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KED AGENT : 25. Vacation.
은주를 처리한 지윤은 다시 한 번 물을 마시며 정신을 차린 뒤 지하실을 둘러보았다.
마침 무기로 쓸 만한 막대기가 있었다. 검도를 충분히 익힌 지윤이 사용하기에 적당한 것이었다.
지윤은 밖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사도님들 들어오세요.”
그러자 지하실의 문이 열리며 2명의 사도가 들어왔다.
지윤은 은주를 향해 섰고 들어 온 두 명은 당연히 그것이 은주인줄 알고 그녀에게 다가오며 자백을 했는지 물었다.
“얍~”
“얍!”
두 번의 기합과 함께 지윤의 움직임이 있었고 두 명의 사도는 얼굴에 지윤의 막대기 공격을 받고 얼굴을 감싸며 넘어졌다.
지윤은 두 사람을 교대로 막대기로 공격하였는데 결코 사정을 두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을 내리쳤다.
“으악!”
“악~”
두 남자는 얼굴과 머리에 쏟아지는 지윤의 공격에 데굴데굴 구르며 정신을 못 차렸고 지윤은 그들이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계속 막대기를 휘둘렀다.
지하실 바닥에는 사도들이 흘린 피로 흥건했고 두 사도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지윤도 지쳐서 잠시 막대기에 의지해 간신히 서 있을 정도로 심하게 그들을 공격한 것이었다.
그 때 은주가 정신을 차렸고 자신이 알몸으로 묶인 것을 알았다.
지윤은 은주에게 다가갔고 은주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도들을 보고 사태를 파악했는지 살려달라며 사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너희들한테 말 안한 게 있어.”
“사.....살려 줘. 넌 경찰이니까 국민을 헤치지 못하잖아.”
“나 사실 경찰이 아니야.”
“뭐?”
“난 경찰이 아니고 너희 같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을 제거하는 특수요원이야.”
은주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지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이제부터 여기를 없애 버릴 거야. 그래야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밝아지지.”
말을 마친 지윤은 들고 있던 막대기로 은주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고 은주는 고개를 푹 숙이며 다시 한 번 기절을 했다.
지윤은 지하실을 나와 1층 김기주의 사무실로 갔다. 거기에는 외부로 연결 된 전화가 있었다.
버튼을 누르니 강영호가 받았고 지윤은 증거를 확보했다고 말하며 출동해 달라고 하였다.
그 때 사도 한 명이 사무실의 문을 열었고 지윤은 그 사도와 싸우게 되었다.
고문을 당해 힘이 없어서인지 그에게 몇 대 맞았고 심하게는 그가 휘두른 의자에 얼굴을 맞아 지윤의 광대뼈가 부러졌고 코에서는 피가 쏟아졌다.
하지만 지윤이 겨우겨우 힘을 내서 발차기로 남자의 급소중에 급소인 자지를 차는 바람에 그는 두 손으로 자지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 위로 지윤이 마지막 힘을 다해 머리를 내리치면서 그를 이길 수 있었고 마지막엔 암바로 그의 팔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10분도 안돼서 강영호와 요원들이 재단으로 들이 닥쳤다.
요원들은 재단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체포했고 부상이 심한 지윤을 차에 태웠다.
“성주님이라는 자와 김기주라는 자가 외부에 나가 있어요.”
“알아. 어제도 나갔었는데 같은 곳을 가더군. 지금쯤 거기도 급습해서 모두 체포했을 거야.”
“네.”
“K5 수고했어. 몸이 말이 아니군. 자네가 준 증거로도 충분히 이들을 체포할 수 있더군.”
“여기 지하실에서 5명을 죽였다고 했어요. 아마도 1층 사무실을 찾아보면 녹화된 영상이 있을 거예요.”
“그래. 이제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K5는 푹 쉬도록 해.”
“네.”
지윤이 강영호와 대화를 하는 사이 한 요원이 와서 동영상 CD를 확보 했다고 하였다.
지윤은 그 말을 듣고 안심이 되었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강영호가 담요를 덮어주는 사이 지윤은 깊은 잠이 들었고 강영호는 지윤의 옆에서 그녀를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
“아! 여기가 어디지?”
지윤은 밝은 햇살에 눈이 부셔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하얀색이고 지신은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
그제야 지윤은 자신이 임무를 완수하고 정신을 잃었던 생각이 났다. 온 몸 구석구석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30시간 넘게 고문을 당하고 싸움까지 했으니 몸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후후. 깼군.”
지윤의 눈앞에 국장님과 영호가 나타났다.
“국장님. 교관님.”
“그래. K5. 몸은 어때?”
“잘 모르겠어요.”
지윤의 얼굴은 붕대가 감겨 있었고 몸에도 온통 붕대였다.
“지윤아, 수고했다. 네 덕분에 오라이진리교를 완전히 소탕했어. 증거도 완벽했고 이제 그놈들도 꼼짝할 수 없게 됐어. 더구나 그놈들 뒤를 봐주던 검찰과 국회의원들까지도 모두 잡아들였어. 네가 준 사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거든.”
