 한쪽 벽에 기대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저마다 신문을 한 부씩 집어 들고 유치장 안으로 들여오는지 종이 소리가 제법 들려왔다.
“이거… 저 젊은 친구 기사 아냐?”
자그마한 목소리였지만 현성의 귀에는 무척이나 뚜렷하게 들렸다.
현성은 가만히 눈을 떴다.
현성이 앉은 맞은 편 벽 쪽에 두 명이 신문을 가운데에 놓고 모여 있었는데, 둘이 같이 보는 모양새였다.
시선을 옆으로 돌려보니 다른 두 명은 각각 신문을 혼자 들고 보고 있었다.
앞자리의 신문은 현성이 앉은 자리에서는 거꾸로 보이는 위치였지만, 머리기사 제목 정도는 쉽게 눈에 들어왔다.
명문대 출신 일류 대기업 사원이 벌인 엽기 범죄 어쩌고 하는 제목이 커다랗게 1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덜컹
명치 어림에서 배꼽 쪽으로 무언가 묵직하면서도 시리도록 차가운 것이 쿵 터지는 것 같았다.
유치장 내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신문을 읽으며 가끔 현성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그날 하루, 형사들은 어찌된 일인지 하루 온종일 현성을 부를 생각도 하지 않는 듯했다.
점심을 먹고 중간에 방 사람들과 영치금을 모아 산 간식을 같이 나눠먹을 때도 그들은 현성을 불러내지 않았다.
급기야 일과 시간이 끝나고 저녁을 먹은 후, 세면(洗面)과 양치질을 끝내도 아무 일이 없었다.
야간 조사는 급한 경우 있을 수 있어도, 밤샘 조사는 법률로 금지되니 어쩌니 하는 얘기를 들은 터라 오늘은 그냥 넘어가려나 싶었다.
드르르륵
꽤 큰 크기의 TV가 있는 이동식 거치대(据置臺)가 여러 방이 서로 붙어 있는 유치장 한 가운데로 밀려왔다.
근무자가 누구냐에 따라 조금씩 유동적이기는 했지만, 유치장에서도 가끔 TV를 보여주고는 했다.
엉?!
분명 현성에게 낯이 익은 양복의 상의를 뒤집어쓰고 책상에 엎드린 사람이 비춰지더니, 보도 내용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범인 C 모씨는 어린 여학생들에게 파렴치한 짓을 강요하고 사진촬영까지 했다고 경찰 측은 밝히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은 범인이 국내 유명 명문대 출신이라는 점과…”
저 화면에 비춰지는 저 사람은 분명 현성이었다.
그런데 범인? 범인이라고?
아직 유죄 판결이 나지도 않은 사건이었고, 분명 자신은 억울했다.
그런데도 이미 죄인인 것처럼 보도해 이렇게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는 것인가!
“… 신속히 인지하여 체포한 강N 경찰서 형사반장의 말입니다.”
뭐! 신속히 인지하여 뭐가 어째? 그리고 누구? 누구라고?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다운 좋은 머리로 계속 부인을 하는 등 수사가 조금 난…, 흠흠, 어렵습니다만, 저의 오랜 수사 경험 덕분에 많은 단서를 잡아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걸로 확신합니다. 이미 저는 범인이 향정신성약품을 사용했다는 것을 직감하여…”
TV 화면에 고정된 현성의 두 눈동자에 비친 건 그 박지상 반장이었다.
계속되는 화면에는 현성이 본 적도 없는 그 칼이 증거품으로 소개되고 있었고,
디지털 카메라와 현성이 쓰던 걸레나 수건 등도 증거품으로 연이어 소개되어 나오고 있었다.
꽉 쥐어진 현성의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슬픔이나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고, 억울함이나 분노 때문도 아니었다.
피식
갑자기 현성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확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눈이 감기는 것 같더니 현성의 몸은 유치장 바닥에 길게 뻗어버렸다.
가물가물 아득해져만 가는 의식 속에서, 누군가가 담요를 깔고 현성을 눕혀주고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혼수상태와 같은 잠 속에 깊이 빠져들면서 현성은 잠시 자신의 내면(內面)을 본 것만 같았다.
처음 현성의 두 주먹이 떨리게 만든 것은 분명 폭발을 향해 타오르기 일보 직전이었던 살의(殺意)였다.
그리고 그 불꽃을 도중에 피식 꺼트린 것은 지금 이 현실 속에서 현성이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무력감(無力感)이었다.
그 둘은 현성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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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박반장이 경멸과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현성을 끌어냈다.
“거봐! 내가 이 자식 뽕한 거라고 했지? 내 말이 언제 틀린 적이 있었어? 이 새끼 더 족쳐봐!”
이젠 정말 더 이상 기가 막힐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검사 결과,
현성의 모근(毛根) 검사에서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 속칭 히로뽕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 검사결과랍시고 나온 것을 그대로 수긍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분명 조작이고 협잡이었다.
극구 부인하며 항의했지만, 증거가 있다며 이죽대는 박반장의 얼굴에 이를 악물며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는 현성이었다.
그런데 그 일 후로 조서(調書) 작성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바로 이전까지의 욕설과 폭력은 마치 그 모두가 다 거짓말이었다는 듯 온화하고도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현성이 뭐라 반박하면 욕설은 기본이고 폭력으로 대응하던 그 형사는 마치 현성의 진술 내용을 받아쓰는 것만이 자신의 일이라는 듯, 내용확인만 하며 계속 타자만 쳐댔다.
게다가 모니터 바로 옆으로 현성을 부르더니 틀린 데 있거나 하면 수정할 테니 직접 읽어보라고까지 했다.
약간 의아했지만, 놀랍게도 조서는 현성이 부인하는 내용 그대로 작성되어 있었다.
재차삼차 내용 이상 없냐는 확인을 받은 그 형사는 조서를 프린터로 출력하더니 다시 한 번 읽어보라고까지 했다.
지금까지 현성을 향해 내뿜던 살의(殺意)에 가까운 적개심과 강압적인 태도는 어디로 간 걸까?
그들은 마치 민원을 제기하러 온 시민을 상대하는 것처럼 현성을 대하고 있었다.
잠시 후, 현성은 수갑이 채워지기는 했지만, 그들이 이끄는 대로 조서 한 장 한 장에 지장을 찍고 있었다.
