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읽어보았어요.
그 때, 수간호사님이 제게 첫 담당환자가 생겼다며, 환자차트랑 병원입원확인서,
신체적 정보가 담긴 서류철을 건네 주셨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간호학을 전공했어도 이제 갓 2년 차가
정신병동에서 쓰는 생소한 의학용어를 쉬이 알아 들을 수가 없었어요.
가벼운 social phobia(대인 기피증), delirium(섬망) 같은 기본적인 용어는
이해했지만 그 외에는 사실 어려웠었죠.
그래도 선배들한테나 주위 동료들한테 이게 무얼 뜻하는 거냐고 물어보지 못했어요.
신입 간호사로써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가고 있던 때라,
괜히 모른다고 하며 긁어 부스럼 만들 생각은 없었지요.
나중에 시간될 때 의학사전 뒤져가면서 찾아보자 하던 것이 고된 일에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전, 어제 테라스에서 그와의 대화로, 오늘 출근하고 회진을 돌자마자
차트집에서 그의 치료기록과 입원 당시 그의 정신상태에 관해 써놓은 입원확인서를
확인하려 하였습니다.
이게 지렁인지 글씨인지 모를 난해한 단어를 해석해가며
제가 알아 낸 것은,
‘Impulse control disorders’
일명 충동조절장애로, 제가 아는 바로는,
본인 자신 안에 내재된 초자아가 자아를 초월해, 초자아가 원하고 이루려는
행위 자체가 본인 또는 남에게 어떤 피해를 입힐 수 있을 때,
그런 충동을 자아 즉 본인이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를 충동조절장애라 알고 있었어요.
거의 모든 중독증상, 도박이나 쇼핑, 방화, 도벽, 섹스 등등 많은 경우가
충동조절장애가 해당하는 거죠.
전 수간호사님을 찾아가 그가 어떤 종류의 조절장애를 앓고 있는지 물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찾아뵙어요.
제가 수간호사실로 들어가자 수간호사님이 활짝 웃으며 물었어요.
“뭘 도와줄까?”
저도 방긋 웃으며, 그의 차트를 수간호사님 책상에 슬쩍 올려놨어요.
“다름이 아니라요, 제가 맡고있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 제가 그 분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 할 거 같아서요. 뭔가 제가 모르는 부분들도 있을 거 같고,,,
다른 환자분들보다 뭔가 유별난 구석이 있는 듯 해서요…
아직 제가 공부가 모자라 차트에 나와있는 환자분 정보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기에,
물어보러 왔습니다.”
수간호사님은 우아한 동작으로 차트를 집어 안락의자에 등을 편안히 기대며
차트를 읽어나갔어요.
“아, 이 환자분 기억나, 잊을 수가 없지.
보통의 환자들은 대다수가 가족들이 직접 병원으로 데리고 오니까.
대게 환자는 본인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려고 안해.
그런데 이 환자는 조금 달랐지.
오히려 제 발로 병원 문을 박차고 들어왔었어.
그 때 당시에 그 환자는 굉장히 우울하고 초조해보였어. 어두운 낮빛과
온 몸의 잔떨림이 그 분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잘 말해주었고,
나는 그의 상태가 대단히 나쁘다는 걸 알아채고 직접 그 환자와 상담을 했었지.
그는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마치 고해를 성사하듯,
내게 도움을 바라며, ‘선생님, 저는 성욕을 제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라고 운을 뗐지.
너무나 거침이 없었기에, 나도 당황했었어.”
저는 뭔가 머리가 울리는 듯한 착각을 받았습니다.
“아…성충동조절장애 인건가요?”
수간호사님이 차트를 돌려주며 말을 이었어요.
“응, 그 때 당시에는 아주 위험했었어.
이건 여담이지만, 마주앉아 상담을 하던 와중에
앉아있는 내 허벅지와 하얀 스타킹을 보면서 발기가 되는지 자기 손으로
일어나지 못하게 꾸욱 누르며 애써 내 다리를 보지 않으려 했는데,
그것 마저 조절이 되지 않아서 나중에는 대놓고 쳐다보며 발기된 성기가
그 환자가 입고 있던 츄리닝 위로 윤곽을 그렸었지.