“네. 그런데 제가 얼마나 잔거에요?”
“잔게 아니라 마취를 했던 거야. 수술을 했거든.”
“수술이요?”
“그래. 얼굴이 많이 망가졌었어. 광대뼈도 무너지고 코뼈도 부러지고 온 몸에 상처가 심하더라. 고생했어.”
“오늘이 며칠인데요?”
“3일 됐어. 그동안 안 깨어나서 걱정했어.”
생각보다 지윤의 부상은 심각했었다. 국장의 지시로 국내 최고의 의료진이 지윤을 수술하고 치료했다.
“어쩔 수 없이 성형수술도 했고 몸의 타박상도 치료하고 특히 여자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항문도 상처가 심했어. 아무튼 수술은 모두 잘 됐고 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돼.”
“네.”
"우선 몸부터 추스르고 복귀를 해. 물론 휴가도 듬뿍 줄게.“
“네.”
그로부터 지윤은 수술한 곳이 모두 아물고 정상이 될 때까지 무려 3개월이 걸렸다.
특히 얼굴이 많이 상해서 했던 성형수술은 지윤의 미모를 한층 더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일부러 한 성형수술은 아니지만 전부다 더 예뻐진 모습에 지윤은 만족을 했고 기관으로 복귀를 하는 동안 자신의 얼굴만 거울로 보고 있었다.
“하하하. K5 왔군.”
“넷. K5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를 신고합니다.”
“그래그래. 지난 번 보다 많이 좋아졌군. 이제 몸은 괜찮고?”
“네. 완벽합니다.”
“잘된 일이야. 하하하.”
국장은 진심으로 지윤을 반기고 있었다.
요원이 되자마자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어려운 임무를 두 번씩이나 훌륭하게 완수한 지윤이 자랑스러웠다. 옆에 서 있는 강영호도 마찬가지 표정이었다.
“자, 이거 받게.”
“이게 뭡니까?”
“정부 기관에서 주는 특별훈장이야.”
“훈장이요?”
“그래. 우리 기관 자체가 은밀한 기관이라 대놓고 표창은 못주지만 이건 분명 나라에서 주는 훈장이야.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받아.”
“네. 감사합니다.”
“어려운 임무를 완수한 만큼 특별 휴가를 주겠네. 3개월의 치료 기간이 걸렸으니 그만큼은 줘야겠지. 휴가비도 두둑이 챙겨 주지.”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할 필요 없어. 자넨 충분히 받아도 될 자격이 있어.”
지윤은 국장에게서 100일의 휴가와 하루 5만원씩 계산 된 휴가비 500만원을 받았다.
물론 그동안 임무수행을 하느라 받지 못했던 월급도 받았다. 휴가비에 월급 그리고 수당까지 모두 합하니 거의 3000만원이 되는 거금이었다.
휴가를 받고 서울로 온 지윤은 그 돈을 일단 은행에 넣은 뒤 호텔에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기막힌 운명이었다.
절친인 민경과 목포에서 강간을 당하고 그들에게 복수를 한 뒤 교도소에 들어가고 다시 E.C.U의 요원으로 뽑혀 두 가지 사건을 해결한 것을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대학을 다니던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 사이 수많은 남자들과 섹스를 하였고 섹스의 희열을 만끽하며 사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더구나 이번 임무를 통해서 부상도 입었지만 덕분에 성형수술까지 해서 더 예뻐진 모습에 지윤은 스스로도 믿기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음을 되새기고 있었다.
‘100일 휴가라. 호호. 뭘 하지?‘
원래 휴가라는 것이 돈이 뒷받침 되면 즐기기 딱 좋은 것이었다. 지윤이 지금 그랬다.
휴가비와 월급도 그렇지만 지난 번 목포에서 도끼로부터 뺏은 2억원의 돈도 있으니 지윤이 하고 싶은 일은 뭐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석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지윤의 유일한 가족인 남동생 지석이가 불현 듯 떠올랐다. 벌써 3년째 연락도 못하고 지낸 것이었다.
지석은 부모님 사고 후 미국에 살고 있는 이모님 댁으로 가서 공부를 하였는데 이제 대학 3학년이 되었을 것이었다.
지윤은 지석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100일의 휴가라면 미국에 충분히 다녀 올 시간이라 생각하고 미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마침 이모님이었다.
“이모.”
“어머. 지윤이니?”
“응. 이모 잘 지냈어?”
“이것아. 그동안 연락도 안하고 어떻게 지냈어?”
“난 잘 지내. 이모는?”
“여기도 잘 지내.”
“이모, 지석이는?”
“지석이?”
“응.”
“지석이는 지금 여기 없어.”
“어디 갔는데?”
“너한테 아무리 연락을 하려해도 연락이 돼야지. 지석이는 지금 아이티에 가 있어.”