조서 각 낱장의 한쪽 꼭짓점이 내용이 인쇄된 부분의 가운데 정도에 오게끔 접어 올려서는, 지장이 걸쳐지게 찍게 한 후 다시 펼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한 번 지장을 찍는 것만으로도, 조서의 앞면과 뒷면에 동시에 지장이 찍히게 되는 셈이었다.
그런 식으로 현성은 일일이 한 장 한 장마다 지문 날인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해야만 피의자 주장과 다른 점이 없게 조서가 꾸며졌다는 걸 당사자도 인정한다는 증거가 된다 어쩌고 하는 친절한(?) 안내까지 곁들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맨 마지막의 문구는 현성의 이를 악물게 했다.
‘이상의 조서 내용은 어떠한 강압적인 분위기나 수단도 없는 상황에서 작성된 것임을 인정합니다. 200X년 X월 X일’
그들은 현성에게 그 바로 아랫부분에 현성의 자필로 이름을 쓰게 하고는, 다시 거기에 지장을 찍게 했다.
유치장에 다시 넣어진 현성은 입구 부근에서 자신의 이름 옆에 검찰청 송치라는 글씨가 더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구속영장이 떨어졌다는 통보가 현성에게 전해졌을 무렵, 현성의 어머니가 달려왔다.
현성의 아버지가 충격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하며 울먹였다.
그렇게도 아버지 당신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그렇게 못 믿으셨던 거냐는 마음도 설핏 들었지만,
현성이 범인임을 기정사실화해서 연일 크게 떠들어대는 TV와 신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리라.
한숨이 나왔다. 미칠 노릇이었다.
현성은 지은의 일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버지와 자신의 일로 울먹이는 어머니에게 그런 얘기를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엉엉 우시며 나가는 어머니의 등을 보며 현성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쯤 현성의 어머니는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으리라.
그러나 현모양처의 전형이랄 수 있는 분이 법조계에 인맥이 있을 리가 없고,
이런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현성의 어머니로서는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이런 불리한 건은 어지간한 수임료로는 어떤 변호사도 잘 맡으려 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도 들었다.
구속적부심(拘束適否審) 심사를 신청하겠느냐며 형사가 친절히(?) 말해주었지만 거부했다.
구속이 부당하니 불구속으로 해달라는 등의 이의신청을 판사에게 하겠느냐는 얘기였다.
하지만 거기 가봤자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은 아무런 힘도 못 쓰게 붙잡아두고는,
이것저것 증거라는 것들을 가져와서 들이대는 꼴들을 직접 겪고 듣고 본 현성이었다.
무엇보다 그 증거랍시고 들이대는 것들 중에는 현성이 본 적도 산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것들까지 있었으니까.
지금의 현성에게는 경찰이고 검찰이고 법원이고 모두 다 한통속으로 생각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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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장에서 불려 나온 현성의 팔에는 수갑이 두 개나 채워졌다.
그리고 포승(捕繩)으로 팔과 상체가 칭칭 감겼다.
검찰 송치가 결정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묶이더니 포승의 여분으로 두 사람끼리 서로 연결했다.
아마도 도주 방지를 위한 조처인 듯했다.
그런 꼴로 차에 실려 검찰 조사를 위해 검찰로 송치되었다.
첫날은 여기서 조사를 받고 저녁 즈음에 구치소로 수감될 거라고 했다.
검찰의 구속 피의자 대기실, 속칭 비둘기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근무자들에게 현성은 심한 모욕을 당했다.
신문, 방송에 현성의 일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기 때문이었는지 다들 현성을 알고 있었다.
보이는 근무자들마다 비웃음과 경멸과 욕설로 현성에게 야유를 보냈다.
“너 같은 새끼가 하도 훌륭한 일을 하셔서, 내가 어찌 너를 못 알아보실 수 있겠습니까?”
제복 입은 근무자 한 명이 비웃음을 날리며 현성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던 현성이었다.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인간쓰레기로 누군가에게 자신이 비치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었다.
포승(捕繩)과 수갑에 묶여 5층의 조사실로 가는 도중이었다.
왼쪽에 얼핏 보이는 바깥을 향해 뛰어내려 자살하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하지만… 하지만… 현성은 이를 악물고 꾹 눌러 참았다.
여학생들의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와서 현성의 멱살을 잡았다.
검찰 직원들은 말리는 척만 했다.
현성은 그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아무 말을 못했다.
억울하다고, 이건 모두 오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꿀꺽 삼켰다.
현성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통할 리가 없을 터였다.
TV나 신문 등에 나온 피의자들을 비웃고 경멸하던 예전의 현성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는 아닐지라도 거기에는 분명히 억울한 사람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열렬히 사형제도의 존속을 주장하며,
미성년자나 어린이 성폭행범들은 재판이고 뭐고 없이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던 후배의 말에,
‘네 말이 옳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하며 박수를 치던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다.
어쩌면 이건 자신이 그때 그들에게 퍼부었던 조소와 경멸에 대한 벌이나 대가(代價)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현성의 심정은 아득해져갔고 정신은 지쳐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무죄를 증명해야만 했지만,
조사를 받으면 받을수록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현성은 실감하게 되었다.
구속된 상태에서는 그 어떤 반대 증거도 현성은 제시할 방법이 없었다.
왜 인권을 위해서는 불구속 재판이 자리 잡혀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지 이제야 현성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구속 재판이 자리 잡혀야 한다는 주장 역시 현성이 예전에 그토록 비웃었던 거였다.
‘하, 불구속 재판? 죄지은 놈들 도망가게 해주라는 거야 뭐야? 인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불구속 재판과 인권에 대해 주장하는 모 신문을 보며 현성이 비웃으며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지금 현성은 그 말을 철회하고 싶었다.
경찰이나 검찰은 조작까지 불사하며 이런저런 증거들을 수집하여 들이대는데,
조직력을 동원하여 수집한 그들의 그런 증거들에 대해,
한 개인에 불과한 피의자가 무슨 수로 대응하겠는가.
더더구나 인신 구속된 상태에서 무슨 수로 반대증거나 반대증언을 수집하여 제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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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은 자신의 사건 담당 검사 사무실로 계호(戒護)되었다. 즉 묶인 채로 사람들에게 호송(護送)되어 검사 사무실로 이끌려갔다.