나도 덩달아 민망해져버리는 바람에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치마를 가리니
이번엔 가슴을 쳐다보더라구, 아주 못말렸지. 동시에 그는 도와달라고 소리쳤고.”
저는 얼굴이 화끈해지는 동시에,
선한 얼굴과 눈동자, 정숙한 행동과 조용한 말투의 그에게
성욕구를 조절하는 데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매칭시키지 못했어요.
그간 봐왔던 그는 너무나 정숙하고 신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죠.
“지금 환자의 상태는 어떤 상황인가요?”
“지금은 예후를 보는 중이지만, 정신질환 같은 경우엔
우리가 산술적으로 중증이냐, 경증이냐를 가리기는 쉽지 않아.
그가 머릿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니까
지금은 잘 모르지, 일단 가벼운 약물치료와 인지분석치료를 번갈아 가면서 하고 있어.”
전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 걸 괜히 티내지 않으려 의연하게 듣고 있었어요.
“아, 자기가 그 환자 담당이었구나. 정신질환자는 간호사의 관심이 크면 클수록
회복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니까 잘 맡아서 한번 해봐.”
저는 뭔가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되면서 머리가 멍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와중에 태연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감사해요. 수간호사님. 환자의 예후를 위해 잘 간호하겠습니다.
말씀이 큰 힘이 됐어요…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저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나가려는데 수간호사님이 잠깐 불러 세우시더라고요.
“자기는 아주 잘하리라 믿고 있어. 환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물론, 나도 자기와 마찬가지야. 내 담당환자가 성욕구를 주체하지 못하는 환자라면,
나 역시 뭔가 불편하고, 괜히 몸을 조금 사리게 될꺼야.
평소엔 친하게 지내던 환자인데 그런 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되려 피하고 싶기도 하겠지.
하지만, 올바른 직업의식은 아니란 걸, 자기는 간호사니까 말이야. 파이팅하길 바랄께.”
전 짧은 대답을 하며 수간호사실을 나섰어요.
나서며 저는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지요.
왜 저는 복잡한 마음이 생기려는 걸 막지 못했을까요.
그냥 환자일 뿐이죠. 물론 제겐 의미가 남다른 환자지만요.
환자가 어디가 아프고, 무엇으로 고통 받는 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간호사의 의무는 어떤 환자가 어떤 병으로 고통을 받든,
최선의 노력으로 그 환자를 보필하는 건데 말이에요.
설령, 에이즈에 걸린 환자가 피를 뿜어대는 상황에서도 그 환자를 케어해야 한다면,
거리낌이 없어야하죠.
한데도 저는 부끄럽게도 어떤 혼란을 느끼고 말았답니다.
몸을 사리려 했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제 담당환자 였기 문에,
더더욱 어떤 실망을 느낀 것도 같았어요.
3년 전, 간호인으로써 나이팅게일 선서문을 읊을 때,
나에게 간호를 받은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라는 이 문장,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문장이자, 평생 간호인으로써 이 문장을 가슴에 새기며 살겠다고
다짐한 게 어제 같았는데…..
바보같이 하루 아침에 저버리려 한 제 자신이 조금 우스워 보였죠.
전 원무데스크 제 자리에 앉아, 수간호사님이 방금 전에 해주신 말씀을 머리 속으로 되뇌이며
착잡했던 마음을 나무라면서도 다독였어요.
‘맞아, 앞으로 어떤 환자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의 환자로
나약해지거나 초심을 잃으면 안돼. 더 잘하려 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말자.
딱 지금처럼, 딱 지금처럼만 환자를 잘 보필해나가는 거야.’
저는 다음이 다시금 여물어 가는 걸 느끼며, 내 담당환자의 파트를 들고, 다시 병실로 향했어요.
최대한 자연스러운 발걸음과, 평소와 같은 환한 웃음으로 환자를 보러 갔어요.