“아이티? 거긴 왜?”
“지석이가 의대 갔잖아. 참, 넌 몰랐겠구나. 연락이 됐어야 말이지.”
“미안해 이모.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어.”
“지석이가 의대 들어가서 3학년 마치고 지금은 봉사단체에 들어가서 아이티에 갔어. 1년 정도 있다가 와서 다시 공부할거야.”
“어머, 그럼 지석이가 의사가 되는 거야?”
“그래. 이것아.”
“너무 잘 됐다. 그런데 학비는 어쩌고? 의대면 학비가 많이 들잖아.”
“자기가 벌어서 다녔는데 고생 많이 했지. 사실 지금 휴학하고 봉사활동 간 것도 학비가 부족해서이기도 해. 이모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이모도 쉽지 않았어.”
“아냐, 이모. 이모가 지금까지 해 준 것만 해도 너무 고마운데 뭘.”
지윤은 지석과 이모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지윤은 지석이 더 보고 싶어졌고 당장이라도 아이티로 날아가고픈 마음이었다.
이모와의 통화를 마친 지윤은 당장 여행사에 전화를 해서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마침 내일 오전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었다. 비행기는 한 번에 아이티로 가는 것이 아니고 미국 마이애미와 도미니카 공화국을 경유해서 가는 것이었다.
예약을 마친 지윤은 다시 국장에게 전화를 했다. 해외를 나가는 것이니 보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국장은 조심히 다녀오고 3일에 한 번씩은 보고를 하라고 하였고 지윤은 알았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아침 지윤은 인천 공항으로 나갔고 마이애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12시간을 넘어서 마이애미에 도착한 지윤은 아이티 입국을 위해서 예방 접종을 6개나 해야 했다.
4시간을 기다린 끝에 도미니카 공화국 비자를 발급받아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다시 5시간을 기다린 끝에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도착을 했고 지석이 있다는 꺄바헤라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가니 30분 정도 걸렸다.
꺄바헤는 산호초가 해변에 아름답게 펼쳐진 말 그대로 천국 같은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정말 예쁘다.”
지윤은 바다를 바라보며 절로 감탄사가 나왔고 25시간에 걸친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할 정도로 그 광경은 아름다웠다.
이런 곳이 지진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와 함께 폐허가 됐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지진 이후에 외국인 여행객들의 발길 끊기자 아이티 정부에서는 꺄바헤를 외국인특별 관광지로 정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국인이 오면 꺄바헤에 머물게 하였다.
이곳은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하는 곳이라 빠르게 복구를 한 것이고 전체적으로 깨끗했지만 도시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대략 한국 기준으로 보면 읍 같은 곳이었다.
지윤이 여행용 가방을 끌며 묵을 곳을 고르기 위해 걷고 있는데 소년으로 보이는 흑인 남자가 지윤에게 말을 걸었다.
지윤은 훈련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영어가 익숙했지만 소년은 서투른 발음으로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하기에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소년은 지윤에게 호텔을 찾는지 물었고 지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해변에 방갈로가 있는데 가자는 것이었다.
지윤은 호텔에 묵을 생각을 했었는데 방갈로라는 말을 듣자 바닷가의 방갈로가 낭만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지윤의 가방을 달라고 한 뒤 앞장서서 걸었고 지윤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반바지에 반팔 차림의 소년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전형적인 흑인이었다.
키가 지윤보다 약간 작아서인지 귀엽게 느껴지는 소년이었다. 아마도 여행 온 손님들을 안내하며 돈을 버는 것 같았다.
“여기서 금방. 금방 걸어가.”
“여기 외국인들 많아?”
“응. 많아. 어디서 왔어?”
“코리아. 알아?”
“몰라.”
“혹시 미국에서 의료봉사 온 사람들 알아?”
“아! 알아.”
“어디 있어?”
“지금 없는데. 어디 갔어.”
“어디?”
“그건 몰라.”
“어디로 갔는지 알아볼 수 있어?”
“응. 삼촌한테 물어볼게.”
“응. 그런데 너 이름이 뭐야? 몇 살이고?”
“나 타셈. 15살.”
“15살인데 학교 안다녀?”
“응. 여기 학교 없어. 멀어.”
“그렇구나. 난 지윤이야.”
타셈은 지윤의 이름을 어려워했다. 그래서 지윤은 그냥 지니라고 부르게 하였다.
“지니는 나이 많아?”
“몇 살로 보여?”
“동양여자는 구별이 안 돼.”
“24살이야.”
“응. 그 사람들 만나려고 온 거?
“응. 거기에 내 동생이 있거든.”
“알았어. 이따가 삼촌한테 물을게. 방갈로 저기.”
타셈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바닷가에 방갈로가 여러 개 있는데 영화나 화보로 보던 방갈로와 비슷하게 꾸며놓은 것이 전형적인 관광지의 방갈로였다.
