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부------------------------------
이른 아침 왕궁으로 갈일 빼고는 할 일이 없던 난 평상복으로 몰래 접객실을 빠져나왔다.
전날의 질펀한 섹스는 혜선과 혜미가 늦잠을 잘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같이 국왕을 만날 것도 아니어서 이렇게 외유를 하다 곧바로 궁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만다왕국도 상인의 땅이라 부를 만큼 온갖 상단이 즐비하게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상인의 땅이라고 해도 팔아먹을게 없다면 금새 사그라든다는 것은 세 살짜리 아이도 알고 있는 문제다.
만다왕국은 그나마 평야가 있어 곡식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고 무기 중에서도 화살이 유명했다.
그래서인지 타국에서도 만다의 화살이라고 하면 제법 좋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일반 생필품은 생산이 되고 있었지만 수입의 양으로 따진다면 화살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군수품이 가장 잘 팔리다보니 당연 왕국의 재정은 언제나 튼튼했고 오만제국의 영향에 있는 세 왕국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왕국으로 위치했다.
아침부터 상단을 이끌고 움직이는 사람도 보이고 시장으로 보이는 곳에는 벌써부터 흥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활발한 시장에 내가 이끄는 와이번상단의 깃발을 보니 반가움이 앞섰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다가가 이렇쿵저렇쿵 말할 입장이 아니라 그저 기분 좋은 웃음으로 그들의 원행이 성공적으로 끝나길 빌어주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 푹 빠져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입궁할 시간이 되었다.
“이봐 거기. 멈춰. 안들려 멈추라고.”
뭔가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왠 소녀가 날 삿대질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나?”
“그럼 여기 당신말고 또 있어?”
“그렇군. 무슨 문제 있나?”
“문제? 이거 어이가 없구만.”
잘해야 18살이나 될까한 계집애가 당돌하게 대드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가슴이라고 있어야 할 곳에는 그저 여자란 느낌이 날 정도로 솟아 있었고 다만 허리와 힙, 다리로 이어지는 라인만이 눈부신 약간은 미녀소리를 들을 여자였다.
“나 지금 바쁘거든. 그러니 용건만 말해.”
“자신의 잘못을 빌 생각은 안하고 엉뚱한 소리만 할거야?”
도대체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그냥 이곳에 와서 사람 사는거 구경한게 잘못이란 말인가?
“좋아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인데 여긴 내 구역이야.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둘러보고 가면 내가 섭섭하지 않겠어?”
뭐 좀 이쁘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에 윙크까지 하며 이런 소리를 해대니 더 멍해졌다.
그렇다고 주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 내가 이곳을 둘러본게 그렇게도 잘못 된 것인가?”
“당연하지. 이거 룰도 모르는 놈이 대담하게 그런짓을 한거란 말야?”
그녀의 말이 끝나자 어느새 주변에 몇몇 덩치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어이없어하는 내게 한줄기 전음이 들려왔다.
‘주인님. 여기는 저들이 관리하는 구역입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이 혼자서 돌아다니면 표적으로 삼고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겨우 둘러보는 것으로 공격한다고?’
‘네. 이건 저희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 좋은 시장엔 의례 그곳을 지키는 무리가 있는 법이고 제가 보기엔 저 여자가 이곳을 통제하는 것 같습니다.’
이거 뭐 옛날 시장통에 건달들이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이런게 이곳에도 있었나?
주변을 둘러보니 딱히 실력이 있는 놈들이 아니고 그저 몸만 키운 놈들인데 저런 놈들을 믿고 이곳을 장악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뭐 그녀야 조금 실력이 있어 보였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상단에는 호위 무사들이 있는데 이런 놈들이 설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물론 상단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유시장의 각 점포의 주인들을 보호하며 공생하는 관계입니다.’
아무튼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든 것은 맞는거 같았다.
“내가 지금 좀 바빠서 그런데 나중에 얘기하지.”
한주먹 거리도 안되는 놈들을 직접 상대하기도 그렇고 계속 이러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호호호. 그건 당신 생각이고 우리 생각은 틀린걸? 조용히 따라오는게 좋을거야.”
순간 피가 끓었지만 괜히 말썽을 부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마침 멀리서 보이던 와이번상단의 깃발이 가까이 다가오자 행수로 보이는 놈을 전음으로 불렀다.
