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가족-삐삐가족-
‘김 작가님, 제발 정신 쫌 차리시져?’
PD아쟈씨의 불호령이 또 떨어지고 있었다. 대개 서너명의 젊은 대본 작가가 주축이 되어, 돌아가며 에피소우드를 써야 하는, 평범한 시트콤 이었지만, 시청자들을 웃겨야 하는 목적에는 다를 바 없어서 인지, 유달리 웃기는 대목이 없는 내 글에, 저렇듯 시비를 거는 게다.
‘김 작가님, 이렇게 맨날 초짜들이랑, 습작 같은 시트콤이나 쓰고 계셔야 되겠슈? 다른 사람들처럼 주말극으로 승천하시든가 해야지, 맨날 까이는 짓, 이젠 지겹지도 않으시남?’
‘저도 열심히 할라고 애 쓰거덩여?’
‘애만 쓰면 뭐하시나? 나날이 재미 없어지는 게, 꼭 김치 쉬어 빠지는 격이니, 소인이 시비를 걸질 않을 수가 없다 이 말이져. 그 좋은 필력으로 그렇게 웃길 소재가 없으시남?’
‘저도 생각하는 건 있는데, 워낙 열악한 이 바닥의 실정이 그러니…..’
‘꼭 자신 없는 양반들이, 칼 탓 하신다니깐? 아니, 이제까지 히트쳤던 시트콤들은 뭐, 딴나라에서 제작했나? 다 요리 피하고, 저리 대가리 굴리고 해서 얻어낸, 빛나는 역사 아니겠수? 공중파를 타려면 감수해야 해는 거, 뭔지 잘 아시잖아여? 저속하게 해도 안되고, 너무 도도해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부티까도 안되고,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해도, 너무 외설적이어도 안되고, 너무 싱거워도 그렇고……그런 어려운 장애물과 난관을 뚫고서, 연말에 연기대상이나, 작품상을 거머쥐어야 제대로 된 작가네, 연기자네, 제작진이네 하는 소리 듣는 거라구여. 알만한 양반이……’
‘아니까 이러고 있져.’
‘숨만 쉬고 계시면 뭐 하나?’
‘저도 이번 아이디어 회의 때, 폼나게 한번 까려고 열씸히 대가리 굴리고 있어여.’
‘그래여? 어디 있다가 쫌 보자구여. 얼마나 기깔난 소잰지….’
난 괜시리 되도 않는 스토리를 가지고, 시작도 하기전에 나불댄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앞섰다. 머릿속에서만 뱅뱅도는 것을 노트북에다 그저 긁적거려 놓은 것 뿐 이었는데, 뭐 거청한 거라도 되는 것처럼 부풀려 설레발을 떤 것이, 졸나 후회가 되기는 했지만, 이미 싸질러 놓은 좇물 이었다.
‘자, 회의 시작합세다.’
또 다시 시작되는 회의실 안의 납덩이 처럼 무거운 분위기. 그 이유를 들라하면, 지난 회차분에 방영된 부분에 대한 결과를 짚고 넘어가는 과정 때문임을 모두들 잘 알고 있었다.
‘동 시간대, 타 방송의 시트콤이 기어이 우리보다 훨씬 상회하는 시청률을 나타낸 거, 다 알고들 계시져? 이거 위기 상황 입니다. 아시겠어여? 위에서는 작가들 다 뒤졌냐고 호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게다가 시청률, 이렇게 밑으로 내리 깔다가는 어떻게 되는 지 아시져? 알짜배기 광고 떨어져 나가, 시청자 소감란에 불평 쏟아져, 조기 종영 바람 불어대, 결국 갈 곳 이라고는 내리막 밖에 더 있겠냐 이거져. 자, 그래서 허는 말인데, 이쯤에서 우리 작품의 나아갈 방향을 한번 되짚는 의미에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어 보자, 이 말 이져. 다음 주 녹화분은, 이미 대본이 나왔으니, 조금만 수정하고, 연기자들에게 넘기면 될 거고, 진짜 중요한 문제를 쫌 토의해 보자고요.’
모인 제작진들과 대본작가들, 그리고, 연기자까지 모인 자리에서 대빵PD가 운을 띄웠다.
‘우선 연기자 분들께서 말씀 좀 해 주시져.’
사실 연기자들에게 돌아갈 죄값은 없는 편이었다. 처음에야 배역에 대한 적응기간과 정확한 캐릭터의 특징을 잡아내는 것에, 시간을 소요하기는 하지만, 작가가 의도하는 바대로 캐릭터를 제대로만 감을 잡고 끌고 나가면, 용이하게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추어 지는 것이 현실이었기에 말이다.
‘우리들이야, 잘만 써 주시면, 더 바랄 게 있겠어여? 어차피 다들 어려운 걸음인데, 우리라고 자가용 타고 질주하는 것도 아니고설랑…..’
그건 맞는 말이었다. 연기자야 재미나는 대본에다, 자신의 캐릭터나 짱짱하면 그만 이었지, 더 뭘 바라겠는가 말이다. 속된 말로 스토리가 좇같은 게 탈이지, 연기자야 그대로 따라하는 죄 밖에 더 있겠는가?
‘그래도 연기를 하시는 입장에서 작가 분들에게 더 바라고 싶은 것이 있으실 텐데요?’
대빵 PD의 간교한 수작…..연기자들을 부추켜, 자신의 입으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 찐빠를 멕이려는 심산을 모를 내가 아니었다.
‘그럼, 하나만 말씀 드릴께여. 시트콤이 시종일관 눈물 짜내게 하거나, 감동 일색으로 가는 프로는 아니거덩여. 일단 웃겨야 하지만, 개그 프로도 아니고 하니, 시도 때도 없이, 유행어 같은 걸 남발 할 수도 없고…..소재가 우선 웃겨야 하는데, 작가님들 께서는 그저 단어 하나, 대사 한 줄에 시청자들이 뒤집어 진다고 여기시는 것 같은데, 사실 안 그렇거덩여. 스토리의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꼬여 놔도, 기가 막히게 시종을 꿰차고 있는데, 그깟 단어 하나 쯤이야, 다음 대사로 뭘 쳐댈지, 저희들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게, 요즈음 시청자 수준 이라고 보시면 되여. 그러니, 제발 산뜻하면서도, 웃겨 자빠질 듯한 소재를 우선 고르는 것이 급선무 같아여. 제 모자라는 소견 이지만서도….’
