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시-스시-
요즈음 건강식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스시를 찾는다. 점심 시간이면 의례 국물이 있는 음식을 걸지게 먹고 들어와야 먹은 것 같다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도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요구되는 음식의 차림표는 그 어느 하나 간과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였으니까. 식사를 앞두고, 동료들은 언제나 세가지 부류로 나뉘곤 했다. 첫째 부류는 골라먹기 귀찮으니 그냥 주는 대로 먹는 메뉴에 충실한, 식당의 짠밥 계통에 목숨을 거는 치들, 다른 하나는 그래도 그렇지 하면서 줄창, 발품을 팔아가며,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는 유랑파 들, 나머지 하나는 그래도 건강과 포만감, 맛이라는 세가지 합일점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절대강자를 찾아 다니는 미식가 그룹이 그랬다. 아침도 그럭저럭, 저녁도 그럭저럭인 나 같은 하숙집 신세의 바둑이들은 그나마 점심식사가 가장 큰 고충거리이자, 걸러서는 안 되는, 보양식의 의미까지 겸하고 있으니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식사 전에 순영이는 나에게 핸폰 이나 메시지를 날리면서, 오늘은 무얼 먹을 거냐, 난 무얼 먹기로 결정했다 등등 꼭 점심식사를 위해 목숨 걸고 사는 것처럼 나를 부추켜 댔지만, 나의 반응이란 것이 시큰둥 으로 일관 하다 보니, 이제는 무얼 쳐먹든 간에, 몸매 안 망가지고, 건강유지에 보탬이 될만한 음식을 골라 먹으라는 조언만을 가끔 하곤 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음식이란 것을 입에 달고 살아가지만, 그 항상성과 일관적 태도로 말미암아 건강과 거리가 먼 음식을 끊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란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물류의 짜임새가 원활하지 못했던 국내의 실정은 결과적으로 지역주의적 음식문화를 정착시켰고, 그게 풍토화 되어서 잘한다고 소문난 음식을 먹으려면 꼭 어디를 찾아 들어가야 하는 분산된 산만성을 드러냈고, 그로 인해 파급되는 음식문화의 외골수적인 성격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 눈에는 독창성으로 비추어지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대개 동료들은 저마다 밖에서 하는 식사의 기준을 금액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 정도의 가격에, 그럴싸한 포만감과 실패하질 않았다는 감이 덧붙여 진다면, 그런대로 많은 점수를 주고 있었고, 그로 인해, 중독처럼 그 집을 다시 찾아가는 습관을 버리질 못했으며, 그나마 김치가 조잡했네, 반찬도 가짓수대로 돈을 받아 재끼나 등등의 하찮은 삐짐으로 인해 설사 발길을 잠시 끊었다 손 치더라도, 어디 도망가지 않고 사는 마당에, 칼로 끊어 내듯이, 단골로 설정된 식당들에 대해서 등을 돌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누구는 그럴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이 마당에, 가리고 자시고 할 여력이나 있느냐고 말이다. 그 말도 맞는 말이긴 하다. 배때기에 기름 낀 소리 작작 하라면서, 김치 하나에 밥을 먹는 것도 감사 해야 할 이 어려운 시국에 무얼 먹을까 고개를 갸우뚱 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스러운 부르주아 냄새가 풀풀 난다고 주절 댈 테니 말이다. 그런 복작지근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어쩐 일인지 오늘 점심을 걸러 버렸다. 모두들 나를 보고, 곧 있다가 삘딩 스겄네, 그렇게 돈 모아서 무슨 보지 사 모을려고 그러시나 등등 갖은 비아냥을 떨며, 식사하러 나가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나는 쌓인 업무로 인해,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운 듯이 일에 빠져 있었다. 그 이유는 오늘 저녁에 있을 손님 접대 때문 이었다. 본부장님과 같이 배석하게 될 그 자리에서 오랜만에 포식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예감과 동시에, 그들과 있을 회의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겹쳐져, 나의 손 끝은 부산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본부장님도 자리를 뜨질 않으시고 30분 간격으로 내가 출력해 내는 회의 자료와 브리핑 내역을 한장 한장 받아서 검토하시느라 식사 시간을 자연스럽게 건너 뛰고 계셨기에, 나 또한 자리를 냉큼 비울 수 있는 처지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 표현은 좀 완만하게 해야 되질 않을까?’
‘본부장님, 그거 말고도 검토하실 게 한 두 가지가 아닌데요!’
나는 오히려 본부장님을 나무라는 투로 중얼거렸다. 사내에서 조중현 본부장을 모르면 간첩이었다. 왜냐하면 공채 동기들 중에서 가장 줄을 못 타기로 소문 났고, 식사 시간에도 여지없이 간부들의 손아귀에서 u찌 맞고, 외톨박이 취급 받기 일 쑤 인 그를 가리켜, 모두들 낙하산의 말로라고 지칭해 왔으니 말이다. 벌써 그를 가리켜 상위급 간부 명퇴 영순위라고 나불대는 인간들도 있었다. 오전 시간에 본부장을 찾으려면 딱이 적당한 곳이 없었다. 물론 사내에는 없었고, 그 지긋한 연세에 어디 짱 박힐 곳이 많은 지는 몰라도, 토요일 오전에는 아예 얼굴을 볼 수도 없었고, 그나마 띄엄띄엄 나오더라도 업무와는 무관하게 회장실에 불려가 수 시간 찐빠를 먹고 나오는 것이 목격되고 있어서 그 명성은 누가 뭐래도 자자한 편이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도 수태 많았다. 방금 얘기한 명퇴영순위를 비롯해서, 낙하산의 말로, 술상무 아제, 손떨림의 극치, 무지랭이 영감 등등 본부장을 지칭하는 별명들은 학교 시절, 학주 만큼이나 위세를 떨치며, 자자한 소문을 몰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그 밑에서 일을 하는 나 같은 성실한 사원들만 죽어날 판이었다. 대개의 직원들이 상사가 자신의 앞길에 거름이 되어준다고 판단 되기는커녕, 방해만 된다고 생각되어서 인지, 너도 나도 실상을 파악한 다음에는 타 부서로의 전근 신청에 잉크 마를 날이 없다고 우리 부서의 경리 아가씨는 혀를 차곤 했다. 줄줄이 사탕으로 사내의 정치 전선에서 한 발자국 이라도 뒤쳐짐이 없으려는 젊은 것들의 발뺌으로, 우리 부서는 언제나 오고자 하는 인력도 없이, 나를 비롯해서 성실하고 민하되, 줄이나 빽이 전혀 통하지 않는 농촌 출신들만이 자리를 메꾸고 있기 마련 이었다. 사실, 밑에서 있으면서도 회의를 주제하는 자리에서, 손을 덜덜 떨어가며, 애써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읽지도 않는 신문만 꼬깃꼬깃 주무르는 모습을 한 두 번, 본 것은 아니지만, 진급 이라든가, 자신의 거취 문제로 불거지는 우리 부서의 회식 시에는 어느 부서 보다도 격론과 삿대질이 많이 오가는 편이었다. 그런 본부장님 께서 식사마저 거르시고 오늘의 미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계시기에, 밥 생각은 애저녁에 물 건너 간 셈이 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회장님 호출에 번개 같이 본부장님을 찾아오는 데에는, 나만한 인물도 없었다. 대개 본부장은 핸폰을 사무실에 두고 발을 뺐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돌아와서는 핸폰을 사무실에 놓고 나가서 연락할 길이 없었다는 대사가 먼저 나오고, 그걸로 얼마간은 밀어대는 통에, 언제나 본론은 헷갈리는 상황에서 주제로 튀어 오르곤 했다. 한번은 속으로 불쌍한 인간이라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있었다. 그나마 갖고 있는 그 술상무 재주로 버티고는 있다만 그것도 체력이 받쳐 줘야지, 점심도 제대로 먹질 못하고, 손만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해서 해본 생각 이었지만, 대번에 그 생각을 접고 말았다. 왜냐구? 건강에 안 좋다는, 그것도 해장술을 포켓술병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홍차에 타서 마시는 모습을 목격한 다음 부터였다. 도저히 용서도 안되고, 자기밖에 모르고, 밑에 사람 생각은 좇도 해주는 것이 없는, 폐물 상관이라는 나만의 판단, 아니, 만인의 중평 때문이었다. 죽집 아니면, 해장국집, 아니면 싸우나, 아니면, 집에서 자빠져 있는 그런 상관을 어찌 믿고 결사항전 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뜬금없이, 업무로 나를, 점심까지 거르게 하면서 득달하는 모습이 살가울 리 있겠나! 하긴, 그 놈의 밥 한끼, 않 먹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그렇질 않은가 말이다.