타셈은 그 중에서 제일 멀리 있는 방갈로로 지윤을 데리고 갔다.
지윤은 마지막 방갈로까지 가는 동안 다른 방갈로가 모두 비어있는 것을 보고 타셈에게 물었다.
“다른 손님들은 없어?”
“요즘은 없어. 이제는 손님이 많이 안 와.”
지진이 난 이후로 방갈로는 손님이 많이 줄었고 대부분 호텔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오는 사람들은 주말에만 온다고 하였다.
사실 지진만 안 난다면 호텔보다는 방갈로가 더 좋은 선택인데 다들 겁을 내는 것이었다.
지윤으로서는 오래 머물 것이 아니기에 방갈로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여기가 제일 좋아.”
타셈의 말대로 방갈로는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는 물론이고 택시에서 내려 걸어오면서 봤던 지저분하고 헐벗은 사람들이 다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방갈로 안은 방이 따로 없었고 침대와 간단한 욕실로 꾸며진 원룸 같았다.
구석에 작은 냉장고가 있고 천장에는 선풍기가 천천히 돌고 있었고 침대 옆에 전등 하나만 있는 것이 다였다.
“하루에 100불. 며칠 지내?”
지윤은 지석을 만나지 못했고 지석이 언제 올지 몰라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미국에서 온 의료봉사 팀이 언제 오는지 봐서 정할게. 최소한 그때까지는 있을 거야.”
“응. 선불. 선불.”
지윤은 우선 일주일 비용을 냈다. 식사는 해변에 있는 식당에 가서 먹으면 된다고 하였다.
지윤이 짐을 푸는 동안 타셈은 받은 돈을 삼촌에게 주고 온다며 나갔다. 여기는 타셈의 삼촌이 운영하는 방갈로인 것이었다.
지윤은 방갈로 문 앞의 흔들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방갈로 아래로는 바닷물이 있는데 깊어봐야 무릎 정도로 보였다.
지윤은 수영복이 없어 당장 수영하기가 어려우니 식사를 하고나면 가게에 가서 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서인지 아니면 흔들의자가 편해서인지 지윤은 금방 골아 떨어졌고 타셈이 흔들어 깨울 때까지 1시간 정도를 푹 잤다.
“알아왔어. 미국 의료봉사 팀.”
“응. 어디래?”
“그 사람들 베레트에 갔데.”
“베레트? 거기가 어디야? 여기서 멀어?”
“응. 타셈도 안 가봤어. 산을 걸어가야 해. 3일 걸려.”
타셈이 설명을 한 것을 종합하면 미국 의료봉사 팀은 여기서 3일 정도 걸어서 가야 하는 산 너머의 시골이었다.
의료시설이 전혀 없는 곳이고 전문 안내원이 없으면 찾아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지석이 의대에 다니고 이런 곳에 와서 봉사활동까지 한다니 지윤은 너무나 행복한 마음이었다.
든든하게 자라 준 지석이 고마웠고 그렇게 키워준 이모도 고마웠다.
“언제 온데?”
“2주 지나야 온데.”
“2주?”
지윤은 생각보다 길게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왔으나 3년 넘게 못 본 동생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2주일이 그리 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윤은 2주 동안 여기서 지내면서 의료봉사 팀을 기다리기로 생각했는데 그럴러면 가이드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가이드는 지금 눈앞에 있는 타셈이 적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셈. 그러면 나 여기서 2주 이상 지낼 건데 내 심부름 잘 해 줘야 해. 알았지?”
“응. 타셈이 그거 잘 해.”
“응.”
지윤은 지갑에서 10불짜리 한 장을 꺼내 타셈에게 주었다.
“뭐 사와야 해?”
“아니. 내가 타셈한테 주는 팁.”
“우와? 정말? 정말 10불을 다 주는 거야?”
“응. 대신 나한테 잘 해야 해. 그러면 나중에 더 줄 거야.”
“히히히. 타셈 너무 좋다. 나 지니가 시키는 거 다 할 거야.”
타셈이 삼촌이 운영하는 방갈로와 가게에서 일을 하며 받는 월급은 10불이었다.
한 달 월급을 팁으로 받았으니 타셈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윤은 배가 고팠고 타셈에게 식당 안내를 부탁하자 타셈은 신이 나서 앞장을 섰다.
은주를 처리한 지윤은 다시 한 번 물을 마시며 정신을 차린 뒤 지하실을 둘러보았다.
마침 무기로 쓸 만한 막대기가 있었다. 검도를 충분히 익힌 지윤이 사용하기에 적당한 것이었다.
지윤은 밖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사도님들 들어오세요.”
그러자 지하실의 문이 열리며 2명의 사도가 들어왔다.
지윤은 은주를 향해 섰고 들어 온 두 명은 당연히 그것이 은주인줄 알고 그녀에게 다가오며 자백을 했는지 물었다.
“얍~”
“얍!”
