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을 것만 같은, 빛이라고는 한줄기조차도 비치지 않는 어둠.
오로지 검은 것만이 존재하는 세계가 아닌가 싶은 곳에, 그녀가 있었다.
최강희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그녀의 마음 속, 심층계의 끝자락, 가장 절망적인 나락에, 그녀는 그렇게 누워 있었다.
그녀의 몸에는 아무것도 걸쳐져 있지 않았다. 태어났을때의 모습, 순수의 모습으로, 그녀 자신, 본연의 모습 그 자체로, 그녀는 그렇게 그곳에 있었다.
강희는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에는 아무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자신은, 얼굴에 표정을 띄운다는 것조차, 아무 의미 없는 일처럼 느껴진달까. 아니, 그런 행동 자체를 하는것이 힘든 상황이라고 봐야 할것이다.
강희는 생각한다. 몸이 납덩이처럼 무겁다고. 이 어둠이, 자신을 끝없이 추락시키고 있다고. 자신은 결코 거기서 벗어날수 없다고...
그렇게, 어둠에 사로잡힌, 검은 공동(空洞) 위에 몸이 내맡겨져 있는 그녀의 심층계에, 한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쿠아아
물. 물소리. 힘찬 물소리가, 그녀의 눈을 슬며시 떠지게 하고, 그녀의 귓전이 울릴 정도로 짓쳐들어오기 시작했다.
콰콰콰-
세차다는 표현이 가볍게 들릴 만큼, 그 물은, 엄청난 기세를 담고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거대함, 장중함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그것은 무서운 속도로, 욱일승천하는듯한 기세로 자신의 입지를 넓히고 있었다.
순식간에 나타났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속도로 불어난 그것은, 순식간에 그녀의 나신을 받치고, 물 위에 둥둥 떠있게 하였다. 그리고, 위에는 오로지 검은 것만이, 아래에는 단지 시리도록 푸르러 보이는, 바다를 연상하게 할만큼 넓은 물만이 존재하게끔 하였다.
바르르....
".....하아악........"
몸이 바들거릴정도로 차갑디 차가운 물이 자신의 몸을 띄워 올리자, 그녀는 입에서 한기를 내뿜었다.
후우...
입에서 냉기가 나오는게 아닌가 싶은 숨을 힘들게 내뿜으면서 그녀는 고통스러워했다.
"..아윽...."
강희는 추위때문에 몸부림이 쳐질것 같은 심정이었지만, 자신의 몸은 꼼짝도 하지 못한다. 어찌된 일인지, 이 차가운 물이 얼음이라도 된 양, 그녀의 팔을, 다리를 붙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는 듯하다. 제지하는 듯하다. 구속하고 있는 듯하다.
그녀는 계속 추위에 몸을 떨어대면서 고통에 찬 신음성을 흘렸다. 그때....
"생각보다 금방 만나게 되었구나. 바보 괴력녀"
강희는 눈을 감고 속으로 생각했다.
"자아의 이성...."
그녀는 입을 열었다.
"..자아의 이성...그렇지?....너지?"
목소리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더니 다시 말을 걸어왔다.
"맞아. 나야. 이런 곳에서 바보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길래, 놀리려고 찾아왔지"
강희는 다시 몸을 부르르 떨면서 힘겹게 말했다.
"..어떻게...여길 알고....."
자아의 이성은 흥 하고 강희를 비웃어줬다.
"멍청하긴...난 너의 심층에 있는 존재. 니가 마음 속에 웅크리고 있으면, 어디에 있다고 해도 난 바로 널 만날수 있어. 이런 상태일 때의 너를 찾는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지. 설령 경계식에 들었다 해도, 난 얼마든지 너와 대면할수 있어. 이 머저리같은 여자야~"
"....그....그렇다면 과거엔 왜...."
과거의 경계식때를 회상하면서 강희는 질문을 던졌다. 당시 그녀는 경계식에 있을때 오로지 그녀 혼자만이 존재했던 것이다.
자아의 이성은 얼른 대답해줬다.
"아 그건 이야기가 틀리지. 그때만 해도 너에게는 M 성향이 없었으니까 말이야. 난 아직 존재하지도 않았을 시기이니까. 그러니 당연히 그때는 너 혼자였었을 수밖에"
자아의 이성은 강희에게 Bondage와 Tickling이라는 성향이 내재될 당시에 생성되었던 M속성의 집결체 였으니 과거의 경계식때는 존재치 않았던 것이다.
강희는 금새 이해하고는 고개를 끄덕인 후에 다시 힘겹게 말을 이었다.
"...돌아가줘...지금은 누구와도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아....너라고 해도...."
자아의 이성은 그녀의 말을 듣더니 킥킥 하고 웃은 후 그녀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흥! 멍청한! 역시 내 생각대로 넌 바보야. 겁쟁이일 뿐이야. 잘 들어 최강희. 난 너와 헤어진 후에, 니가 어떻게 하나 쭈욱 지켜보았어. 니가 경계식에 드는 그 순간까지 말이야.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넌 정말 한심하고 형편없는 여자애라는 거야. 그게 내 감상이야"
"..무..무슨 소리야...."
강희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때 갑자기...
콰드득!!
"!! 아하악!"
강희는 거친 숨소리를 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무서울정도로 심한 고통이 자신을 엄습했기에..
뚜드득 뚜득
"아학!! 하으윽...!!"
강희는 괴로운 신음성을 흘리면서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그 고통에서 벗어난다는건 불가한 일이었다.
강희는 너무나 강한 고통에 거의 제정신이 아닌 상태여서 상황을 잘 인지할수는 없었지만.....그녀는 결박되어 있었다. 묶여 있었다.
그녀의 몸을 받치고 있던, 깊이를 짐작하기가 힘들정도로 새파란 물이, 갑자기 결빙되더니 새하얀 얼음으로 화한 것이다.
그 얼음들이, 원형의 모양을 이루고 창처럼 길쭉해져, 기둥식의 모양을 취하더니 다섯개가 수직으로 솟구쳐 올랐다.
다섯개의 얼음기둥은 각각, 강희의 등허리와, 팔다리에 해당하는 사지를 띄워 올렸다. 그렇게 그녀를 수면에서 몇미터정도 띄워 올리더니 어느 한 점에 안착했다.
강희의 사지를 띄워올린 얼음기둥들은, 그녀의 손목과 발목을 감싸더니 그 모습인 상태에서 얼어붙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희의 등허리를 짓쳐올렸던 얼음기둥은, 사지를 결박한 기둥들보다 좀더 길게 자라나서, 그녀의 등허리를 무섭게 압박해 들어갔던 것이다.
마치 그녀의 허리가 활대인양, 역으로 꺾어들어가게 할 셈인지, 거칠게 그녀의 배후를 눌러대고 있었따.
강희의 무서운 고통은 거기에서 기인했던 것이다. 몸을 감싸고 있는 얼음들에서 발산되는 한기때문에도 그러했고.
쿠드득 쿠득
"아악!! 꺄아악!! 하으윽!!"
등허리를 밀어대는 기둥의 힘에 의해 강희는 괴로운 소리를 계속 내질렀다.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아의 이성이었다.
"킥킥. 어때? 고통스럽지? 기분 좋지 않니? 너의 성향은 M이잖아? 이 피학증녀!!"