중견 탈랜트인 그 분의 의견은 보나마나, 아마도 PD의 압력을 통해, 전달된 듯 싶다. 그러니, 마지막에 모자라는 소견이라는 발뺌과 동시에, 이건 제 생각이 아니거덩여 라는 의미를 내 비추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작가 중에서 제일 다혈질인 정 작가가 나섰다.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만, 촉박한 녹화 일정에다가, 시트콤 작가 주제비에, 보고 들은 건 있어 가지고, 뭔 놈의 쪽대본 씩이나 날리냐, 어쩌고 하면서, 들어오는 압력도 무시 못하거든여. 글이 뭐 엿가락이나, 국수 뽑듯이 술술 나오면, 저희도 얼마나 좋겠습니까? 배역과 상황, 설정은 그대로인 채로, 이야기를 그 안에 끼워 맞춰야 하는 시트콤의 성격이 만만치가 않거덩여? 따져 보시면 아실 겁니다. 아버지가 항상 평범한 회사원인데, 그것도 설정이랍시고, 갑자기 로또에 당첨 시킬 수는 없잖아여? 만일 그렇게 되면, 다음 회에서부터 로또 당첨으로 인한 이야기로, 몇 회는 우려먹을 수 있다지만, 그걸로 주구장창 밀고 나갈 수는 없거덩여. 그리고, 막말로 로또 당첨 되고도, 지지리 궁상의 세트에서 계속 살아간다고도 할 수도 없으니, 당연히 첨 보담야 잘 사는 걸로 배경이 전환되어야 하는데, 제작비가 빠듯한 이 실정에, 그게 쉽사리 들어 먹힐까 모르겄어여. 내, 참……’
나는 속이 다 후련해지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으고 있는 거 아니겠어여, 정 작가님? 지지난 주, 시청률 기억 하시져? 그 개그맨의 유행어 잘못 썼다가, 시청자 의견란에 물밀듯이 항의 들어온 거…..아니, 남의 트레이드 마크를 그렇게 마구 쓰는 거, 그거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어여? 웃길 소재가 없으면, 울리기라도 할 것 이지, 나 이거야, 원…..’
깨갱하며 꼬리를 내리는 정 작가…..쯧쯧….. 시트콤 이란 것이 매일매일의 벌어지는 헤프닝을 주로하여 꾸며가기에, 쌩뚱맞게 무거운 주제, 예를 들자면, 인기 드라마에서 잘 쓰는 수법이긴 한데, 출생의 비밀, 교통사고나 반드시 말기의 불치병, 때 아닌 결혼과 임신, 경쟁자의 훼방과 비리 & 복수, 첨예한 갈등국면등을 말하는 것으로, 이런 것들이 등장하면, 작가는 오히려 신이 나게 되어 있었다. 스토리의 설정은 이미 끝났고, 수순에 의해, 이야기를 꾸며 나가기만 하면, 한달은 넉끈히 버틸 수 있기에……그러나, 우리는 달랐다. 소재를 발굴하는 것에 언제나 골머리를 싸매야 하고, 아무리 가벼운 텃취의 시트콤이라고는 해도, 어찌 그리 시청자의 돌팔매는 매섭고, 끊임이 없는 것인지……그러다 보면, 시름이나 잊자고, 무심코 틀어놓은 개그 프로에서 터져 나오는 방청객의 웃음에 현혹되어, 그게 독약인지 뻔히 알면서도, 대본에 기어이 넣고야 마는 습성을 버리지 못해, 일어난 일들이 대부분인 것을, 우리 작가들은 공감한다.
‘우리 베테랑 김 작가님께서는 이번에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오셨는지여? 아까 잠깐 들어보니, 대단한 걸 들고 오신다고 팡파레가 대단 하시던데……’
조런 닝기리 쌉쉐이 같으니라구! 내가 저 PD 새끼 밉지 않으면 성을 확 가는 건데….
‘아, 그러니까…..저기…..에, 또…..하설라무네……’
‘사설이 좀 짧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네여…..쩝….’
사사껀껀 딴지는? 난 큰 헛기침을 한번 크게 하고서 운을 뗐다. 적어도 1시간 이내로 예약되어 있던 아이디어 회의는, 그 날, 장장 3시간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아이디어의 포문을 연 죄로, 난 그 시간부로 날밤을 까야 했는데, 모든 사람들의 만장일치에 의해, 다음 주 녹화분의 대본을 잠정적으로 연기하고, 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급조되기는 하겠지만, 새로운 대본을 만들어, 긴급하게 녹화에 들어가자는 데에, 합의 했기 때문 이었다.
‘캬, 나 김선배가 한 껀 할 줄 알았다니깐여? 와, 정말 죽여….대본이나 빨리 보자구여.’
다른 작가들과 제작진, 출연진들 모두, 회의가 끝나고 나서, 내 등을 두드리는데, 난 등짝이 얼얼해서 정신이 없는 지경이었다.
‘아효, 이러지들 말라니깐! 아직 대본도 없고, 녹화도 아니고, 방영도 되질 않은 단순 아이디어를 갖고 너무들 이러는 거, 대략 난감 하거든? 제발, 쫌!’
내가 성을 내건 말건, 다른 작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해 버렸다. 한동안 PD는 나를 통해 스토리의 진전을 요구할테고, 다른 작가들은 부담감 없이, 자원봉사 하듯, 나의 대필작가가 되어 준다고 나설 것이고, 모든 짐이 내 어깨 위에 얹혀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난 대본 작업을 위해 먼저 간다고 하면서 방송국을, 그것도 대낮에 나왔다.
‘여보세여? 00이니? 지금 녹화 없지? 나와라!’
아직 노처녀로서 남들의 좇같은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다니는, 00이를 불러냈다. 이따가 1시간 후에 대본연습하러 연습실로 다시 돌아가야 된다며, 오늘은 작가 선상님께서 필히 참석하신다며, 한 사람도 늦는 일이 없도록 PD가 일일이 신신당부 했다는 갸를, 난 기어이 방송국 앞으로 불러냈다.
‘오빠, 왜? 나 디지게 바쁜데…..’
헐레벌떡 화장끼 없는 얼굴로 달려온 00이….나와는 오래된 막역한 친구 사이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 따까리 하러가자!’
‘지금? 씨뻘건 대낮에? 미쳤수?’
‘너나 나나, 어차피 내놓고 결혼 하기는 글른 몸인데, 씹빠빠도 맘놓고 못하면, 이 더러븐 세상 어찌 사누?’
‘오빠, 뭔 일 있었수? PD한테 또 까였어?, 그런거야?’
‘그냥 그렇다. 가자. 얼릉….빨리 돌아가야 한다매?’
난 00이와 같이 샤워를 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 00이의 그 소담스런 젖을 만지지도 않았다.
‘너 스포츠 신문에 누구랑 사귄다고 뉴스 떴더라?’
‘그걸 믿우? 이번에 영화 개봉하는 거, 나 보러 오는 손님 쫌 끌어 모으자고, 우리 매니져가 슬며시 흘려 놓은 설레발을 가지고 긴장허기는….오빠도 늙었는가 봐.’
물기를 닦고, 침대에 눕자마자, 00이가 벌써부터 들러붙어 좇대가리를 갖고 놀았다.
‘너, 이제보니, 건성으로 하고 있지? 야! 내가 돈주고 여자 부른 것도 아니고설랑, 다짜고짜 좇대가리 흔들고….기가 막혀서….’
‘왜 성질부터 내고 그래? 이래뵈도 연예인치고, 나처럼 조신하게 한 남자만 꿰차고 있는 년도 드물다구. 어디서 뺨맞고, 어디서 발길질이래? 나니깐 참고 있지…..으이고, 미련한 년 따우…..’
지 머리를 쥐어박는 그녀를 보면서, 난 웃으며, 그냥 두 팔을 벌렸다. 난 섹스보다도 그녀의 따스함이 그리웠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내 품에 안겨, 숨을 죽이는 그녀…..