두 번의 기합과 함께 지윤의 움직임이 있었고 두 명의 사도는 얼굴에 지윤의 막대기 공격을 받고 얼굴을 감싸며 넘어졌다.
지윤은 두 사람을 교대로 막대기로 공격하였는데 결코 사정을 두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그들을 내리쳤다.
“으악!”
“악~”
두 남자는 얼굴과 머리에 쏟아지는 지윤의 공격에 데굴데굴 구르며 정신을 못 차렸고 지윤은 그들이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계속 막대기를 휘둘렀다.
지하실 바닥에는 사도들이 흘린 피로 흥건했고 두 사도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지윤도 지쳐서 잠시 막대기에 의지해 간신히 서 있을 정도로 심하게 그들을 공격한 것이었다.
그 때 은주가 정신을 차렸고 자신이 알몸으로 묶인 것을 알았다.
지윤은 은주에게 다가갔고 은주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사도들을 보고 사태를 파악했는지 살려달라며 사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너희들한테 말 안한 게 있어.”
“사.....살려 줘. 넌 경찰이니까 국민을 헤치지 못하잖아.”
“나 사실 경찰이 아니야.”
“뭐?”
“난 경찰이 아니고 너희 같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을 제거하는 특수요원이야.”
은주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지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이제부터 여기를 없애 버릴 거야. 그래야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밝아지지.”
말을 마친 지윤은 들고 있던 막대기로 은주의 머리를 강하게 내리쳤고 은주는 고개를 푹 숙이며 다시 한 번 기절을 했다.
지윤은 지하실을 나와 1층 김기주의 사무실로 갔다. 거기에는 외부로 연결 된 전화가 있었다.
버튼을 누르니 강영호가 받았고 지윤은 증거를 확보했다고 말하며 출동해 달라고 하였다.
그 때 사도 한 명이 사무실의 문을 열었고 지윤은 그 사도와 싸우게 되었다.
고문을 당해 힘이 없어서인지 그에게 몇 대 맞았고 심하게는 그가 휘두른 의자에 얼굴을 맞아 지윤의 광대뼈가 부러졌고 코에서는 피가 쏟아졌다.
하지만 지윤이 겨우겨우 힘을 내서 발차기로 남자의 급소중에 급소인 자지를 차는 바람에 그는 두 손으로 자지를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 위로 지윤이 마지막 힘을 다해 머리를 내리치면서 그를 이길 수 있었고 마지막엔 암바로 그의 팔을 부러뜨렸다.
그리고 10분도 안돼서 강영호와 요원들이 재단으로 들이 닥쳤다.
요원들은 재단에 있던 사람들을 모두 체포했고 부상이 심한 지윤을 차에 태웠다.
“성주님이라는 자와 김기주라는 자가 외부에 나가 있어요.”
“알아. 어제도 나갔었는데 같은 곳을 가더군. 지금쯤 거기도 급습해서 모두 체포했을 거야.”
“네.”
“K5 수고했어. 몸이 말이 아니군. 자네가 준 증거로도 충분히 이들을 체포할 수 있더군.”
“여기 지하실에서 5명을 죽였다고 했어요. 아마도 1층 사무실을 찾아보면 녹화된 영상이 있을 거예요.”
“그래. 이제부터는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K5는 푹 쉬도록 해.”
“네.”
지윤이 강영호와 대화를 하는 사이 한 요원이 와서 동영상 CD를 확보 했다고 하였다.
지윤은 그 말을 듣고 안심이 되었고 모든 것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자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강영호가 담요를 덮어주는 사이 지윤은 깊은 잠이 들었고 강영호는 지윤의 옆에서 그녀를 안쓰럽게 보고 있었다.
“아! 여기가 어디지?”
지윤은 밝은 햇살에 눈이 부셔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사방이 하얀색이고 지신은 환자복을 입고 침대에 누워있었다.
“아!”
그제야 지윤은 자신이 임무를 완수하고 정신을 잃었던 생각이 났다. 온 몸 구석구석이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거의 30시간 넘게 고문을 당하고 싸움까지 했으니 몸이 온전할 리가 없었다.
“후후. 깼군.”
지윤의 눈앞에 국장님과 영호가 나타났다.
“국장님. 교관님.”
“그래. K5. 몸은 어때?”
“잘 모르겠어요.”
지윤의 얼굴은 붕대가 감겨 있었고 몸에도 온통 붕대였다.
“지윤아, 수고했다. 네 덕분에 오라이진리교를 완전히 소탕했어. 증거도 완벽했고 이제 그놈들도 꼼짝할 수 없게 됐어. 더구나 그놈들 뒤를 봐주던 검찰과 국회의원들까지도 모두 잡아들였어. 네가 준 사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었거든.”
“네. 그런데 제가 얼마나 잔거에요?”
“잔게 아니라 마취를 했던 거야. 수술을 했거든.”
“수술이요?”
“그래. 얼굴이 많이 망가졌었어. 광대뼈도 무너지고 코뼈도 부러지고 온 몸에 상처가 심하더라. 고생했어.”