오후의 병실에는 저녁보다는 활기가 찾아 들어오고 있었어요.
6개의 병상에는 각기 환자들이 본인 나름대로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죠.
어떤 환자는 눈을 꼭 감고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렸고,
또 어떤 환자는 창 밖을 내다 보며 흔들리는 나무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었으며, 그냥 누워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는 환자도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책을 읽고 있더군요.
그는 병실로 누군가 들어서자 살짝 고개를 돌리곤 저란 걸 확인하고는
평소보다 더 저를 밀어내는 듯한 느낌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저는 그의 태도에 연연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다른 병상에 환자들에게
불편한 건 없으시냐고 체크를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다가갔죠.
“….. 간 밤에 잠을 푹 주무셨어요?”
그는 알아 차리지도 못할 만큼 살짝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 때 전 계속 머릿속으로 ‘평소처럼 하자, 평소처럼’ 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평소처럼 빙긋 웃었지요.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괜찮아요.”
여전히 책에 몰두하며 대충 대답을 하시더라구요.
저는 무례가 되지 않을 한에서 보고 있던 책으로 손을 뻗었어요.
“환자분, 맥박 좀 볼께요. 괜찮으시죠?”
살며시 책을 덮으려는데 그가 뿌리치더군요.
그러면서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더니 저를 찬찬히 올려보았어요.
“심간호사님,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간호사님이 괜한 호의로 불편하게만 안해주시면
저는 앞으로도 괜찮을 겁니다.”
그의 눈동자가 잠시나마 요동쳤지만 말을 마친 후론 굳게 입을 다문걸로,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더군요.
저는 허리에 두 손을 착 올리고 불쾌한 감정을 호소하니 그가 저를 다시 쳐다 보더군요.
저는 이번에는 전략적으로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쏘아붙였어요.
“왜 이렇게 삐딱하게 나가시는 거에요?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실 거에요?”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살짝 도리질을 하시더라고요.
“이봐요, 전,,,,,,”
“아뇨, 지금 환자분은 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어요.
저는 최대한으로 환자분은 배려하며 최대한 열심히 보필하고 계시는데,
오늘 환자분은 저를 허무하게 하고 계시잖아요.”
저는 울컥하는 마음에 생각보다 강한 어조로 말을 하게 되었어요.
저 자신도 놀랄 정도로요.
그는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어요.
“이보세요, 심간호사님. 제 병원입원기록 보셨을 거 아닙니까?
원래라면 저를 벌레같이 쳐다보시고, 저를 피하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저는 아주 악질 같은 놈이란 말입니다. 그런 제가 심간호사님의 호의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맞는 겁니까?”
그가 한 숨을 푹 내쉬었어요.
“말해보세요. 심간호사님이 제게 평소처럼 호의를 건네며, 거리낌없이
손을 잡고, 그렇게 향기로 저를 혼란시키시면 제 머릿 속에서
어떤 생각들이 떠오를지 이제 간호사님도 잘 아시겠죠.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해야하는 겁니까?”
그의 호소하는 목소리엔 슬픔이 담겨 있었습니다.
자기혐오와 좌절감, 회한 같은 것들이 가득 찬 눈물에 투영되어 내게 보이고 있었어요.
내게 답을 바라는 그의 눈이 내게 닿았어요.
저는 머릿 속으로 이제 가장 중요한 대답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알고 있어요 환자분, 방금 전에 환자분 입원기록을 보고 오는 길이었어요.
맞아요. 충격 받았죠. 여기 환자분을 다시 보러 오는 게 망설여질 정도로요.
환자 분이 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뻗쳤지만,
저는 최대한 의연해지려고 했어요.
편견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환자분을 이해해야겠다,
제가 잘해서 환자분 마음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테니까. 그렇게 다짐하고 왔어요.”
저는 말하는 도중에도 서두르지 않고 한 템포를 쉬어가며, 극적인 연출을 하려고 했어요.
“환자분이 그 어떤 병을, 설령 에이즈에 걸렸더라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환자분에게 헌신할 거에요.”