들어가 보니 안에 문이 하나 더 있었고, 거기에 검사 윤재근이라고 씌어 있는 명판이 붙어 있었다.
저기로 들어가서 조사 받는 건가 생각했던 현성의 생각과는 달리, 계호자는 현성을 문 바로 옆의 의자에 앉혔다.
컴퓨터 모니터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현성과 마주보는 사람은 그 경찰서의 뚱보 형사를 좀 더 날씬하게 줄여놓은 듯한 인상이었다.
앉은 자리와 풍기는 분위기 등으로 보아, 이 사람이 검사 같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은 현성에게 마약 혐의부터 추궁하고 들었다.
지루한 추궁과 현성의 반박이 이어졌다.
이는 경찰서에서의 일의 재현이나 다름없었다. 차이점이라면 폭언과 폭력이 없다는 정도일까?
현성은 워낙 건강 체질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약도 별로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담배나 카페인 음료 등에 중독된 사람을 은근히 한심하게 여겼으며,
마약이나 그런 걸 사용하는 사람들을 극도로 혐오하던 것이 현성이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곧 절대 진리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통하고 있었다.
권력과 배경을 가진 이들이 믿는 절대 진리를 현성이 아무리 부인(否認)해봐도 소용없을 것은 당연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그런 것을 알지 못하고 한 적도 없기에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었지만,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분석결과에 대한 반대 증거를 내놓지 못하는 현성의 부인(否認)은 냉소와 비아냥거림을 불러올 뿐이었다.
“꼴에 K대 나왔네? 너 같은 놈 때문에 K대가 욕먹는 거야. 인마!”
그들은 깐죽거리며 현성을 비웃었다.
“똥칠은 늙어서 니 방 벽에나 해 임마. K대에 똥칠하고 니 부모한테 똥칠하고! 잘 하는 짓이다. 이 새꺄!”
1시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현성을 비웃던 사람이 벌떡 일어서며 현성의 뒤쪽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사무관, 나 조사 차 나갔다가 거기서 바로 퇴근할 거니까 마무리 좀 잘 부탁해요.”
사무관? 역시 이 사람은 검사가 아니고 저 사람이 검사였구나.
“네, 다녀오십시오. 검사님.”
사무관보다 적어도 10년은 더 젊어 보이는 검사를 향해, 사무관의 허리는 거의 직각으로 굽혀지고 있었다.
잠시 그 검사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현성의 머리를 조사관은 조서뭉치로 툭툭 쳤다.
“뭘 보냐! 그리고 이 Z같은 새끼야. 여자애들 입이 똥간이냐 인마?”
◆글쓴이의 변(辯)*****************************************************************
여타 야설에 비해 제 글의 조회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네요.
제 글이 아직은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그래도 덧글과 추천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숫자가 조회수에 비해 적은 편이 결코 아니라서 다시 기운을 내봅니다.
1부 2장. 악몽의 계속 (1)***************
인쇄되어 나온 사진들, 정확하게는 현성의 디지털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이라며 경찰 측이 인쇄해서 보여준 것들은 한 마디로 충격이었다.
거기에 찍혀서 나온 여자애들은 어제 현성이 데려와서 씻기고 먹이고 옷 세탁해주고 재워준 애들이 분명한 듯했다.
그리고 분명히 자신의 방이라고 생각되는 풍경을 배경으로, 남자의 성기를 여자애들이 한 명씩 빨고 있는 모습이 있었다.
뭔가 은빛이 나는 것 같은 물체를 느슨하게 쥐고 있는 듯한 현성의 손아래 어림에, 여자애가 얼굴을 대고 있는 것도 있었다.
그러나 이전까지의 놀라움은 지금 이 사진이 인쇄되어 나온 것을 보고 놀란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닐 듯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흐릿해서 ‘설마 아니겠지…’ 하고 위안을 삼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다음 장은 꽤나 선명하게 나와서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
여전히 눈을 꼭 감은 채로 울상이 되어 입을 벌리고 있는 그 여학생은 현성이 기억하는 그 여자애가 틀림없었다.
그리고 그 여자애의 입 속에는 분명히 뭔가 들어 있었다.
누르스름하고 갈색도 섞인 반(半)액체, 반(半)고체의 덩어리들이었다.
뭘까?
현성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대답이 나와 있었다.
현성의 것으로 생각되는 엉덩이, 그리고 그 엉덩이 사이를 아마도 혀로 어떻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사진. 그 사진에 이어지는 이런 모습과 울상이 된 여자애의 입 속에 든 것.
현성은 어제 자면서 대변을 쏟아내던 꿈을 꿨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평소 지나치게 많이 마신 탓에, 현실로 기억을 못하고 몸이 자각을 하지 못했을 뿐, 그건 꿈이 아니었던 걸까?
하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분명 여자애들이 권하는 바람에 과음을 하긴 했다. 그래도 나중에 자리도 정리하고 따로 그 애들의 잠자리를 챙겨줄 정도로 의식이 또렷했다. 게다가 각자에게 맞는 베개를 찾아주려고 이불장을 한참 뒤진 것도 분명히 기억에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 장에 인쇄되어 나온 광경은 현성의 그런 생각을 정지시킬 지경이었다.
마치 입 속에 들어왔던 걸 다 먹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일까?
아주 살짝 누런 색깔만 묻은 혀를 길게, 분명히 카메라를 의식하면서 내밀고 있는 여학생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그 여자애는 송혜교와 김태희를 섞어서 어리게 해놓은 듯한 미모가 돋보이던 애라서 현성도 분명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그러나 어제의 그 싹싹하고 착해 보이는 모습이 아니라,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는, 울먹거리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 여자애들이 왜 이러고 있느냐 하는 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이 사진 속에 있는 남자가 누구냐는 점이었다.
그리고 경찰은 그 남자가 현성이라고 판단하고 있었고, 이 모든 것은 강제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보는 게 분명했다.
현성은 정말 난감했다.
현성 스스로가 생각해봐도, 이 인쇄물 속의 남자는 분명 현성 자신이라고 해야 모든 정황이 잘 설명이 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현성으로서는 그런 결론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카메라 속에 찍힌 남자의 몸은 현성이 보고 또 다시 봐도 자신의 몸으로 보였다.
운동과 무술 등을 수련하며 자주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해온 현성은 자신의 몸이 눈에 익어 있었으니까.
