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강지처
조강지처- 1 : 프로-로그
대장…!?
내가 누차 말을 했던 것처럼…
나는 내 엄마를 닮아서 머리가 무척이나 좋은 모양인가봐!?…
그래서 그런지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전교의 수석자리를 남에게 양보 해 보았던 적이 없었어…
특히 어학에 대한 실력이 남 유달라서…
내가 고등학교 2 학년일 때에 벌써…
그 당시에 아주 유명한… 미국의 유수한 대학인 보-스톤 이라는 도시에 있는 MIT 라고 하는 대학에서 주최해서 처음으로 실시하던…
<세계청소년 웅변대회> 라는 경시대회에 한국을 대표로해서 갔가 왔던 적도 있었어…
그러나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언제나 내가 기다려지는 것은…? 일 년에 정기적으로 두 번씩 있는 여름과 겨울에 있는 방학이라는 기간인 것이지…
그 때만 되면… 나는 학교생활에 대한 일은 제 백사(除 百事)하고…
대전으로 내려가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엄마와 비밀리에 사랑의 불꽃을 태우며… 내 막내 동생(?)을 안아주기도 하고 또 업어주며 즐기다가… 자주는 엄마와 함께 우리 집안의 가업(家業)인 양조장의 경영을 거들어 주는 일이었어…!!
물론 내가 대장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그렇게 남모르게 알콩 달콩… 엄마와 나만이 가지는 행복한 밀회(密會)를 즐기는 일…!? 이것이야말로 필설로 형언 할 수 없는 내 청소년시절의 유일한 낙이고 보람이었던 거지…!
그래도 신기 한 것은!?… 그렇게 내가 엄마에 대한 사랑에 빠져있으면서도… 내가 해야 할 학업에는 전혀 게을리 하지를 않았을 뿐 아니라…
양조장을 경영하는 일에도 새로운 창의력을 발휘해서 엄마를 도와주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그때에!!…
우리는 정말 십년도 더 넘도록 더 오랫동안 소식이 없으시던 내 외 할아버지의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었어…
내 외 할아버지는 내가 네 살인가 되었을 때에… 시국(時局)의 위험한 태풍(颱風)을 미리 예견하시고…
만주(滿洲)에다가 벌려놓으셨던 그 많은 사업을 미련 없이 뒤로 하시고 일본(日本)으로 들어가셨던 것인데!?…
그때가 일본(日本)으로서는 마지막 발악을 하는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라는 것을 일으키고 나서 한동안은 승승장구를 한답시고 날뛰던 시절이었었는데!?…
말하자면 <태풍의 눈> 안으로 들어가면 절대로 그 거센 태풍의 피해를 격지 않아도 된 다는 그런 외할아버님의 이론이기도 했었던 모양이야!?…
그때에 그렇게 내 외가 집 식구들 모두는 역시 외할아버지를 따라서 함께 일본으로 가시고 만 것이었지만…!?
고향인 경상도의 통천에 살고 계시던 내 친 외할머님도 같이 따라 가셨던 거야…
그 뒤에 우리 집 식구들도 외할아버지의 권고와 내 신도안의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서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그 뒤로…
대동아 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는 혼란 통에… 우리 외가 집 식구들과는 완전히 소식이 두절 된 채로… 내 엄마는 구매로 외할아버지나 친정집의 피붙이들을 그리워 해 하시며 애닳아하시기도 했었던 것인데…
다시 또 우리나라에서는 6.25 라는 민족내부의 전쟁을 치루는 동안… 수 십 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대 전란(戰亂)을 겪고 있기도 했던 것이고!?…
그리고 또 그 당시의 한국 정부는…
일본과는 철천지원수라고하며 철저하게 문을 닫아 걸어놓고 그 나라와는 완전히 단절을 한 채로 지내오던 시절이기도 했었어…
그래서 그때에 만주에서 이별을 하신 이후로 거의 십 여 년이 넘도록 내 외할아버지의 소식은 전혀 두절 된 채로 지내오며…
혹시나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 하고 내 엄마는 정말 속으로 애타게 그리워하시고 있기도 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나는 너무나 잘알고 있었어…
그러는 십 몇 년 동안 우리 집안에서나 내 어머님의 신변에도 이루 필설로 다 설명 할 수 없는 엄청난 시련(試鍊)과 변고(變故)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이렇게 외할아버지께서 일본의 오오-사까 라고 하는 도시에서 건재하실 뿐 아니라…
그곳에서 오히려 전쟁 전보다도 더 왕성하게 사업을 하시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엄마는 진심으로 당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시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나는 옆에서 보면서… 나도 덩달아서 즐거워하고 있었어…
그렇다고 그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서… 엄마나 우리 할아버지께서도 무엇을 어떻게 할 수는 있는 시대 상황은 못 되었던 것이지…!
나는 잘 모르지만??…
일본이란 나라와는 너무나도 역사적으로 한이 많이도 쌓이고 쌓여서 가까운 시일이내로는 다시 정상적인 국교가 성립 될 것 같지가 않아 보였어…!?
그래서 그 일본이라는 나라하고는 너무나 가까이 있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두 나라와의 사이에는 사람의 왕래나 전화… 또는 편지조차도 오고 갈 수가 없도록 철저하게 단절 된 멀고도 먼 나라이기 때문에…
그저 어쩌다가 한번 인편으로 그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에 의한 무사하시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만 했던 거야!…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도 사실은… 우리나라 전라남도의 여수라는 지방에서 살면서… 일본과의 밀무역으로 돈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지만…!?
그리고 그런 후에…
나는 그저 외할아버지와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여전히 내가 고등학교에서 공부에만 열중하면서 평상시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어…
내가 고등학교의 3 학년으로 막 올라가던 무렵에… 나는 너무나 놀랄만한 소식을 대전의 고모를 통 해서 접하게 된 것이었어…
그것은 엄마가…
내 막내 동생(?)인 <지애(智愛)> 만을 데리고… 내 외 할아버지를 만나러 일본으로 밀항(密航)을 해 가셨다는 말을 들은 거야…
사실은??... 신도안(新都安)에 사시는 내 할아버지께서는…
지난번에 일본에서 내 외할아버지께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다는 그 선원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
자기의 친정아버지(내 외할아버지) 의 소식을 듣고… 갑자기 우울증에 빠져서 고생하고 있는 당신의 며느리를 위해서… 일대 용단을 내려주셨다는 거야…
그렇게나 금슬이 좋았던 그녀의 신랑(내 아버지)을 사별(死別)하고…
혼자가 된 몸으로 열심히 가업(家業)인 양조장경영에 여념이 없으면서도… 역시 꿋꿋하게 부덕(婦德)을 지켜오고 있는 당신의 며느리에게…
무언가?…
획기적인 전기(轉機)를 만들어 줌으로 해서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위로를 해주신다는 취지에서…
내 할아버지께서는…
내 엄마에게 일본으로 밀항(密航)이라도 해서… 일본에 계시는 사돈어른(내 외할아버지)과 함께 다만 얼마동안이라도 같이 살다가 돌아오라는…
그러한 은덕을 베풀어 주셨다는 이야기 였어…
정말 상상도 할수없는 엄청난 용기와 무모하리만큼 위험한 용단이라고…
다들 말리고 있었지만… 막상 당사자이신 내 엄마는… 당신 시아버님의 그러한 결단 어린 배려가... 너무나 엄청난 용기와 도박같기는 한 일이지만... 용기를 내셔서… 일대 도박(賭博)을 시도 해보시기로 했다는 이야기였어…!?