이 문장을 끝으로 우리는 침묵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보려 했어요.
그도 시선을 허공에 던져 놓은 채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는 듯 차분해지는 게 보였구요.
저는 그가 입을 열 때 까지 기다렸어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요.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그가 환자복의 제일 윗 단추 2개를 천천히 푸셨어요.
“…… 맥 좀 짚어주세요. 요즘 간간히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거 느껴지거든요.”
저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앞섬을 조금 헤쳐 그의 가슴 여러 곳에 청진기를 가져다 댔어요.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어요.
저는 환자 특이사항란에 적으며 말했어요.
“지금은 안될 거 같아요. 다음에 재도록 할께요.”
“그리고 하루종일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책이라도 읽으면 그래도 나쁜 생각들이 잘 안들거든요.
해서 약물을 조금만 줄여주셨으면 해요.
약보다는 제 스스로 컨트롤 하도록 노력해볼께요.”
그는 그런 식으로 화해와 의지하고 싶다는 제스처를 해왔지요.
제게 그의 몸에 대해서 얘기를 하더라구요.
“네, 그러한 환자분의 생각을 의사선생님께 전해드릴께요.
아마 원하시는 대로 잘 될거에요.”
저는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항상 당신 편이에요.”
빙긋 웃으니 그가 발그레해지는 것 같았어요.
“고마워요. 마음을 열어주셔서요.”
그 때, 수간호사님이 제게 첫 담당환자가 생겼다며, 환자차트랑 병원입원확인서,
신체적 정보가 담긴 서류철을 건네 주셨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간호학을 전공했어도 이제 갓 2년 차가
정신병동에서 쓰는 생소한 의학용어를 쉬이 알아 들을 수가 없었어요.
가벼운 social phobia(대인 기피증), delirium(섬망) 같은 기본적인 용어는
이해했지만 그 외에는 사실 어려웠었죠.
그래도 선배들한테나 주위 동료들한테 이게 무얼 뜻하는 거냐고 물어보지 못했어요.
신입 간호사로써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아가고 있던 때라,
괜히 모른다고 하며 긁어 부스럼 만들 생각은 없었지요.
나중에 시간될 때 의학사전 뒤져가면서 찾아보자 하던 것이 고된 일에
그만 잊어버리고 말았답니다.
전, 어제 테라스에서 그와의 대화로, 오늘 출근하고 회진을 돌자마자
차트집에서 그의 치료기록과 입원 당시 그의 정신상태에 관해 써놓은 입원확인서를
확인하려 하였습니다.
이게 지렁인지 글씨인지 모를 난해한 단어를 해석해가며
제가 알아 낸 것은,
‘Impulse control disorders’
일명 충동조절장애로, 제가 아는 바로는,
본인 자신 안에 내재된 초자아가 자아를 초월해, 초자아가 원하고 이루려는
행위 자체가 본인 또는 남에게 어떤 피해를 입힐 수 있을 때,
그런 충동을 자아 즉 본인이 억제하지 못하는 경우를 충동조절장애라 알고 있었어요.
거의 모든 중독증상, 도박이나 쇼핑, 방화, 도벽, 섹스 등등 많은 경우가
충동조절장애가 해당하는 거죠.
전 수간호사님을 찾아가 그가 어떤 종류의 조절장애를 앓고 있는지 물어야할
필요성을 느끼고 찾아뵙어요.
제가 수간호사실로 들어가자 수간호사님이 활짝 웃으며 물었어요.
“뭘 도와줄까?”
저도 방긋 웃으며, 그의 차트를 수간호사님 책상에 슬쩍 올려놨어요.
“다름이 아니라요, 제가 맡고있는 환자의 치료를 위해 제가 그 분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 할 거 같아서요. 뭔가 제가 모르는 부분들도 있을 거 같고,,,
다른 환자분들보다 뭔가 유별난 구석이 있는 듯 해서요…
아직 제가 공부가 모자라 차트에 나와있는 환자분 정보를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기에,
물어보러 왔습니다.”