‘당황하지 말고 이쪽으로 와봐. 나 제갈천이다. 아는 척...’
“헉. 백작님. 어디 계십니까?”
“젠장. 저새끼 누가 뽑은거야?”
내 목소리가 들리자 그놈을 거의 날다시피해서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속도로 다시 뒤로 날아갔다.
내게 모가지를 빳빳하게 들고 대들던 그녀는 지금의 상황을 전혀 이해 못하는 듯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텨와.”
누워서 꿈틀거리던 놈이 내 말 한마디에 즉각 일어나 달려왔다.
아니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배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안간힘을 쓰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나보다.
하지만 난 사람의 몸이 그리 허약하지 않다는 것을 정신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장난하나?”
대번에 안색이 변한 놈은 곧바로 자세를 꼿꼿이 하더니 죽을 힘으로 걸었다.
“너 어디 소속이야?”
“7사단장입니다.”
“사단장이란 놈이 그렇게 눈치가 없냐?”
“죄송합니다.”
“아 그건 됐고. 이봐 거기 여자. 이 상황이면 내가 누군지도 알테고 의심도 사라졌겠지?”
“그.. 그게...”
“아무튼 난 지금 바빠서 갈테니까 뭐 문제 있으면 이 얼빵한 놈하고 얘기하라고.”
그말을 끝으로 난 왕궁으로 향했다.
뭐 시간이 있었으면 뭔가 장난을 칠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없는게 아쉬웠다.
왕궁으로 가는 길이 왠지 찜찜함을 가지고 가는 것이라 내키지 않았다.
정식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준비하고 있던 혜선과 혜미를 앞세워 왕궁으로 향했다.
우리의 행차를 알고 있는지 왕국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미 국왕의 모습을 보니 내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상황은 끝나 보였다.
질리언에게 전해 받은 말이 있으니 날 대하는 태도도 일반 외교관을 대하는 것과는 아예 비교 자체가 안되는 말이었다.
“국왕 폐하를 뵈옵니다.”
“어서오시오 제갈천 백작. 먼길에 수고 많았소.”
“여기 저희 황제폐하가 전하시는 동맹 문서입니다.”
내가 서신을 내밀자 기사한명이 다가와서 서신을 국왕에게 전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신하들의 표정은 뻣뻣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래 다른 말씀은 없으셨는가?”
“네 폐하.”
“그래 이 문제는 내가 상의를 해 볼 테니 그동안 연회에 참석해 피로를 풀도록 하시오.”
“감사하옵니다 폐하.”
이딴 소리를 하고 있으려니 손이 근질거렸다.
멜론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도 짜증이 이빠인데 이런 조그만 왕국(?)에도 머리를 숙여야 하다니 내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는지.
서로의 인사가 끝나자 기사 한명이 날 데리고 방으로 안내했다.
뭐 사신들이 오면 묵는 곳인듯 했는데 썩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와 같이 있는 여자를 힐끔거리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을 뿐.
한마디 하려다가 그냥 참기로 했다.
어짜피 결정이란 것은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상태다 보니 조용히 있는게 도와주는 것이고 이뻐서 쳐다보는걸 일일이 다 죽이고 다닐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방에서 잠시 쉬는 사이 연회가 시작된다는 말을 전해 들었고 우리는 연회장으로 안내되었다.
연회장 안은 별별 사람이 다 모여 있는 듯 했다.
귀족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자식들까지 그 넓은 홀이 사람으로 가득찰 정도로 모여있었다.
몇몇 눈에 띄는 여자들도 - 난 여자만 본다. 남자는 취향이 아니라서 - 있었지만 지금 데리고 있는 혜선과 혜미를 따라올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에 봤던 여자가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만다왕은 연회의 시작을 알리고 자리에 앉아서 나를 찾았다.
뭐 어짜피 밀약은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라 혜선과 혜미를 자리에 두고 움직였다.
“맘에 드는 놈 있으면 적당히 놀고 있어.”
말은 그렇게 해뒀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어제 찾아온 위대한 분은 누구와 친분이 있는 것이오?”
“아. 질리언을 말하는 것인가 보군요.”