그렇게 내 엄마로서는 미처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시아버님의 배려에 그만 감읍을 하시고 말았다는 거지!…
그래서 어머니는 즉시 그 준비를 하시면서도…
가장 커다란 걱정은?…
바로 나...!? 이 <전동훈> 이가 알게 될까봐서 노심초사를 하시기도 했었다는 거야…
그러나 일본에 가셨다가 오래 있지 않고 내가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돌아오시겠다는 생각으로… 나에게는 일절 알리지도 말라고 하시고는…
이제 세 돌이 되어가는 내 동생(?) <지애(智愛)> 만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셨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그러나 나는 그런 소식을 접하고 나서…
너무너무 섭섭해서 한동안 멍하니 내 정신을 차리지 못 하기도 했었어…
그러구러 나는 일본으로 떠나가신 내 엄마의 소식만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동안… 세월은 흘러 흘러서 나는 고등학교 3 학년을 마쳐가고 있었어…
도대체가 엄마가 가시고 난지?…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또 끝이나서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 올 때 까지도… 그리고 다시 겨울 방학이 시작되도록 세월은 흘러가는데도…
엄마로부터의 소식은 종무소식일 뿐인거야…!??
나는 도저히 공부가 안 되는 거야!?…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일본으로 밀입국하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일본의 경비정들이 특별경계를 하기시작해서…
매일 수 십 명씩 잡히기도 한다는 말이라던가??… 또 그들 밀입국하는 한국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다는 소위 <오오무-라> 수용소라고 하는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고 하더라… 라는 등등의 이상한 소문으로만 들려 올 뿐!??…
내 엄마한테서의 그 어떤 소식도 없는 채로 세월은 흘러가기만 했었어…
나는 아주 학교공부도 때려치우다 시피 한 채로 신도안의 할아버지에게 떼를 쓰다시피 하며… 나도 일본으로 엄마를 찾아서 가겠다고 졸라대기도 했었지만!!??…
그거야 말로 어림도 없는 어린아이의 취급만 받아오고 있었던 거지…
거의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도록 일본과는 전혀 소식이 닿지를 않자…
드디어 우리 집에서는 모두들이…
내 엄마가 돌아가신 걸로 간주하기 시작하게 된 거야…
그 당시의 일본정부와 한국정부의 관계가 악화일로에 들어가는 정황이라든가…
또 들리는 소문들에 따르면… 내 엄마처럼 밀입국을 하는 한국 사람들은… 일본정부에 걸리면 그렇게 걸리는 대로… 또 한국의 해양경찰에 걸리면 또 그렇게 걸리는 대로… 완전히 죄인 취급을 받으면서… 어느 쪽이 되었든지… 형무소에 갇히거나 도망을 치다가 총에 맞아죽는 수가 비일비재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을 뿐 이었었어…
그런데... 그 어느 날… 내 큰 고모가 이상한 꿈을 꾸고 나서…
우리 집안에서는 내 엄마와 내 막내 동생 지애(智愛)가 죽은 걸로 여기게 된 것이고…
그래서 내 엄마가 집을 떠나간 날을 제삿날로 삼기로 하자는 말들도 돌게 되기도 했었어…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거의 미친 사람처럼 되어서…
절대로 엄마는 죽지않았다고 우기면서…
큰-고모나 작은 고모들… 그리고 내 두 여 동생들이 차리려는 제사상을 들러 엎어버리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었어…
서울로 돌아와서 학교라고 하는 데를 다니기는 하지만… 나는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하며 술을 퍼 마시고 빗나가기도 했었어…
그러나 또 날짜는 흘러가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을 해야 했던 것이고… 졸업을 하고 나서도… 그래도 나는 또 다시 대학교에 입학을 하기는 했었어…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나는 웬일인지 그렇게 머리가 좋았나봐!?…
그렇게나 한참 시험공부에 열중해야만 할 그런 시기에…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에 미치다시피 방황을 하고 있었는데도… 너무나도 명문(名門)대학이라…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S- 대학에 떡 하니 합격을 한 것이지…!!
그리고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대학에서도 그런대로 공부를 해야만 했었어… 그런다고 내가 무슨 목적의식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내 머릿속에는 돌아가신 내 엄마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가득차서 완전히 내 정신이 아니게 미쳐가기 일보직전 까지 가고 만 것이었어…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 생각지도 않게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었어…
소위 말하는 사창가(私娼街)라고 하는 종삼(鍾三)거리라고 하는 곳 이라거나… 서울역 앞의 양동(陽洞)거리는 물론 청량리의 588 거리를 헤매며 술에 쩌 들어 있기도 했었어…
물론 내 고모나 할머니에게 여러 번 끌려가서 치도곤(治盜棍)을 맞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나는 돌아가신 엄마만을 찾다가 제풀에 쓰러지곤 하기도 했었던 거야…
또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는… 우리나라의 사회가 너무나 어수선하기도 했었어…
뭐...? 4.19 라나…?? 뭐라나 하는… 그 무슨 정변(政變)이라나…!??
그래서 나는 홧김에 군대라는 곳에 입대를 해 버리고 만 거야…
나는 S 대학교 3 학년에 올라가면서 바로 휴학을 하고 군대에 입대를 하고야 만 거야….
그런데…!? 어찌 또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 날 수가 있을까…??
나는 다시는 새롭게 어떤 여자가 되었던지 간에… 여자와의 사랑이나 연정 따위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내 가슴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의 열병에 걸려버리게 되고 만 거야…
나는 또 군에서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에… 때도 아니고 시도 아니게… 새로운 사랑의 마법에 걸려서...
푹 빠져 버리고 마는 일이 발생하고야 만 거야!?…
물론 내 가슴 한구석에는… 돌아가신 내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가득 차 있는 상태 그대로인데…!?
현실적으로는 눈앞에 또 내 혼을 끌어 당겨주는 것 같은… 엉뚱한 여인에 대한 정열이 끓어오르고 있었던 거야…
그것도 그 상대라고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내가 군대에서 신참병으로 근무하기 시작하는 우리 부대의 부대장님인… <류진수(柳鎭洙)> 라고 하는 여군 소령 이었어…
그 부대장님의 이름이 비록 남자이름 같기는 했지만…
엄연한 그 당시에는 아주 유명한 여군 소령(少領)으로써… 내가 배치 받은 전방의 어느 의무부대(醫務部隊)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경비중대(警備中隊)의 중대장님 이셨던 거야…
의무중대라고 하면... 모두가 의사나 간호사 그리고 부상병들로만 가득차는 곳이기 때문에... 그 곳에는 경비를 전담해야하는 경비 보병중대가 따로이 배치되어 었었던 거야...
또 아마도 내가 알기로는 그 당시에 여군(女軍)들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이 간호장교(看護將校)님들이거나… 또는 행정보조역할을 하는 여자 하사관(下士官)들… 그리고 또 그 분야의 직업적인 여군장교(女軍將校)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류진수(柳鎭洙)> 라는 여군은… 보통 여자 군인들 하고는 달리…
보병(步兵)의 병과(兵科)를 받아서… 보병장교(步兵將校)로써 당당히 그 어려운 특수 훈련까지 마치고 장교(將校)로 임명이 되신 분이라는 거야…
그것도 남자들도 뻥뻥 나가떨어진다는 그 어려운 훈련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는 아주 유명하신 분이셨었어…
대장…!?
이제야 이야기 하는 말이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자라오면서 겪었던 환경이나 내성적(內性的)인 성격으로 인해서 인지는 몰라도…? 아마도 나는 아주 지독한 패미-니스트의 증상(症狀)이 내 몸에 배어 있는 채로 자라나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리고 또 나는 언제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오면서 자라오고 있기도 했었고…!? 그렇게 나이가 많은 여인으로부터 내가 보호를 받으며… 하나하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지시받아서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녀들로부터 사랑을 배워오게 된 것이 좋았고…
또 사랑을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런 연상(年上)의 여인들하고나 사랑을 하고 싶어지게 되고 만 거야…!
또 나는 어려서부터 내 주위에 있던 모든 여자들로부터…
자라오면서 받아온… 또 우리 집안 내에서의 아주 귀중한 신분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특히…!?
나보다 키도 크고 몸이 아주 글래머이셨던… 내 엄마나 초창기때에 내 동정을 앗아가기도 했었던 <언년이>!…
그리고 내 큰-고모들 등등은... 모두가 다들 나보다 덩치도 크고 힘이 센 여자들이었기 때문에…
또 그녀들로부터 받아만 왔던 그 <위함> 이라고 하는 생활습관이 원인이 되었는지도 몰라도…!?