"꺄아아!! 아학!!"
강희의 고통에 찬 목소리가 듣기 좋은지 자아의 이성은 룰루랄라 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강희가 비명을 지르건 말건.
"여왕하고 박사한테 그리 말했던가? 너의 몸은 몰라도 의지는 꺾을수 없다고? 쿡쿡...멍청하구나 너 정말. 넌 니가 되게 잘난 여자앤줄 아나본데...글쎄다? 내가 보기엔 넌 어중간한 애야. 정말. 니가 뭐가 그리 잘났니? 응? 이 바보같은 여자야. 한심한 계집애. 긍지? 자존심 ? 웃기지 마...넌 아무것도 아냐.
넌 그들에게서 너의 자존심을 지킨 게 아냐. 너의 의지를 각인시킨게 아냐. 넌 다만, 도망쳤을 뿐이야. 맞서기 싫어서. 무서워서 말이야. 나한테 그랬지? 쾌락이 아무리 좋아도, 지키고 싶은 친구가 있다고. 같이 숨쉬고 싶은 이들이 있다고. 그러면서 나를 설득하려 했지. 하지만...결과는 어떻지? 넌 또 도망친거야. 또 변명한거야.
지금도 봐. 한유정을 구해내겠다고 한 그 결심, 그 의지. 다 어디로 갔니? 내 눈엔 그런게 전혀 보이지 않는걸? 니 스스로 말했잖아. 여왕한테. 기억 안난다곤 못하겠지? 그 애를 구할 상황도 못되고, 다 힘들고 때려치고 싶댔잖아? 쉬고 싶다고 그랬잖아? 기피했잖아? 너의 의무를 말이야. 안 그래?!!!"
자아의 이성은 말을 마치면서 확 목소리를 높였고 강희의 등허리를 무섭게 압박했다.
콰드득 카드득!!
"!! 아!! 아아아악~~!!"
강희의 눈에, 무서운 고통으로 인해 ,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강희는 계속 꺅꺅대었다.
자아의 이성은 그런 그녀를, 몸서리치는 강희의 육체를 바라보는듯하다가 말했다.
"책임감도 없으면서, 그런 말을 나한테 왜 했지? 넌.....넌 아무것도 아냐....한심한 여자애일 뿐이야.. 뭐 좋아...어쨌건....나는 M 성향. 니가 만들어낸 쾌락의 집결체야. 이제부터 내가...너의 소원대로 해주지. 지금부턴 내가...최강희, 너를 구속해주겠어. 마음껏 괴롭혀주지. 킥킥...."
자아의 이성은 말을 마친 후에 일단 강희의 등을 압박하던 얼음기둥의 움직임을 멈췄다.
"케헥!! 콜록!! 아...하악!!"
강희는 부르르 떨면서 거친 숨을 연신 몰아쉬었다. 숨을 돌리기에도 급한 듯했다. 그런 상태의 그녀에게, 들으라는 듯이 자아의 이성이 말했다.
"경계식에 든 이상...너와 만날수 있는건 어차피 이제 나뿐이야.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턴, 내가 너를...고문해주겠어. 유린해주겠어. 이렇게....."
수면의 모양이 다시 바뀐다. 물줄기가 생성되어 떠오르고, 얼음의 결정들이 솟아오른다.
"!!"
강희는 당황해서 사방을 살폈다. 그리고 그녀는 보았다. 송곳처럼 뾰족하고, 날카로운 얼음들을, 일직선으로 찔러들어오는 물줄기들을.
촤아아~~
쉬시식!!
강희의 온 몸에, 순식간에 얼음 송곳이 달라붙었다. 그것들은 강희의 목을, 턱 아래를, 겨드랑이를, 유두와 그 주변을,옆구리를, 팔꿈치를...상반신을 무섭게 긁어대듯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로지 일직선으로 강하게 쏘아지는 물줄기들은, 그녀의 종아리에, 허벅지에, 발등에, 발가락 사이에, 발바닥의 온 표면에 자기 몸통을 부딪치듯이 쏘아져 들어왔다.
강희는 그것들에 의해 몸이 강타당하는 순간,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아!! 아아아악!! 꺄하하하하하하하하~~~~~~~!!! 아아아하하하하하~~~~!! 으꺄아아아아악!!!!! 아흐흐흐흐흐흐하하하하~~~~!!!!"
부르르..
강희는 온 몸을 주체할수 없는 듯이 바들바들 움직여댔으나, 소용없었다.
자아의 이성은 키득댔다.
"이곳은 심층계. 너의 완력은 통하지 않아. 여기야 말로, 진정 내가 여왕이라 할만한 장소에 적합하지. 축하해. 이제부턴 내가 너를 즐겁게 해줄께~ 강희야. 후후~"
촤자자작~!!
바각 바가가
간질 간질 간질
"아하하하~~!! 꺄아아악~~!!! 시!! 싫어어하하하하하~~~~~~~~~!!아하하하하하하하하~~!!!!으꺄아아아아하~~~"
강희의 웃음소리를 즐겁게 들으면서 자아의 이성은 즐거운 듯이 말했다.
"난 너 자신이야. 난 니가 어디를 가장 간지러워하는지, 가장 예민한 곳은 어디인지, 어떻게 간지럽혀주면 더 효과적인지를 모두 다 알지. 나야말로 널 즐겁게 해주는 데에 있어선 가장 적합할 거야. 완벽한 구속도 안겨 줄수 있고 말야. 킥킥....
그거 아니? 사우전드...넌 사우전드에 누워 있으면서, 너 자신은 부정하는지 몰라도, 그것에 매료되어 있었다는 걸. 넌 그녀석의 차가움에 반해 있었어. 매료되어 있었지. 후후. 그래서 내가 지금 이렇게, 똑같은 상황을 다시 만들어주려 하는거야. 어때? 기분좋지? 시원하지? 응? 킥킥"
"아!! 아냐아하하하하~~!!! 거짓말이야아하하하하하하하하~~~~~꺄아아아악~~!!"
강희는 부정하려 했지만 도저히 말을 할 분위기가 아니었다.
부들부들
꼼지락 꼼지락
부드러운 발바닥의 표면 전체에 세차게 뿌려지는 가는 실선같은 물줄기들, 그것들은 강희의 발바닥 표면에 점이 찍힌게 아닐까 싶을정도로 강한 수력(물의 힘)으로 그녀의 압점을 자극해대고 있었다.
그때문에 강희는 미친듯이 발가락을 꼼지락댔다.
"아학!! 꺄흐흐흐~!! 아아아아하하하하~~!!"
강희가 발가락을 놀리는 속도와 움직임의 빈도가 강해지자 자아의 이성은 흠..하더니 배시시 웃는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 맞다!! 그러고보니 넌 손가락이랑 발가락까지 묶여야 완벽한 구속으로 인정하지? 미안해. 대접이 소홀했네. 명색이 너의 성향인데 취향 하나도 못 맞춰주고 말야. 잠시만 기다려. 헤헤~"
자아의 이성은 장난스런 웃음을 짓더니 다시 수면에서 실뱀같이 가는 물줄기들을 만들어 순식간에 강희의 손가락이랑 발가락을 죄다 묶어버렸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발가락을 좌우로 팽팽하게 당겨서 가락들의 사이틈을 넓히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고 나서 생긴 틈들의 공간을, 얼음송곳으로 긁게 하고 물줄기가 뿌려지게 했다.