만다왕은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질리언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나와 친분이 있다는 말을 확인하자 다시금 안심하는 눈빛이었다.
“허면 그대는 그 사실을 황제폐하에게 알리지 않았단 말인가?”
어쭈 늙은이가 제법 머리를 쓰려고 한다.
“알려서 좋을 것이 없지요. 허나 전 폐하에겐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허허. 그래 그대는 뭔가 나와 거래를 원하는 눈빛이군.”
알아서 판단을 잘해 주니 한결 편하다고나 할까?
내가 오만제국에 충성하겠다고 이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허울뿐인 백작보다는 그 이상의 직위를 얻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게다가 이왕 직위를 높여 군사력을 키울 수 있다면 그에 버금가는 재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터 그것을 얻기 위해 질리언을 이용한 것뿐이다.
“폐하께선 아마 오만제국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진 않을 겁니다. 저 역시 제국에 충성한다는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만...”
“자네... 지금 무슨 말을...”
“자자. 우리 솔직하게 얘기 합시다. 그리고 이 주위는 제가 강기막을 쳐둬서 남들은 우리 말을 듣지도 못합니다.”
“그럼?”
“아. 제가 또 하나 알려드리게 되는군요. 전 소드마스터라고 하는 단계는 이미 넘었습니다. 이거 참 이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입니다.”
살짝 살기를 끌어올렸더니 만다왕은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소드마스터라고 하면 어느 국가에 가서라도 당장 공작의 직위를 받아도 상관이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그런 사람이 겨우 후작을 얻겠다고 이곳에 온 것이나 기껏 비밀로 해오던 것을 자신에게 말한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역시 일국의 왕다운 면모를 보여 그는 다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 내게 원하는게 무엇인가?”
“화살의 전매권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물론 힘들 것이란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화살은 만다왕국의 수익 중 60%나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은 물건이다.
그런 것을 내게 넘긴다는 것은 내 의도에 따라 왕국의 재정이 내 손에서 놀아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거래다.
“대신 제가 조건을 달지요.”
“크흠... 말해보게.”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사실 소드마스터에 레드드래곤의 비호가 있다면 제국은 몰라도 왕국 정도는 한방에 쓸어버릴 수도 있는데 굳이 거래라고 하는 이유가.
“제가 알기론 폐하께선 제국에 원수를 갚으려고 하시는 걸로 압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아니 오히려 빌미가 잡히면 제국에서 만다왕국을 공격할 수도 있겠죠.”
여기까지 말하고 숨을 내쉬었다.
만다국왕 역시 안색이 않좋게 변했다.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나란 인물을 보니 맥이 빠졌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동맹을 인정하시고 화살의 판권을 제게 넘긴다면 만다왕국의 안위는 제가 보장을 하겠습니다.”
지금 만다왕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분명 적국의 사신인데 지금 하는 말은 자신보다 더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혹시 자네 반란을 꾀하고 있는 건가?”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제 것을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로 남의 것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훗날 제국이 절 가만히 두리라고는 생각하기가 힘들어서 하는 말씀입니다.”
만다왕은 잠시만 생각해도 나의 앞날이 보이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후작이 되고 나면 좀 더 많은 세력이 모일 것이고 그것은 제국에선 목에 가시처럼 느껴질 것이다.
완전한 자기 사람이 아니니 이런 계략을 꾸며 만다왕국에서 죽게 만들고 그것을 빌미로 왕국을 접수하려 했을 테니까.
“자네의 말을 어떻게 믿겠나?”
“믿을 수 없다면 거래는 끝난 것입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손에서 기검을 만들어 날렸다.
아까부터 혜선과 혜미를 끈적한 시선으로 보고 있던 놈의 목이 공중에 떠 올랐다.
그것을 시작으로 혜선과 혜미의 공격이 이어졌고 그녀들 주변은 삽시간에 시체들이 깔렸다.
“전 제 여인을 건드리는 놈은 절대 못 참거든요.”
만다왕은 지금의 황당한 사태에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빌어먹을 지꺼를 안건드린다는 말이 여자였단 말인가?’
내가 막 움직이려 하자 만다왕이 날 붙잡았다.
“잠깐. 잠시만 기다리게.”