또 나는 원래가 모든 면에서 내 엄마를 닮았다고들 하지만!?…
내 키나 덩치만큼은 내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별로 키도 크질 않고 몸집도 자그만 한 것이… 예쁘장하게만 생겨서… 만약에 내가 여장(女裝)을 한다면?… 아주 미인 측에 들어갈 그런 스타일의 남자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오고 있기도 했던 거야…
그러다 보니까… 나는 또 보통 여리고 가냘픈 여인에게서가 아니라…
글래-머틱하고 아주 강하면서도 무서운 인상을 주는 그런 여인!?…
그 체격이나 근육 면에서 아주 강골기가 맴 도는… 그런 여자에게 매달리고 싶고… 또 그런 여자로부터 보호를 받고 싶었으며!?…
또 섹스를 할 때에도 그런 여자로부터 마구 짓밟히고 학대를 받으며 즐기는… 그런 섹스를 좋아하게까지 되고 만 것이야…!?
한때 내가 사창(私娼)지대를 찾아다니면서도 내가 고르는 여인들도… 모두가 한 결 같이 나보다 최소한 열 살은 더 먹은 여인만을 골랐었고… 또 첫인상이 아주 강하고 무섭게 생긴 여자만을 골라서 찾아다니기도 했었어…!?
그러다가 내가 군대에 가서 신참으로 배치 받은 곳의 부대장이 바로 그런 인상을 가진…
나보다도 11 살이나 많은 <류진수>라고 하는 여성군인인거야!?…
그 야전 병원의 관리 부대장으로 있는「류진수(柳鎭洙)」라는 여자 직업군인…!?
또 나는 내 외모에서 풍기는 가냘프고도 여자애 같은 그런 몸과는 전혀 다르게… 내 몸에서 일어나는 너무나도 뜨거운 열기 때문에… 그 당시에… 나는 하루에도 최소한 두 번 이상씩은 자위행위(自慰 行爲)를 해야만 견디는 놈이기도 했었어.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라든 가… 부대에 배치되어서 복무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일정한 시간대가 되거나 휴식 시간에라도…
어떤 묘한 상상이나 그림을 보기만 하면 나는 내 에너지(?)를 빼내지 않고는 견디질 못하는 놈이었던 거야.
그런 놈인 내가 그 당시의 여자로써는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
<류> 소령 같은 괴팍하고 변태적인 기질의 여인에게 걸려들고 만 거야…!??
<류진수(柳鎭洙)> 라는 여인은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이름 그 자체 그 대로… 생김새도 남자처럼 덩치가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되도록 키도 클 뿐 아니라…
다리통의 근육도 남자 뺨 쳐 먹을 정도로 굵고 근육질 적인 남자 같은 여자였어.
또 목소리도 우렁차서 여성 특유의 음색(音色)을 뺀다면…
얼른 듣기에 틀림없는 남자 목소리… 바로 그대로인 여자였어…
정말로 여장부라고 할까…?? 하는 그런 남자 같은 여자인 거야 .
그런 여자가 가냘프고 계집아이처럼 예쁘게 생긴 나를…
자기의 직속 부하 중에서도… 소위 당번병(當番兵)이라는 직분을 갖도록 시키게 되고 말았으니… 내가 온전할 수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 아니겠어…!?
나처럼 특이한 체질로 정열(情熱)과 성욕(性慾)이 넘쳐흐르는…
아주 혈기가 왕성한 젊은 놈이…
그런 여인을 자그만 치 1 년여가 넘도록 마치 노예(奴隸)가 여왕을 모시듯 받들어 모셔야 하는 부대장(部隊長)의 당번병(當番兵) 이라는 직책을 맡다 보니까…
물에다 석유를 들어 부운 양…
내 정력과 모럴의 방향감각을 잊은 젊은『에너지』는 그대로 그녀의 변태에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던 거지…
그녀의 지독한 새디-스트 적인 기질이 아주 알맞도록 나의 마조- 적인 본능과 맞아떨어진 셈이었던 거지 …
세상에…!? 여자가 새디- 적인 변태(變態)를 갖고 있는 경우는 거의 확률이 희박한 법이지만 … ! 그러니 내가 그런 내 부대장(部隊長)에게 매료되어서… 짝사랑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고 만 거지…
그리고는 끝 내에…
나는 그 <류진수> 라는 연상(年上)의 부대장(部隊長)과 함께 깊고도 깊은 인연을 맺는 그런 사련(邪戀)에 얽히게 되고야 만 것이지…
대장…!?…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가 좀 쑥스럽긴 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섹스에 대한 기교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별아 별 수련을 다 겪어 왔었기 때문에… 솔직하게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강하고 엄한 내 부대장님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열과 성을 다해서 핥아주고 빨아주며…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내 기교(技巧)에는 완전히 혼까지 다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리고 특히…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남 유달리 길고도 굵은 내 거대(巨大)가 휘둘러주는…!?
그녀의 자궁벽(子宮壁)까지 찔러주는 관능의 자극에는…
달리 더 이상은… 군대고 뭐고!?… 또 상사(上司)고?… 당번병(當番兵)이고를 가릴 수 가 없게끔 되고야 만 것이지…!!??
그렇게 깊은 사련(邪戀)의 늪에 빠져있는 동안에도 세월은 흘러서…
나는 아쉽게도 군대에서 제대(除隊)를 해야만 하는 시기가 되고야 만 거야…
대장… !
사실 나는 학생 신분을 지닌 채 군에 입대를 했기 때문에…
나의 군대에서의 복무 기간은 다른 사람들보다 거의 절반이나 짧았어.
소위 학보병(學保兵)이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군에서 복무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
모든 대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입대해야 할 나이가 차더라도 군대에 소집되어 가는 것을 졸업 할 때까지 연장해 주고 있던 때이기도 했었지.
그러나 학생시절에 자진해서 군대를 가겠다고 하면…
나라에서는 그 사람의 국방의 의무기간을 다른 사람들의 기간보다도 절반으로 줄여서 복무를 하도록 만들어 주었던 시절이었었어.
나는 학보병(學保兵)의 신분으로 일찍 제대를 해서 사회로 나가야하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했었어… 남들 같으면 군대 생활이 지겨워서라도 빨리 제대를 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 써 가며 노력을 하는 것이 정상인 법인데…
군에서 복무하던 불과 1 년 6 개월이라는 기간 동안에… 나는 내가 내 인생에서 맛보아야 할 온갖 시련을 겪어야만 했었어.
그렇게 나는 짧은 군대생활을 하다가 아쉽지만 하는 수 없이 제대를 하기는 했었어…!?
그렇게 군에서 제대를 하고 난 후에도… 나는 군에서 내가 모시고 있던 <류진수(柳鎭洙)> 라는 소령을 못 잊어서… 우리 부대가 있는 전방 지역의 E- 시 인근을 거의 밤낮으로 몽유병 환자처럼 헤매고 다니기도 했었어…
또 대부분의 학생들은 군에서 제대를 하면 즉시 복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인데…
그렇게 나는 내가 근무하던 부대의 부대장인 그 <류> 소령을 못 잊어서…
학교에 복학할 생각도 않고 짬만 나면 전방 지역의 작은 소도시에 있는 여인숙에다 진을 치고 <류> 소령과의 사련(邪戀)에 빠져 지나 곤 했었던 거야.
그 <류> 소령도 나와의 사랑놀이 하던 쾌락을 못 잊어서…
이미 내가 제대한 이후인데도… 내가 찾아가기만 하면 그 작은 도시의 여관이라든가 여인숙 등지로 나를 이끌어가며 같이 외박을 하기도 하고…
내가 군대에서 현역으로 있을 당시의… 당번병(當番兵)에게 했던 방법대로…
내 여왕이 되어주시면서 욕정(欲情)의 관능에 빠지기 일쑤였었어.
자연히 내가 그렇게 그녀의 혼에 빠져서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할아버지의 귀에 안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지…
즉시 나는 신도안(新都安)의 고향집에서 연금 된 채 한동안 지내야만 하게 되기도 했었어…!!