“오늘이 며칠인데요?”
“3일 됐어. 그동안 안 깨어나서 걱정했어.”
생각보다 지윤의 부상은 심각했었다. 국장의 지시로 국내 최고의 의료진이 지윤을 수술하고 치료했다.
“어쩔 수 없이 성형수술도 했고 몸의 타박상도 치료하고 특히 여자에게 할 말은 아니지만 항문도 상처가 심했어. 아무튼 수술은 모두 잘 됐고 했으니 걱정은 안 해도 돼.”
“네.”
"우선 몸부터 추스르고 복귀를 해. 물론 휴가도 듬뿍 줄게.“
“네.”
그로부터 지윤은 수술한 곳이 모두 아물고 정상이 될 때까지 무려 3개월이 걸렸다.
특히 얼굴이 많이 상해서 했던 성형수술은 지윤의 미모를 한층 더 예쁘게 만들어 주었다.
일부러 한 성형수술은 아니지만 전부다 더 예뻐진 모습에 지윤은 만족을 했고 기관으로 복귀를 하는 동안 자신의 얼굴만 거울로 보고 있었다.
“하하하. K5 왔군.”
“넷. K5 임무를 완수하고 복귀를 신고합니다.”
“그래그래. 지난 번 보다 많이 좋아졌군. 이제 몸은 괜찮고?”
“네. 완벽합니다.”
“잘된 일이야. 하하하.”
국장은 진심으로 지윤을 반기고 있었다.
요원이 되자마자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어려운 임무를 두 번씩이나 훌륭하게 완수한 지윤이 자랑스러웠다. 옆에 서 있는 강영호도 마찬가지 표정이었다.
“자, 이거 받게.”
“이게 뭡니까?”
“정부 기관에서 주는 특별훈장이야.”
“훈장이요?”
“그래. 우리 기관 자체가 은밀한 기관이라 대놓고 표창은 못주지만 이건 분명 나라에서 주는 훈장이야.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받아.”
“네. 감사합니다.”
“어려운 임무를 완수한 만큼 특별 휴가를 주겠네. 3개월의 치료 기간이 걸렸으니 그만큼은 줘야겠지. 휴가비도 두둑이 챙겨 주지.”
“감사합니다.”
“너무 감사할 필요 없어. 자넨 충분히 받아도 될 자격이 있어.”
지윤은 국장에게서 100일의 휴가와 하루 5만원씩 계산 된 휴가비 500만원을 받았다.
물론 그동안 임무수행을 하느라 받지 못했던 월급도 받았다. 휴가비에 월급 그리고 수당까지 모두 합하니 거의 3000만원이 되는 거금이었다.
휴가를 받고 서울로 온 지윤은 그 돈을 일단 은행에 넣은 뒤 호텔에 들어갔다.
생각해보면 기막힌 운명이었다.
절친인 민경과 목포에서 강간을 당하고 그들에게 복수를 한 뒤 교도소에 들어가고 다시 E.C.U의 요원으로 뽑혀 두 가지 사건을 해결한 것을 생각하니 꿈만 같았다. 대학을 다니던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그 사이 수많은 남자들과 섹스를 하였고 섹스의 희열을 만끽하며 사는 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더구나 이번 임무를 통해서 부상도 입었지만 덕분에 성형수술까지 해서 더 예뻐진 모습에 지윤은 스스로도 믿기지 못할 정도로 많은 일이 있었음을 되새기고 있었다.
‘100일 휴가라. 호호. 뭘 하지?‘
원래 휴가라는 것이 돈이 뒷받침 되면 즐기기 딱 좋은 것이었다. 지윤이 지금 그랬다.
휴가비와 월급도 그렇지만 지난 번 목포에서 도끼로부터 뺏은 2억원의 돈도 있으니 지윤이 하고 싶은 일은 뭐든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지석이는 잘 지내고 있을까?’
지윤의 유일한 가족인 남동생 지석이가 불현 듯 떠올랐다. 벌써 3년째 연락도 못하고 지낸 것이었다.
지석은 부모님 사고 후 미국에 살고 있는 이모님 댁으로 가서 공부를 하였는데 이제 대학 3학년이 되었을 것이었다.
지윤은 지석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100일의 휴가라면 미국에 충분히 다녀 올 시간이라 생각하고 미국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마침 이모님이었다.
“이모.”
“어머. 지윤이니?”
“응. 이모 잘 지냈어?”
“이것아. 그동안 연락도 안하고 어떻게 지냈어?”
“난 잘 지내. 이모는?”
“여기도 잘 지내.”
“이모, 지석이는?”
“지석이?”
“응.”
“지석이는 지금 여기 없어.”
“어디 갔는데?”
“너한테 아무리 연락을 하려해도 연락이 돼야지. 지석이는 지금 아이티에 가 있어.”
“아이티? 거긴 왜?”
