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희씨의 눈물은 어느새 말라있었다. 나를 빤히 보는 경희씨의 눈엔 이미 사라에 대한 미안함 같은 건 없었다. 경희씨의 이런 변모를 지켜보면서 난 정이 떨어지고 말았다. 여자들의 이런 모습은 정말 진절머리가 난다. 여자든 남자든 눈물은 큰 힘이 된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힘을 가지게 되는 건 그 속에 가득 진정성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물로 자기에게 유리한 상황을 만든 후에 보이는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것같은 영활함은 그 눈물의 진정성만큼 아니 그 몇 배의 배신감을 느끼게 한다.
"저기요. 선배님."
"아뇨. 제가 먼저 말을 할게요. 경희씨랑 불편해 지는 게 싫어요. 그래서 전 거절을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날 좋아한다면, 그렇게 해요. 그래도 제 마음까지 어쩔 생각은 하지 마요. 그런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각자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경희씨는 경희씨 마음대로, 난 내 마음대로. 어건 어때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전."
"내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솔직해지지 않으면 관계의 발전이 없어요. 내가 먼저 이야기 하죠. 솔직히 방금전까지 내게, 그리고 민영이에게 미안하다고 펑펑 울었던 경희씨가 갑자기 절 좋아한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기도 하고, 그 마음을 믿지 못하겠어요. 그래도 경희씨와는 계속 봐야 할 사이니까, 경희씨가 절 좋아하는 마음까지 거절하는 건 옳지 못한 것 같아서요. 기회를 주는 의미에요. 이건."
"선배님... 민영씨에게는.. 진짜 미안해요. 그런데, 그 기회라는 건 뭐..에요?"
"우선 이렇게 하죠. 하루 한 가지씩, 경희씨가 제게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세요. 일단 그렇게 하죠."
"선배님께 어떤 요구를 할 수도 있는 건가요?"
"음.. 그건 할 수도 있지만, 제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면, 하지 않을수도 있는 걸로 하죠. 지금 경희씨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죠?"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던, 경희씨는 곧 내게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내 귀에 대고 조용조용 말하기 시작했다.
"선배님. 어차피 얼굴로는 그 민영씨를 이길 수 없겠죠. 하지만, 민영씨는 이미 오래전에 선배님의 곁을 떠난 사람이고, 전 바로 선배님의 옆에 있어요. 당장 키스라도 하고 싶지만, 지금은 키스를 아무리 잘해도 선배님의 마음 속 상처를 건드린 절 좋아해줄 것 같지 않아요. 그냥 제 이야기를 할까 해요. 선배님은 절 잘 모르실테니까요. 회사에서의 전 그냥 얌전하지만, 스물 여섯의 전 매번 절망을 거듭한 우울한 여자에요. 전 진짜 작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는 걸 이미 일찍 깨달았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무협출판사에 있는 건데도, 매번 상처를 입어요. 한 눈 아래에 있던 무협작가들도 저보다 글솜씨가 좋다는 걸 알게 되면 괜히 짜증이 나죠. 그것을 풀지 못하니까 속으로 속으로 자꾸만 내 안에서 이상한 여자를 키우게 됐어요. 지배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의 내가 내 안에 있어요. 겉으로는 순하고 착한 여자, 속 마음엔 그 반대의 여자를 가지게 됐죠."
경희씨의 말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나도 내내 고민하고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난 무협작가가 되고 싶어서, 무협지를 낸 것이 아니었다. 그냥 소설을 쓰고 싶었고, 순수문학으로 먹고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무협작가가 됐고, 무협작가로 살기에는 재능이 모자라서 무협출판사의 직원이 됐다. 만약, 온전히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됐다면 난 회사 같은 곳에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갈고 닦아서 되지 않은 영역은 어디에나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100미터를 10초에 달릴 수 없는 것처럼, 글쓰기에도 재능은 분명히 존재한다. 남의 글을 읽고, 그것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적절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재능을 타고 났지만, 내 글을 그렇게 쓸 수 없는 나도 출판사에서의 나와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전혀 다르다. 그런 갈등이 실제로 성격상에 변화를 주어서 자신안에 자신만의 여자를 키워냈다는 경희씨의 고백은 더더욱 나를 잡아끌었다. 껍질을 벗겨낸 그녀를 보고 싶었다.