바로 그 무렵이었어!…
그때에 우리 집안에는 세상에 다시없는 희망의 낭보(朗報)가 날아든 거야… 바로 돌아가신 걸로 간주하고 제사까지 지내려고까지 했었던…
내 엄마로부터 소식이 전해져 온 것이야!…
엄마는 지금 일본의 오오-사까 라고 하는 도시에서 내 외할아버지와 함께 아주 잘 계시다는 소식인 거지…
또 그 소식은 역시나… 우리들의 추측대로… 처음에는 내 엄마도 다른 밀항자들처럼…
<오오-무라> 수용소에 수용이 되신 채로 거의 일 년 여 간을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채로 고생을 하셨다는 소식 이었어…
그러다가 어떻게 저렇게 그 소식이 내 외할아버지에게 전해지게 되자?…
즉시 내 외할아버지의 수완과 능력으로 풀려나시게 되셨다는 소식이었어…
그리고 지금은 내 외할아버지와 함께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인 것이야…
다만!?…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너무나 안 좋은 관계이기는 하지만?… 머지않아서 양국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가 재개 될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그때에 다시 한국으로 나오시겠다는 전갈 이신 것 이었어…
그러면서 내 막내동생인 지애는 금년에 소학교에 입학을 했다는 소식도 전해 주셨어...
아마도 엄마는… 지나간 그 일 년 동안의 수용소(收容所) 생활이 아주 진저리가 나신듯해서… 다시는 밀항(密航)이라는 말도 못 꺼내게 하고 있는 모양 이었어…
그러는 또 한편…
내 할머님께서는 내가 그「류소령」의 악령에 씌워졌다고 무당을 데리고 와서 푸닥거리를 한다…?? 정신과 의사한테 진찰을 받는다 하시며…
우리「전(全)」씨 가문의 삼 대째 독자이며 종손(宗孫)인 나「전동훈(全東勳)」이가 어찌 어찌 잘못 될까 봐서 수선을 떨기도 했었지.
더구나 나는 고등학교에 막 들어가던 해에 내 아버지를 여의 고…
그 후 채 1 년도 못되어서…
또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내 어머님까지 내 외할아버지를 따라서 그분이 사시는 일본(日本) 땅으로 건너가셨기 때문에… 나는 실질적으로 거의 고아처럼 살아오고 있다는…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있었던 처지였었어.
내가 내 할아버지의 감시에서 겨우 풀려난 것은 그 후에도…
서너 달이나 더 지 난 다음이었었어.
할아버지의 연금(軟禁) 생활에서 풀려나서…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다시 그 일선 지방인 E-시로 그녀를 찾아 가 보았지만…!?
내가 복무하던 그 부대 자체가 다른 지방으로 이동(移動)을 했을 뿐 아니라… 그 부대의 지휘관(指揮官)도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던 거였어.
이렇게 한동안… 나는 내 새로운 환상(幻想) 속의 여인이었던 그 <류> 소령이라는 여인을 찾아다니느라 또 엉뚱하게 시간을 보내야만 하기도 했었던 거지.
나중에 알아낸 사실이지만… 이렇게 부대장이 바뀐 사실도 아마 내 할아버님의 작품(?)이 아닌지 모르는 일이야…!??
그렇게 내가 엉뚱하게 열병에 들떠서 헤매다가 겨우 다시 학교에 복학을 한 것은 내가 군에서 제대를 하고도 반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였 던 거야.
복학을 한 뒤에도 대학교 삼 사 학년이 되면…
남들은 모두들 무슨 국가고시 준비를 한다?…
취직시험을 본다… 또는 무슨 무슨 논문을 쓴 다고 하며 법석을 떨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면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어.
그 동안 나와 함께 대학교에 입학을 했었던 동기생들 중에서 더러는 현직 판검사의 시보로 일을 하거나… 사회의 유수한 직장에서 사회인이 되어 있기도 했어.
고향에 계시는 내 할아버지께서도 나의 장래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을 하지 말고 하루빨리 졸업이나 하고 장가를 가라는 독촉이 성화 같으셨어.
하기야 우리 집 에서는 내가 내 아버님과 어머님이 운영하시다가 잠깐 남에게 맡겨 놓은 우리 집안의 사업체를 내가 맡아서 운영을 하시는 걸로 생각을 하시는지…
내 장래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이 안 되는 모양인 거야.
가끔은 일본에 살고 계신「엄마」로부터 애절하신 사연과 사랑이 담뿍 담긴 편지를 보내 주셔서 나를 괴롭게 만들어 주기도 했었던 거지.
그러구러 나는 4 학년에 올라갔어…!
그 해가 나는 졸업반이었지…? 아마…!?
나는 별로 내 키지는 않았었지만 같은 과 졸업반 학생들을 따라서 그때 유행하다 시피 하는 몇 가지 국가고시(國家考試)를 보았던 적이 있었어…
합격하리라고는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내가 시험에 응시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었어.
또 합격을 했다고 해 보았자 내가 그쪽 길로 내 인생의 행로를 잡을지 어떨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 저 관행처럼… 몇 가지 국가고시(國家考試)에 응시를 해보았던 거야.
그런데 말이야??…
나라는 놈은 정말 머리가 좋은 건지 어떤지… !?
남들은 몇 년씩이나 걸려서 도서관이다 또는 절간 등에다 진을 치고 머리를 싸매 가며 파고들어도 안 되는…
그 최고로 어렵다는 고등고시(高等考試)를 그것도 사법(司法) 행정(行政) 외무(外務)등 고시를 세 가지씩이나 합격을 해 버리고 만 거지…
불과 두 서너 달 간격으로 합격 통지서를 연달아서 받고 난 뒤에도…
나는 시골의 고향에다 알리지도 않았었어.
나는 내가 원한다면 판(判) 검사(檢事)도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또 국가 행정기관(國家 行政機關)에서 높은 자리로 직접 발령을 받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외국(外國)으로 다니며 외교관(外交官)으로 내 일생을 살아가는 진로(進路)를 잡을 수도 있는… 말하자면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었던 거지…
나중에서야 이런 사실이 알려져서…
대전(大田) 시내는 물론 신도안(新道安)의 할아버지와 또 공주(公州)시에서까지 경사가 났다고 법석을 떨기도 했었어.
나는 또 그런 것들이 또 더욱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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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간 만입니다... 대장- 들이 추측하시다시피 나는 컴- 에대해서 다소는 서툴기 때문에...
그동안 이 소-라 싸이트가 막혀버리는 바람에...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수가 없었습니다...
내 글을 기다려주시는 대장- 님들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만을 드릴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는 거의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조강지처- 1 : 프로-로그
대장…!?
내가 누차 말을 했던 것처럼…
나는 내 엄마를 닮아서 머리가 무척이나 좋은 모양인가봐!?…
그래서 그런지 나는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안 단 한 번도 전교의 수석자리를 남에게 양보 해 보았던 적이 없었어…
특히 어학에 대한 실력이 남 유달라서…
내가 고등학교 2 학년일 때에 벌써…
그 당시에 아주 유명한… 미국의 유수한 대학인 보-스톤 이라는 도시에 있는 MIT 라고 하는 대학에서 주최해서 처음으로 실시하던…
<세계청소년 웅변대회> 라는 경시대회에 한국을 대표로해서 갔가 왔던 적도 있었어…
그러나 나는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에도… 언제나 내가 기다려지는 것은…? 일 년에 정기적으로 두 번씩 있는 여름과 겨울에 있는 방학이라는 기간인 것이지…
그 때만 되면… 나는 학교생활에 대한 일은 제 백사(除 百事)하고…
대전으로 내려가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엄마와 비밀리에 사랑의 불꽃을 태우며… 내 막내 동생(?)을 안아주기도 하고 또 업어주며 즐기다가… 자주는 엄마와 함께 우리 집안의 가업(家業)인 양조장의 경영을 거들어 주는 일이었어…!!