연회장 안의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죽은 놈은 물론 그녀들이 죽인 놈들은 그래도 제법 실력이 있다는 기사들인데 힘 한번 못 쓰고 죽어버리니 누구도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근위기사라는 작자들 역시 나와 국왕의 주위를 둘러 쌀뿐 덤벼들지는 않았다.
“오늘의 연회는 여기서 끝낸다. 다들 돌아가도록. 자네는 나 좀 보세.”
황당한 일의 연속이지만 사람들이 느낀 공포는 그런 황당함을 넘어섰는지 국왕의 말이 떨어지자 서둘러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나와 마주 앉은 만다왕은 내게 한가지 질물은 던졌다.
“조금 전 자네는 자네 것을 건드리지 않으면 이란 말을 했었네. 그중에 돈이 우선인가 여자가 우선인가?”
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를 따라온 여인들도 미소를 머금었다.
내 입에서 나올 답이라고는 하나뿐이지 않은가?
“당연히 내 여자입니다.”
한번 써보니 또 쓰고 싶네요
걍 허접하다는 생각은 좀(사실 무지 많이)듭니다
그래도 쓰고 싶은걸 어떻게...
예전에 보시던 분들은 추천도 좀 해주고 하세요..ㅎㅎ
잼난 에피소든 잇으면 좀 주시구요
그럼 몇분후면 설이네요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른 아침 왕궁으로 갈일 빼고는 할 일이 없던 난 평상복으로 몰래 접객실을 빠져나왔다.
전날의 질펀한 섹스는 혜선과 혜미가 늦잠을 잘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같이 국왕을 만날 것도 아니어서 이렇게 외유를 하다 곧바로 궁으로 들어갈 생각이었다.
만다왕국도 상인의 땅이라 부를 만큼 온갖 상단이 즐비하게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상인의 땅이라고 해도 팔아먹을게 없다면 금새 사그라든다는 것은 세 살짜리 아이도 알고 있는 문제다.
만다왕국은 그나마 평야가 있어 곡식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었고 무기 중에서도 화살이 유명했다.
그래서인지 타국에서도 만다의 화살이라고 하면 제법 좋은 가격으로 팔리고 있었다.
그 외에도 일반 생필품은 생산이 되고 있었지만 수입의 양으로 따진다면 화살을 따라갈 수는 없었다.
군수품이 가장 잘 팔리다보니 당연 왕국의 재정은 언제나 튼튼했고 오만제국의 영향에 있는 세 왕국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왕국으로 위치했다.
아침부터 상단을 이끌고 움직이는 사람도 보이고 시장으로 보이는 곳에는 벌써부터 흥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게 활발한 시장에 내가 이끄는 와이번상단의 깃발을 보니 반가움이 앞섰다.
그렇다고 그들에게 다가가 이렇쿵저렇쿵 말할 입장이 아니라 그저 기분 좋은 웃음으로 그들의 원행이 성공적으로 끝나길 빌어주었다.
사람들이 사는 모습에 푹 빠져 돌아다니다 보니 벌써 입궁할 시간이 되었다.
“이봐 거기. 멈춰. 안들려 멈추라고.”
뭔가 뾰족한 목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왠 소녀가 날 삿대질하며 소리치고 있었다.
“나?”
“그럼 여기 당신말고 또 있어?”
“그렇군. 무슨 문제 있나?”
“문제? 이거 어이가 없구만.”
잘해야 18살이나 될까한 계집애가 당돌하게 대드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가슴이라고 있어야 할 곳에는 그저 여자란 느낌이 날 정도로 솟아 있었고 다만 허리와 힙, 다리로 이어지는 라인만이 눈부신 약간은 미녀소리를 들을 여자였다.
“나 지금 바쁘거든. 그러니 용건만 말해.”
“자신의 잘못을 빌 생각은 안하고 엉뚱한 소리만 할거야?”
도대체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냐고?
그냥 이곳에 와서 사람 사는거 구경한게 잘못이란 말인가?
“좋아 아직도 모르겠다는 표정인데 여긴 내 구역이야. 그런데 이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둘러보고 가면 내가 섭섭하지 않겠어?”
뭐 좀 이쁘다고 생각이 드는 순간에 윙크까지 하며 이런 소리를 해대니 더 멍해졌다.