‘이따가 통역은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저녁 식사에다가 중요한 주제가 오고 가면 전문 통역 하나쯤은 필요할 것도 같은데요….’
‘중요한 사안에 다른 세력, 들이게 할 일이 뭐 있나?’
아쭈, 다른 세력?… 나는 속으로 암만해도 조직의 쓴 맛을 뵈 주든가 해야지, 제정신을 못차리는 구만 이라는 생각이 번뜻 떠올랐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다 망가져 가는 본부 팀의 프로젝트를 가로 채려고 눈에 불을 켜겠으며, 어서 빨리 먹고 떨어지든가, 없던 걸로 해주세용, 하면서 냄새 나는 똥떵어리는 아무리 굵다고 해도 약탕관에는 못 넣겠다고 다른 부서 사람들이 버팅길 게 분명한데도 말이다. 이번에 떨어진 사안은 그 중에서도 굵직한 놈이었고, 아무리 보아도 이 껀을 중심 과제로 삼아 평소 눈의 가시인 본부장을 정치적으로 거세시키려는 내부 세력의 음모라는 생각이 조금 들기는 했다.
‘밥은 먹었나?’
‘본부장님도 안 드셨는데, 어떻게 제가….’
‘그래도 그렇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어서 일어나게, 내가 밥 사지….’
거지반 일이 다 되어가자, 모두가 빠져나간 썰렁한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나를 가여워 했는지는 몰라도 밥을 사시겠다며, 본부장께서 직접 행차를 하신단다. 별로 달갑지는 않았고, 내심 이따가 있을 회식이랑 접대에서, 뽄때 없이 나서서, 흉하게시리 젓가락 질이나 하지 않게 하려고, 아랫 사람 곱창을 싼 음식으로 채우려 하는 게 아닐까라는 나만의 상상을 하면서 자리를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 에서 멀리 떨어진 해장국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분명했다. 걸어 가시면서도, 내내 거윽 거윽 하면서 어제 먹은 술트림을 거나하게 해대는 폼이 이래도 살아야 하는 건지 싶기도 했다.
‘자네는 어째 타부서 전근 신청 안하나?’
‘네?’
내심 말해야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나는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자네가 이제는 우리 부서 터잡이가 다 됐네, 그렇지? 자네 신입 시절이 눈에 선한데….’
‘아니 큰 일을 앞두시고 무슨 그런 말씀을…..’
‘나도 다 알지. 왜 모르겠나? 그저 멍청하게 위에서 내려오는 술시중 업무만 하고 있다고 눈과 귀가 다 멀어 버린 건 아니야. 나도 자식, 다 키우고, 제대로 늙어가는 가장인데….’
‘그 접대 업무는 이제 구시대의 산물처럼 없앨 수는 없는 겁니까? 회사도 이제 그룹 차원으로 누가 봐도 명실공히 재계 1,2위를 다투는데, 말이죠….’
‘한국에 발 붙이고 사는 한, 자네, 접대나 향응 제공의 문화가 쉽사리 없어질 수 있다고 보나? 그렇다면 어째서 제 2, 제 3의 술상무가 나오는 지, 자네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말이야…..식당에 사람도 없네… 아주머니, 여기 국밥 둘이랑 소주 한병 주쇼…..’
얘기를 하다 말고 본부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를 시켰다. 본부장과 안면이 있는지,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내놓질 않는 생태 내장찜과 간장을 국밥을 말아오기 전에 안주로 술과 함께 내왔다.
‘본부장님, 건강도 생각하셔야죠.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술대접에 나서시면 건강은 뭐가 되겠습니까? 이제 연세도 있으신데……’
‘자네, 술대접의 기본이 뭐라고 생각하나?’
‘상대방의 기분에 잘 맞추느냐 못하느냐, 그리고, 그 사이에 중요한 주제와 자신이 캣취 해야할 관건을 적당히 비벼 넣어, 확약을 받아내는 기술, 뭐 그런 것이 아닐까요?’
‘허어, 평생을 술상무를 해서야 얻을 수 있는 철학을, 자네는 어찌 그리 해보지도 않고서 다 알고 앉았누?’
‘그거야, 뭐…..’
‘틀렸네… 그러니, 술상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자네 한잔 들텐가? 뭐 일도 대충 했겠다…’
그러나, 나는 벌써부터 날라져 온 국밥에, 숟가락을 전시하는 것 마냥, 퍼 넣으면서 밥만 먹겠다는 시늉을 했다. 본부장은 그런 나의 의중을 알아 챘는지, 혼자 술잔을 들고,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붙들어 가며 첫 잔을 어렵사리 들이켰다. 안주도 없이, 캬 하는 소리를 내며, 온 몸을 부르르 떨어대는 꼴이라니…. 이거 영락 없는 알코올 중독자랑 밥 먹는 꼴이네…. 누가 볼까 무섭구만……
‘그럼 무어가 술대접의 기본 입니까?’
‘자네 외국의 영화에서 중요한 껀수를 앞에 두고 거물들 끼리 맞대고 앉아서 항상 하는 첫 말이 뭔지 아나?’
‘지 자랑 이겠죠.’
‘아니, 상대방을 위한 배려를 먼저 표현해 주는 거지. 밥은 먹었느냐? 차나 한잔 하지 않겠느냐? 설탕이랑, 프림은 어떻게 넣어 줄까? 좋은 식당은 알고 있느냐?...... 왜 그럴까?’
‘그게 기본 입니까?’
‘아주 중요한 기본이지. 상대방에게 당신 앞에 나타난 사람은 당신의 등골을 빼먹으러 나오긴 했지만, 어쩐지 가족 같고, 삼촌 같고, 오랜 죽마고우 같다는 느낌을 심어주는 작업의 순서라는 거야. 이해가 가나?’
‘그래서요?’
‘긴장이 풀어지고, 하려던 말과 의도는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둘 사이에는 전혀 별개의 화제가 나타나게 돼지. 이럴 때 술상무를 선택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는 거야. 바로 친밀감과 기대고 싶은 감정의 유도 라는 게지.’
‘게이 인가요? 상대방에게 기대게 한다니?’
‘자네 땀 투성이의 근육질 미식축구 선수가 경기 도중에 작고 왜소한 체격의 감독이나 코치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장면 본 적 없나? 그들이 느끼는 감정 속에는 전쟁터에 끌려 나왔다는 참담한 심정이 없을 줄 아나? 그들에게 잠시 포연의 화마를 접은 채, 담배 한 개피를 나누어 피우며, 웃어 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났다면 그런 눈물은 당연히 이해가 될 텐데…쩝쩝….’
‘이론 상으로야 그럴싸 하죠.’
‘그런가? 자네가 술상무 라면 상대방에게 무얼 보여 주고 싶나?’
‘그거야 당연히 회사의 이득을 대변해야 마땅한 거 아닌가요? 아니 제가 미쳤다고 회삿돈으로 술 쳐먹고, 분탕질 하는 이유를 무위도식의 소치로 전락시킬 위인으로 보이십니까? 자기가 처한 위치가 가장이라면, 회사의 중역이라면, 남편이라면, 보다 책임소지가 분명하면서도, 절도 있게 마무리하고 나서야 한다 이 말이죠, 제 말은요….’
국밥이 식고 있었지만 본부장님은 술만 들이키고 있었다. 저러다 그 동안 애써 왔던 프로젝트에 대해서 입도 뻥끗 못해보고 술만 디리 푸다가 올 것 같아 ,내심 불안해 지기까지 하고 있었지만 내색 할 수는 없었다.
‘회사 내에서 나를 어떻게 부르는지 자네도 다 알고 있지?’
그렇지만 그게 무엇이라고 주절댈 수도 재방송도 할 수는 없었다.