물론 내가 대장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처럼…
그렇게 남모르게 알콩 달콩… 엄마와 나만이 가지는 행복한 밀회(密會)를 즐기는 일…!? 이것이야말로 필설로 형언 할 수 없는 내 청소년시절의 유일한 낙이고 보람이었던 거지…!
그래도 신기 한 것은!?… 그렇게 내가 엄마에 대한 사랑에 빠져있으면서도… 내가 해야 할 학업에는 전혀 게을리 하지를 않았을 뿐 아니라…
양조장을 경영하는 일에도 새로운 창의력을 발휘해서 엄마를 도와주고 있었던 거야…
그런데 그때에!!…
우리는 정말 십년도 더 넘도록 더 오랫동안 소식이 없으시던 내 외 할아버지의 소식을 접하게 된 것이었어…
내 외 할아버지는 내가 네 살인가 되었을 때에… 시국(時局)의 위험한 태풍(颱風)을 미리 예견하시고…
만주(滿洲)에다가 벌려놓으셨던 그 많은 사업을 미련 없이 뒤로 하시고 일본(日本)으로 들어가셨던 것인데!?…
그때가 일본(日本)으로서는 마지막 발악을 하는 대동아전쟁(大東亞戰爭)이라는 것을 일으키고 나서 한동안은 승승장구를 한답시고 날뛰던 시절이었었는데!?…
말하자면 <태풍의 눈> 안으로 들어가면 절대로 그 거센 태풍의 피해를 격지 않아도 된 다는 그런 외할아버님의 이론이기도 했었던 모양이야!?…
그때에 그렇게 내 외가 집 식구들 모두는 역시 외할아버지를 따라서 함께 일본으로 가시고 만 것이었지만…!?
고향인 경상도의 통천에 살고 계시던 내 친 외할머님도 같이 따라 가셨던 거야…
그 뒤에 우리 집 식구들도 외할아버지의 권고와 내 신도안의 할아버지의 성화에 못 이겨서 한국으로 들어왔지만!?…
그 뒤로…
대동아 전쟁이 끝나고 우리나라가 독립을 하는 혼란 통에… 우리 외가 집 식구들과는 완전히 소식이 두절 된 채로… 내 엄마는 구매로 외할아버지나 친정집의 피붙이들을 그리워 해 하시며 애닳아하시기도 했었던 것인데…
다시 또 우리나라에서는 6.25 라는 민족내부의 전쟁을 치루는 동안… 수 십 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대 전란(戰亂)을 겪고 있기도 했던 것이고!?…
그리고 또 그 당시의 한국 정부는…
일본과는 철천지원수라고하며 철저하게 문을 닫아 걸어놓고 그 나라와는 완전히 단절을 한 채로 지내오던 시절이기도 했었어…
그래서 그때에 만주에서 이별을 하신 이후로 거의 십 여 년이 넘도록 내 외할아버지의 소식은 전혀 두절 된 채로 지내오며…
혹시나 돌아가신 것은 아닐까??… 하고 내 엄마는 정말 속으로 애타게 그리워하시고 있기도 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나는 너무나 잘알고 있었어…
그러는 십 몇 년 동안 우리 집안에서나 내 어머님의 신변에도 이루 필설로 다 설명 할 수 없는 엄청난 시련(試鍊)과 변고(變故)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이렇게 외할아버지께서 일본의 오오-사까 라고 하는 도시에서 건재하실 뿐 아니라…
그곳에서 오히려 전쟁 전보다도 더 왕성하게 사업을 하시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자…
엄마는 진심으로 당신의 아버지를 그리워하시며… 기뻐하시는 모습을 나는 옆에서 보면서… 나도 덩달아서 즐거워하고 있었어…
그렇다고 그 당시의 정황으로 보아서… 엄마나 우리 할아버지께서도 무엇을 어떻게 할 수는 있는 시대 상황은 못 되었던 것이지…!
나는 잘 모르지만??…
일본이란 나라와는 너무나도 역사적으로 한이 많이도 쌓이고 쌓여서 가까운 시일이내로는 다시 정상적인 국교가 성립 될 것 같지가 않아 보였어…!?
그래서 그 일본이라는 나라하고는 너무나 가까이 있는 나라라고는 하지만…!?
두 나라와의 사이에는 사람의 왕래나 전화… 또는 편지조차도 오고 갈 수가 없도록 철저하게 단절 된 멀고도 먼 나라이기 때문에…
그저 어쩌다가 한번 인편으로 그 소식을 전해주는 사람에 의한 무사하시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으로 만족을 해야만 했던 거야!…
그 소식을 전해준 사람도 사실은… 우리나라 전라남도의 여수라는 지방에서 살면서… 일본과의 밀무역으로 돈을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라는 것이었지만…!?
그리고 그런 후에…
나는 그저 외할아버지와의 일은 다 잊어버리고… 여전히 내가 고등학교에서 공부에만 열중하면서 평상시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어…
내가 고등학교의 3 학년으로 막 올라가던 무렵에… 나는 너무나 놀랄만한 소식을 대전의 고모를 통 해서 접하게 된 것이었어…
그것은 엄마가…
내 막내 동생(?)인 <지애(智愛)> 만을 데리고… 내 외 할아버지를 만나러 일본으로 밀항(密航)을 해 가셨다는 말을 들은 거야…
사실은??... 신도안(新都安)에 사시는 내 할아버지께서는…
지난번에 일본에서 내 외할아버지께서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다는 그 선원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
자기의 친정아버지(내 외할아버지) 의 소식을 듣고… 갑자기 우울증에 빠져서 고생하고 있는 당신의 며느리를 위해서… 일대 용단을 내려주셨다는 거야…
그렇게나 금슬이 좋았던 그녀의 신랑(내 아버지)을 사별(死別)하고…
혼자가 된 몸으로 열심히 가업(家業)인 양조장경영에 여념이 없으면서도… 역시 꿋꿋하게 부덕(婦德)을 지켜오고 있는 당신의 며느리에게…
무언가?…
획기적인 전기(轉機)를 만들어 줌으로 해서 그녀에게 용기를 북돋아주고 위로를 해주신다는 취지에서…
내 할아버지께서는…
내 엄마에게 일본으로 밀항(密航)이라도 해서… 일본에 계시는 사돈어른(내 외할아버지)과 함께 다만 얼마동안이라도 같이 살다가 돌아오라는…
그러한 은덕을 베풀어 주셨다는 이야기 였어…
정말 상상도 할수없는 엄청난 용기와 무모하리만큼 위험한 용단이라고…
다들 말리고 있었지만… 막상 당사자이신 내 엄마는… 당신 시아버님의 그러한 결단 어린 배려가... 너무나 엄청난 용기와 도박같기는 한 일이지만... 용기를 내셔서… 일대 도박(賭博)을 시도 해보시기로 했다는 이야기였어…!?
그렇게 내 엄마로서는 미처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시아버님의 배려에 그만 감읍을 하시고 말았다는 거지!…
그래서 어머니는 즉시 그 준비를 하시면서도…
가장 커다란 걱정은?…
바로 나...!? 이 <전동훈> 이가 알게 될까봐서 노심초사를 하시기도 했었다는 거야…
그러나 일본에 가셨다가 오래 있지 않고 내가 여름방학이 시작되기 전에 돌아오시겠다는 생각으로… 나에게는 일절 알리지도 말라고 하시고는…
이제 세 돌이 되어가는 내 동생(?) <지애(智愛)> 만을 데리고 일본으로 가셨다는 것을 알게 된 거야…
그러나 나는 그런 소식을 접하고 나서…
너무너무 섭섭해서 한동안 멍하니 내 정신을 차리지 못 하기도 했었어…
그러구러 나는 일본으로 떠나가신 내 엄마의 소식만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동안… 세월은 흘러 흘러서 나는 고등학교 3 학년을 마쳐가고 있었어…
도대체가 엄마가 가시고 난지?…
여름방학이 시작되고 또 끝이나서 내가 다시 학교로 돌아 올 때 까지도… 그리고 다시 겨울 방학이 시작되도록 세월은 흘러가는데도…
엄마로부터의 소식은 종무소식일 뿐인거야…!??