그리고 분명히 선물 받은 그 디지털 카메라로 그날 저녁에 찍은 사진이 함께 들어있었다.
이 카메라를 선물 받은 날 후배들의 재촉에 현성은 즉석으로 자신의 얼굴까지 찍었었다.
그 얼굴 사진은 이 카메라의 저장 공간 맨 처음에 들어 있었고, 이 말도 안 되는 사진들은 현성의 얼굴 사진 뒤로 줄줄이 저장되어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이건 그 얼굴 사진의 주인공이 이 카메라 주인이고, 나머지 사진들은 이 사람이 찍은 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도 현성은 분명 이런 짓을 한 적이 없다.
그러므로 그건 어디까지나 정황! 정황에 의한 짐작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정황이 실제로는 진실 아니냐며 현성을 압박하는 이들에게, 그것은 오해라는 것을 설득시키려면,
어떻게 해서 저런 사진들이 현성의 카메라에 들어가 있느냐 하는 것을 우선적으로 해명해야만 했다.
현성의 얼굴 사진이 저장 공간의 맨 앞에 들어가 있는 그 카메라에 말이다.
그러나 현성 자신이 알지도 못하는 일을 해명할 방법이 현성에게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알지도 못하고, 분명 한 적도 없는 일을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경찰서에 끌려오자마자 처음 당한 일도 있고 해서 이들에게는 어떤 해명도 통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현성은 묵비권을 행사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들이 또다시 폭력을 행사해올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시 그렇게 나온다면 이제는 가만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셈이었다.
그런데 이건 또 어찌된 셈일까.
현성이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그들은 몇 번 대답을 채근하다가 현성을 끌고 가서는 유치장에 넣었다.
답답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유치장 안에서 현성은 잠시 숨을 돌렸다.
유치장 안에서 찜찜한 얼굴을 우선 씻고 싶어서 얼른 세수부터 했지만 닦을 수건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데 마침 유치장 창살 근처에 걸려 있는 수건이 있어서 현성은 그 수건을 집어 들었다.
“어이, 여보쇼. 그건 내 수건이거든요.”
먼저 와 있던 사람이 그 수건을 낚아채면서 불쾌한 표정을 짓고는 반 토막 난 너절한 수건을 내밀었다.
“이게 이 유치장 공용이니까 닦으려면 이걸 쓰든가. 왜 남의 거에 손대고 난리쇼?”
그럼 저 수건은 어디서 난 거고 이 너절한 수건은 어떻게 된 건가 했지만, 일단 받아들었다.
하지만 반 토막 난 수건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확 풍기고 있었다.
이거 이런 곳에서도 신입이 어떻고 선임이 어떻고 하면서 걸레를 줘서는 엿 먹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할 수 없이 그 수건(?)을 적당히 구석에 던져두고 그냥 손바닥을 털고 하면서 대충 물기를 말렸다.
유치장 안을 살펴보니 현성만 제외하고는 다들 각자 세면용 수건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어찌 된 거지?
저녁을 먹을 시간이 되었는데, 별 다른 얘기가 없는 걸 보니 저녁은 경찰서 측에서 주는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녁 먹는 시간에도 현성은 수건과 비슷한 경우를 당했다.
현성에게 주어진 밥은 거친 잡곡이 섞인데다가 미지근했고, 반찬이라곤 짠 무와 단무지 몇 조각이 전부였다.
처음 받아들었을 때만 해도 이게 관식(官食)이라는 건가 보구나 생각했고, 이런 곳에서 공짜로 주는 밥이니 다 그러려니 했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밥들은 완전 딴판이었다.
제대로 된 따뜻한 쌀밥에 반찬도 제대로 된 것들이었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까지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는 현성을 보고 유치장 고참(?)인 반대머리 남자가 반찬을 나눠주며 챙겨준 덕분에, 현성은 그나마 훨씬 나은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식사가 끝난 후에도 이것저것 설명(?)해주었고, 그제야 현성은 어떻게 돌아가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현성은 갖고 있던 돈을 경찰 측에 맡겨서 그 돈으로 사식(私食)을 들여와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알고 보니 이곳에서는 칫솔과 치약 같은 것은 전부 자신의 돈으로 사서 써야만 했다.
사는 김에 수건도 깨끗하고 좋은 새 것으로 하나 샀다.
현성은 억지로 잠을 청했다.
어떻게든 이 누명을 벗어야만 했다.
지금 이 현실이 악몽에 불과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것이 현성의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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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다음 날은 악몽의 계속일 뿐이었다.
자백을 받아내려는 경찰 측과 당연하게도 극구 부인할 수밖에 없는 현성의 줄다리기가 계속되었다.
억울함을 참으며 어떻게든 무고함을 밝히려 했지만, 현성의 말은 일체 들어주지 않고 폭언과 강압으로만 일관하는 형사들에게 시달리면서 쌓인 스트레스 탓일까?
현성의 뱃속에서 무언가 들끓는 것 같더니 무언가 부글거리며 무언가 올라올 것만 같았다.
“그러니까 인마! 니가 이 여자애, 흠… 주민이 이 애랑 걔 친구… 김명주, 이 둘을 원래부터 강간할 속셈으로 끌고 들어간 거 아냐?”
현성이 욕지기를 참으며 침을 꿀꺽 삼키자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후우~ 후우~. 그건 억측입니다.
어린 여자애 둘이 저녁에 구석진 곳에서 떨고 있는 게 안 되어 보여서 그냥 그랬…”
“어쭈? 야, 인마, 변태 새끼 주제에 명문대 나왔고 일류 기업에서도 아주 잘 나가는 귀하신 분이라서 우리 같은 인간들은 같잖다 이거냐? 어디서 한숨까지 팍팍 쉬어?”
외모만 놓고 보면 폭력배인지 경찰인지 구분이 안 되는 배불뚝이 형사가 눈을 부라리며 성질을 부렸다.
“아니, 억지를 써도 근거와 경우가…”
그러나 현성은 미처 그 말을 끝맺지 못했다.
“이 S새끼가! 그래도 잘났다고 훈계냐?!”
우당탕
형사가 울화통을 터뜨리더니 책상 위로 올라와서는 현성에게 달려들었다.
책상을 넘어온 그 형사는 다짜고짜 현성의 복부를 걷어차려고 했다.