‘술상무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거기에도 있다네… 그들이 나의 프로필에 대해서 모르고 나오겠나? 아니지… 나의 프로필은 정말 회사 내에서 영양가 없기로 소문난 외인부대 에다가, 독꼬다이… 거기에 더하여 불순분자 취급까지 받고 있질 않나 말이야. 그런 내가 언제나 회장님으로부터 중요한 손님과 고객의 접대에 항시 내가 선택 되어지는 이유는 무어라고 생각하나?’
그건 나도 잘 모르는 부분 이었다. 본부장님의 지적대로 상대편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일념으로 당일 미팅에 대가리를 들이댈 인물들에 대한 사전 조사작업은 기본 나가리 였지만, 도무지 영양가 없는 인물에 대한 이 쪽의 사전 고지제에 대해서는 선뜩 할 말이 생각나질 않고 있었다.
‘오늘 보면 알 걸세…..’
알 듯 모를 듯, 수수께끼 같은 말만을 남기고 돌아서는 본부장의 쳐진 어깨가 보이고, 나는 내심 께임 끝이네 라는 자괴감이 앞섰지만 그 사실을 정작, 본인이며, 당사자인 본부장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먹은 국밥의 밥알이 다 일어설 판 이었다. 회사로 돌아와 대 회의실에서 회사를 일찍이 방문하여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ISO체제의 탄력성을 몸소 검토한 방문단은 맞춰진 1차 회의에 앞서서 자리에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회사의 중역들이 자리를 같이 했지만, 뭐 씹은 얼굴로 회의를 주도하는 본부장을 외면도 못하고, 그렇다고 호응도 못하는 표정으로, 시간만 떼우고 있었다. 나는 준비해간 자료를 이용해서 우리의 생산 가용 능력과 장기적인 파트너로서의 가능성을 역설했고, 회의에 임하는 상대방 측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회의에 임하고 있었다. 성공적인 브리핑이라고 자축하며, 거지반 5시가 되어 가자, 본부장은 회사에서 마련한 차량 편을 이용해서, 손님들을 회식 장소로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단지 접대에 나와 본부장 둘만 참석한다는 전언이 그것 이었다. 회사를 나서면서 뒷자리에 타고 있던 본부장이 운전을 하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 어째서 중역들이 똥 씹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는지 아나? 이건 우리 둘만의 오프더 레코드니까 허심탄회하게 말해도 돼.’
‘글쎄요…’
‘일종의 시기 질투지….내가 잘 나가니까 배가 아픈 그런 거 말이야….’
나는 속으로 착각과 오해 속에서 꽃피는 또라이 청춘이라고 대답을 하고 있었다. 뭘 몰라도 한참을 헤메고 있는 저 주접! 나는 대뜸, 저 다 때려 칠랍니다 라고 하는 말이 불끈불끈 솟았지만 꾸욱 참고 있었다. 나도 목구녕이 포도청 인지라…..
‘잘 오셨습니다.’
문 앞에서 왠 다소곳한 여자가 우리 일행을 맞이 했다. 방으로 들어서니 일본식 실내 장식에 호화로운 분위기가 제법 이었고, 등받이 의자 였지만 바닥은 다다미 구조에 발은 아래로 편히 뻗을 수 있도록 입식으로 디자인 된 묘한 방 이었다. 본부장이 팔을 걷어 부치고 손뼉을 두번 때리자, 무슨 요정의 식객들을 대하듯, 방문이 좌악 열리는데, 대대한 캐더링 카터에 회를 뜰 생선과 해물을 직접 싣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 주방장은 방의 구석에 위치해서 바로 싱싱한 사시미와 스시를 쓸어 올릴 준비를 했지만, 정작 방의 중앙에 놓일 식탁은 들어오고 있질 않았다. 또다시 손뼉을 두드리자, 운동장 만하게 하얀 강보에 싸인 길다란 식탁이 8명이 넘는 장정의 손에 들려 방안으로 들려왔다. 그럼 그렇지…. 식탁도 없이 밥 먹을라구? 나는 그때,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영어와 독일어, 불어, 서반아어가 뒤섞인 본부장의 말소리가 시작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도착한 구매 사절단은 유럽과 북미지구의 판매 총 책임자 들 이었는데, 본부장이 구사한 그 네 가지 언어 정도면 진짜 통역이 필요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 유창한 발음과 유려한 대화술…..모인 사람들과는 상의 명포를 재끼기 전까지 한마디도 회사 일에 관해서는 논하는 법이 없었다. 가운데 있던 본부장이 식탁의 명포를 공중으로 확 재끼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서 좇대가리가 짜그라지는 줄만 알았다. 여덟 명의 장정이 들고 들어온 식탁에는 왠 젊고 아리따운 여자가 나체로 누워 있었기 때문 이었다. 모여 있는 시퍼런 눈의 외국인들 중에는 눈을 가리는 사람도 있었고, 성호를 긋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방안을 나가지 않고 있던 여덟 명의 장정은 명포가 사라지기 무섭게, 둘러선 손님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정면에 식기와 물그릇, 앞 접시 등을 배치했다. 이어서 구섞에 있던 요리사는 기가 막히게 빠른 솜씨로 회를 썰어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 여자의 나체 위에 부위별로 색깔도 곱게 회를 올리기 시작하고, 그 요리사의 보조는 썰어 놓은 회감을 이용해서 스시를 말아 손님들이 바로 집어 먹을 수 있도록 그 여자의 발끝에서부터 목까지 가지런히 스시를 배열해 나갔다. 그 여자는 손님들의 서투른 젓가락 질로 인해 살을 쿡쿡 찌를 때마다 움찔거리며, 마치 살아있는 생선 위에 음식을 풀어 놓은 듯한 느낌으로 손님들에게 싱싱함 그 자체를 스시와 사시미를 통해 대접하고 있었다. 본부장은 유창한 각국의 말로 여자의 몸매를 젓가락으로 훑어 가면서 설명을 해 나갔다. 따스한 여체의 체온이 사시미와 스시를 살갗이 닿는 부위는 알맞을 정도로 따스하게, 윗부분은 살짝 언 채로 집어먹을 수 있는 구조는 음식의 맛을 최고로 유지시켜 주는 비결이라는 요지였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처럼 내가 얼어 버린 것은 다름 아닌, 본부장의 식견 이었다. 출신국 들의 주변을 너무도 잘 아는 것처럼 설명을 해 나가니, 상대 측은 이국 땅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거기 가 봤느냐, 그곳에서 그걸 먹어 봤느냐, 죽이더라 하면서 이바구를 맞추는데, 모든 이들이 본부장의 식견과 폭넓은 경험에 대해서, 혀를 내두르는 모습들 이었다. 모두가 설왕설래 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시범적으로 본부장이 모두에게 모범을 보였다. 한국의 전통 소주라고 소개한 술을, 누워 있는 여자의 배꼽에 붓고는, 여자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얘기 하자, 숨을 몰아 쉬면서 배를 옴쑥하게 들이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술 속에 배꼽이 잠긴 것 같은 형태로 술이 가운데로 몰리고, 본부장은 그 배꼽에 입을 맞추고 술을 홀짝 들이켰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본부장은 손님들에게 돌아가며, 그 배꼽주를 마실 수 있도록 술을 알맞게 따라 주었고, 그 여자의 꿈틀거림은 신음과 더하여 취중을 기쁘게 변화 시켰다. 술을 빨아 먹는 동안 스시와 사시미가 제대로 배열 되자, 술을 따랐던 곳에 이번에는 간장을 붓고 와사비를 풀었다. 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본부장은 시범적으로 회를 그 간장에 찍어 먹으면서 천상의 맛이라는 표정으로, 감탄을 쏟아내어 놓았다. 모두가 앞다투어 그 여자가 고개를 이리 저리 흔들면서, 간드러지는 비명과 신음을 내질러도 이제는 아랑곳 하질 않고 여러 사람이 앞 다투어 그 간장이 마를세라 회와 스시를 찍어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음식을 나체의 몸 위에 올려 놓고 있는 그 여자를 신경 쓰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세발낙지의 꿈틀거림을 마다하겠는가! 그 고소함에 빠져 허우적 대는 지경에 말이다…..몸 위의 음식이 거의 동이 나자, 좌중이 다시 한번 술렁 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본부장은 좌중을 향해 오늘의 하일라이트를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모두가 술과 음식에 거나하게 취해 있는데, 손님 숫자대로 스시를 말아 배 위에 올려 놓게 하고는 곁에서 시중을 들던 여덟 명의 장정과 요리사, 요리사 보조 양반이 인사를 하고 방을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 때 였다. 본부장이 방안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손을 들어 보였다. 손짓에 정신이 나가있는 사이, 누워 있던 여자의 곧게 뻗어있던 두 다리가 슬며시 접혀 지면서 가랭이가 양쪽으로 벌어지는 통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라고 있었다.