"우 작가님은 나랑 잘 맞았어요. 그녀는 흔들릴 때마다 방향을 잃는 타입이어서, 누군가 강하게 잡아줘야 했거든요. 작업을 하는동안 나도 모르게 내안의 내가 나오고 말았고, 우 작가님도 자기 안의 자기가 나오고 말았죠. 키스를 하더군요. 사랑을 고백하면서요. 당연히 거절했지만, 눈물로 고백하는 우작가를 보니까 이상스럽게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씩 조금씩 그녀를 내 사람으로 만들었죠. 곤란한 짓을 시키고, 그것을 곤란해 하면서도 따르면서 우작가는 희열을 느꼈어요. 나는 나대로 그랬죠. 지금은 무슨 일을 시켜도 다 하는 사이가 됐어요."
경희씨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힘이 있었다. 경희씨는 이야기를 만드는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상황을 주도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난 경희씨가 만드는 세계에 내 몸을 맡겼다. 내가 눈을 떠버린다면, 모든 것은 깨지겠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경희씨가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듯 했다. 그리 길지 않은 침묵의 시간이었지만, 난 침을 몇번이나 삼킬 정도로 긴장하고 또 흥분했다. 딸깍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우 작가였다.
"나 왔어."
"선배님. 눈을 뜨시면 안되요. 잠깐만 그대로 있어요."
경희씨가 눈을 뜨려는 내 얼굴을 자기 손으로 살짝 덮으며 말했다. 경희씨의 손은 찼다. 자기도 긴장한 듯 보였다.
"우 작가님. 지금 여기서 바질 벗어요. 괜찮아요. 선배님은 눈을 뜨지 않을 테니까."
"어떻게..지금..여기서."
"싫으세요? 그럼 하지 마세요."
"아냐. 아냐. 할게. 나 할 수 있어."
버클을 푸는 소리가 나더니 곧 꽉낀 청바지를 벗는 소리가 났다.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내 얼굴을 덮었던 손이 떨어지더니 경희씨가 우작가 쪽으로 걸어가더니 우작가에게 다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가님. 이제 괜찮죠. 제가 작가님 눈을 가렸잖아요. 부끄러운 게 없어지죠? 눈을 감으면 원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응."
"그럼, 팬티도 벗어요. 괜찮아요. 난 작가님을 이미 알고, 선배님은 눈을 감고 있으니까요."
"알았어."
"잘했어요. 이제 조금 더 재미있는 걸 할꺼에요. 잠깐만요."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래 눈을 감고 있어서 청각이 굉장히 민감해져 있었다. 정말로 집중해서 우작가의 부끄러워 하는 숨소리부터, 경희씨가 스르륵 바지를 벗으면서 다리와 바지의 천이 미끄러지는 소리, 경희씨의 발바닥이 방바닥에서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작가님, 이제 눈을 떠도 돼요. 선배님도 저도 눈을 감았으니까요. 작가님만 눈을 뜬 거죠. 뭐가 보이죠?"
"경민씨. 그리고 경희씨."
"전 어떻게 하고 있죠?"
"바지를 벗고 있어."
"작가님이 제 그곳을 선배님께 말로 이야기해주세요. 전 부끄러워서 하지 못하겠고, 보여줄 수도 없어요. 하지만, 작가님은 작가님이니까 말로 선배님께 제 거길 보여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아...쌀 것 같아."
"우리 작가님 벌써 흥분하셨나보네. 만져줄까요?"
"어..아니..예.."
경희씨의 손이 우작가의 보지를 훑는 소리가 났다. 털이 비벼지는 소리. 조금씩 들리는 습기에 찬 소리. 질퍽거리는 소리가 났다. 너무 집중을 해서 그런지. 이상스럽게도 소리를 지르는 것이 분명한 우작가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주 선명하게 손가락이 보지구멍을 쑤시고 들어가는 소리만이 귓가를 맴돌았을 뿐이다. 정말 맹렬하게 흥분이 됐다. 섹스를 하는 것과는 또 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전화가 와 버렸다. 눈을 뜨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테리우스였다.