‘오빠! 화 난 거 맞우? 화 났다는 사람이 아랫도리는 왜 이다지도 치켜 세운데? 화가 나면 좇대가리도 세워지남?’
‘요게, 나이 먹어가면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나만큼 정조 굳센 연예인, 눈 씻고 찾아봐. 없을껄? 미련 곰팅이 같은 년따우….. 빵빵하고 번드르르 하다 못해, 골까지 빈 재벌집 아들들 청혼, 다 뿌리치고, 겨우 글쟁이 한테 뻑이 가서리, 일하다 말고, 보지 둘르러 나오고, 참…..나도 한심하다, 그치?’
‘글쟁이가 어때서? 대박나는 주말 연속극도 한번 못 써 봤다구? 쥐 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이거 왜 이러셔?’
품에 안겨서 쌔근대는 그녀, 벌써 내가 몇마디 하기도 전에, 내 몸 위에 엎디어 잠이 들어 버렸다. 지난 주 내내, 3시간도 못자고 녹화를 했다는 얘기가 실감이 나고 있었다. 나나 그녀나, 뭘 위해서 이렇게 정신없이, 미친 것처럼 살아대고 있는 것인지……헐……
‘&%###&*%....’
알아듣지도 못할 잠꼬대를 하면서 잠에 빠져드는 그녀. 아마도 한참 외우고 있는 그 드라마의 대사 인가보다. 나와 만난지도 벌써 5년이 다 되어 간다. 연예인은 조건만 맞으면, 주구장창, 보지를 있는대로 돌리는 줄 알고 있었던, 나의 선입견을 보기좋게 깨어버린 것이 그녀였다. 그들도 남들과 다름없이 상처받고, 괴로와 하고, 우울해 하며, 연기가 아닌, 진정으로 슬퍼 할 줄도 아는 것을 알려준 그녀. 방송국의 옥상에서 난 처음, 신인 시절의 그녀를 만났다. 자기에게 오랜만에 맡겨진 배역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도 잠깐, 주변에서는 PD와 그렇고 그런 사이이기에 배역을 따낸 것이 아니냐는 시선 때문에, 슬퍼서 견딜 수 없다고 하던 그녀를 첨 본 순간부터, 솔직히 난 그녀에게 빠져 들어갔다고 고백해야 했다. 나를 위해서 언제나 핸폰이 아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던 그녀….아직까지 변변한 글 하나 대박 내질 못해, 청혼조차 못하는 나를 위해서, 이런 대낮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오라고 하면, 번개같이 튀어 나오는 순정파인 그녀.
‘그래, 00이를 위해서라도 이번에 칼 한번 갈아보지, 뭐.’
난 내 몸 위에서 자고는 있었어도, 거의 무게가 느껴지질 않는 그녀의 연약함이 가여워, 그냥 몸을 쓸어주고만 있었다. 이렇게 피곤에 쩔은 그녀의 보지를 내 불거진 심사나 다스리자고 좇나게 쑤셔 버리면, 그 뒷감당으로 코피라도 쏟아버릴, 그녀가 심히 걱정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난 그때, 얼버무리듯이 잠꼬대를 다시 또 해대는 그녀를 보면서, 무언가 뇌리를 팍하고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건 망치로 뒤통수를 뽀개버리는 그런 충격이었다. 난 내 위에서 새근새근 자는 그녀를 화들짝 팽개치고, 침대에서 일어나고 부터, 그 충격이 영향을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아니…..무거우면 무겁다고 할 것이지, 이렇게 사람을 패대기질을 치나? 엉? 시간이 몇시야? 나 쫌 깨우지……머리 만지고 갈 시간도 없넹..으이그…오빠두 참….’
잠이라도 곤히 자게 놔 두는 건데….난 그녀가 황급히 나가는 것도 마중하는둥, 마는둥 하면서, 들고온 노트북 PC를 모텔의 탁자 위에 펴고, 열나 자판을 두들겨 댔다. 그러고부터 5시간이 흐른 뒤에, 난 이 세상에 태어나 첨으로, 그것도 그렇게나 신속하게 시트콤의 한 주 녹화 분량을 탈고해 버렸다. 그것도 뿡알이랑, 좇대가리 덜렁거리는, 나체 상태로 의자에 앉아…..
‘와! 역쉬, 역쉬, 역쉬….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깐. 우리의 위대하쉰 김 작가님, 바로 대박 예감이라고 아뢰오.’
대빵PD가 내가 모텔에서 바로 들고 온, 대본을 받아들고는, 그 날 밤중으로, 전 스텝이 비상으로 소집 되었고, 연예 기자들이 한 사람도 오지 못하도록, 철통같이 삼엄한 경비아래 녹화가 마쳐졌다. 연기자들이 중간에 연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적나라한 대사들로 인해, NG를 내기도 수십번, 정말 모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녹화를 마쳤고, 날밤을 깠지만서도, 한 사람도 조는 사람이 없을 정도 였다.
‘자, 이제, 방영 날짜만을 남기고 있다, 이거지? 연기자들 나레이션 작업이랑, 삐삐처리는 완벽하게 검수했지?’
PD도 심히 불안해 하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대망의 방영일이 다가왔다. 우리 팀은 일부러 예고편을 올리질 않았다. 이번주 방영분에 대한 시청자 소감에서, 어째서 예고편이 올라오질 않았느냐는 질문 뿐이었고, 별다른 항의는 없었다.
‘띵띠딩띠.띵띠딩띠…..’
시트콤의 경쾌한 인트로 뮤직과 아울러 예전과 다름없는 분위기…..그러나, 장면은 바뀌어, 이제까지 평범한 집안으로 보이던 껄떡이네의 모습은 아주 망가져 있었고, 껄떡이의 나래이션이 처절한 분위기와 함께 이어져 갔다.
‘…..우리 집안의 1.삐삐은 내력은 여기서부터 출발 했다는 것을 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는 돈만 있으면 아무 한테나 그 2.삐삐삐를 줄창 내두르는 3.삐삐삐삐였고, 아빠는 젊은 4.삐삐삐 찾아, 눈먼 돈을 기어이 뿌리려고 찾아드는, 허접한 5.삐삐삐삐들을 꾀는 룸싸롱의 삐끼였다…..’
이른바, 방송 부적합 용어들을, 마구 들이대어 버린 시트콤이 전파를 타자마자, 시청자 게시판과 방송국의 전화는, 거의 마비 사태에다, 홈피의 서버가 다운이 될 정도로, 불이 나기 시작했다. 공중파에는 방송되질 않고, 삐삐하는 제거음으로 차단된 대사는 시청자들에게 있어서 의문의 핵심이었고, 방송을 보는 도중에도, 나래이션이나 대사 중간의 방송 부적합 단어나 문장에 대해서는, 만화의 지문처럼 번호와 함께 이멜주소에 붙는 골뱅이 표시가 오로록 화면 하단에 시청자 퀴즈처럼 표시되니,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난리가 날 수밖에….주인공인 껄떡이와 엄마의 대화 장면은 첨예의 관심사 이기도 했다.