수간호사님은 우아한 동작으로 차트를 집어 안락의자에 등을 편안히 기대며
차트를 읽어나갔어요.
“아, 이 환자분 기억나, 잊을 수가 없지.
보통의 환자들은 대다수가 가족들이 직접 병원으로 데리고 오니까.
대게 환자는 본인의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정하려고 안해.
그런데 이 환자는 조금 달랐지.
오히려 제 발로 병원 문을 박차고 들어왔었어.
그 때 당시에 그 환자는 굉장히 우울하고 초조해보였어. 어두운 낮빛과
온 몸의 잔떨림이 그 분의 상태가 어떠한지를 잘 말해주었고,
나는 그의 상태가 대단히 나쁘다는 걸 알아채고 직접 그 환자와 상담을 했었지.
그는 상담을 시작하자마자 마치 고해를 성사하듯,
내게 도움을 바라며, ‘선생님, 저는 성욕을 제어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라고 운을 뗐지.
너무나 거침이 없었기에, 나도 당황했었어.”
저는 뭔가 머리가 울리는 듯한 착각을 받았습니다.
“아…성충동조절장애 인건가요?”
수간호사님이 차트를 돌려주며 말을 이었어요.
“응, 그 때 당시에는 아주 위험했었어.
이건 여담이지만, 마주앉아 상담을 하던 와중에
앉아있는 내 허벅지와 하얀 스타킹을 보면서 발기가 되는지 자기 손으로
일어나지 못하게 꾸욱 누르며 애써 내 다리를 보지 않으려 했는데,
그것 마저 조절이 되지 않아서 나중에는 대놓고 쳐다보며 발기된 성기가
그 환자가 입고 있던 츄리닝 위로 윤곽을 그렸었지.
나도 덩달아 민망해져버리는 바람에 입고 있던 외투를 벗어 치마를 가리니
이번엔 가슴을 쳐다보더라구, 아주 못말렸지. 동시에 그는 도와달라고 소리쳤고.”
저는 얼굴이 화끈해지는 동시에,
선한 얼굴과 눈동자, 정숙한 행동과 조용한 말투의 그에게
성욕구를 조절하는 데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도저히 매칭시키지 못했어요.
그간 봐왔던 그는 너무나 정숙하고 신사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죠.
“지금 환자의 상태는 어떤 상황인가요?”
“지금은 예후를 보는 중이지만, 정신질환 같은 경우엔
우리가 산술적으로 중증이냐, 경증이냐를 가리기는 쉽지 않아.
그가 머릿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니까
지금은 잘 모르지, 일단 가벼운 약물치료와 인지분석치료를 번갈아 가면서 하고 있어.”
전 머릿속이 복잡해지려는 걸 괜히 티내지 않으려 의연하게 듣고 있었어요.
“아, 자기가 그 환자 담당이었구나. 정신질환자는 간호사의 관심이 크면 클수록
회복될 가능성이 더 높아지니까 잘 맡아서 한번 해봐.”
저는 뭔가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되면서 머리가 멍해지는 걸 느끼면서도
와중에 태연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어요.
“감사해요. 수간호사님. 환자의 예후를 위해 잘 간호하겠습니다.
말씀이 큰 힘이 됐어요…제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저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나가려는데 수간호사님이 잠깐 불러 세우시더라고요.
“자기는 아주 잘하리라 믿고 있어. 환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해.
물론, 나도 자기와 마찬가지야. 내 담당환자가 성욕구를 주체하지 못하는 환자라면,
나 역시 뭔가 불편하고, 괜히 몸을 조금 사리게 될꺼야.
평소엔 친하게 지내던 환자인데 그런 병을 앓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되려 피하고 싶기도 하겠지.
하지만, 올바른 직업의식은 아니란 걸, 자기는 간호사니까 말이야. 파이팅하길 바랄께.”
전 짧은 대답을 하며 수간호사실을 나섰어요.
나서며 저는 여러 생각들이 떠올랐지요.
왜 저는 복잡한 마음이 생기려는 걸 막지 못했을까요.