“지석이가 의대 갔잖아. 참, 넌 몰랐겠구나. 연락이 됐어야 말이지.”
“미안해 이모.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었어.”
“지석이가 의대 들어가서 3학년 마치고 지금은 봉사단체에 들어가서 아이티에 갔어. 1년 정도 있다가 와서 다시 공부할거야.”
“어머, 그럼 지석이가 의사가 되는 거야?”
“그래. 이것아.”
“너무 잘 됐다. 그런데 학비는 어쩌고? 의대면 학비가 많이 들잖아.”
“자기가 벌어서 다녔는데 고생 많이 했지. 사실 지금 휴학하고 봉사활동 간 것도 학비가 부족해서이기도 해. 이모가 도와주고 싶었지만 이모도 쉽지 않았어.”
“아냐, 이모. 이모가 지금까지 해 준 것만 해도 너무 고마운데 뭘.”
지윤은 지석과 이모를 생각하니 눈물이 나왔다. 지윤은 지석이 더 보고 싶어졌고 당장이라도 아이티로 날아가고픈 마음이었다.
이모와의 통화를 마친 지윤은 당장 여행사에 전화를 해서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마침 내일 오전에 출발하는 비행기가 있었다. 비행기는 한 번에 아이티로 가는 것이 아니고 미국 마이애미와 도미니카 공화국을 경유해서 가는 것이었다.
예약을 마친 지윤은 다시 국장에게 전화를 했다. 해외를 나가는 것이니 보고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국장은 조심히 다녀오고 3일에 한 번씩은 보고를 하라고 하였고 지윤은 알았다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다음 날 아침 지윤은 인천 공항으로 나갔고 마이애미로 향하는 비행기를 탔다.
12시간을 넘어서 마이애미에 도착한 지윤은 아이티 입국을 위해서 예방 접종을 6개나 해야 했다.
4시간을 기다린 끝에 도미니카 공화국 비자를 발급받아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다시 5시간을 기다린 끝에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 도착을 했고 지석이 있다는 꺄바헤라는 곳까지 택시를 타고 가니 30분 정도 걸렸다.
꺄바헤는 산호초가 해변에 아름답게 펼쳐진 말 그대로 천국 같은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정말 예쁘다.”
지윤은 바다를 바라보며 절로 감탄사가 나왔고 25시간에 걸친 여행의 피로를 말끔히 가시게 할 정도로 그 광경은 아름다웠다.
이런 곳이 지진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 피해와 함께 폐허가 됐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지진 이후에 외국인 여행객들의 발길 끊기자 아이티 정부에서는 꺄바헤를 외국인특별 관광지로 정했고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국인이 오면 꺄바헤에 머물게 하였다.
이곳은 외국인 관광객을 맞이하는 곳이라 빠르게 복구를 한 것이고 전체적으로 깨끗했지만 도시라고 하기엔 부족하고 대략 한국 기준으로 보면 읍 같은 곳이었다.
지윤이 여행용 가방을 끌며 묵을 곳을 고르기 위해 걷고 있는데 소년으로 보이는 흑인 남자가 지윤에게 말을 걸었다.
지윤은 훈련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한 덕분에 영어가 익숙했지만 소년은 서투른 발음으로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화를 하기에 크게 불편할 정도는 아니었다.
소년은 지윤에게 호텔을 찾는지 물었고 지윤이 고개를 끄덕이자 해변에 방갈로가 있는데 가자는 것이었다.
지윤은 호텔에 묵을 생각을 했었는데 방갈로라는 말을 듣자 바닷가의 방갈로가 낭만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은 지윤의 가방을 달라고 한 뒤 앞장서서 걸었고 지윤도 그의 뒤를 따라갔다.
반바지에 반팔 차림의 소년은 까무잡잡한 피부의 전형적인 흑인이었다.
키가 지윤보다 약간 작아서인지 귀엽게 느껴지는 소년이었다. 아마도 여행 온 손님들을 안내하며 돈을 버는 것 같았다.
“여기서 금방. 금방 걸어가.”
“여기 외국인들 많아?”
“응. 많아. 어디서 왔어?”
“코리아. 알아?”
“몰라.”
“혹시 미국에서 의료봉사 온 사람들 알아?”
“아! 알아.”
“어디 있어?”
“지금 없는데. 어디 갔어.”
“어디?”
“그건 몰라.”
“어디로 갔는지 알아볼 수 있어?”
“응. 삼촌한테 물어볼게.”
“응. 그런데 너 이름이 뭐야? 몇 살이고?”
“나 타셈. 15살.”
“15살인데 학교 안다녀?”
“응. 여기 학교 없어. 멀어.”
“그렇구나. 난 지윤이야.”
타셈은 지윤의 이름을 어려워했다. 그래서 지윤은 그냥 지니라고 부르게 하였다.
“지니는 나이 많아?”
“몇 살로 보여?”
“동양여자는 구별이 안 돼.”
“24살이야.”