‘여러분, 이제부터 한국 여인의 강인한 힘과 의지가 담긴 음식의 절묘한 조화를 선물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앉아 있던 사람들을 누워서 벌려진 여자의 보지 앞으로 모두 모이게 했다. M자로 벌어진 여자의 보지는 그야말로 비경이었다. 여자가 들어올 때부터 식탁에 누워 있었기에 우리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 식탁의 구조는 묘하게도 여자의 보지 계곡과 식탁이 닿는 부분이 그릇 처럼 오목하게 들어가 있었고, 그 안에는 투명하고 끈적한 맑은 물 같은 액체가 그득하게 담겨 있었다. 아까 처럼 본부장은 그 물에 간장과 와사비를 조금 풀어 간을 보는데, 꿀 처럼 주욱 딸려 나오는 것이 바로 그 여자가 식사 도중에 꼴린 채로 뿜어낸 씹물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밀교의 교주로부터 성물을 받아 마시듯이, 본부장이 그 씹물과 와사비장이 섞인 물에 흥건히 찍어 스시를 마지막으로 입에 넣어주자, 모두들 기절할 정도로 감격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스시를 끝까지 삼키지도 않고, 그 씹물을 음미하면서 먹고 있을 즈음에, 본부장이 그 여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밖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불러 상과 여자, 식탁들을 순식간에 방에서 들고 사라지게 했다. 좌중이 웅성 대는 사이, 본부장이 갑자기 쌩뚱 맞은 표정으로 좌중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손가락 끝에 아직도 묻어 있는 끈적한 그 여자의 씹물을 쪽쪽 빨고 있을 즈음에, 비장한 표정으로 본부장이 4개국어의 언어로 마무리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제가 누구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별로 세력도 없고, 발언권도 확보하질 못한 저 같은 본부장이 여러분을 접대하게 되어 영광일 따름 이지요. 그러나, 저는 이제까지 살아 오면서 회사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저의 운명이라고 알고 있었고, 그것만이 저를 살리고, 만인을 살리는 길이라고 아직까지 굳게 믿고 있습니다. 회사에는 저처럼 쓸모 없는 인간은 이제 없습니다. 접대할 시간도 아깝다며, 모든 직원이 팔을 걷어 부치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되고, 누군가는 짊어져야 할 숙제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지요. 그게 제 몫이라고 생각하고 기쁘게 받아들여 왔고, 그것이 바로 저희 회사의 목숨 같은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방문을 기점으로 이제까지 일본 제품만이 판을 치고 시장을 파고 들었던 전례를 다시 재고해 주시기를 아울러 부탁 드립니다. 저희와 같은 굳은 신념으로, 저처럼 하찮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성심을 다해서 임하는 다른 직원들은 결코 여러분들을 실망 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 중에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아까 보신 그 여자분이 머리 쓰고 있던 것은 공군 조종사들이 쓰는 모자와 보호 고글 임을 잘 아실 테지요. 여자 분의 인격을 보호하고, 존중해 주기 위해서 얼굴에 덮어 씌워 놓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의 일원은 저를 포함해서 딸려 있는 모든 가족 조차도 합심해서 혼연일체가 되어 있지요. 이제 저희는 과감하게 외칩니다. 이제는 저희가 그 여자분이 조종사가 되어 여러분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렸듯이, 신세대 가미가제가 되어 전 세계 시장을 여러분과 함께 융단 폭격을 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도와 주십시오. 몸바쳐 일어난 사람은 저 뿐이 아닙니다. 아까 여러분께 몸바쳐 음식을 대접한 여자는…….. 바로 저의……. 과년한……. 딸 입니다.’
마지막 일성에 좌중은 할말을 잃어 버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본부장의 어깨 위에 모든 이들이 다가와 손을 얹었다. 울먹이는 그의 어깨가 그리도 숭고해 보이던지….사람들은 이런 유흥을 주기 위한 자리에 조차, 온 전력을 다해 뛰어드는 회사의 기치라면 당연히 구매선의 전환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부장에게 확약하면서, 내일 아침 본사에서 결정 조인식 마저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는 말을 달았다. 그들은 그런 단호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회사의 제품과 인원들이라면 충분히 일본을 거세시키고, 시장을 파죽지세로 초토화 시킬 수 있는 융단폭격이 가능한 롱런 파트너 쉽의 자격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차량으로 마련된 호텔로 돌아가고 나는 두 손으로 본부장의 손을 거머 쥐었다.
‘본부장님, 버릇없게 굴었던 저를 용서 하십시오. 오늘 부로 정말 다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일에 그렇게 전력투구 하고 계시는지 몰랐습니다.’
‘그래? 쫌 멋이 있었나?’
‘멋이 있다뇨? 따님께서도 그렇게 몸을 던지시면서 까지…..’
‘그건….. 그때, 그때, 달라요….허허 이 사람! 내가 미친손가? 딸내미를 저렇게 내둘르게? 돈만 주면 저런 애들 지천으로 구한다니깐 두루?’
‘아니 그럼?’
‘맞아 뻥이지. 전 구미지역을 총괄하는 영구직 이사로 승진 발령 낼 수 있도록 회장님께서 직접 내거신 프로젝트에 내가 못할 게 뭐 있나? 자네 손 떨리는 나의 수전증은 술 때문이 아니라니깐! 술을 빌미 삼아 내가 성사시킨 프로젝트가 어디 한 두 개 인줄 아남? 마누라도 수십 명 죽여 봤고, 오늘 처럼 딸년도 수태 팔아 먹었지. 그래도 정말 끝내주는 건, 어느 누구도 그게 진짜 인가 되묻는 인물이 없었다는 게야. 그 덕에 이런 위치까지 올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나도 말년에 골프나 때리면서 편하게 지내야 하질 않겠나? 물건이야 우리 회사만큼 끝내주게 만드는 곳이 또 있겠어? 이미 결정된 사항에 내가 장엄한 휘날레를 후회 없이 할 수 있도록 맛세이를 찍으면서, 아줌마 났어요 를 외쳤을 뿐이지. 그걸 갖고 그렇게 호들갑인가? 자네 이사 되려면 아직 멀었어.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질 않다니깐!’