바가각 바각
촤자자자!!
움찔
"아!! 꺄아악!! 꺄하하하하하하~~!! 아으으윽!! 으꺄아하하하하하하하~~~~~~~~!!"
강희는 다시 미친듯이 웃음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강희의 몸부림을 어딘가에서 보고 있는듯이, 낭랑한 웃음소리를 까르르 내는 자아의 이성.
그때, 강희의 몸이 구속되어 떠올라 있는 곳을 중점으로, 지름이 수십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얼음창살들이 생겨났다.
촤자작
콰드드
그것들은 순식간에 결빙되고 퍼지면서, 수직으로, 수평으로 뻗쳐 비죽비죽 솟았다. 그리고....순식간에 하나의 거대한 Cage(우리) 를 만들어냈다.
강희는 그 거대한 얼음 감옥 안에서 몸서리치도록 신음하고 비명을 지르면서 괴로움에 떨어대고 있었다.
"아하하하하하하하~~!! 꺄하하하하하하하하악~~!!"
강희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괴로움의 눈물이. 고통의 눈물이.
그때 자아의 이성이 황홀한 기분인듯이 말했다.
"그래...이런 맛이야....더 괴로워 해. 더 간지러워 해. 더 고통스러워 해. 더욱더!! 마음껏!! 미치도록!! .....그리고...그 안에 내재되어 있는....즐거움의 쾌락을....맛봐....후후~"
"아흐흐흑!! 아흐흐흐~~~!! 싫어어하하하하하하~~~~"
자아의 이성은 반항하려는 듯한 강희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비웃었다.
"소용없어. 앞으로 너는...이 심층계 마저 닫히는, 너의 의식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오로지 나하고만, 오로지 이곳에서만 지내야 할테니까. 후후. 걱정마. 너의 숨이 멎기 전까지는 기분좋게 해줄테니까.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라 그런지, 전신이 급소이군. 좀만 더 있다가 그곳도 자극해줄께 킥킥~"
"아으흑!!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강희는 찢어지듯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그녀를 다시 한번 조소하듯이, 아하하~ 하면서 자아의 이성의 웃음소리가 퍼져올랐다.
그 거대한, 어둡고 차가운 공간에서, 강희의 비명을 들어줄 이는, 오로지 그녀뿐이었다. 비명소리만이....웃음소리만이....아스라히 사방을 메우듯이 연신 울려퍼졌다....
<여왕의 굴복>
".....어때요?!! 어떻냐구요?!!"
"....보면 모르겠소?!! 낸들 어쩌란 말이오?! "
이마에 땀방울을 연신 맺어가면서, 강희의 몸에 주사기를 꽂으려 애쓰는 닥터. 그런 그를 보면서 계속 어떻냐고 묻기만 반복하는 여왕 진설영. 그런 그 둘과, 죽은듯이 누워 있는 강희의 얼굴을 번갈아보면서 안절부절못해대는 가연과 선민.
진설영은 다시 악을 썼다.
"빨리!! 빨리 주사기를 꽂아요!! 그래서 약물을 투여해보란 말이에요!! 각성제든, 뭐든!!! 이 애가 눈을 뜨게~~!!"
여왕의 외침을 들은 닥터는 다시 한번 잘 해보려 했던 주사기 바늘이, 강희의 몸에 찔러들어가지지 못하고 휘어져버려 못쓰게 되자 인상을 팍 찡그리면서 설영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도 어지간히 답답한 모양이었다.
"아니!! 보고도 모르겠소? 바늘이 안들어가는걸 나보고 어쩌란 말입니까!! 그놈의 경계식인지 뭔지에 들고부터 나서!! 이 아이의 피부표면이 강철같이 굳어버렸다는건 설영씨 당신도 만져보고 느꼈잖소!! 약물을 투여할 방법이 없는데 나보고 도대체 어떻게 하라고!!"
진설영에게 고함을 칠정도면 닥터도 상당히 열이 뻗친 모양이다. 설영은 입술을 꽈악 깨물다 다시 말했다.
"주사기가 안되면 호흡기관을 써보자구요!! 거의 멎었지만, 숨을 쉬기는 쉬잖아요!! 코나 입을 통해서 액체성!! 아니면 기체성 약물을 써보면 될거 아니에요~!!"
하지만 닥터는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자가호흡을 하기는 하니까 코마상태보다 좀더 나아보일진 몰라도, 이정도면 거의 죽은것으로 봐도 이상할게 없소!! 숨을 쉬기는 쉬지만, 이렇게 미약해서야!! 호흡기관을 통해봤자, 기체성이든 액체성이든 효과는 거의 못볼거요!! 게다가 상황을 보아하니 식도로 직접 투여한다 해도 안먹힐듯하군. 나도 믿기는 싫지만!! 정말로...그 경계식이란걸 발동한 모양이오!!"
설영은 재차 악을 썼다.
"그래서 어쨌단 거에요~!! 그런 이야기를 지금 와서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죠?!! 빨리 이 아이를 다시 눈뜨게 할 방법을 모색하잔 말이에요~~~!! "
박사도 결국 언성을 더 크게 올렸다.
"난들 안 답답한줄 아시오?!! 이런 제길!! 설마 이렇게 되다니~~!!"
그가 거칠게 화장대를 후려치자, 여왕도 흠칫 했고, 가연, 선민은 움찔 하고 놀라면서 오들오들 떨었다.
잠시동안 후욱 후욱 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던 박사는, 자신이 생각해도 여자들 앞에서 좀 심했다 싶은지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미안하오....나도 모르게 그만...."
설영은 인상을 찡그린채 닥터 솔을 보다가, 고개를 확 돌리더니 방 밖으로 나갔다. 박사는 고개를 숙인채 바닥만을 쳐다보았다.
가연과 선민은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매달고 있다가, 아무 표정 없이, 죽은듯 잠들어 있는 강희의 얼굴만을 바라봤다.
"강희 언니..."
"언니..."
세 사람은 그렇게 우두커니... 한동안 서 있기만 했다.
xx고등학교. 오후 수업 시작 전. 점심 시간
두 남학생과 한 여학생이, 학교 옥상에서 만남을 가지고 있었다. 정안과 한웅, 그리고 유정이었다.
"왜 자꾸 불러내는거니? 또 강희 때문이야?"
자신들쪽은 쳐다보지도 않은채 시선조차 딴곳에 주면서 말하는 유정의 어투를 듣던 정안은, 순간 눈썹이 꿈틀하지 않을수 없었다.
"왜 자꾸...또 강희 누나..때문?"
정안은 순간, 상대가 유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분노가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정안은 이빨을 꽉 물고 있다가 너무나 분노해서인지 한껏 낮아진 목소리로 물었다.
"....강희 누나는...유정이 누나하고...가장 친한 친구사이 아닌가요?"
"...근데 왜?"
유정이 이번엔 자신을 쳐다보면서 묻는다. 여전히 어딘가 싸늘해 보이는, 인형같은 표정.