‘…야, 껄떡이, 이 26.삐삐은 27.삐삐넘아, 가라는 학교는 안가고, 어디 갈데가 없어서, 28.삐삐삐에 가서 줄창 29.삐삐이나 뽑고 다녀? 너 어디 30.삐삐 터지도록 디지게 맞아 터져볼테야?’
평소의 심약한 누나의 이미지가 여기서는 완전 구겨졌는데, PD는 연기에 완전 물이 올랐다고 칭찬이 대단 했었다.
‘……너, 이 97.삐삐삐삐, 그러다, 딴 년이랑 결혼하면, 너 내 98.삐삐에 오매불망 99.삐삐삐 하던 니 허접한 100.삐삐삐삐, 아작 날 줄 알어!’
밥상위에 놓여져 있던, 소품도 아닌, 진짜 소주병을 들고 깨 버린, 아버지 역의 연기자는 조폭 저리가라 할 정도의 서슬퍼런 연기로 만인의 칭송이 자자했다.
‘…..야, 이. 256.삐삐삐, 257.삐삐에 기름에다 꼬치장 발라서, 불에 확 그어 튀길 년아! 니가 집에서 한 일이 뭔데? 애들 저 지경으로 258.삐삐에 땀나게, 259.삐삐삐삐에 살 타는 냄새 나도록, 밖으로 돌 때, 넌 뭐 했는데? 아이구, 잘 헌다. 남편 나가서 260.삐 빠지게 뺑R이 돌 때, 니 년은 그 잘난 261.삐삐삐삐 벌려가면서 262.삐삐으로 생활비 벌었다구? 에라이, 263.삐삐살 피 말려서, 264.삐삐삐에 갈아 넣을 년 같으니라구. 내 보다보다 너 같이, 에미라고 들어 앉아서, 애들 내팽게 쳐 놓고, 265.삐삐삐 놀음에 정신 나간 년은 첨 본다.’
시청자들이 올린 그 번호가 달린, 삐삐에 대한 적나라한 해석으로 인해, 그 저녁 강퇴를 당한 사용자들의 모임이 따로이 급조된 홈피로 만들어 질 정도로, 내가 쓴 시트콤의 영향은 폭풍의 핵심구도로 자리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시청자의 의견을 조금 들여다 보자면,
‘………
12360. 00000님 : 아니, 강퇴시킬 얘기를 왜 삐삐나게 발설 하고 있대? 내가 한 삐삐가
뭔 소린지 알고 싶은 분은 쪽지 주셈!
12359.관리자 : 12358의 00000님께서는 홈피 부적격 단어의 사용으로 강퇴 당하셨슴다.
12358. 00000님 : 12357의 00000님, 제가 독순술을 쫌 아는데, 이거 증말 대단한 시트콤
이거덩여? 아실랑가 몰라도…..슬쩍 알려 드리자면, 99번 삐삐는 빠구리
라는 단어에여. ㅎ ㅎ ㅎ….
12357. 00000님 : 살다살다 이런 시트콤은 첨 봐여. 대사는 없고, 맨 삐삐소리 투성이의
대체 뭘 보라는 건지……쩝.
…..’
그 밤, 시청자들은 번호가 붙은 삐삐에 대한 구구절절한 해석으로 난리가 났으며, 방송을 못 본 사람들까지, 다시 보려고 몰려드는 통해, 인터넷의 다시보기 서버가 계속해서 다운 되기도 했다. 1주일이 지나자, 방송분을 다시 MPEG2파일로 녹화를 떠서, 지워졌던 삐삐 부분에 자막을 넣어 다시 더빙하고, 자신의 홈피에 올려 톡톡히 재미를 보는 시청자도 나왔다. 시청자들은 우리 시트콤의 타이틀인 껄떡이네 가족 이라는 이름 대신에, 삐삐가족이라고 개명해서 부르기 시작했고, 내 이름 대신, 대단한 진일보로 공중파 속에 잠자고 있는 수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흔들어 놓은, 나를 삐삐작가라고 개칭해서 불렀다. 사람들은 첨예하게 이런 쓰레기 같은 시트콤은, 없어져야 한다는 부류와 공중파의 법규를 정직하게 준수하면서도, 할 말, 못할 말, 가릴 것 없이, 삐삐라는 소음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해대는, 이런 열성적인 시트콤은 장수프로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두 부류로 갈라서게 되었다. 찬성파가 주장하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연기자의 대사 였을뿐, 나체도, 신체노출도, 음란함도 없는, 그저 감정의 표출과 표정이 실린 대사에 불과 했으며, 방송사는 방송 부적격 단어를 성실하게 걸러, 시청자들의 문화적 오염을, 최선을 다해 막았다는 것 만으로도, 상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다. 언제나 골라놓은 단어, 매끈한 어조로만 일관될 줄 알았던, 드라마와 여타 시트콤은 한방에 처참한 공습을 당한 셈이 되었고, 삐삐라는 제한음은 이제 방송과 연예가의 기본 패턴이 되어 가는 듯 했다. 잠을 자고 깨어보니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나 또한 그랬다. 아침부터 내 집앞은 밀려드는 보도진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난 생전처음 카메라 세례에다, 길거리를 걸을 수 없을 정도의 싸인요청 공세에 붕붕 날라서 다닐 수 있었고….
‘00이니? 녹화 없지? 지금 여기 파리떼가 들끓어 안될 거 같아서…..응응…..우리 거기서 만나자…….응? 왜 만나냐구?........ 나 너한테 삐삐 할려구……뭐라구? 삐삐가 뭐냐구? 응, 그러니까, 설라무네…..응…..그건 오면 얘기해 주께. 영원히 우리 00이를 삐삐해 주려면 내가 꼭 삐삐해야 하거든. 그러니까 꼭 와라. 나, 너 올때까지 기둘린다. 알았지?’
기자들 등쌀에 데이트도 힘들어, 난 그 무리를 빠져 나오면서, 언제나 우리 두 사람이 밀회를 나누던 그 모텔에서 보자는 전화를 날리는 중이었다. 이 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니깐! 그런데 삐삐는 뭐냐고? 글쎄, 내일 아침 신문에 날 게 분명한데, 내가 굳이 삐삐를 설명할 필요 있을까?
-끝-
P.S.: 방송 내용중, 글에 인용된 삐삐의 해석분을 올립니다. 많은 참고 되시길….
1. 좇같
2. 씹보지
3. 걸레보지
4. 씹구녕
5. 좇대가리
26. 좇같
27. 씨벌
28. 대딸방
29. 좇물
30. 뿡알
97. 씹쭈구리
98. 구녕
99. 빠구리
100. 좇대가리
256. 씨부럴
257. 보지
258. 보지
259. 좇대가리
260. 좇
261. 빠다보지
262. 떼씹
263. 보지
264. 똥꾸녕
265. 씹빠빠
그동안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어느새 200고지 군요. 힘이 들긴 했었습니다. 그래도 님들의 성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구요. 다시한번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블루스맨 배상-
‘김 작가님, 제발 정신 쫌 차리시져?’
PD아쟈씨의 불호령이 또 떨어지고 있었다. 대개 서너명의 젊은 대본 작가가 주축이 되어, 돌아가며 에피소우드를 써야 하는, 평범한 시트콤 이었지만, 시청자들을 웃겨야 하는 목적에는 다를 바 없어서 인지, 유달리 웃기는 대목이 없는 내 글에, 저렇듯 시비를 거는 게다.