허리 뒤로 수갑이 채워져 의자에 앉혀져 있던 현성은 그 발길질에 속수무책으로 얻어맞고 말았다.
구역질이 올라오려는 것을 억지로 참고 있던 터라 그 격심한 충격에 한계선이 넘어가 결국 구토를 하기에 이르렀다.
“우웨에엑~.”
그 와중에도 현성은 거의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왼쪽으로 토하려 애썼다.
옷을 버리고 싶지는 않았다.
와장창 쿵탕
현성이 구토를 하는데도 달려들어 다시 발길질을 퍼붓는 형사의 기세에 현성은 의자와 함께 뒤로 나동그라졌다.
토사물이 쏟아진 곳은 현성의 왼쪽 편이었기에, 현성은 필사적으로 오른쪽으로 쓰러지려고 애썼다.
“명문대 나오고 일류기업 엘리트면 변태 짓해도 된다는 거냐? 니가 그렇게 잘났어? 이 Z같은 새끼!”
그 형사는 욕설을 퍼부으며 다시 현성을 마구 발로 밟기 시작했다.
설마 의도적인 것일까?
그 발길질에 현성의 몸은 조금씩 현성이 토한 토사물 쪽으로 밀려가고 있었다.
“야! 저거 말려!”
누군가가 달려오더니 현성을 일으켰고, 조금 젊어 보이는 다른 형사가 그 배나온 형사를 뒤에서 감싸 안았다.
“우욱…, 코, 콜록 콜록!”
“야! 빨리 데려가서 마저 토하게 하고 좀 씻기든지 해! 귀찮아지기 전에!”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짜증난다는 투의 목소리가 뚜렷이 들려왔다.
“끄윽… 콜록…”
기침이 좀 잦아드니 자신을 부축해가는 사람이 현성의 눈에 들어왔다.
제복을 입은 경찰관이었다.
현성을 화장실로 데려간 그 경찰관은 현성을 양변기 앞에 앉혀주더니 등을 두들겨주었다.
탁 탁 탁
“콜록, 콜록, 퉤?!”
나올 것도 다 나왔는지 속이 좀 편해지면서 안정되었다.
“후우… 후우….”
“좀 괜찮으세요? 세상에… 후유~.”
그 젊은 경관은 나지막이 한숨을 쉬더니 작은 목소리로 현성에게 말을 건넸다.
“이건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하네. 저기요… 고소하세요.
저 전역 얼마 안 남았으니 제가 증인을 설 용의도 있습니다.
고소해버려요. 왜 그렇게 당하고 계세요?”
뚜렷한 호의가 담긴 어조인데다가 여기 와서는 거의 처음 들어보는 듯한 깍듯한 존댓말에 현성이 고개를 돌려보니,
선해 보이는 인상의, 2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제복 경찰관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역한다고? 아마 의경(義警)인 모양이다.
가슴께에 있는 이름표를 보니 조형우라고 되어 있었다.
음악을 듣던 것인지, 아니면 평소 외국어 공부라도 하는 모양인지, 앞주머니에 이어폰(earphone) 같은 것이 살짝 보였다.
그러나 지금의 현성은 경찰 쪽의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도 신뢰할 수 없었기에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다.
그 의경은 현성에게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것 같은 눈치였지만, 다 씻겼냐며 쳐들어온 형사들에게 현성은 다시 끌려 나가야만 했다.
그리고 상황은 현성에게 갈수록 불리해져가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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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거 한 번 보실까?”
형사들 중의 한 명이 현성에게 서류를 내밀었다.
“……?”
발신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였는데 얼른 그 내용을 읽은 현성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의뢰된 의류와 수건 등을 검사했는데 극소량이지만 여성의 체액과 남성의 정액, 특이하게도 인분(人糞)이 적지 않게 검출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이게 현성과 무슨 상관이라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이 새끼 표정 연기 완전 아카데미상 감이네. 모르는 사람이면 꺼뻑 속아 넘어가겠어.”
이죽거리는 형사반장의 옆에 서있던 형사가 그 서류를 다시 챙기더니 현성에게 말을 건넸다.
자신은 오픈 마인드로 사는 사람이라며 현성에게 프린터 출력물을 보여주었던 그 젊은 형사였다.
“채현성 씨 오피스텔 안과 거기 있던 세탁기에서 수거된 걸레와 수건 등등을 검사한 겁니다. 웬만하면 서로 피곤하게 않으시는 게…”
“……!!?”
어디서 나왔다고? 뭐가 묻어 있었다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이건 엉터리라고, 조작이고 억지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하도 어이가 없어서인지 멍하니 벌어진 현성의 입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는 줄줄이 쏟아지는 증거(?)들이 등장을 알리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비닐봉투에 담긴 칼이 대롱거리며 현성의 눈앞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그 봉투를 들고 있는 형사가 같잖다는 듯한 표정으로 현성을 바라보며 이죽거렸다.
“이거 니 오피스텔 수색해보니까 나온 칼이거든. 니가 Z나게 여자애들 성폭행하려고 걔들 위협한 그 칼 맞지? 부인해봤자 소용없어. 니 오피스텔에서 나온 거고 사진에도 찍혀 있으니까.”
사진에 찍힌 칼?
사진 두어 장에 희미하게 보이는 은빛 물체? 그게 칼이라고?
현성은 저런 칼을 본 적도 없고 구입한 적도 사용한 적도 없었다.
게다가 저 칼이 현성의 오피스텔에서 나왔다고? 대체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도 기가 막혀서 어이가 없는 현성과는 달리,
넘치는 증거(?)들로 여유를 갖게 된 것인지, 눈에 띄게 경찰의 조사가 부드러워졌다.
현성에게 커피를 뽑아주는가 하면, 음료수를 주기도 했다.
심지어는 저녁 무렵 식사를 할 때가 되니,
따로 현성에게 설렁탕을 시켜주고는 반주로 소주까지 몇 잔 마시게 해주었다.
식사와 잠깐의 휴식 후 그들은 현성에게 몇 가지를 더 질문했다.
하지만 그 기세는 눈에 띄게 약해져 있었고, 답변을 들어야겠다는 의지 같은 것도 별로 없는 듯했다.
그것은 현성의 억측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들은 현성이 부인을 계속하자 더 이상 심문할 생각이 없는지 현성을 유치장에 넣었다.
현성에게는 차라리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휴식은 오래 가지 않았다.