나는 도저히 공부가 안 되는 거야!?…
들리는 말에 의하면… 일본으로 밀입국하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나 많아서 일본의 경비정들이 특별경계를 하기시작해서…
매일 수 십 명씩 잡히기도 한다는 말이라던가??… 또 그들 밀입국하는 한국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다는 소위 <오오무-라> 수용소라고 하는 곳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간다고 하더라… 라는 등등의 이상한 소문으로만 들려 올 뿐!??…
내 엄마한테서의 그 어떤 소식도 없는 채로 세월은 흘러가기만 했었어…
나는 아주 학교공부도 때려치우다 시피 한 채로 신도안의 할아버지에게 떼를 쓰다시피 하며… 나도 일본으로 엄마를 찾아서 가겠다고 졸라대기도 했었지만!!??…
그거야 말로 어림도 없는 어린아이의 취급만 받아오고 있었던 거지…
거의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가도록 일본과는 전혀 소식이 닿지를 않자…
드디어 우리 집에서는 모두들이…
내 엄마가 돌아가신 걸로 간주하기 시작하게 된 거야…
그 당시의 일본정부와 한국정부의 관계가 악화일로에 들어가는 정황이라든가…
또 들리는 소문들에 따르면… 내 엄마처럼 밀입국을 하는 한국 사람들은… 일본정부에 걸리면 그렇게 걸리는 대로… 또 한국의 해양경찰에 걸리면 또 그렇게 걸리는 대로… 완전히 죄인 취급을 받으면서… 어느 쪽이 되었든지… 형무소에 갇히거나 도망을 치다가 총에 맞아죽는 수가 비일비재하다는 소문이 돌고 있을 뿐 이었었어…
그런데... 그 어느 날… 내 큰 고모가 이상한 꿈을 꾸고 나서…
우리 집안에서는 내 엄마와 내 막내 동생 지애(智愛)가 죽은 걸로 여기게 된 것이고…
그래서 내 엄마가 집을 떠나간 날을 제삿날로 삼기로 하자는 말들도 돌게 되기도 했었어…
나는 그 소리를 듣고 거의 미친 사람처럼 되어서…
절대로 엄마는 죽지않았다고 우기면서…
큰-고모나 작은 고모들… 그리고 내 두 여 동생들이 차리려는 제사상을 들러 엎어버리며 행패를 부리기도 했었어…
서울로 돌아와서 학교라고 하는 데를 다니기는 하지만… 나는 거의 정신을 잃다시피하며 술을 퍼 마시고 빗나가기도 했었어…
그러나 또 날짜는 흘러가서…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을 해야 했던 것이고… 졸업을 하고 나서도… 그래도 나는 또 다시 대학교에 입학을 하기는 했었어…
앞에서도 잠깐 말했지만… 나는 웬일인지 그렇게 머리가 좋았나봐!?…
그렇게나 한참 시험공부에 열중해야만 할 그런 시기에…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에 미치다시피 방황을 하고 있었는데도… 너무나도 명문(名門)대학이라… 들어가기가 어렵다는 S- 대학에 떡 하니 합격을 한 것이지…!!
그리고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세월이 흘러가는 대로…
대학에서도 그런대로 공부를 해야만 했었어… 그런다고 내가 무슨 목적의식을 가지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내 머릿속에는 돌아가신 내 엄마에 대한 그리움만으로 가득차서 완전히 내 정신이 아니게 미쳐가기 일보직전 까지 가고 만 것이었어…
그래서 나는 그 당시에 생각지도 않게 방탕한 생활을 하기도 했었어…
소위 말하는 사창가(私娼街)라고 하는 종삼(鍾三)거리라고 하는 곳 이라거나… 서울역 앞의 양동(陽洞)거리는 물론 청량리의 588 거리를 헤매며 술에 쩌 들어 있기도 했었어…
물론 내 고모나 할머니에게 여러 번 끌려가서 치도곤(治盜棍)을 맞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나는 돌아가신 엄마만을 찾다가 제풀에 쓰러지곤 하기도 했었던 거야…
또 대학에 다니는 동안에는… 우리나라의 사회가 너무나 어수선하기도 했었어…
뭐...? 4.19 라나…?? 뭐라나 하는… 그 무슨 정변(政變)이라나…!??
그래서 나는 홧김에 군대라는 곳에 입대를 해 버리고 만 거야…
나는 S 대학교 3 학년에 올라가면서 바로 휴학을 하고 군대에 입대를 하고야 만 거야….
그런데…!? 어찌 또 세상에… 이런 일이??… 일어 날 수가 있을까…??
나는 다시는 새롭게 어떤 여자가 되었던지 간에… 여자와의 사랑이나 연정 따위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던 내 가슴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의 열병에 걸려버리게 되고 만 거야…
나는 또 군에서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에… 때도 아니고 시도 아니게… 새로운 사랑의 마법에 걸려서...
푹 빠져 버리고 마는 일이 발생하고야 만 거야!?…
물론 내 가슴 한구석에는… 돌아가신 내 엄마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가득 차 있는 상태 그대로인데…!?
현실적으로는 눈앞에 또 내 혼을 끌어 당겨주는 것 같은… 엉뚱한 여인에 대한 정열이 끓어오르고 있었던 거야…
그것도 그 상대라고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바로 내가 군대에서 신참병으로 근무하기 시작하는 우리 부대의 부대장님인… <류진수(柳鎭洙)> 라고 하는 여군 소령 이었어…
그 부대장님의 이름이 비록 남자이름 같기는 했지만…
엄연한 그 당시에는 아주 유명한 여군 소령(少領)으로써… 내가 배치 받은 전방의 어느 의무부대(醫務部隊)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경비중대(警備中隊)의 중대장님 이셨던 거야…
의무중대라고 하면... 모두가 의사나 간호사 그리고 부상병들로만 가득차는 곳이기 때문에... 그 곳에는 경비를 전담해야하는 경비 보병중대가 따로이 배치되어 었었던 거야...
또 아마도 내가 알기로는 그 당시에 여군(女軍)들이라고 하면?…
거의 대부분이 간호장교(看護將校)님들이거나… 또는 행정보조역할을 하는 여자 하사관(下士官)들… 그리고 또 그 분야의 직업적인 여군장교(女軍將校)님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이 <류진수(柳鎭洙)> 라는 여군은… 보통 여자 군인들 하고는 달리…
보병(步兵)의 병과(兵科)를 받아서… 보병장교(步兵將校)로써 당당히 그 어려운 특수 훈련까지 마치고 장교(將校)로 임명이 되신 분이라는 거야…
그것도 남자들도 뻥뻥 나가떨어진다는 그 어려운 훈련을 아주 우수한 성적으로 마쳤다는 아주 유명하신 분이셨었어…
대장…!?
이제야 이야기 하는 말이지만…
나는 어려서부터 자라오면서 겪었던 환경이나 내성적(內性的)인 성격으로 인해서 인지는 몰라도…? 아마도 나는 아주 지독한 패미-니스트의 증상(症狀)이 내 몸에 배어 있는 채로 자라나고 있었던 모양이야!?…
그리고 또 나는 언제나…
나보다 나이가 많은 여인들로부터 사랑을 받아오면서 자라오고 있기도 했었고…!? 그렇게 나이가 많은 여인으로부터 내가 보호를 받으며… 하나하나 내가 해야 할 일들을 지시받아서 살아가는 동안 나는 그녀들로부터 사랑을 배워오게 된 것이 좋았고…
또 사랑을 하려고 한다면…
나는 그런 연상(年上)의 여인들하고나 사랑을 하고 싶어지게 되고 만 거야…!
또 나는 어려서부터 내 주위에 있던 모든 여자들로부터…
자라오면서 받아온… 또 우리 집안 내에서의 아주 귀중한 신분 때문이기도 했겠지만… 특히…!?