그냥 환자일 뿐이죠. 물론 제겐 의미가 남다른 환자지만요.
환자가 어디가 아프고, 무엇으로 고통 받는 지 사실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니까요.
간호사의 의무는 어떤 환자가 어떤 병으로 고통을 받든,
최선의 노력으로 그 환자를 보필하는 건데 말이에요.
설령, 에이즈에 걸린 환자가 피를 뿜어대는 상황에서도 그 환자를 케어해야 한다면,
거리낌이 없어야하죠.
한데도 저는 부끄럽게도 어떤 혼란을 느끼고 말았답니다.
몸을 사리려 했고, 평소 친하게 지내던 제 담당환자 였기 문에,
더더욱 어떤 실망을 느낀 것도 같았어요.
3년 전, 간호인으로써 나이팅게일 선서문을 읊을 때,
나에게 간호를 받은 모든 사람들의 안녕을 위하여 헌신하겠다라는 이 문장,
가장 마음에 와 닿은 문장이자, 평생 간호인으로써 이 문장을 가슴에 새기며 살겠다고
다짐한 게 어제 같았는데…..
바보같이 하루 아침에 저버리려 한 제 자신이 조금 우스워 보였죠.
전 원무데스크 제 자리에 앉아, 수간호사님이 방금 전에 해주신 말씀을 머리 속으로 되뇌이며
착잡했던 마음을 나무라면서도 다독였어요.
‘맞아, 앞으로 어떤 환자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르는데, 이 정도의 환자로
나약해지거나 초심을 잃으면 안돼. 더 잘하려 하지도 말고, 그렇다고 물러서지도 말자.
딱 지금처럼, 딱 지금처럼만 환자를 잘 보필해나가는 거야.’
저는 다음이 다시금 여물어 가는 걸 느끼며, 내 담당환자의 파트를 들고, 다시 병실로 향했어요.
최대한 자연스러운 발걸음과, 평소와 같은 환한 웃음으로 환자를 보러 갔어요.
오후의 병실에는 저녁보다는 활기가 찾아 들어오고 있었어요.
6개의 병상에는 각기 환자들이 본인 나름대로 한가한 오후를 보내고 있었죠.
어떤 환자는 눈을 꼭 감고 음악을 들으며 흥얼거렸고,
또 어떤 환자는 창 밖을 내다 보며 흔들리는 나무와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내려다 보고
있었으며, 그냥 누워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는 환자도 있었죠.
그런 상황에서 그는 인상을 찌푸리며 책을 읽고 있더군요.
그는 병실로 누군가 들어서자 살짝 고개를 돌리곤 저란 걸 확인하고는
평소보다 더 저를 밀어내는 듯한 느낌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저는 그의 태도에 연연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다른 병상에 환자들에게
불편한 건 없으시냐고 체크를 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에게 다가갔죠.
“….. 간 밤에 잠을 푹 주무셨어요?”
그는 알아 차리지도 못할 만큼 살짝 고개를 끄덕였어요.
그 때 전 계속 머릿속으로 ‘평소처럼 하자, 평소처럼’ 이라고 생각했어요.
전 평소처럼 빙긋 웃었지요.
“오늘 컨디션은 어때요?”
“괜찮아요.”
여전히 책에 몰두하며 대충 대답을 하시더라구요.
저는 무례가 되지 않을 한에서 보고 있던 책으로 손을 뻗었어요.
“환자분, 맥박 좀 볼께요. 괜찮으시죠?”
살며시 책을 덮으려는데 그가 뿌리치더군요.
그러면서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더니 저를 찬찬히 올려보았어요.
“심간호사님, 제 몸은 제가 잘 압니다. 간호사님이 괜한 호의로 불편하게만 안해주시면
저는 앞으로도 괜찮을 겁니다.”
그의 눈동자가 잠시나마 요동쳤지만 말을 마친 후론 굳게 입을 다문걸로,
의사표현을 정확히 하더군요.
저는 허리에 두 손을 착 올리고 불쾌한 감정을 호소하니 그가 저를 다시 쳐다 보더군요.