다시 조서를 점검해야 한다며, 현성을 유치장 밖으로 끌어낸 것이다.
잠시 짜증이 나던 현성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굳어버리고 말았다.
카메라 플래시와 조명이 터지더니 사람들이 현성에게로 우르르 몰려든 것이다.
기자들임에 틀림없었다. 그리고 경찰은 그들을 별로 제지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현성은 할 수 없이 입고 있던 양복 상의를 뒤집어써야만 했다.
억울했다. 너무나 억울했다.
그들은 현성을 유죄가 확정된 죄인처럼 취급하며 이것저것 질문했다.
하지만 현성은 분노를 삼키며 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가 갈리기도 했고 수치스럽기도 했던 시간이 지나고 기자들이 떠나고 나자,
경찰은 약물검사를 해야 한다며 현성의 소변을 받아서 즉석에서 간이 시약 검사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아무런 반응도 나오지 않았다.
현성은 조금 자신이 생겨 자신의 주장을 다시 되풀이했다.
이건 뭔가 오해가 있는 거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들은 현성의 정수리 부근에서 모근(毛根)이 달린 머리카락을 수십 가닥 뽑았다.
그리고 다시 소변 시료도 채취했다.
정밀검사를 위해서라는 거였다.
당연히 지은 죄가 없는 현성으로서는 전혀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날 조서 꾸미기는 그만 하자며 그들은 현성을 유치장으로 들여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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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날, 오전부터 현성에게 낯이 익을 수밖에 없는 형사 한 명이 불쑥 유치장으로 들어왔다.
“이야, 아주 유명인사가 되셨더구만~.”
현성을 가리키며 낄낄대던 그 형사는 현성의 유치장 창살 앞에 신문을 몇 부 던지고는 나갔다.
주워볼 이유가 없었던 현성은 손도 대지 않았다.
그 신문들은 현성이 임자라고 생각한 탓일까?
같은 유치장에 있던 사람들이 우물쭈물 하며 현성의 눈치를 살폈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나던 현성은 유치장 한쪽 벽에 기대고는 눈을 감아 버렸다.
저마다 신문을 한 부씩 집어 들고 유치장 안으로 들여오는지 종이 소리가 제법 들려왔다.
“이거… 저 젊은 친구 기사 아냐?”
자그마한 목소리였지만 현성의 귀에는 무척이나 뚜렷하게 들렸다.
현성은 가만히 눈을 떴다.
현성이 앉은 맞은 편 벽 쪽에 두 명이 신문을 가운데에 놓고 모여 있었는데, 둘이 같이 보는 모양새였다.
시선을 옆으로 돌려보니 다른 두 명은 각각 신문을 혼자 들고 보고 있었다.
앞자리의 신문은 현성이 앉은 자리에서는 거꾸로 보이는 위치였지만, 머리기사 제목 정도는 쉽게 눈에 들어왔다.
명문대 출신 일류 대기업 사원이 벌인 엽기 범죄 어쩌고 하는 제목이 커다랗게 1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덜컹
명치 어림에서 배꼽 쪽으로 무언가 묵직하면서도 시리도록 차가운 것이 쿵 터지는 것 같았다.
유치장 내에 같이 있던 사람들이 신문을 읽으며 가끔 현성을 힐끔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그날 하루, 형사들은 어찌된 일인지 하루 온종일 현성을 부를 생각도 하지 않는 듯했다.
점심을 먹고 중간에 방 사람들과 영치금을 모아 산 간식을 같이 나눠먹을 때도 그들은 현성을 불러내지 않았다.
급기야 일과 시간이 끝나고 저녁을 먹은 후, 세면(洗面)과 양치질을 끝내도 아무 일이 없었다.
야간 조사는 급한 경우 있을 수 있어도, 밤샘 조사는 법률로 금지되니 어쩌니 하는 얘기를 들은 터라 오늘은 그냥 넘어가려나 싶었다.
드르르륵
꽤 큰 크기의 TV가 있는 이동식 거치대(据置臺)가 여러 방이 서로 붙어 있는 유치장 한 가운데로 밀려왔다.
근무자가 누구냐에 따라 조금씩 유동적이기는 했지만, 유치장에서도 가끔 TV를 보여주고는 했다.
엉?!
분명 현성에게 낯이 익은 양복의 상의를 뒤집어쓰고 책상에 엎드린 사람이 비춰지더니, 보도 내용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범인 C 모씨는 어린 여학생들에게 파렴치한 짓을 강요하고 사진촬영까지 했다고 경찰 측은 밝히고 있습니다. 놀라운 일은 범인이 국내 유명 명문대 출신이라는 점과…”
저 화면에 비춰지는 저 사람은 분명 현성이었다.
그런데 범인? 범인이라고?
아직 유죄 판결이 나지도 않은 사건이었고, 분명 자신은 억울했다.
그런데도 이미 죄인인 것처럼 보도해 이렇게 자신을 망가뜨릴 수 있는 것인가!
“… 신속히 인지하여 체포한 강N 경찰서 형사반장의 말입니다.”
뭐! 신속히 인지하여 뭐가 어째? 그리고 누구? 누구라고?
“명문대 출신의 엘리트다운 좋은 머리로 계속 부인을 하는 등 수사가 조금 난…, 흠흠, 어렵습니다만, 저의 오랜 수사 경험 덕분에 많은 단서를 잡아 증거를 찾을 수 있을 걸로 확신합니다. 이미 저는 범인이 향정신성약품을 사용했다는 것을 직감하여…”
TV 화면에 고정된 현성의 두 눈동자에 비친 건 그 박지상 반장이었다.
계속되는 화면에는 현성이 본 적도 없는 그 칼이 증거품으로 소개되고 있었고,
디지털 카메라와 현성이 쓰던 걸레나 수건 등도 증거품으로 연이어 소개되어 나오고 있었다.
꽉 쥐어진 현성의 두 주먹이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슬픔이나 두려움 때문은 아니었고, 억울함이나 분노 때문도 아니었다.
피식
갑자기 현성의 몸속에서 무언가가 확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그리고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눈이 감기는 것 같더니 현성의 몸은 유치장 바닥에 길게 뻗어버렸다.
가물가물 아득해져만 가는 의식 속에서, 누군가가 담요를 깔고 현성을 눕혀주고 있다는 것을 희미하게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혼수상태와 같은 잠 속에 깊이 빠져들면서 현성은 잠시 자신의 내면(內面)을 본 것만 같았다.
