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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5 00:01 299회 0건
쇼트웨이브는 살리에라 옆에 서서 표지판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곳은 콘크리트처럼 어두운 청회색으로 굳어가는 하늘과 희망없는 미래처럼 암울하게 그어진 지평선이, 카키색으로 만나는 어느 소실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곳엔 황무지의 돌과 흙을 긁어 모아 회오리바람으로 쌓아올린 것처럼 느껴지는, 대단히 높고 삐죽한 암벽들이 모여 작은 숲을 이루고 있었다.
"파이스틱 세워 놓은거 같애. 바삭바삭할거 같지 않니?"
디지털퍼머가 눈을 깜박이며 맛있는 과자를 본 것처럼 말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검은 물을 빼버릴 듯이 먹구름을 찌르며 서 있는 이쑤시개 같은 암벽들은, 위태로움과 함께 뭔지모를 불길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일단 가보자."
한동안 그곳을 주시하던 쇼트웨이브가 말했다. 디지털퍼머는 차에 올라타서 문을 닫았다. 차가 출발하기 전 창문을 통해 건너다 본 백금 넵튠은, 가엾어 보이는 케레스를 내려다보며 여전히 의미불명인 섬뜩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군데군데 벙커처럼 도사리고 있는 깊은 모래구덩이를 빼면 길은 평탄한 편이었다. 쇼트웨이브는 속력을 줄여가며 자칫하면 빠질 수 있는 몇 개의 위험한 함정들을 솜씨좋게 피해갔다.
"너두 그런 얘기 많이 듣지 않았니?"
차가 요철처럼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가자 갑작스럽게 상하운동을 일으킨 코일스프링의 유연한 탄성으로 인해 자리에서 몸을 들썩이며 디지털퍼머가 말했다.
"처녀 귀신이라던지 총각 귀신이라던지, 이유야 어떻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가지 못하고 구천을 떠돈다는 영혼 얘기말야."
"그래, 그런 얘기 가끔씩 들었지. 근데 왜?" 쇼트웨이브가 말했다.
디지털퍼머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제 그 얘기, 우리 얘기 아니니."
쇼트웨이브는 말문이 막혔다. 디지털퍼머의 눈에서 견딜 수 없는 공포감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 싸늘한 정적이 차 안에 흘렀다.
"재수없는 소리하지마, 이것아."
쇼트웨이브가 애써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 역시 그런 공포감을 없앨 순 없었다. 그녀들의 세상으로 통하는, 존재하지 않는 통로를 찾아 끝없이 이 황무지를 헤매는 공포 말이었다.
한순간 심장을 조이는 듯한 폐쇄공포증이 그녀를 엄습했다. 막막할 정도로 넓은 공간을 눈 앞에 두고 느닷없이 밀어닥친 폐쇄공포증은, 아이러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그녀를 말도 못할 만큼 당황시켰다. 그녀는 자신이 유리병 속에 채집된 귀뚜라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리병 밖에서는 핀셋을 집어들고 누군가 빤히 그녀를 관찰하고 있을 것만 같았다. 시간이 멈춰 버린 것처럼 아득했다. 쇼트웨이브는 식은 땀을 흘리며 감정을 다스리기 위해 애를 썼다. 무슨 말이든지 해야했다.

"잭오랜턴 얘기 알아?"
말을 꺼내놓고 보니 화제를 잘못 잡지 않았나 싶었다. 가만히 있을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그게 뭔데?" 디지털퍼머가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잠시 아무 말 하지 않고 있다가 쇼트웨이브가 대답했다.
"호박으로 만든 등. 서양에서 할로윈데이에 호박 속을 파서 등을 만드는거 있잖아."
"아, 그래. 꼭 귀신 얼굴모양으로 만든거 말이지?"
"그래, 그걸 잭오랜턴이라고 그래. 우리 말로 하면 잭의 등불 정도 되는거지."
"왜 잭의 등불이지? 잭이 들고 다니나?"
"맞아." 쇼트웨이브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시작했다.
"옛날에, 영국에 잭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말야, 대단히 약은 꾀가 많은 사람이었나봐. 하루는 술집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데 저승사자가 그를 데리러 왔대."
헛바람을 들이키며 디지털퍼머가 물었다.
"낫 들고?"
쇼트웨이브가 웃었다.
"이건 그냥 옛날 얘기야. 굳이 그림 리퍼와 연관시키지 않아도 돼." 그녀가 재빨리 핸들을 감은 다음 제자리로 되돌렸다.
"잭은 이제 큰 일 난거지. 하지만 재빨리 머리를 써서 꾀를 하나 냈대. 저승사자를 꼬셔서 술 한잔만 하고 가자고 그랬어. 저승사자도 술을 좋아했나부지. 이제 마지막으로 먹는 술이 될텐데 그러자고 그랬대. 그래서 둘이 한잔씩 마시게 됐어."