망치가 뒤통수를 그때, 그때, 다른 각도로 좇나 후려치고 있었고, 쌩뚱 맞게도 스시가 목구녕을 통해 발라당 서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끝-
요즈음 건강식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스시를 찾는다. 점심 시간이면 의례 국물이 있는 음식을 걸지게 먹고 들어와야 먹은 것 같다고 사람들이 입을 모아도 건강이라는 관점에서 요구되는 음식의 차림표는 그 어느 하나 간과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 보였으니까. 식사를 앞두고, 동료들은 언제나 세가지 부류로 나뉘곤 했다. 첫째 부류는 골라먹기 귀찮으니 그냥 주는 대로 먹는 메뉴에 충실한, 식당의 짠밥 계통에 목숨을 거는 치들, 다른 하나는 그래도 그렇지 하면서 줄창, 발품을 팔아가며,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는 유랑파 들, 나머지 하나는 그래도 건강과 포만감, 맛이라는 세가지 합일점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절대강자를 찾아 다니는 미식가 그룹이 그랬다. 아침도 그럭저럭, 저녁도 그럭저럭인 나 같은 하숙집 신세의 바둑이들은 그나마 점심식사가 가장 큰 고충거리이자, 걸러서는 안 되는, 보양식의 의미까지 겸하고 있으니 두말할 나위도 없다. 식사 전에 순영이는 나에게 핸폰 이나 메시지를 날리면서, 오늘은 무얼 먹을 거냐, 난 무얼 먹기로 결정했다 등등 꼭 점심식사를 위해 목숨 걸고 사는 것처럼 나를 부추켜 댔지만, 나의 반응이란 것이 시큰둥 으로 일관 하다 보니, 이제는 무얼 쳐먹든 간에, 몸매 안 망가지고, 건강유지에 보탬이 될만한 음식을 골라 먹으라는 조언만을 가끔 하곤 했다. 사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을 때까지 음식이란 것을 입에 달고 살아가지만, 그 항상성과 일관적 태도로 말미암아 건강과 거리가 먼 음식을 끊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 이란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환경임에도 불구하고 물류의 짜임새가 원활하지 못했던 국내의 실정은 결과적으로 지역주의적 음식문화를 정착시켰고, 그게 풍토화 되어서 잘한다고 소문난 음식을 먹으려면 꼭 어디를 찾아 들어가야 하는 분산된 산만성을 드러냈고, 그로 인해 파급되는 음식문화의 외골수적인 성격은 다른 나라의 사람들 눈에는 독창성으로 비추어지고 있으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대개 동료들은 저마다 밖에서 하는 식사의 기준을 금액에 의존하고 있었다. 그 정도의 가격에, 그럴싸한 포만감과 실패하질 않았다는 감이 덧붙여 진다면, 그런대로 많은 점수를 주고 있었고, 그로 인해, 중독처럼 그 집을 다시 찾아가는 습관을 버리질 못했으며, 그나마 김치가 조잡했네, 반찬도 가짓수대로 돈을 받아 재끼나 등등의 하찮은 삐짐으로 인해 설사 발길을 잠시 끊었다 손 치더라도, 어디 도망가지 않고 사는 마당에, 칼로 끊어 내듯이, 단골로 설정된 식당들에 대해서 등을 돌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누구는 그럴 것이다. 먹고 살기 힘든 이 마당에, 가리고 자시고 할 여력이나 있느냐고 말이다. 그 말도 맞는 말이긴 하다. 배때기에 기름 낀 소리 작작 하라면서, 김치 하나에 밥을 먹는 것도 감사 해야 할 이 어려운 시국에 무얼 먹을까 고개를 갸우뚱 한다는 사실 자체가, 상스러운 부르주아 냄새가 풀풀 난다고 주절 댈 테니 말이다. 그런 복작지근한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어쩐 일인지 오늘 점심을 걸러 버렸다. 모두들 나를 보고, 곧 있다가 삘딩 스겄네, 그렇게 돈 모아서 무슨 보지 사 모을려고 그러시나 등등 갖은 비아냥을 떨며, 식사하러 나가는 동료들을 뒤로하고, 나는 쌓인 업무로 인해, 밥 먹는 시간조차 아까운 듯이 일에 빠져 있었다. 그 이유는 오늘 저녁에 있을 손님 접대 때문 이었다. 본부장님과 같이 배석하게 될 그 자리에서 오랜만에 포식을 할 수도 있을 거라는 예감과 동시에, 그들과 있을 회의 자료를 준비하는 것이 겹쳐져, 나의 손 끝은 부산하기 이를 데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본부장님도 자리를 뜨질 않으시고 30분 간격으로 내가 출력해 내는 회의 자료와 브리핑 내역을 한장 한장 받아서 검토하시느라 식사 시간을 자연스럽게 건너 뛰고 계셨기에, 나 또한 자리를 냉큼 비울 수 있는 처지는 더더욱 아니었다.
‘이 표현은 좀 완만하게 해야 되질 않을까?’
‘본부장님, 그거 말고도 검토하실 게 한 두 가지가 아닌데요!’
나는 오히려 본부장님을 나무라는 투로 중얼거렸다. 사내에서 조중현 본부장을 모르면 간첩이었다. 왜냐하면 공채 동기들 중에서 가장 줄을 못 타기로 소문 났고, 식사 시간에도 여지없이 간부들의 손아귀에서 u찌 맞고, 외톨박이 취급 받기 일 쑤 인 그를 가리켜, 모두들 낙하산의 말로라고 지칭해 왔으니 말이다. 벌써 그를 가리켜 상위급 간부 명퇴 영순위라고 나불대는 인간들도 있었다. 오전 시간에 본부장을 찾으려면 딱이 적당한 곳이 없었다. 물론 사내에는 없었고, 그 지긋한 연세에 어디 짱 박힐 곳이 많은 지는 몰라도, 토요일 오전에는 아예 얼굴을 볼 수도 없었고, 그나마 띄엄띄엄 나오더라도 업무와는 무관하게 회장실에 불려가 수 시간 찐빠를 먹고 나오는 것이 목격되고 있어서 그 명성은 누가 뭐래도 자자한 편이었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도 수태 많았다. 방금 얘기한 명퇴영순위를 비롯해서, 낙하산의 말로, 술상무 아제, 손떨림의 극치, 무지랭이 영감 등등 본부장을 지칭하는 별명들은 학교 시절, 학주 만큼이나 위세를 떨치며, 자자한 소문을 몰고 다녔다. 그러다 보니 그 밑에서 일을 하는 나 같은 성실한 사원들만 죽어날 판이었다. 대개의 직원들이 상사가 자신의 앞길에 거름이 되어준다고 판단 되기는커녕, 방해만 된다고 생각되어서 인지, 너도 나도 실상을 파악한 다음에는 타 부서로의 전근 신청에 잉크 마를 날이 없다고 우리 부서의 경리 아가씨는 혀를 차곤 했다. 줄줄이 사탕으로 사내의 정치 전선에서 한 발자국 이라도 뒤쳐짐이 없으려는 젊은 것들의 발뺌으로, 우리 부서는 언제나 오고자 하는 인력도 없이, 나를 비롯해서 성실하고 민하되, 줄이나 빽이 전혀 통하지 않는 농촌 출신들만이 자리를 메꾸고 있기 마련 이었다. 사실, 밑에서 있으면서도 회의를 주제하는 자리에서, 손을 덜덜 떨어가며, 애써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읽지도 않는 신문만 꼬깃꼬깃 주무르는 모습을 한 두 번, 본 것은 아니지만, 진급 이라든가, 자신의 거취 문제로 불거지는 우리 부서의 회식 시에는 어느 부서 보다도 격론과 삿대질이 많이 오가는 편이었다. 그런 본부장님 께서 식사마저 거르시고 오늘의 미팅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계시기에, 밥 생각은 애저녁에 물 건너 간 셈이 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회장님 호출에 번개 같이 본부장님을 찾아오는 데에는, 나만한 인물도 없었다. 대개 본부장은 핸폰을 사무실에 두고 발을 뺐다. 그러다 보니 언제나 돌아와서는 핸폰을 사무실에 놓고 나가서 연락할 길이 없었다는 대사가 먼저 나오고, 그걸로 얼마간은 밀어대는 통에, 언제나 본론은 헷갈리는 상황에서 주제로 튀어 오르곤 했다. 한번은 속으로 불쌍한 인간이라는 생각도 해 본 적이 있었다. 그나마 갖고 있는 그 술상무 재주로 버티고는 있다만 그것도 체력이 받쳐 줘야지, 점심도 제대로 먹질 못하고, 손만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해서 해본 생각 이었지만, 대번에 그 생각을 접고 말았다. 왜냐구? 건강에 안 좋다는, 그것도 해장술을 포켓술병에 넣어 가지고 다니면서, 홍차에 타서 마시는 모습을 목격한 다음 부터였다. 도저히 용서도 안되고, 자기밖에 모르고, 밑에 사람 생각은 좇도 해주는 것이 없는, 폐물 상관이라는 나만의 판단, 아니, 만인의 중평 때문이었다. 죽집 아니면, 해장국집, 아니면 싸우나, 아니면, 집에서 자빠져 있는 그런 상관을 어찌 믿고 결사항전 하겠는가 말이다. 그러니, 이렇게 뜬금없이, 업무로 나를, 점심까지 거르게 하면서 득달하는 모습이 살가울 리 있겠나! 하긴, 그 놈의 밥 한끼, 않 먹는다고 죽는 것은 아니지만, 기분이 그렇질 않은가 말이다.