정안의 입가가 씰룩여졌다. 마침내 그의 목소리가 커졌다.
"....오늘이 금요일이에요....5일째에요...5일째라구요.....무려 5일 동안!! 5일씩이나!! 강희 누나가 학교에 등교를 안 했어요~!! 근데 유정이 누나는!! 그 태도는 뭐에요?!! 강희 누나가 걱정도 안되요?!! 예?~!!"
"..............."
말없이 자신을 쳐다보기만 하는 유정때문에 더 화가 나는지 정안은 길길이 날뛰었다.
"오히려 누나가 더 걱정해야 하는거 아닌가요?~!! 지금 이런 상황이면?~!!"
유정에게 점차 악을 쓰는 듯한 정안의 모습을, 옆에서 우두커니 바라보던 한웅은 순간 그를 말리려 했지만, 입술을 꾹 문채 좀더 상황을 두고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친구가 이런 반응을, 이런 행동을 취해도, 능히 그 심정을 이해할만한,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되는게, 현 상황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최강희가 무려 월~금까지, 단 하루도 학교를 나오지 않고 있으니 그럴 만 했던 것이다.
최강희가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선생들로서나, 학생들로서나 썩 유쾌하지 못한 일이었다.
누가 뭐래도 xx고등학교를 빛나게 하는, 누구나가 인정하는 이 학교 최고의 퀸카. 그녀가 교내를 돌아다니는 것만으로, 그녀가 운동장에 있는 것만으로 학교는 빛이 난다.
선생이든 학생이든, 자유로운 품성의 그녀를, 활기차게 사는 그 멋있는 여자애를 싫어할 사람이 누구도 없었다. 최강희만큼 시기를 안 받고 사는 여자애도 드물것이다.
최강희는, 등 하교를 자기 내키는데로 할때가 가끔 있는 여자애였다. 선생들도, 학생들도, 그걸 익히 알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최강희는 친구들 보러 학교를 나오는게 아닌가 하는 소리까지 나왔을 정도이니까.
xx고등학교에 현 학교장이 직접 말했다는 유명한 어록이 있다. <최강희가 학교에 나오는 날에 본 교는 활기차고, 나오지 않은 날에는 선생이나 학생 할것 없이 왠지 우울한 기분이다> 라는...
말 그대로 이 학교의 심볼. 상징이나 마찬가지인 여학생.
어쨌건 강희가 학교를 등교 안하는 날에는, 담임은 물론이지만, 학교장까지도 눈감아 주는 특별전형을 누리고 있었다.
교와 교 사이에서 벌어지는 체전에 항상 우승 트로피를 안겨주는 여학생. 교단의 보석 중의 보석. 물론 드러내놓고 모든것을 딱히 그녀 위주로 편애하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강희가 무엇을 하든지 일절 관여하지 않는, 태클걸지 않겠다는 것이 교단의 입장이었다.
때문에, 비록 강희가 오늘부로 5일씩이나 등교를 안 했지만 아직까지도 강희의 반 담임 선생님은 부모님께 연락을 따로 넣지 않았다.
5일씩이나 등교를 안하는건 처음 있는 일이었고, 또 강희가 이토록 오래 학교에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는건 선생들의 입장에서나, 학생들이나 슬픈 심정이었지만, 원래 내키는데로, 마음먹은대로 행하는 그녀의 성격을 알기에 아직까지는 좀더 두고보자는것이 교단의 의견이었다.
하지만...그건 교단의 입장이고....강희에 대한 불타는 감정을 가슴속에 넣어두고 있는 진정안은, 그렇지가 않았다.
어떻게 걱정이 안 된단 말인가. 지난 토요일부터 뭔가 심상찮은 느낌이었는데, 오늘로 금요일씩이나 날이 지났다.
어찌되었건 최강희와 마지막으로 만났던 건 한유정, 그리고 유정은 무언가 알고 있는데 감추는 듯한 눈치. 오늘이야 말로 대답을 반드시 듣고 말리라 다짐하면서 정안은 유정 앞에 선 것이다.
하지만.... 유정은 대답해줄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 말했을 텐데....난 강희와 영화를 보고, 식사를 하고...바로 헤어졌어. 그게 다라고...."
"...거짓말..."
"..뭐?"
유정은 고개를 갸웃했다. 정안은 그녀의 눈을 마주보면서 확 외쳤다.
"거짓말 마요!! 유정이 누나는 강희 누나하고 xx탕을 갔잖아요!! 난 그걸 알아요!!"
움찔
유정은 순간 고개를 꿈틀 했다. 하지만 얼른 아무것도 아닌 듯이 정안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을, 정안이나 한웅은 놓치지 않았다.
"...난 모르는 일인데? 누가 그래? 내가 강희하고 거길 갔다고..."
자신이 먼저 들어가 있던 사이에, 최강희와 진정안이 통화를 했던 일을 모르는 유정인지라, 진정안이 그 사실에 대해서 안다는 것 때문에 순간 동요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태연을 가장하기로 한 모양이었다.
이쯤 되자 정안은 이를 갈기 시작했고, 한웅도 유정을 의심했다.
"유정이 누..."
한웅은 입을 열면서 직접 물으려 했지만, 정안이 손동작으로 제지하면서, 조용히 한마디 했다.
"....교내니까....이따가 이야기하죠..."
방과 후에 따로 보자는 말뜻이었다. 유정은 정안을 빤히 쳐다보다가 휙 하고 몸을 돌렸다.
"...난 그럴 생각이 없어..."
정안은 순간 유정의 팔목을 잡아채려 앞으로 튀어나갈 뻔했지만 한웅이 얼른 그의 몸을 붙잡았다.
"놔!!"
강희의 걱정때문에 너무 흥분한 정안은 한웅을 강하게 뿌리치려 했지만, 역시 힘으로는 한웅한테 어림없었다.
하지만 그의 기분이 워낙 격해져 있었기에, 한웅조차 그를 제지하는데 이마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우와 이자식..화나니까 엄청 쎄네..."
한웅은 침을 꿀꺽 삼키고 난 후에 계속 그를 붙잡으면서 말했다.
"정안아 진정해라 진정. 응? 바르게 보지만 말고.. 성이랑 이름 앞글자 값도 해야지. 어? 진정해 진정"
"...크윽..."
정안은 부르르 몸을 떨면서 몸서리 치다가 고개를 떨궜다. 한웅은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걱정마...방과 후에는...내가 도와줄께. 유정이 누나랑 다시 한번 잘 말해보자. 알았지?"
정안은 계속 어깨를 떨다가 고개를 느리게 두번 끄덕였다....
한웅과 헤어진 후에 강희의 반 담당 선생님인 정 선생을 만나본 정안은 입을 열었다.
"저..선생님"
"응?"
"강희 누나 집에는...연락하셨어요?"
진정안이 왜 그런걸 묻나 싶어 순간 그를 쳐다본 정 선생. 하지만, 그는 피식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마 이녀석도 강희를 짝사랑하는 녀석 중의 한 놈인가보다 하고 가볍게 여긴 모양이다. 그는 웃더니 대답해줬다.
"아니, 연락은 취하지 않았다. 강희는 원래, 이럴때가 종종 있었지. 그래서...."
"그래도..부모님이 아셔야 하지 않을까요?"