"그건 직무유기 아냐. 저승사자가 그래도 되는거야."
디지털퍼머가 뾰루퉁하게 덧붙였다. 쇼트웨이브가 혀를 찼다.
"고소해라, 이 년아. 염라대왕한테."
다시한번 차가 들썩거렸다. 쇼트웨이브가 말을 이었다.
"여하튼 술을 마시고 나서 계산을 해야 되는데 잭이 돈이 없다는 거야. 그러면서 저승사자한테 잠시 동전으로 변할 수 있냐구 물었대. 계산을 치룰 때까지만 술집주인을 속이자는 거였지."
디지털퍼머가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저승사자가 그렇게 했대?"
"저승사자도 그 장난이 재밌었나봐. 아님 술 한잔 해서 취기가 올랐는지도 모르고. 좋다구 그러고서는 6펜스 짜리 동전으로 변했대. 그러자 잭이 그 동전을 집어서 은화가 들어있는 자기 지갑에 넣었어."
은화라는 소리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눈으로 자신을 보는 디지털퍼머를 위해 쇼트웨이브는 설명을 붙였다.
"원래 악마나 마귀는 은을 무서워 하잖아. 늑대인간도 은총알을 맞으면 죽는다며. 저승사자도 그런가봐. 은화 옆에 두었더니 제 모습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대. 그래서 울며 겨자먹기로 잭이랑 타협을 한거지."
"무슨 타협?"
"10년간 그의 앞에 나타나지 않기로 말야."
"그럼 생명이 10년 연장된 셈이네."
"그렇지."
차는 꼭 달구지를 탄 것처럼 흔들렸다. 잔 돌맹이들이 벌판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가끔씩 보이는 말라비틀어진 관목들이 꿈결처럼 흘러갔다. 쇼트웨이브가 이야기를 계속했다.
"10년이 지나고 어느날 잭이 숲을 산책하고 있는데 다시 저승사자가 나타났대."
디지털퍼머가 흐흥하며 웃음소리를 냈다.
"아주 바짝 긴장했겠지. 저승사자도 화가 많이 났을테니까 말야. 이번엔 옆에 높은 나무가 있었는데 잭이 그걸 보고 또 잔꾀를 생각해냈어. 저승사자 몰래 자기 신발 한쪽을 숨긴거지. 그런 다음에 저승사자한테 신발 한쪽이 나무위에 걸렸다고 속였대. 신발이 없어서 걷지를 못한다 이거지. 갈길이 먼데 걷지를 못하겠다니까 어쩔 수 없이 저승사자가 나무 위로 올라간거야."
디지털퍼머가 어처구니가 없어 웃음을 터뜨렸다.
"그 저승사자, 그림 리퍼가 아닌건 확실해. 걔였다면 낫부터 휘둘렀을거야."
쇼트웨이브도 같이 웃었다.
"그래, 하여튼 저승사자가 나무 위에 올라가서 신발을 찾는 사이에 잭은 나무 밑둥에 십자가를 새겼어. 저승사자가 못내려오게 말야. 내려올 수가 없으니까 저승사자는 하는 수 없이 잭과 또 타협을 했는데 이젠 절대 잭의 앞에 나타나지도 않고 지옥으로 데려가지도 않기로 한거야."
"호오, 그건 꽤 좋은 조건이네."
디지털퍼머가 미간을 문지르며 말했다. 쇼트웨이브는 약간 고개를 비틀었다.
"글쎄. 그 후 잭은 오래 살았어. 그러다가 결국 죽긴 죽었는데 생전에 좋지 못한 일을 해서 천국을 갈 수는 없었지. 하느님이 지옥으로 가라고 해서 결국 지옥엘 갔는데 지옥문을 두드리니까 그 저승사자가 문을 연거야. 저승사자는 잭한테 너랑은 계약을 맺은 것이 있기 때문에 지옥에서 받아줄 수가 없다고 그러면서 내쫓았대. 지옥에서도 쫓겨났으니 이제 잭은 갈 곳이 없어진 거야."
디지털퍼머가 조용히 쇼트웨이브를 보았다. 그녀가 왜 이런 얘기를 했는지 알 만했다. 갈 곳을 잃은 사람은 잭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녀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국을 가면 좋기야 좋겠지만 가는 방법을 알 수도 없었거니와 상식적으로 가고 싶다고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지옥은 발만 잠깐 헛디디면 굴러 떨어질 낭떠러지였지만 물론 그녀들은 절대로 갈 생각이 없었다. 결국 두 곳 모두가 그녀들이 가고자 하는 목표는 아니었다. 쇼트웨이브가 말을 이었다.