그렇다고 주변 상황을 인식하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 내가 이곳을 둘러본게 그렇게도 잘못 된 것인가?”
“당연하지. 이거 룰도 모르는 놈이 대담하게 그런짓을 한거란 말야?”
그녀의 말이 끝나자 어느새 주변에 몇몇 덩치들이 깔리기 시작했다.
어이없어하는 내게 한줄기 전음이 들려왔다.
‘주인님. 여기는 저들이 관리하는 구역입니다. 그래서 낯선 사람이 혼자서 돌아다니면 표적으로 삼고 공격을 하는 것입니다.’
‘겨우 둘러보는 것으로 공격한다고?’
‘네. 이건 저희도 마찬가지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 좋은 시장엔 의례 그곳을 지키는 무리가 있는 법이고 제가 보기엔 저 여자가 이곳을 통제하는 것 같습니다.’
이거 뭐 옛날 시장통에 건달들이 돌아다니는 것도 아니고 이런게 이곳에도 있었나?
주변을 둘러보니 딱히 실력이 있는 놈들이 아니고 그저 몸만 키운 놈들인데 저런 놈들을 믿고 이곳을 장악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뭐 그녀야 조금 실력이 있어 보였지만 그래도 상식적으로 상단에는 호위 무사들이 있는데 이런 놈들이 설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물론 상단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유시장의 각 점포의 주인들을 보호하며 공생하는 관계입니다.’
아무튼 골치 아픈 일에 말려든 것은 맞는거 같았다.
“내가 지금 좀 바빠서 그런데 나중에 얘기하지.”
한주먹 거리도 안되는 놈들을 직접 상대하기도 그렇고 계속 이러고 있을 시간도 없었다.
“호호호. 그건 당신 생각이고 우리 생각은 틀린걸? 조용히 따라오는게 좋을거야.”
순간 피가 끓었지만 괜히 말썽을 부리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마침 멀리서 보이던 와이번상단의 깃발이 가까이 다가오자 행수로 보이는 놈을 전음으로 불렀다.
‘당황하지 말고 이쪽으로 와봐. 나 제갈천이다. 아는 척...’
“헉. 백작님. 어디 계십니까?”
“젠장. 저새끼 누가 뽑은거야?”
내 목소리가 들리자 그놈을 거의 날다시피해서 내게 다가왔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속도로 다시 뒤로 날아갔다.
내게 모가지를 빳빳하게 들고 대들던 그녀는 지금의 상황을 전혀 이해 못하는 듯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텨와.”
누워서 꿈틀거리던 놈이 내 말 한마디에 즉각 일어나 달려왔다.
아니 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배를 움켜쥐고 비틀거리며 안간힘을 쓰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나보다.
하지만 난 사람의 몸이 그리 허약하지 않다는 것을 정신력으로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장난하나?”
대번에 안색이 변한 놈은 곧바로 자세를 꼿꼿이 하더니 죽을 힘으로 걸었다.
“너 어디 소속이야?”
“7사단장입니다.”
“사단장이란 놈이 그렇게 눈치가 없냐?”
“죄송합니다.”
“아 그건 됐고. 이봐 거기 여자. 이 상황이면 내가 누군지도 알테고 의심도 사라졌겠지?”
“그.. 그게...”
“아무튼 난 지금 바빠서 갈테니까 뭐 문제 있으면 이 얼빵한 놈하고 얘기하라고.”
그말을 끝으로 난 왕궁으로 향했다.
뭐 시간이 있었으면 뭔가 장난을 칠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없는게 아쉬웠다.
왕궁으로 가는 길이 왠지 찜찜함을 가지고 가는 것이라 내키지 않았다.
정식 복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준비하고 있던 혜선과 혜미를 앞세워 왕궁으로 향했다.
우리의 행차를 알고 있는지 왕국의 주요 인물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미 국왕의 모습을 보니 내가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상황은 끝나 보였다.
질리언에게 전해 받은 말이 있으니 날 대하는 태도도 일반 외교관을 대하는 것과는 아예 비교 자체가 안되는 말이었다.
“국왕 폐하를 뵈옵니다.”
“어서오시오 제갈천 백작. 먼길에 수고 많았소.”