정안이 그렇게 말하자 정선생은 잠깐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닐 거다. 그리고 혹시 모르지. 집안 문제일지도...또, 그게 아니라 해도, 그 분들에게 걱정을 끼쳐드리긴 싫구나..."
정안은 그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다가 정 선생에게 강희의 부모님이 거주하시는 곳의 연락처를 여쭈었다. 정 선생은 정안을 잠시 바라보다가 연락처를 적은 쪽지를 넘겨주었다.
뚜르르
뚜르르
신호음이 가다가 중년의 목소리로 느껴지는 한 여성이 통화를 받았다. 강희의 어머님이 틀림없었다.
"전화받았습니다. 누구시죠?"
"아...안녕하세요? 전 강희 누나 후배입니다 어머니"
잘만 된다면, 진짜 잘만 된다면 미래의 장모가 될지도 모르는 분이기에 그는 예의와 격식을 깍듯이 차려서 인삿말을 건넸다. 강희 어머니는 그의 그런 태도가 상당히 흡족하셨는지 흐뭇한 듯한 심정이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
"아 그렇군요. 호호. 강희 일때문에 전화를 한건가요 학생?"
"그렇습니다...저....강희 누나가 요 며칠동안 학교를 안 나오길래...무슨 일이 있나 하구요..."
그의 걱정이 고마운지, 강희 어머니는 배려해줘서 고맙다고 말을 한 후에 이어 말하셨다.
"그렇군요...호호. 그 아이는...강한 애랍니다 학생. 어릴때부터 어려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혼자 잘 이겨냈지요. 무슨 일이 있어 학교를 쉬는지 모르겠지만....나는 그 아이를 믿고 싶네요. 내 딸이라서 자랑하려 하는 말이 아니라....누가 봐도 정말 듬직한 애라고 느끼죠. 근래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는 모르지만...분명 성장의 한 과정을 겪고 있을거라 봐요. 내가 전화받은게 아니고 남편이 받았어도 같은 생각일거라 여겨지는군요. 아무튼 신경써줘 고마워요 학생"
강희 어머니의 말을 들으면서, 진정안은 강희누나의 두 부모가 얼마나 딸에 대한 깊은 신뢰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딸을 사랑하는지 능히 짐작할수 있었다. 그는 이 이상 말하는것도 괜히 실례와 염려를 끼치겠다 싶어 알겠습니다 하고 간단히 말을 전했다.
끝인사를 하고 전화를 마치려 하는데 강희 어머니가 한마디 덧붙이셨다.
"학생하곤 언제 한번 만나보고 싶군요. 참 착한 인상으로 느껴져요. 호호. 볼수 있음 꼭 봐요"
"가..감사합니다 어머님. 안녕히 계세요.."
정안은 그렇게 통화를 마쳤다. 그리곤 하늘을 쳐다보았다.
"강희 누나...."
오후 5시경
거실.
설영은 혼자 앉아서, 독하기 그지 없는 양주를, 안주도 없이 계속 마셔 댔다. 그녀는 술잔을 연거푸 기울이면서, 사우전드에 누워 있는 강희를 생각했다.
"날...사랑해요?"
"놓아주라고 부탁하면...놓아줄수 있나요?"
"그게...사랑과..소유욕의 차이에요..."
강희와 나누었던 대화. 그 아이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계속 자신을 자극한다.
최강희는 자신에게 말했었다. 불쌍하다고. 가엾은 분이라고.
아마 과거일때의 자신과 같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리라.
차이가 있다면, 최강희는 나아갔고,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는 정도랄까.
진설영은 어렸을때를 생각한다.
그녀도 평범한 여자였고, 어릴때는 순수한 한명의 여자애일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유치원에서 아이들끼리 다툼이 일어났다.
자신이 좋아하는 곰인형을 가지고 왔는데, 한 아이가 그걸 보더니, 잠깐만 빌려달라고 하는것도 아니고, 아예 자기에게 달라는것이다. 아무 이유도 없이.
그녀는 싫다고 했다. 당연했다. 자기가 가장 아끼는 거였다. 절대 주기 싫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자신을 때렸다. 저항했지만, 그 남자애는 당시의 자신으로서는 벅찰만큼 무척이나 힘쎈 애였다.
결국 자신은 그 인형을 빼앗겼다. 그 애는 곰인형을 손에 넣고 나더니 좋다면서 웃어대었다. 유치원 선생님이 잠시 화장실을 가신 사이였던지라 누구의 도움도 기대할수 없었다. 자신은 무력했고, 그 애는 계속 승리자의 웃음을 취했으며, 주위의 아이들은 그런 승자와 패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자신은 외쳤다. 앙앙 울면서.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내면서. 힘껏!!
"너같은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상상도 할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순식간에.
그때까지도 웃고 있던 남자애는, 갑자기 멍해지더니, 자신을 보면서, 응...하고 말하면서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리고 나선 유치원 밖으로 갑자기 나갔다.
그리고는....돌아오지 않았다.
경찰 아저씨들이 오고, 아이들을 상대로 탐문수사라도 할 양인듯, 마냥 우는 애들을 어르고 윽박질러서 사건의 진상을 캐내려 해댔다.
유치원생이 옥상에서 뛰어내려 죽을 생각을 하다니,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그들도 답답했을 것이다.
설영은 그 애가 죽어버린 걸 알고 입을 다물어버렸다. 하지만 주위 아이들이 하나같이 자신을 가리키면서 저 애가 그랬어요~ 죽어버리랬어요~ 하고 말해대는 통에, 유치원생때 취조 라고 할만한 것을 경찰한테 받아보았다.
결국 사건은 미스테리로 남아버렸다. 여자애가 그런 말 한마디 했다고 그 남자애가 죽었다고 생각하기엔 말이 안 맞는다고 어른들은 생각했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그 아이가 먼저 잘못한것도 사실이었기에, 설영이 그런 폭언을 했어도, 피해 아동의 부모님들은 별다른 반박도 못한채 울상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그들은 말했었다. 지금도 생생하다. 그들은 자신에게 손가락질 했다.
"저 아인 마녀야!! 귀신 들린 아이야!!"
그때부터 설영의 얼굴표정은 눈에 띄게 그림자가 자리하기 시작했다. 부모님이 자신에게 대해주는것도 예전같지 않았다. 친구들도 점차 없어져 갔다.
불행의 시작이었다. 자신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플듯이 대해주던 아빠 엄마가, 자신을 정말로, 배척하기 시작했다.
믿을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은 몰라도 , 부모님만은 자신에게 잘해줄줄 알았는데.
설영은 그 어린 나이때부터, 아빠 엄마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조금이라도 잘 해드릴려고, 예쁘게 보일려고 안해본 행동이 없었다. 하지만...소용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은 감정대로 사는 동물이고, 살면서 누군가에게 화가 날만한 일이 또 있었던 설영은, 그들에게 순간적인 분노를 터뜨린 때가 있었고...그들은 모두....
경찰들의 신세를 한두번 진것이 아니다. 관할 서에서도 이젠 자신을 이상한 눈초리로 보기 시작하는 듯했다. 부모님들은 연신 피해자측에 고개를 조아렸다. 부모님이 자신을 보는 시선이 점차로 차가워졌다.