"잭이 마지막으로 저승사자한테 그런 부탁을 했대. 이제 영원히 춥고 어두운 황야를 떠돌아야 하는데 불 좀 빌릴 수 있느냐구. 잭을 불쌍하게 여긴 저승사자가 지옥에서 숯불 한 조각을 집어서 주었는데 그걸 잭이 황야에 굴러다니는 빈 호박 속에 넣어가지고 들고 다니는 거래."
"그게 잭오랜턴이군."
"그래."
디지털퍼머는 잭이 떠돈다는 황야가 어디일지 궁금했다. 랜턴이 필요할 만큼 어둡고 추운 곳. 여긴 아직 그렇게 춥지도 않고 어둡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이곳을 영원히 헤맨다는 것은 몸서리쳐질 만큼 기가막힌 일이었다.

암벽의 숲이 점점 커져왔다.
멀리서 봤을 땐 거리를 잘 알 수가 없었는데 살리에라로부터 꽤나 먼 거리였다. 막힌 데 없이 지평선 끝을 볼 수가 있어 실제 거리보다 훨씬 가깝게 여겼던 것이었다. 그리고 암벽들이 있는 곳에 거의 도착했을때 그녀들은 그곳에서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던 또다른 거대한 조각을 발견했다. 그것은 마블로 만들어진 매끈한 인체상이었는데 너무나도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작품이었다.
"저거 다비드 상 아냐." 디지털퍼머가 속삭이듯 말했다.
"그래, 맞아. 다비드." 쇼트웨이브가 말하며 천천히 속력을 줄였다. 그녀는 계속해서 나타나는 이 기묘한 예술작품들에게 홀린 듯 운전석 옆 창문을 통해 그것을 바라보며 전진하다가 마침내 조각으로부터 좀 떨어진 곳에 차를 세웠다. 골리앗과 전투 직전의 모습을 형상화했다고 알려진 다비드 상은 특유의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몸을 약간 비튼채 탄력있는 긴장감을 보는 이에게 선사하고 있었다.
"아까 것도 그랬지만 이것도 크기가 어마어마하네. 이게 다윗이야, 골리앗이야." 디지털퍼머가 조소와 감탄이 섞인 어조로 말했다.
"그래, 원래의 다비드 상도 5미터 남짓된다니까 상당히 큰 거지만 이건 그 배는 되는거 같아."
쇼트웨이브가 차에서 내렸다. 차 옆에 기대 잠시 조각을 바라보던 그녀가 조각 앞으로 걸어갔다. 그 커다란 대리석 옆에 선 그녀가 안쓰러울만큼 여리게 보였다. 디지털퍼머도 차에서 내려 쇼트웨이브 곁으로 다가갔다. 마블 고유의 굽이치는 무늬가 반질거리는 표면 위로 고급스럽게 드러나 있었다.
"역시." 쇼트웨이브는 디지털퍼머가 다가오자 그녀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또 이상해?"
"응."
"이번엔 뭐가?"
"봐, 너무 노골적이야." 쇼트웨이브가 눈쌀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조각의 한 부분을 가리켰다.
"저기, 그의 성기를 봐."
다비드의 성기는 완전히 발기해서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었다. 디지털퍼머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유머감각이라고 생각했다. 그 유명한 작품을 이런 식으로 패러디 하다니.
"좋네. 그 녀석 자지 한번 크다."
쇼트웨이브가 인상을 쓰며 디지털퍼머의 옆구리를 툭 찔렀다.
"왜 섰는지를 생각해 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걸 만든 놈이 되게 웃기는 놈이었나 부지. 자지를 특히 강조한거 보니까." 디지털퍼머가 대꾸했다.
"그냥 단지 웃기는 사람이라서?" 쇼트웨이브가 반문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거 같진 않아. 다비드의 왼쪽 어깨를 봐." 그녀가 조각의 왼손을 가리켰다. 다비드는 왼손에 무엇인가를 잡고 그걸 자신의 왼쪽 어깨에 올려놓고 있었다.
"원래는 그곳에 슬링이라고 부르는 투석기가 있어야 해. 그걸로 돌을 던져서 골리앗을 쓰러뜨리지."
"그런데?"
"지금 그 어깨에 걸쳐진건 슬링이 아냐. 내가 보기엔 채찍같애. 그렇지 않아?"
디지털퍼머는 그곳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조각이 너무나 커다란 나머지 그것은 자세히 볼 필요도 없었다. 그건 분명 채찍이었다. 끝이 여러갈래로 갈라진 짧은 채찍이 다비드의 등 뒤로 늘어져 허리쯤에서 찰랑거리고 있었다. 디지털퍼머는 다비드의 표정이 백금 넵튠과 너무도 흡사해 보이는 것이 다만 착각 때문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채찍을 들고 자지를 세우고 있다..이건 무슨 뜻이니?" 디지털퍼머가 고개를 외로 꼬며 말했다.