“여기 저희 황제폐하가 전하시는 동맹 문서입니다.”
내가 서신을 내밀자 기사한명이 다가와서 서신을 국왕에게 전했고 그것을 바라보는 신하들의 표정은 뻣뻣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래 다른 말씀은 없으셨는가?”
“네 폐하.”
“그래 이 문제는 내가 상의를 해 볼 테니 그동안 연회에 참석해 피로를 풀도록 하시오.”
“감사하옵니다 폐하.”
이딴 소리를 하고 있으려니 손이 근질거렸다.
멜론에게 머리를 숙이는 것도 짜증이 이빠인데 이런 조그만 왕국(?)에도 머리를 숙여야 하다니 내가 어쩌다 이 모양이 되었는지.
서로의 인사가 끝나자 기사 한명이 날 데리고 방으로 안내했다.
뭐 사신들이 오면 묵는 곳인듯 했는데 썩 나쁜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와 같이 있는 여자를 힐끔거리는 것이 신경에 거슬렸을 뿐.
한마디 하려다가 그냥 참기로 했다.
어짜피 결정이란 것은 이미 답이 나와 있는 상태다 보니 조용히 있는게 도와주는 것이고 이뻐서 쳐다보는걸 일일이 다 죽이고 다닐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방에서 잠시 쉬는 사이 연회가 시작된다는 말을 전해 들었고 우리는 연회장으로 안내되었다.
연회장 안은 별별 사람이 다 모여 있는 듯 했다.
귀족들은 물론이고 그들의 자식들까지 그 넓은 홀이 사람으로 가득찰 정도로 모여있었다.
몇몇 눈에 띄는 여자들도 - 난 여자만 본다. 남자는 취향이 아니라서 - 있었지만 지금 데리고 있는 혜선과 혜미를 따라올 여자는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아침에 봤던 여자가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만다왕은 연회의 시작을 알리고 자리에 앉아서 나를 찾았다.
뭐 어짜피 밀약은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것이라 혜선과 혜미를 자리에 두고 움직였다.
“맘에 드는 놈 있으면 적당히 놀고 있어.”
말은 그렇게 해뒀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는...
“어제 찾아온 위대한 분은 누구와 친분이 있는 것이오?”
“아. 질리언을 말하는 것인가 보군요.”
만다왕은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질리언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정말로 나와 친분이 있다는 말을 확인하자 다시금 안심하는 눈빛이었다.
“허면 그대는 그 사실을 황제폐하에게 알리지 않았단 말인가?”
어쭈 늙은이가 제법 머리를 쓰려고 한다.
“알려서 좋을 것이 없지요. 허나 전 폐하에겐 솔직하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허허. 그래 그대는 뭔가 나와 거래를 원하는 눈빛이군.”
알아서 판단을 잘해 주니 한결 편하다고나 할까?
내가 오만제국에 충성하겠다고 이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허울뿐인 백작보다는 그 이상의 직위를 얻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게다가 이왕 직위를 높여 군사력을 키울 수 있다면 그에 버금가는 재력이 뒷받침 되어야 할 터 그것을 얻기 위해 질리언을 이용한 것뿐이다.
“폐하께선 아마 오만제국에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진 않을 겁니다. 저 역시 제국에 충성한다는 생각 따위는 없습니다만...”
“자네... 지금 무슨 말을...”
“자자. 우리 솔직하게 얘기 합시다. 그리고 이 주위는 제가 강기막을 쳐둬서 남들은 우리 말을 듣지도 못합니다.”
“그럼?”
“아. 제가 또 하나 알려드리게 되는군요. 전 소드마스터라고 하는 단계는 이미 넘었습니다. 이거 참 이건 아무도 모르는 비밀입니다.”
살짝 살기를 끌어올렸더니 만다왕은 조금 당황하는 기색이었다.
소드마스터라고 하면 어느 국가에 가서라도 당장 공작의 직위를 받아도 상관이 없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그런 사람이 겨우 후작을 얻겠다고 이곳에 온 것이나 기껏 비밀로 해오던 것을 자신에게 말한다는 것은 뭔가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역시 일국의 왕다운 면모를 보여 그는 다시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그래 내게 원하는게 무엇인가?”