설영은 절망했다. 그리고 그 절정은....그날 밤에 일어났다.
그날은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깨어 있어야만 할것 같았다. 본능적인 행동이랄까?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눈을 떠보니, 두 그림자가 자기 위에 있었다.
설영은 눈을 부릅떴다. 아빠였다. 엄마였다. 그들의 손에는 자루가 들려져 있고, 재갈과 밧줄이 들려져 있었다.
그 짧은 순간에 그녀는 깨달았다.
(날 죽이려 해!!)
틀림없었다. 이 분들은, 아니, 이 사람들은 자기를 죽이려 하는 것이다. 자기들을 힘들게 하는, 비록 자식일지라도 재앙으로밖에 생각이 안되는 그녀를.
설영은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도 아버지인데, 어머니인데...그들의 뜻대로 죽어줘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에 그녀는 반항하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손목이 묶이면서, 발목이 묶이면서...그녀는 순간 속으로 부르짖었다.
"내가!! 내가 왜!! 난 잘하려 했잖아?!! 잘보이려고 애썼잖아!!"
사랑받으려고 애썼잖아!! 수없이 노력했잖아!!
그런 생각이 가슴속에 생성되자 순간 한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갈이 물려지기 전에 그녀는 외쳤다.
"싫어요!!"
움찔
두 사람의 행동이 멈췄다. 아빠도, 엄마도, 표정이 멍해졌다. 그들은 그렇게 멍청히 서 있었다. 설영은 속으로 외쳤다.
"또!!"
그녀는 경악했다. 이젠 이 빌어먹을 이상한 능력이, 아무때나 발동되는것이다. 그녀는 원하지도 않았는데...
설영은 눈물을 흘리면서 아빠 엄마를 보며 물었다.
"...뭐 하려 했어요?...아빠..엄마...에헤헤..."
눈물을 흘리면서 그녀는 애써 웃어보였다.
최면에 걸린듯한 표정의 그 두사람은, 거짓을 말할수도 없는지, 마치 인형같은, 기계같은 음성으로 자신에게 말했다.
"널....죽이려 했다......"
"...묻어버리려 했어..."
설영은 그 말을 듣더니, 눈가에 눈물을 쓱 훔치곤 아하하 하고 웃었다. 닦아내었는데 더 많은 눈물이 쏟구친다.
"...그래요?..왜요? 나...사랑받고 싶었는데...."
두 사람은 입을 모아 대답했다.
"...넌.....악마의 딸이니까....."
".....난..아빠 엄마 딸인데?...."
그녀는 울먹거리면서 말했다. 그들이 다시 말한다.
"....넌....귀신이야....."
"..마녀야....."
설영은 아악 하고 외치더니 말했다.
"사라져버려!! 가버려요!! 내 눈에 띄지 않게!! "
그들은 느릿느릿 움직이더니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설영은 눈물을 펑펑 쏟으면서 끝끝내 한마디를 외쳤다.
"죽어버려요!!"
친, 외가가 있었지만, 누구도 그녀에게 손대려 하지 않았다. 누구도 그녀를 양육할 의사는 일말도 없는 듯했다. 설영은 그때부터, 혼자 살아갔다. 어둠의 길을 걸었다.
상속은 물론 자신의 몫이었다. 하지만 설영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몇날 며칠동안, 그날의 악몽이 떠올랐고, 경찰들이 전해주었던 말이 생각났다.
아빠 엄마가. 고속도로에서 누워 있었다고 했다. 머리가 수박처럼 잘 깨졌다고 했다. 그런 잔인한 이야기를 유치원생인 나이의 자신에게 전해줄 정도라니...그들도 그녀에게 혐오감을 느끼는게 분명했다.
돌봐줄 사람이 없었기에, 그녀는 비뚤게 자랐다. 원하는 것만을 입에 넣고, 쓰고, 가지고, 행했다.
그러면서 생긴, 자연스러움. <소유욕> . 소유욕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될 만큼 그녀의 몸에 배었다.
필요하면 손에 넣는다. 쓸모가 다했다고 여겨지면 버린다. 그게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차피 자신은 남들과 틀린 이들이다. 누구도 어릴때의 자신을 이해 해줄 사람도 없을것이고, 이해하려 들 사람도 없을 것이다. 부모보고 죽어버리라고 한 딸을 누가 도대체 위로해준단 말인가. 세상 입장에서 보면 그녀는, 아무 필요도 없는, 살 가치가 없는 페륜아임에 틀림없을진데.
설영은 혼자 성장하면서 결심했다.
누구도 나를 이해해주길 원치 않아.
누구도 내 심정을 모를거야.
그렇다면....누가 되었든지 나에게 손대지 못하게....참견 못하게.....하겠어.
보통 인간인 주제에....감히 나에게 손을 뻗치는 행동따위...용납 않겠어.
오히려...내가 ....부리겠어....무릎꿇리겠어....가지고 놀아주겠어..... 종으로 삼겠어....
그런 감정들. 그런 결심들. 그 모든 것이 그녀 마음속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그녀는 그날..... <여왕>이 되었다.....
자신은 만인을 부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여인. 그 누구도 그녀의 눈동자, 그녀의 명령이 깃든 말투를 거역할수 없다.
<매혹안>. 마인드 컨트롤.
눈에서, 입에서 뿜어나온다. 넘쳐나온다. 여왕의 기품이. 기운이,
여왕은 점차 커지면서, 쾌락에 사로잡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자신은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했던 여자애다.
모성애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랑. 절대의 순수가 깃든 찬란한 사랑이라고 믿는 설영이었다.
설영은 생각했다. 자신도 여자이다. 그리고 그녀는 떠올린다. 어릴때 사랑받지 못하고 성장한, 웅크린 여자애를.
그렇다면.....
잘해주리라. 냄새나는 남자들은 몰라도.....여리고 여린....약하디 약한....여자들만은.....아름다운 것들만은......사랑해주리라.....보듬어주리라....어루만져주리라....
그날이....진설영. 여왕에게 동성애가 자리하게 된 날이다...
아름다운 여자들. 귀여운 여자아이들. 예쁜 여자애들에 대한 집착이, 무섭도록 커진 그녀.
그녀의 <소유욕> 중에 가장 큰 위치를 차지하게 된건, 미성을 지닌 여자아이들이 되어버렸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아름답기 그지없는, 그 사랑스러운 예술품. 그건 자신의 것이었다. 자신의 전유물이었다.
그 아이들의 미소가 보고 싶었다. 웃음소리가 듣고 싶었다. 그럼 뭘 할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 간지럼을 태우자. 간지럼을 피우자.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면 웃을 것이다. 옆구리를 자극하면 웃을것이다. 발바닥을 긁어대면 웃을것이다. 발가락 사이를 깃털로 어루만지는 센스도 필요하지 않을까. 분명 그 아이는 좋아할 것이다. 웃음지을 것이다. 그래.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그곳은 젖어들 것이다. 촉촉하게. 그로 인해 예쁘게 빛날 것이다..
하지만....이왕 하는 것. 그 아이는 전유물. 그렇지. 자신의 전유물이니까. 자신의 것이라는, 누구도 가져갈수 없는, 자기만의 것이라는 표식이 필요하지 않을까.