"글쎄. 여러가지 해석이 가능하겠지. 그렇지만 아까 살리에라와 연결시켜 본다면 하나밖에는 답이 없지 않겠어?"
쇼트웨이브가 디지털퍼머를 쳐다보았다. 디지털퍼머가 한쪽 입꼬리를 치켜올렸다.
"변태?"
"그렇지."
그게 가장 적절한 답일 듯 싶었다. 다비드는 누군가를 때리기 위해 준비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감으로 인해 저토록 크게 성기가 발기할 만큼 흥분하고 있었던 것이다.

디지털퍼머가 조각을 세우고 있는 기단 근처로 갔다. 그녀가 손을 흔들어 쇼트웨이브를 불렀다.
"여기도 표지판이 있어."
쇼트웨이브가 조각 가까이 갔다. 그곳엔 역시 월계수 잎으로 장식된 네모난 표지판이 조각되어 있었는데 첫 줄에는 커다란 글씨로 "제천시"라는 글귀와 함께 암벽의 숲 너머 어느 지점을 가리키는 화살표가 그려져 있었고, 두번째 줄에는 작은 글씨로 "빠르면 해지기 전에" 라고 써 있었다.
"이게 대체.." 쇼트웨이브가 말을 끝맺지 못했다.
"해도 진다는 소리네." 디지털퍼머가 중얼거렸다.
"그러네."
쇼트웨이브가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은 여전히 흐려있었다. 해가 떠도 이 지경인데 해가 진다니..아직까지 이곳의 밤이 어떤지는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그건 상상조차 할 수 없이 끔찍한 시간일 것이 분명했다.
"좋지않아, 좋지않아."
고개를 저으며 디지털퍼머가 말하다가 쇼트웨이브의 팔을 잡았다.
"빨리 가자. 난 아무래도 여기가.."
불안한 듯이 주변을 둘러보며 그녀가 말을 흐렸다.
쇼트웨이브가 디지털퍼머를 잠시 바라보고는 표지판의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건너다 보았다. 눈 앞에 암벽의 숲이 솟아 있었다. 그것은 마치 폭이 좁은 고층 건물들이 밀집된 대단위 시가지처럼 보였다. 좁게는 4,5미터에서 넓게는 10미터 정도되는 너비로 높은 암벽들이 주형을 통해 뽑혀져 나온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쌓여 올라가 있었다. 을씨년스러운 그 암벽들은 아무런 규칙없이 되는대로 이곳저곳에 세워져 있었는데 그 때문에 암벽들 사이로 난 길들이 마치 미로처럼 복잡해 보였다. 암벽의 숲 양쪽으로는 검은 띠가 끝이 안보일만큼 길게 수평으로 뻗어있었는데 그녀들이 서 있는 곳에서 그게 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저 이상한 절벽들 사이로는 별로 들어가고 싶지 않은데. 넌 어때?" 쇼트웨이브가 디지털퍼머에게 물었다.
"나두."
"저길 돌아서 피해 가는게 어떨까."
그녀들은 서로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로의 의견이 통하자 그녀들은 더이상 망설임없이 차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들이 차를 타고 싸이코같은 다비드를 떠나 암벽의 숲 앞으로 왔을때 그것을 우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멀리서 봤을때 검은 띠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띠가 아니라 땅바닥이 갈라진 균열이었던 것이다.
균열은 까마득히 먼 오른쪽 벌판 끝에서부터 시작되어 마치 외곽선을 그리듯 암벽의 숲을 빙 둘러 오려낸 다음에 왼쪽 벌판 끝으로 사라져갔다. 만약 그녀들이 이곳을 우회하려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지평선 끝까지 내달려 균열이 끝나는 곳을 찾아야 할 것이었다.
"저 절벽들 속으로 들어가면 땅바닥이 안 갈라진 곳이 있는거야, 확실히?"
"그야 모르지. 여기선 보이지 않으니까."
"미치겠네. 그럼 이제 저 속에서 길찾기 놀이를 해야되는 거네."
지긋이 암벽들 사이를 바라보던 쇼트웨이브가 말했다.
"꼭 길찾기 놀이를 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 암벽들이 길을 막고는 있지만 벽을 만들지는 않아서 이쪽 저쪽으로 헤맨다거나 길을 잃어버릴 염려는 없을거 같은데. 대충 직선으로 건너가면 될거 같아."
"그럼, 가자. 빨리. 금새 해질거 같아."
"그러니? 난 지금이 낮인지 저녁인지도 모르겠다,야."
그녀들은 차를 몰고 천천히 암벽의 숲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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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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