‘김 작가님, 이렇게 맨날 초짜들이랑, 습작 같은 시트콤이나 쓰고 계셔야 되겠슈? 다른 사람들처럼 주말극으로 승천하시든가 해야지, 맨날 까이는 짓, 이젠 지겹지도 않으시남?’
‘저도 열심히 할라고 애 쓰거덩여?’
‘애만 쓰면 뭐하시나? 나날이 재미 없어지는 게, 꼭 김치 쉬어 빠지는 격이니, 소인이 시비를 걸질 않을 수가 없다 이 말이져. 그 좋은 필력으로 그렇게 웃길 소재가 없으시남?’
‘저도 생각하는 건 있는데, 워낙 열악한 이 바닥의 실정이 그러니…..’
‘꼭 자신 없는 양반들이, 칼 탓 하신다니깐? 아니, 이제까지 히트쳤던 시트콤들은 뭐, 딴나라에서 제작했나? 다 요리 피하고, 저리 대가리 굴리고 해서 얻어낸, 빛나는 역사 아니겠수? 공중파를 타려면 감수해야 해는 거, 뭔지 잘 아시잖아여? 저속하게 해도 안되고, 너무 도도해도 안되고, 그렇다고 너무 부티까도 안되고, 그렇다고 찢어지게 가난해도, 너무 외설적이어도 안되고, 너무 싱거워도 그렇고……그런 어려운 장애물과 난관을 뚫고서, 연말에 연기대상이나, 작품상을 거머쥐어야 제대로 된 작가네, 연기자네, 제작진이네 하는 소리 듣는 거라구여. 알만한 양반이……’
‘아니까 이러고 있져.’
‘숨만 쉬고 계시면 뭐 하나?’
‘저도 이번 아이디어 회의 때, 폼나게 한번 까려고 열씸히 대가리 굴리고 있어여.’
‘그래여? 어디 있다가 쫌 보자구여. 얼마나 기깔난 소잰지….’
난 괜시리 되도 않는 스토리를 가지고, 시작도 하기전에 나불댄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이 앞섰다. 머릿속에서만 뱅뱅도는 것을 노트북에다 그저 긁적거려 놓은 것 뿐 이었는데, 뭐 거청한 거라도 되는 것처럼 부풀려 설레발을 떤 것이, 졸나 후회가 되기는 했지만, 이미 싸질러 놓은 좇물 이었다.
‘자, 회의 시작합세다.’
또 다시 시작되는 회의실 안의 납덩이 처럼 무거운 분위기. 그 이유를 들라하면, 지난 회차분에 방영된 부분에 대한 결과를 짚고 넘어가는 과정 때문임을 모두들 잘 알고 있었다.
‘동 시간대, 타 방송의 시트콤이 기어이 우리보다 훨씬 상회하는 시청률을 나타낸 거, 다 알고들 계시져? 이거 위기 상황 입니다. 아시겠어여? 위에서는 작가들 다 뒤졌냐고 호통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게다가 시청률, 이렇게 밑으로 내리 깔다가는 어떻게 되는 지 아시져? 알짜배기 광고 떨어져 나가, 시청자 소감란에 불평 쏟아져, 조기 종영 바람 불어대, 결국 갈 곳 이라고는 내리막 밖에 더 있겠냐 이거져. 자, 그래서 허는 말인데, 이쯤에서 우리 작품의 나아갈 방향을 한번 되짚는 의미에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어 보자, 이 말 이져. 다음 주 녹화분은, 이미 대본이 나왔으니, 조금만 수정하고, 연기자들에게 넘기면 될 거고, 진짜 중요한 문제를 쫌 토의해 보자고요.’
모인 제작진들과 대본작가들, 그리고, 연기자까지 모인 자리에서 대빵PD가 운을 띄웠다.
‘우선 연기자 분들께서 말씀 좀 해 주시져.’
사실 연기자들에게 돌아갈 죄값은 없는 편이었다. 처음에야 배역에 대한 적응기간과 정확한 캐릭터의 특징을 잡아내는 것에, 시간을 소요하기는 하지만, 작가가 의도하는 바대로 캐릭터를 제대로만 감을 잡고 끌고 나가면, 용이하게 시청자들의 입맛에 맞추어 지는 것이 현실이었기에 말이다.
‘우리들이야, 잘만 써 주시면, 더 바랄 게 있겠어여? 어차피 다들 어려운 걸음인데, 우리라고 자가용 타고 질주하는 것도 아니고설랑…..’
그건 맞는 말이었다. 연기자야 재미나는 대본에다, 자신의 캐릭터나 짱짱하면 그만 이었지, 더 뭘 바라겠는가 말이다. 속된 말로 스토리가 좇같은 게 탈이지, 연기자야 그대로 따라하는 죄 밖에 더 있겠는가?
‘그래도 연기를 하시는 입장에서 작가 분들에게 더 바라고 싶은 것이 있으실 텐데요?’
대빵 PD의 간교한 수작…..연기자들을 부추켜, 자신의 입으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통해 찐빠를 멕이려는 심산을 모를 내가 아니었다.
‘그럼, 하나만 말씀 드릴께여. 시트콤이 시종일관 눈물 짜내게 하거나, 감동 일색으로 가는 프로는 아니거덩여. 일단 웃겨야 하지만, 개그 프로도 아니고 하니, 시도 때도 없이, 유행어 같은 걸 남발 할 수도 없고…..소재가 우선 웃겨야 하는데, 작가님들 께서는 그저 단어 하나, 대사 한 줄에 시청자들이 뒤집어 진다고 여기시는 것 같은데, 사실 안 그렇거덩여. 스토리의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꼬여 놔도, 기가 막히게 시종을 꿰차고 있는데, 그깟 단어 하나 쯤이야, 다음 대사로 뭘 쳐댈지, 저희들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게, 요즈음 시청자 수준 이라고 보시면 되여. 그러니, 제발 산뜻하면서도, 웃겨 자빠질 듯한 소재를 우선 고르는 것이 급선무 같아여. 제 모자라는 소견 이지만서도….’
중견 탈랜트인 그 분의 의견은 보나마나, 아마도 PD의 압력을 통해, 전달된 듯 싶다. 그러니, 마지막에 모자라는 소견이라는 발뺌과 동시에, 이건 제 생각이 아니거덩여 라는 의미를 내 비추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작가 중에서 제일 다혈질인 정 작가가 나섰다.