"형, 어디야?"
"네 사고 뒷수습이지. 임마. 우 작가님이랑 경희씨 방 잡아주고 있다."
"어서 들어와. 기분 나쁘단 말이야. 이런 날 혼자 있는 거 싫거든."
"알았어. 갈게."
"욕힌 건 미안하다고 전해 줘.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그랬다고."
테리우스랑 전화 통화를 하고 도중 옷을 입는 소리가 났다. 둘 모두였다. 허망했다. 이 기분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 난 눈을 떴고, 우작가도 경희씨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목례를 하고, 일어섰는데, 그 때까지 죽지 않은 발기한 내 자지에 둘 모두의 시선이 머무르는 걸 느꼈다.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돌아보며, 콘도의 복도를 걸었다.
별장으로 돌아왔더니, 테리우스가 밖에서 혼자 바베큐를 굽고 있었다.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지 식욕은 없었지만, 배는 고팠다. 차에서 내려 테리우스가 구워놓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먹는데, 테리우스가 물었다.
"형, 그런데, 뭐하다 이렇게 늦게 왔어? 방 잡는 거야 금방이잖아."
"한화 콘도에 우리 교회 콘도 회원권이 있어서, 그걸로 예약하고, 방잡아주고, 이틀 치 방값 계산해주고, 돌아오는데, 사라 생각이 나서..진짜 좋은 여자였잖아. 올라오면서 한 짓 또했지. 해안도로 달리면서 립스틱을 좀 따라불렀다. 그러다가 경희씨가 사과한다고 해서 되돌아가서 사과를 받아주고 왔지."
"뭐래?"
"지가 무슨 할 말이 있겠냐? 미안하다지 뭐. 진심은 아니었다고."
"걔, 형 좋아하지?"
"무슨 소리야?"
"좋아하는 것 같던데, 뭐. 저번에 내가 형이랑 사라 사귄거 이야기 했을 때랑, 형이랑 나랑 룸싸롱 다녔을 때 이야기 할 때보니까 얼굴이 하얗게 질리던데 뭐."
"귀신은 귀신이다. 어떻게 알았냐? 그렇지 않아도 고백하더라."
"어렸을 때부터 늘 수백명이상의 눈초리를 살았거든. 눈치엔 도가 텄지. 그래서."
"하긴, 목사님 아들들은 다 그렇더라. 우리교회 목사님 아들만 봐도 그렇고."
"형네 고향집 교회 목사님은 훌륭하신 분이라며, 그런 분 아들도 그런데, 반사기꾼에 진짜 재림예수인줄 아는 사람 아들로 살려니 얼마나 눈치를 많이 봤겠어. 형은 진짜로 믿고 있으니 상관이 없었는데, 난 늘 언제 들킬까 불안했거든. 그건, 그렇고 뭐라고 했어? 좋아한다는 여자한데."
"그냥 좋아하라고 했지. 난 내 마음대로 할 거라고."
"멋있네. 역시 이 이진명이 형이다. 안되겠다. 형. 이것만 먹고 일어나자. 내가 진짜 죽이는 데 데려갈께."
"어딜?"
"형이 들어나 봤을란가 모르겠네. 방석집이라고."
"그 여자들 데리고 노는 하드코어 업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지. 형도 그런데엔 가본 적 없잖아."
경희씨로 인해 고양된 심정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에, 테리우스의 제안은 싫지 않았다. 아니, 궁금했고, 해보고 싶었다. 난 허락만 한다면 아까의 그 체험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감성이 남다른 테리우스라면 더 재미있는 것들을 경험하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내가 상황을 주도한다면 더 마약같이 한꺼번에 뒤통수를 가득 때리는 큰 흥분을 모두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벗고 놀고 싶었다.
---------------
추천수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750이라니. 이런 추천수는 본 일이 없어서 당황스러운 한편 기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저기요. 선배님."