나보다 키도 크고 몸이 아주 글래머이셨던… 내 엄마나 초창기때에 내 동정을 앗아가기도 했었던 <언년이>!…
그리고 내 큰-고모들 등등은... 모두가 다들 나보다 덩치도 크고 힘이 센 여자들이었기 때문에…
또 그녀들로부터 받아만 왔던 그 <위함> 이라고 하는 생활습관이 원인이 되었는지도 몰라도…!?
또 나는 원래가 모든 면에서 내 엄마를 닮았다고들 하지만!?…
내 키나 덩치만큼은 내 아버지를 닮았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별로 키도 크질 않고 몸집도 자그만 한 것이… 예쁘장하게만 생겨서… 만약에 내가 여장(女裝)을 한다면?… 아주 미인 측에 들어갈 그런 스타일의 남자라는 말을 들으며 자라오고 있기도 했던 거야…
그러다 보니까… 나는 또 보통 여리고 가냘픈 여인에게서가 아니라…
글래-머틱하고 아주 강하면서도 무서운 인상을 주는 그런 여인!?…
그 체격이나 근육 면에서 아주 강골기가 맴 도는… 그런 여자에게 매달리고 싶고… 또 그런 여자로부터 보호를 받고 싶었으며!?…
또 섹스를 할 때에도 그런 여자로부터 마구 짓밟히고 학대를 받으며 즐기는… 그런 섹스를 좋아하게까지 되고 만 것이야…!?
한때 내가 사창(私娼)지대를 찾아다니면서도 내가 고르는 여인들도… 모두가 한 결 같이 나보다 최소한 열 살은 더 먹은 여인만을 골랐었고… 또 첫인상이 아주 강하고 무섭게 생긴 여자만을 골라서 찾아다니기도 했었어…!?
그러다가 내가 군대에 가서 신참으로 배치 받은 곳의 부대장이 바로 그런 인상을 가진…
나보다도 11 살이나 많은 <류진수>라고 하는 여성군인인거야!?…
그 야전 병원의 관리 부대장으로 있는「류진수(柳鎭洙)」라는 여자 직업군인…!?
또 나는 내 외모에서 풍기는 가냘프고도 여자애 같은 그런 몸과는 전혀 다르게… 내 몸에서 일어나는 너무나도 뜨거운 열기 때문에… 그 당시에… 나는 하루에도 최소한 두 번 이상씩은 자위행위(自慰 行爲)를 해야만 견디는 놈이기도 했었어.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을 때라든 가… 부대에 배치되어서 복무를 하고 있는 동안에도… 일정한 시간대가 되거나 휴식 시간에라도…
어떤 묘한 상상이나 그림을 보기만 하면 나는 내 에너지(?)를 빼내지 않고는 견디질 못하는 놈이었던 거야.
그런 놈인 내가 그 당시의 여자로써는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는…
<류> 소령 같은 괴팍하고 변태적인 기질의 여인에게 걸려들고 만 거야…!??
<류진수(柳鎭洙)> 라는 여인은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이름 그 자체 그 대로… 생김새도 남자처럼 덩치가 나보다 머리통 하나는 더되도록 키도 클 뿐 아니라…
다리통의 근육도 남자 뺨 쳐 먹을 정도로 굵고 근육질 적인 남자 같은 여자였어.
또 목소리도 우렁차서 여성 특유의 음색(音色)을 뺀다면…
얼른 듣기에 틀림없는 남자 목소리… 바로 그대로인 여자였어…
정말로 여장부라고 할까…?? 하는 그런 남자 같은 여자인 거야 .
그런 여자가 가냘프고 계집아이처럼 예쁘게 생긴 나를…
자기의 직속 부하 중에서도… 소위 당번병(當番兵)이라는 직분을 갖도록 시키게 되고 말았으니… 내가 온전할 수가 없었던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 아니겠어…!?
나처럼 특이한 체질로 정열(情熱)과 성욕(性慾)이 넘쳐흐르는…
아주 혈기가 왕성한 젊은 놈이…
그런 여인을 자그만 치 1 년여가 넘도록 마치 노예(奴隸)가 여왕을 모시듯 받들어 모셔야 하는 부대장(部隊長)의 당번병(當番兵) 이라는 직책을 맡다 보니까…
물에다 석유를 들어 부운 양…
내 정력과 모럴의 방향감각을 잊은 젊은『에너지』는 그대로 그녀의 변태에 맞장구를 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던 거지…
그녀의 지독한 새디-스트 적인 기질이 아주 알맞도록 나의 마조- 적인 본능과 맞아떨어진 셈이었던 거지 …
세상에…!? 여자가 새디- 적인 변태(變態)를 갖고 있는 경우는 거의 확률이 희박한 법이지만 … ! 그러니 내가 그런 내 부대장(部隊長)에게 매료되어서… 짝사랑을 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고 만 거지…
그리고는 끝 내에…
나는 그 <류진수> 라는 연상(年上)의 부대장(部隊長)과 함께 깊고도 깊은 인연을 맺는 그런 사련(邪戀)에 얽히게 되고야 만 것이지…
대장…!?…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기가 좀 쑥스럽긴 해도…
내가 가지고 있는 섹스에 대한 기교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너무나 별아 별 수련을 다 겪어 왔었기 때문에… 솔직하게 아무리 겉으로 보기에는 강하고 엄한 내 부대장님이라고 하더라도… 나의 열과 성을 다해서 핥아주고 빨아주며… 한도 끝도 없이 계속되는 내 기교(技巧)에는 완전히 혼까지 다 빠지지 않을 수가 없었던 거야…!??
그리고 특히…
내가 가지고 있는 그 남 유달리 길고도 굵은 내 거대(巨大)가 휘둘러주는…!?
그녀의 자궁벽(子宮壁)까지 찔러주는 관능의 자극에는…
달리 더 이상은… 군대고 뭐고!?… 또 상사(上司)고?… 당번병(當番兵)이고를 가릴 수 가 없게끔 되고야 만 것이지…!!??
그렇게 깊은 사련(邪戀)의 늪에 빠져있는 동안에도 세월은 흘러서…
나는 아쉽게도 군대에서 제대(除隊)를 해야만 하는 시기가 되고야 만 거야…
대장… !
사실 나는 학생 신분을 지닌 채 군에 입대를 했기 때문에…
나의 군대에서의 복무 기간은 다른 사람들보다 거의 절반이나 짧았어.
소위 학보병(學保兵)이라는 특수한 신분으로 군에서 복무를 하고 있었던 것이지.
모든 대학생들은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입대해야 할 나이가 차더라도 군대에 소집되어 가는 것을 졸업 할 때까지 연장해 주고 있던 때이기도 했었지.
그러나 학생시절에 자진해서 군대를 가겠다고 하면…
나라에서는 그 사람의 국방의 의무기간을 다른 사람들의 기간보다도 절반으로 줄여서 복무를 하도록 만들어 주었던 시절이었었어.
나는 학보병(學保兵)의 신분으로 일찍 제대를 해서 사회로 나가야하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했었어… 남들 같으면 군대 생활이 지겨워서라도 빨리 제대를 하려고 갖은 방법을 다 써 가며 노력을 하는 것이 정상인 법인데…
군에서 복무하던 불과 1 년 6 개월이라는 기간 동안에… 나는 내가 내 인생에서 맛보아야 할 온갖 시련을 겪어야만 했었어.
그렇게 나는 짧은 군대생활을 하다가 아쉽지만 하는 수 없이 제대를 하기는 했었어…!?
그렇게 군에서 제대를 하고 난 후에도… 나는 군에서 내가 모시고 있던 <류진수(柳鎭洙)> 라는 소령을 못 잊어서… 우리 부대가 있는 전방 지역의 E- 시 인근을 거의 밤낮으로 몽유병 환자처럼 헤매고 다니기도 했었어…
또 대부분의 학생들은 군에서 제대를 하면 즉시 복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인데…
그렇게 나는 내가 근무하던 부대의 부대장인 그 <류> 소령을 못 잊어서…
학교에 복학할 생각도 않고 짬만 나면 전방 지역의 작은 소도시에 있는 여인숙에다 진을 치고 <류> 소령과의 사련(邪戀)에 빠져 지나 곤 했었던 거야.