저는 이번에는 전략적으로 강하게 나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쏘아붙였어요.
“왜 이렇게 삐딱하게 나가시는 거에요?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실 거에요?”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를 돌리고 살짝 도리질을 하시더라고요.
“이봐요, 전,,,,,,”
“아뇨, 지금 환자분은 저를 곤란하게 만들고 있어요.
저는 최대한으로 환자분은 배려하며 최대한 열심히 보필하고 계시는데,
오늘 환자분은 저를 허무하게 하고 계시잖아요.”
저는 울컥하는 마음에 생각보다 강한 어조로 말을 하게 되었어요.
저 자신도 놀랄 정도로요.
그는 왠지 모르게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어요.
“이보세요, 심간호사님. 제 병원입원기록 보셨을 거 아닙니까?
원래라면 저를 벌레같이 쳐다보시고, 저를 피하셔야 되는 거 아닌가요?
저는 아주 악질 같은 놈이란 말입니다. 그런 제가 심간호사님의 호의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맞는 겁니까?”
그가 한 숨을 푹 내쉬었어요.
“말해보세요. 심간호사님이 제게 평소처럼 호의를 건네며, 거리낌없이
손을 잡고, 그렇게 향기로 저를 혼란시키시면 제 머릿 속에서
어떤 생각들이 떠오를지 이제 간호사님도 잘 아시겠죠. 그렇다면 제가 어떻게 해야하는 겁니까?”
그의 호소하는 목소리엔 슬픔이 담겨 있었습니다.
자기혐오와 좌절감, 회한 같은 것들이 가득 찬 눈물에 투영되어 내게 보이고 있었어요.
내게 답을 바라는 그의 눈이 내게 닿았어요.
저는 머릿 속으로 이제 가장 중요한 대답을 해야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잘 알고 있어요 환자분, 방금 전에 환자분 입원기록을 보고 오는 길이었어요.
맞아요. 충격 받았죠. 여기 환자분을 다시 보러 오는 게 망설여질 정도로요.
환자 분이 저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머리 끝까지 뻗쳤지만,
저는 최대한 의연해지려고 했어요.
편견의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환자분을 이해해야겠다,
제가 잘해서 환자분 마음에 조금이라도 변화가 생긴다면,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테니까. 그렇게 다짐하고 왔어요.”
저는 말하는 도중에도 서두르지 않고 한 템포를 쉬어가며, 극적인 연출을 하려고 했어요.
“환자분이 그 어떤 병을, 설령 에이즈에 걸렸더라도……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환자분에게 헌신할 거에요.”
이 문장을 끝으로 우리는 침묵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해보려 했어요.
그도 시선을 허공에 던져 놓은 채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는 듯 차분해지는 게 보였구요.
저는 그가 입을 열 때 까지 기다렸어요.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요.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그가 환자복의 제일 윗 단추 2개를 천천히 푸셨어요.
“…… 맥 좀 짚어주세요. 요즘 간간히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거 느껴지거든요.”
저는 아무 말 없이 그의 앞섬을 조금 헤쳐 그의 가슴 여러 곳에 청진기를 가져다 댔어요.
그의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어요.
저는 환자 특이사항란에 적으며 말했어요.
“지금은 안될 거 같아요. 다음에 재도록 할께요.”
“그리고 하루종일 책을 읽으려 노력하고 있어요.
책이라도 읽으면 그래도 나쁜 생각들이 잘 안들거든요.
해서 약물을 조금만 줄여주셨으면 해요.
약보다는 제 스스로 컨트롤 하도록 노력해볼께요.”
그는 그런 식으로 화해와 의지하고 싶다는 제스처를 해왔지요.
제게 그의 몸에 대해서 얘기를 하더라구요.
“네, 그러한 환자분의 생각을 의사선생님께 전해드릴께요.
아마 원하시는 대로 잘 될거에요.”
저는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항상 당신 편이에요.”
빙긋 웃으니 그가 발그레해지는 것 같았어요.
“고마워요. 마음을 열어주셔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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