"아뇨. 제가 먼저 말을 할게요. 경희씨랑 불편해 지는 게 싫어요. 그래서 전 거절을 하지 않을 생각이에요. 날 좋아한다면, 그렇게 해요. 그래도 제 마음까지 어쩔 생각은 하지 마요. 그런 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잖아요. 각자 자기 마음대로 하는 거예요. 경희씨는 경희씨 마음대로, 난 내 마음대로. 어건 어때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전."
"내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솔직해지지 않으면 관계의 발전이 없어요. 내가 먼저 이야기 하죠. 솔직히 방금전까지 내게, 그리고 민영이에게 미안하다고 펑펑 울었던 경희씨가 갑자기 절 좋아한다고 하는 것도 이상하기도 하고, 그 마음을 믿지 못하겠어요. 그래도 경희씨와는 계속 봐야 할 사이니까, 경희씨가 절 좋아하는 마음까지 거절하는 건 옳지 못한 것 같아서요. 기회를 주는 의미에요. 이건."
"선배님... 민영씨에게는.. 진짜 미안해요. 그런데, 그 기회라는 건 뭐..에요?"
"우선 이렇게 하죠. 하루 한 가지씩, 경희씨가 제게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세요. 일단 그렇게 하죠."
"선배님께 어떤 요구를 할 수도 있는 건가요?"
"음.. 그건 할 수도 있지만, 제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면, 하지 않을수도 있는 걸로 하죠. 지금 경희씨가 제일 하고 싶은 게 뭐죠?"
잠시 고민하는 듯 하던, 경희씨는 곧 내게 눈을 감으라고 하더니 내 귀에 대고 조용조용 말하기 시작했다.
"선배님. 어차피 얼굴로는 그 민영씨를 이길 수 없겠죠. 하지만, 민영씨는 이미 오래전에 선배님의 곁을 떠난 사람이고, 전 바로 선배님의 옆에 있어요. 당장 키스라도 하고 싶지만, 지금은 키스를 아무리 잘해도 선배님의 마음 속 상처를 건드린 절 좋아해줄 것 같지 않아요. 그냥 제 이야기를 할까 해요. 선배님은 절 잘 모르실테니까요. 회사에서의 전 그냥 얌전하지만, 스물 여섯의 전 매번 절망을 거듭한 우울한 여자에요. 전 진짜 작가가 되고 싶었거든요. 노력해도 안되는 게 있다는 걸 이미 일찍 깨달았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 않아서 무협출판사에 있는 건데도, 매번 상처를 입어요. 한 눈 아래에 있던 무협작가들도 저보다 글솜씨가 좋다는 걸 알게 되면 괜히 짜증이 나죠. 그것을 풀지 못하니까 속으로 속으로 자꾸만 내 안에서 이상한 여자를 키우게 됐어요. 지배적이고 폭력적인 성향의 내가 내 안에 있어요. 겉으로는 순하고 착한 여자, 속 마음엔 그 반대의 여자를 가지게 됐죠."
경희씨의 말은 대단히 흥미로웠다. 나도 내내 고민하고 있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난 무협작가가 되고 싶어서, 무협지를 낸 것이 아니었다. 그냥 소설을 쓰고 싶었고, 순수문학으로 먹고 살 수 없었기 때문에, 무협작가가 됐고, 무협작가로 살기에는 재능이 모자라서 무협출판사의 직원이 됐다. 만약, 온전히 글을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능력이 됐다면 난 회사 같은 곳에 들어가진 않았을 것이다. 갈고 닦아서 되지 않은 영역은 어디에나 있다. 내가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100미터를 10초에 달릴 수 없는 것처럼, 글쓰기에도 재능은 분명히 존재한다. 남의 글을 읽고, 그것에 대해 신랄한 비판과 적절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재능을 타고 났지만, 내 글을 그렇게 쓸 수 없는 나도 출판사에서의 나와 글을 쓰는 나 자신이 전혀 다르다. 그런 갈등이 실제로 성격상에 변화를 주어서 자신안에 자신만의 여자를 키워냈다는 경희씨의 고백은 더더욱 나를 잡아끌었다. 껍질을 벗겨낸 그녀를 보고 싶었다.