눈에 띄는 무언가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 묶는 것이다. 결박이다. 구속이다. 그 애는 묶임으로서, 자신의 노예임이 입증되는 것이다. 그리고 간지럽히는 데도 더 효과적일 것이다. 그 아이는 도망가지 못한다. 그 아이는 반항하지 못한다. 그 아이는 오로지 웃어야 한다. 자신에게 사랑스러운 웃음소리를 선사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한다...
그렇게....Bondage와 Tickling이...자신의 성향중의 하나로 생겨났다....
설영은 자신했다. 자신이 있었다. 자신에겐 매혹안이 있다. 마인드 컨트롤이 있다. 이 세상 그 누구라도, 아무리 지체 높은 사람이어도,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어도 자기 앞에서는 머리를 숙여야 할 것이리라.
그렇게 만들수 있었다 그녀는. 분명 그럴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언제나 항상 그래 왔고,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넣어 왔다....
그런 어느 날.. 최근에....한 존재를 보았다. 한 여자애를 보았다.
그 여자애는 예뻤다. 18살, 고 2라고 하였다.
얼굴에서도 이미 감탄했지만, xx고등학교의 퀸카라는 화려한 프로필. 정말이지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수밖에 없을만큼 뛰어난 몸매. 훌륭한 신체.
수천명의 팬까페를 거느리고 있는 여자애. 하지만 그 아이의 본성은 놀랍게도 M. TBM에 가입되어 있는 정회원. 닉네임. 티렉스.
왜 그런 닉네임이었을까. 따로 이유가 있나 싶었다. 그때 당시만 해도.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놀라운 사실...
Dinosaur(공룡) 이라는 표현이 어울릴만큼, 엄청난 힘을 가진 여자아이. 상상을 초월하는 괴력을 가진 여학생.
그 아이를 만나보았다는 S를 몇명 만나보고 나서 그런 소리를 들었지만, 당시에만 해도 믿지 않았다. 하지만...욕탕에서 보인 그 힘....말 그대로 경이적인 파워.
하지만....그 대단한 티렉스를, TBM의 그 어떤 S도 사로잡지 못했던, 구속하지 못했던 그 여자아이를, 자신은 사로잡았다. 옭아매었다.
그렇게 그 아이의 몸을 가질수 있었다. 입술을 빼앗을수 있었고, 몸 어느 곳이라도 어루만질수 있었다. 자신은 환호했다.
이제 다 되었다 싶었다. 시간을 두고, 느긋하게 즐기면서, 매혹안을 걸면 될것이라 생각했다. 확실히 자신의 딸로 만들 자신이 있었다. 그녀는 승리를 확신했다.
하지만....아니었다.
최강희는 끝끝내 자신을 거부했다. 자신의 의지를, 기백을 서슴없이 내비쳤다. 그 아이는 자신의 긍지를 지켰다. 몸은 주어도 마음까진 맘대로 못할거라는 그 긍지.
티렉스의 자존심을.
최강희는, 여왕에게 사로잡힌 후에, 단 한번도 그런 말을 한적이 없었다. 자신을 풀어달라는 말을.
물론, 의향을 물은 적은 있지만, 그때 역시도, 의중을 물은 것이지 직접적으로 자신을 놔달라는 표현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그런 말은, 발린 말조차 일체 입에 담지 않았다...
이제서야 여왕은 후회한다. 되새긴다. 강희가 어제 했던 말을.
"난...거기서 벗어나왔지만...헤어나왔지만....여왕님이...박사님이....다시 저를 나락에 떨어뜨리려 한다는걸...아시는지?"
그때 깨달았어야 했다. 협박이 아니었던 것이다.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 아이는 정말 비장의 각오를 그때 했던 것이다.
최강희로서도 그만큼 궁지에 몰려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손발가락까지 제압되어 있는 상황에, 자살할 방법이라곤 혀를 깨무는것 뿐이다. 하지만, 그녀가 자살을 하도록 여왕이 냅둘리가 없는것이다. 닥터가 항상 대기했던 것이 그 증거이다. 그런 짓을 해보았자 결코 성공할수 없을 것이라는걸 최강희는 짐작했을것이 분명하다.
대신에 선택한, 최후의 길. 경계식.
그건 정말로, 계산 밖이었다. 최강희에게 그런 자아의식이 있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최강희는 경계식을 발동함으로서, 의식은 자신의 손에서 빠져나갔고, 그녀 자신의 긍지도 지켰다. 이제 그녀의 몸만이 껍데기처럼 남아 있고, 의식은 온데간데 없이 보이지 않는다.
티렉스는, 멋지게 퀸과 닥터 솔에게 한방 먹인 셈이다.
설영은 눈가에 눈물이 핑 돌더니 중얼대었다.
"난...난.. 결코 이런걸 원한 건 아니었어....난 다만....널 가지고 싶었을 뿐인데....니가 너무나 좋아 견딜수 없었을 뿐인데......왜....."
최강희의 이성은 무너졌다. 하지만.....이건 아니었다. 최강희는 매혹안에 반응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인드 컨트롤이 통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저 그렇게, 하염없이 눈만을 감고 있을 뿐이다.
설영의 눈가가 점차로 붉어질대로 붉어져갔고, 술잔을 기울이는 속도가 빨라졌다.
방과 후.
진정안과 김한웅은, 학교를 마치고 나서 하교를 하고 길을 나서는 유정을 미행했다. 한동안 그렇게 걸어가다가 사람이 별로 없는 거리에 들어선 유정을 보고 나서는 번개같이 거리를 좁혀들고 나서는 유정의 앞뒤를 막아세웠다.
유정은 눈썹을 찡그렸다.
"..이게 무슨 짓이야? 비키지 못해?!!"
정안은 고개를 가로젓더니 말했다.
"유정이 누나. 이번엔 대답을 들어야겠어요...강희 누나...어디 있어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모른대두?"
유정은 차갑게 말하고는 옆으로 쓰윽 나섰다. 하지만 정안이 얼른 바싹 거리를 좁혀들어오더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자꾸 이러면...대답을 듣기 전에는...못 보내요"
유정은 헛웃음을 지었다. 어찌나 싸늘해 보이는 표정인지, 평소의 그녀라면 절대 예상할수 없을 모습이라고 정안과 한웅은 생각했다.
"웃기는구나 정말. 소리 지르기 전에 빨리 비켜"
정안은 유정의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다가 한웅을 한번 보았다.
"한웅아"
"으..응?"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정안의 목소리에 한웅은 어리둥절해 했다. 정안은 인상을 살짝 쓰면서 오른팔 소매를 슬쩍 걷었다.
"미안하다. 나도 지금...강희 누나걱정때문에...제정신이 아니라서...이해해라!!"
"무..무슨..."
한웅이나 유정이 당황한 표정이 되면서 몸을 움찔 했지만 정안이 더 빨랐다.
파바박
순식간에 주저앉다시피 무릎을 굽힌 정안은 오른 손의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유정의 아킬레스건을 꽉 잡아쥐었다.
꽈악
움찔
"아!! 아학!!"
유은 순간 신음성을 흘리면서 비틀 하고 무릎을 꺾었다. 한웅의 눈이 커졌다.
"야!!"
한웅이 얼른 정안을 잡아채려 했지만 정안이 악을 썼다.