‘이따가 통역은 어떻게 할까요? 아무래도 저녁 식사에다가 중요한 주제가 오고 가면 전문 통역 하나쯤은 필요할 것도 같은데요….’
‘중요한 사안에 다른 세력, 들이게 할 일이 뭐 있나?’
아쭈, 다른 세력?… 나는 속으로 암만해도 조직의 쓴 맛을 뵈 주든가 해야지, 제정신을 못차리는 구만 이라는 생각이 번뜻 떠올랐다. 지금 시대가 어느 땐데, 다 망가져 가는 본부 팀의 프로젝트를 가로 채려고 눈에 불을 켜겠으며, 어서 빨리 먹고 떨어지든가, 없던 걸로 해주세용, 하면서 냄새 나는 똥떵어리는 아무리 굵다고 해도 약탕관에는 못 넣겠다고 다른 부서 사람들이 버팅길 게 분명한데도 말이다. 이번에 떨어진 사안은 그 중에서도 굵직한 놈이었고, 아무리 보아도 이 껀을 중심 과제로 삼아 평소 눈의 가시인 본부장을 정치적으로 거세시키려는 내부 세력의 음모라는 생각이 조금 들기는 했다.
‘밥은 먹었나?’
‘본부장님도 안 드셨는데, 어떻게 제가….’
‘그래도 그렇지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어서 일어나게, 내가 밥 사지….’
거지반 일이 다 되어가자, 모두가 빠져나간 썰렁한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 나를 가여워 했는지는 몰라도 밥을 사시겠다며, 본부장께서 직접 행차를 하신단다. 별로 달갑지는 않았고, 내심 이따가 있을 회식이랑 접대에서, 뽄때 없이 나서서, 흉하게시리 젓가락 질이나 하지 않게 하려고, 아랫 사람 곱창을 싼 음식으로 채우려 하는 게 아닐까라는 나만의 상상을 하면서 자리를 나섰다. 아니나 다를까? 회사 에서 멀리 떨어진 해장국 집으로 가는 발걸음이 분명했다. 걸어 가시면서도, 내내 거윽 거윽 하면서 어제 먹은 술트림을 거나하게 해대는 폼이 이래도 살아야 하는 건지 싶기도 했다.
‘자네는 어째 타부서 전근 신청 안하나?’
‘네?’
내심 말해야 된다고 생각은 했지만 나는 타이밍을 놓치고 있었다.
‘그렇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자네가 이제는 우리 부서 터잡이가 다 됐네, 그렇지? 자네 신입 시절이 눈에 선한데….’
‘아니 큰 일을 앞두시고 무슨 그런 말씀을…..’
‘나도 다 알지. 왜 모르겠나? 그저 멍청하게 위에서 내려오는 술시중 업무만 하고 있다고 눈과 귀가 다 멀어 버린 건 아니야. 나도 자식, 다 키우고, 제대로 늙어가는 가장인데….’
‘그 접대 업무는 이제 구시대의 산물처럼 없앨 수는 없는 겁니까? 회사도 이제 그룹 차원으로 누가 봐도 명실공히 재계 1,2위를 다투는데, 말이죠….’
‘한국에 발 붙이고 사는 한, 자네, 접대나 향응 제공의 문화가 쉽사리 없어질 수 있다고 보나? 그렇다면 어째서 제 2, 제 3의 술상무가 나오는 지, 자네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말이야…..식당에 사람도 없네… 아주머니, 여기 국밥 둘이랑 소주 한병 주쇼…..’
얘기를 하다 말고 본부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소주를 시켰다. 본부장과 안면이 있는지, 아주머니는 다른 사람에게 내놓질 않는 생태 내장찜과 간장을 국밥을 말아오기 전에 안주로 술과 함께 내왔다.
‘본부장님, 건강도 생각하셔야죠.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술대접에 나서시면 건강은 뭐가 되겠습니까? 이제 연세도 있으신데……’
‘자네, 술대접의 기본이 뭐라고 생각하나?’
‘상대방의 기분에 잘 맞추느냐 못하느냐, 그리고, 그 사이에 중요한 주제와 자신이 캣취 해야할 관건을 적당히 비벼 넣어, 확약을 받아내는 기술, 뭐 그런 것이 아닐까요?’
‘허어, 평생을 술상무를 해서야 얻을 수 있는 철학을, 자네는 어찌 그리 해보지도 않고서 다 알고 앉았누?’
‘그거야, 뭐…..’
‘틀렸네… 그러니, 술상무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자네 한잔 들텐가? 뭐 일도 대충 했겠다…’
그러나, 나는 벌써부터 날라져 온 국밥에, 숟가락을 전시하는 것 마냥, 퍼 넣으면서 밥만 먹겠다는 시늉을 했다. 본부장은 그런 나의 의중을 알아 챘는지, 혼자 술잔을 들고, 떨리는 손을 다른 손으로 붙들어 가며 첫 잔을 어렵사리 들이켰다. 안주도 없이, 캬 하는 소리를 내며, 온 몸을 부르르 떨어대는 꼴이라니…. 이거 영락 없는 알코올 중독자랑 밥 먹는 꼴이네…. 누가 볼까 무섭구만……
‘그럼 무어가 술대접의 기본 입니까?’
‘자네 외국의 영화에서 중요한 껀수를 앞에 두고 거물들 끼리 맞대고 앉아서 항상 하는 첫 말이 뭔지 아나?’
‘지 자랑 이겠죠.’
‘아니, 상대방을 위한 배려를 먼저 표현해 주는 거지. 밥은 먹었느냐? 차나 한잔 하지 않겠느냐? 설탕이랑, 프림은 어떻게 넣어 줄까? 좋은 식당은 알고 있느냐?...... 왜 그럴까?’
‘그게 기본 입니까?’
‘아주 중요한 기본이지. 상대방에게 당신 앞에 나타난 사람은 당신의 등골을 빼먹으러 나오긴 했지만, 어쩐지 가족 같고, 삼촌 같고, 오랜 죽마고우 같다는 느낌을 심어주는 작업의 순서라는 거야. 이해가 가나?’
‘그래서요?’
‘긴장이 풀어지고, 하려던 말과 의도는 어느새 어디론가 사라지고, 둘 사이에는 전혀 별개의 화제가 나타나게 돼지. 이럴 때 술상무를 선택하게 되는 또 하나의 이유가 되는 거야. 바로 친밀감과 기대고 싶은 감정의 유도 라는 게지.’
‘게이 인가요? 상대방에게 기대게 한다니?’
‘자네 땀 투성이의 근육질 미식축구 선수가 경기 도중에 작고 왜소한 체격의 감독이나 코치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장면 본 적 없나? 그들이 느끼는 감정 속에는 전쟁터에 끌려 나왔다는 참담한 심정이 없을 줄 아나? 그들에게 잠시 포연의 화마를 접은 채, 담배 한 개피를 나누어 피우며, 웃어 줄 수 있는 상대를 만났다면 그런 눈물은 당연히 이해가 될 텐데…쩝쩝….’
‘이론 상으로야 그럴싸 하죠.’
‘그런가? 자네가 술상무 라면 상대방에게 무얼 보여 주고 싶나?’
‘그거야 당연히 회사의 이득을 대변해야 마땅한 거 아닌가요? 아니 제가 미쳤다고 회삿돈으로 술 쳐먹고, 분탕질 하는 이유를 무위도식의 소치로 전락시킬 위인으로 보이십니까? 자기가 처한 위치가 가장이라면, 회사의 중역이라면, 남편이라면, 보다 책임소지가 분명하면서도, 절도 있게 마무리하고 나서야 한다 이 말이죠, 제 말은요….’
국밥이 식고 있었지만 본부장님은 술만 들이키고 있었다. 저러다 그 동안 애써 왔던 프로젝트에 대해서 입도 뻥끗 못해보고 술만 디리 푸다가 올 것 같아 ,내심 불안해 지기까지 하고 있었지만 내색 할 수는 없었다.
‘회사 내에서 나를 어떻게 부르는지 자네도 다 알고 있지?’
그렇지만 그게 무엇이라고 주절댈 수도 재방송도 할 수는 없었다.