"우 작가님은 나랑 잘 맞았어요. 그녀는 흔들릴 때마다 방향을 잃는 타입이어서, 누군가 강하게 잡아줘야 했거든요. 작업을 하는동안 나도 모르게 내안의 내가 나오고 말았고, 우 작가님도 자기 안의 자기가 나오고 말았죠. 키스를 하더군요. 사랑을 고백하면서요. 당연히 거절했지만, 눈물로 고백하는 우작가를 보니까 이상스럽게 괴롭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금씩 조금씩 그녀를 내 사람으로 만들었죠. 곤란한 짓을 시키고, 그것을 곤란해 하면서도 따르면서 우작가는 희열을 느꼈어요. 나는 나대로 그랬죠. 지금은 무슨 일을 시켜도 다 하는 사이가 됐어요."
경희씨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힘이 있었다. 경희씨는 이야기를 만드는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창작을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상황에서도 상황을 주도하고 싶어하는 욕망이 있다. 난 경희씨가 만드는 세계에 내 몸을 맡겼다. 내가 눈을 떠버린다면, 모든 것은 깨지겠지만, 난 그러고 싶지 않았다. 경희씨가 핸드폰으로 문자를 보내는 듯 했다. 그리 길지 않은 침묵의 시간이었지만, 난 침을 몇번이나 삼킬 정도로 긴장하고 또 흥분했다. 딸깍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우 작가였다.
"나 왔어."
"선배님. 눈을 뜨시면 안되요. 잠깐만 그대로 있어요."
경희씨가 눈을 뜨려는 내 얼굴을 자기 손으로 살짝 덮으며 말했다. 경희씨의 손은 찼다. 자기도 긴장한 듯 보였다.
"우 작가님. 지금 여기서 바질 벗어요. 괜찮아요. 선배님은 눈을 뜨지 않을 테니까."
"어떻게..지금..여기서."
"싫으세요? 그럼 하지 마세요."
"아냐. 아냐. 할게. 나 할 수 있어."
버클을 푸는 소리가 나더니 곧 꽉낀 청바지를 벗는 소리가 났다. 얼굴이 붉어지고 호흡이 가빠졌다. 내 얼굴을 덮었던 손이 떨어지더니 경희씨가 우작가 쪽으로 걸어가더니 우작가에게 다시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작가님. 이제 괜찮죠. 제가 작가님 눈을 가렸잖아요. 부끄러운 게 없어지죠? 눈을 감으면 원래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응."
"그럼, 팬티도 벗어요. 괜찮아요. 난 작가님을 이미 알고, 선배님은 눈을 감고 있으니까요."
"알았어."
"잘했어요. 이제 조금 더 재미있는 걸 할꺼에요. 잠깐만요."
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래 눈을 감고 있어서 청각이 굉장히 민감해져 있었다. 정말로 집중해서 우작가의 부끄러워 하는 숨소리부터, 경희씨가 스르륵 바지를 벗으면서 다리와 바지의 천이 미끄러지는 소리, 경희씨의 발바닥이 방바닥에서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작가님, 이제 눈을 떠도 돼요. 선배님도 저도 눈을 감았으니까요. 작가님만 눈을 뜬 거죠. 뭐가 보이죠?"
"경민씨. 그리고 경희씨."
"전 어떻게 하고 있죠?"
"바지를 벗고 있어."
"작가님이 제 그곳을 선배님께 말로 이야기해주세요. 전 부끄러워서 하지 못하겠고, 보여줄 수도 없어요. 하지만, 작가님은 작가님이니까 말로 선배님께 제 거길 보여줄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아...쌀 것 같아."
"우리 작가님 벌써 흥분하셨나보네. 만져줄까요?"
"어..아니..예.."
경희씨의 손이 우작가의 보지를 훑는 소리가 났다. 털이 비벼지는 소리. 조금씩 들리는 습기에 찬 소리. 질퍽거리는 소리가 났다. 너무 집중을 해서 그런지. 이상스럽게도 소리를 지르는 것이 분명한 우작가의 신음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주 선명하게 손가락이 보지구멍을 쑤시고 들어가는 소리만이 귓가를 맴돌았을 뿐이다. 정말 맹렬하게 흥분이 됐다. 섹스를 하는 것과는 또 달랐다. 그리고 그 순간 전화가 와 버렸다. 눈을 뜨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테리우스였다.