“화살의 전매권을 저에게 주십시오.”
“그건...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시오?”
“물론 힘들 것이란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화살은 만다왕국의 수익 중 60%나 차지할 만큼 비중이 높은 물건이다.
그런 것을 내게 넘긴다는 것은 내 의도에 따라 왕국의 재정이 내 손에서 놀아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거래다.
“대신 제가 조건을 달지요.”
“크흠... 말해보게.”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사실 소드마스터에 레드드래곤의 비호가 있다면 제국은 몰라도 왕국 정도는 한방에 쓸어버릴 수도 있는데 굳이 거래라고 하는 이유가.
“제가 알기론 폐하께선 제국에 원수를 갚으려고 하시는 걸로 압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아니 오히려 빌미가 잡히면 제국에서 만다왕국을 공격할 수도 있겠죠.”
여기까지 말하고 숨을 내쉬었다.
만다국왕 역시 안색이 않좋게 변했다.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가 나란 인물을 보니 맥이 빠졌으리라.
“하지만 지금의 동맹을 인정하시고 화살의 판권을 제게 넘긴다면 만다왕국의 안위는 제가 보장을 하겠습니다.”
지금 만다왕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분명 적국의 사신인데 지금 하는 말은 자신보다 더 위험한 발상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
“혹시 자네 반란을 꾀하고 있는 건가?”
“하하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 제 것을 건드리지 않으면 절대로 남의 것을 건드리지 않습니다. 훗날 제국이 절 가만히 두리라고는 생각하기가 힘들어서 하는 말씀입니다.”
만다왕은 잠시만 생각해도 나의 앞날이 보이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후작이 되고 나면 좀 더 많은 세력이 모일 것이고 그것은 제국에선 목에 가시처럼 느껴질 것이다.
완전한 자기 사람이 아니니 이런 계략을 꾸며 만다왕국에서 죽게 만들고 그것을 빌미로 왕국을 접수하려 했을 테니까.
“자네의 말을 어떻게 믿겠나?”
“믿을 수 없다면 거래는 끝난 것입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손에서 기검을 만들어 날렸다.
아까부터 혜선과 혜미를 끈적한 시선으로 보고 있던 놈의 목이 공중에 떠 올랐다.
그것을 시작으로 혜선과 혜미의 공격이 이어졌고 그녀들 주변은 삽시간에 시체들이 깔렸다.
“전 제 여인을 건드리는 놈은 절대 못 참거든요.”
만다왕은 지금의 황당한 사태에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빌어먹을 지꺼를 안건드린다는 말이 여자였단 말인가?’
내가 막 움직이려 하자 만다왕이 날 붙잡았다.
“잠깐. 잠시만 기다리게.”
연회장 안의 사람들은 지금의 상황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내가 죽은 놈은 물론 그녀들이 죽인 놈들은 그래도 제법 실력이 있다는 기사들인데 힘 한번 못 쓰고 죽어버리니 누구도 나서려는 사람이 없었다.
근위기사라는 작자들 역시 나와 국왕의 주위를 둘러 쌀뿐 덤벼들지는 않았다.
“오늘의 연회는 여기서 끝낸다. 다들 돌아가도록. 자네는 나 좀 보세.”
황당한 일의 연속이지만 사람들이 느낀 공포는 그런 황당함을 넘어섰는지 국왕의 말이 떨어지자 서둘러 자리를 떠나고 있었다.
나와 마주 앉은 만다왕은 내게 한가지 질물은 던졌다.
“조금 전 자네는 자네 것을 건드리지 않으면 이란 말을 했었네. 그중에 돈이 우선인가 여자가 우선인가?”
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를 따라온 여인들도 미소를 머금었다.
내 입에서 나올 답이라고는 하나뿐이지 않은가?
“당연히 내 여자입니다.”
한번 써보니 또 쓰고 싶네요
걍 허접하다는 생각은 좀(사실 무지 많이)듭니다
그래도 쓰고 싶은걸 어떻게...
예전에 보시던 분들은 추천도 좀 해주고 하세요..ㅎㅎ
잼난 에피소든 잇으면 좀 주시구요
그럼 몇분후면 설이네요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최고관리자
가입일 | 2016-08-11 | 접속일 | 2024-1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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