‘말씀은 잘 들었습니다만, 촉박한 녹화 일정에다가, 시트콤 작가 주제비에, 보고 들은 건 있어 가지고, 뭔 놈의 쪽대본 씩이나 날리냐, 어쩌고 하면서, 들어오는 압력도 무시 못하거든여. 글이 뭐 엿가락이나, 국수 뽑듯이 술술 나오면, 저희도 얼마나 좋겠습니까? 배역과 상황, 설정은 그대로인 채로, 이야기를 그 안에 끼워 맞춰야 하는 시트콤의 성격이 만만치가 않거덩여? 따져 보시면 아실 겁니다. 아버지가 항상 평범한 회사원인데, 그것도 설정이랍시고, 갑자기 로또에 당첨 시킬 수는 없잖아여? 만일 그렇게 되면, 다음 회에서부터 로또 당첨으로 인한 이야기로, 몇 회는 우려먹을 수 있다지만, 그걸로 주구장창 밀고 나갈 수는 없거덩여. 그리고, 막말로 로또 당첨 되고도, 지지리 궁상의 세트에서 계속 살아간다고도 할 수도 없으니, 당연히 첨 보담야 잘 사는 걸로 배경이 전환되어야 하는데, 제작비가 빠듯한 이 실정에, 그게 쉽사리 들어 먹힐까 모르겄어여. 내, 참……’
나는 속이 다 후련해지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모으고 있는 거 아니겠어여, 정 작가님? 지지난 주, 시청률 기억 하시져? 그 개그맨의 유행어 잘못 썼다가, 시청자 의견란에 물밀듯이 항의 들어온 거…..아니, 남의 트레이드 마크를 그렇게 마구 쓰는 거, 그거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어여? 웃길 소재가 없으면, 울리기라도 할 것 이지, 나 이거야, 원…..’
깨갱하며 꼬리를 내리는 정 작가…..쯧쯧….. 시트콤 이란 것이 매일매일의 벌어지는 헤프닝을 주로하여 꾸며가기에, 쌩뚱맞게 무거운 주제, 예를 들자면, 인기 드라마에서 잘 쓰는 수법이긴 한데, 출생의 비밀, 교통사고나 반드시 말기의 불치병, 때 아닌 결혼과 임신, 경쟁자의 훼방과 비리 & 복수, 첨예한 갈등국면등을 말하는 것으로, 이런 것들이 등장하면, 작가는 오히려 신이 나게 되어 있었다. 스토리의 설정은 이미 끝났고, 수순에 의해, 이야기를 꾸며 나가기만 하면, 한달은 넉끈히 버틸 수 있기에……그러나, 우리는 달랐다. 소재를 발굴하는 것에 언제나 골머리를 싸매야 하고, 아무리 가벼운 텃취의 시트콤이라고는 해도, 어찌 그리 시청자의 돌팔매는 매섭고, 끊임이 없는 것인지……그러다 보면, 시름이나 잊자고, 무심코 틀어놓은 개그 프로에서 터져 나오는 방청객의 웃음에 현혹되어, 그게 독약인지 뻔히 알면서도, 대본에 기어이 넣고야 마는 습성을 버리지 못해, 일어난 일들이 대부분인 것을, 우리 작가들은 공감한다.
‘우리 베테랑 김 작가님께서는 이번에 어떤 아이디어를 갖고 오셨는지여? 아까 잠깐 들어보니, 대단한 걸 들고 오신다고 팡파레가 대단 하시던데……’
조런 닝기리 쌉쉐이 같으니라구! 내가 저 PD 새끼 밉지 않으면 성을 확 가는 건데….
‘아, 그러니까…..저기…..에, 또…..하설라무네……’
‘사설이 좀 짧았으면 하는 작은 바램이 있네여…..쩝….’
사사껀껀 딴지는? 난 큰 헛기침을 한번 크게 하고서 운을 뗐다. 적어도 1시간 이내로 예약되어 있던 아이디어 회의는, 그 날, 장장 3시간 반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아이디어의 포문을 연 죄로, 난 그 시간부로 날밤을 까야 했는데, 모든 사람들의 만장일치에 의해, 다음 주 녹화분의 대본을 잠정적으로 연기하고, 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급조되기는 하겠지만, 새로운 대본을 만들어, 긴급하게 녹화에 들어가자는 데에, 합의 했기 때문 이었다.
‘캬, 나 김선배가 한 껀 할 줄 알았다니깐여? 와, 정말 죽여….대본이나 빨리 보자구여.’
다른 작가들과 제작진, 출연진들 모두, 회의가 끝나고 나서, 내 등을 두드리는데, 난 등짝이 얼얼해서 정신이 없는 지경이었다.
‘아효, 이러지들 말라니깐! 아직 대본도 없고, 녹화도 아니고, 방영도 되질 않은 단순 아이디어를 갖고 너무들 이러는 거, 대략 난감 하거든? 제발, 쫌!’
내가 성을 내건 말건, 다른 작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만발해 버렸다. 한동안 PD는 나를 통해 스토리의 진전을 요구할테고, 다른 작가들은 부담감 없이, 자원봉사 하듯, 나의 대필작가가 되어 준다고 나설 것이고, 모든 짐이 내 어깨 위에 얹혀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었다. 난 대본 작업을 위해 먼저 간다고 하면서 방송국을, 그것도 대낮에 나왔다.
‘여보세여? 00이니? 지금 녹화 없지? 나와라!’
아직 노처녀로서 남들의 좇같은 시선을 한 몸에 받고 다니는, 00이를 불러냈다. 이따가 1시간 후에 대본연습하러 연습실로 다시 돌아가야 된다며, 오늘은 작가 선상님께서 필히 참석하신다며, 한 사람도 늦는 일이 없도록 PD가 일일이 신신당부 했다는 갸를, 난 기어이 방송국 앞으로 불러냈다.
‘오빠, 왜? 나 디지게 바쁜데…..’
헐레벌떡 화장끼 없는 얼굴로 달려온 00이….나와는 오래된 막역한 친구 사이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한 따까리 하러가자!’
‘지금? 씨뻘건 대낮에? 미쳤수?’
‘너나 나나, 어차피 내놓고 결혼 하기는 글른 몸인데, 씹빠빠도 맘놓고 못하면, 이 더러븐 세상 어찌 사누?’
‘오빠, 뭔 일 있었수? PD한테 또 까였어?, 그런거야?’
‘그냥 그렇다. 가자. 얼릉….빨리 돌아가야 한다매?’
난 00이와 같이 샤워를 하면서도 마음이 무거워, 00이의 그 소담스런 젖을 만지지도 않았다.
‘너 스포츠 신문에 누구랑 사귄다고 뉴스 떴더라?’
‘그걸 믿우? 이번에 영화 개봉하는 거, 나 보러 오는 손님 쫌 끌어 모으자고, 우리 매니져가 슬며시 흘려 놓은 설레발을 가지고 긴장허기는….오빠도 늙었는가 봐.’
물기를 닦고, 침대에 눕자마자, 00이가 벌써부터 들러붙어 좇대가리를 갖고 놀았다.
‘너, 이제보니, 건성으로 하고 있지? 야! 내가 돈주고 여자 부른 것도 아니고설랑, 다짜고짜 좇대가리 흔들고….기가 막혀서….’
‘왜 성질부터 내고 그래? 이래뵈도 연예인치고, 나처럼 조신하게 한 남자만 꿰차고 있는 년도 드물다구. 어디서 뺨맞고, 어디서 발길질이래? 나니깐 참고 있지…..으이고, 미련한 년 따우…..’
지 머리를 쥐어박는 그녀를 보면서, 난 웃으며, 그냥 두 팔을 벌렸다. 난 섹스보다도 그녀의 따스함이 그리웠다는 것이, 옳은 표현일 것이다. 내 품에 안겨, 숨을 죽이는 그녀…..