그 <류> 소령도 나와의 사랑놀이 하던 쾌락을 못 잊어서…
이미 내가 제대한 이후인데도… 내가 찾아가기만 하면 그 작은 도시의 여관이라든가 여인숙 등지로 나를 이끌어가며 같이 외박을 하기도 하고…
내가 군대에서 현역으로 있을 당시의… 당번병(當番兵)에게 했던 방법대로…
내 여왕이 되어주시면서 욕정(欲情)의 관능에 빠지기 일쑤였었어.
자연히 내가 그렇게 그녀의 혼에 빠져서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이… 내 할아버지의 귀에 안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지…
즉시 나는 신도안(新都安)의 고향집에서 연금 된 채 한동안 지내야만 하게 되기도 했었어…!!
바로 그 무렵이었어!…
그때에 우리 집안에는 세상에 다시없는 희망의 낭보(朗報)가 날아든 거야… 바로 돌아가신 걸로 간주하고 제사까지 지내려고까지 했었던…
내 엄마로부터 소식이 전해져 온 것이야!…
엄마는 지금 일본의 오오-사까 라고 하는 도시에서 내 외할아버지와 함께 아주 잘 계시다는 소식인 거지…
또 그 소식은 역시나… 우리들의 추측대로… 처음에는 내 엄마도 다른 밀항자들처럼…
<오오-무라> 수용소에 수용이 되신 채로 거의 일 년 여 간을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채로 고생을 하셨다는 소식 이었어…
그러다가 어떻게 저렇게 그 소식이 내 외할아버지에게 전해지게 되자?…
즉시 내 외할아버지의 수완과 능력으로 풀려나시게 되셨다는 소식이었어…
그리고 지금은 내 외할아버지와 함께 아주 잘 지내고 있다는 소식인 것이야…
다만!?…
지금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너무나 안 좋은 관계이기는 하지만?… 머지않아서 양국의 관계가 정상화되고 사람들이 자유롭게 왕래가 재개 될것이라는 말씀과 함께…
그때에 다시 한국으로 나오시겠다는 전갈 이신 것 이었어…
그러면서 내 막내동생인 지애는 금년에 소학교에 입학을 했다는 소식도 전해 주셨어...
아마도 엄마는… 지나간 그 일 년 동안의 수용소(收容所) 생활이 아주 진저리가 나신듯해서… 다시는 밀항(密航)이라는 말도 못 꺼내게 하고 있는 모양 이었어…
그러는 또 한편…
내 할머님께서는 내가 그「류소령」의 악령에 씌워졌다고 무당을 데리고 와서 푸닥거리를 한다…?? 정신과 의사한테 진찰을 받는다 하시며…
우리「전(全)」씨 가문의 삼 대째 독자이며 종손(宗孫)인 나「전동훈(全東勳)」이가 어찌 어찌 잘못 될까 봐서 수선을 떨기도 했었지.
더구나 나는 고등학교에 막 들어가던 해에 내 아버지를 여의 고…
그 후 채 1 년도 못되어서…
또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내 어머님까지 내 외할아버지를 따라서 그분이 사시는 일본(日本) 땅으로 건너가셨기 때문에… 나는 실질적으로 거의 고아처럼 살아오고 있다는…
피해의식으로 가득 차있었던 처지였었어.
내가 내 할아버지의 감시에서 겨우 풀려난 것은 그 후에도…
서너 달이나 더 지 난 다음이었었어.
할아버지의 연금(軟禁) 생활에서 풀려나서…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나는 다시 그 일선 지방인 E-시로 그녀를 찾아 가 보았지만…!?
내가 복무하던 그 부대 자체가 다른 지방으로 이동(移動)을 했을 뿐 아니라… 그 부대의 지휘관(指揮官)도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버리고 말았던 거였어.
이렇게 한동안… 나는 내 새로운 환상(幻想) 속의 여인이었던 그 <류> 소령이라는 여인을 찾아다니느라 또 엉뚱하게 시간을 보내야만 하기도 했었던 거지.
나중에 알아낸 사실이지만… 이렇게 부대장이 바뀐 사실도 아마 내 할아버님의 작품(?)이 아닌지 모르는 일이야…!??
그렇게 내가 엉뚱하게 열병에 들떠서 헤매다가 겨우 다시 학교에 복학을 한 것은 내가 군에서 제대를 하고도 반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뒤 였 던 거야.
복학을 한 뒤에도 대학교 삼 사 학년이 되면…
남들은 모두들 무슨 국가고시 준비를 한다?…
취직시험을 본다… 또는 무슨 무슨 논문을 쓴 다고 하며 법석을 떨고 있었지만…
나는 그런 면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었어.
그 동안 나와 함께 대학교에 입학을 했었던 동기생들 중에서 더러는 현직 판검사의 시보로 일을 하거나… 사회의 유수한 직장에서 사회인이 되어 있기도 했어.
고향에 계시는 내 할아버지께서도 나의 장래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을 하지 말고 하루빨리 졸업이나 하고 장가를 가라는 독촉이 성화 같으셨어.
하기야 우리 집 에서는 내가 내 아버님과 어머님이 운영하시다가 잠깐 남에게 맡겨 놓은 우리 집안의 사업체를 내가 맡아서 운영을 하시는 걸로 생각을 하시는지…
내 장래에 대해서는 전혀 걱정이 안 되는 모양인 거야.
가끔은 일본에 살고 계신「엄마」로부터 애절하신 사연과 사랑이 담뿍 담긴 편지를 보내 주셔서 나를 괴롭게 만들어 주기도 했었던 거지.
그러구러 나는 4 학년에 올라갔어…!
그 해가 나는 졸업반이었지…? 아마…!?
나는 별로 내 키지는 않았었지만 같은 과 졸업반 학생들을 따라서 그때 유행하다 시피 하는 몇 가지 국가고시(國家考試)를 보았던 적이 있었어…
합격하리라고는 전혀 기대도 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내가 시험에 응시했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었어.
또 합격을 했다고 해 보았자 내가 그쪽 길로 내 인생의 행로를 잡을지 어떨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그 저 관행처럼… 몇 가지 국가고시(國家考試)에 응시를 해보았던 거야.
그런데 말이야??…
나라는 놈은 정말 머리가 좋은 건지 어떤지… !?
남들은 몇 년씩이나 걸려서 도서관이다 또는 절간 등에다 진을 치고 머리를 싸매 가며 파고들어도 안 되는…
그 최고로 어렵다는 고등고시(高等考試)를 그것도 사법(司法) 행정(行政) 외무(外務)등 고시를 세 가지씩이나 합격을 해 버리고 만 거지…
불과 두 서너 달 간격으로 합격 통지서를 연달아서 받고 난 뒤에도…
나는 시골의 고향에다 알리지도 않았었어.
나는 내가 원한다면 판(判) 검사(檢事)도 될 수도 있는 것이고…
또 국가 행정기관(國家 行政機關)에서 높은 자리로 직접 발령을 받을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외국(外國)으로 다니며 외교관(外交官)으로 내 일생을 살아가는 진로(進路)를 잡을 수도 있는… 말하자면 즐거운 고민에 빠지게 되었었던 거지…
나중에서야 이런 사실이 알려져서…
대전(大田) 시내는 물론 신도안(新道安)의 할아버지와 또 공주(公州)시에서까지 경사가 났다고 법석을 떨기도 했었어.
나는 또 그런 것들이 또 더욱 나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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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래간 만입니다... 대장- 들이 추측하시다시피 나는 컴- 에대해서 다소는 서툴기 때문에...
그동안 이 소-라 싸이트가 막혀버리는 바람에... 들어오고 싶어도 들어올수가 없었습니다...
내 글을 기다려주시는 대장- 님들께 너무나 감사하다는 말만을 드릴수밖에 없습니다...
앞으로는 거의 정기적으로 글을 올리도록 노력을 하겠습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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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 2016-08-1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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