"별일 아냐!! 제발 두고만 봐!! 괜찮아!! 유정이 누나가 다칠 일은 없으니까!!"
한웅은 그의 고함을 듣고서는 일단 동작을 멈춘 채 정안과 유정을 지켜만 보았다. 과연, 유정은 무릎을 꺾고 주저앉기만 했을 뿐, 어딜 다친 데는 없었다.
그녀가 허물어질때 얼른 정안이 움직여 그녀의 등을 받쳤기 때문이다. 정안은 유정의 등 뒤를 가슴으로 받은 후에 이번엔 오른손으로 그녀의 오른 발목을 꼭 감아쥐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유정이 누나!! 강희 누나 어딨어요?!! 누난 알죠?!! 말해줘요!!"
꽈악
"악!! 꺄아아아악!!"
유정은 오른발의 아킬레스건이 정안에 의해 더욱 꽉 잡히자, 갑자기 난데없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한웅이 인상을 팍 쓰면서 무릎을 굽히곤 정안을 보며 소리쳤다.
"야!! 왜이래? 누나가 왜이리 아파하는거야?!!"
정안도 좀 당황했다.
"뭐..뭐야?! 난 그냥 힘을 빼놓으려고 하기만 한건데....왜 비명을?"
한웅은 그렇다치고, 정안마저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수가 없었다.
자신의 능력은 무력화. 상대의 힘을 빼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정은 지금 힘없이 주저앉기만 하고 고통은 없을텐데, 왜 비명을 지른단 말인가.
정안이나 한웅이나 모르지만, 여기엔 이유가 있었다. 정안은 지금, 자신도 모르게, 여왕이 유정에게 건 <정신의 유대>라고 하는 매듭을 끊어내는 중이었다.
최강희를 사로잡기 위해선, 한유정만큼 적임자가 없다고 생각한 진설영이, 그녀를 마인드 컨트롤, 즉 매혹안을 걸 당시에 상당히 강한 최면을 걸었다.
왜 그랬냐면, 뭐니뭐니해도 한유정은 최강희의 베스트 프렌드. 가장 친한 친구이다. 그렇다면 어중간히, 대충 최면을 걸시에, 강희의 목소리로 인해 한유정이 정신을 차릴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매혹안이 깨질수도 있는것이다.
그렇기에 진설영은, 유독 한유정에게만은, 엄청나게 신경을 써서 상당히 심도 깊은 매혹안을 걸었다. 강희가 아무리 애를 써도 제정신으로 돌려놓을수 없을정도로 말이다.
한유정에게 건 최면은, 가연이나 선민이, 이런 이들에게 건수준 정도와는 차원이 틀렸던 것이다.
그렇기에, 그토록 착하고 여린 한유정이, 완전 딴 사람으로 보일 정도로, 차가운 이미지의 인상으로 보일 정도로 사람이 돌변했던 것이다.
그런 상태의 유정을, 진정안이 지금 그녀의 발목을 잡음으로서, 여왕이 건 최면 능력과, 진정안의 무력화 능력이 충돌을 일으키는 바람에, 그것이 깨질락말락 하는 상황이었고, 그로 인한 충격때문에 유정이 이토록 고통에 찬 신음을 흘리는것이었다.
하여튼, 비록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진정안의 무력화 능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 여왕이 유정에게 건 매혹안을,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마침내 깨뜨리기에 이르렀다.
파지직
"아악!!"
그렇게, 여왕이 유정에게 건 매혹안은 깨졌지만, 그때 상태의 여왕은, 강희에 대한 마음때문에 심리가 제정상이 아니었고, 술도 상당히 들이킨지라, 미처 유정이 자신의 컨트롤에서 벗어낫다는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유정이 마지막으로 비명을 지른 것을 시점으로 순간 전류가 오는 듯한 느낌이 잠깐 정안에게 다가왔다.
깜짝
"뭐! 뭐야!!"
진정안은 놀랐지만 그래도 유정의 발목을 잡은 손을 놓지는 않았다. 그때 갑자기 유정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흑...흐흑....."
"!! 유..유정이 누나?"
"..누나?"
두 남학생은 난데없이 한유정이 눈물을 흘리자,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때 한유정이 여전히 울먹거리는 듯한 목소리로, 고개를 살짝 돌리면서 진정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흐흑...정안아.....어떻게 해.....한웅아.....으흑....."
두 남학생은 얼굴이 삽시간에 어두워졌다. 도대체 유정이 누나가 갑자기 왜 이러는 것일까.
유정은 울먹이다가 정안에게 말했다.
"뭔진 몰라도...일단 좀 놔줘...흑....그리고 나서..이야기해줄께...."
그녀의 눈물맺힌 눈동자가 하도 애처로워서 정안은 부르르 몸이 떨리는걸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잘은 모르겠지만...유정이 누나의 눈이...생기를 되찾았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그녀를 부축해서 일으켰다. 그러자 그녀는 눈물을 쓱 닦더니 말했다.
"..잘 들어...흑...믿을진 모르겠지만.....지금 강희는.......납치되어 있어...흑흑....."
"네에?!!"
정안과 한웅은 경악했고, 유정은 그런 그들을 바라보면서 더욱더 울먹이다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흐느꼈다.
"그것도!!....흑흑.....내 마음이 더 아픈건.....으흑....강희가 그렇게 된게...다 나때문이라는거야.....으흐흑!!"
유정이 마침내 오열하면서 어깨를 떨어대자, 정안과 한웅은 난감했다.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텐데 유정의 기분이 지금 이래서야.
정안은 입술을 깨물면서 주먹을 꽉 쥐고 안달했지만, 유정이가 지금 이런 상태면 재촉하기도 영 그랬다. 한웅이 쓱 다가와 유정의 어깨를 잡아주면서 말했다.
"저..누나. 여기서 우리 집이 가깝거든요? 일단 우리 집에 가서 이야기해요. 네? 누나 심정이 어떤지는 다는 모르겠지만....정안이도 그렇고....지금...급히 움직여야 할때가 아닌가 싶네요"
유정은 그의 말을 듣고 있다가 고개를 확 도리질 치더니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음성은 상당히 다급해져 있었다.
"아..아냐!! 이럴때가 아냐!! 버스? 택시? 아!! 아무튼...빨리!! 빨리 그 여자 집으로 가야돼!!"
"..그 여자?"
두 사람은 어리둥절해 했지만 유정은 그런 그들에게 재촉했다.
"그래! 그 여자!!"
둘이 동시에 물었다.
"누구요?"
유정이 외쳤다.
"여왕!!"
유정이 엄청나게 서두르려 하는 기색을 보이자, 잘은 몰라도 정안과 한웅은, 강희가 어디에 있는지 유정이 확신하고 있다고,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정안이 재빨리 물었다. 그도 다급해져 있었다.
"유정이 누나는 강희 누나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거죠? 그렇죠?!!"
유정은 소리질렀다. 그녀는 너무 흥분해 있었고 마음이 급한듯했다.
"그래!! 알아!! 그러니 빨리 가야돼!! 강희가...강희가 위험해!!"
강희가 위험하다는 말에 한웅도 낯빛이 변했지만 진정안은 거의 제정상이 아닌 수준이었다.
"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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