‘오빠! 화 난 거 맞우? 화 났다는 사람이 아랫도리는 왜 이다지도 치켜 세운데? 화가 나면 좇대가리도 세워지남?’
‘요게, 나이 먹어가면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나만큼 정조 굳센 연예인, 눈 씻고 찾아봐. 없을껄? 미련 곰팅이 같은 년따우….. 빵빵하고 번드르르 하다 못해, 골까지 빈 재벌집 아들들 청혼, 다 뿌리치고, 겨우 글쟁이 한테 뻑이 가서리, 일하다 말고, 보지 둘르러 나오고, 참…..나도 한심하다, 그치?’
‘글쟁이가 어때서? 대박나는 주말 연속극도 한번 못 써 봤다구? 쥐 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 이거 왜 이러셔?’
품에 안겨서 쌔근대는 그녀, 벌써 내가 몇마디 하기도 전에, 내 몸 위에 엎디어 잠이 들어 버렸다. 지난 주 내내, 3시간도 못자고 녹화를 했다는 얘기가 실감이 나고 있었다. 나나 그녀나, 뭘 위해서 이렇게 정신없이, 미친 것처럼 살아대고 있는 것인지……헐……
‘&%###&*%....’
알아듣지도 못할 잠꼬대를 하면서 잠에 빠져드는 그녀. 아마도 한참 외우고 있는 그 드라마의 대사 인가보다. 나와 만난지도 벌써 5년이 다 되어 간다. 연예인은 조건만 맞으면, 주구장창, 보지를 있는대로 돌리는 줄 알고 있었던, 나의 선입견을 보기좋게 깨어버린 것이 그녀였다. 그들도 남들과 다름없이 상처받고, 괴로와 하고, 우울해 하며, 연기가 아닌, 진정으로 슬퍼 할 줄도 아는 것을 알려준 그녀. 방송국의 옥상에서 난 처음, 신인 시절의 그녀를 만났다. 자기에게 오랜만에 맡겨진 배역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도 잠깐, 주변에서는 PD와 그렇고 그런 사이이기에 배역을 따낸 것이 아니냐는 시선 때문에, 슬퍼서 견딜 수 없다고 하던 그녀를 첨 본 순간부터, 솔직히 난 그녀에게 빠져 들어갔다고 고백해야 했다. 나를 위해서 언제나 핸폰이 아닌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던 그녀….아직까지 변변한 글 하나 대박 내질 못해, 청혼조차 못하는 나를 위해서, 이런 대낮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오라고 하면, 번개같이 튀어 나오는 순정파인 그녀.
‘그래, 00이를 위해서라도 이번에 칼 한번 갈아보지, 뭐.’
난 내 몸 위에서 자고는 있었어도, 거의 무게가 느껴지질 않는 그녀의 연약함이 가여워, 그냥 몸을 쓸어주고만 있었다. 이렇게 피곤에 쩔은 그녀의 보지를 내 불거진 심사나 다스리자고 좇나게 쑤셔 버리면, 그 뒷감당으로 코피라도 쏟아버릴, 그녀가 심히 걱정되기 때문이기도 했다. 난 그때, 얼버무리듯이 잠꼬대를 다시 또 해대는 그녀를 보면서, 무언가 뇌리를 팍하고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그건 망치로 뒤통수를 뽀개버리는 그런 충격이었다. 난 내 위에서 새근새근 자는 그녀를 화들짝 팽개치고, 침대에서 일어나고 부터, 그 충격이 영향을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아니…..무거우면 무겁다고 할 것이지, 이렇게 사람을 패대기질을 치나? 엉? 시간이 몇시야? 나 쫌 깨우지……머리 만지고 갈 시간도 없넹..으이그…오빠두 참….’
잠이라도 곤히 자게 놔 두는 건데….난 그녀가 황급히 나가는 것도 마중하는둥, 마는둥 하면서, 들고온 노트북 PC를 모텔의 탁자 위에 펴고, 열나 자판을 두들겨 댔다. 그러고부터 5시간이 흐른 뒤에, 난 이 세상에 태어나 첨으로, 그것도 그렇게나 신속하게 시트콤의 한 주 녹화 분량을 탈고해 버렸다. 그것도 뿡알이랑, 좇대가리 덜렁거리는, 나체 상태로 의자에 앉아…..
‘와! 역쉬, 역쉬, 역쉬….내가 사람 하나는 잘 본다니깐. 우리의 위대하쉰 김 작가님, 바로 대박 예감이라고 아뢰오.’
대빵PD가 내가 모텔에서 바로 들고 온, 대본을 받아들고는, 그 날 밤중으로, 전 스텝이 비상으로 소집 되었고, 연예 기자들이 한 사람도 오지 못하도록, 철통같이 삼엄한 경비아래 녹화가 마쳐졌다. 연기자들이 중간에 연기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적나라한 대사들로 인해, NG를 내기도 수십번, 정말 모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녹화를 마쳤고, 날밤을 깠지만서도, 한 사람도 조는 사람이 없을 정도 였다.
‘자, 이제, 방영 날짜만을 남기고 있다, 이거지? 연기자들 나레이션 작업이랑, 삐삐처리는 완벽하게 검수했지?’
PD도 심히 불안해 하는 모습이었다. 드디어 대망의 방영일이 다가왔다. 우리 팀은 일부러 예고편을 올리질 않았다. 이번주 방영분에 대한 시청자 소감에서, 어째서 예고편이 올라오질 않았느냐는 질문 뿐이었고, 별다른 항의는 없었다.
‘띵띠딩띠.띵띠딩띠…..’
시트콤의 경쾌한 인트로 뮤직과 아울러 예전과 다름없는 분위기…..그러나, 장면은 바뀌어, 이제까지 평범한 집안으로 보이던 껄떡이네의 모습은 아주 망가져 있었고, 껄떡이의 나래이션이 처절한 분위기와 함께 이어져 갔다.
‘…..우리 집안의 1.삐삐은 내력은 여기서부터 출발 했다는 것을 난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엄마는 돈만 있으면 아무 한테나 그 2.삐삐삐를 줄창 내두르는 3.삐삐삐삐였고, 아빠는 젊은 4.삐삐삐 찾아, 눈먼 돈을 기어이 뿌리려고 찾아드는, 허접한 5.삐삐삐삐들을 꾀는 룸싸롱의 삐끼였다…..’
이른바, 방송 부적합 용어들을, 마구 들이대어 버린 시트콤이 전파를 타자마자, 시청자 게시판과 방송국의 전화는, 거의 마비 사태에다, 홈피의 서버가 다운이 될 정도로, 불이 나기 시작했다. 공중파에는 방송되질 않고, 삐삐하는 제거음으로 차단된 대사는 시청자들에게 있어서 의문의 핵심이었고, 방송을 보는 도중에도, 나래이션이나 대사 중간의 방송 부적합 단어나 문장에 대해서는, 만화의 지문처럼 번호와 함께 이멜주소에 붙는 골뱅이 표시가 오로록 화면 하단에 시청자 퀴즈처럼 표시되니, 방송을 보는 시청자들은 난리가 날 수밖에….주인공인 껄떡이와 엄마의 대화 장면은 첨예의 관심사 이기도 했다.