처음 현성의 두 주먹이 떨리게 만든 것은 분명 폭발을 향해 타오르기 일보 직전이었던 살의(殺意)였다.
그리고 그 불꽃을 도중에 피식 꺼트린 것은 지금 이 현실 속에서 현성이 결코 부인할 수 없는 무력감(無力感)이었다.
그 둘은 현성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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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다음 날, 박반장이 경멸과 비웃음이 가득한 얼굴로 현성을 끌어냈다.
“거봐! 내가 이 자식 뽕한 거라고 했지? 내 말이 언제 틀린 적이 있었어? 이 새끼 더 족쳐봐!”
이젠 정말 더 이상 기가 막힐 일도 없을 것 같았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검사 결과,
현성의 모근(毛根) 검사에서 메스암페타민(methamphetamine), 속칭 히로뽕 반응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 검사결과랍시고 나온 것을 그대로 수긍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건 분명 조작이고 협잡이었다.
극구 부인하며 항의했지만, 증거가 있다며 이죽대는 박반장의 얼굴에 이를 악물며 눈물을 삼킬 수밖에 없는 현성이었다.
그런데 그 일 후로 조서(調書) 작성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바로 이전까지의 욕설과 폭력은 마치 그 모두가 다 거짓말이었다는 듯 온화하고도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현성이 뭐라 반박하면 욕설은 기본이고 폭력으로 대응하던 그 형사는 마치 현성의 진술 내용을 받아쓰는 것만이 자신의 일이라는 듯, 내용확인만 하며 계속 타자만 쳐댔다.
게다가 모니터 바로 옆으로 현성을 부르더니 틀린 데 있거나 하면 수정할 테니 직접 읽어보라고까지 했다.
약간 의아했지만, 놀랍게도 조서는 현성이 부인하는 내용 그대로 작성되어 있었다.
재차삼차 내용 이상 없냐는 확인을 받은 그 형사는 조서를 프린터로 출력하더니 다시 한 번 읽어보라고까지 했다.
지금까지 현성을 향해 내뿜던 살의(殺意)에 가까운 적개심과 강압적인 태도는 어디로 간 걸까?
그들은 마치 민원을 제기하러 온 시민을 상대하는 것처럼 현성을 대하고 있었다.
잠시 후, 현성은 수갑이 채워지기는 했지만, 그들이 이끄는 대로 조서 한 장 한 장에 지장을 찍고 있었다.
조서 각 낱장의 한쪽 꼭짓점이 내용이 인쇄된 부분의 가운데 정도에 오게끔 접어 올려서는, 지장이 걸쳐지게 찍게 한 후 다시 펼치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식이었다.
그러니까 한 번 지장을 찍는 것만으로도, 조서의 앞면과 뒷면에 동시에 지장이 찍히게 되는 셈이었다.
그런 식으로 현성은 일일이 한 장 한 장마다 지문 날인을 해야만 했다.
이렇게 해야만 피의자 주장과 다른 점이 없게 조서가 꾸며졌다는 걸 당사자도 인정한다는 증거가 된다 어쩌고 하는 친절한(?) 안내까지 곁들여지고 있었다.
하지만 맨 마지막의 문구는 현성의 이를 악물게 했다.
‘이상의 조서 내용은 어떠한 강압적인 분위기나 수단도 없는 상황에서 작성된 것임을 인정합니다. 200X년 X월 X일’
그들은 현성에게 그 바로 아랫부분에 현성의 자필로 이름을 쓰게 하고는, 다시 거기에 지장을 찍게 했다.
유치장에 다시 넣어진 현성은 입구 부근에서 자신의 이름 옆에 검찰청 송치라는 글씨가 더해진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구속영장이 떨어졌다는 통보가 현성에게 전해졌을 무렵, 현성의 어머니가 달려왔다.
현성의 아버지가 충격으로 쓰러졌다는 소식을 전하며 울먹였다.
그렇게도 아버지 당신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그렇게 못 믿으셨던 거냐는 마음도 설핏 들었지만,
현성이 범인임을 기정사실화해서 연일 크게 떠들어대는 TV와 신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리라.
한숨이 나왔다. 미칠 노릇이었다.
현성은 지은의 일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버지와 자신의 일로 울먹이는 어머니에게 그런 얘기를 차마 꺼낼 수가 없었다.
엉엉 우시며 나가는 어머니의 등을 보며 현성은 이를 악물었다.
지금쯤 현성의 어머니는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으리라.
그러나 현모양처의 전형이랄 수 있는 분이 법조계에 인맥이 있을 리가 없고,
이런 일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현성의 어머니로서는 쉬운 일이 아닐 거라는 건 말할 필요도 없었다.
게다가 이런 불리한 건은 어지간한 수임료로는 어떤 변호사도 잘 맡으려 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도 들었다.
구속적부심(拘束適否審) 심사를 신청하겠느냐며 형사가 친절히(?) 말해주었지만 거부했다.
구속이 부당하니 불구속으로 해달라는 등의 이의신청을 판사에게 하겠느냐는 얘기였다.
하지만 거기 가봤자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자신은 아무런 힘도 못 쓰게 붙잡아두고는,
이것저것 증거라는 것들을 가져와서 들이대는 꼴들을 직접 겪고 듣고 본 현성이었다.
무엇보다 그 증거랍시고 들이대는 것들 중에는 현성이 본 적도 산 적도 만져본 적도 없는 것들까지 있었으니까.
지금의 현성에게는 경찰이고 검찰이고 법원이고 모두 다 한통속으로 생각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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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장에서 불려 나온 현성의 팔에는 수갑이 두 개나 채워졌다.
그리고 포승(捕繩)으로 팔과 상체가 칭칭 감겼다.
검찰 송치가 결정된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묶이더니 포승의 여분으로 두 사람끼리 서로 연결했다.
아마도 도주 방지를 위한 조처인 듯했다.
그런 꼴로 차에 실려 검찰 조사를 위해 검찰로 송치되었다.
첫날은 여기서 조사를 받고 저녁 즈음에 구치소로 수감될 거라고 했다.
검찰의 구속 피의자 대기실, 속칭 비둘기장이라 불리는 곳에서 근무자들에게 현성은 심한 모욕을 당했다.