‘술상무의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거기에도 있다네… 그들이 나의 프로필에 대해서 모르고 나오겠나? 아니지… 나의 프로필은 정말 회사 내에서 영양가 없기로 소문난 외인부대 에다가, 독꼬다이… 거기에 더하여 불순분자 취급까지 받고 있질 않나 말이야. 그런 내가 언제나 회장님으로부터 중요한 손님과 고객의 접대에 항시 내가 선택 되어지는 이유는 무어라고 생각하나?’
그건 나도 잘 모르는 부분 이었다. 본부장님의 지적대로 상대편도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는 일념으로 당일 미팅에 대가리를 들이댈 인물들에 대한 사전 조사작업은 기본 나가리 였지만, 도무지 영양가 없는 인물에 대한 이 쪽의 사전 고지제에 대해서는 선뜩 할 말이 생각나질 않고 있었다.
‘오늘 보면 알 걸세…..’
알 듯 모를 듯, 수수께끼 같은 말만을 남기고 돌아서는 본부장의 쳐진 어깨가 보이고, 나는 내심 께임 끝이네 라는 자괴감이 앞섰지만 그 사실을 정작, 본인이며, 당사자인 본부장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에, 먹은 국밥의 밥알이 다 일어설 판 이었다. 회사로 돌아와 대 회의실에서 회사를 일찍이 방문하여 생산라인을 점검하고 ISO체제의 탄력성을 몸소 검토한 방문단은 맞춰진 1차 회의에 앞서서 자리에 먼저 와서 앉아 있었다. 회사의 중역들이 자리를 같이 했지만, 뭐 씹은 얼굴로 회의를 주도하는 본부장을 외면도 못하고, 그렇다고 호응도 못하는 표정으로, 시간만 떼우고 있었다. 나는 준비해간 자료를 이용해서 우리의 생산 가용 능력과 장기적인 파트너로서의 가능성을 역설했고, 회의에 임하는 상대방 측도, 긍정적인 모습으로 회의에 임하고 있었다. 성공적인 브리핑이라고 자축하며, 거지반 5시가 되어 가자, 본부장은 회사에서 마련한 차량 편을 이용해서, 손님들을 회식 장소로 실어 나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단지 접대에 나와 본부장 둘만 참석한다는 전언이 그것 이었다. 회사를 나서면서 뒷자리에 타고 있던 본부장이 운전을 하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자네 어째서 중역들이 똥 씹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는지 아나? 이건 우리 둘만의 오프더 레코드니까 허심탄회하게 말해도 돼.’
‘글쎄요…’
‘일종의 시기 질투지….내가 잘 나가니까 배가 아픈 그런 거 말이야….’
나는 속으로 착각과 오해 속에서 꽃피는 또라이 청춘이라고 대답을 하고 있었다. 뭘 몰라도 한참을 헤메고 있는 저 주접! 나는 대뜸, 저 다 때려 칠랍니다 라고 하는 말이 불끈불끈 솟았지만 꾸욱 참고 있었다. 나도 목구녕이 포도청 인지라…..
‘잘 오셨습니다.’
문 앞에서 왠 다소곳한 여자가 우리 일행을 맞이 했다. 방으로 들어서니 일본식 실내 장식에 호화로운 분위기가 제법 이었고, 등받이 의자 였지만 바닥은 다다미 구조에 발은 아래로 편히 뻗을 수 있도록 입식으로 디자인 된 묘한 방 이었다. 본부장이 팔을 걷어 부치고 손뼉을 두번 때리자, 무슨 요정의 식객들을 대하듯, 방문이 좌악 열리는데, 대대한 캐더링 카터에 회를 뜰 생선과 해물을 직접 싣고 오는 것이 보였다. 그 주방장은 방의 구석에 위치해서 바로 싱싱한 사시미와 스시를 쓸어 올릴 준비를 했지만, 정작 방의 중앙에 놓일 식탁은 들어오고 있질 않았다. 또다시 손뼉을 두드리자, 운동장 만하게 하얀 강보에 싸인 길다란 식탁이 8명이 넘는 장정의 손에 들려 방안으로 들려왔다. 그럼 그렇지…. 식탁도 없이 밥 먹을라구? 나는 그때, 내 두 귀를 의심했다. 영어와 독일어, 불어, 서반아어가 뒤섞인 본부장의 말소리가 시작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번에 도착한 구매 사절단은 유럽과 북미지구의 판매 총 책임자 들 이었는데, 본부장이 구사한 그 네 가지 언어 정도면 진짜 통역이 필요 없는 지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그 유창한 발음과 유려한 대화술…..모인 사람들과는 상의 명포를 재끼기 전까지 한마디도 회사 일에 관해서는 논하는 법이 없었다. 가운데 있던 본부장이 식탁의 명포를 공중으로 확 재끼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서 좇대가리가 짜그라지는 줄만 알았다. 여덟 명의 장정이 들고 들어온 식탁에는 왠 젊고 아리따운 여자가 나체로 누워 있었기 때문 이었다. 모여 있는 시퍼런 눈의 외국인들 중에는 눈을 가리는 사람도 있었고, 성호를 긋는 사람도 있었다. 아직 방안을 나가지 않고 있던 여덟 명의 장정은 명포가 사라지기 무섭게, 둘러선 손님들이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정면에 식기와 물그릇, 앞 접시 등을 배치했다. 이어서 구섞에 있던 요리사는 기가 막히게 빠른 솜씨로 회를 썰어 천장을 보고 누워 있는 여자의 나체 위에 부위별로 색깔도 곱게 회를 올리기 시작하고, 그 요리사의 보조는 썰어 놓은 회감을 이용해서 스시를 말아 손님들이 바로 집어 먹을 수 있도록 그 여자의 발끝에서부터 목까지 가지런히 스시를 배열해 나갔다. 그 여자는 손님들의 서투른 젓가락 질로 인해 살을 쿡쿡 찌를 때마다 움찔거리며, 마치 살아있는 생선 위에 음식을 풀어 놓은 듯한 느낌으로 손님들에게 싱싱함 그 자체를 스시와 사시미를 통해 대접하고 있었다. 본부장은 유창한 각국의 말로 여자의 몸매를 젓가락으로 훑어 가면서 설명을 해 나갔다. 따스한 여체의 체온이 사시미와 스시를 살갗이 닿는 부위는 알맞을 정도로 따스하게, 윗부분은 살짝 언 채로 집어먹을 수 있는 구조는 음식의 맛을 최고로 유지시켜 주는 비결이라는 요지였다. 꿔다 놓은 보릿자루 처럼 내가 얼어 버린 것은 다름 아닌, 본부장의 식견 이었다. 출신국 들의 주변을 너무도 잘 아는 것처럼 설명을 해 나가니, 상대 측은 이국 땅에서 오랜 친구를 만난 것처럼, 거기 가 봤느냐, 그곳에서 그걸 먹어 봤느냐, 죽이더라 하면서 이바구를 맞추는데, 모든 이들이 본부장의 식견과 폭넓은 경험에 대해서, 혀를 내두르는 모습들 이었다. 모두가 설왕설래 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이, 시범적으로 본부장이 모두에게 모범을 보였다. 한국의 전통 소주라고 소개한 술을, 누워 있는 여자의 배꼽에 붓고는, 여자의 귀에다 대고 뭐라고 얘기 하자, 숨을 몰아 쉬면서 배를 옴쑥하게 들이 내리는 것이었다. 그러자, 술 속에 배꼽이 잠긴 것 같은 형태로 술이 가운데로 몰리고, 본부장은 그 배꼽에 입을 맞추고 술을 홀짝 들이켰다.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본부장은 손님들에게 돌아가며, 그 배꼽주를 마실 수 있도록 술을 알맞게 따라 주었고, 그 여자의 꿈틀거림은 신음과 더하여 취중을 기쁘게 변화 시켰다. 술을 빨아 먹는 동안 스시와 사시미가 제대로 배열 되자, 술을 따랐던 곳에 이번에는 간장을 붓고 와사비를 풀었다. 다른 사람들은 영문을 몰랐지만, 본부장은 시범적으로 회를 그 간장에 찍어 먹으면서 천상의 맛이라는 표정으로, 감탄을 쏟아내어 놓았다. 모두가 앞다투어 그 여자가 고개를 이리 저리 흔들면서, 간드러지는 비명과 신음을 내질러도 이제는 아랑곳 하질 않고 여러 사람이 앞 다투어 그 간장이 마를세라 회와 스시를 찍어 먹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제 음식을 나체의 몸 위에 올려 놓고 있는 그 여자를 신경 쓰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누가 세발낙지의 꿈틀거림을 마다하겠는가! 그 고소함에 빠져 허우적 대는 지경에 말이다…..몸 위의 음식이 거의 동이 나자, 좌중이 다시 한번 술렁 거렸다. 자리에서 일어난 본부장은 좌중을 향해 오늘의 하일라이트를 대접하겠다고 말했다. 모두가 술과 음식에 거나하게 취해 있는데, 손님 숫자대로 스시를 말아 배 위에 올려 놓게 하고는 곁에서 시중을 들던 여덟 명의 장정과 요리사, 요리사 보조 양반이 인사를 하고 방을 빠져 나가는 것이었다. 그 때 였다. 본부장이 방안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손을 들어 보였다. 손짓에 정신이 나가있는 사이, 누워 있던 여자의 곧게 뻗어있던 두 다리가 슬며시 접혀 지면서 가랭이가 양쪽으로 벌어지는 통에 사람들은 다시 한번 놀라고 있었다.