"형, 어디야?"
"네 사고 뒷수습이지. 임마. 우 작가님이랑 경희씨 방 잡아주고 있다."
"어서 들어와. 기분 나쁘단 말이야. 이런 날 혼자 있는 거 싫거든."
"알았어. 갈게."
"욕힌 건 미안하다고 전해 줘. 순간적으로 흥분해서 그랬다고."
테리우스랑 전화 통화를 하고 도중 옷을 입는 소리가 났다. 둘 모두였다. 허망했다. 이 기분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충분한 시간이 흐른 뒤 난 눈을 떴고, 우작가도 경희씨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목례를 하고, 일어섰는데, 그 때까지 죽지 않은 발기한 내 자지에 둘 모두의 시선이 머무르는 걸 느꼈다. 아쉬운 마음에 몇 번이고 돌아보며, 콘도의 복도를 걸었다.
별장으로 돌아왔더니, 테리우스가 밖에서 혼자 바베큐를 굽고 있었다. 너무 긴장을 해서 그런지 식욕은 없었지만, 배는 고팠다. 차에서 내려 테리우스가 구워놓은 고기를 젓가락으로 집어먹는데, 테리우스가 물었다.
"형, 그런데, 뭐하다 이렇게 늦게 왔어? 방 잡는 거야 금방이잖아."
"한화 콘도에 우리 교회 콘도 회원권이 있어서, 그걸로 예약하고, 방잡아주고, 이틀 치 방값 계산해주고, 돌아오는데, 사라 생각이 나서..진짜 좋은 여자였잖아. 올라오면서 한 짓 또했지. 해안도로 달리면서 립스틱을 좀 따라불렀다. 그러다가 경희씨가 사과한다고 해서 되돌아가서 사과를 받아주고 왔지."
"뭐래?"
"지가 무슨 할 말이 있겠냐? 미안하다지 뭐. 진심은 아니었다고."
"걔, 형 좋아하지?"
"무슨 소리야?"
"좋아하는 것 같던데, 뭐. 저번에 내가 형이랑 사라 사귄거 이야기 했을 때랑, 형이랑 나랑 룸싸롱 다녔을 때 이야기 할 때보니까 얼굴이 하얗게 질리던데 뭐."
"귀신은 귀신이다. 어떻게 알았냐? 그렇지 않아도 고백하더라."
"어렸을 때부터 늘 수백명이상의 눈초리를 살았거든. 눈치엔 도가 텄지. 그래서."
"하긴, 목사님 아들들은 다 그렇더라. 우리교회 목사님 아들만 봐도 그렇고."
"형네 고향집 교회 목사님은 훌륭하신 분이라며, 그런 분 아들도 그런데, 반사기꾼에 진짜 재림예수인줄 아는 사람 아들로 살려니 얼마나 눈치를 많이 봤겠어. 형은 진짜로 믿고 있으니 상관이 없었는데, 난 늘 언제 들킬까 불안했거든. 그건, 그렇고 뭐라고 했어? 좋아한다는 여자한데."
"그냥 좋아하라고 했지. 난 내 마음대로 할 거라고."
"멋있네. 역시 이 이진명이 형이다. 안되겠다. 형. 이것만 먹고 일어나자. 내가 진짜 죽이는 데 데려갈께."
"어딜?"
"형이 들어나 봤을란가 모르겠네. 방석집이라고."
"그 여자들 데리고 노는 하드코어 업소?"
"인생을 바꿀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곳이지. 형도 그런데엔 가본 적 없잖아."
경희씨로 인해 고양된 심정이 아직 가라앉지 않았기 때문에, 테리우스의 제안은 싫지 않았다. 아니, 궁금했고, 해보고 싶었다. 난 허락만 한다면 아까의 그 체험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감성이 남다른 테리우스라면 더 재미있는 것들을 경험하게 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아니, 내가 상황을 주도한다면 더 마약같이 한꺼번에 뒤통수를 가득 때리는 큰 흥분을 모두에게 줄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벗고 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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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수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750이라니. 이런 추천수는 본 일이 없어서 당황스러운 한편 기쁘고 자랑스럽기도 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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