“응. 그 사람들 만나려고 온 거?
“응. 거기에 내 동생이 있거든.”
“알았어. 이따가 삼촌한테 물을게. 방갈로 저기.”
타셈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바닷가에 방갈로가 여러 개 있는데 영화나 화보로 보던 방갈로와 비슷하게 꾸며놓은 것이 전형적인 관광지의 방갈로였다.
타셈은 그 중에서 제일 멀리 있는 방갈로로 지윤을 데리고 갔다.
지윤은 마지막 방갈로까지 가는 동안 다른 방갈로가 모두 비어있는 것을 보고 타셈에게 물었다.
“다른 손님들은 없어?”
“요즘은 없어. 이제는 손님이 많이 안 와.”
지진이 난 이후로 방갈로는 손님이 많이 줄었고 대부분 호텔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오는 사람들은 주말에만 온다고 하였다.
사실 지진만 안 난다면 호텔보다는 방갈로가 더 좋은 선택인데 다들 겁을 내는 것이었다.
지윤으로서는 오래 머물 것이 아니기에 방갈로에서 지내기로 하였다.
“여기가 제일 좋아.”
타셈의 말대로 방갈로는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 되어 있었다.
수도인 포르토프랭스는 물론이고 택시에서 내려 걸어오면서 봤던 지저분하고 헐벗은 사람들이 다니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방갈로 안은 방이 따로 없었고 침대와 간단한 욕실로 꾸며진 원룸 같았다.
구석에 작은 냉장고가 있고 천장에는 선풍기가 천천히 돌고 있었고 침대 옆에 전등 하나만 있는 것이 다였다.
“하루에 100불. 며칠 지내?”
지윤은 지석을 만나지 못했고 지석이 언제 올지 몰라 잠시 고민을 하다가 말했다.
“미국에서 온 의료봉사 팀이 언제 오는지 봐서 정할게. 최소한 그때까지는 있을 거야.”
“응. 선불. 선불.”
지윤은 우선 일주일 비용을 냈다. 식사는 해변에 있는 식당에 가서 먹으면 된다고 하였다.
지윤이 짐을 푸는 동안 타셈은 받은 돈을 삼촌에게 주고 온다며 나갔다. 여기는 타셈의 삼촌이 운영하는 방갈로인 것이었다.
지윤은 방갈로 문 앞의 흔들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방갈로 아래로는 바닷물이 있는데 깊어봐야 무릎 정도로 보였다.
지윤은 수영복이 없어 당장 수영하기가 어려우니 식사를 하고나면 가게에 가서 사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긴 시간 비행기를 타고 와서인지 아니면 흔들의자가 편해서인지 지윤은 금방 골아 떨어졌고 타셈이 흔들어 깨울 때까지 1시간 정도를 푹 잤다.
“알아왔어. 미국 의료봉사 팀.”
“응. 어디래?”
“그 사람들 베레트에 갔데.”
“베레트? 거기가 어디야? 여기서 멀어?”
“응. 타셈도 안 가봤어. 산을 걸어가야 해. 3일 걸려.”
타셈이 설명을 한 것을 종합하면 미국 의료봉사 팀은 여기서 3일 정도 걸어서 가야 하는 산 너머의 시골이었다.
의료시설이 전혀 없는 곳이고 전문 안내원이 없으면 찾아갈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이었다.
지석이 의대에 다니고 이런 곳에 와서 봉사활동까지 한다니 지윤은 너무나 행복한 마음이었다.
든든하게 자라 준 지석이 고마웠고 그렇게 키워준 이모도 고마웠다.
“언제 온데?”
“2주 지나야 온데.”
“2주?”
지윤은 생각보다 길게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나왔으나 3년 넘게 못 본 동생을 만난다고 생각하니 2주일이 그리 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윤은 2주 동안 여기서 지내면서 의료봉사 팀을 기다리기로 생각했는데 그럴러면 가이드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 가이드는 지금 눈앞에 있는 타셈이 적당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셈. 그러면 나 여기서 2주 이상 지낼 건데 내 심부름 잘 해 줘야 해. 알았지?”
“응. 타셈이 그거 잘 해.”
“응.”
지윤은 지갑에서 10불짜리 한 장을 꺼내 타셈에게 주었다.
“뭐 사와야 해?”
“아니. 내가 타셈한테 주는 팁.”
“우와? 정말? 정말 10불을 다 주는 거야?”
“응. 대신 나한테 잘 해야 해. 그러면 나중에 더 줄 거야.”
“히히히. 타셈 너무 좋다. 나 지니가 시키는 거 다 할 거야.”
타셈이 삼촌이 운영하는 방갈로와 가게에서 일을 하며 받는 월급은 10불이었다.
한 달 월급을 팁으로 받았으니 타셈이 좋아하는 것은 당연했다.
지윤은 배가 고팠고 타셈에게 식당 안내를 부탁하자 타셈은 신이 나서 앞장을 섰다.
최고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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