‘여러분, 이제부터 한국 여인의 강인한 힘과 의지가 담긴 음식의 절묘한 조화를 선물 하겠습니다.’
그리고는 앉아 있던 사람들을 누워서 벌려진 여자의 보지 앞으로 모두 모이게 했다. M자로 벌어진 여자의 보지는 그야말로 비경이었다. 여자가 들어올 때부터 식탁에 누워 있었기에 우리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 식탁의 구조는 묘하게도 여자의 보지 계곡과 식탁이 닿는 부분이 그릇 처럼 오목하게 들어가 있었고, 그 안에는 투명하고 끈적한 맑은 물 같은 액체가 그득하게 담겨 있었다. 아까 처럼 본부장은 그 물에 간장과 와사비를 조금 풀어 간을 보는데, 꿀 처럼 주욱 딸려 나오는 것이 바로 그 여자가 식사 도중에 꼴린 채로 뿜어낸 씹물이 분명해 보였다.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마다 밀교의 교주로부터 성물을 받아 마시듯이, 본부장이 그 씹물과 와사비장이 섞인 물에 흥건히 찍어 스시를 마지막으로 입에 넣어주자, 모두들 기절할 정도로 감격하는 것이었다. 모두가 스시를 끝까지 삼키지도 않고, 그 씹물을 음미하면서 먹고 있을 즈음에, 본부장이 그 여자를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는 밖에 대기하고 있던 사람들을 불러 상과 여자, 식탁들을 순식간에 방에서 들고 사라지게 했다. 좌중이 웅성 대는 사이, 본부장이 갑자기 쌩뚱 맞은 표정으로 좌중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사람들이 영문을 몰라 손가락 끝에 아직도 묻어 있는 끈적한 그 여자의 씹물을 쪽쪽 빨고 있을 즈음에, 비장한 표정으로 본부장이 4개국어의 언어로 마무리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여러분은 제가 누구인지 잘 아실 것입니다. 별로 세력도 없고, 발언권도 확보하질 못한 저 같은 본부장이 여러분을 접대하게 되어 영광일 따름 이지요. 그러나, 저는 이제까지 살아 오면서 회사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것이 저의 운명이라고 알고 있었고, 그것만이 저를 살리고, 만인을 살리는 길이라고 아직까지 굳게 믿고 있습니다. 회사에는 저처럼 쓸모 없는 인간은 이제 없습니다. 접대할 시간도 아깝다며, 모든 직원이 팔을 걷어 부치고 일을 하고 있기 때문 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해야 되고, 누군가는 짊어져야 할 숙제도 반드시 있게 마련이지요. 그게 제 몫이라고 생각하고 기쁘게 받아들여 왔고, 그것이 바로 저희 회사의 목숨 같은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이번 방문을 기점으로 이제까지 일본 제품만이 판을 치고 시장을 파고 들었던 전례를 다시 재고해 주시기를 아울러 부탁 드립니다. 저희와 같은 굳은 신념으로, 저처럼 하찮은 일이라고 할지라도, 성심을 다해서 임하는 다른 직원들은 결코 여러분들을 실망 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나라의 역사 중에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시절이 있었지요. 아까 보신 그 여자분이 머리 쓰고 있던 것은 공군 조종사들이 쓰는 모자와 보호 고글 임을 잘 아실 테지요. 여자 분의 인격을 보호하고, 존중해 주기 위해서 얼굴에 덮어 씌워 놓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회사의 일원은 저를 포함해서 딸려 있는 모든 가족 조차도 합심해서 혼연일체가 되어 있지요. 이제 저희는 과감하게 외칩니다. 이제는 저희가 그 여자분이 조종사가 되어 여러분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렸듯이, 신세대 가미가제가 되어 전 세계 시장을 여러분과 함께 융단 폭격을 하고 싶다고 말입니다. 도와 주십시오. 몸바쳐 일어난 사람은 저 뿐이 아닙니다. 아까 여러분께 몸바쳐 음식을 대접한 여자는…….. 바로 저의……. 과년한……. 딸 입니다.’
마지막 일성에 좌중은 할말을 잃어 버렸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본부장의 어깨 위에 모든 이들이 다가와 손을 얹었다. 울먹이는 그의 어깨가 그리도 숭고해 보이던지….사람들은 이런 유흥을 주기 위한 자리에 조차, 온 전력을 다해 뛰어드는 회사의 기치라면 당연히 구매선의 전환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본부장에게 확약하면서, 내일 아침 본사에서 결정 조인식 마저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달라는 말을 달았다. 그들은 그런 단호한 정신력으로 무장한 회사의 제품과 인원들이라면 충분히 일본을 거세시키고, 시장을 파죽지세로 초토화 시킬 수 있는 융단폭격이 가능한 롱런 파트너 쉽의 자격을 갖고 있다고 판단한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차량으로 마련된 호텔로 돌아가고 나는 두 손으로 본부장의 손을 거머 쥐었다.
‘본부장님, 버릇없게 굴었던 저를 용서 하십시오. 오늘 부로 정말 다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일에 그렇게 전력투구 하고 계시는지 몰랐습니다.’
‘그래? 쫌 멋이 있었나?’
‘멋이 있다뇨? 따님께서도 그렇게 몸을 던지시면서 까지…..’
‘그건….. 그때, 그때, 달라요….허허 이 사람! 내가 미친손가? 딸내미를 저렇게 내둘르게? 돈만 주면 저런 애들 지천으로 구한다니깐 두루?’
‘아니 그럼?’
‘맞아 뻥이지. 전 구미지역을 총괄하는 영구직 이사로 승진 발령 낼 수 있도록 회장님께서 직접 내거신 프로젝트에 내가 못할 게 뭐 있나? 자네 손 떨리는 나의 수전증은 술 때문이 아니라니깐! 술을 빌미 삼아 내가 성사시킨 프로젝트가 어디 한 두 개 인줄 아남? 마누라도 수십 명 죽여 봤고, 오늘 처럼 딸년도 수태 팔아 먹었지. 그래도 정말 끝내주는 건, 어느 누구도 그게 진짜 인가 되묻는 인물이 없었다는 게야. 그 덕에 이런 위치까지 올 수 있었는지는 몰라도….나도 말년에 골프나 때리면서 편하게 지내야 하질 않겠나? 물건이야 우리 회사만큼 끝내주게 만드는 곳이 또 있겠어? 이미 결정된 사항에 내가 장엄한 휘날레를 후회 없이 할 수 있도록 맛세이를 찍으면서, 아줌마 났어요 를 외쳤을 뿐이지. 그걸 갖고 그렇게 호들갑인가? 자네 이사 되려면 아직 멀었어. 세상이 그렇게 호락호락 하질 않다니깐!’
망치가 뒤통수를 그때, 그때, 다른 각도로 좇나 후려치고 있었고, 쌩뚱 맞게도 스시가 목구녕을 통해 발라당 서는 게 느껴지고 있었다.
-끝-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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