‘…야, 껄떡이, 이 26.삐삐은 27.삐삐넘아, 가라는 학교는 안가고, 어디 갈데가 없어서, 28.삐삐삐에 가서 줄창 29.삐삐이나 뽑고 다녀? 너 어디 30.삐삐 터지도록 디지게 맞아 터져볼테야?’
평소의 심약한 누나의 이미지가 여기서는 완전 구겨졌는데, PD는 연기에 완전 물이 올랐다고 칭찬이 대단 했었다.
‘……너, 이 97.삐삐삐삐, 그러다, 딴 년이랑 결혼하면, 너 내 98.삐삐에 오매불망 99.삐삐삐 하던 니 허접한 100.삐삐삐삐, 아작 날 줄 알어!’
밥상위에 놓여져 있던, 소품도 아닌, 진짜 소주병을 들고 깨 버린, 아버지 역의 연기자는 조폭 저리가라 할 정도의 서슬퍼런 연기로 만인의 칭송이 자자했다.
‘…..야, 이. 256.삐삐삐, 257.삐삐에 기름에다 꼬치장 발라서, 불에 확 그어 튀길 년아! 니가 집에서 한 일이 뭔데? 애들 저 지경으로 258.삐삐에 땀나게, 259.삐삐삐삐에 살 타는 냄새 나도록, 밖으로 돌 때, 넌 뭐 했는데? 아이구, 잘 헌다. 남편 나가서 260.삐 빠지게 뺑R이 돌 때, 니 년은 그 잘난 261.삐삐삐삐 벌려가면서 262.삐삐으로 생활비 벌었다구? 에라이, 263.삐삐살 피 말려서, 264.삐삐삐에 갈아 넣을 년 같으니라구. 내 보다보다 너 같이, 에미라고 들어 앉아서, 애들 내팽게 쳐 놓고, 265.삐삐삐 놀음에 정신 나간 년은 첨 본다.’
시청자들이 올린 그 번호가 달린, 삐삐에 대한 적나라한 해석으로 인해, 그 저녁 강퇴를 당한 사용자들의 모임이 따로이 급조된 홈피로 만들어 질 정도로, 내가 쓴 시트콤의 영향은 폭풍의 핵심구도로 자리 잡을 수 밖에 없었다. 시청자의 의견을 조금 들여다 보자면,
‘………
12360. 00000님 : 아니, 강퇴시킬 얘기를 왜 삐삐나게 발설 하고 있대? 내가 한 삐삐가
뭔 소린지 알고 싶은 분은 쪽지 주셈!
12359.관리자 : 12358의 00000님께서는 홈피 부적격 단어의 사용으로 강퇴 당하셨슴다.
12358. 00000님 : 12357의 00000님, 제가 독순술을 쫌 아는데, 이거 증말 대단한 시트콤
이거덩여? 아실랑가 몰라도…..슬쩍 알려 드리자면, 99번 삐삐는 빠구리
라는 단어에여. ㅎ ㅎ ㅎ….
12357. 00000님 : 살다살다 이런 시트콤은 첨 봐여. 대사는 없고, 맨 삐삐소리 투성이의
대체 뭘 보라는 건지……쩝.
…..’
그 밤, 시청자들은 번호가 붙은 삐삐에 대한 구구절절한 해석으로 난리가 났으며, 방송을 못 본 사람들까지, 다시 보려고 몰려드는 통해, 인터넷의 다시보기 서버가 계속해서 다운 되기도 했다. 1주일이 지나자, 방송분을 다시 MPEG2파일로 녹화를 떠서, 지워졌던 삐삐 부분에 자막을 넣어 다시 더빙하고, 자신의 홈피에 올려 톡톡히 재미를 보는 시청자도 나왔다. 시청자들은 우리 시트콤의 타이틀인 껄떡이네 가족 이라는 이름 대신에, 삐삐가족이라고 개명해서 부르기 시작했고, 내 이름 대신, 대단한 진일보로 공중파 속에 잠자고 있는 수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흔들어 놓은, 나를 삐삐작가라고 개칭해서 불렀다. 사람들은 첨예하게 이런 쓰레기 같은 시트콤은, 없어져야 한다는 부류와 공중파의 법규를 정직하게 준수하면서도, 할 말, 못할 말, 가릴 것 없이, 삐삐라는 소음을 교묘하게 이용해서 해대는, 이런 열성적인 시트콤은 장수프로가 되어야 마땅하다는, 두 부류로 갈라서게 되었다. 찬성파가 주장하는 것은 오로지, 그것이 연기자의 대사 였을뿐, 나체도, 신체노출도, 음란함도 없는, 그저 감정의 표출과 표정이 실린 대사에 불과 했으며, 방송사는 방송 부적격 단어를 성실하게 걸러, 시청자들의 문화적 오염을, 최선을 다해 막았다는 것 만으로도, 상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주장의 요지였다. 언제나 골라놓은 단어, 매끈한 어조로만 일관될 줄 알았던, 드라마와 여타 시트콤은 한방에 처참한 공습을 당한 셈이 되었고, 삐삐라는 제한음은 이제 방송과 연예가의 기본 패턴이 되어 가는 듯 했다. 잠을 자고 깨어보니 유명인사가 되었다는 어느 작가의 말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나 또한 그랬다. 아침부터 내 집앞은 밀려드는 보도진으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고, 난 생전처음 카메라 세례에다, 길거리를 걸을 수 없을 정도의 싸인요청 공세에 붕붕 날라서 다닐 수 있었고….
‘00이니? 녹화 없지? 지금 여기 파리떼가 들끓어 안될 거 같아서…..응응…..우리 거기서 만나자…….응? 왜 만나냐구?........ 나 너한테 삐삐 할려구……뭐라구? 삐삐가 뭐냐구? 응, 그러니까, 설라무네…..응…..그건 오면 얘기해 주께. 영원히 우리 00이를 삐삐해 주려면 내가 꼭 삐삐해야 하거든. 그러니까 꼭 와라. 나, 너 올때까지 기둘린다. 알았지?’
기자들 등쌀에 데이트도 힘들어, 난 그 무리를 빠져 나오면서, 언제나 우리 두 사람이 밀회를 나누던 그 모텔에서 보자는 전화를 날리는 중이었다. 이 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니깐! 그런데 삐삐는 뭐냐고? 글쎄, 내일 아침 신문에 날 게 분명한데, 내가 굳이 삐삐를 설명할 필요 있을까?
-끝-
P.S.: 방송 내용중, 글에 인용된 삐삐의 해석분을 올립니다. 많은 참고 되시길….
1. 좇같
2. 씹보지
3. 걸레보지
4. 씹구녕
5. 좇대가리
26. 좇같
27. 씨벌
28. 대딸방
29. 좇물
30. 뿡알
97. 씹쭈구리
98. 구녕
99. 빠구리
100. 좇대가리
256. 씨부럴
257. 보지
258. 보지
259. 좇대가리
260. 좇
261. 빠다보지
262. 떼씹
263. 보지
264. 똥꾸녕
265. 씹빠빠
그동안 많은 성원을 보내주신 독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어느새 200고지 군요. 힘이 들긴 했었습니다. 그래도 님들의 성원과 격려가 없었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었구요. 다시한번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블루스맨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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