신문, 방송에 현성의 일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기 때문이었는지 다들 현성을 알고 있었다.
보이는 근무자들마다 비웃음과 경멸과 욕설로 현성에게 야유를 보냈다.
“너 같은 새끼가 하도 훌륭한 일을 하셔서, 내가 어찌 너를 못 알아보실 수 있겠습니까?”
제복 입은 근무자 한 명이 비웃음을 날리며 현성에게 내뱉은 말이었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르던 현성이었다.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 인간쓰레기로 누군가에게 자신이 비치는 것만큼 괴로운 것은 없었다.
포승(捕繩)과 수갑에 묶여 5층의 조사실로 가는 도중이었다.
왼쪽에 얼핏 보이는 바깥을 향해 뛰어내려 자살하고 싶다는 충동이 불쑥불쑥 솟아올랐다.
하지만… 하지만… 현성은 이를 악물고 꾹 눌러 참았다.
여학생들의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와서 현성의 멱살을 잡았다.
검찰 직원들은 말리는 척만 했다.
현성은 그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아무 말을 못했다.
억울하다고, 이건 모두 오해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애써 꿀꺽 삼켰다.
현성이 무슨 말을 하든 간에 통할 리가 없을 터였다.
TV나 신문 등에 나온 피의자들을 비웃고 경멸하던 예전의 현성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다는 아닐지라도 거기에는 분명히 억울한 사람도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다.
열렬히 사형제도의 존속을 주장하며,
미성년자나 어린이 성폭행범들은 재판이고 뭐고 없이 사형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던 후배의 말에,
‘네 말이 옳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하며 박수를 치던 자신의 모습도 떠올랐다.
어쩌면 이건 자신이 그때 그들에게 퍼부었던 조소와 경멸에 대한 벌이나 대가(代價) 같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현성의 심정은 아득해져갔고 정신은 지쳐가고 있었다.
어떻게든 무죄를 증명해야만 했지만,
조사를 받으면 받을수록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현성은 실감하게 되었다.
구속된 상태에서는 그 어떤 반대 증거도 현성은 제시할 방법이 없었다.
왜 인권을 위해서는 불구속 재판이 자리 잡혀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지 이제야 현성은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불구속 재판이 자리 잡혀야 한다는 주장 역시 현성이 예전에 그토록 비웃었던 거였다.
‘하, 불구속 재판? 죄지은 놈들 도망가게 해주라는 거야 뭐야? 인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불구속 재판과 인권에 대해 주장하는 모 신문을 보며 현성이 비웃으며 내뱉은 말이었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지금 현성은 그 말을 철회하고 싶었다.
경찰이나 검찰은 조작까지 불사하며 이런저런 증거들을 수집하여 들이대는데,
조직력을 동원하여 수집한 그들의 그런 증거들에 대해,
한 개인에 불과한 피의자가 무슨 수로 대응하겠는가.
더더구나 인신 구속된 상태에서 무슨 수로 반대증거나 반대증언을 수집하여 제시할 수 있다는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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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성은 자신의 사건 담당 검사 사무실로 계호(戒護)되었다. 즉 묶인 채로 사람들에게 호송(護送)되어 검사 사무실로 이끌려갔다.
들어가 보니 안에 문이 하나 더 있었고, 거기에 검사 윤재근이라고 씌어 있는 명판이 붙어 있었다.
저기로 들어가서 조사 받는 건가 생각했던 현성의 생각과는 달리, 계호자는 현성을 문 바로 옆의 의자에 앉혔다.
컴퓨터 모니터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현성과 마주보는 사람은 그 경찰서의 뚱보 형사를 좀 더 날씬하게 줄여놓은 듯한 인상이었다.
앉은 자리와 풍기는 분위기 등으로 보아, 이 사람이 검사 같지는 않았지만 그 사람은 현성에게 마약 혐의부터 추궁하고 들었다.
지루한 추궁과 현성의 반박이 이어졌다.
이는 경찰서에서의 일의 재현이나 다름없었다. 차이점이라면 폭언과 폭력이 없다는 정도일까?
현성은 워낙 건강 체질이라 그런지 지금까지 약도 별로 먹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담배나 카페인 음료 등에 중독된 사람을 은근히 한심하게 여겼으며,
마약이나 그런 걸 사용하는 사람들을 극도로 혐오하던 것이 현성이었다.
그러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곧 절대 진리라는 말과 마찬가지로 통하고 있었다.
권력과 배경을 가진 이들이 믿는 절대 진리를 현성이 아무리 부인(否認)해봐도 소용없을 것은 당연했다.
현성의 입장에서는 정말로 그런 것을 알지 못하고 한 적도 없기에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이었지만,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분석결과에 대한 반대 증거를 내놓지 못하는 현성의 부인(否認)은 냉소와 비아냥거림을 불러올 뿐이었다.
“꼴에 K대 나왔네? 너 같은 놈 때문에 K대가 욕먹는 거야. 인마!”
그들은 깐죽거리며 현성을 비웃었다.
“똥칠은 늙어서 니 방 벽에나 해 임마. K대에 똥칠하고 니 부모한테 똥칠하고! 잘 하는 짓이다. 이 새꺄!”
1시간 정도 지났을까? 갑자기 현성을 비웃던 사람이 벌떡 일어서며 현성의 뒤쪽으로 고개를 조아렸다.
“사무관, 나 조사 차 나갔다가 거기서 바로 퇴근할 거니까 마무리 좀 잘 부탁해요.”
사무관? 역시 이 사람은 검사가 아니고 저 사람이 검사였구나.
“네, 다녀오십시오. 검사님.”
사무관보다 적어도 10년은 더 젊어 보이는 검사를 향해, 사무관의 허리는 거의 직각으로 굽혀지고 있었다.
잠시 그 검사가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현성의 머리를 조사관은 조서뭉치로 툭툭 쳤다.
“뭘 보냐! 그리고 이 Z같은 새끼야. 여자애들 입이 똥간이냐 인마?”
◆글쓴이의 변(辯)*****************************************************************
여타 야설에 비해 제 글의 조회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네요.
제 글이 아직은 많이 부족한가 봅니다.
그래도 덧글과 추천으로 응원해주시는 분들의 숫자가 조회수에 비해 적은 편이 결코 아니라서 다시 기운을 내봅니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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